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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AUTUMN

가을 향기를 품은 송이버섯

지구에 존재하는 버섯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버섯은 2,000종이 넘는데, 한국 사람들은 ‘버섯’ 하면 제일 먼저 가을을 떠올린다. 바로 송이버섯 때문이다. 이 버섯은 소나무에 붙어 산다고 하여 송이(松栮)라 이름 붙여졌다.

소나무 그늘 아래 봉긋 솟은 송이버섯은 가을이 주는 선물이다. 맛도 맛이지만 향긋한 향이 일품인 송이버섯은 재배가 안될뿐더러 기후에 민감하고 채취가 어려워 희소가치가 높다.

고려 중기의 문인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제14권 고율시(古律詩) 중 「송이버섯을 먹다(食松菌)」을 통해 이 버섯을 자세히 표현했다.

버섯은 썩은 땅에서 나거나
혹은 나무에서 나기도 하네
모두가 썩은 데서 나기에
흔히 중독이 많다 하네
이 버섯만 솔에서 나
항상 솔잎에 덮인다네
솔 훈기에서 나왔기에
맑은 향기 어찌 그리 많은지
향기 따라 처음 얻으니
두어 개으로도 한 웅큼일세
듣건대 솔 기름 먹는 사람
신선 길 가장 빠르다네
이것도 솔 기운이라
어찌 약 종류가 아니랴


생태계 순환의 중요 역할
사람들은 대부분 버섯이 식물인 줄 알지만, 식물이 아니다. 식물과 달리 버섯에는 엽록소가 없다. 광합성을 할 수 없으니 다른 식물이나 동물의 도움을 받아 양분을 구해야 한다. 버섯이 동물과 닮은 구석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양송이버섯, 표고버섯 등은 죽은 나무에 달라붙어 유기물을 분해하여 먹고 산다. 또 동물 배설물에 남아있는 양분을 이용하여 살아가기도 한다. 이규보가 시에 쓴 내용처럼 썩은 데서 자란 버섯이라고 해서 모두 중독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인류는 오히려 썩은 식물에서 자라는 것을 훨씬 더 많이 먹는다. 인공 재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13세기에 참나무 토막을 써서 표고버섯을 키우기 시작했다. 양송이버섯은 17세기 프랑스에서 멜론 재배에서 나오는 퇴비와 말똥거름을 이용해 재배하기 시작했다.

버섯은 생태계에서 양분이 순환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무의 세포벽은 셀룰로오스, 헤미셀룰로오스, 리그닌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리그닌은 분해가 어려운데, 지구상에서 이들 세포벽 구성 성분을 분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생물이 버섯이다. 균류가 죽은 나무를 분해하여 먹는 과정을 통해 나무는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그 토양에서 다시 나무가 자란다.

송이버섯은 포치니버섯, 송로버섯, 능이버섯과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나무와 공생하는 버섯이다. 버섯은 흙 속의 미네랄을 모아 나무뿌리에 일부 공급한다. 그 대가로 나무뿌리는 버섯에 당을 나눠준다. 다른 버섯보다 송이버섯에 더 많은 미네랄이 함유된 이유도 아마 공생 관계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까다로운 성장 환경
버섯의 대부분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땅속에 그물과 같은 모양의 균사로 퍼져 있다. 균사는 양분을 충분히 모으고 물을 흡수해 자실체(子實體)라 불리는 좀 더 치밀한 균사 조직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먹는 것은 땅속의 균사체가 아니라 식물의 꽃에 해당하는 자실체이다.

송이버섯은 살아있는 나무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재배가 어렵다. 지면에서 10cm 정도 떨어진 소나무 잔뿌리에서 공생하여 살아간다. 여름 장마철 땅의 온도가 낮아지면 송이버섯을 채취할 수 있지만 품질이 우수한 것은 주로 가을에 얻을 수 있다. 땅속 온도가 19°C 이하로 떨어지면 송이버섯 균사가 군데군데 팽창하면서 자실체가 지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성장을 위해 비가 꼭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많이 와도 곤란하다. 온도가 너무 낮아도 안 되고 너무 높아도 안 된다. 소나무의 나이가 너무 많거나 젊어도 안 된다. 또 항상 솔잎에 덮여 있지만 너무 두껍게 쌓여 있어도 자라기 어렵다.

 

송이버섯은 갓이 너무 피지 않고 끝이 은백색일수록 높은 품질로 평가받는다. 신선한 송이버섯은 다른 버섯의 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특유의 우아하고 기품 있는 솔 향이 난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송이의 유명세
모든 조건이 맞아야 자라는 버섯인 만큼 가격이 만만치 않다. 갓이 퍼지지 않고 길이가 8cm 이상일 때 가격을 높게 쳐준다. 자루 굵기가 일정하지 않거나 갓이 조금이라도 퍼진 모양인 것은 2등품이다. 갓이 우산처럼 퍼지면 가격은 더 내려간다. 어느 모양이든 맛이나 향은 별 차이가 없지만, 사람의 가치 평가는 희소성에 따라 흔들리기 마련이다.

또 매년 생산량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크다. 한국 내 주산지는 강원도와 경상북도 일대다. 특히 강원도 양양에서 나는 것이 유명한데 2021년 9월 18일 자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양양 송이버섯의 역대 최고 공판가는 2019년에 기록한 132만 원이다.

송이버섯의 높은 인기는 다른 버섯의 이름에도 영향을 미친다. 새송이버섯, 참송이버섯, 꽃송이버섯, 버들송이버섯, 양송이버섯 등은 이름에 송이가 들어가지만 전부 다른 종이다. 이름을 그렇게 지은 건 아마도 송이버섯의 유명세를 따라가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향으로 먹는 송이
단백질, 식이섬유, 비타민, 미네랄 등 우수한 영양소가 들어있긴 하지만 송이버섯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가을의 향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추석 무렵이면 이를 찾는 미식가가 많다. 송이버섯을 넣어 지은 밥은 입에 넣을 때마다 맑은 소나무 향이 가득 퍼진다. 8백 년 전 이규보가 송이버섯을 먹으면서 신선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구절이 이해가 간다.

가을에 송이버섯을 찾는 사람은 많지만 안타깝게도 송이버섯 생산량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다. 1985년까지 연간 1,300톤 정도 생산되다가 최근에는 연평균 219톤으로 감소했다. 소나무 숲 감소, 기후변화, 낙엽 축적, 소나무 재선충의 영향으로 채취할 수 있는 송이버섯의 양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2009년 미국 오리건 대학 연구에 따르면 송이를 채취할 때 갈퀴질을 얕게 하면서 흙을 교체해주면 다음 해 생산량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흙을 다시 덮어주지 않거나 깊게 갈퀴질하면 다음 해 생산량이 90%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인간이 욕심을 부리면 자연과 공존할 수 없단 걸 그대로 보여준다.

햅쌀과 송이버섯으로 지은 솥밥은 가을 최고의 만찬이다. 버섯은 처음부터 넣지 않고 뜸들이기 직전에 밥에 얹는 것이 포인트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국물요리에 송이버섯을 사용하려면 적당히 감칠맛을 더할 수 있는 요리가 좋다. 전골로 즐기기도 하며, 모시조개, 가쓰오부시나 다시마를 베이스로 하는 국물과의 궁합이 좋다.
© 통로이미지

재조명되는 야생 버섯
버섯에는 감칠맛 성분인 글루탐산, 구아닐산이 풍부하다. 특별한 요리 기술 없이도 찌개나 볶음요리에 활용하면 맛이 깊어진다. 고기를 구울 때 함께 굽거나 전으로 부쳐 먹기도 하고 꼬치를 꿰어 산적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국내에 식용이 가능한 버섯은 400여 종에 이른다. 최근 한국에 자생하는 다양한 야생 버섯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프랑스에서 귀하게 대접받는 모렐버섯, 샹트렐버섯을 한국에서도 맛볼 수 있다. 김성윤 음식 전문 기자가 쓴 『조선일보』 2018년 10월 18일 자 기사에 의하면 모렐버섯의 국내 이름은 곰보버섯으로 봄철 전남 신안에서 난다. 샹트렐버섯은 꾀꼬리버섯, 오이꽃버섯, 애꽃버섯, 외꽃버섯 등 다양한 이름으로 지방 전통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버섯을 아는 이가 적어서 찌개 끓일 때 넣는 정도로만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버섯 고유의 맛과 향을 구별하고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 한국의 야생 버섯에 대한 관심과 조리법이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정재훈(Jeong Jae-hoon 鄭載勳) 약사, 푸드 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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