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권에서의 데뷔작인 권여선 작가의 장편소설 <레몬>은 조사실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곳에서 한만우는 아름다운 소녀인 반 친구 해언의 살해에 대해 조사를 받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소설은 해언의 여동생 다언의 머리속에서 시작한다. 다언은 2002년 경찰 조사실에서 일어났을 거라 믿는 일을 상상한다. 그녀는 만우가 좀 어둔한 걸 알고 있고 일관되지 못한 진술 때문에 경찰들이 그가 살인자라고 확신하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부잣집 아이로 인기 많은 신정준이 또 다른 용의자였지만 알리바이가 인정되어 빠르게 혐의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만우를 용의자로 볼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해서 “미모의 고등학생 살인 사건”으로 알려진 이 케이스는 미궁에 빠졌다. 다언은 해결점을 찾으리라는 희망으로 모든 디테일을 되살려 보느라 17년을 보냈다.
근데 이 짧은 시놉시스를 읽고 오해가 없길 바란다. 이 소설은 범죄 소설이 아니다. 적어도 단순한 추리소설은 아니다. 누가 해언을 죽였는가 하는 문제는 소설 전체를 통해 탐색되지만 훨씬 더 중요한 질문은 다언이 첫 장에서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질문이다. “과연 삶에 의미 같은 것이 있나.” 언니가 죽은 후 겪은 감정의 대혼란이 서서히 잦아들지만 다언은 여전히 죄의식으로 고통 받는다. 정신과 의사는 ‘생존자의 죄의식’이라 이름 붙일지도 모르지만 다언에게 죄의식은 좀 더 뿌리 깊다. 그녀가 언니를 사랑하기라도 했는지 의혹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무엇보다 그녀를 고통스럽게 하는 건 사건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상관없이 다시 되돌아 갈 수 없고 이미 결정된 것을 바꿀 수 없다는 깨달음이다.
책의 절반 부분이 다언의 시점에서 서술되지만 그녀의 시점이 유일한 건 아니다. 두 챕터씩 각각 해언의 반친구인 상희와 태림의 관점에서 서술된다. 상희는 해언과 가깝지 않았지만 다언과 친했기 때문에 독자에게 다언의 다른 모습을 제시한다. 태림은 사건과 더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그녀는 해언을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만우와 함께 있었고, 나중에 정준과 결혼한다. 독자는 여자 인물들의 눈을 통해서만 만우와 정준을 보기에 이들의 이야기는 신비에 싸여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아마도 가장 눈에 띄는 건 해언의 부재다. 이야기의 목적을 부여하는 희생자로서 해언은 주인공이긴 하지만 자신을 위해 발언하지 않으며 독자는 그녀의 머릿속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독자는 그녀에 대한 다른 인물들의 생각을 통해 그녀를 알 수 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해언은 이들이 자신의 꿈과 욕망, 공포와 불안을 투사하는 하나의 암호이다.
작가는 유려한 스토리텔링으로 독자를 끌어들이고 조각들이 천천히, 하나씩 맞춰져 가는 동안 추리소설의 긴장을 유지시킨다. 하지만 전체적인 그림이 완성되면 우리는 인간이 어떻게 상실과 비극과 슬픔을 다루는지가 진정한 미스터리임을 좀 더 자각하게 된다. 우리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시합이 한창이었던 여름 어느 날에 발생한 끔찍한 범죄를 잊지 않지만 매 챕터를 지나며 시간이 거침없이 흘러가 17년 후인 2019년에 끝날 때가 되면 우리는 미스터리의 어떤 ‘해결’도 생존자들에게는 아무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것임을 알게 된다. 다언과 상희와 태림에게 이 여정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며, 적어도 그들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선의 저편에서 해언과 재회할 때까지는 그럴 것이다. 마지만 페이지를 넘기며 이야기는 독자의 마음속에서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질문들은, 우리가 모두 찾아야 하는 해답들과 함께, 우리 뇌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