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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AUTUMN

한글, 글로벌 스포트라이트 속으로

자음과 모음의 변주

한글은 이제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을 넘어 창조적 영감으로 작용한다. 가구, 패션, 일상 소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한글의 조형 원리가 디자인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단순히 글자 형태를 이미지로 차용하는 것을 넘어 문자에 내재된 독창적 개념과 구조를 예술적, 실용적으로 접목하기 위해 많은 디자이너들의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2014년 서울 용산에 국립중앙박물관과 함께 개관한 국립한글박물관은 이러한 디자인적 탐구를 이끌며 다양한 기획 전시를 열고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작품들은 모두 그 일환으로 제작된 것이다. 이 작품들을 통해 한글에 잠재된 시각 예술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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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마루(Activity Flooring)>. 박철희(Park Chul-hee 朴哲熙), 유혜미(Yoo Hye-mi 劉彗美). 2019. 나왕 합판. 각 400 × 400 ㎜. 한국 전통 가옥에서 마루는 방과 방을 연결하는 매개이자 가족이 모여 음식을 먹고 대화를 나누는 소통의 공간이다. 이 작품은 그 같은 마루의 구조적 형태와 기능을 네모꼴 안에 자음과 모음이 조합되는 한글의 조형 원리와 접목시켰다.
각 모듈은 자음과 모음을 응용한 부분은 나뭇결을 세로 방향으로, 여백 부분은 가로 방향으로 재단한 뒤 조합해 시각적으로 변별성을 갖게 했다. 또한 모듈을 바둑판처럼 연결했을 때 호나 원이 완성된 형태가 될 수 있도록 패턴을 만들었다. 그래픽 디자이너 박철희와 가구 디자이너 유혜미의 협업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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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캐비닛(Hangeul Cabinet)>. 하지훈(Ha Ji-hoon 河志勳). 2016. 참나무, 크롬 도금된 폴리카보네이트(Oakwood, chromed polycarbonate). 왼쪽 1450 × 400 × 370 ㎜ (WDH). 오른쪽 370 × 420 × 1535 ㎜ (WDH). 1050 × 350 × 1420 ㎜ (WDH).장석(裝錫)은 전통 목가구의 결구나 모서리 부분을 보호하고, 개폐 부분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 부착하는 금속으로 장식적인 역할도 겸한다. 이 작품은 한글 자음과 모음을 패턴화해 장석처럼 표현했다. 자음과 모음을 이루는 점과 선을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한편 한글 고유의 질서와 규칙을 심미적으로 보여 준다. 하지훈은 전통적인 모티프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가구 디자이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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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모던(Neo Modern)>. 임선옥(Im Seon-oc). 2019.한글 자모를 3차원 입체 글자로 만든 뒤 이를 잘라내 만든 그래픽을 패브릭에 프린트한 작품이다. 한글 자음 ‘ㄱ’을 뒤집으면 ‘ㄴ’이 되고, 여기에 획을 하나 더 그으면 ‘ㄷ’이 되는 것처럼 제자(制字)의 확장성을 의상 디자인에 응용한 점도 특징이다. 이에 따라 동일한 디자인이 조합 방식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로 변형될 수 있게 만들었다. 패션 디자이너 임선옥이 론칭한 브랜드 ‘파츠파츠(PARTsPARTs)’는 모든 요소들(parts)이 유닛처럼 존재하는 브랜드로, 이 작품 또한 그 연장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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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프레임워크(Hangeul Framework)>. 티엘(TIEL). 2019. 혼합 매체(Mixed Media), 75~150 mm(W), 50~150 mm D, 50~150 mm(H).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음절 단위로 조합하는 모아쓰기 방식으로 표기된다. 디자인 스튜디오 티엘은 자음과 모음을 무한히 조합해 사용할 수 있는 한글의 구조적 특징을 부각시킨 육면체 블록을 만들었다. 각기 다른 색상과 물성을 지닌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한 음절의 초성, 중성, 종성에 해당되는 블록들을 결합시켰을 때 조화와 대비가 느껴지도록 했다. 티엘은 이중한(Lee Joong-han 李重漢)과 샤를로트 테르(Charlotte Therre)가 함께 운영하는 디자인 스튜디오이며, 주로 모듈형 디자인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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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한글 유닛(10 Hangeul Unit)>. 송봉규(Song Bong-kyu 宋奉奎). 2016.플라스틱(ABS), 호두나무, 알루미늄. 180 × 180 × 180 ㎜ (WDH). 이 블록 작품 또한 한글의 음절 단위 모아쓰기 표기 방식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10개의 모듈로 구성된 이 블록은 각 자음과 모음의 재료를 달리하여 글자의 물성을 감각적으로 표현했으며, 3D 툴로 제작되었다. 한글 조형 원리를 놀이처럼 즐길 수 있게 한 작품이다. 송봉규는 창의성과 실용성의 균형을 추구하는 산업 디자이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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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의 거실(The Living Room of Vowels and Consonants)>. 박길종(Park Kil-jong 朴洁宗). 2019. 금속에 분체 도장, 전구, 아크릴. 가변 크기. 오늘날 한글의 기본 자모는 자음 14자와 모음 10자를 합쳐 총 24자이지만, 15세기 창제 시에는 28자가 만들어져 쓰였다. 훈민정음으로 불렸던 당시의 한글 28자의 형태에 흥미를 느낀 박길종은 그 글자들을 기본 골격으로 활용해 의자, 탁자, 옷걸이를 만들었다. 그는 실용적이면서도 위트 있는 맞춤형 제작 가구로 알려진 가구 디자이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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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의 조합(Combination of Vowels and Consonants)>. 서정화(Seo Jeong-hwa 徐廷和). 2019. 참나무, 황동, 현무암, 레진, 아크릴, 유리. (왼쪽부터) 스툴 600 × 400 × 600 (WDH). 벤치 1800 × 600 × 400㎜ (WDH). 레진 조명 100 × 300 × 800 ㎜ (WDH). 현무암 조명 200 × 500 × 500 ㎜ (WDH). 긴 유리 조명 200 × 200 × 700 ㎜ (WDH). 레진 조명 1400 × 150 × 400㎜ (WDH).유리 조명 200 × 200 × 400 ㎜ (WDH). 쉽게 익혀 널리 쓰이게 하겠다는 한글 창제의 실용 정신을 계승한 작품이다. 자음을 전구로, 모음을 스탠드 기둥으로 표현한 조명 기기처럼 자음과 모음의 부피, 비례, 소재 등을 변주하며 일상에서 사용되는 여러 종류의 가구에 적용했다. 서정화는 형식과 구조, 소재를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가구 디자이너이다.

김민정(Kim Min-jung 金旻貞) 월간 『디자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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