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2023 AUTUMN

전통시장에서 탄생한 음식들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음식 가운데 특정 전통시장을 기원으로 하는 것들이 여럿 있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이 향토 음식들은 전국적 명성을 얻어 프랜차이즈 브랜드로 거듭나기도 하고, 고유명사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1shutterstock_1273375276.png

밀가루를 반죽해 길게 늘어뜨린 다음 두 가닥으로 꼬아서 기름에 튀겨 내는 꽈배기, 반죽한 밀가루를 둥글게 빚어 팥소를 넣고 튀기는 단팥 도넛은 전통시장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먹거리이다.
ⓒ 셔터스톡(Shutterstock)

2matt-rogers-TMdHETrPs0A-unsplash.png

시장 음식은 일반 음식점에 비해 저렴하고 푸짐하다. 그런 이유로 전통시장은 퇴근길 직장인들이 하루의 회포를 풀기 위해 저녁 식사를 겸해 술 한잔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사진 맷 로저스, 언스플래시(Photo by Matt Rogers on Unsplash)


남대문시장이나 동대문시장 같은 상설 시장 이외에 3일 혹은 5일에 한 번 열리는 비상설 시장을 통상 오일장(五日場)이라 부른다. 조선 시대(1392~1910) 중엽 이후 크게 번성한 오일장은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장이 열리는 날에는 지역 특산물과 갖가지 먹거리가 시장을 가득 메운다. 팔 물건을 이고 지고 온 장사꾼들과 장 보러 나온 사람들이 한데 모인 장날에는 활기가 넘쳐흐른다. 이런 장날의 흥취는 상설 시장이라고 크게 다를 바 없다.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시장 나들이에 나선 아이들은 성인이 돼서도 잊히지 않는 추억 한 보따리를 챙기곤 한다.

오일장이든 상설 시장이든 전통시장의 백미는 역시 먹거리다. 장날에만 먹을 수 있거나, 그 시장에 가야만 맛볼 수 있는 음식에 대한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자동차와 랜선 덕분에 특정 시장을 벗어난 유명 먹거리들은 전국에 분점 형태로 터를 잡았다. 안동 구(舊)시장의 안동찜닭, 전주 남부(南部)시장의 전주콩나물국밥, 나주 오일장의 나주곰탕, 포항 북부(北部)시장의 물회 등 수많은 시장 먹거리가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로 진출했다.

통닭 대신 찜닭

3KakaoTalk_Photo_2023-07-24-18-29-52.png

안동은 오래전부터 찜 요리가 발달했다. 16세기에 편찬된 『수운잡방(需雲雜方)』은 안동 지역의 토착 음식을 정리한 조리서인데, 이 책에도 간장으로 양념하여 조리는 닭 요리가 등장한다. 안동 구시장의 상인들이 개발한 안동찜닭 역시 갖가지 재료를 간장에 조려 먹는 음식이다.
ⓒ 스튜디오 켄(Studio KENN)

경상북도 안동은 조선 시대의 사설 교육 기관이라 할 수 있는 서원이나 양반들의 고택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도시다. 지금도 유교 제례 의식인 제사를 1년에 수십 번 지내는 종가가 여럿 있다. 이런 이유로 오랫동안 안동을 대표했던 음식은 조리가 복잡하고 가짓수가 많은 제사 음식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이 지역을 상징하는 음식이 바뀌었다. 안동 구시장에서 탄생한 ‘안동찜닭’이 전국적 인기를 끌면서부터다. 안동찜닭은 닭을 먹기 좋게 손질하여 감자, 당근, 양배추, 표고버섯 같은 여러 가지 채소와 당면을 양념에 조려 먹는 음식이다. 특히 양념장의 배합이 관건이다. 간장 한 컵, 물엿 반 컵, 설탕 1큰술, 다진 마늘 2작은술, 생강 1작은술, 적은 양의 후춧가루가 재료다. 밀가루옷을 한 번 입힌 양파, 대파도 맛을 내는 데 한몫한다. 각종 채소에서 우러나는 단맛은 안동찜닭을 달짝지근하면서도 그리 맵지 않게 만들어 준다. 무엇보다 다채로운 식감이 이 음식의 미덕이다. 채소 특유의 아삭함과 닭고기의 쫀득함, 감자와 당면의 부드러운 식감이 한데 어우러진다.

본래 안동 구시장에는 1970~80년대만 해도 닭을 기름에 튀긴 통닭집이 많았다. 여러 기록을 살펴보면, 당시 상인들은 양념치킨이 유행하면서 통닭이 잘 팔리지 않자 자구책으로 찜닭을 개발했다고 한다. 이제는 전국에서 원조 안동찜닭의 맛을 보기 위해 수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을 정도로 그 명성이 높아졌다.

상인들의 해장국

4GettyImages-jv10942814.png

비빔밥과 더불어 전주의 명물인 콩나물국밥은 찬밥과 데친 콩나물에 뜨거운 육수를 부어서 말아 먹는 음식이다. 전주 남부시장의 콩나물국밥은 일종의 전채(前菜) 요리인 달걀 반숙이 딸려 나오는 게 특징이다. 달걀 반숙에 국밥 국물을 떠 넣고 김 가루를 섞어 먹는다.
ⓒ 게티이미지코리아(gettyimagesKOREA)

경상북도에 안동찜닭이 있다면 전라북도에는 전주콩나물국밥이 있다. 전주콩나물국밥은 멸치를 우려낸 물에 콩나물을 삶아 국물을 만든다. 여기에 밥, 살짝 데친 후 간장 양념한 콩나물, 새우젓국을 넣어 끓여 먹는 음식이다. 국밥이 끓어오르면 볶은 김치, 깨소금, 고춧가루 등을 조금 넣어 마무리한다.

전주콩나물국밥이 세상에 얼굴을 내민 시기는 꽤 오래전이라고 알려졌다. 1926년 창간된 생활 잡지 「별건곤(別乾坤)」에전주콩나물국밥에 대한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 국밥이 지금처럼 전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된 데는 전주 남부시장의 역할이 컸다. 1800년대에 이미 시장의 꼴을 갖췄던 이 시장은 1960년대에 건물을 재정비해 지금에 이른다. 전주는 과거 전라도 상업의 중심지였다. 이런 이유로 전주 남부시장에는 경상도, 충청도 심지어 제주도에서 올라온 상인들까지 모였다. 상인들이 허기를 달래기 위해 주로 찾은 음식이 바로 콩나물국밥이었다.

특히 전주 남부시장 콩나물국밥에는 수란(水卵)이 따로 나왔다. 수란은 우리 전통 음식 중 하나로, 조리가 까다로워 귀한 음식으로 여겼다. 국자에 달걀을 깨 넣어 끓는 물에 잠기지 않을 정도로 넣고 달걀흰자만 익히는 음식이다. 전주 남부시장 말고는 수란이 나오는 곳은 드물다. 슴슴하고 담백한 맛과 한 그릇 다 비우면 땀이 맺힐 정도로 개운한 맛 때문에 대표적 해장국으로 손꼽힌다.

시간이 준 보양식

5I011-M006135174.png

나주곰탕은 국물이 맑고 고기가 푸짐하다. 또한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며 밥을 데우는 토렴도 특징이다. 과거 전라도의 중심 도시였던 나주는 오일장이 열리면 각지에서 모여든 상인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는데, 이들은 나주곰탕으로 허기를 달래고 기력을 보충했다.
ⓒ 뉴스뱅크(NewsBank)

곰탕도 한국인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음식이다. 기력이 예전만 못하거나 병치레할 때 우리는 버릇처럼 곰탕을 찾는다. 뜨끈한 곰탕 한 그릇이면 ‘힘이 솟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만한 게 곰탕만큼 영양 만점인 음식도 없다. 조리 과정만 봐도 정성이 가득한 먹거리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다. 탕에 들어가는 소고기는 무와 함께 미리 익혀 양념해 둔다. 이것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 대파 등 갖은 채소와 함께 다시 푹 끓인다. 6시간 넘게 끓이기에 영양소가 국물에 자연스럽게 배어난다.

곰탕은 우리나라에서 오일장이 최초로 선 전라남도 나주가 본고장이다. 장날 전국에서 모여든 상인들은 고픈 배를 채우려고 곰탕집의 문을 두드렸다. 곰탕에는 도축한 소의 자투리 부위인 머릿고기나 내장 등이 푸짐하게 들어갔고, 가격도 저렴했다. 나주 일대는 곡창 지대였기에 경작용 소를 키우는 집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축산업이 발달했고, 도축하고 남은 부위들은 곰탕의 재료가 됐다.

하지만 지금 나주에 가면 예전처럼 부산물만 가득 넣은 곰탕을 만나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나주곰탕집들은 사골을 푹 고아 만든 기본 국물에 양지머리, 사태, 목살 등을 넣어 다시 끓여 국물을 만든다. 여기에 잘 익은 깍두기를 얹어 먹으면 어떤 보양식도 부럽지 않다. 이 음식의 이름이 곰탕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조리법 때문이다. ‘고기나 뼈 등을 진액이 빠지도록 끓는 물에 푹 오래 삶다’는 뜻을 가진 ‘고다’란 단어에서 온 말이다. 오래 삶고 끓이는 그 시간이 곰탕의 요리사요, 비법인 셈이다.

어부의 소박한 한 끼

6물회_한국관광공사.png

물회는 생선회에 채 썬 배와 채소를 넣고 고추장과 마늘, 설탕, 참기름 등 갖은양념을 섞어 비빈 후 얼음물을 넣어 말아 먹는 음식이다. 포항 북부시장은 바다에 인접해 있어 싱싱한 회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 1980년대부터 이곳의 물회가 입소문이 나면서 별미를 맛보려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찾아들었다.
ⓒ 한국관광공사

경상북도 포항에 위치한 북부(北部)시장의 명물은 물회다. 본래 물회는 어부의 음식이었다. 먼바다로 고기잡이 나간 어부가 배에서 잡은 생선을 밥과 비벼 먹은 것이 유래다. 흠집이 나 팔 수 없는 생선을 추려 먹었던 뱃사람들의 밥상을 이젠 전국 어디에서든 받아 볼 수 있게 됐다.

어부의 소박한 한 끼를 최초로 상품화한 곳은 1960년대 초 문을 연 영남(嶺南)물회로 알려졌다. 이후 물회는 포항 일대로 퍼졌는데, 특히 1980년대에는 포항 북부시장에서 크게 번성했다. 도톰하게 썬 활어, 넉넉한 밥, 얇게 채 썬 오이를 한 그릇에 담아 고추장으로 비벼 먹다가 나중에는 맹물을 부어 먹게 됐다. 1990년대 들어서는 밥 대신 국수가 들어가기도 했다. 처음에는 흰 살 생선을 넣다가 고등어 같은 붉은 살 생선으로 재료를 바꾼 집들도 생겨났으며, 음식 위에 고소한 콩가루를 뿌리는 식당들도 있었다. 2000년대에는 맹물이 매실 진액이나 설탕, 배나 사과를 간 물, 식초 등을 배합한 육수로 변신했다. 이렇게 맛의 변주가 끊임없이 이어져 온 물회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여름철 별미가 됐다.


박미향(Park Mee-hyang, 朴美香) 『한겨레신문』 기자

전체메뉴

전체메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