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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SPRING

CULTURE & ART

INTERVIEW 끝없는 자유를 향한 실험

등장하는 무대마다 화제를 몰고 다니는 파격의 아이콘이지만, 그가 추구하는 것은 새로움이 아니라 자신만의 소리라고 한다. 전통 민요를 제대로 배우고 장르를 훌쩍 뛰어넘는 실험적인 퍼포먼스로 관객에게 즐거움과 놀라움을 함께 선사하는 이희문 (Lee Hee-moon 李熙文)— 그의 얘기를 들어본다.

2017년, 런던 로열 앨버트홀(Royal Albert Hall) 엘가룸(Elgar Room)에서 공연하는 이희문. 주영한국문화원이 주최한 제4회 K-뮤직 페스티벌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한국 남자(Korean Men)>는 이희문과 재즈 밴드 프렐류드(Prelude)가 공동으로 기획했으며, 소리꾼 듀오 놈놈(NomNom)이 함께 출연했다. 2016년 국립극장에서 처음 선보인 이 공연은 경기 민요와 재즈를 접목시켜 큰 호응을 얻었다. Kii Studios Photography & Film 촬영, 이희문컴퍼니 제공

2017년 9월, 정체불명의 한 밴드가 미국 공영방송 NPR의 사무실을 뒤흔들어 놨다. 전 세계 음악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음악 채널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Tiny Desk Concert)’는 이름대로 스튜디오가 아닌 방송국 사무실에서 진행된다. 호주의 싱어송라이터 태시 술타나(Tash Sultana)부터 미국 출신의 가수 겸 배우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뮤지션이 이곳에서 라이브 공연을 펼친다.

이날 출연자는 한국에서 온 6인조 그룹 씽씽(SsingSsing)이다. 한국의 전통 민요에 록, 디스코, 사이키델릭 등을 뒤섞은 음악, 뮤지컬 <헤드윅>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습으로 충격을 주었다. 워싱턴 D.C.의 존 F. 케네디 센터에서도 공연하며 끓는점을 향해 가던 이 그룹은 2018년 돌연 해체했다. 몹시 추웠던 지난 겨울 어느 날, 서울 이태원에서 씽씽의 리드 보컬이었던 이희문을 만났다.

그는 말문을 막 뗀 꼬마 시절부터 소리꾼 어머니 고주랑(高柱琅) 명창의 레코드를 들으며 민요를 따라 불렀다. 그러다 TV에 나오는 민해경(閔海瓊)과 마돈나에게 홀딱 반해 춤을 추며 노래하는 대중가수를 꿈꾸기도 했다. 일본에 유학해 영상을 전공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뮤직비디오 조감독으로 활동하다가 20대 후반에야 ‘접신하듯’ 민요에 빠져들었다. 씽씽의 보컬리스트는 그가 가진 여러 모습 중 하나일 뿐이다. 그는 지금도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돌풍을 몰고 온 밴드
임: 처음 씽씽을 봤을 때 <헤드윅>이 떠올랐습니다. 어디에서 영감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이: 영화 <물랑 루즈>나 가수 마돈나, 민해경…. 그리고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안무가 안은미(Ahn Eun-me 安恩美) 선생의 영향도 컸죠. 그는 강력한 비주얼의 선두주자니까요. 안은미 씨가 제작한 2007년 초연작 <바리 – 이승 편>에서 제가 바리공주 역을 맡았어요. 처음에는 여자 역을 맡겨 질색했는데 차츰 제가 잘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됐죠. 억지로 하면 연기가 될 수밖에 없는데, 제 안에 있는 어떤 것들이 자연스럽게 표출되었어요.

임: 씽씽은 결성 이후 국내의 크고 작은 다양한 무대에 섰습니다. 하지만 NPR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 녹화는 좀 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어땠나요?
이: NPR이 뭔지도 모르고 가서 대충 해 버리고 온 느낌이에요. 방송국 사무실 한편에서 모니터, 스피커도 없이 허공에다 노래를 하라니 좀 당황했어요. 이렇게 화제가 되고 유튜브로 평생 남을 건 줄 알았으면 더 잘할 걸 그랬어요. 심지어 <한강수 타령>을 부를 때는 가사도 틀려서 즉흥적으로 지어 불렀어요. 그래도 음향 엔지니어가 베테랑이어서인지 여러모로 아주 잘 나오긴 했더라고요.

임: 씽씽이 싸이의 <강남 스타일> 이후에 세계적으로 뭔가 또 큰일을 저지르겠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정점에서 팀을 해체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멤버 여섯 명의 개성이 너무 뚜렷했어요. 함께할 때는 그것이 장점이었죠. 저희는 무대에서 누가 무엇을 하든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각자 마음대로 했거든요. 하지만 그런 성향은 남녀가 만나 언젠가 이별하듯 자연스럽게 각자의 길을 가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하더군요. 이제 각자의 개성을 살려 장영규(Jang Young-gyu 张英圭) 음악감독은 ‘이날치’라는 새로운 팀을 통해 음악적으로 못 다한 이야기를 하고 있죠. 추다혜, 신승태 씨 등 다른 멤버들도 나름의 활동을 하고 있고,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임: 이제 시간을 돌려서 묻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씽씽은 어떻게 만들어진 팀이었나요?
이희문: 2014년에 굿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쾌(快)>라는 공연을 했는데, 그때 음악감독이었던 장영규 씨가 민요를 클럽에서 불러 보자고 제안했어요. 이후에 장영규와 기타리스트 이태원, 드러머 이철희, 소리꾼 신승태와 추다혜, 그리고 저까지 6명이 모여 씽씽을 만들었죠.

“제 노래가 담긴 유튜브 영상에 누군가가
‘너무 경쾌한데 왜 눈물이 날까요’란 댓글을 달았던데,
그분은 경기민요의 특징을
직감적으로 알아채신 겁니다.”




나만의 소리

2019년 5월, 국립무형유산원 대공연장에서 진행된 <프로젝트 날(Project NAL)> 초연 장면. 이희문은 소리의 본질로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해 선율 악기를 배제하고 장구, 드럼, 모듈러 신시사이저 3가지 리듬 악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얹어 냈다. 곽기곤(Kwak Ki-gon) 촬영, 이희문컴퍼니 제공

임: 최근엔 <프로젝트 날>(Project NAL)이라는 공연 활동을 하고 계시더군요. <오방神과>(OBANGSINGWA)라는 앨범도 냈죠. 분주해 보입니다. 자신이 어떤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이: 씽씽의 누구라는 꼬리표를 떼고 진짜 제 소리로 승부를 걸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실험적인 무대에 스스로를 던져두고 자신을 밀어붙이고 있어요. ‘프로젝트 날’은 한국의 리듬 악기 장구, 서양의 리듬 악기 드럼, 그리고 모듈러 신시사이저까지 세 가지 사운드 퍼포먼스에 저의 소리를 얹어 내는 작업입니다. 씽씽 때처럼 노래의 바탕은 경기민요지만, 민요·잡가·산타령·회심곡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가져다 씽씽 때와는 다른 방법론으로 풀어냅니다.

임: <프로젝트 날>의 시각 연출은 씽씽과 어떻게 다른가요?
이: 막 결혼한 신부의 이미지를 차용했어요. 씽씽을 벗어나 새로 태어난다는 의미죠. 하얀 남성용 양복 뒤로 하얀 치마를 덧붙이고, 얼굴에는 신부 화장을 곱게 했어요.

임: 시간을 다시 한 번 돌려 보죠. 민요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이: 뮤직비디오 조감독을 하던 시절에 우연찮게 어머니를 따라 민요 공연을 보러 갔는데, 공연을 보면서 제가 무의식적으로 따라 불렀어요. 그 자리에 어머니 친구인 이춘희(Lee Chun-hee 李春羲) 명창도 함께 계셨는데, 제가 흥얼거리는 걸 유심히 들으셨던가 봐요. 며칠 뒤 제게 연락을 해서는 조심스레 “소리 해 볼래?” 물으시더군요. 어머니 몰래 하신 전화였어요. 예인의 길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어머니는 아들이 그 길을 가지 않기를 바라셨고, 이 명창도 어머니의 그런 마음을 알기에 고심하다가 연락을 하신 거죠. 결국 그때 이 명창께 소리를 배우기 시작해서 20대 후반 뒤늦은 나이에 대학에서 국악을 전공하게 되었어요. 소리꾼은 보통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는데 저는 상당히 늦었던 셈이죠.

임: 씽씽의 리드 보컬 이전에 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 이희문으로 알려지셨습니다. 늦은 나이에 인생의 항로를 바꿀 만큼 민요의 매력이 그렇게 대단했나요?
이: 경기민요는 화려하고 아주 간드러지죠. 기교가 많아요. 악곡 자체는 굉장히 경쾌하고 흥이 나는데 듣고 있으면 왠지 눈물이 나고 가슴이 저며오기도 하죠. 예를 들어 <청춘가>의 가사를 보면, “세월이 가기는 물 같고, 사람이 늙기는 바람결 같구나”라는 대목이 나와요. 그런 노랫말을 어깨춤 추며 부르다 보면 복잡한 생각이 들어요. 블랙코미디 같죠. 이것이 경기민요와 남도 소리의 차이점이에요. 판소리는 계면조라고 해서 기본적으로 단조입니다. 한이 서리고 슬픈 감정이 표면부터 흘러넘치죠. 반면에 경기민요는 슬픔을 슬프게 표현하지 않고 오히려 흥겹게 표현하죠. 제 노래가 담긴 유튜브 영상에 누군가가 “너무 경쾌한데 왜 눈물이 날까요”란 댓글을 달았던데, 그분은 경기민요의 특징을 직감적으로 알아채신 겁니다.

흥겨움 속의 눈물
임: 혹시 무대 위에서 노래하다가 스스로 울컥할 때도 있나요?
이: 2019년 5월, 전주 국립무형유산원에서 <프로젝트 날> 초연을 하던 날이었어요. 사운드를 잘 잡기 위해 객석을 놔두고 관객 250명을 전부 무대 위에 앉혔죠. 마지막 곡으로 <오돌또기>를 하는데 그렇게 가까이 앉은 관객들이 박수로 리듬을 맞추고 후렴을 함께 부르는데 형언하기 힘든 기분이 들었어요. 사실 이 곡은 씽씽 때 재해석본을 만들어 둔 곡인데 제대로 공연을 못 한 채 해체했거든요.

임: 무대 위에서 무당이나 그에 준하는 영적인 존재로 분하는 느낌입니다. 스스로 무아지경에 빠질 때도 있나요?
이: ‘이건 내가 하는 게 아니구나’ 하고 느낄 때가 있어요. 관객이 에너지를 주는 거예요. 그걸 받아 다시 돌려주다 공연이 끝나면 완전히 방전이 되죠. 얼마 전 홍대 앞 ‘생기(生氣)스튜디오(Senggi Studio)’에서 공연할 때는 관객이 너무 많이 들어차 공간에 산소가 부족했는지 실제로 호흡이 딸리더군요. 그 느낌을 공연 말미에 기절해 버리는 퍼포먼스로 응용해 버렸어요.

임: 앞으로 또 어떤 퍼포먼스, 어떤 음악을 선보일지 계획이 궁금합니다.
이: 올해는 재즈와 민요를 즉흥적으로 결합하는 공연 시리즈 <에고 프로젝트>(ego project)를 계속 진행할 예정이고요. 또 1인 음악극을 슬슬 준비해 보려 합니다. 얼마 전 우연히 『강남의 탄생』이란 책을 읽었는데 각색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 역시 강남에서 줄곧 자랐는데, 강남에서 자란 청년이 민요를 하는 스토리라면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엇보다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2017년 9월,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 공영방송 NPR 사무실에서 씽씽이‘타이니 데스크 콘서트’를 녹화하고 있다. <난봉가>, <한강수타령> 등 경기 민요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불러 큰 화제를 일으켰다. 뒷줄 드러머 이철희, 음악감독 장영규, 기타리스트 이태원. 앞줄 신승태, 이희문, 추다혜. NPR Music 유튜브 영상 캡처

2018년 5월, 이희문컴퍼니가 서울 옥인동에 위치한 소극장 ‘서촌공간 서로’에서 <민요삼천리(民謠三千里)> 공연을 펼치고 있다. 근대 이후 등장한 여성 소리꾼들을 주제로 한 이 공연은 이희문이 2016년부터 3년에 걸쳐 제작하고 발표한 <깊은 사랑(舍廊) 3부작(Deep Love Trilogy)>의 마지막 프로젝트이다. 오른쪽 연주자가 이희문. 이진환(Lee Jin-hwan) 촬영, 이희문컴퍼니 제공

임희윤(Lim Hee-yun 林熙潤)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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