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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isine

서울의 닭요리, 닭한마리

K-uisine 2024 AUTUMN

서울의 닭요리, 닭한마리 닭한마리는 서울에서 생겨난 요리다. 1960년대 이후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투박한 양푼 냄비 안의 닭한마리는 맛과 재미로도 훌륭한 음식인 동시에 대도시 서울의 성장기에 시민들이 거친 노동을 견뎌야 했던 용광로 같은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닭한마리는 이름 그대로 닭 한 마리를 다른 재료들과 함께 냄비에 넣고 끓인 뒤 양념을 찍어 먹는 서울 요리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김치찌개, 소고기 잡채, 떡볶이처럼 한국의 요리는 대개 재료+조리법(또는 특별한 양념 이름)의 순서로 명명된다. 그런데 닭한마리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처음 수학을 배우기 시작할 때 수를 세던 방식에 머물러 있다. 그냥 ‘닭 한 마리’이다. 당신이 세 마리를 먹고 싶어 가게 직원에게 “닭 세 마리요!”라고 하면 식당 직원은 아마 당황할 것이다. 그럴 때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닭한마리 세 개요!”. 닭한마리가 갖는 의미 이렇게 단순하고 직선적인 이름이 붙은 과정이나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그렇게 지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음식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일단, 닭한마리라는 요리가 생겨날 당시 닭은 귀중한 음식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당시에는 더 비쌌다. 비싼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먹는다니! 그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놀라운 축복이었다. 마치 미국인들이 칠면조 한 마리를 놓고 추수감사절을 보내는 것이 깊은 의미를 담고 있듯이 말이다. “닭을 통째로 먹는다고?’” 그 이름만으로도 손님들은 흥분했다. 이 요리가 퍼져 나갈 무렵, 한국의 양계산업은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식용을 위한 닭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닭을 한 마리나! 제공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특히 한국인은 어떤 음식을 통째로 놓고 먹거나 제사상에 올려야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 그런 전통이 닭한마리의 성공 요인에 투영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한국인은 프라이드치킨을 ‘통닭’이라고 부르는 문화가 있다. 만약에 그 닭이 조각조각 나뉘어 튀겨졌다고 해도 말이다. ‘통’은 원만하고 많은 것, 완벽한 것, 100퍼센트라는 의미가 있다. 더 좋은 대접, 만족감을 의미한다. 닭한마리라는 명명도 그런 의미를 같이 담고 있다. 닭 한 마리는 닭 반 마리의 두 배가 아니라 완전체를 상징한다. 서울의 역사가 담긴 맛 의류 상가가 즐비한 서울 동대문 뒷골목에는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30년 이상 된 닭한마리 골목이 있다. 이 골목에 간다면, 골목의 역사에 대해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본래 이 골목은 시장의 일부다. 서울은 조선시대에 수도가 되었는데, 광화문 앞에 정부에서 운영하는 시장이 있었다. 또한 지금의 닭한마리 골목 주변은 서울의 서민적인 동네로 번성했고, 시장이 생겨났는데 한국전쟁 이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큰 시장으로 확장되었다. 동대문시장, 광장시장, 평화시장 등 서울의 주요한 시장이 자리 잡았다. 이 시장이 닭한마리의 인기에 큰 몫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시장은 시민들이 장을 보는 곳인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일터이기도 하다. 의류 제조 종사자들은 저렴하게 한 끼 식사를 해결하거나 일 끝난 후 소주 한잔을 나눌 수 있는 술집을 찾게 되었다. 저렴한 가격, 충분한 양, 맛있는 음식, 여기에 ‘고기’가 들어간다면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음식의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닭백숙을 팔던 집에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칼국수와 떡, 야채 등의 사리를 제공하면서 닭 한 마리를 ‘풀 서비스로’ 즐길 수 있게 완성되었다는 설, 다른 하나는 닭칼국수를 팔던 집에서 저녁 술안주로 닭백숙을 제공하면서 자연스럽게 특별한 양념을 내어놓은 것이 지금과 같은 형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설이다. 동대문 뒷골목 닭한마리 골목. 과거 시장 닭한마리를 먹기 위해 상인들과 직장인들이 모여들던 골목에는 최근 외국인도 모여들며 한국의 맛과 문화를 즐기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1970년부터 1980년대를 거치면서 서울에는 시장의 상인들, 노동자들 외에 이른바 화이트칼라 노동자들도 늘어났다. 그들은 낮엔 열심히 일하고 저녁에는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면서 피로를 풀었다. 서울의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서 다니는 것은 당시의 새로운 문화였다. 그들은 저렴하면서 맛있는 술집을 넘어서는 어떤 재미를 갈구했는데, 닭한마리는 그런 니즈에 완벽한 메뉴나 다름없었다. 백숙이나 삼계탕처럼 닭을 삶아서 다른 그릇에 내는 게 아니라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찌그러진 양푼 냄비에 닭이 통째로 들어가고, 각자 입맛에 맞게 만든 양념에 닭고기를 찍어 먹으며 소주 한 잔 기울이는 행위는 색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점차 닭한마리 골목엔 직장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몰려드는 사람들을 다 수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눈치 빠른 상인들은 서울의 다른 지역에도 닭한마리 가게를 열기 시작했다. 사실 이 음식을 잘 모르는 한국인도 상당히 많다. 집에서는 거의 먹지 않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활동을 해보지 않은 어린이나 학생들, 혹은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세월을 보낸 여자 노인들은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다. 닭한마리 자체가 집밥의 카테고리에 속한 적이 없으며, 음식이 담겨 나오는 그릇도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육수나 양념장이 그 맛을 좌우하기 때문에 대체로 잘하는 가게에서 먹어야 맛있다는 인식이 강했으며, 드럼통 식탁에 빙 둘러앉아 팔팔 끓여가며 먹는 특유의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또 사회생활을 하는 임금 노동자들이 먹기 시작한 요리라는 점도 한몫했다. 필자의 어머니는 서울에서 오랫동안 가족을 부양하고 80세가 넘었는데, 이 요리의 이름조차 모른다. 이 원고를 쓰면서 혹시 이름을 들어보았냐 물었더니 엉뚱한 대답만 돌아왔다. “왜 닭 한 마리를 굳이 돈 주고 가서 먹는다는 것이야? 그리고 두 마리를 먹으면 안돼?” 냄비에 담긴 즐거움 각종 채소와 집마다 비밀 레시피를 넣어 끓인 육수를 양푼 냄비에 담은 다음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넣는다. 닭은 어느 정도 익어 나오지만 떡, 대파, 감자, 버섯 등의 사리가 익을 때까지 펄펄 끓여야 한다. 닭에 알맞은 간이 배고 사리가 익을 때까지 사람들은 각자 입맛에 맞는 양념을 만든다. 양념은 간장, 식초, 겨자, 매운 다지기(여러 가지 재료를 다져서 만든 양념)를 섞어 만든다. 같은 재료인데도 맛은 천차만별이다. 닭이 익으면 양념장에 찍어 먹는다. 뻑뻑했던 양념장은 국물과 고기의 수분이 섞여 점차 묽게 변한다. 다 먹어갈 때쯤이면 칼국수 사리를 넣어 익힌 후 묽어진 양념장에 찍어 먹거나. 냄비에 양념과 김치를 넣어 얼큰 칼칼하게 끓여 먹어도 좋다. 닭고기를 먼저 건져 먹은 다음 남은 국물에 취향에 맞게 다지기와 칼국수 사리를 넣어 칼칼하게 즐길 수도 있다. ⓒ한국관광공사 뜨거운 냄비가 올려진 테이블에 둘러앉아 먹는 방식은 구성원들의 유대감을 높이고, 식당 직원들은 가능한 요리에 적게 개입하여 불필요한 인건비용을 줄이는 이중 효과가 발생한다. 한국 속담으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그러니까 모두에게 이득이라는 소리다. 그래서 닭한마리는 별 다섯 개짜리 호텔에서 팔 일이 없을 것이다. 이 요리는 조금은 거칠면서도 다정한 장소에서 먹어야 맛있다는 신념이 있어서다. 그리고 아마도 미쉐린 투스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닭한마리에 깃들어 있는 철학이자, 우리가 이 음식을 대하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오늘 중요한 거래처 접대가 있으니 닭한마리에 가자고!”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 닭한마리는 외국인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맵지 않아서, 한국식 노포 감성을 느낄 수 있어서도 이유겠지만, 서울이 어떻게 성장했고, 서울시민이 거친 노동에 견디며 성장하던 시기의 용광로 같던 시대의 산물을 체험해 보는 상징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닭한마리는 서울의 다양한 사람들, 연인들, 외국인들이 몰려드는 복잡한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 서울의 사회적 문화재와 유산이 되었다. 어떤 음식이든 그 내부에는 역사적 나이테가 있게 마련이다. 아픈 기억과 즐거움이 공존한다. 그런 역사성을 우리가 알고 음식을 먹는다면 더 풍부한 의미를 담을 수 있다. 음식이란 결코 칼로리와 화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맛의 분자들, 물리적 촉각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닭한마리는 그런 의미에서 아주 적절한 음식이다. 혼자서 이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해보라. 친구들과 나누는 커다란 냄비 요리의 맛과 즐거움이 이 요리에 담겨 있다.

한국의 특별한 여름 별미, 물회

K-uisine 2024 SUMMER

한국의 특별한 여름 별미, 물회 물회는 과거 불을 피울 수 없던 목선에서 어부들이 간편하게 만든 뒤 빠르게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였다. 하지만 그 탄생 배경은 그리 가볍지 않다. 밥이 주식으로 하는 오랜 전통, 갓 잡은 생선을 날것으로 먹는 독특한 활어회 문화, 그리고 고추를 발효시켜 만든 고추장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절묘하게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물회는 세계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음식이다. 싱싱한 회와 각종 해산물, 아삭한 식감을 더해줄 야채와 고추장을 베이스로 한 시원한 육수가 어우러진 물회는 한국인들이 여름철 즐겨 찾는 보양식이자 별미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서 발간하는 세계수산양식현황(SOFIA)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해산물 소비량은 매년 세계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국토의 삼 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국가라는 환경 탓도 있겠지만, 이것만으로는 한국의 많은 해산물 소비량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한국보다 더 넓은 바다를 가진 나라도 많기 때문이다. 해산물 소비가 많은 한국 한국인의 해산물 소비량이 매년 세계 순위권에 드는 이유에는 한국인의 독특한 식문화도 한몫한다. 우선 한국인은 김, 미역, 다시마 등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종류의 해조류를 먹는다. 심지어 수출도 많이 한다. 해조류는 바다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바다에 해조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생물이 사는 건강한 바다라는 증거다. 한반도의 바다는 육지와 가깝고 수심도 너무 깊지 않아 해조류 자생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햇볕이 닿지 않는 너무 깊은 바다나 육지와 멀리 떨어져 무기물이 충분하지 못한 바다에는 해조류가 자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한국인은 예로부터 바다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해조류를 활용해 다양한 요리를 만들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바다의 잡초로 인식되었던 해조류가 한국인에게는 요긴한 식재료였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한국인의 건강한 밥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두 번째 이유로는 생선을 익히지 않고 먹는 식문화를 들 수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생선을 날것으로 먹는 방식이 일반화된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가 유일하다. 서구의 경우 남미(특히 페루)에서 시작된 세비체(ceviche)라는 음식을 통해 생선을 날것으로 먹는 문화가 일부 남아있다. 그런데 세비체는 엄밀히 따지면 생선을 전혀 익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세비체는 라임이나 레몬에 해산물을 재웠다가 먹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열 대신 산(acid)에 의해 생선의 표면이 익는다. 날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날것이 아닌 셈이다. 이에 반해 한국과 일본은 생선을 비롯한 다양한 해산물을 날것으로 먹는 방식을 오래전부터 이어오고 있으며, 이는 한일 양국 식문화에서 중요한 장르로 굳어졌다. 이렇게 생선을 날것 그대로 먹는 방식을 한국에서는 ‘생선회’, 일본에서는 ‘사시미’라고 부른다. 복합적인 맛을 즐기다 생선을 날것으로 먹는 방식에서 있어 한국과 일본은 뚜렷한 차이가 있다. 일본은 날생선을 손질한 후 충분한 숙성을 거친 후에야 맛볼 수 있는 부드러운 질감과 풍부함 감칠맛을 즐겼다. 숙성을 거쳐 부드러워진 사시미는 밥과 잘 어울렸다. 밥에 식초를 섞어 부패를 방지한 다음 사시미를 얹어 만든 음식이 스시다. 한국은 생선회를 먹는 포인트가 일본과 달랐다. 숙성된 생선회보다는 사후경직이 진행 중인 생선, 즉 단단한 질감을 선호했다. 대신 다양한 양념과 채소를 곁들였다. 일본이 간장과 고추냉이(와사비) 등 최소한의 소스를 사용해 생선이 가진 본래의 맛을 끌어내는 것에 중점을 뒀다면, 한국은 간장, 된장, 고추장, 참기름, 마늘, 고추 등 다양한 부재료를 곁들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상추나 깻잎 등에 싸서 함께 먹었다. 얼핏 일본보다 덜 섬세해 보일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인간의 미각은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 의도된 방향으로 발달한다. 생선과 소스 그리고 채소의 조화를 추구했던 한국인의 미각은 복합적인 맛을 즐기는 쪽을 선호하게 된다. 그래서 사시미를 먹는 일본인의 테이블은 단조로운 반면, 생선회를 먹는 한국인의 테이블은 매우 복잡하고 푸짐하다. 한국 어부의 패스트푸드, 물회 조선시대(1392~1910년)까지 한국의 어업은 나무로 만든 목선과 노를 젓거나 바람을 이용하는 무동력선에 의지했다. 근대 이후 엔진에 의해 움직이는 동력선이 도입되었으나, 선박의 재질이 나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동력선이 도입되자 이전보다 훨씬 먼 바다로 나갈 수 있었다. 먼 바다로 나갈수록 조업 시간은 길어졌다. 배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매콤하면서 새콤달콤한 육수는 무더위에 지친 입맛을 달래기에 제격이다. 각종 회와 해산물, 그리고 야채를 덜어 먹은 후 남은 육수에 취향에 따라 밥 또는 면을 말아먹어도 좋다. 한국인의 주식은 전통적으로 쌀이나 보리 등을 익힌 밥이었다. 밥은 곡물의 껍질만 벗겨 낱알 그대로를 익힌 음식이다. 밀이나 메밀을 분쇄해 가공한 분식(粉食)에 비해 조리가 간편하고 영양 손실도 적었다. 하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쌀과 보리에 함유된 탄수화물은 아주 단단한 구조로 결합 되어 있다. 여기에 열과 수분을 가하면 단단 구조가 깨지면서 부드럽게 변한다. 이를 겔화(gelation)라고 한다. 즉 쌀의 겔화가 진행되면 밥이 된다. 그런데 밥을 상온에 두면 수분이 증발하면서 다시 딱딱해진다. 과거 한국 어부의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보자. 이른 아침 먼바다로 고기잡이를 떠나면서 밥 한 덩어리를 챙겼을 것이다. 고된 바닷일을 하다 보면 금방 허기를 느끼게 된다. 집에서 가져온 밥은 이미 차갑게 식었고 그냥 먹기에는 딱딱하다. 불을 피워 물을 끓이면 딱딱한 밥을 부드럽게 만들 수 있지만, 나무로 만든 목선에서 불을 피우는 것은 위험한 행위다. 게다가 배 위에서는 여러 가지 반찬을 늘어놓고 여유 있게 식사할 상황이 아니었다. 차가운 물에 밥을 말았고 반찬으로 갓 잡은 싱싱한 생선을 듬성듬성 썰어 넣었다. 여기에 고추장 한 숟가락을 곁들여 밍밍한 맛을 보완했다. 조업 중 잠깐 짬을 내어 밥과 생선회를 물에 말아 그릇째 들고 후루룩 마시듯 먹던 물회는 어부들이 배 위에서 쉽고 빠르게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고안한 패스트푸드였던 것이다. 뚜렷한 지역별 특색 시원한 육수에 싱싱한 횟감의 조화가 일품인 물회는 어부의 음식에서 발전해 오늘날 바다 주변 관광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시원한 육수에 취향별로 고른 횟감과 아삭한 채소, 밥 또는 면을 선택해 후루룩 말아먹는 물회는 무더운 여름을 달래줄 별미가 되었다. 최근에는 몇몇 바닷가 주변에서 관광지 음식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소박한 음식으로 출발한 물회는 점점 화려하고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계절에 따른 생선이나 해산물, 채소 또는 과일을 사용하는 것엔 크게 다를 것 없지만, 한국에서 물회는 ‘물회’라는 하나의 형식만 존재할 뿐 지역마다, 음식점마다 개성이 다른 음식으로 분화하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육지와 달리 된장을 넣어 만든 육수로 물회를 만든다. 자리돔을 뼈 채 썰어 꼬들꼬들하고 담백한 회와 구수한 된장의 조화가 일품이다. ⓒ 비짓제주 강원도 영동지방에서 시작된 일명 강원도 물회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미지의 물회다. 냉수나 차가운 육수에 초고추장과 식초, 설탕 등을 넣어 만든 양념이 더해져 매콤 새콤한 맛이 조화를 이루는 가장 대중적인 맛이다. 횟감으로는 주로 담백한 물가자미 등을 사용하며 강릉에서는 길게 채 썬 오징어를 넣은 오징어 물회도 유명하다. 또 속초에서 시작해 전국 체인을 두고 있는 청초수 물회에서는 활전복, 해삼, 멍게, 문어, 날치알과 계절에 따른 여러 가지 횟감, 사골육수 등이 어우러진 ‘해전물회’ 메뉴가 인기다. 사람들은 이 물회를 맛보기 위해 사시사철 긴 대기시간도 기꺼이 감수한다. 고추장을 베이스로 하는 또 다른 물회에는 포항식 물회도 있다. 이 물회의 가장 큰 특징은 언 육수를 갈아서 슬러시 형태로 그릇에 담는 것이다. 각종 횟감과 야채 위에 팥빙수처럼 수북하게 쌓인 고추장 베이스의 매콤달콤한 육수를 함께 버무려 먹는 방식이다. 동해식 물회가 식초의 맛을 살린 육수라면 포항식 물회의 육수는 고추장의 맛을 살린 진득함이 두드러진다. 얼핏 보이엔 물회보단 비빔회에 가까운 모습이지만, 슬러시 육수 덕분에 식사를 마칠 때까지 시원하게 먹을 수 있다. 다른 지역의 물회가 대부분 고추장을 기본으로 하는 육수를 쓰는 반면, 제주도에서는 된장을 사용한 육수를 썼다. 지리적인 특성으로 고추가 귀했기 때문이다. 물회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고추장보다는 된장으로 맛을 내는 음식이 많다. 주로 자리돔을 넣은 자리물회가 유명하다. 된장으로 양념한 물회에 제피나무 잎을 약간 넣어 특유의 향을 살리고 생선 비린내를 없앴다. 또 톡 쏘는 빙초산 한 방울을 넣은 뒤 보리밥을 말아서 먹었다. 뼈째 썰어 투박하지만, 담백한 회와 구수한 된장의 조화가 돋보이는 제주 물회는 육지와는 전혀 다른 특징과 매력을 보여준다. 이처럼 계절과 지역에 따라서 서로 다른 생선을 사용하고, 고추장에 설탕, 참기름, 식초, 콩가루 등을 더해 특별한 소스를 만들기도 하고 물 대신 전용 육수를 만들어 사용하는 곳도 늘고 있다. 이러한 다양성 때문에 저마다 ‘물회의 원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물회는 그 어느 곳도 원조가 아니면서, 그 모든 곳이 원조가 될 수도 있는 미스터리한 음식이다. 이것은 한국 음식이 갖는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멀리서 보면 단조로워 보이는데 알면 알수록 복잡하고 섬세하다. 아무튼 한국의 여름은 물회가 있어 행복하다.

짭짤하고 구수한 바다의 맛

K-uisine 2024 SPRING

짭짤하고 구수한 바다의 맛 미역과 간장, 참기름을 메인 식재료로 끓이는 미역국은 싱싱한 미역이 주는 식감과 구수하면서도 감칠맛이 있는 국물이 만나 바다의 풍미를 자아낸다. 미역국은 오직 한국에만 존재하는, 태생부터 한국요리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생일을 맞은 사람이나 출산한 산모의 상차림에 빠지지 않고 올라가는 미역국은 한국인의 출생 과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음식이다. 한국에서 음식의 맛을 표현할 때 짭짤하다는 말은 대부분 맛깔스러운 감칠맛을 설명할 때 쓴다. 짠맛의 정도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적절한 수준을 잘 맞췄을 때 한국 음식은 감칠맛이 폭발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적절한 짠맛을 완성하는 것이 중요한 한국의 국물 요리 중 하나가 바로 미역국이다. 친근하고 특별한 음식 한국인에게 미역국은 친근하고 다정한 음식이다. 메인 식사로, 때로는 술안주나 다이어트식으로도 즐겨 먹는 대중 음식이기도 하지만, 미역국이 친근하고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한국에서는 산모가 출산하면 식사로 미역국을 챙겼다. 왜 하필 미역국이었을까? 미역은 단백질과 당질, 섬유질, 칼슘, 비타민 A, 칼륨, 셀레늄 등을 비롯해 다양한 비타민과 미네랄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미역의 철분과 요오드 성분은 몸속 혈액의 원활한 흐름을 돕고 높은 철분 함유량으로 빈혈 예방에 탁월하다. 이 때문에 오래전부터 산모가 출산하면 반드시 챙겨 먹어야 하는 음식으로 통했다. 이것이 시초가 되어 한국 사람들을 생일이 되면 태어난 날을 기념하며 미역국을 끓여 먹는다. 생일날 온 가족이 모여 미역국을 나누어 먹으며 생일을 축하하는 것이 한국의 풍습이기도 하다. 반대로 미역국 먹기를 꺼리는 날도 있다. 시험을 보는 날과 면접을 보는 날이다. 시험이나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뜻으로 쓰이는‘미역국 먹다’라는 말이 국어사전에도 있을 정도로, 이 두 날에 미역국을 먹으면 미끈거리는 미역국 때문에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떨어진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간단한 조리법 미역국의 레시피는 비교적 간단한 편이다. 재료는 마른미역과 소고기, 조선간장, 참기름, 그리고 소금 정도만 있으면 된다. 마른미역은 물에 넣고 충분히 불린 다음 물기를 짜고 4~5cm의 길이로 자른다. 소고기는 메인 재료라기보다 고소한 풍미를 살려주는 토핑 개념으로, 가로세로 1~2cm 크기로 작게 자른다. 냄비에 참기름을 두른 후 준비한 소고기와 미역을 넣어 겉면이 익을 때까지 볶는다. 이때 미역과 소고기에서 나오는 감칠맛이 고소한 참기름과 어우러지면서 맛깔스러운 향을 뿜어낸다. 뽀얀 국물이 우러나면 여기에 물을 추가로 넣은 다음 조선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30분 이상 끓여주면 완성이다. 물은 생수를 넣어도 되지만 더욱 진한 맛을 내려면 멸치로 우려낸 육수나 쌀뜨물, 또는 사골국물(소뼈를 장시간 우려 만든 국물로 묵직하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을 넣으면 된다. 미역국에 다진 마늘을 조금 넣으면 풍미가 더 살아나는데 미역과 소고기 본연의 맛에 집중하고 싶다면 생략해도 좋다. 미역국의 가장 기본 형태는 미역과 소고기를 재료로 만든 것이며, 지역 환경이나 특산물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오래 끓일수록 깊어지는 맛 미역 특유의 오독오독하면서도 미끌미끌한 식감과 짭짤한 국물, 고소한 소고기와 만나면 그 감칠맛이 배가된다. 미역은 해초의 일종인데 바닷속에 살면서 바다 향을 가득 품고 있기 때문에 그냥 먹으면 바다의 짠맛과 비릿한 맛이 강하게 난다. 그러나 깨끗하게 씻은 후 물에 불리는 과정을 통해 짠맛이 어느 정도 씻겨 내려가 은은한 바다의 맛과 향만 남는다. 미역을 소고기와 함께 참기름에 볶고 또 물에 끓이는 동안 각 재료의 맛이 우러나기 때문에 미역국은 오래 끓이면 끓일수록 감칠맛이 더욱 살아난다. 끓인 후 바로 먹을 때보다 두 번째, 세 번째 먹을 때 훨씬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뜨끈한 미역국에 달게 지은 흰 쌀밥을 말아 맛있게 담가 푹 익힌 김치를 올려 먹으면 그 자체로 한 끼 보약이 된다. 뜨겁고 묵직한 감칠맛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면서 또 가장 익숙한 맛이다. 미역국처럼 미역이 메인 재료가 되는 국물 요리는 한국에만 있는 전통음식이다. 다른 나라에선 구경조차 어렵다. 간혹 일본에서 미소된장국에 미역을 넣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매우 소량인 데다 어디까지나 된장이 메인이지, 미역이 주인공인 메뉴는 아니다. 그렇기에 한국의 미역국은 외국에선 다소 생소한 음식으로 통한다. 서울 종로구에서 한식 레스토랑 두레유를 운영 중인 토니 유 셰프는 이탈리아 유학 시절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미역국을 끓여준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해외 각국의 유학생들 모두 미역국을 보곤 “이 시커멓고 미끄덩거리는 이상한 물체는 무엇이냐?”라며 질색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 번 맛을 본 후로는 “앙코르 미역국”을 요청했다. 그들에게 미역국은 생소하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중독성 있는 맛있는 미역 스튜였던 것이다. 산모 미역이라 불리는 미역은 바다에서 갓 채취해 해풍과 햇볕으로 말린 것을 말하며, 억세지 않고 진한 국물을 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지역별로 특색 있는 미역국 한국의 국물 요리는 그 종류가 무엇이 됐든 대체로 지역마다, 가정마다 먹는 형태나 들어가는 재료가 조금씩 다르다. 이는 지역별 특산물이 다르고 집마다 즐겨 먹는 재료 또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미역국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미역과 소고기를 넣는 것이지만 소고기 대신 바지락이나 동죽, 홍합과 같은 조개류를 넣기도 하고 가자미나 꽁치, 갈치 등의 생선 종류를 넣기도 한다. 그야말로 육해공을 어우르는 국물 요리인 셈이다. 꽁치 요리를 즐기는 울릉도에서는 소고기 대신 꽁치를 넣은 꽁치 미역국을 먹는다. 이때 꽁치는 살만 발라내 녹말가루, 달걀물 등의 재료와 함께 반죽한 후 작은 볼 형태로 만들어 국물에 넣는 것이 특징이다. 꽁치는 다른 생선에 비해 지방이 많지 않고 고소해 미역국에 넣었을 때도 전혀 비리지 않고 오히려 담백한 매력이 있다. 경상도의 일부 지역에선 새알 미역국을 먹는다. 새알은 찹쌀가루를 동그랗게 말아 반죽한 것으로 쫀득거리는 새알의 식감과 미역의 오독오독한 식감이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자아낸다. 제주도 지역으로 가면 성게알을 넣고 끓인 성게알 미역국이 있다. 자연산 성게알은 한국에서 매우 귀한 재료로 통하는데, 마치 푸딩을 먹는 것처럼 크리미하면서 특유의 신선하고 짭짤한 바다의 향이 가득해 제주도의 성게알 미역국은 일반 미역국과 다르게 고급 음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 밖에 북어(생선 명태를 말린 것)를 넣은 북어 미역국, 닭가슴살을 잘게 찢어 넣은 닭고기 미역국, 갈치를 넣은 갈치 미역국, 새우를 넣은 새우 미역국 등 한국에서 먹는 미역국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다양한 변주 미역국의 종류가 다양하고 한국인이 오랫동안 즐겨 먹은 것에 비해 한국에 미역국 전문식당이 많지 않은 건 아이러니하다. 아무래도 미역국은 가정에서 쉽게 끓여 먹는 지극히 일상적인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해 외식 아이템으로서는 비교적 인기가 없었던 이유가 크다. 그러나 몇 해 전부터는 미역국 맛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부분 일반적인 소고기 미역국 대신 특별한 재료를 넣은 미역국을 선보인다. 그중 가자미 생선을 통째로 넣어 압도적인 비주얼을 살린 가자미 미역국, 고급 재료인 전복을 넣은 전복 미역국, 소고기 중에서도 매우 귀하고 비싼 부위로 통하는 차돌박이를 가득 담아낸 차돌박이 미역국 등이 인기다. 미역국에 들어가는 물도 일반 생수 대신 다양한 조개류와 육류를 넣고 오랜 시간 끓인 육수를 사용해 맛이 훨씬 풍부하고 진하다. 평범한 미역국이지만 색다른 재료와 특별한 육수를 조합하니, 또 하나의 새로운 요리로 탄생한 것이다. 혹시나 한국에 방문하게 된다면 반드시 미역국을 맛보길 바란다. 시커멓고 미끄덩한 미역의 모양새가 낯설게 느낄 수 있을지 모르나, 뜨거운 미역국에 갓 지은 찰진 밥을 말아 한 그릇 든든하게 비우고 나면 이만큼 귀한 음식이 없다고 여길 것이다. 황해원(Hwang Hae-won 黃海嫄) 월간외식경영 편집장 이민희(Lee Min-hee 李民熙) 사진작가

애환과 낭만의 음식, 빈대떡

K-uisine 2023 WINTER

애환과 낭만의 음식, 빈대떡 녹두 가루에 물과 각종 채소, 고기를 넣고 걸쭉하게 만든 반죽을 뜨겁게 예열한 프라이팬에 올려 노릇노릇하게 부쳐 먹는 빈대떡은 바삭바삭하면서도 고소한 풍미가 독보적인 한국의 전통 음식이다. 밀가루를 사용하는 부침개와 달리 녹두를 사용하는 빈대떡은 한국의 대표적인‘겉바속촉’ 요리다. 한국에서 음식 맛을 설명하는 단어 중 ‘겉바속촉’이라는 표현이 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는 문장을 줄인 말로, 주로 뜨겁고 바삭한 식감의 튀김이나 부침개 종류의 음식의 맛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이러한 ‘겉바속촉’의 맛을 지닌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가 빈대떡이다. 바삭한 맛이 일품 빈대떡은 큰 의미에서는 ‘부침개’ 또는 ‘전’으로 불리는 한국식 부침 요리의 한 종류이다. 부침개는 바닥이 평평하고 넓은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각종 채소나 육류, 생선 등의 재료에 밀가루나 달걀물을 입혀 기름에 부쳐내는 음식으로 한국의 명절이나 잔칫날에 빠지지 않는 대표적인 요리다. 빈대떡이 일반 부침개와 다른 점은 밀가루 대신 맷돌에 간 녹두를 이용해 부쳐 만든 음식이라는 것이다. 갈은 녹두에 나물, 고기 등을 넣고 반죽한 후 기름을 넉넉히 두른 묵직한 팬에다 두툼하게 반죽을 편 다음 튀기듯 부쳐낸다. 센 불에서 익힌 빈대떡은 부침개보다 겉면이 좀 더 바삭바삭하고 힘이 있는 편인데, 이는 녹두의 질감이 밀보다 더 단단하기 때문이다. 일반 부침개가 가늘고 부드러운 식감에 가깝다면, 빈대떡은 묵직하고 단단한 식감이 특징이다. 기름에 튀겨지듯 부쳐낸 빈대떡을 한입 베어 물면 입에 착 감기는 고소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또한 녹두가 지닌 특유의 풋내는 다른 재료들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감칠맛이 배가 된다. 빈대떡에 들어가는 재료는 고사리나 숙주, 대파, 김치, 고추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같은 빈대떡이라고 해도 집마다 재료의 사정은 달랐다. 재료가 풍족한 집은 각종 나물과 김치에 간 돼지고기까지 넣고 부쳐 먹었지만 그렇지 못한 집은 녹두 반죽만 기름에 부쳐 먹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빈대떡만큼 값싼 재료로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었다. 빈대떡의 유래 300도가 넘는 뜨거운 불판에 기름을 넉넉히 두른 후 돼지고기와 각종 채소가 들어간 녹두 반죽을 튀기듯 부쳐내어 바삭바삭하면서도 고소한 풍미가 일품이다. 빈대떡의 유래에 대해서도 여러 설이 있다. 교자상에 기름에 지진 고기를 높이 쌓을 때 제기(祭器) 밑받침용으로 이 빈대떡을 작게 만들어 썼는데, 그 뒤 가난한 사람을 위한 요리가 되면서 크기도 먹음직스럽게 크게 바뀌고 이름도 ‘빈자(貧者)’ 떡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 밖에 손님을 대접한다는 뜻의 ‘빈대(賓對)’를 넣어 빈대떡으로 불렀다는 설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흉년이 들면 당시의 세도가에서 빈대떡을 만들어 남대문 밖에 모인 유랑민들에게 “어느 집의 적선이오” 하면서 던져주었다고 한다. 확실한 것은 빈대떡을 즐겨 먹었던 곳이 북한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이라는 사실이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실향민들이 남한으로 넘어오면서 한국의 빈대떡의 역사도 함께 시작됐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국의 많은 공공기관과 가정집들이 무너졌는데 폐허가 된 집과 상가에서 실향민들은 터를 잡고 국밥이나 부침개, 막걸리 등을 팔기 시작했다. 당시 빈대떡은 삶의 터전과 가족을 잃은 많은 이들의 설움과 배고픔을 달래주는 애환의 음식이자, 값싼 가격에 배를 불렸던 서민의 음식이었다. 만인이 사랑하는 음식 서울 중구 을지로나 광장시장에는 40~50년은 거뜬히 넘긴 오래된 빈대떡집들이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빈대떡을 제대로 요리하려면 ‘라드’라고 부르는 돼지기름을 사용해야 한다. 식용유나 참기름(참깨를 짜서 만든 한국식 오일)을 사용할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고소한 감칠맛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300도가 넘는 뜨거운 불판에 돼지기름을 넉넉히 두른 후 돼지고기와 각종 채소가 들어간 녹두 반죽을 튀기듯 부쳐내면 흔히 말하는 ‘겉바속촉’ 식감에 고소한 돼지기름이 속속들이 베어들어 제대로 된 빈대떡의 맛이 구현된다. 서울 중구 을지로나 광장시장에는 40~50년은 거뜬히 넘긴 오래된 빈대떡집들이 아직도 성업 중이다. 3대째 운영 중인 박가네 빈대떡은 빈대떡을 전통 방식으로 두툼하게 부쳐내는 곳으로 빈대떡에 편육(삶은 육류를 틀에 넣고 누른 다음 차게 식혀 얇게 썰어 먹는 음식)과 어리굴젓(생굴로 담근 젓갈)을 올려 먹는 ‘삼합’ 요리로 다시 한번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빈대떡에 쫄깃한 편육과 매콤한 어리굴젓이 제법 잘 어울린다. 박가네 빈대떡 외에도 광장시장을 비롯한 서울 각지에는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오래된 빈대떡집들이 꽤 있다. 대부분 묵직하고 넓적한 불판에 종일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빈대떡과 부침개를 부치고 있는 모습을 통 창문으로 볼 수 있도록 개방형 주방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나가는 이들은 빈대떡의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오게 되고, 빈대떡을 열심히 부치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퍼포먼스가 되기도 한다.   다양하게 즐기는 맛 빈대떡은 다양한 토핑 재료를 활용할 수 있어 여러 가지 메뉴로 변신이 가능하다. 또 속까지 완전히 익히는 음식이기 때문에 육류나 채소, 해산물 등 어떠한 재료를 넣어도 잘 어우러진다. 40년이 넘도록 프랜차이즈 사업을 탄탄하게 전개해 나가고 있는 빈대떡 브랜드 JBD 종로빈대떡은 김치 빈대떡과 낙지 빈대떡, 굴 빈대떡, 해물 빈대떡 등 다양한 종류의 빈대떡 메뉴를 선보인다. 고소한 녹두의 맛이 기본으로 받쳐주니 어떠한 토핑을 올려도 매력적인 맛으로 융화된다. 특히 굴을 잔뜩 올린 후 바삭하게 부쳐낸 굴 빈대떡은 특유의 굴 향과 고소한 녹두의 맛이 잘 어우러져 외국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메뉴다. 빈대떡은 막걸리와도 궁합이 좋아 한때 막걸리와 빈대떡을 메인으로 내세운 브랜드들이 시장에 대거 생겨났다. 현대적인 인테리어, 세련된 플레이팅의 빈대떡 한 상 차림을 구현하거나 옛 감성을 살린 복고풍 매장까지 콘셉트도 매우 다양하다. 최근에는 다양하게 변주된 빈대떡 메뉴에 전국각지에서 생산되는 수십 가지의 전통주를 페어링하여 선보이는 한식주점도 인기를 끌고 있다.   건강식으로도 인기 빈대떡은 한국전쟁 이후 대중화되기 시작한 길거리 음식, 추억과 애환이 묻어있는 서민 음식이라는 인상 때문에 그러한 역사적 스토리텔링을 등에 업고 현재까지도 ‘국민 안주’, ‘국민 간식’으로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여기에 ‘건강식’ 키워드까지 더해 현재는 웰빙식품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빈대떡의 주재료인 녹두가 해독과 해열 기능뿐 아니라 피부질환이나 신장 기능 강화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녹두 빈대떡을 레토르트나 HMR 상품으로 출시하는 곳도 늘고 있다. 기름을 넉넉하게 두른 프라이팬에 냉동 상태의 빈대떡을 별도의 해동 과정 없이 그대로 올려 굽기만 하면 되므로 가정에서도 간편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 게다가 가격도 합리적이고 식당에서 먹는 것만큼 맛의 완성도도 높아 꾸준히 잘 팔리고 있다.   황해원(Hwang Hae-won 黃海嫄) 월간외식경영 편집장

단단하면서 부드러운 반전이 있는 맛, 게장

K-uisine 2023 AUTUMN

단단하면서 부드러운 반전이 있는 맛, 게장 겉은 단단한데 속은 뭉개지듯 부드럽다 못해 입안에서 녹아내릴 정도로 연하다. 첫맛은 짭짤하거나 또는 매콤하다가 이내 달착지근한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운다. 한 입 깨물자마자 실하게 여문 보드라운 살과 내장이 톡 터지며 쏟아지는데, 과연 이 매력적이고 독보적인 맛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한국의 전통음식인 게장을 소개한다. 간장 게장은 양파, 마늘 등의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끓인 양념간장에 싱싱한 게를 담가 숙성시킨 음식이다. 간장의 맛이 깊게 밴 탱글탱글한 게 살과 부드러운 내장의 맛이 매력적이다. ‘게장’에서 ‘장’은 한 자로 ‘장 장(醬)’ 자를 쓴다. 여기서 장은 콩을 주원료로 발효시켜 만든 모든 양념장을 뜻하는 말로 간장과 고추장, 된장이 대표적이다. 콩으로 메주를 쑤어 소금물에 담가 발효시키는데 간장은 발효시킨 소금물을 체에 걸러 끓인 후 만든 것이다. 한국의 장 문화에서 비롯된 게장 게장의 종류 중 간장게장은 간장에 게를 푹 담가 시간을 넉넉히 두고 숙성시킨 후 꺼내서 먹는 것으로, 오랜 숙성 시간과 작업 과정을 거쳐 완성도 높은 맛을 내는 한국의 발효 문화와 많이 닮아있다. 양념게장이라고 부르는 매콤한 버전의 게장 역시 고추장과 간장을 기본으로 사용해 맛을 낸다. 그래서 게장이라는 음식을 이해하려면 한국의 장 문화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간장에 싱싱한 게를 넣고 절이는 간장게장이나, 고추장과 간장, 그 외에 단맛과 감칠맛을 내는 재료를 넣고 버무린 양념게장은 한국인의 DNA에 각인 된 ‘발효 장’ 문화가 한식 전반에 영향을 미친 결과이기 때문이다. 맛있는 간장과 싱싱한 게가 생명 과거 간장게장은 살아 있는 게로 만들었으나, 최근에는 제철에 어획하여 급랭한 게를 이용해 만든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게장은 크게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으로 나뉜다. 간장게장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간장에 게가 전부 잠길 만큼 푹 담근 상태에서 며칠간 냉장실에서 숙성시킨 후 먹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드시 싱싱한 게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과 맛있는 간장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간장게장용 간장은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보다 가정에서 메주를 띄워 직접 만든 간장으로 담그는 게 훨씬 맛있다. 간장은 발효식품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감칠맛은 강해지고 염도는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래 묵힌 간장을 한국에서는 ‘씨간장’이라고 부른다. 이 씨간장에 양파와 대파, 사과, 마늘, 고추 등을 함께 넣고 한 차례 끓인 후 식혀 여기에 살아있는 신선한 게를 넣고 냉장실에서 숙성시킨다. 게장을 전통으로 담그는 집에서는 장독대에 씨간장과 게를 넣고 묵힌다. 이때 소고기 몇 조각을 함께 넣는데 살아있는 게들이 며칠 만에 이 소고기를 다 먹어 치운다고 한다. 소고기의 영양분을 섭취한 게살은 일반 게보다 훨씬 단맛이 돌고 탱글탱글한 식감이 일품이다. 최근엔 좀 더 쉽고 간편한 방법으로 단맛을 내기 위해 간장을 끓일 때 설탕이나 물엿, 요리용 술 등을 넣기도 한다. 이렇게 끓여낸 간장 양념을 식힌 뒤 게를 넣고 냉장실에서 숙성시키면 끝이다. 숙성 기간은 평균 2~3일 정도, 그러나 오래 숙성할수록 간장양념이 게의 속까지 잘 배어들기 때문에 그 이상을 숙성시키는 경우도 많다. 간장게장을 먹는 법 간장게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난 게딱지 밥이다. 게의 등껍질에 남아 있는 간장과 내장에 흰 밥을 넣어 비벼 먹는 것으로, 인기가 많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단단한 껍질을 뚫고 속살까지 적절하게 잘 절여진 게장을 먹을 땐 우선 등껍질을 분리한다. 그리고 몸통을 양쪽으로 잡아 가위로 절반을 가른다. 게 몸통 한쪽을 두 손으로 잡고 쭉 짜내면 간장 양념이 고루 밴 게의 생살과 연한 주황빛을 띠는 내장이 물밀듯이 쏟아지는데 갓 지은 뜨끈한 쌀밥 위에 올려 한 입 떠먹으면 그 자체로 극락의 맛이다. 그 어떤 산해진미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감칠맛이 뛰어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간장게장을 제대로 즐기는 타이밍인지도 모른다. 맨 처음 분리해 놓았던 게의 등껍질에는 게의 내장과 간장 양념이 남아있는데, 게장의 진짜 별미는 이 껍질에 붙은 고소하고 크림 같은 내장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등껍질에 밥을 넣어 비벼 먹는다. 이것을 두고 ‘게딱지 밥’이라고 부른다. 등껍질에 붙은 고소한 내장과 게살에 참기름(볶은 참깨를 압착해 뽑아낸 한국식 오일로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김, 밥을 넣고 비빈 게장 비빔밥도 인기 메뉴다. 일부 게장 전문식당에선 여기에 날치알을 넣어 톡톡 터지는 식감을 살리기도 한다. 간장게장은 맛있게 숙성된 간장 양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보드라운 게의 생살과 고소하고 신선한 내장 맛이 포인트이기 때문에 싱싱한 제철 꽃게를 사용한다. 특히 충청남도 서산 지역은 꽃게가 많이 잡히는데, 알이 꽉 찬 제철 암꽃게로 담근 간장게장은 가히 최고의 맛이라고 할 수 있다.   무침 요리에서 시작된 양념게장 매콤달콤한 양념으로 간장게장만큼이나 인기 있는 양념게장은 일부 지역에서 먹던 무침요리에서 유래됐다. 간장게장처럼 숙성하지 않고 바로바로 무쳐 먹는 요리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원래 게장 하면 바로 간장게장이 떠오를 만큼 간장게장은 대표적인 게장 요리에 속했다. 그러나 간장게장과는 전혀 다른 맛과 매력을 지닌 빨간 양념의 게장 요리가 나오면서 이와 분리하기 위해 기존 게장의 명칭을 간장게장으로, 그리고 빨간 양념의 매콤한 게장을 양념게장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양념게장은 게장의 원조 격인 간장게장보다 역사가 짧은 편이다.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선 예부터 회나 황태를 고춧가루나 고추장 양념에 매콤하게 무쳐 먹었는데, 회나 황태 대신 꽃게를 무쳐서 먹기 시작한 것이 바로 양념게장의 출발이다. 당시엔 양념게장이 아닌 ‘게 무침’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매콤한 양념에 회를 무치면 회 무침, 황태를 무치면 황태 무침이 되듯이 게를 무쳤기 때문에 말 그대로 게 무침이 된 것이다. 사실 양념게장은 간장게장과 다른 점이 많다. 간장게장이 간장에 게를 숙성시켜 먹는 음식이라면 양념게장은 매콤달콤한 양념에 버무려서 바로 먹는 음식이다. 게의 생살이나 내장 맛을 즐기기보단 특유의 달착지근하면서 은은하게 매운맛이 도는 고추장 베이스의 양념 맛으로 먹는다. 양념 재료는 집마다 차이가 있는데 보통은 고춧가루와 고추장, 간장, 설탕, 마늘, 파, 양파, 물엿 등을 넣어 만든다. 게무침의 형태였던 초창기 때보다 현재는 양념의 농도가 짙어지고 질감이 좀 더 끈적해진 것이 특징이다. 양념게장용 게는 주로 크기가 작은 게를 사용하며 등껍질과 아가미, 배딱지 전부를 제거한 후 몸통을 절반 또는 1/4 크기로 작게 자른 뒤 양념에 버무린다. 달달하면서도 매운 양념장을 입힌 이 양념게장 역시 중독성 있는 맛으로 간장게장만큼이나 인기가 높다.   한국의 다양한 게장 전문점 게장은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마니아층도 탄탄한 음식이라, 한국엔 게장 전문점이 매우 많다. 간장게장 한 마리에 4만 원이 훌쩍 넘는 고급 식당부터 1인 기준 1~2만 원대에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을 무한대로 먹을 수 있는 무한리필 식당까지 다양한 형태가 있다. 또 서울 강남구 신사동엔 간장게장 식당이 줄지어 있는 ‘게장 골목’도 형성돼 있다. 그중 어느 집이 가장 먼저 게장을 팔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원조집 논란은 늘 있었지만, 중요한 건 게장 골목에 있는 식당 전부 항상 만석일 정도로 장사가 잘된다는 것이다. 미식가들 사이에서 유명한 게장 식당으로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진미(眞味)식당이 있다. 이곳은 꽃게 제철인 6월과 12월에 꽃게를 대량으로 공수하여 영하 35도에서 급랭해 살아있는 게만큼이나 신선한 선도를 유지하여 게장을 담근다. 간장게장 정식을 주문하면 간장게장과 함께 포슬포슬한 달걀찜, 꽃게 찌개(게와 김치를 넣고 얼큰하게 끓여낸 음식으로 ‘게국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리굴젓(굴을 고춧가루와 소금 등에 절여 만든 젓갈), 가시파래(김과 유사한 모양이지만, 가시파래 특유의 식감과 향이 있다) 등 한 상 푸짐하게 차려진다. 가시파래에 밥과 어리굴젓 그리고 달착지근하고 보드라운 게살을 올려 싸 먹으면 아주 맛있다. 이 식당은 ‘미쉐린 서울 2023’에 등재되기도 했다.   황해원(Hwang Hae-won 黃海嫄) 월간외식경영 편집장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국물 요리 순두부찌개

K-uisine 2023 SUMMER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국물 요리 순두부찌개 순두부 특유의 담백하고 보드라운 질감은 다른 식재료에선 쉽게 느낄 수 없는 특별한 맛이다. 한국인들은 이것을 건강식으로도 먹고, 맵고 얼큰하게 끓여 해장음식으로 즐기기도 한다. 지금은 한국뿐 아니라 해외 여러 나라에서도 맛있게 즐기는 메뉴로 자리 잡았다. 순두부찌개의 매력은 어떤 부재료를 넣어도 각각의 맛과 개성을 잘 살린다는 것이다. 바지락 순두부, 짬뽕 순두부, 김치 순두부 등 부재료에 따라 이름과 맛이 달라진다. 순두부찌개는 김치찌개, 된장찌개와 함께 한국의 대표 찌개 요리다. 고춧가루로 얼큰한 맛을 낸 국물에 순두부를 풀고 달걀을 깨 넣어 보글보글 끓여 먹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이때 달걀은 각자 기호에 따라 빼기도 하고, 달걀 대신 해산물을 넣어 시원한 풍미를 살리기도 한다. 순두부 자체는 거의 ‘무맛’에 가까울 정도로 순하고 담백하다. 질감이 보드랍고 연해서 입 안에 넣었을 때 씹을 것도 없이 목젖을 타고 넘어가는데, 얼핏 푸딩의 질감과도 비슷하다. 백옥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순두부를 얼큰한 국물에 넣고 팔팔 끓여냈으니 담백하고 매운, 정반대의 두 맛이 한데 어우러져 매력적인 국물 요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지역별로 먹는 방식이 다른 순두부찌개 같은 순두부찌개라도 지역별로 끓이는 방식이나 먹는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서울은 얼큰한 국물에 순두부와 달걀, 바지락 등을 넣고 끓여 먹는다면 매운 음식을 즐기는 경상도 지역 사람들은 기름에 대파와 고춧가루를 넣고 달달 볶아 매운 고추기름을 먼저 낸 후 여기에 육수와 순두부를 넣고 끓이는 방식이다. 고추기름 때문에 국물이 훨씬 맵고 강렬하다. 특히 예부터 얼큰한 해장국 문화가 발달한 대구 지역은 고추기름을 베이스로 다양한 국물 요리를 만들어 먹는 방식이 보편화됐는데, 이들에게 순두부찌개 역시 예외는 아니다. 젓갈을 즐겨 먹는 전라도 지역은 새우젓으로 맛을 낸다. 이곳의 순두부찌개는 애호박과 새우젓으로 짭짤한 감칠맛을 살린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충청도는 짜글이 문화가 발달했다. ‘짜글이’는 볶음요리와 찌개의 중간쯤 되는 음식으로 국물을 졸이듯이 걸쭉하게 끓여 밥 위에 올려 먹는 요리다. 순두부찌개 역시 짜글이 형태로 국물 양을 적게 넣어 졸이듯이 끓인 후 밥 위에 올려 먹거나 비벼 먹는다. 다양한 조화로 해외에서도 인기 순두부는 질감과 맛이 튀거나 자극적이지 않기에 다른 부재료와 균형을 잘 이룬다는 것이 강점이다. 순두부찌개에 해산물을 넣으면 해물 순두부찌개, 소고기를 넣으면 소고기 순두부찌개, 바지락을 넣으면 바지락 순두부찌개, 굴을 넣으면 굴 순두부찌개가 된다. 담백하면서 매력적인 순두부가 탄탄한 기본기가 돼주니, 여기에 어떠한 부재료를 넣어도 각각의 맛과 개성을 잘 살린 스페셜 찌개가 되는 것이다. 순두부찌개는 한국 고유의 음식을 넘어 해외 각국에서 즐겨 먹는 음식으로도 부상 중이다. 미국에서 인기 있는 대표적인 한식 브랜드가 바로 북창동순두부가 아닌가! 2005년 『뉴욕타임스』에선 한국의 순두부찌개를 ‘매운 육수에 비단처럼 부드러운 순두부, 그리고 파와 소고기, 아삭아삭한 김치를 곁들인 순두부찌개는 가장 이상적인 겨울 음식’이라고 소개한 적도 있다. 미국, 캐나다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자완무시(부드러운 일본식 달걀찜)와 식감이 비슷해 인기가 좋다. 대표 건강식 식감이 매우 부드러운 순두부는 맛도 순해 소화가 잘된다. 배부르게 먹어도 부담이 없는 데다 단백질이 풍부해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인기다. 순두부는 우리가 흔히 아는 두부를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콩물을 끓이다가 간수(소금으로 내린 물)를 넣고 휘휘 저으면 어느 순간 콩의 단백질이 몽글몽글하게 응고되며 덩어리째 엉기고 뭉쳐지기 시작하는데 그 단계에서 웃물과 함께 떠낸 것이 순두부다. 여기서 떠내지 않고 응고제를 넣어 단단하게 굳히면 두부가 된다. 별다른 재료 없이 오직 콩과 간수만으로 만들기 때문에 맛있는 순두부를 완성하는 절대적인 조건은 품질 좋은 콩과 간수다. 순두부의 핵심 재료인 콩은 한국에서 ‘밭의 고기’라고 불릴 정도로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콩에 함유돼있는 식물성 에스트로겐의 일종인 이소플라본은 고혈압, 골다공증 예방에도 좋고 항암에도 탁월한 효능을 지니고 있다. 또한 순두부의 단백질은 필수아미노산을 풍부하게 갖고 있어 소화가 잘되고, 배부르게 먹어도 거부감이 없다.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손색없다.   맑은 순두부의 본고장, 초당마을 주로 빨간 양념을 한 순두부찌개가 많지만, 강원도 강릉 초당마을에서는 별다른 양념 없이 순두부 자체를 담백하게 즐기기도 한다. 다양하게 조리한 순두부찌개가 있지만, 양념 없이 순두부 자체를 담백하게 즐기는 이들도 있다. 뜨끈하게 데운 순두부를 입에 넣고 천천히 씹으며 맛을 음미하면 순두부 본연의 고소함이 은은하게 돈다. 맑은 순두부를 판매하는 식당들은 매장에서 순두부를 직접 만드는 경우가 많다. 맑은 순두부의 본고장은 강원도 강릉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강릉 안에서도 ‘초당마을’은 특히 순두부가 맛있기로 유명하다. 비옥한 강원도 땅에서 자란 콩과 인근 동해의 깨끗한 바닷물로 간을 맞춰 순두부를 만들기 때문에 더욱 고소하고 콩의 질감도 살아있다. 일반 순두부 제품보다 결이 좀 더 투박하고 거친 듯하지만, 한국인들은 강릉 스타일의 순두부가 제대로 만들어진 진짜 순두부라며 선호한다. 강릉 초당마을이 순두부 본고장으로 이름을 알린 데는 16세기 조선시대 중기 문장가이자 관료였던 허엽(Heo Yeop 許曄, 1517~1580)이 강릉에서 부사(지방 관아에서 실무를 맡아 처리하는 일종의 지방장관직)로 있을 당시 관청 앞마당에 있던 샘물의 맛을 보곤 물맛이 좋다고 여겨 샘물과 동해 바닷물로 두부를 만든 것이 시초라고 한다. ‘초당두부’, ‘초당마을’이라는 이름 역시 허엽의 호인 ‘초당(草堂)’에서 따온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강릉 초당마을에 가면 순두부의 본고장답게 강릉식 정통 순두부를 맛볼 수 있는 곳들이 많다. 이 초당 순두부가 하나의 고유 브랜드가 되어 현재는 순두부를 이용한 순두부 아이스크림이나 순두부 젤라토 등을 팔기도 한다.   이색 순두부 맛집 한국엔 이 순두부를 활용한 다양한 이색 메뉴를 판매하는 식당들이 많다. 강원도 강릉의 ‘동화가든’은 매운 짬뽕에 순두부를 넣어 ‘원조짬뽕순두부’라는 대표 메뉴를 판매한다. 짬뽕은 중국요리 중 하나인데, 동화가든은 짬뽕을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얼큰한 국물에 순두부를 추가해 완전한 한국식 짬뽕으로 구현했다. 여기에 푸짐한 해산물 토핑은 덤이다. 이 집은 전국 맛집으로도 유명해 매일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입장이 가능할 정도로 명성이 자자하다. ‘강릉 순두부 장칼국수’는 식당은 상호에서도 알 수 있듯 순두부가 들어간 칼국수를 주력 판매하는 곳이다. 이곳의 순두부 장칼국수는 한국의 전통 발효장인 된장과 고추장을 베이스로 한 얼큰한 국물에 납작하게 썬 칼국수와 순두부, 애호박, 표고버섯 등을 넣고 끓인 메뉴다. 뱃속까지 뜨끈해지는 칼칼하고 깊은 국물 맛이 일품이다. 처음엔 칼국수면을 먼저 건져 먹고 난 후 국물에 소복하게 담겨있는 몽글몽글한 순두부를 장국물과 함께 떠먹는 것이 이 집의 룰이다. 서울에도 순두부찌개를 다채롭게 내는 식당들이 많다. ‘오팔식당’은 돼지고기를 잘게 간 민찌와 순두부를 넣고 끓인 민찌 순두부찌개를 선보인다. 서울 ‘거복이식당’은 돼지고기 BBQ 전문점인데, 사이드 메뉴로 판매하는 돼지고기 순두부찌개가 특히 별미다. 이 집의 돼지고기순두부찌개는 한국식 전골 스타일로 3~4인용 큼직한 전골용 냄비에 돼지고기와 순두부를 가득 담아 즉석에서 보글보글 끓여가며 먹는 요리다. 순두부 자체는 굉장히 단조롭고 정적인 음식이지만, 이것이 찌개가 됐을 땐 뜨겁고, 맵고, 또 화끈해진다. 생동감이 살아난다. 정적이지만 강인한 맛. 화려하진 않지만, 본질에 충실한 맛. 순두부찌개는 어쩌면 가장 한국적인 맛일지도 모른다.   황해원(Hwang Hae-won 黃海嫄) 월간외식경영 편집장

봄의 맛과 향, 도다리쑥국

K-uisine 2023 SPRING

봄의 맛과 향, 도다리쑥국 겨우내 꽁꽁 얼어있던 단단한 땅을 가장 먼저 뚫고 나오는 것은 잡초도 꽃도 아닌 어린 쑥이다. 이 쑥만큼이나 봄에 귀하게 먹는 도다리 역시 봄의 전령사다. 봄철 도다리는 살이 가득 차오른 데다 부드럽고 고소하다. 이 둘이 만나 한국의 향토 음식이 되었으니, 바로 ‘도다리쑥국’이다. 도다리쑥국은 경상남도 통영의 향토 음식이다. 매년 이른 봄이면 통영 앞바다 식당가에서는 너도나도 ‘도다리쑥국 팝니다’라는 간판을 내걸기 시작한다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요소는 많다. 때가 되면 새싹이 움트고 꽃이 피며, 무성한 초록의 날을 지나 단풍이 들고, 찬바람과 함께 앙상한 가지만 남는 계절의 풍경이 그렇다. 또 하나는 혀끝으로 계절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 계절에 나는 제철 재료를 가장 신선한 상태로 맛보는 것만큼 직관적인 방법이 또 있을까? 정통 한식 요리전문가인 故 김태원 조리장은 살아생전 “새 계절이 왔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아는 방법은 그달에 가장 비싼 제철 생선을 사 먹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봄철 식재료, 도다리와 쑥 쑥은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위장과 간장, 신장의 기능을 강화해 예로부터 복통 치료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봄이 시작되는 3월부터 5월까지 수확한 쑥을 최고로 친다. 그 이후엔 질겨지고 쓴맛이 강해져 식재료로 쓰기엔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봄의 시작을 알리는 음식 중 하나는 바로 경상남도 통영의 도다리쑥국이다. 바다의 도다리와 땅에서 자란 쑥 전부 대표적인 봄 제철 식재료이기 때문이다. 겨울을 나는 동안 살을 찌운 도다리는 날이 풀리면 산란을 위해 남쪽 지역으로 서식지를 옮기는데 봄철 통영 앞바다에서 도다리가 많이 잡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봄철 도다리는 회로도 먹고 조림, 국, 탕 등 다양한 한식 요리로도 활용된다. 특히 어린 도다리를 뼈째로 썰어 날것으로 먹는 ‘도다리 세꼬시’는 오도독한 식감이 뛰어나 별미 중 별미다. 쑥은 약간 쓴맛과 함께 향긋한 향이 나는 식물로, 봄이 시작되는 3월부터 5월까지 수확한 어린 쑥의 식감과 맛이 가장 뛰어나다. 그 이후엔 질겨지고 쓴맛이 강해져 음식으로 먹기엔 맛이 떨어진다. 그래서 도다리쑥국을 메뉴로 내는 많은 식당이 매년 초봄에 캐낸 햇쑥을 구하느라 바쁘다. 같은 쑥이라도 분지나 산지보다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것이 더욱 맛과 향이 좋고 해풍 덕에 미네랄도 풍부하다고 해서 바닷가 지역의 쑥을 구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쑥은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날씨나 토양, 어떠한 환경적 변수에도 끄떡없이 땅을 뚫고 줄기와 잎을 피우기 때문이다. 한국의 고전 신화에선 ‘곰이 사람이 되기 위해 동굴에서 100일간 참고 먹었던 재료’로 나오기도 하고 실제로 오래전부터 한국인들은 쑥을 식용뿐 아니라 약으로 쓰기도 했다. 남해 지역의 귀한 제철 음식 강도다리 돌가자미, 문치가자미 등 여러 생선을 통칭한다. 이중 통영에서 잡히는 가자미는 문치가자미로, 12월부터 1월까지가 금어기다. 통영에서 도다리쑥국을 2월부터 내놓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봄마다 도다리가 풍년이니 남해 지역 뱃사람들이 가장 먼저 먹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고, 남해 바닷가 지역 내의 여러 가정집에서 봄철 햇쑥으로 국을 끓여 먹으면서 도다리쑥국이 탄생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산지에서 나는 생선이나 육류, 또는 제철 채소나 나물을 넣고 국을 끓여 먹는 문화는 한국 어느 지역이나 있었으니 누가 먼저 먹었느냐는 사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확실한 건 도다리쑥국이 남해 지역 고유의 제철 음식이라는 것이다. 도다리쑥국은 다른 종류의 한국식 탕이나 찌개 음식과 달리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아 국물 색이 맑은 것이 특징이다. 핵심은 쑥 본연의 맛과 향을 살리는 것이기에 매운맛을 내는 재료 대신 된장과 국물용 간장만 소량 넣어 구수한 맛을 낸다. 여기에 미리 손질한 도다리와 깨끗하게 씻어낸 쑥과 무, 대파를 넣고 끓이기만 하면 완성이다. 신선한 도다리와 제철 쑥만 있으면 그 자체로도 맛을 내기에 이것 이상의 재료나 양념은 필요하지 않다. 봄의 맛과 향 한국의 전국 바닷가에 흔한 물고기와 땅이라면 어느 곳에서도 잘 자라는 쑥으로 만든 음식이 뭐가 대단할까 싶지만, 도다리쑥국을 맛본 이들은 도다리의 부드럽고 담백한 맛과 쑥의 향긋함에 금세 매료되고 만다. 처음 먹어보는 사람들은 쑥의 쌉싸래한 맛과 향을 일컬어‘독특한 국물 맛’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독특한 맛에 익숙해지면 금세 도다리쑥국의 매력에 빠진다. 그래서 미식가들은 도다리쑥국의 주인공은 도다리가 아닌 쑥이라고 이야기한다. 도다리쑥국의 맛에서 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쑥의 향이 된장 국물과 만나 감칠맛이 살아나고 여기에 담백한 도다리의 식감까지 더해지면 맛이 더욱 풍부해진다. 계절별 제철 재료로 음식을 내는 식당에선 이르면 2월 중순부터 도다리쑥국을 팔기 시작한다. 특히 항구와 가까운 경남 통영 지역의 시장 안엔 도다리쑥국을 봄철 대표 요리로 내놓는 식당들이 줄을 잇는다. 그중 ‘희정식당’은 대표적인 도다리쑥국 맛집으로 갓 잡은 도다리와 햇쑥으로 맑게 끓인 맛이 상당히 좋다. 함께 나오는 제철 반찬도 별미다. 이 둘의 맛 조합이 좋아 사람들은 ‘밥도둑’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너무 맛있어서 밥이 끝도 없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도다리쑥국으로 유명한 곳은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충무집’이다. 이 곳은 주인장의 부친이 1964년 경남 통영에서 ‘희락장’이라는 상호로 문을 열면서부터 시작됐다. 그 시절 가장 자신 있게 내세웠던 음식이 바로 도다리쑥국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충무집의 봄철 대표 메뉴인 도다리쑥국은 5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단골손님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으면서 인기 메뉴로 자리 잡았다. 도다리쑥국과 세트로 구성된 멍게비빔밥 역시 대표 메뉴다. 흰 밥 위에 잘게 썬 멍게와 무순, 김 가루, 참기름을 올린 향긋한 멍게비빔밥은 구수한 도다리쑥국과 함께 먹었을 때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다. 만물은 생동하다가도 때가 되면 지고, 또다시 피어날 날을 기다리며 오랜 기다림과 인고의 시간을 갖는다. 지금, 이 좋은 봄날에 만나는 도다리쑥국이 그렇다. 지금 아니면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봄의 기운이 만연하는 동안 봄의 맛과 향을 마음껏 즐기길 바란다. 황해원(Hwang Hae-won 黃海嫄)월간외식경영 편집장 이민희(Lee Min-hee 李民熙) 사진작가

추억을 돌돌 말아낸 한국의 맛, 김밥

K-uisine 2022 WINTER

추억을 돌돌 말아낸 한국의 맛, 김밥 일상적인 것이 가장 위대한 것이다.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이지만, 자신만의 추억과 정서가 녹아있는 것을 보면 김밥이야말로 한국인 고유의 작은 우주이자 하나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집마다 엄마의 손맛을 담아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맛이 존재하는 김밥은 한국인에게 추억이 담긴 음식이다. 최근엔 다양한 재료를 넣은 프리미엄 김밥 열풍이 불기도 했다. 육류와 각종 채소를 이색 소스와 함께 토르티야 빵에 싸 먹는 멕시코의 타코, 미국의 캘리포니아롤, 일본의 노리마키 등 형태와 디테일만 조금씩 다를 뿐 각 나라의 특색이 잘 묻어있는 재료들을 동그랗게 싸 먹는 문화는 보편적이다. 불확실한 기원 김밥의 기원은 정확하게 알려진 게 없다. 일본의 ‘노리마키(밥에 날 생선, 오이, 길게 썰어 말린 박과 식초에 절인 무를 올리고 김에 단단하게 만 음식)’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김밥이 조선 후기(1392–1910)에 먹은 ‘복쌈’의 한 변형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김밥’이라는 이름 자체의 기원도 불분명하다. 1958년 3월 29일 자 『동아일보』 기사에는 밥에 식초를 섞어 만든 김밥을 뜻하는 듯한 초밥에 대한 조리법이 실렸다. 기사에서는 김 한 장에 생선, 버섯, 두부, 시금치, 당근과 같은 재료와 함께 식초 2/3컵, 설탕 2큰 술, 소금 1큰 술, 글루타민산나트륨(MSG)을 섞은 밥을 김에 싼다고 설명되어 있다. 나중에 김밥 레시피에서 식초는 빠졌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지금의 김밥이 완성되기 오래전부터 김에 밥을 싸서 먹었다. 1849년에 쓰인 『동국세시기』에는 ‘김쌈’과 ‘복쌈’이 언급되는데, 이는 밥과 다양한 반찬을 김이나 야채에 싸서 먹는 것을 말한다. 18세기 후반의 요리책 『시의전서』에는 사람들이 김에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려 먹었다고 전해진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김에 밥을 싸서 먹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김 자체에 대한 첫 기록은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5세기에 쓰인 『경상도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는 각각 김이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생산되었다고 기록되어있는데 그 당시 사람들이 김을 먹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김밥의 기원이 무엇이든 사람들은 김 생산은 한국 고유의 것이라고 믿고 있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 중 하나는 약 300년 전 경상남도 하동에 사는 노파가 섬진강에서 조개를 채취하다가 해초로 뒤덮인 부목(浮木) 한 조각을 주웠는데 나무에 붙어있던 해초의 맛이 좋아 이를 대나무 기둥에 붙인 후 바닷물에 담가 키웠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한국의 김 양식이 시작되었다는 설이다. 통영 충무김밥, 한식문화로 자리 잡아 한 번 나가면 오랫동안 조업을 해야 했던 통영 사람들은 최대한 상하지 않을 음식을 가지고 바다에 나갔는데, 이때 먹기 시작한 것이 충무김밥이다. 반찬 역할을 하는 무김치나 꼴뚜기 무침은 오징어나 어묵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됐다. © 게티이미지코리아(gettyimagesKOREA) 김밥은 1950년 이후부터 점차 완전한 한국형 김밥으로 조금씩 변모해간다. 날생선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한국은 당시 집에 있는 채소나 여러 재료를 넣고 김밥을 말았다. 입맛에 따라 식초를 줄이고 참기름과 소금으로만 밥의 간을 맞추기도 했고 깨소금으로 고소한 맛을 살리기도 했다. 1940년대 말 대구 달성동에서 모친이 김밥 장사를 했다는 김윤열(金圇悅) 씨는 당시의 기억을 소환했다. “어머니는 밥에 식초와 설탕, 참기름을 조금 넣어 밑간을 하셨고 ‘김초밥’이라는 이름으로 팔았다. 지금으로 치면 일본식 마끼와 비슷한 맛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다시 김밥가게를 여셨을 땐 식초를 빼고 설탕과 소금, 참기름을 넣고 밥을 비볐다. 재료도 붉게 물들인 일본 장아찌를 빼고 당근과 무장아찌, 달걀을 넣었다”라고 전한다. 경상남도 통영 지역의 향토 음식인 충무김밥 이야기도 빠뜨릴 수 없다. 바닷가 도시 통영의 본래 명칭은 충무였다. 해방 이후 한 어부가 배 위에서 김밥에 무김치와 꼴뚜기 무침을 먹으면서 충무김밥이 시작됐다는 설이 있는데, 이때 김밥은 밑간을 하지 않은 생김과 맨밥이었다. 한번 조업을 나가면 바다에 오래 있어야 하니 최대한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김밥 재료와 밑간을 최소화한 것이다. 대신 매콤 새콤하게 무친 무김치와 꼴뚜기 무침이 반찬 역할을 했다. 이 충무김밥이 대중화되면서 어떤 집은 무를 채 썰기도 하고 꼴뚜기 무침 대신 오징어나 어묵 등을 매콤하게 무쳐 먹기도 하면서 고유의 음식 문화가 됐다. 우리 엄마 김밥이 가장 맛있다 한국의 김밥은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한 밥에 단무지와 달걀지단, 당근, 우엉, 햄, 시금치 등을 넣고 돌돌 말아낸 형태가 가장 일반적이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21세기형 김밥은 이제 완전한 한식의 범주 안으로 들어왔다. 마른 김에 참기름과 소금, 깨소금으로 간을 한 밥을 깐 후 단무지와 달걀지단, 당근, 우엉, 햄, 시금치, 오이 등을 넣고 돌돌 말아낸 형태가 가장 일반적이면서 한국적인 김밥의 모습이다. 물론 이는 보편적인 기준이고, 속 재료는 각자의 취향이나 냉장고 사정에 따라 집마다 조금씩 다르다. ‘도시락’ 하면 김밥부터 생각날 만큼 소풍이나 야유회 때 가져가는 대표적인 메뉴이기도 하고 그만큼 엄마의 손맛을 직관적으로 담은 음식이라 사람들은 ‘전국의 엄마들 숫자만큼 다양한 김밥 맛이 존재한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어릴 적부터 길들어진 ‘내 엄마’의 김밥 맛 덕에 한국인들은 ‘우리 엄마 김밥이 가장 맛있다’는 자신만의 김밥 미식 철학을 갖고 있다. 참기름과 조선간장에 조물조물 무친 시금치와 간장에 짭짤하게 볶아낸 우엉과 어묵, 그리고 각종 채소, 갓 지은 따뜻한 밥에 양념된 재료들을 넣고 돌돌 말아 마지막 고소한 참기름과 깨소금의 화룡점정으로 마무리했던 엄마 김밥! 김밥 앞에서 한국인들은 유달리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어 곱씹기도 향수에 젖기도 한다. 개개인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김밥의 열린 결말, 김밥의 다양화 한국 김밥 시장의 대중화가 시작된 것은 1995년 인천의 김밥천국이 문을 열면서부터다. 이곳은 분식과 한식을 골고루 파는 대중식당인데 1990년대 후반에 프랜차이즈화 되면서 전국구 식당이 됐다. 당시 김밥천국에서 팔던 ‘1,000원 김밥’은 저렴하면서도 두툼한 굵기, 푸짐한 양으로 배고픈 직장인들의 소중한 아침 한 끼가 돼주었다. 김밥이라는 메뉴가 외식 아이템으로서도 굳건하게 자리 잡은 것도 그 무렵이다. 이후 김밥에 다양한 변주가 생겼다. 일반적인 김밥 재료로 활용하지 않았던 메뉴, 이를테면 제육볶음이나 불고기, 돈가스, 멸치볶음, 참치마요네즈, 새우튀김, 오징어무침 등을 넣은 이색 김밥이 탄생하며 한국 시장에 한동안 프리미엄 김밥 열풍이 불기도 했다. 건강을 추구하는 이들이나 육류를 먹지 않는 비건이 늘어나면서 일부 김밥집은 닭가슴살이나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재료를 넣기도 하고 곤드레나물, 시래기나물, 장아찌, 당근 등 야채로 속을 채운 건강식 김밥을 선보이기도 했다. 지역의 오래된 김밥집 중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탄 곳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재료에서 차별화를 두고 있는 곳들이다. 전북 전주시의 ‘오선모옛날김밥’은 속을 당근으로 가득 채운 당근 김밥이 인기 메뉴이고 경북 경주시 ‘교리김밥’은 달걀지단이 속 재료의 90%를 차지해 달걀 김밥이라고도 불린다. 서울 낙성대역에 위치한 ‘오월의 김밥’도 교리김밥과 비슷하게 달걀지단이 90% 이상 들어가는데 이 집은 한입에 넣기 어려울 정도로 큼직한 사이즈가 특징이다. 부산의 ‘동원분식’은 현지인들만 아는 김밥 맛집이다. 두툼한 달걀말이(달걀을 푼 물에 각종 채소를 넣고 구워낸 한국식 반찬)와 오징어채(반건조한 오징어를 가늘게 썰어 고추장 양념에 버무린 한국식 반찬)를 가득 넣는데, 이 또한 별미다. 제주도에 가면 꽁치 한 마리를 통째로 넣은 꽁치 김밥을 파는 곳도 있다. 모양새가 다소 독특하고 기괴하지만 노릇노릇하게 구운 꽁치의 고소한 맛이 밥과 어우러져 중독성이 있다. 또 한국 BBQ의 대표주자인 삼겹살을 넣은 김밥도 인기다. 한국인의 추억이 깃든 음식으로 시작해 재료의 다양한 변주로 열린 결말이 기대되는 김밥. 국내 음식평론가나 미식가들은 김밥이 국내를 넘어 ‘K-푸드’의 한 영역으로 전 세계적인 열풍을 불러올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황해원(Hwang Hae-won 黃海嫄)월간외식경영 편집장

가을 향기를 품은 송이버섯

K-uisine 2022 AUTUMN

가을 향기를 품은 송이버섯 지구에 존재하는 버섯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버섯은 2,000종이 넘는데, 한국 사람들은 ‘버섯’ 하면 제일 먼저 가을을 떠올린다. 바로 송이버섯 때문이다. 이 버섯은 소나무에 붙어 산다고 하여 송이(松栮)라 이름 붙여졌다. 소나무 그늘 아래 봉긋 솟은 송이버섯은 가을이 주는 선물이다. 맛도 맛이지만 향긋한 향이 일품인 송이버섯은 재배가 안될뿐더러 기후에 민감하고 채취가 어려워 희소가치가 높다. 고려 중기의 문인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제14권 고율시(古律詩) 중 「송이버섯을 먹다(食松菌)」을 통해 이 버섯을 자세히 표현했다. 버섯은 썩은 땅에서 나거나 혹은 나무에서 나기도 하네 모두가 썩은 데서 나기에 흔히 중독이 많다 하네 이 버섯만 솔에서 나 항상 솔잎에 덮인다네 솔 훈기에서 나왔기에 맑은 향기 어찌 그리 많은지 향기 따라 처음 얻으니 두어 개으로도 한 웅큼일세 듣건대 솔 기름 먹는 사람 신선 길 가장 빠르다네 이것도 솔 기운이라 어찌 약 종류가 아니랴 생태계 순환의 중요 역할 사람들은 대부분 버섯이 식물인 줄 알지만, 식물이 아니다. 식물과 달리 버섯에는 엽록소가 없다. 광합성을 할 수 없으니 다른 식물이나 동물의 도움을 받아 양분을 구해야 한다. 버섯이 동물과 닮은 구석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양송이버섯, 표고버섯 등은 죽은 나무에 달라붙어 유기물을 분해하여 먹고 산다. 또 동물 배설물에 남아있는 양분을 이용하여 살아가기도 한다. 이규보가 시에 쓴 내용처럼 썩은 데서 자란 버섯이라고 해서 모두 중독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인류는 오히려 썩은 식물에서 자라는 것을 훨씬 더 많이 먹는다. 인공 재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13세기에 참나무 토막을 써서 표고버섯을 키우기 시작했다. 양송이버섯은 17세기 프랑스에서 멜론 재배에서 나오는 퇴비와 말똥거름을 이용해 재배하기 시작했다. 버섯은 생태계에서 양분이 순환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무의 세포벽은 셀룰로오스, 헤미셀룰로오스, 리그닌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리그닌은 분해가 어려운데, 지구상에서 이들 세포벽 구성 성분을 분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생물이 버섯이다. 균류가 죽은 나무를 분해하여 먹는 과정을 통해 나무는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그 토양에서 다시 나무가 자란다. 송이버섯은 포치니버섯, 송로버섯, 능이버섯과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나무와 공생하는 버섯이다. 버섯은 흙 속의 미네랄을 모아 나무뿌리에 일부 공급한다. 그 대가로 나무뿌리는 버섯에 당을 나눠준다. 다른 버섯보다 송이버섯에 더 많은 미네랄이 함유된 이유도 아마 공생 관계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까다로운 성장 환경 버섯의 대부분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땅속에 그물과 같은 모양의 균사로 퍼져 있다. 균사는 양분을 충분히 모으고 물을 흡수해 자실체(子實體)라 불리는 좀 더 치밀한 균사 조직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먹는 것은 땅속의 균사체가 아니라 식물의 꽃에 해당하는 자실체이다. 송이버섯은 살아있는 나무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재배가 어렵다. 지면에서 10cm 정도 떨어진 소나무 잔뿌리에서 공생하여 살아간다. 여름 장마철 땅의 온도가 낮아지면 송이버섯을 채취할 수 있지만 품질이 우수한 것은 주로 가을에 얻을 수 있다. 땅속 온도가 19°C 이하로 떨어지면 송이버섯 균사가 군데군데 팽창하면서 자실체가 지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성장을 위해 비가 꼭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많이 와도 곤란하다. 온도가 너무 낮아도 안 되고 너무 높아도 안 된다. 소나무의 나이가 너무 많거나 젊어도 안 된다. 또 항상 솔잎에 덮여 있지만 너무 두껍게 쌓여 있어도 자라기 어렵다. 송이의 유명세 송이버섯은 갓이 너무 피지 않고 끝이 은백색일수록 높은 품질로 평가받는다. 신선한 송이버섯은 다른 버섯의 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특유의 우아하고 기품 있는 솔 향이 난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모든 조건이 맞아야 자라는 버섯인 만큼 가격이 만만치 않다. 갓이 퍼지지 않고 길이가 8cm 이상일 때 가격을 높게 쳐준다. 자루 굵기가 일정하지 않거나 갓이 조금이라도 퍼진 모양인 것은 2등품이다. 갓이 우산처럼 퍼지면 가격은 더 내려간다. 어느 모양이든 맛이나 향은 별 차이가 없지만, 사람의 가치 평가는 희소성에 따라 흔들리기 마련이다. 또 매년 생산량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크다. 한국 내 주산지는 강원도와 경상북도 일대다. 특히 강원도 양양에서 나는 것이 유명한데 2021년 9월 18일 자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양양 송이버섯의 역대 최고 공판가는 2019년에 기록한 132만 원이다. 송이버섯의 높은 인기는 다른 버섯의 이름에도 영향을 미친다. 새송이버섯, 참송이버섯, 꽃송이버섯, 버들송이버섯, 양송이버섯 등은 이름에 송이가 들어가지만 전부 다른 종이다. 이름을 그렇게 지은 건 아마도 송이버섯의 유명세를 따라가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향으로 먹는 송이 단백질, 식이섬유, 비타민, 미네랄 등 우수한 영양소가 들어있긴 하지만 송이버섯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가을의 향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추석 무렵이면 이를 찾는 미식가가 많다. 송이버섯을 넣어 지은 밥은 입에 넣을 때마다 맑은 소나무 향이 가득 퍼진다. 8백 년 전 이규보가 송이버섯을 먹으면서 신선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구절이 이해가 간다. 가을에 송이버섯을 찾는 사람은 많지만 안타깝게도 송이버섯 생산량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다. 1985년까지 연간 1,300톤 정도 생산되다가 최근에는 연평균 219톤으로 감소했다. 소나무 숲 감소, 기후변화, 낙엽 축적, 소나무 재선충의 영향으로 채취할 수 있는 송이버섯의 양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2009년 미국 오리건 대학 연구에 따르면 송이를 채취할 때 갈퀴질을 얕게 하면서 흙을 교체해주면 다음 해 생산량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흙을 다시 덮어주지 않거나 깊게 갈퀴질하면 다음 해 생산량이 90%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인간이 욕심을 부리면 자연과 공존할 수 없단 걸 그대로 보여준다. 햅쌀과 송이버섯으로 지은 솥밥은 가을 최고의 만찬이다. 버섯은 처음부터 넣지 않고 뜸들이기 직전에 밥에 얹는 것이 포인트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국물요리에 송이버섯을 사용하려면 적당히 감칠맛을 더할 수 있는 요리가 좋다. 전골로 즐기기도 하며, 모시조개, 가쓰오부시나 다시마를 베이스로 하는 국물과의 궁합이 좋다. © 통로이미지 재조명되는 야생 버섯 버섯에는 감칠맛 성분인 글루탐산, 구아닐산이 풍부하다. 특별한 요리 기술 없이도 찌개나 볶음요리에 활용하면 맛이 깊어진다. 고기를 구울 때 함께 굽거나 전으로 부쳐 먹기도 하고 꼬치를 꿰어 산적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국내에 식용이 가능한 버섯은 400여 종에 이른다. 최근 한국에 자생하는 다양한 야생 버섯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프랑스에서 귀하게 대접받는 모렐버섯, 샹트렐버섯을 한국에서도 맛볼 수 있다. 김성윤 음식 전문 기자가 쓴 『조선일보』 2018년 10월 18일 자 기사에 의하면 모렐버섯의 국내 이름은 곰보버섯으로 봄철 전남 신안에서 난다. 샹트렐버섯은 꾀꼬리버섯, 오이꽃버섯, 애꽃버섯, 외꽃버섯 등 다양한 이름으로 지방 전통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버섯을 아는 이가 적어서 찌개 끓일 때 넣는 정도로만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버섯 고유의 맛과 향을 구별하고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 한국의 야생 버섯에 대한 관심과 조리법이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정재훈(Jeong Jae-hoon 鄭載勳) 약사, 푸드 라이터

한국인의 매운맛, 고추

K-uisine 2022 SUMMER

한국인의 매운맛, 고추 가지과 식물인 고추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재배되는 향신료이며, 세계 인구의 1/4이 즐기고 있다. 한국 음식에서도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매우 중요한 식재료로, 많은 한국인들이 고추의 매운맛을 선호하는 편이다. 한국 음식에서 매우 중요한 식재료인 고추는 한국인의 매운맛으로 간주될 정도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고추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재배되는 향신료이다. 원산지인 남아메리카에서 사람들이 고추를 먹은 것은 기원전 7000년, 재배는 기원전 3500년경으로 추산한다. 15세기 말 에 전파된 이후 16세기 후반에는 포르투갈 상인들을 통해 인도,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로 빠르게 퍼졌으며, 한국에도 이때쯤 유입된 것으로 추측된다. 아시아에서 고추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나중에는 거꾸로 유럽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매운맛의 척도 향신료로서 고추가 특이한 점은 매운맛의 척도라는 사실이다. 1912년 미국의 약사 윌버 스코빌(Wilbur Scoville)이 개발한 스코빌 지수는 고추가 얼마나 매운지 표시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이제는 고추에 함유되어 있는 매운맛 성분인 캡사이신 함량을 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지만, 스코빌 지수도 여전히 사용된다. 순수 캡사이신은 1600만 SHU(스코빌 열 단위, Scoville Heat Units)이다. SHU는 매운맛이 감지되지 않으려면 고추 추출물을 얼마나 희석해야 하는지 표시하는 단위로 높을수록 더 맵다. 고추속(屬) 채소 중에는 녹색 피망처럼 매운맛이 거의 없는 고추도 있지만, 흔히 절임으로 먹는 할라피뇨(2500~1만 SHU)부터는 중간 정도의 매운맛이 느껴진다. 과거에는 하바네로(35만~58만 SHU)가 제법 매운 축에 들었지만, 부트졸로키아(85만 5천~150만 SHU)나 트리니다드 모루가 스콜피온(150~200만 SHU)처럼 매운맛이 더욱 강력해진 새 품종이 개발되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매운 고추를 먹는 사람들이 있으며, 심지어 누가 더 잘 먹을 수 있는가 경쟁하기도 한다. 그런데 고추 속 매운맛 성분은 새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새는 캡사이신의 매운맛을 감지할 수 있는 수용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추를 먹고 씨앗을 널리 퍼뜨려 주는 역할을 한다. 고추 속 캡사이신은 사람과 같은 포유동물이 먹지 못하게 하기 위한 장치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실제로 다람쥐 같은 설치류는 고추 맛을 보고 나면 기피한다.  즐거움 고추장은 찹쌀에 고춧가루, 엿기름, 메줏가루 등을 섞어 발표시킨 한국의 전통 조미료이다. ©gettyimagesKOREA 고추 먹기 대회까지 열릴 정도로 사람들이 매운맛을 즐기는 이유는 고추의 매운맛이 롤러코스터와 같은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이는 2021년 노벨 생리학·의학상(The 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 2021) 공동 수상자 중 하나인 캘리포니아대 데이비드 줄리어스(David Julius) 교수가 발견한 사실이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TRPV1(transient receptor potential vanilloid 1)으로 이름 지어진 수용체가 캡사이신에서 뜨거운 온도를 감지한다. 쉽게 말해 고추의 매운맛은 열감을 자극하여 마치 화상을 입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공중을 한 바퀴 돌 때 땅에 떨어질 듯한 긴장감을 즐기는 사람과 매운 고추를 입안에 넣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느끼는 즐거움은 동일한 맥락인 셈이다. 차이점도 있긴 하다. 롤러코스터는 내리고 나면 아찔함이 사라지지만, 고추의 매운맛은 입안에 오래 남아 괴로울 수 있다. 고추 추출물이나 캡사이신을 파스나 크림에 넣으면 근육통이나 관절통 완화에 도움이 된다. 매운맛 자극으로 인한 통증이 반복되면 통증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이 고갈되면서 거꾸로 통증을 덜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더운 지역일수록 매운 음식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 고추, 마늘, 생강을 넣어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나면 인체는 뜨거운 방 안에 있을 때처럼 반응한다. 체온을 내리기 위해 땀이 나고 피부 혈류가 증가한다. 결과적으로 피부 체온이 내려가면서 시원한 느낌을 받는다. 한국인이 무더운 여름날 이열치열이라며 맵고 뜨거운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기후와 고추 소비의 관계가 꼭 일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인류가 매운맛을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고추는 따뜻한 기후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추운 나라에서는 재배가 어려워 생산과 소비가 적은 것일 수도 있다. 추운 겨울이라고 매운 음식을 안 먹는 것도 아니다. 한국인이 겨울에 즐기는 김장 김치도 매운 음식이지만, 발효가 진행되고 숙성되는 과정에서 차츰 부드럽게 순화된다. 김치 국물에 캡사이신이 희석되어 매운맛이 줄어들 수도 있고, 미생물 발효로 인해 캡사이신이 매운맛이 적은 화합물로 분해되었을 수도 있다. 2015년 건국대학교 김수기(Kim Soo-ki 金守基)교수 연구팀은 한국 전통 발효 식품인 고추 절임에서 캡사이신을 분해하는 미생물을 발견하기도 했다. 다양한 활용법 한국전쟁 이후 고추장에 설탕을 넣어 매콤 달콤하게 만든 고추장 떡볶이는 오늘날 다양한 레시피로 개발되어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TongRo Images 원산지인 남아메리카에서 고추는 다양하고 복잡한 방법으로 사용된다. 멕시코에서는 종류별로 생것일 때와 말렸을 때 이름을 다르게 부를 정도로 다양한 고추를 쓴다. 고추를 햇볕에 말리면 고추 속의 화합물들이 서로 반응하여 새로운 향 물질을 만들어 낸다. 멕시코 요리에는 특정한 음식에 어떤 고추를 넣어야 하는가에 대해서까지 미리 정해진 규칙이 있다. 타말리, 엔칠라다, 살사에는 미라솔(mirasol) 고추를 햇볕에 말려 훈연향의 단맛을 도드라지게 한 과히요(guajillo)를 넣는다. 포블라노(poblano) 고추를 말린 앤초(ancho)는 물에 불려 갈거나 말린 것 그대로 몰레 소스에 넣는다. 고추를 요리에 넣으면 단지 매운맛만 증가하는 게 아니라 단맛, 훈연향, 과일향과 같은 복합적 풍미가 더해진다. 소스에 고추를 갈아 넣으면 펙틴으로 인해 부드러우며 걸쭉한 질감이 만들어진다. 고추의 매운맛은 오늘날 한국인의 맛으로 간주될 정도로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과거 모두가 고추를 반긴 것은 아니다. 1920~30년대 서구식 근대화를 지향했던 생활개선론자들은 맵고 자극적인 음식은 진보되지 않은 증거라면서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반 대중은 달랐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매운맛을 더 많이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레시피를 바꿨다. 이 과정에서 설탕과 고춧가루가 결합하게 됐다. 이를테면 19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떡볶이는 맵지 않은 음식이었다. 가래떡에 고기를 넣어 간장으로 양념하여 볶아 내는 방식이었다. 한국전쟁 직후 고추장에 설탕을 넣어 매콤 달콤하게 만든 떡볶이가 등장했다. 고추장 양념 떡볶이가 대세가 되면서 이전의 간장 떡볶이는 밀려났다. 지금도 인기가 높은 낙지볶음, 제육볶음 같은 음식도 비슷한 시기인 1950~60년대에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들이다. 여기에서 인간이 매운맛을 좋아하는 이유가 결국 즐거움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다. 단맛은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선호하게 되며 순수한 쾌락을 상징한다. 이에 비해 매운맛은 자라면서 배워서 선호하게 되지만, 즐거움을 준다. 고추와 설탕의 매콤 달콤한 맛은 젊음의 생기가 넘치는 맛이다. 요즘에는 과하지 않게 매운맛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음식이 인기다. 로제 떡볶이가 좋은 예다. 캡사이신은 지방에 잘 녹는다. 그래서 물로는 매운맛을 온전히 씻어 낼 수 없다. 모차렐라 치즈, 크림과 같은 유제품 내의 풍부한 카제인 단백질은 지방과 잘 결합한다. 매운 음식을 먹고 나서 우유나 요거트를 먹으면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이유다. 로제 떡볶이 속 크림도 마찬가지로 캡사이신을 붙잡아 열감을 줄이면서도 매운맛을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해외에서 치즈 닭갈비, 치즈 불닭 같은 K-푸드가 인기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매운맛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친숙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김치는 고춧가루가 들어가는 대표적인 한국의 전통 발효식품으로 지역과 재료, 담그는 방법에 따라 다양하다. ©TongRo Images 대중적 사랑 고추를 유럽으로 가져온 콜럼버스는 이 채소가 후추와 관련 있다고 생각했고, 이 때문에 ‘칠리 페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하지만 고추는 가지과 식물의 열매로 후추과 덩굴 식물의 열매인 후추와는 구별된다. 고추의 매운맛은 캡사이신에서 비롯되지만, 후추의 매운맛은 피페린 때문이다. 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하나 더 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후추가 당시 매우 희귀한 상품이었기 때문에이 향신료를 뿌려 매워질수록 고급 음식으로 생각했다. 17세기 들어 후추가 대량 수입되자 유럽의 상류층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맛을 지닌 음식을 찾기 시작했다. 후추를 넣은 음식으로 자신들과 하층민을 구별하고 싶어 했던 상류층의 욕망이 그들이 추구하는 맛 자체를 아예 바꿔 놓은 것이다. 고추는 그렇지 않다. 아열대 식물인 후추와 달리 고추는 온대 기후에서도 잘 자란다. 재배하기 쉽다는 것은 대중이 접근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때 일각에서는 고추의 매운맛을 폄하하기도 했지만, 대중의 소비가 가능한 향신료였기에 한국인 대다수는 개의치 않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맛을 추구할 수 있었다. 고추는 말해 준다. 오늘의 한국 음식 문화를 만든 것은 소수의 엘리트가 아니라 다수의 대중이라는 것을.

겨울이 남긴 풍미, 시래기

K-uisine 2022 SPRING

겨울이 남긴 풍미, 시래기 늦가을과 겨울의 추운 날씨를 버텨내고 단맛을 끌어올린 시래기를 봄에 먹으면 마치 계절이 주는 선물이 입속으로 들어온 기분이 든다. 입문이 쉽지는 않지만 한번 맛을 알게 되면 그 매력에서 빠져나오기도 힘든 음식이다. 무는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채소 중 하나로 김치 뿐만 아니라 나물, 국 조림 등 여러 음식의 재료로 사용된다. 부위에 따라 각기 다른 쓰임새를 가졌고, 계절에 따라서 다른 맛을 내기도 하여 매력적인 식재료다. 특히 겨울철 노지재배로 수확한 무의 푸른 무청을 떼어 내 엮은 뒤 겨우내 햇볕과 바람으로 말린 시래기는 구수한 맛과 부드러운 촉감으로 봄철 식탁을 풍성하게 해준다. 시래기는 최소 3번 정도 얼고 녹기를 반복해야 맛있어진다. 건조과정에서 두 배 이상 늘어난 시래기의 식이섬유는 포만감을 더해주고 몸의 노폐물 배출을 돕는다. 지금은 별미로 여겨지는 음식이라도 그 출발은 때로 하잘것없어 보일 수 있다. 무청이나 배추의 겉잎을 햇볕과 바람에 말린 시래기가 그렇다. 한반도에서는 예로부터 늦가을이면 겨울에 먹을 김치를 담가왔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올라있는 ‘김장문화’이다. 이때 배추와 무에 파, 마늘, 고추가루 등 여러 양념을 섞어 김치를 담그고 나면 무청과 배추 겉잎이 남는다. 이를 날 것 그대로 말리거나 또는 삶아서 말리면 시래기가 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푸성귀를 다듬을 때 골라 놓은 겉대를 우거지, 무청이나 배추의 잎을 말린 것을 시래기로 정의하고 있다. 초라한 모양이 때로는‘잔뜩 찌푸린 얼굴 표정’에도 비유되는 우거지도 정성껏 말리면 좋은 식재료가 되는 것이다. 배추와 같은 채소의 겉잎은 자라는 동안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된다. 속잎에 비해 거칠고 손상되어 품질이 낮아 보이기 마련이다. 누렇게 시들거나 풀이 죽기도 한다. 그런데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목숨을 이어가던 시절에는 그것 마저 버릴 수 없었다. 채소 꺼풀을 주워 모아 그늘에 말려두었다가 잘게 썰어 한 줌의 쌀이나 두부비지, 밀기울을 넣어 죽으로 끓여 먹었다. 그조차도 세 끼를 먹기에 모자랐다. 한 끼 또는 두 끼만 먹으면서 간신히 버티는 사람이 많았다. 춘궁기면 시래기죽이라도 배불리 먹고 싶다는 농민들의 호소가 신문 기사로 실리곤 했다. 적응이 필요한 음식 시래기는 여러 번 먹어야 비로소 맛을 알게 되는 음식이다. 추운 겨울 시골집 마당에서 시래기를 삶는 냄새는 별로 향기롭지 않다. 뜨거운 김이 집안까지 데워 주는 느낌은 좋은데 냄새는 싫다. 배추나 무청을 삶으면 생겨나는 황화합물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삶는 과정에서 알싸한 매운맛이 줄어들고 부드럽고 순한 맛이 된다. 배추에는 감칠맛을 내는 유리 글루탐산이 많이 들어있다. 무청에는 뿌리인 무보다 더 많은 글루탐산이 들어있다. 황화합물과 글루탐산은 본래 육류에 많이 들어 있어서 고기 맛을 내는 성분이다. 배추와 무청을 말려 만든 시래기가 의외로 고기와 잘 어울리는 것은 이 풍미 물질 덕분이다. 고추장, 된장을 풀고 마늘을 넣어 시래기 찌개나 국을 끓여 먹으면 고기를 넣지 않아도 고기 맛이 난다. 멸치 육수를 더하면 풍미가 더 좋다. 음식 맛이 유명한 항구 도시 통영에서는 멸치 대신 장어 뼈로 국물을 낸 시래깃국이 전해 내려온다. 사실 처음부터 누구나 좋아할 맛은 아니다. 어린아이가 생소한 음식을 받아들여 좋아하게 되려면 최소 8회에서 15회까지 그 음식을 경험해봐야 한다. 시래깃국은 이런 설명에 딱 맞는 음식이다. 나 역시 맨 처음 시래깃국을 맛본 게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동안 거들떠보지 않았던 음식이었다는 기억만큼은 분명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느 날부터 시래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일단 좋아하게 되니 시래기로 만든 대부분의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들깨를 넣어 무친 시래기 무침, 된장과 갖은양념을 넣어 졸인 시래기 지짐, 사골 육수에 끓인 사골시래깃국까지 시래기가 들어간 요리면 구미가 당긴다. 정월 대보름은 음력 명절이다. 2022년 정월 대보름은 양력으로 2월 15일이다. 이날은 오곡밥에 묵나물을 많이 먹는다. 묵나물은 ‘묵은 나물’로 박, 오이, 버섯, 호박, 순무, 고사리, 취나물, 오이꼭지, 가지껍질 등을 말려서 겨우내 저장해둔 채소를 삶아서 무친 것을 말한다. 묵나물엔 시래기도 포함된다. 시래기는 자주 얼고 녹으며 완전히 말라야 하는 만큼 일교차가 크게 벌어지는 장소가 적합하다. 해발 300~500m 위치의 산간 지대로 일교차가 20도 이상 벌어지는 강원도 양구 해안분지, 일명 펀치볼에서 생산한 시래기가 유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펀치볼’은 한국전쟁 당시 격전이 벌어졌던 이 곳의 지형이 화채 그릇을 닮았다고 하여 한 미국인 종군 기자가 시용하며 알려진 이름이다. ©shutterstock 조선 후기의 학자 홍석모(洪錫謨 1781~1857)는 자신의 책 (東國歲時記 1849)에서 정월 대보름에 묵나물을 먹으면 다가올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기록했다. 그의 설명에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시래기를 비롯한 묵나물의 영양학적 가치는 충분하다. 채소를 삶고 말리면 엽록소의 색이 초록색에서 황록색으로 다소 칙칙하게 변하지만, 엽록소 자체는 애초에 사람의 체내로 흡수되어 이용되는 영양성분이 아니다. 비타민B군, 비타민C와 같은 수용성 비타민은 일부 손실되지만 지용성 비타민과 미네랄은 대부분 그대로 남는다. 농촌진흥청 식품성분표에 따르면 데친 무시래기 100g에는 단백질 4g, 탄수화물 9.8g, 지방 0.3g, 식이섬유는 무려 10.3g이 들어있다. 시래기 두 접시만 먹어도 일반적으로 권장하는 식이섬유 섭취량 25g의 절반 이상을 먹게 되는 셈이다. 그 효과가 여름까지 가지는 않을 테지만, 적어도 변비인 사람의 봄철 식탁에 시래기가 자주 놓이는 건 분명 효과가 있을 것이다. 추위가 남기고 간 선물 오래 푹 삶은 다음 찬물에 담가 놓아 부드러워진 시래기는 다양한 요리에 쓰인다.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곱게 다져 넣고 갖은 양념을 하여 기름에 볶은 시래기나물은 정월대보름 식탁에 빠지지 않는 별식이다. ©Getty Images Korea 요즘 시래기는 예전 시래기와 다르다. 과거에는 무로 김치를 담그고 남은 무청을 알뜰살뜰 말려 시래기를 만들었다. 이제는 시래기에 적합한 품종을 개발하여 따로 심는다. 시래기 전용 무 종자를 재배하여 얻는 시래기는 일반 무로 수확한 시래기보다 잎이 더 연하고 부드러운 특징이 있다. 식감이 부드러워 껍질을 벗기고 요리하는 게 번거로운 사람이 바로 조리해 먹어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잎 수가 더 많고 잘 자라는 품종을 서로 충분한 거리를 두고 심어 무청이 충분히 자라면 잘라내어 시래기를 만들고 무를 남긴다. 파종하고 45일에서 60일 사이에 수확하여 작은 무는 노지에 그냥 버려두기도 한다. 2021년 11월 29일 의 기사 제목처럼 밭에 남겨진 무가 “시래기가 미워요”라고 외칠만하다. 기사에 따르면 시래기 전용 무는 맛이 약간 맵고 일반 무에 비해 물러서 김치를 담그기에 적당치 않다. 그래서 동치미를 담그거나 채 썰어 말린 후 볶아 차로 만들거나 또는 무장아찌를 담그는 데 활용된다고 한다. 시래기는 전국 어디서나 수확해 먹지만 강원도 양구가 산지로 가장 유명하다. 산간지역인 양구군의 해안분지는 ‘펀치볼’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한국전쟁 당시 미국 종군기자가 붙인 이름이다. 음료를 담는 둥근 그릇처럼 움푹 패인 침식 분지의 지형을 가리키는 영어단어가 지역의 이름으로 아직 남아있는 것은 이곳이 그만큼 격전지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 막바지까지도 펀치볼 전투는 치열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양구 펀치볼하면 시래기를 떠올리는 사람이 더 많다. 양구라는 이름처럼 햇볕이 유난히 환한 이곳의 시래기는 맛이 좋기로 유명한데 추운 날씨가 무의 맛을 달고 순하게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채소가 추위에도 얼지 않으려면 잎과 줄기, 뿌리 속의 수분은 줄고 당분과 단맛 유리 아미노산 함량이 높아진다. 춥고 햇빛이 흐려지는 가을, 겨울에는 매운맛을 내는 풍미 물질이 더 적게 만들어진다. 겨울 배추와 무로 김장을 담그면 맛이 좋은 이유이다. 요즘이야 사시사철 시래기를 먹을 수 있지만, 시래기는 추울 때 먹어야 제맛이라고 느끼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부드러운 식감과 맛 향긋한 시래기는 알리오 올리오나 크림 파스타와도 어울린다. 시래기와 궁합이 잘 맞는 들기름 한 스푼을 넣으면 더 고소하게 즐길 수 있다. 작게 자른 시래기는 아삭하게 씹는 맛을 더해준다. ©blog.naver.com/catseyesung 일단 독특한 그 맛을 알고 나면 시래기와 안 어울리는 음식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나물, 죽, 찌개, 된장국처럼 흔한 가정식 요리에 더해 밥에도 넣으면 훌륭한 별미가 된다. 시래기를 2~3cm 길이로 썰어 들기름에 무쳐 쌀 위에 얹어 밥을 지은 다음 파, 마늘, 고춧가루를 넣어 만든 양념장을 얹어 비벼 먹으면 구수한 향기가 입속에 가득 채워진다. 저탄고지나 키토제닉 다이어트가 유행하면서 곡물 중심의 식단이 마치 건강을 위협하는 악당인 것처럼 오해하는 사람도 제법 많다. 하지만 농사를 짓고 곡물 위에 문명을 세운 인간이 이제 와서 곡물을 무시하고 폄하하는 건 부당하다. 지구상 여러 지역에서 밀, 쌀, 감자, 카사바 같은 복합 탄수화물 위주의 식품을 주식으로 하고 밋밋한 맛의 주식을 더 먹을 수 있도록 부식을 곁들이는 식문화는 농경 사회의 공통적 특징이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다. 시래기밥을 한입 먹는 순간 탄성이 나온다. 마치 밥에 숨어있었다는 듯이 감칠맛과 풍미를 뽑아내는 시래기의 맛. 말랑한 밥알과 함께 아작아작 씹히는 시래기의 대비되는 식감이 혀끝에 전달해 주는 재미. 한 숟갈 넘길 때마다 긴 여운이 느껴진다. 밋밋한 맛이었던 밥이 시래기를 만나 은은한 풍미를 주는 음식으로 변모한다. 시래기밥으로 소박한 한 끼를 맛보면 곡물 음식에 대한 잘못된 공격을 당장 멈추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바닥에 무를 깔고 만든 시래기 고등어찜은 또 어떤가. 비슷한 풍미 성분을 공유하는 식재료를 함께 요리하면 잘 어울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헤어졌던 시래기와 무가 다시 만나 이뤄내는 풍미 조합이라니. 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 돼지고기 김치찜에 시래기를 더해서 시래기 김치찜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일반 김치찜보다 맛이 덜 자극적이다. 생으로 먹는 채소 샐러드와 달리 따뜻한 시래기는 많이 먹어도 속이 편안하다. 이렇게 맛 좋은 시래기를 한국인만 먹을 리 없다. 이탈리아 풀리아 사람들도 순무 줄기와 잎을 귀 모양의 파스타(orecchiette)에 넣어 오일에 볶아 먹는다. 무의 줄기와 잎을 잘 씻어서 생것 그대로 파르메산 치즈, 마늘, 올리브유, 잣과 함께 갈아 무청 페스토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익히지 않고 무청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톡 쏘는 맛이 있다. 견과류를 조금 더하면 맛이 약간 부드러워진다. 먹을 수 있는 한 식재료를 버리지 않고 아껴 쓴다는 건 예로부터 세계 공통의 법칙이었을 것이다. 과거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이었던 시래기가 이제는 모두가 즐기는 별미로 자리 잡으면서 원래보다 더 부드러운 식감과 맛으로 재탄생했다. 16세기 가난한 이탈리아 농민이 먹을 것이 없어서 만들어 먹은 옥수수죽 폴렌타(polenta)가 현대에 와서는 미식가가 즐기는 요리가 된 것과 유사하다. 이제 한층 부드럽고 맛있어진 시래기를 더욱 즐기면서도 이 독특한 식재료의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겨울 바다의 선물, 청어

K-uisine 2021 WINTER

겨울 바다의 선물, 청어 청어는 오랫동안 세계인의 주식이 되어온 생선이다. 요즘 한국에선 청어를 해풍에 말려 김과 미역, 마늘 등 채소와 함께 싸먹는 과메기가 대표적인 요리지만, 전통적으로 다양한 요리법이 전해 내려온다. 쫀득한 식감과 기름진 고소함이 겨울철 별미로 꼽혀 왔다. 청어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친숙한 생선이다. 몸의 폭이 좁고 높이가 높은데, 등쪽은 암청색, 중앙부터 배쪽까지는 은백색인 등푸른 생선의 한 종류이다. 수온 2∼10℃, 수심 0∼150m의 한류가 흐르는 연안에서 무리를 이루어 서식한다. 한반도 연안의 청어 수확량은 매우 불규칙한데, 올 겨울에는 풍어를 기록하고 있다. “맛 좋기로는 청어, 많이 먹기로는 명태” 라는 말이 전해온다. 한국인의 밥상에 오르는 대표적인 생선 세 가지 — 대구, 명태, 청어 —중 맛으로는 청어가 으뜸이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몸이 푸른 물고기’라는 뜻의 청어는 여러 종이 거대한 무리를 지어 바다 곳곳을 다닌다. 북유럽에서 즐겨 먹는 청어는 북대서양 청어(Clupea harengus)이고, 동북아시아와 북미에서는 태평양 청어(Clupea pallasii)를 잡는다. 흰 살 생선인 대구나 명태는 지방이 적지만 청어 살의 지방은 많게는 20퍼센트에 달할 만큼 기름지다. 냉수성 어종으로 겨울부터 봄이 산란기이고 늦가을부터 기름기가 차오른다. 그 밖에도 글리신, 알라닌처럼 단맛을 내는 유리 아미노산이 많이 들어있다. 1803년 김려(金鑢 1766~1821)가 쓴 한국 최초의 어보 (牛海異魚譜, Rare Fish in the Jinhae Sea)에는 청어의 맛이 “달고 연하며, 구워 먹으면 아주 맛있다”라고 했다. 요리사이자 작가인 박찬일(朴贊日 1965~)이 경험한 청어 맛도 이와 비슷하다. 그는 자신의 책 에서 속초 바닷가의 막횟집에서 친구와 먹은 청어구이에 대해 “바람이 사나운 겨울날 굵은 소금을 뿌려 숯불 위에 구운 청어 살은 부드럽고 달았다”고 회상했다. 요리법 청어를 먹는 방법은 다양하다. 주산지인 동해안에서는 날것 그대로 회나 회무침으로 먹는데, 때로는 끓인 청어살을 체로 걸러 멥쌀을 넣고 죽을 쑤기도 하고 밀가루와 달걀을 씌워 지진 뒤 장국에 끓여 찜으로 먹기도 한다. 동남 해안을 낀 경상도 지방에서는 찌개로 끓여 먹기도 한다. 서남쪽 전라도 지방에서는 많은 양의 청어를 조리할 때 가마에 물을 붓고 끓여 수증기로 쪄서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청어는 구워 먹을 때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굵은 소금을 뿌려 노릇하게 구우면 부드럽고 달며 고소하다. 박찬일 요리사는 “기름이 많은 생선이라 구우면 자글자글하게 기름이 배어 맛이 기가 막히다”고 설명했다. 바닷물고기에는 바닷물과 체내 염도의 균형을 유지해 주는 비단백질 질소 화합물인 트라이메틸아민옥사이드(TAMO: trimethylamine oxide)가 들어있다. 이 화합물이 미생물에 의해 트리메틸아민(TMA: trimethylamine)으로 분해되면 비린내를 풍긴다. 겨울철 기름기가 그득한 청어에는 다가불포화지방산(polyhydric fatty acid)이 많이 들어있어 쉽게 산패된다. 이로 인해 비린내가 더 강해지는데, 청어로 찌개를 끓일 때 된장을 풀거나 구울 때 된장을 바르면 비린내가 줄어든다. 된장 속 향기 물질이 비린내가 덜 느껴지도록 하고 된장의 주성분인 단백질이 비린내 성분과 결합하여 휘발을 막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청어의 다양한 조리법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실제로 1996년 1월 27일 동아일보에는 “청어 지짐이, 청어 조림, 청어젓, 청어백숙 같은 경기도식 요리를 요즘은 거의 볼 수 없다”는 기사가 실렸다. 다양한 청어 요리를 맛보기 어려워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청어가 있다가 없다가 한다는 것이다. 청어 수확량은 오래 전부터 들쭉날쭉했다. 찬물을 따라 떼로 몰려다니는 청어는 잡힐 때는 최다 어획류의 하나로 꼽힐 정도였다. 그러다가 잡히지 않을 때는 10여 년 동안 아무 소식이 없기도 했다. 임진왜란을 회고한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의 (懲毖錄, A Record of Penitence and Warning)에는 전란이 일어나기 직전에 일어난 기이한 일들 가운데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동해의 물고기가 서해에서 나고 점차 한강까지 이르렀으며, 원래 해주에서 나던 청어가 최근 10년이 넘도록 전혀 나지 않고 요동 바다(遼海)로 이동하여 나니 요동사람들이 이를 신어(新魚)라고 일컬었다.” 비슷한 시기인 1614년 이수광(李睟光 1563~1629)이 쓴 백과사전적 저서 (芝峰類說, Topical Discussions of Jibong)에도 비슷한 설명이 나온다. 봄철 서남해에서 항상 많이 잡히던 청어가 무려 40여 년 동안 전혀 산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의 (亂中日記, War Diary)에는 청어를 잡아 군량미와 바꾸었다는 기록이 나오기도 한다. 실학자 이익(李瀷 1681~1764)은 자신의 책 (星湖僿說, Miscellaneous Explanations of Seongho)에서 류성룡의 을 인용하면서 이후 상황을 설명한다. 유성룡이 을 쓴 당시에는 오직 황해도 해주에만 청어가 있었지만 이제는 조선 바다 전역에서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청어가 “해마다 가을철이 되면 함경도에서 생산”되고 “봄이 되면 차츰 전라도와 충청도로 옮겨 간다. 봄과 여름 사이에는 황해도에서 생산되는데, 차츰 서쪽으로 옮겨가면서 점점 잘아지고 흔해지기 때문에 사람마다 먹지 않는 이가 없다”고 기록했다. 청어를 겨울 바닷바람에 말린 과메기는 쫀득한 식감과 입 안 가득 퍼지는 어유(魚油)의 고소함이 일품으로 겨울에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다. 잘 말린 청어를 잘게 잘라 마늘, 고추, 마늘쫑 등을 채 썰어 미역이나 김에 싸 먹는다. ©GETTY IMAGES 과메기 겨울로 접어들면 경북 영덕을 비롯한 동해연안의 해촌에선 청어를 말리느라 분주하다. 대가리를 잘라내고 겨울철 해풍에 얼렸다 녹혔다를 반복하면 비리지 않고 고소한 과메기가 된다. ©전재호 이익은 시대별로 어획량이 크게 변하고 잡히는 지역조차 달라진 것은 청어가 변화하는 풍토와 기후를 따라다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250여 년 전 이야기이지만 그의 추측은 옳았다. 국립수산과학원이 1970년부터 2019년 사이 한반도 연안의 청어 어획량을 분석한 결과 동해에서는 수온이 오를수록 어획량이 증가한 반면, 서해의 어획량은 수온이 오를수록 감소했다. 이 연구에 의하면 지난 50년 동안 청어의 어획량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1970년대 초반까지는 5천 톤 내외로 잡히다가 중반 들어 1천 톤 밑으로 떨어졌다. 1980년대 말부터 다시 증가하면서 1999년에 정점으로 2만 톤을 찍고는 다시 2002년에 2천 톤 아래로 내려갔다. 2000년대 중반 다시 어획량이 급증해서 2008년에는 무려 4만 5천 톤이 잡혔다. 이듬해에도 청어 대풍은 이어졌다. 2009년 12월 20일 KBS 뉴스는 사라진 청어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한류성 어종인 청어가 동해뿐만 아니라 물이 따뜻한 동남해와 남해안 일대에서도 많이 잡히면서 경북 영덕에서 청어 과메기를 다시 만들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1960년대 이후 청어가 잘 잡히지 않으면서 주로 경북 해안 지방에서 꽁치로 과메기를 만들게 되었지만 원래 과메기는 청어를 말려 만들었다. 어류학자 정문기(鄭文基 1898~1995)가 1939년 5월 9일 동아일보에 쓴 칼럼에 보면 “청어 다산지인 경상북도에서는 소건한 청어를 ‘과미기’라고 칭하고, 지방특산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수산물”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이처럼 1930년대만 해도 경상북도 해안은 청어의 주산지였다. 요즘에는 과메기를 배추 같은 채소나 김, 미역, 다시마 같은 해초로 쌈을 싸먹는 경우가 많지만 과거에는 불에 구워먹기도 했고 쑥국을 끓여 먹기도 했다. 과메기라는 말이 어디에서 왔는가는 분명치 않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 (徐有榘 1764~1845)는 자신의 책 (佃漁志, Record of Hunting and Fishing)에서 당시 조선의 건조 청어는 등을 갈라 열지 않고 통째로 볏짚 새끼줄로 엮어서 햇볕에 건조하여 만든다고 설명한다. 서유구는 두 눈이 투명하여 새끼줄로 관통해 꿸 수 있어 이를 ‘관목’이라 부른다고 주장했다. 이 말이 변하여 지금의 ‘과메기’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청어를 통째로 말리는 ‘통마리 방식’의 과메기는 소수이긴 하지만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주류는 배를 따고 반으로 갈라 내장과 뼈를 제거하여 해풍에 단기간 건조하는 ‘배지기 방식’이다. 통마리 방식으로 만드는 과메기는 건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게다가 청어는 꽁치보다 더 기름지고 몸통 너비도 커서 말리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꽁치 통마리가 보름이 걸린다면 청어 통마리는 한 달 이상 말려야 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말린 만큼 맛이 더 진하고 한겨울 통마리 청어 과메기에는 알이 들어있어서 더욱 맛이 좋다. 청어는 구워 먹을 때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굵은 소금을 뿌려 노릇하게 구우면 부드럽고 달며 고소하다. 돌아온 청어 깨끗이 씻은 청어의 비늘을 벗겨낸 뒤 칼집을 넣고 소금을 뿌려 구우면 살이 노릇노릇해지며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된다. 기름진 청어는 구웠을 때 담백함이 증폭되면서도 살이 부드러워 입 안에서 녹는다. 반면 가시가 꽤 많아 번거롭기도 하다. ©SHUTTERSTOCK 청어가 다시 돌아왔다. 올해도 청어가 많이 잡히고 있다. 강원도 삼척에서는 청어 소비를 늘리기 위해 어묵, 조림, 튀김과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가공하는 방법도 고려 중이다. 국립수산과학원 연구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청어 어획량이 늘어난 것은 주로 동해의 수온이 따뜻하게 변화하여 청어의 개체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이런 연구 결과가 청어를 마구 잡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덧붙인다. 북대서양에서 남획으로 인해 청어의 어획량이 급감했던 전례를 볼 때 어린 청어를 잡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1970년 노르웨이에서는 남획으로 청어 어획량이 0톤까지 급감했다가 이전의 수준으로 회복되는 데 무려 20년이 걸렸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청어가 정확히 어떻게 무리지어 이동하는지에 대해서도 아직 모르는 게 많다. 청어가 동해로 돌아오긴 했지만 인근의 중국 황해와 일본 북해도에서는 여전히 잘 잡히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잘 모른다. 무분별한 포획보다는 겸허한 마음으로 청어를, 그리고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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