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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SPRING

김, 감칠맛과 영양소의 결정체

오랜 동안 한국인의 밥상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 온 김은 맛도 좋고 영양가도 높은 식품이다. 또한 김은 참치와 함께 한국의 수산물 수출 1, 2위를 다투는 품목이기도 하다. 한때 ‘black paper’ 라고 부르며 김을 먹기 주저했던 서양인들 사이에서도 요즘에는 미량 영양소가 풍부하고 칼로리가 적은 스낵으로 점차 인기를 끌고 있다.

김은 국내에서 가장 많이 채취되고 소비되는 해조류다. 빛깔이 검고 광택이 나면서 불에 구웠을 때 파르스름하게 변하는 김이 상품이다. 종이 모양으로 말린 날김은 보통 100장을 한 톳으로 묶어 판매한다. ⓒ Topic

조미된 김은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밥 반찬 중 하나이다. 마른 김에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바른 뒤 소금을 살짝 뿌려서 약한 불에 굽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밥을 싸먹는다. 요즘에는 올리브 기름도 많이 사용된다.

맛있는 것은 누구나 안다는 말이 있다. 김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이다. 김속(Porphyra)에 속하는 해초는 약 70여 종이 있는데 이 해초들이 자라는 지역에서는 대부분 이를 식재료로 사용한다. 맛있기 때문이다.

웨일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바닷가에서도 바위에 붙은 김을 흔히 볼 수 있다. 김빵(laverbread)은 ‘웨일즈 사람의 캐비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맛이 뛰어난 음식인데, 지금도 그곳 사람들이 즐겨 먹는 아침 메뉴다. 잘게 다진 돌김을 오랫동안 끓여 퓨레처럼 만들고 오트밀 가루를 묻혀 베이컨 지방에 프라이해서 만드는 김빵은 일반적인 빵과는 거리가 먼 형태지만, 아마도 해안가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는 음식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종이처럼 얇게 펴서 바짝 말린 김으로 밥을 싸 먹는다. 마른 김을 약한 불에 살짝 굽기도 하고, 참기름이나 들기름 또는 올리브 기름을 바른 뒤 소금을 뿌려 굽기도 한다. 종잇장처럼 얇은 김을 입속에 넣고 씹을 때 나는 아삭바삭한 소리는 청각으로 입맛을 자극한다. 그 밖에 구운 김을 잘게 부수어서 국수 위에 볶은 채소와 함께 고명으로 올리거나 깨소금과 함께 주먹밥 위에 뿌려서도 먹는다. 부순 김을 양념장으로 짭짤하게 무쳐서 만든 김자반도 인기 있는 반찬이고, 찹쌀풀을 바르고 튀겨서 만든 김부각을 스낵처럼 먹기도 한다. 생김이나 말린 김을 물에 넣고 끓여 간하고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살짝 뿌려 먹는 김국도 역시 별미다.

일본에서도 종이 모양으로 말린 김을 즐겨 먹는다. 특히 김은 스시를 만드는 중요한 재료 가운데 하나다. 두툼한 구운 김 조각을 라멘 위에 얹어 먹는 장면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중국에서는 둥글납작하게 뭉쳐서 말린 김 덩어리를 떼어 내 국이나 볶음 재료로 사용한다.

지주식 양식은 조수 간만의 차가 큰 연근해에서만 가능하지만, 부표를 띄워 김발을 거는 부유식 양식은 먼 바다에서도 가능해 김 생산량을 크게 늘릴 수 있게 되었다.

양식한 김은 보통 11월 말부터 이듬해 2월까지 여러 번 채취하여 말리는데, 요즘은 대개 공장에서 건조기로 말린다. 햇빛에 자연 건조하는 전통 방식은 인력이 많이 소요되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감칠맛의 삼중주

한국식 농담에 “국물 음식에 김 가루를 넣으면 반칙”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김에는 음식 맛을 좋게 하는 힘이 있다는 의미다. 알고 보면 김은 맛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음식의 감칠맛을 내는 대표적 성분은 MSG로 잘 알려진 ‘글루탐산’, 핵산계 조미료로 불리는 ‘이노신산(IMP)’, ‘구아닐산(GMP)’, 이렇게 세 가지이다. 동양에서 감칠맛을 내기 위해 주로 사용해 온 파와 다시마, 서양 요리에 자주 이용되는 양파, 당근, 토마토에는 MSG가 많이 들어 있다. 이노신산은 소고기, 닭고기, 닭뼈, 멸치에 풍부하다. 구아닐산은 표고버섯, 포르치니, 곰보버섯(모렐) 같은 버섯류에 많다.

그런데 김에는 글루탐산, 이노신산, 구아닐산이 모두 들어 있다. 이들 셋이 함께 만나 연주하는 감칠맛의 삼중주는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이다. 이노신산 하나만 추가해도 평소 감칠맛을 감지할 수 있는 글루탐산 농도의 1/60 수준에서 감칠맛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여기에 구아닐산까지 더해 주면 감칠맛 상승 효과는 폭발적이다. 그러니 김은 그야말로 감칠맛의 결정체다. 이뿐 아니라 김에는 다양한 유리당(free sugar)까지 들어 있어서 달고 좋은 맛을 낸다.

“뿌리가 돌에 달라붙지만 가지는 없어서 바위 위에 넓게 퍼져 있다. 색은 자흑이며 맛은 달고 좋다.”

한국 최초의 해양생물 백과사전으로 불리는 정약전(1758∼1816)의 『자산어보』에 나온 자채(紫菜)에 대한 설명이다. 길고 넓적한 풀잎 끝부분이 뿌리처럼 돌에 달라붙어 자라는 검붉은 색상의 홍조류인 자채, 즉 김의 모양과 색상, 맛에 대한 묘사가 정확하다. 빠르게 성장한 김은 표면에 반짝반짝 윤기가 돌며 엽록소, 카로티노이드, 피코빌린 같은 색소가 빛을 흡수하므로 검붉은 색을 띤다. 불에 구우면 열에 약한 카로티노이드와 피코빌린은 파괴되고 엽록소만 그대로 남아 숨겨져 있던 녹색이 드러난다.

김에는 글루탐산, 이노신산, 구아닐산이 모두 들어 있다. 이들 셋이 함께 만나 연주하는 감칠맛의 삼중주는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이다.

풍부한 미량 영양소

김은 영양 구성 면에서도 훌륭한 식재료다. 마른 김에는 단백질이 42%, 탄수화물이 36% 들어 있는데 단백질 공급원으로서 양이 충분하진 않다. 하루에 마른 김 한 장(3g)을 먹어도 하루 단백질 권장량의 2%에 불과하다. 하지만 김에는 비타민과 미네랄 같은 미량 영양소가 풍부하다. 흙에 뿌리를 박고 자라는 육상 식물에 비해 해조류의 미네랄 함량은 대강 열 배에 달한다.

김은 베타카로틴, 비타민 C, 비타민 E뿐만 아니라 채식을 주로 하는 사람들에게 결핍되기 쉬운 비타민 B12와 철분,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하다. 또한 다른 해조류보다 함량이 적긴 해도 결핍을 막기에 충분한 양의 요오드가 들어 있다. 과거 영국에서 김이 약초처럼 여겨졌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웨일즈 지방 어머니들은 “더비셔 사람처럼 목이 붓지 않으려면 김빵을 먹어야 한다”고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해산물 섭취가 부족한 영국 내륙의 더비셔 사람들이 요오드 결핍으로 인한 갑상선종(derbyshire neck)을 앓는 경우가 많았던 것을 두고 한 이야기다.

최근에는 김에 풍부한 다당류 성분인 포피란의 기능성 효과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포피란은 김의 세포와 세포 사이를 채우고 있는 물질로 썰물 때 김이 살아남도록 보호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김은 조수간만의 차가 비교적 큰 해안가에서 주로 서식한다. 밀물 때는 짠 바닷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하고, 썰물 때는 자외선과 공기에 그대로 노출되는 가혹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분을 최대 95%까지 잃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환경 변화가 급격하다. 이때 포피란은 수분을 붙잡아 김 세포가 말라붙지 않도록 하며 세포벽의 유연성을 유지하여 밀물과 썰물의 양극단에서도 생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런데 이 성분이 사람의 장 속에 들어오면 식이섬유로 작용하여 암 발병을 줄이고 면역 조절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썰물 때 자외선에 노출되어 받는 산화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김 속의 다양한 항산화물질도 인체에 유익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김밥은 김 위에 흰밥을 얇게 펴고 그 위에 데쳐서 무친 시금치와 길쭉하게 썰어서 볶은 당근, 단무지, 다진 소고기 볶음, 달걀지단을 얹어 둥글게 말아서 만든다. 요즘은 취향과 입맛에 맞춰 재료와 형태가 매우 다양해졌다.

봄철에 김이 묵어 맛이 떨어질 때는 찹쌀풀을 바르고 말린 뒤 튀겨서 김부각으로 만들어 먹는다.© 궁중음식연구원

인공 양식법의 개발

이처럼 김은 맛과 영양 면에서 모두 훌륭한 식품이지만, 지금처럼 양식하여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김 양식은 기본적으로 자연을 흉내 내는 방식이다. 즉, 김이 돌이나 조개껍질에 붙어 자라는 것을 본떠 김 포자를 굴 껍데기나 나뭇가지로 만든 발에 붙이고 갯벌에 꽂아 양식한다. 기둥을 고정하고 김발을 쳐서 밀물 때는 물에 잠겨 성장하고, 썰물 때는 공기 중에 노출되도록 하는 지주식 양식은 돌김이 바위에 붙어 자라는 방식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17세기 무렵에 한국, 일본, 중국의 얕은 바다에서 이런 식으로 김 양식이 시작되긴 했지만 씨 뿌리는 방법을 알지 못하여 어려움이 컸다.

여름이면 사라졌던 김이 도대체 어떻게 가을이 끝나갈 무렵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지 몰랐으니,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각포자(conchospores)를 기다렸다가 씨앗으로 거두어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949년 영국의 조류(藻類)학자 캐슬린 메리 드루베이커가 김의 생명 주기를 연구하여 그때까지 별도의 종으로 여겨졌던 Conchocelis rosea라는 조류가 실은 김의 생애 주기 중 한 단계임을 밝혀냈다. 김의 인공 채묘에 획기적인 돌파구를 만들어 준 것이다. 드루베이커의 연구 덕분에 김 양식의 생산성은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었고, 바다에만 의존하던 채묘가 육상에서 인공적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일본 규슈의 우토 시에서는 김의 대량 양식을 가능케 한 기념비적 연구에 성공한 드루베이커를 ‘바다의 어머니’라고 부르며 그녀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식을 갖기도 했다.

이후 망사에 포자를 부착한 다음 냉동 보관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바다에 설치하는 냉동망 방식이 개발된 이후로는 더 안정적인 대량 양식이 가능해졌다. 전에는 조수 간만의 차가 큰 연근해에서만 지주식 양식이 가능했지만, 부표를 띄워 김발을 거는 부유식 양식이 개발되면서 먼 바다에서도 양식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생산량은 더욱 크게 늘어났다. 한국은 일본, 중국과 함께 세계 3대 김 생산국이자 수출량에서 두 나라를 훨씬 앞서고 있다. 한국에서 생산된 김은 유럽과 미주, 아프리카까지 세계 100여 나라에 수출되면서 ‘바다의 반도체’라고도 불린다. 최근에는 여러 종류의 스낵 제품이 개발되어 한국의 수산물 수출 분야에서 1위를 점령하게 되었다. 하지만 김 양식은 여전히 엄청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극한 작업이고, 세계 시장은 더욱 다양한 제품을 요구할 것이다.

사계절 인기 음식

김 위에 흰밥을 얇게 펴서 깐 다음 그 중심에 여러 색깔의 볶은 채소와 길쭉하게 썬 단무지, 햄, 달걀지단을 놓고 말아서 만든 김밥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점심 메뉴이자 인기 높은 간식 중 하나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까만 김으로 둘러싼 밥과 다양한 재료가 입속에서 어울리며 환상적인 맛을 만들어 낸다. 김밥을 먹을 때마다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음식은 세계인이 오랜 세월에 걸쳐 지식과 정보를 서로 교환하고 도우며 함께 만들어 낸 것이라는 사실에 감동하게 된다. 김은 그래서 더 맛있는 음식이다.

정재훈(Jeong Jae-hoon 鄭載勳) 약사, 푸드 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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