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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SUMMER

팝업 스토어의 성지

오프라인 상점들이 불황을 겪고 침체에 빠졌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성수동은 오히려 도약할 수 있었다. 팝업 스토어 덕분이다. 이곳에서는 일 년 내내 크고 작은 팝업 스토어가 끊이지 않는다. 패션, 미술, 음악, 라이프스타일 등 콘텐츠도 다양하다. 이제 팝업 스토어는 성수동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핵심적 요소가 되었다.

2023년 성수동에서 열린 팝업 스토어 중 하나인 버버리의 성수 로즈(Seongsu Rose) 전경. 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니엘 리의 첫 컬렉션으로 구성된 이 팝업 스토어는 외관과 내부를 장미 문양으로 화려하게 꾸며 큰 볼거리를 제공했다.
ⓒ 버버리코리아

성수동은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인파로 거리가 빼곡하다. 그중 상당수는 팝업 스토어에 방문하려는 사람들이다. 입장을 위해 길게 늘어선 행렬이 성수동 곳곳에서 자주 목격된다.

팝업 스토어는 웹페이지의 팝업 창처럼 단기간 운영됐다가 사라지는 오프라인 매장을 말한다. 짧게는 2~3일, 길게는 6개월까지도 운영된다. 서울 시내 유명 상권들을 비롯해 전국 대도시 번화가에서 흔히 열리는데, 유독 성수동의 팝업 스토어가 주목받는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성수동 팝업 스토어 목록이 활발히 공유된다. 게시물 댓글에선 친구를 태그하며 “이번엔 여기 가자!”고 제안하는 이들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성수동의 매력

수많은 브랜드들이 팝업 스토어를 열기 위해 성수동을 찾는 건 이곳이 현재 서울에서 가장 주목받는 상권이기 때문이다. 우선 지리적 특성이 남다른데, 서울숲과 뚝섬 한강공원을 끼고 있어 자연 친화적이다. 이는 다른 지역의 핫플레이스와 큰 차이점이다. 또한 서울 어디로든 이동하기 쉽고, 외곽으로 빠져나가기도 좋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상업 시설과 고급 아파트들도 분포해 있다. 수요층까지 뒷받침되는 셈이다. 또 강남대로나 청담동(淸潭洞), 압구정동(狎鷗亭洞) 등 강남권에 비해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낮다.

옛것과 새로운 것의 조화도 흡인 요인이다. 성수동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최대 레미콘 생산 시설이 있었던 공업 지역이었다. 철공소, 인쇄소, 자동차 정비 공장을 비롯해 구두 공장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많은 곳들이 파산했고 동네 자체가 위기에 처했다. 이 지역의 기류가 달라지기 시작한 건 저렴한 임대료, 공업 지역의 색다른 분위기에 끌린 젊은 사업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하면서다. 이들은 공장과 창고를 개조해 카페와 식당, 편집숍 등을 만들었고 특색 있는 매장이 늘어나면서 이질적인 요소들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성수동 특유의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유행에 민감한 젊은 세대가 성수동으로 모이면서 유통업계도 이곳을 주목하게 됐다. 온라인 쇼핑몰만 운영했던 브랜드들도 성수동에 팝업 스토어를 열어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성수동에는 공장과 창고로 사용되던 넓은 평수의 건물들이 많기 때문에 스케일이 큰 팝업 스토어를 구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장소다.

휴양지 리조트 콘셉트로 운영된 음료 브랜드 클룹(CLOOP)의 제로소다 팝업 스토어. 투어 미션을 완료한 참가자들에게 어메니티 키트를 증정하는 한편 인력거를 타고 성수동 반경 1km를 돌아볼 기회를 제공해 큰 인기를 끌었다.

공간 플랫폼들

팝업 스토어는 성수동이 막강한 신흥 상권으로 부상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성수동에선 통상 일주일 동안 팝업 스토어 50여 개가 열린다. 인기 있는 대관 장소는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쉽고 면적이 넓은 곳이다. 그중 성수동과 건대입구역 사이에 위치한 커먼그라운드(COMMON GROUND)는 200개의 컨테이너로 구성되어 독특한 외양을 자랑한다. 2015년 국내 최초의 팝업 쇼핑몰을 표방하며 오픈한 이곳에서는 K-팝 아티스트들의 팬 사인회를 비롯해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린다.

최근 들어 특색 있는 팝업 스토어 연출을 위해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사진은 보드카 브랜드 앱솔루트가 2023년 8월부터 약 한 달 동안 커먼그라운드에서 운영한 팝업 스토어. 국내 디자인 스튜디오 스티키몬스터랩(Sticky Monster Lab)과 협업했다.
ⓒ The Absolut Group

연무장길에 자리한 에스팩토리는 1970년대 지어진 섬유 공장, 체육관, 기숙사, 자동차 정비소 네 개 건물을 리모델링해 2016년 개관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아트페어나 콘서트, 콘퍼런스 등 규모가 큰 행사가 주로 개최된다.

이 외에도 대림창고, 마크69, 쎈느 같은 카페를 겸한 복합문화공간들이 팝업 스토어 장소로 자주 애용된다. 최근에는 팝업 스토어 전용 공간을 대여해 주는 임대업이 등장했으며, 패션 기업 무신사의 스퀘어 성수(SQUARE Seongsu)처럼 기업이 직접 공간 플랫폼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단순한 공간 매개를 넘어 팝업 스토어의 콘텐츠 기획, 마케팅, 운영 등 프로세스 전반에 걸친 토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즈니스도 나타났다. 프로젝트 렌트(Project Rent)가 대표적이다. 부동산 업계에 의하면 인기가 좋은 장소들은 내년까지 이미 예약이 꽉 차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경험

그동안 성수동에서 열린 팝업 스토어의 면면을 살펴보면 뷰티, 패션을 비롯해 F & B, 라이프스타일, 자동차, 미술, K-팝, 영화, 캐릭터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또한 국내 브랜드만 성수동을 찾는 것도 아니다. 글로벌 기업들도 팝업 스토어나 쇼룸 형식으로 성수동에 닻을 내린다. 지난해 가을, 패션 브랜드 버버리가 글로벌 프로젝트 ‘버버리 스트리트(Burberry Streets)’의 일환으로 성수동에서 약 한 달 동안 성수 로즈(Seongsu Rose), 성수 보틀(Seongsu Bottle), 성수 슈(Seongsu Shoe) 세 개의 팝업 스토어를 각기 다른 장소에서 진행했다. 이 기간에 성수동 연무장길에서는 몽환적인 보라색과 노란색 장미가 그려진 화려한 현수막을 볼 수 있었다.

뷰티 브랜드 이니스프리가 2024년 4월부터 5월까지 성수동에 위치한 플래그십 스토어 ‘이니스프리 디아일 성수’에서 진행한 팝업 스토어. 젊고 창의력 넘치는 인재를 모집한다는 재미있는 콘셉트로 이목을 끌었다.

디즈니 플러스(Disney+)가 자사 오리지널 시리즈 < 삼식이 삼촌(Uncle Samsik) > 공개를 앞두고 2024년 5월 연무장길에서 진행한 팝업 스토어 전경. 빵집과 사무실 등 작품 속 배경을 그대로 구현했다.

최근 성수동에서 진행되는 팝업 스토어들은 단순히 제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방문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게임을 제공하거나 화려한 비주얼 아트를 선보이는 등 다채로운 경험을 유도한다. 이에 독창적인 기획력, 전문적인 마케팅은 이제 팝업 스토어 성공에 필수적인 역량이 되었다.

일례로 주류 브랜드 선양(鮮洋)은 지난해 겨울, 보트를 타고 체험존으로 입장하는 ‘플롭 선양(Plop Sunyang)’을 운영해 매우 큰 인기를 끌었고, 올해 4월에는 입장할 때 주어진 칩을 활용해 게임을 즐기는 카지노 콘셉트의 ‘선양 카지노’를 운영했다. 하이트진로 역시 올해 4월 실내형 테마파크 형식으로 ‘진로골드 판타지아(Jinro Gold Fantasia)’를 개최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팝업 스토어의 부작용

팝업 스토어는 성수동의 부동산 시장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팝업 스토어의 공간 임대 방식과 비용은 일반적인 상가 임대와 확연히 다르다. 대여 기간과 면적, 입지 등에 따라 다르지만, 대형 건물의 경우 일주일 대관료 시세가 1~3억 원에 달하기도 한다. 팝업 스토어의 비용 상승에 법적인 제약이 없다 보니 부르는 대로 값을 받을 수 있고, 월세보다 수익이 높아 임차인들도 팝업 스토어를 선호하는 추세다.

팝업 스토어의 성행으로 성수동 임대료가 치솟자, 일각에서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터를 잡아 온 가게들이 밀려나면 상권 전체가 침체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1970년대부터 인기를 끌던 성수동 갈비 골목이 최근에 사라졌다. 수십 곳에 달하던 골목 내 식당들이 폐업하거나 이전하면서 두세 곳으로 줄었는데, 임대료 상승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돼 원주민이 밀려 나가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성수동도 피하진 못한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전문가들은 성수동 상권이 다른 지역에 비해 오래 유지될 것으로 전망한다. 언제 어느 때 방문하더라도 각양각색의 팝업 스토어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고, 새롭고 생동감 넘치는 경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장유진(Jang Yoo-jin, 張有辰) 이투데이 기자
이민희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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