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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SUMMER

전성기를 맞은 K-멜로

최근 넷플릭스(Netflex)에서는 ‘K-멜로’전성시대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한국 멜로드라마가 연이어 화제가 되고 있다. 멜로드라마에 MZ세대의 달라진 가치관이 잘 반영되어 있는 점이 국내를 넘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도 공감을 얻은 이유로 분석된다.

 

<킹덤(Kingdom, 王国)>(2019), <오징어 게임(Squid Game, 鱿鱼游戏)>(2021), <지옥 (Hellbound, 地狱公使)>(2021), <지금 우리 학교는(All of Us Are Dead, 僵尸校园)>(2022) 등 근래에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열풍을 일으킨 작품들 대부분이 장르물이다. 그래서 한국 드라마가 대부분 장르물에 치우져 있다고 오인하기 쉽지만, 실상은 다르다.

예를 들어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을 때 OTT 콘텐츠 순위를 집계하는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FlixPatrol)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한 넷플릭스 Top 10 작품은 바닷가 마을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tvN의 TV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Hometown Cha-Cha-Cha, 海岸村恰恰恰)>(2021)였다. 뒤이어 연상호(Yeon Sang-ho, 延尚昊) 감독의 <지옥>이 또 한번 열풍을 일으켰을 때는 궁을 배경으로 한 KBS의 멜로 사극 <연모(The King’s Affection, 戀慕)>(2021)가 Top 10에서 빠지지 않았다.

이런 흐름은 최근까지도 이어져 이른바 ‘K-멜로’라는 새로운 용어까지 생겨났다.


<스물 다섯, 스물 하나>의 두 여자 주인공은 펜싱 라이벌에서 둘도 없는 친구로 발전하며 서로에 대한 응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
© Studio Dragon

달라진 가치관
K-멜로는 갑자기 생겨난 장르가 아니다. 오래전 KBS의 20부작 TV 드라마 <겨울연가 (Winter Sonata, 冬季恋歌)>(2002)가 일본을 강타하며 한류의 물꼬를 트던 시절부터 싹을 틔웠다. 이후로 SBS의 <별에서 온 그대(My Love from the Star, 來自星星的你)>(2013), tvN의 <사랑의 불시착(Crash Landing on You, 爱的迫降)>(2019) 같은 메가 히트작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20여 년간 공고한 팬덤을 확보했다. 남녀 주인공 사이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과 감정선을 섬세하게 포착해 낸 덕분이다. 한국 드라마의 진짜 주력 장르는 멜로였던 것이다. 여기에 글로벌 플랫폼 OTT의 등장은 K-멜로가 아시아권을 넘어 전 세계로 확장하는 발판이 되었다.

뻔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멜로물은 과거나 현재나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 같지만, 여러 가지 변화한 양상을 엿볼 수 있다. 시청자의 가치관이나 감성이 예전과 달라졌고, 그러한 변화가 드라마에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멜로드라마의 주된 시청자층인 MZ세대는 일과 휴식이 균형을 이루는 삶을 원하고, 성공보다는 행복을 추구하며, 다양한 사회 관계 속에서 존재감을 느끼는데, 이러한 경향이 K-멜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한국 멜로드라마의 특징이었던 신데렐라 서사가 거의 사라진 것이다. 현대판 왕자님이 등장해 힘든 삶을 씩씩하게 버텨 내고 있는 여성에게 신분 상승의 구두를 신겨 주는 스토리는 더 이상 대중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대신에 동등한 위치에 있는 남녀가 취향이나 가치관, 삶의 방식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사랑으로 이어지는 스토리가 많아졌다.

예컨대 <갯마을 차차차>의 여자 주인공은 현실주의 성향이 강한 치과의사인데, 도시에서 살다가 작은 갯마을로 내려와 병원을 개업한다. 그러고는 이렇다 할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마을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으며 살아가는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다. 세속적인 욕망이 투영된 신데렐라 이야기와는 정반대의 가치관을 담아내고 있다. SBS가 지난해 방영해 인기를 모은 <그 해 우리는(Our Beloved Summer, 那年,我们的夏天)>은 헤어졌던 남녀가 다큐멘터리 촬영 때문에 다시 만나 엮이는 스토리다. 이 드라마에서는 두 사람이 주고받는 감정이 부각될 뿐 현실적 상황은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이들 작품의 특징은 주인공들이 성공이나 부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실의 성공이나 경쟁보다는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소소한 행복을 중요시한다. K-멜로가 투영해 내고 있는 가치관의 변화가 글로벌 대중들의 공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전 세계인들이 마주한 ‘시대의 변화’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서른, 아홉>은 마흔을 코앞에 둔 세 친구의 우정과 사랑,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다루는 현실 휴먼 로맨스 드라마이다.
© SLL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현실주의 치과의사 여자 주인공과 만능 백수 남자 주인공의 사랑과 이웃의 따뜻한 정을 담은 <갯마을 차차차>
© Studio Dragon

다양한 취미와 관계
한국의 청춘들은 과거 일 중심으로 살아왔던 기성 세대와 달리 일과 삶의 균형을 원한다. 명함 한 장이 그 사람의 존재를 증명하던 시대를 지나 일과 전혀 상관없는 취향을 통해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세태로 변화한 것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Hospital Playlist, 机智的医生生活)>(2020) 같은 드라마는 이런 MZ세대들의 달라진 가치관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평일 내내 열심히 환자를 돌보던 의사들은 주말이면 밴드 활동에 열정적이다. 이들은 의사로서 성공을 꿈꾸기보다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누리며 행복을 느낀다.

남녀 관계에 집중하던 멜로 드라마가 다양한 관계를 담기 시작한 점도 또 다른 특징이다. 과거 전형적 멜로 드라마는 남성 주인공을 가운데에 두고 펼쳐지는 여성 등장인물들의 경쟁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지난 3월 종영한 JTBC의 <서른, 아홉(Thirty-Nine, 三十九)>은 아예 로맨스보다 세 여성이 보여 주는 워맨스에 집중했다.

시청자들이 멜로 드라마에서 사랑 이상의 스토리를 기대하게 되면서 휴먼 드라마처럼 풀어내는 새로운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tvN의 <스물다섯 스물하나(Twenty Five Twenty One, 二十五,二十一)>(2022)에서는 여자 주인공인 나희도(Na Hee-do)와 고유림(Ko Yu-rim)이 펜싱 라이벌에서 둘도 없는 친구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등장인물들이 서로에 대한 응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 <갯마을 차차차> 또한 개인주의 사회에서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따뜻한 정을 담았다. 한편 멜로드라마 속에서 일의 영역은 보통 배경으로 간단히 그려지기 일쑤였지만, 요즘에는 매우 디테일한 묘사로 현실감을 살리고 있는 점도 특징이다.

정덕현(Jung Duk-hyun 鄭德賢)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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