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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SPRING

우리 시대 공예의 역할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디자이너 양태오(梁兌晤)는 전통 유산의 동시대적 해석을 지향하며 지역 공예에 깊은 관심을 가진다. 인터뷰에서 그는 현재 한국의 공예 현장이 어떠한지, 또한 공예가 우리 일상에서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이야기해 주었다.

2022년 공예트렌드페어의 두 번째 섹션. 디지털 시대에 역설적으로 더 부각되는 노동의 가치가 담긴 작품들을 조명했다.
태오양스튜디오 제공

2022년 9월 1일부터 한 달여 간 서울 북촌에서 열린 재단법인 예올의 설립 20주년 기념 전시 <치유와 다독임의 공예> 중 일부. 양태오 디자이너가 전시 기획과 감독을 맡았다.
재단법인 예올 제공

서구 사회가 그러했던 것처럼 한국의 현대 공예 역시 근대 이후 미술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이로써 공예품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실용적 물건이라는 본래의 목적과 용도를 넘어 예술 감상의 대상이 되었으며, 공예가(工藝家) 또한 장인이 아니라 예술가로 인식되곤 한다.



2022년 공예트렌드페어의 첫 번째 섹션. 전통적 미학과 기법을 계승하고 있는 공예인들의 작품이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태오양스튜디오 제공



하지만 재료를 다루는 조형 능력과 제작 기법은 여전히 공예를 공예답게 만들며 미술 및 디자인과 구분 짓게 만든다. 오늘날 현대 공예는 심미적 가치를 탐색하거나 순수한 조형적 질서를 추구하는 등 표현에 있어서 한층 다원화되었다. 또한 다양한 재료를 혼합해 사용하거나 장르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융복합 양상도 현대 공예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한국의 공예 현장에서 중요한 행사 중 하나는 매년 열리는 공예트렌드페어이다. 공예의 예술적, 산업적 가치를 확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2006년부터 주관해 온 공예 전문 박람회이다. 2022년의 주제는 ‘현실의 질문, 공예의 대답’이었는데, 총감독을 맡은 양태오는 공예가들이 라이프스타일의 획일화, 디지털 기술 발달로 인한 인간적 가치의 상실, 자연과 환경 파괴 같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했다.

양태오는 국립경주박물관 내 신라역사관과 국립한글박물관 상설전시관의 디자인 설계를 비롯해 국제갤러리 리모델링 등 굵직한 프로젝트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예술 전문 출판사 파이돈 프레스의 『바이 디자인: 세계 최고의 동시대 디자이너들(By Design: The World's Best Contemporary Interior Designers)』(2021)과 건축 디자인 잡지 아키텍처 다이제스트가 선정한 ‘2022년 100명의 디자이너(AD100)’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공예가 지속가능성이나 다양성과 같은 사회적 이슈에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으며, 과거의 공예가 미래를 제시한다고 믿는다.

공예계의 현재 트렌드는 무엇인가?

태오양스튜디오의 양태오 대표가 자신이 2021년 론칭한 가구 브랜드 이스턴 에디션(Eastern Edition)의 청담 1호점 쇼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한국적 미감을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재해석하고 있으며, 시대를 초월하는 디자인을 추구한다.
태오양스튜디오 제공



다양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서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그런데 나는 트렌드가 없는 게 바람직한 것 같다. 트렌드를 따르지 않으면 주류에 속하지 못하고 뒤처진다는 강박 관념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공예는 트렌드에서 자유롭다고도 할 수 있다. 공예는 최신 트렌드를 좇다가 지친 사람들을 포용하고, 진정성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공예는 사회적 경쟁에서 벗어나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이들을 위해 존재한다.



공예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일상에서 사용하는 제품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잘 알지 못한다. 재료는 무엇이고, 누가 만들었고, 어떻게 자신들이 그것을 사용하게 되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제품을 사용하고는 버린다. 그것이 재활용되는지 쓰레기가 되는지 모르는 채로. 하지만 공예는 모든 과정을 알 수 있으며, 사람들이 지속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도록 장려한다.



공예가 사회적 이슈를 해결할 수 있는가?
공예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사회적 담론을 조성한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디자인이란 사회를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합리적이고 예술적인 답을 끊임없이 제공하려고 시도한다.

최근에 교토에 휴가를 갔는데, 역사적 서사를 무시하고 미래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교토는 자신의 역사를 현재와 연결하는 도시다. 그래서 무언가 새로운 것이 만들어질 때 타임라인이 잘 연결되어 있다. 합리적인 근거가 뒷받침된다는 얘기다. 디자인은 이처럼 역사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

공예도 마찬가지다. 다음 세대에게 바통을 잘 넘겨줘야 한다. 공예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냐고? 물론이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대중들이 공예를 얼마나 향유하느냐에 달려 있다.



당신에게는‘한국의 미’가 왜 중요한가?
내가 말하는 ‘한국의 미’는 우리의 전통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가 잊어버렸거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나는 시간이 걸릴지라도 전통의 가치를 다시 되새기길 원한다. 전통적인 것들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어떤 아름다움이 있다. 역사를 공부하고, 전통적인 면모를 보존하는 것이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는 데 영감을 준다.



한국의 공예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전망이 아주 밝다. 우리 조상들이 공예와 관련해 뛰어난 기술을 아주 많이 물려주었고, 많은 젊은 공예가들이 그것을 잘 계승하고 있다. 나는 공예가들과 함께 일할 기회가 많은데, 그들이 자신의 일에 자긍심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 사회가 열린 마음과 애정으로 공예를 받아들인다면 일상생활에서 그것의 가치를 잘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공예를 향유하면 좋을까?
사람들이 공예를 어렵게 생각하고 거리감을 느끼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가격인 것 같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공예 작품들이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 일반적인 제조품과 비슷한 정도다. 하지만 사람들이 주저하고 머뭇거리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얼마인지 물어보고 공산품과 비교해 보면, 공예품이 가격에 비해 훨씬 높은 가치를 갖고 있다는 걸 알고 놀라게 될 거다. 그것들은 오래 사용할수록 더 아름다워지기 때문이다.



2022년 공예트렌드페어의 주제를 설명해 달라.
나는 공예가 일시적 이벤트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로에베 재단 공예상을 수상했다면 그것에 멈춰서는 안 된다. 우리 공예 작품들이 국제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기쁘지만, 그보다 우리의 일상에 공예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수상의 영광과 기쁨은 빠르게 과거에 묻혀 버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난 공예트렌드페어에서 현대인의 삶에 공예가 필요한 이유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 공예트렌드페어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작가들은 누구였나?

2022년 6~7월,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엘케이트(Lkate) 갤러리에서 열린< 마음의 연못, 심연(心淵) > 전에 출품한 김덕호(Kim Deok-ho, 金德鎬), 이인화(Lee Inh-wa, 李仁和) 부부 도예가의 작품< 수집(Collect) > . 양태오 대표는 전통적 요소에서 영감을 잘 끌어내는 공예가들로 이들을 꼽았다.
ⓒ 김덕호, 이인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참가 신청을 했기 때문에 선정 과정을 한 번 더 거쳐야 했다.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어떤 이들은 “또 이 사람이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예계에도 스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가능하면 최대한 그들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공예에 관심을 두고, 더 알고 싶어 하게 될 테니까. 예를 들어 김덕호(金德鎬), 이인화(李仁和) 같은 분들이 좀 더 널리 알려져야 할 작가들이다. 그들의 작품은 탁월함 그 이상이다. 물론 이들 외에 다른 공예가들의 작품도 소중하다.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지난 공예트렌드페어에서 김덕호, 이인화 작가와 함께 작업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블루보틀 명동점도 그들과 함께 작업했다. 두 작가는 도자기를 사용해서 문패와 사이니지(signage)를 디자인했다. 나는 앞으로도 공예가들과 계속 협업할 계획이고, 조만간 출시를 앞둔 상품도 있다.

디자이너로서 나는 더 많은 공예가들을 소개하고, 협업을 통해 그들이 작업 세계를 확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블루보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즐거웠던 이유다.



신민희(Shin Min-hee, 申旼熹) 코리아중앙데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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