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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AUTUMN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시장
한국의 전통시장은 17세기 이후 상업이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성장했다. 과거에는 특정 기간에만 열리는 시장이 일반적이었지만,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현재와 같은 상설 시장이 보편적 형태로 자리 잡았다. 길게는 수백 년에서 짧게는 수십 년까지 저마다의 역사와 특징을 지닌 채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국내 대표적인 전통시장을 소개한다.
국내 최대 수산물 전문 시장인 자갈치시장의 모습. 회를 비롯해 갖가지 수산물을 판매한다. 특히 이곳을 대표하는 먹거리인 곰장어 구이는 고추장으로 매콤하게 양념한 곰장어를 석쇠에 구워 먹는 음식으로, 큰 인기에 힘입어 전국의 포장마차로 확산되었다. ⓒ 한국관광공사(Korea Tourism Organization)
과거에는 관청 소재지, 수도, 지방 등 장터가 열리는 장소에 따라 각각의 시장을 가리키는 명칭이 달랐다. 또한 언제든 이용할 수 있었던 상설 시장과 일정한 기간을 두고 열렸던 정기 시장처럼 장이 열리는 시기에 따라서도 구분했다. 자급자족할 수 있었던 농경 사회에서는 물품에 대한 수요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상설 시장보다는 정기 시장이 더 일반적이었고, 정기 시장 중에서는 닷새마다 열리는 오일장이 가장 보편적이었다. 한편 대부분의 시장에서는 거래 품목에 제한이 없었지만 가축이나 곡물, 땔감, 약재 등 특정 상품만 거래하는 특수 시장이 발달하기도 했다. 그중 17세기에 개설된 대구(大邱) 약령시(藥令市)는 지금까지도 존속해 지역을 대표하는 시장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에 시장이 처음 나타난 시기가 언제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역사서 『삼국사기(三國史記)』(1145)에는 신라 제21대 왕인 소지왕(炤知王)의 명령으로 490년 수도 경주(慶州)에 상설 시장을 열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를 통해 그즈음 또는 그 이전에 시장의 형태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1392~1910) 시대 초기에는 상업을 억제하는 정책으로 인해 시장이 발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17세기에 접어들어 화폐가 전국적으로 유통되고 상공업이 발전하면서 시장도 부흥하기 시작했다. 실학자 서유구(徐有榘, 1764~1845)가 저술한 백과사전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의하면 19세기 초에는 전국적으로 1,000개가 넘는 정기 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근대화를 거치면서 상설 시장이 전국적으로 늘어났고, 1970년대 말에는 국민 소득 증가의 여파로 상설 시장이 700개를 넘어서면서 정기 시장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Small Enterprise and Market Service)이 2022년도에 발표한 ‘전국 전통시장 현황’을 보면 상설 시장과 오일장을 합쳐 현재 약 1,400개의 전통시장이 존재한다. 한국의 전통시장은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의 등장으로 경쟁력을 잃었지만, 시설을 현대화하고 시대에 맞는 운영 방식을 도입하면서 활로를 모색 중이다.
남대문시장
서울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남대문시장은 하루 평균 30만 명의 사람들이 방문한다. 약 1만 개의 점포가 밀집해 있으며 식품, 잡화, 농수산물, 화훼, 공예품 등 1,700여 종에 달하는 상품이 판매된다. 사진은 남대문시장의 주방 용품 가게이다. ⓒ 서울관광재단(Seoul Tourism Organization)
과거에는 관청 소재지, 수도, 지방 등 장터가 열리는 장소에 따라 각각의 시장을 가리키는 명칭이 달랐다. 또한 언제든 이용할 수 있었던 상설 시장과 일정한 기간을 두고 열렸던 정기 시장처럼 장이 열리는 시기에 따라서도 구분했다. 자급자족할 수 있었던 농경 사회에서는 물품에 대한 수요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상설 시장보다는 정기 시장이 더 일반적이었고, 정기 시장 중에서는 닷새마다 열리는 오일장이 가장 보편적이었다. 한편 대부분의 시장에서는 거래 품목에 제한이 없었지만 가축이나 곡물, 땔감, 약재 등 특정 상품만 거래하는 특수 시장이 발달하기도 했다. 그중 17세기에 개설된 대구(大邱) 약령시(藥令市)는 지금까지도 존속해 지역을 대표하는 시장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에 시장이 처음 나타난 시기가 언제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역사서 『삼국사기(三國史記)』(1145)에는 신라 제21대 왕인 소지왕(炤知王)의 명령으로 490년 수도 경주(慶州)에 상설 시장을 열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를 통해 그즈음 또는 그 이전에 시장의 형태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1392~1910) 시대 초기에는 상업을 억제하는 정책으로 인해 시장이 발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17세기에 접어들어 화폐가 전국적으로 유통되고 상공업이 발전하면서 시장도 부흥하기 시작했다. 실학자 서유구(徐有榘, 1764~1845)가 저술한 백과사전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의하면 19세기 초에는 전국적으로 1,000개가 넘는 정기 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근대화를 거치면서 상설 시장이 전국적으로 늘어났고, 1970년대 말에는 국민 소득 증가의 여파로 상설 시장이 700개를 넘어서면서 정기 시장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Small Enterprise and Market Service)이 2022년도에 발표한 ‘전국 전통시장 현황’을 보면 상설 시장과 오일장을 합쳐 현재 약 1,400개의 전통시장이 존재한다. 한국의 전통시장은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의 등장으로 경쟁력을 잃었지만, 시설을 현대화하고 시대에 맞는 운영 방식을 도입하면서 활로를 모색 중이다.
동대문시장
동대문시장은 1990년대 들어 두타몰(Doota Mall), 밀리오레(Migliore) 등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면서 점차 현대화되었으며, 2002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관광특구(觀光特區)로 지정했다. 이곳의 하루 유동 인구는 100만 명으로 추정한다. ⓒ 셔터스톡(Shutterstock)
일반적으로 종로5가부터 청계8가까지 약 2㎞ 구간에 위치한 전통시장과 대형 상가들을 한데 아울러 동대문시장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18세기에 번성했던 배오개시장이 원류이다. 난전 상인들에 의해 개척된 배오개시장은 초기에는 상업용으로 재배된 채소들이 주로 거래되었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실향민들이 이 일대에 정착했는데, 이들이 구호물자로 옷을 만들어 팔면서 의류 시장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1960년대 초에는 섬유와 의류를 취급하는 평화시장이 개장했고, 1970년에는 원단부터 의류 부자재, 액세서리를 비롯해 혼수품을 판매하는 동대문종합시장이 문을 열었다. 2002년에는 ‘동대문패션타운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전통시장과 현대적 쇼핑센터가 공존하는 패션의 메카로 자리 잡게 되었다.
동묘(東廟) 벼룩시장
1980년대 상권이 형성된 동묘벼룩시장은 구제 옷과 골동품, 중고 가구, 고서(古書) 등 다양한 물품을 판매한다. 사진은 이곳에 자리한 장난감 가게로, 오래된 피규어와 게임기들이 가득해 복고 감성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가 즐겨 찾는다. ⓒ 서울관광재단(Seoul Tourism Organization)
서울 숭인동(崇仁洞)에 위치한 동관왕묘(東關王廟)는 중국 삼국 시대의 장군인 관우(關羽)를 모시는 사당이며, 보통 줄여서 ‘동묘’라고 말한다. 동묘 담장을 따라 형성된 벼룩시장에서는 의류, 신발, 골동품, 잡동사니 등 중고 물품이 거래된다. 과거에는 노년층이 주로 찾았지만, 최근 개성 있는 패션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방문하면서 새로운 명소로 떠올랐다. 이곳에 장터가 형성된 시기는 15~16세기로 채소를 팔던 소규모 시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금과 같은 모습은 1980년대에 만들어졌고, 2000년대 초반 청계천 복원 공사로 터전을 잃은 인근 황학동(黃鶴洞) 벼룩시장 상인들이 동묘로 몰려들면서 규모가 더욱 커졌다.
통인(通仁)시장
서울 서촌(西村, 경복궁 서쪽 마을) 지역에 위치한 통인시장은 전형적인 골목형 전통시장으로 70여 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다. 엽전으로 시장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는 재미있는 서비스를 운영해 젊은 층에 인기가 높다. ⓒ 한국관광공사(Korea Tourism Organization)
서울 경복궁 근처 주택가에 자리 잡은 통인시장은 1940년대 초 공설(公設) 시장에서 출발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이 지역에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옛 공설 시장 주변에 상점과 노점들이 들어서면서 시장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통인시장은 이른바 ‘엽전 도시락’으로 유명하다. 조선 시대에 유통되던 동전을 모티브로 엽전을 제작하여 이 엽전으로 시장 음식을 구매해 먹을 수 있도록 한 서비스이다. 또한 간장과 고춧가루 양념을 바른 떡을 기름에 볶아 먹는 ‘기름 떡볶이’도 이곳의 명물이다.
자갈치시장
우리나라 최대의 해양 물류 도시 부산(釜山)의 남쪽 해안가에 조성된 자갈치시장은 이 지역의 랜드마크이다. 국내 최대 수산물 전문 시장이기도 한 이곳에서는 각종 어패류와 활어류를 비롯하여 건어물류가 판매된다. 시장 안에는 싱싱한 횟감을 먹을 수 있는 횟집들도 조성되어 있다. 자갈치시장이 언제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지만, 과거에 어민들이 작은 고깃배를 띄워 잡은 생선을 팔기 위해 자갈이 깔려 있던 해변에 좌판을 벌였던 것이 시초로 알려졌다. 이 시장은 1920년대 초반 상설화되었고 1970년대에 정식 시장으로 개장했다. 언제나 활기가 넘치는 자갈치시장은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소재이기도 하다.
서문(西門)시장
현재 4,000여 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는 대구 서문시장은 오랫동안 원단(原緞) 시장으로 명성을 크게 얻은 곳이다. 최근에는 금, 토, 일 저녁 7시부터 늦은 밤까지 운영되는 야시장(Seomun Night Market)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 대구광역시 중구청
대구(大邱)광역시의 서문시장은 조선 후기 평양(平壤), 강경(江景)과 함께 한반도에서 가장 큰 3대 시장 중 하나였다. 초기에는 매월 두 번 장이 서는 정기 시장 형태였으나, 1920년대 공설 시장으로 운영되면서 상설화되었다. 주단(紬緞)이나 포목(布木) 등 직물이 주로 거래되는 이곳은 국내 섬유 산업의 발전을 이끈 것으로도 평가된다. 근래에는 2016년 개장한 야시장이 유명하다. 총 350m 길이의 거리에 늘어선 80여 매대에서 다양한 먹거리와 상품을 판매해 먹을거리는 물론 다양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TV 드라마 < 김비서가 왜 그럴까(What's Wrong with Secretary Kim, 金秘書爲何那樣) > (2018)에도 이곳의 야시장 풍경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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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AUTUMN
늘어나는 청년 상인들
창업을 하거나 가업을 잇는 방식으로 전통시장에 뛰어드는 젊은 상인들이 늘고 있다. 개성과 창의력을 앞세운 그들은 유튜브와 SNS 등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품질 제고와 디자인 고급화로 시장 상품의 브랜드화에 나서는 등 전통시장의 혁신을 주도하는 중이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위치한 1913송정역시장은 110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곳으로, 2010년대 중반 지자체와 현대카드, 브랜드 컨설팅 기업 필로비블론 어소시에이츠가 힘을 합쳐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단행했고 그 결과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었다. 특히 재기발랄한 청년 상인들의 입점은 오래된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 현대카드, 필로비블론 어소시에이츠(Hyundai Card, Philobiblon Associates)
오랫동안 전통시장은 고령의 상인들과 중장년층 고객들이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젊은 소비층과 구매력이 큰 고객들에게 외면받던 전통시장에 전에 없던 활력이 감지된다. 창의력과 마케팅 능력을 겸비한 젊은 상인들이 늘어나고, 시장의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콘텐츠까지 더해지면서 젊은 고객층이 유입되고 있다. 특히 젊은 상인들의 증가는 이들이 전통시장의 가능성을 주목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이들은 시장을 단순히 생업의 장소로 여기지 않고, 자신들의 개성과 아이디어가 담긴 브랜드를 창출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한다. 위기에 빠진 전통시장을 되살리려는 기존 상인들의 적극적 구애, 그리고 자신들만의 비전과 라이프스타일을 만들고 싶어 하는 청년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전통시장에서 젊은 상인들을 발견하는 일은 이제 어렵지 않게 되었다. 물론 도전에 나선 청년 상인 대다수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전통시장을 기회의 땅으로 여기며,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 속에서도 새로운 길을 모색 중이다.
활성화되는 청년몰
전주 남부시장의 상가 건물 2층에 자리 잡은 청년몰에는 서점, 소품 가게, 공방 등 기존 전통시장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침체된 전통시장을 부흥시키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2012년 전국 최초로 조성한 이 청년몰은 현재까지도 내실 있게 운영되고 있으며, 전국 각지에서 전통시장에 청년몰을 유치하는 계기가 되었다. ⓒ 트윈키아(Twinkia)
전라북도 지역의 대표 전통시장인 전주 남부(南部)시장에는 청년들이 힘을 합쳐 삶의 터전을 일궈 가는 ‘청년몰’이라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이곳은 청년 상인들을 위한 집합 상가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침체된 전통시장을 살려 보고자 마련했다. 2012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조성된 이곳 청년몰에는 규모가 크진 않지만 각자의 개성과 아이디어를 접목한 음식점과 술집, 카페, 서점, 기념품 가게 등 다양한 업종의 상점 수십 개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 청년 상인들은 공간 운영부터 청소까지 공동으로 관리한다. 청년몰 입구에 내걸린 ‘적당히 잘 벌고 아주 잘 살자’라는 캐치프레이즈는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청년 상인들의 인식을 대변한다. 이곳 청년 상인들은 “당장의 이익보다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넘치는 공간을 만들어 가고 싶다”고 입을 모은다. 청년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시장 분위기도 바뀌었다. 상인들이 이전과는 다른 서비스 마인드로 고객을 맞이하게 되었고, 배달ㆍ택배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최신 트렌드도 적극 반영했다. 여기다 필요한 원자재를 모두 시장 내에서 구입하고, 동료 상인들은 저렴한 가격에 원자재를 공급하며 상생을 도모한다. 남부시장 청년몰에서 성공한 젊은 상인들이 다른 곳에서 새롭게 점포를 열어 확장하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또한 기존 청년몰 상인들은 뒤이어 입점한 후배 상인들에게 멘토 역할도 자처한다. 자신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으로 장사 이상의 가치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전통시장이 지역의 필수 관광 코스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곳이 있다. 강원도 속초에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이웃한 두 동네를 이어주는 유일한 교통수단인 ‘갯배’가 있다. 사람이 직접 와이어를 끌어당겨 이동하는 독특함 덕분에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관광지이다. 주변에 있는 중앙시장 한쪽에는 ‘갯배st 청년몰’이 있다. 옛 수협 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든 이 공간에서는 최근 유행하는 레트로 문화를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다. 속초 시민들에게는 과거의 향수를, 관광객들에게는 갯배 탑승과 함께 꼭 들러야 하는 관광 코스가 되었다. 이처럼 청년몰은 시장의 기능뿐 아니라 지역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장소로 탈바꿈하고 있다.
가업을 잇는 젊은이들 충청남도 서산의 동부전통시장에는 70년 넘게 한 자리를 지켜온 노포가 있다. 3대째 이어 온 이 건어물 가게는 김과 감태를 파는 점포로, 현 주인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고향인 서산을 떠나 다른 직종에 종사하다가 가업을 잇게 되었다. 그는 가업의 생리를 파악하기 위해 생산부터 유통, 납품, 배달에 이르는 전 과정을 10여 년 동안 배웠다고 한다. 이 시장에는 이렇게 가업을 물려받은 청년들이 20여 명에 달한다. 닭집부터 수산물 가게, 정육점 등 업종도 다양하다. 가업을 계승하겠다는 청년들이 늘어나면서 시장에는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경기도 의정부 제일시장에도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거쳐 손자에게 이어진 반찬 가게가 있다. 50년 세월을 한자리만 지켜온 이 가게의 현 주인은 어머니의 일손을 돕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가 점포를 물려받았다. 그 역시 자신의 부모들이 그랬던 것처럼 김치를 비롯한 여러 반찬들을 직접 만들고 있다.
전통시장에서 가업을 잇는 청년들이 늘고 있는 것은 이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마지못해 가업을 잇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상황이 다르다. 이들은 부모 세대의 전통에 자신들의 현대적 방식을 결합함으로써 자아실현이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다채로운 영업 방식
부산 망미중앙(望美中央)시장의 대현상회는 젊은 여성이 운영하는 방앗간이다. 이 가게는 새로운 판로 개척을 위해 최고의 품질을 고수하는 한편 고급스러운 패키지 디자인과 온라인 판매망을 통해 시장 제품을 브랜드화하는 데 성공했다. 중소기업중앙회(KBIZ) 제공
뚜렷한 가치관을 갖고 전통시장을 레드오션이 아닌 블루오션으로 인식하는 청년 상인들의 영업 방식도 다채롭다. 인터넷과 SNS에 능숙한 이들은 점포가 크고 번듯하지 않더라도 고객을 전국 단위로 확대하는 일을 그리 어려워하지 않는다. 또한 고정관념으로부터도 자유로워 전통시장에 어울리는 업종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11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경상북도 상주의 중앙시장은 오랫동안 지역 경제의 중심지로 큰 역할을 해 왔지만, 해마다 감소하는 인구와 지역 소멸 위기가 겹치면서 존폐 위기에 있었다. 그러던 중 수년 전 열 명의 청년 상인들이 시장으로 들어왔다. 이들은 플라워숍, 비건 디저트 카페, 풍선 스튜디오 등 전통시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업종을 선택했다.
업종뿐 아니라 운영 방식도 남달랐다. 예를 들어 이곳에 위치한 옷가게 ‘라운지주(Lounge_ju)’는 전문 쇼호스트가 라이브 방송을 한다. 상주의 역사성과 의미를 담은 굿즈를 비롯해 소품, 잡화뿐만 아니라 의뢰받은 타사 제품의 판매 대행까지 도맡고 있다. SNS와 라이브커머스, 유튜브 등 홍보 채널이 많아진 요즘, 청년들은 브이로그처럼 일상을 공유하는 친근한 콘텐츠를 앞세우기도 한다. 이 같은 영업 방식은 자신들의 성장뿐만 아니라 시장 전체의 변화도 이끌어 내고 있다.
매력적인 선택지
강원도 정선(旌善)에 위치한 사북(舍北)시장 내 청년몰은 과거 탄광 산업이 발달했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특색 있는 콘텐츠로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사진은 청년몰에 입점해 있는 소품 가게 다희마켓의 인기 아이템인 연탄 모양 열쇠고리. ⓒ 다희마켓(Dahee Market)
동해안의 대표적 관광 도시 삼척(三陟)에 위치한 중앙시장의 청년몰도 근래 들어 인기를 얻고 있다. 아기자기한 공방, 분위기 좋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전통시장의 낡은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사진은 슈슈 마카롱 가게에서 판매하는 귀여운 마카롱 선물 세트. ⓒ 슈슈 마카롱(Chou Chou Macaron)
독립적인 경제 활동과 창업에 관심이 높은 청년 세대들에게 전통시장은 이제 매력적인 선택지로 떠올랐다. 그들은 전통시장을 구심점 삼아 온라인 쇼핑몰이나 포털 사이트의 플랫폼을 이용해 지역 밖 고객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접근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고객들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하고, 지역민들과 함께하는 행사를 통해 시너지 효과도 만들어 낸다. 여기에 임대료 감면과 창업 자금 융자, 교육 컨설팅 등 청년 상인들을 위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역시 큰 힘이 되고 있다.
물론 주차 시설 등 부족한 인프라와 중도 이탈 등 해결이 필요한 과제도 적지 않다. 그러나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의 유입은 지역 경제 활성화와 전통시장의 지속적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청년 상인들의 혁신적 아이디어를 통해 젊어지고 있는 전통시장의 미래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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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AUTUMN
전통시장에서 탄생한 음식들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음식 가운데 특정 전통시장을 기원으로 하는 것들이 여럿 있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이 향토 음식들은 전국적 명성을 얻어 프랜차이즈 브랜드로 거듭나기도 하고, 고유명사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밀가루를 반죽해 길게 늘어뜨린 다음 두 가닥으로 꼬아서 기름에 튀겨 내는 꽈배기, 반죽한 밀가루를 둥글게 빚어 팥소를 넣고 튀기는 단팥 도넛은 전통시장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먹거리이다. ⓒ 셔터스톡(Shutterstock)
시장 음식은 일반 음식점에 비해 저렴하고 푸짐하다. 그런 이유로 전통시장은 퇴근길 직장인들이 하루의 회포를 풀기 위해 저녁 식사를 겸해 술 한잔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사진 맷 로저스, 언스플래시(Photo by Matt Rogers on Unsplash)
남대문시장이나 동대문시장 같은 상설 시장 이외에 3일 혹은 5일에 한 번 열리는 비상설 시장을 통상 오일장(五日場)이라 부른다. 조선 시대(1392~1910) 중엽 이후 크게 번성한 오일장은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장이 열리는 날에는 지역 특산물과 갖가지 먹거리가 시장을 가득 메운다. 팔 물건을 이고 지고 온 장사꾼들과 장 보러 나온 사람들이 한데 모인 장날에는 활기가 넘쳐흐른다. 이런 장날의 흥취는 상설 시장이라고 크게 다를 바 없다.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시장 나들이에 나선 아이들은 성인이 돼서도 잊히지 않는 추억 한 보따리를 챙기곤 한다. 오일장이든 상설 시장이든 전통시장의 백미는 역시 먹거리다. 장날에만 먹을 수 있거나, 그 시장에 가야만 맛볼 수 있는 음식에 대한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자동차와 랜선 덕분에 특정 시장을 벗어난 유명 먹거리들은 전국에 분점 형태로 터를 잡았다. 안동 구(舊)시장의 안동찜닭, 전주 남부(南部)시장의 전주콩나물국밥, 나주 오일장의 나주곰탕, 포항 북부(北部)시장의 물회 등 수많은 시장 먹거리가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로 진출했다.
통닭 대신 찜닭
안동은 오래전부터 찜 요리가 발달했다. 16세기에 편찬된 『수운잡방(需雲雜方)』은 안동 지역의 토착 음식을 정리한 조리서인데, 이 책에도 간장으로 양념하여 조리는 닭 요리가 등장한다. 안동 구시장의 상인들이 개발한 안동찜닭 역시 갖가지 재료를 간장에 조려 먹는 음식이다. ⓒ 스튜디오 켄(Studio KENN)
경상북도 안동은 조선 시대의 사설 교육 기관이라 할 수 있는 서원이나 양반들의 고택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도시다. 지금도 유교 제례 의식인 제사를 1년에 수십 번 지내는 종가가 여럿 있다. 이런 이유로 오랫동안 안동을 대표했던 음식은 조리가 복잡하고 가짓수가 많은 제사 음식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이 지역을 상징하는 음식이 바뀌었다. 안동 구시장에서 탄생한 ‘안동찜닭’이 전국적 인기를 끌면서부터다. 안동찜닭은 닭을 먹기 좋게 손질하여 감자, 당근, 양배추, 표고버섯 같은 여러 가지 채소와 당면을 양념에 조려 먹는 음식이다. 특히 양념장의 배합이 관건이다. 간장 한 컵, 물엿 반 컵, 설탕 1큰술, 다진 마늘 2작은술, 생강 1작은술, 적은 양의 후춧가루가 재료다. 밀가루옷을 한 번 입힌 양파, 대파도 맛을 내는 데 한몫한다. 각종 채소에서 우러나는 단맛은 안동찜닭을 달짝지근하면서도 그리 맵지 않게 만들어 준다. 무엇보다 다채로운 식감이 이 음식의 미덕이다. 채소 특유의 아삭함과 닭고기의 쫀득함, 감자와 당면의 부드러운 식감이 한데 어우러진다. 본래 안동 구시장에는 1970~80년대만 해도 닭을 기름에 튀긴 통닭집이 많았다. 여러 기록을 살펴보면, 당시 상인들은 양념치킨이 유행하면서 통닭이 잘 팔리지 않자 자구책으로 찜닭을 개발했다고 한다. 이제는 전국에서 원조 안동찜닭의 맛을 보기 위해 수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을 정도로 그 명성이 높아졌다.
상인들의 해장국
비빔밥과 더불어 전주의 명물인 콩나물국밥은 찬밥과 데친 콩나물에 뜨거운 육수를 부어서 말아 먹는 음식이다. 전주 남부시장의 콩나물국밥은 일종의 전채(前菜) 요리인 달걀 반숙이 딸려 나오는 게 특징이다. 달걀 반숙에 국밥 국물을 떠 넣고 김 가루를 섞어 먹는다. ⓒ 게티이미지코리아(gettyimagesKOREA)
경상북도에 안동찜닭이 있다면 전라북도에는 전주콩나물국밥이 있다. 전주콩나물국밥은 멸치를 우려낸 물에 콩나물을 삶아 국물을 만든다. 여기에 밥, 살짝 데친 후 간장 양념한 콩나물, 새우젓국을 넣어 끓여 먹는 음식이다. 국밥이 끓어오르면 볶은 김치, 깨소금, 고춧가루 등을 조금 넣어 마무리한다.
전주콩나물국밥이 세상에 얼굴을 내민 시기는 꽤 오래전이라고 알려졌다. 1926년 창간된 생활 잡지 「별건곤(別乾坤)」에전주콩나물국밥에 대한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 국밥이 지금처럼 전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된 데는 전주 남부시장의 역할이 컸다. 1800년대에 이미 시장의 꼴을 갖췄던 이 시장은 1960년대에 건물을 재정비해 지금에 이른다. 전주는 과거 전라도 상업의 중심지였다. 이런 이유로 전주 남부시장에는 경상도, 충청도 심지어 제주도에서 올라온 상인들까지 모였다. 상인들이 허기를 달래기 위해 주로 찾은 음식이 바로 콩나물국밥이었다.
특히 전주 남부시장 콩나물국밥에는 수란(水卵)이 따로 나왔다. 수란은 우리 전통 음식 중 하나로, 조리가 까다로워 귀한 음식으로 여겼다. 국자에 달걀을 깨 넣어 끓는 물에 잠기지 않을 정도로 넣고 달걀흰자만 익히는 음식이다. 전주 남부시장 말고는 수란이 나오는 곳은 드물다. 슴슴하고 담백한 맛과 한 그릇 다 비우면 땀이 맺힐 정도로 개운한 맛 때문에 대표적 해장국으로 손꼽힌다.
시간이 준 보양식
나주곰탕은 국물이 맑고 고기가 푸짐하다. 또한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며 밥을 데우는 토렴도 특징이다. 과거 전라도의 중심 도시였던 나주는 오일장이 열리면 각지에서 모여든 상인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는데, 이들은 나주곰탕으로 허기를 달래고 기력을 보충했다. ⓒ 뉴스뱅크(NewsBank)
곰탕도 한국인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음식이다. 기력이 예전만 못하거나 병치레할 때 우리는 버릇처럼 곰탕을 찾는다. 뜨끈한 곰탕 한 그릇이면 ‘힘이 솟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만한 게 곰탕만큼 영양 만점인 음식도 없다. 조리 과정만 봐도 정성이 가득한 먹거리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다. 탕에 들어가는 소고기는 무와 함께 미리 익혀 양념해 둔다. 이것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 대파 등 갖은 채소와 함께 다시 푹 끓인다. 6시간 넘게 끓이기에 영양소가 국물에 자연스럽게 배어난다.
곰탕은 우리나라에서 오일장이 최초로 선 전라남도 나주가 본고장이다. 장날 전국에서 모여든 상인들은 고픈 배를 채우려고 곰탕집의 문을 두드렸다. 곰탕에는 도축한 소의 자투리 부위인 머릿고기나 내장 등이 푸짐하게 들어갔고, 가격도 저렴했다. 나주 일대는 곡창 지대였기에 경작용 소를 키우는 집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축산업이 발달했고, 도축하고 남은 부위들은 곰탕의 재료가 됐다.
하지만 지금 나주에 가면 예전처럼 부산물만 가득 넣은 곰탕을 만나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나주곰탕집들은 사골을 푹 고아 만든 기본 국물에 양지머리, 사태, 목살 등을 넣어 다시 끓여 국물을 만든다. 여기에 잘 익은 깍두기를 얹어 먹으면 어떤 보양식도 부럽지 않다. 이 음식의 이름이 곰탕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조리법 때문이다. ‘고기나 뼈 등을 진액이 빠지도록 끓는 물에 푹 오래 삶다’는 뜻을 가진 ‘고다’란 단어에서 온 말이다. 오래 삶고 끓이는 그 시간이 곰탕의 요리사요, 비법인 셈이다.
어부의 소박한 한 끼
물회는 생선회에 채 썬 배와 채소를 넣고 고추장과 마늘, 설탕, 참기름 등 갖은양념을 섞어 비빈 후 얼음물을 넣어 말아 먹는 음식이다. 포항 북부시장은 바다에 인접해 있어 싱싱한 회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 1980년대부터 이곳의 물회가 입소문이 나면서 별미를 맛보려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찾아들었다. ⓒ 한국관광공사
경상북도 포항에 위치한 북부(北部)시장의 명물은 물회다. 본래 물회는 어부의 음식이었다. 먼바다로 고기잡이 나간 어부가 배에서 잡은 생선을 밥과 비벼 먹은 것이 유래다. 흠집이 나 팔 수 없는 생선을 추려 먹었던 뱃사람들의 밥상을 이젠 전국 어디에서든 받아 볼 수 있게 됐다.
어부의 소박한 한 끼를 최초로 상품화한 곳은 1960년대 초 문을 연 영남(嶺南)물회로 알려졌다. 이후 물회는 포항 일대로 퍼졌는데, 특히 1980년대에는 포항 북부시장에서 크게 번성했다. 도톰하게 썬 활어, 넉넉한 밥, 얇게 채 썬 오이를 한 그릇에 담아 고추장으로 비벼 먹다가 나중에는 맹물을 부어 먹게 됐다. 1990년대 들어서는 밥 대신 국수가 들어가기도 했다. 처음에는 흰 살 생선을 넣다가 고등어 같은 붉은 살 생선으로 재료를 바꾼 집들도 생겨났으며, 음식 위에 고소한 콩가루를 뿌리는 식당들도 있었다. 2000년대에는 맹물이 매실 진액이나 설탕, 배나 사과를 간 물, 식초 등을 배합한 육수로 변신했다. 이렇게 맛의 변주가 끊임없이 이어져 온 물회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여름철 별미가 됐다.
Features
2023 AUTUMN
새로운 ‘시장 문화’를 즐기다
소비자들이 구매할 식재료와 가공품을 둘러보면서 생산자이자 판매자인 농부들과 교감할 수 있는 도심형 파머스 마켓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사단법인 농부시장 마르쉐가 운영하는 마르쉐@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공고히 뿌리를 내리며 생산자와 판매자, 소비자가 함께 성장하는 새로운 유형의 시장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2023년 5월, 서울 국립극장 광장에서 열린 ‘아트 인 마르쉐(Art in Marché)’. 이 행사는 사단법인 농부시장 마르쉐가 지난 2021년부터 국립극장과 협업하여 진행해 왔다.
마르쉐@의 개장을 알리는 입간판과 상징물들. 마르쉐@에서는 지속 가능한 농법으로 재배된 농작물들이 주로 판매된다.
봄과 가을이 되면 매월 셋째 주 토요일마다 서울 장충동(獎忠洞)에 위치한 국립극장 본관 앞 광장에서 장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각종 채소와 먹을거리를 구입한 이들은 장바구니를 안고 앉아 광장 중앙에 마련된 임시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도 즐긴다. 사단법인 농부시장 마르쉐가 국립극장과 협업하여 2021년부터 진행해 오고 있는 ‘아트 인 마르쉐(Art in Marché)’의 풍경이다.
농부시장 마르쉐는 농부와 요리사, 수공예 작가 등이 참여해 각종 물품을 판매하는 도심형 장터 ‘마르쉐@’를 운영한다. 국립극장뿐 아니라 이 단체의 설립 취지에 공감하는 다양한 브랜드들과 함께 팝업스토어를 열기도 한다. 2019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50주년을 기념해 협업 프로그램을 선보이기도 했다.
자신이 키운 농작물을 장터에 직접 들고나온 농부는 소비자와 경험을 공유하기에 바쁘고, 소비자는 장바구니를 채우며 연신 질문을 쏟아내느라 여념이 없다.
대화와 소통
마르쉐@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 아닌, 상인들과 소비자들의 즐거운 대화를 통해 일상에 활력을 줄 수 있는 장소가 되기를 꿈꾼다.
“농부들이 아침에 수확한 채소를 그날 오후에 도심 한복판에서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력 있는 시장이죠. 그래서 그런지 조리 후 음식의 풍미도 다른 것 같아요. 또 덤으로 색다른 조리법이나 재료 보관법 같은 유용한 정보도 얻을 수 있고요.” 종로구에 거주하는 한 주부의 얘기처럼 마르쉐@는 신선도 높은 물건을 거래한다는 이점 외에도 많은 장점이 있다. 단순한 상거래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이 시장에서는 직거래와 소통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깊은 유대와 신뢰를 쌓을 수 있다. “다양한 플랫폼이 존재하는 세상이지만, 농부의 손으로 소비자들에게 직접 농작물을 건넨다는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소비자가 생산자에게 현장에서 질문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이 시장만의 특성이겠죠.” 농부시장 마르쉐의 한 관계자는 마르쉐@의 장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 같은 형식의 시장이 비단 소비자에게만 이득이 되는 건 아니다. 생산자 역시 자신이 정성껏 키운 농작물을 고객에게 직접 전달하면서 큰 성취감을 얻기 때문이다. “저희는 토종 콩으로 만든 후무스나 비건 소스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데, 이런 곳이 아니라면 소비자와 만날 자리가 없기 때문에 매우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행사에 참가한 한 농부의 얘기다.
공동체의 가치
‘아트 인 마르쉐’에서 4인조 모던록 밴드 호아(HOA, 好我)의 공연을 즐기고 있는 방문객들. 아트 인 마르쉐는 마르쉐@와 국립극장이 함께하는 문화 장터이다.
마르쉐@는 2012년 10월 서울 혜화동(惠化洞)에서 시작됐다. 장터란 뜻을 가진 프랑스어 ‘마르쉐(marché)’에 장소 앞에 붙는 전치사 ‘at(@)’을 더해 지은 이름은 ‘언제 어디서든 열릴 수 있는 시장’이란 뜻이 담겼다. 당시 서울을 떠날 수 없어 옥상에 텃밭을 만들어 꾸리고 있던 여성 3명이 귀농, 농장 직거래, 자연농 같은 주제로 수다를 떨다가 나온 아이디어가 이 시장의 시작이었다. 이들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 아니라 사람, 관계, 대화가 있는 공간을 꿈꾸었다.
1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마르쉐@는 전국의 농부들이 자신의 밭과 부엌에서 정성껏 키우고 만든 먹거리들을 들고나와서 소비자들에게 소개하고 판매하는 꽤나 크고 활기찬 시장으로 성장했다. 출발지인 혜화동에서 열리는 장터는 ‘농부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매월 둘째 주 일요일마다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리고 있다. 이곳에는 새로운 시장 문화를 즐기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방문한다. 또한 주민들의 일상에 더욱 밀착하기 위해 기획한 ‘채소시장’은 서울 서교동(西橋洞)과 성수동(聖水洞)에서 정기적으로 열린다. 장소에 따라 시장의 분위기와 콘셉트가 달라지지만, 형형색색의 장바구니를 들고 모인 사람들이 자유롭고 진취적인 대화를 이어 가는 모습은 어디나 한결같다.
마르쉐@는 판매하는 물품을 직접 기르고 제작한 생산자가 참여하는 것이 원칙인데, 이는 물품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단체가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었던 데는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한몫했다. ‘마르쉐 친구들’이라 불리는 운영진이 기획과 운영을 담당하는데, 이들은 시장의 운영뿐 아니라 다양한 기획을 통해 농업의 진정한 가치를 전달한다. 농작물이 어떻게 농법이나 토양, 주변의 동·식물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소개하는 간행물을 발간하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농부들의 농가로 시민들이 여행을 떠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농부와 요리사, 시민을 연결하는 프로젝트들도 함께 기획하고 진행한다.
“우리는 공동체 관계의 장이었던 시장의 본래 모습에 주목합니다. 삶의 토대를 이루는 먹거리를 통해 관계 맺고 대화하면서 단절되어 있던 삶을 다시 ‘연결’합니다. 우리의 다른 삶은 그곳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농부시장 마르쉐는 2017년 지속가능성 보고서 『말이 씨앗이 되다』를 발간하면서 “마르쉐의 원동력은 ‘연결’이다. 삶의 중심인 먹거리, 먹거리를 둘러싼 생태계,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대화를 통해 도시와 농촌,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장을 펼친다”라고 밝혔다.
매력적인 프로그램과 디자인
마르쉐@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장바구니를 비롯해 음료와 음식을 담을 용기까지 준비해 온다.
농부시장 마르쉐가 추구하는 가치는 일정 정도 공감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마르쉐@를 즐겨 찾아오는 사람들은 장바구니는 물론이고, 음료와 음식을 담을 텀블러와 그릇까지 챙겨 온다.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가 마르쉐@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또한 자신의 소비 행위가 생태계와 어떤 형태로 관련을 맺고 있으며,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도심형 파머스 마켓은 대규모 생산으로 인해 불거지는 다양한 문제점들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만들어졌다.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우다(Ancient Futures: Learning from Ladakh)』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비영리단체 로컬 퓨처스(Local Futures)를 만들어 활동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그녀는 지역 경제와 사회의 회복을 위해 지역 중심 농업 체제의 복원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소규모 농장의 다품종 재배가 권장되고 지역 안에서 소비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아직도 파머스 마켓을 낯설게 또는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규모가 작은 농가의 다양한 농작물은 여전히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전통적 시장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파머스 마켓의 등장과 지속적 성장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한 형태의 파머스 마켓이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지만, 아직은 일회성 이벤트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파머스 마켓의 확산과 지속성을 위해서는 농업 관련 다양한 주제들을 매력적인 프로그램과 디자인으로 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마르쉐@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다.
Features
2023 AUTUMN
즐길 거리가 가득한 체험 공간
백화점과 대형마트, 온라인 쇼핑몰에 밀려 설 자리를 잃었던 전통시장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 이 같은 변화가 옛 명성을 되찾은 데서 오는 것은 아니다. 젊은 세대에게 전통시장이 새롭고 흥미로운 장소로 인식되면서, 시장이 갖고 있던 정체성이 재정립되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5월, 서울 광장시장에 마련된 제주맥주의 팝업 스토어 가판대에서 방문객들이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팝업 스토어가 열린 약 3주 동안 5만 명의 방문객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 제주맥주
가판대 앞에 쭈그리고 앉아 직접 키운 채소를 파는 할머니들,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저녁 장을 보려는 주부들의 분주한 발걸음, 늦은 저녁 값싼 안주에 하루의 회포를 푸는 중년 남성들…. 한국인들이 전통시장 하면 떠올리는 전형적인 풍경이다.
제주맥주가 팝업 스토어 기간 동안 판매한 세트 메뉴. 시장 내 인기 먹거리들을 꼬치안주로 개발해 큰 인기를 끌었다. ⓒ 제주맥주
그런데 최근 변화가 포착되고 있다. 일례로 2023년 5월 제주맥주는 서울 예지동(禮智洞)에 위치한 광장(廣藏)시장에 팝업 스토어를 오픈했다. 제주맥주가 백화점이나 핫플레이스가 아닌, 오랜 시간 한복의 메카로 유명했던 광장시장을 선택한 것은 다소 의외였다. 최근 제주맥주뿐만 아니라 국내외 굵직한 브랜드들이 전통시장에 콘셉트 스토어를 열거나 행사를 개최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브랜드들이 대형마트에 밀려 이제는 사양길에 접어든 전통시장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장년층의 근린 생활 시설이었던 시장이 젊은 세대의 놀이터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맛의 성지
서울 망원동에 위치한 망원시장은 1970년대 조성된 전통시장이다. 최근 유동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인근의 한강공원, 복합문화공간인 문화비축기지(The Oil Tank Culture Park), 홍익대학교 앞 거리 등을 잇는 관광 벨트가 형성되었다. ⓒ 서울관광재단(Seoul Tourism Organization)
20~30대에게 전통시장은 미각을 만족시킬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여겨진다. 특히 광장시장은 낮술의 성지로 통한다. 녹두 빈대떡, 김밥, 찹쌀 꽈배기, 순대 등 메뉴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것들이지만, 주인장의 손맛이 뛰어난 노포에서는 훌륭한 술안주가 된다. 또한 이곳은 육회 골목이 따로 있을 정도로 육회 맛집이 많은데,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필수 방문 코스가 되었다.
망원시장은 전통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먹거리 외에도 젊은 세대의 입맛에 맞는 메뉴를 개발하여 미식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 ⓒ 서울관광재단(Seoul Tourism Organization)
서울 지하철 6호선 망원(望遠)역 근처에 있는 망원시장도 맛집들로 명성을 얻고 있다. 홍익대학교가 위치한 인근의 서교(西橋)동과 함께 젊은이들이 붐비는 지역이다 보니, 떡볶이나 만두처럼 전통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 외에도 유행을 타는 먹거리가 많은 편이다. 최근에는 고추튀김이 인기다. 고추튀김 또한 여느 시장에서나 볼 수 있지만, 이곳의 고추튀김은 크기가 압도적이다. 그런가 하면 기존 호떡에 치킨용 양념을 뿌린 호떡이나 토치로 구운 마시멜로 안에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넣은 마시멜로 아이스크림 등 젊은 세대의 입맛에 맞춘 독특한 먹거리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새로운 경험 공간
2022년 9월, 광장시장 초입에 문을 연 카페 어니언은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젊은 세대에게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디자인 스튜디오 패브리커(Fabrikr)가 향수(鄕愁)를 콘셉트로 조성한 이 공간은 박스 테이프, 플라스틱 의자 등 시장 상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을 디자인에 활용했다. ⓒ 어니언(Onion)
젊은 세대에게 시장은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광장시장 초입에 위치한 카페 어니언(onion)은 노천카페로 운영되는데, 종이 상자를 찢어 만든 메뉴판과 박스 테이프를 칭칭 감은 플라스틱 의자가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60년 된 금은방을 개조해 만든 내부 공간에는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나 있고, 빈티지 소품들이 배치되어 있어 시장 분위기와 겉돌지 않는다. 노상(路上)에서 떡볶이를 먹는 시장 감성으로 커피를 즐기는 것이다.
한약재 전문 시장인 경동시장은 그동안 중장년층과 노년층이 주로 찾았지만, 2022년 12월 ‘스타벅스 경동 1960’이 오픈하면서 20~30대 방문객이 부쩍 늘었다. ⓒ 스타벅스 코리아(Starbucks coffee Korea Company)
서울 제기(祭基)동 경동(京東)시장의 ‘스타벅스 경동 1960’에서도 레트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커피숍이 위치한 공간은 1960년대에 극장 용도로 지어졌으나, 폐관 이후에는 상인들이 오랫동안 창고로 사용했다. 약재상과 인삼 가게가 즐비한 특유의 분위기와 복고 감성이 가득한 커피숍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경동시장은 금세 20~30대가 한 번쯤은 방문해야 하는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스타벅스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하루 1,000명 이상, 주말에는 2,000명 이상의 손님들이 찾는다고 한다.
스타벅스 경동 1960을 가기 위해서는 1~2층에 자리한 ‘금성전파사 새로고침 센터’를 지나야 하는데, 이곳은 LG전자가 2022년 말 문을 연 브랜드 체험 공간으로 레트로 콘셉트로 꾸며져 있다. 과거에 LG전자가 출시했던 흑백 TV와 냉장고, 세탁기 등을 전시하고, 한쪽 벽면에는 LG LED 사이니지 월을 조성해 경동시장의 옛 모습과 계절별 테마 영상 등을 상영한다. 중장년 소비자에게는 추억을, 젊은 세대에게는 독특한 경험을 선사하는 공간이다.
2021년 10월 광장시장에 오픈한 식료품 잡화점 ‘365일장’의 전경. 광장시장의 유명한 음식들을 재해석한 밀키트를 비롯해 로컬 브랜드 상품을 판매한다. 전통시장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새롭고 색다른 경험을 제공해 광장시장의 명소로 떠올랐다. ⓒ LMNT & Allaround
한편 앞서 말한 광장시장에도 요사이 입소문이 돌고 있는 콘셉트 스토어가 있다. 2021년 10월 오픈한 식료품 잡화점 ‘365일장’이 그곳이다. 처음부터 젊은 소비자를 겨냥해 기획된 이 공간은 기존 전통시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상품들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방문자들이 이곳에서 느끼는 색다른 즐거움은 전통시장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어 놓는다.
새로운 기회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시대를 경험했고, 혹자는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종말을 예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엔데믹에 접어들면서 오프라인은 더욱 활기를 띠는 모양새다. 특히 시장으로 젊은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그 이유는 ‘경험’ 때문이다. 젊은 세대에게 시장은 이미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곳이 아니다. 이들에게 시장은 관광·문화·엔터테인먼트가 결합된 놀이터로 기능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라캉은 일상의 지루함을 돌파할 수 있는 열쇠가 비일상성에 있다는 요지의 말을 한 바 있다. 그동안 대형마트와 온라인 유통의 기세에 밀려 외면받았던 전통시장이 소비자들에게 비일상적 재미를 지속적으로 제공한다면, 향후 전통시장에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각 전통시장만의 독특한 매력과 콘텐츠를 개발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사양길에 접어든 줄로만 알았던 전통시장은 이제 기회를 맞이했다.
Features
2023 AUTUMN
시장에서 찾은 서사와 유토피아
화가 최은숙(Choi Eun-sook, 崔恩淑)은 전통시장이라는 현재의 일상적 공간에 과거의 인물들을 중첩하는 작품들을 주로 선보인다. 작가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방식, 그리고 동양화의 특성을 통해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만들어 낸다. 서울 신천동(新川洞)에 위치한 BGN갤러리에서 작가를 만났다.
< 난 그들과 함께 있었다 > . 2012. 장지에 혼합 채색. 130 x 388 ㎝.
최은숙은 동양화의 기본 재료인 먹과 서양화의 주된 재료인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기존 동양화 기법에 현대적 요소를 가미한 풍속화를 그린다. 그림 속 단골 소재는 자신의 유년 시절 추억이 담긴 전통시장이다. 오늘날의 전통시장 풍경과 조선 시대(1392~1910) 풍속화 속 인물들이 공존하는 그녀의 그림은 신비롭고 평안한 가상의 안식처로 우리를 인도한다.
동양화를 전공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던 중 우연히 동양화의 전통 재료인 먹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물의 양으로 농담을 조절하는 먹을 사용하면서 동양화가 서양의 수채화와는 다른 양태로 풍부한 색감과 깊이를 표현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동양화과로 편입하게 되었고, 이후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화 전공으로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지금은 먹에 아크릴 물감을 접목한 작업을 시도하고 있는데, 그러고 보면 나는 수용성 재료가 물과 만났을 때 나타나는 다채로운 색의 변화에 마음이 끌리는 것 같다.
언제부터 전통시장에 관심을 가졌나? 어려서 엄마 심부름을 자주 했다. 귀찮아하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심부름을 무척 좋아했다. 심부름 가서 전통시장을 구경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시장 골목을 따라 늘어선 파라솔만 봐도 가슴이 마구 뛰었고, 바구니에 담긴 알록달록한 과일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웠다. 엄마는 분명 급한 마음에 두부를 사 오라고 시켰을 텐데, 나는 시장 구경에 정신이 팔려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안 했을 정도였다.
당신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유년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든다.
최은숙은 유년 시절의 추억이 담긴 전통 시장을 즐겨 그리는데, 시공간을 중첩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만들어 낸다.
그게 바로 내가 원한 반응이다. 어린 시절 내가 시장에서 느꼈던 기분을 관람객들이 공감해 줄 때면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다. 만약 누군가가 내게 한국인의 ‘정’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긴말할 것 없이 가까운 전통시장에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본래 시장이란 곳이 삶의 희로애락을 느끼게 하는 공간이지만, 특히 한국의 전통시장은 한국인 특유의 정을 체감하게 한다.
< 공존 > 시리즈에 조선의 풍속화 속 인물들을 겹쳐 놓은 의도가 궁금하다.
대학교 4학년 때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문득 눈앞의 풍경 위로 조선 시대 풍속화 속 인물들이 겹쳐 보이는 착시를 경험했다. 순간 이걸 한번 그림으로 풀어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때 시작한 작업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기 때문에 어떤 작품들에선 과거의 인물을 컬러로, 현대의 인물을 흑백으로 표현했다. 한마디로시공을 초월한 형상들을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이것이 바로 내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다. 과거의 인물들은 조선 시대 화가인 신윤복(申潤福, 1758~?)과 김홍도(金弘道, 1745~?)의 풍속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자주 차용하는 편이다.
자세한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우선 그리고 싶은 전통시장을 방문해 사진을 찍은 뒤 후보정 작업을 통해 사진 위에 옛 풍속화 속 인물들을 이리저리 배치해 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본다. 이야기 구성이 끝나면 장지(壯紙) 위에 그림을 그리고 채색한다. 단, 그림을 그리기 전 먹이 제멋대로 번지지 않도록 아교와 명반(明礬)을 물에 녹여 혼합한 수용액을 종이에 바르는 밑작업을 먼저 하는데, 작업에 앞서 종이의 질감을 단련시키기 위해서다.
표면이 은은하게 반짝거리는 그림에 쓰인 재료는 무엇인가?
동양화 재료 중 수정을 갈아 만든 돌가루가 있다. 이것을 아교물과 섞어 종이에 바르면 표면이 반짝거리는 효과가 난다. 동양화는 서양화와 달리 먹, 돌가루 같은 자연 안료를 자주 사용한다.
그림 속 전통시장은 모두 실재하는 곳인가?
< 심상(心想) 풍경 > . 2020. 장지에 혼합 채색. 53 x 45 ㎝.
그렇다. 하지만 작품 속 시장들이 실제 모습과 같은 건 아니다. 예를 들어 < 심상풍경(心象風景) > 은 홍콩의 한 시장이 배경인데, 이 그림 속 과일 가게 위에 놓인 동상은 홍콩이 아닌 마카오 MGM호텔에 있는 황금 사자상이다. 이처럼 나는 실재를 기반으로 하되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의 요소들을 뒤섞어 새롭게 구성하곤 한다.
두께가 다른 종이를 중첩시켜 배경 일부를 흐릿하게 처리한 그림도 눈에 띈다.
< 어느 가을날 그들과 함께 > . 2011. 장지에 혼합 채색. 30 x 120 ㎝.
풍속화 속 배경을 옮겨 그린 장지 위에 현재의 풍경을 그린 얇고 투명한 한지를 겹쳐 올려 신비한 느낌을 강조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렇게 장소를 마음대로 바꿔 그려도 전통시장을 좋아하는 관람객들은 그림에 등장하는 곳이 어디인지 다 알아보더라. 언젠가 한번은 시장 바닥에 떨어진 동백꽃만 보고 “전라남도 구례(求禮)에 있는 시장이네” 하고 바로 알아맞히는 분도 계셨다.
다른 사람들보다 전통시장을 많이 방문했을 것 같다.
< 공존의 시간들 > . 2011. 장지에 혼합 채색. 130 x 162 ㎝.
지난 10년 동안 시장 구경 위주로 여행을 많이 다녔다. 그럼에도 아직 가 보지 못한 곳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는 전통시장이 정말 많다. 어디는 고추가 유명하고 어디는 한우가 유명한 식으로 특산물도 다양하고, 같은 시장이라도 계절마다 풍경이 달라서 늘 새로운 인상을 받는다. 그런데 요즘 전통시장이 점차 사라지거나 옛 모습을 잃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 그래서 그림으로 더 많이 남기고 싶다.
향후 계획이 있다면?
최근 신작을 발표했는데 다행히 반응이 나쁘지 않아 이를 지속해 보려고 한다. 사각의 큐브 안팎에 풍경과 인물을 배치해 내 안의 심상을 인위적인 세트로 구현하는 작업이다. 신작에서는 전통시장이라는 배경은 사라졌지만 한국인의 정서를 다루는 건 변함없다.
Features
2023 SUMMER
고품격 문화 체험장이 된 궁궐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궁궐 체험 프로그램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기존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느끼지 못했던 이색적 매력을 전통문화에서 새롭게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궁궐은 단지 역사가 남긴 유산을 넘어 동시대인들과 소통하며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창덕궁 달빛기행’ 참가자들이 대조전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창덕궁 달빛기행은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이 2010년 시작한 궁궐 체험 프로그램으로,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권역을 탐방할 수 있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 중앙일보
북적이던 관람객들이 모두 퇴장하고 문이 굳게 닫히면, 어둠이 내린 궁궐에는 시간이 멈춘다. 그리고 어두워져야 비로소 보이는 궁궐의 또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낮에는 느낄 수 없는 이색적 풍경을 경험할 수 있기에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궁궐 야간 탐방이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 궁궐 야간 탐방은 한국문화재재단 홈페이지에서 사전 온라인 예매를 실시하는데, 불과 1~2분 만에 전 회차가 매진될 정도다. 이렇게 예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궁궐’과 ‘티케팅’이 합쳐진 ‘궁케팅’이라는 신조어도 만들어졌다. 관람객들의 연령대는 30대 이하가 80%를 차지하며, 특히 덕수궁에서 진행되는 ‘밤의 석조전’은 10대와 20대 여성 비중이 매우 높다.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경험
젊은 세대가 궁궐 체험에 관심이 높은 이유는 제한적 기회와 대체 불가의 고품격 프로그램, 그리고 활발한 SNS 활동 등에 있다. 전 과정을 야외에서 진행해 공간 제약을 덜 받는 ‘창덕궁 달빛기행’의 연간 참여 가능 인원은 최대 9,000명이다. ‘경복궁 별빛야행’은 2,560명이며 ‘밤의 석조전(石造殿)’은 그보다 적은 2,300여 명에 불과하다.이렇게 예매에 성공한 소수의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투어 전 과정을 해설사가 안내한다. 궁궐의 유래와 전각에 대한 설명 등 세세하고 재미있는 해설이 곁들여진다. 관람객들에게 제공되는 공연과 궁중 문화 체험, 음식 등은 최고 수준이며 특히 음식은 다른 곳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메뉴들이다. 소수 인원을 대상으로 평소에는 접근 불가능한 공간에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체험 프로그램들의 모든 순간이 관람객들에 의해 SNS에 공유된다. 그리고 이를 접한 사람들이 다시 예매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난다. 궁궐 체험 프로그램 중 가장 오랫동안 꾸준히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은 창덕궁 달빛기행이다. 2010년 시작한 이 행사는 보름달이 뜨는 창덕궁 후원(後苑)을 밤에 조용히 걸어 보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초기에는 보름달이 뜨는 날을 전후로 한 달에 약 5일 내외로 진행됐다. 하지만 시작과 동시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횟수를 늘렸고 현재는 대표적인 궁궐 행사가 되었다.
창덕궁 달빛기행
창덕궁 달빛기행은 궁궐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인 봄과 가을에 약 70일간 진행한다. 일몰 시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저녁 7시 전후에 행사를 시작한다. 이 시간이 되면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敦化門)이 열리고, 25명이 한 조가 되어 6개 조가 시차를 두고 입장한다. 쾌적한 관람을 위해 하루에 최대 150명에게만 창덕궁의 내밀한 공간을 허락한다. 100분 남짓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야간 투어와 공연 관람으로 짜여졌다. 해설사가 동행하는 야간 투어는 창덕궁 내 가장 아름다운 공간인 후원을 중심으로 10여 개의 전각을 둘러보도록 구성됐다. 이 프로그램이 아니면 야간에 결코 접근할 수 없는 장소들을 탐방할 수 있다. 관람객들은 투어 과정에서 조선 시대 왕과 왕비로 분장한 연극 배우들을 만나 기념 촬영을 하기도 한다. 또한 두 곳의 전각에서는 대금과 거문고, 아쟁 등의 전통 악기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창덕궁 후원 내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는 연경당(演慶堂)에 도착하면 전통차와 다과를 체험하면서 공연을 관람한다. 이 공연은 두세 종류의 궁중 무용과 악기 연주 그리고 궁중 성악으로 이뤄진다. 이 공연이 의미 있는 이유는 연경당이 실제로 조선 시대에 공연이 펼쳐졌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 공연을 마지막으로 창덕궁 달빛기행의 모든 일정이 끝난다.
한밤에 누리는 호사
경복궁 별빛야행은 2016년에 시작된 프로그램이다. 봄가을에 40일간 실시하며 회당 32명, 하루 2회 실시한다. 가장 큰 특징은 궁궐 전각 안에서 식사를 하며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점이다. 경복궁 외소주방(外燒廚房)에서 식사를 하는데, 이곳은 조선 시대에 궁중 연희 음식을 만들던 주방이었다. 궁중 음식을 보급하는 ‘한국의 집’에서 만들어 온 음식을 외소주방에서 4단 유기(鍮器) 도시락에 담아 제공한다. 궁궐에 앉아 임금님 수라상을 앞에 두고 전통 악기 연주에 취하는 밤은 1년에 단 2,560명에게만 허락된 시간이다. 식사를 마치면 약 60분에 걸쳐 경복궁 북측 권역을 투어한다. 야간 비공개 지역을 관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덕수궁 밤의 석조전(石造殿)은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비교적 최근인 지난 2021년에 시작됐다. 하지만 젊은 세대에게 석조전이 핫플레이스로 인식되면서 여타 프로그램들보다 인기가 더 높다. 덕수궁은 대한제국(1897~1910)의 황궁으로 전통적 전각과 서양식 건축물이 혼재돼 독특한 풍경을 자랑한다. 밤의 석조전은 1910년에 완공된 서양식 전각인 석조전이 주요 무대다. 다른 야간 탐방처럼 봄가을에 진행하며, 48일간 회당 16명으로 하루 3회 실시한다. 석조전 또한 밤에는 개방하지 않는 공간으로,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특별 공개한다. 밤의 석조전은 해설사와 함께하는 석조전 전시 관람, 2층 테라스 임시 카페에서 클래식을 들으며 즐기는 커피 타임, 그리고 대한제국 배경의 뮤지컬 넘버 공연으로 구성된다. 특히 서울 야경을 만끽할 수 있는 이곳 테라스는 포토존으로 인기가 높다.
일상의 문화 공간이 된 궁궐
참가자들이 경복궁 향원정에서 명상과 아로마테라피를 체험하는 모습. 한국문화재재단이 진행하는 ‘심쿵쉼궁’은 궁궐을 휴식과 치유, 사색의 공간으로 재조명하는 프로그램이다. ⓒ 한국문화재재단
야간 시간대에 궁궐 투어가 인기라면 낮 시간대에는 경복궁 수문장 교대 의식이 큰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 행사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 콘텐츠로 기획됐다. 조선 시대 수문장은 궁성문의 개폐를 관장하며 궁성을 호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역사•의례•군사•복식•의장물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문헌과 사료를 찾고 유물을 확인하는 과정을 수차례 거치면서 재현의 완성도를 높였다. 그 결과 조선 전기 궁궐 호위 문화를 집대성한 행사가 만들어졌다. 지금도 새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거나 유물이 발견되면 수시로 행사에 반영하여 개선하는 중이다. 이 의식은 경복궁 휴궁일인 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실시한다. 임금이나 군대가 행진할 때 연주하는 취타(吹打)를 포함해 100여 명으로 구성된 군사들이 수문장의 지휘 아래 교대 의식을 진행한다. 매일 오전 9시 35분과 오후 1시 35분에는 군사들의 훈련 모습을,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는 교대 의식을 볼 수 있다. 교대 의식을 마친 수문군은 광화문에 배치되어 관람객들과 사진 촬영을 한다. 매일 실시하는 개방 행사이기 때문에 별도의 예매 절차가 필요 없고 언제라도 경복궁을 방문하면 궁을 호위하는 수문장들을 만나 멋진 사진을 남길 수 있다.
2002년 시작된 경복궁 수문장 교대 의식은 조선 시대 왕실 호위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전통 문화 행사이다. ⓒ 한국문화재재단
이 외에도 전통과 현대 장르를 융합한 ‘고궁음악회’, 궁중 음악과 발레의 컬레버래이션 공연, 왕이 원로 대신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던 과거 연희를 재현한 창경궁 ‘야연(夜宴)’, 궁중 문화 종합 예술 축제인 ‘궁중문화축전’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궁궐은 단순한 역사의 현장이 아닌, 공연장이자 전시장이며 의례를 재현하는 거대한 무대로 일상에 녹아들고 있다.
조진영(Cho Jin-young, 曺珍榮)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활용 실장
Features
2023 SUMMER
궁궐, 최고의 인재들이 일하던 공간
절대 권력자인 임금이 거주하던 궁궐은 당대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일터이기도 했다. 왕과 왕실을 위한 갖가지 물품이 그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의료 시설과 교육기관 등 왕실 운영을 위한 전문 기구들도 그들에 의해 움직였다. 궁궐을 배경으로 한 사극은 역사서에 기록으로만 존재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2014년, 영화
개봉 당시 홍보를 위해 제작된 장선환(Chang Sun-hwan, 張宣煥) 작가의 일러스트레이션. 상의원에서 왕실 의복을 제작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담백한 필치로 표현했다.
ⓒ 장선환
궁궐이 주요 무대인 사극들은 대개 왕과 왕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관리들과 내시, 궁녀 같은 주변 인물들은 배경처럼 그려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때로는 역사 속에서 조연이었던 사람들의 삶이 크게 부각되는 경우도 있다. 궁궐은 왕과 왕족들이 거주하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일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원석(Lee Won-suk, 李元錫) 감독의
은 조선 왕실의 의복을 제작했던 상의원에서 있었음직한 사건을 흥미롭게 극화하고 있는데, 화려한 의상을 보는 재미도 제공한다.
ⓒ 영화사비단길
이원석(李元錫) 감독의 2014년 개봉작
은 왕실 의복을 만들었던 기관 상의원이 이야기의 주 무대이며, 안태진(安泰镇) 감독의 2022년 작
는 궁중의 의약을 총괄했던 관청 내의원(內醫院)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다룬다. 또한 2022년 12월 종영한 tvN의 TV 드라마
에서는 조선 시대 왕세자 교육을 담당했던 관청 시강원(侍講院)이 등장한다. 시청자들은 이런 대중문화 콘텐츠를 통해 조선 시대 궁궐의 특별한 공간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직업과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왕실 의복 제작 기관
영화
은 요즘으로 치면 수석 디자이너와 재야의 고수가 한판 대결을 벌이는 이야기다. 30년 동안 왕실 옷을 지어 온 상의원의 최고 실력자 조돌석(趙都碩, 한석규 분)과 타고난 재능이 출중한 이공진(李孔鎮, 고수 분)의 대립이 줄거리의 핵심이다. 이공진이 왕과 왕비의 마음을 사로잡은 옷을 만든 뒤 조선의 유행을 주도한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이야기는 허구이지만, 사건이 전개되는 무대인 상의원은 실존했던 관청이었다. 조선의 상의원은 고려 시대 상의국(尙衣局)을 계승한 기관으로, 의복 제작은 물론 왕실의 보화, 도장, 가마 제작까지 관장했다.
『정종실록(定宗實錄』(1426)에 보면 “상의원은 전하의 내탕(內帑)이므로 의대(衣帶), 복식의 물건을 일체 모두 관장하는데, 다만 간사한 소인의 무리로 하여금 맡게 하여 절도 없이 낭비하는 데에 이르니, 이제부터 공정하고 청렴한 선비를 뽑아서 그 일을 감독하게 하소서.”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를 통해 상의원의 주요 업무를 알 수 있다. 또한 『세종실록(世宗實錄)』(1454)에는 경복궁 내 정전인 근정전(勤政殿)에서 큰 잔치를 베풀면서,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옷과 신발을 상의원에서 제작하게 한 기록도 있다.
이렇듯 막중한 업무를 담당한 상의원의 위상과 규모는 상당했다. 조선의 헌법인 『경국대전(經國大典)』(1466)에 상의원에 근무한 관원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총책임자 격인 제조(提調) 2명을 비롯해 총 11명의 정규직이 있었고, 제조와 부제조는 왕의 비서실인 승정원의 승지가 겸직했다. 따라서 상의원의 실질적 최고 책임자는 조선 시대 관직 체계상 정품(正品)에 속한 높은 벼슬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정규직 이외에 잡직(雜職)으로 다수의 지원 인력이 배치되었다.
위엄과 권위를 지닌 왕실의 옷을 제작하는 만큼 각 분야 최고 장인들이 이곳에 근무하였는데, 『경국대전』에는 상의원에 소속된 장인이 68개 분야 597명이었으며, 그중 비단을 짜는 장인이 105명으로 가장 많았다고 나와 있다. 이 외에도 실 표백하는 장인 75명, 바느질 장인 40명, 천을 짜는 장인 20명, 초립 장인 10명, 털옷 장인 8명, 옥장(玉匠) 10명을 비롯해 은을 다루거나 금박을 입히는 장인도 다수 배치되었다. 이렇듯 상의원은 의복뿐만 아니라 옥이나 은, 화살 등 각종 물품을 다루는 일도 담당한 만큼 기술이 뛰어난 관료들이 일하기에 최적의 기관이었다. 세종(재위 1418~1450)이 조선을 대표하는 과학자 장영실(蔣英實)을 상의원 별좌(別坐)에 임명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왕실 의료 기관
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던 소현세자(昭顯世子)의 독살설을 다룬 작품이다. 청나라 심양(瀋陽)에서 8년 만에 돌아온 인조(재위 1623~1649)의 아들 소현세자는 귀국 후 두 달 만에 급서했고, 영화는 그 죽음에 의혹을 제기한다. 낮에는 사물을 볼 수 없지만 거꾸로 밤에는 보이는 주맹증(晝盲症)을 지닌 주인공 천경수(千京秀, 류준열 분)는 내의원 어의(御醫) 이형익(李馨益, 최무성 분)에게 탁월한 의술을 인정받아 입궁한다. 주인공은 허구의 인물이지만, 이형익은 인조의 후궁인 귀인 조(趙) 씨와 모의하여 소현세자 독살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는 실존 인물이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된 내의원은 조선 시대 의료 기관 중 한 곳이었다. 조선에는내의원, 전의감(典醫監), 혜민서(惠民署) 같은 의료 기관들이 있었는데, 기관마다 진료하는 대상이 달랐다. 내의원은 왕을 비롯해 왕족들의 진료와 치료를 담당했다. 전의감은 왕의 종친(宗親)과 관리들의 치료를 위한 기관이었으며, 혜민서는 서민들의 건강을 보살폈다. 내의원에는 정식 관원 이외에 실질적으로 의료 활동을 하는 의원과 의녀들도 배치되었는데, 드라마
(2023~2004)의 서장금(徐長今) 같은 의녀는 주로 왕실 여성의 진료와 출산 등을 맡았다.1830년대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을 그린
를 보면,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서쪽에 내의원이 위치했던 것을 볼 수 있다. 내의원은 20세기 초에 세자의 거처였던 성정각(誠正閣) 쪽으로 옮겨졌는데, 현재 이곳에 걸려 있는 현판은 영조(재위 1724~1776)가 하사한 것으로 ‘임금의 몸을 보호하고, 임금이 드시는 약을 제조한다(造化御藥保護聖躬).’는 뜻이 담겨 있다.
영조는 내의원에서 가장 자주 진료받았던 왕이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1623~1894)를 통하여 영조가 내의원에 들른 기록을 통계로 정리하면 한 달 평균 11.3회로, 사흘에 한 번꼴로 진료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가 83세로 조선의 최장수 왕이 된 데에는 철저한 건강 검진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세자를 위한 교육 기관
과
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픽션이라면 지난해 말 종영한
은 사고뭉치 왕자들을 위해 치열한 왕실 교육 전쟁에 뛰어든 왕비의 이야기를 다룬 퓨전 사극이다. 허구적 캐릭터인 왕비(김혜수(金憓秀) 분)의 모습은 교육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요즘 세태를 반영한 것처럼 보인다. 제목 ‘슈룹’은 우산의 옛말로 어머니가 자식의 우산이 되어 준다는 뜻을 내포한다.
2022년 16부작으로 방영된 tvN의 사극 드라마
은 중전이 왕자들을 위해 치열한 왕실 교육에 뛰어든다는 허구의 이야기가 긴박감 있게 펼쳐진다.
스튜디오드래곤 제공
이 드라마가 묘사한 그대로는 아니겠지만, 왕세자는 차기 왕위를 계승하는 존재인 만큼 철두철미한 교육을 받았다. 조선 왕조는 세자만을 위한 특별 교육 기관으로 시강원을 두어 유교 경전, 역사서, 예절 등을 가르쳤다. 겸직이긴 하지만 지금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영의정이 최고 책임자였고, 분야별 최고의 실력을 갖춘 전임(專任) 선생만 10명 이상을 배치할 정도로 시강원의 관원 구성은 탄탄하였다. 세자와 스승이 함께 학문을 하는 자리를 서연(書筵)이라 하였는데, 시강원은 서연을 통해 왕이 될 준비를 하던 공간이었다. 조선의 세자들 가운데 시강원의 스승들을 가장 당혹스럽게 한 인물은 태종(재위 1400~1418)의 장남 양녕대군(讓寧大君)이었다. 11세의 어린 나이에 세자로 책봉된 그는 공부를 소홀히 하고 수업 시간에 빠지는 일이 많았다. 양녕은 학무에 전념할 것을 충고하는 스승에 대해 “그만 보면 머리가 아프고 마음이 산란하며, 그가 꿈에 보이면 그날은 반드시 감기가 든다.”고 푸념하면서 진절머리를 냈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던지 『태종실록(太宗實錄)』(1431)에는 공부를 소홀히 한다는 이유로 양녕 대신 그를 수행하던 내시가 볼기를 맞은 기록도 보인다. 양녕대군은 이후에도 기생을 가까이하는 등 기행을 일삼았고, 결국 14년 동안 있었던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세자 교육은 물론 허구적 상황이지만, 양녕과 같이 공부를 등한시하여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난 역사적 사실을 고려하면, 왕비가 세자 교육에 촉각을 곤두세운다는 설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신병주(Shin Byung-ju, 申炳周)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Features
2023 SUMMER
궁중장식화의 미학
조선 시대 국가에 소속된 화원들은 왕과 왕실의 권위와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다양한 소재의 그림을 그렸는데, 이런 그림들은 궁궐의 각 공간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역할도 했다. 대개의 그림은 병풍, 족자, 가리개 형태로 제작되었지만 벽화도 있을 정도로 형식 면에서 다양했다.
. 김은호(金殷鎬). 1920. 비단에 채색. 214 × 578 ㎝.
근현대기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인 김은호(1892~1979)가 왕비의 침전인 창덕궁 대조전 대청의 서쪽 벽면에 그린 벽화이다. 화려한 채색과 섬세한 필치가 특징인 궁중장식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의 궁궐은 화려하다. 벽, 기둥, 천장의 단청(丹靑)만 봐도 궁궐이 얼마나 화려한 색채의 공간이었는지 알 수 있다. 적색과 녹색, 황색과 청색 등 원색을 사용한 단청은 선명한 색채 대비가 인상적이다. 단청은 물론 한복의 배색을 봐도 한국인은 높은 채도의 원색 대비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배색 감각은 일견 유사해 보이지만 차이점을 지닌다. 중국은 황제의 색인 황색을 가장 존귀하게 다루며 명도가 낮은 색끼리 배색해 장중함을 강조한다. 반면 일본은 자주색과 보라색, 연두색과 같은 여러 중간색의 미묘한 변주를 선호한다. 한편 한국은 이웃한 두 나라와 색채의 상징을 상당 부분 공유했지만, 원색의 보색 대비라는 독특한 미감을 구축했다. 명쾌한 원색의 미감이야말로 조선 궁중장식화의 미학이다.
최고의 화원들
. 김규진(金圭鎭). 1920. 비단에 채색. 205.1 × 883 ㎝.
왕의 집무실인 창덕궁 희정당 서쪽 벽면을 장식한 이 그림은 근대의 대표적 서화가인 김규진(1868~1933)이 금강산을 직접 답사하고 돌아와 그린 작품이다. 조선 시대 금강산전도(全圖)와 궁중장식화 전통을 충실히 따르는 한편 이전과 달리 화가의 낙관이 들어가 있어 근대적인 변화도 보여 준다. ⓒ 문화재청
색채에 상징이 있듯 그림의 소재와 주제에도 상징이 담긴다. 상징의 저변에는 권력이 있다. 궁궐은 왕과 왕족들이 사는 가장 존귀한 공간이자 국가 경영의 현장인 만큼 아무 그림이나 걸 수 없었다. 색채는 물론 소재와 주제에 격식이 있어야 했다. 또한 궁궐 건축물들은 높고 넓다는 공간적 특징이 있다. 주요 전각들은 민간 가옥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당연히 민간의 족자나 병풍보다 그림이 월등히 커야 한다. 궁중장식화 제작을 위해선 당대 가장 뛰어난 화가들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조정은 화원들을 선발하고 훈련시켰다. 그들의 근무지는 경복궁 남동쪽, 현재의 인사동 입구에 있었던 도화서(圖畫署)였다. 선발된 화원들은 값비싼 물감을 아낌없이 사용한 그림으로 전각 곳곳을 채웠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궁궐에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궁중장식화는 드물다.
왕의 상징
. 작가 미상. 1830년대. 비단에 먹과 안료. 219 × 195 ㎝.
창경궁 함인정(涵仁亭)에 설치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2폭짜리 병풍 그림이다. 일월오봉도는 해와 달, 다섯 개의 산봉우리를 그린 장식화로 조선 국왕을 상징한다. ⓒ 국립중앙박물관
궁궐이 무대인 사극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낯익은 그림이 있다. 각 궁궐 정전에 놓인 어좌 뒤에 반드시 펼쳐져 있는
이다. 왕실의 영원함과 국왕의 유일성을 자연에 빗댄 그림이다. 해와 달은 음양의 화신이며 ‘밝음’의 상징이다. 또한 다섯 봉우리는 하늘에 대응하는 땅의 중심이자 천자(天子)인 왕의 자리이다. 봉우리가 다섯인 이유는 숫자 5가 십진법에 있어서 중앙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여기에 소나무와 파도를 더해 정확한 좌우 대칭으로 그림을 그렸다. 화원들은 순수하게 정제한 광물성 안료를 사용했는데 예컨대 하늘은 석청(azurite,石靑), 봉우리는 석록(malachite,石綠), 소나무 줄기는 주사(cinnabar, 朱沙)로 채색했다. 이처럼 화려한 색채와 대자연의 압도적 이미지가 담긴 그림을 왕의 배경에 두어 그 권위를 한껏 높여준 것이다.
이 그림은 주요 전각마다 설치했을 뿐 아니라 왕이 행차하다가 잠시 쉴 때도 그 뒤에 병풍으로 펼쳤으며, 시신을 임시 안치하는 빈전(殯殿)에도 두었다. 따라서 왕의 일생과 함께한 가장 상징적인 궁중장식화라 할 수 있다. 경복궁 함인정(涵仁亭)에 설치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2폭짜리 그림은 오늘날 전하는 여러 점의
중에서도 오래된 작품에 속한다. 그림을 그린 이의 이름은 확인할 수 없지만, 도화서 화원답게 대상을 당당한 형태로 묘사하고 섬세하게 채색한 솜씨가 돋보인다.
보편적 욕망
. 작가 미상. 19세기 후반. 종이에 먹과 안료. 132.2 × 431.2 ㎝.
현존하는 19세기 후반의 십장생도들은 대체로 공간 구성이 평면적이고 경물 묘사가 상투적인 경우가 많다. 삼성그룹 고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이 작품도 19세기 후반 십장생도의 경향을 보인다. ⓒ 국립중앙박물관
십장생(十長生)은 고려 때부터 있었던 한국의 오래된 종교적, 문화적 관념이다. 장수는 인간의 기본적 욕망이어서 그 상징을 찾는 전통은 전 세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대상을 골라 이름을 붙이고 그림의 소재로 삼은 사례는 한국 이외의 지역에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한국인들은 해, 달, 산, 물, 돌, 소나무, 대나무, 구름, 영지(靈芝), 거북, 학, 사슴을 장수의 상징으로 인식했다.
에서 산과 물, 구름은 신선 세계의 배경이 되고, 이 선계에서 상서로운 동물들이 저마다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묘사된다.
는 왕이 신하들에게 새해 축하 선물로 내려 준 그림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은 궁중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널리 유행했다. 십장생을 모아 그린 큼직한 병풍은 회갑연처럼 장수를 축원하는 자리에 가장 잘 어울렸다. 궁중이나 양반가를 가리지 않고 사랑받았던
는 인간의 기본적 염원이 진솔하게 반영된 그림이었다.
. 작가 미상. 1820년대. 비단에 먹과 안료. 144.5 × 569.2 ㎝.
꽃의 왕이자 부귀의 상징인 모란은 조선 시대 채색장식화(ornamental paintings)의 중요한 소재였다. 왕실에서는 가례, 흉례, 제례를 비롯한 의례에 모란 병풍을 긴요하게 사용했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수의 작품이 전한다. ⓒ 국립중앙박물관
한편 조선 왕실의
사랑은 유별나다. 색색의 모란을 가득 그린 큰 병풍이 오늘날에도 여러 점 남아 전하는데, 이는 모란 병풍을 여러 의례 때 자주 사용했기 때문이다. 가례(嘉禮)나 진찬(進饌) 같은 축하연에 화사한 모란 병풍은 가장 잘 어울리는 배경이었다. 그런데 추모 의례인 흉례(凶禮)나 제례(祭禮)에도 이 그림을 사용했다. 이는 상서로운 정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피는 꽃이라고 여겼던 모란에 추모의 염원을 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줄기에 서로 다른 네 가지 색의 꽃이 핀 모습을 보고 화가를 나무라서는 안 된다. 실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정령을 꽃의 형태로 그렸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모란은 ‘꽃 중의 왕’으로 부귀영화를 상징한다. 그런 이유로 숱한 문학 작품과 그림에서 모란을 상찬했고, 정원에 모란을 심고 가꾸는 취미도 유행했다.
다양한 형식
. 이응록(李膺祿). 19세기. 비단에 먹과 안료. 152.4 × 351.8 ㎝.
책가도는 책장에 놓인 다양한 기물들을 그린 그림으로, 궁중장식화 중에서는 드물게 서양화법이 적용되어 조선 시대 장식화 중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 국립중앙박물관
18세기 후반 중국에서 유입된
는 궁중장식화 중에서는 드물게 서양화법이 적용된 그림이다. 도화서 화원들은 일점투시법(single-point perspective)과 명암법 같은 서양화 기법을 활용해 그림 속 사물이 ‘실제로 있는 것 같은(trompe-l’œil)’ 눈속임 효과를 나타내려고 했다. 특히 문치를 강조한 정조(재위 1776~1800)는 이 그림을 왕권 강화와 백성 교화에 활용하려 했다. 그는 창덕궁 선정전(宣政殿)에서 신하들과 회의할 때 어좌 뒤에
대신
병풍을 펴 놓고 학문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정조는 책을 읽을 여가가 없을 때 이 그림을 가까이 두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19세기의 대표적 화원 가문 출신인 이응록(李膺祿)이 특히 이 그림을 잘 그렸는데, 아들과 손자까지 그 유명세를 이어갔다. 궁중 화원들은 대개 낙관을 하지 않았으나, 이 화원은 그림의 소재로 등장하는 도장에 자신의 이름을 그려 넣는 재치로 후대에 이름을 남겼다. 그의 작품을 보면 중앙의 소실점을 향해 모이는 선반의 사선과 입체적으로 보이는 물건들 덕분에 책장이 실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명도와 채도가 낮은 배경색은 눈속임 그림에 적합한 서양화 기법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렇듯 18~19세기의
에는 서양을 향한 조선 사람들의 호기심이 담겨 있다. 그런가 하면 병풍이나 족자가 아닌 형태의 그림도 있다. 경복궁 교태전(交泰殿)의 를 예로 들 수 있다. 가로 260센티미터가 넘는 이 그림은 본래 교태전(交泰殿) 대청 위 한쪽 벽에 붙어 있던 그림이다. 사선 구도로 꽃과 새가 쏟아질 듯 내려오는 환상적인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왕비의 침전이었던 공간에 영원한 청춘과 충심을 상징하는 장미와 매화를 그려 넣고 쌍쌍의 앵무까지 더해 부부 금실을 기원한 것이다. 교태전은 여러 차례 소실과 재건이 반복됐는데, 이 그림은 1888년 교태전을 다시 세웠을 때 그려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교태전의 주인은 고종(재위 1863~1907)의 왕비 명성황후(1851~1895)였다. 왕과 왕비의 행복을 염원한 그림이 무색하게 명성황후는 암살되었고 교태전도 헐려 나갔다. 화려함의 극치였던 조선 궁중장식화에는 때로 파란만장한 역사가 숨어 있다.
이재호(Lee Jae-ho, 李在浩)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Features
2023 SUMMER
맛도 모양도 일품인 왕실 주전부리
1971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궁중 음식은 조선 시대 식문화의 백미이다. 궁중에서 먹었던 음식인 만큼 제철 재료로 정성껏 만들어 맛과 영양이 뛰어나다. 그중에서도 특히 왕실에서 즐겼던 주전부리는 크게 병과(餠菓)류와 화채(花菜)류로 나뉘어지는데, 각각의 종류가 매우 다양할 뿐더러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웠다.
화전, 약과, 정과 등으로 구성된 ‘경복궁 생과방’ 프로그램의 상차림.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와 한국문화재재단은 관람객들이 궁중 병과와 약차를 맛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매년 봄과 가을에 개최한다. ⓒ 한국문화재재단(Korea Cultural Heritage Foundation)
음력 3월 3일 삼짇날은 봄의 기운을 맞는 명절이다. 집 안에서만 활동해야 했던 조선 시대 여인들은 공식적 나들이가 허락된 이날 경치 좋은 곳을 찾아 진달래꽃으로 화전(花煎)을 부쳐 먹었다. 왕실도 마찬가지여서 임금이 후원(後苑)에 행차하면 왕비가 궁녀들과 함께 몸소 진달래꽃을 따서 꽃지짐을 만드는 ‘화전 놀이’ 행사를 했다.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둥글납작하게 빚고 진달래꽃을 얹어 기름에 지진 진달래화전은 쫄깃하고 달콤하다. 화전은 먹는 즐거움에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얹어 풍류를 더한 음식이다. 여름과 가을에는 장미 화전과 국화전을 즐겼다. 특별한 날 야외에서 계절을 느끼며 만들어 먹었던 화전 같은 별식도 있었지만, 궁중 음식은 대부분 궁궐의 각 전각에 딸린 부엌에서 만들어졌다. 왕의 일상식은 소주방(燒廚房)에서 조리했고, 후식과 별식은 생과방(生果房)이 담당했다. 특히 떡과 과자는 왕실 연회가 열릴 때 잔칫상을 한층 풍성하고 화려하게 만드는 중요한 음식이었기에 생과방 나인들이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특별한 떡
서울 필동에 자리한 한국의집 고호재(KOHOJAE, 古好齋)가 2021년 선보인 1인 다과상. 단호박으로 만든 증편과 딸기를 얹은 백설기를 비롯해 다양한 전통 과자로 구성되었다. ⓒ 한국의집(KOREA HOUSE)
왕의 탄신일이나 궁중 잔치 때 빠짐없이 올렸던 가장 귀한 떡은 단연코 두텁떡이다. 귀한 떡인 만큼 만들기도 어려운데, 간략히 말하면 이렇다. 간장과 꿀을 섞은 찹쌀가루를 한 숟가락씩 떠서 시루에 간격을 두고 담는다. 이 위에 잘게 다진 밤, 대추, 유자를 팥고물과 합쳐 둥글게 소를 빚은 후 각각 얹는다. 그런 다음 전체적으로 찹쌀가루를 뿌리고 팥고물로 덮어서 찐 봉우리 모양의 떡이 두텁떡이다. 영양이 풍부하고 간간이 씹히는 상큼한 유자의 맛과 향이 좋다. 궁중 잔치 음식을 기록한 옛 문헌들에 만드는 법이 소개되어 있다. 1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약식(藥食)도 궁중 잔칫상에 빠지지 않았던 병과이다. 찐 찹쌀에 꿀과 참기름, 간장으로 간을 한 후 밤, 대추, 잣 등을 섞어 다시 쪄낸다. 일반적인 떡처럼 떡메로 치지 않아 밥의 형태를 지녔고, 꿀이 들어가 달콤한 맛을 낸다. 쌀가루에 막걸리를 넣어 반죽하고 발효시켜 찐 증편(蒸䭏)은 대표적인 여름철 떡인데, 빨리 쉬지 않아 좋다. 막걸리에 있는 효모의 작용으로 반죽이 발효되면서 부풀어 폭신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달착지근하면서도 막걸리 향과 시큼한 맛이 감돌아 입맛을 돌게 한다. 고명으로 꽃잎이나 밤, 대추, 잣 등 다양한 재료를 얹어 보기에도 좋다.
(좌) 아홉 가지 한약재를 넣어 만든 ‘구선왕도고’는 위장을 보호해 소화를 촉진하고 원기를 회복시킨다고 알려졌다. 세종대왕을 비롯해 조선의 여러 임금들이 즐겼던 특별한 떡이다. ⓒ 한국문화재재단(중) 단호박으로 만든 증편, 산딸기 정과, 콩과 송홧가루로 만든 다식이 접시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한국의집 고호재가 2022년 여름에 선보인 다과 메뉴 중 일부이다. ⓒ 한국의집(우) 국화과에 속하는 홍화(Safflower, 紅花)는 씨로는 기름을 짜고 꽃은 말려서 차로 마신다. 부인병에 효과가 있으며 관절 통증을 완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예로부터 즐겨 마시는 전통 차 중 하나이다. ⓒ 한국의집
부작용 없는 9가지 한방 약재를 넣어 ‘몸속을 조화롭게 하는 것이 왕의 도를 닮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떡 구선왕도고(九仙王道糕)는 엿기름과 곶감 분(粉)을 넣어 달콤한 맛이 난다. 세종(재위 1418~1450)은 몸이 비대하고 막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당뇨와 신경통 등 질병이 많았다. 쓴 탕약을 잘 먹지 못하는 세종을 위해 어의가 올린 떡이 바로 이것이다. 볕에 바싹 말려 가루로 빻아 두었다가 죽을 쑤어 먹기도 하고, 꿀물에 타서 마시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황해도 개성 지역 혼례상에서 존재감이 돋보였던 떡이 궁중 음식으로 격상된 사례도 있다. 개성주악은 찹쌀가루와 멥쌀가루를 섞어 막걸리로 되직하게 반죽한 다음 둥글넓적하게 빚어 기름에 지진다. 꿀이나 조청을 발라 단맛과 윤기가 나고, 귤처럼 작고 동그란 모양이 예뻐 궁에서도 귀한 손님에게 내는 다과상에 올렸다. 겉은 바삭하면서 달콤하고, 속은 촉촉하면서 쫄깃한 식감이 좋다.
민가에 퍼진 궁중 과자
떡 다음으로 궁중에서 즐겼던 주전부리는 과자였다. 그중에서도 다식(茶食)은 민가와 궁중을 따지지 않고 두루 먹었다. 곡물 가루와 한약재 가루에 꿀을 넣어 반죽한 후 다식판에 눌러 박아 낸다. 고려(918~1392) 시대에 차를 마시는 풍습이 성행하면서 함께 발달했고, 큰 잔치나 의례상에 반드시 올랐다. 다식판에 새겨진 글씨나 문양이 과자에 찍히는데, 무병장수 등의 의미가 담겼다. 영조(재위 1724~1776)와 정순왕후(貞純王后, 1745~1805)의 가례(嘉禮) 때 다식을 만들기 위해 다식판을 새로 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다식과 함께 사랑받았던 전통 과자는 약과(藥菓)다. 밀가루에 참기름과 꿀을 넣고 반죽하여 기름에 튀겨 낸 것을 꿀에 담갔다 건져 만들어 단맛이 풍부하다. 궁중에서 즐겼던 약과의 맛이 좋아 민가에도 널리 퍼졌는데, 약과에 사용되는 재료가 너무 비싸 민생을 어렵게 한다는 이유로 한때 제조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밤, 대추 등 과실의 열매나 생강 같은 식물 뿌리를 익혀서 꿀에 졸인 과자를 숙실과(熟實果)라고 한다. 재료를 통째로 익혀서 원래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도록 졸인 것과 재료를 익힌 뒤 으깨어서 설탕이나 꿀에 졸인 다음 다시 원래 모양과 비슷하게 빚은 것으로 나뉜다. 이러한 숙실과는 부드럽고 소화가 잘되어 궁중 잔치뿐만 아니라 양반가의 혼인, 회갑연 등 경사스러운 잔칫상에도 올랐다. 또한 약재 자체가 과자가 된 사례도 있다. 인삼정과(人蔘正果)는 인삼을 살짝 쪄서 쓴맛을 줄이고, 꿀이나 조청에 넣어 은근한 불로 오랫동안 졸여서 쫄깃쫄깃하고 달콤하게 만든다. 83세까지 장수했던 영조는 인삼을 즐겼지만, 검소함을 강조해 제수(祭需)로 올라오는 인삼정과의 수를 줄이게 했다고 한다.
궁중에서 즐겼던 주전부리 중에는 유과와 약과처럼 민가에 널리 퍼지는 경우도 있었다. ⓒ 셔터스톡
시원한 여름 음료
떡과 과자에는 어울리는 음료가 곁들여지게 마련이다. 제호탕(醍醐湯)은 음력 5월 5일 단오에 궁중에서 먹던 여름 음료이다. 매실 과육을 발라 말린 것에 생강과(Zingiberaceae) 열매인 초과(草果)와 한약재를 가루 내어 꿀과 섞고 되직해질 때까지 중탕한 뒤 냉수에 타서 마셨다. 궁중에서는 갈증이 해소되고 더위를 타지 않게 하는 음료 중 으뜸으로 여겼다. 내의원(內醫院)에서 이 탕을 만들어 임금께 올리면 임금이 부채와 함께 고령의 신하들에게 하사하는 풍습이 있었다. 역시 여름 음료인 오미자차(五味子茶)는 새콤달콤한 맛과 붉은 색깔이 일품이다. 단맛•쓴맛•신맛•짠맛•매운맛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오미자를 찬물에 불려 우려낸 뒤 꿀을 넣어 시원하게 마셨고, 얇게 썬 배를 띄워 화채로 먹기도 하였다. 중종(재위 1488~1544)의 몸에서 열이 나고 갈증을 호소하자 의녀가 오미자차를 대령했다는 기록이 있다. 화채(花菜)는 꿀물이나 오미자 우린 물에 과일, 꽃잎 등을 띄워 차게 해서 마시는 여름 음료이다. 과일과 꽃잎의 종류에 따라 화채 이름이 달라진다. 유자 화채는 꿀물에 가늘게 채 썬 배와 유자를 넣고 석류와 잣을 띄운 음료로 유자의 상큼한 맛과 향이 일품이다. 궁중 잔치를 기록한 문헌에 소개되어 있으며 주로 왕실 잔치, 사신 접대, 신하에게 내리는 하사품으로 활용되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전통 음료가 있지만 단연코 으뜸은 식혜(食醯)다. 엿기름물에 밥을 넣고 삭혀서 만드는데, 달콤한 맛과 생강의 알싸한 향이 조화를 이룬다. 식혜를 만드는 엿기름에는 디아스타아제 효소가 있어 소화를 돕고 정장 작용 효과가 있다. 인삼과 호박, 연잎 등을 활용한 특별한 식혜들도 있다.
윤숙자(Yoon Sook-ja, 尹叔子) 한국전통음식연구소 대표
Features
2023 SUMMER
미학과 철학으로 완성된 조경
고층 건물들이 즐비한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은 조선의 궁궐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 유산이자 도시의 여백이다. 특히 바쁜 현대인들에게 궁궐은 일상 가까이에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도심 속 휴식처로 기능한다. 이러한 궁궐을 통해서 자연을 대하는 당시 사람들의 철학을 경험할 수 있다.
경복궁 경회루는 왕이 신하들에게 연회를 베풀거나 사신을 접대하던 누각이다. 현재의 경회루는 화재로 소실된 경복궁을 1867년 재건할 때 다시 지은 것으로, 땅은 네모나고 하늘은 둥글다는 천원지방(天圜地方) 사상에 따라 바깥에는 네모난 민흘림기둥을, 안쪽에는 둥근 기둥을 세웠다. ⓒ 게티이미지코리아(gettyimagesKOREA)
궁궐에 들어서서 처음 만나는 공간은 인공 개천인 ‘금천(禁川)’과 그 위에 놓인 다리이다. 금천은 담장 바깥에 흐르던 물길을 안으로 끌어들여 정문과 중문 사이에 만들었는데, 이는 ‘뒤로는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물과 접해 있어야 명당’이라는 전통적인 풍수 사상에 기반한다. 또한 궁궐에 들어오는 잡귀를 쫓는 벽사(辟邪)의 의미도 지닌다. 그리고 임금이 거처하며 정사를 돌보는 궁궐에 들어오는 모든 이들이 다리 위에서 흐르는 물에 사사로운 마음을 씻고 몸가짐을 반듯하게 하라는 뜻도 담겼다.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연못 부용지와 주변 전각들이다. 연못 북측에 자리한 2층 누각 주합루(宙合樓)는 정조(재위 1776~1800)가 학문과 휴식을 즐겼던 장소이다. ⓒ 문화재청
금천 주변은 궁궐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상서로운 짐승이 조각된 무지개형 돌다리 아래로 맑은 물이 흐르고 주위엔 갖가지 나무들이 식재됐다. 봄에는 매화나무, 앵두나무, 살구나무가 다채로운 꽃을 피우고 가을에는 꽃이 진 자리를 열매들이 채운다. 금천의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하고 더 들어가면 왕과 신하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던 궁궐의 중심 영역이 등장한다. 치열한 정치가 펼쳐졌던 이 업무의 공간에서는 멀리 산봉우리가 보일 뿐 아름다운 풍경은 배제된다. 조선 시대 조경의 정수인 궁궐의 정원은 여기서 한 단계 더 깊숙이 들어가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최상의 조합
가장 오래전에 조성됐고 그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된 정원은 경복궁의 경회루(慶會樓) 일대이다. 1412년 태종(재위 1400~1418)이 침전 서쪽에 조성한 이 정원은 네모난 연못과 거대한 누정이 간결한 배치를 이룬다. 조선 시대 누각 중 가장 큰 건축물인 경회루에 오르면 멀리 산자락이 눈에 들어오고, 경내 전각들의 지붕이 마치 파도처럼 넘실대는 모습이 보인다. 이토록 거대한 규모의 누정 위에서 역대 왕들은 자신이 천하를 다스리는 존재임을 되새겼을 것이다. 조선을 대표하는 양식으로 자리 잡은 경회루 정원의 형식과 미학은 전국 각지의 관아로 전파되었으며,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다.
옥천교(玉川橋)는 창경궁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공간이다. 궐내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전 다리를 건너며 몸가짐을 반듯하게 하라는 의미가 담겼다. ⓒ 문화재청
그런가 하면 창덕궁 후원(後苑)은 경회루 정원과 사뭇 다른 방식으로 조선 시대 정원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궁궐 앞쪽 너른 평지에 위치한 경회루 정원이 웅장하면서 기하학적인 형식미를 보인다면, 궁궐 뒤쪽 산지에 위치한 창덕궁 후원은 지형을 따른 다채로운 자연미를 자랑한다. 현재의 후원은 대략 17세기 이후 점진적으로 조성됐으며, 그 특징은 원래 있던 언덕과 골짜기, 물줄기를 따라 숲과 나무, 바위와 샘을 최대한 활용했다는 점에 있다. 창덕궁 후원은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눠지며 각기 다른 특성을 보여 준다.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장소가 주합루(宙合樓) 일대이다. 경사진 지형을 살려 누정과 연못 사이에 높은 계단을 설치하고 중층으로 누각을 올려,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는 상반된 시선을 한껏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골짜기가 깊고 물이 많은 존덕정(尊德亭) 일대는 비정형으로 못가를 다듬고 가까이에 다양한 형태의 누정들을 여러 채 지었다. 후원에서 가장 안쪽에 자리한 옥류천(玉流川) 일대는 널찍한 바위를 깎아 경관을 조성했으며, 작은 규모의 누정들을 여러 채 지어 조용히 경치를 음미하도록 했다. 이런 작은 정원들을 품고 있는 후원의 숲은 그 자체로 훌륭한 풍광을 자랑한다. 봄에는 연한 새잎과 꽃이, 여름에는 우거진 나무 그늘이, 가을이 오면 진한 단풍이, 그리고 겨울은 설경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처럼 창덕궁 후원의 비경은 건축미와 조경, 그리고 자연이 만들어 낸 최상의 조합이다.
자연 존중
궁궐 곳곳에 흩어져 있는 소규모 정원들은 대개 생활 공간에 딸려 있다. 왕비의 침전이었던 경복궁 교태전(交泰殿) 뒤에 조성된 아미산(峨眉山) 화계(花階)와 역시 왕비의 생활 공간이었던 창덕궁의 대조전(大造殿) 뒤 화계가 대표적이다. 화계는 층계 모양으로 단을 만들어 조성한 꽃밭을 말하는데, 계절감을 느끼게 하는 다양한 관목들이 식재되었으며 정교하게 장식된 굴뚝과 괴석들이 놓였다.
19세기 후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향원정(香遠亭)은 왕과 왕실 가족들의 휴식처로 사용된 육각형의 정자이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보수 및 복원 공사를 거쳤으며, 이 과정에서 향원정의 온돌 구조가 발견되었다. ⓒ 문화재청
궁궐 내 별당이라 할 수 있는 경복궁 건청궁(乾淸宮)과 창덕궁 낙선재(樂善齋)에서도 화려한 정원을 볼 수 있다. 건천궁은 왕과 왕비의 휴식 공간이다. 그 용도에 맞게 넓은 연못 가운데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육각형 중층 누각 향원정(香遠亭)을 짓고 정원을 갖추었다. 여름에 다리를 건너 향원정에 이르면 이 정자에 ‘연꽃 향이 멀리 퍼진다’는 이름이 왜 붙었는지 실감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창덕궁 낙선재 정원 역시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화계 사이로 난 계단으로 올라가면 탁 트인 조망을 갖춘 누정과 보름달을 닮은 만월문(滿月門)을 볼 수 있다. 궁궐 정원에 드러나는 특징은 형태의 단순미와 자연 존중으로 요약된다. 연못은 사각형, 화계는 직선 위주로 만들어졌으며 지형을 최대한 살려 정원을 조성하고 경관을 감상하도록 했다. 그런 이유로 한국의 정원은 동아시아 다른 국가들의 전통 정원에 비해 양식적 특징이 뚜렷하지 않다는 얘기를 종종 듣곤 한다. 예를 들어 흰 벽을 배경으로 기암괴석을 적극 배치해 자연을 축소 모방한 중국 쑤저우(蘇州)의 사가원림(私家園林)이나 자연의 성질을 추상화해 돌과 모래로 재현한 일본 교토(京都)의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과 비교해 본다면 한국 정원의 정체성은 설명 없이는 파악하기 쉽지 않다. 이는 한국 정원의 핵심이 바로 그 불분명함과 단순함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통 정원이 모방하는 자연은 눈에 보이는 조형보다 말과 글을 통한 해석에 가깝다. 또한 그 모방의 대상은 자연의 겉모습이 아니라 자연에 깃든 도덕의 원리에 가까웠다. 정원 예술의 기능이 자연을 통한 인식의 확장에 있다면, 한국의 정원술은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재발견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시대적 변화
1909년 지어진 창경궁 대온실은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다. 준공 당시에는 열대 식물을 비롯해 다양한 희귀 식물을 전시해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 문화재청
자연의 본모습을 충실히 읽고자 했던 조선의 전통적 조경관은 근대에 이르러 큰 변화를 맞았다. 왕조의 쇠락과 함께 궁궐은 공원으로 변모하기 시작하는데, 그 변화의 시대상을 잘 드러내는 곳이 바로 창경궁이다. 창경궁 안쪽에 자리한 대온실(大溫室)과 연못 일대는 본래 군사들이 활쏘기나 말타기 훈련을 하던 공터와 임금이 직접 농사를 지어 보며 농정을 살폈던 농경지가 있던 장소였다. 1909년 이곳에 유리와 철골을 이용한 국내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 지어졌고 그 앞에는 자수(刺繡) 화단이 꾸며졌으며, 구불구불한 형태의 연못도 들어섰다. 오직 왕실을 위해 존재했던 공간은 대중이 산책하고 신문물을 감상하는 장소로 바뀌었다. 현재에도 남아 있는 이런 풍경은 시대상과 관점의 변화를 보여 준다. 한국 전통 조경의 미학과 철학이 담겨 있는 궁궐은 이제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가 되었다.
임한솔(Lim Han-sol)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선임연구원
Features
2023 SUMMER
궁궐 마당의 길상 장식
궁궐에는 다양한 조형물과 장식물들이 있다. 석교와 월대(月臺), 굴뚝 같은 건축 요소를 장식한 문양을 비롯해 곳곳에 놓인 석조물에는 유교 정치의 이상과 왕의 권위, 왕실의 위엄이 담겨 있다. 이런 장식물들은 시각적으로 빼어난 조형미를 보여 주는 동시에 궁궐에 내재한 당대 사람들의 세계관을 이해하게 해 준다.
잡상(雜像)은 전각의 추녀마루 위에 장식하는 사람이나 동물 모양의 조각상이다. 잡귀를 물리쳐 궁궐이 평안하기를 바라는 의미가 담겼다. ⓒ 허유정(Huh Yu-jeong), Unsplash
궁궐에는 왕조의 태평성대와 왕족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다양한 건축 장식이 있다. 돌, 흙, 금속으로 만든 이 조각들은 설화에 기반하고 있어 조형적 상상력을 엿보게 한다. 특히 조선 왕조 정궁 경복궁은 궐내에 수백 점이 넘는 석조 조형물들이 있어 궁궐 건축 장식의 상징적 의미를 살펴보기에 최적의 공간이다.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光化門) 앞에는 석조 해치상(獬豸像) 한 쌍이 있다. 해치는 옮고 그름과 착하고 나쁨을 판단하는 전설 속 동물이다. 조각상은 둥근 몸통에 비늘이 있으며 발톱이 4개이다. 얼굴은 커다란 주먹코에 돌출된 큰 눈을 하고, 송곳니를 드러냈지만 위협적이지 않고 웃는 인상에 가깝다. 목에는 방울을 달고 있으며, 귀 아래로 털이 늘어졌고, 목덜미에는 갈기가 있다. 머리 위에는 나선형 돌기가 있어서 양의 뿔처럼 보인다. 이 조각상은 1865년 시작하여 1867년 완료된 경복궁 중건 사업 때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양의 저울처럼 동아시아에서는 해치를 법과 정의의 상징으로 여겼다. 궁궐 정문 앞 해치는 조선 왕조가 지향했던 이상적 유교 정치와 왕권을 상징한다. 과거에 해치 앞에는 하마석(下馬石)이 있어서, 모든 신하들이 해치 앞에서 노둣돌을 딛고 말에서 내려 궁궐로 걸어 들어갔었다.
왕실 수호
경복궁 근정문 앞 계단 가운데에 자리한 답도(踏道). 임금이 가마를 타고 지나가는 길로 궁궐의 격식을 나타내는 장식물 중 하나이다. 답도에는 봉황 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양옆에는 해치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 문화재청
광화문을 지나면 흥례문(興禮門)과 근정문 사이 마당에 있는 금천(禁川)을 건너야 한다. 금천을 건너는 다리 영제교(永濟橋)에는 네 모퉁이 난간 기둥들 위에 용이 앉아 있다. 용들은 비늘로 덮인 몸통을 돌돌 말아 앞발로 여의주를 쥐고 있으며,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있고 턱 밑에 긴 수염이 있다. 다리 안쪽을 향해 앉아 있는 용들은 영제교의 통행을 감시하는 듯하다. 용은 왕권 자체를 상징하면서 동시에 왕권을 수호하는 동물이다.
금천의 석축에도 상서로운 동물 네 마리가 조각되어 있다. 동물들은 앞발로 석축의 끝을 잡고 고개를 내밀어 금방이라도 물로 뛰어들 것처럼 보인다. 머리에는 세 갈래로 갈라진 뿔이 있고, 눈썹은 동그랗게 말려 있으며, 큰 코가 인상적이다. 몸통에는 비늘이 있고, 발가락은 3개이다. 조선 후기 사람들은 이 동물을 천록(天鹿)으로 이해했다. 천록은 사악한 기운을 막는 전설의 동물로 궁궐로 들어오는 액운을 막고 입궐하는 신하들의 마음을 다잡는 역할을 했다.
영제교를 지나면 경복궁의 핵심 공간인 근정문(勤政門)과 근정전이 나타난다.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으로 왕이 즉위하고, 문무백관의 하례를 받으며, 중요한 법령을 반포하던 곳이다. 그러므로 근정전 일대에 상서로운 동물상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건 당연하다. 왕의 가마가 지나가는 답도(踏道)에는 봉황이 여의주를 둘러싼 모습이 조각되었다. 봉황도 용과 마찬가지로 왕을 상징한다.
경복궁 근정전 월대(月臺)의 난간 기둥에 놓인 동물상. 동서남북 방위와 계절, 열두 달을 상징하는 동물들이 기둥마다 놓여 있다. ⓒ 문화재청
이중으로 구성된 근정전의 월대(月臺)에는 난간 석주 위에 여러 동물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월대 상단에는 네 방위와 사계절을 상징하는 동물들이, 하단에는 열두 달을 상징하는 동물들이 놓여 있는데, 배치상의 문제로 몇몇 동물은 생략되었다. 월대 정면 모퉁이에는 부모와 새끼가 함께 있는 사자 모양의 동물들이 조각되어 있다. 남쪽에 있는 사자를 닮은 상상 속 동물들은 임금의 현명한 지혜와 올바른 판단을 상징한다. 한편 근정전 월대 위에는 청동으로 만든 큰 솥이 있다. 세 개의 발과 두 개의 손잡이로 이루어진 이 솥은 고대로부터 왕권의 정통성을 상징했다.
태평성대
궁궐 중심 공간에 다양한 동물 조각상들을 배치한 데는 이유가 있다. 왕의 바른 통치 아래 동물에 빗댄 만물이 각자의 자리에서 순리에 맞게 움직인다는 의미가 담겼다. 신령한 동물들은 왕실을 수호하는 한편 태평성대의 실현을 상징한다. 이와 같은 상징은 경복궁의 연회 장소인 경회루(慶會樓)의 석조물에도 등장한다. 한 변의 길이가 100미터가 넘는 큰 인공 연못 위에 지은 경회루에는 출입을 위한 석교가 3개 있다. 각각의 다리 난간에 등장하는 용과 기린, 이무기(螭龍)와 추우(騶虞), 코끼리와 해치는 각각 임금, 세자, 어진 신하를 상징한다. 한편 경회루 연못에서는 1997년, 청동으로 만든 용이 출토된 바 있다. 연못 준설 작업 중 발견된 이 용은 길이 약 1.5미터, 무게 66.5킬로그램으로 궁궐의 화재를 막기 위한 조형물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왕을 상징하는 이 상서로운 존재가 물을 다스리고 비를 내리게 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현재는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화재와 관련하여 주술적 의미가 아니라 실용적 기능을 가진 금속 용기도 있다. 근정전 월대 아래 좌우 측면에 위치한 ‘드무’는 세 개의 돌로 된 받침 위에 얹혀진 커다란 무쇠솥이다. 평소에 물을 담아 두었다가 화재 시 방화수로 사용했는데, 겨울에는 돌 받침 사이에 불을 지펴 물이 얼지 않도록 했다. 또한 화마(火魔)가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라 달아난다는 해학적 의미도 품고 있다. 비단 조각상뿐만 아니라 건축물에도 상징을 위한 장치가 있다. 근정전 지붕의 용마루 좌우 끝에는 각지게 솟아오른 대형 장식기와가 눈에 띈다. 고대에는 새의 꼬리나 머리 모양을 하였지만, 조선 시대에는 용을 조각했다. 이것 역시 왕권을 드러내는 동시에 화재를 막는 주술적 의미를 더한 것이다. 지붕의 추녀마루에는 액운을 막는 여러 가지 잡상(雜像)을 올렸다. 조선 시대에 잡상은 궁궐을 비롯한 주요 국가 시설에만 설치되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왕조의 권위를 표현한 것이다. 또한 건물의 중요도에 따라 잡상의 수도 달랐다. 근정전 잡상은 상하층 지붕에 각각 7개씩 남아 있는데, 연구 결과 예전에는 더 많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해학적 특징
경복궁 교태전 후원을 장식하는 굴뚝에는 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과 고결함을 나타내는 사군자가 조각되어 있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왕의 처소인 강녕전(康寧殿) 뒤에는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交泰殿)이 있고, 교태전 뒤에는 아미산(峨眉山)이라고 불리는 후원(後苑)이 있다. 후원에는 석축을 4층으로 쌓아 수조와 기암괴석을 진열하고 다양한 식물을 심었다. 교태전의 아궁이와 연결된 굴뚝들은 세 번째 단 위에 설치되었는데, 붉은 벽돌을 육각형으로 쌓고 여섯 면에 왕실 일가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문양을 새겼다. 중앙에는 십장생과 사군자를, 그 위아래로 노루, 박쥐, 낙타, 봉황 등의 동물을 조각했다. 굴뚝 위에는 기와지붕을 올리고 연기가 나오는 장치를 4개 설치했는데, 그 조형미가 매우 뛰어나다. 교태전에서 동쪽으로 나가면 대왕대비의 처소인 자경전(慈慶殿)이 나온다. 자경전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꽃담을 둘렀고, 담장 모양에 맞춰 납작하고 넓은 모양의 굴뚝을 설치했다. 굴뚝에 새겨진 문양은 십장생으로 대표되는 장수의 상징들이다. 해, 산, 구름, 바위 등의 자연물과 대나무, 소나무, 불로초, 국화, 연꽃, 포도 등의 식물들이 새겨졌고 그 사이로 학, 사슴, 거북이 등의 동물들이 표현되었다. 연꽃과 포도는 십장생은 아니지만 자손의 번성을 상징해 포함됐다. 십장생 위아래로는 부귀를 상징하는 박쥐 등 액운을 막고 행운을 기원하는 여러 동물들이 배열되었다. 경복궁 너른 마당에서 만나는 각종 동식물 조각과 문양들은 정치적 이상에서 개인적 소망까지 왕실의 다양한 염원을 표현한다. 이 장식들은 화재를 비롯한 각종 재앙을 막고, 어진 정치를 위한 관료들의 마음가짐을 바로잡으며, 부모의 장수를 기원하는 효 사상을 일깨운다. 이 조각들은 대부분 민간에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왕권을 드러낸 것이며, 임금의 어진 정치가 온 나라에 퍼진 태평성대를 묘사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모습은 경직되거나 권위적이지 않고 해학적으로 표현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이강민(Lee Kang-min, 李康民)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