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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WINTER

K-드라마의 최초 설계자들

K-드라마의 최초 설계자들은 극본을 쓰는 작가들이다. 시나리오 집필부터 촬영 그리고 편집 과정을 감독이 총괄하는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아이디어 구상, 캐릭터 창조, 이야기 구성 과정에서 작가가 전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가 여전히 ‘작가의 예술’로 인식되는 이유다.

(왼쪽부터)
박재범 작가의 <열혈사제>(2019), 박지은 작가의 <사랑의 불시착)(2019~2020), 박재범 작가의 <빈센조>(2021), 김은숙 작가의 <쓸쓸하고 찬란하신(神) 도깨비>(2016~2017), 노희경 작가의 <우리들의 블루스>(2022).

 

드라마 작가들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극본에 반영한다. 한국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하지만, 인류 보편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는 성찰의 결과물이기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한국적 특수성에 세계적 보편성이 담기는 것이다. 기존 ‘한류 드라마’가 ‘K-드라마’로 진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류 드라마가 특정 성별과 연령대, 지역의 시청자들에게 주로 공감을 얻었던 데 반해 K-드라마는 더 넓고 깊은 파급력을 지닌다.

국내 드라마 작가들이 지니는 문제의식은 매우 다채롭다. 작가들의 성향에 따라 달콤하고 낭만적인 사랑,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인생사, 통쾌한 웃음으로 풍자하는 부조리한 사회상, 고단한 일상을 위로하는 가슴 뭉클한 가족애 등으로 특화되기도 한다.

‘K-드라마 월드’는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을 지닌 ‘설계자들’에 의해 보다견고하고 풍요롭게 구축되고 있다.


능동적 여성 캐릭터

1997년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 작가로 데뷔한 박지은(Park Ji-eun 朴智恩)은 발랄하고 유쾌한 웃음이 넘치는 로맨스를 지향하면서도 현실적인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는다. 로맨스 장르에서 청춘남녀의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대부분 경제적 신분의 격차이다. 재벌 2세 같은 현대판 백마 탄 왕자를 만나 신분이 상승하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가 현실성 없이 그려지는 경우가 되풀이된다. 하지만 박지은의 로맨스는 이러한 공식에서 벗어나 있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를 통해 여성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진 현실을 반영하되, 허점이나 문제 상황을 연출해 인물의 개성과 매력을 보여 준다. 2013년 12월 첫 회를 시작해 2014년 2월 말 21부작으로 종영한 SBS의 TV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My Love from the Star, 來自星星的你)>와 tvN이 2019년 12월부터 2020년 2월까지 방영한 16부작 TV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Crash Landing on You, 愛的迫降)>이 대표적이다.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전지현 분)는 400여 년 동안 한국에 살고 있는 외계인 도민준(김수현 분)과 사랑에 빠지는 당대 톱스타 여배우이다. 매사 당당한 모습이지만, 이따금 상식에 맞지 않는 무식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내리며 웃음을 유발한다. 예컨대 트위터가 SNS라는 것을 모르면서 아는 듯이 말하다가 망신당하는 상황이 대표적이다. <사랑의 불시착 >의 여주인공 윤세리(손예진 분)는 패러글라이딩을 타다가 북한에 불시착하면서 난관에 봉착한다. 대한민국 재벌가의 막내딸로 독자 브랜드를 만들어 성공시킬 정도로 경영 능력이 뛰어난 캐릭터지만, 북한에 불시착한 후에는 북한군 장교 리정혁(현빈 분)을 포함한 그곳 주민들과 엮이면서 웃음을 자아낸다.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은 한국 자본주의의 현실을 환기하고, <사랑의 불시착>의 리정혁은 남북 분단 현실을 일깨운다. 이처럼 작가는 발랄하고 유쾌하지만 자칫 비현실적일 수 있는 로맨스에 한국 사회의 세태를 반영하면서 극적 현실성을 확보한다.

로맨스 드라마의 변주와 확장

김은숙(Kim Eun-sook 金銀淑)은 로맨틱 코미디 분야에서 독보적인 작가이다. 2004년 SBS가 방영한 20부작 <파리의 연인(Lovers in Paris, 巴黎恋人)>은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 작가의 작품임에도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후 <시크릿 가든(Secret Garden, 秘密花园)>(2010~2011)이 다시 한 번 크게 히트하면서 국내 대표적인 드라마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이 두 작품은 재벌 남성과 평범한 여성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는데, 이 때문에 김은숙은 종종 신데렐라 이야기를 낭만적이고 환상적으로 구현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작가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인간적 고뇌나 사회적 문제, 시대의 굴곡 등 다양한 주제 의식을 녹여 낸 드라마들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멜로 드라마의 경우에도 끊임없는 변주와 상상력의 확장을 통해 일반적인 로맨스물과는 다른 매력을 선보인다.

그중 하나가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들이다. 보통 로맨스 드라마는 남녀 주인공만 부각되고 그 외 주변 인물들은 평면적으로 그려지기 마련이고, 삼각 관계를 설정해 갈등 구조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경우가 많다. 김은숙은 다른 행보를 보이는데, 대표적으로 KBS 2TV가 특별 기획하여 제작한 16부작 드라마 <태양의 후예(Descendants of the Sun, 太陽的后裔)>(2016)를 들 수 있다. 이 드라마에는 특수부대 정예 요원 유시진(송중기 분)과 의사 강모연(송혜교 분) 이외에도 여러 커플들이 등장해 각각의 에피소드가 흡인력 있게 펼쳐진다. 개성이 뚜렷한 조연들이 어우러지며 만들어 내는 절묘한 호흡도 드라마의 재미를 배가시키는데, 이러한 입체감은 김은숙 드라마를 관통하는 큰 특징 중 하나이다.

tvN에서 방영된 <쓸쓸하고 찬란하신(神) 도깨비(Guardian: The Lonely and Great God, 孤單又燦爛的神: 鬼怪)>(2016~2017)도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어법에서 벗어나 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김신(공유 분)은 신적인 존재로서 초월적 능력을 갖춘 인물이다. 자신이 모시던 왕의 칼에 죽었지만, 신의 뜻에 따라 부활하여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를 불멸의 삶을 살면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다. 이 캐릭터는 도깨비 신부 지은탁(김고은 분)을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불멸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삶을 잇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데, 이런 설정은 삶의 아이러니를 숙고하게 만든다. 이처럼 김은숙은 판타지, 스릴러, 시대극 등 장르와 서사를 확장시키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로맨스 세계를 완성한다.

김은숙 작가의 16부작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신(神) 도깨비>는 전생과 현생, 동서양의 신화와 설화, 비극과 희극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가적 역량을 발휘한 작품이다. 전생의 악연으로 얽혀 있는 도깨비 김신과 저승사자 왕여(王黎)의 브로맨스는 남녀 등장인물들의 애틋한 로맨스 못지않게 큰 화제를 모았다.
스튜디오드래곤 제공, 촬영 박지선

tvN의 2018년 방영작 <미스터 션샤인(陽光先生)>은 많은 시청자들이 이른바 ‘인생 드라마’로 꼽는 작품이다. 구한말을 배경으로, 빼앗긴 주권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탄탄한 연출과 빼어나 영상미 속에서 펼쳐진다. 주연, 조연 가릴 것 없이 저마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들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도 상찬을 받았다.
스튜디오드래곤 제공, 촬영 박지선

사회 비판과 풍자

2000년 호러 영화 <씨어터(Theater)>로 데뷔한 박재범(Park Jae-beom 朴才范)은 한국 사회의 문제적 현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풍자하며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을 지향하는 작가이다. 대개의 드라마들에서는 주로 판검사나 경찰 등 공권력을 가진 인물들에 의해 사회 정의가 구현된다. 하지만 이른바 ‘정의 3부작’이라 불리는 그의 최근작들에서는 평범한 회사원이나 사제 또는 마피아처럼 공권력과 전혀 무관한 주인공들이 그 역할을 맡는다.

우선 <김과장(Good Manager, 金科長)>(2017)에서는 돈에 천부적인 감각을 가진 경리 과장 김성룡(남궁민 분)이 불합리한 부정부패에 맞서 싸운다. <열혈사제(The Fiery Priest, 熱血司祭)>(2019)는 전직 국가정보원 대테러 특수 요원 출신이며 괴팍한 성격에 분노조절장애까지 갖고 있는 가톨릭 사제 김해일(김남길 분)이 공권력과 폭력 조직이 결탁하여 저지르는 조직적인 범죄를 소탕한다. 그런가 하면 최근작 <빈센조(Vincenzo)>(2021)에서는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 빈센조(송중기 분)가 자신이 당한 것을 몇 배로 되갚아 주는 악당의 방식으로 악에 맞서며 문제를 해결한다. 이처럼 박재범은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을 풍자의 웃음에 담아 정의가 위협받는 세태를 블랙코미디로 완성한다.

박재범 작가의 2019년작 <열혈사제>는 기발하고 전복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블랙코미디이다.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복선을 잘 활용했으며, 국내외 유명 영화들의 패러디가 극의 재미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삼화네트웍스 제공

인생에 대한 성찰

노희경(Noh Hee-gyoung, 盧姬璟)>은 1996년, 시한부를 선고받은 엄마와 그 딸의 이야기를 그린 <엄마의 치자꽃(Mom’s Gardenias) >으로 데뷔했다. 인간관계와 가족의 소중함을 따뜻한 시선과 깊이 있는 통찰력으로 그려내는 것이 특징이다. 데뷔 초부터 현재까지 줄곧 비주류 인생과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향한 성찰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멜로 드라마와 가족 드라마의 경계를 넘나들지만, 인간관계의 본질과 가족의 의미를 진정성 있게 들여다보며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헌신과 희생을 강요받았던 수많은 어머니들의 사연을 딸의 시선에서 그려낸 tvN의 <디어 마이 프렌즈(Dear My Friends, 我親愛的朋友們)>(2016), 소소하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일상의 가치를 역설하는 <우리들의 블루스(Our Blues)>(2022)가 국내를 넘어 세계인들의 가슴을 울렸다.

‘황혼 청춘들의 인생 찬가’를 표방하는 <디어 마이 프렌즈>는 늙음과 병듦이라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을 묘사하는 드라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친구들에게도 차마 말할 수 없는 사연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어머니들의 인생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시도한다. 딸 박완 역할로 분한 배우 고현정이 투사처럼 굳세다고 생각했던 어머니들의 가슴 아픈 속내를 접하면서, “그러니까 우리 세상 모든 자식들은 눈물을 흘릴 자격도 없다. 우리 다 너무나 염치없으므로…”라고 담담한 목소리로 읊조릴 때 많은 시청자들이 눈물을 흘렸다.

한편 tvN에서 지난 6월 20부작으로 종영한 <우리들의 블루스 >는 대부분의 드라마가 서울을 배경으로 삼는 것과 달리 제주도가 무대이다. 그곳의 자연 풍광만큼이나 아름다운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주목하는 드라마다. 인생의 끝자락에 서 있는 사람부터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까지 갖가지 사연들을 서정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마지막 회에 나오는 “우리는 오직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라는 자막에는 작가의 세계관이 함축되어 있다.

이들 외에도 뛰어난 중견 작가들이 저마다 고유한 색깔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또한 짧은 경력에도 전 세계 시청자들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은 신인 작가들도 눈에 띈다. 청춘 남녀의 포기할 수 없는 꿈과 사랑을 따뜻한 시선으로 응원한 <스물다섯 스물하나(Twenty Five Twenty One, 二十五,二十一)>(2022)의 권도은(Kwon Do-eun, 权度恩), 동해 바닷가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맑고 깨끗하게 담아낸 <갯마을 차차차(Hometown Cha-Cha-Cha, 海岸村恰恰恰)>의 신하은(Shin Ha-eun, 申夏恩),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변호사의 시선으로 세상의 편견을 그려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Extraordinary Attorney Woo, 非常律師禹英禑)>(2022)의 문지원(Moon Ji-won, 文智媛)이 그들이다. 이 신예들은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K-드라마의 새로운 설계자들이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노희경 작가가 tvN으로 방송사를 옮긴 후 발표한 첫 번째 드라마로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등장인물들의 대부분이 노령의 배우들임에도 뛰어난 작품성과 주제 의식으로 높은 시청율을 기록했다.
스튜디오드래곤 제공

올해 방송된 노희경 작가의 휴먼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옴니버스 형식, 장애인 배우들의 기용 등 과감한 시도를 비롯해 국내 최고의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 호화 캐스팅으로도 화제를 낳았다.
스튜디오드래곤 제공

윤석진(Yun Suk-jin, 尹錫辰)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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