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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s & Culture

사랑받은 소설을 다시 상상하다

Arts & Culture 2024 SPRING

사랑받은 소설을 다시 상상하다 『나목』 김금숙 작, 자넷 홍 번역, 320쪽, 29.95달러, 드론 앤 쿼털리(2023) 사랑받은 소설을 다시 상상하다 크로스미디어의 각색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요즘에는 글이나 그림 작품, 즉 소설이나 만화가 영화나 TV 드라마로 각색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유명 작가인 고 박완서(1931-2011)의 데뷔 소설 『나목』을 각색한 김금숙 작가의 『나목』은 그래픽 소설이라는 시각적 매체를 통해 원작을 새롭게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박완서의 원작 소설 『나목』은 한국전쟁 동안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려 생계를 꾸렸던 화가 박수근(1914-1965)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그의 예술적 비전과 천재성은 그가 사망할 때까지 인정 받지 못했다. 박완서 작가의 분신인 경아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소설은 한국인과 주둔한 외국군 사이의 문화 충돌과 한국전쟁 동안 사회적 가치가 변화하는 신생국의 특징을 다루기도 한다. 그 격변의 시대 사회상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비판함으로써 호평을 받은 소설은 여성 작가에게 수여하는 여성동아 문학상을 받았다. 김금숙의 그래픽 소설은 이 유명한 작품의 역사에 또 다른 장을 추가한다. 그녀는 원작에 충실히 하고자 했지만, 점차 그녀만의 색을 넣어 새로운 서사를 끌어냈다. 핵심 서사는 동일하지만 그래픽 소설에서는 박완서와 그녀 남편의 분신으로 재탄생한 인물이 도입되면서 원작의 이야기에 맥락을 더한다. 김금숙은 박수근의 여러 작품을 모작하여 핵심 서사와 맥락 부분에 집어넣었다. 이는 이야기에 더 많은 층과 깊이를 더하면서 실제 인물들의 삶과 이들을 바탕으로 한 허구적 인물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원작 소설을 읽을 때는 독자 각각의 마음속에 이미지가 생성되지만, 그래픽 소설에서는 독자들이 예술가의 독특한 비전을 직접 보고 즐길 수 있다. 작가는 악몽 같고, 정신 없고, 고통스러우며, 아름다울 수도 있는 한국전쟁 기간의 서울을 흑백 드로잉으로 포착한다. 그러나 그녀는 단순한 그래픽 표현을 넘어 자신이 선택한 매체를 최대한 활용한다. 예를 들어 그녀는 만화 이론가 스콧 맥클라우드가 말하는 “출혈을 일으키고 시간을 초월한 공간으로 탈출하는” 것을 표현할 때 보통의 칸보다 확장된 칸을 활용한다. 확장된 칸은 때때로 시간의 확장을 암시하면서 서사에서의 전환을 예고한다. 또 다른 경우로는 한국전쟁의 외부적 혼란 혹은 인물들의 내적 혼란을 묘사한다. 작가는 그래픽 소설의 기본 구조를 형성하는 기본 적인 칸에서도 그것들을 기발하게 활용한다. 경아가 자신의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을 되살릴 때 그녀 가족에 대한 묘사는 실제로 칸의 경계를 뚫고 나온다. 이는 그들이 과거에 머무르는 것을 거부하는 시각적 표현이다. 또 다른 곳에서는 인물들이 장면의 일부인 것처럼 칸 가장자리에 팔이나 손을 얹고 있다. 박수근의 작품 전시회를 묘사하는 장에서는 작품 자체만을 위해 칸이 이용되고 인물들은 그림 주변에서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활보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사랑 받은 소설을 새로운 매체를 통해 재창조하는 작가의 기교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직접 탐험해 볼 수 있는 즐거움을 독자에게 남겨둔다. 박완서의 소설을 다시 읽어보든 처음으로 접하게 되든 이 그래픽 소설은 작품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창이다. 『 당신의 죄는 내가 아닙니까 』 최지인 작, 스텔라 김 번역, 142쪽, 10,000원, 아시아 출판사(2023) 한 시인의 쟁투 최지인의 새 시집은 ‘사건들’이 벌어진 세상의 장소들을 언급하면서 시작한다. ‘제주, 오키나와, 타이베이, 마닐라, 싱가포르, 스리랑카, 마다가스카르, 아이티, 홋카이도’.(‘커브’). 이 시집의 모든 라인에는 전쟁과 갈등이 엮여 기억과 역사의 태피스트리를 만들어낸다. 시인은 “쓰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커브’)라고 고백하면서 이를 통해 의미를 찾지만, 자신의 탐구가 희망이 없음을 인정하기도 한다. “우리는 삶이 무엇인지 인간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요”(‘신세계’). “세상의 죄를 짊어진 지구의 고양(羔羊)이여”(‘성장의 끝’)와 같은 성경 주제에 대한 눈에 띄는 언급은 희망을 암시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공자의 가장 중요해 보이는 지혜를 뒤집는다. “감히 삶에 대하여 / 묻습니다 / 죽음을 모르는데 / 어찌 삶을 알겠습니까”(‘파종’). 하지만 시인은 이 모든 것을 통해 여전히 사랑을 선택한다. 어떤 희망을 품든지 간에 아마도 그 희망은 이 선택과 우리가 어디에서 실패했는지 잊지 않기 위해 계속 전달해야 하는 이야기 속에 있을지 모른다. 최지인 시인이 보존하고자 하는 것은 이 기억들이다. ‘다문화가족지원포털 다누리’ www.liveinkorea.kr 한 지붕 아래의 세상 ‘다문화가족지원포털 다누리’ 웹사이트는 한국 생활에 대한 정보를 13개의 언어로 제공한다. 영어와 러시아어도 포함되어 있지만 주로 중앙아시아,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언어들이다.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누리’는 ‘많은’ 혹은 ‘다수의’라는 한자어 ‘다(多)’와 ‘세계’를 의미하는 순수 한국어 ‘누리’의 조합이다. 이 사이트는 다문화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디자인되었고, 주 대상자는 한국에 사는 여성 결혼이민자이다. 하지만 다른 이민자들도 도움이 되는 내용을 찾을 수 있다. 정보는 주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두 개의 파일, ‘결혼 이민자를 위한 웰컴북’과 ‘한국생활 가이드북’에서 찾을 수 있다. 전자는 한국에 쉽게 정착할 수 있도록 주요 정보를 요약한 짧은 이중 언어 책자이다. 후자는 각각의 언어 한 가지로 되어 있고 이민자들이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좀 더 포괄적인 내용을 담은 책자이다. 이 역시 일차적으로는 다문화가족과 결혼이주민들을 위한 것이지만 내용의 많은 부분이 한국에 거주하는 어떤 외국인에게도 유용할 것이다. 이 사이트는 가끔 검색이 힘들기는 하지만 신중하게 준비되고 선별된 풍부한 콘텐츠를 제공한다.

Arts and Culture Calendar 2024년 3월-2024년 5월

Arts & Culture 2024 SPRING

Arts and Culture Calendar 2024년 3월-2024년 5월 궁중문화축전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궁중문화축전’은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사를 품고 있는 서울 소재 5개의 궁궐과 종묘에서 매년 봄·가을 마다 펼쳐지는 문화유산 축제이다. 각각의 궁궐 전각과 장소의 특성을 반영한 공연, 전시, 체험, 의례 재현 등의 문화, 예술프로그램을 통해 궁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기간: 2024. 04. 27.~ 2024. 05. 05. 장소: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 경희궁, 종묘 홈페이지: chf.or.kr 구본창의 항해 한국현대사진뿐만 아니라 동시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구본창(Koo Bohn-chang 具本昌)의 회고전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실험적인 작품활동과 사진을 현대미술의 장르로 확장해 온 그의 작품을 통해 너와 나, 우리의 존재와 삶의 의미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기간: 2023. 12. 14.~2024. 03. 10.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홈페이지: sema.seoul.go.kr 2023 KZ프로젝트 < 만년사물 > < 만년사물 > 은 공예가 ‘지속가능한 삶’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올해의 금속공예가상’ 수상 작가들의 작품과 제작 과정을 통해 환경과 미래를 생각하는 금속공예가들의 실천을 선보이는 전시이다. 기간: 2023. 12. 19.~2024. 03. 10. 장소: 한국공예박물관 홈페이지: craftmuseum.seoul.go.kr 임인식 기증유물특별전 < 그때 그 서울 >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한국전쟁 종군기자였던 임인식 작가의 사진전이다. 전시는 2013년 기증받은 사진 1,003점 중 1945년부터 1965년까지 서울의 모습과 사람들의 삶, 애환을 담은 140여 점을 공개한다. 기간: 2023. 12. 15.~2024. 03. 10. 장소: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 museum.seoul.go.kr 2024 국립극장 < 완창판소리 > 1984년부터 단단한 내공으로 한국 판소리의 지평을 다졌던 국립극장 < 완창판소리 > 의 상반기 공연이 공개됐다. 3월 < 흥보가 > , 4월 < 적벽가 > , 5월 < 심청가 > , 6월 < 수궁가 > 를 공연 예정이며, 매 공연마다 해설이 곁들여져 판소리에 대한 이해와 재미를 더한다. 기간: 2024. 03. 16., 04. 13., 05. 11.,6. 15. 장소: 국립극장 하늘극장 홈페이지: ntok.go.kr 갑진년맞이 용을 찾아라 2024년 갑진년 청룡의 해를 맞이해 상설전시관에서 십이지신 중 유일한 상상의 동물인 용과 관련된 전시품 15건을 소개한다. 각층 전시품에 숨어 있는 다양한 용의 모습과 작품에 담긴 상징과 이야기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기간: 2023. 12. 20.~2024. 04. 07.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www.museum.go.kr 정영선 한국 최초의 여성 조경가 정영선(鄭榮善 Jung Young-sun)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개인전이다. 1980년대부터 올릭픽미술관 및 조각공원, 대전엑스포공원, 선유도공원 등 국가·지역·민간 주요 프로젝트를 구축해 온 그의 대표작들을 소개하는 동시에 서울관에 그녀의 조경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정원을 조성한다. 기간: 2024. 04. 05.~2024. 09. 22.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홈페이지: mmca.go.kr 특별수장고 < 국립현대미술관 드로잉소장품 > 특별수장고 < 국립현대미술관 드로잉 소장품 > 에서는 이중섭(Lee Jung-seop 李仲燮)의 ‹소년›(1943-1945), 박수근(Park Soo-keun 朴壽根)의 ‹마을 풍경›(1956), 유영국(Yoo Young-kuk 劉永國)의 ‹산›(1970년대 중반) 등 미술관이 구축해 온 대규모의 소장품을 통해 드로잉에 대한 개념 변화와 양상, 그리고 다양한 관점을 고찰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기간: 2023. 12. 14.~2024. 07. 31.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홈페이지: mmca.go.kr 한국 근대 자수 이번 전시는 그동안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본격적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자수의 역사를 살펴본다. 또한 근대 이후 한국자수의 흐름을 통시적으로 조망하면서 그 안에 내재된 젠더, 근대화, 전통, 순수예술과 공예, 장인, 노동, 생활, 산업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해 질문한다. 기간: 2024. 05. 02.~2024. 08. 04.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홈페이지: mmca.go.kr 국립창극단 < 리어 > 창극 < 리어 > 는 셰익스피어 원작인 < 리어왕 > 을 우리의 언어와 소리, 연출과 안무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극 중 저마다의 욕망으로 애쓰는 무대 위 인물 한 명 한 명을 통해 나와 우리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기간: 2024. 03. 29.~2024. 04. 07.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홈페이지: ntok.go.kr

새로운 K-코미디의 흐름

Arts & Culture 2024 SPRING

새로운 K-코미디의 흐름 최근 한국의 코미디, 이른바 K-코미디에 새로운 흐름이 생겨났다. 레거시 미디어에서 탈피해 유튜브 같은 뉴미디어로 주 무대가 바뀌면서 형식도 내용도 변화했다. < 피식대학(Psick University) > 은 그 변화의 최전선에 서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피식대학의 인기 콘텐츠인 피식쇼에 가수 전소미가 게스트로 출연한 모습이다. 국내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캐나다 싱어송라이터 다니엘 시저, 미국 아티스트 미스치프 등 국내외 명사들이 게스트로 출연한다. 지난해 2023 백상예술대상에서 유튜브 채널로서는 최초로 TV 부분 예능 작품상을 받았다. ⓒ 메타코미디 “제 생각에는 코미디와 예술은 정말 많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시대가 변하게 되면 새로운 예술가들이 탄생하기 마련이죠. 이를테면 후기 인상주의처럼요. 우리는 유튜브의 반 고흐, 폴 고갱 그리고 폴 세잔입니다.” 유튜브 채널 < 피식대학 > 에 2021년 11월 업로드 된 콘텐츠 ‘더 토크’에서 “코미디는 뭐라고 생각하느냐”라는 MC의 질문에 개그맨 이용주가 답한 말이다. 그는 함께 < 피식대학 > 을 이끄는 김민수, 정재형 그리고 자신을 각각 ‘유튜브의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폴 세잔’이라 칭했다. < 피식대학 > 이 던지는 출사표 인터뷰 형식의 ‘더 토크’는 그 자체가 하나의 코미디다. 유튜브라는 글로벌 플랫폼에 걸맞게 글로벌 토크쇼를 표방하고 있다. 그래서 외국 여성이 MC를 맡아 영어로 인터뷰를 진행한다. 물론 중간중간 콩글리시와 한국어가 사용되지만, 이들의 태도는 마치 미국의 유명 토크쇼에 출연한 것처럼 자신만만하다. 과도한 자신감으로 시작부터 자신들을 ‘세계에서 제일가는 최고의 코미디 그룹’이라고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을 유발한다. 하지만 이건 코미디면서 동시에 이들의 새로운 출사표처럼 여겨진다. 달라진 시대에 달라진 예술가가 나오듯, 자신들 역시 새로운 코미디를 열어가겠다는 것이다. 이 다소 황당해 보이는 토크쇼는 ‘더 피식 쇼(The PISIC SHOW)’라는 이름으로 < 피식대학 > 의 대표 콘텐츠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채널 구독자 수 293만 명(2024년 3월 기준)에 달하는 < 피식대학 > 은 한때 주말 저녁만 되면 온 가족을 TV 앞으로 모이게 했던 공개 코미디의 시대가 저물면서 급부상했다. KBS < 개그콘서트 > , SBS < 웃찾사 > , MBC < 개그야 > 까지 한동안 스타 개그맨들이 탄생했던 코미디 프로그램들은 한 때 공개 코미디의 전성시대를 구가했지만,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프로그램이 하나둘 폐지됐다. 급기야 지난 2020년 6월, 끝까지 버텨왔던 < 개그콘서트 > 마저 폐지되면서 공개 코미디 시대가 끝을 맺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23년 11월 < 개그콘서트 > 가 부활했지만 그 힘이 예전 같지는 않다. 그저 KBS라는 공영방송으로서 코미디의 명맥을 잇는다는 명분에 머무는 정도다. 공개 코미디의 시대가 저무는 사이, 여기서 빠져나온 개그맨들은 유튜브에 둥지를 틀고 새 길을 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개 코미디가 갖는 ‘서바이벌 구조’ 때문에 역량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던 개그맨들이 유튜브에 개인 채널을 꾸리는 방식으로 시작됐다. 이후 유튜브에 적응된 코미디 콘텐츠들이 생겨나 인기를 끌면서 점점 채널 자체가 브랜드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한사랑산악회’나 ‘05학번이즈백’, ‘B대면데이트’ 같은 히트 코너를 만든 < 피식대학 > 이나 ‘장기연애’ 같은 하이퍼 리얼리즘의 성격을 가진 스케치 코미디를 만든 < 숏박스 > 가 대표적이다. 피식대학 콘텐츠 ‘05학번 이즈 백’에서 파생된 ‘05학번 이즈 히어’는 2005년 캠퍼스를 주름잡던 이들이 중년이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20년대 한국의 30대가 당면한 사회상과 신도시 기혼 부부의 일상을 섬세하게 모사하여 시청자들의 공감과 인기를 얻었다. ⓒ 메타코미디 산악회에 소속되어 있는 중년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그린 피식대학의 ‘한사랑 산악회’는 주변에 정말 있을 법한 아저씨들의 모습을 다양한 캐릭터와 디테일을 살려 보는 재미를 더했다. ⓒ 메타코미디 달라진 미디어 플랫폼, 달라진 코미디 형식 달라진 미디어 플랫폼은 그 위에 얹어지는 코미디에도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공개 코미디는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펼치는 콩트 코미디에 머물러 있었다면, 유튜브 같은 새로운 미디어에서의 코미디는 배경부터 일상으로 옮겨졌다. 초창기에는 일상에서 펼쳐지는 몰래카메라가 인기를 끌더니 이후에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하이퍼 리얼리즘을 보여주는 스케치 코미디가 전성시대를 구가하는 중이다. 또 개그맨 곽범, 이창호가 이끄는 < 빵송국 > 에서는 보정카메라를 이용해 탄과 제이호라는 2인조 보이 그룹 매드몬스터를 만들었다. 부캐를 통해 새로운 세계관이 만들어지면서 이른바 ‘세계관 코미디’라는 장르가 생겨났다. 세계관이 갖는 과몰입은 그 가상 설정이 마치 진짜인 듯 몰입해 주는 팬들에 의해 실제 현실에서의 커머셜로 이어지기도 했다. 매드몬스터를 캐릭터로 한 굿즈 상품 같은 것들이 이벤트로 판매되기도 했던 것. 이처럼 레거시 미디어에 머물러 무대를 벗어나지 못했던 코미디들은 유튜브라는 열린 세계를 만나 그 소재나 형식 또한 다양해졌다. < 피식대학 > 의 ‘피식쇼’ 같은 코너는 유튜브라는 글로벌 플랫폼 덕분에 가능한 인기 토크쇼가 되었다. BTS RM에서부터 박재범, 손석구 등 국내의 내로라하는 스타들은 물론이고 글로벌 스타나 명사들도 출연할 정도로 인기다. 그래서 영화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의 배우 크리스 프랫이나 영화감독 제임스 프랜시스 건 주니어에게 세계 최고의 쇼에 출연한 기분을 묻고, 소설 「개미」의 저자 베르나르 베르베르에게 개미투자자의 미래를 묻는 식의 토크 코미디의 세계가 열렸다. 또 각각의 채널을 운영하면서도 이미 개그맨 선후배들로 연결된 이들의 관계는 다양한 협업을 통한 세계관의 또 다른 결합을 가능하게 했다. 일종의 유튜브를 플랫폼으로 하는 코미디 유니버스가 열린 것이다. 이후 유튜브에서 이미 확고한 브랜드를 갖고 있는 채널들이 모여 하나의 코미디 레이블인 메타 코미디가 설립되기도 했다. 유튜브를 기반으로 하는 코미디 레이블이 의미 있는 건, 그간 개인 채널로 산재해 있던 유튜브 코미디를 하나로 연합함으로써 실질적인 비즈니스가 가능하게 됐다는 점과 이로써 레거시 미디어의 코미디와는 다른 새로운 시대의 코미디를 선언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매드몬스터’는 빵송국의 구독자 수를 폭발적으로 높인 대표 콘텐츠다. 스마트폰 카메라 앱의 뷰티 필터 효과를 이용해 2인조 보이 그룹을 컨셉으로 활동했다. ⓒ 메타코미디 K-코미디, 글로벌 반향 가능할까 우리가 영국의 코미디언이자 배우였던 찰스 스펜서 채플린 주니어의 연기나 영국의 대표 시트콤 중 하나인 < 미스터 빈 > 을 보며 웃고 즐겼던 것처럼 코미디에 그 시대나 국가, 언어의 장벽이 있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이들 코미디가 언어보다 보다는 원초적인 몸의 언어를 활용하고 있는 특징을 보면 언어적, 문화적 장벽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웃음에는 그 문화권만이 갖는 독특한 정서 같은 것들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마련이다. 하지만 유튜브 같은 글로벌 플랫폼은 오히려 이러한 정서적 장벽들을 허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피식쇼가 미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로 활동하는 월터 홍을 만났을 때, 그는 이 쇼에서 어설픈 영어를 하는 개그맨들을 콕 짚어 “영어가 구리다”고 말하면서 언어유희를 하는 대목이 그렇다. 이용주가 ‘소개’라는 단어를 ‘Cow Dog’라고 표현하자, 월터 홍도 맞장구를 치며 ‘Cow Crab’이라고 하는 과정에서 한국어와 영어의 언어 장벽을 웃음이라는 코드로 승화시키기 때문이다. 웃음의 기원 중에는 낯선 이들이 야생에서 만났을 때 서로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드러내기 위해 생겨났다는 설이 있다. 즉 웃음에서 서로 다른 문화나 정서, 언어 같은 건 애초 넘지 못할 장벽이 아니라 넘어서야 하는 장벽으로서 존재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 피식대학 > 같은 자칭 ‘세계에서 제일가는 최고의 코미디 그룹’이 앞으로 이 유튜브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어떤 행보를 그려갈 것인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건 K-코미디가 글로벌을 향해가는 길이기도 하지만, 웃음을 매개로 그간 장벽으로 여겨졌던 것들을 허물어가는 길이기도 할 테니 말이다. 정덕현(Jung Duk-hyun 鄭德賢) 대중문화 평론가

비어 있는 공간의 감각, 건축가 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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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 있는 공간의 감각, 건축가 최욱 원오원아키텍스(ONE O ONE architects) 대표인 건축가 최욱(Choi Wook, 崔旭)은 서양의 건축이도상학적인 반면 한국의 건축은 그것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적 표현 방식을 건축에 구현하려고 하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시각적인 형태 미학에 관심을 두는 대신 경험과 직관을통해 한국 고유의 공간 형식을 꾸준히 탐색한다. 최욱은 건축물의 시각적인 조형성보다는 공간 구성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축가이다. 건물과 대지(垈地)의 관계, 건물 내부와 외부의 소통,질감과 색감 등을 통해 공간 내에서 감성적 체험이 가능하도록 유도한다. ⓒ 텍스처 온 텍스처(texture on texture) “2021년 11월, 국립중앙박물관에 새로 조성된 ‘사유의 방’은 6세기 후반과 7세기 전반에 제작되어 각각 국보 제78호와 국보 제83호로 지정된 두 점의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위한 공간이다. 어두운 진입로를 돌아 흙빛의 공간에 들어서면 관람객들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미륵의 미소를 만난다. 쇼케이스를 벗어난 국보의 안전성에 대한 고려,360도 관람이라는 과감한 시도, 불상 고유의 의미와 가치를 지키면서도 새로운 전시 방식을 구현한 ‘사유의 방’은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공간감을 보여 준다. 관람객들이 불상을 접하는 공간의크기는 배우의 표정을 잘 읽을 수 있는 소극장의 내부 길이인 24m로 하고, 두 개의 불상을 어긋나게 배치해 타원형 좌대 위에 올렸다. 1도 정도 기울어진 바닥과 천장은 불상들을 향하고 있으며,벽은 빛을 흡수하는 흙과 숯 같은 자연 재료로 마감했다. 덕분에 내부에서는 금동 불상만이 빛을 뿜는다. 천장은 소방법을 고려해 검고 평활한 면 대신 알루미늄 봉을 선택했다. 빼곡한알루미늄 봉들 덕분에 천장은 광활한 밤하늘이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시각적인 투시화법을 깨뜨리고 싶었어요. 시각적 중심이 없으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되죠. 탑돌이를하듯 말이죠. 엄정한 기하학적 논리보다 영적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어요. ” 이 공간을 설계한 건축가 최욱은 서양의 투시도법에서 벗어나 공간의 감각을 구체화하는 접근방법을 보여 줬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은 전시 방식에 있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유물을 360도로 관람할 수 있게 공간을 조성했으며,유물과 관람객들 간 거리도 치밀히 계산했다. 원오원아키텍스 제공, 사진 김인철(Kim In-chul, 金仁哲) 한국 건축에 대한 탐색 “베니스 건축대학으로 유학을 갔는데, 당시 유럽에서 주목받는 대학 중 하나였어요. 당대 진보적인 지식인들과 건축계의 석학들이 모여 있었죠. 논리적이고 이성주의에 근거한 서양 건축을 배우다보니 우리와 굉장히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르네상스 시기에 들어서면 투시화법적인 공간이 생기는데, 그러면 파사드가 중요해지거든요. 그런데 한국 건축은 파사드가 중요치않은 것 같았어요. ‘우리는 다른 체계가 있을 것 같다’라는 의구심이 들었죠.” 유학 시절 비첸차의 안드레아 팔라디오 도서관 계단에서 만난 현대 음악가의 질문도 흥미로웠다. “한국의 음악은 정말 이상하지 않냐고 하더라고요. 서양 음악은 서로 교류하며 화음을 만드는데, 우리나라 음악은 5개 음이 질주한대요. 만나질 않는다고요. 나중에 저는 그것을병치의 세계라고 이해했어요. 서양의 컴포지션과 극명하게 다른 거죠.” 한국 건축을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갈증은 유학에서 돌아온 후 건축 답사를 다니면서 조금씩 해소되었다. 그는경사지가 많은 우리 땅에서 자연환경에 순응하며 배치된 기단(基壇)의 존재에 주목했다. 작은 필지가 모여 만드는 군집의 풍경도 매혹적이었다. 도심 개발로 인해 북촌 한옥들이 급격하게 사라져가는 풍경을 목격하고 충격에 빠진 2000년대 초반에는 북촌에 자리한 한옥에 사무실을 꾸렸다. 한옥의 특징을 체험하고 관찰하는 시간이었다. 이러한 탐색의 시간은 곧 결과로 이어졌다. 2012년의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Hyundaicard Design Library)와 2016년의 현대카드 쿠킹 라이브러리(Hyundaicard CookingLibrary) 등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시리즈에서는 빛과 소리, 냄새 등 공간 자체가 주는 감각에 주목했다. 또한 2013년 작업한 현대카드 영등포 사옥(HyundaicardYeongdeungpo Office Building)의 경우 로비 바닥면을 외부로 확장시켜 건물 안과 밖의 경계가 사라지게 했다. 여러 고층 빌딩에서는 주변 땅의 흐름을 고려한 섬세한저층부가 기단의 역할을 하도록 했고, 상층부는 그 존재감을 없애 파사드의 존재를 흐릿하게 만들고자 했다. 로비에서는 여러 방향에서 빛이 들어와 공간 내부에 그림자가 지지 않는양명(陽明)한 빛을 만들었다. 서양 건축의 체계로 구현되는 현대 건축에서 그는 경험을 통해 체감하는 동양적 접근을 시도한 것이다. 서울 가회동에 위치한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는 최욱이 기존 갤러리 건물을 간결하게 레노베이션하여 여백의 아름다움을 살린 공간이다.중정을 둘러싼 삼면에 유리창을 두어 밝은 빛을 실내로 끌어들였고, 나무∙철∙스테인리스 같은 소재를 사용해 각각의 물성을 대비시켰다. 원오원아키텍스(ONE O ONEarchitects) 제공, 사진 남궁선 현대카드 영등포 사옥은 건물이 주변 환경에 스며들도록 설계되었다. 1층 로비 바닥을 건물 외부로 확장시켜 안팎의 경계가 사라지게 했으며,건물 외피에 입힌 커튼월은 고층 빌딩의 존재감을 약화시켜 주변 다른 건물들과 위화감 없이 어울리게 만든다. 원오원아키텍스 제공, 사진 남궁선(Namgoong Sun,南宮先) 공간의 흐름 “우리 전통 건축은 터의 단면과 기단이 공간의 성격과 크기 그리고 사람의 움직임을 만들었어요. 일반적인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땅과 주변 상황을 먼저 이해하려고 합니다.그리고 건물이 놓이는 대지와 주변의 관계, 즉 단면의 연속적 시퀀스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바닥의 질감, 공간의 온도와 색감을 맞추는 게 중요한 주제예요.” 화장품 제조 기업아모레퍼시픽의 헤리티지 브랜드 설화수(雪花秀)는 2022년 서울 가회동(嘉會洞)에 플래그십 스토어 ‘설화수의 집’을 열었다. 이곳은 최욱이 추구하는 건축의 접근법을 잘 보여 준다.1930년대 지어진 대로변의 근대 한옥과 1960년대의 양옥을 레노베이션한 이 프로젝트는 시대와 형식이 다른 두 건축물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 채가 군집을 이룰 때공간의 흐름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가 중요했다. 그는 기존 한옥의 터를 충실히 반영하면서 땅의 흐름을 만들고, 전면 한옥의 중정과 뒤편에 길게 들어선 양옥을 잇기 위해6m에 달하는 옹벽을 털어 냈다. 양옥에 지하층을 만들어 한옥의 중정과 연결하는 작업은 매우 까다롭고 어려웠지만, 이를 통해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어떻게 하면한옥의 장점을 극명하게 보여 줄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 한옥에 투명한 유리문과 창을 설치하고 채와 채 사이 공간에서 시선이 사선으로 흐르도록 했다. 이를 통해 한옥에서 양옥으로 이르는길에서는 각기 다른 풍경을 만나게 된다. 최욱은 이를 일보일경(一步一景)이라고 부른다. 몸의 감각이 경험하는 산책로인 셈이다. ‘설화수의 집’은 한국적인 공간 구현에 대한 건축가의 탐색이 잘 드러난 곳이다. 그는 기존에 있던 한옥과 양옥을 하나의 공간으로 합치기위해 두 집을 가로막고 있던 옹벽을 없애고 그 자리에 중정을 만들어 서로 연결시켰다. 원오원아키텍스 제공, 사진 김인철 고유한 DNA 현대카드의 후원으로 이탈리아 건축 디자인 잡지 『도무스(domus)』의 로컬 에디션인 『도무스 코리아(domus Korea)』를 발행하면서 건축에 대한 최욱의 시각은 점차 구체화되었다.2018년 11월 창간호를 시작으로 2021년 가을호까지 총 12권이 발행된 이 잡지는 그가 오랫동안 탐색했던 한국 건축의 특성을 여러 비평가와 작가, 건축가들과 함께 고민해 보는 좋은기회였다. 그는 이 작업을 통해 땅, 그라운드, 병치, 군집, 공(空)감각(비어 있는 공간에 대한 감각)과 같은 키워드를 길어 냈다.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으로서 존중의표현이라고 할 수 있죠. ‘한국’이라는 거창한 개념을 말하려는 것보다는 이 땅의 dna, 고유한 문화에 관심을 두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어요.” 최욱은 땅에 대한 이해에서출발해 그것의 성격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주제를 건축으로 풀어낸다. 이는 논리적인 체계로 설명되지 않는 경험과 직관의 영역에 속한다. 자칫 모호한 언어로 남을 수도 있는 경험과직관을 그는 구체적인 수치와 정교한 구축 방식으로 구현하고, 공간의 경험을 통해 설득한다. 서울 부암동(付岩洞)에 있는 그의 자택 ‘축대가 있는 집’이나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에 위치한‘바닷가의 집’은 그가 만들고자 하는 건축의 성격을 잘 보여 주는 원형에 가깝다. “한국 건축은 터의 조건, 빛의 관계, 쓰임새 등을 해석하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건물의정면이 아닌 공간의 분위기가 중요해요.’라는 그의 말처럼 이 집들은 건축의 외형적 형태가 극대화되는 대신 채와 채 사이의 공간이나 햇빛과 바람, 새소리, 파도 소리 같은 주변 감각이 먼저다가온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을 설계한 김태수(Tai Soo Kim, 金泰修) 선생님이 오래전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제 거장의 시대가 끝나고 모더니즘 시대가되었다지만, 1980년대는 모더니즘은 끝났고 오토 파운데이션의 시대라고요. 각자 자신의 토대를 만드는 시대라는 거죠. 제게도 어린 시절의 고유한 기억들이 남아 있어요. 원오원 식구들에게도취향보다는 자신만의 중요한 기억, 개인적인 경험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해요. 자기 서사를 통해 작업을 읽고 만들어 가는 거죠.”  서울 부암동에 위치한 최욱의 자택 ‘축대가 있는 집’은 그가 지향하는 건축이 무엇인지 잘 보여 준다. 지형을 그대로 살려서 지은 이 집은벽을 최소화해 계절의 변화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사진은 부부가 사용하는 다이닝 공간이다. 원오원아키텍스 제공, 사진 남궁선 최욱의 세컨드 하우스인 ‘바닷가의 집’은 이 건물이 자리 잡고 있는 어촌 마을의 다른 집들과 이질감 없이 융화될 수 있도록 아담한 크기로지어졌으며, 건물 벽면도 미장으로 마무리되었다. 기능적 고려보다는 곳곳에 창을 크게 내서 바다 풍경을 실내로 끌어들이는 데 중점을 둔 집이다. 원오원아키텍스 제공, 사진김인철 서울 호텔신라 5층에 자리한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 라운지(GENESIS Lounge)는 한옥 마당과 대청에서 얻은 모티브를 구현한공간이다. 층고가 낮은 호텔의 실내 공간이라는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천장에는 반사 성질이 있는 재료를 사용했다. 원오원아키텍스 제공, 사진 김인철 임진영(Lim Jin-young, 任鎭咏) 오픈하우스서울(OPENHOUSE Seoul) 대표

오랫동안 기억될 ‘홍텐 프리즈(freeze)’

Arts & Culture 2024 SPRING

오랫동안 기억될 ‘홍텐 프리즈(freeze)’ 중학생 시절 브레이킹에 입문한 홍텐(Hong 10)은 2001년 처음으로 국제 대회에 출전해 비보이로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어느덧 30대 후반이 된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창의적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여전히 정상급 기량을 선보인다. 2021년 11월, 폴란드 그단스크(Gdańsk)에 있는 셰익스피어 극장에서 열린 ‘레드불 비씨 원 캠프(Red Bull BC One Camp)’ 장면. 홍텐의 시그니처 동작에 다른 참여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그는 ‘홍텐 프리즈’를 비롯해 독창적인 시그니처 기술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 Lukasz Nazdraczew, Red Bull Content Pool 2023년 9월 23일부터 10월 8일까지 중국 항저우에서 열렸던 제19회 아시안게임에는 45개국에서 온 1만 1,907명의 선수들이 총 40개 종목, 482개 경기에 참가해 실력을 겨루었다. 그중 브레이킹은 항저우 아시안게임부터 정식으로 채택된 신규 종목으로, 한국에서는 홍텐이 은메달을 획득함으로써 최초로 메달리스트가 됐다. 그의 본명은 김홍열(Kim Hong-yul, 金洪烈)이다. 이름 마지막 자(字) ‘열’을 외국 비보이들이 발음하기 어려워하자, 이를 동음이의어인 숫자 ‘10’으로 바꾼 것이 그의 활동명이 되었다. 그가 선보이는 창의적인 기술들은 이른바 ‘홍텐 프리즈((Hong 10 freeze)’라 불리며 전 세계 비보이 마니아들을 열광시킨다. 그는 에너지 드링크 브랜드 레드불이 2004년부터 개최하기 시작한 ‘레드불 비씨 원(Red Bull BC One)’ 월드 파이널에서 2006년, 2013년, 2023년 통산 세 번의 우승 벨트를 차지했다. 이로써 그는 세계 최정상급 비보이들만 참가할 수 있는 이 대회에서 네덜란드의 멘노 판 고르프(Menno van Gorp)와 함께 최다 우승의 주인공으로 기록되었다. 사실상 세계 최고의 비보이 반열에 오른 셈이다. 홍텐은 브레이킹 댄서에서 국가대표 선수,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 그리고 이제 올림피언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레드불 비씨 원에서 세 번이나 우승했다. 소감이 어떤가? 레드불 비씨 원은 브레이킹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이다. 나는 2005년 처음 참가했고, 2006년과 2013년에 우승했다. 2016년에는 2위에 그쳤는데, 그때 ‘앞으로는 우승하기 어렵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한동안 출전을 포기했다. 그러다가 2022년에 다시 초청받았는데,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도저히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지난해 오랜만에 참가하게 됐을 때는 그곳에 갔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았고, 우승까지 하게 되어 무척 기뻤다.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홍텐은 같은 해 레드불 비씨원 월드 파이널도 제패했다. 이로써 그는 네덜란드의 비보이 멘노 판 고르프(Menno van Gorp)와 함께 레드불 비씨원 월드 파이널의 최다 우승 기록을 갖게 되었다. 지난해 레드불 비씨 원 월드 파이널에서는 컨디션이 어땠나? 그때도 좋은 편은 아니었다. 대회 전에 무릎 부상이 있었고, 직전에 아시안게임을 치렀기 때문에 피로도 쌓여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내 기분이 좋았고 전혀 긴장도 되지 않았다. 결승 상대였던 필 위자드(Phil Wizard)는 같은 레드불(Red Bull BC One All Stars) 소속이고 친한 사이다. 그와 즐겁게 겨뤘는데 그것도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춤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들이 하는 걸 보고 흥미를 느껴 시작하게 됐다. 브레이킹은 어려워 보이는 기술을 시도해서 성공시켰을 때 오는 쾌감이 있다. 초기에는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에서 큰 기쁨을 느꼈고, 시그니처 기술이 필요한 시기가 오면서는 나만의 무브를 만드는 게 재미있어서 계속하게 됐다. 움직임 개발은 창의성이 필요해서 쉽지 않을 것 같다. 자기만의 무브를 만든다는 건 도전의 연속이다. 어떻게 해야 뭘 만들 수 있다는 확실한 방법론이 있는 게 아니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걸 창안하기도 어렵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내 몸이 해낼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래서 일 년에 한두 개 만드는 것도 쉽지 않다. 나는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무작정 다 적어 놓고 실험해 보는 편인데, 거의 다 실패한다. 되든 안 되든 계속 시도해 보는 근성이 필요하고, 창작하는 걸 좋아해야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슬럼프를 겪은 적은 없나? 2003년쯤 춤을 잠깐 그만둔 적이 있다. 2002년에 ‘Battle of the Year’, ‘UK B-Boy Championships’ 등 그동안 영상으로만 접했던 유명한 국제대회에 나가 우승했다. 그러고 나니까 꿈을 이뤘다는 생각에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춤을 그만두고 6개월 정도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 아는 형들이 찾아와서 팀 배틀에 나가자고 권유했다. 대회 준비를 하면서 내가 춤을 정말 좋아한다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그 뒤로 슬럼프에 빠지면 브레이킹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잘 출 수 있는지 치열하게 고민하며 파고들었다.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최초의 메달리스트가 됐다.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아시안게임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 가늠하기 어려워서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가면서도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대회가 시작되고 보니까 규모가 상상 이상이었다. 기대감과 부담감이 동시에 커졌다. 운이 나쁘게도 대회를 2주 정도 남기고 무릎을 크게 다쳤다. 어떤 처치를 해도 회복이 되지 않아서 진통제를 먹으며 견뎌야 했다. 경기가 이틀에 나뉘어 진행됐는데 첫날에는 어떻게든 살아남자는 생각으로 간신히 버텼다. 둘째 날엔 처음 붙은 상대가 우승 후보 중 한 명인 카자흐스탄의 아미르(Amir, 본명 Amir Zakirov)였다. 이길 생각 말고 준비한 것만 잘하자고 마음을 비웠더니 오히려 자신감이 더 붙었다. 결승에서는 일본의 시게킥스(Shigekix, 본명 Nakarai Shigeyuki)를 만났는데 한 표 차이로 준우승을 해서 좀 아쉬웠다. 서울 홍대 입구에 위치한 연습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비보이 홍텐. 플로우엑셀(FLOWXL) 크루 소속인 홍텐은 10대 중반 브레이킹에 입문하여 20년 넘게 정상급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2024년 파리 올림픽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올림픽에 나가려면 5월과 6월에 열리는 예선전을 잘 치러야 한다. 거기서 10위 안에 들어야 출전권이 주어진다. 그래서 당장은 예선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목표다. 춤을 언제까지 출 것 같나? 브레이킹은 배틀이라는 문화가 바탕에 깔려 있다. 춤을 그만둔다는 것은 배틀에 나오는가 아닌가가 기준이 된다. 심사위원 같은 다른 활동을 계속하더라도 배틀을 중단하면 그것이 곧 은퇴이다. 우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기기 위한 목적으로 배틀에 나서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은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언제까지 배틀에 참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출 수 있는 한 오래 추고 싶다. 다만 지금까지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에 올림픽을 기점으로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있다. 후배들에게 어떤 댄서로 기억되고 싶나? 국내 브레이킹 신을 바꾸려고 노력했던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어린 나이의 비보이들이 적은 편이다. 내게는 어린 친구들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유입시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고 한다. 그리고 ‘홍텐 프리즈’처럼 내 이름이 붙은 기술들이 있다. 훗날 브레이킹에 입문한 사람들이 나라는 사람은 모르더라도 내 이름이 붙은 기술은 알게 될 거다. 그거면 족하다. 윤단우(Yun Danwoo, 尹煓友) 무용 평론가 허동욱 포토그래퍼

짭짤하고 구수한 바다의 맛

Arts & Culture 2024 SPRING

짭짤하고 구수한 바다의 맛 미역과 간장, 참기름을 메인 식재료로 끓이는 미역국은 싱싱한 미역이 주는 식감과 구수하면서도 감칠맛이 있는 국물이 만나 바다의 풍미를 자아낸다. 미역국은 오직 한국에만 존재하는, 태생부터 한국요리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생일을 맞은 사람이나 출산한 산모의 상차림에 빠지지 않고 올라가는 미역국은 한국인의 출생 과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음식이다. 한국에서 음식의 맛을 표현할 때 짭짤하다는 말은 대부분 맛깔스러운 감칠맛을 설명할 때 쓴다. 짠맛의 정도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적절한 수준을 잘 맞췄을 때 한국 음식은 감칠맛이 폭발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적절한 짠맛을 완성하는 것이 중요한 한국의 국물 요리 중 하나가 바로 미역국이다. 친근하고 특별한 음식 한국인에게 미역국은 친근하고 다정한 음식이다. 메인 식사로, 때로는 술안주나 다이어트식으로도 즐겨 먹는 대중 음식이기도 하지만, 미역국이 친근하고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한국에서는 산모가 출산하면 식사로 미역국을 챙겼다. 왜 하필 미역국이었을까? 미역은 단백질과 당질, 섬유질, 칼슘, 비타민 A, 칼륨, 셀레늄 등을 비롯해 다양한 비타민과 미네랄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미역의 철분과 요오드 성분은 몸속 혈액의 원활한 흐름을 돕고 높은 철분 함유량으로 빈혈 예방에 탁월하다. 이 때문에 오래전부터 산모가 출산하면 반드시 챙겨 먹어야 하는 음식으로 통했다. 이것이 시초가 되어 한국 사람들을 생일이 되면 태어난 날을 기념하며 미역국을 끓여 먹는다. 생일날 온 가족이 모여 미역국을 나누어 먹으며 생일을 축하하는 것이 한국의 풍습이기도 하다. 반대로 미역국 먹기를 꺼리는 날도 있다. 시험을 보는 날과 면접을 보는 날이다. 시험이나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뜻으로 쓰이는‘미역국 먹다’라는 말이 국어사전에도 있을 정도로, 이 두 날에 미역국을 먹으면 미끈거리는 미역국 때문에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떨어진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간단한 조리법 미역국의 레시피는 비교적 간단한 편이다. 재료는 마른미역과 소고기, 조선간장, 참기름, 그리고 소금 정도만 있으면 된다. 마른미역은 물에 넣고 충분히 불린 다음 물기를 짜고 4~5cm의 길이로 자른다. 소고기는 메인 재료라기보다 고소한 풍미를 살려주는 토핑 개념으로, 가로세로 1~2cm 크기로 작게 자른다. 냄비에 참기름을 두른 후 준비한 소고기와 미역을 넣어 겉면이 익을 때까지 볶는다. 이때 미역과 소고기에서 나오는 감칠맛이 고소한 참기름과 어우러지면서 맛깔스러운 향을 뿜어낸다. 뽀얀 국물이 우러나면 여기에 물을 추가로 넣은 다음 조선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30분 이상 끓여주면 완성이다. 물은 생수를 넣어도 되지만 더욱 진한 맛을 내려면 멸치로 우려낸 육수나 쌀뜨물, 또는 사골국물(소뼈를 장시간 우려 만든 국물로 묵직하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을 넣으면 된다. 미역국에 다진 마늘을 조금 넣으면 풍미가 더 살아나는데 미역과 소고기 본연의 맛에 집중하고 싶다면 생략해도 좋다. 미역국의 가장 기본 형태는 미역과 소고기를 재료로 만든 것이며, 지역 환경이나 특산물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오래 끓일수록 깊어지는 맛 미역 특유의 오독오독하면서도 미끌미끌한 식감과 짭짤한 국물, 고소한 소고기와 만나면 그 감칠맛이 배가된다. 미역은 해초의 일종인데 바닷속에 살면서 바다 향을 가득 품고 있기 때문에 그냥 먹으면 바다의 짠맛과 비릿한 맛이 강하게 난다. 그러나 깨끗하게 씻은 후 물에 불리는 과정을 통해 짠맛이 어느 정도 씻겨 내려가 은은한 바다의 맛과 향만 남는다. 미역을 소고기와 함께 참기름에 볶고 또 물에 끓이는 동안 각 재료의 맛이 우러나기 때문에 미역국은 오래 끓이면 끓일수록 감칠맛이 더욱 살아난다. 끓인 후 바로 먹을 때보다 두 번째, 세 번째 먹을 때 훨씬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뜨끈한 미역국에 달게 지은 흰 쌀밥을 말아 맛있게 담가 푹 익힌 김치를 올려 먹으면 그 자체로 한 끼 보약이 된다. 뜨겁고 묵직한 감칠맛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면서 또 가장 익숙한 맛이다. 미역국처럼 미역이 메인 재료가 되는 국물 요리는 한국에만 있는 전통음식이다. 다른 나라에선 구경조차 어렵다. 간혹 일본에서 미소된장국에 미역을 넣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매우 소량인 데다 어디까지나 된장이 메인이지, 미역이 주인공인 메뉴는 아니다. 그렇기에 한국의 미역국은 외국에선 다소 생소한 음식으로 통한다. 서울 종로구에서 한식 레스토랑 두레유를 운영 중인 토니 유 셰프는 이탈리아 유학 시절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미역국을 끓여준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해외 각국의 유학생들 모두 미역국을 보곤 “이 시커멓고 미끄덩거리는 이상한 물체는 무엇이냐?”라며 질색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 번 맛을 본 후로는 “앙코르 미역국”을 요청했다. 그들에게 미역국은 생소하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중독성 있는 맛있는 미역 스튜였던 것이다. 산모 미역이라 불리는 미역은 바다에서 갓 채취해 해풍과 햇볕으로 말린 것을 말하며, 억세지 않고 진한 국물을 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지역별로 특색 있는 미역국 한국의 국물 요리는 그 종류가 무엇이 됐든 대체로 지역마다, 가정마다 먹는 형태나 들어가는 재료가 조금씩 다르다. 이는 지역별 특산물이 다르고 집마다 즐겨 먹는 재료 또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미역국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미역과 소고기를 넣는 것이지만 소고기 대신 바지락이나 동죽, 홍합과 같은 조개류를 넣기도 하고 가자미나 꽁치, 갈치 등의 생선 종류를 넣기도 한다. 그야말로 육해공을 어우르는 국물 요리인 셈이다. 꽁치 요리를 즐기는 울릉도에서는 소고기 대신 꽁치를 넣은 꽁치 미역국을 먹는다. 이때 꽁치는 살만 발라내 녹말가루, 달걀물 등의 재료와 함께 반죽한 후 작은 볼 형태로 만들어 국물에 넣는 것이 특징이다. 꽁치는 다른 생선에 비해 지방이 많지 않고 고소해 미역국에 넣었을 때도 전혀 비리지 않고 오히려 담백한 매력이 있다. 경상도의 일부 지역에선 새알 미역국을 먹는다. 새알은 찹쌀가루를 동그랗게 말아 반죽한 것으로 쫀득거리는 새알의 식감과 미역의 오독오독한 식감이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자아낸다. 제주도 지역으로 가면 성게알을 넣고 끓인 성게알 미역국이 있다. 자연산 성게알은 한국에서 매우 귀한 재료로 통하는데, 마치 푸딩을 먹는 것처럼 크리미하면서 특유의 신선하고 짭짤한 바다의 향이 가득해 제주도의 성게알 미역국은 일반 미역국과 다르게 고급 음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 밖에 북어(생선 명태를 말린 것)를 넣은 북어 미역국, 닭가슴살을 잘게 찢어 넣은 닭고기 미역국, 갈치를 넣은 갈치 미역국, 새우를 넣은 새우 미역국 등 한국에서 먹는 미역국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다양한 변주 미역국의 종류가 다양하고 한국인이 오랫동안 즐겨 먹은 것에 비해 한국에 미역국 전문식당이 많지 않은 건 아이러니하다. 아무래도 미역국은 가정에서 쉽게 끓여 먹는 지극히 일상적인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해 외식 아이템으로서는 비교적 인기가 없었던 이유가 크다. 그러나 몇 해 전부터는 미역국 맛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부분 일반적인 소고기 미역국 대신 특별한 재료를 넣은 미역국을 선보인다. 그중 가자미 생선을 통째로 넣어 압도적인 비주얼을 살린 가자미 미역국, 고급 재료인 전복을 넣은 전복 미역국, 소고기 중에서도 매우 귀하고 비싼 부위로 통하는 차돌박이를 가득 담아낸 차돌박이 미역국 등이 인기다. 미역국에 들어가는 물도 일반 생수 대신 다양한 조개류와 육류를 넣고 오랜 시간 끓인 육수를 사용해 맛이 훨씬 풍부하고 진하다. 평범한 미역국이지만 색다른 재료와 특별한 육수를 조합하니, 또 하나의 새로운 요리로 탄생한 것이다. 혹시나 한국에 방문하게 된다면 반드시 미역국을 맛보길 바란다. 시커멓고 미끄덩한 미역의 모양새가 낯설게 느낄 수 있을지 모르나, 뜨거운 미역국에 갓 지은 찰진 밥을 말아 한 그릇 든든하게 비우고 나면 이만큼 귀한 음식이 없다고 여길 것이다. 황해원(Hwang Hae-won 黃海嫄) 월간외식경영 편집장 이민희(Lee Min-hee 李民熙) 사진작가

꽃을 만들어 피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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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만들어 피우다 궁중채화(Royal Silk Flower, 宮中綵花)는 궁중 연희나 의례 목적에 맞게 비단이나 모시 등으로 제작한 꽃을 말한다. 명맥이 끊어진 조선(1392~1910) 왕실의 채화를 되살린 황수로(Hwang Suro, 黃水路) 장인은 2013년 국가무형문화재 궁중채화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황 장인의 아들 최성우(Choi Sung-woo, 崔盛宇)가 어머니의 뒤를 이어 궁중채화 제작과 연구에 힘쓰고 있다. 궁중채화는 염색, 다듬이질, 마름질, 인두질 등 숱한 손놀림을 거쳐야 비로소 꽃 한 송이가 완성된다. 궁중채화 이수자 최성우는 정교한 수작업 덕분에 자연 그대로의 꽃을 구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 한정현(Han Jung-hyun, 韓鼎鉉) 통의동(通義洞) 길은 경복궁 서문(西門)인 영추문(迎秋門)을 마주 보고 있다. 이곳을 걷다 보면 현대식 건물 사이로 2층짜리 낡은 건물이 눈에 띈다. 옛날 형식 그대로인 간판에는 ‘보안여관’이라는 상호가 적혀 있다. 1936년 생긴 이 숙박업소는 2004년까지 운영되다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이후에는 그대로 방치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통의동 주변 일대는 도시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낡은 건물이 부수어지고 새것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보안여관도 사라질 운명에 처했지만, 이곳을 인수한 최성우 대표는 더 이상 사람이 머물 수 없는 공간을 문화예술이 숨 쉬는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도심 한복판에서 옛 모습을 간직하며 살아남은 건물의 울림은 의외로 컸다. 보안여관은 과거를 현재로 소환해 새로운 가치를 보여 주었고,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었다. 최 대표가 오늘날 통의동을 비롯한 서촌 일대의 부흥을 견인한 문화 기획자로 인정받는 이유다. 궁중채화의 복원 국가무형문화재 궁중채화 이수자인 최 대표의 작업실은 보안여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신관 4층에 자리한다. 그의 어머니는 전승이 끊어지다시피 했던 궁중채화를 되살려 낸 황수로 장인이다. 한 개인의 집념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자칫 사라질 뻔했던 문화유산을 되살려 냈다. 2013년 궁중채화가 국가무형문화재 종목으로 채택될 때 황 장인이 첫 번째 기능보유자가 된 이유다. 채화는 비단이나 모시 등으로 만든 꽃을 말하며, 궁중에서 왕실 연회나 주요 행사에 사용되던 것을 궁중채화라 한다. 궁궐에서는 항아리에 꽂아 어좌를 장식하는 준화(樽花), 연회 참석자들의 머리에 꽂는 잠화(簪花), 잔칫상에 올리는 상화(床花) 등으로 구분하여 사용했다. 조선 시대 각종 행사를 정리해 기록한 의궤(儀軌)에 보면, 왕의 어좌 좌우로 홍벽도화준(紅碧桃花樽) 한 쌍과 꽃으로 꾸민 무대인 지당판(池塘板) 등이 그려져 있고, 연회에 참가한 이들은 모두 왕이 하사한 홍도화(紅桃花)를 머리에 꽂고 있다. 문헌에는 꽃의 종류와 크기, 만드는 과정, 개수, 비용 등이 낱낱이 기록돼 있다. 정조(재위 1776~1799)는 1795년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8일 동안 성대한 잔치를 열었는데, 이를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는 채화 1만 1,919송이가 사용됐다고 기록되어 있다. 채화가 유물로 전하는 것은 없지만, 황 장인은 이러한 문헌들을 교과서 삼아 복원에 성공할 수 있었다. 채화는 염색과 조립, 설치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우선 꽃으로 만들기에 적합한 비단을 홍화(紅花), 치자(梔子) 등 자연에서 채취한 염료로 염색하여 풀을 먹인다. 그런 다음 홍두깨로 두드려 윤기와 탄력을 더한다. 그러고 나서 꽃잎을 마름질한 다음 불에 달군 인두에 밀랍을 묻혀, 꽃이 피어 있는 모양새대로 하나씩 다려서 형태를 만든다. 여기에 송홧가루를 묻힌 꽃술을 끼워 고정한다. 준비한 가지에 완성한 꽃들을 잎, 꽃봉오리와 함께 설치하면 끝이다. 채화는 염색부터 마무리까지 손으로만 작업하기 때문에 한 종류의 꽃이라 하더라도 똑같은 빛깔과 형태가 나오지 않는다. 이것이 시중에서 판매하는,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 내 만든 조화(造花)와 다른 점이다. 홍벽도화준(紅碧桃花樽)은 궁중 의례 시 정전(正殿)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용도로 쓰였는데, 붉은색과 흰색의 복숭아꽃을 어좌 좌우에 각각 하나씩 배치했다. 높이가 3m에 이르러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느낌을 준다. 한국궁중꽃박물관 제공 황수로 장인이 1829년 창경궁에서 열렸던 잔치에 쓰인 지당판(池塘板)을 재현한 작품이다. 지당판은 궁중 무용이 펼쳐지는 무대를 꾸몄던 도구로, 받침대 위로 좌우에 연꽃을 놓고 그 주변에 모란 화병 7개를 배치했다. 한국궁중꽃박물관 제공   어머니의 제자가 되다 최 대표는 1960년 황수로 장인의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외가인 부산 초량동(草梁洞) 적산가옥에서 초중고 시절을 보냈다. 그의 외조부는 국내 최초로 코르덴이라는 직물을 생산한 태창(泰昌)기업 창업자 황래성(Hwang Rae-sung, 黃來性) 회장이고, 아버지는 도쿄대 출신의 농학자로 외조부의 뒤를 이어 회장을 지낸 최위경(Choi Wee-kyung, 崔胃卿)이다. "어머니가 무남독녀라 저는 거의 외조부모님 손에서 자라다시피 했어요. 깐깐하기로 소문난 제 어머니도 꼼짝하지 못할 만큼 엄했던 외할아버지였지만, 제겐 자상한 분이셨죠. 제가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문화 경영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외할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던 1980년대 초, 그는 연극과 마당극 등을 통해 현실 참여 활동을 하며 대학 생활 대부분을 보냈다. 그러다가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파리 제1대학교에서 미술사로 박사 과정을 마치고, 프랑스 문화부 연구 단원으로 뽑혀 2년간 연수 기회를 가졌다. "13개국에서 한 명씩 뽑아 유럽 최고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게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었죠. 일반인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박물관 수장고와 시스템들을 원하는 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유럽의 여러 축제들을 비롯해 문화 기관들을 방문하고 연구해 볼 기회도 가졌습니다. 이때 전통적 가치를 동시대인의 삶에 융합하는 문화 경영에 눈을 뜨게 됐죠.” 1993년 그는 7년 반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집안 사정으로 가업을 떠맡게 됐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지 10여 년 만에 그는 보안여관으로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고, 이 무렵 눈에 들어온 것이 궁중채화였다. "2007년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한국공예대전에 어머니를 도와 처음으로 화준(花樽, 꽃항아리)을 출품했을 때였어요. 방문객들이 사진을 찍겠다고 저희 쪽으로 일제히 몰려드는 거예요. 꽃은 어떤 설명도 필요 없는 인류 공통의 언어였던 거죠.” 궁중채화에 대한 열렬한 반응은 2013년 밀라노 한국공예대전에서도 이어졌다. 어려서부터 보고 자라서 채화가 익숙하긴 했지만, 그에게 계승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어머니에게 채화를 배우러 온 사람들이 이수자가 되어도 수요가 거의 없으니, 결국에는 모두 떠나곤 했죠. 그래서 제가 전수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왜 내가 해야 하지?’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2014년 < 아름다운 궁중채화전(Beautiful Royal Silk Flower)>을 준비하면서 그제야 채화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됐죠.”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렸던 이 전시는 순조(재위 1800~1834)의 40세 생일과 등극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829년 창경궁에서 열렸던 당시의 잔치를 재현해 화제가 됐다. 이후 그는 염색부터 시작해 황 장인에게 본격적으로 전수를 받았고, 2019년 이수자로 인정받았다. 황 장인이 사재를 털어 경상남도 양산(梁山)시에 건립 중이던 한국궁중꽃박물관이 같은 해 완공돼 문을 열었다. 그는 이듬해 궁중채화의 교육과 발전을 위해 ‘궁중채화서울랩’을 열었고, 현재 어머니의 뒤를 이어 한국궁중꽃박물관장을 겸하고 있다. "궁중꽃박물관이 변하지 않아야 할 전통적 가치를 보존한다면, 궁중채화서울랩은 현대적 확장을 모색하고 실험하기 위한 연구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궁중채화서울랩(Royal Silk Flower Seoul Lab)에서 채화 제작을 가르치고 있는 최성우 이수자. 그는 궁중채화의 전통적 가치가 동시대에 공명(共鳴)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확장 가능성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일환으로 궁중채화서울랩을 창설했다. ⓒ 한정현 현대적 조형물 최 대표는 2023년 9월부터 11월까지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진행된 < 공예 다이얼로그 > 전시에서 전통적인 홍벽도화준과 함께 채화를 현대적인 방식으로 해석한 작품도 보여 주었다. "궁중채화의 조형적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자연이 선사하는 아날로그의 극치라고 생각합니다. 채화의 전통적 가치가 오늘날에도 이어지기 위해서는 동시대의 기법, 수단, 방법이 활용돼야 합니다. 그리고 이 시대의 언어로 표현된 창조적 조형물이 궁중채화의 전통성과 함께 구현되어야 하죠." 채화가 우리 시대에 어떻게 쓰일 것인가의 문제는 이수자이자 문화 기획자로서 그가 풀어가야 할 과제이다. 2023년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진행된 < 공예 다이얼로그 > 전시 모습. 최 이수자와 궁중채화서울랩 작가들이 함께 제작했으며, 궁중채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한국궁중꽃박물관 제공 이기숙(Lee Gi-sook, 李基淑) 작가

인플루언서가 된 한국의 캐릭터들

Arts & Culture 2024 SPRING

인플루언서가 된 한국의 캐릭터들 국내 캐릭터 콘텐츠 산업은 캐릭터의 세계관을 확장하고 다양한 형식을 활용하는 전략을 통해 지식재산권 산업의 핵심으로 부상 중이다. 기존에는 아이들과 키덜트에 한정되었던 캐릭터 소비문화가 전 세대로 확산되고 있으며, 한국산 캐릭터들의 인기가 국내를 넘어 세계로 향하고 있다. 2022년 5월,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타임빌라스(Time Villas)에서 15m 크기의 초대형 벨리곰을 구경하고 있는 방문객들. 벨리곰은 롯데홈쇼핑이 2018년 제작한 캐릭터로,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캐릭터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 벨리곰 휴대전화 메신저의 이모티콘 서비스는 이제는 남녀노소 누구나 사용할 정도로 일상화되었다. 또한 집 앞 편의점에서 캐릭터 인형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요즘은 캐릭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캐릭터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가리키는 용어에 불과했다 캐릭터 시장의 발전 캐릭터 개념이 확장된 시기는 국내 팬시 용품 산업이 발달하면서 캐릭터 시장이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한 1980~90년대이다. 특히 만화가 김수정(Kim Soo-jung, 金水正)의 (1983~1993)는 만화 잡지 『보물섬(Bomulseom)』에 10년간 연재되었는데, 독특한 캐릭터들과 감칠맛 나는 대사가 큰 인기를 끌면서 1990년대 중반부터 완구, 문구를 비롯해 의류, 전자 제품, 바닥재 등 다양한 상품으로 개발되었다. 그런가 하면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은 초고속 인터넷망이 전국적으로 보급되던 시기로, 당시 등장했던 인터넷 기반의 플래시 애니메이션들은 새로운 유형의 캐릭터들을 대거 선보이면서 캐릭터 향유층을 넓히는 데 한몫했다. 그중 김재인(Kim Jae-in, 金在仁) 작가의 주인공인 마시마로(Mashimaro)는 ‘엽기 토끼’로 불리며 폭발적 인기를 누렸고, 미국과 일본에 진출했다. 같은 시기, 캐릭터 디자인 기업 부즈클럽(VOOZCLUB)이 제작한 뿌까(Pucca)는 유럽에 진출해 성공을 거두었다. 마시마로와 뿌까는 그동안 해외 캐릭터들 위주로 소비되었던 국내 시장에서 국산 캐릭터의 점유율을 높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한편 2010년대에 들어 스마트폰 도입은 캐릭터 산업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KakaoTalk)은 자체 개발한 이모티콘 캐릭터 카카오 프렌즈(Kakao Friends)를 2012년부터 서비스했는데, 큰 인기에 힘입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조사한 캐릭터 선호도 조사에서 2017년 1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소통의 도구였던 카카오 프렌즈는 사용자들이 캐릭터들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기존 캐릭터들과는 다른 차별성을 지니며, 국내 캐릭터 산업에 새로운 전환기를 가져온 것으로 평가된다. 팬덤 형성 현재 한국의 캐릭터 콘텐츠는 소비문화의 중심으로 떠오르며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최근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은 기업에서 자체 캐릭터를 개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2024년 1월 서울 성수동(聖水洞)에 자리한 플래그십 스토어 ‘GS25 도어 투 성수(DOOR to seongsu)’ 앞은 팝업 스토어 기간 동안 무무씨(MOOMOOSSI)를 보러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무무씨가 그려진 입간판 앞에는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늘어섰다. 무무씨는 편의점 브랜드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이 티베트 여우를 의인화해 2022년 론칭한 캐릭터로, 인스타그램에서 2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확보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GS리테일은 무무씨 굿즈의 1년 누적 판매량이 100만 개가 넘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고 밝혔다. 2018년 롯데홈쇼핑이 사내 벤처를 통해 제작한 캐릭터 벨리곰(Bellygom)은 기업에서 만든 자체 캐릭터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 캐릭터는 유튜브에서 몰래카메라 콘텐츠를 통해 인지도를 확보하며 팬덤을 모았으며, 2022년에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대한민국콘텐츠대상에서 캐릭터 부문 대통령상을 받았다. 최근 벨리곰의 인기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장되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롯데홈쇼핑은 벨리곰 IP의 해외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무무씨와 벨리곰은 이제 캐릭터가 전면에서 소비자를 모으고 팬덤을 형성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공공 영역에서도 캐릭터를 활용한 소통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추세다. 지자체가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캐릭터를 활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 중반으로 당시에는 마스코트 이상의 효과를 얻지 못했다. 이후 경기도 고양특례시가 시 홍보를 위해 2011년 개발한 ‘고양고양이’가 성공하면서 캐릭터를 통한 지역 발전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는 경기도 용인특례시의 대표 캐릭터 ‘조아용’이 주목받고 있다. 2016년 첫선을 보인 이 캐릭터는 유튜브와 이모티콘 등 콘텐츠를 다변화하고, 신규 디자인을 꾸준히 개발한 점이 인기 유지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에버랜드와 협력하여 제작한 상품은 출시 2주 만에 4천 개가 넘게 팔려 공공 기관의 캐릭터도 상품성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GS리테일이 2022년 론칭한 무무씨는 인스타그램에서 2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확보하며 인지도를 높였고, 50종에 달하는 관련 굿즈도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 GS리테일 서브 캐릭터의 등장 서브 캐릭터가 주목받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잔망 루피(Zanmang Loopy)가 대표적이다. 이 캐릭터는 유아용 TV 애니메이션 의 등장인물 중 하나다. 2003년 EBS에서 첫 방송을 시작한 이 작품은 주인공 뽀로로를 ‘아이들의 대통령’이라고 부를 정도로 흥행했다. 뽀로로 캐릭터 상품도 불티나게 팔려 국산 캐릭터가 수입 캐릭터 점유율을 처음으로 앞지르게 되었고, 이로써 한국 캐릭터 산업의 역사를 바꾼 주역으로 평가되었다. 한편 원작에서 뽀로로의 친구로 등장하는 비버 캐릭터 루피(Loopy)가 인터넷 밈을 통해 화제가 되고, 2020년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도 출시되었다. 원작의 뽀로로가 유아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데 반해 잔망 루피라는 이름으로 부활한 이 캐릭터는 젊은 세대에게 각광받는다. ‘잔망(孱妄)’은 행동이 얄밉고 맹랑하다는 뜻이지만, 속시원하게 할 말을 하는 야무지고 귀여운 캐릭터로 인식되면서 젊은 층에게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이 캐릭터는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불가리의 앰버서더로 활동하거나 『보그 코리아』 화보 모델이 되는 등 캐릭터 컬레버래이션의 범위를 크게 확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잔망 루피의 인기가 중국에까지 확산되는 중이다. 2023년 5월 중국 SNS 플랫폼인 샤오훙수(Xiaohongshu, 小紅書)에 개설된 공식 계정은 7개월 만에 팔로워 수가 440만 명을 넘어섰다. 최근 20~30대에게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잔망 루피는 2003년 EBS에서 첫 방송을 시작한 TV 애니메이션 의 등장인물 중 하나다. 인터넷 밈을 통해 화제가 되면서 인기 캐릭터로 부상했고, 국내외 유명 브랜드들의 앰버서더나 모델로 다양하게 활동 중이다. 2023년에는 생수 브랜드 제주삼다수와 컬래버레이션하여 친환경 메시지를 전했다. ⓒ I/O/E/SKB 다양한 플랫폼 캐릭터 산업은 이제 단순한 굿즈 판매를 넘어선다. 캐릭터가 팬덤을 형성하는가 하면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플루언서로 활동한다. 이는 캐릭터 향유층의 세대 변화가 주요한 원인이다. 어렸을 때부터 만화와 게임을 통해 캐릭터 소비가 익숙했던 세대가 어른이 되면서 캐릭터 산업의 주요 소비층이 된 것이다. 아이들이나 일부 키덜트의 문화로 여겼던 캐릭터 소비가 어른들의 문화로 확장되었다는 뜻이다. 더불어 각자의 취향과 취미를 존중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깊이 파고드는 젊은 세대의 성향은 캐릭터 콘텐츠가 다른 영역으로 확장될 때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토대가 된다. 캐릭터의 세계관을 확장하며 시대에 부응하는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는 것도 또 다른 요인이다. 예전에는 캐릭터 콘텐츠 소비가 TV 같은 전통적 매체에서 주로 이루어졌지만, 최근에는 자체적으로 구축한 채널을 비롯해 유튜브, 틱톡, SNS 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다각적으로 유통된다. 이에 따라 콘텐츠 표현과 제작 방식이 더욱 자유로워졌고, 젊은 세대의 감성을 반영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기존에는 캐릭터로 어떤 파생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지만, 이제는 캐릭터를 통해 어떤 경험을 제공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의하면 국내 캐릭터 IP 시장은 매년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2025년에는 16조 2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 일본과 미국 중심이었던 캐릭터 콘텐츠의 패러다임이 한국으로 이동하면서 K-캐릭터도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몰랑이(Molang)는 일러스트레이터 윤혜지(Yoon Hye-ji, 尹憓智)가 2010년 온라인을 통해 발표한 캐릭터로, 프랑스 애니메이션 제작사 밀리마주(Millimages)가 2015년부터 TV 시리즈로 제작하고 있으며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큰 인기에 힘입어 여러 브랜드들과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연남동에 자리한 갤러리 몰랑(Gallery Molang)의 내부. ⓒ 하얀오리(Hayanori)

Arts and Culture Calendar 12월~2024년 2월

Arts & Culture 2023 WINTER

Arts and Culture Calendar 12월~2024년 2월 강서경(康瑞璟): 버들 북 꾀꼬리 ‘버들 북 꾀꼬리’는 마치 실을 짜듯 버드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꾀꼬리의 움직임과 소리를 풍경의 직조로 읽어내던 선인들의 비유를 참조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시각·촉각·청각 등의 다양한 감각과 시·공간적 차원의 경험을 아우르는 작업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기간: 2023. 9. 7.~2023. 12. 31. 장소: 리움미술관 홈페이지: leeumhoam.org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한국적인 정서를 구현한 대표적인 작가로 평가받는 장욱진(張旭鎭 1917~1990)의 회고전이다. 이번 전시는 유화, 먹그림, 매직펜 그림, 판화, 표지화와 삽화, 도자기 그림을 한자리에서 조망한다. 기간: 2023. 9. 14.~2024. 2. 12.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홈페이지: mmca.go.kr 물고기가 첨벙! 어문魚文 분청사기 조선시대 분청사기 중 물고기가 표현된 분청사기들을 소개하고 장식기법에 따라 개성이 돋보이는 분청사기의 미적 가치를 조명하는 전시다. 어느 하나 똑같지 않은 물고기를 살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기간: 2023. 09. 23.~2024. 04. 25.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www.museum.go.kr 서울 구경 가자스라, 한양가 우리 말과 글 관점에서< 한양가 > 를 들여다 보고 과거 한양과 현재의 서울을 조명하는 전시다. 총 3부로 준비된 이번 전시에는 한양가에 대한 시대적 배경과 유물, 조선 말기 이후 서울의 변화와 함께 한양가의 원본 격인 목판본과 목판, 다양한 필사본을 만날 수 있다. 기간: 2023. 9. 27.~2024. 2. 12. 장소: 국립한글박물관 홈페이지: hangeul.go.kr 올해의 작가상 2023 2012년 시작한 올해의 작가상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연례 전시이자 동시대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수상 제도다. 이번 전시는 올해 선정된 권병준(權炳俊), 갈라 포라스-김, 이강승(李康承), 전소정(全昭侹) 작가가 새롭게 구상〮제안한 신작 및 신작과 연관된 구작을 함께 선보인다. 기간: 2023. 10. 20.~2024. 3. 31.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홈페이지: mmca.go.kr 갈라 포라스-킴: 국보 고대의 유물이 현대의 체계와 만나는 지점을 탐구하는 갈라 포라스-킴(Gala Porras-Kim)의 전시다. 전시는 한국의 문화유산을 소재로 한 신작 3점과 리움 미술관이 소장한 국보 10점으로 구성된다. 기간: 2023. 10. 31.~2024. 3. 31. 장소: 리움미술관 홈페이지: leeumhoam.org 탕탕평평蕩蕩平平-글과 그림의 힘 2024년 영조(英祖 재위 1724-1776) 즉위 300주년을 기념하여 영조와 정조의 최고 업적인 탕평(蕩平) 정치에 밑받침이 된 글과 그림의 힘을 조명한 전시다. 기간: 2023. 12. 8.~2024.3.10. 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www.museum.go.kr 국립국악관현악단< 2023 윈터 콘서트 > 전통적인 국악관현악의 틀에서 벗어나 국악기와 서양악기가 어우러진 50인조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콘서트이다. 국악관현악 명곡은 물론 영화음악, 캐럴 등을 다채롭고 풍성한 무대가 펼쳐질 예정이다. 기간: 2023.12.16.~12. 17. 장소: 국립극장 하늘극장 홈페이지: ntok.go.kr

애환과 낭만의 음식, 빈대떡

Arts & Culture 2023 WINTER

애환과 낭만의 음식, 빈대떡 녹두 가루에 물과 각종 채소, 고기를 넣고 걸쭉하게 만든 반죽을 뜨겁게 예열한 프라이팬에 올려 노릇노릇하게 부쳐 먹는 빈대떡은 바삭바삭하면서도 고소한 풍미가 독보적인 한국의 전통 음식이다. 밀가루를 사용하는 부침개와 달리 녹두를 사용하는 빈대떡은 한국의 대표적인‘겉바속촉’ 요리다. 한국에서 음식 맛을 설명하는 단어 중 ‘겉바속촉’이라는 표현이 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는 문장을 줄인 말로, 주로 뜨겁고 바삭한 식감의 튀김이나 부침개 종류의 음식의 맛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이러한 ‘겉바속촉’의 맛을 지닌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가 빈대떡이다. 바삭한 맛이 일품 빈대떡은 큰 의미에서는 ‘부침개’ 또는 ‘전’으로 불리는 한국식 부침 요리의 한 종류이다. 부침개는 바닥이 평평하고 넓은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각종 채소나 육류, 생선 등의 재료에 밀가루나 달걀물을 입혀 기름에 부쳐내는 음식으로 한국의 명절이나 잔칫날에 빠지지 않는 대표적인 요리다. 빈대떡이 일반 부침개와 다른 점은 밀가루 대신 맷돌에 간 녹두를 이용해 부쳐 만든 음식이라는 것이다. 갈은 녹두에 나물, 고기 등을 넣고 반죽한 후 기름을 넉넉히 두른 묵직한 팬에다 두툼하게 반죽을 편 다음 튀기듯 부쳐낸다. 센 불에서 익힌 빈대떡은 부침개보다 겉면이 좀 더 바삭바삭하고 힘이 있는 편인데, 이는 녹두의 질감이 밀보다 더 단단하기 때문이다. 일반 부침개가 가늘고 부드러운 식감에 가깝다면, 빈대떡은 묵직하고 단단한 식감이 특징이다. 기름에 튀겨지듯 부쳐낸 빈대떡을 한입 베어 물면 입에 착 감기는 고소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또한 녹두가 지닌 특유의 풋내는 다른 재료들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감칠맛이 배가 된다. 빈대떡에 들어가는 재료는 고사리나 숙주, 대파, 김치, 고추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같은 빈대떡이라고 해도 집마다 재료의 사정은 달랐다. 재료가 풍족한 집은 각종 나물과 김치에 간 돼지고기까지 넣고 부쳐 먹었지만 그렇지 못한 집은 녹두 반죽만 기름에 부쳐 먹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빈대떡만큼 값싼 재료로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었다. 빈대떡의 유래 300도가 넘는 뜨거운 불판에 기름을 넉넉히 두른 후 돼지고기와 각종 채소가 들어간 녹두 반죽을 튀기듯 부쳐내어 바삭바삭하면서도 고소한 풍미가 일품이다. 빈대떡의 유래에 대해서도 여러 설이 있다. 교자상에 기름에 지진 고기를 높이 쌓을 때 제기(祭器) 밑받침용으로 이 빈대떡을 작게 만들어 썼는데, 그 뒤 가난한 사람을 위한 요리가 되면서 크기도 먹음직스럽게 크게 바뀌고 이름도 ‘빈자(貧者)’ 떡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 밖에 손님을 대접한다는 뜻의 ‘빈대(賓對)’를 넣어 빈대떡으로 불렀다는 설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흉년이 들면 당시의 세도가에서 빈대떡을 만들어 남대문 밖에 모인 유랑민들에게 “어느 집의 적선이오” 하면서 던져주었다고 한다. 확실한 것은 빈대떡을 즐겨 먹었던 곳이 북한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이라는 사실이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실향민들이 남한으로 넘어오면서 한국의 빈대떡의 역사도 함께 시작됐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국의 많은 공공기관과 가정집들이 무너졌는데 폐허가 된 집과 상가에서 실향민들은 터를 잡고 국밥이나 부침개, 막걸리 등을 팔기 시작했다. 당시 빈대떡은 삶의 터전과 가족을 잃은 많은 이들의 설움과 배고픔을 달래주는 애환의 음식이자, 값싼 가격에 배를 불렸던 서민의 음식이었다. 만인이 사랑하는 음식 서울 중구 을지로나 광장시장에는 40~50년은 거뜬히 넘긴 오래된 빈대떡집들이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빈대떡을 제대로 요리하려면 ‘라드’라고 부르는 돼지기름을 사용해야 한다. 식용유나 참기름(참깨를 짜서 만든 한국식 오일)을 사용할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고소한 감칠맛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300도가 넘는 뜨거운 불판에 돼지기름을 넉넉히 두른 후 돼지고기와 각종 채소가 들어간 녹두 반죽을 튀기듯 부쳐내면 흔히 말하는 ‘겉바속촉’ 식감에 고소한 돼지기름이 속속들이 베어들어 제대로 된 빈대떡의 맛이 구현된다. 서울 중구 을지로나 광장시장에는 40~50년은 거뜬히 넘긴 오래된 빈대떡집들이 아직도 성업 중이다. 3대째 운영 중인 박가네 빈대떡은 빈대떡을 전통 방식으로 두툼하게 부쳐내는 곳으로 빈대떡에 편육(삶은 육류를 틀에 넣고 누른 다음 차게 식혀 얇게 썰어 먹는 음식)과 어리굴젓(생굴로 담근 젓갈)을 올려 먹는 ‘삼합’ 요리로 다시 한번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빈대떡에 쫄깃한 편육과 매콤한 어리굴젓이 제법 잘 어울린다. 박가네 빈대떡 외에도 광장시장을 비롯한 서울 각지에는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오래된 빈대떡집들이 꽤 있다. 대부분 묵직하고 넓적한 불판에 종일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빈대떡과 부침개를 부치고 있는 모습을 통 창문으로 볼 수 있도록 개방형 주방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나가는 이들은 빈대떡의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오게 되고, 빈대떡을 열심히 부치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퍼포먼스가 되기도 한다.   다양하게 즐기는 맛 빈대떡은 다양한 토핑 재료를 활용할 수 있어 여러 가지 메뉴로 변신이 가능하다. 또 속까지 완전히 익히는 음식이기 때문에 육류나 채소, 해산물 등 어떠한 재료를 넣어도 잘 어우러진다. 40년이 넘도록 프랜차이즈 사업을 탄탄하게 전개해 나가고 있는 빈대떡 브랜드 JBD 종로빈대떡은 김치 빈대떡과 낙지 빈대떡, 굴 빈대떡, 해물 빈대떡 등 다양한 종류의 빈대떡 메뉴를 선보인다. 고소한 녹두의 맛이 기본으로 받쳐주니 어떠한 토핑을 올려도 매력적인 맛으로 융화된다. 특히 굴을 잔뜩 올린 후 바삭하게 부쳐낸 굴 빈대떡은 특유의 굴 향과 고소한 녹두의 맛이 잘 어우러져 외국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메뉴다. 빈대떡은 막걸리와도 궁합이 좋아 한때 막걸리와 빈대떡을 메인으로 내세운 브랜드들이 시장에 대거 생겨났다. 현대적인 인테리어, 세련된 플레이팅의 빈대떡 한 상 차림을 구현하거나 옛 감성을 살린 복고풍 매장까지 콘셉트도 매우 다양하다. 최근에는 다양하게 변주된 빈대떡 메뉴에 전국각지에서 생산되는 수십 가지의 전통주를 페어링하여 선보이는 한식주점도 인기를 끌고 있다.   건강식으로도 인기 빈대떡은 한국전쟁 이후 대중화되기 시작한 길거리 음식, 추억과 애환이 묻어있는 서민 음식이라는 인상 때문에 그러한 역사적 스토리텔링을 등에 업고 현재까지도 ‘국민 안주’, ‘국민 간식’으로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여기에 ‘건강식’ 키워드까지 더해 현재는 웰빙식품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빈대떡의 주재료인 녹두가 해독과 해열 기능뿐 아니라 피부질환이나 신장 기능 강화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녹두 빈대떡을 레토르트나 HMR 상품으로 출시하는 곳도 늘고 있다. 기름을 넉넉하게 두른 프라이팬에 냉동 상태의 빈대떡을 별도의 해동 과정 없이 그대로 올려 굽기만 하면 되므로 가정에서도 간편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 게다가 가격도 합리적이고 식당에서 먹는 것만큼 맛의 완성도도 높아 꾸준히 잘 팔리고 있다.   황해원(Hwang Hae-won 黃海嫄) 월간외식경영 편집장

250이 만든 뽕의 새로운 세계

Arts & Culture 2023 WINTER

250이 만든 뽕의 새로운 세계 250은 가장 한국적인 음악이지만 모두가 외면하고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한 뽕짝이라는 장르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탄생시켰다. 그의 확고한 음악 세계가 담긴 앨범 (2022)은 한국 대중음악계를 넘어 세계가 집중했으며, 지금도 그 영역을 계속해서 넓히고 있다. 가수이자 DJ, 작곡가, 그리고 프로듀서인 250은 2023년 한국 대중음악에서 단연 돋보이는 주인공이다. 한국인의 고유 정서인‘뽕’이라는 장르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여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었다. ⓒ 비스츠앤드네이티브스 매콤한 국물과 꼬불꼬불한 뜨거운 면을 호호 불어먹는 매력이 있는 라면. 당신이 한국의 라면을 끓이는 데 처음 도전했다고 생각해 보자. 적정량의 물을 끓이고, 건더기스프와 면을 넣고…. 그런데 아뿔싸, 라면 맛의 핵심인 빨간 분말스프 가루를 넣는다는 걸 완전히 잊었다. 그것을 한국식 라면이라 부를 수 있을까? 라면에서 가장 중요한 분말스프를 빼놓고는 라면의 맛을 논할 수 없는 것처럼,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한국 대중음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 있다. 바로 뮤지션이자 프로듀서인 250이다. 이견이 없는 올해의 음악인 그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맵고 뜨거운 인물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250은 지난해 발표한 정규 1집< 뽕 > 으로 한국의 그래미상으로 불리는 제20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고 영예인 ‘올해의 앨범’과 ‘올해의 음악인’, ‘최우수 일렉트로닉 앨범’, ‘최우수 일렉트로로닉 노래’ 등 네 개 부문을 석권하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둘째, 그는 데뷔 1년 만에 한국 음악계를 뒤집어 놓은 신인 케이팝 그룹 ‘뉴진스’의 여러 곡에 참여한 프로듀서다. 250은 한국에서 구시대적이라고 폄훼하는 음악 장르인 ‘뽕짝’을 베이스로 일렉트로닉 음악이나 힙합 요소를 더하여 완전히 독창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난 250은 특유의 진지한 표정으로 앨프리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1899~1980) 감독의 영화< 이창(Rear Window 裏窓) > (1954)을 보았는지를 기자에게 물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영화< 이창 > 에서부터였다며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저는 수년 동안 뽕짝의 본질을 탐구하고 저의 음악과 접목해 보려고 했지만, 그 답을 찾는 것이 순탄치 않았어요. 답을 찾던 중 영화< 이창 > 에서 영감을 받았고< 이창 > (2018년 싱글 앨범)이란 곡을 쓰게 되었죠. 어떤 투명한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뽕’과 ‘비(非)뽕’이 서로 마주 보는 느낌이랄까요.” 뽕과 비(非)뽕, 과거와 현재, 세련됨과 촌스러움 따위가 멀리서 대면하는…. 그 형이상학적인 ‘창’은 250의 음악 세계를 설명하는 키워드다. “‘뽕’은 오묘한 단어입니다. 여러 면에서 한국인에게 특별한 감흥을 주죠. 트로트를 속되게 이르는 말인 ‘뽕짝’은 사실 북소리를 표현하는 의성어 ‘쿵짝’에서 비롯되었어요. 영어로 하면 ‘Boom Clap’ 같은 거죠. 하지만 ‘쿵짝’은 다른 장르에서도 통용될 수 있으니, 뭔가 더 우스꽝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쿵’이라는 말을 ‘뽕’으로 바꾼 겁니다. 자기비하적 측면이죠. ‘뽕’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이미지도 있어요. 1986년 상영된 성인 영화< 뽕(Mulberry) > 이요. 당시 크게 흥행하여 다양한 후속작이 나오기도 했죠. 그리고 한국에서 마약을 뜻하는 은어이기도 하고요. 우스꽝스럽거나 낯간지럽거나 어둡거나….이렇게 다층적이면서 복합적인 상징과 느낌들이 ‘뽕’, 이 단 한 음절에 축약된 겁니다.” 애수와 낭만, 즐거움이 담긴 음인 뽕짝은 한국에서 사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문화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애초에 ‘뽕’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로 담고 있으며, 일상에서 거의 쓰이지 않은 단어인 것처럼 말이다. 250은 음지에서 저평가받고 있는 뽕짝을 대중음악 세계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으며, 새로운 음악의 성취를 거둔 셈이다. 250이 탐구한 음악 세계 250은 한서대학교에서 영상 음악 제작을 전공했다. 20대부터 한국 공중파 TV 드라마의 음악을 만들었고,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전자음악 성지(聖地)인 클럽 케잌샵(cakeshop)에서 DJ로도 활약했다. 그때부터 “유별난 음악을 트는 이가 등장했다”라는 입소문이 클러버들 사이에 돌기 시작하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이후 SM엔터테인먼트의 의뢰를 받아 NCT127, BoA, f(x) 같은 메이저 케이팝 가수의 원곡에 대한 정식 리믹스 음원을 발표했다. 또 힙합 팬들이 열광하는 래퍼 이센스의< Everywhere > 와< 비행 >등을 프로듀스 했다. 그러다 그가 2018년부터 저예산 다큐멘터리 시리즈< 뽕을 찾아서 > 를 내놓기 시작했을 때만해도 음악업계에서는 “비트만 잘 만드는 줄 알았더니 코미디도 제법이다”라는 식의 가벼운 반응들이 다수였다. 2018년 싱글< 이창 > , 2021년 싱글< Bang Bus > 가 조용히 회자되더니 마침내 2022년 3월, 정규 1집 앨범< 뽕 > 이 발매되자마자 음악 팬과 평단은 그의 독창적인 음악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기 시작했다. 250은 미국 뉴욕의 할렘에 힙합이 흐르거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파벨라 펑크(favela funk) 장르가 울려 퍼지듯 뽕짝은 마치 한국이란 문화권의 배경음악 같은 것이 아니겠냐고 부연했다. 청각적으로도 ‘게토(ghetto 특정 민족이 사회의 주류 민족과 고립되어 살아가는 것)화’한 요소들이야말로 힙합 프로듀서이자 클럽 DJ 출신인 250이 뜻밖에 발견한 뽕짝의 매력이다. “대단한 연주자 또는 50인조 오케스트라가 오래전에 녹음해 둔 샘플을 후대에 조악한 장비로 구현해 낸 힙합곡들…. 거기서 풍기는 특유의 멋이란 게 있잖아요. 뽕짝도 마찬가지예요.” 그는 뽕짝을 탐구하면서 느낀 또 한 가지는 뽕짝이 한국의 식문화와도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뜨거워야 잘 먹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김치찌개나 전골처럼 맵고 뜨거워야 ‘잘 먹었다’라고 느끼는 것처럼요. 저 역시 얼마 전에 벨기에에 일주일 정도 다녀왔는데, 귀국하자마자 매니저와 김치찌개를 먹으러 기사식당에 갔어요. 한국인에게는 어정쩡한 것보다는 화끈한 것이 통하는 것처럼 ‘뽕짝’도 그런 점이 있어 통하는 것 같아요. 저는 뽕짝이 확실하게 슬픈 곡조, 그리고 확실하게 신나는 그 무언가가 투박하게 결합된 매력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250이 ‘뽕’의 세계를 탐구하기 시작한 것은 2013년경부터다. 케잌샵 DJ 시절, 동료들과 단합대회를 다녀오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뽕짝 음악이 담긴 리믹스 테이프를 샀다. 서울로 돌아가 이 음악을 리믹스 해보자며 장난처럼 의기투합한 게 시작이었다. 그 장난 같은 시작이 250을 장난이 아닌 뽕짝의 경지까지 끌고 온 셈이다.   익숙한 뽕짝의 맛 250이 만든 익숙한데 낯설고 촌스럽지만 신묘하며 힙하기 이를 데 없는 ‘뽕’의 세계에 가장 열성적인 관객은 10~20대의 젊은 세대다. 뽕짝이 한국인의 일상 가까이 녹아 있던 20세기와는 오히려 가장 거리가 먼 세대이기도 하다. “그들은 모든 것이 잘 정돈되어 있고 예쁘게 깎여 있는 시대에 살고 있죠. 그래서 도심의 반듯한 계단보다는 서울 변두리에 오래전 지어진 건물의 울퉁불퉁한 계단에 열광하며 필름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최근 빌보드 차트에서도 컨트리 장르가 득세하고 있죠. 한국 음원 차트에 트로트가 최근 몇 년 사이 인기를 끈 것과 비슷한 현상일 수 있죠.” 250이 요즘 음악 말고 빠져 있는 것도 일종의 ‘구닥다리’다. 1970~1980년대 상영된 홍콩 영화인< 소권괴초(笑拳怪招, The Fearless Hyena) > (1979년)를 비롯한 성룡(成龍 Jackie Chan)의 초기작에 나오는 비논리적 액션 장면들에 푹 빠져 있다고 했다. “언젠가는 영화음악에도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A Quiet Place) > (2018)처럼 사람들이 소리에 극도로 집중해야 하는 영화,< 인셉션(Inception) > (2010)처럼 스케일이 큰 영화,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인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 1928~2020)가 참여한 작품처럼 선율로 승부하는 영화 등 모두 욕심이 나네요.” 마침 그의 저예산 다큐< 뽕을 찾아서 > 는 2023년 여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처음으로 큰 스크린에서 공식 상영됐다. “제게 특별한 롤모델이란 없습니다만, 그저 음악 프로듀서인 퀸시 존스(Quincy Jones)나 작곡가이자 뮤지션인 류이치 사카모토(さかもとりゅういち Ryuichi Sakamoto, 1952~2023) 같은 분들처럼 이런 음악, 저런 작업 등 음악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모두 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50의 다음 프로젝트는 한국 성인영화 시리즈물의 속편 제목처럼< 뽕 2 > 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벌써 계획하고 있는 차기작의 제목은< 아메리카 > 이다. “ < 뽕 > 으로 한국 음악을 제대로 해봤으니까 이제 미국 음악을 해봐야죠. 제가 학창 시절에 동경했던 미국, 그리고 즐겨 듣던 미국 음악에 대한 환상을 담은 앨범이 될 수도 있겠어요.” 7년여간 탐구한 뽕에 대한 정의는 250의 안에서도 계속 변해왔다. 지금, 이 시점에 그가 내리는 뽕의 정의는 이렇다. “뽕짝이란 마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한국의 라면스프의 맛 같은 걸지도 모르죠. 김치찌개를 끓이다가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다 싶으면 라면스프를 조금 넣잖아요. 그럼 ‘아는 맛’ 나오잖아요. 라면스프가 고급스러운 레시피도 아니고 정답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익숙한 맛이고 입에 감기는 어떤 만족스러운 맛이라는 점은 확실하죠. 뭔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한국인이 공통으로 찾는 마지막 한 조각이랄까요.” 250이라는 이름은 그의 본명인 이호영과 비슷하게 불리길 바라며 ‘이오영’이라 썼는데, 모두가 ‘이오공’이라 부르면서 250이 되었다. ⓒ 세종문화회관 그는 첫 앨범< 뽕 > 으로 한국대중음악상에서 4관왕을 차지했다. 특히 최우수 일렉트로닉 앨범과 최우수 일렉트로로닉 노래 부분 수상은 ‘뽕’이 일렉트로니카 뮤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뜻깊다고 전한다. ⓒ 비스츠앤드네이티브스 임희윤 (Lim Hee-yun, 林熙潤) 음악평론가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바라본 우리

Arts & Culture 2023 WINTER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바라본 우리 『다른 사람』 강화길(姜禾吉) 작, 클레어 리차드(Clare Richards) 번역, 304쪽, 14.99파운드, 푸쉬킨 프레스(2023)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바라본 우리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물론 어떤 주인공들은 문제가 있고, 또 다른 주인공들은 비극적이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는 모두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만약 세상을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너무나 분명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모두 기껏해야 다른 사람들 이야기의 조연에 불과하며 때로는 악당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 말이다. 강화길 작가의 강렬한 첫 장편소설인 『다른 사람』에서 작가는 이 같은 생각을 탐구한다. 작가는 유동적 관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이야기를 제시하면서 독자에게 자신의 추측이나 가정을 매 단계에서 재검토하도록 유도한다. 소설은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젊은 여성인 김진아는 직장 내 팀장인 남자친구에게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한다. 그녀는 직장에서의 사내 연애가 알려질까 두려워 처음에는 침묵한다. 하지만 반복되는 폭력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결국 경찰에 신고한다. 그러나 그녀는 폭력 사건에 대응하는 법적 제도가 얼마나 느리고 비효율적인지 알지 못했다. 그 결과 남자 친구는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한 삼백만 원의 벌금형만 받았을 뿐, 가택 연금이나 접근 금지 등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좌절한 진아는 인터넷 게시판에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한다. 이제 그녀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모든 사람이 자신을 판단하는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 진아의 이야기만 보면 독자는 쉽게 진아의 편에 설 것이다. 특히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주장하면서도, 문제가 있는 여성들은 얼굴이 좀 별로라는 코믹스러운 성차별적 언사로 그녀를 나무라는 본부장을 보면 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을수록 독자는 진아의 이야기 속 다른 인물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이를 통해 독자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엿볼 수 있고 복잡하게 얽힌 퍼즐에서 빠진 조각들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상황을 불분명하게 만들고 진아의 믿음과 주장을 약화시키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일정한 패턴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여성 인물들의 자기 회의와 자책, 남성 인물들의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 등의 대조가 그중 하나이다. 대학교 강사가 된 진아의 옛 남자친구 동희가 학교에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게끔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신고한 여학생과 더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 그를 부당한 방법으로 이용하는 여교수 등과 맞서 싸우면서 자신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면 그를 동정하게 된다. 물론 그는 완벽하지 않다. 그런데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동시에 진아의 단짝이었던 수진이가 악의로 가득 차 진아를 증오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도 흑백처럼 선명하지 않고,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 수많은 회색 지대가 있다. 그렇다고 옳고 그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누구도 완전히 옳고 그를 수 없음을 의미할 뿐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미묘하고 절묘하다.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서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면서 그로 인해 더 큰 효과를 갖게 된다. 이 소설은 독자를 하나의 여정으로 이끌 것이다.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 어디에서 시작하든 독자는 결국 어딘가 다른 곳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되면서 어떤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북촌』 신달자(慎達子) 작, 조영실(趙永實) 번역, 106쪽, 18.95달러, 호마 앤 세키 북스(2023) 유명한 동네 산책하기 북촌에 위치한 계동의 작은 집으로 이사한 신달자 시인은 새로운 환경으로 인한 신선한 경험과 감각이 익숙함으로 무뎌지기 전 시집을 한 권 쓰기로 결심했다. 말 그대로 ‘북쪽의 마을’인 북촌은 독특한 곳이다. 콘크리트와 유리로 이루어진 대도시 서울의 심장부에 위치한 북촌은 전통가옥인 한옥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어 전통과 과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현지인과 여행객 모두가 찾는 관광지가 되었다. 시인의 시들은 북촌의 내면을 그린다. 동네의 유명한 랜드마크를 소재로 하는 시들은 호기심 많은 방문객의 가이드가 될 수 있을 정도다. 또한 시는 한옥 주거지와의 강한 연결을 보여준다. 한옥에서는 현대식 건물에서 보기 힘든 자연환경은 물론 동네의 역사와 문화와의 긴밀한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동시에 시인은 삶의 현실을 숨기려 하지 않고 질병과 외로움, 그리고 노년에 관해 쓴다. 독자는 시집을 통해 북촌을 관광하는 것 이상으로 흥미로운 산책을 하게 될 것이다. ‘한국 고전 영화’ www.youtube.com/@KoreanFilm 한국 영화 애호가들을 위한 보물 창고 한국 영화의 블록버스터 시대는 1997년 < 타이타닉(Titanic) > (1997)이 세운 국내 흥행 기록을 경신한 1999년 액션 스릴러 < 쉬리 > 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거의 매년 새로운 블록버스터 영화가 나타나 왕좌를 차지했다. 곧 세계가 주목하게 되었고 봉준호 감독의 2019년 영화 < 기생충(Parasite) > (2019)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이제 한국 영화를 알지 못하면 스스로를 영화광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 영화가 20세기 말에 와서야 스크린을 점령하게 된 것은 아니다. 한국 영화는 이미 20세기 초에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초보 영화 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유튜브 채널 ‘한국 고전 영화’에 시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다양한 영화들이 제공되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한국 영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이 자원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운영하는 이 유튜브 채널에는 1910~1945년 일제 강점기부터 1990년대까지 영화들이 포함되어 있고, 정기적으로 새로운 영화들이 추가되고 있다. 더 좋은 점은 모든 영화에 영어 자막이 옵션으로 제공된다는 점이다. 이 채널의 오랜 구독자이자 팬으로서 ‘한국 고전 영화’ 유튜브 채널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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