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null > 상세화면

2023 WINTER

기술, 사람을 위한 가치

문화예술 분야가 현재 기민하게 반응하는 환경적 요인 중 하나는 기술이다. 디지털 중심의 콘텐츠들이 상상력을 현실화하며 감동과 놀라움을 선사한다. 뛰어난 기술력을 기반으로 문화예술 콘텐츠의 생태계를 한층 성장시키고 있는 국내 기업들의 행보에 주목하는 이유다.
1_버시스_메타뮤직 시스템(1).png

뮤직테크 스타트업 버시스(Verses)의 ‘메타 뮤직 시스템’은 인공지능으로 만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음악 감상자들이 메타버스 공간에서 자신의 취향에 따라 뮤지션의 음악을 제어할 수 있다. CES 2023 최고 혁신상(CES 2023 Best of Innovation Award)을 받은 이 애플리케이션은 감상자가 뮤지션의 음악을 변화시키고 상호 작용하는 방향으로 음악 감상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 버시스

기술 발전에 힘입어 이제 디지털은 문화예술 콘텐츠가 싹트고,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모든 과정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어떤 콘텐츠가 주류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건이 필요하겠지만, 그중 중요한 것으로 대중과 만나는 방법을 꼽을 수 있다. 근래 가장 눈에 띄게 성장한 것은 공간 개념이다. 문화예술 콘텐츠의 상당 부분은 이미 무대를 디지털 세상으로 옮겼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비대면 일상을 경험하면서 더욱 고도화되었다. 그 중심에는 모바일과 메타버스가 놓여 있다.

가상 세계
2_제페토_현대차(5).png

현대자동차가 2022년 제페토(ZEPETO)에 구축한 브랜드 체험관 현대 모터스튜디오에서 사용자들의 아바타들이 기념 포즈를 취하고 있다. 메타버스 플랫폼인 제페토는 사용자들이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가상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놀이, 쇼핑, 업무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서비스로 2018년 8월 출시되었다.
ⓒ 현대자동차그룹

K-pop은 요즘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콘텐츠다. 뮤지션들의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전 세계 팬들이 반응하기 때문에 무대가 더욱 정교하게 꾸며지는 추세다. 또한 단지 공연을 위한 배경이 아니라 상상을 표현하는 매개체 역할도 한다. 여기에는 확장 현실(XR, eXtended Reality)이 적용된다. XR은 스튜디오에 거대한 LED 디스플레이를 설치해서 무대 배경에 가상 환경을 만들어 내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뮤지션들은 해외 명소는 물론이고 우주나 상상 속 미래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카메라 이동에 따라 배경도 움직이며, 실제로 그 공간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실감형 콘텐츠 제작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 메타로켓(Metalocat)은 MBC TV의 예능 프로그램< 쇼! 음악중심 > ,< 복면가왕 >등에서 가상 무대를 이질감 없이 꾸며 내 주목받았다. 덕분에 제작진들이 무대 세트를 여러 개 만들어야 하는 부담을 덜어낼 수 있었으며, 카메라 촬영 기법도 과감해졌다.

XR 기반의 가상 공간은 콘텐츠 제작 현장에서 크게 성장 중이다.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CJ ENM 스튜디오 센터 내에는 ‘버추얼 프로덕션 스테이지’가 있다. 벽면과 천장을 모두 대형 LED 스크린으로 꾸민 스튜디오로, 영상물 촬영에 필요한 다양한 배경을 LED 스크린에 구현해 촬영하는 최첨단 시설이다. 로케이션 촬영 없이도 실제 같은 배경이 담기기 때문에 제작 기간과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 최종 콘텐츠의 수준이 비약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전과 전혀 다른 형태의 콘텐츠에 대한 기대를 키운다.

한편 콘텐츠 자체의 가상화 현상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그래픽 기반의 가상 캐릭터와 배경에 쓰이는 기술은 이미 일반적이지만, 정교한 묘사는 제작자들에게 늘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콘텐츠 기획 및 제작사 덱스터 스튜디오)는 조성희(Jo Sung-hee, 趙圣熙)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승리호(Space Sweepers) > (2021)와 최동훈(Choi Dong-hoon, 崔東勳) 감독의< 외계+인(Alienoid) > (2022)을 비롯해 최근 김용화(Kim Yong-hwa, 金容華) 감독의< 더 문(The Moon) > (2023)에 이르기까지 자사의 VFX 기술을 톡톡히 입증한 바 있다. SF 장르의 핵심은 상상력에 달려 있지만, 이를 수준 높은 문화 상품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결국 아이디어를 얼마나 핍진하게 그려내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준 기업이다.

대중문화 콘텐츠의 가상화 바람도 무시할 수 없다. 2018년 처음 등장한 제페토는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꾸준히 성장해 왔다. 이곳은 네이버 제트(NAVER Z)가 운영하는 3D 아바타 기반 소셜 플랫폼으로, 가상 공간에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아바타를 만들어 공간 제약 없이 다른 사람들과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주된 사용자들이 20~30대 젊은 층인 만큼 국내외 기업들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제페토의 가상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중이다.

창의적인 인공지능
3_0005.png

메타로켓은 실감형 콘텐츠 제작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2022년 1월 MBC 방송국 사내 벤처로 선정된 후 1년간 육성 과정을 거쳐 2023년 독립했다. 사진은 메타로켓이 제작에 참여한 MBC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 > 의 한 장면. 3차원 게임 엔진을 활용해 가상 무대를 만들었다.
ⓒ 메타로켓

컴퓨터의 등장 이후 사람이 만들어 내는 많은 것들이 디지털로 전환되어 왔다. 종이가 화면으로, 연필이 키보드와 디지털 펜으로 바뀌었다. 아날로그 입력 방식을 디지털로 옮기는 것이 그동안의 현상이었다면, 이제는 인공지능을 이용해 아이디어와 창의력을 표현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회화는 지난해부터 일기 시작한 생성 AI 열풍에서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분야이다. 수많은 그림을 학습한 머신러닝 모델이 이미 유명 작가들의 명작을 흉내 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또한 원하는 화풍대로 잘 그려줄 뿐 아니라 때로는 사진과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사실적인 그림을 뽑아내기도 한다.

AI 기술 기업 카카오브레인(Kakao Brain)이 출시한 칼로(Karlo)는 국내 기술로 만들어 낸 인공지능 그림 모델이다. 이 서비스는 수준 높은 회화 작품을 척척 그려내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카카오브레인은 칼로만의 독자적인 이미지 제작을 위해 직접 생성 모델을 개발했고, 이 모델을 학습시키는 자체 데이터셋 ‘코요(COYO)’도 직접 개발해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인공지능이 그려낸 그림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창의성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칼로의 그림들은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연유로 칼로뿐 아니라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이미지들을 두고 저작권이 인공지능 개발업체에 있는지 또는 이용자에게 있는지에 대해 논란이 일기도 하며, 심지어 작품으로 인정받고 수상하는 일도 벌어진다.

한편 버시스(Verses)는 메타 뮤직 시스템이라는 인공지능 중심의 음악 플랫폼을 서비스하는 기업이다. 이용자들은 메타버스 공간 안에서 아티스트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교감을 나누면서 음악을 즐긴다. 단순히 정형화된 음악이 아니라 뮤직비디오에 직접 참여해 음악을 진화시키는 서비스다. 코드를 지어내고, 작곡과 편곡을 직접 해내는 생성 AI의 형태에서 한 발짝 진화해 참여와 성장이라는 개념을 더했다고 볼 수 있다. 음악의 중심을 감상에서 참여로 확대시킨 것이다.

기술의 가치
4_CJ ENM 스튜디오 센터 버추얼 스테이지(2).png

CJ ENM의 버추얼 프로덕션 스테이지에서 영상 콘텐츠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장면. 이곳에는 지름 20미터, 높이 7미터의 타원형 메인 LED 월과 길이 20미터, 높이 3.6미터의 일(一)자형 월이 설치되어 있다. 영상물 촬영에 필요한 다양한 배경을 LED 스크린에 구현할 수 있어 세트 설치와 철거를 반복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큰 장점이다.
ⓒ CJ ENM

문화예술 콘텐츠가 기술과 결합하는 목적은 결국 더 풍요로운 창의성의 표현에 있다. MIDI 음악을 통해 음악에 대한 장벽이 사라졌고, 웹이 대중화되면서 누구나 웹툰을 그려 작가로 데뷔할 수 있게 됐다. 유튜브는 평범한 사람들도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메타버스는 예술 작품을 눈앞에서 제한 없이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기술의 흐름은 명확하다. 일부 전문가들과 애호가들만 창작하고 누릴 수 있는 예술이 아닌, 누구나 참여해서 만들고 즐길 수 있도록 제작과 향유의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애초 인터넷 서비스의 목표도 계층과 장벽을 허무는 데 있었다. 그 영향력이 여느 산업처럼 문화 콘텐츠 분야로 넘어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창작자와 감상자의 경계가 무너지고 모두가 자유롭고 동등하게 표현할 기회가 열린다는 것은 문화예술의 존재 의미와도 관계가 깊다. 결국 모든 작품과 콘텐츠는 사람을 통해서 가치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접하고 창작자의 의도를 이해하며 이를 다시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는 순환이 이루어져야 문화예술의 생태계가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최호섭(Choi Ho-seob 崔浩夑) IT 칼럼니스트

전체메뉴

전체메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