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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마니악한 장르를 대중적으로 만든 K-오컬트의 세계

Entertainment 2024 AUTUMN

마니악한 장르를 대중적으로 만든 K-오컬트의 세계 올해 개봉한 장재현(張在現 Jang Jae-hyun) 감독의 영화 < 파묘 (破墓 Exhuma) > (2024)는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최근 한국의 오컬트 영화는 공포적인 요소를 극대화하기보다, 다양한 요소를 결합하여 대중이 즐길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오컬트가 마니악한 장르라는 편견을 깨고 있다.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영화 < 파묘 (破墓 Exhuma) >(2024). 오컬트 장르에 대중적이고 오락적인 재미요소를 더해 K-오컬트를 완성했다는 평이다. ⓒ 주식회사 쇼박스 과거 “뭣이 중한디”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었던 영화 < 곡성(哭聲, The Wailing) >(2016)은 680만 관객을 기록하며 K-오컬트가 거둘 수 있는 최대의 성공으로 여겨진 바 있다. < 곡성 > 개봉 1년 전에 개봉한 장재현 감독의 이 거둔 540만 관객 흥행을 넘어선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장 감독이 다시 들고 온 영화 < 파묘 >는 그 기록을 갈아치웠다. 1,190만 관객이 영화에 열광했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오컬트 장르를 고집해 온 장재현 감독만의 색깔이 분명히 느껴지는 대목이고, 그것이 이러한 놀라운 흥행을 가능하게 한 저력이었다고 여겨진다. 그건 바로 마니악한 장르로 여겨지던 오컬트를 대중적으로 해석해 낸 그만의 방식이다. 오컬트에 장르적 재미를 더하다 < 파묘 >는 무당(巫堂 한국에서 신을 섬겨 길흉을 점치고 굿을 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과 풍수사(風水師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좋은 터를 잡아 주는 사람) 그리고 장의사(葬儀師 장례 의식을 전문적으로 도맡아 하는 사람)가 등장하고 이들이 귀신 같은 존재들과 사투를 벌이는 내용으로 분명 오컬트 장르의 색깔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특이한 건, 오컬트 특유의 마니아적인 공포 속으로 관객들을 빠뜨리기보다는 훨씬 더 대중적이고 오락적인 장르물의 재미요소를 더했다는 점이다. 영화가 입소문을 탄 후 관객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MZ세대 무당 화림(김고은 金高銀 Kim Go-eun)과 봉길(이도현 李到晛 Lee Do-hyun), 어딘지 정감이 가는 꼰대 풍수사 상덕(최민식 崔岷植 Choi Min-sik), 감초 같은 해학이 묻어나는 장의사 영근(유해진 柳海真 Yoo Hai-jin)을 일컬어 ‘묘벤져스’라고 불리기도 했다 오컬트 특유의 공포물이 갖는 오싹함이 있지만, 이들 묘벤져스의 장르적인 재미를 따라가면 마치 저 귀신과 치고받고 싸우는 액션물 같은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게다가 영화 후반부로 가면 묫자리를 잘못 써서 흉흉해진 집안 이야기를 넘어서 일제 잔재의 과거사를 파헤치는 이야기까지로 확장된다. 일제의 쇠말뚝에 의해 끊긴 민족정기를 잇기 위해 묘벤져스가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는 냉혹한 일본의 정령과 싸우는 민족적인 영웅처럼 그려진다. 이러한 장르적 재미를 더한 영화는 공포를 줄이는 대신 대결 구도를 선명히 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장르적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 됐다. 이것은 < 검은 사제들 >, < 사바하(Svaha: The Sixth Finger) >(2019)에 이어 < 파묘 >까지 이른바 장재현 감독의 오컬트 3부작에서 공통으로 느껴지는 특징이다. 그리고 이건 최근 K-오컬트라는 지칭이 생길 정도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한국적 오컬트의 특징이기도 하다. 범죄물과 결합한 K-오컬트 K-오컬트는 죽음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종종 범죄물과 결합하는 양상을 보이곤 한다. SBS에서 방영된 김은희(金銀姬 Kim Eun-hee) 작가의 드라마 < 악귀(Revenant) >(2023)가 대표적인 사례다. 미스테리한 댕기를 만진 후 귀신이 든 주인공과 귀신을 보는 민속학자 그리고 강력범죄수사대 경위가 연달아 발생하는 의문의 죽음을 추적하는 이야기를 다뤘다. 여기서 악귀는 자신이 깃든 자의 욕망을 들어주면서 점점 존재가 커지고, 주인공이 가진 세상에 대한 욕망과 분노에 반응한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마음만으로 실제 악귀가 그걸 실행해내는 걸 알게 된 주인공은 민속학자의 도움을 받아 악귀와 싸워나가게 된다. 이건 오컬트의 소재로 종종 등장하는 저주를 악귀라는 존재로 해석해 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범죄와 오컬트의 결합은 일찍이 김홍선 감독의 드라마 < 손 the guest >(2018)에서도 시도된 바 있다. 막강한 힘을 가진 귀신에 빙의된 자들이 살인을 저지르고, 이를 막으려는 이들의 협업을 그렸던 작품이다. 이 두 드라마는 범죄물이 접목된 K-오컬트로서 도저히 인간이 저지른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잔혹한 범죄들에 대한 비판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처럼 K-오컬트는 그저 자극적인 공포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인 의미까지 담아내기도 하는데, 보다 보편적인 공감대를 얻기 위한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K-오컬트가 되기까지 오컬트라고 하면 악령 같은 초자연적 존재가 등장하고 이에 맞서는 사제들의 구마 의식 같은 것을 소재로 하는 장르로 받아들여지곤 했지만, K-오컬트는 여기에 한국적인 토속적 색깔을 더해 넣는다. < 파묘 >에도 등장하지만, K-오컬트의 단골 소재처럼 나오는 무속인들의 굿 장면이 대표적이다. 고조되는 북소리와 흥분시키는 춤사위를 더해 강력한 에너지를 경험하게 해주는 무속인들의 세계는 영화 < 곡성 >에서도 등장해 세계인들을 매료시킨 바 있다. 인간의 세계와 귀신의 세계 사이를 잇는 존재로서 무속인들이 보여주는 한국의 샤머니즘은 전 세계 어디서도 보기 힘든 K-오컬트만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 파묘 >는 영화 스토리 뿐만 아니라 가죽 자켓, 실크 셔츠, 청바지, 컨버스 운동화 등 기존 무속인의 틀을 깨고 주인공 무속인 화림의 개성을 살린 스타일링도 관객의 주목을 받았다. ⓒ 주식회사 쇼박스 하지만 좁은 의미에서 오컬트라는 장르를 구마 의식이나 사제, 악령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칭한다면, 과거 1998년에 개봉한 < 퇴마록 >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에는 3명의 퇴마사가 등장하는데, 여자의 혼이 봉인된 칼을 사용하는 무사, 기도로 악마와 싸우는 신부 그리고 부적술과 독심술을 사용하는 아이가 그들이다. 즉 서구의 신앙과 우리네 토속신앙을 접목하려는 K-오컬트의 노력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K-오컬트의 또 하나의 특징은 < 파묘 >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보다 대중적인 장르들을 결합해 B급 장르라는 한계를 넘어서려 한 점이다. < 퇴마록 >이 오컬트 장르가 아니라 판타지 액션 장르로 대중들에게 다가갔던 것처럼, 2015년 방영된 장재현 감독의 역시 사제복마저 멋진 수트처럼 소화해 낸 장르적인 해석으로 500만 관객을 넘기는 흥행을 기록했다. 악령이 든 소녀의 구마의식을 그린 오컬트 영화 < 검은사제들(The Priests) >(2015). ⓒ 영화사 집 K-오컬트는 토속신앙이나 민담, 설화 같은 고전에서 재해석해 낸 캐릭터들 같은 한국적인 색채를 더해 넣으면서, 동시에 마니악한 B급 장르가 아닌 보다 대중적인 장르로 접근하려는 특징을 보인다. 그래서 로컬 색깔이 갖는 차별성은 물론이고 글로벌하게 이해되는 장르의 보편성까지 아우르는 세계가 되었다. 이것은 현재의 글로벌 콘텐츠 시장이 요구하는 것으로서 K-오컬트가 왜 경쟁력을 갖게 됐는가를 설명해 준다.

버추얼 아이돌이라는 신세계

Entertainment 2024 SUMMER

버추얼 아이돌이라는 신세계 버추얼 아이돌 신드롬이 불고 있다. 이들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아이돌 그룹으로 여느 아이돌처럼 앨범을 내고 SNS로 일상을 공유하며, 팬들과 소통한다. 팬들은 버추얼 아이돌의 실체를 궁금해하기보다 이들의 음악과 춤에 집중한다. 지금 버추얼 아이돌은 현실 세계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며 새로운 생태계로 주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 VLAST 2024년 2월,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백화점 더현대 서울이 온통 가상의 존재로 뒤덮였다. 오픈 이래 최대 규모라는 미디어 아트도 대단했지만, 백화점 지상과 지하를 모두 점령한 버추얼 아이돌의 기세가 놀라웠다. 이 날 참여한 버추얼 아이돌은 6인조 걸그룹 이세계아이돌(ISEGYE IDOL)과 5인조 보이그룹 플레이브(PLAVE), 그리고 6인조 걸그룹인 스텔라이브(StelLive)까지 무려 세 팀의 버추얼 아이돌이 동시에 대형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가로 33m, 세로 5m 규모의 LED를 통해 30분간 송출된 이들의 공연은 팬은 물론 그날 현장을 찾은 누구나 관람할 수 있도록 무료로 진행되었다. 또 지난 3월 9일에는 플레이브가 인기 걸그룹 르세라핌(LE SSERAFIM), 가수 비비(BIBI) 등을 제치고 MBC 음악방송 < 쇼! 음악중심 >에서 1위를 차지했다. 버추얼 아이돌이 국내 공중파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난 3월 9일 플레이브는 버츄얼 아이돌 최초로 국내 공중파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했다. 플레이브는 팬들을 위해 1위 인증샷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 VLAST 버추얼 아이돌 신드롬 버추얼(Virtual), 즉 ‘가상’이라는 점 때문에 이들이 현실에서 얻는 인기까지 가짜라고 느끼는 이들이 있다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 이들의 인기가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일부 마니아 문화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좋아하는 팬들의 팬심은 결코 버추얼이 아니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2023년 9월,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는 국내 최초 메타버스 연계 오프라인 뮤직 페스티벌인 ‘이세계 페스티벌’이 열렸다. 버추얼 걸그룹인 이세계아이돌과 버추얼 유튜버, 버추얼 아티스트를 비롯해 현실 아티스트 등 총 16팀의 아티스트가 음악으로 가상세계와 현실을 연결했다. 메타버스가 현실이 되고, 현실이 메타버스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 페스티벌을 찾은 현장 방문객은 20,000여 명에 달했으며, 극장 동시 상영 객석률은 95.7%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또 2023년 12월 28일, 국내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텀블벅에서는 이세계아이돌 관련 웹툰 ‘마법소녀 이세계아이돌’ 단행본 펀딩이 진행됐다. 목표 금액은 2천만 원이었다. 펀딩이 시작된 지 24시간 만에 25억 원이 모였고, 한 달 뒤 최종 모금액 41억 9,889만 원을 달성했다. 텀블벅에서 진행한 국내 크라우드 펀딩 사상 최고 모금액이었다. 이제 데뷔 갓 1년을 넘긴 버추얼 보이 그룹 플레이브의 사례도 놀랍다. 2024년 2월 발표한 이들의 두 번째 미니 앨범 < ASTERUM : 134-1 >은 발매 첫 주에만 56만 9,289장이 팔렸다. 이는 버추얼 보이 그룹이 거둔 최초이자 최고 기록이었고, 그 비교 대상을 일반 보이 그룹으로 넓혀도 그룹별 최고 기록 17위에 달하는 상당한 수치였다. 2023년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한 엔데믹 분위기 속 오프라인이 다시 강조되며 케이팝 아이돌 그룹 초동(발매 첫 주 판매량)이 전반적으로 하락세에 들어선 가운데 거둔 성과이기도 했다. 이들이 케이팝계에서 주목받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3년 발표한 데뷔 앨범 < ASTERUM : The Shape of Things to Come >은 초동 판매량 20만 장을 넘기며 업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2024년 현재, 한국의 버추얼 아이돌을 둘러싼 거의 모든 지표가 이들이 자신만의 생태계를 확실히 다져가고 있다는 증거를 명확히 가리키고 있다.   현실과 가상세계가 음악을 통해 연결된다는 컨셉으로 열린 이세계페스티벌(ISEGYE FESTIVAL)은 국내 최초 메타버스 연계 오프라인 뮤직페스티벌이다. 해당 무대에서 공연하는 이세계아이돌(ISEGYE IDOL)의 모습. ⓒ 패러블 엔터테인먼트 버추얼 아이돌의 시작 버추얼 아이돌이 문화산업계에 이토록 빠르게 자리할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팬데믹의 영향이 컸다. 지난 몇 년간 전 세계에 걸친 팬데믹은 문화예술계 대부분의 영역을 초토화했지만, AI(인공지능), 메타버스 등 기술을 중심으로 한 흐름에 있어서만은 21세기의 지난 모든 시간을 합해도 부족할 만한 부흥의 계기가 되었다. 인간과 인간이 직접 만나서는 안 되는, 현재를 살아가는 인류가 전혀 겪어 보지 못한 종류의 비극이 진행되는 동안 기술은 개척할 수 있을 만한 모든 업계의 빈틈을 호시탐탐 노렸다. 마침 세상은 IP(지적재산권) 소유자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기술과 IP를 결합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으며, 대부분의 도전이 그렇듯 살아남은 일부를 제외한 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버추얼 아이돌은 그렇게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생존자 가운데 하나였다. 특색 있는 버추얼 아이돌 사실 버추얼 아이돌, 나아가 버추얼 휴먼에 대한 산업과 대중의 욕구는 이전부터 꾸준히 있었다. 한국인이라면 아마 버추얼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가장 먼저 사이버 가수 아담(Adam)을 떠올릴 것이다. 1998년 1월 데뷔한 그는 당시 대세를 이루던 세기말 감성과 호응하며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2020년 등장한 걸 그룹 에스파(aespa)는 데뷔 초 현실 멤버 4명에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그들의 아바타 4명을 합한 8인조 그룹이라며 자신들을 홍보했고, 2021년에는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없이 사람을 닮은 비주얼을 자랑한 버추얼 인플루언서 로지(Rozy)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다만 현재 인기를 끌고 있는 버추얼 아이돌은 과거의 버추얼 휴먼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띤다. 버추얼 휴먼의 경우 크게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캐릭터형과 3D로 구현된 실사형으로 나눌 수 있다. 앞선 사례들이 사람에 가까운 실사형이었다면 현재 인기를 끌고 있는 버추얼 아이돌 그룹 대부분은 캐릭터 형이다. 더현대 서울 팝업에 참여한 세 그룹 역시 멤버 모두 캐릭터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실사형의 경우 그래픽 기술 구현을 하기 까지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소요된다. 팬과 빠르고 가깝게 교류할수록 호감을 얻는 아이돌 산업의 기본 규칙을 생각하면 꽤 치명적인 단점이다. 또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을 지나치게 닮은 경우 느끼는 불쾌한 감정을 뜻하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도 무시할 수 없다. 실사형과 캐릭터형으로 이들의 외양을 나누고 나면, 이제는 속성을 따져볼 차례다. 최근 버추얼 아이돌계 가장 큰 성공 사례로 주목받는 이세계아이돌과 플레이브를 보자. 흔히 버추얼 아이돌이라는 같은 카테고리로 분류해버리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쉽게 말해 이세계 아이돌은 ‘버추얼’에 플레이브는 ‘아이돌’에 방점을 찍으며 완전히 다른 영역에서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길을 걸어나가고 있다. 버추얼과 유튜버의 합성어인 ‘버튜버(VTuber)’ 멤버를 앞세운 이세계아이돌은 그룹 결성 및 운영, 활동 방식까지 자신들이 속한 버튜버 세계의 공식을 기본으로 한다. 서바이벌을 통해 아이돌 그룹으로 탄생시킨 팀 서사부터가 버추얼과 아이돌 사이의 새로운 연결 고리 그 자체다. 이 연결 고리는 비단 아이돌 뿐만이 아닌 앞서 언급한 ‘이세계 페스티벌’ 같이 음악계 전반을 아우르는 페스티벌 영역까지 확장되는 중이다. 한편 플레이브는 단지 외양만 캐릭터일 뿐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 보이 그룹과 전혀 다르지 않은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플레이브는 여느 아이돌 그룹처럼 앨범을 내고 음악 방송 무대에 서며 라디오에 출연한다. 영상통화로 진행되는 팬 이벤트도 열고 팬들과 소통하는 실시간 라이브 방송도 주기적으로 제작한다. 플레이브의 이 같은 특징은 이들의 소속사가 버추얼 캐릭터 전문 회사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원천 기술은 버추얼 캐릭터와 인간 사이의 감도 높은 결합이다. 인간의 매력과 버추얼 캐릭터의 매력이 지금까지 존재한 적 없는 새로운 시너지로 승화한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자신들의 노래를 직접 작사/작곡하는 등 활발히 참여하며 실력파 버추얼 아이돌이라는, 지금껏 없던 길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버추얼 아이돌의 미래 아이돌, 캐릭터, 유튜버, 음악이 혼재하는 세상. 그곳에 버추얼 아이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현시점에서 이들은 쉽게 정의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실제로 버추얼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조차 자신들이 사랑하는 세계가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아직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이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 그것 하나만은 명쾌한 사실이다. 팬들은 버추얼 아이돌이 어떤 세계에서 왔고 어떤 외양을 가졌는지 중요하지 않다. 또 멤버 뒤에 있는 실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으며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버추얼 아이돌의 모습 그대로와 그들의 음악, 춤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마음은 실존하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일반 팬심이나 덕질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앞으로 버추얼 아이돌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알기 위해선 결국 그를 좋아하는 팬들의 마음을 편견 없이 똑바로 바라보는 게 가장 쉬운 지름길일 것이다.

새로운 K-코미디의 흐름

Entertainment 2024 SPRING

새로운 K-코미디의 흐름 최근 한국의 코미디, 이른바 K-코미디에 새로운 흐름이 생겨났다. 레거시 미디어에서 탈피해 유튜브 같은 뉴미디어로 주 무대가 바뀌면서 형식도 내용도 변화했다. < 피식대학(Psick University) > 은 그 변화의 최전선에 서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피식대학의 인기 콘텐츠인 피식쇼에 가수 전소미가 게스트로 출연한 모습이다. 국내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캐나다 싱어송라이터 다니엘 시저, 미국 아티스트 미스치프 등 국내외 명사들이 게스트로 출연한다. 지난해 2023 백상예술대상에서 유튜브 채널로서는 최초로 TV 부분 예능 작품상을 받았다. ⓒ 메타코미디 “제 생각에는 코미디와 예술은 정말 많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시대가 변하게 되면 새로운 예술가들이 탄생하기 마련이죠. 이를테면 후기 인상주의처럼요. 우리는 유튜브의 반 고흐, 폴 고갱 그리고 폴 세잔입니다.” 유튜브 채널 < 피식대학 > 에 2021년 11월 업로드 된 콘텐츠 ‘더 토크’에서 “코미디는 뭐라고 생각하느냐”라는 MC의 질문에 개그맨 이용주가 답한 말이다. 그는 함께 < 피식대학 > 을 이끄는 김민수, 정재형 그리고 자신을 각각 ‘유튜브의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폴 세잔’이라 칭했다. < 피식대학 > 이 던지는 출사표 인터뷰 형식의 ‘더 토크’는 그 자체가 하나의 코미디다. 유튜브라는 글로벌 플랫폼에 걸맞게 글로벌 토크쇼를 표방하고 있다. 그래서 외국 여성이 MC를 맡아 영어로 인터뷰를 진행한다. 물론 중간중간 콩글리시와 한국어가 사용되지만, 이들의 태도는 마치 미국의 유명 토크쇼에 출연한 것처럼 자신만만하다. 과도한 자신감으로 시작부터 자신들을 ‘세계에서 제일가는 최고의 코미디 그룹’이라고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을 유발한다. 하지만 이건 코미디면서 동시에 이들의 새로운 출사표처럼 여겨진다. 달라진 시대에 달라진 예술가가 나오듯, 자신들 역시 새로운 코미디를 열어가겠다는 것이다. 이 다소 황당해 보이는 토크쇼는 ‘더 피식 쇼(The PISIC SHOW)’라는 이름으로 < 피식대학 > 의 대표 콘텐츠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채널 구독자 수 293만 명(2024년 3월 기준)에 달하는 < 피식대학 > 은 한때 주말 저녁만 되면 온 가족을 TV 앞으로 모이게 했던 공개 코미디의 시대가 저물면서 급부상했다. KBS < 개그콘서트 > , SBS < 웃찾사 > , MBC < 개그야 > 까지 한동안 스타 개그맨들이 탄생했던 코미디 프로그램들은 한 때 공개 코미디의 전성시대를 구가했지만,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프로그램이 하나둘 폐지됐다. 급기야 지난 2020년 6월, 끝까지 버텨왔던 < 개그콘서트 > 마저 폐지되면서 공개 코미디 시대가 끝을 맺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23년 11월 < 개그콘서트 > 가 부활했지만 그 힘이 예전 같지는 않다. 그저 KBS라는 공영방송으로서 코미디의 명맥을 잇는다는 명분에 머무는 정도다. 공개 코미디의 시대가 저무는 사이, 여기서 빠져나온 개그맨들은 유튜브에 둥지를 틀고 새 길을 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개 코미디가 갖는 ‘서바이벌 구조’ 때문에 역량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던 개그맨들이 유튜브에 개인 채널을 꾸리는 방식으로 시작됐다. 이후 유튜브에 적응된 코미디 콘텐츠들이 생겨나 인기를 끌면서 점점 채널 자체가 브랜드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한사랑산악회’나 ‘05학번이즈백’, ‘B대면데이트’ 같은 히트 코너를 만든 < 피식대학 > 이나 ‘장기연애’ 같은 하이퍼 리얼리즘의 성격을 가진 스케치 코미디를 만든 < 숏박스 > 가 대표적이다. 피식대학 콘텐츠 ‘05학번 이즈 백’에서 파생된 ‘05학번 이즈 히어’는 2005년 캠퍼스를 주름잡던 이들이 중년이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20년대 한국의 30대가 당면한 사회상과 신도시 기혼 부부의 일상을 섬세하게 모사하여 시청자들의 공감과 인기를 얻었다. ⓒ 메타코미디 산악회에 소속되어 있는 중년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그린 피식대학의 ‘한사랑 산악회’는 주변에 정말 있을 법한 아저씨들의 모습을 다양한 캐릭터와 디테일을 살려 보는 재미를 더했다. ⓒ 메타코미디 달라진 미디어 플랫폼, 달라진 코미디 형식 달라진 미디어 플랫폼은 그 위에 얹어지는 코미디에도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공개 코미디는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펼치는 콩트 코미디에 머물러 있었다면, 유튜브 같은 새로운 미디어에서의 코미디는 배경부터 일상으로 옮겨졌다. 초창기에는 일상에서 펼쳐지는 몰래카메라가 인기를 끌더니 이후에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하이퍼 리얼리즘을 보여주는 스케치 코미디가 전성시대를 구가하는 중이다. 또 개그맨 곽범, 이창호가 이끄는 < 빵송국 > 에서는 보정카메라를 이용해 탄과 제이호라는 2인조 보이 그룹 매드몬스터를 만들었다. 부캐를 통해 새로운 세계관이 만들어지면서 이른바 ‘세계관 코미디’라는 장르가 생겨났다. 세계관이 갖는 과몰입은 그 가상 설정이 마치 진짜인 듯 몰입해 주는 팬들에 의해 실제 현실에서의 커머셜로 이어지기도 했다. 매드몬스터를 캐릭터로 한 굿즈 상품 같은 것들이 이벤트로 판매되기도 했던 것. 이처럼 레거시 미디어에 머물러 무대를 벗어나지 못했던 코미디들은 유튜브라는 열린 세계를 만나 그 소재나 형식 또한 다양해졌다. < 피식대학 > 의 ‘피식쇼’ 같은 코너는 유튜브라는 글로벌 플랫폼 덕분에 가능한 인기 토크쇼가 되었다. BTS RM에서부터 박재범, 손석구 등 국내의 내로라하는 스타들은 물론이고 글로벌 스타나 명사들도 출연할 정도로 인기다. 그래서 영화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의 배우 크리스 프랫이나 영화감독 제임스 프랜시스 건 주니어에게 세계 최고의 쇼에 출연한 기분을 묻고, 소설 「개미」의 저자 베르나르 베르베르에게 개미투자자의 미래를 묻는 식의 토크 코미디의 세계가 열렸다. 또 각각의 채널을 운영하면서도 이미 개그맨 선후배들로 연결된 이들의 관계는 다양한 협업을 통한 세계관의 또 다른 결합을 가능하게 했다. 일종의 유튜브를 플랫폼으로 하는 코미디 유니버스가 열린 것이다. 이후 유튜브에서 이미 확고한 브랜드를 갖고 있는 채널들이 모여 하나의 코미디 레이블인 메타 코미디가 설립되기도 했다. 유튜브를 기반으로 하는 코미디 레이블이 의미 있는 건, 그간 개인 채널로 산재해 있던 유튜브 코미디를 하나로 연합함으로써 실질적인 비즈니스가 가능하게 됐다는 점과 이로써 레거시 미디어의 코미디와는 다른 새로운 시대의 코미디를 선언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매드몬스터’는 빵송국의 구독자 수를 폭발적으로 높인 대표 콘텐츠다. 스마트폰 카메라 앱의 뷰티 필터 효과를 이용해 2인조 보이 그룹을 컨셉으로 활동했다. ⓒ 메타코미디 K-코미디, 글로벌 반향 가능할까 우리가 영국의 코미디언이자 배우였던 찰스 스펜서 채플린 주니어의 연기나 영국의 대표 시트콤 중 하나인 < 미스터 빈 > 을 보며 웃고 즐겼던 것처럼 코미디에 그 시대나 국가, 언어의 장벽이 있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이들 코미디가 언어보다 보다는 원초적인 몸의 언어를 활용하고 있는 특징을 보면 언어적, 문화적 장벽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웃음에는 그 문화권만이 갖는 독특한 정서 같은 것들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마련이다. 하지만 유튜브 같은 글로벌 플랫폼은 오히려 이러한 정서적 장벽들을 허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피식쇼가 미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로 활동하는 월터 홍을 만났을 때, 그는 이 쇼에서 어설픈 영어를 하는 개그맨들을 콕 짚어 “영어가 구리다”고 말하면서 언어유희를 하는 대목이 그렇다. 이용주가 ‘소개’라는 단어를 ‘Cow Dog’라고 표현하자, 월터 홍도 맞장구를 치며 ‘Cow Crab’이라고 하는 과정에서 한국어와 영어의 언어 장벽을 웃음이라는 코드로 승화시키기 때문이다. 웃음의 기원 중에는 낯선 이들이 야생에서 만났을 때 서로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드러내기 위해 생겨났다는 설이 있다. 즉 웃음에서 서로 다른 문화나 정서, 언어 같은 건 애초 넘지 못할 장벽이 아니라 넘어서야 하는 장벽으로서 존재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 피식대학 > 같은 자칭 ‘세계에서 제일가는 최고의 코미디 그룹’이 앞으로 이 유튜브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어떤 행보를 그려갈 것인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건 K-코미디가 글로벌을 향해가는 길이기도 하지만, 웃음을 매개로 그간 장벽으로 여겨졌던 것들을 허물어가는 길이기도 할 테니 말이다.

250이 만든 뽕의 새로운 세계

Entertainment 2023 WINTER

250이 만든 뽕의 새로운 세계 250은 가장 한국적인 음악이지만 모두가 외면하고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한 뽕짝이라는 장르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탄생시켰다. 그의 확고한 음악 세계가 담긴 앨범 (2022)은 한국 대중음악계를 넘어 세계가 집중했으며, 지금도 그 영역을 계속해서 넓히고 있다. 가수이자 DJ, 작곡가, 그리고 프로듀서인 250은 2023년 한국 대중음악에서 단연 돋보이는 주인공이다. 한국인의 고유 정서인‘뽕’이라는 장르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여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었다. ⓒ 비스츠앤드네이티브스 매콤한 국물과 꼬불꼬불한 뜨거운 면을 호호 불어먹는 매력이 있는 라면. 당신이 한국의 라면을 끓이는 데 처음 도전했다고 생각해 보자. 적정량의 물을 끓이고, 건더기스프와 면을 넣고…. 그런데 아뿔싸, 라면 맛의 핵심인 빨간 분말스프 가루를 넣는다는 걸 완전히 잊었다. 그것을 한국식 라면이라 부를 수 있을까? 라면에서 가장 중요한 분말스프를 빼놓고는 라면의 맛을 논할 수 없는 것처럼,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한국 대중음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 있다. 바로 뮤지션이자 프로듀서인 250이다. 이견이 없는 올해의 음악인 그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맵고 뜨거운 인물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250은 지난해 발표한 정규 1집< 뽕 > 으로 한국의 그래미상으로 불리는 제20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고 영예인 ‘올해의 앨범’과 ‘올해의 음악인’, ‘최우수 일렉트로닉 앨범’, ‘최우수 일렉트로로닉 노래’ 등 네 개 부문을 석권하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둘째, 그는 데뷔 1년 만에 한국 음악계를 뒤집어 놓은 신인 케이팝 그룹 ‘뉴진스’의 여러 곡에 참여한 프로듀서다. 250은 한국에서 구시대적이라고 폄훼하는 음악 장르인 ‘뽕짝’을 베이스로 일렉트로닉 음악이나 힙합 요소를 더하여 완전히 독창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난 250은 특유의 진지한 표정으로 앨프리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1899~1980) 감독의 영화< 이창(Rear Window 裏窓) > (1954)을 보았는지를 기자에게 물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영화< 이창 > 에서부터였다며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저는 수년 동안 뽕짝의 본질을 탐구하고 저의 음악과 접목해 보려고 했지만, 그 답을 찾는 것이 순탄치 않았어요. 답을 찾던 중 영화< 이창 > 에서 영감을 받았고< 이창 > (2018년 싱글 앨범)이란 곡을 쓰게 되었죠. 어떤 투명한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뽕’과 ‘비(非)뽕’이 서로 마주 보는 느낌이랄까요.” 뽕과 비(非)뽕, 과거와 현재, 세련됨과 촌스러움 따위가 멀리서 대면하는…. 그 형이상학적인 ‘창’은 250의 음악 세계를 설명하는 키워드다. “‘뽕’은 오묘한 단어입니다. 여러 면에서 한국인에게 특별한 감흥을 주죠. 트로트를 속되게 이르는 말인 ‘뽕짝’은 사실 북소리를 표현하는 의성어 ‘쿵짝’에서 비롯되었어요. 영어로 하면 ‘Boom Clap’ 같은 거죠. 하지만 ‘쿵짝’은 다른 장르에서도 통용될 수 있으니, 뭔가 더 우스꽝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쿵’이라는 말을 ‘뽕’으로 바꾼 겁니다. 자기비하적 측면이죠. ‘뽕’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이미지도 있어요. 1986년 상영된 성인 영화< 뽕(Mulberry) > 이요. 당시 크게 흥행하여 다양한 후속작이 나오기도 했죠. 그리고 한국에서 마약을 뜻하는 은어이기도 하고요. 우스꽝스럽거나 낯간지럽거나 어둡거나….이렇게 다층적이면서 복합적인 상징과 느낌들이 ‘뽕’, 이 단 한 음절에 축약된 겁니다.” 애수와 낭만, 즐거움이 담긴 음인 뽕짝은 한국에서 사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문화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애초에 ‘뽕’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로 담고 있으며, 일상에서 거의 쓰이지 않은 단어인 것처럼 말이다. 250은 음지에서 저평가받고 있는 뽕짝을 대중음악 세계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으며, 새로운 음악의 성취를 거둔 셈이다.   250이 탐구한 음악 세계   250은 한서대학교에서 영상 음악 제작을 전공했다. 20대부터 한국 공중파 TV 드라마의 음악을 만들었고,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전자음악 성지(聖地)인 클럽 케잌샵(cakeshop)에서 DJ로도 활약했다. 그때부터 “유별난 음악을 트는 이가 등장했다”라는 입소문이 클러버들 사이에 돌기 시작하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이후 SM엔터테인먼트의 의뢰를 받아 NCT127, BoA, f(x) 같은 메이저 케이팝 가수의 원곡에 대한 정식 리믹스 음원을 발표했다. 또 힙합 팬들이 열광하는 래퍼 이센스의< Everywhere > 와< 비행 >등을 프로듀스 했다. 그러다 그가 2018년부터 저예산 다큐멘터리 시리즈< 뽕을 찾아서 > 를 내놓기 시작했을 때만해도 음악업계에서는 “비트만 잘 만드는 줄 알았더니 코미디도 제법이다”라는 식의 가벼운 반응들이 다수였다. 2018년 싱글< 이창 > , 2021년 싱글< Bang Bus > 가 조용히 회자되더니 마침내 2022년 3월, 정규 1집 앨범< 뽕 > 이 발매되자마자 음악 팬과 평단은 그의 독창적인 음악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기 시작했다. 250은 미국 뉴욕의 할렘에 힙합이 흐르거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파벨라 펑크(favela funk) 장르가 울려 퍼지듯 뽕짝은 마치 한국이란 문화권의 배경음악 같은 것이 아니겠냐고 부연했다. 청각적으로도 ‘게토(ghetto 특정 민족이 사회의 주류 민족과 고립되어 살아가는 것)화’한 요소들이야말로 힙합 프로듀서이자 클럽 DJ 출신인 250이 뜻밖에 발견한 뽕짝의 매력이다. “대단한 연주자 또는 50인조 오케스트라가 오래전에 녹음해 둔 샘플을 후대에 조악한 장비로 구현해 낸 힙합곡들…. 거기서 풍기는 특유의 멋이란 게 있잖아요. 뽕짝도 마찬가지예요.” 그는 뽕짝을 탐구하면서 느낀 또 한 가지는 뽕짝이 한국의 식문화와도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뜨거워야 잘 먹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김치찌개나 전골처럼 맵고 뜨거워야 ‘잘 먹었다’라고 느끼는 것처럼요. 저 역시 얼마 전에 벨기에에 일주일 정도 다녀왔는데, 귀국하자마자 매니저와 김치찌개를 먹으러 기사식당에 갔어요. 한국인에게는 어정쩡한 것보다는 화끈한 것이 통하는 것처럼 ‘뽕짝’도 그런 점이 있어 통하는 것 같아요. 저는 뽕짝이 확실하게 슬픈 곡조, 그리고 확실하게 신나는 그 무언가가 투박하게 결합된 매력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250이 ‘뽕’의 세계를 탐구하기 시작한 것은 2013년경부터다. 케잌샵 DJ 시절, 동료들과 단합대회를 다녀오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뽕짝 음악이 담긴 리믹스 테이프를 샀다. 서울로 돌아가 이 음악을 리믹스 해보자며 장난처럼 의기투합한 게 시작이었다. 그 장난 같은 시작이 250을 장난이 아닌 뽕짝의 경지까지 끌고 온 셈이다. 익숙한 뽕짝의 맛   250이 만든 익숙한데 낯설고 촌스럽지만 신묘하며 힙하기 이를 데 없는 ‘뽕’의 세계에 가장 열성적인 관객은 10~20대의 젊은 세대다. 뽕짝이 한국인의 일상 가까이 녹아 있던 20세기와는 오히려 가장 거리가 먼 세대이기도 하다. “그들은 모든 것이 잘 정돈되어 있고 예쁘게 깎여 있는 시대에 살고 있죠. 그래서 도심의 반듯한 계단보다는 서울 변두리에 오래전 지어진 건물의 울퉁불퉁한 계단에 열광하며 필름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최근 빌보드 차트에서도 컨트리 장르가 득세하고 있죠. 한국 음원 차트에 트로트가 최근 몇 년 사이 인기를 끈 것과 비슷한 현상일 수 있죠.” 250이 요즘 음악 말고 빠져 있는 것도 일종의 ‘구닥다리’다. 1970~1980년대 상영된 홍콩 영화인< 소권괴초(笑拳怪招, The Fearless Hyena) > (1979년)를 비롯한 성룡(成龍 Jackie Chan)의 초기작에 나오는 비논리적 액션 장면들에 푹 빠져 있다고 했다. “언젠가는 영화음악에도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A Quiet Place) > (2018)처럼 사람들이 소리에 극도로 집중해야 하는 영화,< 인셉션(Inception) > (2010)처럼 스케일이 큰 영화,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인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 1928~2020)가 참여한 작품처럼 선율로 승부하는 영화 등 모두 욕심이 나네요.” 마침 그의 저예산 다큐< 뽕을 찾아서 > 는 2023년 여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처음으로 큰 스크린에서 공식 상영됐다. “제게 특별한 롤모델이란 없습니다만, 그저 음악 프로듀서인 퀸시 존스(Quincy Jones)나 작곡가이자 뮤지션인 류이치 사카모토(さかもとりゅういち Ryuichi Sakamoto, 1952~2023) 같은 분들처럼 이런 음악, 저런 작업 등 음악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모두 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50의 다음 프로젝트는 한국 성인영화 시리즈물의 속편 제목처럼< 뽕 2 > 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벌써 계획하고 있는 차기작의 제목은< 아메리카 > 이다. “ < 뽕 > 으로 한국 음악을 제대로 해봤으니까 이제 미국 음악을 해봐야죠. 제가 학창 시절에 동경했던 미국, 그리고 즐겨 듣던 미국 음악에 대한 환상을 담은 앨범이 될 수도 있겠어요.” 7년여간 탐구한 뽕에 대한 정의는 250의 안에서도 계속 변해왔다. 지금, 이 시점에 그가 내리는 뽕의 정의는 이렇다. “뽕짝이란 마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한국의 라면스프의 맛 같은 걸지도 모르죠. 김치찌개를 끓이다가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다 싶으면 라면스프를 조금 넣잖아요. 그럼 ‘아는 맛’ 나오잖아요. 라면스프가 고급스러운 레시피도 아니고 정답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익숙한 맛이고 입에 감기는 어떤 만족스러운 맛이라는 점은 확실하죠. 뭔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한국인이 공통으로 찾는 마지막 한 조각이랄까요.”   250이라는 이름은 그의 본명인 이호영과 비슷하게 불리길 바라며 ‘이오영’이라 썼는데, 모두가 ‘이오공’이라 부르면서 250이 되었다. ⓒ 세종문화회관 그는 첫 앨범< 뽕 > 으로 한국대중음악상에서 4관왕을 차지했다. 특히 최우수 일렉트로닉 앨범과 최우수 일렉트로로닉 노래 부분 수상은 ‘뽕’이 일렉트로니카 뮤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뜻깊다고 전한다. ⓒ 비스츠앤드네이티브스 임희윤 (Lim Hee-yun, 林熙潤) 음악평론가

더 이상 다음 소희가 없길

Entertainment 2023 AUTUMN

더 이상 다음 소희가 없길 < 다음 소희(NEXT SOHEE, 下一个素熙) > (2023)는 지난해 열린 제75회 칸 영화제(Festival de Cannes) 국제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됐다, 이는 한국 영화로서는 최초이기도 하다. 사회에 가려진 청소년 노동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영화는 국적과 세대를 초월한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평이다. 영화 < 다음 소희 > 는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여고생이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주목받았다. 영화는 제목처럼 주인공 소희가 끝이 아님을, 어딘가에 있을 소희의 다음에 주목해 주길 바라고 있다. ⓒ 트윈파트너스플러스 제75회 칸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된 < 다음 소희 > 엔드 크레딧이 올라가자, 현지 관객들은 눈물을 훔치며 7분여간 기립박수를 쳤다. 상영관 밖을 나오며 한국인 취재진이 극장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본 관객들은 카메라를 향해 기꺼이 박수를 전했다. 어떤 이들은 “최고”를 외치며 엄지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상영 후 극장 안에서의 기립박수는 영화제 관례상 흔한 일이기도 하지만, 극장 밖에서까지 반응은 꽤 드문 일이다. 세계의 공감을 얻다 당시 경쟁 부분에 초청된 한국 영화 <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 分手的決心) > (2022)이나 < 브로커(Broker 掮客) > (2022) 상영회와 비교해도 한층 뜨거운 반응이었다. 프랑스 언론인 에마뉘엘(Emmanuel) 씨는 “정말 가슴 아파요. 매우 매우 좋은 작품이에요”라며 울먹이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벨기에에서 온 엘리(Elly) 씨는 “유럽 사람이 이 영화를 보고 한국인과 다르게 느낄까요? 그렇지 않아요. 이 영화를 볼 때 나는 당신과 같은 감정을 갖게 됩니다. 이런 영화로 인해 우리는 서로 연결됩니다”라고 했다.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다 자살에 이른 한국 학생의 특수한 비극이 현대인의 보편적 공감대를 얻어낸 순간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현장실습을 통해 콜센터에서 일하게 된 소희. 그녀는 고객을 위해 ‘친절함’을 만들고, 자신의 ‘수치심’을 감내하며, 마지막에는 높은 실적을 위해 그 어떤 상황에도 ‘무감각’해지는 법을 터득해야만 했다. ⓒ 트윈파트너스플러스 사무직 여직원이 되었다며 기뻐하던 것도 잠시, 춤추는 것을 좋아하던 해맑은 소녀는 그곳에서 점점 피폐해져 간다. ⓒ 트윈파트너스플러스 한국의 고등학교 중에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일반계 고교와 취업 위주의 교육을 하는 직업계 고교가 있다. 현장실습은 직업계 고교 학생이 기업에서 인턴십과 비슷한 형태로 일하면 해당 업체에서 채용에 가산점을 주거나 경력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다. 학교 입장에선 학생들을 기업에 많이 보내 취업률을 높여야 실적을 인정받을 수 있고 예산도 확보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들 학생 중 일부는 열악한 노동 조건 속에서 산업재해를 당하거나 심한 경우 자살을 택하기도 한다. 2017년 1월, 직업계 고교 3학년 A양이 전주의 한 저수지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대기업 하청 콜센터에서 인터넷 가입을 해지하려는 고객을 ‘방어’하는 부서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했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온갖 항의와 욕설에 응대하며 밤늦도록 야근하기 일쑤였지만 정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급여는 계약했던 것보다 적었다. “더 이상 못 견디겠어.” 친구에게 이런 말을 남긴 A양은 차디찬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영화 < 다음 소희 > 의 소재가 된 실화다. 정주리(Jung July, 鄭朱莉) 감독은 한 방송사의 시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이를 접한 뒤 이후에도 비슷한 사망 사건이 되풀이되는 걸 지켜보며 영화화를 결심했다. 이 영화의 한국 개봉 이후 사회적 파급력이 적지 않았다. 결국 올해 3월, ‘다음 소희 방지법’으로 불리기도 하는 ‘직업교육훈련촉진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현장실습생도 근로기준법상 강제 근로 금지와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 등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했다. 현실적으로 그려낸 영화 경찰 유진은 소희의 죽음을 파헤치며 어른들이 어떻게 한 학생을 죽음으로 내몰고, 또 외면했는지를 마주한다. ⓒ 트윈파트너스플러스 < 다음 소희 > 는 내용상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가 앞서 소개한 실화를 다큐멘터리의 화법으로 그렸다면, 2부는 그때 소희(So-hee 素熙) 곁에 단 한 명의 어른이라도 지켜주는 이가 있었다면 하는 희망 사항을 담았다. 1부는 단순히 회사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대결 구도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21세기 현대 사회가 실제로 그렇듯, 문제는 한층 더 복잡하고 해결은 한결 더 어렵다. 극 중 중간 관리자인 팀장은 상담원들에게 실적을 강요하지만, 비인간적인 상황에 내몰리긴 마찬가지다. 주인공 소희가 실적을 올리면서 회사의 목표 기준이 올라가자, 동료들 사이에 반목이 싹튼다. 가난한 친구보다 더 가난한 소희는 누가 더 한심한 신세인지를 두고 넋두리를 늘어놓다 본의 아니게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이처럼< 다음 소희 > 는 약자의 잘못이 아닌데도 약자들끼리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는 경쟁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파고든다. 장애인을 위한 대중교통 인프라가 부족한 사회에서 이동권 시위를 벌이는 장애인과 이로 인해 출근이 늦어진 비장애인 노동자가 반목하게 되는 것처럼. 최저 시급이 충분하지 못한 사회에서 대출 이자에 시달리는 편의점 점주와 삼시 세끼도 제대로 못 챙기는 아르바이트생이 최저임금을 놓고 등 돌리게 되는 일처럼. 구조조정을 이유로 해고된 노동자와 고용이 승계된 노동자 사이에 연대가 깨지는 일처럼…. 잘못은 저 위쪽에서 비롯됐는데 아래쪽에 있는 이들이 더 아래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갈등하게 되는 현대 사회의 어두운 면을 폭넓게 담고 있다. 그에 비하면 2부는 좀 더 대결 구도의 형태를 띤다. 그래야 했다. 소희의 자살을 수사하는 형사 오유진(Oh Yoo-jin 吳宥真)은 사태의 실체에 접근하면서 점차 외로운 투쟁의 길에 접어든다. 적절한 조치가 제때 이뤄졌다면 이 젊은이의 죽음을 막을 기회가 몇 번은 있었다고 여긴다. 그래서 더 이상 ‘소희 다음’의 비극을 만들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런 유진이 잘못한 자들을 찾아 따져 물을 때마다 돌아온 답은 ‘실적 못 올리면 우리도 죽는다’는 취지의 말들이다. 소희가 일한 회사, 그 회사에 하청을 준 회사, 그 회사가 대기업이라며 좋다고 알선해 준 학교, 그 학교를 감독하는 교육청….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어느 한 개 기관이나 개인의 잘못만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잘못된 일들은 종종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거대한 차원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통찰을 영화의 플롯으로 구현한 것이다. 콜센터와 학교, 교육청과 경찰서를 오가며 홀로 조사를 이어가던 유진은 소희의 죽음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속이 후련해지는 것이 아니라 바뀔 수 없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낀다. ⓒ 트윈파트너스플러스 이 때문에 유진은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는 결연함과, 커다란 시스템에 맞서는 개인의 무력감을 동시에 보여줘야 했다. 유진 역을 맡은 배우 배두나(Bae Doo-na 裴斗娜)가 초췌한 얼굴로 소희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연기는 이 지점에서 설득력을 더한다. 칸영화제 현장에서 만난 정주리 감독은 “촬영 전 두나 씨에게 며칠 동안 잠을 못 잔 것 같은 얼굴을 화면에 보여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는데, 다음날 정말로 그런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그 얼굴을 봤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라고 후일담을 전하기도 했다. 취업에 짓밟힌 꿈 필자를 비롯한 기성세대들이 이 영화를 보며 가장 가슴 아파한 대목이 있다. 첫 번째는 “소희가 춤추는 거 아셨어요? 춤추는 걸 좋아했대요. 엄청나게 잘했대요”라고 유진이 소희의 부모에게 건넨 말이다. 이를 들은 부모는 목 놓아 통곡한다. 또 한 차례는 유진이 소희의 휴대전화 속 동영상을 보는 마지막 장면이다. 소희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휴대전화 안에 있는 모든 메시지며 앱을 삭제하고도 남겨둔 단 하나의 영상이었다. 거기엔 혼자 열심히 춤추며 끝내 웃음 짓는 소희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번엔 유진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영화가 두 차례에 걸쳐 소희의 춤을 안타깝게 보여주는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기성세대가 미래세대의 진정한 꿈을 알고 있는지 따져 묻는 것이다. 비극은 어쩌면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다음 세대의 장기, 특기, 소질, 자질, 취향, 취미, 개성, 특성, 적성, 재능을 알아봐 주고 있는가? 영화의 질문은 이어진다. 고등학생들이 저마다 다른 꿈을 접고 취업률 높은 학과만 지망해야 하는 사회라면? 청년들이 각자 희망을 저버린 채 안정된 직장에 지원하지 않으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처럼 불안한 곳이라면? 인문계 전공 자체를 미안해해야 하고 자연계 우등생 모두가 의대 진학만을 바라보는 세상이라면? 그다음에는 또 다른 형태의 소희가 나오지 않을까? 당신은 미래 세대가 꿈을 키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나? 칸영화제에서 만난 선진국 관객들이 < 다음 소희 > 를 보고 울먹인 까닭은, 각자의 사회가 이런 질문들을 끊임없이 떠오르게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케이팝 4세대 그룹에 대하여

Entertainment 2023 SUMMER

케이팝 4세대 그룹에 대하여 한국이 만드는 문화 콘텐츠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그 중심엔 케이팝이 있다. 지금은 주 활동을 이어가는 이들을 우리는 4세대 케이팝 그룹이라 말한다. 이들은 기존 세대와 무엇이 다르며, 이들이 만들어가는 케이팝 문화는 무엇이 다를까. 에이티즈(ATEEZ)는 ‘10대들의 모든 것(A to Z(A Teenager Z))’이라는 의미를 담은 8인조 그룹이다. ⓒ KQ 엔터테인먼트 세대론은 시대와 분야를 막론하고 호사가(好事家)에게 인기 좋은 재료이다. 이전과 조금이라도 다른 점이 발견되면 ‘이것이 바로 새로운 세대’라는 간판을 거는 것만으로도 대중은 새롭게 받아들이며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케이팝도 마찬가지다. 세대를 나누는 정확한 기준이나 룰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전과 다른 특징, 그러니까 그룹 구성 형태나 활동 지역, 콘셉트 등 이전과 다른 뚜렷한 특징이 보이는 그룹이 대거 나타났을 때 이들을 이전과 다른 새로운 세대로 구분 지었다. 케이팝 그룹 1세대부터 4세대까지 1세대 케이팝 그룹 중 하나이자 국내 최초의 아이돌은 1996년 데뷔한 SM 엔터테인먼트의 H.O.T.이다. 이후 1997년 6인조 그룹 젝스키스가 데뷔하면서 H.O.T.와 경쟁 구도를 만들며 활동했고, 여자 아이돌 그룹으로는 1997년 S.E.S.가, 1998년 핑클이 데뷔해 경쟁 구도를 이어갔다. 이후 2세대로 넘어가기 전 신화, god, 쥬얼리, 보아 등 실험적 특징을 지닌 1.5세대라 아이돌 그룹이 나왔고, 이 시기에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한국 아이돌 그룹이 인기를 끌면서 ‘한류’ 개념과 일부 일본 언론에서 ‘케이팝’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케이팝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과거 신비주의를 고수하던 케이팝 1세대 그룹과는 달리 케이팝 2세대 그룹은 친밀한 이미지를 추구하며 각종 예능 프로그램 출연 등을 통해 만능 엔터테이너로 활동했다. 대표적인 그룹이 빅뱅,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원더걸스 등이다. 이들은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월드 투어를 통해 국내외 대형 팬덤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국내 활동을 통해 인지도를 높인 뒤 해외에서 활동하던 이전 세대와는 달리 케이팝 3세대 그룹의 특징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국내외 동시 성장을 꾀했다는 것이다. 또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 전부터 탄탄한 팬덤을 확보하기도 했다. 또한 케이팝의 질적 향상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기이기도 하다. 이를 이끌어낸 주역은 엑소, 방탄소년단, 위너, 레드벨벳, 마마무 등이다. 매일 찾게 되고 언제 입어도 질리지 않는 진(Jean)처럼 시대의 아이콘이 되겠다는 뉴진스가 지난 1월 발매한 앨범 < omg > 의 단체 사진이다. ⓒ 어도어 지난 4월 발매한 아이브의 앨범 < I’ve IVE > . 아이브는 2021년 데뷔부터 자기애를 기반으로 노래하며 자신감 넘치는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 스타쉽 엔터테인먼트 3세대 케이팝 그룹의 출현 이후 케이팝을 이끌어가는 이들은 대륙과 국가 등의 경계에 구애받지 않으며 온라인과 오프라인까지도 구분 짓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 여기에 그룹마다 독특한 개성과 세계관을 펼치며 본격 케이팝 4세대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나는 아무튼 뭔가 다르다며 “달라달라”를 외치던 있지(ITZY)가, 어느 날 머리에서 자란 뿔을 부적 삼아 이전 세대와 선을 긋던 투모로우바이투게더(TOMORROW X TOGETHER)가, 밀레니엄 어딘가쯤의 향수를 사정없이 자극하며 등장한 뉴진스(NewJeans)가 모두 케이팝 4세대 대표 그룹이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앨범을 발매할 때마다 특유의 동화적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으로 10~20대와 정서를 공유하며 탄탄한 팬덤을 구축했다. ⓒ 빅히트 뮤직 케이팝 4세대 그룹의 중요 키워드 케이팝 4세대를 이끌어가는 그룹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해외 활동이다. 방탄소년단 이전까지 그룹의 해외 활동은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 2001년 자신의 데뷔곡인 < ID;Peace B > 를 일본어로 번안해 일본에서 데뷔한 보아(BoA)처럼 선배들이 공들여 다져 놓은 일본 시장 정도를 제외하면 케이팝 가수에게 해외 시장은 여전히 쉽게 발을 들일 수 없는 곳이었다. 싸이(PSY)가 < 강남스타일(Gangnam Style) > 로 미국에서 인기를 얻었을지라도, 여전히 도전 이상의 의미를 갖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한한령 등으로 장단 맞추기 바쁜 중국 시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방탄소년단 이후는 달랐다. 아이돌 그룹과 케이팝, 나아가 한국 대중문화에 주목하는 시선이 급격히 늘어났다. 이러한 변화로 2020년을 전후해 데뷔한 4세대 그룹은 기획과 마케팅에 있어 ‘해외’는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키워드였다. 다양한 국가의 언어 구사가 가능한 멤버를 그룹에 포함하는 건 기본이고, 음악에서 퍼포먼스까지 콘텐츠 전반을 즐기는 사람들이 한국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보편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활동을 꼭 한국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인식도 옅어졌으며, 나아가 그룹 구성원 가운데 한국인이 없어도 케이팝은 케이팝이라는 주장을 하는 이도 늘어났다. 유명 아이돌 그룹이 새 앨범과 관련한 프로모션을 해외 방송을 통해 시작하는 게 더 이상 어색하지 않았고, 데뷔 100일 만에 북미 투어를 개최하며 탄탄한 해외 팬덤을 구축한 뒤 본격적인 국내 공략에 나서며 유의미한 성과를 낸 그룹 에이티즈(ATEEZ) 같은 사례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뚜렷한 개성 4세대 그룹의 또 다른 특징은 일명 젠지(Gen Z)라고 불리는 세대와 시대정신을 공유하는 그룹의 등장이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경우 데뷔 당시, 현재 세대 전반에 어린 은은한 우울을 특유의 동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스토리텔링으로 주목 받았다. 이들의 곡은 < 어느 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CROWN 昨天頭髮中長得角) > , < 5시 53분의 하늘에서 발견한 너와 나(5點53分的天空下發現的你和我) > , <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Run Away 在九又四分之三站臺等你) > 처럼 제목부터 알쏭달쏭하다. 어른들은 모르는 우리만의 수수께끼 같은 언어와 감성에 초점을 맞추며 독보적인 면모로 10~20대 팬을 중심으로 점차 몸집을 불려 나갔다. 뚜렷한 개성을 가진 그룹의 출현과 동시에 이전 세대와 달리 여성 그룹의 강세가 돋보이는 것도 주목할만한 점이다. 먼저 아이브는 2021년 12월 데뷔 이후 내내 ‘나’에만 집중했다. 나를 사랑하다 못해 나와 사랑에 빠져버린 나르시시즘을 노래하는 이들의 외침은 화려하고 쿨한 그룹의 색과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 이 훌륭한 조화는 아이브 싱글 앨범 < Eleven(2021) > , < Love Dive(2022) > , < After Like(2022) >3연속 히트와 2022년 최고의 신인그룹이라는 타이틀, 여기에 케이팝 4세대 그룹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룹이라는 영광의 왕관을 차례로 씌웠다. 그룹명 있지(ITZY)는 ‘너희가 원하는 거 전부 있지? 있지!’라는 뜻이다. 2019년 당시 데뷔곡 로 데뷔 9일 만에 걸그룹 음악방송 최단 기간 1위 달성을 하며 화제가 되었다. ⓒ JYP 엔터테인먼트 르세라핌은 음악을 관통하는 주체적 메시지가 돋보이는 그룹이다. 2022년 데뷔 초 나의 욕망과 시련에 관해 이야기 한 이들은 지난 5월 우리에 대한 이야기로 메시지를 확장하면서 데뷔 이후 줄곧 이어온 주제를 이어가면서도 한층 확장된 메시지로 존재감을 이어갔다. 뉴진스는 매일 찾게 되고 언제 입어도 질리지 않는 진(Jean)처럼 시대의 아이콘이 되겠다는 포부처럼 데뷔와 동시에 레트로 감성이 돋보이는 콘셉트와 곡, 안무, 실력 등이 화제가 됐다. 데뷔곡 에 이어 도 빌보드 차트에 입성한 것에 이어 10대의 풋풋하고 순수한 콘셉트에 대중이 열광했으며 그 인기는 업계까지 이어져 국내외 광고계를 석권할 정도였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케이팝 에스파(aespa)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아티스트 멤버와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아바타 멤버가 현실과 가상의 중간 세계인 디지털 세계를 통해 소통하고 교감하며 성장해 가는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다. ⓒ SM 엔터테인먼트 흥미로운 건 케이팝 4세대 그룹 초기 주요 키워드로 언급되던 메타버스를 비롯한 가상 공간에 대한 논의는 상당히 수그러들었단 점이다. 해당 논의의 꼭짓점에 놓여 있던 그룹 에스파(aespa) 역시 아바타를 중심으로 한 독특한 세계관보다는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의 핵심과도 같은 SMP(SM Performance)를 원형 그대로 재연하는 계승자로서의 가치를 더 높게 인정받는 모양새다. 가상이 아니면 서로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었던 팬데믹 기간, 케이팝이 깊이 깨달은 건 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더 가깝게 이어줄 수 있는 기술 활용의 중요성이었다. 이는 해당 시기 가장 흥한 케이팝 비즈니스가 가수와 팬 사이를 감정적으로 더 깊게 이어주는 각종 팬 플랫폼이었다는 점만 봐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결론이다. 그 어느 때보다 파란만장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4세대 케이팝의 윤곽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새로운 세대가 이끌어갈 새 시대 케이팝의 지형도도 이제 막 그려지기 시작했다.

연애 리얼리티 열풍에 담긴 의미

Entertainment 2023 SPRING

연애 리얼리티 열풍에 담긴 의미 최근 방송 플랫폼마다 경쟁하듯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고 이 흐름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연애, 결혼이라는 현실과 이상 간 괴리의 대리만족으로 풀이된다. 과거 이별한 커플들이 한 집에 모여 지난 연애를 되짚고 새로운 인연을 마주하며 자신만의 사랑을 찾아가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환승연애 2 >포스터와 커플이 되어야만 나갈 수 있는 외딴섬, ‘지옥도’에서 펼쳐지는 솔로들의 솔직하고 화끈한 데이팅 리얼리티 쇼인< 솔로지옥 2 >포스터. ⓒ 티빙, ⓒ 넷플릭스 현재 방송되었거나 방송 중인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연애 리얼리티 장르가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1년< 환승연애 > 와< 솔로지옥 > 이 OTT 채널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본격적으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2022년 한해 방영된 프로그램만 봐도 TVING의< 환승연애 2 > ,< 러브캐쳐 인 발리 > , 넷플릭스의< 나는 SOLO > ,< 솔로지옥 2 > , MBN< 돌싱글즈 3 > , Wavve의< 남의 연애 > ,< 메리퀴어 > ,<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등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한국 연애 리얼리티의 두 날개 반경 10m 안에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다가오면 알람이 울리는 설정을 바탕으로 한 웹툰의 실사판 짝짓기 예능 프로그램인<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 > ⓒ 웨이브 수많은 프로그램 중 지금의 광풍을 이끈 주역은 단연< 환승연애 > 와< 솔로지옥 >시리즈다. 첫 방영과 함께 시즌 2로도 이어져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며, 모두 OTT라는 플랫폼에서 방영되어 그간 공중파에서 담을 수 없었던 시도를 담았다. 선택적인 시청을 전제로 하는 OTT는 시청 연령 제한만 분명하다면 수위를 제재받지 않는 자유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그간 한국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대부분 멜로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감정적 교류 정도에 머물렀던 게 사실이다. 기존의 프로그램이 처음 만난 평범한 남녀의 연애 과정을 담았다면,< 환승연애 > 는 헤어진 커플들이 한 공간에서 지내며 다른 이를 만나 ‘환승’하거나 혹은 헤어진 채 현실로‘복귀’하는 콘셉트를 내세웠다. 헤어진 연인이 내가 아닌 다른 이와 가까워지는 걸 눈앞에서 지켜보는 감정적 자극의 수위가 높은 프로그램으로, 기존의 미디어라면 시도하기조차 어려운 프로그램이었다. 또 넷플릭스를 통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반향을 일으킨< 솔로지옥 >시리즈는 ‘한국판< 투핫 > ’이라고 불릴 정도로 노출이나 스킨십 수위를 높여 놓았다. 지옥도에서 만난 남녀가 서로 선택해 매칭되면 천국도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낸다는 파격적인 설정을 내세웠다. 감정적 교류만이 아니라 섹시한 몸을 의도적으로 노출해 보여주기도 하고 남녀의 스킨십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 두 프로그램은 한국의 연애 리얼리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노출 수위는 물론 다양한 콘셉트로 차별화 하며, 이혼남녀, 이별을 고민 중인 커플, 성소수자, 양성애 같은 다양한 출연자 풀을 갖게 됐다. 이 모든 것은 놀랍게도 단 1년 만에 벌어진 현상이다.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과 함께 연애 리얼리티는 날개를 달았고, 소재, 수위, 자극적인 면에서 꽤 오래도록 닫아뒀던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환승연애 > 와< 솔로지옥 > 이라는 두 날개가 펼쳐놓은 연애 리얼리티는 한국 예능의 신세계를 펼쳐 놓고 있다. 연애 예능의 변천사 그간 연애 예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맞선, 미팅, 소개팅 등 익숙한 연애 문화에서 착안한 MBC< 사랑의 스튜디오 > (1994~2001)는 일반인들이 스튜디오에서 대화를 나누고 게임을 하면서 마음에 드는 상대를 고르는 단순한 형태였는데, 당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예능적인 재미를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2000년대 초반에는 일반인 대신 연예인들이 출연해 매력을 발산하고 게임을 하며 커플 매칭을 하는 연애 예능 프로그램으로 변모했다. 이 시기 해외에서는 일반인들의 수위 높은 사생활이 공개되는 리얼리티쇼가 유행했지만, 한국은 지상파 방송의 제재로 이러한 트렌드를 따라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의 욕구는 여전했고, 이에 해외 리얼리티쇼를 한국 정서에 맞는 수위로 조정하여 수용하기 시작했다. 2008년 방영됐던 MBC< 우리 결혼했어요 > 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일반인 대신 연예인이 출연해 가상 결혼생활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2017년 시즌4까지 방영되었는데, 그 사이 방송가에서도 리얼리티쇼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리얼리티쇼는 ‘관찰카메라’라는 덜 자극적인 표현으로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 정착해갔고, 2011년 한국적 연애 리얼리티쇼로 SBS< 짝 > 이 등장했다. ‘애정촌’이라는 특정 공간에 일반인 남녀 출연자들이 함께 생활하며 서로를 선택하는 과정을 담은 포맷으로 사실상 현재 유행하고 있는 연애 리얼리티의 형태를 정착시켰다. 하지만 일반인의 과도한 사생활 노출이라는 문제점이 지적되면서 한동안 주춤하기도 했다. 이후 2017년 현실 연애를 한편의 멜로 드라마처럼 연출한< 하트시그널 > 과 같은 형태로 진화를 거듭했다. 일반인의 리얼리티와 다양한 연출,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이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지금의< 환승연애 > 와< 솔로지옥 > 이 등장한 셈이다. 연애 리얼리티 봇물과 실제 연애, 결혼관의 괴리 진실과 거짓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러브캐처는 머니캐처를 피해 진정한 사랑을 찾고, 머니캐처는 러브캐처를 유혹해 상금을 획득하는 리얼 연애 심리 게임< 러브캐처 > ⓒ 티빙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열풍은 실제 청춘남녀들이 연애, 결혼에 열의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한국의 혼인율은 갈수록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 혼인 건수는 192,507건으로, 10년 전인 2011년 329,087건 대비 무려 134,566건(41.6%)가량 줄었다. 코로나19의 영향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한국의 혼인율이 줄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청년층에서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연애는 물론이고 결혼이나 출산 등은 모두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들이다. 하지만 최근 취업 경쟁이 치열해진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생존조차 장담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결혼은 물론이고 연애도 부담스러워하는 상황이다. 결국 한국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열풍은 실제 연애를 하기 어려운 이들의 대리 만족 의미가 더 강하다는 뜻이다. 또한 최근 1년간 쏟아져 나온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면 최근 한국인 청년들이 가진 연애관의 변화도 읽어낼 수 있다. 남녀 간의 사랑 표현 방식뿐만 아니라 헤어진 후에도 관계를 이어 나가는 쿨한 모습이나 스킨십, 혼전 동거 등 기성세대들보다 열려 있는 면을 볼 수 있다. 나아가 이성애는 물론이고 양성애, 성소수자 같은 다양성을 인정하려는 모습들도 보인다. 한편 K-콘텐츠의 관점으로 보면 연애는 본래 중심적인 위치에 있던 소재였다. 지금 봇물이 터지듯 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이미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K-드라마들이 그 증거다. 한국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먼저 시작한 해외의 프로그램에 비하면 아무래도 문화나 정서적인 이유로 제한적인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한국인만의 남다른 감수성을 강점으로 로맨틱 코미디와 함께 세계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시대의 모든 태일이에게

Entertainment 2022 WINTER

이 시대의 모든 태일이에게 애니메이션 (2021)는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인 전태일(Chun Tae-il 全泰壹 1948~1970) 열사의 이야기다. 50년도 더 된 과거의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지만, 관객에게 여전히 깊은 여운을 남기며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2021)는 노동 환경 개선과 노동자 인권 개혁을 위해 스스로 불꽃이 된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를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 명필름(MYUNGFLMS) 1960~1970년대 당시 한국은 빈곤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봉제 산업처럼 값싼 노동력을 활용한 산업 분야에서 노동력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경제 성장을 추구해왔다. 근로기준법이 제정돼 있었지만, 경제 성장 논리에 법 준수는 뒷전이었다. 이러한 부당한 세상에 목소리를 내며 변화를 꿈꿨던 한 청년의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 가 2022년 제46회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Annecy International Animated Film Festival) 심사위원 특별상, 제26회 판타지아 국제 영화제(Fantasia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관객상(동상), 제18회 서울 인디애니페스트(Seoul Indie-AniFest) 대상을 수상하며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열악한 노동환경에 맞선 청년 영화에서는 온종일 일해도 제대로 돈을 받지도 못하고 열악한 근무 환경에 몸이 아픈 것이 오히려 죄가 되는 동료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열사로서의 모습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이야기, 첫사랑을 꿈꾸는 청년의 모습 등 생애를 차곡차곡 쌓아 전태일이라는 한 사람에게 집중하게 한다. ⓒ 명필름 1960년대 말 서울 청계천 일대에 위치한 평화시장에는 의류 제조업체가 밀집해있었다. 노동자들은 하루 14~15시간씩 일하며 화장실에 갈 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렸다. 작업 공간은 원단을 가공할 때 발생하는 먼지를 환기할 수 있는 시설조차 없었고 심지어 1층을 임의로 2개 층으로 분리해 허리를 펼 수도 없었다. 작업 환경이 이러하니, 노동자들은 폐 질환을 비롯한 각종 병에 시달리기 일쑤였지만, 병이 나 출근하지 못하면 곧바로 해고당하는 처지에 놓여있었다. 특히 보조 인력 노동자 대부분은 13~17세의 어린 여성이었고 이들의 급여는 최소한의 끼니조차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봉제 노동자였던 전태일 열사는 평소 보조 인력 노동자들을 여동생처럼 아꼈다. 자신의 차비를 털어 그들에게 풀빵(물에 밀가루를 풀어서 풀처럼 반죽을 만들어 구워 만든 빵)을 사주고는 자신은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일도 빈번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사는 동시에 동료들을 모아 노동자 단체를 결성하고 고용노동부나 시청 등 관계 당국에 끊임없이 노동 조건 개선과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했다. 종종 노동자 시위를 벌여봤지만, 경찰의 방해로 그때마다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던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에서 또 한 차례 시위가 저지되자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 법전을 손에 쥐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자기 몸에 불을 붙여 노동자들의 현실을 세상에 온몸으로 알렸다. 전신 화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가 극도의 고통을 느끼는 가운데에서도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라는 말을 남긴 다음 세상을 떠났다. 일상을 통해 섬세히 그려낸 이야기 영화는 전태일 열사를 평면적으로 영웅화하지 않고 한 청년으로서 그의 삶을 있는 그대로 담으려 애쓴다. 특히 지금도 대부분 보존되어 있는 그의 일기장에 적힌 대로 1967년 당시 짝사랑에 빠졌던 감정까지도 애틋하게 묘사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짝사랑 상대가 공장 사장의 처제였고, 그의 나이 19살에 사랑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점이다. 사장에게 밉보일 경우 철저한 계급 사회였던 봉제공장 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었다는 점을 자각한 것이다. 이 같은 선택은 그의 실제 삶과 현실 속에서의 인식을 냉정하게 드러내는 대목이다. 나아가 그가 계급 인식을 인지하고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단순한 개인사를 넘어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대목으로, 영화는 이 점을 놓치지 않고 공들여 포착하고 있다. 사장에게 신뢰를 얻어 그가 사장 집에 머무는 동안 그 집에서 사용하는 비누 향기가 평소 자신이 쓰던 비누의 향기와는 다르다는 점을 자각하는 장면처럼, 전태일 열사의 계급 인식이 생성되고 강화되는 경로를 그의 일상을 통해 섬세하게 그려낸 대목도 돋보인다. 냄새로 계급을 구분 짓는 현실 묘사는 봉준호(Bong Joon-ho 奉俊昊) 감독의 영화 (2019)에서도 주요하게 등장하는 모티프로, 극심한 불평등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 관객들이 마음속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과거와 다를 것 없는 오늘 는 50여 년 전 이야기를 과거에 머물게 하지 않고 오늘날에 지니는 의미를 전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당시 봉제공장에서 실제로 벌어진 임금 배분 갈등과 착취 구조를 노-사 갈등이라기보다 사측이 조장한 노-노 갈등의 측면에서 재조명한다. 당시 봉제 공장들은 재단사-재단 보조-미싱사-미싱 보조 순으로 철저한 계급 구조를 만들어놓고 계급 간 관리 책임을 각 직종의 상급자에게 맡김으로써 노-사 갈등의 책임을 떠넘겼다. 병으로 출근하지 못하는 노동자를 해고할 때 사장이 직접 하지 않고 재단사에게 떠맡긴다든지, 임금 배분을 재단사의 재량에 맡겨 적정한 임금을 전체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고용주의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 같은 것들이 행해졌다. 21세기의 노동 문제 역시 책임과 권한이 있는 자가 다양한 방식을 이용해 중간 관리자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방식으로 사태의 본질을 숨기는 측면이 강하다. 예를 들면 최저임금 문제를 가맹점주와 아르바이트생의 갈등 관계라는 프레임 속에 가둠으로써, 가맹점 시스템을 운영하는 대기업은 책임을 지지 않고 약자들끼리의 갈등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초점을 흐리는 것처럼 밀이다. 는 1960~1970년대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현재 우리 사회가 약자를 더 고통스럽게 하는 측면에 두어 관객으로부터 보편적 공감대를 얻어내고 있다. 한국은 이제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 안팎의 선진국이지만, 2020년 기준 산업 현장에서의 노동자 사망자 수가 하루 평균 약 3명에 달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렇게 되기까지 하청-재하청 구조는 물론 그 구조에서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플랫폼 노동자나 특수 고용직 노동자를 양산하는 경제 시스템이 작용하고 있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Dardenne brothers) 감독의 2015년 작 (2015), 켄 로치(Ken Loach) 감독의 2019년 작 (2019), 올해 화제작 중 하나인 에리크 그라벨(Eric Gravel) 감독의 (2022)에 이르는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글로벌 자본주의의 새로운 고용 형태 혹은 노동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 국면이 이전에는 보지 못한 방식으로 전개되면서 강자는 책임을 피하고 약자는 한층 더 깊은 고통에 몰아넣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는 이들 걸작과 함께 거론될, 50년 전 이야기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노동의 복합적인 해결 과제를 어렵지 않은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수작이다. 영화의 종반부, 전태일 열사가 분신을 결행하는 장면에서 영화는 주인공의 모습을 단 두 컷의 짧은 장면으로만 처리한다. 대신 놀란 눈으로 이 모습을 바라보는 동료들과 주변 시민들의 얼굴을 더 길게 보여준다. 이들의 표정은 다름 아닌 관객 자신의 얼굴이 되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바라보는 사회 갈등의 원인은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 당신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사회의 불행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당신은 지금 어떤 재난을 지켜보고 어떤 행동을 하고 있나? 그 답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모습부터 좀 더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는 말하고 있다. 송형국 (Song Hyeong-guk, 宋亨國) 영화평론가

한국 서사의 힘과 매력

Entertainment 2022 AUTUMN

한국 서사의 힘과 매력 복잡다단한 역사적 질곡을 거쳐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역동적이면서도 다양한 욕망이 용광로처럼 녹아 있는 나라 한국. 최근 우리만의 역사와 이야기가 다양한 통로로 힘을 발휘하며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22) ⓒApple TV+ / (2020) ⓒA24 /「Native Speaker」(1995) ⓒRiverhead Books 웨인 왕 감독의 (2019)은 소설가 이창래가 1995년 10월 16일 『뉴요커』에 게재했던 동명의 에세이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그의 에세이 는 이미 퍼질 대로 퍼진 암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이민 1세대로서 경험해야 했던 모진 시절을 아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서술한다. 세계 무대 위에 오른 이야기의 시작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이민자들의 도전을 담은 영화< 미나리 > 의 아빠 제이콥은 낯선 미국으로 떠나온 가족에게 뭔가 해내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자신만의 농장을 가꾸기 시작한다. ⓒA24 일하는 부모 대신 어린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필요했던 가족은 한국에 있는 모니카의 엄마 순자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장난꾸러기 막내아들 데이빗은 여느 할머니 같지 않은 순자가 늘 못마땅하다. ⓒA24 작가의 기억 속 어머니는 부엌에서 소고기의 근막을 살리면서 갈빗살을 손질하고 한국식 음식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내던 사람이다. 어머니는 아들이 부엌엔 얼씬도 못하게 했다. 오직 공부에만 힘을 쏟아 세상이 인정하는 사회인으로 성장하길 바랐다.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한국인 이민자 하면 떠오르는 성실한 동양인이라는 이미지에 철저히 부합하는 사람이었다. 에세이 속에 묘사된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 > (2020) 속 할머니가 떠오른다. 생활력이 강하고 자식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며 무엇보다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진 한국의 어머니 말이다. 어머니의 바람대로 그는 예일대를 졸업하고 월스트리트에서 증권 분석가로 일하다가 첫 소설 『이방인』을 썼다. 이 작가는 이 소설로 PEN/헤밍웨이상(Hemingway Foundation/PEN Award), 아메리칸북 상(American Book Award) 등 미국 문단의 6개 주요 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주목받았다. 작가는 명실상부 한국의 이민 1.5세대로서 빛나는 자취와 성과를 남겼고 여전히 유력한 노벨상 후보자로 주목도 받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지진 못했다. 아마도 글보단 시청각을 동원한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 > 와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 > 가 갖는 영향력과 파급력은 어마어마하다. 정 감독의< 미나리 > 는 아카데미 영화상의 주요 부문 후보작이 되고, 여우조연상을 받음으로써 엘리트 주류 문화의 철옹성을 한국어, 한국 배우로 무너뜨릴 수 있음을 보여줬다.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 < 미나리 > 는 한국인 이민자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이민자로 구성된 미국의 핵심을 짚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격동기였던 1980년대에 한국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미나리 >속 가족은 미국에 정착한다.< 미나리 > 에 묘사된 아버지와 어머니는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 맨몸으로 부딪히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이런 이민자의 모습은 캐나다 드라마< 김씨네 편의점 > 에서 코믹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진 한국인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르다. 인종 차별이라는 말조차 무색하게,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해 관심도 없던 미국의 농촌 마을에 터를 잡은< 미나리 > 의 젊은 부부는 어떤 점에서는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신과 정체성 그 자체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꿈과 희망, 열정과 젊음만 있다면 기회와 가능성을 주는 나라 미국이라는 이미지 말이다. 2021년< 미나리 > 가 거둔 성과의 밑바탕에는 2020년 봉준호 감독의 성취가 있었다. 그의 영화< 기생충 > 은 한국의 이야기가 가진 역동성과 세련됨에 대한 기대감을 칸과 아카데미의 장벽을 넘으며 입증했다. 연이어< 미나리 > 가 2021년에 한국의 이야기로 미국의 문턱을 한 번 더 넘자, 한국의 이야기가 가진 힘은 우연이 아닌 실력으로 인정받고 더 주목받았다. < 미나리 > 로 시작된 한국인 여배우 윤여정에 대한 관심, 한국인 이민자에 대한 긍정적인 호기심은 마침내 2021년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넷플릭스(NETFLIX)의 최대 성공작이자 화제작이었던< 오징어게임 > (2021) > 과 함께 절정을 맞았다. 봉준호 감독이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넘어달라며 영어 사용자들에게 호소한 지 고작 1년 만에 한국어로 제작하고 한국 배우가 출연하며 한국 감독이 연출한 한국의 TV쇼가 세계 이야기 산업의 중심이 된 것이다. < 오징어게임 > 의 성공 요인은 무엇보다 한국적인 것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인구 5천만 명 중 1천만 명 이상이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밀집해 살아가는 대한민국은 매우 역동적인 동시에 그만큼 갈등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고립된 상황에서 456억 원이라는 고액의 상금을 향한 다양한 욕망과 저마다의 갈등은 모두의 공감을 일으켰다. 경쟁 과정에 도입된 기이하고도 유아적인 게임도 눈길을 끌었다. 말 그대로 한국의 콘텐츠, 이야기, 서사가 창의적이면서 도발적인 동시대적 발언으로 시선을 끈 것이다. 변화된 스트리밍 플랫폼과 경쟁력 있는 콘텐츠 < 파친코 > 는 고국을 떠나 억척스럽게 생존과 번영을 추구하는 한인 이민 가족 4대의 꿈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드라마 속 한수와 선자는 은밀한 사랑을 나누지만, 한수에게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알자 선자는 그의 곁을 떠난다. ⓒApple TV+ 일제강점기 시절의 어린 모습부터 1989년 노년 시절까지 시대별로 그려지는 선자의 삶은 아픈 역사 속에서의 여성들의 삶, 그들의 노력과 희생, 역할 등을 투영하고 있다. ⓒApple TV+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급성장한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시장의 변화도 주목해야 한다. 넷플릭스의 성공 과정에서 한국 이야기 서사는 점유율 확보의 견인차 구실을 했다. OTT 플랫폼의 경쟁력 있는 콘텐츠 모델로 한국의 이야기가 수배되기 시작한 것이다. 애플 티브이 플러스가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 > 를 드라마로 만든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흥미로운 것은 이 작가의 출세작인< 파친코 > 가 미국 이민 1.5세대로서의 자기 고백적 이야기가 아니라 100년도 전에 있었던 한국의 일제강점기 시절의 이야기와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칸에서 수상한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나 넷플릭스의 주목을 받은< 오징어게임 > ,< 지옥 > (2021) > 과 같은 드라마 모두 현재의 시간대를 허구의 소재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 작가의 소설< 파친코 > , 그리고 그것을 원작으로 한 애플 티브이 플러스의< 파친코 > 는 국제외교 관계상 여전히 가장 민감한 시기라고 할 수 있을 191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의 일제 강점기 시절의 한국과 일본을 다루고 있다. 미국 전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의 휴가지 필독서 목록으로도 주목받았던< 파친코 > 는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단순히 20세기 초의 자이니치, 일본 거주 한국 이민자의 이야기를 넘어서서 삶의 토대와 뿌리, 디아스포라 적 삶을 지탱해야만 하는 이민자의 고통과 역경, 그 가운데에서도 피어나는 사랑의 가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확장됐다. 훨씬 더 오늘날로 이민자의 문제를 끌고 온 것이다.< 파친코 > 에서 고향이란 태어난 곳이 아니라 정착해 살아가면서 미래와 다음 세대를 선사한 곳이라는 의미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5세대, 2세대로서 한국인 이민자는 그 나라의 주권자이기도 하지만 혈통과 역사적으로는 떠나온 고향의 정서나 뿌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복잡하고도 다단한 심정과 역사를 한국인 이민자 작가와 감독, 연출자, 감독들이 자기만의 독특한 시각과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한국인의 이야기가 힘을 갖는 것은 결국 그 구체적 이야기 속에 동시대 우리의 삶에 가장 선명하게 담겨 있으며 그 안에 인류 보편의 욕망과 삶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평양 출신의 목사인 이삭은 일본으로 건너가던 중 병으로 쓰러지지만 선자와 그의 어머니의 간호로 건강을 되찾는다. 한수와 이별 후 선자는 이삭과 일본으로 넘어가 부부의 연을 맺는다. ⓒApple TV+ 강유정(Kang Yu-jung 姜由楨) 영화평론가, 교수

전성기를 맞은 K-멜로

Entertainment 2022 SUMMER

전성기를 맞은 K-멜로 최근 넷플릭스(Netflex)에서는 ‘K-멜로’전성시대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한국 멜로드라마가 연이어 화제가 되고 있다. 멜로드라마에 MZ세대의 달라진 가치관이 잘 반영되어 있는 점이 국내를 넘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도 공감을 얻은 이유로 분석된다.   (2019), (2021), (2021), (2022) 등 근래에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열풍을 일으킨 작품들 대부분이 장르물이다. 그래서 한국 드라마가 대부분 장르물에 치우져 있다고 오인하기 쉽지만, 실상은 다르다. 예를 들어 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을 때 OTT 콘텐츠 순위를 집계하는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FlixPatrol)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한 넷플릭스 Top 10 작품은 바닷가 마을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tvN의 TV 드라마 (2021)였다. 뒤이어 연상호(Yeon Sang-ho, 延尚昊) 감독의 이 또 한번 열풍을 일으켰을 때는 궁을 배경으로 한 KBS의 멜로 사극 (2021)가 Top 10에서 빠지지 않았다. 이런 흐름은 최근까지도 이어져 이른바 ‘K-멜로’라는 새로운 용어까지 생겨났다. 의 두 여자 주인공은 펜싱 라이벌에서 둘도 없는 친구로 발전하며 서로에 대한 응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 ⓒ Studio Dragon 달라진 가치관 K-멜로는 갑자기 생겨난 장르가 아니다. 오래전 KBS의 20부작 TV 드라마 (2002)가 일본을 강타하며 한류의 물꼬를 트던 시절부터 싹을 틔웠다. 이후로 SBS의 (2013), tvN의 (2019) 같은 메가 히트작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20여 년간 공고한 팬덤을 확보했다. 남녀 주인공 사이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과 감정선을 섬세하게 포착해 낸 덕분이다. 한국 드라마의 진짜 주력 장르는 멜로였던 것이다. 여기에 글로벌 플랫폼 OTT의 등장은 K-멜로가 아시아권을 넘어 전 세계로 확장하는 발판이 되었다. 뻔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멜로물은 과거나 현재나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 같지만, 여러 가지 변화한 양상을 엿볼 수 있다. 시청자의 가치관이나 감성이 예전과 달라졌고, 그러한 변화가 드라마에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멜로드라마의 주된 시청자층인 MZ세대는 일과 휴식이 균형을 이루는 삶을 원하고, 성공보다는 행복을 추구하며, 다양한 사회 관계 속에서 존재감을 느끼는데, 이러한 경향이 K-멜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한국 멜로드라마의 특징이었던 신데렐라 서사가 거의 사라진 것이다. 현대판 왕자님이 등장해 힘든 삶을 씩씩하게 버텨 내고 있는 여성에게 신분 상승의 구두를 신겨 주는 스토리는 더 이상 대중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대신에 동등한 위치에 있는 남녀가 취향이나 가치관, 삶의 방식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사랑으로 이어지는 스토리가 많아졌다. 예컨대 의 여자 주인공은 현실주의 성향이 강한 치과의사인데, 도시에서 살다가 작은 갯마을로 내려와 병원을 개업한다. 그러고는 이렇다 할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마을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으며 살아가는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다. 세속적인 욕망이 투영된 신데렐라 이야기와는 정반대의 가치관을 담아내고 있다. SBS가 지난해 방영해 인기를 모은 은 헤어졌던 남녀가 다큐멘터리 촬영 때문에 다시 만나 엮이는 스토리다. 이 드라마에서는 두 사람이 주고받는 감정이 부각될 뿐 현실적 상황은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이들 작품의 특징은 주인공들이 성공이나 부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실의 성공이나 경쟁보다는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소소한 행복을 중요시한다. K-멜로가 투영해 내고 있는 가치관의 변화가 글로벌 대중들의 공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전 세계인들이 마주한 ‘시대의 변화’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은 마흔을 코앞에 둔 세 친구의 우정과 사랑,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다루는 현실 휴먼 로맨스 드라마이다. ⓒ SLL 다양한 취미와 관계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현실주의 치과의사 여자 주인공과 만능 백수 남자 주인공의 사랑과 이웃의 따뜻한 정을 담은 ⓒ Studio Dragon 한국의 청춘들은 과거 일 중심으로 살아왔던 기성 세대와 달리 일과 삶의 균형을 원한다. 명함 한 장이 그 사람의 존재를 증명하던 시대를 지나 일과 전혀 상관없는 취향을 통해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세태로 변화한 것이다. (2020) 같은 드라마는 이런 MZ세대들의 달라진 가치관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평일 내내 열심히 환자를 돌보던 의사들은 주말이면 밴드 활동에 열정적이다. 이들은 의사로서 성공을 꿈꾸기보다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누리며 행복을 느낀다. 남녀 관계에 집중하던 멜로 드라마가 다양한 관계를 담기 시작한 점도 또 다른 특징이다. 과거 전형적 멜로 드라마는 남성 주인공을 가운데에 두고 펼쳐지는 여성 등장인물들의 경쟁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지난 3월 종영한 JTBC의 은 아예 로맨스보다 세 여성이 보여 주는 워맨스에 집중했다. 시청자들이 멜로 드라마에서 사랑 이상의 스토리를 기대하게 되면서 휴먼 드라마처럼 풀어내는 새로운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tvN의 (2022)에서는 여자 주인공인 나희도(Na Hee-do)와 고유림(Ko Yu-rim)이 펜싱 라이벌에서 둘도 없는 친구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등장인물들이 서로에 대한 응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 또한 개인주의 사회에서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따뜻한 정을 담았다. 한편 멜로드라마 속에서 일의 영역은 보통 배경으로 간단히 그려지기 일쑤였지만, 요즘에는 매우 디테일한 묘사로 현실감을 살리고 있는 점도 특징이다.  

여성 예능 바람이 분다

Entertainment 2022 SPRING

여성 예능 바람이 분다 남성 중심의 방송 환경과 낮은 시청률로 인해 부진하던 여성 예능이 최근 들어 한국의 TV 예능 편성에 주요 키워드로 떠올랐다. 여성들 간의 유대와 공감 속에 펼쳐지는 도전과 상호 존중의 서사가 시청자들의 마음에 큰 여운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가수들의 뒤에서 무대를 지켜왔던 무명의 댄서들을 조망한 케이블 TV Mnet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는 2021년 8월 방영이 시작되기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사진 속 그룹은 격전 끝에 최종 우승을 차지한 홀리뱅이다. ⓒMnet 2021년 한국 TV에서 가장 뜨거웠던 콘텐츠 가운데 Mnet의 (街頭女戰士, Street Woman Fighter) 가 있다. 흔히 가수 뒤의‘백댄서’로 호명되던 여성 댄스 크루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경연을 펼친 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8월 24일 첫 방영부터 화제를 모았다. 방영 기간 동안 꾸준히 비드라마 화제성 1위를 기록했고, 10월 26일 종영 이후에는 주요 참가자들이 다른 인기 예능 프로그램들에 게스트로 초청받는가 하면, 여러 패션잡지의 연말 결산에서도 일제히 다뤄졌다. 새로운 트렌드 의 무대는 한 명의 MC와 세 명의 심사위원을 중심으로 대결을 앞둔 양 크루가 바라보는 사각형 구조다. 그 주위로 나머지 크루 멤버들이 자리 잡고 응원과 호응을 해준다. ⓒMnet 프라우드먼의 리더 모니카(왼쪽)와 코카N버터의 리더 리헤이. 예고편은 ‘쎈 여자들’의 다툼이고 아찔한 갈등의 연속이었으나 본방에서 보여준 출연자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아름답게 인정하는 멋진 모습이었다. ⓒMnet 라치카(La Chica)는 애초에 한 가수의 안무를 짜기 위해 모인 일시적 모임이었는데, 작업량이 많아지고 다른 가수들의 안무도 담당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팀이 됐다. 원래 세 명이 팀원이지만 스우파 출연을 위해 피넛(왼쪽에서 두번째)과 에이치원(맨 오른쪽)이 객원 맴버로 참석했다. ⓒMnet 2010년 Mnet의 (Superstar K) 시즌 2와 2020년 TV조선에서 방영한 (Mr. Trot, 明天是)이 그러했듯, 는 단순한 인기 프로그램을 너머 하나의 신드롬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케이블 종합편성채널 역대 시청률을 갱신했던 두 프로그램과 달리 의 시청률은 가장 높았을 때도 3%를 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프로그램은 불특정 다수 시청자들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인터넷 커뮤니티, 뉴스 포털 등 TV 바깥에서 커다란 화제를 만들며 팬덤을 이뤘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따져보려면 시청률이라는 지표에서 인상적인 기록을 남긴 다른 예능 프로그램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코미디언, 패션 모델, 배우 등 여성 유명인들이 2002년 월드컵 대표 선수들을 감독으로 축구팀을 만들어 경쟁한 SBS (Kick A Goal, 踢球的她们)이다. 2021년 6월 이후 계속 방영 중인 이 프로그램의 평균 시청률은 6~8% 사이를 오르내리고 있다. 같은 해 신작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 눈에 띄게 높은 수준이다. 최근 조작 논란이 있긴 했지만, 침체에 빠져 있었던 지상파 예능의 희망 역할을 톡톡히 해준 것이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가 만들어낸 신드롬과 의 안정적인 높은 시청률이 지난 해 한국 여성 예능의 부흥을 이끈 두 가지‘사건’이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겠다. 클리셰에 맞서다 두 프로그램에는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경쟁을 통해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서바이벌 형식을 갖췄으면서 동시에 여성 서바이벌 예능의 거의 모든 클리셰를 배신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TV 여성 서바이벌 예능에서 보여온 구도는 경쟁 자체보다는, 경쟁 과정에서 격화되는 감정싸움을 구경하거나 ‘여성 치고 잘하는’ 모습을 기특해하는 방식으로 소비되어 왔다. 는 다른 여성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그래왔듯, 강렬한 비주얼의 여성끼리 벌이는 ‘캣파이트’를 노골적으로 의도한 프로그램이다. ‘2021년 여름, 춤으로 패는 여자들이 온다!’는 방영 전 홍보 문구나 예고편도 여지없이 캣파이트를 연상시켰다. 또한 만만한 상대로 지목된 댄서가 옷에‘No Respect’ 스티커를 붙이고 배틀을 벌이는 첫 미션에서 연이어 아이돌 출신 댄서를 제압하는 모습은 마치 하이에나 무리가 손쉬운 먹잇감을 사냥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신드롬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계급 미션’에서도 댄스 크루 웨이비의 리더 노제(No:ze, 盧智慧)가 만든 안무를 채택한 뒤 그 안무를 더 잘 소화해 메인 댄서가 되려는 다른 크루 리더들의 치열한 역공의 과정이 부각되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 프로그램 속에는 단순한 싸움이 아닌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존감 높은 출연자들의 진짜 모습이 있었다. 아이돌 출신 댄서가 탈락하게 되는 마지막까지 모든 출연자들은 그에게 한없는 애정과 존중을 표시했다. 또한 노제가 만든 안무를 두고 한 출연자가 “저건 내가 좀 갖고 놀 수 있겠다. 외우기만 하면” 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그 춤이 쉽고 만만하다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본인의 춤에 대한 강한 프라이드가 내비쳤다. 출연자들 간의 경쟁을 감정적 캣파이트로 묘사하려는 편집에도 불구하고 춤을 향한 그들의 진지한 태도는 감춰지지 않았고, 바로 이 점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뜨겁게 움직였다. 가장 먼저 탈락해야 했던 노제는 “항상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게 춤을 췄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담담하게 춤에 대한 사랑을 말하고 떠났다. 바로 이때부터 모든 참가자에게는 승패 보다는 프로로서 얼마나 후회 없이 전문성을 증명하고 가느냐가 중요하게 됐다.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프라우드먼이 3차 미션에서 떨어졌지만,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그들의 패배가 아니었다.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되느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종전의 어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도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파일럿 프로그램이 10%의 높은 시청률을 올리자 정규 편성에 들어갔던 역시 마찬가지다. 연예인들이 모여 스포츠 경기를 벌이는 경우 종전에는 으레 출연자들의 부족한 실력과 실수가 주는 웃음에 초점을 맞췄던 것에 반해, 이 프로그램은 그러한 기대를 보기 좋게 배신했다. 파일럿 방송에서 우승했던 중년 스타 팀 FC 불나방은 정규 방송에서도 다시 리그와 토너먼트를 거치며 우승했지만, 여기서도 역시 중요한 건 승패가 아니었다. 평균 키가 월등히 컸음에도 불구하고 파일럿 단계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패배했던 모델 팀이 정규프로에서 가까스로 4강전에 올라 FC 불나방과의 결승에서 비록 패배했지만, 끈질긴 시도로 득점에 성공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겨주었다.   YG엔터테인먼트 산하의 댄스 레이블 YGX는 주로 YG 소속 가수의 공연이나 연습생 트레이너로 활동하다 에 합류했다. 참가 그룹 중 가장 어리고 톡톡 튀는 이미지로 Z세대 여성의 상징이 되었고, 실제로 주 고객층이 Z세대 여성들인 유명 패션 플랫폼의 모델로 발탁되기도 했다. ⓒMnet 유대와 공감 남성 중심의 방송 환경에서 여성 예능이 하나의 큰 흐름으로 떠오르게 된 배경에는 싸움에서 승리하는 또 다른 방법, 즉 진정성에서 우러나오는 성실과 끈기, 그리고 상호 존중의 태도가 있었다. 의 최고 명대사로 꼽히는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는 감히 남자들은 끼어들 수 없는 강한 여성들의 도도한 세계를 상징하는 말이 됐다. 이러한 한국 여성 예능의 부상이 있기 까지는 2020년 방영이 시작된 E채널의 (Sporty Sisters, 愛玩的姐姐)나 2016년 7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방영된 MBC everyone의 처럼 선구적 역할을 담당해온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2021년에 시즌 2로 이어진 에서는 LPGA 명예의 전당에 오른 박세리(Pak Se-ri, 朴世莉)를 비롯해 전‧현직 여성 스포츠 스타들이 출연해 새로운 운동 종목이나 취미를 경험한다. 막강한 근육과 넓은 어깨로 화제가 됐던 수영선수 정유인(Jung You-in, 鄭唯仁)처럼 그 동안의 TV 속 젠더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 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크다. 에서 코미디언 김민경(Kim Min-Kyoung, 金敏璟)이 큰 체구로 수비수를 튕겨낼 정도의 저돌적인 드리블을 하는 통쾌한 장면도 서로 일맥상통한다. 최근까지 남성 진행자들만 있었던 MBC의 인기 토크쇼 의 마이너 버전 정도로 만들어졌던 (Video Star)의 존재도 중요하다. 이 쇼가 5년 동안 장수하는 동안 MC를 맡았던 박나래(Park Na-rae, 朴娜勑)와 김숙(Kim Sook, 金淑)은 각각 2019년 MBC 방송연예대상, 2020년 KBS 연예대상을 수상했다. 남성에 비해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던 여성 방송인들이 진행자로서 자리를 지키고 성장해 최고의 예능인으로 인정받게 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방송에서 여성은 언제나 남성의 관점에서 그려졌고 주변부로 밀려나기 일수였다. 그런 속에서도 새롭게 자신들의 영역을 개발해온 여성 연예인들이 있고, 또한 그들과 일체감을 느끼며 응원하고 지지하는 여성 시청자들이 있어 왔다. 이들은 서로 비슷한 싸움을 해온 유대감을 공유하며 또 한 번의 전진을 위해 투쟁을 각오한다. 이들의 성취는 아직 결말이 아닌 과정이다. 2022년에도 그들은 새로 보여줄 것들이 많아 보인다.   위근우 (Wee Geun-woo 魏根雨) Freelance Writer

이념을 넘어 지켜야 했던 것

Entertainment 2021 WINTER

이념을 넘어 지켜야 했던 것 영화 는 30년 전 소말리아 내전에서 함께 살아남은 남북한 대사관 직원들의 실화를 생생하게 엮었다. 이념과 체제가 생존의 본능 앞에서는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 류승완식 휴머니즘이 파헤친다. 2021년 7월 개봉한 는 1990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남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힘을 합쳐 혼란의 도시를 함께 탈출한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이다. “자동차 한 대가 빗발치는 총알을 피해 사막을 질주하는 이미지에서 출발했다”는 류승완 감독의 말처럼 4대의 자동차에 나누어 탄 양측 외교관과 그 가족들의 긴박한 탈출 장면이 영화의 백미이다. 소말리아와 풍경이 비슷한 모로코 에사우이라에서 거의 모든 장면을 CG 없이 실제로 촬영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미라클 작전도 영화로 만들 준비를 해야 하나.” 얼마 전 ‘미라클 작전’을 지켜보다가 촬영이 한창이 류승완(Ryoo Seung-wan 柳昇完) 감독에게 관련 기사를 보냈더니 ‘미소’이모진을 덧붙여 돌아온 대답이다. 지난 8월 미군 철수와 탈레반의 재점령으로 아수라장이 된 카불에서 그 동안 한국 정부에 협력한 아프간 민간인과 그들의 가족을 탈출시킨 정부의 결정과 실행은 국제사회에서의 연대감과 책임감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많은 호응을 받았다. 이 작전을 지켜보면서 코로나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 속에서도 극장 관객 300만을 기록하며 장기 상영에 들어 간 류승완 감독의 영화 (逃出摩加迪休, Escape from Mogadishu; 2021)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운명 같은 인연 “자동차 한 대가 빗발치는 총알을 피해 사막을 질주하는 이미지에서 출발했다.” 2년 전, 류 감독이 속한 제작사 외유내강(內柔外剛 Filmmaker R&K)이 제작한 재난 영화 (極限逃生, EXIT; 2019)의 시사회에서 잠깐 만났을 때 류 감독이 던진 말이다. 전작 (軍艦島, The Battleship Island; 2017) 이후 와신상담하던 그가 자신의 열한 번째 장편영화로 를 막 결정했던 즈음이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이라 그는 말을 아꼈지만 그 날의 짧은 대화에서 그가 어떤 배경과 분위기의 작품을 구상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단서 두 가지를 얻었다. 그것은 실화를 재구성한다는 것과 남북한 인물들이 총알 세례를 뚫고 함께 사막을 질주한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일까 무척 궁금했었고, 극장 객석에서 그에 대한 해답을 얻기까지 2년이 걸렸다. 의 배경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에 기반한다. 1990년 12월 30일 소말리아의 수도인 모가디슈에서 바레 장군의 장기 독재를 거부하는 시위가 쿠데타를 불러 일으키며 내전으로 이어졌다. 그 당시 남북한 대사관이 동시에 주재하며 상호 비난과 공작 활동을 벌이고 있었던 모가디슈에서 두 대사관 직원들이 힘을 모아 함께 혼란의 도시를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류 감독이 대한민국 외교사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었던 이 사건을 스크린에 펼쳐내야겠다고 판단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서로 대치 중이던 남북한의 외교관들이 제3국에서, 그것도 머나 먼 아프리카 대륙에서 사선을 넘나들며 나란히 분투한 사건에서 단순한 흥미 이상의 어떤 감동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류 감독은 어느 날 자신의 사무실에 놀러온 후배로부터 1991년 동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 있었던 이 사건에 대해 우연히 듣게 되었다. (與神同行, Along with the Gods: The Two Worlds) 시리즈를 제작한 덱스터 스튜디오가 영화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辣手警探, Veteran; 2015)의 후반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로부터 두어 해가 지난 뒤 덱스터 스튜디오가 그에게 연출 제안을 해 왔다. 류 감독은 “실화가 궁금해 당시 언론 보도와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너무 극적인 이야기라 누가 됐든 잘 만들면 좋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감독과 영화는 그렇게 ‘운명처럼’ 만났다. 그가 이 사건에 매료된 건 무엇보다도 ‘함께 탈출한 남북한 외교관들이 특수 부대원이나 첩보 요원이 아닌 민간인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극적인 상황을 겪으면서 발생하는 서스펜스가 흥미진진했고, 종전에 영화를 만들던 방식과 다른 시도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것이 나를 움직인 원동력이었다”는 게 류 감독의 설명이다. 그는 실화를 다시 취재해 영화로 재구성했다. 모가디슈가 무장 군인과 반란군의 총격전으로 아수라장이 되기 전 남북한 외교관들은 각기 자국의 UN 가입에 소말리아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고 있었다. 남한 대사 역의 김윤식(전면 왼쪽)과 북한 대사 역의 허준호가 긴장된 관계를 보여준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냉전 속 뜨거운 감동 영화는 1990년 12월 초부터 내전이 시작된 12월 30일을 거쳐 남과 북의 외교관들이 모가디슈를 벗어나는 1991년 1월 12일까지 약 한 달 남짓한 시간을 다룬다. 류 감독은 역사적 사실의 배경과 진전, 그리고 결말을 충실히 끌어오되 캐릭터와 사건의 디테일을 영화적으로 새롭게 구성했다. 그것은 그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작업이기도 하다. 류 감독은 “그 기간은 소말리아의 정치사회적 상황이 급변하던 시기라 이 격동적 변화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남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대한한국 대사관 관저에서 12일을 함께 보냈는데 그 기간 그들이 어떻게 지냈는지를 채워넣는 게 관건”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영화에서는 크게 두 개의 전쟁이 전반부와 후반부를 교차하며 전개된다. 장중한 아프리카풍 음악을 배경으로 바다에서 바라보는 모가디슈 풍경— 이제껏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오프닝 시퀀스에 이어지는 영화의 전반부에서는 남북간의 외교전이 펼쳐진다. 남북한 대사들은 앞다퉈 대통령, 장관 등 소말리아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며 치열하게 로비를 벌인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고, 나라에 국격이 있듯이 외교에도 격조가 있다” 지만, 각기 유엔 가입을 위한 회원국의 표만 끌어올 수 있다면 아슬아슬한 공작도 서슴지 않는다. 당시 냉전 말기에 힘의 우위에 있었던 건 영화 속 북한 대사의 말처럼 “남조선보다 20년이나 앞서서 아프리카에 기반을 닦은”북한이다. 남한 대사는 북한 대사가 쳐놓은 덫에 걸려들어 번번이 허탕을 친다. 영화의 전반부는 주요 캐릭터들을 꼼꼼하게 구축하는 동시에 소말리아 내전이 진행되는 과정을 공들여 보여준다. 그 의도를 류 감독은 이렇게 설명했다. “관객이 인물에 몰입하고 그들과 함께 내전 상황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내전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전개되는지 사실적으로 잘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까지 조마조마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영화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너무나 잘 알지만 관객에게는 그것이 첫 경험이다. 그러니 익숙하지 않은 역사적 배경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까봐 걱정됐다. 다행스럽게도 관객이 영화 속 내전 상황을 무리 없이 잘 이해한 것 같다.” 북한으로 기울었던 균형추는 반군이 진짜 전쟁을 일으키는 중반부부터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어 나간다. 폭탄 테러가 일어나고, 사람들이 동요하며, 군부가 모가디슈로 진입해 국가를 장악하는 쿠데타 과정이 세세하게 그려진다. 그러면서 서사는 남과 북의 외교전에서 모가디슈 탈주극으로 전환된다. 긴박한 상황 속에 남한 대사가 “도와달라”고 손을 내민 북한 대사관 직원들을 받아들이면서 남과 북은 같은 곳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들에게는 남한으로의 전향이나 북한 사람과의 접촉으로 인한 국가보안법 위반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목표는 탈출해 살아남는 것, 오로지 그것 하나뿐이다. 탈주극은 류 감독이 처음 시도한 장르가 아니다. 의 후반부에서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탈주한다. 하지만 그 탈출 신이 감독의 영화적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판타지라면, 의 그것은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비슷한 시기의 소말리아를 배경으로 한 할리우드영화 (黑鷹計劃, Black Hawk Down; 2001)이나 미국 CIA 요원이 이란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주이란 미국 대사관 직원들을 탈출시키는 (逃离德黑兰, Argo; 2012) 역시 실화를 기반으로 한 탈주극이지만, 한 국가가 자국민을 구출하는 작전을 그려낸 앞의 두 영화와 달리 는 내전으로 인해 치안이 파괴되고 통신이 두절된 주재국 수도를 냉전 속에 대치 중인 적대국의 외교관들이 국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힘을 합쳐 탈출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확연히 다르다. 긴박한 상황 속에 남한 대사가 “도와달라”고 손을 내민 북한 대사관 직원들을 받아들이면서 남과 북은 같은 곳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들에게는 남한으로의 전향이나 북한 사람과의 접촉으로 인한 국가보안법 위반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류승완식 휴머니즘 류승완 감독은 로 11월 10일 한국영화평론가협회가 주는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다. 이 영화는 같은 시상식에서 촬영상, 음악상, 남우조연상도 받아 4관왕의 영예를 누렸다. 또한 내년 3월 개최되는 제94회 아카데미영화상 국제장편영화 부문 출품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남북한 대사관 직원 20여명이 자동차 4대에 나눠 탄 채 화염병과 총알 세례를 뚫고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질주하는 후반부는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류승완식 휴머니즘이 고스란히 반영된 명장면이다. 포드 머스탱이 서울 명동 거리를 질주했던 류 감독의 전작 과 달리 이 영화 속 자동차들은 ‘모래주머니와 책을 매달아’ 속도를 내지 못해 아슬아슬한 묘미가 있다. 그런데도 서스펜스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건 관객이 함께 타고 있는 느낌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류 감독은 “진짜 같아야 한다는 원칙 안에서 신경 썼던 건 ‘스펙터클해서는 안된다’ 였다. 쏟아지는 총알과 화염병 속에 질주하는 인물들의 절박감이 전달되려면 스펙터클보다는 서스펜스를 구축하는 게 중요”했다며 “카메라가 자동차 외관보다는 차 내부 상황을 중점적으로 담아낸 것도 그래서다. 무엇보다 관객이 차 안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몰입감을 느끼게 하려면 사운드를 생생하게 구현하는 게 필요했다. 사운드팀이 녹음실에서 차 소리와 총격 소리를 사실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고생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4대가 사람을 가득 태워 느린 속도로 반군의 추격을 따돌리는 숨막히는 광경을 그 흔한 인물의 클로즈업숏이나 눈물샘을 자극하는 오케스트라 음악 없이 카메라에 담아낸 것이 인상적이다. 또한 소말리아를 탈출한 비행기 안에서 남북한 인물들이 작별 인사를 나누는 장면도 정갈하고 담백하게 묘사되었다. 류 감독은 “비행기 안에서 그 장면을 찍을 때 배우들이 많이 울었다. 촬영 후반부라 감정적으로 고조된 상태였을 것이다. 실제로 이들이 긴 시간 동안 얼마나 긴장된 상태로 함께 지냈겠나”라며 “그 장면이 과거에서 종결되는 이야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의 힘을 가지려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보다는 여운을 남기는 게 중요하다고 보았다. 모두가 그 상황이 어떤 감정과 의미를 담아야 하는지 다 알고 있었으니까”라고 말했다. 남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처음으로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영화의 중반부에서 남한 대사의 부인이 깻잎을 떼어내지 못하자 북한 대사의 부인이 자신의 젓가락으로 도와주는 장면이 뭉클했던 것도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연대를 보여준 덕분일 것이다. 아마 이 대목에서 박찬욱 감독의 (JSA安全地帶, Joint Security Area; 2000)에서 남북한 병사들이 초코파이 하나로 우정을 나누던 장면이 절로 떠오른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절박한 상황에서 무슨 수를 쓰더라도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삶의 의지, 또한 체제와 이념보다 인간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는 휴머니즘 — 류 감독이 오랫동안 추구해 온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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