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서울에서 열렸던 바둑의 최고수 이세돌(Lee Se-dol 李世乭)과 구글(Google)의 자회사 딥마인드(DeepMind Technologies)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의 다섯 차례에 걸친 대결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인공지능이 궁극적으로 인간을 능가하게 될 거라는 오래된 예언의 실현 여부를 인류가 직접 지켜보며 확인하는 긴장된 순간이었다.
SF 영화에서나 봄직한 인간과 기계의 결투의 한 장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인간의 염원을 등에 업은 최고수(세계 랭킹 4위)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의 절대강자 알파고와의 바둑 시합은 문명사적 사건이었다. 인간 고유의 직관과 창의성이 핵심가치인 바둑 게임에 기계가 던진 도전은 인공지능의 미래 방향을 가름해주는 획기적인 신호였다.
바둑, 세상에서 가장 규칙이 단순한 게임
바둑만큼 단순한 게임은 없을 것이다. 서양인들이 즐겨 하는 백개먼(backgammon)과 같은 보드 게임에는 여러 특별한 기구가 필요하다. 체스나 동양의 장기에도 다양한 모양의 기물이 필요하다. 그러나 바둑은 검은색과 흰색의 돌, 그리고 가로 세로 줄이 그어진 판만 있으면 된다. 정식의 돌이 없으면 아무 조약돌이나 나무 조각을 사용할 수도 있다. 얼마 전 해외 학회에 가서 한국인 교수가 외국 학자와 모눈 종이 위에 연필로 돌을 그려가며 바둑을 두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종이와 연필만으로도 가능한 게임은 아마도 바둑 말고는 없을 것이다. 그 규칙도 무척 단순하여 보통 사람이라면 10분 안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돌을 놓는 규칙은 단 한가지뿐이다. 방금 상대방이 따낸 지점에 바로 돌을 놓을 수 없다는 패의 규칙이다.
바둑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가장 오래된 기보 역시 중국에 있다. 전설 속의 황제가 자식 교육을 위해서 고안한 놀이라는 설도 있다. 중국 고전인 <논어>와 <맹자>에 바둑이 언급된 것으로 보아 춘추전국시대(475‒221 B.C.)에 이미 유행했던 놀이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나라에는 4-5세기 경 삼국시대에 도입되었다고 한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던 시절, 바둑은 최고의 오락이었다. 성인 두 사람이 1시간여 동안 꿈쩍 않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놀이로 바둑만 한 것이 없었다. 바둑이 다른 놀이와 또 다른 점은 그 내용의 폭이 매우 넓고 단계별 수준의 벽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바둑에서 하수가 고수를 우연히 이기는 일은 여간해선 일어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예로부터 고수와 하수 간 신분적 벽은 매우 높았으며 고수와 한 판을 두기 위해서 하수는 상당한 공을 들여야만 한다.
바둑은 동아시아 각국에서 전반적인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며 동양의 정신을 대표하는 놀이로 성장해왔다. 하수가 범접하지 못하는 고수의 세계, 음과 양을 대변하는 두 색깔의 돌, 우주 공간을 암시하는 361개의 착점은 동양의 신비를 나타내기에 충분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많은 바둑 용어가 오늘날에도 한국의 정치, 경제, 문화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다. 마지막 결단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의 ‘초읽기’는 원래 바둑 용어이다. 또한 한쪽이 엄청나게 유리한 상황을 말하는 ‘꽃놀이패’라든지, 전체의 과정을 곱씹는 과정인 복기(復棋), 초강수, 수순, 호구 등은 모두 바둑에서 나와 일상화된 용어들이다.
증기기관의 탄생에서 인공지능까지
서양의 기계적, 유물론적 세계관은 감성과 정신을 숭상하는 동양의 세계관과는 여러 모로 달랐다. 예를 들어 동양의 고전들은 찻물을 끓일 때 주전자 뚜껑이 여닫히는 소리에 추억과 애상을 담아 노래했지만 서양은 주전자 뚜껑이 증기압으로 솟아오르는 그 기계적 힘을 주목했다. 산업혁명의 도화선이 된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 그렇게 탄생했고, 그것은 인간의 근력을 기계의 힘으로 대체한 역사적 분기점이 되었다.
더 나아가, 인간의 이성을 대신할 기계문명이 컴퓨터의 등장으로 현실화되었다. 의학의 발전으로 사람의 영혼과 같은 정신적인 영역의 활동도 사실은 뇌세포들의 생화학적 결과물임이 하나, 둘씩 밝혀지게 되었다. 정신병이 악마의 흉계가 아니라 뇌 신경전달 물질의 과대 또는 과소에 의한 것임이 밝혀짐에 따라서 뇌과학, 인지과학이 새로운 학문으로 태동했다. 그리하여 유물론적 관점이 과학으로 체계화되면서 인간의 정신적 능력에 대한 기계의 추격이 시작됐다.
인공지능의 개념은 1960년대에 나왔지만 그 아이디어가 현실화된 것은 컴퓨터와 반도체 기술에 기초한 강력한 하드웨어 덕택이다. 여기에 더하여 빅데이터 기반의 무한기억 공간은 인공지능의 세상을 더욱 확장시켰다. 현재 인공지능은 비행기 조종, 무인감시, 얼굴인식, 스팸 메일 판별, 주식투자 등에서 위력을 보이고 있으며 최근 이보다 더 적극적으로 산업의 영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변화의 냄새를 맡은 기업은 최강 컴퓨터 기업인 구글이다. 구글은 알파고를 개발한 영국 회사 딥마인드를 4억 파운드(미화 6억5천불)에 매입하여 미래의 지식엔진 개발에 한발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알파고도 계산하지 못한 틈새
인공지능의 위력을 대중들에게 가장 극적으로 내보이기 위하여 선택된 첫 목표물은 서양장기인 체스였다. 거듭된 실패 후 1997년에 개최된 공개시합에서 IBM의 딥블루(Deep Blue) 컴퓨터가 세계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를 이겼다. 컴퓨터가 체스에서 인간을 목표로 삼은 지 30년 만의 성과였다. 이후 2011년에는 한 유명 퀴즈쇼에서 IBM의 왓슨(Watson) 슈퍼컴퓨터가 인간들을 일방적으로 제압하고 우승했다. 체스나 퀴즈쇼와 같이 해답의 수가 적은 대결 환경에서는 사람이 컴퓨터를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많은 과학자들이 이미 예견하던 터였다. 그 뒤로 거의 천문학적인 경우의 수가 있는 바둑이 인간의 다음 방어영역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직관과 동양의 전통적 사유 체계가 결합된 바둑 게임에서만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기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믿어져 왔다. 실제로도, 이번 알파고와의 시합 이전에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의 성적은 인간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특히 판 전체를 읽는 능력,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은 매우 낮았다. 그러나 알파고가 나타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드디어 2016년 3월 인간 최고수인 한국인 이세돌과 알파고의 5번기 승부가 벌어졌다. 그리고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알파고의 능력은 충격 그 자체였다. 시합은 4:1, 알파고의 일방적 승리로 마감되었다. 특히 프로기사들의 충격은 일반인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들은 사람의 수법과 전혀 다른 알파고의 묘수와 냉혹함에 경악했다. 초반에 많은 해설자들이 알파고의 이상한 수순을 실수라고 판단했으나 최종 승리가 확정되었을 때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엄청난 계산 끝에 나온 새로운 수임이 밝혀졌다. 첫 세 판 동안 알파고는 어떤 실수도 없이 조금씩 우세를 유지해 나갔고 여기에 심리적으로 흔들린 이세돌의 실책이 거듭되면서 승패는 확정되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제 4국에서 일어난다.
앞서 1,2,3국에서 패한 이세돌이 알파고의 전략을 분석하기 시작했고 제4국을 승리로 이끌었다. 결국 알파고도 계산하지 못한 틈새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알파고는 이전 기보에 기초해서 지능을 축적한다. 즉 이긴 사람의 수순을 분석하여 각 수가 이길 가능성을 확률로 계산하여 모조리 기록해둔다. 이 복잡한 계산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무지막지하게 제공되는 컴퓨터 부품들이다. 1200대의 중앙처리장치(CPU)와 구글의 클라우드 저장소에는 지금까지 인간 고수들이 남긴 모든 기보와 그 가능한 변형이 이미 저장되어 있다. 알파고가 시간상으로 절대 유리한 것은 이들을 읽어서 중간 계산 과정 없이 바로 활용하는 점이다. 또한 알파고의 가장 중요한 장점은 무작위수를 적용한 반복 실험 방식인 몬테카를로 모의실험을 통한 새로운 방법의 탐색이다. 인간이 바둑판에 돌을 놓아보면서 새로운 수의 가능성을 점검하는 일은 한 시간에 많아야 서른 번 정도인데 알파고는 이런 시행착오를 한 시간에 100만 번 이상 거치면서 새로운 수순을 검토해나간 것이다. 그 결과 지금까지 인간이 전혀 고려해보지 못한 틈새의 수를 찾는 데 성공했고, 그것이 이번 시합에서 나타났다. 인간의 눈에는 그것이 실수로 보였고 결국 이런 황당한 수순에 인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의 바둑 이론을 다시 점검할 시간이 왔다”는 이세돌의 시합 직후 발언은 알파고와의 대결을 가장 명확하게 정리한 것이다. 기계의 등장으로 인간은 바둑 이론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바둑에는 수담(手談)이라고도 불리는 정서적 교감이 전제되는데, 인공지능과의 대결로 바둑이 오로지 이기기 위한 확률계산의 수리 문제로 퇴화한 점이다.
이번 시합을 인간에 대한 기계의 공격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과도한 상상이다. 다만, 인간이 계산할 수 있는 일은 결국 기계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해졌으나 어떤 기계든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달려있는 것이므로 문제는 궁극적으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로 귀납될 수밖에 없다.
이번 알파고와의 시합에서 패배했다고 하여 바둑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바둑에만 특화된 알파고가 바로 인간의 영역에 침입하여 인간을 제압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이번 시합을 인간에 대한 기계의 공격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과도한 상상이다. 다만, 인간이 계산할 수 있는 일은 결국 기계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해졌으나 어떤 기계든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달려있는 것이므로 문제는 궁극적으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로 귀납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인간인가, 인공지능인가라는 이분법적 선택이 아니라 이 둘의 적절한 공생이다. 3D TV의 실패에서 보듯이 인간을 이해한 기술만이 살아남는다. 결국은 모두 ‘인간의 문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