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공간은 내가 꾸민다.” 전문가의 손을 빌리지 않고 각자의 개성과 취향을 추구하는 ‘셀프 인테리어’가 유행이다. 이런 경향은 특히 젊은 세대 1인 가구를 중심으로 확산하며 행복한 놀이가 되고 있다.
최근 20~30대 세대들을 중심으로 ‘셀프 인테리어’가 확산되면서 좁은 공간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소형 다용도 가구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흔히 ‘인테리어’라고 불리는 실내 디자인이 TV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 소재로 등장한 시기는 대략 2016년 무렵이다. 이 예능 프로그램들에는 건축가나 실내 디자이너 같은 전문가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각자의 개성과 취향에 맞게 공간을 꾸미고 살려는 ‘보통 사람’들이 등장한다.
TV에 앞서 출판계에서는 이미 보통 사람들의 ‘인테리어 개척기’가 크게 유행했고, 이 분야의 블로거들이 집필한 ‘셀프 인테리어’ 서적들이 실용서 부문 상위권을 차지했다.
그간 인테리어 디자인 시장은 ‘전문가의 영역’, 그리고 ‘큰돈 드는 일’이란 선입견 때문에 대중적인 관심사와는 거리가 있었다. 이 시장은 주로 경제적 여력이 있는 기혼 여성들이 전문 업체에 의뢰하는 방식으로 성장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1인 가구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취업난에 시달리며 결혼과 출산으로부터 멀어진 20~30대 세대들이 비좁은 ‘원룸’ 이라도 화분과 향초로 꾸미고 침구를 바꾸며 소소한 행복을 찾고 있다.
큰돈 안 들이고 내 마음대로
선반이나 액자, 작은 화분은 큰 노력과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공간 분위기를 쉽게 바꿀 수 있다. 젊은 층은 다양한 상품들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로 소품을 구매한다.
견적과 스타일을 스스로 결정하는 ‘셀프 인테리어’ 개념이 확산되면서 인테리어 시장이 대중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일례를 들어 보자. tvN의 프로그램 <내 방의 품격> 출연자 최고요(崔高謠) 씨가 25년 된 낡은 15평 다세대 빌라를 카페처럼 아늑한 공간으로 변신시키는 데 사용한 비용은 고작 79만 9,100원이었다. 저렴한 비용으로 이루어 낸 낡은 집의 변신은 시청자들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었다.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라는 책을 펴낸 저술가이자 공간 디렉터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공간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최근 현상이 반갑다며 이렇게 말한다.
“혼자 살기 시작한 이후 내 공간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꾸준히 바꿔 왔어요. 6평 남짓한 옥탑방을 시작으로 투룸 주택까지 좋아하는 물건들로 집을 채워 가며 나만의 공간에서 만족감을 얻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죠. 몇 년 전만 해도 월세나 전세를 살면서 집을 고치면 집주인만 좋은 일 시킨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요즘은 인식이 많이 달라졌어요.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손에 잡히는 행복을 추구하려는 가치관의 변화가 이러한 현상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22세 대학생 이하나(李夏娜) 씨는 온라인 쇼핑몰을 자주 이용한다. 올 봄에는 반지하 자취방 창가에 무지주 선반을 달고 허브 화분들을 올려놓아 분위기를 한결 싱그럽게 바꿔 놓았다. 그녀는 “단돈 몇 만 원의 쇼핑이지만, 나 자신을 위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며 “분위기 전환을 위한 소품과 가구 구입이 이제 취미가 되었다”고 말했다. 커피 값이나 한 달 용돈을 아껴 쇼핑을 하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도 크지 않다. 그녀가 자주 애용하는 업체는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실용적이고 예쁜 물건들이 많은 이케아와 문고리닷컴이다.
놀이 문화가 된 인테리어
종로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훈(金勳) 씨도 요즘 첫 독립을 하면서 얻게 된 집을 꾸미는 일에 푹 빠져 지낸다. 그는 수시로 인스타그램을 검색해 집과 방 사진들을 보며 가구 브랜드나 제품의 모델명 등 정보를 알아내어 스크랩해 두고 아이디어를 찾는다. 얼마 전에는 페인트를 칠하고 그림을 걸어 분위기를 바꾼 자신의 침실 사진을 올렸는데 ‘좋아요’를 많이 받았다고 흐뭇해했다.
이처럼 20~30대들이 공유하는 ‘집스타그램’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일종의 즐거운 놀이 문화가 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을 반영하듯 인스타그램에서 ‘집스타그램’을 해시태그로 검색하면 무려 200만 개가 넘는 사진이 뜨고, ‘셀프 인테리어’라는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직접 꾸민 공간을 자랑하는 수십 만 개의 게시물을 볼 수 있다. 인테리어에 관심 좀 있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디자인 및 시공 사례와 방법을 키워드로 통합 검색할 수 있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오늘의 집’이 유명하다. 이 앱은 하나의 주제에 대한 사용자들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 기능이 있어 젊은 층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인테리어 전문 잡지 『메종 마리끌레르 코리아』의 신진수(申眞秀) 기자는 놀이처럼 번지는 셀프 인테리어 열풍의 원인으로 SNS의 발달을 꼽았다. “셀프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은 4~5년 전부터 있었지만, 본격적인 열풍은 2년 전쯤부터인 것 같아요. SNS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처럼 여러 창구들이 유행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하죠. 인스타그램이나 핀터레스트에 있는 멋진 이미지들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니까요. 젊은 세대에게 이것은 하나의 놀이인 거죠.”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단순한 유행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공간을 만족스럽게 꾸며 놓고 행복감에 젖는 것도 좋은 일이고, 무엇보다 내 공간을 꾸미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잘 알아야 하죠. 셀프 인테리어는 자신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어요.”
홈앤톤즈의 페인팅 아카데미에서 한 교육생이 벽을 칠해 보고 있다. 자신의 공간을 직접 꾸미는 데서 행복을 찾는 고객의 요구에 맞춰 셀프 인테리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공간 디렉터 최고요 씨가 자신의 취향대로 꾸민 다세대 빌라 내부.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가 오래된 15평짜리 집을 꾸미는 데 쓴 비용이 약 80만 원이라고 밝혀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단순한 유행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공간을 만족스럽게 꾸며 놓고 행복감에 젖는 것도 좋은 일이고, 무엇보다 내 공간을 꾸미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잘 알아야 하죠.”
시장의 변화
인테리어 디자인 전문 에디터 이은경(李珢烱) 씨는 “셀프 인테리어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가구와 소품 외에도 타일이나 페인트 같은 부자재를 쇼핑하기가 쉬워졌다”며 “관련 산업은 계속해서 전문화, 세분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요즘 시중에 나와 있는 재료들을 보면 놀랄 때가 많아요. 바로 붙일 수 있는 접착식 벽지, 싱크대나 가구 색을 손쉽게 바꿀 수 있는 필름지가 있는가 하면 원하는 크기와 형태로 목재를 잘라서 보내주는 목재상도 있어요. 온라인으로 쇼핑하면 배송도 빠르니, 이제 누구나 손쉽게 인테리어 관련 쇼핑을 즐길 수 있죠.”
전문 지식이나 특별히 타고난 미적 감각이 없어도 여러 가지 스타일을 구현할 수 있는 재료들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은 셀프 인테리어가 유행하게 된 주요인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수많은 재료들 중 각자의 취향에 맞게 조합하고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작업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이 같은 환경의 변화에는 누가 뭐래도 글로벌 기업 이케아의 역할이 크다. 2014년에 국내 첫 매장을 연 이케아는 가구는 중후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캔디처럼 달콤한 색상과 다채로운 디자인, 저렴한 가격”으로 단시간에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뒤를 이어 합리적 가격으로 무장한 글로벌 리빙 브랜드들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국내 회사들도 시장 변화에 동참하고 있다.
토종 인테리어 기업인 한샘도 최근에는 1인 가구를 위한 소형 다용도 가구와 DIY 상품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그런가 하면 삼화페인트는 홈앤톤즈라는 매장을 열어 소비자를 직접 만나고, 고객 아카데미나 인테리어 박람회를 통해 페인트 시공법, 컬러 인테리어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 회사에서 출시하는 페인트 제품은 벽지, 벽면, 가구 등 용도에 따라 카테고리가 세분화되어 있으며 벽에 칠해 자석 보드로 활용할 수 있는 페인트, 어두운 밤에 반짝반짝 빛이 나는 야광 페인트, 빈티지한 분위기를 내는 페인트 등 종류가 다양하다.
홈앤톤즈 마케팅팀 양수혁(梁輸赫) 씨는 “전문 업체나 상업 공간 중심으로 소비되었던 페인트가 요즘은 개인을 통한 소량 구매로 전환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소비자들의 지식과 안목이 매우 높아졌고, 시공에 있어서도 본인이 주도성을 가지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어요. 페인트의 경우 단순히 컬러나 스타일 같은 표면적 요소보다 친환경성이나 편의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도 눈에 띄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의 영향으로 그간 도매에 비중을 두던 관련 업체들도 개별 소비자와 더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컨대 DIY 전문 숍 문고리닷컴은 최근 동대문, 일산, 송파 등지에 오프라인 매장을 확대 운영하며, 집과 관련된 모든 자재를 일시에 쇼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타일 전문 회사 윤현상재(荺呟商材)는 작가들과 협업을 통한 마켓을 지속적으로 열어 소비자들과 접촉면을 넓혀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