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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SPRING

봄의 맛과 향, 도다리쑥국

겨우내 꽁꽁 얼어있던 단단한 땅을 가장 먼저 뚫고 나오는 것은 잡초도 꽃도 아닌 어린 쑥이다. 이 쑥만큼이나 봄에 귀하게 먹는 도다리 역시 봄의 전령사다. 봄철 도다리는 살이 가득 차오른 데다 부드럽고 고소하다. 이 둘이 만나 한국의 향토 음식이 되었으니, 바로 ‘도다리쑥국’이다.

도다리쑥국은 경상남도 통영의 향토 음식이다. 매년 이른 봄이면 통영 앞바다 식당가에서는 너도나도 ‘도다리쑥국 팝니다’라는 간판을 내걸기 시작한다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요소는 많다. 때가 되면 새싹이 움트고 꽃이 피며, 무성한 초록의 날을 지나 단풍이 들고, 찬바람과 함께 앙상한 가지만 남는 계절의 풍경이 그렇다. 또 하나는 혀끝으로 계절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 계절에 나는 제철 재료를 가장 신선한 상태로 맛보는 것만큼 직관적인 방법이 또 있을까? 정통 한식 요리전문가인 故 김태원 조리장은 살아생전 “새 계절이 왔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아는 방법은 그달에 가장 비싼 제철 생선을 사 먹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봄철 식재료, 도다리와 쑥

쑥은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위장과 간장, 신장의 기능을 강화해 예로부터 복통 치료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봄이 시작되는 3월부터 5월까지 수확한 쑥을 최고로 친다. 그 이후엔 질겨지고 쓴맛이 강해져 식재료로 쓰기엔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봄의 시작을 알리는 음식 중 하나는 바로 경상남도 통영의 도다리쑥국이다. 바다의 도다리와 땅에서 자란 쑥 전부 대표적인 봄 제철 식재료이기 때문이다. 겨울을 나는 동안 살을 찌운 도다리는 날이 풀리면 산란을 위해 남쪽 지역으로 서식지를 옮기는데 봄철 통영 앞바다에서 도다리가 많이 잡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봄철 도다리는 회로도 먹고 조림, 국, 탕 등 다양한 한식 요리로도 활용된다. 특히 어린 도다리를 뼈째로 썰어 날것으로 먹는 ‘도다리 세꼬시’는 오도독한 식감이 뛰어나 별미 중 별미다.

쑥은 약간 쓴맛과 함께 향긋한 향이 나는 식물로, 봄이 시작되는 3월부터 5월까지 수확한 어린 쑥의 식감과 맛이 가장 뛰어나다. 그 이후엔 질겨지고 쓴맛이 강해져 음식으로 먹기엔 맛이 떨어진다. 그래서 도다리쑥국을 메뉴로 내는 많은 식당이 매년 초봄에 캐낸 햇쑥을 구하느라 바쁘다. 같은 쑥이라도 분지나 산지보다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것이 더욱 맛과 향이 좋고 해풍 덕에 미네랄도 풍부하다고 해서 바닷가 지역의 쑥을 구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쑥은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날씨나 토양, 어떠한 환경적 변수에도 끄떡없이 땅을 뚫고 줄기와 잎을 피우기 때문이다. 한국의 고전 신화에선 ‘곰이 사람이 되기 위해 동굴에서 100일간 참고 먹었던 재료’로 나오기도 하고 실제로 오래전부터 한국인들은 쑥을 식용뿐 아니라 약으로 쓰기도 했다.

남해 지역의 귀한 제철 음식

 

강도다리 돌가자미, 문치가자미 등 여러 생선을 통칭한다. 이중 통영에서 잡히는 가자미는 문치가자미로, 12월부터 1월까지가 금어기다. 통영에서 도다리쑥국을 2월부터 내놓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봄마다 도다리가 풍년이니 남해 지역 뱃사람들이 가장 먼저 먹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고, 남해 바닷가 지역 내의 여러 가정집에서 봄철 햇쑥으로 국을 끓여 먹으면서 도다리쑥국이 탄생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산지에서 나는 생선이나 육류, 또는 제철 채소나 나물을 넣고 국을 끓여 먹는 문화는 한국 어느 지역이나 있었으니 누가 먼저 먹었느냐는 사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확실한 건 도다리쑥국이 남해 지역 고유의 제철 음식이라는 것이다.

도다리쑥국은 다른 종류의 한국식 탕이나 찌개 음식과 달리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아 국물 색이 맑은 것이 특징이다. 핵심은 쑥 본연의 맛과 향을 살리는 것이기에 매운맛을 내는 재료 대신 된장과 국물용 간장만 소량 넣어 구수한 맛을 낸다. 여기에 미리 손질한 도다리와 깨끗하게 씻어낸 쑥과 무, 대파를 넣고 끓이기만 하면 완성이다. 신선한 도다리와 제철 쑥만 있으면 그 자체로도 맛을 내기에 이것 이상의 재료나 양념은 필요하지 않다.

봄의 맛과 향

 

한국의 전국 바닷가에 흔한 물고기와 땅이라면 어느 곳에서도 잘 자라는 쑥으로 만든 음식이 뭐가 대단할까 싶지만, 도다리쑥국을 맛본 이들은 도다리의 부드럽고 담백한 맛과 쑥의 향긋함에 금세 매료되고 만다.

처음 먹어보는 사람들은 쑥의 쌉싸래한 맛과 향을 일컬어‘독특한 국물 맛’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독특한 맛에 익숙해지면 금세 도다리쑥국의 매력에 빠진다. 그래서 미식가들은 도다리쑥국의 주인공은 도다리가 아닌 쑥이라고 이야기한다. 도다리쑥국의 맛에서 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쑥의 향이 된장 국물과 만나 감칠맛이 살아나고 여기에 담백한 도다리의 식감까지 더해지면 맛이 더욱 풍부해진다.

계절별 제철 재료로 음식을 내는 식당에선 이르면 2월 중순부터 도다리쑥국을 팔기 시작한다. 특히 항구와 가까운 경남 통영 지역의 시장 안엔 도다리쑥국을 봄철 대표 요리로 내놓는 식당들이 줄을 잇는다. 그중 ‘희정식당’은 대표적인 도다리쑥국 맛집으로 갓 잡은 도다리와 햇쑥으로 맑게 끓인 맛이 상당히 좋다. 함께 나오는 제철 반찬도 별미다. 이 둘의 맛 조합이 좋아 사람들은 ‘밥도둑’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너무 맛있어서 밥이 끝도 없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도다리쑥국으로 유명한 곳은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충무집’이다. 이 곳은 주인장의 부친이 1964년 경남 통영에서 ‘희락장’이라는 상호로 문을 열면서부터 시작됐다. 그 시절 가장 자신 있게 내세웠던 음식이 바로 도다리쑥국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충무집의 봄철 대표 메뉴인 도다리쑥국은 5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단골손님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으면서 인기 메뉴로 자리 잡았다. 도다리쑥국과 세트로 구성된 멍게비빔밥 역시 대표 메뉴다. 흰 밥 위에 잘게 썬 멍게와 무순, 김 가루, 참기름을 올린 향긋한 멍게비빔밥은 구수한 도다리쑥국과 함께 먹었을 때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다.

만물은 생동하다가도 때가 되면 지고, 또다시 피어날 날을 기다리며 오랜 기다림과 인고의 시간을 갖는다. 지금, 이 좋은 봄날에 만나는 도다리쑥국이 그렇다. 지금 아니면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봄의 기운이 만연하는 동안 봄의 맛과 향을 마음껏 즐기길 바란다.

황해원(Hwang Hae-won 黃海嫄)월간외식경영 편집장
이민희(Lee Min-hee 李民熙)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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