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2024 SUMMER

과거와 현재를 잇는 붉은 벽돌

성수동은 성공적인 도시 재생 사례로 꼽히는 지역이다. 그 기저에는 건축 재료인 붉은 벽돌이 있다. 과거 경공업 중심지였던 성수동에는 1970~90년대 지어진 붉은 벽돌 공장과 주택들이 다수 남아있다. 지역적, 역사적 특성을 지닌 붉은 벽돌 건축물을 보존하고 그 가치를 확산하면서 성수동은 특색 있는 도시 경관을 만들어 가고 있다.

패브리커(Fabrikr)는 대상에 내재한 맥락과 물성을 파악해 이를 자신들의 조형적 언어로 표현하는 아티스트 그룹이다.이들이 공간 디자인을 맡은 카페 어니언 성수 역시 마찬가지. 건물에 남겨진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살려 주변과 이질감 없이 어울리도록 했다.
ⓒ 허동욱(Heo Dong-wuk, 許東旭)

벽돌은 가장 오래된 건축 재료 중 하나로, 개항 이후 급격하게 수요가 증가하면서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 화재나 날씨 변화에 잘 견디고 생산, 운송, 시공이 간편한 구조재였기 때문이다. 철근콘크리트가 등장하면서는 콘크리트 구조 위에 다양한 방식으로 덧붙여 외장재로 많이 사용되었다. 벽돌은 기본적으로 표준화된 형태와 크기를 가지고 있는데 쌓기 방법이나 모르타르 배합, 시공 방식에 따라 마감재로서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


현재 서울에서 최고의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성수동을 걷다 보면, 붉은 벽돌을 입은 건축물들이 이곳의 고유한 풍경을 주도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또한 그 풍경이 단시간에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도 직감하게 된다.

고유한 정취의 보존

성수동은 붉은 벽돌 건축물이 전체 건축물의 약 30퍼센트를 차지한다. 다른 지역에 비해 성수동에 유독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축물들이 많은 이유는 지역적 특성 때문이다. 이곳은 근대기부터 공업 지역으로 조성되었고, 1962년 도시계획법이 제정되면서는 준공업지역으로 지정되었다. 1966년 시행된 토지구획정리사업을 거치면서 현재의 격자형 가로(街路) 체계도 갖추게 되었다. 1970년대에는 경공업 지역으로 발전하면서 많은 영세 업체들이 붉은 벽돌로 공장과 창고를 지었고, 1980~90년대에는 주거 지역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붉은 벽돌로 된 소규모 주택들이 양산되었다. 붉은 벽돌 건축물들이 성수동의 시각적 구심점을 이루게 된 것은 이 시기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성수동은 또 다른 분기점을 맞는다. 산업 구조의 변화로 인해 성수동의 제조업이 쇠락의 길로 접어들면서 공장이 가동을 멈추고 창고가 방치되는 일이 늘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버려진 공장과 창고들을 최소한으로 리모델링해 사진작가의 스튜디오나 디자이너들의 쇼룸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공간들이 화제가 되면서 성수동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도 달라졌다. ‘힙’한 문화예술 지역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관 주도의 변화도 일어났다. 준공업 지역들은 대부분 기존 건축물들을 철거하고 신축을 통해 도시 재생을 계획한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은 과거의 흔적들을 모두 지우고 획일화된 도시 풍경을 만들어 내기 쉽다. 성수동은 과거의 산업 유산을 토대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다는 점에서 여타 지역과 차별된다.

성수 WAVE는 JYA 건축사사무소(JYA-RCHITECTS)가 오래된 다가구 주택을 개조해 상업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곳이다. 곡면을 구현하는 시공 방식을 통해 이웃 주민들의 불편함은 최소화하면서도 상가 입주자들에게는 개방감을 제공했다.
ⓒ 황효철(Hwang Hyochel, 黃曉哲)

성수동을 관할하는 성동구청은 지역의 역사적 맥락과 그로 인해 형성된 고유한 경관을 보존하기 위한 의지로 2017년 「서울특별시 성동구 붉은 벽돌 건축물 보전 및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이 조례는 역사∙문화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는 붉은 벽돌 건축물의 보전 및 지원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 건축물 입면의 경관적, 재료적 특성 보존을 통해 지역의 고유한 정취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도시 재생 방식을 택한 것이다.


보전과 증축

성수동 카페 거리에 위치한 대림창고는 성수동이 핫플레이스로 부상하게 된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은 1970년대 정미소 용도로 지어졌으며, 정미소가 문을 닫은 이후에는 오랫동안 창고로 사용되었다. 2000년대 후반 한 사진작가가 이 건물을 촬영 스튜디오로 활용하면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2011년부터는 대형 패션쇼와 록 공연, 전시회 등이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되었다. 현재 이곳은 카페와 갤러리를 겸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된다. 2016년 오픈한 카페 어니언 성수 역시 50여 년 동안 슈퍼마켓, 식당, 가정집, 정비소, 공장 등으로 변형되어 온 시간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살리며 리모델링되었다.

수십 년 동안 정미소와 창고로 사용되었던 대림창고는 외관은 그대로 둔 채 내부만 리모델링해 현재 갤러리 카페로 운영된다. 성수동을 대표하는 도시 재생공간으로서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 이민희(Lee Min-hee, 李民熙)

2021년 오픈한 공간 플랫폼 LCDC 서울은 자동차 정비소였던 500평의 건물을 재탄생시킨 사례다. 이곳은 레노베이션과 증축이 함께 이루어졌는데, 기존 건물의 벽돌 외벽을 그대로 남기면서도, 새로운 콘크리트 벽을 엇갈리게 설치하여 과거와 현재가 대비되면서도 겹쳐 보이도록 했다. 설계를 맡은 건축가는 ‘기존 건물의 질서를 어떻게 남겨놓을 것인가?’에 대해 ‘박제’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지난해 완공된 서울도시제조허브(Seoul Urban Manufacturing Hub), 일명 ‘성수 사일로 (Seongsu Silo)’는 2018년 공개 공모 당시 붉은 벽돌 입면을 포함한 기존 건물 일부를 존치하되 증축하는 설계 지침을 따라 설계됐다. 성수동 일대의 붉은 벽돌 건축물을 보전하고 지원하는 정책 아래 진행된 공모였던 것이다. 기존 공장은 콘크리트 골조 사이를 벽돌로 채워 만든 라멘조(ramen-structure) 건물이었다. 건축가는 이를 새로운 유형의 공장으로 설계하면서 담아야 할 공간 요소를 전면의 독립된 실린더 형태로 표현했다. 이곳의 공간 중 슈즈 사일로는 전면은 유리, 후면은 벽돌로 계획해 개방성과 독립성을 모두 확보했다. 또한 건물 외부와 내부 바닥에 동일한 벽돌 재료가 연속적으로 이어지게 함으로써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심리적 경계를 낮췄다.


전면은 유리, 후면은 벽돌을 사용해 개방성과 독립성을 동시에 확보한 슈즈 사일로.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SoA)는 기존 공장을 리모델링해 상품 제작, 기획, 유통, 마케팅, 소비가 하나의 공간에서 통합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건물을 설계하는 한편 붉은 벽돌을 사용함으로써 성수동의 경관적 특질을 반영했다.
ⓒ SoA, 사진 신경섭(Kyungsub Shin, 申璟燮)

가능성에 대한 탐구

성수동에서는 현재 신축 공간에도 붉은 벽돌을 활용하고 있다. 2021년 오픈한 생각공장은 성수동에 자리 잡은 수많은 지식산업센터들 중 하나로 연면적 2만여 평 규모로 지어졌다. 애초에 옛 성수동 공장 단지의 건축적 맥락을 이어가려는 생각으로 붉은 벽돌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업무동 저층부와 상가동 전체를 붉은 벽돌로 마감했는데, 이는 업무 공간과 상업 공간이라는 서로 다른 용도의 공간을 이어주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새것과 헌것 사이의 연결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벽돌을 사용한 것이다. 또한 건물 내부에도 2층 높이의 벽면을 붉은 벽돌과 유리벽돌로 채워 과거에서 미래로의 전환을 내포하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지식산업센터 생각공장은 두 개의 오피스동과 하나의 상가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 설계를 맡은 디자인 전문 그룹 디엠피(dmp)는 중심부에 위치한 상가동 성수낙낙(Seongsu NakNak)을 붉은 벽돌로 전면 마감하는 한편 다른 두 빌딩의 저층부에도 붉은 벽돌을 사용해 세 건물에 연속성을 부여했다. 사진은 성수낙낙 내부 모습.
ⓒ 윤준환(Yoon Joon-hwan, 尹晙歡)

이처럼 각기 다른 방식과 전략으로 붉은 벽돌을 활용하여 지어지는 주요한 상업 공간, 오피스 공간, 공공 공간들은 성수동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물리적 매개로서 성공적인 도시 재생에 기여하고 있다. 도시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장소의 고유한 풍경 언어를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데이비드 레더배로우(David Leatherbarrow)와 모센 모스타파비(Mohsen Mostafavi)가 공저 『표면으로 읽는 건축(Surface Architecture)』에서 지적했듯이 역사에 대한 향수로 과거의 형태를 모방하여 디자인하는 것은 다양한 재료와 시공 방식이 제공하는 새로운 기회를 저버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건축 재료로서의 구법과 그 가능성을 계속해서 탐구해 나갈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성수동의 과거와 현재의 연결이 단순히 표피적인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더욱 지속 가능한 도시 재생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박세미(Park Semi, 朴世美) 건축 저널리스트

전체메뉴

전체메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