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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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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Review 2021 AUTUMN 107

이미지와 텍스트로 소통하다 사회적 문제를 재치 있고 날카롭게 조명해 온 민중미술 작가 주재환(Joo Jae-hwan 周在煥 1941~)과 인기 웹툰 작가 주호민(Joo Ho-min 周浩旻 1981~)은 부자 관계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이미지와 텍스트의 조합을 활용한다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은 이런 공통점에 초점을 맞춘 전시다. (왼쪽). 주재환. 2020. 캔버스에 아크릴, 플라스틱 장난감. 53.2 × 45.5 ㎝. . 주호민. 2021. 디지털 드로잉. 화가 주재환(Joo Jae-hwan 周在煥)과 웹툰 작가 주호민(Joo Ho-min 周浩旻) 부자가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실에 나란히 걸린 서로가 그려준 초상화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주재환은 현대사의 주요 이슈들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조망해 왔으며, 아들 주호민은 한국의 신화를 기반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위트 있게 해석한 웹툰 로 널리 알려졌다. ⓒ 박홍순(朴弘淳), 월간미술 열심히 공부를 하고 가야 겨우 이해가 되는 난해한 미술 전시들이 있다. 하지만 가끔은 별다른 생각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싶을 때가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5월 18일부터 8월 1일까지 열린 이 바로 그런 전시다. 언뜻 가볍게 보이기도 하지만, 결코 얄팍하지 않다. 다양한 사회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으면서도 마냥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진솔함과 유머가 두 작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재환은 이미지와 텍스트의 결합을 통해 메시지가 전달되는 작품을 주로 창작해 왔다. 그의 작품에서 텍스트는 시적 메타포를 지니며, 보는 이의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가 하면 주호민의 웹툰에서 텍스트는 대개 말풍선 속 대사로 표현되며 서술성이 강조되어 독자에게 영화적 상상력을 제공한다. 상이한 특성을 지니는 두 장르에서 이미지와 텍스트가 각각 어떤 방식으로 기능하는지 그 차이점과 공통점을 살펴보는 것도 이번 전시의 묘미이다. . 주재환. 2010. 캔버스에 아크릴. 193.7 × 130 ㎝. 1980년 ‘현실과 발언’ 그룹 창립전에 출품해 세상에 알려진 이 작품은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부조리와 압박에 대한 풍자로 마르셀 뒤샹의 를 패러디한 것이다. ‘현실과 발언’은 이후 10년 동안 민중 미술 운동을 통해 미술의 사회 참여를 이끌었다. 아버지 주재환 주재환은 1960년 홍익대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집안 사정으로 중퇴를 결정한 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마흔 즈음에야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이에 대해 그는 “체질적으로, 자연 발생적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1980년 창립해 1990년 해체된 미술 그룹 ‘현실과 발언’은 민중미술 운동과 미술의 사회 참여를 이끌어 낸 모태였다. 이 단체의 창단 멤버였던 그는 창립전에 마르셀 뒤샹의 를 패러디한 작품 를 출품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작품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변주되어 그려졌는데, 제목에 언급된 ‘봄비’는 사실 계단에 서 있는 남자들이 누는 오줌이다. 아래로 갈수록 굵어지는 오줌 줄기는 하층부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이 견뎌야 하는 부조리와 억압을 상징한다. 그의 작품 소재는 일상 곳곳에 뻗어 있다. 다 마신 음료수 병을 빨래 건조대에 매달아 환경 문제를 암시한 (2005)나 현대 사회에 부재하는 도덕 관념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 동네 목욕탕에서 가져온 수건을 재료로 삼은 (2012)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버려진 일상 사물을 재활용해 사회적 메시지를 유머러스하게 풍자하는데, 바로 이 점이 그의 작품 세계를 요약하는 가장 큰 특징이다. 최근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자유로운 예술 세계나 유머 감각이 “타동사가 아닌 자동사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이어서 그는 “관람객이 전시를 보다가 하품이 나오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지만, 세월이 지나며 깨달은 게 있다면 모든 작가에겐 자기만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시절 그는 사회적 불평등에, 군부 독재에, 정형화된 한국의 단색화 미술에 저항했지만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그의 마음도 예전보다 순해진 지금은 “모든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깊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회에는 희망의 노선과 절망의 노선이 늘 꽈배기처럼 얽혀서 함께 쭉 간다. 긍정과 부정이 섞여서 가는 게 인간의 운명”임을 자각한 그는 동시에 작가의 무기력함도 깨닫게 되었음을 고백했다. “작품이 전시장에 내걸리는 순간 작가는 무력해지고, 평가는 관람객에게 맡겨진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바를 발견하는 관람객을 볼 때 다시 또 배우게 된다.” . 주재환. 2005. 알루미늄 빨래대, 각종 음료수 제품, 드링크 제품. 가변 크기. . 대형 빨래 건조대에 각종 음료수를 담았던 빈 페트병과 빈 캔을 주렁주렁 매달아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작품이다. 또한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을 일으키는 탄산음료를 통해 대량소비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의 욕망과 양면성도 담아냈다. . 주재환. 2010. 유리 액자에 냄비, 돌, 사진 복사. 70.8 × 53.7 ㎝. 배고픈 아이를 억지로 재워야 하는 브라질 빈민촌 엄마의 이야기와 백금을 입힌 두개골에 다이아몬드를 촘촘히 박은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를 대비시켜 자본주의 사회의 빈부격차를 풍자한 작품이다. . 주재환. 2012. 캔버스에 아크릴, 수건 콜라주. 66 × 53 ㎝. 동네 목욕탕에서 수건을 훔치는 사람들의 도덕 관념을 꼬집은 작품이다. 주재환은 일상에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소재를 유머를 담아 직관적으로 표현한다. . 주재환. 2008. 캔버스에 아크릴, 매직 잉크. 96.3 × 96.5 ㎝. 2008년 당시 재벌 기업의 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리히텐슈타인의 을 패러디해 사회 양극화 현상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다. 아버지와 아들, 미술과 웹툰, 아날로그와 디지털, 이미지와 텍스트가 모두 한자리에 모인 은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신명 나는 한바탕 잔치이다. . 주호민. 2021. 후렉스에 디지털 출력. 740 × 220 ㎝. 주재환의 대표작 를 패러디한 주호민의 대형 설치물로 아버지의 저항 정신과 유머 감각을 자신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아들 주호민 바로 이 지점에서 주호민은 그의 아버지와 맞닿아 있다. 그에게도 독자들의 평가가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작업을 어깨너머로 보고 자랐다. 그림을 그리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쳤는지 중학생 때부터 만화를 그리게 되었는데, 친구들에게 보여 주면 재미있어 하는 모습이 좋았다고 한다. 이후 그는 자신이 그린 만화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빠른 피드백에 ‘중독’되었다. ‘더 웃겨야지’ 하는 마음으로 2000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만화를 올리기 시작한 것으로 커리어가 시작됐다. 독자들의 평가가 그를 결국 웹툰 작가의 길로 이끈 것이다. 군대 생활을 소재로 한 공식 데뷔작 (2005)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2010~2012) 시리즈로 국가 대표 작가 반열에 올랐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2017)은 누적 관객수 1,400만 명을 기록하며 한국 영화 역대 3위에 오를 만큼 성공했으며, 후속작 (2018) 역시 누적 관객수 1,200만 명을 동원했다. 유튜버로도 활동하며 21만 명의 구독자를 가진 이 스타 작가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만화라는 게 미술관에 걸려고 만드는 게 아니라서 벽에 걸리는 게 영 어색하고, 관람객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무척 부담스러웠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그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미술관 2층을 가득 메운 주재환 작가의 다양한 회화와 설치 작품들은 시각적으로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반면에 주호민 작가의 대표작들 중 주요 장면을 디지털 프린트한 전시물과 콘티가 그려져 있는 스케치북을 주로 전시한 3층 전시실은 언뜻 휑한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수많은 관람객들이 전시물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며 그가 창조해 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책의 행간이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듯 3층 공간의 여백은 매 장면을 곱씹으며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여유로 작용했다. 창작 당시 그가 참고했던 서적들 역시 일상적인 것들이 상상력의 원천이 되는 변신의 순간을 보여 준다. 3층 전시실의 관람객들이 한국인의 저승관이 담겨 있는 주호민의 웹툰 을 감상하고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신화와 설화적 요소로 전시 벽면을 구성했다. ⓒ 연합뉴스 컬래버레이션 이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각기 다른 영역에서 창작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컬래버레이션이라는 점이다. 전시장 입구에 나란히 걸린 두 사람의 초상 ― 아이스크림 모형과 선글라스를 활용한 주재환의 콜라주 작품 (2020)과 웹툰 스타일로 표현한 주호민의 디지털 드로잉 (2021) ―이 가장 먼저 관람객을 반긴다. 두 사람은 서로의 초상화에 대해 담담한 평가를 내렸다. 아들의 작품을 통해 자신이 “잘 늙었다”는 것을 느꼈다는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작품이 “그냥 너무 웃기다”는 아들…. 한편 아들은 아버지의 대표작 를 패러디한 대형 설치물 (2021)를 내놓았다. 전자가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하강하는 이미지를 보여 준다면 후자는 여러 캐릭터들이 서로를 끌어 주고 올려 주는 상승과 협업의 이미지를 가진다. 아버지의 저항 정신과 유머 감각을 자신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낸 것이다. 어릴 적 아버지가 작업하는 모습이 “그저 당연하게” 느껴졌다는 주호민은 자신이 막상 창작자가 되어 보니 “얼마나 어렵고 신기한 일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지금 아버지가 여든인데 여전히 작업하시는 게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는 벌써 힘이 드는데…. 어떻게 계속 작품 활동을 이어오셨는지 불가사의할 정도”라며 아버지에 대한 존경을 드러냈다. 전시는 스트리머 주호민이 화가 아버지와 협업한 영상물로 끝을 맺는다. 두 명의 배우 중에서 더 좋아하는 사람을 고르고 골라 결국 최종적인 이상형을 선택하는 형식의 ‘이상형 올림픽’ 게임을 변형시켜, 아들은 아버지에게 본인의 작품 중 더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씩 고르게 했다. 더 애정이 가는 작품을 고르는 과정에서 아버지는 각 작품에 얽힌 자신의 기억, 소회 그리고 아들과의 추억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전시 제목에 아들의 이름이 먼저 들어가서 서운하지 않냐는 필자의 우문에 주재환 작가는 “오히려 좋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회화니 만화니 하는 장르 구분도, 누가 먼저니 따지는 것도 전부 구시대적 사고방식”이라고. 아버지와 아들, 미술과 웹툰, 아날로그와 디지털, 이미지와 텍스트가 모두 한자리에 모인 은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신명 나는 한바탕 잔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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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Review 2021 SUMMER 382

어둠 속에 함께 빛나는 별들 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의 올해 첫 기획전으로 1930~50년대 활발했던 예술가들을 조명한다. 특히 이 전시는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었던 불행한 시대에 화가와 문인들의 교류가 어떤 예술적 성취를 낳았는지에 초점을 맞춰 큰 화제가 되었다. 1. . 구본웅(具本雄 1906~1953). 1937. 캔버스에 유채. 71.4× 89.4 ㎝.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구본웅은 인상파 위주의 아카데미즘이 유행하던 시기에 야수파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화면에 그려진프랑스 미술 잡지 『Cahiers d’Art』를 통해 알 수 있듯 구본웅과 그의 지인들은 서구의 새로운 문화 예술 경향을 동시대적으로 향유했다. 1930년대는 일제 식민 통치가 더욱 혹독해진 암흑기였지만, 한편으로는 근대화가 진행되며 한국 사회에 그 어느 때보다 큰 변화가 일어난시기이기도 했다. 특히 경성(일제 강점기의 서울)은 신문물이 다른 지역보다 먼저 유입되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포장된 도로에는 전차와 자동차가 달리고, 화려한 고급 백화점들이들어섰다. 거리에는 새로운 유행을 앞서 받아들여 뾰족구두를 신은 모던 걸과 양복 차림의 모던 보이들이 가득했다. 현실에 대한 절망과 근대의 낭만이 혼재했던 경성은 예술가들의도시이기도 했다. 당시 경성의 예술가들은 너나없이 다방으로 모여들었다. 중심가 골목 곳곳에 즐비한 다방은 단순히 커피만 파는 가게가 아니었다. 예술가들은 이국적 실내 장식과 커피 향기속에 울려 퍼지는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의 노래를 들으며 아방가르드 예술에 관해 이야기했다. 카루소와 아방가르드 예술 식민지 국민의 가난과 절망이 예술의 혼마저 꺾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고난 속에 피어난 창작의열정 뒤에는 시대의 아픔을 공유하며 함께 살아갈 방도를 찾았던 예술가들의 우정과 협업이 있었다.이 ‘역설적 낭만’의 시대를 돌아보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의 전시는 연일 많은 관람객들을 불러 모았다. 근대를 대표하는 50여 명의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이 전시는 제목이 말해주듯 화가와 시인, 소설가들이 장르의 벽을 넘어 서로 어떻게교류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예술적 이상을 펼쳐냈는지 돌이켜본다. 전시는 4개의 주제로 요약된다. ‘전위와 융합’을 주제로 한 제1 전시실은 시인이며 소설가, 수필가이기도했던 이상(李箱 1910~1937)이 운영한 다방 ‘제비’와 그곳을 사랑했던 예술가들의 관계에 집중한다. 건축을 전공한 이상은 학교 졸업 후 한동안 조선총독부에서 건축기사로 일하기도했는데, 폐결핵으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고 다방을 차렸다. 단편소설 「날개」와 실험주의적 시 「오감도」 등 강렬한 초현실주의적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그는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 문학을개척한 대표적 작가로 평가받는다. 제비는 희멀건 벽에 이상의 자화상 한 점과 어릴 적부터의 친구 구본웅(具本雄 1906~1953)의 그림 몇 점만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별다른 실내 장식도 없는 초라한 공간이었지만 이곳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구본웅을 위시해 이상과 친분이 두터웠던 소설가 박태원(朴泰遠 1910~1986),시인이자 문학평론가 김기림(金起林 1908~?) 등이 이곳에 주로 드나들었다. 이들은 이 다방에 모여 앉아 문학과 미술뿐 아니라 영화,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최신 경향과 작품에 대해대화를 나누며 영감을 얻었다. 이들에게 제비는 단순한 사교 공간이 아니라 최첨단 사조를 흡수하며 예술적 자양분을 얻었던 창작의 산실이었다. 특히 장 콕토(Jean Cocteau)의 시와르네 클레르(René Clair)의 전위적인 영화는 이들에게 큰 관심사였다. 이상은 장 콕토의 경구들을 다방에 걸어두었으며, 박태원은 파시즘을 풍자하는 르네 클레르의 (1934)를 패러디해 식민지 현실을 위트 있게 꼬집은 작품 「영화에서 얻은 콩트: 최후의 억만장자」를 쓰기도 했다. 이들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서로의 흔적과 친밀했던 관계가 매우 흥미롭다. 구본웅이 그린 (1935) 속 삐딱한 인상의 주인공은 이상이다. 둘은 네살의 나이 차이가 났지만, 학창 시절부터 항상 붙어 다니며 죽이 잘 맞았다. 김기림은 구본웅의 파격적인 야수파 화풍에 누구보다 찬사를 보낸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이상이 27살의 젊은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이를 안타까워하며 그의 작품을 모아 『이상 선집』(1949)을 냈는데, 이것이 이상의 첫 작품집이었다. 이상 역시 김기림의 첫 번째 시집『기상도(氣象圖)』(1936)의 장정을 맡았다. 그런가 하면 이상은 박태원의 중편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이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될 때 삽화도 그렸다. 박태원의 독특한 문체와이상의 초현실적인 삽화는 독창적인 지면을 만들어 내며 큰 인기를 끌었다. . 황술조(黃述祚 1904~1939). 1939. 캔버스에유채. 31.5 × 23 ㎝. 개인 소장. 구본웅과 함께 같은 미술 단체에서 활동했던 황술조는 정물화, 풍경화, 인물화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독특한 화풍을 이루었다. 이 작품은 35세 젊은 나이에 요절하던 해에 그린 것이다. 1920~40년대 인쇄 미술의 성과를 보여주는 제2 전시실. 이 시기 간행되었던 표지가 아름다운 책들을 비롯해 신문사들이 발행했던 각종 잡지와삽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청색지(靑色紙)』 제5집. 1939년 5월 발행. (왼쪽)『청색지(靑色紙)』 제8집. 1940년 2월 발행. ⓒ 아단(雅丹)문고(Adanmungo Foundation)ⓒ 근대서지연구소 1938년 6월창간되어 1940년 2월 통권 8집을 마지막으로 종간된 『청색지』는 구본웅이 발행과 편집을 맡은 예술 종합 잡지이다. 문학을 위주로 연극, 영화, 음악, 미술 분야를망라했으며 당대의 유명 필진들이 참여하여 수준 높은 기사를 제공했다. 시와 그림의 만남 소설에 삽화를 곁들이는 방식은 예술가들에게 한시적으로나마 일정한 수입을 만들어 주었다. 동시에 신문이대중적이면서도 예술적 감각을 보여 주는 매체로 인식되는 데 기여했다. 정갈한 도서관을 연상시키는 제2 전시실은 1920~40년대 발행된 신문과 잡지, 책을 중심으로 당시 인쇄매체가 이뤄낸 이 같은 성과를 집대성했다. ‘지상(紙上)의 미술관’을 제목으로 한 이 전시는 안석주(安碩柱 1901~1950)를 필두로 대표적인 삽화가 12명의 작품을 곁들인 신문 연재소설들을 한 장 한 장 넘겨볼 수 있도록 구성해 색다른 느낌을 선사했다. 당시 신문사들은 잡지도 발간했는데, 이를 통해 시에 삽화를 입힌 ‘화문(畵文)’이라는 장르가 본격등장했다.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눈이 푹푹 나린다’로 시작하는 백석(白石 1912~1996)의 시 에 정현웅(鄭玄雄1911~1976)이 그림을 그린 1938년도 작품이 대표적이다. 주황색과 흰 여백이 인상적인 이 그림은 백석의 시를 닮아 아련한 정감 속에 묘한 공허감을 자아낸다. 이 작품은 두 사람이같이 만들었던 조선일보사 발행 문예잡지 『여성』에 실렸다. 세련된 언어 감각을 바탕으로 향토색 짙은 서정시들을 발표했던 백석과 삽화가로 이름을 날렸던 화가 정현웅은 신문사동료로 시작한 관계였음에도 각별한 우정을 나누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현웅은 옆자리에 앉아 일하는 백석을 종종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열심히 일하는 그의 모습을 그리고 그 얼굴이‘조상(彫像)과 같이 아름답다’는 찬사를 쓴 짧은 글 「미스터 백석」(1939)을 『문장』이라는 잡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그들의 우정은 직장을 떠나서도 이어졌다. 1940년 훌쩍 만주로떠나버린 백석은 「북방에서 – 정현웅에게」라는 시를 지어 보냈고, 남북 분단 이후 1950년 월북한 정현웅은 북에서 백석과 다시 만나 그의 시를 꾸려 시집으로 엮어냈다. 그 시집의뒤표지에는 ‘미스터 백석’보다 더 중후한 모습의 백석이 그려져 있다. 식민지 국민의 가난과 절망이 예술의 혼마저 꺾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고난 속에 피어난 창작의 열정 뒤에는 시대의 아픔을 공유하며 함께살아갈 방도를 찾았던 예술가들의 우정과 협업이 있었다. 2.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白石 1912~1996), 정현웅(鄭玄雄1911~1976). 아단문고 제공. 시인 백석이 조선일보사가 발행하던 잡지 『여성(女性)』 제3권 제3호(1938년 3월 발행)에 발표한 시에화가 정현웅이 그림을 곁들인 ‘화문(畵文)’이다. 당시에는 글과 그림이 조화를 이룬 화문이라는 장르를 통해 문인과 화가들이 서로 교류하는 일이 잦았다. 3. . 이중섭(李仲燮 1916~1956). 1955.종이에 연필, 유채. 32 × 49.5 ㎝. 개인 소장. 한국전쟁 직후 시인 구상의 집에서 기거하던 이중섭이 일본에 있는 자신의 가족을 그리워하며친구 가족의 단란한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1. 현대문학사에서 1955년 1월 창간한 문학 잡지 『현대문학』의 표지들. 장욱진(張旭鎭 1918~1990), 천경자(千鏡子1924~2015), 김환기(金煥基 1913~1974) 등 내로라하는 화가들의 그림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화가의 글과그림 ‘이인행각(二人行脚)’을 주제로 한 제3 전시실은 1930~50년대로 시대적 배경을 확장해 예술가들의 개인적 관계에 더욱 초점을 맞췄다. 동시대의문인과 화가들은 물론 다음 세대 예술가들과의 인적 관계에서도 중심에 섰던 인물은 김기림이었다. 그는 신문 기자라는 위치를 십분 활용해 많은 예술가들을 발굴하는 데 앞장섰으며,평론을 통해 뛰어난 작품들을 소개했다. 그런 역할을 이어받았던 이로 김광균(金光均 1914~1993)을 들 수 있다. 시인인 동시에 사업가였던 그는 우수한 예술가들을 경제적으로지원했다. 그래서 이 전시실의 여러 작품들이 그의 소장품이었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곳에서 많은 관람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그림은 단연코이중섭(李仲燮 1916~1956)이 그린 (1955)일 것이다. 그림 속 이중섭은 구상(具常 1919~2004)의 가족을 부러운 듯 바라보고 있다.한국전쟁 중 생활고로 인해 일본의 처가로 떠난 가족과 헤어져 지내던 시기, 이중섭은 작품을 팔아 돈을 벌어 가족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어렵게 개최한 전시회가계획했던 대로 돈을 마련하는 데 실패하자 자포자기했고, 당시 그런 심경이 이 그림에 잘 나타나 있다. 그의 일본인 아내가 남편의 소식을 궁금해하며 구상에게 보낸 편지가 나란히전시되어 있어 전쟁이 가져온 가난과 병고 속에서 일찍 세상을 떠난 천재 화가와 그 가족의 사연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한다. ‘화가의 글∙그림’을 보여 주는 마지막전시실에서는 일반적으로 화가로 알려져 있으나 글쓰기에도 남다른 경지에 이르렀던 6명의 예술가를 만날 수 있다. 단순하고 순수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찬미했던 장욱진(張旭鎭1918~1990), 평생 산을 사랑했던 박고석(朴古石 1917~2002), 독특한 화풍뿐 아니라 내면에 솔직한 글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천경자(千鏡子 1924~2015)가포함되었다. 그중 전시의 말미에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김환기(金煥基 1913~1974)의 ‘전면점화’ 네 작품이다. 가까이 다가가 수많은 작은 점들이 빼곡히 박힌 소우주를 바라보고있으면 앞서 지나온 문인과 화가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어두운 시대에 별처럼 빛났던 그들을 이제 비로소 한자리에 불러 모은 듯하다. 2. <18-II-72 #221>. 김환기. 1972. 코튼에 유채. 49 × 145 ㎝.ⓒ환기재단․환기미술관 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화가 김환기는 여러 잡지에 삽화를 곁들인 수필을 발표했으며, 시인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말년의 김환기를 대표하는서정적인 추상화 ‘전면점화(全面點畵)’는 그가 뉴욕에 머무르던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는데, 그 시기 시인 김광섭(金珖燮 1906~1977)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단초가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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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Review 2021 SPRING 583

추상화시킨 일상 독일을 중심으로 국제적 활동을 펼치고 있는 설치미술가 양혜규(Yang Hae-gue [Haegue Yang] 梁慧圭)는 그간 일상 속 친숙한 소재를 활용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들을 연출해 왔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회에서는 이런 시도들이 더욱 다양하고 과감해지며 또 다른 화두에 대한 작가의 도전을 보여 줬다. 양혜규는 빨래 건조대, 블라인드, 전구 등 일상적 소재를 작품에 자주 활용한다. 대표적으로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 작가로 참여해 철제 프레임과 선풍기, 뜨개실 등으로 부엌을 형상화한 작품 을 선보인 바 있다. 이후 카셀의 도큐멘타(Documenta in Kassel), 파리의 조르주 퐁피두센터 등 세계 여러 곳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일상 소재를 활용한 설치 작품을 다양한 형태로 변주시켜 왔으며, 여기에 그래픽 디자인을 활용한 벽지 설치 작업까지 더해졌다. 최근작들은 서로 연결되지 않는 이미지들이 복잡하게 얽혀 다소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때로는 “이미지 밀도가 과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에 대해 그는 난해함을 본인 작품의 특징으로 설명한다. 2019년 1월, 타이베이 난강 전시 센터(Taipei Nangang Exhibition Center)에서 열린 제1회 타이베이 당다이(Taipei Dangdai 台北 當代) 아트페어에 참여한 양혜규(Haegue Yang 梁慧圭). 그는 특정한 역사적 인물이나 일상의 사물들을 설치, 조각, 영상, 사진,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추상적인 조형 언어로 표현한다. ⓒ Sebastiano Pellion Di Persano,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2017. 알루미늄 베니션 블라인드, 분체 도장 알루미늄 및 강철 천장 구조물, 강선, 회전 무대, LED 등, 전선. 1105 × 780 × 780 cm. 베를린 킨들 현대미술센터(KINDL – Centre for Contemporary Art)는 매년 작가 한 명을 선정해 20미터 층고에 달하는 보일러 하우스 공간에 단독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2017년 9월부터 2018년 5월까지 양혜규의 작품이 이곳에서 전시되었다. ⓒ Jens Ziehe, 작가 제공 동일한 대상, 다른 해석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2020. 9. 29.~2021. 2. 28.)도 예외가 아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대형 설치 작품 인데, 제목부터 난해한 이 작품은 베니션 블라인드와 조명 기구들을 활용한 11m 높이의 대형 모빌 형태를 하고 있다. 관람객들은 짙은 푸른색과 검은색의 베니션 블라인드가 서로 엇갈리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작품의 내외부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고, 거대한 규모와 색상이 연출해 내는 다채로운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 작품에 사용된 베니션 블라인드는 그의 대표작 의 상징과도 동일한 소재다. 전시장 내부로 이동하면 흰 블라인드를 활용한 연작을 볼 수 있는데, 제목에 언급된 미국의 개념미술가 솔 르윗의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미니멀리즘적 요소가 강하다. 이 연작들 앞에서 관람객들은 21세기에 과거의 미니멀리즘 양식을 되풀이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작가는 작품 소재로 활용하는 블라인드에 대해 “누군가는 서양적, 다른 이는 동양적이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보는 시각에 따라 어떤 이는 서구적인 오피스 공간을, 다른 이는 동양적인 대나무 발을 머릿속에 떠올릴 것이다. 이렇게 동일한 대상을 통해 각기 다른 맥락에 따라 의미가 변하는 현상을 보여 주려는 의도를 다른 작품들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2017년 멕시코 시티 쿠리만주토(kurimanzutto)에서 열린 전시 전경. 이 전시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열린 양혜규의 첫 번째 개인전이다. ⓒ Omar Luis Olguín, 쿠리만주토 제공 . 2017. 인조 짚, 분체 도장 스테인리스강 천장 구조물, 분체 도장 스테인리스강 프레임, 강선, 너설, 부포. 580 × 750 × 60 cm. . 2017. 보안 무늬 편지 봉투, 모눈종이, 색종이, 사포, 액자, 접착 비닐 필름 11개. 86.2 × 86.2 cm; 57.2 × 57.2 cm; 29.2 × 29.2 cm. . 2017. 알루미늄 베니션 블라인드, 분체 도장 알루미늄 천장 구조물, 강선, 형광등, 전선. 878 × 563 × 1088 cm. 뒤섞인 경계 본격적인 전시가 펼쳐지는 제5전시실에 이르면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연작이 설치되어 있다. 이들 작품은 인조 짚과 플라스틱 끈, 놋쇠 방울이 주된 재료로 금속 방울이 알알이 달려 있는 모습 때문에 첫눈에는 기괴한 생물체처럼 보인다. 조금씩 눈에 익숙해지면 이들 형태가 각각 다리미, 마우스, 헤어드라이어, 냄비임이 드러난다. 블라인드를 활용한 작품에서 동서양의 경계를 겨냥했다면, 이번 작품에서 작가는 무생물과 생물의 경계를 탐색한다. 헤어드라이어를 게로, 두 개의 마우스를 쌓아 곤충 같은 형체를 만든다. 또는 다리미를 맞붙여 가위 형태를 만들기도 한다. 이 작품들엔 바퀴가 달려 있어 움직일 때 소리가 나기도 한다. 작품 오른쪽 벽면에는 네 가지 유형의 문손잡이들을 달았는데, 구각형의 기하학적 형태로 배치되었다. 여기서 노리는 효과도 비슷하다. 손잡이는 문을 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것이 벽에 달리면서 기능을 잃어버린다. 이렇게 맥락에 따라 바뀌는 사물의 의미를 통해 작가는 관객의 흥미를 유발하려는 듯하다. 다만 이런 전략은 이미 100년 전 다다이즘 작가들이 보여준 바 있어 아쉽게 느껴진다. 양혜규가 다리미를 교차해 가위 형태를 만들기 훨씬 이전에 시각미술가 만 레이(Man Ray)는 다리미판에 압정을 박아 그 기능과 의미를 무화시킨 바 있다. 1921년 작품 이 바로 그것이다. 더 거슬러 오른다면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 변기를 미술관에 가져와 (1917)이라고 명명한 것과 연장선상에 있다. 물론 요즘엔 미술사에 나타난 특징적 요소들을 시대와 상관없이 작가가 마음껏 차용하는 경향이 국제 미술계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19세기 이전 회화를 차용해 추상화하는 영국 작가 세실리 브라운(Cecily Brown)은 물론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도 자신의 우상인 피카소의 작품을 대놓고 빗댄다. 그렇다면 개념미술을 빌린 양혜규만의 목소리는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다. 동양과 서양,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를 묻던 작가가 이제는 현실과 가상, 진짜와 가짜의 경계마저도 의문을 제기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왼쪽) . 2020. 인공지능(타입 캐스트), 양혜규 목소리, 스피커. 가변 크기. 기술 제공 네오사피엔스. (오른쪽) . 2020. 폴리에스터 현수막 천에 수성 잉크젯 인쇄, 애드벌룬, 아일렛, 강선, 한지. 가변 크기. 그래픽 지원 유예나. 국립현대미술관의 (2020. 9. 29.~2021. 2. 28.) 전시에서 양혜규는 인공 지능으로 복제된 자신의 목소리를 삽입하거나 현수막에 디지털 이미지를 합성한 새로운 형태의 작품을 선보였다. ⓒ 홍철기(Cheolki Hong),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작가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다리미, 헤어드라이어, 마우스, 냄비 형태를 토대로 재료들을 서로 맞붙이거나 교차 결합하여 혼종 기물을 탄생시켰다. ⓒ 홍철기,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2020. 분체 도장 스테인리스강 프레임, 분체 도장 격자망, 분체 도장 손잡이, 바퀴, 검은색 놋쇠가 도금된 방울, 놋쇠가 도금된 방울, 빨간색 스테인리스강 방울, 스테인리스강 방울, 금속 고리, 플라스틱 끈. (왼쪽) . 208 x 151 x 86 cm. (왼쪽에서 두 번째) . 155 x 227 x 115 cm. (왼쪽에서 세 번째) . 291 x 111 x 97 cm. (오른쪽) . 224 x 176 x 122 cm. 현실과 추상 이번 전시에서 양혜규는 기존에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의 작품을 선보였다. 디지털 이미지를 합성한 현수막 작품 과 인공지능 목소리가 나오는 가 그것이다. 에 대해 작가는 “정치적 선전물을 닮은 강렬한 그래픽과 과장된 타이포그래피가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5개의 현수막에는 오방색(파랑, 빨강, 노랑, 하양, 검정)이 상징하는 다섯 가지 요소(나무, 불, 흙, 철, 물)의 이름이 적혀 있다. 현수막 아래쪽에는 한지로 만든 무구가 술처럼 달려 있다. 이 작품은 이번 전시의 제목 와 큰 연관성이 있는 듯하다. 작가는 일상에 존재하는 공기와 물이 ‘O2’와 ‘H2O’로 기호화되는 것에 주목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현실을 다섯 개의 요소로 추상화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는 설명으로 들린다. 그런가 하면 는 현수막 사이 사이에 스피커를 매단 작품이다. 스피커에서는 인공지능 기술로 복제된 작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동양과 서양,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를 묻던 작가가 이제는 현실과 가상, 진짜와 가짜의 경계마저도 의문을 제기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베를린과 서울 사이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난 양혜규는 199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이주해 미술대학 슈테델슐레(Städelschule)를 졸업했다. 2005년부터는 베를린에 정착해 활동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서울에도 스튜디오를 열고 두 곳을 오가며 작업 중이다. 2018년 아시아 여성 작가로는 처음으로 독일 볼프강 한 미술상(Wolfgang Hahn Prize)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팬데믹 상황인 2020년에도 세계 여러 곳에서 그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뉴욕의 현대미술관 재개관을 기념한 (2019. 10.~2021. 2. 28.), 그리고 영국 콘월의 테이트 세인트아이브스(Tate St Ives)에서 대규모 전시 (2020. 10. 24.~2021. 5. 3.)가 열렸다. 2014년 이불(Lee Bul 李昢)로 시작한 ‘MMCA 현대차 시리즈’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중진 작가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연례전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이 미술관이 기획한 양혜규의 첫 번째 개인전으로 40여 점의 작품이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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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Review 2020 WINTER 233

박래현의 삶과 예술 “곤두박질하듯 살며 사랑과 예술로 인간 승리를 이룬 삶”– 청각 장애 화가의 헌신적인 아내일뿐 아니라 자신도 그 못지않게 훌륭한 작가였던 박래현(Park Re-hyun 朴崃賢 1920~1976)은 스스로 인생을 이렇게 표현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전설이 된 삶의 그늘에 가리워졌던 작가 박래현의 예술 세계를 돌아보는 기획전을 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2020년 9월 24일부터 2021년 1월 3일까지)은 데뷔 시절부터 1970년대 전반까지 약 30년간에 걸친 그의 작품 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한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전시는 주로 여인들을 소재로 한 1940~50년대의 구상 작품, 남편 김기창(Kim ki-chang 金基昶)과 함께한 부부전 자료들과 박래현의 개인적 사유를 엿볼 수 있는 글들, 1960년대 추상화, 그리고 1970년대 판화 작품들을 소개한다. 전시 제목인 ‘삼중통역자’는 청각 장애를 가졌던 남편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한국어, 영어, 그리고 구화(口話)의 삼중통역자 역할을 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번 전시는 박래현의 치열한 삶과 예술을 향한 열정을 함께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양식의 변화 1920년에 태어난 박래현은 일제 식민 치하에서 미술을 시작했다. 경성사범학교(현재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재학 시절 일본인 미술 교사 에구치 게이시로(Eguchi Keishiro)에게 그림을 배웠고, 1940년 도쿄 여자미술전문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걸었다. 그의 화단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은 1943년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총독상을 수상한 이다. 붉은색 화장대와 마주하고 있는 검은색 기모노 차림의 일본 소녀를 단순하고 강렬한 색채 대비로 표현한 이 작품은 관습적인 일본화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이때부터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감각적이고 과감한 구성미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혼 후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박래현의 가족은 친정이 있는 군산으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다시 서울로 올라오기까지 4년여 동안 부부는 전쟁 중이었음에도 오로지 작업에 열중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조형적 탐구를 시도했다. 그 결과 그는 (1956)과 (1956)으로 1956년 대한미협전과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면서 영예로운 시간을 맞이했다. 이처럼 1950년대 중반 시기까지 그의 작품에서 꾸준히 발견되는 소재는 여인들인데, 피난 시절을 거치면서 그림 속 여인들은 점점 꾸밈없는 가난하고 평범한 모습을 하게 된다. 데뷔작 과 비교해 볼 때 그로부터 13년 후 그린 과 두 작품에서는 큰 변화가 느껴진다. 일본과 한국이라는 작가가 속한 지리적 위치, 그림을 대하는 태도, 결혼 후의 개인적인 환경, 국가의 정치적인 상황 모두 너무나 달라져 있었기 때문에 작품의 변화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중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양식적인 변화이다. “형태와 색채의 융합을 생각하게 되고 색의 변화가 이룩하는 고유한 형태의 화면 통일에 신경을 쓰게 되며 때로 특유한 선이 암시하는 입체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박래현이 1965년 한 월간 잡지에 기고한 「동양화의 추상화」라는 제목의 글에서 한 말이다. 이런 생각은 선과 색채의 적절한 융화를 통한 대상의 간결하고 입체적인 표현으로 이어졌다. 이 같은 화풍의 변화는 1955년도 작품 에서 이미 시작되었는데 이 작품을 자세히 보면, 단순하고 평범한 두 소녀의 모습이지만 언니의 살색과 저고리의 색이 같아 구분이 되지 않고 동생의 치마 또한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알 수 없게 표현되어 있다. 전통적인 동양화에서 먹선은 작품의 소재에 외곽선으로 쓰이는데, 박래현은 먹선과 채색을 하기 위한 붓터치를 혼용하여 자유롭게 그어 나갔다. 이 시기 그가 직접 언급한 ‘입체적’이라는 표현은 1950년대 중반부터 한국 화단에 수용된 큐비즘의 영향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그는 피카소를 “시시각각으로 변화가 무쌍하고 항상 싱싱한 젊음을 보여주는” 작가로 평가하는가 하면 1973년 4월에 사망한 피카소의 부고 기사와 그의 작품 이미지들을 콜라주하여 판화로 제작하기도 했다. 추상화와 판화 1950년대 후반까지 박래현의 그림에서 대상은 점점 더 단순해졌다. 1960년 1월, 그는 동양화의 새로운 모색을 함께하기 위해 결성된 그룹 백양회(White Sun Group 白陽會)의 일원으로 타이완을 방문하여 이라는 첫 해외전을 가졌다. 이 전시는 이듬해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서도 이어졌는데 박래현은 이 시기의 해외 여행을 통해 동시대 동아시아 화가들이 전통적인 양식에 회의를 품고 새로운 형식을 갈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1960년대 한국 화단에서는 앵포르멜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비정형’을 의미하는 앵포르멜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카데믹한 기하학적 추상에 반발하여 나타난 유럽 미술의 한 동향으로 추상의 서정적인 측면을 강조했고 두터운 유화 물감의 질감을 살려 표현했다. 박래현은 이 유행을 수용하면서도 동양화의 재료적 특성을 이용한 독자적인 화면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새로운 변화는 1962년 12월에 열린 여섯 번째 부부전에 출품된 작품들에서 나타났다. 대상의 구체적인 형태가 사라지고 적갈색 계열의 색채 덩어리들로 구성된 작품들이 대거 출품된 것이다. 이 무렵 앵포르멜 양식을 실험하던 다른 동양화가들의 리드미컬한 선들로 가득 찬 화면과 비교했을 때 그의 작품은 확실히 독특했다. 그는 바탕 종이를 구겨서 생긴 결 위에 먹을 그어 자국을 만들기도 하고, 종이 위에 안료를 쏟아 흐르게 한 후 번지게 하여 먹과 물감이 서로 뒤섞이는 효과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러한 실험은 1961년부터 63년경까지 계속되다가 1966년부터 이른바 ‘맷방석 시리즈(straw mat series)’라 불리는 일련의 작품들에서 가늘고 수없이 반복되는 먹선이 더해져 보다 높은 완성도에 다다르게 된다. (1966~67)을 보면, 앵포르멜을 수용함에 있어서도 화려하고 힘찬 선으로 가득 찬 다른 동양화가들과 달리 얇고 질긴 한지에 가는 선을 그으면서 종이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특유의 수공예적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여정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1969년 미국 유학길에 오른 그는 뉴욕 프랫 센터(Pratt Graphic Center)와 밥 블랙번 판화공방(Bob Blackburn Print Studio)에서 수학했는데, 같은 시기 그의 큰딸은 프랫 인스티튜트에 재학 중이었다. 초기에는 주로 에칭 기법을 사용하여 기존의 동양화 작품을 판화로 변환하는 데 주력했다. (1970~73) 이후 판화만의 속성을 탐구하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동양화와 확연히 구분되는 입체적 질감 효과를 창출해 냈다. 판화는 회화와 달리 직접 작가가 손으로 그 물질성을 느낄 수 있는 매체이므로 그의 장기인 세밀한 터치가 물질에 그대로 드러나는 결과가 즉각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 작업 과정은 작가 자신에게 더없는 기쁨을 줬을 것으로 생각된다. 앵포르멜 양식을 실험하던 다른 동양화가들의 리드미컬한 선들로 가득 찬 화면과 비교했을 때 그의 작품은 확실히 독특했다. 그 이유는 박래현이 앵포르멜의 ‘분위기’는 받아들이면서도 동양화의 재료적 특성을 살려 특유의 섬세한 기법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안식의 시간 박래현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늘 새로운 시도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그러나 대중에게는 ‘김기창의 아내’로 더 잘 알려졌던 것도 사실이다. 1943년 그는 당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여러 번 특선을 차지하며 중견 작가로 자리를 굳히던 김기창과 만났고, 3년 뒤 결혼했다. 이들의 만남은 김기창의 표현대로 ‘귀먹고 가난하고 학벌도 없는 나와 지주의 맏딸로 최고학부를 나온 당신’의 결합이었는데 그해 한국 화단에 큰 이슈가 되었다. 평생의 반려자로 인해 자신의 예술 인생이 지속될 수 있을 것임을 감지했었기에 가능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그의 호를 지어 준 이도 남편이었다. 김기창은 자신의 호 ‘운보(雲甫)’에 어울리는 ‘우향(雨鄕)’이라는 호를 붙여주었는데, 이는 시골 고향(鄕)에 비(雨)를 내려 씨앗이 잘 자라도록 하고 열매를 거두어들인다는 의미이다. 박래현은 네 아이를 키우며 청각 장애 남편이 혼자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될 때까지 5년 동안 구화를 가르쳤다. 이러한 의지와 헌신이 그를 뛰어난 작가이기 이전에 ‘어진 아내, 좋은 어머니’의 표상으로 알려지게 만들었다. 1974년 한 여성단체로부터 이 점을 높이 평가받아 신사임당상을 수상하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일생에 대해 “곤두박질하듯 살아왔다”, “남편의 말문을 연 사랑과 예술이 인간 승리의 기록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시도 쉴 수 없는 일상 속에서 예술은 그에게 잠시 쉴 수 있는 소중한 틈새이자 마음껏 자신의 세계로 침잠해 들어갈 수 있는 안식처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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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Review 2020 AUTUMN 254

몸으로 스며들어 만나는 음악 국악계의 재기발랄한 젊은 예술가들이 전통에 현대성을 접목한 개성 넘치는 음악 세계를 창조하며, K-pop과는 결이 다른 또다른 한류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 바탕에는 이들보다 먼저 세계 무대에 섰던 명인 명창들의 뛰어난 기량과 함께 훌륭한 기획자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오래전 해외 공연 여행 중에 있었던 일이다. 공연이 끝나고 소풍을 가기로 했다. 사막에서 누리는 봄날, “오늘만큼은 예술도, 무대도 깨끗이 잊어버리자”고 다짐했던 터라 일행 모두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 신나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냉천.’ 발을 담근 순간 물의 온기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우리가 지금 아랍 지역에 와 있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하는 찰나, 저 건너에서 뚱땅거리는 소리가 냇물을 타고 흘러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남자아이 몇이 뭔가를 둘러메고 신나게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음악도 춤도 훌훌 털겠다던 우리는 어느새 하나둘씩 다가가 어디에서 주워 왔는지 모를 허름하기 짝이 없는 소년들의 북 리듬에 입장단 맞춰 가며 덩실덩실 춤까지 추고 있었다. 말이라고는 오직 딱 두 마디, ‘앗살라무 알라이쿰’과 ‘슈크란’이 전부였지만, 우리는 한참을 웃고 떠들었다. 제8회 서울세계무용축제의 일환으로 2005년 10월 8일과 9일 이틀간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린 무대에서 당대 최고의 원로 춤꾼들이 한국 전통 춤의 진수를 펼쳐 보였다. 왼쪽부터 김수악(金壽岳 1926~2009) 선생의 진주교방굿거리춤, 김덕명(金德明 1924~2015) 선생의 양산학춤, 강선영(姜善泳 1925~2016) 선생의 태평무, 이매방(李梅芳 1927~2015) 선생의 승무 장면이다. ⓒ 뉴스뱅크 2014년 7월, 독일의 월드음악 축제 루돌슈타트 페스티벌(Rudolstadt Festival)에서 가야금 산조 김해숙(金海淑) 명인이 프란츠 리스트 바이마르 국립음대의 스트링쿼텟과 협연하고 있다. 그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이 축제의 헤드라이너로 선정되었다. ⓒ 전주세계소리축제 명인 명무 무대 전무후무(全舞珝舞 The Perfect and Precious Dances by Virtuosos) –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춤판을 이루며 당대를 주름잡던 평균 나이 80세의 명인 명무 여섯 분들을 2005년 한자리에 모았다. 그리고 내로라하는 악사들이 돗자리를 깔고 무대에 길게 앉아 선생들의 몸에서 춤을 불러냈다. 현재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으로 있는 전통예술 연출가 진옥섭(陳玉燮) 선생이 기획해 제8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에서 선보인 무대이다. 이 공연을 본 프랑스 몽펠리에 축제(Festival Montpellier Danse) 부감독 지젤 데푸치오(Gisèle Depuccio)는 그 자리에서 이분들을 초청하기로 결정했고, 이라 제목을 붙이기로 했다. 2006년은 마침 한불 수교 120주년을 기념하던 해라 문화체육관광부가 항공과 화물 운송을 책임지고, 축제 본부가 상당히 높은 공연료와 기타 초청 비용 전액을 부담해서 프랑스 몽펠리에와 샤토 발롱(Chateau Vallon) 2개 도시에서 공연하기로 했다. 그러나 불과 1년 새, 선생들의 시간은 너무 빨랐다. 그 공연 이후 장삼자락 휘휘 날리며 하늘로 난 길을 따라간 분들이 계셨기에 일부 출연자 교체로 평균 연령을 살짝 낮추고 나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몽펠리에 광장에 있는 오페라 코메디(Opéra Comédie)에서 드디어 공연이 끝났을 때 극장 앞은 집에 가지 않겠다며 버티고 선 프랑스인들로 북새통이 되었다. 피곤하지만 어쩌겠나. 사람들이 모였으니 잔치를 할 수밖에. 보조 악사로 공연에 참여했던 노름마치(noreum machi)가 한바탕 마당놀이를 펼쳤다. 이 잔치가 얼마나 즐거웠으면 현지 지방 매체는 말할 것도 없고, 포도나무에 물 주다 뛰쳐나와 벼 베어 낸 논에서 너울너울 춤추고 다시 비닐하우스로 돌아가는 농부 춤꾼 이윤석(李潤石) 선생을 르몽드가 인터뷰로 집중 조명했다. AFP는 남성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김덕명(金德明) 선생의 학춤을 사진으로 전송하느라 바빴다. 극장 스태프 중 한 명은 장금도(張今道) 선생의 살풀이춤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혼이 위로받았을 것 같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오코라 라디오 프랑스가 2012년 제작한 김해숙 명인의 음반. 세계적인 음반사 아르모니아 문디(Harmonia Mundi)를 통해 60여 개 국가에서 동시에 출시됐으며 산조를 월드 뮤직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오코라 라디오 프랑스가 2014년 출시한 경기민요 이춘희 명창의 아리랑과 민요 앨범 . 2011년 4월,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주관으로 덕수궁에서 열린 공연에서 이춘희 명창이 열창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7년 4월, 체코 프라하의 이벤트홀 아크로폴리스궁(Palác Akropolis)에서 잠비나이가 연주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해금의 김보미, 기타의 이일우, 거문고의 심은용. 뒷줄은 베이스를 맡고 있는 유병구의 모습이다. ⓒSong Jun-ho 안은미컴퍼니가 2018년 서울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초연한 의 한 장면이다. 남북한 전통 춤의 동작, 의상, 음악 등을 분석하여 공통분모를 찾아낸 작품으로 2019년 파리 테아트르 드 라 빌(Théâtre de la Ville)의 시즌 프로그램으로 선정되었으며, 2020년 2월 벨기에 리에주 국립극장이 주최한 페스티벌의 폐막작으로 소개되었다. ⓒ Gadja Productions 국제적 신뢰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에 들어가면 숨어 있는 한국 음악 귀 명인들이 지금도 찾는 명반이 있다.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오코라 라디오 프랑스(OCORA Radio France)가 2012년 제작해 세상에 내놓은 (Corée: Gayageum Sanjo - Ecole Choi Ok-Sam)는 가야금 산조 명인 김해숙(金海淑), 거문고 명인 이재화(李在和), 아쟁 명인 김영길(金泳吉)의 연주를 담았다. 이 음반은 영국, 독일 음악 비평가들이 주는 상도 받았으니 이들이 한국을 넘어 세계인들의 귀까지 사로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같은 해 경기민요 명창 이춘희(李春羲)는 ‘아리랑’이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때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축가를 불렀고, 국내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저 동경만 하는 상상축제(Festival de l'Imaginaire)가 선생을 2014년 개막 공연 무대에 세우기도 했다. 피나는 노력으로도 오르기 힘든 정수에 도착하면 숨소리 하나도 예술이 되는 것일까? 연주깨나 한다는 후배들이 아직 가 보지 못한 세계 최정상 무대는 명인 명창에게는 참 쉽게 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예술가의 빼어난 실력만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다. 루돌슈타트 페스티벌(Rudolstadt-Festival), 세계문화의 집(Maison de la Culture du Monde)까지도 열어젖힌 기획자는 “어르신들이 평생 닦은 내공을 제대로 존중받으시도록 했으면 그것으로 됐다”고 말하며 칭찬을 마다한다. 라디오 프랑스의 유일한 한국 프로듀서인 김선국 저스트뮤직(Just Music & Publishing) 대표가 쌓은 국제적 신뢰가 아니었다면 이룰 수 없었을 이 모든 성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오늘도 한국 음악은 새로운 뮤지션의 등장에 환호하고, 이들을 알아본 발 빠른 월드 뮤직계의 눈 밝은 에이전트들은 언제 하늘 길이 열릴지 손꼽아 기다린다. 세계가 사랑한 한국 음악 매년 수많은 음악 전문 행사들이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불과 몇 개월 전까지는 해외 공연이 예정된 단체들의 운송 지원 수요를 다 감당해 내지 못해 걱정이었다. 이렇게 예술 유통에서 해외 무대 비중이 높아지고, 많은 한국 이름들이 여러 언어로 번역되는 데에는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젊은 음악인들의 공이 매우 크다. 국악에 헤비메탈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록을 접목해 “트렌드를 좇는 것이 아니라 트렌드를 주도하는 밴드”라는 평가를 받으며 월드 뮤직계를 충격에 빠뜨린 잠비나이(Jambinai)는 국내에서 만나기보다 해외에서 마주치기가 더 쉬울 정도다. 다양한 유통 시장의 전략적 활용, 유명 레이블과의 계약 등 그들이 걸어온 길은 후배 음악인들이나 국내 공연 예술계가 국제 교류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게 했다. 잠비나이의 성공에 힘입어 지금은 적잖은 연주자들이 전문가와 손잡고 체계적으로 해외 무대에 접근하고 있다. 해외 무대 진출에 가장 적극적이고 용이한 분야는 퓨전 국악을 중심으로 하는 월드 뮤직 장르지만 세계 무대가 첫손에 꼽으며 반기는 예술가는 단연 안은미(Ahn Eun-me 安恩美)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전통 무용을 배우고 뉴욕 유학 시절에 현대무용가로 변신해 데뷔한 안은미의 무대는 화려한 색의 나열, 강렬하고 속도감 있는 움직임의 조화가 두드러진다. 작품은 하나하나 사연을 담고 있으며, 관객과 현장에서 어울리며 소통하는 그녀는 항상 “우리 지금 함께 행복하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녀의 작품을 보면 난 가슴이 따뜻하고 기쁘다”는 프랑스 기획자 장-마리 샤보(Jean-Marie Chabot)가 유독 안은미에 집중해 국제적 공연 예술가로 부각시키려 애쓰는 이유는 바로 예술가로서 그녀가 전하는 메시지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한편 명창 이춘희의 제자였고, 파격의 선두 주자 안은미의 무대와 철학을 민요에 입혀 ‘조선의 아이돌’이라 불리게 된 이희문(Lee Hee-moon 李熙文)은 ‘보는 음악’을 만들어 냈다. “우리 함께 놀아버리자”고 관객들에게 외치는 그는 소리꾼이지만 안은미가 무대에 펼쳐 놓는 화려한 강렬함을 온몸으로 입어 버리는 배우이기도 하다. 망사 스타킹에 하이힐을 신고, 반짝이 드레스를 걸친 것도 모자라 분홍, 노랑, 파랑 가발을 뒤집어쓰고 능청스럽게 관객과 주거니 받거니 진짜 놀아 버린다. 그가 리드 보컬로 있었던 그룹 씽씽은 뉴욕에서 열린 ‘2017 글로벌페스트(globalFEST)’에 아시아 음악가로는 유일하게 초대받아 화제의 중심에 섰다. ‘민요계의 레이디 가가’로 소개될 만큼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여 뉴욕타임즈로부터 “올해 글로벌페스트 최고의 수확은 씽씽(이희문)”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2019년에는 아델, 존 레전드 등이 출연했던 미국 NPR의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 에 한국인으로는 처음 출연해 유튜브 동영상 조회 수가 120만 건을 넘기도 했다. 소리꾼 이희문(가운데)이 민요 듀오 놈놈(좌우), 밴드 허송세월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오방神과(OBANGSINGWA)’를 결성했다. 이희문과 놈놈의 신승태(맨 왼쪽)는 그룹 씽씽의 일원으로 2019년 미국 NPR의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출연해 큰 화제를 낳았다. ⓒ Kwak Ki-gon 디지털 무대를 향해 오늘도 한국 음악은 새로운 뮤지션의 등장에 환호하고, 이들을 알아본 발 빠른 월드 뮤직계의 눈 밝은 에이전트들은 언제 하늘 길이 열릴지 손꼽아 기다린다. COVID-19로 하루아침에 바뀐 세상. 우리는 지금 나누고 싶은 좋은 음악, 보여 주고 싶은 매혹적인 춤을 어느 디지털 플랫폼에 실을지 고민 중이다. 우리에게는 넷플릭스와 견줄 만한 재원도 없고, 확장현실(XR)까지 소비하는 영상 세대를 홀릴 만한 기술력도 아직은 없다. 오프라인 무대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언제까지 기다려 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럼에도 한국을 세계에 널리 알렸으며, 여전히 박수를 그리워하고, 오늘도 땀 흘리며 마이크와 악기를 놓지 않는 예술가들에게 시간을 주자. 화면 속 그들이 실제 무대의 감동을 고스란히 지구촌 청중들에게 전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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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Review 2020 SUMMER 247

보이지 않는 것과의 접속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주최한 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비디오 아트의 역사를 돌아보는 뜻깊은 전시였다. 다만 2019년 11월 28일부터 2020년 5월 31일까지 진행된 전시 중 COVID-19 사태로 인해 상당 기간 관람이 정지되었던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한국의 비디오 아트는 서구와 동시대간대에 함께 발전해 왔으나,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또한 일반 대중은 대부분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Nam June Paik 白南準 1932~2006)을 제외하고는 비디오 아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전시에는 비디오 아트의 태동기인 1970년대부터 시작해 이 장르가 본격적으로 무르익은 1990년대까지 한국 작가 60여 명의 작품 130여 점이 소개되었다. 관람객들에게는 국내에서 비디오 아트가 정착해 가는 전개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로서 지금은 국제적으로 유명해진 작가들의 초기 작업들을 볼 수 있어 흥미를 더해 주었다. . 박현기(朴炫基). 1979. 돌 14개, TV 모니터 1대. 260 × 120 × 260 ㎝ (WDH).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백남준(白南準). 1974/2002. 부처 조각상, CRT TV, 폐쇄회로 카메라, 컬러, 무성. 가변 크기.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실험 미술 1970년대는 한국 현대 미술의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여러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시기였다. 군부 독재라는 엄혹한 정치적 상황이 역설적으로 예술의 전위 운동을 촉발시킨 점은 매우 아이러닉하다. 해프닝, 설치, 사진과 영상을 끌어들이는 일련의 실험적 작업이 왕성하던 때에 최초로 비디오 아트 작업이 몇몇 작가들에 의해 선구적으로 시도되었다. 당시 미술인들은 비디오를 새롭고 독자적인 영상 미학의 표현 매체로 삼기보다는 대부분 전위 예술이나 개념 미술의 실천을 위한 수단으로 수용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구림(Kim Ku-lim 金丘林), 이강소(Lee Kang-so 李康昭), 박현기(Park Hyun-ki 朴炫基) 등이었는데, 이 작가들은 비디오라는 새로운 수단을 통해 시간성, 과정과 행위, 감각과 존재, 개념과 언어 등에 관련된 사유를 시각화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국내 실험 미술의 선구자 김구림의 초기 작품인 (1974/2001)는 책상을 걸레로 닦는 행위를 보여 주는데, 걸레질이 반복될수록 걸레가 점점 더 더러워지고 급기야 까맣게 되어 조각조각 흩어지는 과정이 압축적으로 전개된다. 국내에서 본격적 비디오 작업의 선구자로는 단연 박현기를 꼽을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1973년부터 비디오 작업에 들어섰다고 한다. 일명 ‘TV 돌탑’이라 불리는 연작은 실제의 돌과 돌을 촬영한 영상을 함께 배치시켜 자연과 기술, 실재와 환영, 원본과 재현의 문제를 탐구하고 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피난길에 사람들이 돌을 주워 작은 탑을 쌓고 소망을 비는 행위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에게 돌은 물질이면서 동시에 염원을 투사하는 문화인류학적 사물이고, 그의 작업은 돌에 대한 한국인의 무속 신앙의 한 편린을 접하게 해준다. 관람객들은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 전통 미술에 내재된 이미지의 주술성과 무속성이 첨단 테크놀로지 속에서 환생하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예술적 전용 은 1984년 1월 1일 전 세계에 생방송된 백남준의 위성 TV 쇼를 영상으로 편집한 작품으로 비디오 아트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백남준은 스스로 빛을 내는 브라운관이 그저 그림자에 불과한 사진이나 영화와는 다른 미학적 성질을 갖고 있음에 일찍이 주목했다. 그는 젊은 시절 음악을 전공하고 실험적인 현대 음악가로서 일본과 독일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1960년대 초에 TV를 임의로 조작하여 상업 텔레비전 방송의 일방적인 정보 지배 구조를 변화시키는 작업을 선보였다. 1965년 이후에는 새로 개발된 비디오를 처음으로 미술 분야에 활용함으로써 매체 미술의 큰 흐름을 열었다. 텔레비전에서 예술적 가능성을 발견한 백남준은 그 장치와 이미지를 변형함으로써 원래 설계된 목적과는 다른 용도로 전용해 냈는데, 그의 이 같은 상상력을 “사물에 부여된 기능이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것을 다기능적으로 해석하고 활용해 온 한국인들의 유연하고 포용적인 사고방식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으로 바꾸었듯이 이는 20세기 현대 미술의 주된 특징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백남준은 TV라는 고정된 미디어로 조형적 실험뿐 아니라 철학적 사유를 가능하게 했고, 나아가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볼 수 없지만, 단일 주사선(走査線)으로 만들어진 (1974)는 명상적이고 제의적인 초기 작품의 특징을 예증하는 대표작이다. 긴 받침대 위로 모니터가 놓이고 그 앞쪽에는 청동 불상이 마주하고 있다. 모니터 뒤의 카메라가 부처를 정면으로 촬영하여 화면에 비추고, 부처는 화면 속 자신을 고요하게 바라본다. 이 설치 작품은 동양의 종교와 서양의 테크놀로지를 결합시킨 것으로 주목을 받았다. 석가가 명상을 통해 수행한 목적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개념인 공(空)이었지만, 모니터상의 카메라 영상은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육체를 반사하고 있다. 백남준의 예술적 공헌은 바로 동양 철학이나 한국 전통 사상을 서구 아방가르드 정신과 결합하여 현대 미술 언어로 조형화시켰다는 점이다. . 오경화(Oh Kyung-wha 吳景和). 1990. TV 16대, 비디오 & 컴퓨터 그래픽, 컬러, 사운드, 27분 4초. 작가 소장. 비디오 조각 1980년대 후반 이후 비디오 조각이 새로운 형식으로 부상했다. 탈평면, 탈장르, 혼합 매체, 테크놀로지 등에 대한 관심 속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된 비디오 조각은 199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초반에는 여러 개의 텔레비전 모니터를 쌓거나 중첩시키는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다가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물리적 움직임과 영상 속 움직이는 이미지를 결합한 키네틱 비디오 조각이 나타났다. 그중 김해민(Kim Hae-min 金海敏), 육태진(Yook Tae-jin 陸泰鎭) 등의 작가는 관념적이고 실존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박현기, 백남준과 동일한 맥락에 자리하고 있다. 김해민은 미디어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바탕으로 가상과 실재, 과거와 현재, 현존과 부재의 절묘한 경계를 연출해 온 작가이다. 그의 초기 대표작인 (1992/2002)는 망치가 화면을 내려칠 때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흔들리는 TV 모니터를 통해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육태진은 고가구 같은 오브제와 반복적인 행위를 담은 영상을 결합하여 비디오 조각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해 왔다. (1995)는 두 개의 서랍이 모터에 의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동작을 반복하는데, 서랍 속에 설치된 비디오 영상에는 등을 보이며 끊임없이 계단을 오르는 한 남자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는 흡사 시시포스(Sisyphus)처럼 영원히 어딘가를 올라야만 하는 인간, 그리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부조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을 느끼게 한다. 한국 무속이 지닌 엑스터시와 초자연적 소통의 의미가 첨단 매체인 비디오와 접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 육태진(陸泰鎭). 1995. 모니터 2대, VCR, 고가구. 85 × 61 × 66 ㎝ (WDH). 대전시립미술관 소장. 샤머니즘적 예술 사실 작가라는 존재는 연금술사이다. 하찮은 재료를 매만지고 서로 접목시켜 새로운 존재로 환생시킨다. 그들은 물질의 영혼을 꼼꼼히 읽어낼 줄 아는 샤먼이기도 하다. 그렇게 해서 돌이나 나무를 사람으로 변형시키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물질에 혼을 불어넣어 생명이 깃든 존재로 만들어 놓는다. 이는 인간 중심적 사고가 아니라 모든 만물을 인간과 대등한 존재로 여기는 태도에서 가능하다. 샤머니즘은 물활론적 세계관에 기초한다. 물활론은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생명체가 살아있다고 간주한다. 그리고 그 존재를 살려내는 힘을 신(神)이라 한다. 샤머니즘과 애니미즘은 죽음과 삶, 어둠과 빛으로 나뉘는 이원성의 분리와 경계를 지워버린다. 샤머니즘은 죽음의 세계와 소통하고 대화하고 왕래할 수 있게 한다. 예술 또한 샤머니즘처럼 죽음과 소통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여 주기 위해, 갈 수 없는 세계에 닿게 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술을 통해 가시적인 것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 무속이 지닌 엑스터시와 초자연적 소통의 의미가 첨단 매체인 비디오와 접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이 점은 한국 비디오 아트의 매력적인 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 사실을 이번 전시가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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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Review 2020 SPRING 253

한국 뮤지컬의 실험과 매력을 선사한 '빅 피쉬' 팀 버튼 감독의 영화가 원작인 뮤지컬 가 브로드웨이 초연 후 6년 만에 한국 무대에 올랐다. CJ ENM 공연사업본부가 제작한 한국판 는 한국 프로덕션만의 실험과 매력이 더해져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관객들의 마음에 따뜻한 감성의 긴 여운을 남겼다. 2019년 12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국내 초연된 뮤지컬 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무대와는 다른 한국 프로덕션만의 재미를 선사했다. 로네뜨(LORGNETTE) 제공 뮤지컬은 영화나 연극에 비해 상대적으로 입장권이 비싸다. 다소 부담스러운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낭패를 보지 않으려면 공연 관람 결정에 앞서 입소문이나 미디어의 평가, 평론가의 리뷰, 지인들의 추천을 고려하는 게 일반적이다. 왕년의 대중음악을 활용한 주크박스 뮤지컬이나 영화가 원작인 ‘무비컬’(‘Movie’와 ‘Musical’의 합성어)의 인기가 높은 이유도 일정 정도 완성도나 재미가 보증되기 때문이다. 영화 , , , 등은 흥행 뮤지컬들의 원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작품들은 세계 공연가의 중심지인 뉴욕 브로드웨이와 런던 웨스트 엔드 극장가에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관객들이 이런 작품을 좋아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영화로 알고 있던 익숙한 콘텐츠가 새로운 형식으로 탈바꿈하면서 색다른 재미가 구미를 당기기 때문이다. 무비컬은 영화 속 이야기를 평면의 스크린이 아닌 무대라는 입체 공간에서 다시 즐기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저작권을 가진 영화사 입장에서도 콘텐츠의 생명력을 되살려 부가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주인공 에드워드 블룸(박호산 Park Ho-san 朴浩山 분)이 아내 산드라(김지우 Kim Ji-woo 金智宇 분), 아들 윌(이창용 분)과 함께 행복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 이 뮤지컬은 늘 기상천외한 모험담을 늘어놓는 아버지 에드워드의 이야기를 허풍으로 여기고 불신하던 아들 윌이 아버지를 차츰 이해해 가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려낸다. 뮤지컬이 된 영화들 2019년 말 한국에서 초연된 뮤지컬 도 원작이 영화인 전형적인 ‘무비컬’이다. 영화 또한 팀 버튼 감독이 다니엘 월리스가 1998년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작품화한 것이다. 팀 버튼의 영화들은 유독 무대와 영상을 오가며 다양하게 변주되는데, 아마도 그것은 독특한 색감과 기발한 이미지, 기괴한 소재를 다루는 특성 때문일 것이다. 1990년 작 이 매튜 본에 의해 뮤지컬로 탈바꿈된 적이 있고, 2005년 작 도 마크 셔먼이 뮤지컬로 제작해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2019년 여름 브로드웨이에서 인기리에 막을 올린 뮤지컬 역시 팀 버튼의 1988년 개봉작이다. ‘팀 버튼스럽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가 만든 영화들에서는 다른 작품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특이함과 특별함이 존재한다. 도 그렇다. 과거와 현재, 상상을 오가는 스토리도 그렇거니와 감독의 개인사도 영화 속에 담겨 있다. 영화가 제작될 당시 팀 버튼은 아버지를 여의었다. 작품에 담긴 아버지에 대한 주인공의 페이소스나 아련한 그리움, 그리고 끝내 아버지의 허풍마저 인정하게 되는 코끝 시큰한 감성은 팀 버튼 감독의 개인적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후문이다. 가 뮤지컬로 만들어진 것은 영화가 제작된 지 10년 만인 2013년이다. 디즈니의 에 참여했던 작가 존 어거스트가 극본을 썼고, 뮤지컬 로 토니상 후보에 올랐던 앤드류 리파의 음악, 그리고 2000년대 들어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 아티스트 중 한 명인 수잔 스트로만의 연출과 안무가 더해졌다. 뮤지컬 는 시카고 오리엔탈 극장에서 트라이 아웃 공연을 거친 뒤 브로드웨이 닐 사이몬 극장에서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많은 ‘무비컬’들이 그러하듯 이 작품 역시 단순히 영상의 무대화에 만족하거나 머물지 않고, 영화의 원작이었던 동명 소설의 내용까지 아우르는 실험과 변화를 시도했다. 무대에서 보여 줄 수 있는 묘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도전이었다. 는 이후 2017년 호주 시드니와 영국 런던에서도 막을 올려 적잖은 인기를 끌었다. 는 다양한 오브제를 통해 소설과 영화에서 구현된 판타지를 무대 위에서 재현하는 비주얼적 재미도 남다르다. 요즘 한국의 몇몇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들에서 만날 수 있는 로컬화된 완성도와 예술성의 조화가 이 작품에서도 엿보인다. 에드워드(박호산 분)와 산드라(김지우 분)가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 한국판 는 화려한 볼거리와 더불어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에드워드 역할로 출연한 세 명의 배우 남경주, 박호산, 손준호가 모두 50여 년 세월을 넘나드는 원숙한 연기로 화제를 모았다. 한국 프로덕션만의 재미 2019년 12월 4일부터 2020년 2월 9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공연이 이어진 는 영미권의 무대와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 엔드 버전의 장점을 결합해 한국 프로덕션만의 재미를 배가시킨 것이다. 특히 처음 시도된 인형의 등장은 독특하고 특별한 볼거리였다. 한편 영화에서는 주인공인 에드워드 블룸 역을 젊은 배우 이완 맥그리거와 장년 배우 앨버트 피니 두 명이 나눠 연기했던 데 반해 뮤지컬에서는 한 배우가 50여 년의 세월을 넘나들며 다양한 연기 변신을 선보인다. 는 다양한 오브제를 통해 소설과 영화에서 구현된 판타지를 무대 위에서 재현하는 비주얼적 재미도 남다르다. 요즘 한국의 몇몇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들에서 만날 수 있는 로컬화된 완성도와 예술성의 조화가 이 작품에서도 엿보인다. 상상을 초월하는 판타지적 여정을 거쳐 주제가 격인 ‘Be the Hero’가 연주되는 순간 이 작품의 매력은 완성된다. 극장을 나설 때까지 한참이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만드는 따뜻함이 있다. 이 작품에서도 재확인된 배우들의 역량은 한국 뮤지컬 최고의 매력이자 자랑이다. 수십 년 세월을 뛰어넘는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 역은 30년 넘게 한국 뮤지컬 무대에서 정상을 지켜온 배우 남경주(Nam Kyung-joo 南京柱)와 작품마다 큰 폭의 변신에 성공하고 있는 박호산(Park Ho-san 朴浩山), 그리고 TV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과 친숙해진 손준호(Son Jun-ho 孫俊浩)가 트리플 캐스트로 무대를 꾸몄다. 이 세 명의 배우는 각자 서로 다른 개성과 매력을 발산해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이 외에도 관록 있는 배우들이나 차세대 유망주로 손꼽히는 배우들이 출연해 훌륭한 조합을 보여주는 한편 번역과 번안, 편곡과 음악, 무대 디자인과 영상 디자인 등에서도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스태프들이 참여했다. 연출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스캇 슈왈츠가 맡았다. 피날레의 압도적 무대 효과 ‘무비컬’을 단순히 흥행 영화를 활용한 재연이라고만 여겨서는 곤란하다. 원작 영화의 유명세에 기댄 것은 틀림없지만, 사실 무대에서 다시 재구성된 이야기는 영화와는 또 다른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변화는 2차원의 영상이 입체인 무대로 치환된다는 점이다. 킹콩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기어오르고, 아바타가 3D나 4D로 구현된다 하더라도, 무대의 실물을 눈으로 직접 보는 현장감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때로 원작 영화를 뛰어넘는 감동을 안겨주기도 한다. 가 영화와 차별화된 감동을 선사하며 뮤지컬만의 압권을 보여 주는 장면은 역시 피날레의 무대 풍경이다.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은 다른 공연장에 비해 무대의 백스테이지 공간이 깊은 장점이 있다. 이러한 구조적 매력을 십분 활용해 정말 ‘큰 물고기’가 되어 망망대해로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감동적으로 구현해 냈다. 이 작품 최고의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이 브로드웨이에서 첫선을 보일 당시 국내 기업 CJ ENM이 글로벌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해 화제가 된 바 있다. CJ ENM은 한국 창작 뮤지컬의 해외 진출 모색은 물론 , , , 를 비롯해 머지않아 막을 올릴 예정인 브로드웨이 신작 나 웨스트 엔드의 새 뮤지컬 등의 제작에 공동 참여해 한국 뮤지컬의 외연을 확장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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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Review 2019 WINTER 219

역사의 무게와 개인의 온기를 엮다 오페라 "1945"는 국립오페라단이 올해 3·1운동과 임시 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한∙일 간 오래된 갈등이 다시 도져 긴장이 감도는 현 상황을 감안하면 이 작품의 의미가 더욱 각별해진다. 민족 간 대립을 뛰어넘어 ‘인간다움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9월 말부터 10월 초 국립오페라단이 초연한 오페라 <1945>의 시대적 배경은 암울하지만, 연출가는 유머와 해학의 코드를 활용해 관객들에게 따뜻함을 선사했다. 2차 대전 직후 만주의 전재민 구제소에서 여인들이 떡을 만드는 장면이다. ⓒ 국립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의 "1945"는 올해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서울 예술의전당과 대구 오페라하우스에서 초연되었다. 이 오페라는 올 가을 국내 공연계 최고의 화제작으로 작품의 완성도가 매우 뛰어났다. 필자에게도 이제까지 보아 온 한국 창작 오페라 가운데 2006년 초연된 "천생연분" 이후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오페라는 2년 전 국립극단이 선보인 같은 제목의 연극이 원작이다. 배삼식(Pai Sam-shik 한자) 작가의 대본을 읽고 크게 감동받은 작곡가 최우정(Choi U-zong 崔宇晸)의 제안으로 오페라 제작이 시작되었다. 작품의 배경은 1945년 2차대전이 끝나고 한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직후 만주이다. 만주에 거주하고 있던 조선인들이 식민 치하에서 벗어나 자유를 되찾은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머물고 있는 전재민(戰災民) 구제소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삶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재현했다. 조선인 위안부 분이와 일본인 위안부 미즈코가 이 오페라의 주인공이다. 해방이 되자 분이는 미즈코에게 “조선인은 조선인대로 일본인은 일본인대로 각자의 길을 가자”고 말한다. 하지만 임신한 미즈코를 차마 외면하기 어려웠던 분이는 미즈코를 자신의 벙어리 동생이라고 속여 조선으로 데려가려 한다. 오페라는 이 두 인물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관객은 이를 통해 ‘악한 일본’과 ‘착한 조선’ 같은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관용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오페라가 관객의 마음 속에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삶의 비극성과 인간성을 면밀히 탐색한 주제 의식 때문만이 아니다. 우선 원작자가 대본을 직접 써서 이야기에 깊이가 있고 입체적이다. 또한 음악을 맡은 최우정은 당시에 유행했던 다양한 배경과 형식의 음악을 훌륭하게 재구성해 극적 몰입감을 높였다. 여기에 뛰어난 작품 해석과 무대에 대한 타고난 감각으로 널리 알려진 연출가 고선웅(Koh Sun-woong 한자)이 슬픈 장면마저 해학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신파적 한계에 갇히지 않고 공감대를 넓힐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섬세하면서도 선 굵은 연주를 들려주는 정치용(Chung Chi-yong 鄭致溶)이 지휘봉을 잡아 수준 높은 연주를 들려주었다. 왼쪽부터 작곡가 최우정, 지휘자 정치용, 연출가 고선웅, 극작가 배삼식. 오페라 "1945"는 탄탄한 대본, 유려한 음악, 수준 높은 연주, 뛰어난 연출이 조화를 이룸으로써 2019년 가을 시즌 국내 공연계 최고의 화제작이 되었다. 언어에 봉사하는 음악 대사는 단연 이 오페라에서 가장 돋보인 요소였다. 선율보다 대사의 내용에 중점을 둔 레치타티보(recitativo) 형식은 알반 베르크(Alban Maria Johannes Berg)의 "보체크"(Wozzeck)나 "룰루"(Lulu) 같은 20세기 오페라를 연상시켰으며, 자막 덕분에 가사가 더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었다. 이어 무조성과 조성을 적절히 배치시킨 음악이 극에 생동감을 부여했다. 최우정은 작곡을 시작할 때 “당시 어떤 노래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떻게 불렸을까”라는 질문에 천착했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는 고난의 시대였던 1930~1940년대를 “음악적으로는 보물창고 같았던 시대”라고 규정한 작곡가는 동요, 민요, 트로트, 창가, 군가 등 다양한 장르의 당시 음악들을 뒤적였다. 그래서 이 오페라에는 동요 "엄마야 누나야"의 선율과 1930년대 인기 트로트곡 "울리는 만주선", 당대의 재즈풍 음악, 그리고 당시 유행했던 창가와 군가의 선율이 다채롭게 등장한다. 그렇다고 단순한 패스티시(pastiche)는 아니었다. 그는 선택한 곡들을 당시 유성기로 반복해 들으면서 몇 개의 선율을 제외하고는 작품에 맞게 다시 가공했다. 그러기 위해 음계나 음 조직, 형식 같은 이론으로 접근하기보다 먼저 음악에 익숙해지는 편을 택했다. 이로써 익숙한 선율을 새로운 맥락에서 낯설게 들리도록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음악적 픽션’이 감정과 감성의 공감을 끌어내는 장치가 되었으며, 극적 몰입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이런 방식의 작업이 최우정에게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일찍이 바흐나 모차르트, 베토벤도 당시 사람들이 익숙하게 흥얼대는 노래들을 차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결국 이 오페라에서도 직접적인 인용과 곡 속에 스며들어 있는 간접적 당대성이 극의 현실감을 더욱 고조시키는 요소가 된 셈이다. 이미 절찬을 받았던 오페라 "달이 물로 걸어오듯"(2014년 초연)에서 철저하게 언어에 봉사하는 음악의 기능을 견지한 바 있는 최우정은 "1945"에서 더욱 스케일을 키워 음악이라는 그릇, 즉 오래되었으나 새로운 형식에 언어를 담았다. 작곡가의 더 깊어진 내공과 넉넉해진 세계가 보였다. 일본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구제소 사람들에게 핍박 받는 한국 여인이 구제소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이 오페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관용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몰입감 있는 구성 오페라 <1945>는 뼈아픈 역사라는 소재와 유머와 해학이라는 장치를 통해 관객들에게 긴장감과 여유를 동시에 안겨 주었다. 등장인물 모두가 기차놀이를 하며 부르는 노래 "울리는 만주선"은 무대와 관객 사이에 유대감을 고조시키며 자연스럽게 박수를 유도할 수 있었다. 또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조국의 개념이 희박한 어린 남매가 부르는 일본어 창가나 일본인 미즈코가 부르는 노래는 청아하기 그지없어 맑은 가을 하늘에 뜬 보름달처럼 뚜렷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한 등장인물이 가져온 북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동이나 여인들이 떡 만드는 장면은 당시 사람들이 처한 빈곤보다는 오히려 풍요의 이미지를 그려냈다. 아무리 가난과 방랑의 고통이 커도 꿈마저 앗아갈 수는 없다는 진실을 일깨워 준 장면이었다. 그런가 하면 미즈코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이 탄로나는 대목에서는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른다. 이렇듯 긴장과 해소가 반복되는 장면들의 적절한 배치가 자연스러운 극적 구성을 이루었다. 배삼식의 탄탄한 원작과 최우정의 무르익은 음악에 고선웅의 뛰어난 연출이 유연한 흐름을 만들어 낸 것이다. 4막에서 기차에 올라탄 사람들과 기차를 타지 못한 분이와 미즈코 사이를 가르며 막이 내려오는 장면은 국토의 분단을 예고하고 상징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특히 4막에서는 쿠프랭(François Couperin)의 음악을 인용해 자칫 진부해지기 쉬운 분위기를 환기시킨 점이 독특했다. 이어지는 에필로그, 눈 내리는 벌판을 배경으로 분이와 미즈코가 부르는 2중창은 텅 빈 충만을 보여 주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가슴에 남았다. 구제소 사람들을 조선에 데려다줄 기차가 도착하지만, 분이와 미즈코는 기차에 오르지 못한다. 분이는 같은 동포인 조선인들 대신 함께 고통을 겪었던 일본인 동료 미즈코를 선택한다. 긴장과 해소가 반복되는 장면들의 적절한 배치가 자연스러운 극적 구성을 이루었다. 배삼식의 탄탄한 원작과 최우정의 무르익은 음악에 고선웅의 뛰어난 연출이 유연한 흐름을 만들어낸 것이다. 출연진의 뛰어난 기량 오페라는 노래가 좋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이미 연극 무대에 올랐던 원작을 각색한 작품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분이 역을 맡은 소프라노 이명주(Lee Myung-joo 한자)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베토벤 "합창" 등 굵직한 무대에서 보여 주었던 가창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동안 뮤지컬 무대에서 실력을 검증 받아온 미즈코 역의 김순영(Kim Soon-young 한자) 역시 담담하게 일본 여인 역할을 잘 그려내었다. 분이에게 호감을 갖고 도와주는 오인호 역의 테너 이원종(Lee Won-jong 한자)이나 억척스럽지만 인간적 매력을 발산하는 박섭섭 역의 김향은(Kim Hyang-eun 한자)도 돋보인 출연자들이었다. 정치용이 지휘한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조성 음악과 무조성 음악 사이의 긴장을 시종 정교하게 유지하며, 한국적 가사의 서정성과 풍요로움을 잘 살린 연주를 선사했다. 2019년 하반기는 역사 인식의 차이로 인해 한일관계가 악화되고 일본 제품 불매 운동까지 일어난 불행한 시간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무대에 오른 오페라 "1945"는 두 나라 출신 위안부 여인들이 민족 간 갈등을 넘어 서로에게 인간애를 보여 주는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뜻깊은 무대였다. 요컨대 이 오페라는 역사의 무게와 개인의 온기가 갈마든 수작이었다. 다만 원작을 충실히 반영하려 하다 보니 각 막의 길이가 다소 길게 느껴졌다. 앞으로 적당한 러닝타임으로 압축해서 재공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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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Review 2019 AUTUMN 248

미술관에서 경험하는 춤 민머리와 화려한 의상으로 흔히 기억되는 현대무용가 안은미(Ahn Eun-me 安恩美)는 자신이 거둔 과거의 성취를 과시하듯 늘어놓지 않는다. 그의 데뷔 30주년을 기념하는 회고전 도 관객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을 연출해서 다양한 참여를 유도한다. 상당히 선동적인 이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6월 26일 개막해 9월 29일까지 계속된다. ‘21세기 무당’으로 알려진 현대 무용가 안은미는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격려하고 포옹하며 잠시나마 덩실덩실 춤추게 한다. 근엄한 얼굴로 현실을 비평하거나 어려운 이론을 바탕으로 미래를 진단하는 것 같은 일은 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에선 거의 언제나 화려한 색채와 생동감 있는 다채로운 표정이 넘쳐난다. 그의 무용 인생 30주년을 돌아 보는 전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기획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관습적 방식을 거부하고 미술관 한편에 자리를 요구했다. 모더니즘 시절의 현대 미술관들이 화이트 큐브를 표방했다면, 21세기의 주요 미술관들은 다원적 미술 공간이 되기를 희망하며 여러 실험을 시도해 왔다. 예컨대 뉴욕 모마미술관은 현대 무용을 적극적으로 포용해 왔다. 또한 오늘의 미술관이 시민들을 위한 자기 주도적 학습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전은 여러모로 시대정신에 부합한다. 마치 안은미의 페르소나처럼 전시장 초입에서 그의 의상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2016년 작 에서 입은 의상이다. 무대가 된 전시 공간 이 전시는 공간의 변이를 통해 사람들의 행동 프로토콜 변화를 유도한다. 전시장 입구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들을 맞는 것은 안은미의 주요 무대 의상들이다. 천장에 매달아 늘어뜨려 놓은 의상들은 시각적으로 무척 화려할 뿐 아니라 관객들은 이 의상들이 머리와 얼굴을 스칠 때 다양한 질감을 경험한다. 이곳을 지나면 2016년 작 에 사용된 의상이 안은미의 페르소나처럼 환영의 제스처를 취한다. 다시 비즈 커튼을 가르고 전진하면, 이번엔 그의 모습을 담은 풍선공이 바닥에 가득한 공간이 나타난다. 전시 소개 글과 영상, 주요 작품 이력, 그리고 작업 세계를 스스로 해설하는 에세이가 벽화와 함께 펼쳐진다. 여기까지가 이번 전시의 서막이다. 다음 공간으로 이동하면 키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는 은색 기둥들과 주요 작품을 다중 스크린으로 제시하는 우물들, 무지개색 커튼이 나타난다. 이번 전시의 진짜 핵심은 그 뒤에 펼쳐지는 낮고 드넓은 무대이다. 무대용 조명과 디스코볼, 원형 판으로 가득한 벽면과 의상 교체가 가능한 드레스룸, 사운드로 공간을 꽉 채우는 스피커들과 두 마리의 해태 조각상 등이 무대를 보좌한다. ‘이승/저승’이라 이름 붙인 이 공간에서 안은미는 퍼포먼스와 강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몸춤’ 프로그램에선 대중들을 위한 강의가 제공되고, ‘눈춤’ 시간엔 신작을 안무하고 리허설하는 장면을 보여 주고, ‘입춤’ 시간엔 강연과 토론이 이어진다. ‘몸춤’과 ‘입춤’은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사전 신청을 받아 진행하는데 참가비는 무료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과 설치미술가 양혜규(Yang Hae-gue 梁慧圭)의 강연도 눈에 띄지만, 관객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시간은 안은미의 몸 털기 레슨이다. 미술관의 문턱 낮은 무대 위에서 자신의 몸을 재발견하고 잘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일에 많은 관람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분위기다. 다양한 활동이 전개되는 ‘이승/저승’을 지난 관객은 커다란 전광판 2대를 통해 영상 작업을 보게 된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의 춤 동작에서 시작해 할머니들의 막춤에 이르기까지 구작과 신작이 다채롭게 교차 편집된 영상인데, 핵심은 안은미가 발견한 ‘춤의 보편성’에 있다. 걷기 시작한 아기들의 원초적 춤과 평생 노동으로 등이 굽고 다리가 휜 할머니들의 춤에는 공통점이 있다. 앞으로 숙이고 뻗는 노동의 움직임과는 다른 방향으로 근육과 관절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살기 위해 노동해야 하는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원초적 움직임을 통해 기쁨과 슬픔을 표출하는 자존의 행위— 춤의 본질은 바로 거기에 있다는 이야기다. 이 공간을 지나면 울긋불긋하고 물컹한 ‘안은미식 침대’가 나타나고, 그간의 의상 디자인 원안들과 공연 팸플릿 등을 무용 음악과 함께 보여 준다. 이전 공간들에서 풍선공을 발로 밀거나 차던 관객들은 이곳에선 침대에 누워 셀피를 찍거나 자료를 검색하며 시간을 보낸다. 안녕히 가시라는 메시지가 적힌 투명 커튼을 밀고 전시장을 나서면 곧 출간될 30주년 기념 아카이브 도록이 빙글빙글 돌며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이승/저승’이라는 이름의 낮고 드넓은 이 무대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핵심적인 공간으로 다양한 퍼포먼스와 강연 프로그램이 여기서 진행된다. 독자적 추상 어법 1988년 을 발표하며 독립 예술가로서 활동을 개시한 안은미는 서양 무용의 형식과 방법론을 추종하며 아름다운 몸짓을 강조하던 국내 무용계의 관행을 버리고, 비무용적인 ‘몸말’을 새롭게 도입했다. 그는 한국 전통 무용의 어법과 구미 현대 무용의 어법을 뒤섞는 일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국내에서 활동하던 데뷔 초기와 뉴욕에서 거주하며 활동하던 시기를 포함하는 1990년대에는 사회 현실에 기반을 둔 주제, 타 장르 예술가와의 협업, 원색과 사물의 적극적 사용, 시각 이미지로 구현한 무대 등을 통해 현상학적 현존을 넘어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무용 언어를 실험하고 개척했다. 이 시기를 짧게 정의하면 ‘포스트모더니즘의 한국화, 한국 춤의 포스트모던화’라고 할 수 있다. 대구시립무용단장으로 취임하며 대작을 발표했던 2000년대 초반에는 무용과 연극을 결합해 서사성의 회복을 추구한 피나 바우쉬(Pina Bausch)의 ‘탄츠테아터’를 범본 삼아 한국식 탄츠테아터의 영역을 개척했다. 하지만 한국식으로 ‘버내큘러 탄츠테아터(Vernacular Tanztheater)’를 시도하고 실현하는 단계에 안주하지 않았다. 2004년 피나 바우쉬 페스티벌에서 초연한 에서 안은미는 방법론적 도약을 이뤘다. 비무용적 몸동작들을 반복하고 변주하고 구축함으로써 그는 다시 한 번 현대 무용의 추상 세계로 전진했다.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세계에서 독자적으로 추상 어법을 만들어 낸 안무가는 윌리엄 포사이드(William Forsythe)와 안은미 정도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안은미의 다양한 작품을 편집한 영상이 두 개의 커다란 전광판에 비춰진다. 관객들은 ‘춤의 보편성’이 일관된 주제임을 느낄 수 있다. 관객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시간은 안은미의 몸 털기 레슨이다. 미술관의 문턱 낮은 무대 위에서 자신의 몸을 재발견하고 잘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일에 많은 관람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분위기다. 보편적 몸말의 탐색 2011년부터는 할머니·청소년·아저씨를 문화인류학적 탐구 대상으로 삼아 그들의 실재를 무대 위에 인용, 구현하는 실험에 도전했다. 에서 그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몸말을 수집하고, 또 실제 인물들을 무대 위에 올려서 조사 연구한 바를 바탕으로 안무한 작품과 병치·혼합시키는 방식을 취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그는 “무대용 작업을 25년 동안 해오면서 세상을 향해 뭔가를 토해내고 호소했다면, 이제 뭔가 그와 반대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에게 춤을 돌려주고 싶다’는 안은미의 꿈은 그로 하여금 다원성을 표방하는 미술관을 매체로 활용하도록 이끌었다. 21세기의 미술관이라는 새로운 조건 아래에서 그는 자신을 갱신하고, 무용수들을 갱신하고, 관람객을 갱신하려 든다. 이렇게 계속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는 미술관도 갱신되지 않을까. 6월 26일 서울시립미술관 1층 로비에서 펼쳐진 개막 공연을 관객들이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현대무용가 안은미의 데뷔 30주년을 기념하는 포스터에 사용된 스스로 삭발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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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Review 2019 SUMMER 216

콘크리트로 구현된 아름다운 유기체 디자인은 장소의 강렬함에서 시작되었다. 건축가는 독도와 함께 국토의 동쪽 끝을 지키고 있는 고요한 섬 울릉도에서는 별과 달, 해의 움직임, 끝이 휘어져 내리는 수평선처럼 자연 현상이 더 뚜렷하게 다가옴을 깨달았다.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이 우주와 지구의 자연 현상을 담는 천체 도구 같은 건물이었다. 김찬중의 화제작(Kim Chan-joong 金贊中) ‘힐링 스테이 코스모스 리조트’는 이렇게 태어났다. 울릉도는 동해안 포항에서 뱃길로 217km 거리에 있다. 이 섬의 북서쪽 바닷가 절벽 위에 건축가 김찬중의 화제작 ‘힐링 스테이 코스모스 리조트’가 자연 경관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 김용관(Kim Yong-kwan 金用官) 울릉도에 가기는 쉽지 않다. 서울에서 가자면 기차편과 배편을 합쳐 꼬박 7시간이 걸린다. 파도가 거세 배가 뜨지 않는 날도 많아, 1년 중 100일 정도는 배가 닿지 않는다. 그러나 울릉도의 빼어난 원시적 풍경은 사람들이 먼 길을 나서게 만든다. 긴 여정 끝에 섬에 다다르면, 선 굵은 바위산의 풍경에 압도되면서 시공간을 뛰어넘은 듯한 느낌마저 받는다. 울릉도 북서쪽 바닷가 절벽에 솟은 높이 430미터의 추산(錐山)은 그런 풍경의 정점을 찍는 곳이다. 바다와 산, 일출과 일몰, 달과 별의 흐름이 고스란히 느껴져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곳 추산 아래, 바다로 꺾어 지르는 절벽 위에 코스모스 리조트가 있다. 건축가 김찬중이 설계해 2018년 문을 연 이 리조트는 6개의 날개가 회오리처럼 감긴 풀빌라 형식의 ‘코스모스(Villa Kosmos)’와 5개의 볼트형 구조가 나란히 물결 치고 있는 펜션 형식의 ‘테레(Villa Terre)’, 2개의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국의 건축디자인 잡지 『월페이퍼』는 이 독특한 건축물을 ‘월페이퍼 디자인 어워드 2019’(Wallpaper Design Award 2019) 베스트 뉴 호텔(Best New Hotel) 부문에 선정했다. 풀빌라 형태의 코스모스 동 내부에서는 6미터 높이의 통창을 통해 각기 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 통창의 아치형 곡면은 추산의 형태를 따라 디자인되었다. 6개의 풍경 김찬중은 자연과 동화되는 건축물을 짓기 위해 천체의 움직임을 활용해 보자고 생각했고, 천문기상대 컴퓨터를 활용해 해와 달의 궤적을 파악했다. 그 궤적을 땅에 옮겨 놓고 보니 나선형 모양으로 수렴되었다. 여기에 추산, 하지 때 정확히 해가 떨어지는 바위, 항구와 숲의 풍경 등 주요한 6개의 방향을 거점으로 잡았다. 그렇게 6개의 풍경을 바라보는 날개가 하나의 원으로 수렴되면서 방향의 위계가 없는 원형 건물이 놓였고, 6개의 궤적이 이어진 형상이 만들어졌다. 이처럼 코스모스 동은 6개의 다른 풍경을 향하는 소용돌이다. 1층에는 공용의 응접실과 식당, 사우나가 있고, 중심의 원형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하나의 날개는 하나의 객실이 된다. 객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커브를 돌며 서서히 창이 드러나다가 방 끝에서 커다란 수직창을 통해 전망이 펼쳐진다. 수직의 아치형 곡면은 추산의 형태를 고스란히 담는다. 건물을 오브제로 인식하게 하기 위해 건축가는 건물의 주요 기계 장치를 노출시키지 않고 벽과 일체화시켰다. 하나의 유기체처럼 단일한 공간만을 경험하게 말이다. 조명이나 공조 시스템, 디퓨저와 같은 장치들은 설계 단계부터 건물에 매립된 형태로 디자인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많은 목업(mockup)을 진행해야 했다. 내부 천장의 타공을 통해 환기가 이루어지고 조명이 들어오면서 마치 살아 숨쉬는 동물의 피부처럼 건축물은 유려한 공간만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지붕이자 벽인 12cm 두께의 얇고 부드러운 곡면은 코스모스의 존재감을 무척이나 가볍고 섬세하게 만든다. 콘크리트가 이렇게 얇게 조형될 수 있었던 소재였던가. 이 리조트가 이처럼 섬세한 조형미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초고강도 콘크리트(Ultra-High Performance Concrete, UHPC) 소재를 활용한 때문이다. UHPC는 이곳에서 세계 최초로 현장 타설되어 구조체로 구축되었다. UHPC의 특징은 초고강도, 고밀도, 고내구성이다. 철근을 넣지 않고도 강섬유 보강을 통해 높은 강도를 확보할 수 있는 재료로 고강도라 아주 얇은 두께의 구조물도 만들 수 있다. 건축가는 주로 토목에서 시도되던 이 재료로 콘크리트의 새로운 텍토닉(Tektonik)을 시도하게 된다. 여섯 개의 날개가 회오리처럼 감긴 모양새의 코스모스 동은 지붕이자 벽면인 곡선의 두께가 불과 12cm이다. UHPC라는 특별한 소재가 얇고 섬세한 곡선 표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 김용관(Kim Yong-kwan 金用官) 희열과 고난의 도전 ‘새로운 소재’란 아직은 보편화되지 않았다는 뜻이며, 건축물에 적용하기에 충분한 구조 데이터가 쌓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 재료를 쓰는 모든 과정이 도전이고 실험이라는 말이다. UHPC를 사용하게 된 계기는 비슷한 시기 설계한 하나은행 ‘PLACE 1’ 때문이었다. 서울 삼성동에 자리하고 있는 PLACE1이나 코스모스, 두 건축물 모두 출발은 ‘보다 얇고 섬세한 건축물을 만들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세상에 없는 방식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목업과 엔지니어링 협의를 거쳐야 했다.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인 PLACE 1은 여러 지점을 통합하는 랜드마크형 건물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건축가는 4시면 문을 닫는 은행 공간에 변화를 주기 위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개방형 슬로우 코어(층별 문화공간)’를 만들었다. 동시에 건물의 외부를 둘러싼 테라스 공간을 만들고, 그 외피에 안과 밖으로 입체적인 곡면을 지닌 패널로 감싸는 안을 내놓았다. 앞으로 1m, 안으로 50cm가 들어간 이 입체적인 형태의 패널은 4m x 4m의 꽤 거대한 크기다. 패널을 기존 건물에 달아매기 위해 보다 날렵하고 가벼운 재료를 찾던 설계팀은 UHPC를 발견하고 환희에 찼다고 한다. 희열은 잠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지만 말이다. 문제는 UHPC를 거푸집에 타설해 입체적 형태의 성형을 시도한 선례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 말은 건축가가 거푸집의 제작, 탈형, 양중(erection) 등 패널의 형태를 만들어 달아매는 모든 과정을 이끌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건축가는 시공사를 비롯해 거푸집 제작팀, 구조설계사무소, UHPC 제작업체 등 모든 엔지니어링 팀과 함께 5번의 목업을 거친 후에야 UHPC 패널의 성형과 양중을 증명할 수 있었다. 6개월에 걸친 긴 시간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울릉도 코스모스에서는 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를 구조체로 쓰기로 했다. 얇고 섬세한 조형미를 실현시킬 방법으로 UHPC가 최적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는 이 UHPC 현장 타설에는 K-UHPC라는 고유의 브랜드를 만들어 낸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4만 5천여 장에 달하는 비정형 외장 패널을 제작해 낸 스틸라이프, 시공사인 코오롱글로벌(주)이 함께 했다. 건축가는 여러 차례의 목업을 통해 UHPC의 강도를 계산하고 거푸집의 압력을 측정하고 현장 타설을 검토하는 모든 과정을 이끌면서 이 디자인을 실현할 수 있는 거푸집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엔지니어 팀과 조율해 나갔다. 관건은 고밀도인 데다가 물처럼 흘러내리는 UHPC의 특성상, 타설할 때 거푸집에 엄청나게 가해지는 압력을 이겨낼 수 있는가였다. 자칫하면 거푸집이 터져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더구나 3차원 비정형 형태의 건축물을 시공하려면, 거푸집은 한 번에 구축해야만 했다. 건축물의 구조체에는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는 UHPC를 말이다. 타설이 이루어지는 2박 3일 동안 모두들 피를 말리듯 숨을 죽였다고 한다. 이처럼 코스모스가 실현되는 과정은 그 자체가 특별한 미션이었다. 코스모스 리조트가 이처럼 섬세한 조형미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초고강도 콘크리트(Ultra-High Performance Concrete, UHPC)라는 소재를 활용한 때문이다. UHPC는 이곳 코스모스에서 세계 최초로 현장 타설되어 구조체로 구축되었다. 김찬중은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는 실험적인 건축가로 알려져 있다. 그가 이끄는 건축사무소 ‘더 시스템 랩’(The System Lab)이 영국의 건축디자인 잡지 『월페이퍼』가 선정한 ‘Architects’ Directory 2016’에 포함되었다. © 김잔듸, design press 서울 삼성동에 있는 KEB 하나은행 플레이스원(PLACE 1)은 생김새 때문에 ‘문어 빨판’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천천히 회전하는 지름 2m의 원형 셀 178개가 건물의 입체감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 김용관(Kim Yong-kwan 金用官) 콘크리트의 텍토닉 보이는 것은 미려한 조형이지만, 건축가 김찬중과 그가 이끌고 있는 더시스템랩의 도면에는 언제나 시공 계획 보고서(Fabrication and Construction Planning)가 함께 한다. 이 보고서는 건축의 제작을 고려하고 이에 대한 합리적인 최적의 솔루션을 찾기 위한 것이다. 건축가는 미적인 탐닉이 아니라, 프로젝트에 적합한 구축 방식을 탐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을 사용한다. 김찬중이 ‘산업적 공예성’이라고 표현하는 이 방식은 기술과 재료의 혁신을 통해 감성적 공감을 이끌어 낸다.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에이드리언 포티(Adrian Forty) 교수는 『Concrete and Culture: A Material History』라는 책에서 “콘크리트는 물성이 아니라 프로세스다(Concrete is not a material but a process)”라는 요지의 말을 했다. 국제주의 양식을 가능하게 한 보편적인 재료가 콘크리트라면, 이제 우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축되는 콘크리트를 만나게 될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언제나 새로운 최적의 솔루션을 찾아 나서는 김찬중은 건축물의 설계뿐만 아니라, 제작의 프로세스를 디자인하는 시대의 최전선에 서 있는 건축가일 것이다. “UHPC는 우리가 인지해 왔던 콘크리트의 굳건하고 육중한 구축적 체계와는 감성적으로도 다르다. 소재와 구축적 관계의 적법함을 텍토닉이라고 한다면, 콘크리트의 텍토닉도 이제는 변할 때가 된 듯하다.” 재료를 발견하고 이를 시도하는 건축가의 시도는 언제나 새로운 감성의 장을 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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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Review 2019 SPRING 199

미래는 지금이다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의 기획전 은 기술의 발달이 인간, 특히 예술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예술이 기술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모색한다. 미래 사회의 상징으로 보이는 인공지능 로봇과 3D 프린터, 디지털 드로잉 작품들은 역설적이게도 사고하며 창조하고 경험하는 인간의 원초적 힘을 강조한다. (The Sealed Paradigm) 시리즈 (벽면), 김홍진, 2017년, 혼합재료 사출, 3D 프린터 제작(mixed media injection, 3D printer), 187 × 147 × 12 ㎝. (Objects on the Operating Table) (왼쪽), 김홍진, 2018년, 혼합재료 사출, 캐스팅(mixed media injection, casting), 180 × 150 × 180 ㎝. (A Spectator) (오른쪽), 김홍진, 2018년, 혼합재료 사출, 캐스팅(mixed media injection, casting), 130 × 130 × 180 ㎝. (A Process of Extinction) (바닥), 김홍진, 2018년, 혼합재료 사출, 캐스팅(mixed media injection, casting), 300 × 300 × 50 ㎝. “넌 사람이니?” 누운 채 매달려 있는 로봇의 귀에 대고 묻는다. “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 하지만 곧 사람이 될 수도 있어. 이렇게 노력 중이니 말이야.” 로봇이 입술을 들썩이며 답한다. 기괴한 외관이 주는 공포보다는 ‘인간이 뭐라고 저렇게 노력 중일까’ 하는 안쓰러움이 밀려온다. 다시 말했다. “나를 봐.” 로봇이 큰 눈동자를 내 쪽으로 한 번 돌리더니, “당신은 왜 여기 혼자 왔어?” 하고 되려 묻는다. 가이아의 두뇌 속에 있는 안드로이드는 관람객이 말을 걸면 작가의 홈페이지 서버와 통신해 답을 찾은 뒤 음성으로 송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했다. 질문과 대답은 수시로 업데이트되며 점차 내용이 다양해진다. 노진아(Roh Jin-ah 盧眞娥)의 (An Evolving GAIA)는 인간과 기계가 서로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진화하게 됐을 때 둘은 어떻게 교감하며 어떤 미래를 공유하게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 경상남도 김해시 소재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서 3월 24일까지 열리고 있는 기획전 의 화두는 ‘미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인간의 노동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는 불안은 예술가들도 느끼고 있다. 이 전시회는 예술이 과학과 결합해 어떤 양상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 기술의 급속한 발전 속에서 예술이 어떻게 고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등 예술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보인다. 이 전시에서는 문명의 종말을 예견하는 비관, 과학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편리한 삶에 대한 낙관, 그리고 지구 너머로 향하는 상상력까지 다채롭게 엿볼 수 있다. , 노진아, 2017년, 레진, 나무, 인터렉티브 시스템(resin, wood, interactive system), 가변 크기(variable installation) 길이 약 4.5 m㎝. 비관, 낙관, 그리고 상상력 흰색과 금색으로 똑같이 찍어 낸 수십 개의 로봇들이 컨베이어 벨트 위에 대열을 갖추고 서 있다. 바로 옆 송전탑 모양 좌대 위에 선 대형 태권브이는 뱃살을 미처 감추지 못했다. 신이철(Shin Yi-chul 申彛澈)의 (Robot Taekwon Boy)다. 어린 시절 열광하며 보던 만화의 주인공 로봇은 이제 꿈과 상상 속에서 나와 대화 가능한 친구, 애완견 같은 반려동물, 요리사와 안내원 같은 모습으로 현실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게 됐다. 김홍진(Kim Hong-jin 金弘震)의 (The Sealed Paradigm) 시리즈에는 3D 프린터를 이용해 똑같이 찍어 낸 개미 모형들이 전시장 바닥과 벽면에 그득하다. 작가는 개별적 정체성을 주장하기 어려운 현대 사회 속 개개인이 3D 프린터로 만들어진 이 개미들과 뭐가 다르냐고 묻는 듯 하다. 벽면 액자에는 각각 씨앗ㆍ쌀ㆍ보리ㆍ나뭇가지ㆍ밀 따위를 깔고 그 위를 개미 모형으로 덮었다. 이런 재료들의 배합은 아마도 생존의 패러다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어지는 방에 전시된 심준섭(Sim Jun-seub)의 설치 작품 (Circulation of Organ)은 벽면에 구불구불하게 붙인 파이프가 마치 사람의 신체 내부를 연상시킨다. 관람객이 들어서면 암전된 실내에서 파이프들이 형광색으로 빛을 발하며,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여기저기 구멍에서 소리를 낸다. 관람객이 참여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인 셈이다. 사운드 아트를 선보이고 있는 작가는 소리를 시각화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소리가 공간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 신이철, 2017년, 백자토, 금박, 슬립캐스팅, 가변설치(white porcelain, gold leaf, slip casting, variable installation) 48 × 30 × 11 ㎝(로봇 1피스 크기, 총 80피스). , 신이철, 2016년, 알루미늄, 알루미늄캐스팅, 우레탄 도장, 220 × 100 × 50 cm. 여전히 유효한 자연의 생명력 2층 전시장에서는 협업의 산물들을 볼 수 있다. 입구 선반엔 각종 식물들이 죽 놓여 있고, 가운데엔 해저 생물을 닮은 추상화가 설치돼 있다. 천에 과슈로 번지게 그린 이 그림들은 관람객이 앞뒷면을 다 볼 수 있도록 벽면과 분리된 위치에 설치되어 있다. 이 작품의 백미는 이 그림들이 벽에 그리는 그림자다. 손이나 머리카락, 꽃을 닮았으되 뭐라고 똑 떨어지게 정의할 수 없는 형태들이 그저 선과 색의 아름다움만으로 전시장 벽면에 투영된다. “다양한 감각을 통해 사람들에게 식물의 경이로운 생명성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는 김지수(Kim Jee-soo 金志修)의 시리즈다. 전시장 한가운데 설치된 하얀 돔엔 누구나 직접 들어가 누울 수 있다. 예술가와 화학자와 설치 기술자의 협업으로 꾸며진 이 공간의 마지막 작품이다. 김지수와 김선명(Kim Seon-myong 金善明)이 함께 작업한 (Petrichor)는 식물이 발아하는 과정에서 분출되는 기름이 비와 함께 주변 자연물 속에 녹아들어 나는 냄새를 뜻한다. 식물은 움직이지도 반응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편견에 맞서는 작품이다. 냄새로 소통하는 식물은 그 어떤 존재보다 활발하게 변화하고 움직일 수 있는 생명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돔 바닥엔 이끼가 깔려 있고, 관람객들은 그 위 해먹에 편안한 자세로 누워 천장의 드로잉을 감상할 수 있다. 돔 안에는 들어오는 사람의 움직임에 반응해 향이 분사되는데, 작가가 여러 가지 식물에서 직접 채집해 조향했다. 관람객이 직접 몸으로 공간을 체험할 수 있는 설치 작품이 또 한 점 있다. 이정윤(Lee Jungyoon 李姃潤), 오신욱(Oh Sin-wook 吳信旭), 안재철(Ahn Jae-cheol 安宰徹) 세 작가의 협업의 결과인 (Human & Space and Passage)는 바람이 부는 긴 터널이다. 어른 키를 넘는 높이의 터널을 직접 걸어 통과하게 돼 있는데, 반투명한 흰 천으로 만든 이 터널을 통과하는 사람은 터널 속 빛과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고, 밖에 있는 사람은 그 모습을 일렁이는 그림자로 볼 수 있다. (Outside of BORA: See or Purple), 김지수, 2014년, 과슈, 천 위에 콜라주(gouache, collage on fabric), 216 × 118 ㎝. , 이정윤, 오신욱, 안재철, 2018년, 공기조형물, 실시간 카메라, LED 조명(air molding, real-time camera, LED lighting), 20 × 10 × 20 m 내 가변설치(variable installation in an area of this size) 미래를 생각하는 예술 사람의 피부를 연상시키는 매끈한 도자기 표면에 아날로그 방식으로 문신을 그려오던 작가 김준(Kim Joon 金埈)은 게임 회사에서 배운 3D MAX 프로그램을 통해 한층 다양해진 변주를 보여 준다. 그의 디지털 드로잉은 깨지기 쉬운 도자기의 질감으로 내부 기관 없이 껍데기만 존재하는 신체의 모습을 담아냈다. 나 과 같은 옛날 영화들의 명장면을 그려 과학 기술이 지배하는 시대에 추억으로 각인된 낭만을 새겼다. 미술관 입구의 나무 인형은 강지호(Kang Ji-ho 姜智淏)의 작품으로 전시장 연출을 위해 사용했던 폐목들로 만들었다. 작가는 이 인형을 ‘잭’이라 이름 붙이고, 잭이 하고 싶은 일들을 적은 버킷리스트도 만들었다. 이에 따라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으로 늦은 휴가를 다녀왔던 잭은 지금은 미술관 앞에 앉아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 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지속가능성을 화두로 예술의 재생 가능성을 모색한, 이 전시의 가슴 따뜻한 에필로그이다. 리들리 스콧의 1982년 작 가 그린 미래가 바로 2019년이다. 영화 속에선 인간과 복제 인간이 쉽사리 구분되지 않아 복제 인간조차 자신을 인간으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런가 하면 오토모 가츠히로의 1988년 작 는 핵전쟁으로 초토화된 후 31년이 지난 2019년의 네오도쿄를 배경으로 한다. 1988년에 상상한 2019년에서는 여전히 주크박스에서 CD가 돌아가고 공중전화로 통화를 하지만, 2020년 도쿄올림픽을 위해 건설 중인 경기장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점은 이채롭다. 도쿄 올림픽 유치가 2013년에야 확정됐으니 1988년 당시의 상상이 실제와 꼭 맞아떨어졌다. 이처럼 영화가 그렸던 미래가 현재로 다가왔다. 같은 점도, 다른 점도 있다. 다만 변하지 않는 것은 “인간은 필멸이나 그 인간이 만든 예술은 불멸”이라는 점이다. 오직 한 점이라는 고유함을 간직한 채 인간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 예술의 상상력은 인간 이후의 예술, 예술의 미래로 이어진다.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이 낙관이냐 비관이냐는 개인의 선택일 수도 있으나, 기계화가 속도를 낼수록 역설적으로 원형에 담긴 손 기술과 창의력의 가치는 높아질 것이다. , 강지호, 2018년, 나무에 아크릴 채색, 200 × 200 × 250 ㎝. 인간 이후의 예술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는 건물 안팎에서 대사 없는 7개 채널의 설치 영상이 상영됐다. 배우 임수정이 세계가 멸망한 이후의 인간을 연기했다. 공상과학 영화를 닮은 이 10분 30초짜리 영상에서 그녀는 물에 잠긴 베니스에 부표처럼 떠다니는 한국관 건물에 살아남은 마지막 인간의 모습 — 무언가를 끊임없이 채집하고 분류하는 예술가와 과학자의 역할을 상징하는 — 을 보여 줬다. (The Ways of Folding Space & Flying)이라는 알쏭달쏭한 제목은 물리적 법칙을 넘어선다는 의미로,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에 질문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기술의 발달은 분명 예술 생태계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인간의 노동이 사라지는 미래는 이미 전시장에도 존재하고 있다. 설치의 방법적 측면뿐 아니라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과 초연결사회라는 새로운 개념들도 작품 속에 등장했다.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이 낙관이냐 비관이냐는 개인의 선택일 수도 있으나, 기계화가 속도를 낼수록 역설적으로 원형에 담긴 손 기술과 창의력의 가치는 높아질 것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연령은 대부분 40~50대 이상으로 소위‘구세대’에 편입되어 가는 중이다. 어떤 작품들은 새롭게 다가왔으나, 몇몇 작품의 상상력은 이미 과거가 된 미래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김해와 인근 지역에서 온 어린이 관객들로 북적이는 주말의 미술관을 돌아나오며, 그 아이들이 생각하고 만들어 나갈 미래가 더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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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Review 2018 WINTER 280

윤형근 회고전: 침묵과 숭고의 추상 풍경 단색화의 거장 윤형근(Yoon Hyong-keun 尹亨根, 1928~2007)의 회고전이 8월 4일부터 12월 1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에는 “한국의 전통 미학을 현대적 회화 언어로 풀어냈다”고 평가받는 작품 다수를 비롯해 작가의 개인사를 살펴볼 수 있는 방대한 자료까지 공개됐다. , 1980, 마포에 유채, 181.6 × 228.3 ㎝. 윤형근이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을 듣고 그린 그림이다. “독재 권력에 항거하는 민중들이 서로에게 기댄 채 피 흘리며 쓰러져 가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일반에 최초로 공개된 작품이다. ⓒ 국립현대미술관 어릴 때 부모님 손을 잡고 미술관에 가면 한두 가지 무채색만으로 된 아리송한 추상화가 가장 재미없었다. 혹여 제목을 보면 이해가 될까 싶었지만, 아니면 이어서 실망하다 못해 화가 났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그림들은 한국 모던아트의 주류 사조이며, 최근 몇 년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단색화’였다. 그 그림들 가운데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 윤형근의 연작 중 하나였다. 그것은 마치 황혼의 시간 서쪽을 향해 또는 여명의 시간 동쪽을 향해, 어스름한 빛을 받으며 우뚝 솟아 있는 절벽들의 검은 실루엣 같았다. 수묵 산수화 같기도 하고 서양 추상화 같기도 해서 묘했다. 그 먹빛의 절벽들은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을 것만 같았다. 최후의 또는 최초의 빛으로 가득 찬 그 여백은 절벽 너머로 탁 트여, 무한과 영원으로 펼쳐질 것 같았다. 보고 있으면 경외감과 함께 마음이 커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느낌은 “무한성은 인간의 마음을 기분 좋은 두려움으로 채우곤 하는데, 이것이 숭고의 가장 진실한 체험이다”라고 말한 영국의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의 말처럼 바로 ‘숭고’의 감정이 아니었나 싶다. 심오하고 크고 아득한 먹색 국립현대미술관의 윤형근 회고전을 보며 문득 어릴 때 그 느낌이 되살아났다. 이 전시를 기획한 김인혜(Kim In-hye 金仁惠) 학예연구사와 이야기하며 몇 가지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황혼이나 여명 같은 배경색은 젯소를 칠하지 않은 캔버스 본연의 색깔로, 작가는 그것 자체로 완벽한 색깔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1973년 무렵부터 윤형근이 엄버와 블루를 섞어 만든 먹색만으로 작업한 것은 그가 엄버는 땅의 색, 블루는 하늘의 색이라는 생각으로 천지를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이었으며, 마치 수묵화 같은 번짐 효과가 나는 이유는 엄버-블루 안료에 테레핀유와 린시드유를 많이 섞어 희석시켰기 때문이라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윤형근은 1977년 1월 어느 날의 일기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내 그림 명제를 천지문(天地門)이라고 해 본다. 블루는 하늘이요, 엄버는 땅의 빛깔이다. 그래서 천지라 했고, (내 그림의) 구성은 문(門)이다.” 천지가 문으로 열리니, 천지개벽의 순간일까? 하늘과 땅이 서로 갈라져 열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이 섞인 채로 둘로 갈라지고,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오니 참 오묘하다(난 언제나 바탕이 그냥 여백이 아니라 빛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술사학자 김현숙(金炫淑)은 하늘의 색 블루와 땅의 색 엄버를 섞어 만든 윤형근의 먹색이 옛 동아시아 철학에서 우주를 표현하는 단어인 ‘현(玄)’의 구현이라고 했다. 현은 심오하고 크고 아득하다는 뜻이며, 붉은색을 품은 검은색을 가리키기도 한다. 장인이자 스승이었던 김환기 화백이 작고한 1974년, 윤형근이 자신의 신촌 아뜰리에에서 찍은 사진이다. 벽에 자신의 새로운 작품 과 김환기의 대표작 가 나란히 걸려 있다. 스승을 넘어서 윤형근이 엄버-블루만을 쓰게 된 데에는 다른 이유들도 있다. 그는 김환기라는 거장의 제자이자 사위로서 평생 김환기를 존경했다. 그러나 그는 김환기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미술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의 제1세대 추상 화가인 김환기는 서구 추상화뿐만 아니라 한국 문인화와 전통 공예품에서 영감을 받아 산, 구름, 달, 달항아리, 매화 등 동아시아적 모티프를 반구상 및 반추상으로 나타냈다. 그러다가 1963년 뉴욕에 정착한 뒤 완전추상으로 전환해서, 거대한 화폭을 무수한 점들로 채워 별이 총총한 무한한 은하 같은 느낌을 주는 전면점화를 꽃피웠다. 윤형근의 초기 습작들을 보면 확실히 김환기의 영향이 많이 보이는데, 김환기의 홀마크 컬러인 푸른색을 사용한 드로잉을 보면 특히 그렇다. 그러다가 윤형근은 1974년 10월 상징적인 사진을 하나 찍었다. 자신의 새로운 작품 와 김환기의 전면점화 대표작인 를 나란히 걸어 놓고 그 앞에서 결연히 선 자세로 포즈를 취했던 것이다. 김인혜 학예연구사는 이 사진이야말로 “김환기에서의 출발과 김환기로부터의 결별을 동시에 선언하는 윤형근의 야심 찬 기록”이라고 말했다. 윤형근은 1977년 일기에서 “잔소리는 싹 뺀 외마디 소리를 그린다. 화폭 양쪽에 굵은 막대기처럼 죽 내려 긋는다”라고 자신의 연작을 설명한 바 있다. 또한 김환기의 그림에 대해서는 그를 여전히 존경하면서도 “김환기의 그림은 잔소리가 많고 하늘에서 노는 그림”이라고 평가했다. 정확하고 절묘한 표현이다. 두 사람의 그림이 모두 우주적인데도 불구하고 김환기의 푸른 전면점화는 조화로운 코스모스를 연상시키며 시적 서정이 흐르는 반면에, 윤형근의 그림은 하늘과 땅이 섞여 있는 태초의 카오스를 연상시키며 엄혹한 느낌을 준다. 또한 색채 톤으로 볼 때도 김환기의 그림은 하늘로 비상해 유영하는 반면에 윤형근의 그림은 언제나 땅과 흙을 밟고 있다. 윤형근은 1990년 도쿄 우에다 갤러리(Gallery Ueda)에서 열린 개인전의 작가 노트에 이렇게 썼다. “지상의 모든 것이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시간의 문제이다. 나와 나의 그림도 그렇게 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모든 것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의 그림에 나타나는 검은색은 하늘의 색과 땅의 색이 섞인 것일 뿐만 아니라 그 땅에 뿌리를 박은 나무가 불탄 색이며, 이 땅의 부조리에 발목이 잡혀 하늘로 비상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내면이 시커멓게 탄 색이기도 했다. 연이은 정치적 박해 윤형근의 발은 왜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을까. 그것은 그의 개인사와 관련이 있다. 그의 그림에 나타나는 검은색은 하늘의 색과 땅의 색이 섞인 것일 뿐만 아니라 그 땅에 뿌리를 박은 나무가 불탄 색이며, 이 땅의 부조리에 발목이 잡혀 하늘로 비상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내면이 시커멓게 탄 색이기도 했다. 그는 1990년 7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서까래가 불탄 빛깔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은 초목이 썩은 빛깔보다 더 검다. 아마 사람이 속을 태우면 그 불탄 서까래 빛깔처럼 되지 않을까 싶다.”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윤형근은 1950년 한국전쟁 중 좌익으로 몰려 총살 직전까지 갔다가 간신히 탈출했으며, 이후에도 정치적인 이유로 여러 번 체포됐다. 마지막 체포는 그의 작품 세계를 바꾼 결정적 계기였다. 1973년 자신이 10여 년간 교사로 근무해 온 숙명여고에서 한 학생의 부정 입학 사실을 지적했다가 황당하게도 반공법으로 투옥된 것이다. 그 학생이 중앙정보부장에게 자금을 대던 재벌의 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를 반공법에 얽어 넣은 죄목도 엉뚱했는데, 그가 쓴 모자가 “레닌 모자를 닮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뉴욕에서 보내온 사진 속 김환기의 모자가 마음에 들어 자신이 직접 재봉틀로 그와 비슷한 모자를 만들어 썼을 뿐인데, 그것이 ‘빨갱이’ 구실이 될 줄 꿈에나 생각했을까. 결국 그는 구금 한 달여 만에 사직서에 사인하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1973년부터 내 그림이 확 달라진 것은 서대문교도소에서 나와 홧김에 한 것이 계기였지. 그 전에는 색을 썼었는데 색채가 싫어졌고 화려한 것이 싫어 그림이 검어진 것이지. 욕을 하면서 독기를 뿜어낸 것이지.” , 1976~1977, 면포에 유채, 162.3 × 130.6 ㎝. 윤형근이 교사직을 그만두고 작품 제작에만 몰두하던 시기에 그린 그림이다. 그는 당시 작품들에 ‘천지문(天地門)’이라는 명제를 붙였다. , 1972, 한지에 유채, 49 × 33 ㎝. 윤형근의 초기 드로잉 중 하나로 한지 위에 물감의 농도와 번짐 효과를 실험한 작품이다. 이때까지 그는 밝은 색채를 사용했지만, 이후 이러한 색채들이 사라지게 된다. 윤형근은 훗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런 개인사를 알지 못하고 윤형근의 연작을 봐서는 그 같은 작가의 속내를 짐작하기 힘들다. 많은 것들을 품고 있지만 침묵하는 그림이며 “잔소리는 싹 뺀 외마디 소리”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인생사와 관련된 또 하나의 독특한 작품이 하나 있다. 그가 1980년 6월에 그린 가 그것이다. 및 시리즈에서 언제나 먹빛의 붓획은 반듯한 직사각형에 가깝고 수직으로 서 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는 넓은 붓획들이 무너지듯 사선으로 기울어져 있고, 거기에서 가는 물감 줄기들이 수없이 흘러내린다. 마치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사람들의 모습 같다. 광주민주화항쟁의 학살 소식을 듣고 그린 그림이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겪었던 비민주적인 정치적 박해가 아직도 끝나지 않고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에 차서 일필휘지했다고 한다. 흔히 1970~80년대의 단색화가 비판받는 이유는 당시 정치 사회 현실에 무관심했다는 것인데, 적어도 윤형근의 경우 그 이유로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지난해 유족으로부터 구입해 소장한 것으로, 이번 전시에서 처음 대중에 공개된 것이라고 한다. 무형의 무한으로 그렇다고 해서 윤형근의 전반적인 작품에서 검은색이 분노와 독기만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는 일기에서 “나무는 그 무서운 풍우상설(風雨霜雪) 혹한 속에서 견디어 내며 생명을 유지하고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고 묵묵히 침묵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또한 그런 나무가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그렇게 흙으로 돌아간 나무를 닮은 윤형근의 엄버-블루 검은 색면은 침묵이자 동시에 버티는 행위이며, 생명이자 죽음을 상징한다. 미술평론가 이일(李逸)의 말대로 “형태 지을 수 없는 원초적인 실재”인 것이다. 또 다른 평론가 오광수(吳光洙)도 그의 그림을 ‘추상 풍경’이라고 부르며, “극히 단순하면서도 더없이 풍부한 산수의 경지”이자 “그려진 것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스스로 생성된 현전으로서의 자연”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미국 미술사학자 로버트 로젠블럼이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묘사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로스코의 색면 추상이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풍경화처럼 관람자를 숭고한 풍경 앞으로 데려다 놓되, 프리드리히처럼 자연 풍경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로스코의 색면 자체가 보는 이의 정신을 ‘무형의 무한으로’ 인도하는 숭고한 풍경이 된다고 했다. 많은 이들이 로스코의 그림을 보고 감정이 북받쳐 오르며 눈물을 흘린다. 추상이면서 풍경인 윤형근의 그림 또한 나의 마음에 고통과 환희를 동시에 주며 내 정신을 무형의 무한으로 인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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