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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2023 SUMMER

새로운 삶의 스타일이자 여행의 미래, ‘한 달 살기’

한 달 살기는 보고 즐기고 먹기 위한 관광이 아니라 특정한 곳에서 한 달 이상 머물면서 휴식을 추구하는 여행을 말한다. 온전하게 그곳의 환경과 현지인들의 생활 풍습을 가까이서 누리고 접해보는 것이 한 달 살기의 매력인 셈이다. 팬데믹 이후 한 달 살기는 여행을 넘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자리잡고 있다.

여행 작가 청춘유리 부부의 강원도 영월 한 달 살기 프로젝트. 이들의 한 달 살기 여행 이야기는 『그 여름, 젊은 달』이라는 제목으로 영월군과 협업해 수필집으로 발간됐다.
ⓒ 청춘유리

장기간 시간을 내야하고, 해당 기간 동안 머물 장소까지 구해야 하는 한 달 살기는 시간이든 경제적 요건이든 우리 삶에서 중요한 여러 가치들과 맞바꿔야 실행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시간이 자유로운 전문직 프리랜서나 연예인처럼 특수한 직업군이나 은퇴 이후 지방 거주를 고민하는 이들 정도만 한 달 살기를 실행에 옮길 수 있었으나, 요즘엔 일반 직장인도 늘어나는 추세다. 일과 휴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고, 팬데믹 이후 원격 또는 재택 근무가 보편화되면서 복지와 업무 능률 향상을 위해 워케이션을 허용하는 기업이 늘어남에 따라 생긴 변화다.


한 달 살기 열풍 주도한 제주도
그 동안 한 달 살기 같은 여행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본격 유행한 것은 지난 2010년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서 한 달 살기 열풍을 주도한 곳은 제주도이다. 타 지역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이국적인 자연환경을 누리려는 욕구, 학업으로 받은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방학을 이용해 풀어주려는 보상심리, 제주도 내 게스트하우스 유행 등 여러 요인이 결합하면서 열풍이 일었다. 여기에 하는 일마다 대중의 이목을 끄는 국내 여가수 이효리(Lee Hyo-lee 李孝利) 씨가 2013년 결혼하자마자 제주로 이주하면서 다시 한 번 제주도와 그곳에서의 삶이 주목 받았다. 제주도 집에서 치른 스몰 웨딩, 마당에서 반려견과 한적하게 지내거나 콩을 베는 모습, 바다에서 패들 보드를 타거나 오름을 오르는 등의 평화로운 라이프 스타일은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한 몫 했다.

한 달 살기는 팬데믹 이후 더 주목 받고 있다. 지난 몇 년 간 코로나19로 억눌려 있던 여행 수요가 현지에서 장기간 살아보는 여행 스타일인 한 달 살기, 그리고 워케이션 등과 결합하면서 여행 트렌드까지 바꾸고 있다. 또한 여행지도 다양화되고 있다. 한 달 살기 열풍 초기에는 제주도가 인기였으나, 최근에는 강원도를 비롯해 경상도나 전라도 등 다양한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렇게 긴 시간 한 지역에서 살아보는 여행이 여행 트렌드를 선도하면서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남도에서 한 달 여행하기’, ‘경남에서 한 달 여행하기’, ‘요즘 김해, 지금 여행’, ‘너와마을, 농촌에서 살아보기’ 등이 대표적이다. 한 달 살기를 하는 동안 해당 지역의 특색을 담은 명소나 특산품 혹은 농장 체험 등의 다양한 여행을 제안하기도 한다.

영월군은 시인, 서예가, 여행작가 등 분야별 유명인을 초대하여 계절별로 한 달 살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이들의 여행기를 수필집으로 발간해 무료 배포했다. 독자들은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영월군에 관심을 갖게 됐다.ⓒ 영월군

호텔로 변신한 마을
마을 호텔 형태의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한 건물에 라운지, 숙박, 헬스, 식사 등의 서비스가 모여 있는 호텔과 달리, 마을 호텔은 마을 전체가 하나의 호텔 기능을 한다. 마을 입구의 카페가 안내데스크 역할을 하고, 마을의 맛집이 다이닝 역할을, 곳곳의 공방 등이 체험 서비스 역할을 한다. 그러니 마을 전체가 곧 즐길 거리다. 해당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교류는 덤이다.

충청남도(忠淸南道) 공주시(公州市) 마을 스테이 ‘제민천(濟民川)’은 마을 호텔의 대표적인 사례다. 제민천은 주민들이 유기적으로 마을 호텔을 구성하고 있다. 한옥스테이 봉황재(鳳凰齋)에서 시작하는 마을 호텔의 프런트는 가가상점(家家商店)이 담당하고, 커뮤니티이자 로비 역할은 반죽동(班竹洞)247 카페가 맡고 있다. 봉황재 외에도 공주하숙마을 등을 비롯한 고즈넉한 한옥 스테이가 있으며, 제민천을 중심으로 마을 곳곳에 먹거리와 볼거리가 숨어 있다.

2018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한 강원도(江原道) 정선군(旌善郡) ‘마을호텔 18번가’는 국내에서 가장 먼저 마을 호텔을 만든 곳이다. 고한읍(古汗邑)의 낙후된 폐광촌에 고한18리 주민들이 힘을 모아 조성했다. 빈집을 리모델링한 숙소에 머무르면 마을식당, 사진관, 이발관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할인 쿠폰을 받을 수 있다. 어르신들이 모여 있는 마을 회관은 로비 역할을 한다.

팬데믹 이후 워케이션이 늘어나면서 지자체별로 한 달 살기를 적극 지원하는 프로모션이 늘었다. 특히 최근 사회 문제로 떠오른 농어촌 빈집을 활용하는 방안이 허용됨에 따라 여행객은 다양하고 합리적인 형태의 숙소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농어촌의 빈집을 활용한 빈집 프로모션도 눈길을 끌고 있다. 2021년 통계청이 발표한 전국의 빈집은 1,395,256호에 이른다. 미분양 주택과 1년 이내 미거주•미사용 등 일시적 빈집까지 포함한 경우다. 빈집이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오름에 따라 정부는 농어촌의 빈집에 대해 숙박업을 허용했다. 고향 집을 방치해 온 이들에겐 ‘빈집 재테크’라는 가능성이 열렸으며, 이를 토대로 다양한 형태의 숙소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지자체 역시 앞다퉈 신청을 받는 등 동참하는 분위기다.

 

워케이션, 한 달 살기 가능성 넓혀
일과 결합해 한 달 살기를 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른바 워케이션(Workation)이다. 이는 일(Work)’과 ‘휴가(Vacation)’의 합성어로, 집이나 사무실이 아닌 원하는 곳에서 업무와 휴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새로운 근무제도를 말한다. 이는 지난 몇 년 간 재택근무가 확산되고 원격근무가 가능한 디지털 기반이 조성되면서 늘기 시작했는데, 휴가지에서의 업무를 인정함으로써 업무와 휴식의 밸런스를 통해 능률성을 꾀할 수 있다. 특히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MZ세대들의 등장이 워케이션 확산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워케이션은 새롭고 낯선 지역에서의 업무를 통해 업무 효율성 향상은 물론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이점이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워케이션이 코로나19로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독자에게 매일 새로운 글을 전달하는 메일링 서비스 ‘일간 이슬아’를 선보인 이슬아(Lee Sulla) 작가가 영월군과 협업해 발간한 『이슬아 생활집 - 영월편』페이지. 작가는 영월에서 머물며 요가, 채집, 비건 레시피 등을 사진과 짧은 글귀로 기록했다.
ⓒ 영월군



워케이션은 ‘일과 삶의 조화’라는 새로운 경험을 준다. 시인이자 여행작가인 최갑수(Choi Gap-soo崔甲秀) 씨는 지난 연말 강릉에서 한 달을 살았다.

“평소 살던 곳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환경과 일상을 경험한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입니다. 숙소에서 날마다 새로운 아침을 맞았는데, 평소의 루틴과는 완전히 다른 생활을 할 수 있었어요. 모든 것이 새로웠고 영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여유로운 몸과 느슨해진 정신으로 간만에 휴식을 취할 수 있었죠. 삶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앞으로 제 인생에 매년 새로운 한 달을 선물해주기로 했습니다.”

워케이션의 장소도 제주도에서 강릉을 비롯해 다양한 지방으로 확산, 분화되고 있다. 해마다 한국사회 트렌드를 조명하고 전망하는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 엔데믹 이후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워케이션의 장소로 ‘시골’을 꼽았다고 밝혔다. 워케이션의 장소로 시골이 부각되고 있는 것은 날 것의 자연과 시골 고유의 매력을 즐기며 도시 생활과 다른 여유와 편안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케이션이 마냥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혼란스러운 업무, 일과 휴가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점, 모든 업무에 적용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한 달 살기 여행이 보편적인 여행 트렌드로 자리 잡으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아침에 일어나서 바닷가를 산책하고 느긋하게 동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소박하지만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달 살기는 새로운 삶의 스타일이자 여행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최병일(Choi Byung-il 崔昺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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