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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AUTUMN

기획 특집 : 한글, 글로벌 스포트라이트 속으로

시대와 함께 변해 온 글꼴의 조형미

문자는 시대 정신과 미감, 변화하는 기술을 반영하여 계속 새로운 글자체가 개발된다. 창제 이후 6세기에 걸쳐 한글 역시 여느 문자처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모양으로 변화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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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전』. 조선 후기. 방각본(완판본).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의 대립을 그린 작자 미상의 역사 소설 『초한전』의 완판본이다. 조선 후기 민간에서 간행한 방각본은 지역에 따라 서울에서 판각한 경판본, 경기도 안성의 안성판본, 전라북도 전주의 완판본으로 나뉜다. 완판본 한글 서체는 이 소설에 나타난 것처럼 글씨가 크고 자형이 반듯반듯한 것이 특징이다.ⓒ 국립한글박물관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문자는 사물이나 자연의 모습을 모방해 만들어졌다. 이에 비해 한글은 대체적으로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추상적 개념을 반영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글자 형태 또한 점, 수평선, 수직선 등 가장 단순화된 기호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자음 글자의 경우는 발성 기관의 움직임을 기본으로 하여 된소리, 센소리 등 소리 변화에 맞춰 획이 더해지면서 확장되고 조합된다. 이것이 한글 창제의 원리와 사용법을 설명한 해설서 『훈민정음』(1446)에 “천지 자연의 소리가 있다면 그에 대응하는 글자가 있다”고 밝힌 이유일 것이다.

한글은 창제 당시에는 나라의 공식 문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주로 궁중 여성들과 불교계를 통해서 확산되었고, 이와 함께 민간에서도 한글을 배우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특히 조선 말기에 들어서는 한글 소설이 크게 유행하면서 신분과 나이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한글을 읽고 쓰게 됐다. 이 과정에서 아름다운 조형미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글자체가 등장하게 되었다.

초기의 글꼴

서지학자들은 세종이 후덕하게 생긴 한문 서체를 좋아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만든 한글은 매우 간결한 기하학적 도형으로 이루어졌다. 자음과 모음이 결합되어 꽉 차 보이는 네모꼴은 웅장해 보이고, 단순한 획은 단호함과 우직함을 느끼게 한다. 여기에 반듯한 원 모양으로 그려진 ‘ㅇ’은 시각적 경쾌함을 더한다.

그러나 이런 글자체는 한글 창제 직후 간행된 몇 권의 책에만 쓰이고 더는 나타나지 않는다. 당시 필기구였던 붓이 글자의 획에는 쉽게 변화를 줄 수 있지만, 반대로 일정한 굵기로 획을 긋기는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웅장하고 우직한 글자체가 사라진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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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 훈민정음체(AG Hunminjeongeum). 『훈민정음』에 사용된 한글 글꼴의 원형과 그 맥을 잇는 『석보상절』의 글꼴 구조를 바탕으로 오늘날의 가로쓰기 방식에 맞게 제작된 글꼴이다. AG 타이포그라피연구소가 2018년 발표했다.
ⓒ AG 타이포그라피연구소

한자 서체의 영향

이 새롭고 낯선 글자는 그 특성이 반영된 독자적인 양식보다는 이전에 익숙했던 한자의 서풍(書風)에 영향을 받았다. 한글을 한자처럼 썼다는 얘기다. 획을 가로세로로 반듯하게 만들고 글씨 전체가 정사각형을 이루는 것이 특징인 한자 해서체처럼 한글도 정방형의 비례를 유지하면서 글자의 획 수에 따라서 조밀함을 다르게 표현하였고, 무게중심을 중앙에 놓아 사방으로 뻗어 있는 획들을 단단히 잡아 주었다. 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平昌 上院寺 重創勸善文)에서 그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조선 시대에 왕실이나 국가의 주요 행사의 전모를 상세히 기록한 의궤(儀軌)의 글자체도 또박또박 반듯하고 정갈하게 쓰여 있다. 나라의 공식적인 기록이니 정확하게 썼을 것이고, 당대에 가장 글씨를 잘 쓰는 사람들이 가장 대표적인 글씨체로 썼을 것으로 짐작한다. 정조(재위 1776~1800) 때 발행된 『오륜행실도』는 인간관계에서 기본이 되는 덕목을 잘 지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엮은 책으로 여기에 쓰인 글자 역시 무게중심을 가운데 두면서 글자의 상하좌우를 대칭으로 썼다. 이 글자체는 부드러우면서도 강직해 보인다.

한편 무게중심이 글자의 한가운데 있는 해서체의 특징을 지니면서도 동시에 필획의 연결에 속도감이 나타나는 행서체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있다. 물론 한글이 한자에 비해 획 수가 많지 않아서 강약의 대비는 적지만, 자음과 모음 글자가 네모틀 안에서 크기와 공간을 조율하며 단단하고 엄정한 인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여유와 운치가 보이기도 한다. 효종(재위 1649∼1659)의 글씨와 16세기에 명필로 이름을 떨친 문인 양사언(楊士彦)의 글씨는 한자의 행서처럼 자유로우면서 힘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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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平昌 上院寺 重創勸善文)』. 1464. 필사본.상원사를 중창할 때 왕사였던 신미 스님이 다른 스님들과 함께 쓴 권선문 및 세조가 중창을 돕기 위해 물품을 보내면서 쓴 어제가 함께 필사되어 있다. 한문본과 언해본 2권이 전하며 특히 이 언해본은 가장 오래된 한글 필사본이다. 네모틀 안에서 각 글자의 좌우 대칭이 균형 있게 유지되고 있으며, 힘 있는 획에서 위엄이 느껴진다.
ⓒ 월정사 성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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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효종의 셋째 딸 숙명공주가 국왕과 왕후들에게서 받은 한글 편지 66편에 숙명공주가 쓴 편지 1편을 더해 총 67편을 묶은 『숙명신한첩(淑明宸翰帖)』 중 효종(재위 1649∼1659)의 친필 편지다. 한자 행서체의 특징이 드러나는 한글 서체로 필획이 자유로우면서도 힘이 넘쳐 호방한 인상을 준다. 고체(古體)에서 궁체(宮體)로 가는 과도기인 17세기의 대표적인 필적이다.
ⓒ 국립청주박물관

궁체

한글이 본격적으로 사용되면서 비로소 고유한 조형이 나타나게 되었다. 편지글에서 흔히 볼 수 있다고 하여 ‘서간체’라 불리기도 하고, 궁중의 여인들이 쓰던 글씨라서 ‘궁체’로도 불리는 이 글씨는 조선 후기에 형태가 완전히 잡혀 현대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 글씨의 정자체는 단정한 반면에 흘림체는 유려하고 때로는 화려하기까지 하다. 또한 모음 글자가 물리적인 글줄 흐름을 만들고, 이것을 기준으로 받침 글자가 글자의 너비를 이루어서 글자를 나열하면 좁거나 넓은 띠를 형성한다. 이는 마치 라틴 폰트의 베이스-라인과 엑스-하이트 같은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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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서(女四書)』. 19세기 추정. 필사본.영조(재위 1724~1776)의 명에 의해 문신 이덕수(李德壽)가 중국의 『여사서(女四書)(Nu sishu, Four Books for Women)를 한글로 언해한 부분을 누군가 궁체 정자로 베껴 적은 것이다. 궁체는 글자의 중심축이 오른쪽에 있으며, 동일한 자음이라 하더라도 모음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 특성을 보인다. 이 글씨는 궁체의 그런 특징을 잘 보여 주며, 자음과 모음의 결구가 균형을 이루어 단아한 느낌을 준다.
ⓒ 국립한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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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여성들 밑에서 전문적으로 필사를 담당했던 서사상궁들은 공문서뿐 아니라 왕족들의 편지를 대필하는 일도 맡았다. 이 글씨는 헌종의 어머니 신정왕후(1808~1890)의 궁인이었던 서기 이씨가 궁체 흘림으로 쓴 것이다. 획의 굵기와 비례가 다양하고 역동적인 그의 글씨는 명필로 손꼽힌다.
ⓒ 국립중앙박물관

방각본 글자체

궁체가 궁궐에서부터 발전한 한글 글자체 양식이라면 민간에서 발달한 것이 방각본 글자체다. 조선 시대 후기에 한글로 쓴 소설이 널리 유행하면서 민간 출판업자들이 책을 대량으로 인쇄해 유통했다. 이처럼 직접 붓으로 써서 전해오던 것을 판각하여 출판한 책들을 방각본이라 한다. 방각본 글자체는 목판에 한글을 빠르게 쓰고 새기는 데서 글자의 특징이 형성되었으며, 나라에서 관여하여 만든 글자체처럼 정갈한 맛은 없지만 서민적이고 질박한 멋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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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조선 후기. 방각본(경판본).조선 중기의 문인 허균(許筠 1569~1618)이 지은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의 경판본이다. 주인공이 부패한 관리들을 응징하고 이상 국가를 건설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경판본은 다른 지역의 방각본과 달리 글씨가 작으며 흘림체로 정교하게 새긴 점이 특징이다.
ⓒ 국립한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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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체 디자이너 하형원(Ha Hyeong-won 河馨媛)이 2017년 발표한 디지털 글꼴 됴웅체. 20세기 초에 간행된 영웅 소설 『됴웅젼』 방각본의 글꼴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서체다. 세로쓰기용 서체로 개발되었으며 반흘림을 적용했다.
ⓒ하형원

현대 글꼴

1945년을 기점으로 서양 문화를 받아들이며 한글의 문장 방향이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한글 조형이 나타나는데, 탈네모틀 글자체가 대표적이다. 탈네모틀 한글을 가로로 쓰면, 아이들이 명랑한 리듬에 맞춰 콩콩 뛰어노는 듯한 경쾌한 리듬이 만들어진다.그러나 19세기 말 조선의 쇠락과 멸망,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사회 복구와 경제 발전에 집중했던 한 세기 동안은 한글 조형의 침체기였다. 아직 사회적, 경제적 여유가 없었고, 따라서 다양한 한글 글자체에 대한 요구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경제가 어느 정도 안정되고 사회가 다양성을 추구하게 되면서 한글 글자체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당시는 아직 앞서 있는 서양의 시각 문화를 좇아가기에 바빴다. 그렇게 다시 10여 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세대의 자유로운 조형 실험을 통해서 다채로운 형태의 글꼴이 나타나고 있으며, 옛 한글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한 글자체들도 나오고 있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앞으로 한글 글꼴의 진화가 지금까지보다 광범위하고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을까 예측해 본다.

1945년을 기점으로 서양 문화를 받아들이며 한글의 문장 방향이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한글 조형이 나타나는데, 탈네모틀 글자체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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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 최정호체 Std.(AG Choijeongho Std.). 현대 한글 글꼴 개발의 선구자로 불리는 최정호(崔正浩 1916~1988)가 설계한 부리 계열의 글꼴로 그의 마지막 원도(原圖 original typographic drawing)이다. 당시 일반적인 글자 스타일과 달리 장체로 설계된 것이 특징이며, 부리가 크고 획의 끝이 날카롭게 마무리되어 힘차게 보인다. 본문용 한글 활자 중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모범적인 형태로 인정받고 있다.
ⓒ AG 타이포그라피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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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안삼열체(Ahn Sam-yeol). 그래픽 디자이너 안삼열(安三烈)이 2011년 발표한 활자체로 가로획과 세로획의 극명한 대비가 특징이다. 제목용 글꼴로 개발되었으며, 크게 쓸수록 글자의 특징이 더욱 두드러진다. 2013년 도쿄 TDC 애뉴얼 어워즈 활자체 디자인 부문에서 수상했으며, 한글 글꼴의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 안삼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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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 마노 2014(AG Mano 2014). 그래픽 디자이너 안상수(安尙秀)가 1985년 완성한 안상수체는 대표적인 탈네모틀 글꼴로 꼽힌다. 이후 그는 한글의 간결함을 극명하게 표현하는 세벌식 모듈 글꼴을 다양하게 실험했으며, 그중 1993년 첫선을 보인 마노체는 선 모듈로 이루어진 글꼴로 획수에 따라 글자 면적이 달라지는 특징이 있다. AG 마노체 2014는 기존 마노체를 판올림한 것이다.
ⓒ AG 타이포그라피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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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체.한글 디자이너 이용제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작해 2014년 발표한 글자체다. 조선 왕실의 활자 조각공이었던 박경서(朴景緖)의 1900년 초 활자를 디스플레이용으로 재해석했다. 글꼴의 구조는 명조체를, 점과 획의 표현은 궁체를 따랐다. 제목용 세로쓰기 서체로 개발된 이 글꼴은 가수 아이유의 앨범 <꽃갈피>에 쓰이며 널리 알려졌다.
ⓒ 이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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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켈 산스(Dunkel Sans).한글 디자인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과감한 시도로 강한 인상을 주는 제목용 글꼴이다. 독일에서 활동 중인 글꼴 디자이너 함민주(Ham Min-joo 咸珉珠)가 1950년대 국내에서 개봉한 외화의 포스터 레터링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해 2018년 발표했다.
ⓒ 함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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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체.탈네모틀 조형을 실험하기 위해 2013년 제작된 이용제의 이 글꼴은 획수에 따라 글자 면적이 확장하는 특징이 있다. 가로쓰기를 하면 경쾌한 리듬이 만들어진다.
ⓒ 이용제

이용제(Lee Yong-je 李庸齊) 계원예술대학교 시각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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