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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 Series

장르의 규범에 질문을 던지다

Past Series 2023 SPRING

장르의 규범에 질문을 던지다 ‘음악동인 고물’과 ‘고블린파티’ 두 단체가 협업하여 만들어 낸 는 연주자가 춤을 추고 무용수가 연주를 하며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작품이다. 이들은 전통 음악과 현대 무용의 결합이라는 단순한 도식을 넘어 기존 장르의 문법을 의심하며 질문을 던진다. 일반적으로 음악이 다른 장르와 협업할 때 관객의 감정을 고무시키기 위한 수단이나 작품 주제를 위한 배경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꼭두각시 > 는 이러한 주객 관계에서 벗어나 음악과 무용이 주제 의식을 견지하며 동행하는 작품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옥상훈(Ok Sang-hoon) 최근 들어 장르적 협업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이 크게 늘었다. 협업은 오늘날 한국 공연 예술계의 단면을 보여 주는 키워드다. 누가 누구와 함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가 되고, 협업 자체가 새로움을 보장하는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장르의 결합이 곧 협업의 가치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결과물이 얼마나 매력적인지가 중요하다. 성공적인 협업을 위해서는 장르 간 힘의 균형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각각의 장르가 만날 수밖에 없었던 필연성이 결여된 협업은 단순한 눈요깃거리에 머무르기 쉽다. 그런 점에서< 꼭두각시 > 는 주목할 만하다. 이 작품은 역대 최고의 협업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협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 꼭두각시 > 는 우수한 창작 레퍼토리 발굴에 힘쓰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2021년 전통 예술 부문 ‘올해의 신작’ 중 하나로 선정한 작품이며, 이듬해 2월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서 관객들과 처음 만났다. 같은 해 9월에는 국제 공연 예술 플랫폼인 서울아트마켓에서 쇼케이스를 펼쳤으며, 10월에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초청되었다. 독자적 행보 이 공연에서는 무용수가 연주자를 조종하며 악기 연주에 개입하는 장면을 비롯해 각자의 역할이 해체되거나 전복되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는 과연 누가 조종하는 주체이고 조종당하는 객체인지 질문하게 만드는 동시에 현대인들이 처해 있는 사회 시스템을 돌아보게 만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옥상훈 < 꼭두각시 > 는 전통 음악에 기반을 둔 음악동인 고물(Musical Coterie Gomool, 古物)과 세 명의 안무가들로 결성된 무용 단체 고블린파티(Goblin Party)가 함께한 작품이다. 두 단체의 만남은 흥미진진한 사건을 예고하듯 신선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우선 음악동인 고물은 음악감독 이태원(Lee Tae-won, 李泰源)과 국악을 전공한 3명의 연주자들로 구성된 팀이다. 이들은 이른바 ‘공연형 다큐멘터리(Staged Documentary)’라는 양식 실험을 통해 자신들의 문제의식을 풀어낸다. 고물은 한국의 전통음악이 동시대에 어떻게 인식되어야 하고 또 형상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며, 전통 음악을 둘러싼 개념‧제도‧규칙‧시스템 등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 그동안 고물은 창작자들이 시스템과 시스템 사이 혹은 시스템의 밖을 상상할 때 어떤 가능성이 열리는지 보여 주곤 했다.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것들, 또는 결코 뒤섞일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왜 그래야 하는지 가장 먼저 질문하는 자들이기도 했다.< 꼭두각시 > 도 이런 사유의 연장선에 있다. 고블린파티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도깨비의 정체성을 표방한다. 한국의 도깨비는 비범한 재주를 가진 재기발랄한 존재로 생산과 풍요를 상징한다. 이들은 대표 없이 세 명의 안무가가 공동으로 창작하는 수평적인 시스템을 추구하며 다양한 작업을 펼치고 있어 이례적인 단체로 평가받는다. 이처럼< 꼭두각시 > 는 음악계와 무용계에서 독자적 영역을 구축해 온 두 팀이 호흡을 맞췄다는 사실만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무너지고 넘나드는 경계 5명의 연주자와 3명의 안무가들이 한데 어울려 완벽한 앙상블을 이루는 모습은 이들이 얼마나 농후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을지 짐작하게 만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옥상훈 두 팀의 독특한 협력 관계는 공연 소재인 꼭두각시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감지된다. 꼭두각시는 우선 유치원 학예회나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남녀 어린이들이 짝을 이뤄 추는 춤과 반주 음악을 가리킨다. 한국의 중장년층은 대부분 어린 시절 꼭두각시 춤을 직접 추었거나 접해 본 경험이 있다. 그런가 하면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노래와 춤, 풍물 연주 등을 선보이던 조선 시대 남사당패의 연희 중 하나인 전통 인형극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서양의 마리오네트처럼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타인에게 조종당하는 존재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러한 꼭두각시의 다층적 의미와 맥락은 협업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아이디어가 된다. 움직임, 놀이, 음악, 수동적인 인형의 모티브 등이 직관적인 방식으로 자유로이 뒤섞인다. 이 공연에서는 기존의 문법이 분할되거나 전복된다. 예컨대 무대 위 연주자들과 무용수들의 역할이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고 뒤엉켜 있다. 연주자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무용을 하고, 무용수들은 악기를 연주한다. 악기를 연주하는 몸놀림이 무용으로 접합되는가 하면, 무용수가 악기 연주에 개입함으로써 퍼포먼스의 주체와 객체가 기이하게 뒤틀리는 장면도 등장한다. 또한 음악은 움직임이, 무용수는 음악이, 연주자는 오브제가 되기를 자처하며 음악과 무용 그리고 놀이가 분리되지 않고 어지러이 뒤섞인다. 장르의 경계가 다양한 층위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는 셈이다. 이 공연의 묘미는 무용이든 음악이든 하나의 장르로 작품의 정체성을 규정하려 드는 순간 내면화되었던 개념의 틀을 관객들 스스로 의심하게 만든다는 점에 있다. 음악에도, 무용에도 포섭되지 않으면서 각 장르의 문법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이 기묘한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감각은 음악‧무용‧놀이가 무엇인지, 이러한 개념들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까지 대범하게 확장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협상의 테이블 2020년, 국립국악원의 뮤직비디오 제작 프로젝트 참여 당시 음악동인 고물이 뮤직비디오 촬영에 앞서 찍은 프로필 사진이다. 왼쪽부터 가야금 홍예진(弘藝珍), 해금 이유경(李裕卿, 객원), 대금 고진호(高辰虎), 장구 정준규(鄭峻圭, 객원), 피리 배승빈(裵升彬). 2006년 결성된 음악동인 고물은 전통 음악을 둘러싼 첨예한 문제들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 ⓒ 국립국악원 < 꼭두각시 > 를 단순히 현대 무용과 전통 음악의 결합이라 설명하는 건 단면만을 드러내는 것이다. 대개의 협업들이 예술 장르의 병렬적 나열로 수렴되는 데 반해 고물과 고블린파티의 협업에는 특별함이 있다. 다양한 맥락이 뒤섞여 있는 꼭두각시라는 소재가 두 단체의 협업에 핵심적인 연결고리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협업을 통해 이루어진 음악과 움직임에 대한 탐구는 꼭두각시를 현재 그들만의 관점에서 재구성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음악과 다른 장르 간 협업은 음악이 다른 장르와 만날 때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는 것에서 출발한다. 고물과 고블린파티의< 꼭두각시 > 는 음악과 무용의 경계를 지웠다기보다는 오히려 각각의 경계에서 끝없는 협상을 통해 장르의 규범을 재정의했다고 볼 수 있다. 이 협업의 바탕에는 두 단체가 지닌 내공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 꼭두각시 > 는 음악과 무용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전체적인 흐름을 조율하고, 움직임이 전면에 배치되는 순간에도 음악의 역할이 선명하게 감지되는 치밀한 전개가 인상적이다. 각 팀의 색채를 유지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은 상당히 까다로운데, 이를 최대한 달성하기 위해 축적되었을 대화의 시간을 가늠해 보는 일도 흥미롭다. 성혜인(Seong Hye-in, 成惠仁) 음악평론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Past Series 2022 WINTER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최우람(Choe U-ram 崔旴嵐)은 정교한 설계를 바탕으로 움직임과 서사를 가진 ‘기계 생명체(anima-machine)’를 제작해 온 작가다. 그동안 기술 발전에 투영된 인간의 욕망에 주목해 온 그는 이제 인간 실존과 공생의 의미에 관해 질문을 던지며 확장된 시선을 보여 준다. . 2022. 폐(廢)종이박스, 금속 재료, 기계 장치, 전자 장치(CPU 보드, 모터). 210 × 230 × 1272 cm. 좌우 35쌍의 노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선체 주변의 다양한 조각 설치물들과 어우러져 한 편의 웅장한 공연이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19세기 러시아 소설가 레프 톨스토이는 이렇게 물었다. 20세기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위기 앞에 무력하게 넘어질지라도 연대와 협력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웠다. 삶의 의미, 역경을 이겨내는 인본주의의 가치에 관한 근원적 질문에 대해 이번에는 한국의 현대 미술가 최우람이 답한다. 그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내년 2월 26일까지 열리는 <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작은 방주 > 전시에 그 묵직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벗어날 수 없는 욕망의 굴레, 원치 않는 노동의 반복, 끊임없는 경쟁의 시대를 비판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꿈을 꾸고, 의지를 가지며, 희망을 품고 살아가기에 ‘인간’이다. 2014년부터 출발한 < MMCA 현대차 시리즈 > 는 국내 중진 작가 중 한 명을 지원하는 연례 전시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고 현대자동차가 후원한다. 삶에 대한 은유 미술관 입구에서 티켓을 받아 쥐고 전시장으로 향하는 길, 시선을 먼 곳으로 뻗으면 천장 주변을 빙빙 돌며 느릿하게 날고 있는 검은 새 세 마리를 볼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1890)을 가로지르던 그 새들을 닮았다. 녀석들이 노리는 것은 그 아래 검은 원탁 위에서 나뒹구는 둥근 짚 뭉치인 듯하다. 작가의 신작 다. 이것은 바닥에 놓여 있는 설치 작품 과 짝을 이룬다. 둥글게 어깨를 맞대고 선 ‘지푸라기 인간’들이 원탁의 상판을 짊어지고 있다. 작품에 가까이 다가서면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밀짚 인간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지름 4.5m의 크고 육중한 검은 원탁이 이리저리 기울어진다. 탁자 위에 놓인 짚 뭉치가 공처럼 데구루루 구른다. 굴러간 쪽에 쭈그려 앉았던 무리가 얼른 일어선다. 지푸라기 인간들은 총 열여덟. 하나같이 머리가 없다. 생각할 수 없고, 보고 말할 수도 없는 이들은 방향을 상실한 군중이다. 무지몽매한 볏짚 인간들은 끊임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처럼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원탁을 떠받친다. 그들의 동력은 원탁 위의 짚 뭉치, 즉 밀짚 머리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이다. 짚 뭉치가 제 쪽으로 온다 싶으면 재빨리 일어나지만, 그럴수록 머리는 더 먼 곳으로 굴러갈 뿐이다. 누군가 원탁 아래에서 벗어나 그것을 차지한다면 고된 노동을 멈출 수 있을 것이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서로 양보하지도 않는다. 이 광경을 머리 위 검은 새들이 비웃고 있다. 새들은 맘만 먹으면 언제든 짚 뭉치를 낚아채 멀리 날아가 버릴 수 있다.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 중 하나는 일어서려는 밀짚 인간들의 ‘무릎’이다. 구부렸다 펴는 순간 마치 근육의 떨림 같은 파르르한 긴장감이 보이며, 안간힘이 느껴진다. 고작 지푸라기 두른 기계에 불과한 작품에서 인생사를 감지하게 된다. “내가 만들고 있는 ‘기계 생명체(anima-machine)’들은 인간의 삶과 모습을 대변하고 또 은유하기 위한 존재들이에요.” 어린 시절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를 꿈꿨으나 더 큰 상상력이 최우람을 미술가의 길로 이끌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한 그는 20대이던 1990년대부터 정교하게 움직이는 기계 생명체를 제작해 왔다. 고고학, 생물학의 이론에 로봇 공학을 접목하여 ‘기계 생명체 연합 연구소(United Research of Anima Machine)’라는 가상의 국제 연구소도 조직했다. 분야별 전문가들로 구성한 창작 헙업체이다. 앞 글자만 따면 그의 이름과 같은 우람(URAM)이다. 이번 전시에는 특별히 현대자동차그룹의 로보틱스랩이 기술 자문으로 참여했다. . 2022. 레진, 24K 금박, 스테인리스 스틸. 162 × 133 × 56 cm. 선체 좌측에는 뱃머리를 장식해야 할 황금빛 천사상이 무력한 모습으로 허공에 매달려 있다. 방향을 상실한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한다. . 2022. 알루미늄, 인조 밀짚, 기계 장치, 동작 인식 카메라, 전자 장치. 110 × 450 × 450 cm. 인간 형상을 한 18개의 볏짚들이 지름 4.5m의 원탁을 떠받치고 있는 작품이다. 원탁 위 머리를 차지하기 위해 애쓸수록 더욱 멀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부조리한 현실 이번 전시 작품 53점 중 49점이 신작이다. 미술관 5전시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전시 제목과 동명인 < 작은 방주(Little Ark) > 를 마주하게 된다. 길이 12m의 거대한 배다. 겉모습은 위세 등등하나 물이 없어 뜨지도,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한다. 닫힌 상태에서는 어른 키를 웃도는 2.1m 높이의 궤짝 형태인데, 노를 내젓는 순간 최대 폭 7.2m까지 펼쳐진다. 양쪽 35쌍 노의 현란한 움직임은 무용수의 몸짓처럼 유려하다. 넋 놓고 한참을 바라볼 정도로 빠져든다. 열린 배 안에는 두 명의 선장이 반대쪽으로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 가리키는 방향이 서로 다르다. 누구의 지시를 따라야 하나. 선체 중앙에는 5.5m의 등대가 놓였다. 등대의 자리는 고정된 땅이어야 하건만, 배와 함께 움직이는 등대는 더 이상 불변의 기준점이 되지 못한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등대 불빛은 길잡이가 아니라 감시자처럼 보인다. 배 뒤쪽으로 문이 열린다. 열린 문 뒤에 나타난 것은 새로운 닫힌 문이다. 그 문이 또 열리지만 닫힌 문만 한없이 펼쳐질 뿐이다. 이 영상 작업의 제목은 < 출구(Exit) > 다. 빠져나갈 수 없는 아득함의 연속이다. 좌우 양측 벽에는 떨어져 나간 닻과 뱃머리 장식인 황금빛 천사가 각각 자리 잡았다. 배를 정박하게 할 닻은 손닿을 수 없는 곳에 나뒹굴고 있다. 천사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다 날개가 태양에 녹아내려 추락한 이카루스의 최후처럼 무력하다. 전시장 전체가 한 편의 상황극을 보여주는 듯한데, 낯선 분위기를 즐기는 관객들이 제법 많다. 최우람은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이 작품들을 구상하고 만들었다. 그는 “핵전쟁으로부터 나를 구원해 줄 로봇을 그리던 일곱 살 때나 지금이나 세계는 여전히 전쟁 중이고, 완전히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다”면서 “우리가 힘겹게 열고 나간 출구 뒤에는 항상 더 단단하게 잠겨 있는 새로운 출구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은 해법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그 옛날 천연두나 페스트가 퍼질 때처럼 사람들이 죽고 혼란이 야기되는 팬데믹 상황이 펼쳐졌다”면서 “2022년 인류에게도 방주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 그 방주에 모든 것을 실을 수 없을 게 분명하기에 ‘작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고 덧붙였다. 방주가 작다고 했지만, 그의 작품 중 최대 크기이다. 안에 담긴 메시지 또한 역사적 관점에서 본 문명의 창조와 파괴, 삶과 죽음의 순환이라는 거대 담론이다. 방향 상실과 무한 반복이라는 벗어날 수 없는 부조리 상황을 보여 주는 작품들은 지금 이 시대를 관통한다. 하지만 조롱은 아니다.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지 않는 꿈과 희망에 관해 얘기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는 쓰레기로 버려질 것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었다. 폐차될 자동차에서 분리한 전조등과 후미등을 구(球) 모양으로 빚은 < urc > 연작은 각각 하얀색과 붉은색 행성을 닮았다. 이따금 불빛들이 깜빡거린다. 살아 있다는 뜻이요, 희망이 남아있음을 의미한다. < URC-2 >. 2016. 현대자동차 후미등, 금속 재료, LED, 커스텀 CPU 보드, PC. 170 × 180 × 230 cm. (왼쪽) < URC-1 >. 2014. 현대자동차 전조등, 철, COB LED, 알루미늄 레디에이터, DMX 콘트롤러, PC. 296 × 312 × 332 cm. 5전시실 복도에 설치된 거대한 원형 조각 두 점은 폐차 직전의 자동차에서 분해한 후미등과 전조등을 모아 행성 형태로 조립한 작품들이다. © 국립현대미술관 시대에 바치는 헌화 꽃 작업 와 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의료진들의 방호복 재질과 같은 타이벡(Tyvek) 섬유로 만들어졌다. 꽃은 천천히 움직여 활짝 피었다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꽃잎을 오므리기를 반복한다.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가 크게 내쉬는 것과 거의 같은 속도다. 꽃과 함께 심호흡하기에 좋다. 움직임은 곧 생명이 있음을 의미한다. 바이러스로 야기된 세계적 혼란 가운데서 제작된 꽃에는 생사가 갈리는 치열한 현장에 있던 분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 위로와 애도의 마음이 담겼다. 작가가 이 시대에 바치는 헌화다. 피고 지고 또 피는 꽃은 생명의 순환이며,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이번 전시는 최우람의 회고전 성격을 가진다. 덕분에 작가가 기계 제작 전에 작성한 설계 도면과 기술 도면, 드로잉 등 속살 같은 작품도 볼 수 있다. 그가 지속적으로 선보여 온 특유의 작고 반짝이는 기계 생명체 작업도 만날 수 있다. 작아서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정밀해서 더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뱅뱅 돌아가는 수레바퀴 모양의 는 지푸라기 사람들이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하던 을 닮았고, 황금빛 날개를 펼친 채 여러 개의 다리를 빠르게 움직이는 곤충처럼 보이는 는 35쌍의 노를 저어 대던 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작은 기계 안에 온 우주가 담겼다. 이 기계들은 질문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지를. . 2021. 금속 재료, 타이벡에 아크릴릭, 모터, 전자 장치(커스텀 CPU 보드, LED). 223 × 220 × 110 cm. 꽃잎 소재로 사용한 타이벡 섬유는 코로나19 검사와 진료 현장에서 의료진들이 착용하는 방호복 재질과 동일하다. 어려운 시대를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작가의 헌화라 할 수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 최우람 작가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그의 첫 번째 개인전으로, 재난과 위기에 처한 동시대인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응원이 담겼다. 특히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에 최첨단 기술을 결합해 삶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 국립현대미술관 조상인(Cho Sang-in 趙祥仁) 서울경제신문 기자

우리가 몰랐던 DMZ 이야기

Past Series 2022 AUTUMN

우리가 몰랐던 DMZ 이야기 DMZ(Demilitarized zone)는 ‘이야기 창고’다. 그 접경에 사람들이 산다.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기억을 가진 주민들이 오랜 세월 그곳에 살고 있다. 박한솔(Park Han-sol) 씨는< about dmz > 를 통해 그들의 삶을 기록한다. 우리가 몰랐던 분단의 참모습을 책 안에 생생히 담아낸다. “DMZ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 마을엔 한국전쟁 이전과 이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특유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어요. 올어바웃은 그 이야기를 기록하고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출발한 회사예요. 다른 지역들을 위한 콘텐츠 사업도 진행하지만, 우리의 시작점인 < about dmz > 를 끝까지 펴낼 생각이에요.” 인생은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뜻밖의 일들이 생겨나는 까닭이다. 박한솔 씨는 건축사이자 공학박사다. 건축과 조경을 공부했지만, 지금은 전공에서 더 나아가 물리적 공간에 담긴 비물리적인 이야기를 발굴하는 일을 한다. 한국의 지역들에 집중하는 콘텐츠 기업 ‘올어바웃(All About)’을 꾸리고, 그 첫 프로젝트로 독립잡지< about dmz > 를 만들고 있다. 과거엔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이 그는 참 행복하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공간을, 누구도 갖지 못한 기억을 하나씩 기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로컬 콘텐츠 기업 올어바웃 박한솔 대표는 독립잡지< about dmz > 를 통해 독특한 문화와 기억을 가진 DMZ 마을과 주민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사람이 사는 곳 “구글에서 DMZ를 검색하면 판문점으로 대표되는 군사 이미지와 훼손되지 않은 자연풍광 이미지가 가장 먼저 나와요. 하지만 그곳엔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자신들만의 독특한 기억을 쌓으면서요. 올어바웃은 그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출발한 회사예요. 다른 지역들을 위한 콘텐츠 사업도 진행하지만, 우리의 시작점인< about dmz > 를 끝까지 펴낼 생각이에요.” 한반도 DMZ(Demilitarized zone)는 1950년 6월 25일에 일어난 한국전쟁의 산물이다. 1953년 7월 27일 국제연합군•조선인민군•중국인민지원군이 휴전에 합의하면서 설치된 비무장 •비전투 지역을 일컫는다. 지리적으로는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248km의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과 북으로 각 2km 지역을 말한다. 모두 15개의 접경지역이 있고, 그 가운데 세 곳의 이야기가 단행본으로 나왔다. 첫 번째 책인 철원 편( < about dmz >vol.1 : 액티브 철원(Active Cheorwon) > 은 철원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완전히 뒤집는다. 춥고 조용한 지역으로만 인식되던 그 지역엔 다양한 이야깃거리와 풍부한 즐길 거리가 있다. ‘액티브’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그것들을 생생히 담아냈다. 두 번째 책인 파주 편( < about dmz >vol.2 : 릴리브 파주 (Relieve Paju) > 는 접경지와 ‘휴식처’의 정체성을 동시에 가진 파주의 모습을 담고 있다. 철새 떼가 쉬어가는 아름다운 습지, 도시인들에게 여유로움을 선사하는 여행 스팟, 과거 미군 부대가 주둔했던 장파리의 상처 등을 두루 담고 있다. ‘편안하다’와 ‘고통을 없애 주다’의 뜻을 모두 가진 ‘릴리브’를 부제로 삼았다. 세 번째 책인 고성 편( < about dmz >Vol.3 : 리바이브 고성(Revive Goseong) > 은 이제 막 출간됐다. 지난 8월 막바지 작업을 마쳤고, 경기도의 접경지역과는 또 다른 이야기들을 담아냈다. 연구와 취재를 위해 오랜 시간 DMZ에 드나들었는데도 그에겐 여전히 ‘미지의 공간’이다. 갈수록 궁금하고, 만날수록 흥미롭기 때문이다. “철원 DMZ를 접하고 있는 민북마을의 집은 주소 대신 ‘호수’로 불려요. 1호, 2호, 3호… 이런 식으로요. 민북마을은 유휴지 개간을 위해 민통선(民統線 Civilian Control Line) 북쪽에 건립한 마을들을 말해요. 보통의 집들처럼 주소가 있는데도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군부대의 관리를 받고 있는 탓에 부르기 편하도록 지금도 ‘호수’를 사용하죠. 마을 안에 무기고도 남아 있어요. 점호받거나 군사훈련을 하던 시절도 있었고요. 한국전쟁 이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마을 특유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어요.” 철원역과 내금강역을 잇던 ‘금강산선(金剛山線)’도 철원 민북마을에 흔적이 남아 있다. 금강산선은 1920년대 건립된 전기철도이자 한국 최초의 관광 철도다. 전쟁과 분단이 아니었다면 끊기지 않았을지도 모를 기찻길이다. 철길 옆으로는 일제강점기의 건물이 폐허 상태로 남아 있다. “미디어로 알려진 것과 달리, 막상 그곳의 자연은 그리 광활하지 않아요. 외려 황폐한 느낌이 있어요. 남과 북 양쪽에서 서로를 주시하기 위해 풀과 나무를 베어내거나 일부러 불을 놓아 시야를 확보하거든요. 제가 가장 아름답게 느꼈던 풍경은 두루미 떼의 모습이에요. 철원 민북마을에 겨울마다 두루미들이 몰려오는데 그게 주민들 덕분이더라고요. 벼농사를 많이 짓는 마을 분들이 추후 후 볏단을 묶어서 판매하는 대신, 두루미가 낙곡을 먹을 수 있도록 땅에 그대로 놓아둬요. 사람과 두루미가 동반자인 셈이죠.” 올어바웃은 그 쌀의 이름을 ‘두루미쌀’로 붙이고, 주민들의 쌀 판매를 돕고 있다. 지역 특산물에 주민들의 삶을 담으면서 주민들과 함께 성장해간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억 그가 DMZ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건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2016년의 일이다. 당시 그의 지도교수가 도시문화기획 ‘리얼 DMZ 프로젝트’의 기획자로 참여하고 있었다. 지도교수를 따라 철원 민북마을을 처음 찾았을 때 그는 주위의 모든 풍경이 마냥 신기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시골을 가볼 기회가 거의 없었던 데다, 남자 형제가 없어 군대 문화를 접할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DMZ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가장 보통의 사람, 그게 바로 자신이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문득 아쉬웠다. 누군가 만약 DMZ의 속살을 보여줬다면 자신처럼 평범한 사람도 이곳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원에서 ‘DMZ 평화•안보 관광’을 처음 했던 날, 어딜 가든 한국전쟁 당시의 이야기만 들려주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어요. 전쟁 이후의 시간에 대해선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거예요. 그러다 민북마을에 갔는데 주민들의 삶 곳곳에 한국전쟁 이전과 이후의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제가 기록하고 싶어졌죠.” 지도 교수를 따라 베를린의 ‘유대인 학살 추모 공원(The Holocaust Memorial)’을 방문했던 경험도 DMZ 이야기를 잡지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희생당한 이들의 일기나 편지 같은 것들, 너무도 평범한 일상의 기록들이 전시실에 있었다. 이어진 전시실엔 아주 커다란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집집의 거실에 걸려 있을 법한, 매우 평범한 가족 사진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큰 충격에 빠졌다. 사진 앞으로 다가가자 각각의 사람들이 몇 년 뒤에 어떻게 됐는지를 적은 글귀들이 적혀있었다. 희생자로 뭉뚱그려졌던 그들이 우리처럼 평범한 날을 살아가던 한 사람 한 사람이었다는 걸 그 전시가 보여주고 있었다. 눈물이 났다. DMZ에 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억을 기록하겠다고 그날 결심했다. “운이 좋았어요. 서울대 환경대학원 석•박사 과정 친구들 세 명과 교내 창업경진대회에 응모했다가 덜컥 선정됐거든요. 선정된 10팀 가운데 다른 팀들은 이미 창업을 한 유명회사들이었어요. 우리 같은 초보를 왜 뽑았을까 싶다가도, DMZ의 가치를 인정받은 듯해 기분 좋더라고요. 덕분에 창업이 수월했어요.” 금강산과 북녘땅이 훤히 내다보이는 고성 명파리는 남한 최북단에 위치한 접경 마을이다. ⓒ 올어바웃 아무도 묻지 않았던 것들 2019년에 창업한 올어바웃은< about dmz >발간뿐 아니라 굿즈 제작, 전시 기획, 캠핑장 운영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 가운데 철원 평화마을에 있는 서울캠핑장은 민통선 안에서 하룻밤 묵는 체험을 해볼 수 있다. 현재는 서울시의 위탁으로 캠핑장을 운영 중이지만, 언젠가는 ‘DMZ의 기억’을 연구할 수 있는 이들만의 공간을 직접 꾸려 더 많은 이들을 초대할 생각이다. DMZ만이 아니다. 관심 받지 못했던 한국의 지역들을 적절한 콘텐츠로 대중에게 안내하는 것이 올어바웃의 목표다. 현지인의 눈이 아닌 ‘외지인’의 눈으로, 그 지역의 문화와 그 지역 사람들의 기억을 다채롭게 소개하려 한다. “다른 지역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지만, DMZ는 여전히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예요. 취재를 위해 접경지역 주민들을 찾아가면, 거의 모든 분이 따뜻하게 맞아주세요. 철원뿐 아니라 파주나 고성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도 묻지 않았던 이야기를 누군가 궁금해한다는 것만으로도 그분들에겐 아주 큰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얼마 전까지 그는< about dmz Vol.3 : 리바이브 고성(Revive Goseong) > 을 출간하기 위해 정신없이 지냈다. 고성도 이야기가 참 많다. 한국에서 가장 긴 바다를 갖고 있으면서도 면적의 70% 이상이 산이라 주민들의 삶이 매우 독특하다. 금강산 일만이천봉이 고성까지 연결돼 있어, 분단의 아픔을 새삼 느끼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민북마을에서 해제된 명파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한 마을로, 고성의 마지막 해변인 명파 해변이 그 마을에 있다. 산도 바다도 이어져 있는데, 땅만 두 동강으로 나뉜 셈이다. “고성 편의 타이틀을 ‘리바이브’라 붙인 건 그 지역에 대형 산불이 잇달아 일어났기 때문이에요. 아픔을 딛고 다시 살아나길 바라는 마음을 제목에 담았어요. 그리고 코로나19로 비대면 여행지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여행자들 사이에서 고성이 인기 있는 장소로 떠오르기 시작한 점도 리바이브와 연결된다 생각했고요.”기록으로 기억을 살려내는 그가 한 지역이 살아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철원 민북마을 유곡리의 폐교를 마을 주민과 함께 캠핑장으로 새롭게 공간을 조성하여 함께 운영하고 있다. ⓒ 올어바웃 < < about dmz >Vol.3 : 리바이브 고성(Revive Goseong) > 에 실린 ‘금강산의 흔적을 찾아서’기사. 금강산 마지막 봉우리가 있는 고성에서 찾은 한국인의 그리운 공간, 금강산의 흔적 등의 이야기를 담았다. ⓒ 올어바웃 박미경(Park Mi-kyeong 朴美京) 자유기고가(Freelance Writer) 한정현(Han Jung-hyun 韓鼎鉉)사진가(Photographer)

뮤직비디오에 담긴 전통 공연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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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에 담긴 전통 공연 예술 국립국악원이 2020년부터 진행해 온 ‘Gugak in(人)’은 전통 공연 예술을 뮤직비디오로 제작하는 프로젝트이다. 온라인 채널을 통해 공개되고 있는 이 영상들은 전통 공연 예술을 감상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2021년 10월, 국립국악원의 ‘Gugak in(人)’ 프로젝트 채널을 통해 악당(AKDANG 樂瞠)의 뮤직비디오< 난봉(Nanbong 難捧) > 이 스트리밍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 없는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서도 민요< 난봉가 > 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영상은 경기도 안산시의 대부광산(大阜鑛山) 퇴적암층에서 촬영했는데, 이곳은 서울 근교에서 유일하게 중생대 지질층을 볼 수 있는 장소이다. 국립국악원 제공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국립국악원은 전통 공연 예술의 명맥을 잇기 위해 1951년 개원한 국립 음악 기관이다. 이곳이 2020년 8월부터 진행해 온 ‘Gugak in(人)’은 전통 공연 예술가들의 음악과 춤을 뮤직비디오로 제작하여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전통 공연 예술가들의 활동이 위축되고, 그로 인해 경제‧심리적 어려움을 겪게 되자 온라인 공연 무대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국립국악원은 첫해에 공모를 통해 20개 단체들을 선정하여 20편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했고,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 네이버가 운영하는 네이버TV(NAVER TV)와 유튜브 채널을 통해 매주 한 편씩 공개했다. 영상을 본 사람들은 오늘날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며 변화하고 있는 국악의 새로운 면모를 접할 수 있었다. 또한 뮤직비디오의 배경이 출연자들의 공연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 촬영 장소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국악인들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들의 음악과 예술을 특별하게 기록하고 국내외에 소개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지난 5월에는 미국 방송 채널 테이스트TV(TasteTV)가 주관하는 제5회 캘리포니아 뮤직비디오 어워즈(CALIFORNIA MUSIC VIDEO AWARDS)의 베스트 월드뮤직(Best World Music) 부문에서 그룹 사위(SaaWee)의< 새로운 의식(New Ritual) > 이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는 큰 관심을 받으며 2021년과 2022년에도 계속되고 있다. 국립국악원의 공모를 거쳐 매년 선발된 예술 단체들의 뮤직비디오는 현재까지 약 50여 편에 이른다. 영상물들은 국경을 넘나들며 한국 전통 예술의 현주소를 보여 준다. 달음(Dal:um)의< 탈(TAL) > (2020) 달음은 가야금의 하수연(Ha Su-yeon 河受延)과 거문고의 황혜영(Hwang Hye-yeong 黃惠映) 두 연주자가 2018년 결성한 듀오이다. 두 악기는 생김새는 비슷해 보이지만 구조와 주법, 음색이 매우 다르다. 가야금이 손가락으로 현을 튕겨 소리를 내는 데 반해 거문고는 술대라는 막대기로 타악기처럼 현을 세게 때려 연주한다. 달음은 정반대의 성향을 갖고 있는 두 악기가 지닌 개성과 에너지를 조합해 국악 현악기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그룹으로 유명하다. 이들의 작품< 탈 > 은 전통 춤의 하나인 탈춤에 사용되는 장단과 몸짓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되었다. ‘탈’은 탈춤의 탈을 가리키는 동시에 뜻밖의 사고를 의미하기도 하며 또한 어떤 상황에서 벗어난다는 뜻도 지닌다. 중의적인 곡명처럼 이 작품은 탈이 난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희망을 담았다. 영상 속 장소는 201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남한산성이다. 달음(Dal:um)의 (2020) 김효영(Kim Hyo-yeong 金孝英), 연정흠(Yeon Jeong-heum)의< 생황을 위한 푸리(Puri for Saenghwang) > (2020) 전통 관악기 생황과 피아노가 함께하는 이 곡은 무속 의식인 굿에 사용되는 여러 장단을 이용해 작곡되었다. 굿 음악은 굿판이 벌어지는 현장의 상황에 따라 분위기와 빠르기가 달라지는 즉흥성이 있다. 이 곡 역시 생황과 피아노가 기본적인 약속을 공유한 뒤 즉흥적인 감각으로 연주를 진행해 간다. 생황은 죽관(竹管)을 통과하는 숨으로 소리를 내는데 숨을 내뱉거나 들이마실 때 모두 소리가 난다. 국내의 뛰어난 생황 주자 중 한 사람인 김효영이 들려주는 속도감 있는 연주는 현대 도시의 빠르게 변화하는 풍경을 묘사하는 듯한데, 이 영상을 촬영한 송도(松島)국제도시의 시간 변화와도 잘 어울린다. 인천국제공항과 인접해 있는 이 도시는 최근 글로벌 기업들과 국제기구, 대학들이 터를 잡으면서 점점 활기를 띠고 있다. 독특하고 개성 있는 건축물들도 많은데, 영상에 등장하는 트라이보울(Tri-Bowl)도 그중 하나다. 우주선처럼 생긴 이 건물은 인천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김효영(Kim Hyo-yeong 金孝英), 연정흠(Yeon Jeong-heum)의< 생황을 위한 푸리(Puri for Saenghwang) > (2020) 예인 집단 아재(AJAE)의< 왈자 줄타기(WALZA tightrope walk) > (2020) 2011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줄타기는 줄광대가 외줄 위를 걸으며 노래와 춤, 곡예를 선보이는 공연 예술이다. 줄타기 연행(演行)에서 줄광대가 중심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줄광대와 재담을 주고받는 어릿광대가 짝을 이루고 이들의 곡예와 재담에 반주를 곁들이는 악사들도 함께한다. 줄타기는 예로부터 전국을 유랑하며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한 유랑 예인 집단의 특기였는데, 예인 집단 아재는 이러한 전통 줄타기를 기반으로 다양한 창작을 시도하는 단체다. 이 영상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되기를 바라는 창작 의도가 담겨 있다.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장소는 경기도 안성에 있는 죽주(竹州)산성이다. 삼국시대(4~7세기)에 처음 축조되어 고려(918~1392) 때 중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인 집단 아재(AJAE)의< 왈자 줄타기(WALZA tightrope walk) > (2020) 사위(SaaWee)의< 새로운 의식(New Ritual) > (2021) 사위는 타악기 연주자 김지혜(Kim Ji-hye 金智慧)와 재즈 바이올리니스트 최보람(Chay Bo-rahm [Sita Chay])이 2018년 결성한 듀오다. 이들은 장구와 바이올린 앙상블을 통해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위로하고 치유하기 위한 음악적 실험을 전개한다. 두 연주자는 굿과 전통 무용에서 받은 영감을 토대로 모든 작품을 직접 작곡하는데, 전곡에는 현대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한 음악적 서사가 관통한다. 이 작품은 도시를 벗어나 자연으로 떠난 영혼들의 춤을 표현한 곡이다. 두 사람은 음색과 음률이 전혀 다른 두 악기로 정형과 즉흥을 넘나들며 신들린 연주를 보여 준다. 영상에 등장하는 배경은 두 곳이다.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은 1900년에 지어진 독특한 양식의 한옥 성당이며, 강화 초지진(草芝鎭)은 17세기 중반 해상으로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해 세워진 요새이다. 두 유적 모두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위치해 있다. 사위(SaaWee)의< 새로운 의식(New Ritual) > (2021) 전주판소리합창단(Jeonju Pansori Chorus)의< 인당수(The Indangsoo Sea 印塘水) > (2021) 판소리는 이야기를 음악과 함께 전하는 전통 성악 중 하나다. 한 명은 노래를 부르고, 다른 이는 북을 치며 반주하는 2인조 형식이다. 전라북도 전주는 예로부터 판소리가 흥행했던 도시로 지금도 한국을 대표하는 판소리 예술가들이 많이 배출된다. 2006년 창단한 전주판소리합창단은 ‘판소리 합창’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단체이다. 이 작품은 대표적인 판소리 레퍼토리 중 하나인< 심청가(沈淸歌) > 의 한 대목을 새로 작곡한 곡이다. 주인공 심청이 앞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바다의 신에게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내용이다. 촬영 장소는 전라북도 부안에 있는 채석강(彩石江)과 솔섬이다. 채석강은 오랜 시간 파도의 침식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해안 절벽이며, 솔섬은 화산 활동이 일어나면서 만들어 낸 독특한 퇴적 구조를 볼 수 있다. 전주판소리합창단(Jeonju Pansori Chorus)의< 인당수(The Indangsoo Sea 印塘水) > (2021) 김나리(Kim Na-ri)의< 춘몽(A Spring Dream 春夢) > (2022) 우리나라 전통 성악곡인 정가(正歌)는 과거 양반 계층에서 향유하던 품격 있는 음악 양식이다. 가곡(歌曲)과 가사(歌詞)는 정가의 한 갈래로 악기 반주가 함께하며 음절 하나하나를 길고 느리게 부른다. 오늘날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김나리는 정가를 보존하고 전수하는 노력을 이어가는 동시에 현대적 감각의 창작곡으로 대중화에도 앞장서고 있는 가객이다. 이 곡 또한 창작곡으로 어느 따스한 봄날 창밖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느낀 감회를 담고 있다. 반복되는 몽환적인 가야금 선율에 대금 연주와 김나리의 노래가 어우러져 여유과 편안함을 선사한다.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장소는 강원도 강릉에 위치한 조선 시대의 양반 가옥 선교장(船橋莊)이다. 18세기 초 지어진 이 집은 300여 년 동안 원형이 잘 보존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김나리(Kim Na-ri)의< 춘몽(A Spring Dream 春夢) > (2022) 송현민(Song Hyun-min 宋玄敏) 월간 『객석』 편집장, 음악 평론가

화려하지만 우울한 현대인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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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지만 우울한 현대인의 자화상 안창홍(Ahn Chang-hong 安昌鴻)은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독자적 예술 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이다. 한국과 에콰도르 수교 60주년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지난해 에콰도르에서 열렸던 그의 전시가 올해 서울 사비나 미술관에서도 이어졌다. . 2021. 면지에 오일 파스텔(Oil pastel on cotton paper). 162.2 x 112.1 cm. 사비나미술관 제공. 서울의 북쪽, 북한산 봉우리가 바라보이는 곳에 삼각형 모양으로 생긴 미술관이 있다. 국내 대표적인 사립 미술관 중 하나인 사비나 미술관(Savina Museum)이다. 이곳에서 2월 23일부터 5월 29일까지 화가 안창홍의 개인전 이 열렸다. 작가의 최신작들과 새로운 시도가 소개되었던 이 전시는 한국과 에콰도르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양국 간 문화 교류 행사로 열리게 됐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언급해야 할 다른 전시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절정이었던 2020년 겨울, 사비나 미술관에서는 에콰도르를 대표하는 유명 화가 오스왈도 과야사민(Oswaldo Guayasamín 1919~1999)의 개인전 이 개최되었다. 그의 작품은 에콰도르 국가 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비단 에콰도르뿐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여러 국가에서도 크게 존경받는 작가다. 국내에 최초로 선보인 그의 작품들은 관람객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커다란 감명을 주었다. 지난해에는 이 전시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한국 작가 안창홍의 특별전이 에콰도르에서 열렸다. 전시가 열린 장소는 오스왈도 과야사민의 대표작들이 상설 전시되고 있는 과야사민 미술관(Casa Museo Guayasamín)과 인류의 예배당(The Chapel of Man, La Capilla del Hombre)이었다. 특히 스페인의 거장 프란시스코 고야 이후 인류의 예배당에서 전시가 열린 다른 나라 작가는 안창홍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 전시는 현지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독자적 스타일 1953년에 태어난 안창홍은 한국 미술계에서 독특한 존재다.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영혼과 치열한 작가 정신을 지닌 인물이다. 지난 50여 년간 보여 준 행보가 이를 증명한다. 그는 지금까지 어떠한 제도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화가로서 자존심을 묵묵히 지켜 왔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교육열이 높은 국가 중 하나이다. 미술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선 치열한 입시 경쟁을 통과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안창홍은 미술대학 진학을 거부했다. 이는 즉 미대 진학을 위한 획일화된 입시 미술과 입학 제도를 거부했다는 의미다. 이렇듯 그는 일찍부터 제도권 미술과 거리를 두고 독자적인 스타일을 만들었다. 형식적인 원숙함 못지않게 주제 또한 매우 진지하다. 작품을 통해 소외된 인간과 정의로운 역사에 대한 문제 의식을 적극적으로 표현해 왔다. 국내의 많은 미술 평론가들은 그를 매우 개성적인 작가로 평가한다. 화단의 집단 중심주의나 진영 논리, 혹은 아카데미즘 등과 달리 개인주의적 화법으로 역사 속 개인의 비극을 표현했다. 또한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과 차별화된 조형적 특성이 결합되었기에 누구보다도 개성이 뚜렷한 작가로 손꼽는다. 작품을 구현하는 소재 선택과 주제, 표현 방식도 다채롭고 자유롭다. 최근작 ‘유령패션’과 ‘마스크’ 시리즈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유령패션 시리즈 안창홍은 사비나 미술관의 오스왈도 과야사민 전시를 보고 큰 감흥을 받았다. 이후 에콰도르에서 자신의 개인전 개최가 결정된 직후부터 유령 패션 시리즈를 완성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작업에 임했다. 대형 캔버스에 유화로 제작된 이 시리즈의 출발은 아주 작은 크기에서 시작됐다. 그는 인터넷에 떠도는 화려한 패션 모델들의 다양한 이미지를 수집했다. 그리고 스마트폰에 장착된 펜을 이용해 이 이미지들에 그림을 그렸고, 이 결과물을 디지털 프린트로 출력했다. ‘디지털 펜화’라는 새로운 영역을 창조한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가장 전통적인 방식, 즉 캔버스에 유화 물감을 이용해 붓으로 그리는 페인팅 작업으로 다시 제작했다. 기술과 예술, 디지털과 아날로그 기법의 조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모델들이 취한 포즈도 각양각색이다. 인간 삶의 방식이 다양하듯 의상도 다채롭고 화려하다. 그런데 핵심은 이 모델들의 얼굴과 손, 발이 지워졌다는 것이다. 인체는 사라지고 입었던 옷만 남았다. 이것은 마치 신체와 영혼이 빠져나가 껍데기만 남은 유령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 2021. 면지에 오일 파스텔(Oil pastel on cotton paper). 162.2 x 112.1 cm. . 2022. Oil on canvas. 162 x 133 cm. . 2021. 면지에 오일 파스텔(Oil pastel on cotton paper). 162.2 x 112.1 cm. . 2021. 면지에 오일 파스텔(Oil pastel on cotton paper). 162.2 x 112.1 cm. 마스크 시리즈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안창홍 작품의 핵심 키워드다. 인간의 모습은 얼굴로 구체화된다. 얼굴엔 생로병사, 고통과 절망, 희망과 염원 등 다양한 감정이 담겨 있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머리’와 ‘얼굴’은 분명히 다르다고 규정했다. 예컨대 동물에게도 머리가 있지만, 그것은 인간의 얼굴과 다르다. 동물의 머리는 표정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얼굴은 표정을 지닌 특별한 신체 기관이다. 물론 평생 고된 일을 한 노동자나 농민의 거친 손, 피곤에 지쳐 힘없이 축 처진 어깨 등 다른 신체 기관에서도 표정을 읽어 낼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눈, 코, 입이 모여 있는 얼굴은 인간의 감정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눈의 표정이 가장 중요하다. 눈빛이 지닌 상징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대형 부조 작품 시리즈는 얼굴, 즉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강력한 상징이다. 작가는 이 시리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 FRP에 혼합 매체(Mixed Media on FRP. 155(H) X 110(W) X 50(D) cm. . FRP에 혼합 매체 Mixed Media on FRP. 155(H) X 110(W) X 50(D) cm. 3층 전시실에서는 투명한 디스플레이를 통해 작가의 디지털 펜화 작품 150점을 볼 수 있다. 연작 23점과 평면 회화를 입체로 확장한 작품 3점을 감상할 수 있는 2층 전시실.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인 안창홍은 어떠한 제도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 왔다. “마스크는 미쳐 돌아가는 세상 이야기다. 우민화된 대중들, 집단 이기주의와 폭력, 마치 최면에 걸린 듯이 표리부동한 목적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질주하는 집단의 무의식에 대한 이야기다. 눈을 가린 붕대와 이마에 뚫린 열쇠 구멍은 상실된 자아와 무의식을 상징한다. 제각각 화려한 색들로 치장했으되 막상 들여다보면 허깨비처럼 부유하는 부평초 같은 삶들. 나는 마스크를 통해 욕망의 주체이자 희생자들이기도 한 우리들에 대해, 자본과 권력의 정교한 음모와 사적인 탐욕에 못 이겨 스스로 자신을 망가뜨리거나 타의에 의해 망가지는 이중적 현상을 표현하고 싶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전 지구를 강타했다. 이를 계기로 탐욕적인 인간과 욕망에 찌든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요구된다. 과야사민은 선구자적인 자세로 20세기 남미와 특히 조국 에콰도르가 겪은 역사적 아픔과 인간에 대한 주제 의식을 표현했다. 같은 맥락에서 안창홍 역시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고민한다. 사비나 미술관에서 마주친 그의 작품들은 겉모습만 화려하고 속은 텅 빈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미술관 4층 전시장에선 작가의 드로잉 작품 100여 점이 함께 전시되었다. 유화 페인팅이나 대형 입체 작업의 기본이 된 스케치다. 작가의 그림 솜씨가 얼마나 빼어난지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안창홍은 작은 드로잉부터 캔버스 유화 작업과 디지털 펜화, 입체 조형, 사진 등 미술의 거의 모든 영역을 넘나들면서 새로움을 시도한다. 열정적인 도전 정신이 만들어 낸 값진 결과물이다.

탈북민의 오늘을 기록하는 영화

Past Series 2022 SUMMER

탈북민의 오늘을 기록하는 영화 2000년대 초반부터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윤재호(尹载皓, Yun Je-ho [프랑스 Jero Yun]) 감독은 전형성과 선입견에서 벗어나 오늘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조명하려고 한다. 그가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동시에 작업하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윤재호 감독은 그의 영화를 통해 경계에 선 사람들, 그중에서도 탈북민의 삶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한다. 윤재호 감독은 2021년 한 해에만 극영화 와 다큐멘터리 두 편의 장편 영화를 개봉시켰다. 는 탈북민들을 위한 정착 지원 시설 하나원(Hanawon)을 이제 막 퇴소하고 체육관 청소로 돈을 벌게 된 여성 진아(Jin-a, 吉娜)의 이야기이다. 에는 지금은 북한 땅인 황해도 출신 가수이자 KBS TV의 장수 오디션 프로그램 의 MC 송해(Song Hae, 宋海)가 등장한다. 영화가 보여 주는 건 우리가 몰랐던 그들의 속내이다. 진아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한국에 정착하고자 복싱 스텝을 밟기 시작하고, 송해는 과거에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초상을 솔직하게 꺼내 보인다. 탈북민의 삶 윤 감독은 경계에 선 사람들, 그중에서도 탈북민의 삶을 지속적으로 들여다보며 영화를 만들어 왔다. 그의 영화는 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가 담담하게 그 실체를 목격한다.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들도 이러한 그의 영화들을 주목했다. 우선 그는 헤어진 아들을 만날 희망을 품고 사는 조선족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2010)으로 2011년 제9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Asiana International Short Film Festival)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생계를 위해 중국으로 간 북한 여성의 삶을 담은 장편 다큐멘터리 (2016)로 제38회 모스크바 국제 영화제(Moscow International Film Festival) 베스트 다큐멘터리상(The Best Film of the Documentary)과 제12회 취리히 영화제(Zurich Film Festival) 국제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배우 이나영(Lee Na-young, 李奈映)이 주연한 윤재호 감독의 첫 장편 극영화 (2017)와도 연결된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개막작으로 상영된 이 작품은 조선족 대학생 젠첸(Zhenchen, 镇镇)이 바라보는 탈북민 어머니 이야기다. 이후에도 감독은 단편 (2016)로 제69회 칸 국제 영화제 감독주간(The Directors’ Fortnight), 로 제71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Berli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제너레이션 부문에 초청받아 세계 영화인들에게 분단 국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소개했다. 유학 생활 윤 감독이 영화로 대중과 소통을 시도한 건 프랑스 유학 시절이었다. 익숙한 동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는 20대 초반 친구와 함께 한국을 떠났다. 20여 년 전인데도 아직까지 출국 날짜를 기억한다. 2001년 9월 12일, 9·11 테러 다음 날이었다. 미국행 항공편이 모두 멈춘 공항에서 삼엄한 경비를 뚫고 유럽행 비행기를 탔다. 집을 나서면서부터 세상의 혼란을 피부로 느낀 그가 향한 곳은 프랑스 북동부의 작은 마을 낭시다. 그곳에서 어학 연수와 여행을 병행하다 돌연 예술 학교 시험을 봤다. 한국에서 공부했던 미술 실력을 발휘해 실기 시험을 통과한 그는 계획에 없던 유학생이 되었다. “낯선 곳에서 혼자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게 두렵기도 했지만 재밌었어요. 나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는 예술 학교에서 그림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비디오 아트, 설치 작업 등을 배우면서 시야를 넓혔다.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과의 교류도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윤 감독을 영화의 세계로 안내한 것도 DVD 100개가 든 박스를 통째로 빌려준 벨기에 친구였다. 상자 안에는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 임마르 베리만, 오손 웰즈 등의 1950~1960년대 클래식 영화가 빼곡했다. 때리고 부수는 영화만 보던 20대 청년이 지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를 접하게 된 것이다. “100편을 보고 또 봤어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만큼 매력적이었어요.” 그는 무엇보다 영화는 혼자서 만들 수 없는 작업이라는 점에 반했다고 말했다. 여러 사람에게 말을 걸고 싶었던 그는 함께 할 친구들을 모았고, 대화를 시작했다. 는 생계를 위해 중국으로 간 북한 여성의 삶을 담은 장편 다큐멘터리이다. © CINESOPA 조선족 대학생 젠첸(Zhenchen)이 바라보는 탈북민 어머니 이야기를 다룬 는 윤 감독의 첫 장편 극영화다 © peppermint&company 는 탈북민들을 위한 정착 지원 시설에서 막 퇴소하고 체육관 청소로 돈을 벌게 된 진아(Jin-a)의 이야기이다. © INDIESTORY 오늘의 일상 2004년 친구들과 제작한 첫 영화는 프랑스에서 살아가는 한국 여성이 이방인으로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 이야기였다. 그의 자전적인 질문들이 포함된 작품이었다. ‘나는 왜 여기에 살고 있을까? 왜 거기가 아닌 여기일까?’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에게 던지곤 했던 물음을 영화에 담았다. 부산에서 낭시로 온 청년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영화에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가진 인물들을 초대했다. 탈북민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윤 감독이 경계에 선 캐릭터를 창조할 때 가장 깊이 고민하는 건 그들의 시간이다. 거기에서 여기로 온 인물이 어떤 과거를 경험했는지 골몰하고, 그것이 어떻게 그들의 현재를 이루고 있는지를 살핀다. “우리는 오늘을 살고 있지만 오늘은 결국 어제가 되죠.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내일의 내가 달라질 수 있어요. 그래서 인물의 과거 이야기를 배제하는 편이고 미래에도 집착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저 오늘 그들이 어떤 일상을 살고 있는지 보여 주고 싶어요. 오늘의 내가 바뀌면 내일의 나는 분명히 바뀌니까요. 그것이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예요.” 이 원칙은 그가 병행 중인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작업 양쪽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는 를 찍는 3년간 마담 B의 출입국 경로에 동행했고, 첫 촬영 날에는 네 시간 넘게 송해와 인터뷰를 했다. 일상의 순간들을 관찰하며 얻는 사소한 느낌들을 영화에 담고자 한 것이다. ‘탈북민은 어떤 생각을 할까? 한국에서 무엇을 느끼며 살까?’ 감독과 배우들은 묻고 또 물었다. 자신이 했던 경험을 엮어 보기도 하고, 실제로 북한을 떠나온 이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피하려고 한 건 미디어에 나오는 천편일률적인 탈북민의 이미지였다. 영화 는 한국 최고령 연예인으로서의 송해가 아닌 무대 뒤에 숨겨진 그의 인생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룬다. 해답보다 질문 윤재호 감독은 관객에게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영화를 만든다. 실제로 뚜렷한 결말을 내리기보다 인물 앞에 주어진 가능성을 비추며 막을 내리곤 한다. 에 등장하는 모자의 희망이 현실이 될 수 있을지, 의 진아가 복싱 경기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을지 관객에게 알려 주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어제와는 다른 내일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귀띔한다.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그렇게 경계 위에서 존엄해진다. “행복의 정의는 개인마다 다르잖아요. 영화 속 인물들에게 최대한 열려 있는 마지막을 주려고 해요. 그래야 관객도 탈북민이 한국에서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지 않을까요?” 영화를 본 실제 탈북민들은 어떤 반응일까? 사실적인 묘사에 민망했다는 이도 있었고,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줘서 반갑다는 이도 있었다. 오래전 겪었던 시간을 스크린을 통해 다시 본 이들의 의견은 각양각색이었다. 인권 단체의 활동가들, 분단 현실을 공부하는 학생들도 각자의 배경 지식에 따라 다른 시각으로 영화를 바라봤다. 북한과 남한이라는 특정 국가의 이야기 안에서 보편적인 경험을 찾아내고 공감했다는 외국인 관객들도 있었다. “제가 만든 작품이 한 명에게라도 가치 있었으면 해요. 그 한 명이 어디서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 모르니까요.” 자신을 포함한 한 명 한 명의 영향력을 믿으며 영화를 만드는 중인 그에게 20년 가깝게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인지 묻자 그는 ‘사랑’이라고 답했다. “전쟁이든, 분단이든,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면 분명 그곳에 사랑이 결핍돼 있는 것 같아요. 사랑을 추구하기에 계속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화 바깥에서 이루고픈 꿈이 있는지 물었다. “아주 먼 미래가 될지도 모르지만 버스 한 대를 타고 부산에서 출발해 평양과 함경북도를 거쳐 러시아를 횡단 후, 독일과 파리로 여행하고 싶어요. 그게 유일한 바람입니다.” 언젠가 통일이 된다면 윤재호 감독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로드 무비를 찍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의 영화도, 분단된 한국도, 열린 결말에 놓여 있기에 그 작품이 기대된다.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서

Past Series 2022 SPRING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서 최욱경(Choi Wook-kyung 崔郁卿 1940~1985)은 여성으로서 한계를 뛰어넘고 국제 화단의 신조류를 독자적으로 수용했던 한국 추상미술의 대표적 화가이다. 2021년 10월 27일부터 2022년 2월 13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 는 그의 예술이 위치한 좌표를 적극적으로 탐색한 전시다. 사실 최욱경은 일반에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2020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국립현대미술관이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던 박래현(Park Re-hyun 朴崃賢 1920~1976)도 그렇지만, 최욱경의 이름도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거의 잊히는 듯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가 살았던 시절은 물론이고, 사후에도 미술사가 주로 남성 위주로 쓰였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60~80년대에 회화와 문학,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능동적인 작가의 정체성을 쌓았던 그를 지금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공백으로 남아 있던 한국의 여성 미술사를, 더불어 한국의 미술사를 다시 쓰는 일이 될 것이다. . 1977. 캔버스에 아크릴릭. 225 × 195 ㎝. 리움미술관(Leeum Museum of Art) 소장. 최욱경(Choi Wook-kyung 崔郁卿)의 1970년대 중후반 작품들은 꽃과 산, 새, 동물을 떠올리게 하는 유기적 형태들이 뒤얽혀 생동감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 1976. 종이에 연필. 102 × 255 ㎝. 개인 소장. 미국의 현대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의 공연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거대한 연필화이다. 춤추는 듯, 날아오를 듯 날개를 펼친 흰 형체가 숭고한 서사적 느낌을 준다. 더 큰 세상으로 이번 전시는 연대별로 3개의 주제로 나누어 구성되었으며, 에필로그 섹션에는 작가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화상들과 기록물을 소개하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이곳에서는 서울예술고등학교 시절 그가 배웠을 ‘입시 미술’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 그림들은 그의 작가적 개성보다는 식민지 시절부터 내려온 관습적인 기술을 더 부각시켜 보여 준다. 서울대 회화과 재학 중 몇몇 작품을 출품해 입상하면서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지만, 미국 유학길에 오르기 전까지 그의 작업은 대체로 대학 입시 준비의 연장선상에 있었을 것이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내로라하는 화가들에게 그림 수업을 받았는데, 당시 스승의 화풍을 답습하던 작업 방식은 위계적인 가부장제의 습성과 많이 닮아 있다. 1978년 『코리아 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미국 미술 교육은 개개인의 작품 정체성을 존중하는데, 이것이 한국 미술 교육과의 근본적인 차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전시에는 그가 쓴 시 「어머니의 옛날 이야기」(1972)도 소개되었다. 어머니는 숲에서 늑대를 만나면 쳐다보지 말고 대답하지 말라고, 산보하자고 해도 거절하라고 이야기해 주었지만, 자신은 기꺼이 늑대의 손을 잡고 친구처럼 걸었다는 내용의 시다. 늑대의 손을 잡은 것은 익숙한 세계의 금기를 깨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의미할 것이다. 1963년, 그렇게 시작한 크랜브룩 미술 아카데미(Cranbrook Academy of Art) 유학 생활은 그에게 작업 양식뿐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큰 변화와 도약의 계기가 되었다. 정체성 탐구 1부 ‘미국이라는 원더랜드를 향하여(1963~1970)’는 화가의 크랜브룩 미술 아카데미 시절과 뉴햄프셔 프랭클린 피어스 대학 조교수 시절을 좇는다. 1960년대 미국은 추상표현주의에서 후기회화적 추상으로 이행하던 시기였다. 최욱경은 이러한 작품 경향을 보인 도널드 윌릿(Donald Willett 1928~1985)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강렬한 붓칠과 색상의 추상을 이루어 나갔다. 크랜브룩 미술관에서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 마크 로스코(Mark Rothko), 잭슨 폴록(Jackson Pollock)과 같은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접한 것도 그가 당대 미술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1965년 크랜브룩 미술 아카데미 졸업 후 그는 브루클린미술관 소속 미술학교(Brooklyn Museum School of Art)에서 1년간 수학한 후 1966년 여름 메인주(州) 스코히건 회화∙조각학교(Skowhegan School of Painting & Sculpture) 작가 레지던시에 참여했다. 이 시기에 구상, 그래픽 미술, 판화, 팝아트 등 미국 동부의 다양한 양식과 매체를 접할 수 있었다. 그 영향으로 캔버스에 신문지를 찢어 붙여 색면과 병치하거나 잡지 이미지 위에 덧칠을 하는 등의 방식으로 작업을 했는데, 네오다다, 팝아트에서 나타나던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을 구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전시 제목 ‘앨리스의 고양이’와 1부의 소제목 ‘원더랜드’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그의 작품 세계 한쪽에는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865)가 놓여 있다. 출간 100주년을 기념해 미국에서 관련 도서들의 발행이 활발했던 1965년에는 이라는 작품을 제작했으며, 1972년 출간한 시집 『낯설은 얼굴들처럼』에는 「앨리스의 고양이」라는 작품이 수록되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전유신(全宥信) 학예연구사는 ‘아시아에서 온 외국인 여성’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상황에서 문화적 정체성 혼란을 겪던 작가가 앨리스 이야기에 쉽게 공감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자신에 대한 정체성 탐구를 (1966), (1968), (1968)와 같이 인종 차별과 전쟁을 반대하는 다수의 작품에 녹이며 미국 사회에 적응해 갔다. . 1965. 캔버스에 아크릴릭. 63 × 51 ㎝. 유족 소장. 작가가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대한 관심을 처음으로 구체화한 작품이다. . 1966. 종이에 아크릴릭. 42.5 × 57.5 ㎝. 리움미술관 소장. 미국 유학 시절 최욱경은 아시아 출신의 여성으로만 규정되는 자신의 정체성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며, 스스로의 본질적 모습을 탐색하는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독자적 경지 2부 ‘한국과 미국,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1971~1978)’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작업을 이어간 시기를 돌아보았다. 최욱경은 1971년 귀국해 1974년 초까지 한국에 체류하며 두 번의 개인전을 열고, 파리 비엔날레 참여 작가 선발전인 앙데팡당에 (1972) 등 입체 설치 작품 세 점을 출품했는데 이 작품들은 당시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런 한편 단청과 민화, 서예 등에도 관심을 갖고 이를 반영한 양식 실험을 끊임없이 펼쳤다. 1976~1977년에는 뉴멕시코 로스웰미술관(Roswell Museum & Art Center)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이 시기는 그의 작업에 큰 영향을 끼치며 변곡점으로 작용했다. (1976)이나 (1977)처럼 산이나 새, 동물 등이 연상되는 유기적 형태들이 생동감 있게 표현된 대작들이 주로 제작되었다. 뉴멕시코의 이국적 풍경에 영감을 얻은 그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초현실주의적 꿈속 풍경을 뒤섞어 자신만의 회화적 어법을 만들어 냈다. 한국으로 돌아와 개최한 순회전 (1978~1979)은 주로 “미국적이다”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그의 작품은 그렇게만 규정하기 어려운 독자적인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 1981. 캔버스에 아크릴릭. 80 × 177 ㎝. 개인 소장. . 1984. 캔버스에 아크릴릭. 73.5 × 99 ㎝. 개인 소장 1979년 영구 귀국해 영남대 교수로 재직하던 작가는 경상도 지역의 자연 풍광에서 영감을 받아 산과 섬의 조형성을 탐구하는 작품들을 제작했다. 생전,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최욱경의 모습이다. 1940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1963년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길에 올라 추상표현주의에서 후기회화적 추상으로 이행하던 당시 미국 미술계의 변화를 경험하며 치열한 탐구를 통해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이루어 나갔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3부 ‘한국의 산과 섬, 그림의 고향으로(1979~1985)’에는 1979년 영구 귀국 후 영남대와 덕성여대 재직 시절, 1985년 작고하기까지의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특히 영남대 교수 시절은 그의 작품 세계에 또다른 변화를 불러왔다. 경상도 지역의 산과 바다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1981), (1984)과 같은 작품에 나타난 중간색과 절제된 선∙구성은 그가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고 평화로운 ‘원더랜드’에 정착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산과 섬의 조형성에 대한 탐구와 더불어 꽃잎의 형태와 질서, 강렬한 색상에도 관심이 더욱 깊어져 (1984) 같은 작품도 제작했다.   2021년 10월 27일부터 2022년 2월 1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린 전을 관람객들이 감상하고 있다. 한국 추상 미술의 대표적 여성 화가인 최욱경의 예술 세계 전반을 재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이었다. © 지안 잃어버린 이름 최욱경은 시 「나의 이름은」에서 자신을 어린 시절엔 겁 많은 눈 큰 아이였고, 유학 시절엔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 말을 잃은 벙어리 아이였고, 미국 생활에 적응해 가던 무렵에는 무지개 꿈을 좇다가 길을 잃은 아이였으며, 한국에 돌아와서는 이름마저 잃어버린 이름 없는 아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찾기 위해서 끈질기게 시와 그림으로 스스로를 조형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그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1970~80년대는 후기회화적 추상과 형식을 공유하는 단색조 회화가 이미 한국 미술계의 주류 양식으로 자리 잡은 때였다. 미술사학자 최열(崔烈)에 의하면 최욱경은 추상표현주의를 자신의 것으로 토착화시켰지만, 한국 미술계는 그것을 한물간 것으로 치부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추상표현주의 화가 리 크래스너를 ‘미세스 잭슨 폴록’이라 칭하던 당시 미술계의 성차별주의 또한 그를 곤혹스럽게 했을 것이다. 무엇이 그를 더 힘들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안타깝게도 최욱경은 1985년, 40대 중반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2021년 파리 퐁피두센터는 추상미술에 기여한 세계 여러 나라 여성 작가 106명의 작품 500여 점을 모아 이라는 전시를 열었는데, 이 중에는 최욱경의 회화 세 점도 포함되었다. 그가 찾고자 했고 말하고자 했던 언어가 그 작품들만으로 제대로 소개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를 통해, 여기서부터 그의 역사를, 또는 여성의 미술사를 다시 써나가야 할 것이다.

사유의 시공간에 이르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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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시공간에 이르는 여정   © 지안 입구는 좁고 통로는 어둡다. 어둠 속에서 스며 나오는 빛은 좀처럼 조도를 높이지 않는다. 시간의 발걸음이 느려진다. 왼쪽 벽에서 희뿌연 빛이 기척을 보낸다. 광대하고 단단한 무언가가 누워 있다. 거대한 돌, 혹은 얼음이 아주 느린 속도로 형체를 분간할 수 없는 물이 되고, 물은 더욱 느리게 수증기로 피어올라 온 세상이 되었다가 다시 돌로 굳어진다. 장 쥘리엥 푸스(Jean-Julien Pous)의 비디오 작품이 환기시키는 완만한 우주적 순환의 ‘세례’를 거쳐 우리는 마침내 ‘사유의 방’에 들어선다. 오감이 깨어난다. 전신의 모공이 조금씩 열리고 내면의 공간이 무한대로 넓어진다. 깨어남과 고요함이 하나가 되는 시간, 부지불식간에 바닥이 조금씩 높아지며 저 어둠과 밝음이 만나는 타원형 지평에 신비스러운 두 존재가 떠오른다. 그들 사이의 가까우면서도 먼 공간 속으로 사유의 여정이 시작된다. 서로 닮았으면서도 서로 다른 두 반가사유상이 교환하는 신비의 미소가 거기 있다. 남산을 등지고 한강을 앞에 눕힌 용산 공원 숲속에 자리한 국립중앙박물관이 건축가 최욱(Choi Wook 崔旭)과 브랜드 스토리 전문팀에 의뢰하여 야심차게 기획하여 2021년 11월 일반에 개방한 공간이 바로 이 방이다.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이 우선 머리에 떠올리는 상징이 라면 이제 서울의 국립박물관을 찾는 이들은 ‘사유의 방’과 그 안에서 만나는 두 구의 금동반가사유상을 가장 먼저 연상할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여인의 초상화(77 × 53 ㎝)는 16세기 초의 그림이지만, 둘 다 높이 1m가 채 되지 않는 국보 78호, 83호 금동 조각상은 그보다 1000년 가까이 앞선 6세기 후반과 7세기 전반에 제작된 신라 불교 미술의 절정이다. 이 걸작들은 이름이 함축한 두 가지 특징을 지녔다. 첫째, 서거나 앉거나 누워 있는 다른 불상들과 달리 둥근 의자에 걸터앉아 오른쪽 발을 왼쪽 무릎 위에 얹고, 앉음과 일어섬 사이의 독특한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오른쪽 손을 들어서 검지와 중지의 끝을 가볍게 턱에 댄 자세로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여 준다. 로댕의 보다 1300년 전부터 이 미륵보살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불교에서는 생로병사에 대한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이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불상도 오랜 세월이 지나 미술관에 들어오면 종교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진정한 사유는 나를 버리는 것인 동시에 나를 찾는 길이다. 이 두 반가상은 그 버림과 찾음의 사이의 미세한 진동을 신비로운 미소로 비추며 넓고 깊은 사유의 시공간을 내면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고립과 자유, 세상에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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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과 자유, 세상에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 이름과 실제가 정반대인 비무장지대(DMZ)는 군사분계선 기준 남북 양방향 각 2km 폭으로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고 있는‘모순의 땅’ 이다. 남측 비무장지대 안에 위치한 유일한 민간인 거주지역 대성동 자유의 마을이 두 예술가에 의해 묵직한 시대적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으로 재해석되어 주목을 끌었다. 한국 작가들에게 ‘분단’은 피하고 싶은 주제일 수도 있다. 너무 뻔하거나, 혹은 너무 거창하기 때문일 것이다. 분단국가의 시민이라는 태생적 조건을 예술 작업으로 끌어왔을 때 딜레마에 빠지기도 쉽다. 다른 나라 작가들이 말하기 힘든 주제인 만큼 해외에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목하지만, 국내에선 “쉬운 길을 택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분단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문경원(Moon Kyung-won 文敬媛) 과 전준호(Jeon Joon-ho 全浚晧)는 이 양날의 검을 호기롭고 영리하게 빼 들었다. 2021년 9월 3일 시작해 2022년 2월 2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MMCA 현대차 시리즈 2021: 문경원·전준호 – 미지에서 온 소식, 자유의 마을’(MMCA Hyundai Motor Series 2021: News from Nowhere – Freedom Village) 전시에서 이들은 분단이라는 이슈를 홈그라운드에 과감히 펼쳐 보였다. 두 작가는 한국 미술계에서 보기 드문 아티스트 듀오다. 이들은 따로 또 같이 활동하는데 이화여대 서양화과 교수로 재직 중인 문경원은 서울에서, 전준호는 고향이자 작업 기반인 부산의 영도에서 각자의 개인 작업과 공동 프로젝트를 병행한다. 두 사람이 처음 의기투합한 2009년 이후 자본주의의 모순, 역사의 수레바퀴에 가려 희생된 개인, 기후 변화 등 여러 사회 담론과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을 다루며 예술의 역할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 왔다. 두 작가는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돼 전시를 선보이면서 국제 무대에 데뷔했다. 문경원(왼쪽)과 전준호 작가가 자신들이 협업한 이 전시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포즈를 취했다. ‘MMCA 현대차 시리즈 2021’ 로 채택된 이 작품은 영상, 설치, 아카이브, 사진, 대형 회화 그리고 연계 프로그램 진행을 위한 모바일 플랫폼으로 구성되었다. 비무장지대(DMZ) 안 대성동 마을을 주제로 하여“인류의 대립과 갈등으로 탄생한 기형적 세계를 조망하고, 팬데믹으로 단절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현재를 성찰했다”고 작가들은 설명한다. 미래에서 관찰한 현재 이번 전시 제목인 ‘미지에서 온 소식’은 이들이 공동으로 펼쳐온 장기 프로젝트이자, 다른 여러 예술가들과 함께 벌이는 협업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을 통해 두 작가는 영상, 설치, 아카이브, 출판물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통섭의 연작 전시를 진행해 왔다. 전시 제목은 19세기 후반 영국의 미술공예운동을 이끈 사상가이자 시인, 소설가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가 1890년 쓴 동명 소설에서 따왔다. 그는 꿈에서 200여 년 후의 런던을 닷새간 여행한 주인공을 등장시켜 당대의 현실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문경원과 전준호는 이 소설에서 제목뿐만 아니라 미래에 시선을 던져 놓고 그 시점에서 현재를 깊숙이 관찰하는 형식 또한 빌려왔다. 두 작가는 “우리의 미래 지향적인 설정은 미래를 진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아젠다를 논의하기 위한 설정”이라고 설명했다. 2012년 독일 카셀 지역에서 열린 5년제 현대 미술 미술 행사 ‘도쿠멘타(documenta 13)’에서 ‘세상의 저편’(The End of the World) 라는 부제로 처음 선보인 이 작품으로 두 작가는 그해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2’ 최종 수상 작가로 선정됐다. 이후 미국 시카고 예술대학 설리번 갤러리(2013), 스위스 미그로스 현대미술관(2015), 영국 테이트 리버풀(2018) 등 여러 도시에서 각기 다른 부제로 전시를 열어 화제를 모았다. 2021년 초 두 사람이 ‘MMCA 현대차 시리즈 2021’ 작가로 선정되면서 마침내 이 작품이 한국에서 대규모로 펼쳐지게 됐다. ‘MMCA 현대차 시리즈’는 국립현대미술관이 현대자동차의 후원으로 2014년부터 매년 한국을 대표하는 중진 작가한 사람을 초청해 개인전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2020년 양혜규에 이어 문경원·전준호 작가는 여덟 번째 주인공이 됐다. “이 프로젝트는 국가와 도시를 옮겨 다닐 때마다 그 지역의 정체성과 역사, 현안을 담아 왔어요. 한국이 무대가 되니 고민이 커졌습니다. 분단국가라는 클리셰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결국 그것은 한국 작가라면 꼭 다뤄야 하는 사명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에만 머물지 않고, 인류의 보편적 역사를 끌어내는 체험으로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분단을 주제로 다루게 된 배경을 전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2021, 2채널 HD 영상설치, 컬러, 사운드, 14분 35초.서로 등을 맞댄 대형 화면 2개가 각기 다른 영상을 보여준다. 작품은 전시공간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영상의 흐름에 따라 조명이 점멸하거나 음향이 흘러나오는 등의 연출이 관람객의 몰입을 돕는다. 화면 속 자유를 갈망하는 남자 A(배우 박정민)가 산을 다니며 채집할 자생 식물을 찾고 있다. 갈등이 만든 기형적 공간 작품의 배경으로 선택한 곳은 남측 비무장지대(DMZ) 내 유일한 민간인 거주지인 대성동 ‘자유의 마을’이었다. 한국의 마을 이름은 대부분 지형이나 그 마을에 깃든 전설에서 유래한다. 그런데 이 마을은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A는 바깥 세상에 나가지 못하는 대신, 식물을 채집해서 연구하고 표본을 만든다. 이 표본에 풍선을 달아 하늘로 날려보내면 반대편 화면의 ‘B’가 받는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모르는 바깥 세상에 누군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비게이션에서조차 표시되지 않는 이 마을은 1953년 한국전쟁 정전협정 이후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로 70년 가까이 바깥 세계와 단절된 채 시간이 멈춰 있는 곳이다. 1951년 시작된 정전 회담에서 남측의 대성동 마을과 북측의 기정동 마을은 각각 DMZ 내 위치한 양측의 유일한 민간인 거주지로 남도록 인정받았다. 이후 대성동은 ‘자유의 마을’, 기정동은 ‘평화의 마을’이란 이름으로 냉전시대 남북한 사이 치열한 체제 경쟁을 위한 프로파간다의 무대가 되었다. 대성동엔 현재 49가구 약 200명이 살고 있다. 한국 영토 안에 있지만 한국 정부가 아닌 UN의 통제를 받으며 사유재산이 허락되지 않는다. 이 마을 여성이 외부 남자와 결혼하면 마을을 떠나야 하지만, 외부 여성이 이 마을 남자와 결혼하면 거주권이 인정된다.두 작가는 이 마을을 한반도의 특수한 지정학적 상황이 빚어낸 독특한 장소로 한정하지 않고, 인류사 전반에서 대립과 갈등으로 인해 탄생한 기형적 세계를 상징하는 곳으로 확장한다. “처음에는 좀 더 우리의 정체성이 담긴 도시를 배경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대성동‘자유의 마을’은 우리 자신에게조차 너무 비현실적인 공간이었기에 예술의 키워드가 될 수 있었습니다.”문 작가의 말에 전 작가가 동의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어쩌면 이 마을 사람들은 현재 팬데믹 상황에 있는 우리보다 훨씬 더 재난적 상황에서 고립되어 70년을 살아왔습니다. 인류가 바이러스와 2년 넘게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지금, 이 마을의 고립은 평소와 달리 보편적인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는 키워드인 동시에 우리의 삶을 성찰하기 좋은 키워드라고 생각합니다.”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 전시는 영상, 설치, 아카이브, 사진, 대형 회화 그리고 연계 프로그램 진행을 위한 모바일 플랫폼으로 구성됐다. 전시의 뼈대를 이루는 것은 서로 등을 마주한 두 개의 대형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이다. 한쪽 면에선 영화배우 박정민(朴正民)이 서른두 살의 남성 A로 등장한다. A는 자유의 마을에서 태어나 한 번도 바깥세상에 나간 본 적이 없는 인물로, 비무장지대에 자생하는 식물을 연구하는 아마추어 식물학자다. 그는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를 외부 세계에 알리고 싶어 연구한 내용으로 식물도감을 만든 뒤 비닐 풍선에 넣어 날려 보낸다. 풍선은 시공을 뛰어넘어 반대편 스크린 속 20대 초반의 남자 B에게 전달된다. 아이돌 그룹 갓세븐 멤버 진영(珍荣)이 연기하는 B 역시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 채 평생 감옥처럼 좁은 공간에 갇혀 살고 있다. 우주선을 닮은 공간에 고립된 B의 유일한 낙은 가끔 창밖을 내다보는 것뿐이다. 어느 날 어디선가 날아온 비닐 풍선은 B의 일상을 뒤흔든다. 깊은 혼란에 빠져 며칠 동안 그저 쳐다보기만 하던 B가 마침내 용기를 내어 내용물을 꺼내 본다. 이후 B는 계속 A로부터 풍선을 받는다. 무한대의 타임 루프처럼 A와 B의 이야기가 순환된다. 이 영상들을 지나면 자유의 마을을 담은 사진들이 걸려 있다. 작가들이 국가기록원에서 사용 허가를 받은 이미지를 포토샵으로 가공했다. 문 작가는 사진들을 바라보며 작업을 회상했다. “이미지 사용 허가는 받았지만 사진 속 인물들의 익명성을 보호해야 했습니다. 때문에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거나 여러 이미지를 조합해 만든 전혀 다른 얼굴을 입히기도 했어요. 또는 포토샵으로 사진 속 인물들에게 마스크를 씌우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지금의 팬데믹 상황을 상징이라도 하는 듯, 절묘한 결과물이 나왔지요.” 이 곳을 지나 마지막 전시실로 가면, A가 식물을 찾아 헤매던 눈 덮인 숲이 거대한 캔버스 위에 펼쳐진다. 문 작가가 6개월에 걸쳐 완성한 가로 4.25m 세로 2.92m 대형 풍경화다. 얼핏 보기에 사진처럼 보일 만큼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린 이 그림은 스크린과 현실을 이어주며 가상과 실재가 뒤섞인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전시장 밖 오픈 스페이스인 서울 박스에 설치된 모바일 아고라는 이 프로젝트의 지향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즉, 고대 그리스 시대 누구나 발언할 수 있었던 광장 아고라의 개념을 현대적으로 확장해 다양한 분야의 다중 지성들이 모여 대담을 나누면서 연대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이번 전시에선 접으면 컨테이너 박스 형태가 되는 이동식 철 구조물로 제작됐다. 이곳에서 전시 기간 중 매달 한 차례 열린 대담에 배우 박정민을 비롯해 건축가 유현준(兪炫準), 생태학자 최재천(崔在天), 뇌과학자 정재승(鄭在勝) 등이 참여했다. 전시장을 나서기 직전 관객은 벽면에 적힌 영국의 비평가 존 버거(John Berger 1926~2017)의 말을 만났다. “풍경이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라기보다는 그들의 고투와 성취와 사건들을 가리는 커튼처럼 느껴진다. 커튼에 가려진 이들에게 두드러진 지표는 그저 지리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전기적이고 개인적이기도 하다(Sometimes a landscape seems to be less a setting for the life of its inhabitants than a curtain behind which their struggles, achievements and accidents take place. For those who are behind the curtain, landmarks are no longer only geographic but also biographical and personal).”전쟁의 끝에 70년간 고립되어 살아온 한 마을의 비극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자, 2022년 팬데믹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는 우리에게 두 작가가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였다. 전시장 옆 야외에 설치되었던 ‘모바일 아고라’는 조립과 변동, 이동이 가능한 큐브형 스테인리스 스틸 설치 구조물이다. 각 196 x 259 x 320 cm. 이 곳에서 전시 기간 중 매달 한 번씩 건축, 과학, 디자인, 인문학 등 분야별 전문가들이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문경원 작가가 6개월에 걸쳐 완성한 대형 회화 ‘풍경’이 영상에서 남자 ‘A’가 헤매던 어느 산속 배경을 재현했다. 캔버스에 아크릴릭과 유채, 292 x 425cm. 영상의 배경은 국가기록원이 제공한 자유의 마을 사진과 비슷한 풍경을 지닌 DMZ에 접경한 경기도 파주의 어느 지역이다.

한국식 주크박스 뮤지컬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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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주크박스 뮤지컬의 도전 1980~90년대 젊은 세대의 감성을 흔들었던 이영훈(1960~2008 Lee Young-hoon 李永勳)의 팝 발라드는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애창곡으로 남아 있다. 이 노래들을 모아 엮은 뮤지컬 가 올 가을 시즌 세번째 무대에 올려져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다. 는 1980~90년대 젊은 세대에게 크게 사랑받았던 팝발라드 작곡가 이영훈(Lee Young-hoon 李永勳 1960~2008)의 명곡들을 바탕으로 한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노랫말에 등장하는 서울의 광화문과 덕수궁 옆 정동길을 무대로 꾸몄다. © CJ ENM 요즘 흥행하는 뮤지컬은 두 가지 중 하나다. 왕년의 인기 영화를 활용한 무비컬(moviecal) 또는 흘러간 대중음악으로 꾸민 주크박스 뮤지컬(jukebox musical). 거대한 고릴라 인형이 무대에 등장하는 이나 로버트 스티븐슨 감독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가 가장 대표적인 무비컬이고, 미국 밴드 포 시즌스(Four Seasons)의 음악으로 꾸민 나 스웨덴 그룹 아바(ABBA)의 히트곡들이 연이어 펼쳐지는 가 흥행을 보증하는 주크박스 뮤지컬의 대명사다. 대중음악을 무대용 콘텐츠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주크박스 뮤지컬을 팝 뮤지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수많은 작품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파고가 국내 시장에도 불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7~9월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무대를 꾸민 이후 지방 공연을 이어간 는 눈여겨볼 만한 작품이다. 싱어롱 커튼콜 이 작품은 소위 ‘트리뷰트 뮤지컬’ 계열에 속한다. 이영훈 작곡가가 만들고 가수 이문세(李文世)가 노래했던 음악들이 소재로 쓰였다. 사실 작곡가 이영훈을 빼고 1980~90년대 한국의 대중음악을 말하긴 힘들다. 손만 대면 모든 것이 금으로 변하는 그리스 신화의 미다스처럼 그는 수많은 히트곡들을 남겼다. 뮤지컬 제목으로 쓰인 (1988)를 비롯해 이 작품에 등장하는 (1987), (1988), (1991) 등은 모두 관객들이 흥얼거리며 따라부르게 되는 주옥같은 당대의 명곡들이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주크박스 뮤지컬들이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이 작품 역시 노스탤지어를 극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뮤지컬 마니아들뿐 아니라 이영훈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공연장으로 끌어들였다. 게다가 커튼콜에서 아이돌 그룹 빅뱅이 리메이크해 큰 인기를 누렸던 (1988)이 연주되면 관객들은 더 이상 객석에 앉아만 있기 힘들게 된다. 관객들이 목 놓아 노래를 따라부르며 환호하는 ‘싱어롱 커튼콜’은 이 무대가 만들어 낸 특별한 체험이자 감동이었다. 극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시간 여행 안내자 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차지연은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해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극작가 겸 연출가 고선웅이 극본을 쓴 이 작품은 기억과 현실, 환상이 교차하는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세 가지 버전 독특하게도 는 여러 버전들이 있다. 이영훈의 곡들을 뮤지컬로 재구성한 첫 시도는 인기 뮤지컬 연출가 이지나가 2011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막을 올렸던 무대다. 세간에는 이영훈이 암 투병 말기에 기본적인 이야기의 골격을 만들었다는 후문도 있다. 세 남녀의 엇갈린 사랑을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은 특히 중장년층으로부터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며 대형 무대에서 초연되는 창작 뮤지컬로서는 보기 드문 흥행을 기록했고, 이듬해 LG아트센터에서 재연되었다. 두 번째로 시도된 김규종 연출가의 는 전작의 스핀오프 작품이며, 소극장을 중심으로 라이브가 강조된 무대였다. 장기판 모양의 격자 무대 세트 안에 악기 연주자들이 각각 자리 잡고 한층 강화된 음악적 매력을 제공했다. 콘서트에 가까운 이 버전은 상하이, 항저우, 난창, 푸젠 등 중국의 여러 도시에서도 공연을 이어갔다. 올해 상연된 는 유명한 극작가 겸 연출가 고선웅이 극본을 새로 쓰고, 이지나가 복귀해 연출을 맡았다. 임종을 앞둔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참된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기억과 현실, 환상이 교차한다. 이 세 번째 버전은 2017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 초연과 2018년 재연에 이어 이번이 삼연째다. 이 작품은 스타일리시한 무대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아온 연출가의 작품답게 몽환적이면서도 애틋한 감성을 잘 담아낸 수작이었으며, 여전히 식지 않은 이영훈표 음악들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구현해 냈다고 평가되었다. 특히 배우의 성별에 관계없이 배역을 정하는 젠더프리 캐스팅도 화제가 되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가수와 배우들의 출연, 호흡이 잘 맞는 연출과 음악감독, 물오른 듯한 무대 디자인 등 솜씨 좋은 제작진의 조합을 비롯하여 적절한 마케팅 전략과 공연의 시기적 선택 등이 주요한 흥행 요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작곡가 이영훈 이영훈이 처음부터 대중음악계에 종사했던 것은 아니었다. 연극이나 방송, 무용 등에 사용되는 배경음악의 작곡가로 먼저 활동을 시작했고, 20대 중반 대중음악 분야로 영역을 넓혔다. 이 무렵 그는 1978년 가수 겸 MC로 데뷔한 이문세를 만나게 되는데, 당시 2집 음반까지 냈던 이문세는 가수보다는 라디오 DJ로 더 유명했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1985년 발표한 3집 앨범의 타이틀곡 가 TV 가요 프로그램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고, 이 노래뿐 아니라 음반에 수록되어 있던 곡들 대부분이 히트하는 기록을 남겼다. 이후 이영훈은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작사가이자 작곡가로 떠올랐다. 2년 후에 나온 이문세의 4집 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드는 앨범으로, 당시 280만 장 이상의 경이로운 판매고를 올렸다. 이후 두 사람의 동행은 2001년 13집 까지 계속됐다. 그는 이문세와의 협업이 뜸해진 시기에는 드라마와 영화 음악을 만들거나 이문세에게 주었던 노래들을 편곡해 관현악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금도 서울 덕수궁 정동길에 세워진 그의 노래비는 그 시절을 추억하는 사람들에게 남다른 감회의 장소가 되고 있다. 1980년대 군부 독재에 맞선 젊은이들의 시위 현장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주인공 역을 맡은 가수 윤도현이 피아노를 연주하며 이영훈의 곡 (1988)를 부르고 있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주크박스 뮤지컬들이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역시 노스탤지어를 극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친숙함의 장점 한국에서는 가 주크박스 뮤지컬의 대명사이자 전부처럼 받아들여지지만, 이 장르를 세분화하면 할 이야기가 많아진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그 특성에 따라 두 가지로 구분된다. 1980년대 히트한 록 음악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처럼 불특정 다수의 다양한 대중음악들을 시대나 주제, 형식에 따라 엮어내는 컴필레이션 뮤지컬 계열과 처럼 특정 뮤지션의 음악적 산물만을 활용하는 트리뷰트 뮤지컬 계열이 있다. 전자가 이야기의 주제에 따라 다양한 음악가들의 음악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 후자는 기존의 공연 애호가뿐 아니라 원래 그 음악을 좋아했던 팬들까지도 소구할 수 있는 매력을 지닌다. 물론 해당 뮤지션이 더 이상 활동을 하지 않거나 세상을 떠났다면 관심은 더욱 배가되게 마련이다. 무비컬이나 주크박스 뮤지컬이, 특히 후자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관객들이 생소한 노래와 이야기를 한꺼번에 대하는 부담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다. 사실 두세 시간 남짓한 무대에서 새로운 노래들을 수십 곡이나 들어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작곡자는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총동원한 수려한 멜로디를 잔뜩 들려주고 싶겠지만, 관객은 소화불량을 일으킬 수도 있다. 주요한 멜로디를 반복적으로 변주하거나 공연 전 미리 콘셉트 음반을 만들어 대중에게 각인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주크박스 뮤지컬은 장점이 많은 공연 형식이다. 일단 무대에 등장하는 노래들이 이미 관객들과 친숙하다. 게다가 매번 현장에서 재연되는 만큼 그 생동감이나 역동성은 거실 오디오나 책상 위 조그마한 스피커로 들을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주크박스 뮤지컬에 공연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원곡이나 해당 음악가를 추종하던 음악 팬들까지 몰려드는 이유가 여기 있다. 또한 이미 대중적 인지도를 갖고 있는 콘텐츠를 활용하기 때문에 제작자 입장에서도 흥행에 대한 부담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편견과 차별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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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과 차별을 넘어서 남북한 주민의 가교 역할을 자처하는 ‘사부작’은 대학생들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이다. 익명으로 출연하는 라디오 방송이라는 매체의 특성이 탈북민 게스트들의 경계심을 낮추어 보다 솔직한 대화로 남한 사회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실 저는 북한에서 왔어요.” 남한에 정착한 탈북민이 이 말을 하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남한 사회에는 아직 대한 편견과 차별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북한이탈주민 신변보호제도 개선방안 실태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80% 이상이 ‘탈북민이라는 신분이 노출됐을 때 남한 주민이 경계심을 보이거나, 차별적으로 대하는 경험을 했다’고 답했다. ‘사부작’은 이런 편견과 차별을 깨기 위해 3년 전 남한의 대학생들이 모여 만든 인터넷 라디오 방송이다. 이 흔치 않은 방송 이름은 ‘사이좋게 북한친구와 함께 만드는 작은 수다’를 의미하는 한국어의 줄임말이다. 사부작에 출연하는 대부분의 게스트가 익명을 원하지만, 간혹 신분이나 얼굴을 공개하기도 한다. 통일코리아협동조합 박예영 이사장은 ‘김책 털게’라는 닉네임으로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3부로 나뉘어 출연했다. 왼쪽부터 사부작 스탭 박세아, 안혜수, 게스트 박예영 이사장. © 사부작 재미있는 닉네임 북한 출신 게스트를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는 이 팟캐스트 방송은 탈북민들의 삶을 ‘조미료 섞지 않고 담백하게’ 들려주는 것이 모토다. 솔직한 대화를 통해 탈북민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남북한 주민들 간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것이 목표다. “나 북한에서 왔어”라고 말하면 “그래? 난 대구에서 왔는데”라고 자연스럽게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이 방송은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 걱정 때문에 미디어 노출을 꺼리는 출연자들에게 별명을 만들어준다. 이를테면 ‘경성 송이버섯’, ‘혜산 감자밥’같은 이름인데, 전자는 함경북도 경성 출신이 고향의 송이 버섯을 그리워한다는 의미이고, 후자는 감자밥을 즐겨 먹었던 양강도 혜산 출신이라는 뜻이다. 진행자 역시 ‘부산 돼지국밥’처럼 자신의 출신 지역과 좋아하는 음식의 이름을 붙여 만든 닉네임을 사용한다. 이는 게스트가 자신의 고향을 자연스럽게 밝히면서 보다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주기 위해 고안한 장치다. 이 같은 배려는 게스트 섭외에도 도움이 된다. 탈북민들은 대부분 출연 전에는 자신의 고향을 밝히길 꺼리지만, 대화를 진행하는 동안 어느 덧 고향을 떠올리며 행복해한다. 뿐만 아니라 출연을 계기로 남한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자신감을 얻고, 이후 자연스럽게 출신 배경을 밝힐 수 있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녹음이 끝나면 게스트들이 ‘지금까지 북한에서의 기억을 잊고 부정하려는 노력을 해왔는데 오늘 이야기하며 그 시절의 나를 좀 더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씀하세요. 그럴 때면 우리 방송이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이 들어 흐뭇해집니다.”스태프 박세아(朴細我) 씨의 말이다. 그는 연세대 교육학과 3학년 학생으로 고등학생 시절 탈북민 자녀를 멘토링한 이후 탈북민 문제에 관심을 가지다가 이 방송에 지원하게 됐다. 이 방송의 또 다른 목적은 개인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다. 게스트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다. 사회의 조명을 받을 기회가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더 나아가 북한 사회의 구성원들 역시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널리 알리려는 것이다. 대화의 주제는 정치적, 종교적 문제를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때때로 게스트가 원할 경우 가볍게 다루기도 한다. 이 방송을 처음 시작한 것은 당시 연세대 경영학과에 재학중이던 박병선(朴炳宣) 씨다. 그는 현재 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으로 방송 활동을 하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탈북민들의 얘기를 팟캐스트로 들려주면 남한 사람들이 이들을 친숙하게 대할 수 있게 되고 서로 거리를 느끼지 않고 어울려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시작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고 있는 탈북민들이 차별과 편견을 받는 것을 알고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들의 얘기를 가감없이 진솔하게 들려주는 방송을 해보자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사부작’은 인액터스(Enactus) 소속 연세대 동아리 프로젝트 ‘지음’(知音)이 다섯 달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8년 8월에 첫 방송을 내보냈다. 인액터스는 1975년 미국 리더십 연구소(National Leadership Institute)가 설립한 글로벌 비영리단체이고, ‘지음’은 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한 벗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2020년 8월부터 참여 범위를 넓혀서 현재는 연세대뿐 아니라 가톨릭대, 서강대, 서울대, 성신여대, 이화여대, 중앙대생들이 함께하는 대학생 연합동아리로 운영한다. 이 팟캐스트 방송은 탈북민들의 삶을 ‘조미료 섞지 않고 담백하게’ 들려주는 것이 모토다. 솔직한 대화를 통해 탈북민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남북한 주민들 간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특별한 게스트들 현재 스태프는 총 9명으로 3명씩 팀을 이뤄 번갈아 방송을 진행한다. 팀원은 역할 구분 없이 섭외, MC, 편집, PD 업무 등을 두루 맡고, 녹음은 홍대 부근에 있는 ‘스튜디오 봄볕’에서 한다. 방학을 제외하고 거의 매주 한 명씩 게스트를 초청해서 팟캐스트를 제작하는데, 한 게스트의 얘기를 3회로 나눠 편집해 올린다. 첫날 방송에서는 고향 음식·북한에서의 삶, 둘째 날은 탈북 과정, 셋째 날은 남한 정착기와 생활 얘기를 듣는 방식이다. 초기에는 탈북민들의 ‘알려지지 않은 목소리’를 전하는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우리 공동체 이야기’를 전하고자 노력한다. 게스트가 정해지면 사전 인터뷰로 방송 흐름을 미리 설계하지만, 원고를 준비하지는 않는다.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위해 온라인 화상 채팅을 통해 게스트와 미리 친해지는 기간을 갖기도 한다. 초기 게스트는 주로 대학생들이었다. 제작진과 동년배로 섭외가 수월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게스트가 지인들에게 출연을 권하고 입소문도 나면서 다양한 연령층의 출연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 중 한 사업가 출연자가 스태프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북한에서 15살 때부터 탈북 브로커 활동을 하다가 국가보위부의 전국수배를 받게 된 인물이었는데, 얼굴이 안 보이는 팟캐스트의 특성상 흥미로운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었다. 또 다른 인상적인 게스트는 고등학생이던 ‘길주 완자’다. 풍계리 핵실험장이 있는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나고 자란 그는 14살 때인 2013년 북한을 탈출해 이듬해 한국에 들어왔다. 드물지만 실명을 밝히고 출연한 게스트들도 있었다. 북한 여군장교 출신 김정아(함경북도 청진 출신) 씨가 첫 번째 경우였다. 그는 양부모와의 갈등 끝에 꽃제비(일정한 거주지 없이 먹을 것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북한 어린아이를 지칭하는 말)로 지내다가 숨진 오빠 얘기를 하면서 여러 차례 눈물을 흘렸다. 유럽에서 외화벌이 해외파견 근로자로 일하다가 한국에 입국한 나민희 씨도 드문 일화를 지닌 게스트였다. 그는 출신 성분이 아주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풍요로운 생활을 했던 평양 상류층 자녀였다. 서울에 정착해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고 있는 주성하 씨가 출연한 적도 있다. ‘김책 털게’라는 별명과 함께 실명을 밝힌 박예영 통일코리아협동조합 대표도 특별한 게스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제작진의 일원인 안혜수(安慧洙) 씨는 “박 대표가 남한 대학생들이 한민족과 통일에 관심을 갖고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것이 너무나 고맙다고 말해줘서 큰 힘이 됐다”고 회상했다. 할아버지가 북한 황해도 출신인 안 씨는 성신여대 법학부 4학년 학생으로 이 방송의 소문을 듣고 팀원으로 자원했다. 2019년 9월에 시작된 시즌 3부터는 탈북민 출신 학생들도 스태프로 참여하고 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재학중인 안성혁(安成奕) 씨와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2학년 학생인 박범활(朴汎豁) 씨의 경우다. 함경북도 청진에서 살다가 부모님과 함께 탈북해 2011년 12월 한국에 들어온 안 씨는 현재 이 방송의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친구가 함께 활동하자고 제안하여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게스트들이 바쁜 일상 때문에 떠나온 고향 생각을 자주 못 하는데, 우리 방송에 출연해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고 말할 때 가장 뿌듯해요.” 대학생들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라디오 방송 사부작은 북한이탈주민들 각자의 삶에 담긴 특별한 이야기들을 자극적으로 과장하거나 획일화 시키지 않고 진솔하게 소개하려 노력한다. 주로 사전 녹음 방송을 하는데, 녹음은 홍대 부근의 ‘스튜디어 봄볕’에서 한다. 왼쪽부터 사부작 스탭 안성혁, 안혜수, 박세아. 생각의 변화를 위하여 2021년 8월부터는 시즌 7이 진행되고 있다. 시즌은 대학의 한 학기 기준이다. 우양재단, 남북통합문화센터, 연세대 고등교육혁신원 등의 기관으로부터 녹음실 대여비나 공개방송비용 등을 지원받고 있는데 그동안은 게스트에게 출연료를 주지 못했지만, 지원 덕분에 최근 들어 작은 액수의 사례비도 줄 수 있게 됐다. 탈북민들 사이에서 친숙하게 자리를 잡은 이 팟캐스트는 2021년 9월 기준으로 누적 조회 수가 20만 명에 이른다. 청취자들은 댓글로 피드백을 주기도 하고, 인스타그램으로 DM을 보내기도 한다. 많은 격려와 응원 덕분에 대가 없이 봉사하는 제작진이 열정과 용기를 얻는다. 이 팟캐스트 방송의 가장 중요한 소통 창구는 댓글이다. 인스타그램에는 매주 방송내용을 정리한 카드뉴스를 올리기도 한다. © 사부작 ‘사부작’은 지금까지 130여 명의 게스트와 이야기를 나눴다. 2021년 2월에는시즌 1과 시즌 2 게스트 중에서 12명의 이야기를 골라 담은 에세이집 를 발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탈북 계기, 탈북 이후 남한 정착 과정, 이후 어려웠던 이야기가 담겼다. 책을 통해 그동안 정형화되었던 북한에 대한 정보 외에도 북한사람들의 실제 정서, 문화와 먹거리, 탈북민들의 고민, 북한에서의 다양한 추억과 세시풍속, 한국과 비슷하면서 다른 점들을 보다 깊이 파악할 수 있다. ‘사부작’ 제작진은 게스트들과 대화를 나누며 남한 사람들이 탈북민을 일반화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심지어 자신들 마저도 처음에는 ‘탈북민은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지내겠지’, ‘그들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일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반면, 게스트들은 진행자들을 남한 사람이라고 일반화하지 않았다. 각자 개성과 특징을 지닌 개인으로 보았다. 제작진은 오히려 자신들이 다양한 게스트를 만나며 서서히 변화했고, 지금은 탈북민을 특정한 이미지가 아닌 개인으로서 표현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학교에서 남북통일에 관한 토론 수업을 할 때면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죠. 젊은 세대가 서로를 적이라고 부를 때 가장 가슴이 아파요. 우리 방송이 남북한 주민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더 오래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안성혁 대표의 말이다. 에세이집 에는 이색적인 북한음식이 삽화를 곁들인 레시피로 소개되는데, 책 속 12명의 게스트들은 각자 고향의 음식들을 소개하며 이와 관련된 경험, 추억을 이야기한다 © 프로젝트 지음

평화를 꿈꾸다

Past Series 2021 WINTER

평화를 꿈꾸다 1960년대 봄, 비무장지대 철책선에서 복무하던 나는 가끔 인적이 없는 근처 강가에 찾아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경치에 빠져들곤 했다. 절벽 끝에는 분홍색 진달래꽃이 만발했고, 전쟁 전 마을이 있었던 강가의 장방형 담장을 따라 잡초가 무성했으며, 여기저기 복숭아꽃과 살구꽃이 피었다. 그때의 대학생 병사가 노년으로 깊숙이 들어선 지금도 남북은 여전히 갈라져 대치 중인데, 적막에 싸인 그 강가에는 여전히 철 따라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릴 것이다. ⓒ 박종우 한국 전쟁 발발 3년 뒤인 1953년 7월 27일 발효된 정전 협정에 따라 양측은 동서 약 240km에 걸쳐 한반도의 허리를 둘로 갈라 가상의 군사분계선(MDL)을 긋고, 그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2㎞ 범위에 군사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완충 지대를 두었다. 그것이 바로 한반도 비무장지대다. 총면적 약 907㎢인 이 지역의 남북 경계선에는 각기 높은 철책을 세우고 남북한 군대가 대치 중이다. 비무장으로 군사 활동이 금지되어 있다지만, 지뢰로 덮인 이곳은 지구상 유일하게 냉전 체제의 위험한 유산이 상존하는 살벌한 대치 공간이다. 군사분계선에는 남북한군과 유엔군이 공동 경비하는 반경 400m 원형 지역, 오늘날에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저 유명한 판문점이 포함되어 있다. 한편 비무장 지역 밖 남북으로 10여㎞ 떨어진 지역에 다시 통제선 철책을 세우고 민간인의 출입을 금하였는데, 이 선이 바로 민통선이다. 역내(域內)에는 휴전 협정에 따라 남측의 대성동, 북측의 기정동 마을에 민간인이 거주하고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DMZ 일대는 포유류와 조류의 분포 면에서 국내 최대의 종 다양성을 지니고 있으며, 가장 많은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이 서식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10월 초순에는 민통선 북쪽 철원평야에 수천 마리의 재두루미들이 시베리아의 추위를 피해 찾아와 들판에 떨어진 벼이삭을 줍는다. 또한 11월 초순이면 우리 민족이 가장 상서롭게 여기는 새인 두루미가 찾아온다. 날개가 없는 나는 이 남북한 접경 지역에 내려앉는 수천 마리의 철새 떼를 그저 사진으로만 바라보며 아직은 기약 없는 통일을, 철책선 안이 평화로운 생태공원으로 변할 그날을 꿈처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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