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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WINTER

웹소설, 웹툰의 스토리텔링과 K-드라마

K-드라마의 인기 요인 중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웹소설, 웹툰과의 관련성이다. 웹소설과 웹툰의 생태계가 무르익은 국내에서 검증된 원작을 활용하는 것은 드라마 제작에 따르는 리스크를 감소시킬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다. 웹소설과 웹툰에는 드라마로 제작되어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뛰어난 작품들이 많은데, 이 장르들에 내재한 스토리텔링적 특성에 기인한다.

하일권(Ha Il-kwon [Ilkwon Ha], 河壹權)의 <안나라수마나라>(2010~2011 네이버웹툰), 라마(Llama)의 <내일>(2017~현재 네이버웹툰), 들깨 각색‧NARAK 작화의 <사내 맞선>(2018~2020 카카오페이지), 연상호(Yeon Sang-ho, 延尚昊) 글‧최규석(Choi Gyu-seok, 崔圭碩) 작화의 <지옥>(2021 네이버웹툰), 주동근의 <지금 우리 학교는>(2009~2011 네이버웹툰), 까를로스(CARLOS) 글‧크크재진(KeuKeuJ.J) 작화의 <모범 택시(Taxi Driver [Red Cage]) >(2020~2022 네이버웹툰, 2023~ 카카오페이지).

올해 가장 인기를 끈 K-드라마는 넷플릭스를 통해 90개 국가에 서비스된 <지금 우리 학교는(All of Us are Dead) >이라 할 수 있다. 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 (FlixPatrol)에 의하면, 올해 1월 공개 직후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 1위를 차지했던 이 드라마는 2022년 10월 말 기준 6위에 올라 있어 여전히 10위권 안에 머무르는 중이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고등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학생들의 이야기로, 2009년 5월 네이버웹툰(NAVER WEBTOON )에 정식으로 연재되기 시작해 2011년 11월 총 130화로 완결된 주동근(Joo Dong-geun, 朱東根)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작가의 데뷔작이기도 한 이 오래된 웹툰을 각색한 드라마가 과연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을지 우려와 기대가 뒤섞였지만, 좀비물의 지평을 한층 넓힌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크게 성공했다.
이 외에도 올해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 100위권에 랭크되었던 K-드라마들 중 상당수가 웹소설이나 웹툰이 원작이다. 대표적으로 SBS의 <모범택시(Taxi Driver)>(2021)와 <사내맞선(Business Proposal, 社內相親, 社内お見合い)>(2022), MBC의 <내일(Tomorrow) >(2022),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안나라수마나라(The Sound of Magic, 魔幻之音, アンナラスマナラ) >(2022) 등이 있다.
인기 웹소설이나 웹툰의 드라마화는 이미 대중성을 검증받았다는 점에서 제작에 뒤따르는 리스크를 감소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이다. 또한 원작의 유명세 덕분에 드라마 홍보 부담까지 덜 수 있다. 무엇보다도 웹소설과 웹툰에는 드라마로 만들었을 때 성공할 확률이 높은 장르적 특성이 내재해 있다.


올해 1월 공개된 이재규(Lee Jae-kyoo, 李在奎) 감독의 <지금 우리 학교는>은 올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드라마들 중 현재까지 10위권 내 순위를 유지하는 중이다.
ⓒ 넷플릭스

주동근 작가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매주 수요일 네이버웹툰에 연재했던 좀비 스릴러 <지금 우리 학교는>의 6화 장면 중 하나. 이 웹툰은 다음 회차가 공개되는 수요일이면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를 정도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네이버웹툰 제공


암묵적 약속의 실현
웹소설이나 웹툰 원작의 드라마들은 좀비, 재난, 로맨스, 액션, 힐링, 복수 등의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는 단순한 플롯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키워드만 들어도 어떠한 내용이 전개될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올해 2월부터 4월까지 방영된 SBS의 TV 드라마 <사내맞선>은 다방면으로 능력이 출중한 CEO와 그 회사 직원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이다. 원작은 해화(Haehwa) 작가의 웹소설이다. 이 작품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Kakao Entertainment Corp.,)가 초기 기획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고 만든 지식재산(IP, Intellectual property) 콘텐츠로, 자사가 운영하는 콘텐츠 플랫폼 카카오페이지(Kakao Page)에서 2017년 8월부터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9월에는 들깨(Perilla) 작가가 원작을 각색하고 NARAK 작가가 작화(作畫)를 맡은 웹툰을 연재했다. 이후 드라마까지 제작해 지식재산의 범주를 확장했다.
원작은 남녀가 만나 오해와 갈등을 풀고 방해 요인을 극복해 사랑을 이룬다는 로맨스의 전통적인 장르 공식을 충실하게 따른다. 주인공 신하리(Shin Ha-ri, 申夏莉)는 절친한 친구의 부탁으로 맞선 자리에 대신 나갔을 때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의 사장이 나타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부터 꼬여 버린 만남이었지만 이들의 사랑은 급속히 무르익고 방해 요인도 별 탈 없이 해결된다. 장르의 공식에 따라 독자들은 두 사람의 사랑이 이뤄지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처럼 장르물의 재미는 창작자와 독자 사이에 자리하는 암묵적인 약속을 충실히 표현하는 데 있다. 웹소설이나 웹툰에서는 독자들의 기대치를 외면하는 반전은 여간해선 일어나지 않는다.
독자가 예상한 대로 쉽게 만족감을 주는 이야기는 상투적이어서 금방 외면당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런데 이를 상쇄시키는 것이 바로 속도감이다. 웹소설은 주 5회 내외, 웹툰은 주 1회 내외로 연재 주기가 매우 짧다. 플랫폼에서 작품을 연재한다는 것은 내일도, 다음 주에도 독자들이 내 작품을 잊지 않고 봐야 할 이유를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웹소설, 웹툰은 대개 100화 정도 길이로 유지되는 긴 이야기임에도 매회 만족감을 줄 수 있도록 내용을 구성해야 한다. 사건이 발생하면 해당 회차에서 해결이 되든지 아니면 최소한 해결의 실마리는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적 스토리텔링이 진부함이나 지루함을 상쇄한다.

2018년 9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카카오페이지(Kakao Page)에, 2020년 10월부터 12월까지 카카오웹툰(Kakao Webtoon)에 연재된 <사내맞선>의 2화 장면. 원작의 서사성을 극대화한 들깨 작가의 각색과 NARAK 작가의 사랑스러운 그림에 힘입어 국내뿐 아니라 해외 웹툰 플랫폼들에서도 순위에 올랐다.
ⓒ NARAK, 들깨, 해화

해화 작가의 동명 웹소설이 원작인 <사내맞선>(2022)은 로맨스물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속도감 있는 시원한 전개와 웃음을 유발하는 다양한 장치 덕분에 TV에서 동시 방영 중인 드라마로서는 이례적으로 OTT를 통해 전 세계적 인기를 얻었다.카카오엔터테인먼트(Kakao Entertainment) 제공

 

사이다 같은 시원함
속도감 있는 전개는 스마트폰에서 주로 소비되는 콘텐츠의 특성이기도 하다. 웹소설과 웹툰이 주로 소비되는 모바일 환경에서는 긴 길이의 콘텐츠나 깊게 곱씹어야 할 내용이 의도한 대로 전달되기 어렵다. 또한 이미 흘러간 이야기를 현재 보고 있는 내용과 연결 지어 한눈에 파악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소비되는 콘텐츠는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직관적으로 표현해야 재미있게 느껴진다. 즉, 전체 맥락을 관통하는 개연성이 아니라 지금 눈앞에 보이는 장면의 개연성과 가독성이 중요하다. 창작자가 독자의 기대감에 충실하게 응답하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 기인한다. 얼마 전 ENA 채널에서 방영한 TV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Extraordinary Attorney Woo, 非常律師禹英禑)>는 총 16부작으로 구성되었는데, 첫 회에서 시작된 사건이 마지막 16회까지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회차나 두 회차에서 각각의 에피소드가 그려진다. 이는 스마트폰에서 보다 빠르고 보다 쉽게 소비되는 콘텐츠 형식을 적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스토리텔링 특성을 웹소설과 웹툰에서는 ‘사이다’라고 말한다. 속이 더부룩하고 답답할 때 청량음료 사이다를 마시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처럼 매회 사건이 발생하고 해결되는 속도가 매우 빠르고 막힘이 없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전문 연재 플랫폼을 통해 짧은 연재 주기와 유료 결제로 운영되는 시스템이 웹소설과 웹툰의 내용과 형식 면에서 사이다 특성을 강화시킨 요인으로 지목된다.

하일권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안나라수마나라>(2022)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된 뮤지컬 형식의 드라마이다. 음악적인 측면뿐 아니라 원작의 회화성을 살린 아름다운 영상미로도 주목을 끌었다.
ⓒ 넷플릭스

 

무한한 상상력의 구현
사이다 스토리텔링은 자칫 상업성에 치우쳐 독자의 입김에 휘둘리거나 획일적인 작품만 양산할 것이란 우려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독자들의 취향과 요구가 천차만별인 것만큼이나 웹소설과 웹툰도 다양한 매력과 스토리텔링을 지녔다. 온라인 플랫폼의 장점은 다양한 취향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기 있고 잘 팔리는 작품뿐 아니라 소수의 마니아들이 주목하는 작품들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웹소설과 웹툰이 주로 1인 창작자 중심으로 제작되기에 가능하다. 타 콘텐츠에 비해 작가의 상상력을 구현하는 제작 비용이 현저히 낮기 때문에 리스크 부담이 매우 적다. 글 또는 글과 이미지를 통해 상상한 것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웹소설과 웹툰이 가진 특장점이다. 이는 개성 있고 매력적인 작품의 창작을 가능케 한다. 그래서 웹소설과 웹툰은 영상 콘텐츠의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해 왔지만, 영상 콘텐츠 제작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과 제한된 채널로 인해 영상화되는 장르는 한정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온라인 스트리밍 업체들의 과감한 투자는 그동안 외면했던 원작들의 영상화를 가속시켰다. 크리처 재난물인 <스위트홈(Sweet Home, 家)>(2020)과 <지옥(Hellbound, 地獄公使)>(2021), 좀비가 등장하는 <지금 우리 학교는> 같은 웹툰이 대표적 사례다.

글로벌 OTT 업체들의 과감한 투자는 제작비 때문에 그동안 외면되었던 웹툰 원작들의 영상화를 이끌어 냈다. 대표적 사례로 김칸비(Kim Carnby [Carnby Kim ], 金坎比) 글, 황영찬(Hwang Young-chan [Youngchan Hwang], 黃英璨) 작화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스위트홈>이 있다.
ⓒ 넷플릭스

2017년 5월부터 2021년 2월까지 네이버웹툰에 연재된 첫 번째 시즌 이후 2021년 5월부터 현재까지 같은 플랫폼에서 두 번째 시즌을 이어가고 있는 라마 작가의 <내일> 1화 장면. 저승사자들이 인간들의 상처를 위로하며 자살을 막는 이야기다.
네이버웹툰 제공

라마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MBC의 16부작 TV 드라마 <내일>(2022)의 한 장면. 배우 김희선(Kim Hee-seon, 金喜善)이 위기관리팀의 구련(Goo Ryeon, 具玲) 팀장 역을 맡기 위해 파격적으로 변신해 화제를 모았다.
넷플릭스, MBC 제공

홍난지(Hong Nan-ji 洪蘭智)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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