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은 예술 작품을 소장하고 전시하는 거대한 그릇이다. 세계적 건축가들의 솜씨로 완성한 미술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다. 주변 환경은 물론 소장품의 성격과 건립 목적에 따라 설계한 건축물은 미술관이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파주 출판 도시에 위치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포르투갈의 건축가 알바로 시자(Álvaro Siza)의 설계로 2009년 완공되었다. 다양한 곡면으로 이루어진 전시 공간은 인공 조명을 최대한 배제하고 자연광을 끌어들여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향연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열린책들 제공, 사진 페르난도 게라
박물관이 과거로의 여행이라면 미술관은 현재로의 여행이다. 박물관이 주로 오래된 것, 근대 이전 인류 문화사의 흔적을 보여 준다면 미술관은 비교적 새로운 것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문화 유산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로 박물관을 꾸밀 수 있다. 미술 작품을 전문적으로 모아서 전시하는 미술관은 넓은 의미에서 박물관의 한 갈래인 셈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비슷한 것 같지만 성격이 조금 다르다. 건축적 측면에서도 그렇다. 박물관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처럼 오래된 옛 건물을 고쳐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미술관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가 설계한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이나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디자인한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 Bilbao)처럼 그 기능과 용도에 맞게 새로 짓는 경우가 많다. 특히 세계적인 건축가가 맡은 미술관은 명소로서 중요한 관광 자원이 되기도 한다.
5천 년 넘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한국의 도시들은 전통과 현대적 감각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그에 걸맞게 전국 곳곳에 크고 작은 미술관이 즐비하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미술관도 많은데, 이런 곳들은 건물 그 자체가 독립된 작품으로도 손색없다.
국립 미술관의 규모와 품격
문화체육관광부(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소속 기관인 국립현대미술관(MMCA,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은 근대부터 동시대를 아우르는 미술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총 4개의 분관으로 나누어져 있을 정도로 규모도 크다. 경기도 과천시에 본관이 있고, 서울에 2개의 분관이 있으며 서울에서 약 130km 떨어진 충청북도 청주시에도 분관이 하나 더 있다. 서울에 있는 분관 2곳 가운데 하나는 조선 시대 왕들이 살았던 덕수궁 안에 있다
궁내 주요 전각 중 하나인 석조전(Seokjojeon 石造殿)은 영국인 건축가 J. R. 하딩(John Reginald Harding)이 설계해서 1910년 완공한 유럽식 건축물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원래는 고종황제의 편전(便殿)과 침전(寢殿) 용도로 건립되었지만, 일제 강점기인 1933년 미술관으로 바뀌어 일반에 공개되었다. 이 건물은 역사적 부침을 겪다가 2014년부터 대한제국역사관으로 운영 중이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으로 사용되는 건물은 일본인 건축가가 설계해 1938년 신축한 석조전 서관(西館)이다. 이곳은 처음부터 미술관 용도로 건립된 국내 최초의 건물이며, 건립 당시에는 ‘이왕가(李王家) 미술관’이라 불렸다. 주로 근대 미술 작품을 전시한다.
한편 서울관은 서울에서도 가장 중심지에 위치해 있는데, 비교적 최근인 2013년 개관했다. 홍익대학교 건축과 민현준(Mihn Hyun-Jun 閔鉉畯) 교수가 설계한 이곳은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이 바로 옆에 있고, 주변에 다른 역사 유적지도 많다. 고도 제한으로 건물을 높게 지을 수 없었기에 전시 공간을 지하에 두었다. 비록 겉모습은 화려하지 않지만 최첨단 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규모와 기능이 각기 다른 전시 공간을 비롯해 프로젝트 갤러리, 영화관, 아트숍 등을 갖췄다.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국내외 작가들의 동시대 미술 작품들을 주로 선보인다.
서울 시내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과천관은 자연 친화적 미술관이다. 특히 메인 로비에 설치한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Nam June Paik 白南準)의 대표작 <다다익선(The More, The Better)>(1986~1988)으로 유명하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미술관 야외는 조각 공원으로 운영된다. 대규모 동물원과 놀이공원이 미술관 바로 옆에 있어서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다. 마지막으로 청주관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을 보관, 관리하는 기능을 맡는다. 담배를 만들던 공장 건물을 개조했으며, 소장품 중 일부가 관객에게 공개되는 개방형 미술관이다.
건축가 민현준(Mihn Hyun-Jun 閔鉉畯)이 설계해 2013년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모습이다.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는 나지막한 이 건물은 곳곳에 마당을 두어 개방감을 느낄 수 있다. 멀리 뒤쪽으로 조선 시대 왕가의 족친(族親) 업무를 맡아보던 관청 종친부(宗親府)의 전각 일부가 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사진 남궁선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입구로 사용되는 옛 국군기무사령부 건물이다. 이곳은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 의원의 외래 진찰소로 사용하기 위해 1932년 준공되었으며, 이후 1971년부터 2008년까지 국군기무사령부 분관으로 활용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사진 명이식
리움미술관은 세계적 건축가인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쿨하스가 설계한 세 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사진은 마리오 보타가 우리나라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형상화해 디자인한 고미술 전시관 ‘M1’이다.
리움미술관 제공, 사진 이한구
지난 몇 년간 리뉴얼을 거쳐 2021년 재개관한 리움미술관의 로비에 자리하고 있는 리움스토어(Leeum Store). 이곳은 재개장 후 국내 공예가들의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공예 콘셉트의 스토어로 바뀌었다.
ⓒ 리움미술관
세계적 건축가들의 설계
2004년 개관한 리움미술관(Leeum Museum of Art)은 한국을 대표하는 사립 미술관이다. 서울 한남동 고급 주택가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국보급 문화재와 수준 높은 현대 미술 작품을 동시에 관람할 수 있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합친 성격을 지닌 곳이다.
국내 최고의 컬렉션 수준을 보여 주는 리움미술관은 건축물 역시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적 건축가 3인이 설계한 건물 세 채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의 건물들은 저마다 다른 개성을 드러내며 미술관 건축의 진면목을 보여 준다. 이곳을 비빔밥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다. 각기 다른 맛을 내는 식재료를 한꺼번에 섞어서 비벼 먹는 비빔밥처럼 각기 다른 특색이 있는 건물들이 조화롭게 어울리기 때문이다.
고미술품이 전시되는 ‘뮤지엄 1’은 강남 교보(Kyobo 敎保)타워와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 MOMA)을 설계한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가 설계했다. 리움이 소장 중인 현대 미술 컬렉션이 전시되는 ‘뮤지엄 2’는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 맡았다. 프랑스 파리 아랍문화원과 카타르 국립박물관, 루브르 아부다비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블랙박스’라고도 불리는 기획 전시실은 네덜란드 출신 건축가 렘 쿨하스(Rem Koolhaas)가 담당했는데,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건축가 중 하나로 알려진 인물이다. 중국 베이징 CCTV 본사를 비롯해 전 세계 여러 도시에 특색 있는 건축물을 많이 남겼으며, 우리나라 국립대학인 서울대학교의 서울대미술관(MOA)도 그의 작품이다.
이 외에도 서울에는 건축적으로 주목할 만한 미술관들이 많다.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도 그중 하나다. 전 세계의 건축학도들이 이곳을 보기 위해 서울을 방문할 정도다. 2016년 세상을 떠난 이라크 출신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설계했다. 직선이 전혀 없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마감된 외형이 인상적이다. 층수도 헤아릴 수 없고 건물의 정면도 따로 없는 비정형의 건축물이다. 그래서 마치 공상 과학 영화에 나올 법한 우주 비행선 모양 같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납작하게 옆으로 넓게 퍼져서 주변에 높이 솟은 고층 건물들과 비교되곤 한다. 이곳은 정식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아니지만, 패션쇼를 비롯해 다양한 이벤트가 자주 열리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한편 서울 서북쪽에 자리한 경기도 파주시는 출판 단지로 특화된 도시다. 미술 전문 출판사가 운영하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Mimesis Art Museum)이 이곳에 있다. 포르투갈 출신 건축가 알바로 시자(Álvaro Siza)가 설계했다. 물결이 굽이치듯 부드러운 곡선으로 마감된 흰색 외관을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미술관답게 1층엔 서점도 있고, 각기 다른 규모의 전시 공간이 하나의 덩어리 속에 담겨 있다.
이라크의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전 세계의 건축학도들이 이곳을 보기 위해 서울을 방문할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패션, 디자인, 미술 전시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 통로이미지
풍경 속의 미술관
뮤지엄 산(Museum SAN)은 강원도 원주시의 오크밸리 리조트 안에 있다. 안도 다다오(Tadao Ando 安藤忠雄)가 건축을 맡아 2013년 5월 개관했다. 특히 빛과 공간의 예술가로 알려진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작품을 위해 만들어진 미술관으로 더욱 유명하다. 전체 관람 동선이 2km가 넘는 대규모 복합 문화 예술 공간이다. 2014년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Financial Times)』가 안도 다다오의 말을 인용하며, “어디에도 없는 꿈의 뮤지엄(I wanted toa garden museum in the sky, a dreamlike museum like no other.)”으로 소개한 바 있고, 2016년 싱가포르 미술 전문 매거진 『The Artling』은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아시아의 뮤지엄(museum in Asia you must visit before you die)”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산속에 자리 잡은 이 미술관은 주변 경관을 그대로 살렸으며, 전체 길이 700m의 오솔길을 따라 입구에서부터 제임스 터렐관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가졌다. 현대 미술과 현대 건축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한국 미술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예술가들을 기념하기 위한 미술관 중 하나인 ‘이응노의 집(Memorial Hall of the House of Goam Lee Ung-no)’은 그가 태어나서 자랐던 시골 마을 홍성에 2011년 지어진 작은 미술관이다. 이응노(Lee Ung-no 李應魯 1904~1989)는 한국의 전통 미술 양식인 한국화를 그린 화가로 젊은 나이에 미술 대학 교수를 할 정도로 안정된 생활을 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나이 50줄에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고국에서의 화려한 경력을 버리고 아무 인연도 없는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문자 추상(Abstract Letter)’ 연작과 ‘군상(Crowd)’ 연작 등 동서양 예술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화풍을 선보이며 유럽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 기념관은 한국의 원로 건축가 조성룡(Joh Sung-yong 趙成龍)이 설계했는데, 이응노의 작품처럼 자연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지며 소박하고 아담하다. ‘이응노의 집’은 미술관 건물 못지않게 연꽃이 핀 연못과 앞마당 조경이 아름답다. 스펙터클한 스케일의 거대한 미술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태적이며 자연 친화적인 경관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조성룡의 대표 건축물은 광주광역시에 있는 의재(毅齋)미술관(Uijae Museum of Korean Art), 서울 올림픽공원에 있는 소마미술관(Seoul Olympic Museum of Arts), 그리고 한강 선유도(仙遊島)공원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의재미술관은 허백련(許百鍊 1891~1977)의 예술혼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1년 광주 무등산 자락에 세워진 미술관이다. 허백련은 동세대의 신예들이 서울에서 활동하며 근대적 화풍을 추구했던 것과 달리 전통 회화의 기법과 정신을 계승했다. 화가로서뿐만 아니라 농업기술학교를 설립하고 차밭을 가꾸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무등산 등산로의 지형적 요건을 그대로 살린 덕분에 풍경과 교감하게 된 이 미술관은 공간 자체가 한 폭의 수묵화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3년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승격되면서 국립공원 안에 자리 잡은 유일한 사립미술관이 됐다.
뮤지엄 산의 제임스 터렐관 전경이다. 강원도 원주의 깊은 산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이 미술관은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설계로 2013년 5월 개관했다.
ⓒ뮤지엄 산
뮤지엄 산의 본관은 대지와 하늘, 사람을 하나로 연결하고자 하는 건축가의 철학이 담긴 건물이다. 방문객들을 본관 입구로 안내하는 워터가든은 마치 미술관이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뮤지엄 산
이준희(Lee Jun-hee 李俊喜)건국대 현대미술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