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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isine

2021 AUTUMN

토란에 숨겨진 신비

감자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끈적이는 점액질을 품어 쫀득한 식감을 동시에 가진 토란은 가을에 만날 수 있는 오래된 식재료다. 알면 알수록 신비로운 토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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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주로 밭에서 키우는 토란은 굵은 줄기 끝에 큰 잎 한 장이 붙어있다. 토란은 버릴 것 없는 유익한 식재료다. 잘 말린 토란잎은 여름철 쌈이나 나물로 먹는다. 토란대는 살짝 말려 껍질을 벗긴 다음 짧게 삶은 뒤 들깨와 함께 볶으면 아삭한 식감의 좋은 밥반찬이 된다. 알토란은 특유의 미끌거리는 식감으로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어떤 식재료도 흉내 낼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②토란의 단면에서 나오는 끈적이는 성분은 ‘뮤신’이라는 다당류 점액물질로 단백질을 분해해 소화와 흡수를 돕는다. 뮤신은 장어나 연근, 마에도 있는데 위와 장의 뛰어난 윤활제 역할을 한다.
③가려움을 유발하는 토란 껍질을 손질할 때에는 팔팔 끓인 쌀뜨물에 토란을 잠깐 삶으면 된다. 몇 번 문지르지 않아도 쉽게 토란 껍질을 깔 수 있다. 토란 속 전분과 함께 들어 있는 바늘 모양의 수산칼슘 결정이 가려움을 유발하고 아린 맛을 내기도 한다.
ⓒ신혜우

음식은 수수께끼와 같다. 하나의 음식 속에는 여러 가지 사실이 숨겨져 있다. 토란이란 이름을 생각해보라. 껍질을 벗긴 알맹이의 모양이 감자와 비슷하다. 그런데 왜 토란이라고 불렀을까?

토란이 한반도에 처음 들어왔던 시기에는 ‘감자’라는 이름이 없었다. 그래서 ‘땅에서 나는 알처럼 생겼다’는 뜻으로 토란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문자 기록상 감자가 한반도에 처음 들어온 시기는 조선시대인 1824년이다. 토란은 이보다 6백 년 앞선 고려시대 의서 <향약구급방> (鄕藥救急方 Emergency Preions in Local Medicine; 1236)에 등장한다.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문인 이규보의 시문집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Collected Works of Minister Yi of the Eastern State; 1241)에는 시골에서 토란국을 끓였다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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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란국은 미끌미끌 넘어가는 토란 특유의 감촉을 잘 느낄 수 있는 음식이다. 소고기와 무, 토란을 넣고 간장으로 간을 해 끓인 맑은 국은 주로 추석 명절에 끓여 먹던 전통음식으로 담백하면서도 시원하고 깊은 맛이 있다.
ⓒ KOREAN FOOD FROMOTION INSTITUTE

해독을 위한 지혜
감자와 마찬가지로 토란도 덩이줄기이다. 덩이줄기란 식물이 영양소를 저장하기 위해 줄기를 부풀린 형태를 말한다. 한국에서 토란은 추석 때 먹는 전통 음식이다. 구체적 조리법은 1920년대 방신영(方信榮 1890∼1977)의 조리서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 Recipes for Korean Dishes; 1917)에 나온다. 토란을 잘 씻어 먼저 한 번 삶는다. 맑은 장국이나 곰국에 토란을 넣어 끓이는데 다시마를 조금 썰어 넣고 끓인다. 서울식 토란국 조리법이다. 남도에서는 들깨를 갈아 넣은 고소한 맛의 국물에 토란을 넣어 끓인다.

국 속의 토란은 언뜻 보기에 감자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입에 넣고 씹을 때 식감은 감자와 전혀 다르다. 미끈거리면서 물렁물렁하다. 토란에 끈끈한 점액질 성분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감 때문에 토란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점액질 성분 대부분은 건강에 유익하다. 토란 속 점액질을 이루는 다당류는 장내 유익균의 먹이인 프리바이오틱스로 작용한다. 이들 다당류는 물을 쉽게 흡수하여 부풀어 오른다. 덕분에 점액 다당류를 이용해 입안에 넣으면 물 없이도 녹는 구강붕해정을 만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수분을 제외하고 토란에 가장 많이 들어있는 성분은 전분이다. 토란에 있는 전분 알갱이의 크기는 작은 편이어서 소화가 잘 되지만 생으로 먹을 수 없다. 바늘처럼 날카로운 수산칼슘 결정(calcium oxalate crystals)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수산칼슘 결정은 토란잎이나 토란대에도 있는데 단백질 분해효소와 함께 저장되어 있어 날로 먹으면 아린 맛이 난다. 먼저 바늘 같은 결정이 피부 점막을 찔러 상처를 낸다. 설상가상으로 효소가 그 상처에 작용하여 염증, 통증을 일으킨다. 토란을 손질할 때 즙액이 손에 묻으면 가려우니 장갑을 끼고 다루라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사실 이런 독성은 토란과 같은 천남성과(天南星科) 식물의 공통적 특징이다. 그대로 먹었다가는 점막을 자극하는 통증과 가려움증을 피할 수 없으므로 다른 동물은 천남성과 식물을 먹지 않고 피한다. 섬에서 염소를 방목해도 천남성은 무성하게 자란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이다. 하지만 잡식 동물로서 인간은 독보적이다. 불이라는 강력한 도구로 음식을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인간에게 토란의 독성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토란이나 토란대를 하루 전에 물에 담갔다가 삶아서 걸쭉한 물을 버리고 쓰면 된다. 이렇게 가열하면 토란 속의 효소는 변성하여 작동을 멈추고 수산 결정은 물에 녹아 제거된다. 완벽하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극을 줄여 먹기 좋은 정도로 만드는 데 충분하다. 이런 처리에 대해 잘 모르고 가을에 토란이나 토란대를 사다가 바로 국을 끓이면 아린 맛이 남아 있어 먹기 힘들다. 추석에 즐겨먹는 토란국 속에는 식재료의 독성을 제거하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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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란을 한입 크기로 썰고 꽈리고추와 통마늘을 곁들여 간장, 설탕을 넣고 졸인 토란조림이다. 자박한 국물과 함께 떠 먹으면 깊은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
ⓒ 10000reci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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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란의 아린 맛을 빼기 위해 약간 삶은 후, 감자칩처럼 통째로 슬라이스해 구우면 바삭한 식감과 고소한 맛의 토란칩이 된다. 열량이 낮아 다이어트 간식으로도 좋다.
ⓒ momcooking

다양한 요리와 디저트
‘알토란 같다’는 말이 있다. 내용이 충실하거나 옹골차고 실속이 있다는 뜻이다. 원래 알토란은 너저분한 털을 다듬어 깨끗하게 만든 토란을 말한다. 접두사 ‘알’은 알밤, 알몸처럼 겉을 덮어 싼 것이나 딸린 것을 다 제거했다는 뜻이다. 감자와 고구마가 나타나기 전까지 토란은 농가에 매우 중요한 구황작물이었다. 그러니 속이 꽉 찬 알토란이 실속의 대명사가 된 것도 이해할 만하다.

역사가 긴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토란의 소비는 주로 가을 명절에 한정된다. 9월이면 시장에 토란이 쏟아져 나오지만 추석이 지나면 찾아보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예전에는 토란국 외에도 찜, 구이, 송편, 장아찌 등으로 다양하게 요리해 먹었다. 토란을 쪄서 껍질을 벗기고 찹쌀가루와 섞어 기름에 지져 토란병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다른 채소와 함께 반죽해서 전으로 부쳐먹기도 한다. 요즘에는 토란 자체보다 육개장에 넣은 토란대를 찾아보기 쉬워졌다. 껍질을 벗기고 말린 토란대를 물에 삶고 여러 시간 우려내어 아린 맛 성분을 제거한 다음 여러가지 채소, 소고기와 함께 넣고 끓인다. 졸깃한 토란대를 씹는 맛이 고기의 식감과 묘하게 대비되면서 맛이 극대화된다.

토란의 대표 산지는 전남 곡성이다. 전국 토란 재배지의 절반이 곡성에 있고 생산량으로는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곡성은 다양한 토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들깨 가루를 듬뿍 넣고 끓인 들깨 토란탕은 곡성의 대표 음식이다. 토란의 고소한 향기가 들깨, 소고기와 잘 어울린다. 맑은 토란국, 찐 토란, 토란 전병, 토란 미숫가루, 토란 누룽지도 먹어볼 만하다. 토란빵, 토란 스콘, 토란쿠키, 토란칩, 토란초콜릿칩과 같은 가공제품도 많다. 최근에는 토란을 넣은 아이스크림과 사과파이도 나왔다. 토란이 생소한 젊은 층을 위해 개발된 간식이다.

하지만 토란국을 먹어 본 적이 없는 젊은이라도 이미 토란의 맛에 익숙할 것이다. 사실 토란은 열대 아시아와 태평양 제도가 원산지인 식물 타로(Colocasia esculenta)의 변종이다. 타로 버블티나 타로 밀크티를 마셔봤다면 토란을 맛본 것과 다름없다. 재배지역과 품종에 따라 흰색을 띄기도 하고 보랏빛일 때도 있지만 고소하고 달콤한 맛과 부드러운 질감은 타로와 토란의 공통적 특징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아메리카, 태평양의 하와이 같은 섬나라까지 세계 전역에 타로를 이용한 요리와 디저트, 가공제품이 무수히 많다. 타로의 다양한 변주를 맛보면서 지구를 한 바퀴 돌아도 될 정도이다.

토란국을 먹어 본 적이 없는 젊은이라도 이미 토란의 맛에 익숙할 것이다. 토란은 열대 아시아와 태평양 제도가 원산지인 식물 타로(Colocasia esculenta)의 변종이다. 타로 버블티나 타로 밀크티를 마셔봤다면 토란을 맛본 것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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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란은 열대지방에서 재배하는 타로의 변종으로 Taro, Kalo, Talo, Dalo, Dasheen, Eddo 등 다양한 이름으로 전세계 식탁에 오른다. ‘열대성 감자’라고도 불리는 타로는 습한 기후에도 잘 자라며 늪지에서도 번식한다. 토란이 낯선 젊은 세대도 타로가루와 우유를 혼합해 만드는 타로티에는 익숙하다.

토란 꽃의 경고
토란을 토련이라고도 부른다. 두껍고 넓은 방패 모양의 잎이 마치 연잎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토란을 보면 시골에서 비오는 날 토란잎을 우산처럼 쓰고 다녔던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 반대로 토란꽃을 본 사람은 많지 않다. 토란꽃은 100년에 한 번 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희귀했다. 열대식물인만큼 온대기후인 한국에서는 꽃이 피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부터는 전국 여러 곳에서 매년 토란꽃이 피어나고 있다. 한반도의 기후가 고온다습한 아열대성으로 바뀌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지금은 지구 온난화의 위기에 빠르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때이다. 토란 꽃이 우리에게 보내주는 경고이다.

정재훈(Jeong Jae-hoon 鄭載勳) 약사, 푸드 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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