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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남긴 풍미, 시래기

Essential Ingredients 2022 SPRING 2131

겨울이 남긴 풍미, 시래기 겨울이 남긴 풍미, 시래기 늦가을과 겨울의 추운 날씨를 버텨내고 단맛을 끌어올린 시래기를 봄에 먹으면 마치 계절이 주는 선물이 입속으로 들어온 기분이 든다. 입문이 쉽지는 않지만 한번 맛을 알게 되면 그 매력에서 빠져나오기도 힘든 음식이다. 무는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채소 중 하나로 김치 뿐만 아니라 나물, 국 조림 등 여러 음식의 재료로 사용된다. 부위에 따라 각기 다른 쓰임새를 가졌고, 계절에 따라서 다른 맛을 내기도 하여 매력적인 식재료다. 특히 겨울철 노지재배로 수확한 무의 푸른 무청을 떼어 내 엮은 뒤 겨우내 햇볕과 바람으로 말린 시래기는 구수한 맛과 부드러운 촉감으로 봄철 식탁을 풍성하게 해준다. 시래기는 최소 3번 정도 얼고 녹기를 반복해야 맛있어진다. 건조과정에서 두 배 이상 늘어난 시래기의 식이섬유는 포만감을 더해주고 몸의 노폐물 배출을 돕는다. 지금은 별미로 여겨지는 음식이라도 그 출발은 때로 하잘것없어 보일 수 있다. 무청이나 배추의 겉잎을 햇볕과 바람에 말린 시래기가 그렇다. 한반도에서는 예로부터 늦가을이면 겨울에 먹을 김치를 담가왔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올라있는 ‘김장문화’이다. 이때 배추와 무에 파, 마늘, 고추가루 등 여러 양념을 섞어 김치를 담그고 나면 무청과 배추 겉잎이 남는다. 이를 날 것 그대로 말리거나 또는 삶아서 말리면 시래기가 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푸성귀를 다듬을 때 골라 놓은 겉대를 우거지, 무청이나 배추의 잎을 말린 것을 시래기로 정의하고 있다. 초라한 모양이 때로는‘잔뜩 찌푸린 얼굴 표정’에도 비유되는 우거지도 정성껏 말리면 좋은 식재료가 되는 것이다. 배추와 같은 채소의 겉잎은 자라는 동안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된다. 속잎에 비해 거칠고 손상되어 품질이 낮아 보이기 마련이다. 누렇게 시들거나 풀이 죽기도 한다. 그런데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목숨을 이어가던 시절에는 그것 마저 버릴 수 없었다. 채소 꺼풀을 주워 모아 그늘에 말려두었다가 잘게 썰어 한 줌의 쌀이나 두부비지, 밀기울을 넣어 죽으로 끓여 먹었다. 그조차도 세 끼를 먹기에 모자랐다. 한 끼 또는 두 끼만 먹으면서 간신히 버티는 사람이 많았다. 춘궁기면 시래기죽이라도 배불리 먹고 싶다는 농민들의 호소가 신문 기사로 실리곤 했다. 적응이 필요한 음식 시래기는 여러 번 먹어야 비로소 맛을 알게 되는 음식이다. 추운 겨울 시골집 마당에서 시래기를 삶는 냄새는 별로 향기롭지 않다. 뜨거운 김이 집안까지 데워 주는 느낌은 좋은데 냄새는 싫다. 배추나 무청을 삶으면 생겨나는 황화합물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삶는 과정에서 알싸한 매운맛이 줄어들고 부드럽고 순한 맛이 된다. 배추에는 감칠맛을 내는 유리 글루탐산이 많이 들어있다. 무청에는 뿌리인 무보다 더 많은 글루탐산이 들어있다. 황화합물과 글루탐산은 본래 육류에 많이 들어 있어서 고기 맛을 내는 성분이다. 배추와 무청을 말려 만든 시래기가 의외로 고기와 잘 어울리는 것은 이 풍미 물질 덕분이다. 고추장, 된장을 풀고 마늘을 넣어 시래기 찌개나 국을 끓여 먹으면 고기를 넣지 않아도 고기 맛이 난다. 멸치 육수를 더하면 풍미가 더 좋다. 음식 맛이 유명한 항구 도시 통영에서는 멸치 대신 장어 뼈로 국물을 낸 시래깃국이 전해 내려온다. 사실 처음부터 누구나 좋아할 맛은 아니다. 어린아이가 생소한 음식을 받아들여 좋아하게 되려면 최소 8회에서 15회까지 그 음식을 경험해봐야 한다. 시래깃국은 이런 설명에 딱 맞는 음식이다. 나 역시 맨 처음 시래깃국을 맛본 게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동안 거들떠보지 않았던 음식이었다는 기억만큼은 분명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느 날부터 시래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일단 좋아하게 되니 시래기로 만든 대부분의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들깨를 넣어 무친 시래기 무침, 된장과 갖은양념을 넣어 졸인 시래기 지짐, 사골 육수에 끓인 사골시래깃국까지 시래기가 들어간 요리면 구미가 당긴다. 정월 대보름은 음력 명절이다. 2022년 정월 대보름은 양력으로 2월 15일이다. 이날은 오곡밥에 묵나물을 많이 먹는다. 묵나물은 ‘묵은 나물’로 박, 오이, 버섯, 호박, 순무, 고사리, 취나물, 오이꼭지, 가지껍질 등을 말려서 겨우내 저장해둔 채소를 삶아서 무친 것을 말한다. 묵나물엔 시래기도 포함된다. 시래기는 자주 얼고 녹으며 완전히 말라야 하는 만큼 일교차가 크게 벌어지는 장소가 적합하다. 해발 300~500m 위치의 산간 지대로 일교차가 20도 이상 벌어지는 강원도 양구 해안분지, 일명 펀치볼에서 생산한 시래기가 유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펀치볼’은 한국전쟁 당시 격전이 벌어졌던 이 곳의 지형이 화채 그릇을 닮았다고 하여 한 미국인 종군 기자가 시용하며 알려진 이름이다. ©shutterstock 조선 후기의 학자 홍석모(洪錫謨 1781~1857)는 자신의 책 (東國歲時記 1849)에서 정월 대보름에 묵나물을 먹으면 다가올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기록했다. 그의 설명에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시래기를 비롯한 묵나물의 영양학적 가치는 충분하다. 채소를 삶고 말리면 엽록소의 색이 초록색에서 황록색으로 다소 칙칙하게 변하지만, 엽록소 자체는 애초에 사람의 체내로 흡수되어 이용되는 영양성분이 아니다. 비타민B군, 비타민C와 같은 수용성 비타민은 일부 손실되지만 지용성 비타민과 미네랄은 대부분 그대로 남는다. 농촌진흥청 식품성분표에 따르면 데친 무시래기 100g에는 단백질 4g, 탄수화물 9.8g, 지방 0.3g, 식이섬유는 무려 10.3g이 들어있다. 시래기 두 접시만 먹어도 일반적으로 권장하는 식이섬유 섭취량 25g의 절반 이상을 먹게 되는 셈이다. 그 효과가 여름까지 가지는 않을 테지만, 적어도 변비인 사람의 봄철 식탁에 시래기가 자주 놓이는 건 분명 효과가 있을 것이다.   오래 푹 삶은 다음 찬물에 담가 놓아 부드러워진 시래기는 다양한 요리에 쓰인다.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곱게 다져 넣고 갖은 양념을 하여 기름에 볶은 시래기나물은 정월대보름 식탁에 빠지지 않는 별식이다. ©Getty Images Korea 추위가 남기고 간 선물 요즘 시래기는 예전 시래기와 다르다. 과거에는 무로 김치를 담그고 남은 무청을 알뜰살뜰 말려 시래기를 만들었다. 이제는 시래기에 적합한 품종을 개발하여 따로 심는다. 시래기 전용 무 종자를 재배하여 얻는 시래기는 일반 무로 수확한 시래기보다 잎이 더 연하고 부드러운 특징이 있다. 식감이 부드러워 껍질을 벗기고 요리하는 게 번거로운 사람이 바로 조리해 먹어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잎 수가 더 많고 잘 자라는 품종을 서로 충분한 거리를 두고 심어 무청이 충분히 자라면 잘라내어 시래기를 만들고 무를 남긴다. 파종하고 45일에서 60일 사이에 수확하여 작은 무는 노지에 그냥 버려두기도 한다. 2021년 11월 29일 의 기사 제목처럼 밭에 남겨진 무가 “시래기가 미워요”라고 외칠만하다. 기사에 따르면 시래기 전용 무는 맛이 약간 맵고 일반 무에 비해 물러서 김치를 담그기에 적당치 않다. 그래서 동치미를 담그거나 채 썰어 말린 후 볶아 차로 만들거나 또는 무장아찌를 담그는 데 활용된다고 한다. 시래기는 전국 어디서나 수확해 먹지만 강원도 양구가 산지로 가장 유명하다. 산간지역인 양구군의 해안분지는 ‘펀치볼’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한국전쟁 당시 미국 종군기자가 붙인 이름이다. 음료를 담는 둥근 그릇처럼 움푹 패인 침식 분지의 지형을 가리키는 영어단어가 지역의 이름으로 아직 남아있는 것은 이곳이 그만큼 격전지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 막바지까지도 펀치볼 전투는 치열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양구 펀치볼하면 시래기를 떠올리는 사람이 더 많다. 양구라는 이름처럼 햇볕이 유난히 환한 이곳의 시래기는 맛이 좋기로 유명한데 추운 날씨가 무의 맛을 달고 순하게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채소가 추위에도 얼지 않으려면 잎과 줄기, 뿌리 속의 수분은 줄고 당분과 단맛 유리 아미노산 함량이 높아진다. 춥고 햇빛이 흐려지는 가을, 겨울에는 매운맛을 내는 풍미 물질이 더 적게 만들어진다. 겨울 배추와 무로 김장을 담그면 맛이 좋은 이유이다. 요즘이야 사시사철 시래기를 먹을 수 있지만, 시래기는 추울 때 먹어야 제맛이라고 느끼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향긋한 시래기는 알리오 올리오나 크림 파스타와도 어울린다. 시래기와 궁합이 잘 맞는 들기름 한 스푼을 넣으면 더 고소하게 즐길 수 있다. 작게 자른 시래기는 아삭하게 씹는 맛을 더해준다. ©blog.naver.com/catseyesung 부드러운 식감과 맛 일단 독특한 그 맛을 알고 나면 시래기와 안 어울리는 음식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나물, 죽, 찌개, 된장국처럼 흔한 가정식 요리에 더해 밥에도 넣으면 훌륭한 별미가 된다. 시래기를 2~3cm 길이로 썰어 들기름에 무쳐 쌀 위에 얹어 밥을 지은 다음 파, 마늘, 고춧가루를 넣어 만든 양념장을 얹어 비벼 먹으면 구수한 향기가 입속에 가득 채워진다. 저탄고지나 키토제닉 다이어트가 유행하면서 곡물 중심의 식단이 마치 건강을 위협하는 악당인 것처럼 오해하는 사람도 제법 많다. 하지만 농사를 짓고 곡물 위에 문명을 세운 인간이 이제 와서 곡물을 무시하고 폄하하는 건 부당하다. 지구상 여러 지역에서 밀, 쌀, 감자, 카사바 같은 복합 탄수화물 위주의 식품을 주식으로 하고 밋밋한 맛의 주식을 더 먹을 수 있도록 부식을 곁들이는 식문화는 농경 사회의 공통적 특징이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다. 시래기밥을 한입 먹는 순간 탄성이 나온다. 마치 밥에 숨어있었다는 듯이 감칠맛과 풍미를 뽑아내는 시래기의 맛. 말랑한 밥알과 함께 아작아작 씹히는 시래기의 대비되는 식감이 혀끝에 전달해 주는 재미. 한 숟갈 넘길 때마다 긴 여운이 느껴진다. 밋밋한 맛이었던 밥이 시래기를 만나 은은한 풍미를 주는 음식으로 변모한다. 시래기밥으로 소박한 한 끼를 맛보면 곡물 음식에 대한 잘못된 공격을 당장 멈추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바닥에 무를 깔고 만든 시래기 고등어찜은 또 어떤가. 비슷한 풍미 성분을 공유하는 식재료를 함께 요리하면 잘 어울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헤어졌던 시래기와 무가 다시 만나 이뤄내는 풍미 조합이라니. 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 돼지고기 김치찜에 시래기를 더해서 시래기 김치찜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일반 김치찜보다 맛이 덜 자극적이다. 생으로 먹는 채소 샐러드와 달리 따뜻한 시래기는 많이 먹어도 속이 편안하다. 이렇게 맛 좋은 시래기를 한국인만 먹을 리 없다. 이탈리아 풀리아 사람들도 순무 줄기와 잎을 귀 모양의 파스타(orecchiette)에 넣어 오일에 볶아 먹는다. 무의 줄기와 잎을 잘 씻어서 생것 그대로 파르메산 치즈, 마늘, 올리브유, 잣과 함께 갈아 무청 페스토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익히지 않고 무청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톡 쏘는 맛이 있다. 견과류를 조금 더하면 맛이 약간 부드러워진다. 먹을 수 있는 한 식재료를 버리지 않고 아껴 쓴다는 건 예로부터 세계 공통의 법칙이었을 것이다. 과거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이었던 시래기가 이제는 모두가 즐기는 별미로 자리 잡으면서 원래보다 더 부드러운 식감과 맛으로 재탄생했다. 16세기 가난한 이탈리아 농민이 먹을 것이 없어서 만들어 먹은 옥수수죽 폴렌타(polenta)가 현대에 와서는 미식가가 즐기는 요리가 된 것과 유사하다. 이제 한층 부드럽고 맛있어진 시래기를 더욱 즐기면서도 이 독특한 식재료의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정재훈(Jeong Jae-hoon 鄭載勳) 약사, 푸드 라이터 신혜우(Shin Hye-woo 申恵雨) 일러스트레이터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한국어 기원 단어들

Focus 2022 SPRING 2054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한국어 기원 단어들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한국어 기원 단어들 영어권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전 중 하나로 인정받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지난 2021년 9월, 한국어 기원 단어 26개가 표제어로 새롭게 추가되었다. 고려대학교 신지영 교수가 이번 등재 과정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경험과 의견을 들려준다. 2021년 9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한국어 기원 단어 26개가 표제어로 새롭게 추가되었다. 1928년 초판 간행 이후 이번 업데이트 전까지 등재된 한국어 기원 단어는 총 24개에 불과해 최근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세계적으로 크게 높아진 결과로 해석된다. © 셔터스톡 2021년 5월 어느 날, 옥스퍼드대학의 조지은(Jieun Kiaer 趙知恩) 교수에게서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거의 매주 스카이프로 연구 회의를 하고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라 그의 이메일이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매우 흥미로운 제안이 담겨 있었다. 그는 4월 초,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로부터 자문 요청을 받았는데 함께할 의향이 없는지 내게 물었다. OED에 새로 등재될 한국어 기원 단어를 검토하고 자문하는 일이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곧바로 함께하고 싶다고 답장을 보냈다. 조지은 교수는 내 답장을 받고 OED의 월드 잉글리시 담당 편집자인 다니카 살라자르 박사(Dr. Danica Salazar)에게 이메일을 보내 필자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할 것을 권고했다. 살라자르 박사는 이어 함께 일할 수 있게 되어 기쁘고 감사하다는 메일을 내게 보내 주었다. 그렇게 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신나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두 개의 PDF 파일 자문을 수락한 후 질문이 담긴 두 개의 PDF 파일을 전달받았다. 살라자르 박사가 작성한 첫 번째 파일은 2021년 9월 업데이트에 때 포함될 한국어 기원 단어가 두 개의 표로 정리되어 있는 2쪽 분량의 문서였다. 두 개의 표 중 하나에는 새로 등재될 표제어의 목록과 의문 사항이, 다른 하나에는 이미 등재되어 있는 표제어 중에서 수정이 필요한 표제어의 목록과 이에 대한 질문이 내용이 담겨 있었다. 두 번째 파일은 어원 담당자 카트린 디어(Katrin Their)가 보낸 6쪽 분량의 문서였다. 옥스퍼드 사전은 학술 사전의 성격이 강해서 표제어에 대한 어원 정보부터 방대한 예문은 물론 다양한 언어학적 정보를 다층적으로 담고 있다. 따라서 해당 언어를 알지 못하고 영어로 된 문서만을 기초로 외국어 기원 단어의 어원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어렵고도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어원은 해당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전문가의 자문이 꼭 필요한 영역이다. 어원 담당자의 질문은 매우 구체적이었고, 확인하고자 하는 바도 명료했다. 자신이 접근할 수 있는 자료를 기반으로 판단한 내용이 맞는지 틀렸는지, 틀렸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어떻게 틀렸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어원을 알기 어려운 경우와 그와 관련하여 궁금한 사항들을 조밀하게 물었다. 한국어를 모르면서 어떻게 이렇게 추론해 낼 수 있었을까 놀라웠다. 엉뚱하게 추론한 경우도 있었는데, 자문위원으로서 보완해 줄 수 있어 보람을 느꼈다. 이 파일들을 열어보고 가장 놀랍고 반가웠던 것은 등재 예정 표제어의 규모였다. 무려 26개나 되는 표제어가 새로 등재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옥스퍼드 사전에 한꺼번에 이처럼 많은 한국어 기원 단어가 올라가게 된 것은 그야말로 일대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려 60만 개가 넘는 표제어 가운데 겨우 26개로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142년에 걸친 이 사전의 간행 역사에서 한국어 기원 단어가 이제까지 언제 얼마나 등재되었는지 돌아본다면 흥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aegyo, n. and adj. A. n. Cuteness or charm, esp. of a sort considered characteristic of Korean popular culture. Also: behaviour regarded as cute, charming, or adorable. Cf. KAWAII n. B. adj. Characterized by ‘aegyo’, cute, charming, adorable. banchan, n. In Korean cookery: a small side dish of vegetables, etc., served along with rice as part of a typical Korean meal. bulgogi, n. In Korean cookery: a dish of thin slices of beef or pork which are marinated then grilled or stir-fried. chimaek, n. In South Korea and Korean-style restaurants: fried chicken served with beer. Popularized outside South Korea by the Korean television drama My Love from the Star (2014). daebak, n., int., and adj. A. n. Something lucrative or desirable, esp. when acquired or found by chance; a windfall, a jackpot. B. int. Expressing enthusiastic approval: ‘fantastic!’, ‘amazing!’ C. adj. As a general term of approval: excellent, fantastic, great fighting, int. Esp. in Korea and Korean contexts: expressing encouragement, incitement, or support: ‘Go on!’ ‘Go for it!’ hallyu, n. The increase in international interest in South Korea and its popular culture, esp. as represented by the global success of South Korean music, film, television, fashion, and food. Also: South Korean popular culture and entertainment itself. Frequently as a modifier, as inhallyu craze, hallyu fan, hallyu star, etc. Cf. K-, comb. form Forming nouns relating to South Korea and its (popular) culture, as K-beauty, K-culture, K-food, K-style, etc.Recorded earliest in K-POP n. See also K-DRAMA n. K-drama, n. A television series in the Korean language and produced in South Korea. Also: such series collectively. kimbap, n. A Korean dish consisting of cooked rice and other ingredients wrapped in a sheet of seaweed and cut into bite-sized slices. Konglish, n. and adj. A. n. A mixture of Korean and English, esp. an informal hybrid language spoken by Koreans, incorporating elements of Korean and English.In early use frequently depreciative. B. adj. Combining elements of Korean and English; of, relating to, or expressed in Konglish.In early use frequently depreciative. Korean wave, n. The rise of international interest in South Korea and its popular culture which took place in the late 20th and 21st centuries, esp. as represented by the global success of Korean music, film, television, fashion, and food ;= HALLYU n.; Cf. K- comb. form. manhwa, n. A Korean genre of cartoons and comic books, often influenced by Japanese manga. Also: a cartoon or comic book in this genre. Cf. MANGA n.2Occasionally also applied to animated film. mukbang, n. A video, esp. one that is livestreamed, that features a person eating a large quantity of food and talking to the audience. Also: such videos collectively or as a phenomenon. noona, n. In Korean-speaking contexts: a boy’s or man’s elder sister. Also as a respectful form of address or term of endearment, and in extended use with reference to an older female friend. oppa, n. 1.In Korean-speaking contexts: a girl’s or woman’s elder brother. Also as a respectful form of address or term of endearment, and in extended use with reference to an older male friend or boyfriend. 2.An attractive South Korean man, esp. a famous or popular actor or singer. samgyeopsal, n. A Korean dish of thinly sliced pork belly, usually served raw to be cooked by the diner on a tabletop grill. skinship, n. Esp. in Japanese and Korean contexts: touching or close physical contact between parent and child or (esp. in later use) between lovers or friends, used to express affection or strengthen an emotional bond. trot, n. A genre of Korean popular music characterized by repetitive rhythms and emotional lyrics, combining a traditional Korean singing style with influences from Japanese, European, and American popular music. Also (and in earliest use) as a modifier,as in trot music, trot song, etc.This genre of music originated in the early 1900s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of Korea. unni, n. In Korean-speaking contexts: a girl’s or woman’s elder sister. Also as a respectful form of address or term of endearment, and in extended use with reference to an older female friend or an admired actress or singer. 그야말로 대박! 옥스퍼드 사전의 첫 번째 완결본이 나온 시기는 본격적으로 사전을 만들기 시작하고 49년이 지난 뒤였다. 1928년 간행된 12권 분량의 초판에는 약 41만 4천 8백 개의 표제어와 182만 개 이상의 보기 인용문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 사전에는 한국어 관련 표제어는 하나도 없었다. 한국과 관련 지을 수 있는 표제어가 이 사전에 처음 등재된 것은 초판의 추가본이 출간된 1933년이었다. ‘Korean’과 ‘Koreanize’가 그것이다. 이후의 추가본에도 몇 개의 단어가 더 등재되었다. 1976년에는 ‘gisaeng(궁중이나 지방 관청에 소속되어 노래와 춤 등 연희를 담당하던 여성)’, ‘Hangul(한국의 고유 문자)’, ‘kimchi(배추에 여러 가지 양념을 섞어 발효시킨 음식)’, ‘Kono(한국의 보드 게임)’, ‘myon(면: 행정구역 단위)’, ‘makkoli(전통주의 한 종류)’ 등 6개가, 1982년에는 ‘sijo(전통 성악 형식 또는 3행으로 이루어진 정형시)’, ‘taekwondo(전통 무술의 한 가지)’, ‘won(화폐 단위)’, ‘yangban(전통 사회의 지배 계층)’, ‘ri(행정구역 단위)’, ‘onmun(한글을 낮춰 부른 이름)’, ‘ondol(전통 가옥의 바닥 난방 시설)’ 등 7개가 올랐다. 그 결과 1989년에 간행된 2판에는 총 15개의 한국어 기원 단어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한국어 기원 단어가 다시 등재된 것은 21년이 지난 2003년이었다. 이때 포함된 단어는 ‘hapkido(근대 무술)’였다.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2011년에는 ‘bibimbap(밥에 여러 가지 채소, 고기를 섞어 비벼 먹는 음식), 2015년에는 ‘soju(증류주의 일종)’와 ‘webtoon(플랫폼 매체에 연재되는 만화)’, 2016년에는 ‘doenjang(된장)’, ‘gochujang(고추장)’, ‘K-pop’, 2017년에는 ‘chaebol(재벌)’, 그리고 2019년에는 북한의 통치 이념인‘Juche(주체)’가 올라갔다. 이처럼 2021년 9월 업데이트 이전까지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한국어 기원 단어는 모두 24개에 불과했다. 그러니 한꺼번에 26개나 올라가게 된 것은 살라자르 박사의 표현대로 “Daebak(대박)!”이 아닐 수 없었다. 실제로 이번에 새로 등재된 표제어 가운데 ‘daebak’이 포함되어 있다. ‘뜻밖에 얻은횡재’또는 ‘대단히 멋진 일’ 같은 의미를 지닌 이 말이 그만큼 해외에서도 널리 알려졌다는 말이다. 그리고 ‘hallyu’ 및 그와 같은 의미를 가진 영어 단어 ‘Korean wave’가 동시에 채택되었고, ‘K-drama’, ‘mukbang’, ‘oppa’ 같은 단어들의 등재도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의 국제적 위상이 크게 높아졌음을 확실히 보여 준다. 또한 재미있는 사실은 이제까지 한국식 영어로 비하되었던 ‘fighting’이나 ‘skinship’ 같은 단어들이 ‘Konglish’와 함께 등재되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질문 옥스퍼드 측에서 자문을 얻고자 하는 내용은 다양했다. 새로 등재될 단어에 대한 것도 있었지만, 이미 등재되어 있는 단어 중에서 수정이 필요한 12개 단어에 대한 자문도 포함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1976년 추가본에 등재된 ‘gisaeng’의 음절 경계(syllable boundary) 정보를 요청하거나 ‘kimchi’의 어원을 물었다. 가장 많은 질문은 단어의 구조에 대한 것이었다. ‘반찬’의 ‘반’과 ‘김밥’의 ‘밥’이 서로 관계가 있는 말인지에 대한 질문처럼 단어가 어떤 의미 조각으로 나누어지는지, 또한 각 의미 조각의 어종(origin)이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또한 등재 예정 단어에 대한 자신의 분석 내용이 맞는지 검토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고, 일부 단어의 경우는 한국어에서의 용법을 묻기도 했고, 남북한의 차이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또한‘오빠’가 남자 친구를 의미하는 것처럼 ‘누나’도 여자 친구를 의미하는가와 같은 재미있는 질문도 있었다. 자문 과정에서 내가 새롭게 알게 된 정보도 있었다. ‘PC방’ 관련 질문 중 그곳에서 음식을 파는지 궁금해했다. PC방에서 컵라면 정도 파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나는 컵라면을 음식이라 할 수 있을까 내심 고민하면서 검색을 해 보았다. 그 결과 요즘 PC방에서는 ‘피시토랑(PC+restaurant)’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음식을 판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검색한 이미지를 갈무리한 후 주석을 달아 보내 주었다. 질문에 답하기 위해 블로그 글에서부터 논문까지 다양한 자료를 두루 참고했다. 자문위원으로서 질문을 받지 않았다면 그냥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많은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된 후에는 조지은 교수와 조율하여 최종 답변을 만들었다. 그리고 담당자에게 우리의 답을 전달했다. 몇 가지 추가 질문이 오간 후에 자문은 마무리되었다.   dongchimi, n. In Korean cuisine: a type of kimchi made with radish and typically also containing napa cabbage, spring onions, green chilli, and pear, traditionally eaten during winter. Cf. KIMCHI n.     galbi, n. In Korean cookery: a dish of beef short ribs, usually marinated in soy sauce, garlic, and sugar, and sometimes cooked on a grill at the table.     hanbok, n. A traditional Korean costume consisting of a long-sleeved jacket or blouse and a long, high-waisted skirt for women or loose-fitting trousers for men, typically worn on formal or ceremonial occasions. © MBC     japchae, n. A Korean dish consisting of cellophane noodles made from sweet potato starch, stir-fried with vegetables and other ingredients, and typically seasoned with soy sauce and sesame oil. Cf. cellophane noodle n.     PC bang, n. In South Korea: an establishment with multiple computer terminals providing access to the internet for a fee, usually for gaming.     tang soo do, n. A Korean martial art using the hands and feet to deliver and block blows, similar to karate. © 국제당수도연맹   표제어의 조건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그간 한국어 기원 단어가 옥스퍼드 사전에 별로 없었을까? 그런데 왜 이번에 기존의 단어 수보다 더 많은 단어들이 한꺼번에 올라가게 되었을까? 사전에 올릴 단어는 누가 어떻게 결정할까? 이렇게 많은 단어가 올라간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까? 그럼 앞으로는 어떨까? 한마디로 말하면 이번에 등재된 단어들은 한류의 세계적인 영향력을 그대로 보여 준다. K-pop팬들이 인기 아이돌 그룹 멤버를 부르는 호칭어로 사용하면서 알려지게 된 ‘오빠, 언니, 누나’와 팬들이 아이돌에게 요구하는 ‘애교’는 다국적 팬들 사이에서 공통어가 되었고 이 말들이 범위를 넓혀 사용되다가 사전에 오르게 된 것이다. 한국 드라마와 먹방 콘텐츠, 그리고 한국 대중 가요가 국제적으로 주목받게 되면서 ‘K-드라마’와 ‘먹방’, ‘트로트’가 영어에 편입되었고, 2015년에 등재된 ‘웹툰’과는 별도로 ‘만화’도 올라가게 되었다. 또한 비속어로 치부되어 국내에서는 사전에도 오르지 못한 ‘먹방’과 ‘치맥’이 옥스퍼드 사전에 먼저 오르는 신기한 일도 목격하게 되었다. 한류가 일기 전, 60만 개의 표제어를 가진 옥스퍼드 사전에 단지 24개의 표제어만이 한국과 관련된 단어였다는 사실은 영어권에서 한국 문화의 영향력이 미약했고, 영어 문헌에 한국어 기원 단어가 그다지 등장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과소 대표된 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등재어가 되려면 편집자의 눈에 자주 띄어야 하고, 문헌에서 일정 기간 이상 꾸준히 확인되어야 하며, 그 단어가 기대되는 맥락에서 사용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떨까? 사실 26개 표제어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 단어들이 등재된 것은 그 이전 최소 15~20년 이상 꾸준히 사용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력은 이번 등재 단어들이 관찰되기 시작하였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의 경우와 같이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확산되는 한국 문화 콘텐츠는 세계인의 귀에 곧바로 한국어를 들려주고 있다. 그렇게 한국어는 더욱 널리 퍼져 나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 필자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유다. 신지영(Shin Ji-young 辛志英)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사유의 시공간에 이르는 여정

Image of Korea 2022 SPRING 2053

사유의 시공간에 이르는 여정 사유의 시공간에 이르는 여정   © 지안 입구는 좁고 통로는 어둡다. 어둠 속에서 스며 나오는 빛은 좀처럼 조도를 높이지 않는다. 시간의 발걸음이 느려진다. 왼쪽 벽에서 희뿌연 빛이 기척을 보낸다. 광대하고 단단한 무언가가 누워 있다. 거대한 돌, 혹은 얼음이 아주 느린 속도로 형체를 분간할 수 없는 물이 되고, 물은 더욱 느리게 수증기로 피어올라 온 세상이 되었다가 다시 돌로 굳어진다. 장 쥘리엥 푸스(Jean-Julien Pous)의 비디오 작품이 환기시키는 완만한 우주적 순환의 ‘세례’를 거쳐 우리는 마침내 ‘사유의 방’에 들어선다. 오감이 깨어난다. 전신의 모공이 조금씩 열리고 내면의 공간이 무한대로 넓어진다. 깨어남과 고요함이 하나가 되는 시간, 부지불식간에 바닥이 조금씩 높아지며 저 어둠과 밝음이 만나는 타원형 지평에 신비스러운 두 존재가 떠오른다. 그들 사이의 가까우면서도 먼 공간 속으로 사유의 여정이 시작된다. 서로 닮았으면서도 서로 다른 두 반가사유상이 교환하는 신비의 미소가 거기 있다. 남산을 등지고 한강을 앞에 눕힌 용산 공원 숲속에 자리한 국립중앙박물관이 건축가 최욱(Choi Wook 崔旭)과 브랜드 스토리 전문팀에 의뢰하여 야심차게 기획하여 2021년 11월 일반에 개방한 공간이 바로 이 방이다.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이 우선 머리에 떠올리는 상징이 라면 이제 서울의 국립박물관을 찾는 이들은 ‘사유의 방’과 그 안에서 만나는 두 구의 금동반가사유상을 가장 먼저 연상할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여인의 초상화(77 × 53 ㎝)는 16세기 초의 그림이지만, 둘 다 높이 1m가 채 되지 않는 국보 78호, 83호 금동 조각상은 그보다 1000년 가까이 앞선 6세기 후반과 7세기 전반에 제작된 신라 불교 미술의 절정이다. 이 걸작들은 이름이 함축한 두 가지 특징을 지녔다. 첫째, 서거나 앉거나 누워 있는 다른 불상들과 달리 둥근 의자에 걸터앉아 오른쪽 발을 왼쪽 무릎 위에 얹고, 앉음과 일어섬 사이의 독특한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오른쪽 손을 들어서 검지와 중지의 끝을 가볍게 턱에 댄 자세로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여 준다. 로댕의 보다 1300년 전부터 이 미륵보살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불교에서는 생로병사에 대한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이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불상도 오랜 세월이 지나 미술관에 들어오면 종교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진정한 사유는 나를 버리는 것인 동시에 나를 찾는 길이다. 이 두 반가상은 그 버림과 찾음의 사이의 미세한 진동을 신비로운 미소로 비추며 넓고 깊은 사유의 시공간을 내면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김화영(Kim Hwa-young 金華榮) 문학평론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영주, 세상의 끝과 시작

On the Road 2022 SPRING 2088

영주, 세상의 끝과 시작 영주, 세상의 끝과 시작 두 개의 큰 강의 발원지이자, 두 국가의 시작과 끝을 기억하는 땅 영주에는 헤어지는 시간을 늦추는 굽고 낮은 다리와 신비한 전설을 간직한 뜬 바위가 있다. 천혜의 자연 속에 숨겨진 깊은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보물 같은 공간이 말을 걸어온다. 경상북도 영주 무섬마을은 태백산에서 흘러내려온 두 개의 맑은 시내가 합쳐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다. 1979년 현대식 다리가 놓이기 전 이 긴 외나무다리가 물길이 동네를 휘감아 돌아 섬이 되어버린 마을과 외부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어쩌면 옛날 영주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사는 곳이 세상의 끝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주시는 한반도의 동남쪽을 차지하고 있는 경상북도의 가장 위쪽에 있다. 강원도와 맞닿아 있는 북동쪽으로는 태백산이, 서쪽 경계선을 길게 공유하고 있는 충청북도 쪽으로는 소백산이 우뚝 솟아 있다. 영주 사람들은 북쪽을 가로막은 저 높은 산들의 건너편이 궁금했을 것이다. 저 남쪽 바닷가에서부터 세계의 넓이가 궁금한 타지 사람들도 끊임없이 모여들었을 것이고, 사람들은 이곳에서 서로의 상상과 경험을 나누었으리라. 남쪽에서부터 영주로 모여든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어주었을 물길을 생각해봤다. 남한에서 가장 긴 낙동강이다. 나는 영주에 반드시 그 발원지가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정보를 찾아봤다. 짐작대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1454)에 “낙동강의 근원은 태백산 황지, 문경 초점, 순흥 소백산이며, 그 물이 합하여 상주에 이르러 낙동강이 된다.”고 적혀 있었다. 이 기사에서 ‘순흥’이 바로 영주 일대의 옛 이름이다. 그뿐 아니라 놀라운 정보를 하나 더 얻었다. 영주에는 낙동강뿐 아니라 한강의 여러 작은 발원지들 가운데 하나도 있었다. 한강은 동에서 서로 흐르는 강이라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뜻밖의 정보였다. 한반도 남쪽의 중요한 두 강이 모두 이 곳에서 흘러나왔으니 영주는 세상의 시작이기도 한 셈이었다.오후 늦게 서울을 벗어나 두 시간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저 멀리 죽령터널 입구가 보였다. 죽령터널은 소백산 아래를 뚫어 충북과 경북을 이은 4,600미터짜리 긴 관문이다. 터널 저쪽이 바로 영주라는 걸 알고 있어 다른 세계로 들어서고 있다는 게 실감났다. 17세기 중엽 비옥한 토지가 사람들을 불러 모아 조성된 무섬마을에는 현재 40여 호의 고가옥이 남아 1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로 반남 박씨와 예안 김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외나무다리가 굽은 이유 나는 영주 남쪽의 무섬마을로 향했다. 강물이 크게 굽어지는 안쪽, 마치 강줄기를 밀어내며 혹처럼 툭 불거진 육지에 오래된 마을이 있었다. 이런 지형에 형성된 마을을 물돌이 마을이라고 한다. 마을 앞과 양옆은 물길이 감싼 채 휘돌고 뒤로는 산이 막고 있어 그야말로 섬이나 다름없다. 완벽히 고립된 곳에 마을이 형성된 이유는 이런 지형이 거주민들에게 좋은 기운을 준다는 풍수학적 믿음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자급하며 살 수 있을 만큼 넓고 기름진 땅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이 마을을 세상에 널리 알린 건 강을 가로질러 놓인 외나무다리다. 강은 여름 장마철만 아니면 두 발로 건너다닐 수 있을 만큼 얕은데, 그렇다고 옷을 적실 수는 없으니 간단하게나마 다리를 놓은 것이다. 모래톱과 얕은 물에서 고작 1미터나 떠 있을까? 외나무다리의 폭은 남자 어른 손으로 두 뼘이 될까 말까 했다. 희한하게도 다리는 강을 직선으로 가로지르지 않고 커다란 S자 형태로 늘어져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알 길이 없었으나 보기에는 무척 아름다웠다. 사진에 담아두고 오래 추억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어 남녀노소에게 인기이고, 드라마나 방송에도 소개되어 끊임없이 관광객을 불러들인다고 했다. 나는 사람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호젓하게 즐길 생각으로 일찍 도착했다. 나처럼 서둘러 움직이는 사람이 없진 않았다. 외나무다리 위에 앞뒤로 서서 느릿느릿 건너는 한 커플이 있었다. 나는 그들이 카메라 앵글에서 빠져나가길 기다리며 다리를 굽이지게 설치한 이유에 대해 내내 생각했다. 장마 때문에 물살이 거세지면 쉽게 무너진다고 했다. 지금이야 북쪽으로 멀지 않은 위치에 차량이 다닐 수 있을 만큼 큰 다리가 놓여 있으나 그것이 없던 시절에는 유일한 통로였을 것이다. 한번 물살에 휩쓸려버리면 다시 설치하기가 무척 번거로울 게 뻔하고 불어난 강의 물살을 이겨내도록 단단하게 놓을 기술도 없었을 것이다. 필요에 따라 자주 다시 놓지 않으려면 재료도 아낄 겸 직선으로 놓는 게 아무래도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고택과 정자로 가득한 무섬마을의 가옥 중 16동은 조선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으로 잘 보존돼있다. 아직은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아 옛 선비 고을의 고요한 정취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혹시나 그저 미관상의 이유 때문이었을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리를 건너봤다. 한 가닥 외나무다리에는 곳곳에 다리의 폭만큼 짤막하게 옆으로 덧대 놓아 두 가닥이 되는 곳이 있었다. ‘비껴다리’라고 불리는 구조물이었다. 어쩌다 사람과 마주치게 되면 잠시 비켜서서 양보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놓은 것이었다. 사려 깊고 합리적인 사고에 감탄하는 한편으로는 바로 그 점 때문에 S자로 길게 구부려 놓은 비효율적 형상이 더욱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마을로 들어서자 잘 보존된 전통 가옥들이 한눈에 가득 담겼다. 19세기 말까지도 120여 가구에 500여 명이 살았을 만큼 큰 마을이었다. 마을을 대표하는 몇몇 기와집들의 크기와 모양만 봐도 그저 잠시 사람들이 거주했던 섬이 아니라 하나의 이상적인 소도시쯤으로 봐야 할 것 같았다. 이곳에서 수많은 학자와 선비가 배출되었고 독립유공자만도 다섯 명이라니 처음 터를 잡은 사람의 안목과 뜻이 새삼 가슴 깊이 다가왔다. 돌담과 흙길을 따라 걷다가 무섬마을 자료 전시관에 들어섰다. 마당에 한 시인을 기리는 시비가 세워져 있었다. 조지훈(Cho Chi-hun 趙芝薰 1920~1968). 학창시절 교과서를 펼치고 그의 시 「승무(僧舞 The Nun's Dance)」를 소리 내어 읊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섬은 그의 처가였고 그가 이곳에서 남긴 시 「별리(別離)」가 커다란 바위에 아내이자 서예가인 김난희(金蘭姬 1922~)의 필치로 깊게 새겨져 기념되고 있었다. 남편이 집을 나서 어디론가 떠나는 상황을 새색시의 눈으로 그린 시였다. 아내는 남편의 뒷모습을 마루의 큰 기둥 뒤에서 몰래 지켜보며 눈물로 옷고름을 적신다. 아마 이 여인의 남편도 외나무다리로 강을 건넜으리라.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문득 외나무다리의 S자 모양이 이해되는 듯했다. 가족을 남겨두고 마을을 나서던 무수한 사람들은 쉽게 발길을 뗄 수 없었다. 돌아올 기약 없이 떠나 가야만 하는 마음이 무거워 차마 강을 훌쩍 건너버리지 못했고, 한 번쯤은 돌아보고 싶어도 남아서 그 모습을 볼 이의 가슴이 더 미어질 것을 염려해 눈물을 삼키며 걸었다. 보내는 이도 기둥 뒤에 몸을 숨겨 떠나는 이의 마음에 짐이 되지 않으려 애썼다. 그나마 길게 굽이져 놓인 다리가 강을 건너는 시간을 늦춰주니 서로 위안으로 삼았다. 나는 시 속의 남편이 한 걸음 한 걸음 아껴 디디며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의 머리 위로 흰 구름이 무심히 피었다 지고, 아득히 멀리서 떠내려온 작은 잎사귀는 발 아래 잠시 머물지도 않고 스쳐 흘러가버린다. 열린 왕조와 닫힌 왕조 시내로 돌아와 영주의 중심가를 돌아봤다. 도심 인근에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의 고향집이 있었다. 정도전은 조선왕조 창업의 기틀을 설계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한 국가의 초석을 놓은 사람이 큰 강들의 발원지를 품은 영주에서 자랐다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그의 고향집은 세 명의 판서를 배출했다 해서 ‘삼판서 고택’이라고 불렸다. 비록 원래 있던 자리에서 수해를 당해 무너진 것을 옮겨다 복원해놓았다 해도 한 국가의 통치 이념을 성립하고 대를 이어 고위 관리를 배출해 낸 가문의 위세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서천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바위벽의 마애여래삼존불상은 통일신라시대 조각 양식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불상으로 평가된다. 발견 당시 불상 세 구의 양 눈이 모두 정으로 쪼아 파져 있었지만, 큼직한 코나 꾹 다문 입, 둥글고 살찐 얼굴에 힘찬 기상이 배어 있다. 시내 중심가로 들어가 영주 근대문화거리를 둘러보다가 완만한 언덕길을 올라 숭은전에 이르렀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 재위 927~935)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그가 고려에 항복하러 개성으로 가던 길에 이곳에 머물렀던 인연이 이어진 것이라 전해지고 있었다. 나는 방금 하나의 왕조를 열었던 혁명적 사상가를 만나고 온 길이었고 이제는 천 년을 이어 오다 멸망한 자신의 나라를 새로운 왕조에 바칠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임금을 만나는 중이었다. 국운이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상황에서 백성들의 목숨을 지키고자 어쩔 수 없이 내린 결단이었다고 한다. 영주는 경순왕의 그런 애민정신을 기리며 그를 신으로 모시고 있었다. 숭은전 앞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며 용이 이 자리에 떨구었을 눈물을 생각하는 중에 겨울 해는 또 빠르게 기울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인데도 부석사에 오르는 사람들이 더러 보였다. 부석사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란 이름으로 통도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긴 오르막길과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아름답고 웅장한 건축물들을 감상하던 중에 이마에 땀이 맺히고 숨이 차올랐다. 그러나 나를 비롯해 앞뒤에서 걷고 있는 관광객들은 조금도 불평하지 않았다. 공중에 떠다니며 도적떼를 물리치고 내려앉았다는 바위를 보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잠시의 불편쯤이야 전설이 깃든 신비의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기꺼이 치를 수 있는 대가인 셈이었다. 그 전설적 바위 곁에 부석사가 지어지던 676년은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제압하고 삼국을 통일할 만큼 강성하던 때다. 불교가 국교로 그만큼 큰 지원을 받던 시기였기에 부석사의 규모나 위상은 특별했다. 그런 나라가 약 250년 뒤에는 남의 손에 넘어갔다. 복잡한 생각에 잠겨 드디어 108개의 계단을 모두 지나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무량수전 앞에 섰을 때, 내 머릿속에서 왕조의 흥망성쇠 따위는 어느새 하얗게 지워지고 없었다. 무량수전을 마주하고 왼쪽에 바로 그 뜬 돌, ‘부석’이 있었다. 조선 영조 때 편찬된 인문지리서 『택리지』(擇里志 1751)에는 바위 아래로 밧줄을 밀어넣고 훑어도 걸리는 데가 없다고 적혀 있다.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부석사 뒤편의 화강암 일부가 판상절리에 의해 떨어져 나와 경사면을 따라 미끄러지다가 잔돌들 위에 얹혀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 눈에는 어른 스무 명쯤 둘러앉을 수 있을 크기의 테이블 같았다. 속세의 잣대로 절의 창건설화를 재고 있자니 어디선가 고양이가 나타나 부석과 나 사이에 끼어들었다. 경계심 없이 느리고 게으른 걸음걸이에서 일종의 핀잔이 읽혔다. 고양이가 나타났던 방향의 반대편으로 사라지고서야 나는 무심결에 도서관 책벌레 짓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불교에서는 삼라만상에 불성이 깃들어 있다고 하던데 내게 깨우침을 준 고양이에게서 혹시 부처를 만난 건 아닐까. 부석사 범종루에 오르면 앞으로 펼쳐진 절의 전경과 그 너머 소백산맥이 구비구비 절경을 이룬다. 부석사는 676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에 창건된 이래 이제까지 법등이 꺼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온 한국의 대표적 불교 사찰이다. 2018년 다른 여섯 개 사찰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범종루는 안양루와 함께 부석사에 있는 2개의 오래 된 누각 중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사찰의 범종루는 사찰 마당 가장자리에 자리하지만, 이곳의 범종루는 경내 중심축에 당당히 위치하고 있다. 사물이 배치되어 하루 두 번 이들을 두드리며 중생의 평안을 비는 예식의 장소이기도 하다. 순환을 포용하는 공간 오후에는 강원도 방향으로 난 고개, 마구령을 넘어 남대리의 산간마을을 다녀왔고 다시 부석사 아래로 돌아와 소수서원을 둘러봤다. 남대리는 조선의 6대 왕 단종(端宗 재위 1452~1455)이 삼촌인 세조(世祖 재위 1455~1468)의 손에 폐위되어 유배길에 올랐을 때 머물렀던 곳이며, 바로 거기에 한강의 영남 발원지가 있다. 소수서원은 학자를 양성하던 조선시대 최고의 지방 사립 교육기관인데 ‘한국의 서원’이란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아홉 곳 중 하나다. 최초로 임금이 그 이름을 내려준 서원이며 한반도에 처음 성리학을 전파한 안향(安珦 1243~1306)을 비롯해 많은 유학의 거목들을 모시고 있다. 소수서원 주위의 둘레길은 자연과 어우러진 오래 된 서원의 경관을 풍취를 즐기기에 좋은 산책코스다. 수령이 300년에서 많게는 1000년에 이르는 소나무를 포함해 적송 수백 그루가 자라고 있다. 1542년 설립된 소수서원은 한국 최초의 서원으로 2019년 다른 여덟 곳의 서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용한 산사 성혈사에는 아름다운 건물 나한전이 있다. 단청을 입히지 않아 단아하면서도 더욱 그윽한 품위를 느끼게 하는 나한전의 세 칸 연꽃과 연잎, 두루미, 개구리, 물고기 등 상징적 문양이 정교한 솜씨로 새겨져 있다. 영주의 곳곳을 다녀 볼수록 그 독특한 면모가 감탄스러웠다. 한 국가의 설계자가 난 곳이면서 사라진 왕조의 마지막 임금을 기리고 있는가 하면, 서원을 통해 수많은 학자와 정치가를 배출한 곳인데 권력 투쟁에서 밀려난 어린 왕의 여린 발자국이 남은 곳이기도 했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순환을 반복해서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영주가 자랑하는 인물인 송상도(宋相燾 1871~1946) 선생을 통해 발원과 회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의 호를 붙여 엮은 저서 『기려수필』(騎驢隨筆 1955)에는 식민지 시기에 전국 각지에서 항일투쟁을 했던 한국인들의 이모저모가 아주 자세히 기록돼 있다. 선생은 봄에 영주를 떠났다가 겨울이면 한껏 초췌해진 몰골로 돌아왔다고 한다. 식민지 주민으로 점령국에 맞서는 일에 대해 캐고 다니는 게 발각되기라도 하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다. 그는 이곳저곳에서 들은 얘기들을 깨알 같은 글씨로 종이에 기록하고 그 종이를 새끼처럼 꼬아 봇짐의 멜빵으로 만들었다. 덕분에 검문을 당하더라도 화를 피할 수 있었다. 그렇게 1910년 이후 수십 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애국지사들의 유가족을 만났고 사건 당시의 신문기사와 같은 객관적 자료를 조금씩 수집했다. 송상도 선생의 사례에 이르러 나는 뜻을 품고 바깥 세계로 나갈 때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를 되새기게 되었다. 무섬마을에 가족을 남겨두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던 사람들의 단단한 각오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포용과 포섭이었다. 세상 모든 것의 발원지인 동시에 그 어떤 것도 회귀할 수 있는 피안의 공간이고자 하는 것이 영주에 깃들어 있는 정신이었다. 마지막 날 아침, 나는 서울로 돌아올 채비를 할 때까지도 평생을 바쳐 나라를 다시 일으킬 불씨를 모으던 어느 선비의 행로를 생각했다.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의 여정을 그대로 따르지는 못할지언정 고속도로를 타고 휑하니 돌아가는 건 어딘가 송구했다. 나는 옛 죽령 고갯길로 방향을 잡았다. 가파르고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 도로를 운전하는 동안 이 험한 고개를 두 발로 넘어 영주를 떠나던 선비의 단단하고도 거대한 기개(氣槪)를 느껴보고 싶었다. 고갯마루에 올랐을 때, 나는 지금 서울로 돌아가는 것인가 아니면 영주에서 나서는 것인가 자문했다. 영주에서의 경험을 자랑할 것 같고 여러 번 다시 올 것이므로 출발로 여기기로 했다. 김덕희(Kim Deok-hee 金㯖熙) 소설가 안홍범(Ahn Hong-beom 安洪範) 포토그래퍼

고립과 자유, 세상에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

Tales of Two Koreas 2022 SPRING 2018

고립과 자유, 세상에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 고립과 자유, 세상에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 이름과 실제가 정반대인 비무장지대(DMZ)는 군사분계선 기준 남북 양방향 각 2km 폭으로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고 있는‘모순의 땅’ 이다. 남측 비무장지대 안에 위치한 유일한 민간인 거주지역 대성동 자유의 마을이 두 예술가에 의해 묵직한 시대적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으로 재해석되어 주목을 끌었다. 한국 작가들에게 ‘분단’은 피하고 싶은 주제일 수도 있다. 너무 뻔하거나, 혹은 너무 거창하기 때문일 것이다. 분단국가의 시민이라는 태생적 조건을 예술 작업으로 끌어왔을 때 딜레마에 빠지기도 쉽다. 다른 나라 작가들이 말하기 힘든 주제인 만큼 해외에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목하지만, 국내에선 “쉬운 길을 택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분단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문경원(Moon Kyung-won 文敬媛) 과 전준호(Jeon Joon-ho 全浚晧)는 이 양날의 검을 호기롭고 영리하게 빼 들었다. 2021년 9월 3일 시작해 2022년 2월 2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MMCA 현대차 시리즈 2021: 문경원·전준호 – 미지에서 온 소식, 자유의 마을’(MMCA Hyundai Motor Series 2021: News from Nowhere – Freedom Village) 전시에서 이들은 분단이라는 이슈를 홈그라운드에 과감히 펼쳐 보였다. 두 작가는 한국 미술계에서 보기 드문 아티스트 듀오다. 이들은 따로 또 같이 활동하는데 이화여대 서양화과 교수로 재직 중인 문경원은 서울에서, 전준호는 고향이자 작업 기반인 부산의 영도에서 각자의 개인 작업과 공동 프로젝트를 병행한다. 두 사람이 처음 의기투합한 2009년 이후 자본주의의 모순, 역사의 수레바퀴에 가려 희생된 개인, 기후 변화 등 여러 사회 담론과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을 다루며 예술의 역할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 왔다. 두 작가는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돼 전시를 선보이면서 국제 무대에 데뷔했다. 문경원(왼쪽)과 전준호 작가가 자신들이 협업한 이 전시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포즈를 취했다. ‘MMCA 현대차 시리즈 2021’ 로 채택된 이 작품은 영상, 설치, 아카이브, 사진, 대형 회화 그리고 연계 프로그램 진행을 위한 모바일 플랫폼으로 구성되었다. 비무장지대(DMZ) 안 대성동 마을을 주제로 하여“인류의 대립과 갈등으로 탄생한 기형적 세계를 조망하고, 팬데믹으로 단절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현재를 성찰했다”고 작가들은 설명한다. 미래에서 관찰한 현재 이번 전시 제목인 ‘미지에서 온 소식’은 이들이 공동으로 펼쳐온 장기 프로젝트이자, 다른 여러 예술가들과 함께 벌이는 협업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을 통해 두 작가는 영상, 설치, 아카이브, 출판물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통섭의 연작 전시를 진행해 왔다. 전시 제목은 19세기 후반 영국의 미술공예운동을 이끈 사상가이자 시인, 소설가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가 1890년 쓴 동명 소설에서 따왔다. 그는 꿈에서 200여 년 후의 런던을 닷새간 여행한 주인공을 등장시켜 당대의 현실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문경원과 전준호는 이 소설에서 제목뿐만 아니라 미래에 시선을 던져 놓고 그 시점에서 현재를 깊숙이 관찰하는 형식 또한 빌려왔다. 두 작가는 “우리의 미래 지향적인 설정은 미래를 진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아젠다를 논의하기 위한 설정”이라고 설명했다. 2012년 독일 카셀 지역에서 열린 5년제 현대 미술 미술 행사 ‘도쿠멘타(documenta 13)’에서 ‘세상의 저편’(The End of the World) 라는 부제로 처음 선보인 이 작품으로 두 작가는 그해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2’ 최종 수상 작가로 선정됐다. 이후 미국 시카고 예술대학 설리번 갤러리(2013), 스위스 미그로스 현대미술관(2015), 영국 테이트 리버풀(2018) 등 여러 도시에서 각기 다른 부제로 전시를 열어 화제를 모았다. 2021년 초 두 사람이 ‘MMCA 현대차 시리즈 2021’ 작가로 선정되면서 마침내 이 작품이 한국에서 대규모로 펼쳐지게 됐다. ‘MMCA 현대차 시리즈’는 국립현대미술관이 현대자동차의 후원으로 2014년부터 매년 한국을 대표하는 중진 작가한 사람을 초청해 개인전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2020년 양혜규에 이어 문경원·전준호 작가는 여덟 번째 주인공이 됐다. “이 프로젝트는 국가와 도시를 옮겨 다닐 때마다 그 지역의 정체성과 역사, 현안을 담아 왔어요. 한국이 무대가 되니 고민이 커졌습니다. 분단국가라는 클리셰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결국 그것은 한국 작가라면 꼭 다뤄야 하는 사명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에만 머물지 않고, 인류의 보편적 역사를 끌어내는 체험으로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분단을 주제로 다루게 된 배경을 전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2021, 2채널 HD 영상설치, 컬러, 사운드, 14분 35초.서로 등을 맞댄 대형 화면 2개가 각기 다른 영상을 보여준다. 작품은 전시공간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영상의 흐름에 따라 조명이 점멸하거나 음향이 흘러나오는 등의 연출이 관람객의 몰입을 돕는다. 화면 속 자유를 갈망하는 남자 A(배우 박정민)가 산을 다니며 채집할 자생 식물을 찾고 있다. 갈등이 만든 기형적 공간 작품의 배경으로 선택한 곳은 남측 비무장지대(DMZ) 내 유일한 민간인 거주지인 대성동 ‘자유의 마을’이었다. 한국의 마을 이름은 대부분 지형이나 그 마을에 깃든 전설에서 유래한다. 그런데 이 마을은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A는 바깥 세상에 나가지 못하는 대신, 식물을 채집해서 연구하고 표본을 만든다. 이 표본에 풍선을 달아 하늘로 날려보내면 반대편 화면의 ‘B’가 받는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모르는 바깥 세상에 누군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비게이션에서조차 표시되지 않는 이 마을은 1953년 한국전쟁 정전협정 이후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로 70년 가까이 바깥 세계와 단절된 채 시간이 멈춰 있는 곳이다. 1951년 시작된 정전 회담에서 남측의 대성동 마을과 북측의 기정동 마을은 각각 DMZ 내 위치한 양측의 유일한 민간인 거주지로 남도록 인정받았다. 이후 대성동은 ‘자유의 마을’, 기정동은 ‘평화의 마을’이란 이름으로 냉전시대 남북한 사이 치열한 체제 경쟁을 위한 프로파간다의 무대가 되었다. 대성동엔 현재 49가구 약 200명이 살고 있다. 한국 영토 안에 있지만 한국 정부가 아닌 UN의 통제를 받으며 사유재산이 허락되지 않는다. 이 마을 여성이 외부 남자와 결혼하면 마을을 떠나야 하지만, 외부 여성이 이 마을 남자와 결혼하면 거주권이 인정된다.두 작가는 이 마을을 한반도의 특수한 지정학적 상황이 빚어낸 독특한 장소로 한정하지 않고, 인류사 전반에서 대립과 갈등으로 인해 탄생한 기형적 세계를 상징하는 곳으로 확장한다. “처음에는 좀 더 우리의 정체성이 담긴 도시를 배경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대성동‘자유의 마을’은 우리 자신에게조차 너무 비현실적인 공간이었기에 예술의 키워드가 될 수 있었습니다.”문 작가의 말에 전 작가가 동의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어쩌면 이 마을 사람들은 현재 팬데믹 상황에 있는 우리보다 훨씬 더 재난적 상황에서 고립되어 70년을 살아왔습니다. 인류가 바이러스와 2년 넘게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지금, 이 마을의 고립은 평소와 달리 보편적인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는 키워드인 동시에 우리의 삶을 성찰하기 좋은 키워드라고 생각합니다.”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 전시는 영상, 설치, 아카이브, 사진, 대형 회화 그리고 연계 프로그램 진행을 위한 모바일 플랫폼으로 구성됐다. 전시의 뼈대를 이루는 것은 서로 등을 마주한 두 개의 대형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이다. 한쪽 면에선 영화배우 박정민(朴正民)이 서른두 살의 남성 A로 등장한다. A는 자유의 마을에서 태어나 한 번도 바깥세상에 나간 본 적이 없는 인물로, 비무장지대에 자생하는 식물을 연구하는 아마추어 식물학자다. 그는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를 외부 세계에 알리고 싶어 연구한 내용으로 식물도감을 만든 뒤 비닐 풍선에 넣어 날려 보낸다. 풍선은 시공을 뛰어넘어 반대편 스크린 속 20대 초반의 남자 B에게 전달된다. 아이돌 그룹 갓세븐 멤버 진영(珍荣)이 연기하는 B 역시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 채 평생 감옥처럼 좁은 공간에 갇혀 살고 있다. 우주선을 닮은 공간에 고립된 B의 유일한 낙은 가끔 창밖을 내다보는 것뿐이다. 어느 날 어디선가 날아온 비닐 풍선은 B의 일상을 뒤흔든다. 깊은 혼란에 빠져 며칠 동안 그저 쳐다보기만 하던 B가 마침내 용기를 내어 내용물을 꺼내 본다. 이후 B는 계속 A로부터 풍선을 받는다. 무한대의 타임 루프처럼 A와 B의 이야기가 순환된다. 이 영상들을 지나면 자유의 마을을 담은 사진들이 걸려 있다. 작가들이 국가기록원에서 사용 허가를 받은 이미지를 포토샵으로 가공했다. 문 작가는 사진들을 바라보며 작업을 회상했다. “이미지 사용 허가는 받았지만 사진 속 인물들의 익명성을 보호해야 했습니다. 때문에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거나 여러 이미지를 조합해 만든 전혀 다른 얼굴을 입히기도 했어요. 또는 포토샵으로 사진 속 인물들에게 마스크를 씌우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지금의 팬데믹 상황을 상징이라도 하는 듯, 절묘한 결과물이 나왔지요.” 이 곳을 지나 마지막 전시실로 가면, A가 식물을 찾아 헤매던 눈 덮인 숲이 거대한 캔버스 위에 펼쳐진다. 문 작가가 6개월에 걸쳐 완성한 가로 4.25m 세로 2.92m 대형 풍경화다. 얼핏 보기에 사진처럼 보일 만큼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린 이 그림은 스크린과 현실을 이어주며 가상과 실재가 뒤섞인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전시장 밖 오픈 스페이스인 서울 박스에 설치된 모바일 아고라는 이 프로젝트의 지향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즉, 고대 그리스 시대 누구나 발언할 수 있었던 광장 아고라의 개념을 현대적으로 확장해 다양한 분야의 다중 지성들이 모여 대담을 나누면서 연대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이번 전시에선 접으면 컨테이너 박스 형태가 되는 이동식 철 구조물로 제작됐다. 이곳에서 전시 기간 중 매달 한 차례 열린 대담에 배우 박정민을 비롯해 건축가 유현준(兪炫準), 생태학자 최재천(崔在天), 뇌과학자 정재승(鄭在勝) 등이 참여했다. 전시장을 나서기 직전 관객은 벽면에 적힌 영국의 비평가 존 버거(John Berger 1926~2017)의 말을 만났다. “풍경이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라기보다는 그들의 고투와 성취와 사건들을 가리는 커튼처럼 느껴진다. 커튼에 가려진 이들에게 두드러진 지표는 그저 지리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전기적이고 개인적이기도 하다(Sometimes a landscape seems to be less a setting for the life of its inhabitants than a curtain behind which their struggles, achievements and accidents take place. For those who are behind the curtain, landmarks are no longer only geographic but also biographical and personal).”전쟁의 끝에 70년간 고립되어 살아온 한 마을의 비극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자, 2022년 팬데믹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는 우리에게 두 작가가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였다. 전시장 옆 야외에 설치되었던 ‘모바일 아고라’는 조립과 변동, 이동이 가능한 큐브형 스테인리스 스틸 설치 구조물이다. 각 196 x 259 x 320 cm. 이 곳에서 전시 기간 중 매달 한 번씩 건축, 과학, 디자인, 인문학 등 분야별 전문가들이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문경원 작가가 6개월에 걸쳐 완성한 대형 회화 ‘풍경’이 영상에서 남자 ‘A’가 헤매던 어느 산속 배경을 재현했다. 캔버스에 아크릴릭과 유채, 292 x 425cm. 영상의 배경은 국가기록원이 제공한 자유의 마을 사진과 비슷한 풍경을 지닌 DMZ에 접경한 경기도 파주의 어느 지역이다. 김미리(Kim Mi-ri 金美理) 조선일보 기자(Reporter, The Chosun Ilbo) 한상무(Han Sang-mooh 韓尙武)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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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안아주는 편의점

An Ordinary Day 2022 SPRING 2035

마음을 안아주는 편의점 유동인구가 많은 도시의 여느 편의점과 달리 훤히 트인 논밭을 끼고 들어선 고층 아파트 동네 앞 편의점. 7년간 이곳을 지키는 마음씨 따뜻한 주인은 자신의 가게가 이웃 사람들의 포근한 사랑방이자, 다친 마음을 위로하는 든든한 쉼터가 되기를 바란다. 경기도 안성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정심 씨의 일과 중 중요한 부분이 하루 두 번, 주문한 제품이 잘 배송되었는지 확인하고 진열하는 일이다. 인근에 경쟁 편의점이 생기거나 코로나 19의 타격으로 고객들의 발길이 줄어도 그는 항상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자신의 가게가 동네 주민들의 쉼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아직 들판에 봄기운이 돌기 전, 경기도안성시청을 지나 왕복 이차선 도로로 들어서니 양옆으로 펼쳐 진 논에 밑동만 남은 벼 포기들이 줄지어 있다. 저수지를 지나 토현리 마을로 들어섰다. 들판에 비닐하우스, 농기계수리소, 축사, 작은 공장들이 듬성듬성 눈에 띈다.여기부터 목적지까지는 2Km, 하지만 약속시간은 50분이나 남았다. 날씨가 쌀쌀하니 뜨거운 커피 생각이 간절하다. 그러나 가도 가도 카페는커녕 구멍가게도 보이지 않는다. 민가도 없이 논만 펼쳐진 벌판 저 멀리 아파트 몇 동이 우뚝 서있다. 저기다! 속도를 높인다. 도시에서는 익숙하지만 이곳에선 낯설어 보이는 편의점이 거기 있었다. 반갑다.   이정심 씨는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단순한 계약직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정직원으로 대우한다. 덕분에 직원들은 주인 의식을 가지고 꼼꼼하게 매장을 관리하고, 친절하게 손님을 응대한다. 한결 같은 마음 ‘딸랑’– 출입문을 밀자 종소리가 울린다. “어서 오세요!” 종소리보다 맑은 목소리가 나를 반긴다. 조금은 삭막해 보였던 겨울날 들판에 서 있다가 갑자기 고급호텔에 들어선 듯하다. 귤빛 조명이 은은하게 공간을 채우고 눈앞엔 정갈하게 정돈된 와인진열대가 있다.따끈한 커피를 두 손으로 감싸고 커다란 통유리 창을 마주한 시식대에 앉는다. 한적한 논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커피 때문일까? 봄을 기다리는 들판은 더 이상 휑하거나 추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지난 해의 고된 노고를 위로하듯 평온하다. 이곳은 ‘이마트24 R안성유안점’이다. 시골동네 편의점이라면 먼지 앉은 상품이 듬성듬성 놓여 있는 초라한 진열대가 떠오르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곳은 뭔가 많이 다르다. 갖가지 일상에 필요한 상품들이 빠짐없이 빼곡하게 차있다. 과자, 즉석식품, 음료, 와인은 물론, 푸짐한 반찬을 갖춘 도시락뿐 아니라 신선식품을 비롯해 한 끼 밥상을 차리는데 부족함 없는 찬거리까지 풍성하다. 거기다 귀이개, 손톱깎이와 같은 자잘한 생활용품에 반려동물의 간식까지, 대형마트의 상품들을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동네 주민들이 시내 마트까지 차를 타고 물건을 사러 나갈 필요가 전혀 없어 보인다.“저는 무엇이든 꽉꽉 채우는 성격이에요.”이 곳의 경영주 이정심(李貞心) 씨는 말한다.“이웃들이 차를 몰고 멀리 나가지 않아도 집 가까이에서 편하고 빠르게 일상 용품을 살 수 있기를 바라요. 그래서 가능한 한 본사에서 취급하는 상품들을 종류 별로 빠짐없이 발주해요. 작은 편의점이지만 동네 이웃들에게 확실한 도움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이윤을 쫓기보다는 우선 편의를 제공하고 싶어요.”1969년 경남 남해에서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정심 씨는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언니가 살던 수원으로 올라와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우연하게도 첫 직장은 체인점을 거느린 중소규모 마트의 캐셔였다. 22살 이른 나이에 결혼해 1남 2녀를 둔 정심 씨는 2002년 가계에 도움이 되고자 교보생명에 보험설계사로 입사했다. 17년 공을 들여 영업소장까지 했고, 전국 1300여 영업소 가운데 100위 안에 들어 상도 받았다.“애들 키우며 주부로 살 때는 몰랐는데, 일을 하다 보니 저에게 고객을 대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보험 일을 처음 시작할 땐 두려웠지만, 차츰 남들만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업소장을 할 때도 뒤처지지 않았어요. 무조건 진실하고 한결같이 사람을 대했죠. 늘 고객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지녔어요. 그게 편의점을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보험 고객을 찾아다니던 정심 씨는 이제 스스로 찾아오는 고객을 맞이한다. 그는 지금도 예전의 마음가짐 그대로 껌 한 통을 사러 들어온 손님에게도 진심을 담아 인사를 건넨다. 말 한마디에 정성을 담고, 사소한 것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마음 씀씀이로 이웃들의 발길을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진심과 배려2016년 홈플러스가 운영하던 할인마트 겸 편의점 체인 ‘365플러스’를 인수한 것이 시작이었다. 오랜 보험업무로 몸과 마음이 방전됐을 즈음이었다. 지금의 절반 크기도 되지 않았던 매장의 원래 주인은 보험 고객 중 한 명이었는데, 정심 씨는 신기하게 처음부터 이 곳이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운영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정심 씨가 인수하자 이전보다 매출이 오르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밤까지 고된 나날이었지만 고객들을 만나면 힘이 생겼다. 그 기운이 삶에 생기를 불어넣었다.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정심 씨의 매장이 활기를 띠어서인지 브랜드 이미지가 높은 편의점이 인근에 들어선 것이다. 고객이 드나들 때마다 울리던 종소리 간격이 갈수록 뜸해졌다. 마음이 무거웠지만 좌절하지 않고 열과 성을 다했다. 그의 진심이 통했는지 멀어졌던 이웃들의 발길이 다시 정심 씨의 마트로 돌아오기 시작했다.“새로 연 편의점이 브랜드 인지도가 높고, 물품도 다르니까 제가 고객에게 드릴 수 있는 것들의 한계가 있었죠. 저는 그저 하던 대로 열심히 하며 고객을 기다렸어요. 6개월쯤 지나니 대부분 다시 찾아오시더라고요.”2021년, 홈플러스가 편의점 사업을 접자 정심 씨는 브랜드를 바꿔 이마트24 매장을 열었다. 마트와 나란히 있던 식당 자리까지 인수해 공간을 두 배 이상 넓혔다. 임대료도 그만큼 늘어났다. 농촌이라 고객은 한정되어 있다. 매출만 생각한다면 굳이 공간을 늘릴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정심 씨의 마음은 다른 곳을 향했다.“매장이 작아서 아쉬웠던 게 있었어요. 손님들이 도시락을 사서는, 실내에 자리가 없으니 바깥에서 먹게 되는 거예요. 그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여름에는 시원하고 쾌적한, 겨울에는 따뜻하고 아늑한 실내에 앉아서 드시게 하고 싶었죠. 매장이 두 배가 됐다고 매출이 두 배가 되는 게 아니었지만, 그게 제 꿈이었어요.”아늑한 조명 아래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실내에 대형 통유리로 시야가 확 트인 시식대는 휴양지의 전망 좋은 카페와 다르지 않다. 커피전문점에서나 볼 수 있는 커피머신이 눈길을 끈다. 컵을 올리고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커피가 내려지는 일반 편의점 기계와는 많이 다르다.“제가 만든 라떼 한 잔 드릴까요?”정심 씨가 커피 머신 앞에 선다.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린다. 순간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김이 퍼진다. 밀크 스티밍이다. 하트가 그려진 찰진 라떼의 거품이 입술을 감싼다.정심 씨는 1급 바리스타 자격증도 땄다. “스티밍을 하고 안 하고는 거품의 탄력이 달라요. 같은 가격이라도 좀 더 좋은 커피를 손님에게 서비스하고 싶어 열심히 배웠죠.” 정심 씨가 간절히 원하던 테이블을 마련한 뒤, 손님들은 이 자리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며 음식을 먹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최근엔 코로나 19 때문에 취식이 제한되어 그를 안타깝게 한다. 카페 같은 편의점이쯤 되면 정심 씨의 매장을 단순히 편의점이라 부를 수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정작 그가 아끼는 보물은 따로 있다. 매장을 지키는 사람이다. 편의점 알바 구직 앱에 들어가면 주당 15시간 이내의 단기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주휴수당과 같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자영업자들의 고육지책이다. 하지만 정심 씨는 다른 길을 택했다. 비록 자그마한 편의점이지만 일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소중한 일터라 생각할 수 있도록 정직원 대우를 한다. 주휴수당, 4대 보험은 물론 명절마다 약소하지만 상여금을 주고, 근속에 따른 수당도 있다. 일터에 대한 자부심을 지닌 직원들은 경영주처럼 매장을 관리한다. 언제 오더라도 알바생이 아닌 경영주가 직접 고객을 맞이하는 셈이다. 일하는 사람이 행복하니, 찾아오는 손님도 기분 좋게 물건을 사서 매장을 나선다. 매출이 오르는 비결이다.때론 고객도 기꺼이 가게 일을 돕는다. 한 번은 편의점을 자주 찾던 손님의 얼굴이 날이 갈수록 어두워지기에 정심 씨가 “사는 게 힘드시죠?” 하고 말을 건넸다. 그랬더니 손님이 자신의 어려움을 한없이 풀어놨다. 보증 때문에 어려움에 처했고, 이로 인해 가족들과 떨어져 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정심 씨는 자기 일처럼 공감하고 위로했다. 그 뒤로 손님은 물류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찾아와 말없이 일을 돕고 간다. 밭농사를 짓는 이웃은 채소를, 과수원을 하는 손님은 배를 한 소쿠리 들고 찾아온다. 이런 물건들은 직원들에게 나누어진다. 넉넉한 시골 인심이 고스란히 살아있다.그래서 정심 씨의 편의점은 동네 사랑방이자 마을 정자와 같은 곳이다. 몸이 불편한 남편을 시중하는 할머니, 아픈 아이를 돌보는 젊은 엄마, 거름을 내다가 온 농부, 기름때 절은 작업복의 이주노동자. ‘딸랑’하는 종소리와 함께 이들이 들어설 때, 정심 씨는 언니이자 누님이고, 딸이자 벗이 된다. 때론 아이들의 고모이자 큰엄마가 되어 한 가족으로 어우러진다.돌아오는 길, 정심 씨의 마음이 담긴 라떼가 오래도록 내 마음을 따뜻하게 데운다.

소리와 시각적인 것을 실험하다

In Love with Korea 2022 SPRING 2042

소리와 시각적인 것을 실험하다 이 젊은 프랑스 남자가 하고 있는 일, 그의 예술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설명하기 쉽지 않다. 그는 오랫동안 “소리와 시각 예술과 관련된 모든 것을 통합시켜” “이질적인 요소가 만나게 하는 일” 혹은 “두 세계를 함께 채집하는 일”에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한국을 자신의 스튜디오로 선택했다. 한국에 오랫동안 살고 있는 대부분의 외국인 체류자와 달리 해미 클레멘세비츠 씨의 여정은 어린 나이에 시작되었다. 프랑스 마르세이유에서 자라면서 그는 예술대학 교수로 아시아에서 종종 전시회를 연 아버지를 통해 한국과 주변 국가에 대해 들었다.마르세이유-지중해 미술학교(ESADM)에 입학할 즈음에 클레멘세비츠 씨는 아시아와 동양철학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는 학교에서 한국 학생들과 친구가 되었고 그중 한 친구의 초대로 2009년에 독학한 한국어로 무장해 처음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그 첫 방문이 제게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어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죠.”라고 그는 말한다. “이곳에 저랑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들이 있고 동시에 제게 익숙한 것들과 완전히 다름을 느꼈어요. 그리고 어쩐지 이 다른 것들이 제게 아주 잘 맞았어요.”이후 몇 년 간 클레멘세비츠 씨는 방학 동안 한국에서 시간을 보냈다. 왜 그렇게 했는지 이유를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는 이 여행이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 느꼈다. 한국어를 공부하고 문화를 흡수하는 동안 그는 서울의 실험적 예술 현장을 경험했다. 또한 한국인들이 자신의 예술 아이디어에 아주 수용적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어 더욱 한국에 전념하게 되었다.그의 대학 과정에서 요구되는 것 중 하나가 외국에서의 인턴 경험이었고 클레멘세비츠 씨는 자연스럽게 다시 서울에 눈길을 돌렸다. 아버지의 한국인 친구 한 분의 도움으로 그는 2011년에 예술 컨설팅 회사에서 4개월 동안 일할 수 있었다. 그것이 한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체류한 경험이 되었고 한국을 자신의 새로운 고향으로 만들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졸업 후 그는 “한국에 가서,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그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2013년 그는 영구적으로 머물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소리클레멘세비츠 씨는 종종 사운드 예술가, 혹은 인터미디어 예술가라고 불리지만 그 스스로는 자신을 단순히 “소리에 관심이 있는 예술가”라고 소개한다. 한국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그는 두 개의 영역을 오간다. 실험적 음악과 소리를 조합한 시각 예술이 그것이다. “소리는 제게 가장 중심적인 것입니다. 제가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소리와 시각 예술 두 영역이 만나도록 하는 것입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 결과는 다양하게 표현된다. 한 주 동안 그는 음악 공연을 하고 그 다음 주에는 가장 최근에 만든 “소리 조각 작품” 또는 설치 작업을 선보이는 식이다. 이를 위해 작곡을 하고 안무가와 협업해 공연을 하기도 한다.역설적이게도 그의 작품 중 어떤 것들은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스피커 국기, 망가진 국기(Speaker Flag, Broken Flag)” 같이 많은 작품이 고장난 스피커를 보여주는데 이 작품은 태극기 중앙에 스피커가 있다. “통역을 위하여(For Interpreters)”는 수화를 사용하는 비디오인데 시청자는 소리를 스스로 상상해야 한다. 이 작품은 “소리 없이 소리를 표현한다”는 생각에 기초한다.지난 몇 년 간 클레멘세비츠 씨는 경기도 용인에 있는 백남준 아트센터, 국립한글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과 같은 주요 장소에서 전시를 하고 공연을 했다. 하지만 그는 처음 활동을 시작하고 지금도 살고 있는 홍대 근처의 작지만 실험적인 공간에서 작업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한국에서의 첫 프로젝트 중 하나인 “테이크아웃 드로잉”은 국제적 정취가 물씬한 서울 이태원 지역에 있는 데이크아웃 드로잉 카페에서 2014년에 작업했다. 두 달 동안 매일 그는 그곳에서 즉흥 솔로 콘서트나 초대 손님이 있는 공연을 하거나 더 많이는 그저 리허설을 했다. 확실한 틀이 없는 공연은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제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건 제대로 된 콘서트와 리허설 사이의 경계에서 작업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상황이죠.”라고 그는 말한다. 마르세유에서 태어나 2013년 이후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는 Rémi Klemensiewiczs는 시각과 청각의 관계, 존재와 해석의 차이를 작품으로 옮긴다. 주로 소리를 소재로 하여 전시, 라이브 퍼포먼스, 무대 음악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탐구를 이어가고 있다. 수수께끼클레멘세비츠 씨는 역설과 애매모호함을 즐기는 듯한데 이는 그의 작품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그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한국어와 한국문화의 특성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한국어의 존칭법은 보통 개인 간에 적절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클레멘세비츠 씨는 조금 다른 뉘앙스를 느끼는데, 특히 학생과 선생의 관계에서 그렇다.“학생과 선생님이 함께 있을 때 학생이 언어뿐 아니라 몸짓이나 다른 미묘한 것들에서 예의를 갖추는 걸 볼 수 있어요”라고 그는 말한다. “관계의 룰이 엄격함에도 불구하고 이들 사이는 거의 가족 같은 느낌을 받아요. 프랑스에서 제가 느끼는 것과 정반대죠. 프랑스에서는 선생님의 이름을 부르고 친구처럼 얘기 나누지만 선생님과 친하다고 느낀 적은 드물어요.”그는 자신의 고국과 한국의 외적인 면모에서도 역설적인 것을 발견한다. 파리와 프랑스의 여러 지역들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지만 클레멘세비츠 씨는 전통과 영성이 사라졌다고 느낀다. 한국은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건물들이 좀 뒤죽박죽처럼 보였어요. 근데 시각적인 혼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정신에는 질서가 있다고 느꼈어요.”라고 그는 말한다. “두 나라를 비교하자면 프랑스는 외부에는 질서가 있지만 내부엔 혼란이 있어요. 한국은 표면적으로는 혼란이 있지만 내면에는 질서가 있고, 전통과 과거와도 연결되어 있어요.”그 같은 발견이 그를 설득하고 자극해서 한국에 눌러 앉게 만들었다. 하지만 비자 때문에 팬데믹 동안에 많은 시간을 프랑스에서 보내야 했다. 그곳에 있는 동안 그는 시골에 머물렀고 최근에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콘크리트와 자연의 모습이 얼마나 미묘하게 겹쳐져 있는지 새롭게 깨달았다. 지하철을 따면 주변의 산자락까지 이동할 수 있고 한강변 자전거길을 따라가면 거대한 아파트들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모습을 보인다. “이런 건 완전 짱이죠.”라고 말하며 그는 웃었다. 2019년 11월 19일 전라남도 순천의 예술공간 돈키호테(Artspace Donquixote)에서 Rémi Klemensiewicz가 중 ‘Handmixer’의 한 장면을 공연하고 있다. 생계팬데믹 기간 동안 많은 시간을 프랑스 시골에서 지내는 동안 그는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 프랑스 유튜브 사용자들을 위해 온라인 한국어 수업을 만들었다. 한 친구의 제안으로 기분전환으로 만든 것이 진지한 일로 변했다. 결국 한글을 자세히 소개하는 것을 포함해서 수업을 계획하고 작성하면서 몇 달을 보냈다.수업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소리 작업을 하는 예술가로서 클레멘세비츠 씨는 자신의 작품 대부분이 돈벌이가 되지 못함을 깨달았다. 한국어과 프랑스어를 오가는 언어 수업 덕분에 다행히 제대로 된 직업을 찾아야 한다는 조언들을 무시할 수 있었다.가르치는 일이 균형을 잡는 데에도 좋지만 클레멘세비츠 씨는 진정 언어를 갖고 실험하는 것을 좋아한다. 게다가 그는 한글의 시각적인 면도 높게 평가하고 자신의 작업에 녹여내기도 했다. 2018년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전시한 “소리 말 시리즈”는 스피커와 케이블로 만들어진 한글 단어를 선보인다. 전시회의 일부로 초대 뮤지션들과 함께 케이지 공간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피아노에서 네 음(G, A, G, E)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무음으로 해서 즉흥적으로 연주했다.예술 수업 강의는 그에게 안정적 수입을 제공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중학생들과 예술 워크숍을 진행하는 걸 시작으로 이제 서울 성수동 헬로우뮤지엄에서 정기적으로 아이들에게 소리와 시각 자료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PATI)에서 “소리 디자인” 강의를 하게 되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로 한국현대무용단과 협업도 하게 되었다. 2017년 10월 12월부터 28일까지 서울 소재 복합문화공간 탈영역우정국에서 진행된 전시 에서 Rémi Klemensiewic가 선보인 작품 ‘Interpreted Masks’이다. 종이마스크와 스피커, 케이블과 소리로 구성됐다. 과정클레멘세비츠 씨의 작업은 규정하기 어렵지만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점이 있다. 그가 보고 듣는 것 모두가 그의 예술에 스며든다는 점이다. 이런 배경을 알면 계속해서 변하는 한국에 대한 그의 거의 본능적인 애착이 좀 더 잘 이해가 된다.그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전형적으로 밀월기간이었다. “바닥에 자면서 행복했어요. 매일 자장면을 먹을 수 있는 게 행복했어요. 매일 비가 내려도 행복했어요.”라고 그는 회상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가 ‘작업 리듬’이라고 부르는 것, 즉 일과 사적인 삶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 - 예를 들어 밤에 전화를 해서 다음날까지 10페이지 번역을 요청하는 것 같은 - 조금씩 방해가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자신도 일과 쉼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고 인정한다. 왜냐하면 예술은 모든 것과 관련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시회나 공연을 하는 동안에는 그 일이 너무 좋아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한국에서 9년을 보낸 클레멘세비츠 씨의 삶은 실험 예술이 만들어지는 것과 닮았는데, 그에게 영향을 준 플럭서스 예술가들이 강조한 것처럼 과정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제 안무가 노경애 씨와 프랑스의 모교와 함께 하는 교환 프로젝트에 그가 푹 빠져 있는 게 놀랍지 않다. 이 프로젝트에서 그는 청각장애인 댄서들을 위한 음악을 만들고 공연하기로 되어 있다.32살인 그는 “계속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전시회를 하자고 아무도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라고 자문한다. 제대로 된 직장을 얻으라는 조언을 기억하지만 그는 자신이 사무실에서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리스크가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그는 담담하게 말한다.

서사를 확장시키는 프로덕션 디자인

Interview 2022 SPRING 1840

서사를 확장시키는 프로덕션 디자인 지난해 세계적 화제를 모았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은 생존 경쟁의 잔혹한 처절함이 동화 같은 비주얼을 배경으로 부각되어 시선을 끌었다. 이 독특한 공간 디자인을 만들어 낸 채경선(Chae Kyoung-sun 蔡炅宣) 미술 감독을 그의 다음 작품 촬영지인 경기도 고양시 아쿠아특수촬영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올 1월 의 극 중 1번 참가자, 일명 ‘깐부’를 연기한 배우 오영수(O Yeong-su 吳永洙)가 제79회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 시리즈는 작년 9월 개봉된 후 총 1억 4천 2백만 가구가 시청하며 연 46일 동안 넷플릭스 시청률 1위를 차지했고, 미국배우조합상(SAG)과 미국제작자조합상(PGA)의 주요 부문에도 후보로 올랐다. 이 드라마가 세계적 인기를 모은 비결에 대해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초현실적 느낌의 스펙터클한 프로덕션 디자인이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공간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게 관건인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이 작품 속 공간은 현실과 판타지가 혼재된 구성이 강렬한 색조로 구현되어 있다. 그것이 캐릭터나 서사와 이질감 없이 조화를 이루며 극적 효과를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다. 이 시리즈의 채경선 미술 감독은 상명대 연극영화과에서 무대 미술을 전공한 뒤 2010년 다섯 커플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김종관(Kim Jong-kwan 金宗寬) 감독의 영화 로 데뷔했다. 다음 해 를 시작으로 (2014)와 (2017)에서 황동혁(Hwang Dong-hyuk 黄東赫) 감독과 미술 감독으로 협업을 계속했고, 은 그와의 첫 드라마 시리즈 작품이었다. 그 밖에 (장준환(Jang Joon-hwan 張駿桓) 감독, 2013), (이원석(Lee Won-suk 李元錫) 감독, 2014), (이상근(Lee Sang-geun 李相槿) 감독, 2019) 등 여러 영화에 미술 감독으로 참여했다. 이처럼 소재도, 장르도, 호흡을 맞춘 감독도 제각각이지만 그의 작업이 이야기에 적합한 공간을 만들어 내 서사를 확장시켰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채경선(Chae Kyoung-sun 蔡炅宣) 미술 감독이 차기작인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의 세트가 지어지고 있는 경기도 고양시 아쿠아특수촬영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의 미술 감독으로 시선을 끌었던 그는 넉넉한 재정 지원과 감독으로부터 부여받은 자유재량으로 작업할 수 있었던 것이 큰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은 사실적인 공간을 구현해 왔던 황동혁 감독의 전작들과 큰 차이가 있다. 당신에게도 매우 도전적인 작업이었을 것 같다. 현실적인 공간이 아니어서 프로덕션 디자인에 대한 관객의 호불호가 크게 갈릴 거라고 예상했다. 부정적인 의견도 많을 듯해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 반응을 보여 줬다. 미술 감독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세트 제작비를 넉넉하게 지원받은 덕분에 머릿속에서 구상했던 그림들을 표현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을 만난 것 자체가 큰 행운이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 시나리오를 받기 전, 황 감독으로부터 큰 줄기에 대해 미리 들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놀았던 놀이들을 활용해 생존 게임이 벌어지는 이야기를 연출하려고 하는데, 새로운 비주얼을 시도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네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이처럼 내용을 대강 알고 있었지만, 막상 시나리오를 읽어 보니 막막했다. 이런저런 구상을 하다가 이전까지 전혀 볼 수 없었던 디자인을 해야겠다는 승부욕이 생겨났다. 중년 세대들이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을 배경으로 잔혹 동화 한 편을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다. 황 감독과 동의한 프로덕션 디자인의 전체 콘셉트는 무엇이었나?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세상을 너무 어둡게 그리지 말자. 둘째, 게임이 진행될 때마다 각 게임의 배경이 되는 공간에 고유한 성격을 부여하자. 이건 게임 참가자들이 각 공간에서 어떤 게임이 펼쳐질지 몰라 느끼는 혼란과 공포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매우 중요했다. 또한 시청자들도 다음 번에는 어떤 장소에서 어떤 게임이 진행되는지 궁금해하길 바랐다. 마지막으로 색깔을 과감하게 쓰자고 했다. 한국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에 비하면 색감 활용이 보수적이다. 우리는 그런 제한에서 벗어나 컬러를 과감하게 쓰고 싶었다. 하기는 최근 한국 영화도 SF 같은 새로운 장르를 다루면서 색감을 활용하는 폭이 전보다 넓어지고 있는 추세이기는 하다. 컬러를 선택한 기준은 무엇이었나?처음에는 주요 컬러로 민트와 핑크 두 가지를 고려했다. 이 두 가지는 1970~80년대를 상징하는 레트로 컬러이다. 이 의견에 대해 조상경(Cho Sang-kyung 趙常景) 의상 감독이 “게임 참가자들을 감시하는 무리들을 과감하게 핑크로 설정하자”고 말했다. 게임 참가자들이 입는 체육복은 채도를 높여서 짙은 녹색으로 가기로 했다. 이 시리즈에서는 핑크색이 억압과 폭력을, 초록은 핍박과 루저를 상징한다. 그래서 게임 참가자들이 핑크빛 천장과 벽으로 둘러싸인 구조물 안을 이동하도록 설정하고, 감시자들이 숙소로 돌아가는 공간은 초록색으로 표현했다. 색을 통해 이야기의 세계관과 규칙을 정한 것이다. 에서 참가자들이 미로 같은 계단을 거쳐 숙소로 돌아가는 장면이다. 잔인한 생존 경쟁과 대비되는 파스텔 컬러의 동화적인 비주얼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상징한다. 이 프로덕션 디자인은 네덜란드의 판화가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의 작품들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넷플릭스 첫 번째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공간은 어린 시절 놀던 학교 운동장을 모티브로 설계했다고 들었다. 이 게임의 콘셉트는 ‘진짜와 가짜’다. 첫 게임이 벌어지는 공간의 푸른 하늘과 영희 인형 뒤편의 벽은 가짜지만, 게임을 통과하지 못하면 진짜로 죽는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야기 속 게임 참가자들도, 시청자들도 혼돈을 일으킬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했다. 진행 요원들이 게임 참가자를 감시하는 설정은 영화 (1998)에서 영향을 받았다. 영희 인형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특수 분장팀 제페토(Geppetto)가 인형을 제작했다. 높이가 10m에 달해 상반신과 하반신을 따로 분리해 옮겼다. 황 감독은 원래 영희 인형을 10개나 만들어 줄 것을 미술팀에 주문했지만 그렇게까지 작업할 예산이 없었다. 또한 시나리오에선 영희 인형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등장하는 설정이었는데 도중에 바뀌었다. 드라마에서 첫 게임이 벌어지는 운동장은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모티브를 얻어, 진짜와 가짜가 뒤섞여 혼돈을 일으키는 공간으로 제시되었다.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10m 높이의 영희 인형은 특수 분장팀 제페토(Geppetto)가 제작했다. ⓒ 넷플릭스 드라마에서 중요하게 사용된 초록과 핑크색은 각각 핍박과 루저, 억압과 폭력을 상징한다. ⓒ 넷플릭스 구슬치기 게임이 벌어지는 골목길 풍경에 공을 많이 들였다고 들었다. 골목길은 가장 많이 공들인 공간 중 하나다. 이곳 또한 진짜와 가짜가 공존한다. 황 감독이 이 장면에서 주문한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석양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자신이 어린 시절, 저녁 내내 골목에서 뛰어놀다가 어머니가 이름을 불러 달려가면 집에서 밥 냄새가 났던 기억을 들려주며 ‘밥 냄새까지 느껴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오일남 할아버지의 집을 제외한 나머지 집들은 대문만 있는 것으로 설계했다. 문은 많지만 문 안으로 들어가면 ‘네 집이 아니니 들어갈 수 없다’는 상징성을 공간에 부여하고 싶었다. 대문은 문패, 연탄재, 화분 같은 여러 소품을 통해 진짜처럼 보여주되 패턴화해 표현했다. 즉, 구슬치기에서 지는 사람 쪽에 있는 공간에는 연탄재를 두었고, 산 사람 쪽에는 화분을 배치했다. 이전의 과거 얘기도 해 보자. 데뷔 이후 여러 명의 감독들과 다양한 성격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프로덕션 디자인을 통해 서사에 정서를 불어넣는다는 공통점이 보인다. 매 작품마다 각기 다른 접근을 해 왔다. 기본적으로 영화 미술은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와 캐릭터를 더 풍부하게 표현하도록 하는 영역이다. 미술이 혼자서 튀면 안 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시나리오를 감독보다도 더 치밀하게, 잘 분석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한다. 은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실제 역사를 재구성한 이야기인 만큼 고증이 관건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역사를 다룬 사극 중에서 고증을 가장 철저하게 한 작품으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에 사활을 걸고 작업했다. 눈과 추위, 그리고 적군에게 포위되어 고립된 성을 처절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그보다 먼저 제작된 이원석 감독의 영화 도 사극이었는데. 이 영화에 참여했던 경험이 작업을 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나? 왕실의 옷을 짓는 상의원이 이야기의 주요 무대라서 이 공간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풀어갈까, 공간을 통해 인물을 어떻게 드러낼까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흥행이 저조해서 아쉽다. 황동혁(Hwang Dong-hyuk 黄東赫) 감독의 (2017)은 1636년 청나라의 침입으로 남한산성에 피신한 임금과 신하들이 겪은 47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채경선 미술 감독은 철저한 고증을 통해 눈과 추위, 적군에게 포위된 당시 상황을 실감 나게 전달했다. ⓒ CJ ENM 의 무대인 청각장애인 학교는 어두운 사건이 벌어지고 드러나는 곳인데, 이 공간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저예산 영화라 시도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새로 지은 세트는 교장실과 법원 두 개였다. 이 영화에서는 안개가 중요해서 소품을 비롯해 복도를 포함한 주요 공간을 회색 톤으로 설정했다. 이야기 전반에 걸쳐 색감을 드러내는 것보다 누르는 게 중요했다. 다만, 정유미(Jung Yu-mi 鄭裕美)가 연기한 주인공이 일하는 인권센터 공간만 올리브 색을 가미해 따뜻함을 부각시켰다. 미술 감독으로서의 욕심을 절제하고 최대한 이야기에 충실했다. 9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영화 는 옥상, 간판, 건물 등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공간들을 세세하게 표현해 낸 것이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재난 영화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근 감독과 대화하면서 ‘한국적인 공간’을 표현하는 게 관건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국에 있는 건물 옥상들을 샅샅이 찾아다니며 특징을 조사했다. 특히 영화 후반부 남녀 주인공이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리며 육교를 뛰어넘는 장면에서 두 배우 양쪽에 보이는 건물들이 중요했는데 의도대로 잘 표현됐다고 생각한다. 정말 짧은 순간이지만 말이다. 감독이 미술팀 의견을 많이 수용해 주었고, 미술팀 또한 감독이 던져 준 아이디어를 많이 활용했다. 서로 생각을 주고받으며 재미있게 작업한 영화다. 예조판서 김상헌(金尙憲)을 연기한 배우 김윤석(Kim Yun-seok 金允錫)이 강을 가로질러 남한산성으로 향하는 장면이다. 실제로 강이 얼어붙어 얼음 두께가 30cm가 되는 곳에서 촬영되었다.ⓒ CJ ENM 이 영화에서는 신념이 다른 두 인물이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데 의상을 통해 두 인물의 특징을 담아냈다. 청나라의 공격에 맞서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김상헌과 달리 이병헌(Lee Byung-hun 李炳憲)이 연기한 이조판서 최명길(崔鳴吉)은 항복하여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CJ ENM 현재 찍고 있는 은 어떤 작업인가? 박인제(Park In-jae 朴仁载) 감독의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인데 공개하기 전에 자세한 얘기를 할 수는 없지만, 인기 웹툰 작가 강풀(Kang Full)의 동명 원작을 영상으로 만드는 첫 시리즈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 작품 안에서 1980년대부터 2018년까지 변화하는 시대를 표현하는 것이 내게 큰 도전이다. 천부적인 패션 감각을 지닌 이공진 역의 고수(Go Soo 高洙)가 30년 동안 왕실 옷을 지어온 조돌석 역의 한석규(Han Seok-kyu 韓石圭)가 바느질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장면이다. 이원석(Lee Won-suk 李元錫) 감독의 2014년작 은 조선 시대 왕실 의복을 만들던 상의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으며, 다양한 의상과 배경 공간이 관객의 시선을 끌었다. ⓒ 와우플래닛코리아(WOWPLANET KOREA)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공유오피스

Lifestyle 2022 SPRING 2037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공유오피스 공유오피스가 뉴노멀 시대의 워킹 스타일을 방증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폭발적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유연한 임대 공간의 규모와 계약의 형태가 1인 사업체나 소규모 창업자들의 수요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 성장의 주요인이다.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1분이면 도착할 수 있고, 세미나실과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어서 정말 편리해요.”“저렴한 이용료로 대기업 같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어서 이곳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해요.”“1년간 서울의 다른 지역으로 출퇴근하다가 여기 새 건물에 문을 연 공유오피스가 집과 더 가까워 자리를 옮겼어요.”온라인 커뮤니티에 다양한 호평이 쏟아진다. 마치 부동산 거래 후기를 보는 듯하다. 최근 몇 년 사이 공유오피스가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정착했다. 특히 1인 기업이나 스타트업을 비롯한 20~30명 정도의 소규모 인력으로 운영하는 회사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거미줄이 뻗치듯 서울의 주요 거점을 중심으로 공유오피스 밀집 지역이 빠르게 확산되는 가운데 새로 출발한 업체들은 ‘특가’, ‘할인 혜택’ ‘프리미엄 업무 서비스’ 등 을 내세우며 판촉전을 벌이고 있다. Most shared offices have enclosed rooms and an area with unassigned tables.The atmosphere is cozy like a café, but without the bustle.The lack of distraction and noise helps users focus on their tasks.© FASTFIVE FIVESPOT Hapjeong 따로 또 같이 공유오피스는 회의실이나 휴게실 등 공용 공간은 타 업체와 같이 쓰는 반면, 업무 공간은 독립적으로 사용해 공간 활용도를 높인 신개념 오피스다. 서울 용산구의 한 공유오피스에서 1인 기업을 꾸리는 30대 초반의 남성은 자신의 블로그에 1년간의 입주 후기를 남기면서 “근무에서 휴식까지 한 번에 가능하게 해주는 천국 같은 곳”이라고 정리했다.공유오피스의 뿌리는 ‘공유 경제’라는 게 중론이다. 2000년대 후반 미국 금융위기에서 시작한 세계적인 경기 침체는 공유 경제라는 새로운 경제 모델을 낳았고, 재화와 서비스에서 공간으로 공유의 범위가 확장하면서 공유오피스가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한국에서는 공유오피스 업체가 서울 강남구 등 도심 상업지역의 고층 건물 일부 층을 임차해 공간을 나누어 이를 소규모 기업들에 재임대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건물 내 공간의 공유를 강조하는 ‘셰어드 오피스’, 여러 기업이 같은 공간에서 일한다는 뜻의 ‘코워킹 오피스’, 공유오피스 운영 업체와 입주 기업의 유연한 계약을 내세우는 ‘플렉시블 오피스’ 등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다.국내 공유오피스 시장은 201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2021년 5월 발표한 연구 보고서‘포스트 코로나시대 공유오피스의 현재와 미래’에서 미국 공유오피스 업체인 위워크가 한국에 진출한 2016년을 기점으로 시장이 빠르게 커졌다고 분석했다. 동시에 2017년 600억 원 수준이던 국내 공유오피스 시장의 규모가 2022년에는 7700억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처럼 빠른 성장에는 2015년 출범한 국내 첫 공유오피스 브랜드 패스트파이브나 뒤이어 2016년에 설립된 스파크플러스도 큰 역할을 해 온 것으로 평가된다.시장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면서 2010년 서울에 20여 군데 있던 공유오피스는 2016년 무렵에 100군데를 넘겼고, 2019년 7월 기준으로 220군데에 달했다. KB 경영연구소는 보고서에서 공유오피스의 누적 면적이 같은 기간 5만㎡에서 60만㎡까지 넓어졌다고 설명했다. 패스트파이브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2021년 12월 기준 전국에 38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고, 스타트업에서 대기업까지 총 1만3290개 업체가 이용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용자의 86%가 높은 만족도를 보이면서 재계약 의사를 나타냈다고 덧붙였다.그러나 대부분 고층 건물의 일부 공간을 임대해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심을 떠난 대기업의 빈자리에 공유오피스가 비집고 들어간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교통 인프라가 구축된 상업지구에 자리 잡고 싶은 소규모 기업의 수요가 공유오피스를 탄생시켰다는 분석도 있다. 대기업이 외곽으로 빠져나가면서 시장 변화에 빠른 대응이 필요한 신규 사업 프로젝트팀을 공유오피스에 입주시킴으로써 ‘거점 사무실’을 두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Most guests on Sabujak, a podcast produced by university students, want anonymity. But some guests allow their real name or face to be revealed. Park Ye-young, head of the Unified Korea Cooperative, appeared in a three-part program from October 11 to 13 this year, under the nickname “Kim Chaek Hairy Crab.” From left: Sabujak staff members Park Se-ah and Ahn Hye-soo, and Park Ye-young. © Sabujak 수요 증가의 요인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 있는 이용 후기나 사용 중인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유오피스의 가장 큰 장점은 저렴한 임대료다. 새로 문을 연 공유오피스에 입주하면 할인 혜택을 받아 회사 운영비를 대폭 줄일 수도 있다. “고민은 입주를 늦출 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만큼 낮은 임대료는 공유오피스 시장의 폭풍 성장을 이끈 가장 큰 원동력이다.공유오피스 운영업체도 경제성을 부각시킨다. 패스트파이브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초기 투자 비용부터 고정비용까지 확실하게 줄일 수 있다”며 “규모가 작은 회사도 초역세권의 고층 빌딩에 사무실을 구할 수 있다”는 설명으로 잠재적 이용자들의 관심을 유도한다. 인테리어 비용이나 사무용 가구 구매 비용 지출이 없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첫발을 내디딜 수 있다는 것은 거부하기 어려운 장점이다. 지하철 부근의 역세권에 위치한 고층 빌딩 입주도 소규모 기업에 충분히 매력적이다.잦은 인력 변동과 경영의 불확실성은 소규모 기업에게 적잖은 부담이다. 사람이 늘면 느는 대로, 줄어들면 줄어드는 대로 공간의 변화도 뒤따라야 경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데 이를 맞추기는 쉽지 않다. 사무실의 위치를 옮기고 싶어도 임대 기간이 끝나야 가능하다면 그동안 나가는 고정비용인 임대료가 손해로 여겨질 수 있다.따라서 임차 면적이나 기간의 유동성은 공유오피스의 인기를 높이는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한다. 최소 1개월부터 공간을 빌릴 수 있고, 인원 증감에 따라 같은 공간 안에서 다른 면적의 사무실로 옮길 수도 있다. 당장 필요한 숫자만큼 사무실을 계약하고 추후 자유로운 확장이나 축소가 가능하다. 한 이용자는 “구성원 변화가 큰 기업, 사무실 임대 보증금보다 업무에 초기비용을 투자하고 싶은 기업에 공유오피스를 권한다”고 말했다.또한 24시간 운영체제로 원하는 시간대에 자신의 사무실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점이 공유오피스와 일반 건물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이기도 하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탄력근무제와 재택근무가 확산한 상황에서 각자 필요한 시간에 사무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요긴한 방식으로 여겨진다. Several factors determine the rental price, including the number of users and the number of tables needed and whether the rented space has a window. But in most cases, essential office supplies, printing, coffee and snacks are included in the price. © WEWORK KOREA 위기와 대응 그러나 매력적인 요소가 한편으로는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사용자 평가를 종합하면 인테리어 투자로 인해 사무공간의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결론도 가능하다. 예컨대, 한 공간을 여러 사무실로 나누면서 밀폐공간이 생겨났고 이 때문에 환기가 어렵게 되는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한 사무실의 난방기가 가동될 때 다른 공간의 난방기도 동시에 돌아가게 되어 자체적인 실내 온도 조절도 쉽지 않다. 또한 입주 기업이 몰려들면서 회의실도 원하는 시간에 사용하기 어려워졌고, 공간을 좁게 나눠 여러 이용자에게 임대하다 보니 ‘방 쪼개기’라는 비판도 무시할 수 없어 보인다.한편으로 공유오피스 운영업체의 수익 창출이 앞으로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건물 전대차로 수익을 내는 만큼 언젠가는 성장에 한계가 온다는 지적이다. 주로 도심 상업지역으로 공유오피스 입지가 제한되는 점도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KB 경제연구소는 보고서에서 “(공유오피스 업체는) 건물을 장기 임차하므로 지출 비용은 고정인데, 입주 기업과는 단기 계약으로 운영되어 수입이 유동적”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임대료 상승 수준은 제한적인데 반해 기존 업체와 신생 업체 간의 경쟁 심화로 인해 입주 기업에 대한 서비스 지출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지난 2년간 세계 보건 환경뿐만 아니라 경제 판도까지 뒤흔들어 온 코로나 19도 새로운 변수다. 여러 회사 직원들이 한 공간에서 뒤섞여 일하는 환경에서 코로나 19가 확산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 때문이다. 이를 인식한 듯 공유오피스 업체들은 “전문 업체의 정기적인 방역을 실시한다”며 “공용 공간의 철저한 소독, 전체 스태프의 마스크 착용으로 안전한 업무 공간을 만들어가겠다”고 약속하며 이용자들을 안심시키고 있다.다양한 장단점과 함께 우려 섞인 예측에도 불구하고 공유오피스가 전 세계적으로 업무 공간의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대형 브랜드들이 명확한 한계를 딛고 어떤 방향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발전시켜갈지 기대되는 것이 당연하다.

추억을 떠올리는 맛

An Ordinary Day 2021 WINTER 2756

추억을 떠올리는 맛 지역과 시대에 따라 맛과 재료가 조금씩 변화해왔지만 떡볶이가 한국인의 소울 푸드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서울 떡볶이 맛집’리스트에 빠지지 않는 이 가게는 시어머니의 손맛을 이어 40년째 수많은 고객에게 정겨운 추억을 만들어주고 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추억 한 조각에 떡볶이가 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골목에서 풍겨 나오는 맛있는 냄새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다. 오늘날 흔히 먹는 고추장 떡볶이는 마복림(马福林, 1920~2011) 할머니가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그 이전에는 가래떡을 먹기 좋게 적당한 크기로 잘라 여러 가지 채소를 넣고 간장으로 양념해 볶은 음식이었다. 조선 말기 19세기에 편찬된 저자 미상의 조리서 에 의하면, ‘흰 가래떡과 등심, 참기름, 간장, 파, 버섯 등을 함께 볶아 만든 궁중음식’으로 ‘떡찜’, 또는‘떡잡채’ 라고 했다. 고급 재료들로 만들던 귀한 음식이 어떻게 대중적인 음식으로 바뀌었을까? 한국전쟁 직후였던 1953년, 마 씨는 귀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중국 음식점을 찾았다. 마침 개업 직후여서 주인이 자축하는 떡을 테이블마다 돌렸고, 마 씨는 실수로 짜장면 그릇에 그 떡을 빠뜨렸는데 그게 깜짝 놀랄 만큼 맛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비싼 춘장 대신 고추장에 떡을 버무려 매콤한 떡볶이를 만들었다. 그는 고추장과 춘장을 섞은 소스로 만든 떡볶이를 파는 가게를 서울 중구 신당동에 열었고, 1970년대에 들어 이것이 전 국민의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이 동네에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분식집이 성행했는데, 그 중에는 DJ가 신청곡을 틀어주는 가게도 있었다. 하교 길에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떡볶이를 나눠 먹는 것이 그 시절 청소년들의 오락이었다. 한 가족의 생계김진숙(金眞淑) 씨의 시어머니는 1980년대, 서울 은평구 갈현동에 있는 시장에서 떡볶이 장사를 시작했다. 간판도 없는 노점상이었다.“올해 아흔 두 살이신 어머님은 당시 사십 대 중반이었고, 제 남편은 열한 살이었어요. 주위에 여자고등학교가 세 개나 있어서 학생들이 많았대요. 학교 급식이 없던 시절이라, 점심시간엔 나와서 떡볶이를 먹는 아이들도 많았고요. 그 아이들이 졸업한 후에도 찾아오고, 그래서 늘 손님들이 북적거렸대요. 시댁에 식구가 많았는데, 어머님이 그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셨어요.”김 씨는 1992년에 시어머니의 넷째 아들인 김완용(金完用) 씨와 결혼했다. 십 년 전 시어머니가 고관절 수술을 받은 후 혼자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자 온 가족이 시간을 쪼개 짬나는 대로 왔다. 남편도 하던 일을 그만두고 가게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김 씨에게 ‘같이 한 번 가볼래?’라며 제안했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작은아이가 마침 여름방학이어서 손이 좀 덜 갈 때였다. 그렇게 따라가서 일주일쯤 일을 거들었는데 지켜보던 시어머니가 계속 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멋도 모르고 덥석 하겠다고 대답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2015년, 도시 재개발로 인해 시장이 없어진 후 시장 자리가 있던 곳에 새로 차린 것이 지금의 가게이다. ‘갈현시장 할머니 떡볶이’라는 간판도 그때 처음 달았다. “그때 어머님은 이미 팔십 살이 넘으셨는데도 할머니라고 불리는 걸 별로 안 좋아하셨어요.” 김 씨가 웃으며 당시를 돌이켰다. “그때부터 남편이랑 저랑 둘이서 가게를 하게 됐어요. 메뉴는 어머님이 시장에서 팔던 그대로예요. 떡볶이, 순대, 만두 두 종류, 삶은 달걀, 김말이.”기본적인 조리법은 시어머니의 방식을 이어가지만, 소스의 비율이 조금 달라졌다. 자극적인 맛을 줄이고 지금은 부드러운 맛을 강조한다. 덜 달고 덜 짜고 덜 매운 맛이다. 식재료도 건강과 위생을 고려하여 좋은 것으로 세심하게 골라 쓴다. 남편은 아침 7시에 가게에 나온다. 전날 씻어 둔 조리기구들을 세팅하고 물을 올리고 순대를 찌고 달걀을 삶고 기본적인 준비를 하는 데 한 시간이 걸린다.“떡볶이용 밀가루 떡이 뭉쳐 있는데, 하나하나 떼는 게 고된 일이에요. 하나씩 떨어져 있는 떡도 있지만 그런 떡은 맛이 떨어져요. 우리 손이 한 번 더 가면 손님들이 더 맛있는 걸 드실 수 있어요. 떡 한 판에 낱개로 324개 나오는데 하루 열 판 정도 나가요.”두 시간 동안의 준비가 끝나고 9시가 되면 가게 문을 연다. 김 씨는 10시쯤 가게에 나온다. 부부 사이에 특별한 역할 분담은 없다. 두 사람 모두 조리를 하고 손님을 받는다.“둘 중 한 명이 없어도 장사를 해야 하니까 둘 다 뭐든지 할 줄 알아야 해요.” 서울 갈현동에 있는 ‘갈현시장 할머니 떡볶이’주인 김진숙, 김완용 씨 부부는 어머니가 40여 년 전에 시작한 가게를 이어받아 옛 맛을 잊지 않고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 전에는 3명의 직원을 데리고 가게를 운영했으나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작년부터는 시간제 직원 한 명만 두고 부부가 모든 일을 하고 있다. 비법을 지킨다 갈현동 할머니 떡볶이 가게는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맛으로 떡볶이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김진숙 씨는 시어머니 진양근씨가 1980년대 가게를 내면서 개발한 소스의 비법을 아직도 소중하게 지키고 있는데, 그 맛이 뛰어나서 동네 손님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종종 있다. 조리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초벌 끓이기’이다. 손으로 하나씩 떼어놓은 떡은 끓는 물에 넣어 잠시 끓인 다음 조리용 판으로 옮겨진다. 이 과정이 제대로 안 되면 떡이 퍼지거나 질겨진다. 매일 조금씩 다른 떡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해 온도와 시간을 맞추는 것이 관건이다. “사람들은 농담처럼 ‘회사 때려치우고 떡볶이 장사나 할까’라고 말하지만, 사실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장사죠.”손님이 끊이질 않는 맛있는 떡볶이를 만드는 비법은 소스를 만드는 재료의 비율, 불의 온도, 그리고 조리 시간이다. 재료가 아무리 좋아도 비율이 안 맞고 온도와 시간이 안 맞으면 소용없다. 이 과정은 모두 시어머니에게 배운 비법이고 때문에 영업비밀이다. 고춧가루, 고추장, 물엿 등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을 포함하여 열 가지 남짓한 재료가 소스에 들어간다. 이렇게 만든 떡볶이는 1인분에 3,500원이다. 지난 4월, 3,000원 하던 가격을 500원 올렸다. “해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그게 반영돼 모든 식자재값이 오르기 때문에 가격을 안 올릴 수가 없어요. 하지만 떡볶이는 한끼 식사가 아니라 간식으로 먹는 음식이라 값을 올리기 쉽지 않아요. 계속 고민하다가 6년 반 만에 500원을 올렸어요.”1인분의 양은 ‘고무줄’이라고 김 씨는 말한다. 보통 17~18개의 떡에 어묵을 섞어 1인분으로 담지만 학생이나 노동자에게는 늘 덤을 얹어 주기 때문이다. 열 평이 채 못 되는 가게의 테이블은 요즘 모두 한쪽으로 치워져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홀 손님을 받지 않은 지 일 년이 지났다. 가게 한 구석에 작은 전기밥통과 인덕션이 있는데 부부가 짬을 내어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는 곳이다. 늦은 오후에 군것질로 대충 허기를 채우고 저녁 8시에 문을 닫는다. 정리와 청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밤 10시.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 부부의 하루 일과이다.“일주일에 하루, 월요일에 쉬어요. 이 가게를 연 이후 그 밖에 쉰 날이 딱 사흘인데 제가 수술받은 다음날, 아들 입대한 날, 그리고 퇴소한 날이었어요. 가끔 쉬고 싶을 때도 있지만 손님들과의 약속이니까요. 이 지역에 사는 손님만 오는 게 아니라 전국 팔도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는데, 헛걸음하면 미안하잖아요. 쉬는 날에도 다른 거 없어요. 밀린 집안 일하고, 손목터널증후군 고치러 병원에 가요. 직업병이죠.” 손님이 끊이질 않는 맛있는 떡볶이를 만드는 비법은 소스를 만드는 재료의 비율, 불의 온도, 그리고 시간이다. 재료가 아무리 좋아도 비율이 안 맞고 온도와 시간이 안 맞으면 소용없다. 연령을 초월한 많은 한국 사람들의 소울푸드인 떡볶이는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흰떡을 여러 가지 야채, 어묵과 함께 고추장 소스에 넣고 뭉근하게 끓여 만든다. 국물 떡볶이, 즉석 떡볶이, 간장 떡볶이, 로제 떡볶이 등 다양한 종류의 떡볶이가 있는데 그 중 국물이 자작한 국물 떡볶이가 가장 대중적이다. 최선을 다하는 하루하루 시어머니를 도와 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김 씨는 호된 경험을 했다. “제대로 된 포장용기가 없어서 비닐 봉지를 사용하던 시절이었어요. 떡볶이를 포장해간 손님이 조금 있다가 다시 왔어요. 국물이 새서 청바지에 묻었다면서 떡볶이가 든 봉지를 그대로 던졌어요. 놀라고 당황해서 덜덜 떨었어요.”이처럼 가끔 부부를 힘들게 한 손님들이 있었다. 달걀 하나를 빠뜨렸다고 전화로 삼십 분 동안 항의한 손님도 있었다. 알아보니 다른 손님과 봉지가 바뀌었던 것인데 값을 물어주겠다고 해도 계속 화를 냈다. 자신이 원하는 만두가 아닌 다른 만두를 줬다고 접시를 던진 손님도 있었다. 가게에 와 있던 친척이 말리다가 싸움이 붙어 경찰까지 오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 일을 겪고 부부는 ‘손님이 뭐라고 하면 무조건 인정하자’고 다짐했다. 물론 대부분의 손님들은 따뜻하고 다정하다. 더운 날 마시고 일하라며 음료를 사오기도 하고, 텃밭에서 딴 채소를 가져오는 이들도 있다.“어머님을 기억하는 분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오기도 하고, 초등학교 동창회하고 다같이 오시기도 해요. 그분들은 떡볶이가 아니라 추억을 먹으러 오는 거죠. 이런 손님들을 보며 따뜻한 마음과 베푸는 방법을 배워요. 이런 게 세상 사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그래서 김 씨는 언젠가 이 가게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 아쉽다. 앞으로 십 년만 더 하고 가게를 접을 계획이기 때문이다. 서운하긴 하지만, 이 힘든 일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도 않다. 아이들이 직장에도 다녀보고 원하는 것을 다 해보고도 떡볶이 장사를 하고 싶어 한다면 몰라도. 새벽부터 재료 하나하나를 정성껏 준비하여 뜨거운 불판 위에서 조리하고, 먼 길을 찾아온 손님에게 푸짐하게 담아주는 떡볶이는 허기뿐만 아니라 추억을 채워주고 마음을 데워주는 음식 이상의 무엇이다. 김 씨 부부는 그 옛날, 어머니가 사람들에게 팔았던 추억의 맛을 이어가기 위해 고단하지만 날마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

Review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서

Art Review 2022 SPRING 1756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서 최욱경(Choi Wook-kyung 崔郁卿 1940~1985)은 여성으로서 한계를 뛰어넘고 국제 화단의 신조류를 독자적으로 수용했던 한국 추상미술의 대표적 화가이다. 2021년 10월 27일부터 2022년 2월 13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 는 그의 예술이 위치한 좌표를 적극적으로 탐색한 전시다. 사실 최욱경은 일반에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2020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국립현대미술관이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던 박래현(Park Re-hyun 朴崃賢 1920~1976)도 그렇지만, 최욱경의 이름도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거의 잊히는 듯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가 살았던 시절은 물론이고, 사후에도 미술사가 주로 남성 위주로 쓰였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60~80년대에 회화와 문학,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능동적인 작가의 정체성을 쌓았던 그를 지금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공백으로 남아 있던 한국의 여성 미술사를, 더불어 한국의 미술사를 다시 쓰는 일이 될 것이다. . 1977. 캔버스에 아크릴릭. 225 × 195 ㎝. 리움미술관(Leeum Museum of Art) 소장. 최욱경(Choi Wook-kyung 崔郁卿)의 1970년대 중후반 작품들은 꽃과 산, 새, 동물을 떠올리게 하는 유기적 형태들이 뒤얽혀 생동감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 1976. 종이에 연필. 102 × 255 ㎝. 개인 소장. 미국의 현대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의 공연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거대한 연필화이다. 춤추는 듯, 날아오를 듯 날개를 펼친 흰 형체가 숭고한 서사적 느낌을 준다. 더 큰 세상으로 이번 전시는 연대별로 3개의 주제로 나누어 구성되었으며, 에필로그 섹션에는 작가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화상들과 기록물을 소개하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이곳에서는 서울예술고등학교 시절 그가 배웠을 ‘입시 미술’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 그림들은 그의 작가적 개성보다는 식민지 시절부터 내려온 관습적인 기술을 더 부각시켜 보여 준다. 서울대 회화과 재학 중 몇몇 작품을 출품해 입상하면서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지만, 미국 유학길에 오르기 전까지 그의 작업은 대체로 대학 입시 준비의 연장선상에 있었을 것이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내로라하는 화가들에게 그림 수업을 받았는데, 당시 스승의 화풍을 답습하던 작업 방식은 위계적인 가부장제의 습성과 많이 닮아 있다. 1978년 『코리아 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미국 미술 교육은 개개인의 작품 정체성을 존중하는데, 이것이 한국 미술 교육과의 근본적인 차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전시에는 그가 쓴 시 「어머니의 옛날 이야기」(1972)도 소개되었다. 어머니는 숲에서 늑대를 만나면 쳐다보지 말고 대답하지 말라고, 산보하자고 해도 거절하라고 이야기해 주었지만, 자신은 기꺼이 늑대의 손을 잡고 친구처럼 걸었다는 내용의 시다. 늑대의 손을 잡은 것은 익숙한 세계의 금기를 깨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의미할 것이다. 1963년, 그렇게 시작한 크랜브룩 미술 아카데미(Cranbrook Academy of Art) 유학 생활은 그에게 작업 양식뿐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큰 변화와 도약의 계기가 되었다. 정체성 탐구 1부 ‘미국이라는 원더랜드를 향하여(1963~1970)’는 화가의 크랜브룩 미술 아카데미 시절과 뉴햄프셔 프랭클린 피어스 대학 조교수 시절을 좇는다. 1960년대 미국은 추상표현주의에서 후기회화적 추상으로 이행하던 시기였다. 최욱경은 이러한 작품 경향을 보인 도널드 윌릿(Donald Willett 1928~1985)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강렬한 붓칠과 색상의 추상을 이루어 나갔다. 크랜브룩 미술관에서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 마크 로스코(Mark Rothko), 잭슨 폴록(Jackson Pollock)과 같은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접한 것도 그가 당대 미술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1965년 크랜브룩 미술 아카데미 졸업 후 그는 브루클린미술관 소속 미술학교(Brooklyn Museum School of Art)에서 1년간 수학한 후 1966년 여름 메인주(州) 스코히건 회화∙조각학교(Skowhegan School of Painting & Sculpture) 작가 레지던시에 참여했다. 이 시기에 구상, 그래픽 미술, 판화, 팝아트 등 미국 동부의 다양한 양식과 매체를 접할 수 있었다. 그 영향으로 캔버스에 신문지를 찢어 붙여 색면과 병치하거나 잡지 이미지 위에 덧칠을 하는 등의 방식으로 작업을 했는데, 네오다다, 팝아트에서 나타나던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을 구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전시 제목 ‘앨리스의 고양이’와 1부의 소제목 ‘원더랜드’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그의 작품 세계 한쪽에는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865)가 놓여 있다. 출간 100주년을 기념해 미국에서 관련 도서들의 발행이 활발했던 1965년에는 이라는 작품을 제작했으며, 1972년 출간한 시집 『낯설은 얼굴들처럼』에는 「앨리스의 고양이」라는 작품이 수록되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전유신(全宥信) 학예연구사는 ‘아시아에서 온 외국인 여성’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상황에서 문화적 정체성 혼란을 겪던 작가가 앨리스 이야기에 쉽게 공감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자신에 대한 정체성 탐구를 (1966), (1968), (1968)와 같이 인종 차별과 전쟁을 반대하는 다수의 작품에 녹이며 미국 사회에 적응해 갔다. . 1965. 캔버스에 아크릴릭. 63 × 51 ㎝. 유족 소장. 작가가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대한 관심을 처음으로 구체화한 작품이다. . 1966. 종이에 아크릴릭. 42.5 × 57.5 ㎝. 리움미술관 소장. 미국 유학 시절 최욱경은 아시아 출신의 여성으로만 규정되는 자신의 정체성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며, 스스로의 본질적 모습을 탐색하는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독자적 경지2부 ‘한국과 미국,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1971~1978)’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작업을 이어간 시기를 돌아보았다. 최욱경은 1971년 귀국해 1974년 초까지 한국에 체류하며 두 번의 개인전을 열고, 파리 비엔날레 참여 작가 선발전인 앙데팡당에 (1972) 등 입체 설치 작품 세 점을 출품했는데 이 작품들은 당시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런 한편 단청과 민화, 서예 등에도 관심을 갖고 이를 반영한 양식 실험을 끊임없이 펼쳤다. 1976~1977년에는 뉴멕시코 로스웰미술관(Roswell Museum & Art Center)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이 시기는 그의 작업에 큰 영향을 끼치며 변곡점으로 작용했다. (1976)이나 (1977)처럼 산이나 새, 동물 등이 연상되는 유기적 형태들이 생동감 있게 표현된 대작들이 주로 제작되었다. 뉴멕시코의 이국적 풍경에 영감을 얻은 그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초현실주의적 꿈속 풍경을 뒤섞어 자신만의 회화적 어법을 만들어 냈다. 한국으로 돌아와 개최한 순회전 (1978~1979)은 주로 “미국적이다”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그의 작품은 그렇게만 규정하기 어려운 독자적인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 1981. 캔버스에 아크릴릭. 80 × 177 ㎝. 개인 소장. . 1984. 캔버스에 아크릴릭. 73.5 × 99 ㎝. 개인 소장 1979년 영구 귀국해 영남대 교수로 재직하던 작가는 경상도 지역의 자연 풍광에서 영감을 받아 산과 섬의 조형성을 탐구하는 작품들을 제작했다. 생전,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최욱경의 모습이다. 1940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1963년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길에 올라 추상표현주의에서 후기회화적 추상으로 이행하던 당시 미국 미술계의 변화를 경험하며 치열한 탐구를 통해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이루어 나갔다.국립현대미술관 제공 3부 ‘한국의 산과 섬, 그림의 고향으로(1979~1985)’에는 1979년 영구 귀국 후 영남대와 덕성여대 재직 시절, 1985년 작고하기까지의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특히 영남대 교수 시절은 그의 작품 세계에 또다른 변화를 불러왔다. 경상도 지역의 산과 바다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1981), (1984)과 같은 작품에 나타난 중간색과 절제된 선∙구성은 그가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고 평화로운 ‘원더랜드’에 정착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산과 섬의 조형성에 대한 탐구와 더불어 꽃잎의 형태와 질서, 강렬한 색상에도 관심이 더욱 깊어져 (1984) 같은 작품도 제작했다.   2021년 10월 27일부터 2022년 2월 1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린 전을 관람객들이 감상하고 있다. 한국 추상 미술의 대표적 여성 화가인 최욱경의 예술 세계 전반을 재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이었다. © 지안 잃어버린 이름 최욱경은 시 「나의 이름은」에서 자신을 어린 시절엔 겁 많은 눈 큰 아이였고, 유학 시절엔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 말을 잃은 벙어리 아이였고, 미국 생활에 적응해 가던 무렵에는 무지개 꿈을 좇다가 길을 잃은 아이였으며, 한국에 돌아와서는 이름마저 잃어버린 이름 없는 아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찾기 위해서 끈질기게 시와 그림으로 스스로를 조형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그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1970~80년대는 후기회화적 추상과 형식을 공유하는 단색조 회화가 이미 한국 미술계의 주류 양식으로 자리 잡은 때였다. 미술사학자 최열(崔烈)에 의하면 최욱경은 추상표현주의를 자신의 것으로 토착화시켰지만, 한국 미술계는 그것을 한물간 것으로 치부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추상표현주의 화가 리 크래스너를 ‘미세스 잭슨 폴록’이라 칭하던 당시 미술계의 성차별주의 또한 그를 곤혹스럽게 했을 것이다. 무엇이 그를 더 힘들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안타깝게도 최욱경은 1985년, 40대 중반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2021년 파리 퐁피두센터는 추상미술에 기여한 세계 여러 나라 여성 작가 106명의 작품 500여 점을 모아 이라는 전시를 열었는데, 이 중에는 최욱경의 회화 세 점도 포함되었다. 그가 찾고자 했고 말하고자 했던 언어가 그 작품들만으로 제대로 소개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를 통해, 여기서부터 그의 역사를, 또는 여성의 미술사를 다시 써나가야 할 것이다.

『레몬』

Books & more 2022 SPRING 1927

『레몬』 『레몬』 권여선 작, 자네트 홍 역, 147쪽, 20달러, 뉴욕: 아더 프레스(2021) 손에서 뗄 수 없는 추리 소설 그 이상의 소설 영어권에서의 데뷔작인 권여선 작가의 장편소설 은 조사실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곳에서 한만우는 아름다운 소녀인 반 친구 해언의 살해에 대해 조사를 받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소설은 해언의 여동생 다언의 머리속에서 시작한다. 다언은 2002년 경찰 조사실에서 일어났을 거라 믿는 일을 상상한다. 그녀는 만우가 좀 어둔한 걸 알고 있고 일관되지 못한 진술 때문에 경찰들이 그가 살인자라고 확신하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부잣집 아이로 인기 많은 신정준이 또 다른 용의자였지만 알리바이가 인정되어 빠르게 혐의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만우를 용의자로 볼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해서 “미모의 고등학생 살인 사건”으로 알려진 이 케이스는 미궁에 빠졌다. 다언은 해결점을 찾으리라는 희망으로 모든 디테일을 되살려 보느라 17년을 보냈다. 근데 이 짧은 시놉시스를 읽고 오해가 없길 바란다. 이 소설은 범죄 소설이 아니다. 적어도 단순한 추리소설은 아니다. 누가 해언을 죽였는가 하는 문제는 소설 전체를 통해 탐색되지만 훨씬 더 중요한 질문은 다언이 첫 장에서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질문이다. “과연 삶에 의미 같은 것이 있나.” 언니가 죽은 후 겪은 감정의 대혼란이 서서히 잦아들지만 다언은 여전히 죄의식으로 고통 받는다. 정신과 의사는 ‘생존자의 죄의식’이라 이름 붙일지도 모르지만 다언에게 죄의식은 좀 더 뿌리 깊다. 그녀가 언니를 사랑하기라도 했는지 의혹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무엇보다 그녀를 고통스럽게 하는 건 사건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상관없이 다시 되돌아 갈 수 없고 이미 결정된 것을 바꿀 수 없다는 깨달음이다. 책의 절반 부분이 다언의 시점에서 서술되지만 그녀의 시점이 유일한 건 아니다. 두 챕터씩 각각 해언의 반친구인 상희와 태림의 관점에서 서술된다. 상희는 해언과 가깝지 않았지만 다언과 친했기 때문에 독자에게 다언의 다른 모습을 제시한다. 태림은 사건과 더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그녀는 해언을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만우와 함께 있었고, 나중에 정준과 결혼한다. 독자는 여자 인물들의 눈을 통해서만 만우와 정준을 보기에 이들의 이야기는 신비에 싸여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아마도 가장 눈에 띄는 건 해언의 부재다. 이야기의 목적을 부여하는 희생자로서 해언은 주인공이긴 하지만 자신을 위해 발언하지 않으며 독자는 그녀의 머릿속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독자는 그녀에 대한 다른 인물들의 생각을 통해 그녀를 알 수 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해언은 이들이 자신의 꿈과 욕망, 공포와 불안을 투사하는 하나의 암호이다. 작가는 유려한 스토리텔링으로 독자를 끌어들이고 조각들이 천천히, 하나씩 맞춰져 가는 동안 추리소설의 긴장을 유지시킨다. 하지만 전체적인 그림이 완성되면 우리는 인간이 어떻게 상실과 비극과 슬픔을 다루는지가 진정한 미스터리임을 좀 더 자각하게 된다. 우리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시합이 한창이었던 여름 어느 날에 발생한 끔찍한 범죄를 잊지 않지만 매 챕터를 지나며 시간이 거침없이 흘러가 17년 후인 2019년에 끝날 때가 되면 우리는 미스터리의 어떤 ‘해결’도 생존자들에게는 아무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것임을 알게 된다. 다언과 상희와 태림에게 이 여정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며, 적어도 그들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선의 저편에서 해언과 재회할 때까지는 그럴 것이다. 마지만 페이지를 넘기며 이야기는 독자의 마음속에서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질문들은, 우리가 모두 찾아야 하는 해답들과 함께, 우리 뇌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호랑나비』 황규관 작, 전승희 역, 111쪽, 9500원, 파주: 도서출판 아시아(2021)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영혼을 위한 시 “어떻게 하면 시가 현실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오래 해왔다”라고 황규관은 그의 신작시집 말미의 에세이에서 밝히고 있다. 그는 단순히 삶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 성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차이를 만들기 위해 쓴다. 그는 세계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 낙관적이지 않으며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가 축복이 아니라 골칫거리라고 본다. 그의 시에서 자본주의는 특히 자연과 철저히 대조적이며 적대적이다. 예를 들어, “숲을 놓아주자”에서 시인은 숲에서 인간의 문명을 제거해야 하고 최종적으로 숲을 “새로운 주인”, 우리 자신은 “아둔한 숲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아마도 위기에 처한 환경의 가장 다급한 이미지는 표제작의 첫 부분에서 볼 수 있다. “장마가 끝나지 않는다 바다는 끓고 / 빙하는 놀라 주저앉고 대륙은 탄다.” 하지만 시인은 절망과 자포자기에 빠져 있기를 거부하며 대신 급진적 방법을 찾아 나아가고자 한다. 길에 대한 두 편의 시에서 하나는 프로스트의 유명하지만 종종 잘못 인용되는 시 제목을 따오고(“아직 가지 않은 길”), 또 하나는 “새로 가는 길”을 노래하면서(“동트는 쪽으로”) 이 여정에 대해 얘기한다. 황규관의 시들은 다층적이어서 비밀스러운 의미를 쉽게 노출하지 않지만 세심한 독자와 새롭게 변화된 세상을 갈망하는 이들에게는 음미할 가치가 있다. Seoul 4K Walker (http://www.youtube.com/c/seoul4k) 완벽한 팬데믹 우울증 치료제 코로나 팬데믹이 이제 삼년 차에 접어들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시 해외여행을 갈망하고 있다. 아마도 당신은 한국에 와 본적이 없지만 관심은 있을 것이다(이 잡지를 손에 들었다면 분명히!) 혹은 당신은 이전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고 다시 또 오고 싶어 할 수도 있다. 당신은 어쩌면 이미 한국에 있을 수도 있지만 이전처럼 전국을 마음대로 여행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 유튜브 채널은 바로 당신에게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2020년에 시작된 이 유튜브는 당신의 팬데믹 우울증을 해소해 줄 완벽한 해독제다.여기에 제공되는 대부분의 산보는 서울에서 이루어지는데 시청자는 혼잡한 대도시의 일상적 거리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 만약 ‘강남 스타일’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면 특별히 강남 편을 추천한다. 하지만 서울 바깥 모습을 찍은 비디오도 꽤 많다. 부산의 해운대, 여수 항구의 낭만적 밤거리, 전주의 전통 한옥 마을, 수원의 화성은 많은 하이라이트 중 몇 군데이다. 말할 것도 없이 거의 모든 비디오는 4K 해상도로 만들었고 따라서 큰 스크린에서 보기에도 최적화되어 있다. 다채롭고 활기찬 서울과 한국의 곳곳을 체험해 보기 바란다.

밤의 여행자들

Books & more 2021 WINTER 2410

밤의 여행자들 “The Disaster Tourist”(원제: 밤의 여행자들) 윤고은 작, 리지 뷸러(Lizzie Buehler) 역186쪽, 8.99 파운드, 영국 Serpent's Tale 출판사, 2020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에코 스릴러 지난 일 년 반 동안 코로나 19가 가져온 팬데믹으로 꼼짝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언젠가 뉴노멀로 돌아갔을 때 하게 될 여행을 꿈꾸고 있다. 그런데 다음 목적지가 열대 해안가나 유서 깊은 도시가 아니라 최근에 일어난 지진으로 파괴되거나 쓰나미로 덮쳐진 도시, 혹은 싱크홀에 빨려 들어간 곳이라면? 윤고은의 소설 “밤의 여행자들”은 바로 이 상황을 전제로 한다. 소설의 주인공 유나는 재난여행 패키지 상품을 제공하는 여행사 ‘정글’에서 일한다.도대체 누가 재난 지역을 여행하고 싶어 할까? 정글의 고객은 특별히 섬뜩함을 즐기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즐기는 사람들도 아니다. 한 대학생 고객처럼 초토화된 재난 지역을 돕는 ‘윤리적 관광’의 기회로 삼는 이들도 있고, 다섯 살 된 딸과 함께 여행하는 한 초등학교 교사처럼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는 이들도 있다. 또는 단순히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요나가 알고 있는 것처럼 좀 더 내밀한 힘이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모든 게 산산조각 난 장소에 있으면 재난의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음을 실감하고 자신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재확인한다. 자연 재난 피해자 추첨에서 뽑히지 않음을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여행 직전 진해에 닥친 쓰나미를 경험한 여행자들에겐 더욱 강렬하게 와 닿는다. 이들이 겪은 재난은 소설에서 직접적으로 묘사되진 않지만 그 끔찍한 여파는 소설 전체를 관통하며 독자들에게 전달된다.살던 곳의 재난을 뒤로 하고 여행자들은 베트남 해안에서 떨어진 무이 섬 여행을 단행한다. 요나는 스스로 원해서 여행을 온 게 아니라는 점에서 남다르다. 회사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직장 동료들이 자신을 꺼린다는 걸 알게 된 후 그녀는 사직서를 낸다. 하지만 놀랍게도 퇴사 대신 한 달 휴가를 받고 회사의 패키지투어에 동행하게 된다. 고객으로서가 아니라 패키지 상품을 지속할만한지 평가하기 위해서이다. 유나는 그렇게 다른 여행자들과 무이 섬으로 떠나고 그곳에서 오래된 씽크홀과 그저 그런 화산, 그리고 부족 간에 일어난 대학살의 재연을 보게 된다. 그녀는 희생자 부족의 한 가정에 머문다.요나가 예정대로 한국으로 돌아와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했다면 그녀의 이야기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 순간의 방심으로 그녀는 공항으로 가는 길에 그룹과 떨어지게 되고 베트남 시골 지역에 혼자 남겨진다. 또 한 번의 방심으로 그녀는 지갑과 여권을 소매치기 당한다. 평소 그토록 경멸하던 문제 많은 여행자가 된 것을 자책하며 그녀는 무이 섬을 다시 찾아 가고, 그 휴양지 섬에서 표면 아래 숨겨진 섬뜩한 현실을 마주한다.소설은 긴장감과 반전으로 가득한 이야기를 사회적 이슈에 대한 예리한 시선과 결합해 독자가 찜찜한 기분으로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특히 휴가를 해외에서 보낸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더욱. ‘진짜’를 경험하고자 할 때 우리는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가? 우리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정교하게 꾸며진 외관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 입을 크게 벌린 싱크홀처럼 공동체 전체를 집어삼킬 듯 위협적인 산업에 온전히 의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이야기는 여전히 심각성을 유지한 채 막판으로 치닫고 독자는 이야기를 겨우 따라갈 뿐이다. 마지막 장을 넘긴 후에도 소설과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강한 여운을 남길 것이다. Homo Maskus (원제: 호모 마스크스) 김수열 작, 브라더 앤소니 역73쪽, 10달러, 서울, 아시아출판사, 2020 제주와 그 너머의 휴먼 프리즘 김수열 시인의 새 시를 모은 작은 시집이 영문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그는 제주도 출신이다. 이 사실은 처음엔 중요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제주는 늘 한국에서 특별한 곳으로 손꼽힌다. 한국의 일부이지만 주변에 위치해 있고 종종 가장자리로 밀려나기도 한다. 제주는 김수열 시인의 시 속에서 살아 있다. ‘조화’, ‘데칼코마니’, ‘달보다 먼 곳’과 같은 시들은 섬에서의 삶과 죽음 그리고 역사를 엿보게 해준다.하지만 그의 시는 거시사를 넘어선다. 미시적 역사 렌즈를 통해 훨씬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차원에서 1948년 제주 4.3 사건과 1980년 광주 항쟁 같은 비극적 사건을 조명한다. 시인의 세계는 또한 제주를 넘어 확장된다. ‘베를린의 아침’과 ‘코펜하겐의 하루’에 대해 쓰며 중국의 ‘고안촌에서’ 살고 있는 노인의 이야기를 전한다.김수열의 시는 분명 아주 한국적이면서 제주스럽다. 그러나 동시에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노년이나 죽음과 같은 보편적 주제를 탐구하기 때문이다. 시집의 마지막 두 편은 표제작인 ‘호모 마스크스’를 포함하는데, 이는 분명 팬데믹을 견디며 분투하는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반반 프로젝트, The Halfie Project 벡키 화이트와 반반 프로젝트 팀www.thehalfieproject.com 하이브리드 문화 정체성을 공유하고 탐색하다 창시자 벡키 화이트의 말에 따르면 ‘반반 프로젝트’는 예술 작업인 동시에 연구 프로젝트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연습장이면서, 정체성과 관련된 질문들을 탐색한다. 구체적으로는 혼혈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집중한다. 혼혈 한국인들은 종종 묘한 위치에 처한다. 화이트의 말을 빌리자면 이들은 “두 세계 모두에 속하지만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즉 이들은 다른 반쪽 문화에서는 한국인 또는 아시아인으로 여겨지고, 한국에 오면 외국인 취급을 받는다.반반 프로젝트는 이러한 공통된 경험과 의문에 집중한다. 그리고 다문화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정체성이나 소속감과 같은 주제를 다루는 공간을 제공하고자 한다. 프로젝트 팀의 웹사이트에서 ‘반반 프로젝트 팟캐스트’와 유튜브 채널, 인스타그램을 만나볼 수 있다. 다른 혼혈 한국인들과의 인터뷰가 주 콘텐츠이지만 ‘눈치’, ‘한’과 같이 설명하기 힘든 한국적인 문화 개념을 정의해보기도 하고, 정신 건강 같은 중요한 주제에 대해 통찰력 있는 문화적 해석을 제공한다. 만약 당신이 혼혈 한국인이거나 - 프로젝트 팀은 혼혈인이라면 누구라도 환영한다 - 혹은 다문화적 정체성 이슈에 관심이 있다면 이 프로젝트는 당신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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