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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SUMMER

궁궐, 최고의 인재들이 일하던 공간

절대 권력자인 임금이 거주하던 궁궐은 당대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일터이기도 했다. 왕과 왕실을 위한 갖가지 물품이 그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의료 시설과 교육기관 등 왕실 운영을 위한 전문 기구들도 그들에 의해 움직였다. 궁궐을 배경으로 한 사극은 역사서에 기록으로만 존재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2014년, 영화 <상의원> 개봉 당시 홍보를 위해 제작된 장선환(Chang Sun-hwan, 張宣煥) 작가의 일러스트레이션. 상의원에서 왕실 의복을 제작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담백한 필치로 표현했다.
ⓒ 장선환


궁궐이 주요 무대인 사극들은 대개 왕과 왕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관리들과 내시, 궁녀 같은 주변 인물들은 배경처럼 그려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때로는 역사 속에서 조연이었던 사람들의 삶이 크게 부각되는 경우도 있다. 궁궐은 왕과 왕족들이 거주하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일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원석(Lee Won-suk, 李元錫) 감독의 <상의원>은 조선 왕실의 의복을 제작했던 상의원에서 있었음직한 사건을 흥미롭게 극화하고 있는데, 화려한 의상을 보는 재미도 제공한다.
ⓒ 영화사비단길

이원석(李元錫) 감독의 2014년 개봉작 <상의원(The Royal Tailor, 尙衣院)>은 왕실 의복을 만들었던 기관 상의원이 이야기의 주 무대이며, 안태진(安泰镇) 감독의 2022년 작 <올빼미(The Night Owl, 夜梟)>는 궁중의 의약을 총괄했던 관청 내의원(內醫院)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다룬다. 또한 2022년 12월 종영한 tvN의 TV 드라마 <슈룹(Under the Queen’s Umbrella, 王后傘下)>에서는 조선 시대 왕세자 교육을 담당했던 관청 시강원(侍講院)이 등장한다. 시청자들은 이런 대중문화 콘텐츠를 통해 조선 시대 궁궐의 특별한 공간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직업과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왕실 의복 제작 기관

영화 <상의원>은 요즘으로 치면 수석 디자이너와 재야의 고수가 한판 대결을 벌이는 이야기다. 30년 동안 왕실 옷을 지어 온 상의원의 최고 실력자 조돌석(趙都碩, 한석규 분)과 타고난 재능이 출중한 이공진(李孔鎮, 고수 분)의 대립이 줄거리의 핵심이다. 이공진이 왕과 왕비의 마음을 사로잡은 옷을 만든 뒤 조선의 유행을 주도한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이야기는 허구이지만, 사건이 전개되는 무대인 상의원은 실존했던 관청이었다. 조선의 상의원은 고려 시대 상의국(尙衣局)을 계승한 기관으로, 의복 제작은 물론 왕실의 보화, 도장, 가마 제작까지 관장했다.

『정종실록(定宗實錄』(1426)에 보면 “상의원은 전하의 내탕(內帑)이므로 의대(衣帶), 복식의 물건을 일체 모두 관장하는데, 다만 간사한 소인의 무리로 하여금 맡게 하여 절도 없이 낭비하는 데에 이르니, 이제부터 공정하고 청렴한 선비를 뽑아서 그 일을 감독하게 하소서.”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를 통해 상의원의 주요 업무를 알 수 있다. 또한 『세종실록(世宗實錄)』(1454)에는 경복궁 내 정전인 근정전(勤政殿)에서 큰 잔치를 베풀면서,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옷과 신발을 상의원에서 제작하게 한 기록도 있다.

이렇듯 막중한 업무를 담당한 상의원의 위상과 규모는 상당했다. 조선의 헌법인 『경국대전(經國大典)』(1466)에 상의원에 근무한 관원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총책임자 격인 제조(提調) 2명을 비롯해 총 11명의 정규직이 있었고, 제조와 부제조는 왕의 비서실인 승정원의 승지가 겸직했다. 따라서 상의원의 실질적 최고 책임자는 조선 시대 관직 체계상 정품(正品)에 속한 높은 벼슬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정규직 이외에 잡직(雜職)으로 다수의 지원 인력이 배치되었다.

위엄과 권위를 지닌 왕실의 옷을 제작하는 만큼 각 분야 최고 장인들이 이곳에 근무하였는데, 『경국대전』에는 상의원에 소속된 장인이 68개 분야 597명이었으며, 그중 비단을 짜는 장인이 105명으로 가장 많았다고 나와 있다. 이 외에도 실 표백하는 장인 75명, 바느질 장인 40명, 천을 짜는 장인 20명, 초립 장인 10명, 털옷 장인 8명, 옥장(玉匠) 10명을 비롯해 은을 다루거나 금박을 입히는 장인도 다수 배치되었다. 이렇듯 상의원은 의복뿐만 아니라 옥이나 은, 화살 등 각종 물품을 다루는 일도 담당한 만큼 기술이 뛰어난 관료들이 일하기에 최적의 기관이었다. 세종(재위 1418~1450)이 조선을 대표하는 과학자 장영실(蔣英實)을 상의원 별좌(別坐)에 임명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왕실 의료 기관

<올빼미>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던 소현세자(昭顯世子)의 독살설을 다룬 작품이다. 청나라 심양(瀋陽)에서 8년 만에 돌아온 인조(재위 1623~1649)의 아들 소현세자는 귀국 후 두 달 만에 급서했고, 영화는 그 죽음에 의혹을 제기한다. 낮에는 사물을 볼 수 없지만 거꾸로 밤에는 보이는 주맹증(晝盲症)을 지닌 주인공 천경수(千京秀, 류준열 분)는 내의원 어의(御醫) 이형익(李馨益, 최무성 분)에게 탁월한 의술을 인정받아 입궁한다. 주인공은 허구의 인물이지만, 이형익은 인조의 후궁인 귀인 조(趙) 씨와 모의하여 소현세자 독살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는 실존 인물이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된 내의원은 조선 시대 의료 기관 중 한 곳이었다. 조선에는내의원, 전의감(典醫監), 혜민서(惠民署) 같은 의료 기관들이 있었는데, 기관마다 진료하는 대상이 달랐다. 내의원은 왕을 비롯해 왕족들의 진료와 치료를 담당했다. 전의감은 왕의 종친(宗親)과 관리들의 치료를 위한 기관이었으며, 혜민서는 서민들의 건강을 보살폈다. 내의원에는 정식 관원 이외에 실질적으로 의료 활동을 하는 의원과 의녀들도 배치되었는데, 드라마 <대장금(大長今)>(2023~2004)의 서장금(徐長今) 같은 의녀는 주로 왕실 여성의 진료와 출산 등을 맡았다.1830년대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을 그린 <동궐도(東闕圖)>를 보면,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서쪽에 내의원이 위치했던 것을 볼 수 있다. 내의원은 20세기 초에 세자의 거처였던 성정각(誠正閣) 쪽으로 옮겨졌는데, 현재 이곳에 걸려 있는 현판은 영조(재위 1724~1776)가 하사한 것으로 ‘임금의 몸을 보호하고, 임금이 드시는 약을 제조한다(造化御藥保護聖躬).’는 뜻이 담겨 있다.

영조는 내의원에서 가장 자주 진료받았던 왕이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1623~1894)를 통하여 영조가 내의원에 들른 기록을 통계로 정리하면 한 달 평균 11.3회로, 사흘에 한 번꼴로 진료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가 83세로 조선의 최장수 왕이 된 데에는 철저한 건강 검진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세자를 위한 교육 기관

<상의원>과 <올빼미>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픽션이라면 지난해 말 종영한 <슈룹>은 사고뭉치 왕자들을 위해 치열한 왕실 교육 전쟁에 뛰어든 왕비의 이야기를 다룬 퓨전 사극이다. 허구적 캐릭터인 왕비(김혜수(金憓秀) 분)의 모습은 교육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요즘 세태를 반영한 것처럼 보인다. 제목 ‘슈룹’은 우산의 옛말로 어머니가 자식의 우산이 되어 준다는 뜻을 내포한다.

2022년 16부작으로 방영된 tvN의 사극 드라마 <슈룹>은 중전이 왕자들을 위해 치열한 왕실 교육에 뛰어든다는 허구의 이야기가 긴박감 있게 펼쳐진다.
스튜디오드래곤 제공

이 드라마가 묘사한 그대로는 아니겠지만, 왕세자는 차기 왕위를 계승하는 존재인 만큼 철두철미한 교육을 받았다. 조선 왕조는 세자만을 위한 특별 교육 기관으로 시강원을 두어 유교 경전, 역사서, 예절 등을 가르쳤다. 겸직이긴 하지만 지금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영의정이 최고 책임자였고, 분야별 최고의 실력을 갖춘 전임(專任) 선생만 10명 이상을 배치할 정도로 시강원의 관원 구성은 탄탄하였다.

세자와 스승이 함께 학문을 하는 자리를 서연(書筵)이라 하였는데, 시강원은 서연을 통해 왕이 될 준비를 하던 공간이었다. 조선의 세자들 가운데 시강원의 스승들을 가장 당혹스럽게 한 인물은 태종(재위 1400~1418)의 장남 양녕대군(讓寧大君)이었다. 11세의 어린 나이에 세자로 책봉된 그는 공부를 소홀히 하고 수업 시간에 빠지는 일이 많았다. 양녕은 학무에 전념할 것을 충고하는 스승에 대해 “그만 보면 머리가 아프고 마음이 산란하며, 그가 꿈에 보이면 그날은 반드시 감기가 든다.”고 푸념하면서 진절머리를 냈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던지 『태종실록(太宗實錄)』(1431)에는 공부를 소홀히 한다는 이유로 양녕 대신 그를 수행하던 내시가 볼기를 맞은 기록도 보인다. 양녕대군은 이후에도 기생을 가까이하는 등 기행을 일삼았고, 결국 14년 동안 있었던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세자 교육은 물론 허구적 상황이지만, 양녕과 같이 공부를 등한시하여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난 역사적 사실을 고려하면, 왕비가 세자 교육에 촉각을 곤두세운다는 설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신병주(Shin Byung-ju, 申炳周)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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