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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s & Culture

Arts and Culture Calendar 12월~2024년 2월

Arts & Culture 2023 WINTER

Arts and Culture Calendar 12월~2024년 2월 강서경(康瑞璟): 버들 북 꾀꼬리 ‘버들 북 꾀꼬리’는 마치 실을 짜듯 버드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꾀꼬리의 움직임과 소리를 풍경의 직조로 읽어내던 선인들의 비유를 참조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시각·촉각·청각 등의 다양한 감각과 시·공간적 차원의 경험을 아우르는 작업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기간: 2023. 9. 7.~2023. 12. 31. 장소: 리움미술관 홈페이지: leeumhoam.org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한국적인 정서를 구현한 대표적인 작가로 평가받는 장욱진(張旭鎭 1917~1990)의 회고전이다. 이번 전시는 유화, 먹그림, 매직펜 그림, 판화, 표지화와 삽화, 도자기 그림을 한자리에서 조망한다. 기간: 2023. 9. 14.~2024. 2. 12.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홈페이지: mmca.go.kr 물고기가 첨벙! 어문魚文 분청사기 조선시대 분청사기 중 물고기가 표현된 분청사기들을 소개하고 장식기법에 따라 개성이 돋보이는 분청사기의 미적 가치를 조명하는 전시다. 어느 하나 똑같지 않은 물고기를 살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기간: 2023. 09. 23.~2024. 04. 25.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www.museum.go.kr 서울 구경 가자스라, 한양가 우리 말과 글 관점에서< 한양가 > 를 들여다 보고 과거 한양과 현재의 서울을 조명하는 전시다. 총 3부로 준비된 이번 전시에는 한양가에 대한 시대적 배경과 유물, 조선 말기 이후 서울의 변화와 함께 한양가의 원본 격인 목판본과 목판, 다양한 필사본을 만날 수 있다. 기간: 2023. 9. 27.~2024. 2. 12. 장소: 국립한글박물관 홈페이지: hangeul.go.kr 올해의 작가상 2023 2012년 시작한 올해의 작가상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연례 전시이자 동시대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수상 제도다. 이번 전시는 올해 선정된 권병준(權炳俊), 갈라 포라스-김, 이강승(李康承), 전소정(全昭侹) 작가가 새롭게 구상〮제안한 신작 및 신작과 연관된 구작을 함께 선보인다. 기간: 2023. 10. 20.~2024. 3. 31.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홈페이지: mmca.go.kr 갈라 포라스-킴: 국보 고대의 유물이 현대의 체계와 만나는 지점을 탐구하는 갈라 포라스-킴(Gala Porras-Kim)의 전시다. 전시는 한국의 문화유산을 소재로 한 신작 3점과 리움 미술관이 소장한 국보 10점으로 구성된다. 기간: 2023. 10. 31.~2024. 3. 31. 장소: 리움미술관 홈페이지: leeumhoam.org 탕탕평평蕩蕩平平-글과 그림의 힘 2024년 영조(英祖 재위 1724-1776) 즉위 300주년을 기념하여 영조와 정조의 최고 업적인 탕평(蕩平) 정치에 밑받침이 된 글과 그림의 힘을 조명한 전시다. 기간: 2023. 12. 8.~2024.3.10. 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www.museum.go.kr 국립국악관현악단< 2023 윈터 콘서트 > 전통적인 국악관현악의 틀에서 벗어나 국악기와 서양악기가 어우러진 50인조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콘서트이다. 국악관현악 명곡은 물론 영화음악, 캐럴 등을 다채롭고 풍성한 무대가 펼쳐질 예정이다. 기간: 2023.12.16.~12. 17. 장소: 국립극장 하늘극장 홈페이지: ntok.go.kr

애환과 낭만의 음식, 빈대떡

Arts & Culture 2023 WINTER

애환과 낭만의 음식, 빈대떡 녹두 가루에 물과 각종 채소, 고기를 넣고 걸쭉하게 만든 반죽을 뜨겁게 예열한 프라이팬에 올려 노릇노릇하게 부쳐 먹는 빈대떡은 바삭바삭하면서도 고소한 풍미가 독보적인 한국의 전통 음식이다. 밀가루를 사용하는 부침개와 달리 녹두를 사용하는 빈대떡은 한국의 대표적인‘겉바속촉’ 요리다. 한국에서 음식 맛을 설명하는 단어 중 ‘겉바속촉’이라는 표현이 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는 문장을 줄인 말로, 주로 뜨겁고 바삭한 식감의 튀김이나 부침개 종류의 음식의 맛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이러한 ‘겉바속촉’의 맛을 지닌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가 빈대떡이다. 바삭한 맛이 일품 빈대떡은 큰 의미에서는 ‘부침개’ 또는 ‘전’으로 불리는 한국식 부침 요리의 한 종류이다. 부침개는 바닥이 평평하고 넓은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각종 채소나 육류, 생선 등의 재료에 밀가루나 달걀물을 입혀 기름에 부쳐내는 음식으로 한국의 명절이나 잔칫날에 빠지지 않는 대표적인 요리다. 빈대떡이 일반 부침개와 다른 점은 밀가루 대신 맷돌에 간 녹두를 이용해 부쳐 만든 음식이라는 것이다. 갈은 녹두에 나물, 고기 등을 넣고 반죽한 후 기름을 넉넉히 두른 묵직한 팬에다 두툼하게 반죽을 편 다음 튀기듯 부쳐낸다. 센 불에서 익힌 빈대떡은 부침개보다 겉면이 좀 더 바삭바삭하고 힘이 있는 편인데, 이는 녹두의 질감이 밀보다 더 단단하기 때문이다. 일반 부침개가 가늘고 부드러운 식감에 가깝다면, 빈대떡은 묵직하고 단단한 식감이 특징이다. 기름에 튀겨지듯 부쳐낸 빈대떡을 한입 베어 물면 입에 착 감기는 고소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또한 녹두가 지닌 특유의 풋내는 다른 재료들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감칠맛이 배가 된다. 빈대떡에 들어가는 재료는 고사리나 숙주, 대파, 김치, 고추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같은 빈대떡이라고 해도 집마다 재료의 사정은 달랐다. 재료가 풍족한 집은 각종 나물과 김치에 간 돼지고기까지 넣고 부쳐 먹었지만 그렇지 못한 집은 녹두 반죽만 기름에 부쳐 먹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빈대떡만큼 값싼 재료로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었다. 빈대떡의 유래 300도가 넘는 뜨거운 불판에 기름을 넉넉히 두른 후 돼지고기와 각종 채소가 들어간 녹두 반죽을 튀기듯 부쳐내어 바삭바삭하면서도 고소한 풍미가 일품이다. 빈대떡의 유래에 대해서도 여러 설이 있다. 교자상에 기름에 지진 고기를 높이 쌓을 때 제기(祭器) 밑받침용으로 이 빈대떡을 작게 만들어 썼는데, 그 뒤 가난한 사람을 위한 요리가 되면서 크기도 먹음직스럽게 크게 바뀌고 이름도 ‘빈자(貧者)’ 떡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 밖에 손님을 대접한다는 뜻의 ‘빈대(賓對)’를 넣어 빈대떡으로 불렀다는 설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흉년이 들면 당시의 세도가에서 빈대떡을 만들어 남대문 밖에 모인 유랑민들에게 “어느 집의 적선이오” 하면서 던져주었다고 한다. 확실한 것은 빈대떡을 즐겨 먹었던 곳이 북한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이라는 사실이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실향민들이 남한으로 넘어오면서 한국의 빈대떡의 역사도 함께 시작됐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국의 많은 공공기관과 가정집들이 무너졌는데 폐허가 된 집과 상가에서 실향민들은 터를 잡고 국밥이나 부침개, 막걸리 등을 팔기 시작했다. 당시 빈대떡은 삶의 터전과 가족을 잃은 많은 이들의 설움과 배고픔을 달래주는 애환의 음식이자, 값싼 가격에 배를 불렸던 서민의 음식이었다. 만인이 사랑하는 음식 서울 중구 을지로나 광장시장에는 40~50년은 거뜬히 넘긴 오래된 빈대떡집들이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빈대떡을 제대로 요리하려면 ‘라드’라고 부르는 돼지기름을 사용해야 한다. 식용유나 참기름(참깨를 짜서 만든 한국식 오일)을 사용할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고소한 감칠맛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300도가 넘는 뜨거운 불판에 돼지기름을 넉넉히 두른 후 돼지고기와 각종 채소가 들어간 녹두 반죽을 튀기듯 부쳐내면 흔히 말하는 ‘겉바속촉’ 식감에 고소한 돼지기름이 속속들이 베어들어 제대로 된 빈대떡의 맛이 구현된다. 서울 중구 을지로나 광장시장에는 40~50년은 거뜬히 넘긴 오래된 빈대떡집들이 아직도 성업 중이다. 3대째 운영 중인 박가네 빈대떡은 빈대떡을 전통 방식으로 두툼하게 부쳐내는 곳으로 빈대떡에 편육(삶은 육류를 틀에 넣고 누른 다음 차게 식혀 얇게 썰어 먹는 음식)과 어리굴젓(생굴로 담근 젓갈)을 올려 먹는 ‘삼합’ 요리로 다시 한번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빈대떡에 쫄깃한 편육과 매콤한 어리굴젓이 제법 잘 어울린다. 박가네 빈대떡 외에도 광장시장을 비롯한 서울 각지에는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오래된 빈대떡집들이 꽤 있다. 대부분 묵직하고 넓적한 불판에 종일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빈대떡과 부침개를 부치고 있는 모습을 통 창문으로 볼 수 있도록 개방형 주방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나가는 이들은 빈대떡의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오게 되고, 빈대떡을 열심히 부치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퍼포먼스가 되기도 한다.   다양하게 즐기는 맛 빈대떡은 다양한 토핑 재료를 활용할 수 있어 여러 가지 메뉴로 변신이 가능하다. 또 속까지 완전히 익히는 음식이기 때문에 육류나 채소, 해산물 등 어떠한 재료를 넣어도 잘 어우러진다. 40년이 넘도록 프랜차이즈 사업을 탄탄하게 전개해 나가고 있는 빈대떡 브랜드 JBD 종로빈대떡은 김치 빈대떡과 낙지 빈대떡, 굴 빈대떡, 해물 빈대떡 등 다양한 종류의 빈대떡 메뉴를 선보인다. 고소한 녹두의 맛이 기본으로 받쳐주니 어떠한 토핑을 올려도 매력적인 맛으로 융화된다. 특히 굴을 잔뜩 올린 후 바삭하게 부쳐낸 굴 빈대떡은 특유의 굴 향과 고소한 녹두의 맛이 잘 어우러져 외국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메뉴다. 빈대떡은 막걸리와도 궁합이 좋아 한때 막걸리와 빈대떡을 메인으로 내세운 브랜드들이 시장에 대거 생겨났다. 현대적인 인테리어, 세련된 플레이팅의 빈대떡 한 상 차림을 구현하거나 옛 감성을 살린 복고풍 매장까지 콘셉트도 매우 다양하다. 최근에는 다양하게 변주된 빈대떡 메뉴에 전국각지에서 생산되는 수십 가지의 전통주를 페어링하여 선보이는 한식주점도 인기를 끌고 있다.   건강식으로도 인기 빈대떡은 한국전쟁 이후 대중화되기 시작한 길거리 음식, 추억과 애환이 묻어있는 서민 음식이라는 인상 때문에 그러한 역사적 스토리텔링을 등에 업고 현재까지도 ‘국민 안주’, ‘국민 간식’으로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여기에 ‘건강식’ 키워드까지 더해 현재는 웰빙식품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빈대떡의 주재료인 녹두가 해독과 해열 기능뿐 아니라 피부질환이나 신장 기능 강화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녹두 빈대떡을 레토르트나 HMR 상품으로 출시하는 곳도 늘고 있다. 기름을 넉넉하게 두른 프라이팬에 냉동 상태의 빈대떡을 별도의 해동 과정 없이 그대로 올려 굽기만 하면 되므로 가정에서도 간편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 게다가 가격도 합리적이고 식당에서 먹는 것만큼 맛의 완성도도 높아 꾸준히 잘 팔리고 있다.   황해원(Hwang Hae-won 黃海嫄) 월간외식경영 편집장

250이 만든 뽕의 새로운 세계

Arts & Culture 2023 WINTER

250이 만든 뽕의 새로운 세계 250은 가장 한국적인 음악이지만 모두가 외면하고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한 뽕짝이라는 장르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탄생시켰다. 그의 확고한 음악 세계가 담긴 앨범 (2022)은 한국 대중음악계를 넘어 세계가 집중했으며, 지금도 그 영역을 계속해서 넓히고 있다. 가수이자 DJ, 작곡가, 그리고 프로듀서인 250은 2023년 한국 대중음악에서 단연 돋보이는 주인공이다. 한국인의 고유 정서인‘뽕’이라는 장르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여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었다. ⓒ 비스츠앤드네이티브스 매콤한 국물과 꼬불꼬불한 뜨거운 면을 호호 불어먹는 매력이 있는 라면. 당신이 한국의 라면을 끓이는 데 처음 도전했다고 생각해 보자. 적정량의 물을 끓이고, 건더기스프와 면을 넣고…. 그런데 아뿔싸, 라면 맛의 핵심인 빨간 분말스프 가루를 넣는다는 걸 완전히 잊었다. 그것을 한국식 라면이라 부를 수 있을까? 라면에서 가장 중요한 분말스프를 빼놓고는 라면의 맛을 논할 수 없는 것처럼,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한국 대중음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 있다. 바로 뮤지션이자 프로듀서인 250이다. 이견이 없는 올해의 음악인 그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맵고 뜨거운 인물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250은 지난해 발표한 정규 1집< 뽕 > 으로 한국의 그래미상으로 불리는 제20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고 영예인 ‘올해의 앨범’과 ‘올해의 음악인’, ‘최우수 일렉트로닉 앨범’, ‘최우수 일렉트로로닉 노래’ 등 네 개 부문을 석권하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둘째, 그는 데뷔 1년 만에 한국 음악계를 뒤집어 놓은 신인 케이팝 그룹 ‘뉴진스’의 여러 곡에 참여한 프로듀서다. 250은 한국에서 구시대적이라고 폄훼하는 음악 장르인 ‘뽕짝’을 베이스로 일렉트로닉 음악이나 힙합 요소를 더하여 완전히 독창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난 250은 특유의 진지한 표정으로 앨프리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1899~1980) 감독의 영화< 이창(Rear Window 裏窓) > (1954)을 보았는지를 기자에게 물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영화< 이창 > 에서부터였다며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저는 수년 동안 뽕짝의 본질을 탐구하고 저의 음악과 접목해 보려고 했지만, 그 답을 찾는 것이 순탄치 않았어요. 답을 찾던 중 영화< 이창 > 에서 영감을 받았고< 이창 > (2018년 싱글 앨범)이란 곡을 쓰게 되었죠. 어떤 투명한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뽕’과 ‘비(非)뽕’이 서로 마주 보는 느낌이랄까요.” 뽕과 비(非)뽕, 과거와 현재, 세련됨과 촌스러움 따위가 멀리서 대면하는…. 그 형이상학적인 ‘창’은 250의 음악 세계를 설명하는 키워드다. “‘뽕’은 오묘한 단어입니다. 여러 면에서 한국인에게 특별한 감흥을 주죠. 트로트를 속되게 이르는 말인 ‘뽕짝’은 사실 북소리를 표현하는 의성어 ‘쿵짝’에서 비롯되었어요. 영어로 하면 ‘Boom Clap’ 같은 거죠. 하지만 ‘쿵짝’은 다른 장르에서도 통용될 수 있으니, 뭔가 더 우스꽝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쿵’이라는 말을 ‘뽕’으로 바꾼 겁니다. 자기비하적 측면이죠. ‘뽕’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이미지도 있어요. 1986년 상영된 성인 영화< 뽕(Mulberry) > 이요. 당시 크게 흥행하여 다양한 후속작이 나오기도 했죠. 그리고 한국에서 마약을 뜻하는 은어이기도 하고요. 우스꽝스럽거나 낯간지럽거나 어둡거나….이렇게 다층적이면서 복합적인 상징과 느낌들이 ‘뽕’, 이 단 한 음절에 축약된 겁니다.” 애수와 낭만, 즐거움이 담긴 음인 뽕짝은 한국에서 사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문화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애초에 ‘뽕’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로 담고 있으며, 일상에서 거의 쓰이지 않은 단어인 것처럼 말이다. 250은 음지에서 저평가받고 있는 뽕짝을 대중음악 세계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으며, 새로운 음악의 성취를 거둔 셈이다. 250이 탐구한 음악 세계 250은 한서대학교에서 영상 음악 제작을 전공했다. 20대부터 한국 공중파 TV 드라마의 음악을 만들었고,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전자음악 성지(聖地)인 클럽 케잌샵(cakeshop)에서 DJ로도 활약했다. 그때부터 “유별난 음악을 트는 이가 등장했다”라는 입소문이 클러버들 사이에 돌기 시작하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이후 SM엔터테인먼트의 의뢰를 받아 NCT127, BoA, f(x) 같은 메이저 케이팝 가수의 원곡에 대한 정식 리믹스 음원을 발표했다. 또 힙합 팬들이 열광하는 래퍼 이센스의< Everywhere > 와< 비행 >등을 프로듀스 했다. 그러다 그가 2018년부터 저예산 다큐멘터리 시리즈< 뽕을 찾아서 > 를 내놓기 시작했을 때만해도 음악업계에서는 “비트만 잘 만드는 줄 알았더니 코미디도 제법이다”라는 식의 가벼운 반응들이 다수였다. 2018년 싱글< 이창 > , 2021년 싱글< Bang Bus > 가 조용히 회자되더니 마침내 2022년 3월, 정규 1집 앨범< 뽕 > 이 발매되자마자 음악 팬과 평단은 그의 독창적인 음악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기 시작했다. 250은 미국 뉴욕의 할렘에 힙합이 흐르거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파벨라 펑크(favela funk) 장르가 울려 퍼지듯 뽕짝은 마치 한국이란 문화권의 배경음악 같은 것이 아니겠냐고 부연했다. 청각적으로도 ‘게토(ghetto 특정 민족이 사회의 주류 민족과 고립되어 살아가는 것)화’한 요소들이야말로 힙합 프로듀서이자 클럽 DJ 출신인 250이 뜻밖에 발견한 뽕짝의 매력이다. “대단한 연주자 또는 50인조 오케스트라가 오래전에 녹음해 둔 샘플을 후대에 조악한 장비로 구현해 낸 힙합곡들…. 거기서 풍기는 특유의 멋이란 게 있잖아요. 뽕짝도 마찬가지예요.” 그는 뽕짝을 탐구하면서 느낀 또 한 가지는 뽕짝이 한국의 식문화와도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뜨거워야 잘 먹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김치찌개나 전골처럼 맵고 뜨거워야 ‘잘 먹었다’라고 느끼는 것처럼요. 저 역시 얼마 전에 벨기에에 일주일 정도 다녀왔는데, 귀국하자마자 매니저와 김치찌개를 먹으러 기사식당에 갔어요. 한국인에게는 어정쩡한 것보다는 화끈한 것이 통하는 것처럼 ‘뽕짝’도 그런 점이 있어 통하는 것 같아요. 저는 뽕짝이 확실하게 슬픈 곡조, 그리고 확실하게 신나는 그 무언가가 투박하게 결합된 매력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250이 ‘뽕’의 세계를 탐구하기 시작한 것은 2013년경부터다. 케잌샵 DJ 시절, 동료들과 단합대회를 다녀오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뽕짝 음악이 담긴 리믹스 테이프를 샀다. 서울로 돌아가 이 음악을 리믹스 해보자며 장난처럼 의기투합한 게 시작이었다. 그 장난 같은 시작이 250을 장난이 아닌 뽕짝의 경지까지 끌고 온 셈이다.   익숙한 뽕짝의 맛 250이 만든 익숙한데 낯설고 촌스럽지만 신묘하며 힙하기 이를 데 없는 ‘뽕’의 세계에 가장 열성적인 관객은 10~20대의 젊은 세대다. 뽕짝이 한국인의 일상 가까이 녹아 있던 20세기와는 오히려 가장 거리가 먼 세대이기도 하다. “그들은 모든 것이 잘 정돈되어 있고 예쁘게 깎여 있는 시대에 살고 있죠. 그래서 도심의 반듯한 계단보다는 서울 변두리에 오래전 지어진 건물의 울퉁불퉁한 계단에 열광하며 필름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최근 빌보드 차트에서도 컨트리 장르가 득세하고 있죠. 한국 음원 차트에 트로트가 최근 몇 년 사이 인기를 끈 것과 비슷한 현상일 수 있죠.” 250이 요즘 음악 말고 빠져 있는 것도 일종의 ‘구닥다리’다. 1970~1980년대 상영된 홍콩 영화인< 소권괴초(笑拳怪招, The Fearless Hyena) > (1979년)를 비롯한 성룡(成龍 Jackie Chan)의 초기작에 나오는 비논리적 액션 장면들에 푹 빠져 있다고 했다. “언젠가는 영화음악에도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A Quiet Place) > (2018)처럼 사람들이 소리에 극도로 집중해야 하는 영화,< 인셉션(Inception) > (2010)처럼 스케일이 큰 영화,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인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 1928~2020)가 참여한 작품처럼 선율로 승부하는 영화 등 모두 욕심이 나네요.” 마침 그의 저예산 다큐< 뽕을 찾아서 > 는 2023년 여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처음으로 큰 스크린에서 공식 상영됐다. “제게 특별한 롤모델이란 없습니다만, 그저 음악 프로듀서인 퀸시 존스(Quincy Jones)나 작곡가이자 뮤지션인 류이치 사카모토(さかもとりゅういち Ryuichi Sakamoto, 1952~2023) 같은 분들처럼 이런 음악, 저런 작업 등 음악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모두 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50의 다음 프로젝트는 한국 성인영화 시리즈물의 속편 제목처럼< 뽕 2 > 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벌써 계획하고 있는 차기작의 제목은< 아메리카 > 이다. “ < 뽕 > 으로 한국 음악을 제대로 해봤으니까 이제 미국 음악을 해봐야죠. 제가 학창 시절에 동경했던 미국, 그리고 즐겨 듣던 미국 음악에 대한 환상을 담은 앨범이 될 수도 있겠어요.” 7년여간 탐구한 뽕에 대한 정의는 250의 안에서도 계속 변해왔다. 지금, 이 시점에 그가 내리는 뽕의 정의는 이렇다. “뽕짝이란 마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한국의 라면스프의 맛 같은 걸지도 모르죠. 김치찌개를 끓이다가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다 싶으면 라면스프를 조금 넣잖아요. 그럼 ‘아는 맛’ 나오잖아요. 라면스프가 고급스러운 레시피도 아니고 정답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익숙한 맛이고 입에 감기는 어떤 만족스러운 맛이라는 점은 확실하죠. 뭔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한국인이 공통으로 찾는 마지막 한 조각이랄까요.” 250이라는 이름은 그의 본명인 이호영과 비슷하게 불리길 바라며 ‘이오영’이라 썼는데, 모두가 ‘이오공’이라 부르면서 250이 되었다. ⓒ 세종문화회관 그는 첫 앨범< 뽕 > 으로 한국대중음악상에서 4관왕을 차지했다. 특히 최우수 일렉트로닉 앨범과 최우수 일렉트로로닉 노래 부분 수상은 ‘뽕’이 일렉트로니카 뮤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뜻깊다고 전한다. ⓒ 비스츠앤드네이티브스 임희윤 (Lim Hee-yun, 林熙潤) 음악평론가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바라본 우리

Arts & Culture 2023 WINTER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바라본 우리 『다른 사람』 강화길(姜禾吉) 작, 클레어 리차드(Clare Richards) 번역, 304쪽, 14.99파운드, 푸쉬킨 프레스(2023)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바라본 우리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물론 어떤 주인공들은 문제가 있고, 또 다른 주인공들은 비극적이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는 모두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만약 세상을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너무나 분명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모두 기껏해야 다른 사람들 이야기의 조연에 불과하며 때로는 악당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 말이다. 강화길 작가의 강렬한 첫 장편소설인 『다른 사람』에서 작가는 이 같은 생각을 탐구한다. 작가는 유동적 관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이야기를 제시하면서 독자에게 자신의 추측이나 가정을 매 단계에서 재검토하도록 유도한다. 소설은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젊은 여성인 김진아는 직장 내 팀장인 남자친구에게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한다. 그녀는 직장에서의 사내 연애가 알려질까 두려워 처음에는 침묵한다. 하지만 반복되는 폭력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결국 경찰에 신고한다. 그러나 그녀는 폭력 사건에 대응하는 법적 제도가 얼마나 느리고 비효율적인지 알지 못했다. 그 결과 남자 친구는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한 삼백만 원의 벌금형만 받았을 뿐, 가택 연금이나 접근 금지 등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좌절한 진아는 인터넷 게시판에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한다. 이제 그녀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모든 사람이 자신을 판단하는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 진아의 이야기만 보면 독자는 쉽게 진아의 편에 설 것이다. 특히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주장하면서도, 문제가 있는 여성들은 얼굴이 좀 별로라는 코믹스러운 성차별적 언사로 그녀를 나무라는 본부장을 보면 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을수록 독자는 진아의 이야기 속 다른 인물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이를 통해 독자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엿볼 수 있고 복잡하게 얽힌 퍼즐에서 빠진 조각들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상황을 불분명하게 만들고 진아의 믿음과 주장을 약화시키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일정한 패턴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여성 인물들의 자기 회의와 자책, 남성 인물들의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 등의 대조가 그중 하나이다. 대학교 강사가 된 진아의 옛 남자친구 동희가 학교에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게끔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신고한 여학생과 더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 그를 부당한 방법으로 이용하는 여교수 등과 맞서 싸우면서 자신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면 그를 동정하게 된다. 물론 그는 완벽하지 않다. 그런데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동시에 진아의 단짝이었던 수진이가 악의로 가득 차 진아를 증오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도 흑백처럼 선명하지 않고,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 수많은 회색 지대가 있다. 그렇다고 옳고 그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누구도 완전히 옳고 그를 수 없음을 의미할 뿐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미묘하고 절묘하다.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서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면서 그로 인해 더 큰 효과를 갖게 된다. 이 소설은 독자를 하나의 여정으로 이끌 것이다.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 어디에서 시작하든 독자는 결국 어딘가 다른 곳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되면서 어떤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북촌』 신달자(慎達子) 작, 조영실(趙永實) 번역, 106쪽, 18.95달러, 호마 앤 세키 북스(2023) 유명한 동네 산책하기 북촌에 위치한 계동의 작은 집으로 이사한 신달자 시인은 새로운 환경으로 인한 신선한 경험과 감각이 익숙함으로 무뎌지기 전 시집을 한 권 쓰기로 결심했다. 말 그대로 ‘북쪽의 마을’인 북촌은 독특한 곳이다. 콘크리트와 유리로 이루어진 대도시 서울의 심장부에 위치한 북촌은 전통가옥인 한옥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어 전통과 과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현지인과 여행객 모두가 찾는 관광지가 되었다. 시인의 시들은 북촌의 내면을 그린다. 동네의 유명한 랜드마크를 소재로 하는 시들은 호기심 많은 방문객의 가이드가 될 수 있을 정도다. 또한 시는 한옥 주거지와의 강한 연결을 보여준다. 한옥에서는 현대식 건물에서 보기 힘든 자연환경은 물론 동네의 역사와 문화와의 긴밀한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동시에 시인은 삶의 현실을 숨기려 하지 않고 질병과 외로움, 그리고 노년에 관해 쓴다. 독자는 시집을 통해 북촌을 관광하는 것 이상으로 흥미로운 산책을 하게 될 것이다. ‘한국 고전 영화’ www.youtube.com/@KoreanFilm 한국 영화 애호가들을 위한 보물 창고 한국 영화의 블록버스터 시대는 1997년 < 타이타닉(Titanic) > (1997)이 세운 국내 흥행 기록을 경신한 1999년 액션 스릴러 < 쉬리 > 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거의 매년 새로운 블록버스터 영화가 나타나 왕좌를 차지했다. 곧 세계가 주목하게 되었고 봉준호 감독의 2019년 영화 < 기생충(Parasite) > (2019)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이제 한국 영화를 알지 못하면 스스로를 영화광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 영화가 20세기 말에 와서야 스크린을 점령하게 된 것은 아니다. 한국 영화는 이미 20세기 초에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초보 영화 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유튜브 채널 ‘한국 고전 영화’에 시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다양한 영화들이 제공되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한국 영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이 자원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운영하는 이 유튜브 채널에는 1910~1945년 일제 강점기부터 1990년대까지 영화들이 포함되어 있고, 정기적으로 새로운 영화들이 추가되고 있다. 더 좋은 점은 모든 영화에 영어 자막이 옵션으로 제공된다는 점이다. 이 채널의 오랜 구독자이자 팬으로서 ‘한국 고전 영화’ 유튜브 채널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절제 속에서 빛나는 자연미

Arts & Culture 2023 WINTER

절제 속에서 빛나는 자연미 한국의 목가구는 화려한 채색이나 정교한 조각 대신 나뭇결을 활용하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드러내는 특성이 있다. 2010년 국가무형문화재 소목장 기능 보유자로 지정된 박명배 장인은 전통 목가구 기법을 계승하는 한편 철저한 도면 작업을 통해 비례미를 구현한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자신의 공방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박명배 소목장. 꼼꼼한 도면 작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그의 작품들은 간결하고 기품 있는 전통 목가구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나무를 다루는 목수는 건축물을 짓는 대목(大木)과 가구나 각종 기물을 만드는 소목(小木)으로 구분한다. 전통 목공 기법으로 장롱, 문갑, 책상 등을 만드는 장인을 소목장(小木匠)이라고 한다. 기교가 화려했던 고려 시대(918~1392)와 달리 조선 시대(1392~1910)의 공예품은 유교적 영향으로 소박함과 절제미가 돋보인다. 소목장 박명배(Park Myung-bae, 朴明培)의 작품은 조선 시대 목가구의 전형을 나타내면서도 화장판(化粧板, 가구의 앞면)의 재질로 인해 수려한 느낌을 준다. 간결한 선과 판재의 역동적 무늬가 어우러진 그의 작품은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현대적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목수에게 용목(龍目)이 없으면 속 빈 강정이죠. 나뭇결은 인위적으로 만든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답고, 자연 그대로이니 싫증이 나지 않아요. 전통 가구는 장식이나 조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나뭇결 자체를 잘 살려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박 장인이 마치 용이 뒤엉킨 것 같은 오래된 느티나무의 나뭇결을 좋아하는 이유다. 그의 말처럼 나무가 만들어 내는 무늬들은 한 폭의 산수화처럼 아름답다. 기술력과 창의성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의 기능 보유자 문하에서 오랜 시간 수련하며 전수자, 이수자, 전승교육사의 과정을 거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박 장인은 이와 달리 전승 계보가 없다. 특정 소목장의 제자로 들어가 기술을 전수받지 않았다는 얘기다. 21세 때인 1971년 전국기능경기대회 목공예 부문 1위를 시작으로 스스로 능력을 입증해 인정받았다. 1989년에는 동아(東亞)일보사가 주최한 동아공예대전에 목리반(木理盤)을 출품해 대상을 받았고, 1992년에는 한국문화재재단이 주관하는 전승공예대전에서 의걸이장(欌)으로 대통령상을 받았다. 도면 구성에만 1년이 걸린 이 작품은 판재로 사용한 소나무를 인두로 지져 독특한 색감을 냈다. 그가 고안해 낸 방법이다. “원래 이 기법은 오동나무를 써요. 오동나무판을 인두로 지져 태운 후 솔이나 짚으로 문지르면 무른 부분은 검게 패고 단단한 부분은 덜 파여 나뭇결대로 무늬가 생기죠. 그 무늬가 질박하고 품위가 있어 예로부터 사랑방(舍廊房) 가구에 많이 쓰였습니다. 이 기법을 소나무에 적용해 수려한 문양을 내 봤는데 큰 상을 받았죠.” 박 장인은 바티칸박물관 한국관에 들어가는 가구 일습을 비롯해 미국 LA와 워싱턴D.C., 독일 베를린, 폴란드 바르샤바, 일본 오사카 등 세계 주요 도시의 한국문화원에 들어간 사랑방 가구를 제작했다. 또 고종(高宗)황제(재위 1863~1907)가 태어난 저택인 서울 운현궁(雲峴宮)을 복원할 때 100여 점에 이르는 가구 제작을 총괄하기도 했다. 전통 목가구의 제작 기법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뛰어난 기량 덕분이었다. 한국의 전통 목가구는 못이나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부재에 홈을 파서 끼워 맞추는 결구법을 사용한다. 박 장인은 젊은 시절 내로라하는 목수들을 찾아다니며 70여 가지의 짜맞춤 방식을 배웠다.   특별한 인연 비록 계보는 없지만, 그에게도 스승이라 할 만한 특별한 인연이 있긴 했다. 1950년 충청남도 홍성(洪城)에서 태어난 그는 집안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 졸업 후 상급 학교에 진학할 형편이 못 됐다. 18세 때 서울로 올라와 목수인 친척 형의 소개로 당시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공예과 최회권(崔會權) 교수의 공방에 들어갔다. 상업적으로 제작해 파는 가구가 아니라 목공예 작품을 먼저 접한 것이다. “예전에는 교수나 전공자는 디자인만 하고 제작은 목공소에서 해 주는 경우가 많았어요. 최 교수님 공방에서 심부름을 도맡아 하며 작품을 기획하고 완성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았죠. 대학에서 공부하지는 못했지만, 교수님 공방에서 더 많은 것들을 배웠다고 생각해요.” 몇 년 후 최 교수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공방이 문을 닫자 그는 진로를 고민해야 했다. “현대 공예는 작가주의적 성향이 강해서 저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장인 기질이 요구되는 우리 전통 가구 쪽으로 방향을 틀었죠.” 그는 이름난 목수들에게 못을 쓰지 않고 목재에 홈을 파서 짜맞추는 70여 가지 전통 짜맞춤[結構] 방식을 배웠다. 수년에 걸쳐 나무를 말리고 다스려서 숨통을 틔워 주는 결구법은 소목의 핵심 기법이다. 소목장이 갖춰야 할 기능적인 면을 두루 익힌 그는 30세가 되던 1980년에 독립했다. 최상의 도면 자신의 공방을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최순우(崔淳雨, 1916~1984)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는 그의 목공예 인생에 큰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최 관장은 한국 미술사학의 기초를 마련한 학계의 큰 스승으로 박 장인에게 전통 공예의 철학과 안목을 가르쳐 주었다. 박 장인은 최 관장을 통해 전통 가구의 비례미에 눈을 떴다. 우리 가구는 앞면을 테두리로 분할하고, 나뉜 면에 무늬 좋은 목재를 쓴다.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는 여름과 겨울의 온도 및 습도 차이가 크다. 그래서 판재를 통으로 쓰면 시간이 지나면서 뒤틀리기 때문에 면을 나눠야 한다. 기능적인 이유로 면을 분할하지만 이를 통해 아름다운 비례가 생기니, 어떤 비율로 면을 쪼개느냐가 관건이다. 1984년 그는 청와대에 전통 안방을 꾸미면서 판재 선별부터 디자인, 비례와 형식, 제작 공정에 이르기까지 최 관장의 세밀한 가르침을 받았다.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솜씨 좋은 목수를 불러들여 집 안 분위기에 맞는 가구를 합작으로 만들어 냈던 것처럼 그도 최 관장과 합심해서 조선 시대 가구의 원형을 되살려냈다. 최 관장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인연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는 지금도 최 관장과 작업할 때와 마찬가지로 일대일 도면 그리기를 고수한다. “가구 도면을 실물 크기 그대로 그려서 벽에 붙여 놓고 자꾸 들여다봅니다. 그러면 어제 안 보이던 것이 오늘 보이고, 어제는 괜찮아 보였는데 오늘은 고쳐야 할 게 눈에 들어오죠. 시간을 두고 수정하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해 최상의 도면을 완성합니다.” 뒤틀림 없이 깔끔한 비례미를 자랑하는 그의 작품은 이처럼 꼼꼼한 도면 작업을 거쳐 만들어진다. 재현은 하되 복제는 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진 그는 지금도 짬이 날 때마다 스케치하며 디자인을 구상한다. 두 딸을 비롯해 19명의 이수자들과 많은 교육생들을 배출한 그는 올해 18번째를 맞는 < 소목장 박명배와 그의 제자전 > 을 해마다 거르지 않는다. 전통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 아직도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결한 면 분할과 나뭇결로 인해 단아하면서도 화려함이 풍기는 사층 책장. 전통 가구는 목재의 수축 및 팽창으로 인한 변형과 파손을 막기 위해 가구 전면을 분할하는데, 이를 통해 아름다운 비례와 조형미가 생겨난다. 화장판의 나뭇결이 아름다운 박 장인의 머릿장. 머리맡에 두고 물건을 보관하는 용도의 단층 장이다. 남성들은 중요한 문서를 보관하기 위해, 여성들은 간단한 옷가지를 수납하는 데 주로 사용했다. 반닫이는 앞면의 위쪽 절반을 아래로 젖혀서 여는 가구이다. 빈부에 상관없이 집집이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던 필수품이었고, 지역별로 다른 특징을 나타낸다. 사진은 앞면 중앙에 호리병 모양의 경첩 장식이 달려 있는 강화(江華) 반닫이.   이기숙(Lee Gi-sook, 李基淑)자유기고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

Arts & Culture 2023 WINTER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 정보라는 일상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과 공포를 초현실적으로 그려내는 소설가이다. 속도감 있게 읽히는 그녀의 소설은 독자들에게 재미와 더불어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작가는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해 최근에는 고통을 없애주는 신약이 개발된 세상을 배경으로 한 네 번째 장편 『고통에 관하여』를 발간했다.. (왼쪽부터) 갈매나무의 장르 문학 전문 브랜드 퍼플레인이 2023년 발간한 신작 소설집 『한밤의 시간표』, 알곤킨 북스(Algonquin Books)가 2022년 펴낸 『저주토끼』 미국판, 지식 콘텐츠 기업 인플루엔셜의 문학 전문 브랜드 래빗홀에서 2023년 출간된 『저주토끼』 개정판, 다산책방에서 2023년 발행된 신작 장편소설 『고통에 관하여』, 2021년 혼포드 스타(Honford Star)가 발간한 『저주토끼』 영국판 표지. ⓒ 갈매나무 ⓒ Algonquin Books ⓒ 인플루엔셜 ⓒ 다산책방 ⓒ Honford Star Ltd. 2022년 5월 22일 런던 사우스뱅크센터 퀸엘리자베스홀에서 개최된 부커상 낭독회에 정보라 작가가 『저주토끼』의 번역가 안톤 허와 티셔츠를 맞춰 입고 참석했다. ⓒ 셔터스톡, 사진 Andrew Fosker 2022년, 정보라의 소설집 『저주토끼(Cursed Bunny)』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그런가 하면 올해는 미국판이 전미도서상 번역 부문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10편의 작품이 실린 이 소설집은 호러, 판타지, SF 같은 장르적 장치를 통해 일상에서 느끼는 공포와 압박을 오싹하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출간된 지 5년이 지난 이 책은 국내 서점가에서도 뒤늦게 베스트셀러가 되며 큰 화제를 일으켰다.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난 정보라는 연세대학교 졸업 후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러시아동유럽 지역학 석사 과정을 거쳤으며, 인디애나대학교에서 러시아 문학과 폴란드 문학에 대한 논문을 써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학에서 돌아온 이후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해 여러 편의 장편과 단편집들을 출간했다. 최근에는 대학 강의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활발히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독일 베를린국제문학축제에 초청되어 글로벌 작가들과 토론을 마치고 귀국하던 9월 어느 날, 서울 홍대 입구의 한 카페에서 작가를 만났다. 지난해 『저주토끼』가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라 집중 조명을 받았다. 이후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글로벌 독자들이 SNS를 통해 나에게 직접 감상을 얘기해 주었다. 어느 나라 독자들이나 모두 화장실 가기가 무섭다고 하더라. 수록작 중 하나인 「머리(The Head)」에 변기에서 머리가 나오는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는 그다지 변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다만 소재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 당신의 소설에 나타나는 ‘환상성’을 글로벌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궁금하다. 이번 베를린문학축제에서 호러와 마술적 리얼리즘, 두 세션에 참가했다. 둘 다 다른 작가들과 대담하는 세션이었는데, 나는 귀신 이야기를 많이 했다. 12~13세기에 편찬된 우리나라 역사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기이한 사건들과 신묘한 동물들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 사고방식은 비슷한 것 같다. 이런 이야기는 매우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시각이 확장되는 느낌이 든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행사에서도 귀신 얘기를 했는데 다들 열광했다. 그리고 질의응답 시간에 독자들이 아주 적극적이었다. 한국의 상황에 대해 관심도 많고 질문 수준도 높았다. 한국만의 독특한 환상성은 다른 나라와 무엇이 다른가? 소재나 내용이 다를 뿐이지 현실에서 초월적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은 전 세계가공통적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한국만의 색깔을 찾는다면 단지 배경이 한국이라는 점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글로벌 독자들이 내 소설에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외할머니, 그리고 귀신이 나오는 TV 드라마< 전설의 고향 > (1977~1989)을 보며 성장한 바탕이 작품에 영향을 끼쳤는가? 그렇다.< 전설의 고향 > 은 어딘가에서 기이한 일이 일어나고 귀신도 등장하는 드라마이다. 흥미진진해서 어렸을 때 즐겨 봤다. 올해 봄 출간한 소설 『호(狐)』는 여우에게 홀린 한 남자의 이야기인데, 드라마처럼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상상 속 동물 구미호(九尾狐)가 등장하긴 하지만 현대를 배경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행동주의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 쓰는 일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도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시위를 막 마쳤을 때 들었다. 나는 머릿속에 주저앉아 상상만 펼치는 삶을 경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편이다. 그리고 문학의 기능 중 하나가 독자들에게 위안을 주는 것인데, 작가로서 욕심을 내본다면 그들이 내 작품을 읽고 복잡다기한 감정을 최대한 느꼈으면 좋겠다. 환상을 도구로 사용하지만, 사실주의 작가의 속성을 담고 있는 셈인가? 마술적 리얼리즘의 특징 중 하나가 기이한 사건에 대해서 굉장히 현실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거다. 사람에 대해서 쓰면 결국은 현실적인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에게 소설을 쓰는 행위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나름대로 이해해 보려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동안 러시아와 폴란드 작품들을 상당히 많이 번역했다. 번역 일이 소설 쓰는 데 도움이 되는가? 오랫동안 번역 일도 해 왔는데, 소설 쓰는 법을 많이 배웠다. 우선 문장을 한국어로 옮겨야 하니까 문장력 향상에 도움이 됐다. 또 이야기를 전개하거나 새로운 관점,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 같은 중요한 요소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특히 나는 모든 새로운 시도들이 각광받았던 시기의 슬라브 문학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글로벌 독자들이 당신의 소설을 어떻게 읽기를 바라는가? 독자가 없으면 작가도 없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독자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작가가 되는 느낌이다. 무한히 감사드린다. 『저주토끼』가 많은 나라들에서 번역됐는데, 원작과의 차이점을 생각하지 말고 번역가를 전적으로 신뢰하면 좋겠다. 앞으로 어떤 작품들을 계획하고 있는가? 유토피아를 계속 추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어떻게 해야 모두가 더 행복한 사회를,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계속 쓸 예정이고, 또 행동할 것이다. 그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귀신 이야기도 계속 쓰려고 한다. 정보라의 2017년 작 『저주토끼』는 번역가 안톤 허의 제안으로 2021년 영국 혼포드 스타에서 영어로 번역, 발간되었으며 이듬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정보라의 소설들은 대체로 기괴하고 비일상적이지만, 그 이야기들은 일상에서 흔히 마주치는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작가의 분노에서 출발한다. 조용호(Cho Yong-ho, 曺龍鎬) UPI뉴스 문학 전문 기자(Culture Desk Reporter, UPI News)

해외에서 돌아온 문화유산들

Arts & Culture 2023 WINTER

해외에서 돌아온 문화유산들 현재 해외에 소재한 한국의 문화재들은 22만 9천여 점(2023년 1월 기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가운데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설립 이후 지금까지 기증과 매입 등을 통해 환수한 문화재는 1,200여 건(2023년 8월 기준)이며, 그중 가치가 높은 유물들은 보물로 지정되고 있다. < 묘법연화경 권제6(妙法蓮華經 卷第6) > . 14세기 제작 추정. 감지에 금·은니 필사. 27.6 × 9.5 ㎝(접었을 때), 27.6 × 1,070 ㎝(펼쳤을 때), 두께 1.65 ㎝. < 묘법연화경 권제6 > 은 올해 3월 일본에서 환수한 고려 사경(寫經)으로, 경전의 주요 내용을 그린 변상도(變相圖)와 경문(經文)으로 구성돼 있다. 사경이란 불교 경전을 옮겨 적은 것을 말한다.< 묘법연화경 > 은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설파하는 경전으로, 한국의 불교 사상이 확립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 국립고궁박물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 7월 미국인 민티어 부부(Gary Edward Mintier & Mary Ann Mintier)에게 한국 근현대 미술품들과 직접 촬영한 사진 등 총 1,516점의 소장품을 기증받았다. 이 기증품들은 이들 부부가 1969년부터 1975년까지 서울과 부산에 거주하면서 한국 문화에 매료돼 수집하고 촬영했던 것들이다. 이 중에는 근대기 회화의 다양성을 살펴볼 수 있는 유물을 비롯해 희소 가치가 높은 자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1970년대 부산의 풍경과 생활사를 촬영한 사진들은 우리 현대사의 생생한 한 장면을 보여 주는 귀한 자료였다. 부산박물관은 이를 기념하여 한 달 동안< 1970년 부산, 평범한 일상 특별한 시선 > 이라는 제목의 특별 전시를 개최하기도 했다. < 대동여지도 > . 19세기. 30 × 20 cm(각 첩), 약 6.7 × 약 4 m(펼쳤을 때). < 대동여지도 > 는 조선의 지리학자인 김정호(金正浩)가 1861년 처음 제작하여 간행하고, 내용 일부를 수정해 3년 후 다시 발행한 22첩의 전국 지도이다. 이번에 환수된 지도는 1864년 판본에 김정호가 제작한 또 다른 전국 지도인< 동여도(東輿圖) > 의 내용이 추가되어 보다 상세한 지리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목록을 포함해 총 23첩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화재청 제공 선의의 기증 2012년 설립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오래 기간에 걸쳐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해외에 유출된 국내 문화유산 실태를 조사하고, 현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유물이 더 잘 보존, 관리, 연구, 활용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편 기증이나 매입 등의 방식으로 문화유산을 환수하는 일을 담당한다. 이 기관에 의하면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유산은 2023년 1월 기준으로 27개국 22만 9,655점에 이른다. 국가별로는 일본에 가장 많은 9만 5천여 점이 있고, 미국에도 6만 5천여 점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해외 소재의 문화유산을 환수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유물을 소유한 개인이나 기관, 국가가 돌려주기를 거부하면 방법이 극히 제한된다. 불법적으로 유출된 경우라 하더라도 현재의 국제법을 감안하면 환수가 어려운 건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환수는 주로 개인이나 기관·국가의 자발적 기증, 외교적 협의에 따른 반환, 경매나 개인적 거래를 통한 구입, 장기 임대 형식을 띤 사실상의 반환 등으로 이뤄진다. 그중 소장자의 선의에 따른 기증 형식의 환수가 가장 많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환수된 문화유산은 2023년 8월 기준 1,204건 2,482점이며 그중 상당수가 기증을 통해 돌아왔다. 자신의 돈과 시간, 노력을 들여 애써 수집한 재산을 공공 자산화한다는 것은 숭고하고 위대한 행위이다. 이렇게 기증받은 문화유산 중에는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정문화재가 되는 경우들도 있다. 2018년 보물로 지정된 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粉靑沙器 象嵌 ‘景泰5年銘’ 李先齊 墓誌)가 대표적이다. 이는 조선 시대 학문 연구 기관인 집현전에서 활동했던 학자 이선제의 묘지(죽은 사람의 이름, 신분, 행적 따위를 기록한 글)로, 당시 묘지석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되어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유물은 일본인 미술품 수집가인 남편 도도로키 다타시(等々力孝志) 타계 후 아내 도도로키 구니에(等々力邦枝)가 2017년 무상 기증의 뜻을 밝혀 우리나라로 돌아오게 되었다. < 일영원구(日影圓球) > . 1890. 동, 철. 높이 23.8 cm, 구체 지름 11.2 cm. 조선 시대의 일반적인 해시계가 반구(半球) 형태인 것과 달리 일영원구는 꽃잎형 받침 위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원구를 올렸다. 당시 과학 기술의 발전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유물이다. 2022년 3월 미국 경매를 통해 매입한 문화재이다. ⓒ 국립고궁박물관 희소성 높은 유물들 올해 돌아온 유산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조선(1392~1910) 후기에 제작된 한반도 지도인<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 와 고려 시대(918~1392) 유물인 『묘법연화경 권제6(妙法蓮華經 卷第6)』이다. 이번에 환수한< 대동여지도 > 는 기존에 국내 기관들이 소장하고 있던< 대동여지도 > 와 구성과 내용이 달라 더 의미가 깊었다. 조선 시대 지리학자이자 지도 제작자인 김정호(金正浩, 1804 추정~1866 추정)가 1864년 목판에 지도를 새기고 이를 인쇄한 가로 3.3m, 세로 6.7m 크기의 지도이다. 일본인 소장자가 판매에 나서면서 그 존재가 확인됐고,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구입해 환수했다. 『묘법연화경 권제6』은 불교 경전인 『묘법연화경』 일부를 종이 위에 필사한 것이다. 경전을 정성스럽게 종이에 베껴 쓰고 또 고급스럽게 꾸민 유물을 사경(寫經)이라 한다. 이 사경은 한국의 전통 천연 염색 재료로 지금도 이용되는 쪽물을 닥종이에 물들인 후 그 위에 금가루와 은가루를 전통 접착제인 아교에 개어 글자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희귀한 이 유물은 일본인 소장자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매도 의사를 밝혀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난해인 2022년에는 모두 10점이 환수됐는데, 그 중에서 19세기 휴대용 해시계인 ‘일영원구(日影圓球)’가 크게 주목받았다. 이 유물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구형(球形) 휴대용 해시계로, 조선 시대 과학 기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 준다. 개인 소장자가 미국 경매에 내놓은 것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낙찰받아 국내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   국가지정문화재 최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환수한 문화유산 중에서 16세기 작품인< 독서당계회도(讀書堂契會圖) > 와 『문조비 신정왕후 왕세자빈책봉 죽책(文祖妃 神貞王后 王世子嬪冊封 竹冊)』이 올해 보물로 지정되었다. ‘계회도’는 회합 장면을 그리고, 참석자들의 인적 사항도 적어 넣은 그림을 말한다. 지난해 미국에서 환수된< 독서당계회도 > 는 1531년에 당시 현직 관료들이 자신들의 모임을 기념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인 소장자가 미국 경매에 내놓은 것을 낙찰 받아 환수했다. 한편 『문조비 신정왕후 왕세자빈책봉 죽책』은 프랑스의 개인 소장자가 경매에 내놓은 것을 2018년 국내 한 기업이 매입해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기증했다. 죽책이란 왕세자, 왕세자빈, 왕세손 등을 책봉할 때 그에 관한 글을 대나무쪽에 새겨서 수여하는 문서이다. 이 죽책은 헌종(憲宗, 재위 1834∼1849)의 어머니인 신정왕후(神貞王后) 가 효명세자의 세자빈으로 책봉된 1819년에 제작된 것으로, 조선 왕실의 중요한 의례 상징물로 빼어난 예술성과 왕실 문화의 품격을 보여 준다. 특히 이 유물은 조선 왕실의 서적을 보관하던 강화도 외규장각(外奎章閣)에 있었던 것으로 1866년 병인양요 때 다른 서적들과 함께 불에 타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다가 다시 돌아와 주목을 받았다. 다양한 방식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문화유산들은 전문가들의 조사, 연구와 과학적 보존 처리를 거쳐 박물관, 미술관 같은 전문 기관에 소장된다. 이후 보존과 관리를 받으며 연구와 전시, 교육을 위한 소중한 역사적, 문화적 자료로 활용된다. < 문조비 신정왕후 왕세자빈책봉 죽책(文祖妃 神貞王后 王世子嬪冊封 竹冊) > . 1819. 대나무, 황동, 견. 25 × 102 cm. 신정왕후가 효명세자의 세자빈으로 책봉된 해에 제작된 것으로, 조선 왕실의 전형적인 죽책 형식을 엿볼 수 있으며 공예품으로도 뛰어난 예술성을 지녔다. 책봉 대상자의 인적 사항을 비롯해 착한 일은 권하고 나쁜 일은 금하는 당부가 적혀 있다. ⓒ 국립고궁박물관

땅의 건축가 조병수

Arts & Culture 2023 WINTER

땅의 건축가 조병수 유기성과 추상성의 만남, 거침 속의 세련됨, 세련됨 속의 무심함…. 이는 비평가들이 조병수의 건축을 설명하는 말들이다. 그는 한국적인 자연스러움과 모더니즘의 추상성이라는 양 극단을 버무려 내는 건축가로 통한다. 그의 작업에는 오랜 시간 탐색해 온 한국 문화와 사상, 건축의 본질에 대한 태도가 담겨 있다. 건축가 조병수의 대표작 중 하나인 땅집(Earth House)은 땅 위에 건물을 세우는 대신 과감하게 땅을 파고 내려가 대지가 집을 품을 수 있도록 설계한 집이다. ⓒ 김용관(Kim Yong-kwan, 金用官) 건축가의 또 다른 대표작인 ㅁ자집(Concrete Box House)은 13.4 × 13.4 m 크기의 정사각형 공간 중앙에 5 × 5 m의 개구부를 만들어 내부 공간과 바깥이 연결되도록 디자인했다. ⓒ 황우섭 조병수에게 땅은 건축적 화두이다. 그는 주어진 지형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땅을 덜 훼손하는 방법을 택하며, 건축물을 매개로 인간이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데 집중한다. ⓒ 텍스처 온 텍스처(texture on texture) 『현대 건축: 비판적 역사(Modern Architecture: A Critical History)』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힌 현대 건축의 역사서다. 영향력 있는 건축 역사학자인 케네스 프램튼(Kenneth Frampton)은 2020년 출간한 이 책의 다섯 번째 개정판에서 처음으로 한국 건축을 언급했다. 현대 건축에 늦게 진입한 한국의 상황과 함께 대표적 건축가로 김수근(Kim Swoo-geun, 金壽根, 1931~1986)과 조병수, 조민석(Minsuk Cho, 曺敏碩)을 소개했다. 왕성하고 꾸준하게 자신의 작업을 알려 온 조병수가 본격적으로 국제 무대에 선 순간이었다. 1978년,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세종문화회관이 완공되어 열린 기념 전시에서 건축 도면을 처음 본 그는 건축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막연히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기왕이면 마크 트웨인의 고향 근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울 청계천 헌책방에서 마크 트웨인의 『What Is Man?』이라는 책을 봤어요. 인간을 매우 부정적으로 그려서 충격을 받았죠. 저에게 큰 질문을 던졌어요.”이 책을 기회로 인간에 대한 믿음은 그의 삶에서나 건축에서나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그가 이성과 감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감성적인 건축을 하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경험적 건축 미국의 한적한 시골, 몬태나대학의 생활은 단조로웠다. 그런데 어느 날 무심코 바라본 하늘은 별 볼 일 없던 시골 풍경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했다. 특히 몬태나의 농업 창고는 그에게 강렬한 영감을 주었다. 그는 담백하면서도 꾸밈없는 이 실용적인 건물이 한국 전통 건축의 태도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한 후에는 자신의 건축 주제인 ‘경험과 인식’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서구에서는 현대 건축에 대한 회의와 반성이 일고 있었다. “맥길대학교(McGill University) 교수인 알베르토 페레스 고메스(Alberto Pérez-Gómez)의 『현대 과학의 위기와 건축(Architecture and the Crisis of Modern Science)』이 감명 깊었어요. 케네스 프램튼의 「비판적 지역주의를 향하여」 같은 글도 그렇고요. 현대 건축에 대한 반성은 자연과 소통하는 인간의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건축에 그 대안이 있다고 생각했죠.” 그는 한국 건축이 자연과 융화하는 점, 지나치게 섬세하지도 않고 과장되지도 않아 자연스럽고 편안한 점에 착안했다. 그것은 시각적인 비례나 형태를 넘어선 ‘경험적인 건축’을 추구하는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대학원 졸업 논문은 이에 대한 모색이었다. 그는 사람이 공간에 들어가 무엇을 경험하는지, 그 경험을 통해 어떻게 자연을 인식하게 되는지, 그리고 구조물과 여백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주목한다. 박스 시리즈 음악 스튜디오와 거주 공간을 겸한 카메라타의 건축 스케치. 조병수 제공 3층짜리 건물인 카메라타의 1층은 음악 스튜디오로 사용된다. 창고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내부에 기둥과 보를 없애고, 서쪽의 긴 콘크리트 벽면은 거친 질감을 표현했다. 사진에서 보이는 천장은 와이어로 달아맨 2층 메자닌의 바닥면으로, 흡음을 위해 목재 사이사이에 틈을 만들었다. ⓒ 김종오(KimJong-oh, 金鐘五)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조병수는 건축가로서 본격적으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어유지마을 프로젝트에서 시도한 합판 위 스테인리스 마감, 갈바륨 지붕과 얇은 기둥은 한정된 예산을 고려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간결한 디테일과 재료의 조합으로 흥미로운 구성을 만들었다. 그의 말마따나 비용을 저렴하게 들일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하다 보면 친환경적인 건축물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ㅁ자집과 카메라타(Camerata)는 그의 건축 세계를 보여 주는 대표작이다. ㅁ자집은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그의 세컨드하우스로, 대학원 졸업 논문에서 제안했던 개념을 구현했다. 전형적인 한옥 마당을 연상시키는 네모난 중정과 10개의 굵직한 한옥 고재는 전통 건축 양식을 차용한 것이라기보다는 빛, 바람, 하늘 같은 자연환경을 건물 내부로 들이기 위한 의도가 강했다. 이 집의 구조적인 실험도 눈여겨볼 만하다. 단조로운 콘크리트 박스를 만들기 위해 그는 방수제를 쓰지 않고 양생(養生, curing) 중에 콘크리트를 두드리는 방식으로 자연 방수를 시도했다. 수축 비율이 다른 콘크리트와 목재를 직접 연결한 과감한 시도도 성공적이었다. 이로써 실내는 보 없이도 10개의 목재가 5~6m 간격으로 힘을 적절히 분산할 수 있었고, 지붕은 파라펫 없는 정사각 평면이 될 수 있었다. 목재의 수축 방향과 콘크리트 처짐에 관한 지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카메라타는 유명한 디스크자키인 황인용(黄仁龍)의 음악 스튜디오이자 집이다. 조병수는 소리의 경험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다가 몬태나의 시골 창고를 떠올렸다. 어둑한 공간을 한줄기 빛과 음악 소리만으로 채우겠다는 과감한 아이디어는 황인용이 어린 시절 경험했던 소금 창고의 기억과 맞물리며 공감을 얻었다. 내부에 기둥을 없애고 2층 메자닌을 와이어로 달아맨 공간은 청각적 경험을 살리고자 한 접근이었다. 음향 문제는 공사비를 고려해 천장 콘크리트를 거칠게 켜를 내 흡음판 역할을 하게 했다. 한편 두 개의 상자, 즉 음악 스튜디오와 집 사이에는 중정을 만들었다. ㅁ자집과 카메라타 이후 단순한 형태의 상자들을 조합해 사이 공간을 만들며 건축 너머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한 박스 시리즈가 이어졌다. 그의 건축은 단조로운 상자에서 출발해 꺾이거나 뒤틀리며 역동성을 갖는 방향으로, 또 직선에서 곡선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땅에 대한 고찰 총 6평 규모의 땅집은 방 두 개와 서재 하나, 부엌, 화장실, 보일러실이 각각 1평씩 구성되어 있다. 마당으로 난 두 개의 방문을 비롯해 집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또한 허리를 숙여야 할 만큼 작은데 이는 절제와 성찰, 겸허함을 표현하기 위한 건축가의 의도이다. ⓒ 김용관 조병수의 실험은 땅집으로 이어졌다. 과감하게 땅을 파고 들어간 이 건물은 땅에 대한 그의 친숙함에서 출발했지만, 공간을 단순화할수록 하늘과 나무, 별과 바람을 더 잘 느낄 수 있다는 신념도 한몫했다. 이러한 태도는 바닷가 경사지에 건물을 묻어 사람들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바다와 연결하고 공간을 땅의 품속에 안기게 한 지평집에서도 이어진다. 땅에 대한 관심은 그가 올해 총감독을 맡은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서 더욱 확장되었다. 옛 한양의 산길, 물길, 바람길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던진 이 질문은 산으로 둘러싸인 서울 본연의 지형을 잇고, 물길을 연결하고, 바람이 지나가는 쾌적하고도 걷기 좋은 물리적 환경을 만들기 위한 제안이었다. 최근 영국 템스 앤 허드슨(Thames & Hudson) 출판사가 발간한 『Byoung Cho: My Life as an Architect in Seoul』에서도 그가 나고 자란 서울의 자연 환경,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여러 건축물을 소개하며 서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들려준다. 그가 말하는 땅은 추상적이고 인문적인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공간 경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물리적인 실체이다. “나는 자연환경, 문화적 환경, 그리고 맥락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에요. 그중에서도 특히 지형, 바람, 물과 같은 물리적인 콘텍스트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그의 집과 사무실, 그리고 그가 설계한 건축물들을 통해 한국의 도시들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잃어버렸던 공간의 원형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여전히 산책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즐겁게 작업하며, 하루 일과 끝에 친구들과 와인 한잔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일상을 유지한다. 달라이 라마가 말하는 관계성을 되새기며 감성적인 건축을 실천하고자 한다. 건축가로 살아온 지 이제 30년, 그에게 건축은 여전히 삶의 따뜻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자 흥미로운 놀잇거리이다. ㅁ자집은 10개의 고재를 5미터 간격을 두고 20센티미터 두께의 콘크리트 지붕과 연결했다. 수축 비율이 다른 목재와 콘크리트의 결합은 건축가의 실험 중 하나였으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 텍스처 온 텍스처 지평집은 땅의 복잡한 등고를 따라 스며들 듯 지어졌다. 콘크리트 벽체의 틈에서 이 지역의 자생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건축물이 자연과 교감할 수 있도록 한 건축가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다. ⓒ 세르조 피로네(Sergio Pirrone)

Arts and Culture Calendar 9월 ~ 11월

Arts & Culture 2023 AUTUMN

Arts and Culture Calendar 9월 ~ 11월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올해로 열세 번째를 맞은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가 ‘사물의 지도 - 공예, 세상을 잇고, 만들고, 사랑하라’라는 주제로 열린다. 비엔날레의 주제를 대변하는 본 전시에는 약 20개국 90명 내외 작가가 참여해 인간의 노동, 소재, 기술,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서 공예의 미래를 탐색한다. 기간: 2023. 9. 1.~10. 15. 장소: 문화제조창 및 청주시 일원 홈페이지 : www.okcj.org 제4회 2023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2년마다 개최되는 국제 행사로 전 세계 도시와 교류하는 글로벌 네트워크 플랫폼이다. 올해는 건축가 조병수(趙秉秀) 가 총감독을 맡아 ‘땅의 도시, 땅의 건축’을 주제로, 역대 주제였던 ‘공유도시’, ‘집합도시’, ‘크로스로드, 어떤 도시에 살 것인가’에서 나누었던 도시에 대한 논의를 이어간다. 기간: 2023. 9. 1.~10. 29. 장소: 열린송현녹지광장,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일대 홈페이지 : www.seoulbiennale.org Blurring Boundaries : 한복을 꺼내다 한국 전통 문화의 창조적 계승을 목표로 활동하는 비영리 민간단체인 아름지기에서 올해 일곱 번째 ‘의(衣)문화’전시로 의상 디자이너 크리스티나 김 작가의 리얼웨어로서의 한복을 선보인다. 전시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작은 변화만 주어도 한복 그 자체로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 일상복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간: 2023. 9. 2. ~ 11. 15. 장소: 아름지기 통의동 사옥 홈페이지 : www.arumjigi.org 전주세계소리축제 올해로 22주년을 맞이한 전주세계소리축제는 한국의 전통음악인 판소리를 근간으로 세계 음악을 한 자리에서 즐기는 전주 최대의 문화예술제이다. 올해는 ‘상생과 회복(Coexistence and Resilience)’을 주제로 호주, 캐나다 등 해외에서도 13개국이 참여하고 89개 프로그램이 총 105회 공연된다. 기간: 2023. 09. 15.~9. 24. 장소: 한국소리문화의전당 홈페이지 : www.sorifestival.com DMZ OPEN 페스티벌 정전 70년을 맞이한 2023년, 더 큰 평화를 목표로 한DMZ OPEN 페스티벌이 시작됐다. 지난 5월부터 진행된 페스티벌은 DMZ 생태가치확산과 한반도평화 공감대 형성을 위한 것으로, 임진각 평화누리와 연천, 파주, 김포 등 DMZ 접경지역에서 DMZ 생태ㆍ평화ㆍ역사ㆍ학술ㆍ스포츠ㆍ문화ㆍ관광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기간: 2023.5. 20.~2023. 11. 11. 장소: 임진각 평화누리 일대 및 DMZ 접경지역 홈페이지 : www.dmzopen.kr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THIS TOO, IS A MAP)’라는 주제로 열리는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디아스포라, 이주, 언어와 경계처럼 기존의 개념을 다시 보고 새롭게 읽기 위한 ‘지도 그리기’로 기획됐다. 이를 통해 물리적이고 문화적인 이주로부터 생겨난 사회적 경계를 인식하고, 다양한 미디어 환경으로 야기되는 복합적인 연대를 통해 지리적 영토에 국한하지 않는 예술적 소통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기간: 2023. 9. 21.~11.19.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역사박물관, SeMA 벙커 등 홈페이지 : www.mediacityseoul.kr 28회 부산국제영화제 다양한 영화와 재능 있는 영화인을 발굴하고 지원하며 아시아 영화를 전 세계에 알려온 부산국제영화제가 오는 10월 4일부터 13일까지 열린다. 영화제는 작품 소개뿐만 아니라 관객과의 대화, 액터스 하우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관객과 호흡하며 아시아 최대 영화제로서 위상을 굳건히 하고 있다. 기간: 2023. 10. 4.~10. 13. 장소: 영화의전당, 센텀시티, 해운대, 남포동 등 부산 전지역홈페이지 홈페이지 : www.biff.kr 서울국제공연예술제 2001년 시작된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동시대적 관점과 시대적 가치를 담아내는 국제공연예술 축제이다.예술가의 상상력, 창의력, 실험성을 존중하고, 예술의 다양성, 포용성, 접근성을 기반으로 하고, 기후 위기에 대응하여 환경친화적 축제를 지향하고 실천한다. 특히 공연뿐만 아니라 워크숍, 포럼 프로그램 등으로 예술가와 관객이 참여하는 축제의 장을 만들고 있다. 기간: 2023. 10. 6.~10. 29. 장소: 국립극장 해오름, 대학로예술극장 등 홈페이지 : www.spaf.or.kr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재즈’ 한 장르만 고집하며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자라섬페스티벌은 2004년 개최 이래 58개국, 1,200팀의 아티스트가 다녀간 아시아 대표 재즈페스티벌로 자리잡았다. 관객들에게 즐거운 경험을 선사하며 재즈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자라섬페스티벌에서는 매년 다른 국가를 집중 소개하는 국가별 포커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올해는 캐나다가 선정됐다. 기간: 2023. 10. 7.~10. 9. 장소: 경기도 가평군 자라섬 및 가평 일대 홈페이지 : www.jarasumjazz.com 2023 서울아트마켓 서울아트마켓은 다양하고 활발한 창작과 제작을 바탕으로 한 한국공연예술 작품들의 합리적인 유통과 해외 진출 활성화를 위한 국제공연예술 플랫폼이다. 우수공연예술작품의 쇼케이스, 단체와 작품을 홍보할 수 있는 부스 전시, 학술 및 네트워킹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전 세계 공연예술의 흐름과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며, 공연예술의 창작과 유통을 도모한다. 기간: 2023. 10. 11.~10. 14. 장소: JCC아트센터, 국립중앙극장, 서울남산국악단 홈페이지 : www.pams.or.kr 동녘에서 거닐다: 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 동산방화랑의 설립자 동산(東山) 박주환(朴周焕)(1929-2020)이 수집하고 그의 아들 박우홍이 기증한 한국화, 회화, 조각, 판화, 서예 작품 등 총 90여 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1961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표구사로 시작한 동산방화랑은 1974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신진 작가 발굴과 실험적인 전시 기획을 바탕으로 근현대 한국화단의 기틀을 마련해 오고 있다. 기간: 2023. 5. 18.~2024. 2. 12.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홈페이지 : www.mmca.go.kr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10년째를 맞이한 국내 대표 중진 작가 지원 프로그램인 ‘MMCA 현대차 시리즈’에 정연두 작가가 선정됐다. 작가는 현실과 이미지, 실재와 환영,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사진, 영상, 설치 작품들을 통해 국내·외 미술계의 호평을 받아왔다. 작가는 영상 설치작 < 백년 여행기 > 를 비롯하여 5점의 신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기간: 2023. 9. 6.~2024. 2. 25.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홈페이지 : www.mmca.go.kr

애니메이션, 웹툰 미디어 믹스의 또 다른 해법

Arts & Culture 2023 AUTUMN

애니메이션, 웹툰 미디어 믹스의 또 다른 해법 드라마나 영화로 미디어 믹스되던 웹툰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웹툰의 애니메이션화는 원작의 매력을 살리는 유효한 전략이면서 가상의 세계를 구현하는 데도 용이한 방식이다. 이러한 점들로 인해 앞으로 더 많은 웹툰들이 애니메이션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독자들의 호응을 얻은 웹툰 원작의 애니메이션 포스터들. 위부터 < 외모지상주의 > (2022), < 기기괴괴: 성형수 > (2020), < 도깨비 언덕에 왜 왔니?(Dokkaebi Hill) > (2021~2022), <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My Daughter is a Zombie) > (2022). ⓒ 넷플릭스(Netflix) ⓒ 에스에스애니먼트(SS Animent Inc.), 스튜디오 애니멀(Studio Animal), SBA ⓒ 김용회(Kim Yong-hoe, 金龍會), 쏘울크리에이티브(Soul Creative), CJ ENM, KTH, SBA ⓒ EBS, 두루픽스(Durufix) 최근 인기 웹툰들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면서 미디어 믹스의 장르 스펙트럼이 확장되고 있다. 우선 2020년, SIU 작가의 < 신의 탑(Tower of God, 神之塔) > 과 박용제(Yongje Park, 朴溶濟) 작가의 < 갓 오브 하이스쿨(The God of High School, 高校之神) > 이 TV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전 세계 관객들과 만났다. 비슷한 시기에 외모 지상주의 사회를 풍자한 오성대(Sungdae Oh, 吳城垈) 작가의 웹툰 < 기기괴괴(Tales of the Unusual, 奇奇怪怪) > 가 < 기기괴괴: 성형수(Beauty Water, 奇奇怪怪: 整容液) > 라는 제목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국내외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2022년에는 넷플릭스가 박태준(Taejun Pak, 朴泰俊) 작가의 대표작 < 외모지상주의(Lookism, 看臉時代) > 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스트리밍했다. 이 외에도 많은 작품들의 애니메이션화가 거론되고 있으며, 특히 추공(Chugong) 작가의 웹소설을 기반으로 한 웹툰 < 나 혼자만 레벨업(Solo Leveling, 我独自升级) > 의 경우엔 해외 팬들의 적극적인 요청에 따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중이다. 그동안 시장 검증을 마친 웹툰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진 사례들은 많았지만,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는 경우는 드문 일이어서 이 같은 현상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효율적인 미디어 믹스 출판된 만화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사례는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을 4천 장의 종이에 그려 넣은 윈저 매케이(Winsor McCay)의 < 잠의 나라의 리틀 네모(Little Nemo in Slumberland) > (1911) 이래로 만화의 애니메이션화는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졌다. 특히 일본에서 1990년대에 3차 애니메이션 붐이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제작위원회(製作委員會)’라 불리는 특유의 미디어 믹스 체계가 있었다. 잡지에 연재된 만화는 단행본 발간, 애니메이션 제작, 관련 상품 제작으로 이어지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팬덤을 더욱 강화할 수 있었다. 이렇게 출판된 만화를 TV 시리즈나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자주 연계해 온 덕분에 만화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의 시청자가 될 수 있었다. 반대로어린이 채널에서 방영되는 애니메이션을 먼저 접하고 나중에 원작 만화를 접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동시에 향유해 온 소비자층은 웹툰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구조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미지와 대사가 2차원 평면에 그려진 웹툰은 시각만으로 독해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웹툰은 가상 세계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정지된 이미지가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작화 스타일을 비롯해 의성어, 의태어, 효과선 같은 만화적 표현으로 장면에 생동감을 불어 넣는다. 이렇듯 웹툰에서 구현 불가능한 상상의 세계는 없어 보인다. 웹툰에서 그려진 가상 세계를 영상화하려면 드라마나 영화처럼 실사 영상으로 찍는 방법과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SF나 판타지 세계관의 스토리텔링을 드라마나 영화 같은 실사 영상으로 만들려면, 거대한 세트장에서 촬영을 하고 특수 효과 과정도 거쳐야 한다. 제작 공정도 복잡하고 막대한 비용이 투입된다. 이에 반해 웹툰의 애니메이션화는 제작 공정이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효율적이며, 원작 그대로의 매력을 십분 살릴 수 있는 강점이 있다. 특히 3D 애니메이션보다 2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것이 원작의 매력을 살리는 데 유효한 전략이다. 게다가 웹툰 독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감상하는 행위에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판타지 재현에 적합 2011년 4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네이버웹툰(NAVER WEBTOON)에 장기 연재된 박용제 작가의 < 갓 오브 하이스쿨 > 6화 장면. 네이버웹툰의 대표 히트작 중 하나인 이 작품은 2020년 TV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한국과 일본에서 방영되었다. 우승하면 소원을 들어주는 격투기 대회에 저마다 사연을 지닌 인물들이 참가하여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 네이버웹툰, 박용제 근래 웹툰계에 나타나는 장르적 특성 중 하나가 판타지다. 주인공이 적대자들을 물리치며 최강자가 되어 가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약속된 서스펜스를 보장하는 게임형 판타지나 로맨스 판타지는 실사 영상으로 미디어 믹스하는 것보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편이 원작을 제대로 구현하는 데 효과적이다. 주인공이 게임과 같은 가상의 판타지 세계로 이동하여 임무를 수행하는 스토리텔링은 실재하지 않는 ‘가상’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판타지 세계에서 모험을 통해 성장하는 소년이 등장하는 웹툰 < 신의 탑 > 은 어린 시절부터 가족처럼 의지하던 소녀에게 버림받은 주인공이 소녀를 찾기 위해 신의 탑에 오르는 여정을 그린다. 2010년 네이버웹툰(NAVER WEBTOON)에 연재되기 시작돼 지금까지도 매주 업데이트 중인 이 작품이 만약 실사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었다면 여러 난관에 부딪혔을 것이다. 일단 실사 영화로 웹툰의 판타지 세계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지가 문제다. 디지털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어 완성도 높은 특수 효과를 앞세운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지만, 여전히 감당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제작 기간과 막대한 비용은 차치하고라도 손으로 그린 이미지는 과장과 생략을 통해 독자들이 이입할 여지를 주는 데 비해 실제 배우들이 등장해 연기하는 장면은 그렇게 되기 어렵다. 독자들이 저마다 상상하는 상(像)과 일치하지 않을 때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다. 즉 실사 영상으로 웹툰의 세계와 캐릭터 구현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설득이 어렵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러한 난관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것이다. 물론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적지 않은 비용과 기간이 소요되지만, 원작이 가진 판타지 세계를 고스란히 재현할 수 있다는 점은 큰 무기이다.   잠재 독자층 포섭 웹툰 산업은 웹툰의 영상화와 관련 상품 판매 시스템으로 이어지는 산업화 체계를 점차 갖춰 가는 중이다. IP(Intellectual Property)의 다각화를 통해 업계에서 글로벌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 확고한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기존 팬덤을 유지하는 한편 새로운 향유층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장기 연재되는 웹툰의 장대한 스토리텔링은 여러 회차의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될 때 기존 웹툰 독자들의 만족도가 높아질 수 있다. 한편 애니메이션 채널의 주요 타깃층이 어린이라는 점에서 웹툰의 애니메이션화는 잠재적 웹툰 독자를 미리 포섭해 두는 포석이 될 수 있다. 아직 세로 스크롤, 스마트폰으로 읽는 형식의 웹툰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웹툰에도 호기심을 느끼도록 애니메이션을 먼저 향유하게 만드는 것이다. 잠재 독자층뿐 아니라 출판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향유해 온 기존 출판 만화 독자들에게도 웹툰의 애니메이션화 전략은 유효하다. IP를 어떤 장르로 제작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다만 콘텐츠 향유자들의 날로 다양해지는 취향과 원작 구현의 적합성을 고려했을 때 애니메이션화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김용회 작가의 < 도깨비 언덕에 왜 왔니?(Dokkaebi Hill) > 는 2013년 8월 카카오웹툰(Kakao Webtoon)에 첫 화를 공개한 후 현재까지 연재 중인 판타지 웹툰이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부모를 찾기 위해 주인공이 친구들과 함께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쏘울크리에이티브와 CJ ENM이 TV 시리즈로 제작했고, 어린이∙청소년 대상 방송 채널인 투니버스(Tooniverse)에서 2021년 7월부터 2022년 2월까지 매주 방영되었다. ⓒ 김용회, 쏘울크리에이티브(Soul Creative), CJ ENM, KTH, SBA < 지구의 주인은 고양이다 > 는 2020년 3월 카카오페이지(Kakao Page)에 첫 연재를 시작해 이듬해 완결된 HON 작가의 웹툰으로, 지구 정복을 꿈꾸는 고양이와 주변 동물들의 일상을 담았다. 현재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중이며, 2024년 상반기 방영 예정이다. ⓒ Cats are Masters of The World Animation Partners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네이버웹툰에 연재된 이윤창(Lee Yun-chang, 昌) 작가의 <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My Daughter is a Zombie, 僵尸奶爸) > 은 좀비가 된 딸을 지키기 위한 아버지의 좌충우돌 이야기다. 진중한 주제 의식과 유머 코드를 통해 독자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겼다. 두루픽스와 EBS 방송이 TV 애니메이션으로 공동 제작하여 2022년 EBS 채널을 통해 방영되었다.ⓒ EBS, 두루픽스(Durufix) 홍난지(Hong Nan-ji, 洪蘭智)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교수

목판에 새긴 글자의 힘

Arts & Culture 2023 AUTUMN

목판에 새긴 글자의 힘 목판에 글씨나 그림을 새기는 각자(刻字)는 목판 인쇄와 현판 제작의 핵심 기술로 서체의 특성과 글 내용을 온전히 이해한 뒤에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각자장의 기량은 각질의 흔적, 글자체의 균형도 등으로 평가된다. 김각한(Kim Gak-han, 金珏漢) 장인은 오랜 기간 작품 활동과 전승 활동을 펼친 노고를 인정받아 2013년 국가무형문화재 각자장 보유자가 되었다. 각자장 김각한(Kim Gak-han, 金珏漢) 씨가 각자 작업 중인 모습. 그는 책판용으로 조직이 치밀하면서 적당히 단단한 산벚나무를 애용한다. 각자는 목판에 글자나 그림을 새기는 일을 말한다. 목판 인쇄물은 물론이고 건축물에 내거는 현판(懸板)도 각자를 통해 제작됐으니 역사가 오랜 기술이다. 각자의 기능을 가진 장인을 각자장이라고 한다. 2013년 각자장 보유자로 인정된 김각한은 방화로 소실됐던 숭례문(崇禮門) 현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1377)의 목판본, 한국전쟁 때 불타 버린 『훈민정음 언해본(諺解本)』 등 굵직한 우리 문화재의 복원 작업에 참여했다. 목공에서 각자로 단단한 목판에 글씨를 정교하게 새기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도구가 필요하다. 그가 사용하는 도구는 망치, 칼, 끌 등 30여 가지에 이른다. 장인의 출발은 목공예였다. 그는 1957년 경상북도 김천(金泉)에서 농사짓는 부모의 5남 1녀 중 다섯째로 태어나 초등학교만 겨우 마쳤다. 6학년 때 부친이 사망하면서 중학교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김천 시내 목공소에 다니며 소목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촌구석에 널린 게 나무였으니까요. 덕분에 일찌감치 나무를 다룰 줄 알았죠.” 학업에 대한 미련이 많았던 그는 낮엔 일하고 밤엔 공부하면서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군 제대 후에는 서울로 올라와 종로 탑골공원 근처 목공예학원에 다녔다. 그러던 중 1983년 동덕(同德)미술관에서 열린 오옥진(吳玉鎭)의 전시회는 그의 인생을 단번에 바꿔 놓았다. “그때 전통 각자를 처음 봤어요. 옛 서울의 지도 < 수선전도(首善全圖) > 를 복원한 것을 보고 첫눈에 반해 버렸죠. 곧바로 하던 일을 정리하고 선생을 찾아가 배움을 청했습니다.”그의 스승은 1996년 각자장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첫 번째 보유자가 된 인물이었다. 김각한은 2005년 전승교육사가 되었고, 이후 문화재 복원과 전승 활동을 인정받아 8년 후 스승의 뒤를 이어 2대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스승과의 만남이 목공에 머물 뻔했던 장인을 각자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면, 서예가 박충식(朴忠植)은 그를 진정한 장인의 길로 이끌었다. “각자를 배운 지 2년쯤 되니까 한자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걸 절감하게 되더군요. 문자를 다루는 공예인 만큼 글과 글자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죠.” 그는 본격적으로 서예를 배우기로 하고 아예 선생의 서실이 있던 방배동 인근으로 이사를 했다. 이때 마련한 작은 공간이 지금의 공방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배움에 대한 갈증은 1992년 방송통신대학 중어중문학과 입학으로 이어졌다. 늦게 빠진 공부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었다. 일하며 공부하느라 6년 만에 졸업했지만 글공부는 지금도 놓지 않고 있다. 치목에서 인출까지 각자의 핵심은 새기는 일이지만, 그 시작과 끝은 나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적합한 나무를 구해 오랜 시간 건조시키며 삭이는 치목(治木) 과정이 중요하다. “현판은 용도에 따라 돌배나무, 소나무 등 다양한 수종을 씁니다. 하지만 책판용으로는 조직이 치밀하면서 적당히 단단한 산벚나무가 가장 적합하죠. 『팔만대장경』 목판의 수종을 분석해 보니 70% 이상이 산벚나무였습니다. 그러나 나무의 종류보다는 나무를 충분히 숙성시키는 작업이 더 중요합니다. 7~8년 이상 말리는 과정을 거치면서 나뭇결이 잘 삭아야 변형되지 않고 오래 보전할 수 있거든요.” 각자할 원고나 도안이 준비되면 나무를 적합한 크기로 잘라 대패질해서 다듬은 다음 풀칠을 하고 원고나 도안 종이를 붙인다. 인쇄를 목적으로 하는 목판은 좌우를 바꿔서 붙인다. 그런 다음 종이 두께의 절반가량을 손으로 비벼서 벗겨 내고 사포로 문질러 도안을 목판에 밀착시킨다. 그러고 나서 기름칠을 해 도안이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하는데, 이를 배자(排字)라고 한다. “배자에 사용하는 기름은 어떤 종류든 상관없지만 볶지 않고 생으로 착즙한 것을 써야 합니다. 볶은 기름은 굳어 버려서 글자를 새길 수가 없거든요.” 각자는 글자나 문양의 특징을 고려해 작업에 적합한 칼과 끌, 망치 등을 사용한다. 목판본처럼 좌우를 바꿔서 새기는 것을 반서각(反書刻), 공공건물이나 사찰 등의 현판과 같이 보이는 그대로 새기는 것을 정서각(正書刻)이라고 한다. 각자 작업이 끝나면 목판본의 경우 양옆에 손잡이와 통풍 기능을 겸하는 마구리를 만들어 끼운다. 그리고 각자한 나무판에 알맞은 농도의 먹물을 고르게 칠한 다음 인출할 종이를 덮고 밀대로 문질러 찍어 낸다. 현판의 경우 각자 후 채색해 완성한다. 서체에 대한 이해 김 장인이 책판을 인출(印出)한 뒤 각자가 잘되었는지 점검하고 있다. 각자장은 대량 인출이 필요한 서적을 만들기 위해 책판에 글자와 그림을 새기는 기술을 지닌 장인이다. 각자의 기법은 크게 음각(陰刻)과 양각(陽刻)으로 구분한다. 음각은 글자 자체를 파내는 기법으로 문자를 바탕면보다 깊게 파낸다. 양각은 글자 주변을 깎아내 입체적으로 돌출시키는 기법이다. “각자의 기본은 음각인데 사실 그게 가장 어렵습니다. 그저 획을 따라서 새기면 무슨 글자인지 읽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서체를 보면 어떤 부분에는 힘이 들어가 있고 어디는 힘을 뺐는데, 그런 디테일을 각자로도 잘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획에 힘이 들어간 곳은 더 깊고 넓게 파야 글자가 살죠. 완성했을 때 누구의 서체인지 알 수 있어야 하니까요. 한마디로 서체의 특징을 잘 알고 글의 흐름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많은 작품들에 둘러싸인 그에게도 전승에 대한 고민은 적지 않다. “이 일만으로 생활이 어렵다 보니 젊은 사람들이 배우려고 하질 않아요. 대부분 취미로 배우는 은퇴자들이죠. 애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까 마음을 비우게 됩니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작품만 생각하려고요.” 아직 대표작이 나오지 않았다며 겸손해하는 장인은 우리 각자의 미래를 걱정하면서도 낙관했다. 이기숙(Lee Gi-sook, 李基淑)자유기고가

신나는 음악적 혁명

Arts & Culture 2023 AUTUMN

신나는 음악적 혁명 2020년 결성한 얼터너티브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HAEPAARY)는 국악을 현대적 비트로 재해석한 음악을 선보인다. 이들의 독창성은 2022년 한국대중음악상(Korean Music Awards)에서 받은 최우수 일렉트로닉 음반상과 최우수 일렉트로닉 노래상이 입증한다.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무대륙(Mudaeruk, Mu-大陸)에서 두 사람을 만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터너티브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HAEPAARY)는 노래하는 박민희(사진 왼쪽)와 연주하는 최혜원이 만나 2020년 결성했다. 이들은 대중음악과 국악을 재료로 삼아 자신들의 화법으로 새롭게 재구성하는 음악 작업을 선보이고 있으며, 한국 전자음악계에 새로운 신호탄을 던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9년,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LEENALCHI)가 발표한 < 범 내려온다(Tiger is Coming) > 는 일대 돌풍을 일으켰다. 판소리 < 수궁가(水宮歌) > 를 포스트펑크 장르로 재해석한 이 곡에 매료된 대중은 이를 기점으로 국악적 요소와 팝 음악을 결합하는 다양한 음악적 시도에 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 소무-독경(A Shining Warrior - A Heartfelt Joy) > . 2021년 발매한 해파리의 첫 EP< Born By Gorgeousness > 의 수록곡 중 하나이다. 이 앨범은 2022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일렉트로닉 음반상을 받았다. 박민희(Minhee, 朴玟姬)와 최혜원(Hyewon, 崔惠媛)이 결성한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HAEPAARY)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조용히 그리고 차갑게 등장했다. 2021년 발표한 데뷔곡 < 소무-독경(A Shining Warrior - A Heartfelt Joy, 昭武-篤慶) > 은 앰비언트 뮤직에 가까운 차가운 비트 위로,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를 기리는 제사에 쓰였던 종묘제례악이 흐른다. 국악 타악기의 영롱한 사운드가 빛나는가 하면 후반부에는 나직한 내레이션이 삽입되어 마치 공포 영화의 사운드트랙처럼 들리기도 한다. 데뷔 때부터 독창적 음악 세계를 선보인 해파리는 날카로운 혁명가처럼 느껴진다. 수백 년 전 창작된 한국의 음악 전통을 끌어오되, 시대착오적 텍스트를 해체하거나 성 역할을 깨부순다. 예컨대 이들은 남성의 영역인 남창(男唱) 가곡을 부르기도 하고, 남성 위주였던 조선 시대의 풍류 문화를 여성적 관점으로 뒤엎어 해석한다. 고정관념과 보수적 음악에 환멸을 느끼던 젊은이들이 이들의 음악에 환호하는 이유다. 두 사람 모두 국악 전공자인데, 국악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혜원: 어렸을 때 김덕수(Kim Duk Soo, 金德洙) 사물놀이패에서 어린이 예술 단원으로 활동했다.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다국적 재즈 그룹 레드 선(Red Sun)이 협업한 앨범에 심취하며, ‘전통 장단을 어떻게 이렇게 가지고 놀지?’ 하고 생각했다. 월드뮤직 그룹 훌(WHOOL)과 함께 공연도 했고, 뭔가 새로운 것을 계속 추구했다. 국악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서는 일렉트로닉 뮤직에 흠뻑 빠지게 됐다. 민희: 어린 시절, 아버지 손에 이끌려 시조와 가곡을 배우러 간 게 계기였다. 전통성악곡인 시조, 여창(女唱) 가곡, 가사를 익히면서 일반 고등학교에는 진학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때는 미국 래퍼 투팍(Tupac)을 좋아했고, 우리나라 펑크 록 1세대 밴드인 크라잉넛의 < 양귀비 >같은 노래를 들으며 열광했다. 오빠 친구들이 들려주던 영국 메탈 밴드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의 음악에도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가 국악 고등학교에 진학해 전통 기악곡인 < 수제천(壽祭天) > 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접했던 프로그레시브 록, 아트 록보다 훨씬 더 특이했기 때문이다.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Hwang Byung-ki, 黃秉冀),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Nam June Paik, 白南準) 같은 혁명적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게 그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데뷔 후 지금까지 느낀 시장의 반응은 어떤가? 민희: 국악계로 수렴되지 않고 일렉트로닉 음악, 나아가 대중음악 시장에서 자리매김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자 숙제였다. 에스파 같은 K-pop 그룹과 함께 2022년 한국대중음악상 신인상 후보에 오르거나 우리 앨범이 음반 가게에서 앰비언트 뮤직 듀오 살라만다(Salamanda) 옆에 나란히 놓이는 일을 해낸 것이 일차적 성과라고 생각한다. 일렉트로닉 뮤직 신에서는 해파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하다. 혜원: 독특한 사운드를 많이 사용해서인지 악기 소스를 가장 먼저 물어본다. 국악 소스를 샘플링 하기도 하지만, 사실 다른 전자음악가들이 사용하는 소스를 조금 변형하는 경우가 더 많다. 국악적 요소를 의도적으로 시도하지는 않는데, 아무래도 우리의 음악적 라이브러리에 대중음악과 국악이 둘 다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국악적인 뉘앙스가 풍기는 것 같다. 좀 전에 에스파를 언급했는데, K-pop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경포대로 가서(go to gpd and then) > . 전통적인 남창 가곡(男唱 歌曲, 남성들이 풍류를 즐기며 부르는 노래)을 비틀어서 재해석한 곡이며, 2022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일렉트로닉 노래상을 수상했다. 민희: 청중으로서 K-pop을 좋아한다. 하지만 창작자로서 그들과 우리의 길은 다르다. 그들은 매끄러움을 지향하지만, 우리는 다른 질감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평균율에서 벗어난 음, 정박에서 벗어난 박자, 뭐 그런 것들…. 에스파가 선보이는 아바타와 우리가 < 경포대로 가서(go to gpd and then) > 뮤직비디오에서 보여 준 아바타는 대단히 큰 차이가 있다. 혜원: < 경포대로 가서 > 뮤직비디오는 네덜란드의 안무 그룹이 공공 지식재산 차원에서 무료로 배포한 아바타 소스를 활용해 우리의 춤을 얹었다. 민희: 지식재산권에 접근하는 태도를 비롯한 수많은 결에서 K-pop과 우리의 지향점이 상당히 다르다. 우리는 아이돌 그룹처럼 퍼포먼스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데, 그래서 의도를 읽히기도 전에 서툴고 지루한 퍼포먼스로 치부될까 봐 두렵다.   수백 년 전 음악과 현대 전자음악 두 가지를 동시에 펼쳐내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혜원: 앨범 녹음을 할 때도 그렇지만 특히 라이브를 할 때 늘 난관에 봉착한다. 민희의 전통적 가창과 발성이 무대 위에서 표출되는 전자 사운드와 잘 붙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사운드 믹스를 조율한다. 앨범 작업을 할 때 프랑스 전자음악 듀오 다프트 펑크(Daft Punk)처럼 사람의 음정을 기계음으로 바꿔 주는 보코더(vocoder)를 써 본 적도 있다. 하지만 효과적이지 않았다. 민희: 플라멩코의 클래식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스페인 뮤지션 로살리아(Rosalia), 예멘 전통음악과 힙합을 혼합하는 이스라엘 그룹 에이와(A-WA)가 좋은 본보기인 것 같다. 물론 그들과 우리는 처한 환경이 다르다. 그들의 경우 자신들이 가진 서구적 전통과 현대적 비트가 잘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있는 반면에 우리는 아직도 한국 전통 가곡의 뉘앙스를 지금의 것과 결합하는 데 애를 먹는다. 힘들지만 풀어 나가는 보람은 있다. 혜원: 음악을 만들 때 서양 일렉트로닉 음악의 2박 체계와 국악의 3박 체계를 종종 혼용하는 편이다. 민희의 가창이 정박을 벗어나기 때문에 믹싱 엔지니어가 수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는 오히려 그런 상황이 재밌고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전통적 텍스트에 표출된 성 역할을 전복하는 재해석이 흥미롭다. 민희: 청개구리 기질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젠더적 관점에만 관심 있는 건 아니다. 일전에 어떤 공연에서 조선 시대의 문신 남구만(南九萬, 1629~1711)이 지은 유명한 시조 < 동창이 밝았느냐 > 를 풀어냈다. 그런데 ‘소 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라는 대목을 도저히 그냥 둘 수 없었다. 아동 인권 착취가 아닌가. 그리고 < 시작된 밤 > 이라는 곡에서는 성 소수자의 사랑을 다뤘다. 20세기까지 당연시해 왔던 여성 혐오, 약자 착취를 비롯한 사회적 불합리에 대해 질문하고 예술 안에서 각색해 보여 주는 것이 우리에겐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올해 계획, 그리고 장기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혜원: 첫 정규 앨범을 준비 중이다. 10월에는 스페인에서 열리는 월드뮤직 페스티벌 워맥스(WOMAX)에 참여할 계획이다. 사실 월드뮤직 말고 일렉트로닉 뮤직 페스티벌 무대에 더 많이 서고 싶다. 민희: 정좌하고 앉아서 우리 음악을 감상하는 분들보다 ‘미치게 취한 사람들’ 앞에서 더 많이 공연을 하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는 신나는 음악을 많이 만들어 볼 작정이다. 2023년 5월 20일,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무대륙(Mudaeruk)에서 공연 중인 해파리. 이들은 관객들이 흥에 취해 몸을 들썩일 수 있는 곡을 만들고 싶어 한다. 임희윤(Lim Hee-yun, 林熙潤)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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