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Interview
2023 AUTUMN
신나는 음악적 혁명
2020년 결성한 얼터너티브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HAEPAARY)는 국악을 현대적 비트로 재해석한 음악을 선보인다. 이들의 독창성은 2022년 한국대중음악상(Korean Music Awards)에서 받은 최우수 일렉트로닉 음반상과 최우수 일렉트로닉 노래상이 입증한다.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무대륙(Mudaeruk, Mu-大陸)에서 두 사람을 만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터너티브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HAEPAARY)는 노래하는 박민희(사진 왼쪽)와 연주하는 최혜원이 만나 2020년 결성했다. 이들은 대중음악과 국악을 재료로 삼아 자신들의 화법으로 새롭게 재구성하는 음악 작업을 선보이고 있으며, 한국 전자음악계에 새로운 신호탄을 던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9년,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LEENALCHI)가 발표한 < 범 내려온다(Tiger is Coming) > 는 일대 돌풍을 일으켰다. 판소리 < 수궁가(水宮歌) > 를 포스트펑크 장르로 재해석한 이 곡에 매료된 대중은 이를 기점으로 국악적 요소와 팝 음악을 결합하는 다양한 음악적 시도에 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 소무-독경(A Shining Warrior - A Heartfelt Joy) > . 2021년 발매한 해파리의 첫 EP< Born By Gorgeousness > 의 수록곡 중 하나이다. 이 앨범은 2022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일렉트로닉 음반상을 받았다.
박민희(Minhee, 朴玟姬)와 최혜원(Hyewon, 崔惠媛)이 결성한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HAEPAARY)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조용히 그리고 차갑게 등장했다. 2021년 발표한 데뷔곡 < 소무-독경(A Shining Warrior - A Heartfelt Joy, 昭武-篤慶) > 은 앰비언트 뮤직에 가까운 차가운 비트 위로,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를 기리는 제사에 쓰였던 종묘제례악이 흐른다. 국악 타악기의 영롱한 사운드가 빛나는가 하면 후반부에는 나직한 내레이션이 삽입되어 마치 공포 영화의 사운드트랙처럼 들리기도 한다.
데뷔 때부터 독창적 음악 세계를 선보인 해파리는 날카로운 혁명가처럼 느껴진다. 수백 년 전 창작된 한국의 음악 전통을 끌어오되, 시대착오적 텍스트를 해체하거나 성 역할을 깨부순다. 예컨대 이들은 남성의 영역인 남창(男唱) 가곡을 부르기도 하고, 남성 위주였던 조선 시대의 풍류 문화를 여성적 관점으로 뒤엎어 해석한다. 고정관념과 보수적 음악에 환멸을 느끼던 젊은이들이 이들의 음악에 환호하는 이유다.
두 사람 모두 국악 전공자인데, 국악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혜원: 어렸을 때 김덕수(Kim Duk Soo, 金德洙) 사물놀이패에서 어린이 예술 단원으로 활동했다.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다국적 재즈 그룹 레드 선(Red Sun)이 협업한 앨범에 심취하며, ‘전통 장단을 어떻게 이렇게 가지고 놀지?’ 하고 생각했다. 월드뮤직 그룹 훌(WHOOL)과 함께 공연도 했고, 뭔가 새로운 것을 계속 추구했다. 국악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서는 일렉트로닉 뮤직에 흠뻑 빠지게 됐다. 민희: 어린 시절, 아버지 손에 이끌려 시조와 가곡을 배우러 간 게 계기였다. 전통성악곡인 시조, 여창(女唱) 가곡, 가사를 익히면서 일반 고등학교에는 진학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때는 미국 래퍼 투팍(Tupac)을 좋아했고, 우리나라 펑크 록 1세대 밴드인 크라잉넛의 < 양귀비 >같은 노래를 들으며 열광했다. 오빠 친구들이 들려주던 영국 메탈 밴드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의 음악에도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가 국악 고등학교에 진학해 전통 기악곡인 < 수제천(壽祭天) > 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접했던 프로그레시브 록, 아트 록보다 훨씬 더 특이했기 때문이다.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Hwang Byung-ki, 黃秉冀),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Nam June Paik, 白南準) 같은 혁명적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게 그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데뷔 후 지금까지 느낀 시장의 반응은 어떤가? 민희: 국악계로 수렴되지 않고 일렉트로닉 음악, 나아가 대중음악 시장에서 자리매김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자 숙제였다. 에스파 같은 K-pop 그룹과 함께 2022년 한국대중음악상 신인상 후보에 오르거나 우리 앨범이 음반 가게에서 앰비언트 뮤직 듀오 살라만다(Salamanda) 옆에 나란히 놓이는 일을 해낸 것이 일차적 성과라고 생각한다.
일렉트로닉 뮤직 신에서는 해파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하다. 혜원: 독특한 사운드를 많이 사용해서인지 악기 소스를 가장 먼저 물어본다. 국악 소스를 샘플링 하기도 하지만, 사실 다른 전자음악가들이 사용하는 소스를 조금 변형하는 경우가 더 많다. 국악적 요소를 의도적으로 시도하지는 않는데, 아무래도 우리의 음악적 라이브러리에 대중음악과 국악이 둘 다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국악적인 뉘앙스가 풍기는 것 같다.
좀 전에 에스파를 언급했는데, K-pop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경포대로 가서(go to gpd and then) > . 전통적인 남창 가곡(男唱 歌曲, 남성들이 풍류를 즐기며 부르는 노래)을 비틀어서 재해석한 곡이며, 2022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일렉트로닉 노래상을 수상했다.
민희: 청중으로서 K-pop을 좋아한다. 하지만 창작자로서 그들과 우리의 길은 다르다. 그들은 매끄러움을 지향하지만, 우리는 다른 질감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평균율에서 벗어난 음, 정박에서 벗어난 박자, 뭐 그런 것들…. 에스파가 선보이는 아바타와 우리가 < 경포대로 가서(go to gpd and then) > 뮤직비디오에서 보여 준 아바타는 대단히 큰 차이가 있다.
혜원: < 경포대로 가서 > 뮤직비디오는 네덜란드의 안무 그룹이 공공 지식재산 차원에서 무료로 배포한 아바타 소스를 활용해 우리의 춤을 얹었다.
민희: 지식재산권에 접근하는 태도를 비롯한 수많은 결에서 K-pop과 우리의 지향점이 상당히 다르다. 우리는 아이돌 그룹처럼 퍼포먼스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데, 그래서 의도를 읽히기도 전에 서툴고 지루한 퍼포먼스로 치부될까 봐 두렵다.
수백 년 전 음악과 현대 전자음악 두 가지를 동시에 펼쳐내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혜원: 앨범 녹음을 할 때도 그렇지만 특히 라이브를 할 때 늘 난관에 봉착한다. 민희의 전통적 가창과 발성이 무대 위에서 표출되는 전자 사운드와 잘 붙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사운드 믹스를 조율한다. 앨범 작업을 할 때 프랑스 전자음악 듀오 다프트 펑크(Daft Punk)처럼 사람의 음정을 기계음으로 바꿔 주는 보코더(vocoder)를 써 본 적도 있다. 하지만 효과적이지 않았다. 민희: 플라멩코의 클래식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스페인 뮤지션 로살리아(Rosalia), 예멘 전통음악과 힙합을 혼합하는 이스라엘 그룹 에이와(A-WA)가 좋은 본보기인 것 같다. 물론 그들과 우리는 처한 환경이 다르다. 그들의 경우 자신들이 가진 서구적 전통과 현대적 비트가 잘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있는 반면에 우리는 아직도 한국 전통 가곡의 뉘앙스를 지금의 것과 결합하는 데 애를 먹는다. 힘들지만 풀어 나가는 보람은 있다. 혜원: 음악을 만들 때 서양 일렉트로닉 음악의 2박 체계와 국악의 3박 체계를 종종 혼용하는 편이다. 민희의 가창이 정박을 벗어나기 때문에 믹싱 엔지니어가 수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는 오히려 그런 상황이 재밌고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전통적 텍스트에 표출된 성 역할을 전복하는 재해석이 흥미롭다. 민희: 청개구리 기질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젠더적 관점에만 관심 있는 건 아니다. 일전에 어떤 공연에서 조선 시대의 문신 남구만(南九萬, 1629~1711)이 지은 유명한 시조 < 동창이 밝았느냐 > 를 풀어냈다. 그런데 ‘소 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라는 대목을 도저히 그냥 둘 수 없었다. 아동 인권 착취가 아닌가. 그리고 < 시작된 밤 > 이라는 곡에서는 성 소수자의 사랑을 다뤘다. 20세기까지 당연시해 왔던 여성 혐오, 약자 착취를 비롯한 사회적 불합리에 대해 질문하고 예술 안에서 각색해 보여 주는 것이 우리에겐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올해 계획, 그리고 장기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혜원: 첫 정규 앨범을 준비 중이다. 10월에는 스페인에서 열리는 월드뮤직 페스티벌 워맥스(WOMAX)에 참여할 계획이다. 사실 월드뮤직 말고 일렉트로닉 뮤직 페스티벌 무대에 더 많이 서고 싶다. 민희: 정좌하고 앉아서 우리 음악을 감상하는 분들보다 ‘미치게 취한 사람들’ 앞에서 더 많이 공연을 하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는 신나는 음악을 많이 만들어 볼 작정이다.
2023년 5월 20일,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무대륙(Mudaeruk)에서 공연 중인 해파리. 이들은 관객들이 흥에 취해 몸을 들썩일 수 있는 곡을 만들고 싶어 한다.
임희윤(Lim Hee-yun, 林熙潤) 음악평론가
Interview
2023 SUMMER
조각이 된 사진
권오상(Gwon Osang, 權五祥)은 사진으로 조각을 구현해 냈다. 큐비즘이 3차원 입체 사물을 여러 시점의 2차원 평면 그림으로 구성한 것이었다면, 권오상은 다양한 각도에서 찍은 수백 수천 장의 평면 사진을 이어 붙여 입체 조각을 빚었다. 속은 텅 비우거나 스티로폼으로 채워 가벼움을 추구했다. 이 ‘사진 조각’은 미술사 그 어디에도 없었다.
권오상 작가가 자신의 초기 작품들 사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조각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새로운 조형 구조를 실험해 오고 있는 작가다.
. 2015. C-프린트, 혼합 재료. 380 × 176 × 105 cm.
대천사 미카엘이 악마 루시퍼를 무찌르는 장면에 가수 G-드래곤을 등장시킨 작품이다. ⓒ 빅토리아앤앨버트 뮤지엄
영국의 록 밴드 킨(Keane)은 권오상이 만든 멤버들의 조각상 이미지로 2008년 발표한 앨범
의 재킷을 만들었고, 그를 천재 작가라 칭송했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와 펜디, BMW와 나이키 등의 제안을 받아 협업했고, 영국 자블루도비츠(Zabludowicz) 컬렉션과 데이비드 로버츠 재단(The Roberts Institute of Art)을 비롯한 해외 여러 나라의 기관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가수 지드래곤(G-DRAGON)의 사진으로 대천사 미카엘이 악마 루시퍼를 무찌르는 모습을 제작한
는 2015년 서울시립미술관 기획전의 화제작이었고, 지금은 런던 빅토리아앤앨버트 뮤지엄(V&A South Kensington)에서 6월 25일까지 열리는
전시의 주요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 세계를 누비는 예술가 권오상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그의 작업실로 찾아갔다. 그곳에는 1998년에 만든 최초의 사진 조각인 친구들의 흉상 두 점부터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낸 배우 강수연(Kang Soo-yoon, 姜受延)의 이미지들로 한창 작업 중인 최신작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획기적인 개념이라도 반복적인 작업은 재미없다. 초창기 작품이 큐비즘을 떠올리게 했다면 최근 작품들은 초현실주의와 추상적 경향을 보이며 깊이를 더해간다. 김민기(金旼琦) 작가와 협업한 가구 제작, 서울예술단과 함께한 무대 공연까지 그의 활동 영역은 점점 더 넓어지는 중이다.
‘사진 조각’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제가 입학한 1994년 홍익대학교 조소과는 신임 교수들의 넘치는 의욕과 유학파의 패기가 어우러져 ‘뭔가 새로운 미술을 해야 한다’는 의식이 지배적이었어요. 게다가 홍대 앞 인디 문화가 색깔을 내기 시작한 때였고, 이전 베이비붐 세대와 구분되는 X세대가 등장한 시기였습니다. 세기말적 분위기와 새로운 밀레니엄에 대한 기대가 공존했죠. 학교의 커리큘럼 자체는 전통적 수업이 많았지만, 서로가 새로운 시도를 응원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저는 학교 동아리 사진반에 들어갔어요. 입학 첫날 찾아간 조소과 작업실은 천장이 무척 높고 꽤 널찍했는데, 작업하던 흙덩이가 비닐에 덮여 있고 돌과 나무들이 널브러져 있었어요. 그 장면을 보고 있으니 ‘나는 체격이 왜소한 편이라서, 체력이 요구되는 조각 작업이 쉽지 않겠구나’ 싶더라고요. 좋아하는 조각 작업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으로, 다루기도 쉽고 구하기도 용이한 재료를 찾다가 인화지를 발견했고, 그렇게 사진 조각이 시작되었어요. 내 몸 편하자고 시작한 셈이죠.
. 2023. Archival pigment print, 혼합 재료. 110 × 40 × 42 cm.
헨리 무어의 조각을 오마주한 작품으로, 작가 특유의 이미지 채집과 유희적 콜라주가 더해져 독특한 조형 미학이 완성되었다. ⓒ 아라리오갤러리
< New Structure 4 Prism & Macallan > . 2014. 잉크젯 프린트, 알루미늄. 275 × 316 × 197 cm. ‘뉴 스트럭처’ 시리즈는 잡지에 나오는 수많은 이미지들을 오려 붙인 ‘더 플랫’ 시리즈를 입체화한 작업이다. ⓒ 아라리오갤러리
자기 몸에 대한 자각에서 사진 조각이 탄생한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대학 졸업 전에 전시를 통해 화려하게 데뷔하셨죠? 우리나라 최초의 대안 공간인 루프(LOOP)가 1999년 개관했는데, 루프의 세 번째 기획전에서 ‘데오도란트 타입(Deodorant Type)’을 처음 선보였어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1999) 같은 스타일의 작품이었습니다. 운이 좋았죠. 첫 개인전은 2년 뒤에 인사미술공간(Insa Art Space)에서 열었어요. 이후로 여러 미술관들의 초대를 받았고, 전속 화랑인 아라리오갤러리와는 2005년부터 함께하고 있습니다.
다루기 쉽고 구하기도 용이한 재료를 찾던 작가는 인화지에서 실마리를 발견했고, 그로부터 그의 사진 조각이 출발했다.
인터넷과 잡지 등에서 수집한 사진 이미지를 점토와 청동으로 제작한 미니어처 자동차들은 ‘더 스컬프처’ 시리즈로 불린다.
통칭해서 사진 조각이지만, 25년의 작업을 살펴보면 그 종류가 무척 다양합니다. 제 홈페이지에 ‘작품(Works)’으로 분류해 둔 것만 10개 섹션입니다. 그중 학부 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진 큰 줄기가 데오도란트 타입이에요. 방취제인 데오도란트는 냄새의 근본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다른 향으로 슬쩍 냄새를 가릴 뿐인데, 대상을 포착한 사진 이미지의 조합이 본래 대상과 살짝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는 사진 조각과 그 성질이 유사하죠. ‘더 플랫(The Flat)’ 시리즈는 잡지 광고에서 오려낸 시계, 화장품, 보석 사진을 조각처럼 설치한 후 사진을 찍어 프린트한 겁니다. 입체가 잡지의 평면으로, 다시 조각이 됐다가 사진으로 변화해요. 또 플랫 시리즈가 사진으로부터 튀어나와 입체가 된 ‘뉴 스트럭처’(New Structure)가 있고요, 이것들이 벽에 붙은 ‘릴리프’(Relief) 연작도 있어요. 구조가 아닌 소재로 봤을 때는 사람과 동물의 흉상, 그리고 정물로 나뉩니다. 전체적으로는 조각이라는 형식이 갖는 재현의 의미, 무게•공간•시점•추상에 대한 탐구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조각 작업을 하다 남은 자투리 나무가 아깝다는 생각에 작업실에서 쓸 만한 가구를 만들기 시작한 게 김민기 작가와의 협업 프로젝트였습니다. 2021년부터는 3D로 모델링한 형상 위에 사진들을 붙이는 방식으로 제작한 2D 이미지로 풍선 형태 조각도 시작했어요.
장식장 하나를 꽉 채운 수십 대의 미니카들도 흥미롭습니다. 이건 사진 작업이 아닌 것 같은데요? 점토와 청동 등 전통적 조각 재료를 사용했습니다. 대신 실물을 보지 않은 채 인터넷과 잡지 등에서 수집한 사진 이미지만으로 자동차와 오토바이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더 스컬프처(The Sculpture)’ 연작으로 불러요. 르망 경기에 나오는 자동차들로 시작했고, BMW가 미술가들과 협업한 아트카도 만들었어요. 대략 100대 정도 만들었는데 전시하러 내보낸 것들을 제외하고 남은 게 40대 정도 되네요.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이 소형 자동차는 장대한 자연의 축소판으로 수집하던 수석과 비슷합니다. 실물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지만, 우리는 사진을 통해서 그 이미지를 접하게 되죠.
권오상에게 사진은 무엇이며, 조각이란 무엇인가요? 제가 김세중(金世中)조각상(2013)보다 먼저 받은 상이 사진비평상(Sajin Bipyong Award, 2001)이었습니다. 첫 해외 전시도 일본 미술관의 사진전이었죠. 조각에서 형태를 만들어 내는 거푸집이 아날로그 사진의 네거티브와 개념적으로 흡사합니다. 이 점에서 저는 조각과 사진이 같은 방식이라 생각해요. 게다가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3차원 지도나 증강현실은 우리가 ‘사진이 조각으로 응용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조각 전공자인 저에게 조각이 무엇이냐 질문한다면, 조각가가 만드는 것들이 조각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만드는 조각들이 조각사의 맥락과 닿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여전히 실험을 이어가고 있죠. 잔 로렌초 베르니니 같은 르네상스 조각가를 탐색한 적도 있고, 인상주의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조각 작품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요즘 관심은 사진을 붙일 수 있는 추상 조각으로 옮겨가 헨리 무어에 이르렀습니다. 보통의 조각가들은 인체를 변형할 때 근육이나 뼈의 형태를 바꿔보는데 무어는 좀 엉뚱합니다. 양차 세계대전 때 방공호에 숨어 지내며 어둠 속에서 목탄 드로잉을 하다가 그런 자유로운 형식을 얻었다고 해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고립됐던 저의 경험이 그가 겪은 전쟁과 가족애를 더 이해하게 했고요. 무어의 방식을 인용하며 얻은 자유로움을 아마도 새로운 작업에서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2011 December>. 2012. 라이트젯 프린트, 나무 액자. 217.6 × 172 cm. ‘더 플랫’ 연작은 잡지에서 수집한 동시대적 이미지들을 입체적으로 구축한 후 이를 촬영해 다시 평면의 사진으로 종결시키는 작업이다. ⓒ 아라리오갤러리
조상인(Cho Sang-in, 趙祥仁) 서울경제신문 기자
Interview
2023 SPRING
K-좀비의 탄생에 그가 있었다
4인조 댄스팀 센터피즈(Centipedz)는 한국 최초로 결성된 본브레이킹 크루이다. 팀의 리더이자 영화 안무가인 전영(Jeon Young, 田穎)은 K-좀비의 몸동작을 구상하고 배우들에게 가르치는가 하면 영화에도 여러 차례 직접 출연했다. 댄스라는 장르를 넘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그에게 영화 속 캐릭터들의 몸짓을 탐구하는 즐거움에 대해 들었다.
전영의 활동명은 ‘언데드(Undead)’다. 이 강렬한 이름은 그가 영화 안무가로 참여했던 대표작들을 연상시킨다.< 곡성(The Wailing, 哭聲) > (나홍진 감독, 2016)을 시작으로 안무 지도 작업에 뛰어든 그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좀비 블록버스터< 부산행(Train to Busan, 釜山行) > (연상호 감독, 2016) 속 좀비들의 움직임을 만든 안무가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그는 또 다른 좀비가 등장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Kingdom, 王國) > (김성훈 감독, 2019),< 부산행 > 의 세계관을 이어받은 두 번째 이야기< 반도(Peninsula, 半島) > (연상호 감독, 2020)에 차례로 참여하며 이른바 ‘K-좀비’의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뼈를 꺾는 듯 춤추는 본브레이킹 댄서 전영은 죽지 않는 인간들의 팔다리에 기괴한 안무를 접목해 새 숨을 불어넣는다. 작품의 색깔에 따라 좀비의 스타일도 달라진다.< 부산행 > 의 좀비들이 광견병 환자처럼 날뛴다면,< 킹덤 > 에서는 몽유병 환자같이 움직인다. 그의 활동 반경은 좀비에 머물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에게 어느 날 갑자기 놀라운 능력이 생긴 뒤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염력(Psychokinesis, 念力) > (연상호 감독, 2018)의 초능력자, 인간의 몸에 수감된 외계인 죄수들을 쫓는 과정을 그린< 외계+인 1부(Alienoid) > (최동훈 감독, 2022)의 외계인을 비롯해 스파이 색출 작전이 긴박하게 펼쳐지는< 헌트(Hunt, 狩猎) > (이정재 감독, 2022)에서는 고문 피해자의 동작을 구상하며 한국 장르 영화 곳곳에 자취를 남기는 중이다.
영화 안무가 전영에게는 어떻게 하면 더 기괴해질 수 있는지가 주된 관심사다. 기괴함을 극대화해 영화에 개성적인 색채를 불어넣는 게 그의 역할이다.
그가 디자인하는 좀비는 작품의 성격에 따라 스타일이 달라진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부산행 > 의 좀비들이 집요하면서도 역동적이라면, 사극< 킹덤 > 에 나오는 조선 시대의 가난하고 힘없는 좀비들은 몽유병 환자처럼 정적으로 움직인다.
본브레이킹이라는 춤을 언제 접했나? 미국 브루클린에서 태동한 플렉싱(FlexN)이라는 댄스 장르가 있다. 본브레이킹은 그중 한 요소인데, 기존에 볼 수 없었던 기계적인 움직임에 매력을 느꼈다. 뼈가 뒤틀리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는 타고난 신체 능력이 필요한데, 왠지 선택받은 사람만이 출 수 있는 춤이라는 인상 때문에 더 빠져들었다.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하다 군 전역 후 본격적으로 춤을 시작했다. 춤에 입문한 계기는?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더라. 오히려 춤이나 익스트림 스포츠에 더 흥미를 느꼈다. 그러던 와중에 브레이크 댄서로 프로팀에서 활동하는 후임을 군대에서 만났다. 그 친구와 교류하면서 내가 춤출 때 행복하다는 걸 알게 됐다.
영화 안무 작업 전에는 어떤 활동을 했나? 실용 무용을 전공하기 위해 다시 학교에 들어갔다. 당시 브레이크 댄스에 관심이 많았는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춤을 추면 좋을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학교보다는 오히려 유튜브를 통해 답을 얻었다. 해외 댄서들의 영상을 보면서 본브레이킹도 접했고, 저 새로운 춤이 미래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 시기가< 곡성 >작업에 들어가게 된 때와 맞물린다.
< 곡성 > 에 합류한 스토리가 듣고 싶다. 학교에서 오디션이 열렸다. 다른 학생들은 영화 작업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춤을 통해 무언가 도전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해 참가했다. 오디션에서 브레이크 댄스, 하우스 댄스를 추고 마지막에 요즘 연습하는 새로운 춤이라며 본브레이킹 테크닉을 선보였다. 몸을 꺾어 화살을 맞는 듯한 동작을 선보이자마자 심사를 보던 안무가의 표정이 바뀌었다. 이 영화에서는 캐릭터들이 빙의와 저주에 의해 몸이 뒤틀리는데, 내 춤이 그런 장면을 표현하기에 적절하다고 여기신 것 같다.
장면에 필요한 움직임을 만들어 보는 경험은 무대에서 춤을 추는 것과 어떻게 달랐나? 독특한 장면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지 늘 궁금했는데, 영화 작업을 하면서 그 과정을 체험할 수 있어 즐거웠다. 관객이 이해할 수 있는 동작을 만들기 위해 내가 가진 능력을 갈고닦는 과정 자체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 부산행 > 에서는 좀비 동작을 사실적으로 개발하려고 애썼다고 들었다. 누가 봐도 무용수가 짠 것 같은 리드미컬한 동작으로 크리처들의 움직임을 보여 주는 영화도 많다. 하지만< 부산행 >좀비들의 움직임을 그렇게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박자를 무시하는 동작을 만들었다. 본브레이킹이라는 장르 자체가 아름다움보다 기괴한 표현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이 영화에 잘 어울릴 수 있었다.
그는 팀의 후배 안무가 전한승 (Jeon Han-seung, 田翰昇)과 함께< 방법: 재차의 > 에도 참여했다. 이 영화 속 좀비들은 제식 훈련을 하는 군인들처럼 일사불란하고 절제력 있는 동작을 선보여 매우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전영은 만화나 게임 속 캐릭터에서 주로 영감을 얻는다. 때로는 일상에서도 아이디어를 얻는데, 인형 뽑기 게임에서 착안한 동작을 영화< 염력 > 의 주인공 캐릭터에 적용하기도 했다.
영화 현장에서는 감독뿐 아니라 다른 스태프들과 소통할 일이 많은데, 댄서로 활동할 때와 달리 다양한 분야의 스태프들과 협업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스턴트 액션을 담당하는 무술팀과 협업할 때 고민이 많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며 인간을 덮치는 좀비를 보여 주기 위해서는 무술팀에서 와이어를 사용하는 게 효과적이다. 하지만 바닥에서 구르던 좀비가 기괴한 움직임으로 일어나는 모습은 안무팀이 개발한 동작으로 더 멋있게 표현할 수 있다. 해당 시퀀스에 필요한 표현을 누가 더 효과적으로 창조할 수 있는지 계속해서 조율해야 했다.
평소 만화와 게임 영상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다고 들었다. 어떤 작품들을 참고했나? 처음< 부산행 > 을 작업할 때는 미국의 TV 시리즈< 워킹 데드(The Walking Dead, 行尸走肉) > (2010~2022)와 영화< 월드워Z(World War Z, 僵尸世界大戰) > (2013)의 좋은 장면을 참고해 발전시키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후 일본의 초능력 만화< 모브 사이코 100(Mob Psycho 100, 路人超能100) > (2012~2017)을 보며< 염력 > 의 모티프를 찾았고, 프랑스의 공포 게임< 프레시피스(Précipice) > 에서 오컬트 영화< 방법: 재차의(The Cursed: Dead Man’s Prey, 謗法: 在此矣) > (김용완 감독, 2021) 속 동작들의 힌트를 얻었다. 이 외에도< 다크 소울(Dark Souls) > ,< 세키로: 섀도우 다이 트와이스(Sekiro: Shadows Die Twice) > ,< 다잉 라이트(Dying Light) >같은 게임도 인상적이었다. 게임 캐릭터들의 움직임에서 신선한 아이디어를 얻는다. 하지만 딸이 태어나고부터는 게임을 별로 접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유튜브를 통해 게임 플레이 영상과 게임 VFX, CGI를 설명하는 영상을 보며 영감을 얻는다.
전영은 언젠가 은퇴할 순간을 대비하여 안무를 통해 한국 영화 발전에 일조할 수 있는 역량 있는 후배들을 키우는 데도 관심을 기울인다.
실사(實寫)와 그래픽은 무슨 차이가 있나? 만화와 게임은 영화보다 마니아적이라는 것이 강점이다. 특히 게임은 3D 프로그램을 이용해 사람이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비현실적인 동작을 보여 주는데,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본브레이킹 댄서로서 도전 정신을 느낀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최근 넷플릭스의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피지컬: 100(Physical: 100) > 에 출연했다. 새로운 경험이어서 무척 재미있었다. 지금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 홈(Sweet Home) >시즌 2, 3과 tvN이 올해 방영 예정인 TV 드라마< 구미호뎐1938(Tale of the Nine Tailed 1938) > 을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영화 안무가로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로 설명만 하는 안무가는 진정한 안무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감독이 상상하는 동작을 내 몸으로 직접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나도 언젠가는 은퇴를 할 수밖에 없을 텐데, 현재 본브레이킹을 활용해 영화에 아이디어를 줄 수 있는 인력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내 뒤를 이을 후배들을 육성하는 일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남선우(Nam Sun-woo 南璇佑)『씨네21』 기자 허동욱(Heo Dong-wuk 許東旭) 사진가
Interview
2022 WINTER
사랑하면 아이디어가 나온다
고선웅(Koh Sun-woong, 高宣雄)은 희곡을 쓰고 각색하는 극작가이자 대본에 숨결을 불어넣는 연출가다. 연극에서 출발해 창극(唱劇)과 뮤지컬, 오페라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선보여 왔다. 관객의 호응과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받으며 흥행성과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은 흔치 않은 연출가이다. 전방위 예술가로 통하는 그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내에 있는 ‘극장 용(YONG 龍)’에서 만났다.
연극계의 블루칩’으로 통하는 고선웅은 수많은 희곡상과 연출상을 휩쓴 중견 연출가이다. 연극뿐 아니라 뮤지컬과 오페라, 창극 등 장르를 넘나들며 전방위로 활동 중이다. 최근 서울시극단 단장에 선임된 그는 동시대의 이야기가 담긴 창작극을 꾸준히 선보이는 것이 목표다.
고선웅은 연출을 “바닥에 누워 있는 텍스트를 일으켜 세우는 작업”이라고 정의한다. 허구의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도, 그것을 무대에 올려 감동과 재미를 만들어 내는 것도 그에겐 모두 재미있어서 하는 일이다. ‘재미’야말로 그의 작품들에 일관되게 흐르는 핵심 요소다. 그런데 그 재미는 그냥 웃기기만 하는 게 아니라 뭔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그에게 희극적 장치는 비극에 더 깊이 닿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 시절 동아리에서 연극과 첫 인연을 맺었다. 1999년에는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가 당선됐다. 이후 수많은 작품을 쓰고 각색하고 연출했다. 그가 손을 댄 작품마다 반응이 좋아 ‘연극계의 블루칩’으로 주목받았고, 수많은 희곡상과 연출상을 휩쓸었다.
2018년 평창 동계패럴림픽 개‧폐막식 총연출, 5‧18민주화운동 40돌 기념 창작 뮤지컬
,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묵직한 오페라 <1945>의 연출도 맡았다. 가장 최근의 작품은 지난 10월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무대에 올린 주크박스 뮤지컬
이다. 2021년 경기도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한국 근현대사 100년을 그 시기 동안 히트했던 대중가요들로 꾸며 큰 화제를 낳았다. 이 다재다능한 예술가는 마침내 영화에도 관심을 보인다. 언젠가 ‘감독‧각본 고선웅’이란 타이틀이 붙은 영화를 볼 수 있는 날이 올 것 같다.
선한 의지가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일하는 방식도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 위의 독재자와는 거리가 멀다. 배우는 물론 연극계의 여러 종사자들과 두루 원만하게 소통한다. 쉴 새 없이 작품에 매진해 온 그에게 지난 9월, 임기 3년의 서울시극단 단장 직책이 주어졌다.
연출가로서 가장 중점을 두는 요소는 뭔가? 관객의 눈높이에 맞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 관객 지향적인 작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미학과 예술성도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관객들이 힘들어하고 외면하면 무슨 소용이겠나. 작품으로서 존재할 이유가 없는 거다. 나는 관객들이 극장에 와서 작품을 봐야만 비로소 공연이 완성된다고 본다. 재미와 예술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작가, 배우, 스태프들과 수없이 의논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2021년 11월, 경기도에 위치한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초연한 주크박스 뮤지컬 < 백만 송이의 사랑 >. 지난 100여 년간 히트한 대중가요들을 토대로 만든 이 작품은 각 시대를 상징하는 근현대사의 주요 장면들이 펼쳐진다. ⓒ 극공작소 마방진(Playfactory Mabangz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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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어 올해는 중국 고전을 원작으로 삼은 세 번째 연극
를 무대에 올렸다. 중국 고전에 관심을 갖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중국 작품이라서가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어서다. 이 고전들은 이야기가 단순 명료하다.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들이 연극이라는 장르와 잘 어울린다. 중국 고전에는 ‘죽은 사람 퇴장’ 같은 지문도 나온다. 그런데 죽은 사람이 어떻게 퇴장을 하나. 하지만 그냥 그렇게 한다. 연극의 형식에 충실한 거다. 또한 주제나 소재가 요즘 시대와 딱 들어맞는 작품들이 많아서 현재를 되돌아보게 한다.
최근 재연(再演)한 뮤지컬
은 어떤 내용인가?
거대한 역사적 사건 속에는 위인과 영웅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민초들의 삶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시대의 격랑에 휩쓸리면서 겪었던 사랑과 이별, 아픔을 노래한 대중가요들이 있다. 과거 100년 동안의 대중가요들을 연결해서 쭉 듣다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100년을 살아왔구나 하는 걸 이해하게 된다.
중국 고전
를 동시대적 감성으로 각색하여 무대에 올린
은 2015년 11월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초연되었고, 그해 최고의 연극으로 꼽혔다. 이듬해 중국 북경의 국가화극원(國家話劇院) 대극장 공연에서도 현지 관객들에게 기립 박수를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 국립극단
다양한 장르를 오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뭔가? 장르는 다르지만 본질은 똑같다. 연극에서도 제스처를 쓰는데, 이게 무용에 가깝다. 대사도 말을 하다가 극단으로 가면 노래가 된다. 장르를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무척 재미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텍스트를 보면 이건 연극이 좋겠다, 또 저건 뮤지컬로 만들면 재미있겠다 하는 느낌이 온다. 연출가로서 한 가지 형식만 고수하는 것보다 여러 장르를 경험하는 게 훨씬 재미가 있다. 그리고 작품이라는 게 인연이 있다. 아무리 하고 싶어도 인연이 없으면 결국 못 하게 되더라.
서울시극단 단장을 맡았는데, 중점을 두는 게 뭔가? 대중성과 오락성은 중요한 요소다. 공공 극단인 만큼 다수가 공감하고 납득할 수 있는 보편적 이야기를 다루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잘 만들어진 작품을 내놓아야 한다. 수준 있는 미학을 선보여야 한다는 얘기다. 내가 욕심이 좀 많다.
서울시극단에서는 어떤 작품을 얼마나 올릴 계획인가? 우선 매력적인 서양 고전 작품을 하려고 한다. 19세기나 20세기 초반 작품들을 검토하고 있다. 준비를 잘해서 내후년쯤엔 동시대성을 지닌 창작극을 만들 계획이다. 서울시극단이니까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담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내가 직접 대본을 쓰기보다 작가를 섭외하거나 공모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임기 3년 동안은 연극에 주력할 생각이다. 1년에 5편 정도 제작하려고 한다. 적지 않은 숫자다. 예전 작품들 중에서 좋았던 것을 다시 올릴 계획도 있다.
은 억울하게 멸족당한 조씨 가문의 마지막 핏줄이 성장하여 복수를 벌이는 이야기이다. ‘국립극단에서 가장 보고 싶은 연극 1위’에 꼽힌 이 작품은 관객들의 끊임없는 재공연 요청으로 2021년 4월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다시 올려졌다.
ⓒ 국립극단
어떤 방식으로 연출 아이디어를 얻나? 존경하는 화가 박방영(Park Bang-young, 朴芳永)선생님이 2002년에 ‘사랑하면 알게 되고’란 서예 작품을 내게 주셨다. 처음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3년이 지나서 깨닫게 됐다. 그 뒤로 내 삶이 변하기 시작했다. 알아야 사랑하게 되는 게 아니라, 사랑하면 알게 된다. 납득이 돼야 사랑한다는 건 틀린 얘기다. 사랑하면 굳이 납득시키고, 이해시킬 필요가 없으니 일에서도 진도가 빠르고 갈등이 줄어든다.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 건 사랑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한다. 작품을 더 사랑하면 이상하게 아이디어가 나온다. 매사에 이 원칙을 적용하려 노력하는데, 이렇게 하다 보니 배우들이나 스태프들하고도 사이가 좋아지더라. 작품을 할 때마다 이 말을 생각하는데, 그러면 크게 힘 안 들이고 편안하게 작품을 할 수 있었다.
‘사랑’이란 단어가 고선웅의 연극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키워드인가? 내 연극은 다 그렇게 해서 나왔다. 사랑해서 나온 작품들이다. 연출하면서 작품을 연구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런데 나는 그 작품을 사랑하니까 그렇게 오래 연구할 필요가 없다. 사랑하니까 이미 아는 거다. 복잡할 게 없다. 물론 이걸 종종 잊어서 어떤 때는 스트레스도 받고 어떤 일에는 분노하기도 한다. 그래도 자꾸 이 말을 떠올리다 보면 자제하고 절제하게 된다.
창작 뮤지컬
은 올해 10월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재연됐다. 사진은 9월 말 막바지 연습에 한창인 고선웅 연출가의 모습이다. 그는 묵직한 서사를 재치 있고 능란하게 구현하는 연출가로 평가된다.
연극이 점점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은 참 좋은 것이다. 연극은 계속돼야 한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기계의 부속품처럼 되고 더욱 고독해질 거다. 그럴수록 실시간으로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연극은 인간이 존엄한 존재라는 걸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도 있나? 나중에 영화를 한번 해 보고 싶다. 연극과 영화는 조금 다르다. 연극은 관객들과 같이 호흡하며 늙어가는 일을 날마다 반복하는 거고, 영화는 한 번 잘하면 된다. 영화는 자연스러워야 하고, 연극은 자연스러움 이상의 무엇을 보여 줘야 한다. 먼저 시나리오를 써야 영화를 만들 수 있을 텐데, 영화도 나와 인연이 돼야 만들 수 있는 거다. 아직 시나리오를 쓰지는 않았고, 준비는 해 보려고 한다.
임석규(Lim Suk-kyoo 林錫圭)한겨레신문 기자 허동욱(Heo Dong-wuk 許東旭) 사진가
Interview
2022 AUTUMN
영화의 순간들을 포착하다
많은 사람들이 협력하는 영화 촬영 현장에서 스틸 사진가는 모든 작업을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외롭기는 하지만, 성취감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30년 가까이 현장을 누빈 이재혁(Lee Jae-hyuk 李宰赫) 스틸 사진가를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재혁(Lee Jae-hyuk 李宰赫) 스틸 사진가는 국내외 내로라하는 감독들의 영화 촬영 현장에서 영화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스틸 사진 작업을 30년 가까이 해 왔다. 얼마 전에는 박찬욱(Park Chan-wook 朴贊郁) 감독의
스틸 사진을 모은 사진집 『아가씨의 순간들(The Moments: The Handmaiden)』을 펴냈다.
단 16분 만에 1억 원이 모였다. 박찬욱(Park Chan-wook 朴贊郁) 감독의 영화
(2016)의 스틸 사진을 모은 사진집 『아가씨의 순간들(The Moments: Handmaiden)』 한정판 출간을 위한 펀딩 이야기다. 올해 봄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tumblbug)에서 성공리에 자금을 모은 이 책은 총 520쪽의 방대한 분량에 가격 또한 만만치 않지만, 출간 소식과 동시에 독자들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영화 촬영 현장을 담은 400여 장의 사진과 촬영 현장의 비하인드 에피소드를 기록한 꼼꼼한 문장들로 채워져 있다. 이 사진집의 저자는 스틸 사진가 이재혁이다.
그는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영화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스틸 사진 작업을 해 오고 있다. 특유의 미술적 감각과 집요함으로 영화의 순간들을 포착해 온 그는 명감독들이 신뢰하는 작가다. 필모그래피를 훑는 것만으로도 근 20년 동안 한국 영화의 대표작으로 손꼽힌 작품들을 확인할 수 있다. 봉준호(Bong Joon-ho 奉俊昊) 감독의 < 기생충(Parasite) > (2019), 한재림(Han Jae-rim 韓在林) 감독의 < 관상(The Face Reader) > (2013), 김지운(Kim Jee-woon 金知雲) 감독의 < 악마를 보았다(I Saw the Devil) > (2010)를 비롯해 최동훈(Choi Dong-hoon 崔東勳) 감독의 < 타짜(Tazza: The High Rollers) > (2006) 촬영 현장에도 그가 있었다.
봉준호(Bong Joon-ho 奉俊昊) 감독의
촬영 현장을 담은 스틸 사진. 이 영화는 < 설국열차(Snowpiercer) > , < 옥자(Okja) > 에 이어 봉 감독과 함께한 세 번째 작업이다.
ⓒ 이재혁
영화 스틸 사진가는 어떤 직업인가? 영화 촬영 현장에서 사진을 찍는 스태프이다. 과거에는 영화사 직원들이 영화가 완성되기 전에 스틸만으로 극장에 영업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개봉 전 마케팅, 해외 필름 마켓에서 스틸로 작품을 홍보한다. 스틸 작가는 영화의 포장지와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재혁은 자신의 스틸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는데, 주로 미술 전시회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말한다.
어떤 계기로 스틸 사진가가 됐나? 형이 먼저 영화 일을 시작했다. 이후 아버지께서 형에게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해 보면 어떻겠냐고 권하셔서 사진을 배웠다. 형의 영화 현장에서 스틸을 찍는 것으로 이 일을 시작했는데, 내게 잘 맞았다. 상황에 맞게 순간적 판단을 내리는 게 재밌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스틸 사진가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현장 시스템을 잘 파악해야 한다. 스틸 작가는 감독이나 다른 스태프들과 달리 스틸의 사전 작업, 촬영, 후반 작업을 혼자 해내기 때문이다. 나는 스틸이 일반적인 사진이 아니라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길 원하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늘 연구한다. < 기생충 >촬영 현장에서 최우식(Choi Woo-shik 崔宇植) 배우가 내 사진을 보고, “영화처럼 보인다”고 말해 줘서 기뻤던 기억이 난다.
촬영 현장에 들어가기 전 어떤 준비를 하는가?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나서 받는 느낌에 집중한다. 그 느낌에 따라 영화에 맞는 색감이 무엇일지 고민한다. 다양한 미술 전시회에 다니며 아이디어를 얻는 편인데, 컴퓨터나 모바일로 그림을 보는 것보다 실제 전시장에서 접해야 색감을 더 풍부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촬영 전에는 파리에서 피카소 그림을 본 것이 큰 도움이 됐다.
CG나 VFX 기술이 많이 쓰인 작품들은 스틸을 찍기 까다롭지 않나? 아무래도 그런 현장에는 블루 스크린, 그린 스크린이 많다. 그것들이 프레임에 걸리지 않도록 찍어야 한다. 앵글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만, 영화적인 느낌을 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예를 들어 최동훈 감독의 < 외계+인(Alienoid) > (2022) 시나리오에서는 옛날 무협 영화 냄새를 맡았다. 스틸 사진에서도 그런 복고적인 느낌이 났으면 했다. 박찬욱 감독이 아이폰으로 찍은 단편 영화 < 일장춘몽(Life Is But a Dream) > (2022)도 작업했는데, 그 작품에서는 클라이맥스 장면에 LED 월이 쓰이기도 했다. 감독님이 아이폰으로 영화를 찍었듯 나 또한 아이폰으로 스틸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기에 제약을 느끼는 동시에 흥미롭게 임했다.
외국 영화 현장에도 참여했는데 어떤 경험을 했나? < 이퀄스(Equals) > (2015), <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Avengers: Age of Ultron) > (2015), < 엔딩스, 비기닝스(Endings, Beginnings) > (2019) 등에 참여했다. 언어나 로케이션도 새로웠지만, 할리우드의 스틸 작가들을 보며 많은 걸 느꼈다. 감독이나 헤드 스태프가 되어 제작 현장을 지휘하는 자리를 최종 목표로 하는 영화인들이 대부분인 데 반해 할리우드에는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같은 역할을 하되 영화의 규모만 키워서 숙련도를 높이는 식이다. 좀 더 장인 정신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 엔딩스, 비기닝스 > 를 작업할 때는 < 귀여운 여인(Pretty Woman) > (1990)의 스틸을 찍은 70대 사진가도 만났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데도 현장에서 열정이 넘쳤다. 나도 나중에 저렇게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진집 < 아가씨의 순간들 > 은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언젠가 촬영 현장에서 슬펐던 적이 있다. 감독, 배우, 스태프들이 모두 모여 단체 사진을 찍는데, 나는 카메라를 들어야 했기에 정작 사진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또한 스틸 작가가 찍은 수많은 사진 중 극히 일부만 공개되고 나머지는 모두 사라진다는 점도 나를 슬프게 한다. 그런데 사진집이 나오니 그런 슬픔이 다 해소되는 기분이다. 이렇게나마 내 인생의 한 궤적을 다른 분들과 공유하는 것이지 않나. 영화 스틸을 담은 사진집이 나온 사례가 많지 않은데, 박찬욱 감독에게 큰 선물을 받은 셈이다. 사진집의 품질을 높이려다 보니 제작비가 꽤 들었는데,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셔서 다행이었다. 서촌 미뗌바우하우스(Mit Dem Bauhaus)에서 사진전도 열었다. 책과 전시로 작업물을 보여 줄 기회가 많지 않은 스틸 작가로서 뜻깊은 시간이었다.
최동훈(Choi Dong-hoon 崔東勳) 감독의 2022년 개봉작
촬영 현장에서 배우 류준열(Ryu Jun-yeol 柳俊烈)이 액션 연기를 펼쳐 보이는 장면이다. 이재혁은 스틸에 옛날 무협 영화에서 느껴지는 복고적인 색채를 가미했다.
ⓒ 이재혁
작업 외의 시간은 어떻게 보내는 편인가? 원래 여행을 많이 다니는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국내에서 캠핑 위주로 여행하고 있다. 전시회를 다니거나 그동안 못 봤던 영화를 몰아 보기도 한다. 특히 자연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사진은 SNS용 음식 사진 외에는 잘 안 찍는다. 현장 밖에서 사진을 덜 찍어야 현장에서 열정이 쏟아져 나온다고 믿어서다. 체력이나 집중력이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에너지를 비축해 두려고 한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지금은 한재림 감독이 연출하는 OTT 시리즈 < 머니게임(Money Game) > 의 스틸을 찍고 있다. 웹툰 원작으로 극한의 상황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협력과 반목을 거듭하는 이야기다. 나는 항상 이 작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사진을 찍는다. 현장에서 촬영을 하다 보면 다치기도 하는데, 장훈(Jang Hun 張薰) 감독의 < 고지전(The Front Line) > (2011) 때는 무릎 수술도 했다. 이제 노안도 왔다. 과연 이 일을 얼마나 더 오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늘 마지막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현장에서 힘을 쏟고 싶다. 이제 해외에서도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이 큰데, 내가 찍은 스틸이 외국 관객들에게 한국 문화의 매력을 기대하게 만들 수 있었으면 한다.
남선우(Nam Sun-woo 南璇佑) 『씨네21』 기자 허동욱(Heo Dong-wuk 許東旭) 사진가
Interview
2022 SUMMER
기발하고 유쾌하면서도 진중한 시선
2003년 등단한 소설가 윤고은(Yun Ko-eun 尹高恩)은 지금까지 네 권의 소설집과 네 권의 장편 소설을 펴냈다. 독특하고 참신한 발상, 은유와 알레고리를 통한 통찰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같은 평가에 부응하듯 지난해에는 영국 추리작가협회가 주관하는 대거상 번역 추리 소설 부문에서 수상했다. 라디오 DJ로도 살고 있는 그를 방송국 스튜디오가 있는 경기도 일산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윤고은(Yun Ko-eun)의 두 번째 장편 소설 『밤의 여행자들(The Disaster Tourist)』은 자본주의 사회를 풍자한 작품으로, 지난해 영국 추리작가협회(The Crime Writers’ Association)가 주관하는 대거상(The CWA Dagger) 번역 추리 소설 부문에서 수상했다. 윤고은 제공
윤고은의 두 번째 장편 소설 『밤의 여행자들(The Disaster Tourist)』은 재난으로 폐허가 된 지역을 관광하며 자신의 안전을 확인하는 사람들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냉정한 시스템을 풍자한 작품이다. 2013년 출판된 이 소설이 지난해 영국 추리작가협회(The Crime Writers’ Association)가 주관하는 대거상(The CWA Dagger) 번역 추리 소설 부문에서 수상했다. 아시아 작가로 이 상을 받은 사람은 윤 작가가 처음이다. 영국 추리작가협회는“한국에서 온 매우 흥미로운 에코 스릴러로, 비대해진 자본주의의 위험을 신랄한 유머로 고발하는 작품(A wildly entertaining eco-thriller from South Korea that lays bare, with mordant humour, the perils of overdeveloped capitalism.)”이라고 평가했다. 1980년생인 윤고은은 동국대학교 재학 시절인 2003년, 대산문화재단이 대학생들에게 수여하는 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이후 첫 번째 장편 『무중력증후군』(2008)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펼쳐 왔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재기발랄한 설정과 흥미로운 인물들을 내세워 자본주의 사회의 불안한 일상을 예리하게 풍자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의 한가운데에서 재난 여행이라는 소재로 상을 받았다.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었나? 약 10년 전 이 소설을 쓸 때는 이렇게 전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돌고 백신을 맞는 사태가 일어날 거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그 당시 다크 투어리즘에 관심이 있었는데, 전 세계적으로 자연재해가 없고 테러나 분쟁 지역이 아닌 곳이 드물었다. 대부분 어떤 종류든지 재난을 제각각 안고 있었다.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할 무렵에는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나 쓰나미가 덮치는 것을 보면서 ‘재난’이 자꾸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재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정리해 이야기의 실마리를 찾았다. 충격에서 동정과 연민 혹은 불편함으로, 그리고 내 삶에 대한 감사, 책임감과 교훈 혹은 이런 상황에서도 살아남았다는 우월감이 그것이다.
재난 여행 자체가 자본주의 질서이자 법칙을 드러내는 한 편의 시나리오라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나? 그렇다. 내가 써 온 소설들은 데뷔작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부품으로 전락한 것 같다는 인식이 늘 따라다녔다. 내가 중요한 사람인 것 같지만 실상은 없어져도 상관없는 존재, 마치 칫솔이나 텀블러처럼 교체될 수도 있는 존재라는 측면은 분명히 자본주의 세계의 속성이다.
해외에서 이 소설을 ‘페미니즘 에코 스릴러’로 평가하고 분류한 것에 대해 어찌 생각하나? 재미있었다. 나는 원래 순수 문학이니 장르 문학이니 하는 구분을 좋아하지도 않고 그런 용어를 잘 쓰지도 않는다. 그런 분류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장르를 의식하고 쓰지도 않거니와 작품을 발표하고 난 뒤 뭐라고 분류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작품의 어떤 측면이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 냈다고 보는가? 독자분들이 소설에서 자본주의의 잔혹한 뼈대, 어떤 분들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과도 비슷한 맥락을 느낀 것 같다.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할 뿐인데도 파국을 막을 수 없다는 공포감이 가장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두려움은 소설을 썼던 10년 전보다 지금 훨씬 더 커졌을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을 망라해 한국에서 생산된 콘텐츠들의 서사에서 공통점을 찾는다면 무엇일까? 키워드는 ‘생존’인 것 같다. 지금 각자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우선순위의 가치들보다 이 사회에서 누락되거나 고립되지 않고 제 역할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느냐에 대한 강박감이 더 큰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나 아카데미상을 받은
과 내 작품을 함께 블랙코미디 스타일로 언급하는 것 같다.
2021년 발표한 장편소설 『도서관 런웨이』(왼쪽)와 2019년 발간된 네 번째 소설집 『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 ⓒ 현대문학, 문학동네
지난해에 펴낸 장편 『도서관 런웨이』는 도서관 서가 사이를 산책하듯 걷다가 남녀가 만나는 장면을 설정했다. 도서관을 배경으로 설정하게 된 이유는? 도서관에서 가서 서가 사이를 걸어갈 때 기분이 아주 좋다. 수많은 책들이 런웨이를 걷는 나를 지켜보는 느낌이다. 그 책들은 접혀 있을 때는 부피가 작지만 펼치면 수많은 생각들이 담겨 있다. 그것들이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내가 썩 괜찮은 모델이 된 듯하다.
이 작품은 ‘안심 결혼 보험’이라는 아이디어를 동원해 이 시대 결혼의 조건을 탐색한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각자 생존할 수 있는 두 사람이 굳이 함께 살면서 같이 가기로 하는 행위의 핵심은 무엇인지 짚어 보았다. 결혼을 통해서 사회를 지탱한다는 이야기는 너무 거창한 거고, 결혼의 핵심은 두 사람이 모험을 함께해 보기로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알아서 그 ‘모험’의 조건에 무엇을 넣을 것인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분위기가 돼야 된다.
당신의 소설들은 기발한 상상력이 뒷받침되는 점이 특징이다. 흥미로운 설정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 건가? ‘불안한 구조’인 것 같다. 불안한 우리 발밑을 들여다보는 거다. 호기심을 부르는 기발한 요소들은 내가 재밌어 하는 것이긴 하지만, 사실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그렇게 화사하고 재밌는 게 아니다. 지금 땅이 단단하게 우리를 받쳐 주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언제든 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게 나의 한쪽 세계이다. 이 생각을 진지한 톤으로 얘기할 수도 있지만, 이왕이면 내 스타일을 입히는 거다.
최근에는 여러 작가들과 공동으로 여행을 테마로 한 소설집도 출간했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가? 짧더라도 자주 다니는 편이다. 여행 자체도 좋지만 계획하는 것도 좋아한다. 특히 숙소를 고를 때 제일 좋다. 인터넷 사이트를 너무 많이 검색해 봐서 실제로 어느 장소에서 호텔들을 둘러보면 그 안의 구조가 눈에 선하게 그려질 정도다. 단편 「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에도 숙소를 예약하는 해프닝이 나온다.
여행이 소설에 영향을 미치는가? 영향을 많이 준다. 꼭 해외 여행이 아니더라도 국내 여행이나 하다못해 옆 동네에만 가도 보이는 게 있다. 늘 보던 횡단보도랑 간판이 아닌, 무언가 새로 보는 게 있다는 것 자체가 다 자극이다. 아무래도 여행지가 멀면 멀수록 더 낯설고 위험해지니 자극에 노출될 기회가 많아진다.
EBS 채널에서 라디오 DJ로 매일 생방송을 하고 있다. 소설 쓰기에 도움을 주는가?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어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접할 수 있어 좋다. 내 취향을 넘어 폭넓게 접하다 보니 의도하지 않은 자극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여행과도 닮았다. 청취자들과는 실시간 댓글을 통해 소통한다. 라디오 스튜디오가 우주 정거장 같은 느낌도 있다. 이중문을 닫고 그 안에 혼자 있으면, 음악이 흘러가고 라디오 전파는 우주를 떠도는 느낌이다.
지금 어떤 소설을 쓰고 있는가? 『불타는 작품』이라는 소설을 한 잡지에 연재하는 중이다. 화가인 주인공이 ‘로버트’라는 강아지가 이사장인 재단의 창작 지원을 받는 이야기다. 로버트는 엄청난 예술성을 가진 천재견이어서 백만장자의 유산까지 상속받았다. 그 개가 인간들의 허울을 비판하면서 진짜와 가짜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 개가 갑이고 사람이 을인 계약을 설정해 예술을 둘러싼 관념과 구조를 풍자하고 싶었다. 내년 상반기에 출간할 예정이다.
글로벌 독자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은? 인스타그램 같은 공간에 리뷰를 올려 주거나 해시태그로 나를 선택하기도 하고, 직접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 동네 서점에 꽂혀 있는 책을 찍어서 사진을 보내 주기도 한다. 이렇게 직접 소통하는 게 무척 좋다. 자주 말을 걸어 주시면 좋겠다.
Interview
2022 SPRING
서사를 확장시키는 프로덕션 디자인
지난해 세계적 화제를 모았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은 생존 경쟁의 잔혹한 처절함이 동화 같은 비주얼을 배경으로 부각되어 시선을 끌었다. 이 독특한 공간 디자인을 만들어 낸 채경선(Chae Kyoung-sun 蔡炅宣) 미술 감독을 그의 다음 작품 촬영지인 경기도 고양시 아쿠아특수촬영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올 1월
의 극 중 1번 참가자, 일명 ‘깐부’를 연기한 배우 오영수(O Yeong-su 吳永洙)가 제79회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 시리즈는 작년 9월 개봉된 후 총 1억 4천 2백만 가구가 시청하며 연 46일 동안 넷플릭스 시청률 1위를 차지했고, 미국배우조합상(SAG)과 미국제작자조합상(PGA)의 주요 부문에도 후보로 올랐다. 이 드라마가 세계적 인기를 모은 비결에 대해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초현실적 느낌의 스펙터클한 프로덕션 디자인이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공간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게 관건인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이 작품 속 공간은 현실과 판타지가 혼재된 구성이 강렬한 색조로 구현되어 있다. 그것이 캐릭터나 서사와 이질감 없이 조화를 이루며 극적 효과를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다.
이 시리즈의 채경선 미술 감독은 상명대 연극영화과에서 무대 미술을 전공한 뒤 2010년 다섯 커플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김종관(Kim Jong-kwan 金宗寬) 감독의 영화
로 데뷔했다. 다음 해
를 시작으로
(2014)와
(2017)에서 황동혁(Hwang Dong-hyuk 黄東赫) 감독과 미술 감독으로 협업을 계속했고, 은 그와의 첫 드라마 시리즈 작품이었다. 그 밖에 (장준환(Jang Joon-hwan 張駿桓) 감독, 2013), (이원석(Lee Won-suk 李元錫) 감독, 2014), (이상근(Lee Sang-geun 李相槿) 감독, 2019) 등 여러 영화에 미술 감독으로 참여했다. 이처럼 소재도, 장르도, 호흡을 맞춘 감독도 제각각이지만 그의 작업이 이야기에 적합한 공간을 만들어 내 서사를 확장시켰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채경선(Chae Kyoung-sun 蔡炅宣) 미술 감독이 차기작인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의 세트가 지어지고 있는 경기도 고양시 아쿠아특수촬영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의 미술 감독으로 시선을 끌었던 그는 넉넉한 재정 지원과 감독으로부터 부여받은 자유재량으로 작업할 수 있었던 것이 큰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은 사실적인 공간을 구현해 왔던 황동혁 감독의 전작들과 큰 차이가 있다. 당신에게도 매우 도전적인 작업이었을 것 같다.
현실적인 공간이 아니어서 프로덕션 디자인에 대한 관객의 호불호가 크게 갈릴 거라고 예상했다. 부정적인 의견도 많을 듯해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 반응을 보여 줬다. 미술 감독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세트 제작비를 넉넉하게 지원받은 덕분에 머릿속에서 구상했던 그림들을 표현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을 만난 것 자체가 큰 행운이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 시나리오를 받기 전, 황 감독으로부터 큰 줄기에 대해 미리 들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놀았던 놀이들을 활용해 생존 게임이 벌어지는 이야기를 연출하려고 하는데, 새로운 비주얼을 시도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네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이처럼 내용을 대강 알고 있었지만, 막상 시나리오를 읽어 보니 막막했다. 이런저런 구상을 하다가 이전까지 전혀 볼 수 없었던 디자인을 해야겠다는 승부욕이 생겨났다. 중년 세대들이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을 배경으로 잔혹 동화 한 편을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다.
황 감독과 동의한 프로덕션 디자인의 전체 콘셉트는 무엇이었나?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세상을 너무 어둡게 그리지 말자. 둘째, 게임이 진행될 때마다 각 게임의 배경이 되는 공간에 고유한 성격을 부여하자. 이건 게임 참가자들이 각 공간에서 어떤 게임이 펼쳐질지 몰라 느끼는 혼란과 공포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매우 중요했다. 또한 시청자들도 다음 번에는 어떤 장소에서 어떤 게임이 진행되는지 궁금해하길 바랐다. 마지막으로 색깔을 과감하게 쓰자고 했다. 한국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에 비하면 색감 활용이 보수적이다. 우리는 그런 제한에서 벗어나 컬러를 과감하게 쓰고 싶었다. 하기는 최근 한국 영화도 SF 같은 새로운 장르를 다루면서 색감을 활용하는 폭이 전보다 넓어지고 있는 추세이기는 하다.
컬러를 선택한 기준은 무엇이었나? 처음에는 주요 컬러로 민트와 핑크 두 가지를 고려했다. 이 두 가지는 1970~80년대를 상징하는 레트로 컬러이다. 이 의견에 대해 조상경(Cho Sang-kyung 趙常景) 의상 감독이 “게임 참가자들을 감시하는 무리들을 과감하게 핑크로 설정하자”고 말했다. 게임 참가자들이 입는 체육복은 채도를 높여서 짙은 녹색으로 가기로 했다. 이 시리즈에서는 핑크색이 억압과 폭력을, 초록은 핍박과 루저를 상징한다. 그래서 게임 참가자들이 핑크빛 천장과 벽으로 둘러싸인 구조물 안을 이동하도록 설정하고, 감시자들이 숙소로 돌아가는 공간은 초록색으로 표현했다. 색을 통해 이야기의 세계관과 규칙을 정한 것이다.
에서 참가자들이 미로 같은 계단을 거쳐 숙소로 돌아가는 장면이다. 잔인한 생존 경쟁과 대비되는 파스텔 컬러의 동화적인 비주얼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상징한다. 이 프로덕션 디자인은 네덜란드의 판화가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의 작품들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넷플릭스
첫 번째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공간은 어린 시절 놀던 학교 운동장을 모티브로 설계했다고 들었다. 이 게임의 콘셉트는 ‘진짜와 가짜’다. 첫 게임이 벌어지는 공간의 푸른 하늘과 영희 인형 뒤편의 벽은 가짜지만, 게임을 통과하지 못하면 진짜로 죽는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야기 속 게임 참가자들도, 시청자들도 혼돈을 일으킬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했다. 진행 요원들이 게임 참가자를 감시하는 설정은 영화
(1998)에서 영향을 받았다.
영희 인형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특수 분장팀 제페토(Geppetto)가 인형을 제작했다. 높이가 10m에 달해 상반신과 하반신을 따로 분리해 옮겼다. 황 감독은 원래 영희 인형을 10개나 만들어 줄 것을 미술팀에 주문했지만 그렇게까지 작업할 예산이 없었다. 또한 시나리오에선 영희 인형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등장하는 설정이었는데 도중에 바뀌었다.
드라마에서 첫 게임이 벌어지는 운동장은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모티브를 얻어, 진짜와 가짜가 뒤섞여 혼돈을 일으키는 공간으로 제시되었다.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10m 높이의 영희 인형은 특수 분장팀 제페토(Geppetto)가 제작했다. ⓒ 넷플릭스
드라마에서 중요하게 사용된 초록과 핑크색은 각각 핍박과 루저, 억압과 폭력을 상징한다. ⓒ 넷플릭스
구슬치기 게임이 벌어지는 골목길 풍경에 공을 많이 들였다고 들었다. 골목길은 가장 많이 공들인 공간 중 하나다. 이곳 또한 진짜와 가짜가 공존한다. 황 감독이 이 장면에서 주문한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석양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자신이 어린 시절, 저녁 내내 골목에서 뛰어놀다가 어머니가 이름을 불러 달려가면 집에서 밥 냄새가 났던 기억을 들려주며 ‘밥 냄새까지 느껴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오일남 할아버지의 집을 제외한 나머지 집들은 대문만 있는 것으로 설계했다. 문은 많지만 문 안으로 들어가면 ‘네 집이 아니니 들어갈 수 없다’는 상징성을 공간에 부여하고 싶었다. 대문은 문패, 연탄재, 화분 같은 여러 소품을 통해 진짜처럼 보여주되 패턴화해 표현했다. 즉, 구슬치기에서 지는 사람 쪽에 있는 공간에는 연탄재를 두었고, 산 사람 쪽에는 화분을 배치했다.
이전의 과거 얘기도 해 보자. 데뷔 이후 여러 명의 감독들과 다양한 성격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프로덕션 디자인을 통해 서사에 정서를 불어넣는다는 공통점이 보인다.
매 작품마다 각기 다른 접근을 해 왔다. 기본적으로 영화 미술은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와 캐릭터를 더 풍부하게 표현하도록 하는 영역이다. 미술이 혼자서 튀면 안 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시나리오를 감독보다도 더 치밀하게, 잘 분석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한다.
은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실제 역사를 재구성한 이야기인 만큼 고증이 관건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역사를 다룬 사극 중에서 고증을 가장 철저하게 한 작품으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에 사활을 걸고 작업했다. 눈과 추위, 그리고 적군에게 포위되어 고립된 성을 처절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그보다 먼저 제작된 이원석 감독의 영화
도 사극이었는데. 이 영화에 참여했던 경험이
작업을 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나?
왕실의 옷을 짓는 상의원이 이야기의 주요 무대라서 이 공간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풀어갈까, 공간을 통해 인물을 어떻게 드러낼까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흥행이 저조해서 아쉽다.
황동혁(Hwang Dong-hyuk 黄東赫) 감독의
(2017)은 1636년 청나라의 침입으로 남한산성에 피신한 임금과 신하들이 겪은 47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채경선 미술 감독은 철저한 고증을 통해 눈과 추위, 적군에게 포위된 당시 상황을 실감 나게 전달했다.
ⓒ CJ ENM
의 무대인 청각장애인 학교는 어두운 사건이 벌어지고 드러나는 곳인데, 이 공간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저예산 영화라 시도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새로 지은 세트는 교장실과 법원 두 개였다. 이 영화에서는 안개가 중요해서 소품을 비롯해 복도를 포함한 주요 공간을 회색 톤으로 설정했다. 이야기 전반에 걸쳐 색감을 드러내는 것보다 누르는 게 중요했다. 다만, 정유미(Jung Yu-mi 鄭裕美)가 연기한 주인공이 일하는 인권센터 공간만 올리브 색을 가미해 따뜻함을 부각시켰다. 미술 감독으로서의 욕심을 절제하고 최대한 이야기에 충실했다.
9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영화
는 옥상, 간판, 건물 등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공간들을 세세하게 표현해 낸 것이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재난 영화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근 감독과 대화하면서 ‘한국적인 공간’을 표현하는 게 관건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국에 있는 건물 옥상들을 샅샅이 찾아다니며 특징을 조사했다. 특히 영화 후반부 남녀 주인공이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리며 육교를 뛰어넘는 장면에서 두 배우 양쪽에 보이는 건물들이 중요했는데 의도대로 잘 표현됐다고 생각한다. 정말 짧은 순간이지만 말이다. 감독이 미술팀 의견을 많이 수용해 주었고, 미술팀 또한 감독이 던져 준 아이디어를 많이 활용했다. 서로 생각을 주고받으며 재미있게 작업한 영화다.
예조판서 김상헌(金尙憲)을 연기한 배우 김윤석(Kim Yun-seok 金允錫)이 강을 가로질러 남한산성으로 향하는 장면이다. 실제로 강이 얼어붙어 얼음 두께가 30cm가 되는 곳에서 촬영되었다. ⓒ CJ ENM
이 영화에서는 신념이 다른 두 인물이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데 의상을 통해 두 인물의 특징을 담아냈다. 청나라의 공격에 맞서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김상헌과 달리 이병헌(Lee Byung-hun 李炳憲)이 연기한 이조판서 최명길(崔鳴吉)은 항복하여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 CJ ENM
현재 찍고 있는
은 어떤 작업인가?
박인제(Park In-jae 朴仁载) 감독의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인데 공개하기 전에 자세한 얘기를 할 수는 없지만, 인기 웹툰 작가 강풀(Kang Full)의 동명 원작을 영상으로 만드는 첫 시리즈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 작품 안에서 1980년대부터 2018년까지 변화하는 시대를 표현하는 것이 내게 큰 도전이다.
천부적인 패션 감각을 지닌 이공진 역의 고수(Go Soo 高洙)가 30년 동안 왕실 옷을 지어온 조돌석 역의 한석규(Han Seok-kyu 韓石圭)가 바느질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장면이다. 이원석(Lee Won-suk 李元錫) 감독의 2014년작
은 조선 시대 왕실 의복을 만들던 상의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으며, 다양한 의상과 배경 공간이 관객의 시선을 끌었다.
ⓒ 와우플래닛코리아(WOWPLANET KOREA)
Interview
2021 WINTER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것만 만드는 공예가
온전한 수작업 끝에 완성되는 금속공예가 심현석(Sim Hyun-seok 沈鉉錫)의 작품들은 따뜻한 감성과 절제된 미감을 전달한다. 그는 손으로 직접 만드는 물건이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인 작업을 이어간다.
금속 공예가 심현석(Sim Hyun-seok 沈鉉錫)이 경기도 가평 작업실에서 카메라 앞에 섰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인데, 이는 스스로가 필요한 물건을 직접 만들어 본 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으면 비로소 작품화하기 때문이다.
금속 공예가 심현석은 몇 년 전 경기도 가평으로 작업실과 집을 옮겼다. 농사를 짓고 화초를 가꾸며 살고 싶다는 오랜 바람이 투영된 결정이었다. 그전까지는 서울 화곡동에 있는 스승의 작업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무려 26년에 걸친 도제식 수업이었다. 여유 시간과 사생활을 중요하게 여기는 요즘 젊은 세대는 잘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일 것이다. 긴 세월 동안 하루하루를 ‘제자’로 살았던 작가에게는 모든 공정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정직함과 무던함이 남았다. 작은 부품까지 모두 직접 만들어 완성하는 핀홀 카메라를 비롯해 장신구와 생활 도구 등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이다. 그는 건국대에서 공예를 전공한 후 캐나다 노바스코샤 예술디자인대학원(Nova Scotia College of Art and Design)에서 금속공예 심화 과정을 밟고 미술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에는 한국 현대 금속공예의 선구자 유리지(劉里知) 교수를 기념하는 유리지공예관이 주최하고 고려아연주식회사가 후원하는 ‘올해의 금속공예가상’을 받았으며, 국내외 유수의 갤러리와 기관에서 전시를 열며 탄탄한 실력과 매력적인 작품 세계를 인정받고 있다.
소재로 은을 주로 사용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재료로서 은의 매력은 어떤 것인지요? 조선 왕실에서는 인체에 해로운 독극물을 확인하는 용도로 은수저를 사용하곤 했어요. 독이 있는 성분이 은에 닿으면 색이 검게 변하니까요. 그 얘기는 은이 나쁜 성분을 잘 받아들인다는 뜻도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은 조각을 물통에 넣어 놔요. 신선도가 유지되고 수질도 좋아지기 때문이지요. 은기(銀器)가 비싸다 보니 장식장에 넣어만 두는 분들이 많은데 그러면 색이 변합니다. 매일 쓰면 변하지 않아요. 그리고 은은 성질이 물러 작업하기가 까다롭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도 않아요. 금속공예 작업에 사용하는 스털링 실버(sterling silver)는 은이 92.5%, 구리가 7.5% 함유되어 있고 강도가 아주 높습니다. 물론 가격도요.
최근에는 무슨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강아지 모양 브로치를 포함해서 장신구를 꾸준히 만들고 있고, 기하학적 형태의 작업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작업을 해야 정교하고 미학적인 작품도 만들 수 있거든요. 밸런스를 맞추는 거죠. 최근에는 스테인리스로 커틀러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스테인리스가 식기류를 만들 때는 무척 좋은 재료예요. 다른 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고 은이나 황동, 적동과 달리 색도 변하지 않거든요. 하지만 다루기에는 어려운 재료예요. 땜이 아닌 용접을 해야 하고, 공방 수준을 넘어 공업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어 어떻게 하면 기존의 제 방식대로 할 수 있을지 고민 중입니다.
기하학 형태의 장신구들. 심현석은 강도가 높은 스털링 실버를 주로 사용하며, 최근에는 스테인리스도 활용하고 있다.© 심현석
귀엽고 재미있는 모양의 장신구들. 그는 작업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정교하고 미학적인 작품과 즐겁고 유쾌한 작품을 병행하여 만든다.
그를 대표하는 작업물은 은으로 만든 수제 핀홀 카메라다. 몸체는 물론 내부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까지 직접 제작하기 때문에 최소 몇 개월의 작업 시간이 필요하다.
기존 방식이란 무엇인가요? 모든 공정을 제 두 손으로 직접 하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범위를 잘 알고 있고, 그 능력과 정도에서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늘 있습니다. 보통은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물건을 만들기가 어려운데, 저는 그런 작품을 잘 만들고 또 더 잘하고 싶어요.
대표작 핀홀 카메라는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요? 핀홀 카메라가 제 이름을 세상에 알려준 작품이기는 하지만 안 만든 지 여러 해 되었습니다. 20여 년 전에 운 좋게 라이카 카메라를 저렴한 가격에 구매한 적이 있었는데, 제 작업을 촬영하려면 다른 렌즈를 사야 했어요. 가격을 알아보니 900~1000달러 정도 되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막상 렌즈를 만들어 끼워 보니 사진이 찍히더라고요. 몸체도 만들 수 있겠구나 싶었지요. 그래서 내 손으로 온전한 카메라를 만들게 되었고, 사진을 찍어 현상을 해 보니 제대로 사진이 되어 나왔습니다. 이게 바로 제가 작업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 내게 필요한 걸 만들어 보고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면 그때 비로소 작품을 시작하는….
긴 세월에 걸쳐 도제식 교육을 받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요? 대학 때 우연히 우진순(Woo Jin-soon 禹眞純) 선생님을 뵙게 됐어요. 학교에 강의 차 나오셨는데 이후 자연스럽게 인연이 됐지요. 은을 다루시는 방식이나 미감에서 끌리는 부분이 많았어요. 스웨덴 스톡홀름 국립디자인공예대학에서 공부를 하신 덕분에 북유럽 작가들이 어떤 작품을 어떻게 만드는지 배우는 것도 좋았고요. 1992년도부터 2018년까지 함께했는데, 가끔 토요일에 뵐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주말을 제외하고 아침 5~6시에 시작해 오후 3~4시까지 작업을 했습니다. 선생님이 작업실을 빼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제가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됐어요. 지금은 매일 아침 9시에 시작해서 저녁 6시까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항상 오늘 하루를 잘 살자고 생각합니다. 어디까지 가야지 생각하기보다는 시냇물 위를 흘러가는 나뭇잎처럼 오늘 하루도 이상한 곳에 빠지지 말고 잘 흘러가자, 내 앞에 있는 길을 잘 헤쳐 나가자 생각합니다. 계획도 잘 세우지 않아요. 선생님과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런 성격 탓일 거예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범위를 잘 알고 있고, 그 능력과 정도에서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늘 있습니다. 보통은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물건을 만들기가 어려운데, 저는 그런 작품을 잘 만들고 또 더 잘하고 싶어요.”
2009년 크래트프 아원에서 열린 그룹전
전에 심현석이 출품한 작품이다. 그는 고도의 집중력과 섬세함이 필요한 작은 크기의 작품에 강점을 보인다. © 심현석
도제 수업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은 제가 무척 덜렁대는데 선생님께 배우는 동안 꼼꼼하다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어요. 꼭 지켜야 할 과정을 건너뛰지 않으면서 그게 습관이 되고, 또 제 작업 태도가 된 것 같아요. 사포질을 예로 들면 240, 400, 600 등 사포의 방 숫자가 커질수록 금속 표면을 더 곱게 갈아내는데, 저는 단계를 건너뛰지 않고 각 과정에서 그에 맞는 사포로 연마 작업을 계속하거든요. 몇 단계를 건너뛴다고 해서 결과에 큰 차이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저는 꼭 그렇게 했어요. 하나 더 말씀드리면, 두 개의 판을 붙이는 땜 작업을 하려면 판 사이에 붕사라는 재료를 발라 줘야 해요. 그 재료가 땜이 잘 흐르게 하고 산화도 막아 주거든요. 그런데 그런 작업을 깨끗한 환경에서 하는 게 의외로 쉽지 않아요. 공방은 주변이 어수선해지기 십상이죠. 하지만 선생님이나 저나 깔끔한 성격이라 늘 주변을 정돈했고, 손도 깨끗이 씻은 다음에 작업을 했습니다. 제 작품을 매우 간결하다고 평가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런 작업 공정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나 계획이 있으신지요? 지금처럼 꾸준히 할 뿐이지요. 해외 전시 계획이 있어서 그 준비도 해야 하고요. 아, 그러고 보니 ‘공예수선소’를 해 보고 싶기는 합니다. 제가 금속을 다루는 사람이다 보니 주방 도구를 땜으로 고치거나 무언가를 덧대 다시 살리는 작업을 잘할 수 있거든요. 금속공예품의 장점은 깨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심하게 찌그러져도 반대쪽에서 힘을 가하면 어느 정도 원상 복구가 가능해요. 찢어진 가죽 소파를 바늘로 꿰매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렇게 망가진 물건을 살려내고 애초에 그걸 가졌던 사람이 오래오래 사용할 수 있다면 보람 있는 일이죠.
Interview
2021 AUTUMN
독특하고 이질적인 이야기에 대한 사랑
독특하고 이질적인 이야기에 대한 사랑
전민희(Jeon Min-hee 全民熙)는 1990년대 PC통신망을 기반으로 등장한 판타지 소설의 1세대에 속하는 작가다. 1999년 연재를 시작한 『세월의 돌(The Stone of Days)』 이후 지금까지 수십 권의 작품을 펴냈으며, 그중 상당수가 일본·중국·태국·대만에서 출판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룬의 아이들’ 시리즈와 ‘아키에이지’ 시리즈는 게임의 밑바탕이 되었다. 경복궁 근처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판타지 소설가 전민희(Jeon Min-hee 全民熙)는 1999년 PC통신 나우누리에 『세월의 돌(The Stone of Days)』을 연재하며 데뷔했다. 그의 소설은 섬세한 묘사와 서정적인 문체로 국내외 수많은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소설가 전민희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있고, 서울에서 가장 고즈넉한 동네인 대통령 관저 부근 마당 있는 집에 산다. 얼핏 평범한 가정주부나 커리어우먼처럼 보이지만, 그녀는 한국 판타지 소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가로 꼽힌다. 1999년 PC통신 나우누리에 연재하기 시작한 『세월의 돌』은 잡화점을 운영하는 18세 소년 파비안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목걸이의 네 가지 보석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인데 무려 400만 회 접속을 기록했고, 이는 지금까지도 판타지 소설 마니아들 사이에서 ‘전설’로 회자된다.작가 특유의 판타지 세계관은 게임 업계에서도 사랑받고 있다. 2003년 출시된 넥슨의 클래식 RPG 테일즈위버(Tales Weaver)와 2013년 출시된 엑스엘게임즈의 RPG 아키에이지(ArcheAge) 같은 인터넷 게임이 그녀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됐다.
올해로 데뷔 몇 년째인가? 1999년부터 연재하기 시작했으니 23년째다. 총 3부로 이루어진 ‘룬의 아이들(Children of the Rune)’ 1부 『룬의 아이들 – 윈터러(Winterer)』(2001~2019)가 2001년 처음 종이책으로 출간됐으니, ‘룬의 아이들’ 시리즈가 20주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룬의 아이들’ 시리즈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판매 부수는 얼마나 되는가? 7권으로 완결된 『룬의 아이들 - 윈터러』와 9권으로 끝을 맺은 『룬의 아이들 – 데모닉(Demonic)』(2003~2020)을 2018년 출판사를 바꿔 개정판을 냈다. 그때 추산해 보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300만 부가량 팔린 것으로 파악됐다.
개정판을 계속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만큼 작품 퀄리티에 신경을 쓰기 때문인가? 판타지 소설가들은 대개 작품 고쳐 쓰는 걸 싫어한다. 나처럼 어떤 계기가 생겼을 때 글을 수정하는 작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이전 작품을 고칠 시간에 새 작품을 쓰는 편이 작업의 즐거움이나 명성, 수입 면에서 훨씬 낫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만족스러울 때까지 퇴고를 거듭해서 책을 내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다른 시점으로 다시 보면 보완하고 싶은 게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세월의 돌』은 2004년 출판사를 바꿔 다시 출간했는데, 첫 작품이라 애착이 크기는 했어도 미숙한 대목들이 빤히 보여 차마 그대로는 찍을 수가 없었다. 만약 그때 고치지 않고 그냥 넘어갔더라면 이후 다른 작품들도 다시 손대지 않았을 것 같다.
“흔히 판타지 소설은 주로 작가의 상상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방대한 자료 조사와 치밀한 연구가 밑바탕이 된다. 그런 사전 작업이 치밀한 구성과 섬세한 묘사를 가능케 한다.”
전 작가의 대표작 ‘룬의 아이들’ 시리즈는 1부 『룬의 아이들 – 윈터러(Winterer)』(2001~2019), 2부 『룬의 아이들 – 데모닉(Demonic)』(2003~2020)에 이어 3부 『룬의 아이들 – 블러디드(Blooded)』(2018~)가 현재 4권까지 출간되었다. 번성했던 고대 왕국이 갑자기 멸망한 지 천여 년 후 여러 국가와 세력이 끊임없이 충돌을 벌이는 가운데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 싸워나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정판에 대한 독자들 반응은 어떤가? 단순히 문장만 다듬는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에피소드를 집어넣기도 하다 보니 독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갈렸다. 개정판을 다시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아무래도 불만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수정된 작품을 더 좋아해 주는 독자들이 차츰 늘어났고,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며 달라진 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공유하는 독자들도 있다.
작품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나우누리에 처음 연재하던 20대 때는 독자들을 의식하지 않고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걸 썼다. 그런데 의외로 소설이 큰 인기를 얻게 되자, 세상에는 나랑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 취향을 오롯이 반영해도 될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를 척척 만들어 붙였다. 근본적으로는 판타지라는 장르에 내재해 있는 매력 때문이 아닌가 싶다. 판타지 소설은 한 시대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시대를 아우르는 보편성과 호소력이 있다.
거대한 세계를 조명하면서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다는 평가를 듣는다. 어떻게 생각하나? 흔히 판타지 소설은 주로 작가의 상상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방대한 자료 조사와 치밀한 연구가 밑바탕이 된다. 예를 들어 현실에는 없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기 위해서는 인류의 도시 문화사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사전 작업이 치밀한 구성과 섬세한 묘사를 가능케 한다.
어떤 계기로 판타지 소설을 쓰게 됐나? 어린 시절부터 습작을 했다. 그때는 그저 쓰고 싶은 걸 썼을 뿐인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내가 썼던 것들이 판타지에 속했다. 이 장르를 제대로 인지하게 된 건 나우누리의 판타지 동호회에서 활동하면서부터였고, 이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운이 좋았던 것 같다. 1990년대는 판타지 소설이 막 유행하기 시작하던 시기였는데, 나와 시대적 코드가 맞았던 거다. 내 개인적인 취향이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공명함으로써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 나는 1994년에 대학에 입학했는데 4학년이던 1997년 한국이 IMF 구제금융 체제에 들어갔다. 대학 졸업 후 취직하려야 할 수도 없었고, 취직을 못 해도 하나도 창피하지 않은 시기였다. 내 입장에서는 어차피 돈을 못 벌게 됐으니 좋아하는 일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거였다.
판타지 취향은 어떻게 생기게 됐나? 아마도 어렸을 적 어린이용 세계 문학 전집을 읽으며 생긴 것 같다. 나는 독특하고 이질적인 이야기들을 좋아했는데, 이를테면 ‘삐삐 롱스타킹’ 시리즈로 유명한 스웨덴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 같은 작품을 정말 좋아했다. 『룬의 아이들 - 윈터러』가 그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점을 나중에 깨닫게 됐다.
자신의 소설이 어떤 특징을 보인다고 생각하나? 그걸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닌 것 같다. 독자들이 내 소설 세계를 비평하는 글을 내놓을 때가 가끔 있다. 이를테면 어떤 독자들은 내 작품을 ‘청소년 소설’ 스타일로 규정한다. 일리 있는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한국 독서 시장에 청소년 문학이라는 영역이 정착되었지만, 내가 처음 소설을 쓸 때는 그런 카테고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청소년을 타깃 독자층으로 삼았던 이유는 전근대 시기에도 아이들은 성인식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쳤는데, 아이에서 어른으로 이행하는 연령대의 독자들을 위해 통과의례 이야기가 담긴 소설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룬의 아이들 - 윈터러』가 그런 구조라고 생각한다. 어떤 아이가 부모님을 비롯해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두려워서 도망쳤던 최초의 대상과 대면하게 되는 내용이다.
오래된 독자도 많을 것 같다. ‘룬의 아이들’ 시리즈 중 2부의 마지막 권이 나온 게 2007년인데, 3부 『룬의 아이들 – 블러디드(Blooded)』 1권을 2018년에 출간했다. 무려 10년도 넘어서 나온 거다. 그동안 내 소설을 잊어버린 독자도 있을 수 있고 취직을 하거나 결혼을 한 독자도 있을 텐데, 폭설이 내린 겨울 아침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린 작가 사인회에 무려 500명이나 나타났다. 그때 정말 깜짝 놀랐다. 초등학생, 중학생 때 『룬의 아이들 - 윈터러』로 내 소설에 입문해 이제는 20~30대가 된 독자들이 나를 찾아준 것이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사실상 올해 스케줄이 꽉 차 있다. 손대고 있는 게임 시나리오 작업도 해야 하고, 『룬의 아이들 - 블러디드』도 계속 써야 한다.
신준봉(Shin June-bong 申迿奉) 『중앙일보』 기자 한상무(Han Sang-mooh 韓尙武) 사진가
Interview
2021 SUMMER
아픔이 불러일으키는 보편적 공감
아픔이 불러일으키는 보편적 공감
그래픽노블 작가 김금숙(Keum Suk Gendry-Kim 金錦淑)은 역사적 소재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그려 왔다. 제주 4.3 항쟁의 비극을 그린 『지슬(Jiseul)』(2014),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을 다룬 『풀(Grass)』(2017), 조선 최초의 볼셰비키 혁명가의 삶을 기록한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2020) 등 여러 작품이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외에서 출판되었다.
1.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얘기를 다룬 김금숙(Keum Suk Gendry-Kim 金錦淑) 작가의 그래픽 노블 『풀』의 한 장면. 2. 그는 주로 굵직한 역사적 주제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화에 담는다.
지난해 10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유례없이 온라인 중계로 진행된 뉴욕 코믹콘(New York Comic Con)에서 하비상(Harvey Awards) 수상작들이 발표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삶을 그린 그래픽노블 『풀(Grass)』도 그중 하나였는데, 이 작품은 ‘최고의 국제도서(Best International Book)’ 부문에서 수상했다.2017년 국내에서 출판된 『풀』은 2019년 캐나다의 만화 전문 출판사 Drawn and Quarterly에서 영어판이 출간된 이래 지속적으로 반향을 일으켰고, 2019년 『뉴욕타임스』와 『더 가디언』이 각각 ‘The Best Comics of 2019’와 ‘The Best Graphic Novels of 2019’로 선정했다. 이듬해에도 크라우제 에세이상(The Krause Essay Prize), 카투니스트 스튜디오 최우수 출판만화상(Cartoonist Studio Prize)을 수상하는 등 10곳에서 상을 받았다.작가는 하비상 수상자로 발표된 뒤 두 달이 지난 2020년 12월에야 태평양을 건너 도착한 트로피를 받았다. 코로나19 때문에 실제 트로피를 받는 데도 우여곡절을 겪은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작품은 여러 언어로 번역돼 세계 곳곳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풀』은 최근 포르투갈어와 아랍어로도 번역돼 출간됐고, 지난해 가을 나온 신작 『기다림(The Waiting)』은 프랑스어판이 출간되었으며 영어, 포르투갈어, 아랍어, 이탈리아어 출판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4월 김 작가를 그가 살고 있는 강화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회화와 설치미술을 전공했는데 그래픽노블 작가로 이름을 얻게 된 사연이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스트라스부르 고등장식미술학교(École supérieure des arts décoratifs de Strasbourg)에서 설치미술을 배웠어요. 생활고 때문에 한국 만화가들의 작품을 번역하는 일을 아르바이트 삼아 맡았는데, 나름대로 실력을 인정받게 되어 그곳에 소개한 한국 만화 작품이 100권이 넘어요.그러던 어느 날 현지 한인 신문사로부터 만화를 그려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저 역시 만화 번역을 하면서 이 장르의 가능성을 발견했던 참이었죠. 작가의 생각을 종이와 연필만으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낀 거예요. 하나씩 그리다 보니 연재 작품 수도 여럿 늘어났죠. 만화를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말풍선이나 대화 표현을 어떻게 해야 더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과 노력을 많이 했어요.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있나요? 스토리 면에서는 한국 작가들의 영향이 있었죠. 특히 우리 시대의 아버지를 만화로 잘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이희재(李喜宰), 오세영(吳世榮) 같은 작가들이 떠오르네요. 그림 쪽으로 보면 저는 구상보다는 추상, 그리고 설치나 조각 작업을 주로 했기 때문에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화풍에 있어서 제게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는 작가는 에드몽 보두앵(Edmond Baudoin)이나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을 그래픽노블로 그린 호세 뮈누즈(Jose Munoz)가 있어요. 특히 흑백의 붓터치를 강조한 부분에서요. 그밖에도 조 사코(Joe Sacco)나 타르디(Tardi)도 제게 여러모로 영향을 줬어요.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 많은 편인데, 초기작 중에서 가장 소개하고 싶은 작품을 꼽는다면요. 저는 자전적인 이야기, 일상을 겪으면서 느낀 점들, 또 제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두루 엮습니다. 역사적이거나 사회적인 소재들을 제가 겪은 일들과 연결시키면서 간절하게 와닿는 이야기들을 중점적으로 다루려고 하죠. 그중 『아버지의 노래(Le Chant De Mon Pere)』(2013)는 한국의 1970~80년대를 배경으로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평범한 가족이 경제적 이유 때문에 서울로 이주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어요. 그 시절 힘들었던 가족사에 당시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모습을 투영했죠. 어린 시절의 추억도 담고 싶었어요. 아버지가 판소리를 하셔서 어릴 적 마을에서 누가 돌아가시면 아버지가 상여 소리를 도맡곤 하셨죠. 하지만 서울에 와서는 동네 누가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고 아버지가 소리를 하실 일도 없었어요.
초기작에서 아버지를 다뤘다면 최근작에서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기다림』(2020)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작품이에요. 20년 전 파리 유학 당시 어머니가 오셨는데, 그때 진중한 이야기를 하셨어요. 어머니의 언니, 제게는 큰이모 되시는 분이 북한에 계시다고요. 외가댁 식구들이 고향인 전남 고흥을 떠나 만주로 가던 길에 평양에 머무른 적이 있는데, 그때 일이 생겨 어머니는 남쪽으로 내려오고 큰이모는 그곳에 남았던 거죠. 어머니가 말씀해 주시기 전까지 그런 가족사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어요. 어머니는 이산가족 상봉 사업이 진행될 때도 우선순위에서 밀려 안타까워하셨어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누군가 해야 하는데 내가 하자 마음먹었고, 어머니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사가 됐죠. 그런데 이산가족 문제는 내 가족에게 일어난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도 전쟁을 겪고 있는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인류 보편적인 문제이기도 하잖아요. 궁극적으로 전쟁 때문에 약자들이 희생되고 난민이 되어 뿔뿔이 흩어지는 문제를 담고 싶었습니다.
『풀』 역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이 인류 모두의 비극이라는 시각에서 상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을 처음 구상한 시기를 따지고 올라가면, 1990년대 초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게 계기가 됐어요. 이후 프랑스에 가서도 위안부 문제에 관한 통역을 맡은 적이 있어서 자료를 읽으며 더 자세히 알게 됐고요. 그래서 2014년 앙굴렘 국제 만화페스티벌(Festival International de la Bande Dessinée d'Angoulême) 출품작으로 「비밀」이라는 단편을 냈어요. 위안부 피해자의 삶과 고통을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드러내고 싶어서요. 그런데 이 작품은 단편이라 무거운 주제를 다 담지 못해 아쉬웠어요. 그래서 꼬박 3년 동안 매달리며 더 많은 고민을 거쳐 장편으로 만들었어요. 위안부 피해자의 문제를 약자가 당하는 폭력, 그리고 제국주의와 계급적 문제로 접근했죠. 작품에 나오는 이옥선(李玉善) 할머니를 만나고 인터뷰하면서 안타까웠던 게 있어요. 할머니가 전쟁이라는 비참한 상황 속에서 어떤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희생자였는데, 전쟁 후에도 침묵하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작품이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풀』만 해도 14개 언어로 번역됐는데 이처럼 여러 문화권에 넓게 파급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제 작품들은 프랑스에서 번역돼 나온 책이 제일 많긴 해요. 『풀』의 경우 일본어판을 낼 때 그곳 분들이 앞장서 크라우드 펀딩으로 출간에 도움을 준 일이 놀라웠어요. 무엇보다 번역가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해요. 제 이야기가 독특하고 또 사람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내용인데 그런 점을 다른 문화권에 전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이탈리아어로 번역해 준 메리 루(Mary Lou), 영어로 번역해 준 미국의 한인 번역가 자넷 홍(Janet Hong), 일본어 번역을 맡은 스미에 스즈키(Sumie Suzuki) – 이런 분들의 도움으로 각 나라 독자들에게 의미가 잘 전달되었어요.
지금 계획하고 있는 다음 작품이 있나요? 키우는 개들을 매일 어김없이 산책시켜 주고 있어요.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강아지와 인간의 관계를 다룬 작품을 구상해 밑그림까지는 그려 놓았어요. 올해 여름 출판될 예정이고, 제목은 『개』로 정했어요.
“위안부 피해자의 문제를 약자가 당하는 폭력, 그리고 제국주의와 계급적 문제로 접근했죠.”
1. 김 작가는 요즘 강아지와 인간의 관계를 다룬 작품 『개』를 준비하고 있다. 올 여름 서울에서 마음의숲(maumsup) 출판사에 의해 출간될 예정이며, 내년 초 프랑스 Futuropolis의 출간도 기다리고 있다.
2. 김 작가의 그래픽 노블(왼쪽부터 시계 방향): 2019년 캐나다 Drawn & Quarterly에서 출간된 『풀』 영어판, 지난해 국내 출판사 딸기책방(Ttalgibooks)에서 나온 신작 『기다림』, 지난해 국내 출판사 서해문집이 발간한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 올해 5월 프랑스 Futuropolis에서 간행된 『기다림』 불어판, 올해 9월 Drawn and Quarterly가 출판할 예정인 『기다림』 영어판, 2017년 국내 보리 출판사에서 출판된 『풀』, 지난해 일본 Korocolor(ころから)가 발행한 『풀』 일어판, 지난해 브라질 Pipoca & Nanquim가 포르투갈어로 출간한 『풀』.
김태훈(Kim Tae-hun 金兌勳)『주간경향』 기자
Interview
2021 SPRING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아리랑’
나윤선(Nah Youn-sun [Youn Sun Nah] 羅玧宣)은 유럽에서 가장 인정받는 재즈 아티스트로 세계 무대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펼쳐 왔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국내에 머물게 된 그가 음악 감독을 맡고 여러 나라 뮤지션들이 협업으로 만든 앨범
이 지난 12월에 출시되었다.
전통 민요 ‘아리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의 음악감독을 맡은 나윤선(Nah Youn-sun [Youn Sun Nah] 羅玧宣 가운데)이 거문고 연주자 허윤정(Heo Yoon-jeong [Yoon Jeong Heo] 許胤晶 왼쪽)과 함께 스튜디오에서 녹음 작업을 하고 있다. ⓒ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음반에 참여한 뮤지션들은 원격으로 진행된 이번 작업이 서로의 음악과 소리에 더 집중하고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말한다.
나윤선은 ‘아리랑’이 힘든 상황에서도 다시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추동력을 지닌 음악이라고 말한다.
나윤선의 공연 무대를 보고 있으면 마치 그가 하나의‘악기’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 독보적인 악기가 들려주는 음률은 섬세하고 예리해서 듣는 이의 심장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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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노래를 들으면 그가 목청으로 추는 눈물의 검무를 실감할 수 있다.
그는 유럽 최고의 재즈 보컬리스트로 평가받으며 세계 최정상급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 서 왔으며,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을 두 차례 받았다. 2009년부터 독일의 ACT에서, 그리고 2019년부터는 미국의 워너뮤직그룹에서 음반을 내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알려 왔다.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한 나윤선은 1994년 록 뮤지컬
의 배우로 무대에 데뷔했다. 이듬해 훌쩍 프랑스로 음악 유학을 떠났는데, 당시 그는 재즈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그저 노래를 배우고 싶었던 그는 불과 5년 만인 2000년 파리의 유수한 재즈학교 CIM에서 동양인 최초로 교수가 됐다. 나윤선에게 있어 음악적 대동맥은 미국의 블루스보다 한국의 아리랑과 근접해 있어 보인다. 3년 전 서울에서 만났을 때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슬픈 샹송을 부를 때 저는 원곡보다 훨씬 더 슬프게 부르게 돼요. 한국인들은 주변에서 누군가가 돌아가시면 세상이 끝난 듯 울잖아요. 지금껏 그 감성으로 노래를 불렀어요.” 그는 자신의 7집 과 8집 에 아리랑을 실었으며,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식 무대에서도 아리랑을 불렀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예 아리랑을 소재로 한 앨범 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35분짜리 이 음반에는 가야금 연주자 박경소(Park Kyung-so [Kyungso Park] 朴京素)와 영국인 색소포니스트 앤디 셰퍼드(Andy Sheppard), 거문고 주자 허윤정(Heo Yoon-jeong [Yoon Jeong Heo] 許胤晶)과 노르웨이 트럼펫 연주자 마티아스 에이크(Mathias Eick)의 협업 등 여러 나라 뮤지션들이 원격으로 호흡을 맞춰 만든 6곡의 새로운 아리랑이 담겼다.
지금까지 여러 음악가가 다채로운 색깔로 아리랑을 재해석했습니다. 이번 음반은 어떻게 다른가요? 지난해 우리 모두 코로나19로 특별히 힘든 한 해를 보냈잖아요. 음악가, 제작사, 에이전시 모두 무대가 사라지면서 대단히 어려운 상황을 맞았어요. 그래도 “이제 끝났어”라고 말하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어요. ‘Stay creative’나 ‘Keep creative’가 모두의 캐치프레이즈였죠. 그들의 긍정적인 태도에서 제가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기쁘고 밝은 아리랑으로 작위적인 희망을 노래하지는 말자고 생각했죠. 지금의 세상을 그대로 반영한,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아리랑을 만들어 보자고 음악가들을 독려했습니다. 모두 동감하며 제 뜻에 따라 줬고, 이번 음반에 참여한 음악가들이나 저나 작업 과정에서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음악가를 섭외할 때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협업에 열려 있는 뮤지션, 그리고 아리랑이 뭔지 알 만한 뮤지션을 골랐어요. 앤디 셰퍼드는 박경소 씨와 영국 ‘K-뮤직페스티벌(K-Music Festival)’에서 함께 공연한 적이 있어요. 마티아스 에이크는 저와 듀오로 순회 공연도 해 본 적이 있는데 다재다능한 연주자예요. 트럼펫, 콘트라베이스, 드럼, 건반, 전자음악을 섭렵했죠. (나윤선은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며 동료 음악인들 사이에 아리랑이 재즈 스탠더드처럼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핀란드의 이로 란탈라(Iiro Emil Rantala 피아노)와 스웨덴의 울프 바케니우스(Ulf Wakenius 기타)는 2017년 듀오 앨범
에
이란 곡을 담았는데 이는
의 멜로디를 변형한 것이다. 바케니우스는 2000년대 초반부터 나윤선과 활동하며 밀양, 진도, 정선의 아리랑을 깊숙이 익혔다.)
해외 음악가들은 아리랑을 음악적으로 어떻게 느끼나요? 일단은 아리랑의 멜로디 자체를 정말 좋아해요. 이번 앨범에서 듀오 ‘첼로가야금(CelloGayageum)’과 함께
라는 곡을 만든 트롬본 연주자 사무엘 블라제(Samuel Blaser 스위스)에게 제가 한국의 지역별 아리랑을 들려줬어요. 그랬더니 그 모든 아리랑에서 영감이 넘쳐흐른다면서 자신이 재해석한 곡들을 제게 수시로 보내줬어요.
아리랑의 그런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기본적으로는 포크송, 즉 민요의 힘이라고 봅니다. 또 외국인에게는 새롭기도 하고요. 전에는 모르던 새로운 음악적 화두인 셈이니까 흥미가 강하게 생기는 거죠. 아리랑 자체가 뼈대는 심플하지만 리드미컬한 특성이 있어요. 그래서 음악가들이 각자 원하는 것을 시도해 볼 수 있죠. 특히 재즈 음악가들은 본인들이 느끼는 것이 백 가지면 백 가지를 모두 다르게 표현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더욱 그렇고요. 5박, 7박 같은 변칙적인 박자에도 관심이 많아요.
이번 앨범을 원격으로 작업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각자 서로 물리적으로 많이 떨어져 있는 데다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모일 수도 없는 처지였어요. 그래서 한국 음악가들이 먼저 아리랑을 기반으로 곡을 창작해 녹음했어요. 이것을 직접 또는 저를 통해 해외의 협업 음악가에게 이메일이나 인터넷 메신저, SNS 등을 통해 보냈죠. 해외 음악가들은 그 파일을 듣고 자신의 해석을 덧붙인 연주를 다시 보내 줬고요. 당연히 한 번에 되지는 않았어요. 모두가 만족해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이런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다듬어 갔죠. 시차가 있지만 공동 작곡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일부는 제가 직접 최종 편집을 하기도 했어요.
해마다 연주 여행 일정이 빼곡했는데, 2020년은 어땠나요? 부모님과 그처럼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은 근 20년 만에 처음이었어요. 전에는 한국의 집이 호텔처럼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었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우울함과 불안감도 찾아왔어요. 느닷없이 ‘내가 지금 생의 어디까지 와 있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됐고요. 제가 감수성이 예민해서인지 이런 상황이 너무 아프게 느껴졌어요. 주위에서 “이럴 때는 소셜미디어를 잘 활용하라”고 조언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팬데믹 초반에는 음악을 듣는 대신 청소하고 정리하며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는 데에만 집중했죠. 다시 음악을 듣기 시작했을 때는 유럽 음악을 재발견했어요. 어쩐지 모든 음반이 영화음악처럼 다가오더군요. 그동안 스티비 원더, 허비 행콕을 들으면서 짜릿함을 느꼈었지만 이렇게 집 안에서 느린 속도로 앨범을 통째로 듣게 되니 음악도 하나의 긴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일 수 있겠다는 깨달음이 들었어요. 물론 예전에도 음반의 곡 순서를 정할 때 기승전결에 신경 썼지만, 이번 기회에 그 중요성을 좀 더 깊이 깨닫게 됐죠. 예술과 음악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게 된 시간이기도 했어요. 이번 음반을 지휘하면서 “곡을 짧게 쓰지 말라. 되도록 길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담아라” 하고 주문했어요.
(첫째 줄 왼쪽부터) 허윤정의 거문고 연주, 드러머 미켈레 라비아(Michele Rabbia 이탈리아), 색소포니스트 앤디 셰파드(Andy Sheppard 영국), 경기민요 소리꾼 김보라(Kim Bo-ra [Bora Kim]); (둘째 줄 왼쪽부터) 아코디언 연주자 뱅상 페라니(Vincent Peirani 프랑스), 거문고 연주자 허윤정, 플루티스트 조스 미에니엘(Joce Mienniel 프랑스), 대금 연주자 이아람(Lee Aram [Aram Lee]); (셋째 줄 왼쪽부터) 판소리 춘향가 소리꾼 김율희(Kim Yul-hee [Yulhee Kim]), 가야금 연주자 박경소(Park Kyung-so [Kyungso Park] 朴京素), 트럼펫 연주자 마티아스 에이크(Mathias Eick 노르웨이), 타악기 연주자 황민왕(Hwang Min-wang [Min Wang Hwang]). 이 외에도 듀오 그룹 첼로가야금(CelloGayageum)과 트롬본 연주자 사무엘 블레이저(Samuel Blaser 스위스)가 이번 앨범 작업에 참여했다. ⓒ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아리랑 자체가 뼈대는 심플하지만 리드미컬한 특성이 있어요. 그래서 음악가들이 각자 원하는 것을 시도해 볼 수 있죠. 특히 재즈 음악가들은 본인들이 느끼는 것이 백 가지면 백 가지를 모두 다르게 표현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더욱 그렇고요. 5박, 7박 같은 변칙적인 박자에도 관심이 많아요.”
이번 아리랑 음반을 들으면서 홈트레이닝이나 요가의 배경 음악으로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도 좋겠네요. 굳이 집중해서 들으시지 않아도 돼요. 설거지하거나 집안일을 할 때, 때론 아무것도 안 할 때 그냥 틀어 놓고 쓱 지나치는 음악으로도 좋아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깊이 집중해 감상해 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2019년 발매한 열 번째 정규 앨범
이 최근작이었죠. 올해 계획이 궁금합니다.
워너뮤직과 계약 후 두 번째 앨범을 준비합니다. 제 앨범으로는 11번째인데, 1~2월에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초반 작업을 할 예정이에요. 4월에는 녹음에 본격적으로 들어갈 거고요. 다시 어쿠스틱 음악으로 가 볼까 하는 생각도 있는데, 아직 정해진 건 없습니다. 색다른 포맷의 음악을 기대하고 있어요. 그리고 코로나19 상황이 호전된다면 3월에 잡혀 있는 유럽 지역 10개 공연도 가능하겠죠. 올해는 모든 음악가, 예술인,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한 나날을 맞이했으면 합니다.
Interview
2020 WINTER
낮은 곳으로 임하는 예술
설치 작가 최정화(Choi Jeong-hwa 崔正化)는 자신이 작가로 불리는 것을 반갑게 여기지 않는다. 자신의 정체성이 ‘디자이너’에 더 가깝다고 말하는 그는 미술관보다 전통 시장이나 벼룩시장이 더 예술적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9월 마지막 주, 추석 연휴를 앞두고 남쪽 지방 도시의 한 청과시장에 지름 2~8m의 거대한 과일 풍선들이 등장했다. 커다란 석류, 복숭아, 딸기 모양의 이 풍선들은
의 일환으로 선보인 최정화의 설치 작품이었다.
최정화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소재를 높이 쌓거나 커다랗게 확대해 공공장소에 내놓는다.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에서는 시민들이 기증한 식기 7,000여 개를 모아 높이 9m의 작품
를 만들었다. 올해는 대구미술관에 녹색과 빨간 플라스틱 소쿠리 5,376개를 쌓은
(2013년)를 전시하기도 했다.
이런 방법들은 앤디 워홀의
나 클래스 올덴버그의 거대한 조각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그 소재가 플라스틱 소쿠리나 냄비 등 한국인에게 익숙하다는 점이 다르다. 화려한 색과 친근한 소재는 누구나 한번쯤 눈길을 주게 만든다. 이 때문에 최정화라는 이름은 몰라도 그의 작품을 스치듯 본 사람은 적지 않다. ‘한국적 팝’으로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그를 서울 종로구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최정화 하면 ‘쌓기’가 떠오릅니다. 그 시작이 언제인가요? 1990년대 초반 개인전
를 열면서 초록색 소쿠리로 쌓은 탑 여러 개를 내놓았어요. 익숙한 대상을 낯설게 하려는 시도였어요. ‘플라스틱 소쿠리를 미술관 전시장에 가져다 놓으면 어떻게 반응할까?’ 하는 장난기 어린 생각으로 시도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어요.
왜 하필이면 플라스틱 소쿠리였을까요? 저는 원래는 그림을 그렸고, 대회에서 상도 탔었죠. 그런데 회의를 느끼고 있었어요. 그래서 전시 제안이 와도 거절하다가 3년 만에 응하려는 순간, 우리 집에 있는 빨간 소쿠리가 눈에 들어왔어요. 시장에 가도 쌓여 있고, 어느 집에나 소쿠리 하나쯤은 있잖아요. 누구나 있는 재료를 써보자는 생각에서 시작된 거죠.
예술적 재주를 부리지 않을 방법을 찾다가 생활 재료를 사용하게 됐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택하는 방법이나 주제는 대부분 바깥에서 놀고, 바깥에서 설치하는 거예요. 2015년 온양민속박물관에서 연 개인전 제목은
이었죠. 박물관 주변 폐가에서 가구를 모아 밥상 탑을 만들기도 했고요. 예술로만, 미술로만 놀지 않기를 시도하는 거죠. 자칫 잘못하면 ‘그들만의 리그’가 되니까요. 제 표현으로는 ‘삶이 예술이 되는 놀이터’를 만들려고 해요. 그러면 누구나 자신의 기억이나 추억을 떠올리며 즐거워할 수 있죠. 근본적으로 예술은 모두의 것인데 특정한 부류의 1%만 향유한다는 데 불만이 있었어요.
‘불만’은 평소 잘 쓰지 않는 표현인데요. 사실 지금도 저에겐 현대 미술이 어려워요.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아요. 하물며 일반 관람객들은 어떻겠어요.
굉장히 솔직한 말씀이시네요. 사실인걸요. 얼마 전 P21 갤러리에서 열렸던 개인전에서도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이 전시는 최정화의 예술 상품전, 부적전”이라고요. 예술가가 만드는 것이 결국은 상품 아니냐는 이야기에요. 저는 상품을 만들었고, 테스트를 해보았더니 관객의 호응이 있었던 거죠.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인가요? 결론적으로 보면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전문가를 겨냥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처음 전시할 때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보시더니 “소쿠리 예쁘네. 나도 하나 줘” 하고 말을 걸었어요. 제 나름대로의 소통 방법이 성공한 것 아닌가 생각해요.
영화나 무대 미술감독, 인테리어 디자이너로도 활발하게 활동하셨는데요. 패션숍이나 클럽, 바 인테리어를 했어요. 그러다 현대무용가 안은미(安恩美)를 만나 무대 미술을 하고, 시인 겸 소설가 장정일(蔣正一)의 작품을 영화화한 <301 302>(1995년)로 미술감독을 시작했어요. 이 영화는 거식증과 폭식증에 걸린 두 여성이 한 아파트에 이웃으로 살면서 생기는 일을 그렸죠. 처음엔 미술만 맡으려고 하다가 제가 총괄 감독을 하겠다고 제안해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일을 했어요. 사실 그 이전에 제가 1980년대 후반 인테리어 회사에서 일을 했고, 직접 회사를 만들기도 했죠. 그때 제가 했던 것은 ‘눈이 부시게 하찮은’ 것들이에요. 일반적인 패션숍에서는 쓰지 않는 재료를 쓰거나, 철거된 것들을 그대로 놔뒀죠. ‘치밀하게 엉성한’ 것이기도 하구요. 그때의 재료, 공간 경험이 지금을 만들었어요.
시리즈를 ‘부적’에 비유하는 것은 기복적인 의미인가요?
알케미가 말 그대로 연금술이니까요. 제가 만든 플라스틱 기둥이 그 이상의 것이 된다고 의미를 부여하는 거죠. 실제로 황금을 만들 수는 없지만, 물질이 정신이 되는 과정이에요. 시장 상인들이 물건을 쌓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감탄이 나오죠.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엄청난 내공이 느껴져요. 무수히 쌓인 플라스틱에서 숭고미를 느끼는 거죠.
기복을 왜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글쎄요. 어릴 때 못 살아서 그런 걸까요? 찢어지게 가난했고, 국민학교 6년 동안 여덟 번이나 전학을 다니는 바람에 한곳에 정착하지 못했죠. 그래서 유년 시절의 기억이 없어요. 완전한 암흑, 공백이에요. 기억이 없다는 것만큼 무서운 게 없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 시절을 이용했다고 생각해요. 잦은 이사로 같이 놀 친구가 없다 보니, 혼자 쓰레기나 물건을 줍는 습관이 생겼어요. 대학생이 되어서는 학교까지 걸어가는 길에서 어마어마한 감동을 받곤 했죠. 고물상, 공사 현장이 있었거든요. 언젠가는 황금 덩어리도 주웠어요. 그러나 학교에 가면 먹먹하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저를 잘 아는 작가들은 제 작품이 슬프다고 해요.
“‘모든 사람을 위한다’는 건 위험한 생각이지만, 저는 길바닥에서 예술을 했어요. 예술이 저 높은 곳에 있을 때 “내려와라, 놀자”, “예술은 당신 옆에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죠.”
작품에 어머니의 영향이 있어 보여요. 제가 미대에 가는 걸 아버지가 반대하셨어요. 그림을 못 그리게 붓도 분질러서 경기공전(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디자인과를 갔죠. 그런데 어머니께서 몰래 미대 입시를 도와주셨어요. 화실비가 없으니 대신 화실에 김치를 갖다주기도 했고요. 홍익대 미대에 간 것은 다 어머니 덕분이죠. 어머니는 제게 창조주이자 여신이죠. 실제로 정말 재주가 많으시고요.
현재 진행 중인 경남도립미술관 개인전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청과물 시장에서 쓰던 50~70년된 리어카가 미술관으로 들어와 작품이 됩니다. 시장의 알록달록한 파라솔은 샹들리에로 바뀌고요. 바닷가에 버려진 배도 등장하죠. 더 중요한 것은 지역 재생 활동하는 분들을 작가로 초청해 그들의 프로젝트를 소개한다는 거예요.
앞으로의 활동은 어떻게 될까요? ‘모든 사람을 위한다’는 건 위험한 생각이지만, 저는 길바닥에서 예술을 했어요. 예술이 저 높은 곳에 있을 때 “내려와라, 놀자”, “예술은 당신 옆에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죠. 지금은 ‘재생’에 관심이 많아요. 이제는 다시 근본, 근원에 대한 회귀를 고민해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