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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력과 열정으로 이룬 쾌거

Focus 2021 AUTUMN 126

정신력과 열정으로 이룬 쾌거 정신력과 열정으로 이룬 쾌거 최근 여러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한국 음악인들의 수상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일찍 음악을 시작하고,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 속에서 성장하며 음악적 재능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김수연(Kim Su-yeon 金秀姢)은 올해 몬트리올 국제 음악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한국인 피아니스트로서는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지금은 최고 연주자 과정에 재학 중인 그는 이어 10월에 열리는 쇼팽 콩쿠르에도 도전할 예정이다. ⓒ Denise Tamara, 금호문화재단 제공 2020년부터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는 클래식 음악계도 얼어붙게 만들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서 3년마다 개최되는 리스트 콩쿠르(International Franz Liszt Piano Competition)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5년에 한 번 열리는 쇼팽 콩쿠르(International Frederick Chopin Piano Competition)가 예정되어 있었다. 전자는 연기를 거쳐 결국 취소되었으며, 후자는 올해 가을로 연기되었다. 올해는 사정이 조금 나아져 각종 콩쿠르가 재개되었는데, 우수한 성적을 올린 한국인 연주자들의 소식이연이어 들려왔다. 이 외에도 바리톤 김기훈(Kim Gi-hoon 金基勳)이 영국 BBC 카디프 세계 성악가 콩쿠르(BBC Cardiff Singer of the World)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성악 콩쿠르로서 이 대회의 권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과거에 가곡 부문에서 한국인이 1위를 차지한 적은 있었지만, 본상 우승은 그가 처음이다. 퀸 엘리자베스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한국인들이 해마다 늘어나자, 2011년 벨기에 국영 RTBF 방송이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집중 취재해‘한국 음악계의 미스터리’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한국 연주가들이 콩쿠르에 강한 이유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조기 교육과 치열한 경쟁을 꼽는다. 성악 분야를 제외하면 대개 어릴 때부터 음악을 시작해 일찌감치 재능을 찾아내고, 그런 과정을 통해 경험을 쌓아간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부설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이 대표적인 영재 교육기관이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입학 자격을 얻게 되는데 입학 후에도 1년마다 치러지는 오디션에서 탈락자가 생길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현재의 기량보다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고 선발한 학생들이 결국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그런가 하면 한국인들의 강한 정신력도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또한 과거에 비하면 국제 콩쿠르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늘어나 재능을 발현할 기회가 많아진 것도 큰 변화이다. 피아니스트 김수연 몬트리올 국제 음악 콩쿠르(Montreal International Musical Competition)는 만 33세 이하 젊은 음악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대회다. 성악, 바이올린, 피아노 부문이 한 해씩 돌아가면서 열린다. 바이올린과 성악 부문에서는 한국 연주자들이 그동안 수차례 수상한 전력이 있었지만, 피아노 부문에서는 올해 1위를 차지한 김수연(Kim Su-yeon 金秀姢)이 처음이다. 지난해 말 김수연은 2021년으로 연기된 콩쿠르가 결국 온라인으로 치러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별된 27명의 연주자들이 각각 다른 도시에서 녹음을 하고, 결과 발표 후 추가로 결선 무대를 촬영하는 방식이었다. 그녀는 낯선 진행 방식이 다소 염려스럽기는 했지만, 담담하게 연습을 이어갔다. 첫 촬영은 4월 초, 자신이 살고 있는 잘츠부르크에서 조금 떨어진 빈에서 녹음을 마쳤다. 이후 4월 말 파이널리스트 결과가 발표됐고, 결선 연주는 일주일 후 브뤼셀에서 촬영됐다. 이때 그녀는 베토벤의 와 스크랴빈의 , 라벨의 를 연주했고 콩쿠르 위촉곡인 캐나다 작곡가 존 버지의 도 포함됐다. 그녀는 같은 시기 브뤼셀에서 진행된 퀸 엘리자베스 국제 음악 콩쿠르(Queen Elizabeth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에서도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준결선에 진출한 상태였다. 두 개의 콩쿠르를 동시에 준비하며 영상 촬영까지 해야 하는 과업이 주어졌다. 그녀는 “청중 앞에 서는 것이 아니어서 현장에서 느끼는 긴장감은 덜했지만, 온라인 연주를 위해 카메라와 녹음기 앞에서 연주하는 게 다소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마치 빈 벽을 상대방으로 여기고 감정을 담아서 연기해야 하는 배우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는 뜻이다. 김수연은 이번 대회를 통해 “주목할 만한 세련된 테크닉과 놀라울 정도로 섬세한 아티큘레이션, 미니어쳐 밸류를 가진” 연주자로 평가됐다. 그녀는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서 폭넓은 레퍼토리를 배우며 음악적 상상력을 키웠고,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지금은 최고 연주자 과정에 재학 중이다. 이번 대회는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치러졌지만, 실전 무대만큼 엄격했다. 김수연은 결선 무대에서 베토벤, 스크랴빈, 라벨, 그리고 캐나다 작곡가 존 버지의 작품을 연주했다. ⓒ 2021 몬트리올 국제 음악 콩쿠르 유튜브 영상 캡처 첼리스트 한재민과 피아니스트 박연민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열리는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George Enescu International Competition)는 루마니아 출생의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 제오르제 에네스쿠를 기념하여 1958년 시작됐다. 창설 당시에는 바이올린과 피아노 부문을 대상으로 진행됐고, 이후 성악과 작곡 부문이 추가되어 1971년까지 3년 주기로 열렸다. 2009년부터는 첼로 부문이 추가되며, 2년 주기로 총 네 부문을 대상으로 열리고 있다. 동유럽권에서는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제오르제 에네스쿠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한국인 수상자가 수차례 배출된 이 대회는 지난해 개최 예정이었다가 올해로 연기되었는데, 연도를 변경하지 않고 원래대로 ‘2020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로 표기했다. 지난 3월, 한경필하모닉 정기 연주회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을 연주하는 첼리스트 한재민(Han Jae-min 韓載慜)을 보고 깜짝 놀랐다. 14세 소년이 거침없이 성숙한 기교로 곡을 해석해 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2개월 뒤 그의 제오르제 에네스쿠 우승 소식을 접했을 때는 덜 놀랐다. 그는 이 대회 역사상 모든 부문을 통틀어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웠는데, 그럴 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재민은 그동안 다비드 포퍼 국제 첼로 콩쿠르(David Popper IX. International Cello Competition), 돗자우어 국제 콩쿠르(International Dotzauer Competition for Young Cellists)에서 1위를 수상했는데, 성인 대상 콩쿠르에 나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내 실력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싶었고, 경험 삼아 도전했다”고 말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피아노 반주자를 동반한 데 반해 그만이 주최 측에서 정해 준 루마니아 피아니스트와 함께 연주했다. 덕분에 세미 파이널에서 에네스쿠의 를 연주할 때 루마니아적인 정서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요즘 이슈트반 바르더이와 지안 왕의 연주를 즐겨 듣는다는 그는 “앞으로 나이 제한에 근접할 때까지 할 수 있는 한 많은 콩쿠르에 나가 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음악인 집안에서 태어난 한재민은 5세 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시작했고, 바이올린보다 큰 악기의 울림에 흥미를 느껴 첼로로 전공을 바꿨다. 중학교 2학년을 마치고는 바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최연소로 입학했다. 이 대회의 피아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박연민(Park Yeon-min 朴淵敏)은 서울대 음대와 하노버 국립 음대 석사 과정 졸업 후 최고 연주자 과정에 재학 중이다. 그녀는 지난해 열릴 예정이던 프란츠 리스트 국제 콩쿠르의 14명 준결선 진출자 중 하나였지만, 코로나19로 콩쿠르가 취소되고 말았다. 마음을 다잡고 참가한 이번 대회에서 어렵기로 유명한 라흐마니노프의 을 선택했는데, 압도적인 힘과 열정으로 연주한 끝에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올해 14세인 첼리스트 한재민(Han Jae-min 韓載慜)이 지난해 개최 예정이었다가 올해로 연기된 ‘2020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우승했다. 1958년에 시작한 이 대회 역사상 모든 부문을 통틀어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운 그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 중이다. ⓒ Andrei Gindac, George Enescu International Competition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개최된 2020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1등을 차지한 박연민(Park Yeon-min 朴淵敏)이 라흐마니노프의 을 연주하고 있다. 2014년 금호영아티스트 콘서트로 데뷔한 그는 현재 하노버 국립음대 최고연주자 과정에 재학 중이다. ⓒ Andrei Gindac, George Enescu International Competition 한국 연주가들이 콩쿠르에 강한 이유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조기 교육과 치열한 경쟁을 꼽는다. 성악 분야를 제외하면 대개 어릴 때부터 음악을 시작해 일찌감치 재능을 찾아내고, 그런 과정을 통해 경험을 쌓아간다. 피아니스트 이동하와 아레테 스트링 콰르텟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콩쿠르(Prague Spring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는 지휘자 라파엘 쿠벨릭과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멤버들이 1946년 창설했다. 만 30세 이하의 젊은 음악인들을 대상으로 두 부문씩 매년 번갈아가며 열린다. 올해는 피아노와 현악 4중주 부문에서 경연이 펼쳐졌고, 각각 이동하(Lee Dong-ha 한자)와 아레테 스트링 콰르텟(Arete String Quartet)이 1위에 올랐다. 이동하는 연세대 졸업 후 하노버 국립 음대 석사를 거쳐 뮌스터 국립 음대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국제 콩쿠르에 처음 참여한 그는 이번 대회를 위해 평소 좋아하던 곡들을 선택했는데, 많은 연주자들이 연습하는 곡들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음악적 해석에 더 신중을 기했다고 한다. 지난 5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예정보다 한 달가량 앞당겨진 일정 때문에 여러모로 힘들었지만, 심사위원들로부터 자신의 연주에 대한 객관적이고 상세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던 점이 뜻깊었다고 말했다. 아레테 스트링 콰르텟은 바이올리니스트 전채안(Jeon Chae-ann 全彩顔)과 김동휘(Kim Dong-hwi 金東暉), 비올리스트 장윤선(Jang Yoon-sun 張允瑄), 첼리스트 박성현(Park Seong-hyeon 朴星昡)으로 구성됐으며 2019년 9월 창단했다. 2020년 금호 영체임버 콘서트를 통해 데뷔한 이들의 데뷔 실황 연주는 신예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KBS 라디오 클래식 FM에 소개되었다. 이들은 현재 노부스 콰르텟, 에스메 콰르텟의 뒤를 잇는 차세대 콰르텟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이 팀은 무려 16년 만에 열린 현악 4중주 부문에서 우승 외에도 5개의 특별상을 차지했다. 피아니스트 이동하(Lee Dong-ha 李東夏)가 2021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연주하고 있다. 국제 콩쿠르에 처음 출전한 그는 1위라는 수상 결과보다 훌륭한 심사위원들로부터 조언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 더 값지다고 말했다. 연세대 졸업 후 하노버 국립 음대 석사를 거쳐 현재 뮌스터 국립 음대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 Petra Hajská, Prague Spring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2021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콩쿠르 현악사중주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아레테 스트링 콰르텟(Arete String Quartet)은 특별상까지 포함해 이번 대회에서 6관왕을 차지했다. 2019년 창단한 이 그룹은 국내 실내악 분야를 이끌어 갈 차세대 콰르텟으로 주목받고 있다. ⓒ Petra Hajská, Prague Spring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류태형(Ryu Tae-hyung 柳泰衡) 음악 칼럼니스트

천년 수도의 아름다운 파동

On the Road 2021 AUTUMN 137

천년 수도의 아름다운 파동 천년 수도의 아름다운 파동 오랜 역사와 문화의 아름다움을 잘 간직하고 있는 도시, 땅을 파면 문화재가 나오는 바람에 공사가 중단된다는 고대 왕국의 수도. 경주는 남아있는 유적과 유물들을 통해 찬란했던 문명을 상상할 수 있는 곳이다.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에 자리한 국보 제112호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높이가 13.4m로 통일신라시대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다. 감은사는 신라 30대 문무왕이 삼국 통일을 완성한 후 짓기 시작한 절로 지금은 지상에 이 탑들만 남아 경주의 동쪽 바다를 지키고 있다. 비트 세대 대표작가 잭 케루악(Jack Kerouac 1922~1969)— 그가 말년에 불교에 깊이 빠져들었던 걸 상기하며, 한때 불교문화의 심장이었던 경주로 향하는 길에 두근거리는 맥동을 느꼈다. 그가 쓴 소설의 제목이 바로 이 칼럼의 이름 “On the Road” 였다. 경주를 요약하는 단어는 ‘천년 수도’다. 정확하게는 992년 동안 수도였으니 천년에서 8년 모자라지만 아름다운 도시니까 그냥 넘어가자. 기원 전 57년부터 936년까지 하나의 나라로 살았던 사람들, 그 나라의 이름은 신라였다. 천년간 지속된 국가는 몇 개 떠오르지 않는다. 비잔티움과 신성로마제국을 포함하며 오랜 역사성 부문에서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로마제국 정도만 생각날 뿐. 아, 파라오 왕조도 상당했었지. 그런데 아시아 동쪽 끄트머리의 작은 땅에도 천 년 동안 지속하며 찬란한 문화를 남긴 국가가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경주는 당시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이나 장안(시안), 바그다드 같은 화려하고 유명한 대도시와 같은 리그에서 뛴 선수였다고 볼 수 있다. 경주는 고대 실크로드를 통해 아라비아를 너머 유럽과 교류하던 중국과도 활발한 교류를 해서 신라인의 무덤에서 로만 글라스가 출토되기도 한다. 시야가 좁지 않고, 경기장을 넓게 쓰며 세계시민으로 존재감을 가진 나라였던 것이다. 근대에 이르러 제국주의의 행패와 전쟁으로, 웬만한 건 다 무너졌던 이 나라에 아직도 신라 문명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비도를 지나면 궁륭천장으로 짜인 원형공간의 주실이 나온다. 연꽃 모양의 돔으로 이루어진 천장과 본존불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부처와 보살, 수호신들이 고대의 건축술과 조형미를 보여준다. 현재는 보존 문제로 관람객이 주실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으며 유리 차단막이 설치된 통로 밖에서 지나가며 볼 수 있다. ⓒ 국립문화재연구소, 한석홍 비밀스러운 아름다움 나는 배를 타고 온 이방인 탐험가처럼 동쪽 바다에서부터 경주로 들어가 문무 대왕(~681 文武大王)을 기리는 첫 유적지, 감은사지(感恩寺址)를 만났다. 이 절의 네이밍은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왕의 은혜를 팔로우하고 틈만 나면 ‘좋아요’를 계속 누르겠다는 뜻이다. 감은사지의 느낌은 조금 특별하다. 관광명소 특유의 과도한 포장이 되어 있지 않아서 자칫 버려진 듯 보일 지경이다. 입장료도 없고 관리인도 보이지 않았다. 낡아버린 쌍탑만 달랑 남은 절터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이 쌍탑은 아주 오랫동안 이 자리에 우뚝 서 있다. 고대의 감은사 아래는 바닷물이 닿는 곳이었고, 절 아래로 용이 드나들 수 있는 수로가 설계되어 있었다. 두 개의 탑이 용이 된 왕을 지키는 중인지 용이 두 개의 탑을 지키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탑의 수수한 아름다움이 눈길을 오래 잡아끌어 시선을 돌리기 싫을 정도다. 이 탑을 해체하고 복원할 때 탑 안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舍利具)에는 신라의 정교한 금속 공예술이 가득 담겨 있다. 이 보물은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아주 그냥 미친듯이 예쁘다. 탑의 겉모습인 수수한 아름다움과의 대비가 선명하다. 보이지도 않는 탑 속에 숨겨진 이 보물이 신라의 찬란한 문명을 만든 기본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하되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겸손함. 아름다움은 굳이 포장하지 않아도 스스로 빛난다는 걸 가르치는 것인가. 신라의 비밀스러운 아름다움을 더 보고 싶어 경주 속으로 빨리 파고들었다. 곧 경주로 향하는 바닷바람을 막는 토함산이 나타났고, 산 깊은 곳에 있는 석굴암(石窟庵)이 등장했다. 경주의 아름다움을 담당하는 최전방 국가대표선수는 누가 뭐래도 불국사(佛國寺)와 석굴암 투톱이다. 불국사의 부속암자인 석굴암은 로마에 있는 판테온과 비슷한 구조로 설계되었는데 고대에 그런 상당한 건축 기술의 교류가 있었다는 놀라움도 있지만, 나는 당장 눈앞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데도 충분히 바빴다. 석굴암은 불교국가였던 신라의 깊은 불심으로 만든 아름다운 인조 돌 동굴 속 불교미술이자 건축미의 절정이다. 빗물도 스며들지 않고 안에 이끼도 끼지 않는다고 한다. 돌을 뚫어 석굴을 만들자니 화강암이 너무 단단해서 조립식 건축 기법으로 이 인조 석굴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점이 중국이나 인도의 불교 석굴과 다른 점이고, 그래선지 상당히 유니크한 매력을 뿜어낸다. 내가 찾아간 날 석굴암으로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 내내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석굴암의 내부 역시 문화재 보호를 위해 많이 가려져 있고, 줄 서서 지나가야 해서 자세히 볼 방법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긴 시간 빤히 들여다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름다움은 가슴에 와락 안기는 종류였다. 조각 예술의 강렬한 미학이 파동처럼 번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 같은데, 잠깐 스쳐봤으나 망막에 본존불상의 표정이 배어버린 느낌이었다. 경주시 진현동 토함산 중턱에 있는 석굴암의 석가여래좌상은 불교미술사에서 두드러진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전실과 원실 사이, 비도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석굴암은 8세기 중엽 통일신라시대에 20여 년에 걸쳐 축조되었으며 고대 실크로드를 통해 유입된 그리스 로마 건축양식에 불교미술이 접목된 화강암 석굴이다. ⓒ 국립문화재연구소, 한석홍 빈티지 미학 탄력을 받은 나는 다음 차례의 아름다움을 찾아 불국사로 향했다. 대웅전(大雄殿) 앞 쌍탑을 보며 한 자리에 오래 남아있는 것의 빈티지 미학을 느꼈다. 신라가 멸망한 뒤, 다음 왕조들에서도 주요한 지방 거점의 역할을 하며 존재해 온 경주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빈티지일 것이다. 한때의 찬연했던 광휘와 오래 견뎌온 것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었다. 이 두 개의 탑이 얼마나 오래 이곳에서 시공간을 봐왔겠는가. 왕조의 흥망성쇠를 보았고, 그들의 삶이 이곳을 스쳐 지나가는 세월의 굴곡도 보았을 것이고 지금은 수많은 관광객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쌍탑을 비롯해 불국사의 구조는 놀랄 만큼 아름다운 균형미를 갖고 있다. 불국사의 보물인 다보탑(多寶塔)에 조각된 네 마리 사자상 중 세 개는 유실되었다. 석가탑(釋迦塔)은 보수 공사 중에 떨어뜨리고, 탑 속의 사리함이 깨지는 등의 난리와 풍파도 겪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유물들은 번뇌를 초월한 듯 무덤덤해 보였다. 뭐든 견뎌낸 것들은 참 고혹적이다. 침략을 받고, 땅을 빼앗기고, 지진이 나고, 도굴당하고, 유물이 사라지거나 훼손될 위기에 처했을 때도 문화재를 지키려 노력해 온 이들의 마음이 찬란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석가탑 안에선 당시의 목판 인쇄술을 보여주는 다라니경(陀羅尼經)도 발견되었다. 이 또한 신라의 자랑스러운 보물이다. 인쇄술이 인류문명 발전에 얼마나 큰 속도감을 부여했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으니까. 빈티지 유물들이 보여주는 시공간의 크기와 깊이에 압도되다 불국사를 빠져나오니 문학관이 하나 보였다. 경주 출신인 김동리(1913~1995 金東里), 박목월(1915~1978 朴木月)두 작가를 함께 기념하는 시설이었다. 이들은 꽤 아름다운 글들을 썼다. 신라 문화와 한국 근대문학은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나는 하나의 연결점을 떠올렸다. 신라시대에 만든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이라는 거대한 범종의 금석문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당시 사람들은 재물을 싫어하고 글재주를 사랑했다.” 내겐 이 글귀가 신라 사람들이 돈이나 탐하는 대신 문학을 사랑했다는 얘기로 해석됐다. 이렇게 아름다운 생각을 했던 나라였으니, 이토록 아름다운 것들을 잔뜩 남긴 것 아닐까? 어릴 때부터 경주의 문물을 보고 자랐을 작가들이 부러웠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덕에 그들은 아름다움에 대해서라면 풍부한 시야를 자동으로 가졌을 것 같다. 그들을 상상하며 걷다 보니 문득 박목월 시인의 기념관에 흐르던 육성 시 낭독이 들려왔다.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 (William Wordsworth 1770~1850)처럼 광의의 낭만주의 시를 써온 시인의 서정에는 인생과 자연에 대한 통찰이 압축되어 있었다. 경주의 보물은 유물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작품 또한 오래도록 남아 계속 빛나고 있다. 나의 문학기행은 문학관에서 짧게 마무리했지만 더 깊은 탐구를 위해 두 작가의 생가와 주요 작품의 배경지들을 둘러보는 코스도 잘 마련되어 있다. 토함산 서쪽 중턱의 불국사는 석굴암과 함께 신라 불교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정교한 석축으로 조성된 터에 대웅전, 극락전 등 전각과 석가탑과 다보탑, 백운교와 연화교 등을 품고 있다. 석굴암과 더불어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약 3만 8,000평의 평지에 23기의 원형 분묘가 솟아 있는 대릉원은 경주에서 가장 큰 고분군이다. 경주 시내 한가운데 황남동에 자리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신비감을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죽음의 한복판에 삶의 한복판이 있다니. 삶과 죽음의 관계는 조화일까 부조화일까. 현대와 고대의 간극은 또 어떻게 받아들일까. 경주란 여러가지 선명한 대비만으로도 독특한 존재성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곳이다. 통일신라시대년에 주조된 성덕대왕신종은 높이 3.66m, 입지름 2.27m, 두께 11~25cm, 무게 18.9톤에 이르는 범종으로 현존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종이다. 종의 맨 위에서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은 한국 동종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이며, 깊고 그윽한 여운이 오래 지속되는 신비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동리목월문학관은 경주 출신 소설가 김동리(1913-1995)와 시인 박목월(1915-1978)을 기리기 위해 2006년 토함산 자락에 건립되었다. 한국 현대문학에 큰 자취를 남긴 두 문인의 원고, 작품집, 동영상 등을 전시하고, 각기 생가와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소로 연결되는 투어도 제공한다. 동리문학관 안에 복원된 소설가 김동리의 창작실이다. 동리목월문학관은 동리문학관과 목월문학관으로 나뉘어져 각 작가의 유품, 동상을 전시하고 있다. 소설가 김동리의 육필 원고이다. 복원된 그의 창작실에는 생전에 사용하던 만년필, 안경, 책장, 집필노트 등 다양한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찬란한 종소리 문학관을 떠나 대릉원(大陵苑)에 다다른 나는 거대한 무덤들이 그리는 스카이라인의 그로테스크함에 감탄하다 시공간에서 내 좌표를 잃어버릴 것만 같아 한 무덤 속으로 피신했다. 실내를 관람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천마총 내부였다. 발끝이 서늘했다. 경주 기행 내내 비가 많이 왔는데 발이 젖는 줄도 모르도록 경주는 계속 신선한 볼거리를 선사하는 곳이었다. 무덤 속은 무섭거나, 신비하거나, 칙칙하거나 할 것 같았지만, 아름다웠다. 사람이 죽어서 누워있던 자리는 몰락의 느낌 없이 편안해 보였고 그 정성 들인 장례에 동원된 품을 생각하니 옛날 사람들의 부지런함도 경이로웠다. 내 게으름을 반성하며 무덤에서 나오자 경주 시내 황남동 번화가가 나왔다. 나는 현대에 조성된 번화가와 고대 무덤가의 간극에 살짝 황당해졌다. 죽음의 한복판에 삶의 한복판이 있다니. 삶과 죽음의 관계는 조화일까 부조화일까. 현대와 고대의 간극은 또 어떻게 받아들일까. 경주란 여러가지 선명한 대비만으로도 독특한 존재성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곳이다. 짧은 여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찾아간 곳은 앞서 언급했던 성덕대왕 신종 앞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경주를 찾은 내가 가장 다시 만나고 싶었던 신비였다. 이 종의 표면에 새겨진 반쯤 뭉개진 글자들, 그러니까 재물을 싫어하고 글재주를 사랑했다는, 그 아름다운 문장을 내 눈앞에 생생히 홀로그램으로 띄워주는 듯했다. 그리고 이 종의 독특한 공명을 가진 소리를 떠올렸다. 독자에게 종소리를 직접 들려줄 수 없어 아쉽지만, 이 거대한 범종이 퍼트리는 맥놀이 현상은 현대의 파동 역학을 잘 알고 만든 것 같은 소리라 소름이 돋는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가 경주에 오면 이 웅혼한 종소리를 꼭 한 번 듣고 가면 좋겠다. 이 종소리가 지닌 파동은 경주의 빈티지 미학을 잘 보여주는 유물들과, 문학에 대한 이해의 경건함과, 세계와 교류하던 고대의 대도시를 지키는 용이 스스로의 찬란함에 감탄하며 내지르는 포효 세리머니와 같을지도 모른다. 간접적으로라도 그 파동을 부디 전달받을 수 있길 바라며. 아름다움에 경도되는 파동이 영원하기를. 박상(Park Sang 朴祥) 소설가

침묵이 흐르는 대학가 원룸촌

Image of Korea 2021 AUTUMN 125

침묵이 흐르는 대학가 원룸촌 침묵이 흐르는 대학가 원룸촌 “원룸, 투룸, 자취방, 풀 옵션 방, 신축 원룸, 원룸 임대….” 대학가 골목 담벼락과 대로변 전신주, 가로수, 버스 정류장 쉘터에 붙여 놓은 전단들이 바람에 들썩거린다. 그러나 마스크를 쓴 채 지나가는 행인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다. 대학가 주변에는 침묵만 가득하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대학가 임대업계는 걱정이 많다.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면서 대학촌에 학생들이 사라졌고, 덩달아 원룸을 찾는 수요가 줄거나 끊겼다. 중국 유학생들은 오래전에 돌아갔고, 기존에 방을 쓰던 지방 출신 학생들도 떠나기 시작했다. 대면 수업이 재개되어 학생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월세가 전반적으로 하락했다. 과거에는 타 지역에서 온 학생들이 학교 근처에서 대개 하숙을 했다. 방만 빌려 쓸 뿐 혼자 끼니를 만들어 먹고 살림을 해야 하는 자취 생활에 비해 하숙은 여러모로 이점이 많았다. 가족과 떨어져 객지에서 지내야 하는 학생들은 하숙집 아주머니가 만들어 주는 따뜻한 밥과 푸짐한 반찬들을 끼니때마다 먹을 수 있었고, 인심 좋은 아주머니들은 빨래와 청소까지 해 주기도 했다. 학생들은 그런 보살핌 속에서 외로움을 달래며 위안을 얻을 수 있었고, 함께 사는 다른 하숙생들과 마치 형제자매처럼 친밀하게 지내곤 했다. 하숙집 생활에는 농경 사회 대가족 체제의 공동체 정서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풍경들은 점차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1980년대 이후 전국적으로 대학과 대학생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한 지붕 아래에서 가족처럼 함께 사는 하숙으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과거의 가족적 공동생활보다 개인의 사생활 보호가 더 우선시되는 사회 분위기와 더불어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대학촌에 전 세대 원룸들로 구성된 신축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로써 집주인과 학생들 사이의 끈끈한 인간적 관계는 임대인과 세입자 관계로 바뀌었다. 여기에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대학가 원룸촌에서 젊음을 비워 버렸다. 남향의 작은 베란다와 최소한의 규모만 갖춘 주방, 좁지만 그런대로 깔끔한 욕실, 붙박이장과 책상, 그리고 작은 침대 하나…. 젊은 날의 꿈과 고뇌와 열정으로 충만했던 원룸이 텅 빈 채 사나운 여름빛만 가득하다. 초가을 2학기가 시작되면 이 방에 희망을 품은 새 주인이 돌아올까? 김화영(Kim Hwa-young 金華榮) 문학평론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젊은 영국 여성이 바라본 북한

Tales of Two Koreas 2021 AUTUMN 129

젊은 영국 여성이 바라본 북한 젊은 영국 여성이 바라본 북한 외교관 남편을 따라 2년간 북한 평양에 둥지를 틀었던 영국 여성. 사회주의 체제 이면의 곳곳에서 보고 느낀 사람들의 일상의 모습과 그들과 나누었던 다정한 교감은 귀국 후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의 기억 속에 살아 움직인다. 30대 영국 여성이 경험한 북한은 생각보다 다정하고 친절한 곳이었다. 평양 생활은 2년 남짓은 그의 가치관을 크게 바꿔 놓기에 짧지 않았다. 외교관 남편과 함께 평양에서 2년 머물고 영국으로 돌아온 린지 밀러는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예상 불가능했던 북한의 모습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책을 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자유를 당연하게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다. ⓒ Lindsey Miller 작곡가이자 음악 감독인 린지 밀러(33·Lindsey Miller)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외교관 배우자와 북한에 머물며 만난 사람들의 사진과 이야기를 묶어 지난 5월 책으로 펴냈다. 200쪽의 이 책 제목부터 범상하지 않다. (North Korea: Like Nowhere Else). 북한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는 그곳 사람들이 마치 차가운 로봇 같을 것이라 예상했다. 특히 외국인들에게는 더없이 냉담하거나 적대적일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평양에서 2년을 살다 돌아온 지금, 그런 생각은 편견이었다고 밀러는 말한다. 그가 만난 북한 주민들은 우호적이고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외국인들은 흔히 열병식이나 집단체조, 미사일 같은 선입관을 가지고 북한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도 매우 엄하고 딱딱할 것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에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손주를 귀여워하고, 가족은 서로를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죠.” 평양 주변은 물론 시골길에서도 마을과 마을 사이를 오가는 군용 트럭 뒤에 빼곡히 앉은 군인들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밀러가 본 군인은 딱딱하고 무서운 존재가 아닌 그저 미소를 짓고 인사도 건네는 젊은이들이었다. ⓒ Lindsey Miller 그들은 군인이기에 앞서 평범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는 이 사진을 찍은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군인들과 인사를 주고받았고, 그들 중 한 명은 밀러에게 손 키스를 보냈다. 확실한 변화 밀러는 북한 사회의 획일화된 분위기 속에서 작은 변화를 발견했다. 어느 날 오후, 단속과 제재를 상징하는 로동신문사 앞을 손잡고 걸어가는 젊은 연인을 보았던 것이다. 그는 이 광경을 사진으로 남기고 책에 담았다. 그뿐 아니라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젊은이들의 모습을 자주 보았다. 어린 학생들은 미국 디즈니사의 캐릭터들이 그려진 가방을 메고 다니기도 했다. “미국 문화의 상징인 디즈니 가방을 북한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어요? 북한 국영 텔레비전에서도 디즈니 만화영화를 봤습니다.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저는 북한 주민들이 그런 것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아는지 궁금했습니다.” 밀러는 자신이 찍은 수천 장의 사진 중 트럭을 타고 가는 북한 군인들 사진을 가장 좋아한다. 이 사진에는 그가 북한과 그곳 사람들을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잘 표현돼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 군인이라 하면 김정은 정권을 떠올리지만, 밀러가 보고 느낀 그들은 군인이기에 앞서 평범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는 이 사진을 찍은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군인들과 인사를 주고받았고, 그들 중 한 명은 밀러에게 손 키스를 보냈다. 다들 웃기 시작했다. 밀러도 똑같이 손 키스를 보냈다. “우리는 북한에 이런 일상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군복에 너무 집중해 그 사람 자체를 보는 것을 잊곤 하죠. 저는 북한에 살면서 그들이 누군지, 어디서 왔고, 가족과 그들의 인생은 어떨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주민들과의 접촉 외국인 거주자들은 꽤 자유롭게 평양 시내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쇼핑을 하거나 외식을 하고, 거리에서 마주친 주민들과 비교적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놀랍게도 많은 북한 주민들이 기본적인 영어 회화를 할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영어를 하려고 먼저 다가오기도 했다. 반면 관광객들과는 달리 외국인 거주자가 지켜야 하는 규칙과 제약도 있었다. 버스나 택시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고 북한 주민의 집 방문도 불가능했다. 북한 주민들과 항상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감시 체계를 많이 경험했다. 길에서 만나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이 한순간 표정을 바꾸고 갑자기 자리를 뜰 때가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영락없이 양복 입은 남자가 서 있곤 했다. 평양 시내의 상점들 역시 이방인을 선뜻 반기지는 않았다. 가끔 가게안에 여러 손님이 있는데도 밀러가 들어오면“영업이 끝났다”고 하기도 했다. 밀러가 가장 흥미롭게 느꼈던 대상은 평양의 젊은 여성이었다. 특히 또래 여성들에게 관심이 갔다. 연애와 결혼, 커리어에 대한 그들의 사고 방식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 놀라웠다. “제가 만난 평양의 젊은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보다는 일과 커리어를 더 중시했어요. 제가 결혼을 했는데도 왜 아이가 없을까 매우 궁금해했습니다. 장시간 일하는 게 너무 피곤하다는 얘기를 한 여성도 있었죠. 결혼하기 싫다는 여학생도 있었어요. 물론 평양의 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경우들이었죠. 제가 북한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북한 사회의 상위 권력 계층이었고 외부인들과 접촉도 많이 경험해본 상태였어요.” 그는 외교단지가 있는 평양 동부의 문수동에서 살았다. 각국 대사관, 국제기관, 국제 구호단체들이 있는 지역이다. 규모가 크지 않았고 가끔 전력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지만, 사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위성TV를 볼 수 있었고 인터넷 접속이 가능했으나 속도가 아주 느렸다. 외교단지 안에는 외국인 학교도 있지만, 수준이 높지 않아 대부분의 외교관 자녀는 홈스쿨링을 하고 있었다. 밀러는 북한으로 떠나기 전, 그곳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외화인 달러, 유로, 위안화등을 준비해 오라는 권고를 받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구겨진 달러는 받지 않았다. 도착 직후 현지인 운전자를 통해 공항 주차장 요금정산소에서 1달러를 줬는데 구겨지고 더럽다며 거절당했다. 평양에선 물건을 산 뒤 거스름돈 대신 껌, 주스 같은 간식거리를 받는 것이 흔한 일이다. 백화점에서는 잔돈을 북한 화폐 원으로 거슬러 주기도 했다. 외국인들은 자동화폐입출금기(ATM)를 사용할 수 없었다. 외화 현금이 동나면 잠시 외국을 다녀오는 지인에게 부탁해 전달받았다. 많은 외국인들이 북중 국경 도시 단둥의 ATM에서 현금을 찾아왔다. 평양의 한 지하철 역에 거대한 김정일 초상화가 우뚝 서 있다. 그 아래를 지나가는 일은 그곳 주민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또 하나의 일상으로 보였다. ⓒ Lindsey Miller 2018년 가을 어느 날 오후 평양 시내 한 작은 아파트의 정경이다. 밀러는 북한의 기성세대가 보고 경험한 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믿는 북한의 미래가 어떤 것인지 늘 궁금했다. ⓒ Lindsey Miller 2018년 한 열병식에서 김정은 앞을 지나 평양 거리를 통과하는 여군들이 카메라를 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군중은 이들에게 풍선과 꽃을 건네며 환호했다. 밀러는 이 사진을 책 표지로 결정하는데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 Lindsey Miller 짧지만 강렬한 기억 2018년 북미 정상회담은 밀러에게 가장 흥미롭고 강렬한 기억을 남겨주었다. 그는 이미 외신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있었지만, 북한 방송은 회담 소식을 하루 늦게 발표했다. 알고 지내던 북한 사람들이 밀러에게 와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하며 설명해 달라고 했다. 평양 시내에 ‘우리는 하나’라는 슬로건과 함께 김정은과 트럼프의 악수 장면을 담은 대형 사진들이 걸렸다. 북한 사람들이 남한 가요를 듣거나 TV 프로그램을 본다는 소문은 많았지만, 밀러 자신이 직접 보거나 듣지는 못했다. 북한에서 남한의 콘텐츠를 접하는 것은 최고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행위이다. 북한 사람들은 밀러가 서울에 가봤는지, 서울은 어땠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한 북한 주민은 그가 발리 해변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자 너무 아름답다며 한참 바라보기도 했다. 그들은 영국 문화에 대해서도 많이 물어봤다. 그러나 성평등이나 동성 결혼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았다. 밀러의 초기 북한 사진에는 건물이 많이 등장한다. 그의 눈에 건축의 외양이나 디자인이 이색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빠르게 사람들로 초점이 바뀌어 자신이 바라보는 북한 사람들의 일상을 창의적인 시각으로 담았다. 간혹 차마 사진에 담지 못한 순간들이 있었고 밀러는 그들을 존중하기 위해 셔터를 누르지 않았다. 처음엔 책을 출판할 계획이 없었다. 하지만 영국으로 돌아가 사진을 정리하면서 북한에서의 추억이 떠올랐고 자신이 겪은 경험과 감정들을 돌이켜보면서 이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다. 책은 연출되지 않은 사진 200장과 16편의 이야기로 엮었다. 북한의 체제나 정치 상황보다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췄다. 이라는 제목에는 함의가 많다. “북한이 어떤 곳이냐는 질문에 간단히 답하긴 정말 어려웠습니다. 제가 아는 모든 곳, 제가 경험해 본 모든 장소 중, 이 세상에 북한과 같은 곳은 없거든요. 신분의 외국인들에게도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이 확연히 구분돼 있어요. 제 책의 제목을 이렇게 붙인 이유입니다.” 밀러는 북한에서 영국으로 돌아간 뒤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이미 북한에 먼저 살아본 경험이 있어 더욱 가슴이 벅찼고, 비무장지대(DMZ)에서 특히 감정이 남달랐다. “비록 국경은 닫혔지만 북한에 대한 마음까지 닫아서는 안 됩니다. 북한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인터뷰를 마치며 그가 한 말이다. 김학순(Kim Hak-soon 金學淳) 언론인,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초빙교수

토란에 숨겨진 신비

Essential Ingredients 2021 AUTUMN 121

토란에 숨겨진 신비 토란에 숨겨진 신비 감자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끈적이는 점액질을 품어 쫀득한 식감을 동시에 가진 토란은 가을에 만날 수 있는 오래된 식재료다. 알면 알수록 신비로운 토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①주로 밭에서 키우는 토란은 굵은 줄기 끝에 큰 잎 한 장이 붙어있다. 토란은 버릴 것 없는 유익한 식재료다. 잘 말린 토란잎은 여름철 쌈이나 나물로 먹는다. 토란대는 살짝 말려 껍질을 벗긴 다음 짧게 삶은 뒤 들깨와 함께 볶으면 아삭한 식감의 좋은 밥반찬이 된다. 알토란은 특유의 미끌거리는 식감으로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어떤 식재료도 흉내 낼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②토란의 단면에서 나오는 끈적이는 성분은 ‘뮤신’이라는 다당류 점액물질로 단백질을 분해해 소화와 흡수를 돕는다. 뮤신은 장어나 연근, 마에도 있는데 위와 장의 뛰어난 윤활제 역할을 한다. ③가려움을 유발하는 토란 껍질을 손질할 때에는 팔팔 끓인 쌀뜨물에 토란을 잠깐 삶으면 된다. 몇 번 문지르지 않아도 쉽게 토란 껍질을 깔 수 있다. 토란 속 전분과 함께 들어 있는 바늘 모양의 수산칼슘 결정이 가려움을 유발하고 아린 맛을 내기도 한다. ⓒ신혜우 음식은 수수께끼와 같다. 하나의 음식 속에는 여러 가지 사실이 숨겨져 있다. 토란이란 이름을 생각해보라. 껍질을 벗긴 알맹이의 모양이 감자와 비슷하다. 그런데 왜 토란이라고 불렀을까? 토란이 한반도에 처음 들어왔던 시기에는 ‘감자’라는 이름이 없었다. 그래서 ‘땅에서 나는 알처럼 생겼다’는 뜻으로 토란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문자 기록상 감자가 한반도에 처음 들어온 시기는 조선시대인 1824년이다. 토란은 이보다 6백 년 앞선 고려시대 의서 (鄕藥救急方 Emergency Prescriptions in Local Medicine; 1236)에 등장한다.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문인 이규보의 시문집 (東國李相國集 Collected Works of Minister Yi of the Eastern State; 1241)에는 시골에서 토란국을 끓였다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토란국은 미끌미끌 넘어가는 토란 특유의 감촉을 잘 느낄 수 있는 음식이다. 소고기와 무, 토란을 넣고 간장으로 간을 해 끓인 맑은 국은 주로 추석 명절에 끓여 먹던 전통음식으로 담백하면서도 시원하고 깊은 맛이 있다. ⓒ KOREAN FOOD FROMOTION INSTITUTE 해독을 위한 지혜 감자와 마찬가지로 토란도 덩이줄기이다. 덩이줄기란 식물이 영양소를 저장하기 위해 줄기를 부풀린 형태를 말한다. 한국에서 토란은 추석 때 먹는 전통 음식이다. 구체적 조리법은 1920년대 방신영(方信榮 1890∼1977)의 조리서 (朝鮮料理製法 Recipes for Korean Dishes; 1917)에 나온다. 토란을 잘 씻어 먼저 한 번 삶는다. 맑은 장국이나 곰국에 토란을 넣어 끓이는데 다시마를 조금 썰어 넣고 끓인다. 서울식 토란국 조리법이다. 남도에서는 들깨를 갈아 넣은 고소한 맛의 국물에 토란을 넣어 끓인다. 국 속의 토란은 언뜻 보기에 감자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입에 넣고 씹을 때 식감은 감자와 전혀 다르다. 미끈거리면서 물렁물렁하다. 토란에 끈끈한 점액질 성분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감 때문에 토란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점액질 성분 대부분은 건강에 유익하다. 토란 속 점액질을 이루는 다당류는 장내 유익균의 먹이인 프리바이오틱스로 작용한다. 이들 다당류는 물을 쉽게 흡수하여 부풀어 오른다. 덕분에 점액 다당류를 이용해 입안에 넣으면 물 없이도 녹는 구강붕해정을 만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수분을 제외하고 토란에 가장 많이 들어있는 성분은 전분이다. 토란에 있는 전분 알갱이의 크기는 작은 편이어서 소화가 잘 되지만 생으로 먹을 수 없다. 바늘처럼 날카로운 수산칼슘 결정(calcium oxalate crystals)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수산칼슘 결정은 토란잎이나 토란대에도 있는데 단백질 분해효소와 함께 저장되어 있어 날로 먹으면 아린 맛이 난다. 먼저 바늘 같은 결정이 피부 점막을 찔러 상처를 낸다. 설상가상으로 효소가 그 상처에 작용하여 염증, 통증을 일으킨다. 토란을 손질할 때 즙액이 손에 묻으면 가려우니 장갑을 끼고 다루라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사실 이런 독성은 토란과 같은 천남성과(天南星科) 식물의 공통적 특징이다. 그대로 먹었다가는 점막을 자극하는 통증과 가려움증을 피할 수 없으므로 다른 동물은 천남성과 식물을 먹지 않고 피한다. 섬에서 염소를 방목해도 천남성은 무성하게 자란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이다. 하지만 잡식 동물로서 인간은 독보적이다. 불이라는 강력한 도구로 음식을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인간에게 토란의 독성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토란이나 토란대를 하루 전에 물에 담갔다가 삶아서 걸쭉한 물을 버리고 쓰면 된다. 이렇게 가열하면 토란 속의 효소는 변성하여 작동을 멈추고 수산 결정은 물에 녹아 제거된다. 완벽하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극을 줄여 먹기 좋은 정도로 만드는 데 충분하다. 이런 처리에 대해 잘 모르고 가을에 토란이나 토란대를 사다가 바로 국을 끓이면 아린 맛이 남아 있어 먹기 힘들다. 추석에 즐겨먹는 토란국 속에는 식재료의 독성을 제거하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있다. 토란을 한입 크기로 썰고 꽈리고추와 통마늘을 곁들여 간장, 설탕을 넣고 졸인 토란조림이다. 자박한 국물과 함께 떠 먹으면 깊은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 ⓒ 10000recipe 토란의 아린 맛을 빼기 위해 약간 삶은 후, 감자칩처럼 통째로 슬라이스해 구우면 바삭한 식감과 고소한 맛의 토란칩이 된다. 열량이 낮아 다이어트 간식으로도 좋다. ⓒ momcooking 다양한 요리와 디저트 ‘알토란 같다’는 말이 있다. 내용이 충실하거나 옹골차고 실속이 있다는 뜻이다. 원래 알토란은 너저분한 털을 다듬어 깨끗하게 만든 토란을 말한다. 접두사 ‘알’은 알밤, 알몸처럼 겉을 덮어 싼 것이나 딸린 것을 다 제거했다는 뜻이다. 감자와 고구마가 나타나기 전까지 토란은 농가에 매우 중요한 구황작물이었다. 그러니 속이 꽉 찬 알토란이 실속의 대명사가 된 것도 이해할 만하다. 역사가 긴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토란의 소비는 주로 가을 명절에 한정된다. 9월이면 시장에 토란이 쏟아져 나오지만 추석이 지나면 찾아보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예전에는 토란국 외에도 찜, 구이, 송편, 장아찌 등으로 다양하게 요리해 먹었다. 토란을 쪄서 껍질을 벗기고 찹쌀가루와 섞어 기름에 지져 토란병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다른 채소와 함께 반죽해서 전으로 부쳐먹기도 한다. 요즘에는 토란 자체보다 육개장에 넣은 토란대를 찾아보기 쉬워졌다. 껍질을 벗기고 말린 토란대를 물에 삶고 여러 시간 우려내어 아린 맛 성분을 제거한 다음 여러가지 채소, 소고기와 함께 넣고 끓인다. 졸깃한 토란대를 씹는 맛이 고기의 식감과 묘하게 대비되면서 맛이 극대화된다. 토란의 대표 산지는 전남 곡성이다. 전국 토란 재배지의 절반이 곡성에 있고 생산량으로는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곡성은 다양한 토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들깨 가루를 듬뿍 넣고 끓인 들깨 토란탕은 곡성의 대표 음식이다. 토란의 고소한 향기가 들깨, 소고기와 잘 어울린다. 맑은 토란국, 찐 토란, 토란 전병, 토란 미숫가루, 토란 누룽지도 먹어볼 만하다. 토란빵, 토란 스콘, 토란쿠키, 토란칩, 토란초콜릿칩과 같은 가공제품도 많다. 최근에는 토란을 넣은 아이스크림과 사과파이도 나왔다. 토란이 생소한 젊은 층을 위해 개발된 간식이다. 하지만 토란국을 먹어 본 적이 없는 젊은이라도 이미 토란의 맛에 익숙할 것이다. 사실 토란은 열대 아시아와 태평양 제도가 원산지인 식물 타로(Colocasia esculenta)의 변종이다. 타로 버블티나 타로 밀크티를 마셔봤다면 토란을 맛본 것과 다름없다. 재배지역과 품종에 따라 흰색을 띄기도 하고 보랏빛일 때도 있지만 고소하고 달콤한 맛과 부드러운 질감은 타로와 토란의 공통적 특징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아메리카, 태평양의 하와이 같은 섬나라까지 세계 전역에 타로를 이용한 요리와 디저트, 가공제품이 무수히 많다. 타로의 다양한 변주를 맛보면서 지구를 한 바퀴 돌아도 될 정도이다. 토란국을 먹어 본 적이 없는 젊은이라도 이미 토란의 맛에 익숙할 것이다. 토란은 열대 아시아와 태평양 제도가 원산지인 식물 타로(Colocasia esculenta)의 변종이다. 타로 버블티나 타로 밀크티를 마셔봤다면 토란을 맛본 것과 다름없다. 토란은 열대지방에서 재배하는 타로의 변종으로 Taro, Kalo, Talo, Dalo, Dasheen, Eddo 등 다양한 이름으로 전세계 식탁에 오른다. ‘열대성 감자’라고도 불리는 타로는 습한 기후에도 잘 자라며 늪지에서도 번식한다. 토란이 낯선 젊은 세대도 타로가루와 우유를 혼합해 만드는 타로티에는 익숙하다. 토란 꽃의 경고 토란을 토련이라고도 부른다. 두껍고 넓은 방패 모양의 잎이 마치 연잎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토란을 보면 시골에서 비오는 날 토란잎을 우산처럼 쓰고 다녔던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 반대로 토란꽃을 본 사람은 많지 않다. 토란꽃은 100년에 한 번 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희귀했다. 열대식물인만큼 온대기후인 한국에서는 꽃이 피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부터는 전국 여러 곳에서 매년 토란꽃이 피어나고 있다. 한반도의 기후가 고온다습한 아열대성으로 바뀌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지금은 지구 온난화의 위기에 빠르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때이다. 토란 꽃이 우리에게 보내주는 경고이다. 정재훈(Jeong Jae-hoon 鄭載勳) 약사, 푸드 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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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보람을 느끼는 순간들

An Ordinary Day 2021 AUTUMN 100

작은 보람을 느끼는 순간들 CULTURE & ART--> 작은 보람을 느끼는 순간들 통계청에 의하면 2019년 11월 현재 전국 1천 813만 호의 주택 가운데 62.3 퍼센트가 아파트였다. 이처럼 한국인의 대표적 주거 형태를 이루는 아파트에는 입주민의 안전을 돌보고, 분쟁이나 민원을 해결하며 건물을 관리해주는 등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관리소 직원들이 있다. 이상용(李相龍) 씨는 서울시 마포구에 있는 510세대로 구성된 아파트 단지의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급한 민원이 들어와 인터뷰 시간을 30분 늦추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연락을 받고, 오후 네 시 반에 관리사무소에 들어섰다. 단지 옆 신축 건물 공사로 인해 소음이 발생한다는 것이 급한 민원이었고, 회의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언쟁이 오가나 했더니 잠시 후 입주자 대표와 공사 현장 담당자 등이 일어나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마주한 이상용 씨는 멋쩍게 웃어 보였다.“문제가 있거나 불만이 있는 분들이 저를 찾아오시니, 늘 이래요.”민원을 해결하고 분쟁을 조정하는 것은 관리소장의 주요한 업무 중 하나이다. 이상용씨는 2009년 육군 예비역 대령으로 전역한 뒤 지금은 서울 마포구 강변힐스테이트 아파트 관리소장으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다양한 민원“이야기가 잘 되면 괜찮은데 가끔 상식에 어긋나는 사람도 있죠. 지난봄에는 109동 사는 분이 민원을 계속 넣었는데, 그 동이 가라앉고 있다는 거예요. 모든 세대가 냉장고를 같은 자리에 놓아두고 냉장고 안을 가득 채우기 때문에 그 무게 때문에 침하한다, 베란다 뒤에 균열도 보인다고 주장해요.”“우리 아파트는 3년에 한 번씩 정밀 점검을 받고 있고, 2019년에도 점검을 받았지만 문제가 없었다”고 아무리 말해도 믿지를 않자 결국 입주자 대표회의에 안건을 올려서 세 군데 전문업체한테 문의를 했다. 결론은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고, 이상용씨는 “내년에 또 정밀 점검을 하니 이상이 있으면 조치하겠다”고 겨우 설득에 성공했다. “아무리 황당한 민원이어도 모른 척할 수는 없고, 반드시 처리한 다음 결과를 이야기해주어야 해요.”가장 빈번하고 골치 아픈 민원은 소음이다. 몇 주 전, 위층에서 아이들이 너무 뛰어서 잠을 못 자겠다는 민원이 밤 열 두 시쯤 들어왔다. 당직하던 경비원이 위층에 인터폰을 넣어서 사정을 말했지만, 밤 늦게 연락을 했다고 한참 욕을 먹었다. 이 사실을 다음날 아침에 보고 받은 이상용 씨는 무척 속이 상했다. “그분 입장도 이해가 되지만 경비원은 무슨 죄예요. 층간소음의 경우에는 솔직히 방법이 없을 때가 많아요. 바로 위층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하기도 해요. 아래층에서 민원이 들어왔다고 하면 나쁜 감정을 가질 수도 있으니 여러모로 조심스럽게 말하라고 직원들을 교육합니다.”지하주차장에 드나드는 차소리가 시끄러우니 해결해달라는 주민도 있었다. 공용시설은 경비용역업체가 관리하고 개인시설은 입주자 각자가 관리해야 하는데, 경계가 불분명한 것도 있고 입주자 입장에서는 다 공용시설이라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상용 씨는 경비원과 미화원을 포함해 총 열 세명의 직원들을 통솔한다. 그는 입주민은 물론 직원들과의 소통 역시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의 하루 일과는 반복적이면서도 규칙적이다. 아파트 단지 전체에 안내방송을 하는 것도 그 중 하나인데, 요즘은 코로나 19로 인해 안내 방송이 더 잦아졌다. 입주민들은 매일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이상용씨를 찾아온다. 그는 민원을 꼼꼼하게 듣고, 입주민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도우려 노력한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하루 종일 조용할 틈이 없다. 직업군인에서 관리소장으로이상용 씨가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딴 것은 2011년, 지금 아파트의 관리소장으로 온 것은 2019년이었다. 주택관리사 자격시험에 합격하면 500세대 미만의 주택에서 3년 이상 경험을 쌓아야 500세대 이상주택의 관리를 맡을 수 있다. 그는 2012년에 250세대가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일을 시작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자격증 시험이 없었다. 아는 사람에게 맡겨 주먹구구식으로 관리했다. 지금은 해마다 주택관리사 자격증 시험이 있고 1,500~2,000명이 합격한다. 자격증을 딴다고 모두 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서비스직이라서 적성이 맞아야 한다. 불만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에게 대처를 잘못하면 쉽게 감정 싸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직업의 좋은 점은 정년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나 모두 다 오래 일할 수 있는 건 아니지요. 나이가 많다고 일을 못하는 건 아니지만, 입주자들이 싫어할 수 있어요. 젊은 사람들은 아이디어가 많지만 경험이 부족하고, 나이 든 사람들은 기계소리만 들어도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알지만 뭘 바꾸려고 하지 않죠. 장단점이 있어요.”주택관리사가 되기 전에 이상용 씨는 32년 간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다. 2009년 6월 중령으로 제대해 지인이 하는 군 관련 회사에서 잠깐 근무했다. 그러다 한 선배가 적성에 맞을 거라며 권유해 주택관리사 시험을 봤다.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군대에서의 경험이 일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다. 지휘관으로 근무할 때 원칙 중 하나가‘1% 지시, 99퍼센트 확인’이라는 것이었다. ‘지시는 짧게 하고 확인은 철저하게 하라’는 군대의 지휘 체계가 관리 업무에도 잘 적용된다. 출근시간은 오전 9시지만 그의 하루는 8시 5분에 시작된다. 오전 6시에 기상했던 군대 시절의 습관 때문에 5시면 눈이 떠진다.“집에서 전철을 타고 여기 오면 정확하게 8시 5분이에요. 월, 화, 금요일에는 사무소로 바로 들어오지 않고 우선 단지 안을 한 바퀴 둘러봐요. 월요일에는 주말 동안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화요일에는 분리수거 업체가 오는 날이니까 수거 후 청소 상태 를 확인하고, 금요일에는 주말 동안 쉴 테니 여기저기 꼼꼼하게 둘러보죠.”이해심과 참을성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는 없는지 묻자 “없다고는 못하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이 힘들기 보다는 상식을 벗어난 사람들 때문이다. 불가능한 것을 해달라고 하는 입주민은 으레 감정이 나빠지면 “우리가 봉급 주는데”라는 말을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비애감이 든다. 이상용 씨는 그럴 때 시간을 가지며 마음을 다스린다. 서로 마음이 풀린 다음에 이야기하면 대부분 해결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금 일하는 아파트에는 심한 갑질이 없다. 대신 자랑할 것이 많다. 이 아파트 단지에는 매주 화요일마다 과일 행상이 온다. 그 행상에게 매주 경비원 6명, 미화원 5명의 과일 값 6만원을 지불하는 입주민이 있다. “1년은 52주인데 작년에 그 행상이 51번 왔어요. 1년이면 삼백만원이 넘죠. 제가 여기 오기 전부터 하신 일이라는데, 처음에는 부모님이 하다가 지금은 따님이 한대요. 인사를 드리러 찾아갔더니 어디 가서 얘기하지 말라고 하세요. 우리가 청소를 하거나 다른 작업을 하고 있으면 빵이나 음료수를 사주시는 분들도 많아요.”오후 6시에 퇴근을 하고 6시 50분 전철로 귀가하여 저녁을 먹고, 가족들과 TV 드라마를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저녁 10시 반에는 잠자리에 든다. 주말에는 맛있는 걸 먹으러 가거나 바둑 프로그램을 시청하거나 서울 외곽에 있는 친척집에 가서 텃밭을 가꾼다. 이상용 씨는 뭔가를 돌보고 가꾸는 것을 좋아한다. 시골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지었다. 지금도 텃밭에서 일을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관리소장에게 필요한 적성으로 그는 이해심과 참을성을 꼽았다. 사람과 부딪치는 일이니 이해하고 배려하고 참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아파트라는 공동체는 시계 바늘처럼 정확한 그의 일상과, 마을을 지키는 커다란 나무처럼 듬직한 그의 배려에 의해 오늘도 차곡차곡 돌아가고 있다.“작년에는 아파트 정문 쪽이 휑해 보여서 꽃을 심기로 했어요. 같이 꽃을 심을 분들은 나오시라고 방송을 했더니 아이들 데리고 여러 분이 오셨어요. 함께 꽃을 심고 나서 광장에서 막걸리 한잔 같이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어요. 애로사항이 있어도 얘기 못하는 분도 많거든요. 그럴 때 듣는 거죠.순찰을 돌고 있으면 때로는 그에게 다가와 “소장님, 그때 고마웠어요, 도움을 받았어요, 수고하셨어요”라고 말해 주는 주민이 있다. “이분들이 내가 한 일을 알아주는구나. 이 일을 하기를 잘했구나.”그가 보람을 느끼는 순간들이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아파트라는 공동체는 시계 바늘처럼 정확한 그의 일상과, 마을을 지키는 커다란 나무처럼 듬직한 그의 배려에 의해 오늘도 차곡차곡 돌아가고 있다. 고즈넉한 한강변에 자리한 이 아파트 단지는 510세대의 비교적 아담한 규모지만, 주위에 다른 아파트 단지들과 함께 건축된 서울 도심 서쪽 주거지역의 일부이다. 황경신(Hwang Kyung-shin 黃景信) 작가하지권 사진작가

식물이 주는 힘, 홈가드닝

Lifestyle 2021 AUTUMN 148

식물이 주는 힘, 홈가드닝 CULTURE & ART--> 식물이 주는 힘, 홈가드닝 한국인들은 급속한 경제개발과 도시화로 인해 마당에서 식물을 가꾸던 오랜 관습을 잃어버렸고, 젊은 세대일수록 땅의 기억은 존재하지 않는다. 부모 세대의 정원문화는 이제 시간이 흘러 인테리어와 힐링이 결합하며 젊은 세대사이에 홈가드닝(interior gardening)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코로나 19로 인한 거리두기에 따라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며 실내에서 식물을 기르는 홈가드닝이 젊은 층에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온라인으로 들을 수 있는 식물 큐레이션 클래스도 다양하다. © CLASS 101 서울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박은진(36) 씨는 코로나 19 사태 이후 재택근무가 늘어나며 홈가드닝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무료한 집콕 생활에 작은 활력이 필요해 화분을 하나 샀던 것이, 이제는 베란다를 가득 초록 식물로 채웠다. 요즘 그는 식물들이 없던 집안에서 어떻게 생활했나 싶을 정도로 바뀐 분위기에 만족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 19로 불안하고 우울했는데, 식물을 돌보며 마음이 편안해서 안정감이 든다”고 말한다. 서울 성동구의 워킹맘 김경선(39) 씨는 우연히 가드닝 원데이클래스를 듣고 식물에 빠졌다. 부모 세대가 정원에서 즐기던 가드닝만을 생각하던 그녀는 이토록 다양하고 트렌디한 실내 가드닝의 종류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고 한다. 집에서 함께 키우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무작정 풀을 뜯어 씹기 때문에 그들에게 무해한 식물들을 골라서 가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키울 수 있는 식물의 종류는 무척 많다. “요즘 주말 농장이나 유치원에 갈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베란다에서 작은 식물 키우기로 시작했는데 인테리어 효과에도 좋다”며 코로나가 끝나면 오프라인 클래스에 등록해서 본격적인 플랜테리어를 배울 예정이라고 한다.10여 년 전 은퇴세대를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홈가드닝 붐이 점점 중장년층에서 젊은층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팜린이’라는 신조어도 이들을 일컫는 단어다. 농사를 뜻하는 영어‘farm’과 children의 한국어 ‘어린이’를 결합한 것으로 원래는 레알팜이라는 모바일 소셜 네트워크 게임의 입문자를 일컫는 용어였지만, 최근에는 홈가드닝을 시작하는 초보자를 뜻하는 애칭으로 더 널리 쓰이게 됐다. 국민 77.2%가 아파트를 포함한 공동주택에 사는 주거문화를 감안한다면, 마당 없는 콘크리트집에서 나고 자란 젊은 세대가 손에 흙을 묻히며 식물을 가꾸기 시작했다는 변화는 의미가 크다. 코로나블루를 겪는 많은 사람이 식물을 기르고 만지며 마음을 다스린다. 불안과 우울을 덜어주는 세로토닌 덕분이다. 최근 반려식물이 더욱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박희란 아이들은 집에서 화분을 돌보며 자연을 경험할 수 있다. 마당에 국한되던 정원의 개념이 주거 형식이 바뀌며 아파트 거실, 도심 속 옥상까지 확장됐다. ⓒ gettyimagekorea 보타닉 트렌드2018년 10월 식물원과 공원을 결합한 서울 최초의 ‘보타닉 공원’ 서울식물원(Seoul Botanic Park)이 문을 열었고, 개장 2년반 만에 누적 관람객 1천만 명을 돌파했다. 코로나 시국을 감안하면 무척 높은 수치다. 나는 여기서 이 일대 상업시설들 명칭이 온통 ‘보타닉’ 일색이 된 현상에 주목했다. 인근의 아파트뿐 아니라, 호텔, 예식장, 식당, 커피숍, 복덕방, 당구장, 병원, 편의점까지 많은 시설들이 이 단어를 상호에 달고 있다. 올해 초 금융 중심가 여의도에는 서울에서 제일 큰 규모의 백화점 ‘더현대’가 문을 열었다. 이곳은 전체 영업면적 가운데 49%를 실내정원과 고객 휴식공간으로 채웠다. 상품이 빼곡한 진열대로 가득 찼던 기존의 백화점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백화점 인테리어의 새로운 경향을 제시했다. 실상은 롯데·신세계·현대가 각축을 벌이는 ‘빅3’ 백화점 업계가 몇 년 전부터 ‘가드닝 디스플레이’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해온 결과였다. 따라서 코로나 전부터 서서히 뿌리를 확장해온 보타닉 트렌드가 코로나와 만나 본격적인 홈가드닝 열풍을 만들어냈다고 말할 수 있다. 지난 1월, 국내 대형 쇼핑몰 롯데마트에 따르면 가드닝 상품군 매출은 코로나 시국에 따른 전체 매출의 급감에도 불구하고 2019년 17.6% 성장에 이어 2020년에도 18.7%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특히 집콕 생활이 본격화된 2020년 한 해 동안 화분과 화병 매출은 각각 46.5%, 22.3% 증가했다. 온라인 쇼핑 플랫폼 인터파크에 따르면, 2020년 하반기 가드닝 관련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 신장했다. 이는 단순히 국내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의 설문조사기관 Advance Monthly Retail Trade Survey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미국 내 대부분의 소매판매 업종이 급격한 매출 감소세를 겪었으나, 홈가드닝 분야는 10%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 시장이 최근 몇 년간 5%내외의 증가율을 보였던 것에 비하면 눈에 띄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플랜테리어와 반려식물 홈가드닝 열기는 코로나 19가 낳은 또 다른 현상인 ‘플랜테리어’와도 연결된다. 플랜트(plant)와 인테리어(interior)의 합성어인 이 용어는 최근 인테리어 시장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고, 코로나 19와 맞물려 폭발적인 수요를 창출했다. 2020년 12월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農林水産食品敎育文化情報院, Korea Agency of Education, Promotion & Information Service in Food, Agriculture, Forestry & Fisheries)이 발표한 ‘화훼 소비 트렌드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보면 화훼산업 과 꽃 관련 온라인 관심도는 2019년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약 10.3% 증가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화훼 분야 소비 트렌드는 ‘반려식물 및 플랜테리어’로 나타났다.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지난 해 12월 카드 매출 데이터의 분석 결과를 담아 발표한‘코로나19가 가져온 소비 행태의 변화’ 보고서에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화원·화초의 2020년 1~2월 매출이 전년도에 견줘 각각 8%, 10% 줄었다가 3월부터 회복세로 돌아섰는데, 코로나의 위험성이 커지고 사회적 거리두기와 재택근무가 일상화되기 시작했던 시기와 맞물린다. 이후 매출은 4월부터 10월까지 매달 최소 4%에서 최대 30%까지 증가했다. 이 보고서는 말미에 “플랜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며 화원·화초의 매출이 늘었다”고 분석했다.홈가드닝은 코로나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개인의 이슈와 맞물려 플랜테리어 문화를 본격적으로 확장시켰다. 이와 동시에 우리 삶에 익숙해진 또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반려식물’이다. BTS를 비롯한 여러 연예인들이 자신들이 기르는 식물을 SNS를 통해 공유하고 반려식물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면서 대중의 관심도 증가했다. 이제는 단순히 1인 가구나 노령층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폭넓은 관심을 유발하고 있다. 관련 산업의 성장 해외에서도 여러 기업들이 기존에 없던 다양한 서비스와 제품들을 출시하며 적극적으로 홈가드닝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중국의 로봇 제조 스타트업인 빈크로스(Vincross)는 반려식물에 로봇 기술을 접목해 반려 동물처럼 움직이는 로봇 반려식물을 개발했다. 오스트리아의 스타트업인 하버트(Herbert)는 반려식물의 인테리어 기능을 강조한 수직공간에서 자라는 반려식물 시스템을 개발했는데, 포닉스 시스템(Ponix Systems)으로 불리는 이 방식은 액자와 같이 실내 벽면에서 수직으로 반려식물을 키울 수 있는 서비스다. 이 외에도 집을 비워야 할 때 반려식물을 맡길 수 있는 반려식물 전용 호텔 서비스나 반려식물을 치료해주는 병원이 등장했는가 하면, 반려식물의 각종 증상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도 있다.국내에서는 집에서 직접 키워 먹을 수 있는 식물재배기 렌탈 사업이 호황이다. 발명진흥회 지식재산평가센터가 내놓은 '국내 식물재배기 시장 전망'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100억원 수준이었던 식물재배기 시장 규모는 2023년 5000억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관련 전시 산업도 활발하다. 올해 초 국립세종수목원에서는 특별전시회 ‘안녕, 나의 반려식물-Hello, My Houseplant’가 열렸고, 서울의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의 전시장에서는 10월까지 ‘정원 만들기-Gardening’전시가 계속된다. 심리학자 스티븐 카플란(Stephen Kaplan)은 인간이 축적된 정식적 피로를 회복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자연을 찾는다는 ‘주의력 회복 이론(Attention Restoration Theory)’을 주장했다. 식물은 세로토닌을 분비해 불안과 우울감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다. 홈가드닝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은 식물이 주는 치유의 능력을 경험했다. 코로나 19사태가 끝난 후에도 홈가드닝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자리잡아 갈 것이라 예측된다. 홈가드닝은 코로나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개인의 이슈와 맞물려 플랜테리어 문화를 본격적으로 확장시켰다. 이와 동시에 우리 삶에 익숙해진 또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반려식물’이다. 온라인 홈가드닝 클래스는 단순히 화분에 흙을 넣고 식물을 심는 것에서 벗어나 벽걸이 액자 오브제 같은 트렌디한 작품을 손쉽게 배울 수 있는 것까지 다양한 과정이 있다.ⓒ CLASS 101 홈가드닝 클래스는 식물 큐레이션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식물을 화분에 심는 과정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식물 생활의 전반을 함께 고민하고 그동안 식물 생활에 실패한 이유, 식물로 공간을 꾸미는 방법 등을 알려준다. ⓒ CLASS 101 정대헌 (Jeong Dae-heon 鄭大憲) 사단법인 한국생활정원진흥회 회장 ( President, Korea Gardening Life Association), 월간 가드닝 기자(Reporter, Monthly Magazine Gardening)

색다른 지역 관광을 주도하다

In Love with Korea 2021 AUTUMN 145

색다른 지역 관광을 주도하다 CULTURE & ART--> 색다른 지역 관광을 주도하다 전라북도 농촌 도시인 순창에 사는 레아 모로 씨는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자신의 욕구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길 원한다. 레아 모로는 매주 닷새동안 전라남도 순창군 투어 버스인 ‘풍경버스’에서 안내를 진행한다. 풍경버스는 강천산 군립공원, 전통고추장 민속마을, 채계산 등 순창의 주요 관광명소를 돈다. 프랑스 리옹 근처 인구 1000명 정도의 작은 마을 이제롱(Yzeron) 출신인 레아 모로 씨는 자신이 ‘주류 여성’이 아니라고 소개한다. 케이팝 그룹 중 BTS와 블랙핑크에 감탄하긴 해도 그녀가 아주 좋아하는 가수는 인디밴드 새소년이다. 그리고 서울의 명소보다 소도시의 생활을 선호한다.풍부한 전통 문화와 관습이 남아 있는 전라북도 시골 도시인 순창에서 레아 씨는 지역 공무원으로 관광 홍보 일을 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외국인이 지역의 관광 명소를 격찬하며 홍보하는 걸 보면 당연히 놀란다. 레아 씨의 한국어 발음은 완벽하지 않지만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전달할 때는 자연스럽게 기분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순창은 고추장과 많은 명승지로 유명하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쉽게 닿지는 않는 곳이다. 더 많은 방문객을 유치하고 이들이 주변을 쉽게 둘러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순창군은 2019년에 버스 투어를 도입했고 이를 위한 가이드를 찾고 있었다.재즈 카페를 운영하는 레아 씨의 친구가 그녀를 추천했다. “제가 불어, 영어, 한국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인과 외국인 관광객 모두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친구가 설득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는 이미 유튜브 여행 채널을 운영하고 있었고 관광산업 관련 경험도 있었다.순창군이 그녀를 위해 관광 홍보관 자리를 만들기로 결정했지만 외국인을 공무원으로 채용하기 위해서는 상부 기관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6개월 후에 그녀는 홍보관으로 채용되었다. 지역 사람들은 그녀를 “프랑스 공무원”이라 부른다.레아 씨는 군에서 인기가 많다. 그녀는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데 보관함에는 작업용 장갑, 아줌마 바지, 카메라와 한복이 들어 있다. 그녀의 일을 수행하면서 농부들에게 도움을 줘야 할 때도 있고 비디오 영상을 찍고 싶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KBS의 같은 텔레비전 쇼에 출연하는 것 역시 자신이 맡은 홍보 일의 일부라 생각한다. 그녀는 소도시에는 볼 게 별로 없다는 편견을 떨쳐버리고 한국에는 서울과 케이팝과 케이드라마 외에 훨씬 더 경험할 게 많음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방랑벽 고향 마을 이제롱에서 순창까지 오게 된 건 여행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프랑스 시골에서 자란 레아 씨는 늘 바깥세상이 궁금했다. 그러다 어린 시절 가족이 발리에 배낭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오토바이를 탔어요. 부모님은 저와 제 여동생을 다리 사이에 태우셨죠. 이 여행이 제 삶의 모든 걸 바꿔놓았다고 생각해요.”라고 그녀는 회상한다. “여행을 통해 세상에는 다른 모습의 사람, 다른 문화, 다른 언어가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게 더 많은 기회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걸 깨달았고요.”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레아 씨는 호주에서 18개월 동안 일하고 영어를 배우고 때때로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에서 다이빙을 즐겼다. 이후 태국으로 가서 그곳에서 동남아시아 여행을 했다. 결국 여행 산업에 마음을 두고 온라인 수업을 듣고 관광경영 학사를 취득했다. 이 수업이 요구하는 것 중 하나가 한 나라에서 6개월간 인턴을 하는 거였다. 한국인 친구가 광주에 있는 페드로 하우스와 여행 카페를 추천했다. 2016년 그녀는 한국에 왔고 거의 2년 동안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게 되었다.“광주를 사랑하게 되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역사를 좋아했던 할아버지로부터 한국 역사에 대해 배웠어요. 할아버지는 남한과 북한에 대해 알려주셨죠. 하지만 광주와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어요. 광주는 한국의 현대사와 한국사회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좋은 곳이었어요.”광주에 사는 동안 그녀는 전라도 지역을 많이 여행했고 특히 인근 섬들을 포함해 외진 곳들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외국인을 위한 관광정보가 없었기 때문이 이 여행들은 외국인 배낭 여행자에게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페드로 하우스의 주인 페드로 김(본명 김현석)과 함께 가이드북을 쓰게 되었다. 책은 출간되지 않았지만 온라인에서 “전라 고 (Jeolla Go)"라는 이름의 채널로 재탄생되었다.나중에 경상도 지역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그녀는 조선산업이 대부분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거제도의 문화센터에서 한동안 일하기도 했다. 광주로 돌아왔을 때 순창에서의 일자리는 좀 더 지속적인 일을 추구했던 그녀에게 마침 좋은 기회가 되었다. 모로는 모국어인 프랑스어와 한국어는 물론 영어에도 능통해 주로 순창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안내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최근에는 한국인을 더 많이안내한다. 한국인 관광객들은 그의 한국말 설명을 들으며 순창의 여러 장소를 흥미롭게 돌아본다. ⓒ Lea Moreau 아주 바쁜 가이드관광 홍보관이자 경험 많은 배낭여행자로서 레아 씨는 다른 여행자들이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데 즐거움을 갖는다. 그녀는 소도시에는 볼 게 별로 없다는 편견을 떨쳐버리고 한국에는 서울과 케이팝과 케이 드라마 외에 훨씬 더 경험할 게 많음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그녀는 순창에는 한국에서 가장 긴 출렁다리 중 하나가 있다고 예를 든다. 또한 봄에는 벚꽃을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곳 중 하나로 유명한 진해나 하동보다 덜 붐빈다. 가을에는 강천산국립공원의 단풍이 유혹적이다.하지만 그녀가 새 일을 시작하고 얼마 있지 않아 코로나 팬데믹이 닥쳤고 관광은 사실 거의 정지된 상태다. 미소 짓는 얼굴 모습을 하고 오픈탑 형태를 갖추고 두 개의 버스를 합쳐 특별히 제작된 순창 시티투어버스는 현재 일주일에 세 번 하루에 약 10명 정도 실어 나른다. 팬데믹 방침에 따라 모두 버스를 타기 전에 체온을 측정한다. 투어는 외국인 승객이 없을 때는 한국어로 진행된다.대부분의 여행이 가상체험으로 이루어지는 이때 레아 씨의 홍보 일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지속된다. 매주 한 번 정도 그녀는 ‘전라 고’에 새로운 내용을 업로드하고 순창군의 공식 유튜브 채널인 ‘순창 튜브’에도 협업을 하고 있다. 이런 일을 그녀는 가장 좋아한다. “영상 촬영을 좋아해요. 고등학교 다닐 때 저희 반은 마다가스카로 여행을 갔고 그때 제가 촬영을 맡았어요. 물론 그때 찍은 영상의 질이 아주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요.”라고 그녀는 말한다.하지만 그녀의 촬영 기술이 좋아진 게 분명하다. 작년에 관광 비디오 컨테스트에서 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150만원 상금으로 그녀는 파노라마 촬영을 위해 드론을 구입했다. 현지 이웃들 사이에 ‘프랑스 공무원’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모로는 현재 순창군 미생물산업사업소 미생물계 소속 직원이다. 순창은 고추장, 된장으로 유명하고 미생물산업사업소는 이런 발효 음식을 연구하고 홍보하는 일을 맡고 있다. 덕분에 모로는 고추장과 된장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매력에 관해 한국사람만큼 잘 안다. ⓒ Lea Moreau 꿈을 살다레아 씨는 최근에 순창군과의 계약을 3년 연장했다. “제게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일상을 공유함으로써 한국을 좀 더 잘 알게 되는 거예요.”라고 그녀는 설명한다. “제가 한 곳에 머무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제가 만나는 사람들과 사귄 친구들 때문이에요. 한국인은 정말 환대해 줘요. 외국인을 보면, 특히 시골에서는, 도움을 주려고 하죠. 제게는 그런 만남이 그 자체로 하나의 모험이 되고요.”레아 씨는 자신의 한국어가 완벽하지 못함에도 동료 공무원들이 자신에게 행정 시스템과 일에 대해 알려주려고 애를 쓰는 걸 고맙게 생각한다. “저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저를 신뢰하는 걸 알고 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고마운 생각에 그녀는 일주일에 10시간 온라인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다.레아 씨의 개인적인 삶의 모토는 “인생을 꿈꾸지 말고 꿈을 살아라”이다. 그녀는 한국에서의 삶과 여행에 대한 책을 쓰는 것, 여행 TV쇼를 만드는 것, 지역 산업을 좀 더 홍보해서 지역공동체에 기여하는 것 등 미래에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좀 더 여행을 많이 하고 자신의 글로벌 여정을 공유하도록 영감을 주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그녀는 말한다. 조윤정 프리랜서 작가, 번역가허동욱 사진작가

독특하고 이질적인 이야기에 대한 사랑

Interview 2021 AUTUMN 123

독특하고 이질적인 이야기에 대한 사랑 문학 산책--> 독특하고 이질적인 이야기에 대한 사랑 전민희(Jeon Min-hee 全民熙)는 1990년대 PC통신망을 기반으로 등장한 판타지 소설의 1세대에 속하는 작가다. 1999년 연재를 시작한 『세월의 돌(The Stone of Days)』 이후 지금까지 수십 권의 작품을 펴냈으며, 그중 상당수가 일본·중국·태국·대만에서 출판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룬의 아이들’ 시리즈와 ‘아키에이지’ 시리즈는 게임의 밑바탕이 되었다. 경복궁 근처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판타지 소설가 전민희(Jeon Min-hee 全民熙)는 1999년 PC통신 나우누리에 『세월의 돌(The Stone of Days)』을 연재하며 데뷔했다. 그의 소설은 섬세한 묘사와 서정적인 문체로 국내외 수많은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소설가 전민희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있고, 서울에서 가장 고즈넉한 동네인 대통령 관저 부근 마당 있는 집에 산다. 얼핏 평범한 가정주부나 커리어우먼처럼 보이지만, 그녀는 한국 판타지 소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가로 꼽힌다. 1999년 PC통신 나우누리에 연재하기 시작한 『세월의 돌』은 잡화점을 운영하는 18세 소년 파비안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목걸이의 네 가지 보석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인데 무려 400만 회 접속을 기록했고, 이는 지금까지도 판타지 소설 마니아들 사이에서 ‘전설’로 회자된다.작가 특유의 판타지 세계관은 게임 업계에서도 사랑받고 있다. 2003년 출시된 넥슨의 클래식 RPG 테일즈위버(Tales Weaver)와 2013년 출시된 엑스엘게임즈의 RPG 아키에이지(ArcheAge) 같은 인터넷 게임이 그녀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됐다. 올해로 데뷔 몇 년째인가?1999년부터 연재하기 시작했으니 23년째다. 총 3부로 이루어진 ‘룬의 아이들(Children of the Rune)’ 1부 『룬의 아이들 – 윈터러(Winterer)』(2001~2019)가 2001년 처음 종이책으로 출간됐으니, ‘룬의 아이들’ 시리즈가 20주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룬의 아이들’ 시리즈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판매 부수는 얼마나 되는가? 7권으로 완결된 『룬의 아이들 - 윈터러』와 9권으로 끝을 맺은 『룬의 아이들 – 데모닉(Demonic)』(2003~2020)을 2018년 출판사를 바꿔 개정판을 냈다. 그때 추산해 보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300만 부가량 팔린 것으로 파악됐다. 개정판을 계속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만큼 작품 퀄리티에 신경을 쓰기 때문인가? 판타지 소설가들은 대개 작품 고쳐 쓰는 걸 싫어한다. 나처럼 어떤 계기가 생겼을 때 글을 수정하는 작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이전 작품을 고칠 시간에 새 작품을 쓰는 편이 작업의 즐거움이나 명성, 수입 면에서 훨씬 낫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만족스러울 때까지 퇴고를 거듭해서 책을 내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다른 시점으로 다시 보면 보완하고 싶은 게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세월의 돌』은 2004년 출판사를 바꿔 다시 출간했는데, 첫 작품이라 애착이 크기는 했어도 미숙한 대목들이 빤히 보여 차마 그대로는 찍을 수가 없었다. 만약 그때 고치지 않고 그냥 넘어갔더라면 이후 다른 작품들도 다시 손대지 않았을 것 같다. “흔히 판타지 소설은 주로 작가의 상상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방대한 자료 조사와 치밀한 연구가 밑바탕이 된다. 그런 사전 작업이 치밀한 구성과 섬세한 묘사를 가능케 한다.” 전 작가의 대표작 ‘룬의 아이들’ 시리즈는 1부 『룬의 아이들 – 윈터러(Winterer)』(2001~2019), 2부 『룬의 아이들 – 데모닉(Demonic)』(2003~2020)에 이어 3부 『룬의 아이들 – 블러디드(Blooded)』(2018~)가 현재 4권까지 출간되었다. 번성했던 고대 왕국이 갑자기 멸망한 지 천여 년 후 여러 국가와 세력이 끊임없이 충돌을 벌이는 가운데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 싸워나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정판에 대한 독자들 반응은 어떤가?단순히 문장만 다듬는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에피소드를 집어넣기도 하다 보니 독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갈렸다. 개정판을 다시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아무래도 불만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수정된 작품을 더 좋아해 주는 독자들이 차츰 늘어났고,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며 달라진 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공유하는 독자들도 있다. 작품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나우누리에 처음 연재하던 20대 때는 독자들을 의식하지 않고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걸 썼다. 그런데 의외로 소설이 큰 인기를 얻게 되자, 세상에는 나랑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 취향을 오롯이 반영해도 될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를 척척 만들어 붙였다. 근본적으로는 판타지라는 장르에 내재해 있는 매력 때문이 아닌가 싶다. 판타지 소설은 한 시대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시대를 아우르는 보편성과 호소력이 있다. 거대한 세계를 조명하면서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다는 평가를 듣는다. 어떻게 생각하나? 흔히 판타지 소설은 주로 작가의 상상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방대한 자료 조사와 치밀한 연구가 밑바탕이 된다. 예를 들어 현실에는 없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기 위해서는 인류의 도시 문화사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사전 작업이 치밀한 구성과 섬세한 묘사를 가능케 한다. 어떤 계기로 판타지 소설을 쓰게 됐나?어린 시절부터 습작을 했다. 그때는 그저 쓰고 싶은 걸 썼을 뿐인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내가 썼던 것들이 판타지에 속했다. 이 장르를 제대로 인지하게 된 건 나우누리의 판타지 동호회에서 활동하면서부터였고, 이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운이 좋았던 것 같다. 1990년대는 판타지 소설이 막 유행하기 시작하던 시기였는데, 나와 시대적 코드가 맞았던 거다. 내 개인적인 취향이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공명함으로써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 나는 1994년에 대학에 입학했는데 4학년이던 1997년 한국이 IMF 구제금융 체제에 들어갔다. 대학 졸업 후 취직하려야 할 수도 없었고, 취직을 못 해도 하나도 창피하지 않은 시기였다. 내 입장에서는 어차피 돈을 못 벌게 됐으니 좋아하는 일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거였다. 판타지 취향은 어떻게 생기게 됐나?아마도 어렸을 적 어린이용 세계 문학 전집을 읽으며 생긴 것 같다. 나는 독특하고 이질적인 이야기들을 좋아했는데, 이를테면 ‘삐삐 롱스타킹’ 시리즈로 유명한 스웨덴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 같은 작품을 정말 좋아했다. 『룬의 아이들 - 윈터러』가 그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점을 나중에 깨닫게 됐다. 자신의 소설이 어떤 특징을 보인다고 생각하나?그걸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닌 것 같다. 독자들이 내 소설 세계를 비평하는 글을 내놓을 때가 가끔 있다. 이를테면 어떤 독자들은 내 작품을 ‘청소년 소설’ 스타일로 규정한다. 일리 있는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한국 독서 시장에 청소년 문학이라는 영역이 정착되었지만, 내가 처음 소설을 쓸 때는 그런 카테고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청소년을 타깃 독자층으로 삼았던 이유는 전근대 시기에도 아이들은 성인식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쳤는데, 아이에서 어른으로 이행하는 연령대의 독자들을 위해 통과의례 이야기가 담긴 소설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룬의 아이들 - 윈터러』가 그런 구조라고 생각한다. 어떤 아이가 부모님을 비롯해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두려워서 도망쳤던 최초의 대상과 대면하게 되는 내용이다. 오래된 독자도 많을 것 같다.‘룬의 아이들’ 시리즈 중 2부의 마지막 권이 나온 게 2007년인데, 3부 『룬의 아이들 – 블러디드(Blooded)』 1권을 2018년에 출간했다. 무려 10년도 넘어서 나온 거다. 그동안 내 소설을 잊어버린 독자도 있을 수 있고 취직을 하거나 결혼을 한 독자도 있을 텐데, 폭설이 내린 겨울 아침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린 작가 사인회에 무려 500명이나 나타났다. 그때 정말 깜짝 놀랐다. 초등학생, 중학생 때 『룬의 아이들 - 윈터러』로 내 소설에 입문해 이제는 20~30대가 된 독자들이 나를 찾아준 것이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사실상 올해 스케줄이 꽉 차 있다. 손대고 있는 게임 시나리오 작업도 해야 하고, 『룬의 아이들 - 블러디드』도 계속 써야 한다. 신준봉(Shin June-bong 申迿奉) 『중앙일보』 기자한상무(Han Sang-mooh 韓尙武) 사진가

대만족의 삶이라 말하는 니코

In Love with Korea 2021 SUMMER 465

대만족의 삶이라 말하는 니코 CULTURE & ART--> 대만족의 삶이라 말하는 니코 코르도니아스 니콜라오스 (Kordonias Nikolaos) 셰프는 어린 시절 맛본 지중해 요리를 오랫동안 즐겁게 만들고 있다. 여러 해를 길 위에서, 다양한 부엌에서 보낸 후 정착한 서울에서 자신의 식당을 경영하며 요리하고 있다. 서울 중심지에 위치한 익선동에서 한 블록 떨어진 작은 골목길에 예상치 못한 그리스문화의 안식처가 손짓한다. 한옥에 들어선 ‘니코 키친’이 토착 그리스 요리를 선보이면서 단골손님을 만들어내고 있다.식당 주인인 코르도니아스 니콜라오스 셰프, ‘니코’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그는 에게해에 있는 사모트라키섬에서 성장한 자신의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들려준다. 이 섬은 날개를 단 승리의 여신 니케를 비롯해 신화의 위대한 신들의 성소가 있는 곳이다.자신의 고향인 이 고대의 섬을 니코는 목가적으로 묘사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하얀색으로 칠해진 집들로 가득한 그리스의 섬을 떠올리게 한다. “아름답고 조용하고 사람들은 친절해요. 삶의 속도는 느리고요. 사람들은 느긋하고 여유롭죠. 걱정을 하지 않아요. 집이 있고 일이 있으니까요. 삶에서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아요. 하지만 원하는 대로 살고 있고 행복하죠.”물론 게다가 “아주 좋은 음식”도 있다. 대화에서는 유기농 생산품, 신선한 닭, 사모트라키섬 주위의 코발트 색 바다에서 잡은 맛있는 생선에 대해 풍부한 얘기가 오갔다. 성장기에 엄마와 할머니가 만든 음식이 그를 사로잡았다. “아마도 냄새였을 거예요.”라고 니코는 말한다.이 모든 게 현재의 그의 삶과 일에 대해 말해준다. 2004년 한국에 도착했을 때 그는 곧바로 다른 음식의 냄새를 알아차렸다. 곧 냄새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거리에서 요리하는 포장마차의 냄새였고, 아주 달랐어요. 고추, 김치 같은 냄새가 공기에 떠다녔죠.”라고 그는 기억을 되살린다.그는 국제적 정취로 가득한 서울의 이태원에 있는, 지금은 문을 닫은 그리스 식당 산토리노에 일자리를 얻었다. 어린 시절 태권도 수업 외에는 한국에 대한 경험이 없는 그는 한국이 어떤 곳인지 아무것도 몰랐다. 하지만 한국행 결정이 어렵지는 않았다. 이동은 그에게 자연스러웠다. 지중해와 카리브해 지역의 항구 사이를 운행하는 크루즈 배에서 일한 후 그는 뉴욕의 요리학원에서 공부했고 맨해튼에서 명망 있는 셰프들과 일했다. 그 후 지인이 식당을 여러 개 운영하는 캐나다에서 6년을 보냈다. 오너 셰프 코르도니아스 니콜라오스는 아침마다 서울 익선동에 자리한 레스토랑 니코키친의 한옥 문을 직접 연다. 그는 자신의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곁들인 휴식을 즐기며 아름다운 그리스를 상상하길 바란다. 한국에 정착하다이태원에서 일하는 동안 니코 씨는 우연히 산토리노가 들어선 건물에서 일하는 서현경 씨를 만났다. 그들은 오가며 마주치다가 결국 결혼으로 골인했다. 니코는 그리스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고 서 씨는 이전에 여러 해를 살았던 일본으로 되돌아갈 계획을 보류하고 있었다. “어떤 일들은 그냥 운명적인 것 같아요.”라고 니코 씨는 서울에 완전히 정착하게 된 일에 대해 얘기했다.2018년에 니코 씨와 그의 아내는 ‘니코 키친’을 열었다. 특별히 한옥을 찾아 나선 건 아니었지만 한옥의 건축 양식이 마음에 들었다. 이 집을 샀을 때 불을 먹는 신화적 동물인 해태상 두 개가 있었는데 이전에 이곳에 입점한 카페에 남아 있었던 거였다. 해태상은 꽃나무 화분으로 가득한 작지만 아름다운 정원을 지키고 있다.니코 키친은 조선왕조의 군인들이 종묘 주위를 순찰할 때 사용한 순라길에서 연결된 골목길에 위치한다. 종묘와 이어진 곳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이 있다. 가까이에는 역사가 오래된 불교 사원이 있고 골목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면 한국의 전통적인 색동천을 전시하는 색동박물관이 있다.식당은 매일 영업을 하며 니코 씨가 모든 요리를 한다. 그의 아내는 그가 일중독자라고 하지만 그는 아주 행복해 보인다. “이게 제 삶이고 저는 이렇게 사는 게 좋아요.”라고 그는 말한다. “저 자신이 음식을 좋아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제가 만든 음식을 좋아하고 즐거워하고 또 방문하는 게 좋아요.”점심과 저녁 사이에 니코 씨는 잠시 휴식 시간을 갖는다. 이때 그는 서울의 여러 곳을 걸어 다닌다. 궁궐이나 절, 서울 한복판을 흐르는 청계천에도 간다. 팬데믹 전에는 사우나에서 몸을 풀기도 했는데 지금은 참고 있다. 식당을 찾은 손님들이 여유 있게 식사하고 와인을 맛보고 긴장을 푼다. 바로 이것이 니코 씨가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이며 그가 원하는 식당의 분위기이다. 니코키친의 셰프는 오직 코르도니아스 니콜라오스 한 명이다. 그가 나고 자란 에개해의 작은 섬, 사모트라키섬의 맛과 가장 비슷한 맛을 내기위해 신선한 그리스식 재료와 레시피를 사용한다. 니코키친의 작은 공간 곳곳에는 그리스를 떠올리는 아기자기한 소품이 많다. 냉장고의 한 면에는 그리스의 상징적인 지역 사진이 프린팅 된 귀여운 마그넷들이 붙어있다. 식도락가들이 발견한 곳 익선동에서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서 떨어진 조용한 골목에 위치한 니코 키친은 그냥 지나치다 들어오는 손님이 많지 않다. 그렇지만 이곳은 늘 예약이 꽉 차 있다. 요리 프로그램을 향한 한국인의 채워지지 않는 식욕이 이 식당으로 이어졌고, 니코 씨는 ‘여기GO’ ‘올리브쇼’(올리브 채널) 등 몇몇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손님으로도 심사위원으로도 출연했다. 미디어 노출이 많아지면서 아침 일찍부터 식사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전화와 이메일 연락이 온종일 오게 되었다. 니코 씨는 텔레비전 출연의 혜택을 인정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요리에 집중하고 싶어 한다.메뉴는 그리스 가정식을 바탕으로 한다. 가지와 다진 소고기로 만든 그리스 전통 음식인 무사카는 지속적으로 손님들이 찾는 요리다. 페타 치즈를 넣은 그리스 샐러드, 브라타 샐러드, 치킨 수블라키와 새우 사가나키도 인기 메뉴다.그리스 음식이 아직 많은 한국인들에게는 생소하기 때문에 피자나 파스타도 메뉴로 제공된다. 하지만 니코 씨 자신만의 스타일로 직접 만든 사워 반죽을 사용해 만든다. 퓨전 메뉴를 선택한 건 좀 더 자유롭게 요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기분이 날 때면 스페인 요리나 이태리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자유로움을 좋아한다.하지만 그가 만드는 음식의 핵심은 항상 같다. 건강한 지중해 스타일의 음식으로 신선하고 자연의 재료로 만든 음식이다. 대부분 채식이고 무설탕에 튀김은 최소로 한다. 과거에는 그리스 식재료를 구입하기 어려웠는데 요즘은 원하는 것을 온라인으로 모두 구할 수 있다. 특정한 치즈나 다른 재료를 급하게 구해야 하면 출근길에 그가 아직 살고 있는 이태원의 가게에 들르면 된다.대부분의 식당처럼 니코 키친 역시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영이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 완전히 회복되었다. 그리스 대사관의 직원들과 근처 절의 스님들을 포함해 많은 손님들이 단골이다. 불교 경전의 여러 장면을 묘사한 다채로운 색의 절 외관이 식당의 정문 위 너머로 보인다. 니코키친은 테이블 4~5개가 전부인 작은 레스토랑이고 모든 좌석은 예약제로 운영된다. 니콜라오스와 그의 아내는 이 곳을 찾는 모든 손님이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니코키친은 테이블 4~5개가 전부인 작은 레스토랑이고 모든 좌석은 예약제로 운영된다. 니콜라오스와 그의 아내는 이 곳을 찾는 모든 손님이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앞날들자신이 선택한 제2의 고향인 한국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본 후 니코 씨는 잘 관리된 빌딩과 거리, 그래피티 같이 공공 지역의 흉물이 없는 것, 그리고 교양 있고 친절한 한국인에 대해 얘기했다. “여기는 천국 같아요. 완벽한 곳이에요. 그래서 이곳에 사는 게 행복합니다.”라고 그는 말한다.그는 그리스를 많이 그리워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팬데믹이 지나가고 일상이 회복되면 사모트라키섬에 가보고 싶어 한다. 좀 쉬면서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고 좋은 음식을 맛보고 바다낚시도 하고 싶다. 그는 자기 인생의 다음 단계를 그려보기도 한다. 그건 퓨전 음식 없이 온전히 그리스 요리만을 제공하는 좀 더 큰 식당을 여는 것이다. 그동안 상황을 살펴왔고 이제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한 곳에서 모두 실현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요. 물론 돈도 벌고요.”라고 그는 말한다.“좋은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다.” 이것이 니코 씨의 간단한 철학이다. 그렇게 말하자 그의 아내가 끼어들어 응수하며 비밀을 폭로했다. 니코 씨가 햄버거를 좋아하고 가끔은 켄터키 프라이 치킨을 즐긴다고. 음식이 그를 한국으로 이끌었고, 그를 여기에 붙들어 두었으며 그를 행복하게 한다. “하루 일과가 끝날 때 만족스럽지 않으면 피곤해집니다. 하지만 만족스러워 미소 지을 수 있으면 모든 문제와 피로는 사라지죠.” 조윤정프리랜서 작가, 번역가

Review

한아름 가득 관계를 이해하다

Books & more 2021 AUTUMN 133

한아름 가득 관계를 이해하다 한아름 가득 관계를 이해하다 “My Brilliant Life”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작, 김지영 역, 203쪽, 14달러, 뉴욕 Forge Books 출판사, 2020 2011년에 출간된 김애란의 이 소설은 주인공 소년 아름의 짧지만 빛나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조로증 환자로 16세에 이미 80세 노인의 몸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야기는 좀 더 의미심장하다.아름은 17세 생일 전에 한 가지 일을 끝내는 것에 집착한다. 그 일은 자신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부모가 들려준 이야기들을 모아 그들이 처음 만난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예민한 관찰자인 그는 부모의 이야기가 세부적인 내용에서 서로 맞지 않음을 알아채지만 그 어느 편에 기울지 않을 정도로 어른스럽다. 사실 그는 “이야기 편에 서 있다.” 마치 이야기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것처럼.어떤 이야기도 동기가 있다. 그 동기가 단순히 재미를 위한 것일지라도. 아름에게 이야기는 부모에게 주고 싶은 선물이다. 그는 오래 살아서 상을 받거나 대학 학위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열의에 찬 아이처럼 그 역시 부모에게 기쁨을 주고 싶고, 그들이 자신의 풍부한 어휘와 우아한 문장에 감탄하는 걸 상상한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동기일 뿐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 대해 알리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그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자신이 내면적으로 느끼는 것보다 텔레비전에서 나온 자신의 모습이 훨씬 더 나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어떻게 되는지를 알게 된다.프로그램에 출연한 결과로 그는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서하라는 십대 소녀로부터 이메일을 받게 된다. 주고받은 이메일에서 그녀가 자신의 꿈이 작가라고 밝히자 아름은 가족 이야기를 쓰고 싶어진다. 이때 그가 이야기를 쓰고 싶은 열망은 또 다른 차원의 의미이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글을 씀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멋진 인상을 주고 싶을지도 모르지만 정말 우리가 원하는 건 사람들이 우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해란 전 우주를 하나의 생명체로 이끄는 연결 조직이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모두 별개의 독립체이며 차가운 바다를 표류하는 섬이다. 하지만 이해를 하게 되면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우리 모두가 연결된다. 아름의 이야기가 어쩔 수 없이 슬프긴 해도 비극적이지는 않다. 아니 적어도, 아름과 그의 가족에 공감을 통해 연결됨으로써 이야기는 비극을 넘어선다. 아름이 맞닥뜨린 질문에 대한 쉬운 답은 없지만 답을 찾는 그의 여정에 함께 함께 하는 건 가치가 있다. 그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함으로써 우리는 그의 빛나는 삶이 온전함을 느낀다. 사실 그의 이름은 ‘한아름’으로 읽힐 수 있고 이는 소설에서 적절한 의미를 갖는다. 이 소설을 읽는다는 건 아름과 그의 가족을 껴안는 것이며 우리의 팔이 한아름 가득 찰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좀 더 꽉 껴안는 것뿐이다. 희망에 부치는 씁쓸한 애가 “Hope is Lonely” 『희망이 외롭다』, 김승희 작, 브라더 앤서니 역, 129쪽, 10.79파운드, 랭커셔 Arc Publications 출판사, 2021 브라더 앤서니에 의해 번역된 김승희의 시집은 읽기에 불편하고, 심지어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모든 훌륭한 시가 그렇듯 이 시들 역시 독자에게 강렬한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시인이 마지막으로 발표한 와 두 시집에서 골라낸 시들을 묶은 이 영문 시집은 시 번역에 있어서 독특한 접근을 시도한다. 즉 한국어 원문과 영문 번역을 병행해서 실었다. 편집자의 말대로 번역된 시가 영어 시도, 외국어 시도 아닌 완전히 다른 무엇, 원문을 대체하지 않지만 그것에 거의 공생하는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방식이다. 원문을 이해할 수 없는 독자에게도 이 시집은 많은 것을 제공한다. 시들이 첫눈에 어둡고 슬퍼 보이고, 심지어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반면에 또 다른 한편에는 희망과 치유가 있다. 표제작인 ‘희망이 외롭다’는 절망을 노래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꼼꼼하게 읽으면 희망에 부치는 씁쓸한 애가임을 알 수 있다. 절망은 쉽지만 희망은 어렵고 그렇지만 시인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희망을 “종신형”이라 부르면서. 김승희의 시를 번역으로 읽을지라도 그녀의 목소리는 우리의 감각을 흔들고 우리에게 빛을 가리키며 크게 울린다.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케이팝에 관한 유튜브 채널 “DKDKTV” 데이비드 김과 데니 김의 유튜브 유튜브 채널 DKDKTV는 2016년 크리에이터 데이비드 김과 데니 김이 케이팝과 리액션 비디오를 조합해 콘텐츠를 만들며 시작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원래 케이팝 팬이 아니었다. 하지만 BTS, 빅뱅, 엑소 같은 그룹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며 영어권 구독자에게 한국적인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인기 케이팝 비디오 리액션을 시작했다. 리액션 비디오가 관심을 끌면서 채널은 다른 시리즈로 확장했다. 이제 DKDKTV는 70만 명 이상의 구독자와 덕스(Ducks)라 자칭하는 열렬 팬 기반을 갖게 되었다. 데니와 데이비드, 그리고 정기적으로 출연하는 다른 초대손님 호스트들은 팬들에게 케이팝 세계의 최근 소식과 사건에 대해 알려준다.주 단위로 진행되는 “DK 뉴스”는 케이팝에 처음 관심을 갖는 구독자들에게 좋은 프로그램이다. 좀 더 깊이 있는 토론을 위해서는 KSTea가 있다. 한 시간 동안 라이브스트림을 진행하며 케이팝 세계에 대해 “비밀을 까발린다”, 데이비드와 데니는 외국인 팬을 위해 설명하는 비디오를 만들기도 했는데 “한국인이 설명하는 케이팝”과 “케이팝 역사 설명하기” 두 시리즈가 그것이다. 채널은 케이팝에 초점을 맞추는 데 우선순위를 두지만 데니와 데이비드는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어 종종 새로운 비디오 아이디어를 시도하기도 한다. 특별히 흥미로운 시리즈 하나는 “DK Asks"로 리포터가 중요한 이슈에 대한 한국 젊은이들의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길거리 남녀“ 인터뷰를 진행한다. 질문은 케이팝을 중심으로 하지만 왕따나 흑인민권운동(BLM) 같은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건드리기도 한다. 찰스 라 슈어(Charles La Shure)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미지와 텍스트로 소통하다

Art Review 2021 AUTUMN 107

이미지와 텍스트로 소통하다 사회적 문제를 재치 있고 날카롭게 조명해 온 민중미술 작가 주재환(Joo Jae-hwan 周在煥 1941~)과 인기 웹툰 작가 주호민(Joo Ho-min 周浩旻 1981~)은 부자 관계다.두 사람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이미지와 텍스트의 조합을 활용한다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은 이런 공통점에 초점을 맞춘 전시다. (왼쪽). 주재환. 2020. 캔버스에 아크릴, 플라스틱 장난감. 53.2 × 45.5 ㎝. . 주호민. 2021. 디지털 드로잉. 화가 주재환(Joo Jae-hwan 周在煥)과 웹툰 작가 주호민(Joo Ho-min 周浩旻) 부자가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실에 나란히 걸린 서로가 그려준 초상화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주재환은 현대사의 주요 이슈들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조망해 왔으며, 아들 주호민은 한국의 신화를 기반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위트 있게 해석한 웹툰 로 널리 알려졌다. ⓒ 박홍순(朴弘淳), 월간미술 열심히 공부를 하고 가야 겨우 이해가 되는 난해한 미술 전시들이 있다. 하지만 가끔은 별다른 생각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싶을 때가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5월 18일부터 8월 1일까지 열린 이 바로 그런 전시다. 언뜻 가볍게 보이기도 하지만, 결코 얄팍하지 않다. 다양한 사회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으면서도 마냥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진솔함과 유머가 두 작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재환은 이미지와 텍스트의 결합을 통해 메시지가 전달되는 작품을 주로 창작해 왔다. 그의 작품에서 텍스트는 시적 메타포를 지니며, 보는 이의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가 하면 주호민의 웹툰에서 텍스트는 대개 말풍선 속 대사로 표현되며 서술성이 강조되어 독자에게 영화적 상상력을 제공한다. 상이한 특성을 지니는 두 장르에서 이미지와 텍스트가 각각 어떤 방식으로 기능하는지 그 차이점과 공통점을 살펴보는 것도 이번 전시의 묘미이다. . 주재환. 2010. 캔버스에 아크릴. 193.7 × 130 ㎝. 1980년 ‘현실과 발언’ 그룹 창립전에 출품해 세상에 알려진 이 작품은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부조리와 압박에 대한 풍자로 마르셀 뒤샹의 를 패러디한 것이다. ‘현실과 발언’은 이후 10년 동안 민중 미술 운동을 통해 미술의 사회 참여를 이끌었다. 아버지 주재환주재환은 1960년 홍익대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집안 사정으로 중퇴를 결정한 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마흔 즈음에야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이에 대해 그는 “체질적으로, 자연 발생적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1980년 창립해 1990년 해체된 미술 그룹 ‘현실과 발언’은 민중미술 운동과 미술의 사회 참여를 이끌어 낸 모태였다. 이 단체의 창단 멤버였던 그는 창립전에 마르셀 뒤샹의 를 패러디한 작품 를 출품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작품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변주되어 그려졌는데, 제목에 언급된 ‘봄비’는 사실 계단에 서 있는 남자들이 누는 오줌이다. 아래로 갈수록 굵어지는 오줌 줄기는 하층부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이 견뎌야 하는 부조리와 억압을 상징한다. 그의 작품 소재는 일상 곳곳에 뻗어 있다. 다 마신 음료수 병을 빨래 건조대에 매달아 환경 문제를 암시한 (2005)나 현대 사회에 부재하는 도덕 관념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 동네 목욕탕에서 가져온 수건을 재료로 삼은 (2012)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버려진 일상 사물을 재활용해 사회적 메시지를 유머러스하게 풍자하는데, 바로 이 점이 그의 작품 세계를 요약하는 가장 큰 특징이다. 최근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자유로운 예술 세계나 유머 감각이 “타동사가 아닌 자동사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이어서 그는 “관람객이 전시를 보다가 하품이 나오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지만, 세월이 지나며 깨달은 게 있다면 모든 작가에겐 자기만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시절 그는 사회적 불평등에, 군부 독재에, 정형화된 한국의 단색화 미술에 저항했지만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그의 마음도 예전보다 순해진 지금은 “모든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깊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회에는 희망의 노선과 절망의 노선이 늘 꽈배기처럼 얽혀서 함께 쭉 간다. 긍정과 부정이 섞여서 가는 게 인간의 운명”임을 자각한 그는 동시에 작가의 무기력함도 깨닫게 되었음을 고백했다. “작품이 전시장에 내걸리는 순간 작가는 무력해지고, 평가는 관람객에게 맡겨진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바를 발견하는 관람객을 볼 때 다시 또 배우게 된다.” . 주재환. 2005. 알루미늄 빨래대, 각종 음료수 제품, 드링크 제품. 가변 크기. . 대형 빨래 건조대에 각종 음료수를 담았던 빈 페트병과 빈 캔을 주렁주렁 매달아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작품이다. 또한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을 일으키는 탄산음료를 통해 대량소비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의 욕망과 양면성도 담아냈다. . 주재환. 2010. 유리 액자에 냄비, 돌, 사진 복사. 70.8 × 53.7 ㎝. 배고픈 아이를 억지로 재워야 하는 브라질 빈민촌 엄마의 이야기와 백금을 입힌 두개골에 다이아몬드를 촘촘히 박은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를 대비시켜 자본주의 사회의 빈부격차를 풍자한 작품이다. . 주재환. 2012. 캔버스에 아크릴, 수건 콜라주. 66 × 53 ㎝. 동네 목욕탕에서 수건을 훔치는 사람들의 도덕 관념을 꼬집은 작품이다. 주재환은 일상에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소재를 유머를 담아 직관적으로 표현한다. . 주재환. 2008. 캔버스에 아크릴, 매직 잉크. 96.3 × 96.5 ㎝. 2008년 당시 재벌 기업의 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리히텐슈타인의 을 패러디해 사회 양극화 현상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다. 아버지와 아들, 미술과 웹툰, 아날로그와 디지털, 이미지와 텍스트가 모두 한자리에 모인 은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신명 나는 한바탕 잔치이다. . 주호민. 2021. 후렉스에 디지털 출력. 740 × 220 ㎝. 주재환의 대표작 를 패러디한 주호민의 대형 설치물로 아버지의 저항 정신과 유머 감각을 자신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아들 주호민 바로 이 지점에서 주호민은 그의 아버지와 맞닿아 있다. 그에게도 독자들의 평가가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작업을 어깨너머로 보고 자랐다. 그림을 그리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쳤는지 중학생 때부터 만화를 그리게 되었는데, 친구들에게 보여 주면 재미있어 하는 모습이 좋았다고 한다. 이후 그는 자신이 그린 만화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빠른 피드백에 ‘중독’되었다. ‘더 웃겨야지’ 하는 마음으로 2000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만화를 올리기 시작한 것으로 커리어가 시작됐다. 독자들의 평가가 그를 결국 웹툰 작가의 길로 이끈 것이다.군대 생활을 소재로 한 공식 데뷔작 (2005)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2010~2012) 시리즈로 국가 대표 작가 반열에 올랐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2017)은 누적 관객수 1,400만 명을 기록하며 한국 영화 역대 3위에 오를 만큼 성공했으며, 후속작 (2018) 역시 누적 관객수 1,200만 명을 동원했다. 유튜버로도 활동하며 21만 명의 구독자를 가진 이 스타 작가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만화라는 게 미술관에 걸려고 만드는 게 아니라서 벽에 걸리는 게 영 어색하고, 관람객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무척 부담스러웠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그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미술관 2층을 가득 메운 주재환 작가의 다양한 회화와 설치 작품들은 시각적으로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반면에 주호민 작가의 대표작들 중 주요 장면을 디지털 프린트한 전시물과 콘티가 그려져 있는 스케치북을 주로 전시한 3층 전시실은 언뜻 휑한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수많은 관람객들이 전시물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며 그가 창조해 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책의 행간이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듯 3층 공간의 여백은 매 장면을 곱씹으며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여유로 작용했다. 창작 당시 그가 참고했던 서적들 역시 일상적인 것들이 상상력의 원천이 되는 변신의 순간을 보여 준다. 3층 전시실의 관람객들이 한국인의 저승관이 담겨 있는 주호민의 웹툰 을 감상하고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신화와 설화적 요소로 전시 벽면을 구성했다. ⓒ 연합뉴스 컬래버레이션 이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각기 다른 영역에서 창작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컬래버레이션이라는 점이다. 전시장 입구에 나란히 걸린 두 사람의 초상 ― 아이스크림 모형과 선글라스를 활용한 주재환의 콜라주 작품 (2020)과 웹툰 스타일로 표현한 주호민의 디지털 드로잉 (2021) ―이 가장 먼저 관람객을 반긴다. 두 사람은 서로의 초상화에 대해 담담한 평가를 내렸다. 아들의 작품을 통해 자신이 “잘 늙었다”는 것을 느꼈다는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작품이 “그냥 너무 웃기다”는 아들…. 한편 아들은 아버지의 대표작 를 패러디한 대형 설치물 (2021)를 내놓았다. 전자가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하강하는 이미지를 보여 준다면 후자는 여러 캐릭터들이 서로를 끌어 주고 올려 주는 상승과 협업의 이미지를 가진다. 아버지의 저항 정신과 유머 감각을 자신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낸 것이다. 어릴 적 아버지가 작업하는 모습이 “그저 당연하게” 느껴졌다는 주호민은 자신이 막상 창작자가 되어 보니 “얼마나 어렵고 신기한 일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지금 아버지가 여든인데 여전히 작업하시는 게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는 벌써 힘이 드는데…. 어떻게 계속 작품 활동을 이어오셨는지 불가사의할 정도”라며 아버지에 대한 존경을 드러냈다. 전시는 스트리머 주호민이 화가 아버지와 협업한 영상물로 끝을 맺는다. 두 명의 배우 중에서 더 좋아하는 사람을 고르고 골라 결국 최종적인 이상형을 선택하는 형식의 ‘이상형 올림픽’ 게임을 변형시켜, 아들은 아버지에게 본인의 작품 중 더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씩 고르게 했다. 더 애정이 가는 작품을 고르는 과정에서 아버지는 각 작품에 얽힌 자신의 기억, 소회 그리고 아들과의 추억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전시 제목에 아들의 이름이 먼저 들어가서 서운하지 않냐는 필자의 우문에 주재환 작가는 “오히려 좋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회화니 만화니 하는 장르 구분도, 누가 먼저니 따지는 것도 전부 구시대적 사고방식”이라고. 아버지와 아들, 미술과 웹툰, 아날로그와 디지털, 이미지와 텍스트가 모두 한자리에 모인 은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신명 나는 한바탕 잔치이다.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

Books & more 2021 SUMMER 471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 Bluebeard's First Wife 작가 하성란, 번역 자넷 홍, 229쪽, 15.95 달러, 뉴욕: 오픈 레터 (2020) 하성란 작가의 단편집 는 인간관계의 가장 어두운 심연으로 가는 여정이다. 상실과 고립, 절망을 서정적으로 그리는 소설은 종종 꿈 속 같다. 엄격한 서사적 구조를 피하고 소품처럼 작은 이야기들이 고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데 이는 무언가를 강하게 선언하기보다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적합하다. 그래서 독자는 그녀의 이야기들이 아주 깊은 감정의 수위를 건드린다고 느낀다. 소설 속 많은 인물들이 경험하는 고통과 비통함을 나누게 되는 것이다. 하성란 작가의 인물들은 주위 세계와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세상은 단순히 잔인하고 비인격적인 힘이 개인을 무자비하게 망가뜨리는 게 아니다. 이 세상은 다른 인간들로 구성되어 있고 여기에 존재의 커다란 공포가 있다. 때때로 사람들은 거리를 둔 ‘타인들’, 예를 들어 아파트 위층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 혹은 작은 산마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도시 밀렵꾼, 혹은 약혼자의 이상한 친구들이다. 어떨 땐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이들이기도 하다. 남편, 아내, 딸, 아들처럼. 이 ‘타자들’이 가깝든 멀든, 이 소설집을 관통하는 주요한 주제는 우리가 누군가를 진실로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어떤 알지 못할 비밀을 숨기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알려고 하지 않고 착각 속에 안전하게 머물기를 원할 수도 있다. 소설의 주인공들이 하는 행동을 봐서는 위의 해석이 가능하고 할 수 있다. 고립된 산마을로 서울에서 파견된 경찰은 마을사람들이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들 공동체의 일원이 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잔디밭이 깔린 전원풍의 삶을 원해 서울 외곽지역으로 이사한 부부는 걷지 못하는 장애인 아들보다 잔디밭에서 활개 치며 뛰어 다니는 개에게 더 신경을 쓴다. 이런 인물들에서 우리는 자신의 꿈과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을 피하려는 인간적 경향이 투영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이들이나 다른 주인공들이 공감력이 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들도 결국 인간일 뿐이라는 것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집을 관통하는 또 다른 주제는 ‘외곽’이다. 소설 대부분의 배경이 서울의 외곽이거나 더 멀리 떨어진 시골이다. 도시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라도 종종 도시의 경계를 넘어 이동한다. 주변으로의 이 같은 이주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도시의 번잡함에서 도망치고 싶은 욕망이나 어떤 임무를 수행해야 할 필요처럼. 어떤 경우에든 도시를 일단 떠나면 우리는 보통의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불확실한 경계 공간에 있게 된다. 시골에 가면 밀렵꾼이 되는 도시 거주자가 어쩌면 이 같은 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이다. 하지만 이런 많은 이야기에서 그 현상은 다양한 차원에서 일어나는 걸 볼 수 있다. 하성란의 이야기는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 게 분명하지만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한다. 이야기들이 하나의 문제점에 바로 도달하기를 (혹은 하나의 문제점이 있다고 주장하기를 종종 거절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재독함으로써 책은 더욱 흥미로워진다. 한국 미술의 주요한 시기에 대한 연구서 한국 미술: 19세기부터 현재까지 저자 샬롯 홀릭, 264쪽, 60달러, 런던, 리액션 북스 (2017)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19세기말에서 21세기 초까지 100년 정도에 걸친 한국 미술을 “완벽하게, 백과사전처럼 읽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대신에 한국사에서 격동의 시기였던 이 기간 동안 이정표가 될 만한 중요한 사건에 초점을 맞춘다. 전체적으로 홀릭은 미술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에 어떻게 관계하는지 파고든다.첫 장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몇 년을 조명하는데 이때 한국은 근대 국가로 변모하고 미술은 점점 더 정치화된다. 두 번째 장은 식민시기에 관한 것으로 이때 미술에 대한 이해가 엘리트의 독점물에서 모두에게 속한 것으로 변한다. 세 번째 장은 2차 대전 후 북한에서 김일성 이데올로기에 의해 추진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미술이 발전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네 번째 장은 앞 장과 병행해서 이 시기 남한의 경우를 다루는데 남한에서는 추상 미술이 대두한다. 다섯 번째 장에서는 1970년대 민중 미술이 소개된다. 마지막 장인 여섯 번째 장은 지난 몇 십 년 동안 예술에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서 한국 예술가들의 변화를 밝힌다.전체적으로 이 책은 한국 미술사에서 충분히 주목받지 못한 시기에 대한 입문서로서 환영할 만하다. 또한 영어로 쓰인 드문 저서로도 인정을 받을 만 하다. 익숙함과 신선함이 섞인 파스텔 2020 JAZZ KOREA FESTIVAL LIVE at Boomiz 송하철 퀄텟, CD (27분), 서울: 게이트포 뮤직 앤 아트 Gatefor Music & Art 송하철(Song Ha-chul)은 자신의 길을 일찍 찾았다. 어린 시절 클라리넷을 불며 음악에 입문했고 15세 때 재즈 색소폰을 시작했다. 1년 만에 교육과정을 모두 마치고 17세에 경희대 포스트모던음악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그는 뮤지션을 향해 질주했다. 2015년 재즈 전문 매거진 의 ‘라이징 스타’로 선정됐고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 EBS 프로그램 등 여러 무대에서 인정받는 프로페셔널 색소포니스트로 명성을 얻었다.송하철 퀄텟(Song Ha Chul Quartet)의 EP앨범 ‘2020 JAZZ KOREA FESTIVAL LIVE at Boomiz’는 2021년 2월에 발매되었으며 코로나 19로 인해 2020년 11월 온라인으로 진행된 앙카라의 주터키한국문화원 주최 ‘재즈 코리아 페스티벌’의 공연 실황이다.음반의 첫 곡은 2017년 발표한 데뷔앨범 의 타이틀곡이기도 한 ‘Straight Life’다. 위풍당당하고 펑키한 서수진(Suh Soo-jin)의 드럼 연주 뒤에 행크 모블리(Hank Mobley 1930~1986)를 연상시키는 송하철의 색소폰 연주가 굵직하고 뚜렷하게 자신들의 존재감을 각인시킨다.‘Marionette’는 임채선(Yim Chae-sun)의 몽환적인 피아노 위에 깔리는 송하철의 색소폰이 유독 아름다운 곡이다. ‘카니발의 아침(Manha De Carnival; 1991)’에서 스탄 게츠(Stan Getz 1927~1991)가 자아냈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매일 낡아가는 익숙한 일상의 시간처럼, 곡은 쓸쓸하게 흘러가다 마친다.‘Going Up’에서는 이동민(Lee Dong-min)의 덤덤한 베이스가 포문을 열면 송하철의 솜사탕같이 부풀어 오른 음색의 색소폰이 뒤따른다. 이어지는‘Somebody's Gold Fishery’에서 송하철의 색소폰 음색은 민첩함과 포근함을 함께 지니며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연주로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린다.‘한국의 재즈’ 라기 보다는 재즈에 익숙한 모든 이에게 깨끗한 파스텔 톤으로 다가올 앨범이다. 재즈가 처음인 사람도 이끄는 힘을 가졌다. Charles La Shure Professor,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Seoul National University 류태형(Ryu Tae-hyung 柳泰衡)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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