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에는 다양한 조형물과 장식물들이 있다. 석교와 월대(月臺), 굴뚝 같은 건축 요소를 장식한 문양을 비롯해 곳곳에 놓인 석조물에는 유교 정치의 이상과 왕의 권위, 왕실의 위엄이 담겨 있다. 이런 장식물들은 시각적으로 빼어난 조형미를 보여 주는 동시에 궁궐에 내재한 당대 사람들의 세계관을 이해하게 해 준다.
잡상(雜像)은 전각의 추녀마루 위에 장식하는 사람이나 동물 모양의 조각상이다. 잡귀를 물리쳐 궁궐이 평안하기를 바라는 의미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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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에는 왕조의 태평성대와 왕족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다양한 건축 장식이 있다. 돌, 흙, 금속으로 만든 이 조각들은 설화에 기반하고 있어 조형적 상상력을 엿보게 한다. 특히 조선 왕조 정궁 경복궁은 궐내에 수백 점이 넘는 석조 조형물들이 있어 궁궐 건축 장식의 상징적 의미를 살펴보기에 최적의 공간이다.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光化門) 앞에는 석조 해치상(獬豸像) 한 쌍이 있다. 해치는 옮고 그름과 착하고 나쁨을 판단하는 전설 속 동물이다. 조각상은 둥근 몸통에 비늘이 있으며 발톱이 4개이다. 얼굴은 커다란 주먹코에 돌출된 큰 눈을 하고, 송곳니를 드러냈지만 위협적이지 않고 웃는 인상에 가깝다. 목에는 방울을 달고 있으며, 귀 아래로 털이 늘어졌고, 목덜미에는 갈기가 있다. 머리 위에는 나선형 돌기가 있어서 양의 뿔처럼 보인다. 이 조각상은 1865년 시작하여 1867년 완료된 경복궁 중건 사업 때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양의 저울처럼 동아시아에서는 해치를 법과 정의의 상징으로 여겼다. 궁궐 정문 앞 해치는 조선 왕조가 지향했던 이상적 유교 정치와 왕권을 상징한다. 과거에 해치 앞에는 하마석(下馬石)이 있어서, 모든 신하들이 해치 앞에서 노둣돌을 딛고 말에서 내려 궁궐로 걸어 들어갔었다.
왕실 수호
경복궁 근정문 앞 계단 가운데에 자리한 답도(踏道). 임금이 가마를 타고 지나가는 길로 궁궐의 격식을 나타내는 장식물 중 하나이다. 답도에는 봉황 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양옆에는 해치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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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을 지나면 흥례문(興禮門)과 근정문 사이 마당에 있는 금천(禁川)을 건너야 한다. 금천을 건너는 다리 영제교(永濟橋)에는 네 모퉁이 난간 기둥들 위에 용이 앉아 있다. 용들은 비늘로 덮인 몸통을 돌돌 말아 앞발로 여의주를 쥐고 있으며,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있고 턱 밑에 긴 수염이 있다. 다리 안쪽을 향해 앉아 있는 용들은 영제교의 통행을 감시하는 듯하다. 용은 왕권 자체를 상징하면서 동시에 왕권을 수호하는 동물이다.
금천의 석축에도 상서로운 동물 네 마리가 조각되어 있다. 동물들은 앞발로 석축의 끝을 잡고 고개를 내밀어 금방이라도 물로 뛰어들 것처럼 보인다. 머리에는 세 갈래로 갈라진 뿔이 있고, 눈썹은 동그랗게 말려 있으며, 큰 코가 인상적이다. 몸통에는 비늘이 있고, 발가락은 3개이다. 조선 후기 사람들은 이 동물을 천록(天鹿)으로 이해했다. 천록은 사악한 기운을 막는 전설의 동물로 궁궐로 들어오는 액운을 막고 입궐하는 신하들의 마음을 다잡는 역할을 했다.
영제교를 지나면 경복궁의 핵심 공간인 근정문(勤政門)과 근정전이 나타난다.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으로 왕이 즉위하고, 문무백관의 하례를 받으며, 중요한 법령을 반포하던 곳이다. 그러므로 근정전 일대에 상서로운 동물상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건 당연하다. 왕의 가마가 지나가는 답도(踏道)에는 봉황이 여의주를 둘러싼 모습이 조각되었다. 봉황도 용과 마찬가지로 왕을 상징한다.
경복궁 근정전 월대(月臺)의 난간 기둥에 놓인 동물상. 동서남북 방위와 계절, 열두 달을 상징하는 동물들이 기둥마다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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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으로 구성된 근정전의 월대(月臺)에는 난간 석주 위에 여러 동물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월대 상단에는 네 방위와 사계절을 상징하는 동물들이, 하단에는 열두 달을 상징하는 동물들이 놓여 있는데, 배치상의 문제로 몇몇 동물은 생략되었다. 월대 정면 모퉁이에는 부모와 새끼가 함께 있는 사자 모양의 동물들이 조각되어 있다. 남쪽에 있는 사자를 닮은 상상 속 동물들은 임금의 현명한 지혜와 올바른 판단을 상징한다. 한편 근정전 월대 위에는 청동으로 만든 큰 솥이 있다. 세 개의 발과 두 개의 손잡이로 이루어진 이 솥은 고대로부터 왕권의 정통성을 상징했다.
태평성대
궁궐 중심 공간에 다양한 동물 조각상들을 배치한 데는 이유가 있다. 왕의 바른 통치 아래 동물에 빗댄 만물이 각자의 자리에서 순리에 맞게 움직인다는 의미가 담겼다. 신령한 동물들은 왕실을 수호하는 한편 태평성대의 실현을 상징한다. 이와 같은 상징은 경복궁의 연회 장소인 경회루(慶會樓)의 석조물에도 등장한다. 한 변의 길이가 100미터가 넘는 큰 인공 연못 위에 지은 경회루에는 출입을 위한 석교가 3개 있다. 각각의 다리 난간에 등장하는 용과 기린, 이무기(螭龍)와 추우(騶虞), 코끼리와 해치는 각각 임금, 세자, 어진 신하를 상징한다.
한편 경회루 연못에서는 1997년, 청동으로 만든 용이 출토된 바 있다. 연못 준설 작업 중 발견된 이 용은 길이 약 1.5미터, 무게 66.5킬로그램으로 궁궐의 화재를 막기 위한 조형물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왕을 상징하는 이 상서로운 존재가 물을 다스리고 비를 내리게 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현재는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화재와 관련하여 주술적 의미가 아니라 실용적 기능을 가진 금속 용기도 있다. 근정전 월대 아래 좌우 측면에 위치한 ‘드무’는 세 개의 돌로 된 받침 위에 얹혀진 커다란 무쇠솥이다. 평소에 물을 담아 두었다가 화재 시 방화수로 사용했는데, 겨울에는 돌 받침 사이에 불을 지펴 물이 얼지 않도록 했다. 또한 화마(火魔)가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라 달아난다는 해학적 의미도 품고 있다.
비단 조각상뿐만 아니라 건축물에도 상징을 위한 장치가 있다. 근정전 지붕의 용마루 좌우 끝에는 각지게 솟아오른 대형 장식기와가 눈에 띈다. 고대에는 새의 꼬리나 머리 모양을 하였지만, 조선 시대에는 용을 조각했다. 이것 역시 왕권을 드러내는 동시에 화재를 막는 주술적 의미를 더한 것이다. 지붕의 추녀마루에는 액운을 막는 여러 가지 잡상(雜像)을 올렸다. 조선 시대에 잡상은 궁궐을 비롯한 주요 국가 시설에만 설치되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왕조의 권위를 표현한 것이다. 또한 건물의 중요도에 따라 잡상의 수도 달랐다. 근정전 잡상은 상하층 지붕에 각각 7개씩 남아 있는데, 연구 결과 예전에는 더 많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해학적 특징
경복궁 교태전 후원을 장식하는 굴뚝에는 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과 고결함을 나타내는 사군자가 조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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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처소인 강녕전(康寧殿) 뒤에는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交泰殿)이 있고, 교태전 뒤에는 아미산(峨眉山)이라고 불리는 후원(後苑)이 있다. 후원에는 석축을 4층으로 쌓아 수조와 기암괴석을 진열하고 다양한 식물을 심었다. 교태전의 아궁이와 연결된 굴뚝들은 세 번째 단 위에 설치되었는데, 붉은 벽돌을 육각형으로 쌓고 여섯 면에 왕실 일가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문양을 새겼다. 중앙에는 십장생과 사군자를, 그 위아래로 노루, 박쥐, 낙타, 봉황 등의 동물을 조각했다. 굴뚝 위에는 기와지붕을 올리고 연기가 나오는 장치를 4개 설치했는데, 그 조형미가 매우 뛰어나다.
교태전에서 동쪽으로 나가면 대왕대비의 처소인 자경전(慈慶殿)이 나온다. 자경전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꽃담을 둘렀고, 담장 모양에 맞춰 납작하고 넓은 모양의 굴뚝을 설치했다. 굴뚝에 새겨진 문양은 십장생으로 대표되는 장수의 상징들이다. 해, 산, 구름, 바위 등의 자연물과 대나무, 소나무, 불로초, 국화, 연꽃, 포도 등의 식물들이 새겨졌고 그 사이로 학, 사슴, 거북이 등의 동물들이 표현되었다. 연꽃과 포도는 십장생은 아니지만 자손의 번성을 상징해 포함됐다. 십장생 위아래로는 부귀를 상징하는 박쥐 등 액운을 막고 행운을 기원하는 여러 동물들이 배열되었다.
경복궁 너른 마당에서 만나는 각종 동식물 조각과 문양들은 정치적 이상에서 개인적 소망까지 왕실의 다양한 염원을 표현한다. 이 장식들은 화재를 비롯한 각종 재앙을 막고, 어진 정치를 위한 관료들의 마음가짐을 바로잡으며, 부모의 장수를 기원하는 효 사상을 일깨운다. 이 조각들은 대부분 민간에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왕권을 드러낸 것이며, 임금의 어진 정치가 온 나라에 퍼진 태평성대를 묘사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모습은 경직되거나 권위적이지 않고 해학적으로 표현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이강민(Lee Kang-min, 李康民)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