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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SUMMER

기능에서 비롯된 유기적 아름다움

더_시스템랩(THE_SYSTEM LAB)을 이끄는 김찬중(Chanjoong Kim, 金贊中)은 독특한 건축 미학으로 주목받는 건축가이다. 그의 작품에는 한국 건축에서 보기 어려운 위트가 담겨 있다고 평가받는다. 2016년, 영국 라이프스타일 잡지 『월페이퍼(Wallpaper*)』가 선정한 ‘세계의 떠오르는 건축가 20인’에 선정된 바 있다.

더_시스템랩의 김찬중 대표는 ‘합리적인 혁신’을 통해 건축의 새로운 유형을 제시하는 건축가이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변화의 속도가 빠른 오늘날, 건축이 시대의 흐름에 반응할 수 있는 유기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강석(Gangseok Lee)

“ 형태는 기능을 따릅니다.”

김찬중에게 자신의 철학을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의 경구(警句)라 진부하게 들릴 거라는 말투였지만, 표정은 단호했다.

“너무 고전적인 얘기라 식상하겠지만, 저희 작업에 사용된 모든 곡선과 유기적 형태들은 제각각 고유한 기능을 가집니다.”

건축가는 예술가가 아니기에, 기능에 맞추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미적 탐닉보다 건축 방식을 먼저 따지는 게 숙명이다.

머큐어 앰배서더 서울 홍대(Mercure Ambassador Seoul Hongdae)는 대로변에 면하는 부분에 투과성 차폐막이 설치되었다. 이는 도로의 소음을 차단하는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심미적 측면에서 개성 있는 실루엣을 만들어 냈다.
ⓒ 김용관(Kim Yong-kwan, 金用官)

기능을 고려한 디자인

서울 강서구 마곡동(麻谷洞)의 삼진제약 연구센터(2021)는 살짝 불어든 바람에 팔랑 들린 커튼 자락을 닮은 건물이다. 각종 실험이 진행되는 연구소는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공간이다. 그렇다고 연구원들이 종일 연구에만 몰두할 수는 없다. 가끔 기지개 켜고 창밖도 내다봐야 숨통이 틘다. 펄럭이는 듯한 입면(facade)은 이런 점을 고려하되, 오후 햇빛이 눈을 찌르는 서향 건물의 난제를 풀 해법이었다.

건축가는 연구원들의 개인 책상을 가장자리에 두고, 공동 업무 공간인 실험실은 중앙부에 배치하도록 설계했다. 개별 공간에서는 집중력 있게 자기 연구에 빠져들고, 실험실에서는 트인 생각으로 머리를 맞대는 구조다. 그는 창가에 놓인 책상으로 햇빛이 너무 세게 들이쳐도, 외부와 단절된 채 꽉 막혀 있어도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빛을 막으면서도 도시와의 관계는 열어 두기 위해 벽을 들어 올렸다. 얇은 천 느낌의 곡면 외벽은 80mm 두께의 초고강도 콘크리트(UHPC, Ultra-High Performance Concrete)로 제작했다. 형태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강도는 일반 콘크리트를 압도한다.

“외벽 콘크리트 패널을 곡면으로 만들어 직사광선은 가리고, 살짝 열린 틈으로 간접 광이 들어올 수 있게 했습니다. 책상에 앉아서 곡면의 열린 틈으로 도시를 내다볼 수도 있어요. 직사광선과 무관한 북향이었다면 이런 시도를 안 했을 겁니다. 모든 것들은 기능과 연관된 선택입니다.”

한 블록 옆에 위치한 IT 기업 엑셈 마곡연구소(2022)도 이들이 맡은 프로젝트였는데, 마찬가지로 서향이다. 외벽에 특수 알루미늄 차광판을 45도 기울인 상태로 줄지어 붙였다. 삼진제약 연구센터와 마찬가지로 오후 서쪽 하늘의 강한 빛을 차단하고 반사된 빛이 부드럽게 내부로 흘러들게 하는 역할이다. 그는 모니터와 스크린을 중심으로 일하는 IT 회사의 특성을 고려해 균질한 실내 빛 환경에 신경 썼다. 외부 차광판과 유리 벽 사이는 직원들이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는 발코니형 쉼터로 조성했다.

실험적 시도

‘어금니 빌딩’이라 불린 폴 스미스 플래그십 스토어(2011)는 바닥 면적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공간에 대한 의뢰인의 요구를 모두 담다 보니, 머핀처럼 위쪽이 부풀었다. 가우디의 작품 카사 밀라(Casa Mila)와 닮았단 소리를 듣는 한남동 오피스 빌딩(2014)은 구불구불한 외벽에 곡선형 창을 내고 발코니를 만들었다. 발코니는 실내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피로감을 줄여 주는 역할을 맡는다.

강남구 도산공원 바로 앞에 위치한 폴 스미스 플래그십 스토어는 고급 브랜드 매장이 밀집된 주변 환경 속에서 해당 브랜드를 일반인들에게 어떻게 인지시킬 것인지 고민한 끝에 탄생했다. 그 결과 보는 사람에 따라서 각기 다른 해석이 가능한 건물이 되었다. 현재는 헤리티크뉴욕(HERITIQUE NewYork) 매장으로 사용된다.
ⓒ 김용관(Kim Yong-kwan, 金用官)

삐죽하게 솟은 송파구 오금로(梧琴路)의 다세대 주택 다락다락(DARAK DARAK, 2016)은 건축물의 면적과 층수에서 제외되는 다락의 특성을 이용해 연면적과 높이를 확대했으며, 녹과 얼룩에 강해 오랫동안 깨끗하게 쓸 수 있는 컬러 강판을 사용한 덕에 눈에 띄는 건물이 됐다. 까다로운 조건과 제약이 김찬중에게는 실험적 시도의 원천이 됐다.

“새로운 소재에 관심이 많습니다. 형태나 물성이 바뀌면 사람들의 접근이 달라져요. 다가와 두드려 보고 만져 봅니다. ‘스머프집 같다’, ‘문어 빨판 같다’는 식으로 별명도 지어 부릅니다. 이처럼 각자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투영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건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좋은 건축이란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물, 그리하여 사람들의 창의성을 북돋우고 건조한 도시에 활력도 불어넣는 것이라 믿거든요.”

부산 구도심에 위치한 PLACE 1 BUSAN은 하나은행 빌딩을 리모델링한 프로젝트이다. 건축가는 바빌론 시대의 공중 정원에서 모티브를 얻어 건물 상층부를 독특한 방식으로 디자인했다.
ⓒ 유청오(Cheong O Yu)

자연과 어우러진 건축물

코오롱그룹의 의뢰로 울릉도에 지은 코스모스 리조트(2017)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건축 같지 않은 건축에 대한 도전이었다. 바다 위 절벽에 놓인 이 호텔은 건물이라기보다는 한 점의 오브제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The Birth of Venus)>이 연상되는 이 건물은 비너스를 실어 온 조개껍질처럼 희고 단아한 모습이다. 위에서 내려다본 형태는 봉오리 벌어지는 꽃잎 같고, 옆에서 본 곡선은 넘실대는 파도를 닮았다. 2015년 리조트 설계를 의뢰받은 김찬중은 예닐곱 시간 뱃길을 따라 울릉도로 들어갔다. 섬에 밤이 내리자 별과 하늘의 움직임이 보였고, 해가 뜨자 파도와 바람 소리가 들렸다. 천문기상대에 자료를 요청해 해와 달의 궤적을 받았고, 자연이 그린 포물선에서 건물의 곡선들을 추출했다. 건축물의 모든 부분이 자연을 닮은 이유다.

“수만 년 동안 추산(錐山)을 중심으로 형성된 울릉도의 자연에 인위적인 표현을 더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밖에서건 안에서건 건물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주변 풍광의 아름다움을 담길 바랐거든요.”

코스모스(KOSMOS) 리조트는 원시적인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울릉도에 위치한다. 건축가는 대지에 건축물을 설계하기보다는 자연을 담는 그릇을 만들고자 했다. 또한 그는 이곳이 별들의 궤적을 관조하는 일종의 천체 관측 도구가 되기를 희망했다.
ⓒ 김용관(Kim Yong-kwan, 金用官)

살포시 자연을 파고든 건축물이니 육중해서는 안 된다. 날렵하고 가벼우면서도 외벽의 단단함을 갖추고, 염분 많은 바다의 풍파를 견딜 수 있는 소재가 필요했다. 토목에 주로 사용되던 UHPC를 건물 전체에 적용하기로 했다. 누구도 한 적 없는 시도다. 일반 콘크리트는 30cm 두께지만, 12cm로 얇게 만드는 게 가능했다. 강도는 다섯 배나 더 세다. 극한 조건을 충족할 콘크리트를 제작해 울릉도까지 실어 나르는 게 문제였다. 거푸집으로 현장 타설(打設)을 시도했고, 성공했다. 그 또한 세계 최초였다. 그렇게 탄생한 유기적 형태는 자연이 낳은 것처럼 어우러졌다.

그의 어머니는 화가다. 어머니는 누드 크로키로 종종 전시회를 열었다. 인체 곡선이 갖는 아름다움에 대한 이해, 손재주와 눈썰미 등의 감각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듯하다. 아버지는 그가 효율적인 실용주의자로 성장하게끔 자극을 주었다. 기능주의자면서도, 예술가 못지않게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건축가가 된 배경이다.

미래를 위한 건축

“건축은 오래된 산업 중 하나입니다. 세상의 변화가 느릿하던 옛날과 달리 지금은 기술 혁신이 빠르게 진행됩니다. 우리가 땅을 확보해 설계하고 짓기까지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까지 걸리는데, 그 사이 기술과 트렌드, 건물의 역할까지도 급속히 바뀌거든요. 건축가로서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한 고민이 숙제입니다.”

성수동 연무장길에 자리하고 있는 우란(友蘭)문화재단은 지역적 맥락에 흡수될 수 있도록 설계된 건축물이다. 주변에 위치한 소규모 공방들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작은 덩어리들이 집합을 이룬 듯한 형태로 디자인됐다.
ⓒ 김용관(Kim Yong-kwan, 金用官)

건물의 형태적 혁신은 기능의 변화를 반영한다. 김찬중의 신작들은 이제 지역성과 공동체, 역사를 파고든다. 그는 2021년 울산광역시 울주군(蔚州郡) 외고산(外高山) 옹기마을의 쇠락한 구도심 재생 프로젝트를 맡았다. 외고산 옹기마을은 전통 옹기의 제조 기술과 미학을 지켜가고 있는 곳으로, 전국에서 생산되는 옹기의 50퍼센트 이상이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그는 카페와 맛집으로 주말만 북적이는 명소가 아닌, 젊은 사람들이 일하며 생활하는 정주형 오피스를 통해 진정한 지역 활성화가 이루어지기를 고대한다.

지난해에는 서울시의 의뢰로 재단법인 아름지기와 함께 종로구 옥인동(玉仁洞) ‘윤씨 가옥’의 리모델링을 맡았다. 이 집은 대한제국(1897~1910) 시대 친일파 관료였던 윤덕영(尹德榮)이 자신의 소실을 위해 지은 한옥이다. 당대 최고로 화려했던 집이었지만, 권력의 몰락과 함께 빈집으로 쇠락해 방치돼 있었다. 그는 내년 상반기 공개를 목표로, 이곳을 시민들을 위해 열린 공간으로 바꿔 놓을 계획이다. 그는 미래를 짓는다.



조상인(Cho Sang In, 趙祥仁) 아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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