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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2022 AUTUMN

놀이터가 된 미술관

경험 가치를 중시하는 MZ세대가 미술관을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장소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미술관과 주변 풍경을 사진에 담아 SNS에 공유하고, 뮤지엄숍에서 굿즈를 구입하며 세대적 취향을 만끽한다. 이런 흐름에 따라 미술관들 역시 트렌드에 맞는 기획과 장치로 젊은 세대의 시선을 잡아끄는 중이다.

그라운드시소 서촌에서 올해 11월까지 열리는 <레드룸(Red Room: Love Is in the Air)>은 사랑과 연애, 섹스를 주제로 다루는 전시다. 만 19세 이상만 입장할 수 있다는 점이 젊은 층의 흥미를 불러일으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일러스트레이션 작가 민조 킹(Minzo King)의 작품이 전시된 공간이다.
ⓒ 미디어앤아트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사회 조사 결과’에 의하면 한 해 동안 미술관에 방문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19.3%로 2019년에 비해 단지 0.3%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큰 폭으로 감소세를 보인 음악회나 연극, 뮤지컬 등과 비교해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미미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조사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온라인 전시의 경우 60대, 50대, 40대 순서로 관람률이 높았던 데 반해 현장 방문은 30대와 20대가 가장 높았다는 점이다. 20~30대는 컴퓨터 모니터나 모바일 화면을 보며 전시를 즐기기보다 발품을 팔아 미술관에 직접 가는 것을 더 선호한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최근 일어나는 몇 가지 현상들이 이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MZ세대로 통칭하는 20대와 30대는 특별한 경험과 재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며, 그것을 타인과 공유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미술관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는 부모 세대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 부모 세대에게 미술관이 예술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장소였다면, 이들에게는 사진도 찍고 쇼핑도 하고 휴식도 취하는 등 다채로운 경험이 가능한 공간이다. 한마디로 미술관이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놀이터가 된 것이다.


사진 찍기 좋은 곳
근래 들어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기획으로 문턱을 낮추고 있는 미술관들이늘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대림(大林)미술관(Daelim Contemporary Art Museum)이 있다. 이곳은 대림문화재단(Daelim Cultural Foundation)이 1996년 대전 지역에 개관한 한림(韓林)미술관을 2002년 서울 통의동 주택가로 이전하면서 이름을 바꾸어 재개관한 미술관이다. 가까이에 경복궁이 자리하고 있는 데다가 동네에 아담한 한옥들이 골목골목 어깨를 맞대고 있어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흐른다. 뒤로 보이는 인왕산 풍경도 아름답다.

2010년 대림미술관은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의 아트 컬렉션을 소개하는 <인사이드 폴 스미스(Inside Paul Smith)>전을 열었다. 이 전시는 패션을 미술관으로 불러들였다는 점에서도 화제가 되었지만, 이른바 미술관 ‘인증샷’이 시작된 첫 전시였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전시장 내 촬영을 엄격히 금지했던 당시 미술관 풍토에서 대림미술관은 최초로 관람객들이 전시장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후 이곳에서 개최하는 전시에서는 인증샷을 남기느라 분주한 MZ세대 관람객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 미술관이 젊은 층에게 다가설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전시 콘텐츠였다. 대림미술관은 2012년 미술관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면서 어렵고 관념적인 미술이 아닌 ‘일상이 예술이 되는 미술관’을 표방했다. 산업 디자이너 디터 람스,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가구 디자이너 핀 율 등을 조명하는 기획전은 젊은 층에게 미술관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대림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미술관 중 SNS에 가장 많은 게시물이 올라가는 곳은 단연 디뮤지엄(D Museum)이다. 대림문화재단 설립 20주년을 맞아 2015년 한남동에 설립된 이곳은 개관 특별전으로 세계적인 라이트 아트(light art) 작가들을 초대해 <아홉 개의 빛, 아홉 개의 감성(Spatial Illumination - 9 Lights in 9 Rooms)>전을 선보였다. 이 전시는 새로운 경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젊은 세대에게 환영받으며 SNS를 타고 입소문이 났다. 당시 미술관 측은 전체 관람객 중 20대가 68%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참신한 전시 기획
디뮤지엄은 최근 기존 장소에 비해 대중교통이 편리하고 접근성이 좋은 서울 성수동 서울숲 인근으로 이전했다. 올해 10월 말까지 열리는 개관 특별전 <어쨌든, 사랑: Romantic Days>은 이 미술관의 지향점을 뚜렷이 보여 준다. 로맨스의 다양한 순간과 감정을 여러 장르의 작품을 통해 감상할 수 있는데, 특히 국내 대표적인 인기 순정 만화 7편의 명장면을 모티브로 삼아 스토리를 구성한 점이 돋보인다.

대림미술관에 이어 젊은 세대가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전시를 구성하는 곳들이 점차 느는 추세다. 2012년 서울 부암동에 개관한 서울미술관(Seoul Museum)은 개관 초반에는 현대 미술 작가들의 개인전이나 소장품 위주의 전시를 주로 선보였지만, 차츰 MZ세대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2016년 상반기에 열렸던 <연애의 온도>를 예로 들 수 있다. 사랑의 의미를 묻는 이 전시는 당초 3개월간 열릴 예정이었지만 반응이 뜨거워 약 2달간 전시를 연장했다. 5개월 동안 9만 명에 이르는 관람객을 동원한 이 전시는 미술 작품에 대중가요를 접목하는 시도로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전시는 마치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속편을 제작하는 것처럼 2021년 말 전시 구성과 형식에 변화를 주어 관람객들을 다시 맞이했다

2017년 기획전이었던 <카페 소사이어티>는 만남과 휴식의 장소인 카페를 주제로 삼았는데, 전시장을 카페처럼 연출한 덕분에 큰 관심을 모았다. 서울미술관은 이러한 시도 끝에 꼭 한 번은 가봐야 하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미술관 뒤편에는 조선 시대 제26대 왕인 고종(재위 1863~1907)의 부친 이하응(李昰應1821~1898)이 사용하던 별장 석파정(Sukpajung 石坡亭)이 있다. 미술관 방문객들은 이곳까지 관람할 수 있는데, 서울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수려한 자연 경관은 관람객들이 이 미술관에 매력을 느끼는 또 다른 이유다.

그런가 하면 전시 기획사 글린트(Glint)가 2018년 서울 회현동에 문을 연 복합 문화 공간 피크닉(Piknic)은 1970년대 지어진 한 제약회사의 사옥을 개조한 곳이다. 일본의 작곡가이자 피아노 연주자인 류이치 사카모토(坂本龍一)의 데뷔 4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개관전 <류이치 사카모토: 라이프, 라이프(Ryuichi Sakamoto: LIFE, LIFE)>를 비롯해 산업 디자이너 재스퍼 모리슨의 회고전 <재스퍼 모리슨: 사물성(Jasper Morrison: THINGNESS)>과 기획전 <명상(Mindfulness)〉 등이 큰 화제를 일으켰다. 특히 2021년 4월부터 10월까지 열린 <정원 만들기(GARDENING)>는 ‘반려 식물’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을 정도로 식물을 통해 정서적 교감과 위안을 얻으려는 최근의 풍조를 적극 반영했고, 코로나19로 지친 사람들에게 청량한 휴식을 선사했다.

한편 부산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Busan)이 지난해 개최했던 생태 환경 기획전 <시간여행사 타임워커(The Timetravel Corporation Timewalker)>도 반향이 컸다. 한때 국내 최대의 철새 도래지였으나 생태계 파괴가 가속화되고 있는 을숙도의 현황을 널리 알리기 위해 기획한 이 전시는 게임형 인터미디어 형식을 취했다. 20대에게 인기 있는 방 탈출 게임을 접목해 관람객들이 함께 문제를 풀어 자물쇠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다음 전시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서울 회현동의 복합 문화 공간 피크닉(piknic)은 1970년대 지어진 한 제약회사의 사옥을 개조한 곳으로 MZ 세대에게 핫플레이스로 소문난 장소이다. 특히 이곳의 루프탑은 SNS상에서 인증샷의 성지로 회자된다.
ⓒ 피크닉

올해 10월 말까지 열리는 디뮤지엄(D Museum)의 재개관 특별전 <어쨌든, 사랑(Romantic Days)>은 만화와 웹툰을 일상적으로 접하는 20대의 특성을 적극 반영해 미술관의 문턱을 한층 낮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 디뮤지엄, 노경



쇼핑하는 공간
2021년 11월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나라의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을 상설 전시하는 ‘사유의 방(Room of Quiet Contemplation)’을 개관했다. 이를 기념해 국립박물관문화재단(Cultural Foundation of National Museum of Korea)은 반가사유상을 본떠 만든 미니어처 제품을 새롭게 기획해 판매했다. 이 상품은 젊은 세대에게 ‘유물 피규어’라 불리며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이 여파로 사유의 방도 새로운 명소로 부상했다.

이처럼 미술관의 달라진 풍경은 각 미술관마다 운영하는 기념품숍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젊은 세대가 복합 쇼핑몰이나 편집숍에 가는 것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기념품숍을 방문하는 것도 새로운 문화 현상이다. 과거 미술관 내 기념품숍은 주로 전시 도록을 사기 위한 용도로 방문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곳에 가기 위해 미술관을 방문할 정도로 그 위상이 달라졌다. 2021년 10월 재개관한 리움미술관(Leeum Museum of Art)의 리움 스토어는 ‘생애 처음 시작하는 컬렉션’이라는 콘셉트를 내걸고 상품이 아닌 작품을 판매하는데, 작가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감각적인 공예품들이 가득하다. 특히 아트 퍼니처 작가 최병훈(Choi Byung-hoon 崔棅熏)의 <태초의 잔상(Afterimage of Beginning)>이나 디자이너 이광호(Lee Kwang-ho 李光鎬)의 매듭 연작(Knot Series) 같은 작품들을 한정판 미니어처 가구로 출시했는데, 젊은 층이 구매하기에는 다소 고가이지만 반응은 좋다. 희귀하거나 독특하다면 거침없이 지갑을 여는 MZ세대들의 소비 패턴과 맞물린 결과다. 이러한 아트 상품은 한번쯤 예술 작품을 소장하는 경험을 해 보고 싶은 이들에게 만족감을 준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국보 반가사유상을 본떠 만든 미니어처 제품이 최근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젊은 층이 굿즈를 구매하기 위해 미술관에 방문하는 현상도 이전과 달라진 미술 향유 방식이다.
ⓒ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신흥 컬렉터의 등장
요즘 미술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플루언서는 다름 아닌 BTS의 리더 RM이다. 공립미술관 전시에 자신의 컬렉션을 대여해 주었을 정도로 그가 미술 애호가란 사실은 아미(ARMY)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다.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어떤 미술관이 나왔다 하면 조회수가 실시간으로 급증한다. 심지어 “미술관은 RM이 간 곳과 가지 않은 곳으로 나뉜다”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다. 그가 방문했던 미술관에 찾아가 인증샷을 남기는 이른바 ‘RM 투어’도 등장했다. 일부 인플루언서들이 만들어 내는 이런 현상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으나, 인플루언서들이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신생 공간이나 신진 작가를 소개하는 것은 미술 생태계에 선한 영향력을 준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렇게 전시와 작가에 대해 높아진 관심은 작품 구매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MZ세대 중에서도 주식과 부동산, 가상화폐 시장의 호황을 등에 업은 이들이 미술 시장 안으로 뛰어들고 있다. 국내에서 열리는 각종 아트 페어에도 MZ세대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한국화랑협회 전시 사업팀이 발간한 2021년 「키아프 서울(Kiaf SEOUL) 리포트」에 의하면 지난해 키아프 서울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전체 방문객의 절반가량인 53.5%였다. 그런데 그중 MZ세대가 60.4%로 과반 이상을 차지했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향유하는 것뿐 아니라 투자의 대상으로 관심을 갖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젊은 신흥 컬렉터들의 등장이 미술 시장에 변화를 일으키는 중이다. 미술품을 예술로 보지 않고 단지 투자 대상으로 보면 건강한 시장 발전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고 소통하는 것을 더 중시하는 성향을 띠는 이들 세대가 한국 미술 시장의 저변 확대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 여기는 시각도 많다. MZ세대의 미술관 향유 방식은 인증샷을 찍기 위한 가벼운 목적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미술 시장에서 주목하는 잠재적 컬렉터로 위상이 변화하고 있다.



2016년 10월, 서울 한남동 프린트베이커리에서 열린 슈퍼픽션(Superfiction)의 첫 개인전< sf. sf. sf > . 슈퍼픽션은 삼성 비스포크(Bespoke) 등 여러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해 2030 세대에게 친숙한 아티스트 그룹이다. 전시가 열렸던 프린트베이커리는 미술품 경매 회사 서울옥션이 미술 대중화를 위해 론칭한 아트 플랫폼이며 팝업 스토어, 아트 슈퍼마켓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 다가서고 있다.
슈퍼픽션 제공



배우리(Bae Woo-ri)『월간미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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