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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2023 SUMMER

맛도 모양도 일품인 왕실 주전부리

1971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궁중 음식은 조선 시대 식문화의 백미이다. 궁중에서 먹었던 음식인 만큼 제철 재료로 정성껏 만들어 맛과 영양이 뛰어나다. 그중에서도 특히 왕실에서 즐겼던 주전부리는 크게 병과(餠菓)류와 화채(花菜)류로 나뉘어지는데, 각각의 종류가 매우 다양할 뿐더러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웠다.

화전, 약과, 정과 등으로 구성된 ‘경복궁 생과방’ 프로그램의 상차림.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와 한국문화재재단은 관람객들이 궁중 병과와 약차를 맛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매년 봄과 가을에 개최한다.
ⓒ 한국문화재재단(Korea Cultural Heritage Foundation)


음력 3월 3일 삼짇날은 봄의 기운을 맞는 명절이다. 집 안에서만 활동해야 했던 조선 시대 여인들은 공식적 나들이가 허락된 이날 경치 좋은 곳을 찾아 진달래꽃으로 화전(花煎)을 부쳐 먹었다. 왕실도 마찬가지여서 임금이 후원(後苑)에 행차하면 왕비가 궁녀들과 함께 몸소 진달래꽃을 따서 꽃지짐을 만드는 ‘화전 놀이’ 행사를 했다.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둥글납작하게 빚고 진달래꽃을 얹어 기름에 지진 진달래화전은 쫄깃하고 달콤하다. 화전은 먹는 즐거움에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얹어 풍류를 더한 음식이다. 여름과 가을에는 장미 화전과 국화전을 즐겼다.

특별한 날 야외에서 계절을 느끼며 만들어 먹었던 화전 같은 별식도 있었지만, 궁중 음식은 대부분 궁궐의 각 전각에 딸린 부엌에서 만들어졌다. 왕의 일상식은 소주방(燒廚房)에서 조리했고, 후식과 별식은 생과방(生果房)이 담당했다. 특히 떡과 과자는 왕실 연회가 열릴 때 잔칫상을 한층 풍성하고 화려하게 만드는 중요한 음식이었기에 생과방 나인들이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특별한 떡

서울 필동에 자리한 한국의집 고호재(KOHOJAE, 古好齋)가 2021년 선보인 1인 다과상. 단호박으로 만든 증편과 딸기를 얹은 백설기를 비롯해 다양한 전통 과자로 구성되었다.
ⓒ 한국의집(KOREA HOUSE)

왕의 탄신일이나 궁중 잔치 때 빠짐없이 올렸던 가장 귀한 떡은 단연코 두텁떡이다. 귀한 떡인 만큼 만들기도 어려운데, 간략히 말하면 이렇다. 간장과 꿀을 섞은 찹쌀가루를 한 숟가락씩 떠서 시루에 간격을 두고 담는다. 이 위에 잘게 다진 밤, 대추, 유자를 팥고물과 합쳐 둥글게 소를 빚은 후 각각 얹는다. 그런 다음 전체적으로 찹쌀가루를 뿌리고 팥고물로 덮어서 찐 봉우리 모양의 떡이 두텁떡이다. 영양이 풍부하고 간간이 씹히는 상큼한 유자의 맛과 향이 좋다. 궁중 잔치 음식을 기록한 옛 문헌들에 만드는 법이 소개되어 있다.

1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약식(藥食)도 궁중 잔칫상에 빠지지 않았던 병과이다. 찐 찹쌀에 꿀과 참기름, 간장으로 간을 한 후 밤, 대추, 잣 등을 섞어 다시 쪄낸다. 일반적인 떡처럼 떡메로 치지 않아 밥의 형태를 지녔고, 꿀이 들어가 달콤한 맛을 낸다. 쌀가루에 막걸리를 넣어 반죽하고 발효시켜 찐 증편(蒸䭏)은 대표적인 여름철 떡인데, 빨리 쉬지 않아 좋다. 막걸리에 있는 효모의 작용으로 반죽이 발효되면서 부풀어 폭신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달착지근하면서도 막걸리 향과 시큼한 맛이 감돌아 입맛을 돌게 한다. 고명으로 꽃잎이나 밤, 대추, 잣 등 다양한 재료를 얹어 보기에도 좋다.

(좌)
아홉 가지 한약재를 넣어 만든 ‘구선왕도고’는 위장을 보호해 소화를 촉진하고 원기를 회복시킨다고 알려졌다. 세종대왕을 비롯해 조선의 여러 임금들이 즐겼던 특별한 떡이다.
ⓒ 한국문화재재단(중)
단호박으로 만든 증편, 산딸기 정과, 콩과 송홧가루로 만든 다식이 접시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한국의집 고호재가 2022년 여름에 선보인 다과 메뉴 중 일부이다.
ⓒ 한국의집(우)
국화과에 속하는 홍화(Safflower, 紅花)는 씨로는 기름을 짜고 꽃은 말려서 차로 마신다. 부인병에 효과가 있으며 관절 통증을 완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예로부터 즐겨 마시는 전통 차 중 하나이다.
ⓒ 한국의집

부작용 없는 9가지 한방 약재를 넣어 ‘몸속을 조화롭게 하는 것이 왕의 도를 닮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떡 구선왕도고(九仙王道糕)는 엿기름과 곶감 분(粉)을 넣어 달콤한 맛이 난다. 세종(재위 1418~1450)은 몸이 비대하고 막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당뇨와 신경통 등 질병이 많았다. 쓴 탕약을 잘 먹지 못하는 세종을 위해 어의가 올린 떡이 바로 이것이다. 볕에 바싹 말려 가루로 빻아 두었다가 죽을 쑤어 먹기도 하고, 꿀물에 타서 마시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황해도 개성 지역 혼례상에서 존재감이 돋보였던 떡이 궁중 음식으로 격상된 사례도 있다. 개성주악은 찹쌀가루와 멥쌀가루를 섞어 막걸리로 되직하게 반죽한 다음 둥글넓적하게 빚어 기름에 지진다. 꿀이나 조청을 발라 단맛과 윤기가 나고, 귤처럼 작고 동그란 모양이 예뻐 궁에서도 귀한 손님에게 내는 다과상에 올렸다. 겉은 바삭하면서 달콤하고, 속은 촉촉하면서 쫄깃한 식감이 좋다.

민가에 퍼진 궁중 과자

떡 다음으로 궁중에서 즐겼던 주전부리는 과자였다. 그중에서도 다식(茶食)은 민가와 궁중을 따지지 않고 두루 먹었다. 곡물 가루와 한약재 가루에 꿀을 넣어 반죽한 후 다식판에 눌러 박아 낸다. 고려(918~1392) 시대에 차를 마시는 풍습이 성행하면서 함께 발달했고, 큰 잔치나 의례상에 반드시 올랐다. 다식판에 새겨진 글씨나 문양이 과자에 찍히는데, 무병장수 등의 의미가 담겼다. 영조(재위 1724~1776)와 정순왕후(貞純王后, 1745~1805)의 가례(嘉禮) 때 다식을 만들기 위해 다식판을 새로 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다식과 함께 사랑받았던 전통 과자는 약과(藥菓)다. 밀가루에 참기름과 꿀을 넣고 반죽하여 기름에 튀겨 낸 것을 꿀에 담갔다 건져 만들어 단맛이 풍부하다. 궁중에서 즐겼던 약과의 맛이 좋아 민가에도 널리 퍼졌는데, 약과에 사용되는 재료가 너무 비싸 민생을 어렵게 한다는 이유로 한때 제조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밤, 대추 등 과실의 열매나 생강 같은 식물 뿌리를 익혀서 꿀에 졸인 과자를 숙실과(熟實果)라고 한다. 재료를 통째로 익혀서 원래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도록 졸인 것과 재료를 익힌 뒤 으깨어서 설탕이나 꿀에 졸인 다음 다시 원래 모양과 비슷하게 빚은 것으로 나뉜다. 이러한 숙실과는 부드럽고 소화가 잘되어 궁중 잔치뿐만 아니라 양반가의 혼인, 회갑연 등 경사스러운 잔칫상에도 올랐다.

또한 약재 자체가 과자가 된 사례도 있다. 인삼정과(人蔘正果)는 인삼을 살짝 쪄서 쓴맛을 줄이고, 꿀이나 조청에 넣어 은근한 불로 오랫동안 졸여서 쫄깃쫄깃하고 달콤하게 만든다. 83세까지 장수했던 영조는 인삼을 즐겼지만, 검소함을 강조해 제수(祭需)로 올라오는 인삼정과의 수를 줄이게 했다고 한다.

궁중에서 즐겼던 주전부리 중에는 유과와 약과처럼 민가에 널리 퍼지는 경우도 있었다.
ⓒ 셔터스톡

시원한 여름 음료

떡과 과자에는 어울리는 음료가 곁들여지게 마련이다. 제호탕(醍醐湯)은 음력 5월 5일 단오에 궁중에서 먹던 여름 음료이다. 매실 과육을 발라 말린 것에 생강과(Zingiberaceae) 열매인 초과(草果)와 한약재를 가루 내어 꿀과 섞고 되직해질 때까지 중탕한 뒤 냉수에 타서 마셨다. 궁중에서는 갈증이 해소되고 더위를 타지 않게 하는 음료 중 으뜸으로 여겼다. 내의원(內醫院)에서 이 탕을 만들어 임금께 올리면 임금이 부채와 함께 고령의 신하들에게 하사하는 풍습이 있었다.

역시 여름 음료인 오미자차(五味子茶)는 새콤달콤한 맛과 붉은 색깔이 일품이다. 단맛•쓴맛•신맛•짠맛•매운맛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오미자를 찬물에 불려 우려낸 뒤 꿀을 넣어 시원하게 마셨고, 얇게 썬 배를 띄워 화채로 먹기도 하였다. 중종(재위 1488~1544)의 몸에서 열이 나고 갈증을 호소하자 의녀가 오미자차를 대령했다는 기록이 있다.

화채(花菜)는 꿀물이나 오미자 우린 물에 과일, 꽃잎 등을 띄워 차게 해서 마시는 여름 음료이다. 과일과 꽃잎의 종류에 따라 화채 이름이 달라진다. 유자 화채는 꿀물에 가늘게 채 썬 배와 유자를 넣고 석류와 잣을 띄운 음료로 유자의 상큼한 맛과 향이 일품이다. 궁중 잔치를 기록한 문헌에 소개되어 있으며 주로 왕실 잔치, 사신 접대, 신하에게 내리는 하사품으로 활용되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전통 음료가 있지만 단연코 으뜸은 식혜(食醯)다. 엿기름물에 밥을 넣고 삭혀서 만드는데, 달콤한 맛과 생강의 알싸한 향이 조화를 이룬다. 식혜를 만드는 엿기름에는 디아스타아제 효소가 있어 소화를 돕고 정장 작용 효과가 있다. 인삼과 호박, 연잎 등을 활용한 특별한 식혜들도 있다.

윤숙자(Yoon Sook-ja, 尹叔子) 한국전통음식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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