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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2021 SPRING 387

웹툰 스토리 유니버스 웹툰은 영화•드라마•게임•뮤지컬 등 타 장르에 원작을 공급하고 있으며, 때로는 이러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작업이 주목할 만한 성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넷플릭스를 위시한 글로벌 OTT 플랫폼들의 등장으로 향후 슈퍼 IP(intellectual property)로서 웹툰의 가치가 더욱 빛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 웹툰 원작의 매체 전환은 장르가 극히 한정되어서 강풀(Kang Full)의 몇몇 작품이 연극 무대에 오르고, 강도하(Kang Do-ha [Doha])의 (2004~2005)가 뮤지컬로 만들어진 정도였다. 영화, 드라마, 게임, 애니메이션 등 비교적 다양한 장르에서 웹툰이 원천 콘텐츠로서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은 2010년대 이후부터다. 강우석(康祐碩) 감독의 2010년 개봉작 는 윤태호(Yoon Tae-ho 尹胎鎬) 작가의 동명 스릴러 웹툰이 원작이다. 이전까지 웹툰 원작의 영화가 흥행 면에서 저조한 성적을 보였던 것과 달리 이 영화는 누적 관객수 약 335만 명으로 손익 분기점을 넘겼으며, 그해 여러 영화제에서 감독상•남우주연상•촬영상 등 다수의 수상 실적도 거두었다. 이후 웹툰의 영상화 작업은 급물살을 탔다. 특히 14년간 네이버에 연재되었던 조석(Cho Seok 趙奭)의 최장수 웹툰 (2006~2020)는 다양한 장르로 전환된 대표적 사례다. 작가가 자신의 주변 인물을 등장시켜 신변잡기적 에피소드로 시작된 이 웹툰은 2016년 시트콤 형식의 5부작 웹드라마로 제작되어 이후 TV에서도 상영되었다. 2018년에는 출연진을 전원 교체해 새롭게 제작한 20부작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그런가 하면 2016년에는 원작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등장시킨 모바일 게임이 출시되었고, 같은 해 총 26화 분량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 다수의 어린이 채널을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2016년, ‘웹툰 플랫폼의 시대, 웹툰 IP에 주목하라’는 주제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2016 올 웹툰 체험전>에 의하면 2010년대 중반까지 대략 영화 19편, 드라마 36편, 게임 19편, 애니메이션 17편, 연극 65편, 뮤지컬 14편이 웹툰을 원작으로 제작되었다. 윤태호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강우석(康祐碩) 감독의 2010년 작 영화 의 한 장면. 아버지가 생전에 머물렀던 시골 마을을 찾은 주인공이 마을 사람들에게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비밀을 파헤쳐내는 이야기를 담았다. ⓒ CJ ENM © CJ ENM ⓒ 윤태호, 슈퍼코믹스 스튜디오(SUPERCOMIX STUDIO Corp.) 마을 이장의 심복이 주인공이 머무르는 집 안에 몰래 침입하려는 장면이다. 배우들의 우수한 연기가 원작과 영화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데 한몫한 것으로 평가된다. ⓒ 스튜디오 드래곤(STUDIO DRAGON) ⓒ 윤태호, 슈퍼코믹스 스튜디오(SUPERCOMIX STUDIO Corp.) 서사성이 강한 윤태호의 웹툰은 대다수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다음 웹툰에 연재되었던 은 2014년 20부작 TV 드라마로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사진과 웹툰은 주인공 장그래와 같은 팀 직원의 모습이다. 기폭제 2019년 1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시즌 1이 전 세계에 소개되면서 원작 웹툰의 매체 전환은 제작 규모와 질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현재 시즌 2까지 방영된 시리즈는 웹툰 제작사 와이랩(YLAB)이 2014년 일본 소학관의 인기 잡지 『빅 코믹 스피리츠』에 발표한 만화 가 원작이다. 드라마 작가 김은희(金銀姬)가 처음으로 만화 스토리를 맡고 만화가 양경일(梁慶一)이 작화를 담당해 호흡을 맞춘 이 작품은 원작의 고유성과 각색의 묘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 방영되기 약 일주일 전 웹툰 형태로 가공되어 네이버에서 연재를 시작했다. 은 원작 만화와 드라마 극본을 같은 작가가 집필함으로써 기본적인 플롯과 세계관이 드라마에 더욱 치밀하게 반영되었다. 총 190개국에 공개된 시리즈는 미국 영화•드라마 정보 사이트 IMDB 인기 순위 9위, 『뉴욕타임스』 2년 연속 ‘최고 인터내셔널 TV쇼 Top 10’에 올랐고 현재 시즌 3을 제작 중이다. 이 시리즈가 거둔 성과는 웹툰 원작의 매체 전환 작품 수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또한 유통 네트워크도 국내 방송과 OTT 플랫폼 중심에서 한 발 나아가 넷플릭스와 중국 텐센트 등 글로벌 플랫폼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만화 를 원작으로 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은 원작의 세계관이 드라마에도 잘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반역자로 몰린 왕세자가 좀비와 맞서 싸우는 한편 왕권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Netflix original series) 2019년 1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즌 1이 전 세계에 소개되면서 원작 웹툰의 매체 전환은 제작 규모와 질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하나의 세계관, 다양한 이야기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 장르들을 넘나들며 동일한 주제 아래에서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전개하는 전략을 의미한다. 보통 원작의 성패에 따라 추이를 지켜보며 시차를 두고 대응하는 방식과 아예 기획 단계에서부터 종합적인 전략 아래 여러 장르의 작품을 제작하는 방식이 혼용되고 있다. 윤태호의 은 전자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웹툰이 다음(Daum)에 연재(2012~2013년)되며 선풍적 인기를 끌게 되자 이 원작을 기반으로 2013년 웹영화 이 제작되었다. 이 모바일 영화에서는 원작에서는 소개되지 않았던 주요 등장 인물들의 과거사가 다뤄졌다. 이후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 임시완(任时完)을 다시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20부작 TV 드라마 이 2014년 tvN을 통해 방영되었고, 드라마 방영 도중 윤태호 작가는 웹툰 특별판 5부작을 만들어 공개했다. 번외편 웹툰에서는 극중 주요 인물 중 한 명인 오 과장의 과거 이야기가 펼쳐졌다. 이후 웹툰 의 속편인 가 다음과 카카오페이지(KakaoPage)에 연재(2015~2018)되었는데, 전편이 대기업 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계약직 사원의 고군분투를 다루었다면, 속편에서는 대기업에 맞서 분투하는 중소기업의 이야기에 포커스가 맞춰졌다. 웹툰과 웹영화, 드라마는 별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각 작품들은 모두 ‘미생’이라는 커다란 세계관을 이루는 일부이다. 광진(Kwang jin) 작가의 웹툰 (2016~2018)는 국제적인 맥락에서 웹툰의 매체 전환을 이해해 볼 수 있는 사례이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 연재가 한창이던 2017년, 카카오(Kakao Corp.)가 설립한 자회사 카카오재팬이 일본에서 운영하는 웹툰 애플리케이션 픽코마를 통해 라는 제목으로 출시되었다. 이태원에서 롯폰기로 배경을 바꾸며 현지화 노력이 더해진 이 작품이 큰 인기를 끌게 된 시점은 그로부터 3년 후였다. 2020년 초, 국내 방송사 JTBC가 웹툰을 드라마로 제작해 방영하고, 이 드라마가 넷플릭스를 통해 일본에 유통되며 인기를 얻자 가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이다. 드라마 는 일본 넷플릭스 종합 Top 2에 올랐고 웹툰 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54%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매체 전환의 매개 역할 웹툰 (2016~2018)는 동명의 웹소설과 드라마 사이에 스토리텔링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대중성을 확보한 사례이다. 이 작품은 2013년 발표된 정경윤(鄭慶允) 작가의 동명 웹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원작의 주제 의식을 잘 살려 매체 전환에 성공했다. 웹툰이 큰 인기를 끌자 2018년 tvN이 16부작 드라마로 만들어 또다시 화제를 모았고, 원작 소설이 발표된 지 5년 만에 단행본 출판으로 이어졌다. 한편 조성희(趙圣熙) 감독의 영화 는 우주 쓰레기 청소선 승리호의 선원들이 대량 살상 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를 담았는데, 2021년 2월 5일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했다. 이 영화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전략이 적용되었다. 동일한 주제를 기반으로 영화사 비단길(Bidangil Pictures)이 영화를 제작하고 카카오엔터테인먼트(Kakao Entertainment Corp.)가 같은 시기에 웹툰을 만든다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넷플릭스 개봉에 앞서 동명의 웹툰을 19화(2020. 5.~2020. 9.)까지 미리 공개했다. 또한 영화가 공개된 후 국내에서는 20화 이후의 스토리를 제공하는 한편 일본, 북미, 인도네시아, 프랑스에서는 1화부터 동시 연재를 시작했다. 한정된 시간 내에 모든 서사를 보여 줘야 하는 영화와 달리 웹툰에서는 각 캐릭터들의 서사가 더 치밀하게 전개되는데, 영화가 웹툰으로 전환되면서 원작 시나리오가 웹툰 언어로 어떻게 재창조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영화와 웹툰으로 각 장르의 특성에 최적화된 이야기를 관객과 독자들에게 동시에 제시하는 의 전략은 좀 더 진화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영화와 웹툰이‘승리호’라는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어 내는 데 각 매체 특유의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관객들과 독자들은 보다 풍부한 이야기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영화 관객이 웹툰의 독자로, 웹툰의 독자가 영화의 관객이 되는 선순환 소비를 통해 수익 구조의 다각화와 극대화를 꾀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 광진 / 다음 웹툰 제공 © JTBC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는 서울 이태원을 무대로 젊은이들의 창업 신화를 그린 청춘 드라마다. 웹툰 원작자인 광진(Kwang jin 光真) 작가가 직접 드라마 대본을 집필했다. 사진과 웹툰은 주인공 박새로이와 그와 대척점에 서 있는 장대희 회장의 모습이다. 영화사 비단길(Bidangil [Silk Road] Pictures)이 제작한 조성희(趙圣熙) 감독의 는 우주 쓰레기 청소선 승리호의 선원들이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한 후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 영화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협업해 영화와 웹툰을 동시에 제작함으로써 작품의 캐릭터와 주제를 확장시킨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전략의 두드러진 사례이다. 넷플릭스(Netflix) 제공 ⓒ 홍작가(Hongjacga), 카카오엔터테인먼트(Kakao Entertainment Corp.) 슈퍼 IP를 위한 시도 현재 네이버 웹툰,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와이랩 등 한국 웹툰 산업을 이끌고 있는 기업들이 슈퍼 IP를 개발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슈퍼 IP는 중국 IT 기업 텐센트가 제안한 용어로 게임, 웹툰, 영화 등 강력한 팬덤이 형성된 IP를 다른 엔터테인먼트 포맷으로 무한히 확장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례로 와이랩은 네이버 웹툰 전용관을 통해 자사가 제작한 웹툰 작품들을 서로 연결하여 등장 인물들이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는‘슈퍼스트링(super string)’을 제공 중이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 차원을 넘어온 캐릭터들이 슈퍼스트링을 결성해 악의 세력에 대항한다’는 거대 서사 아래 자사의 작품들이 재편되거나 크로스오버되고 있다. 마치 마블의 히어로들이 때로는 한데 뭉쳐서, 때로는 각개 전투로 활약하는 것과 비슷하다. 첫 번째 크로스오버 작품은 의 주인공과 의 주인공이 만나 충돌하는 이야기를 담은 로 2021년 1월 1화 공개 이후 연재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장르를 활용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전략은 향후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하면서 장르를 꾸준하게 확장해 가는 ‘스토리 유니버스(story universe)’ 형태로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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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2021 SPRING 324

웹툰을 이끌어 가는 작가들 웹툰이 국내외적으로 큰 인기를 끌며 새로운 매체로 자리를 잡게 된 데에는 많은 작가들의 창의력과 노력이 뒷받침되었다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다. 초기부터 현재까지 한국 웹툰의 특징적 경향을 이끌어 온 대표적 작가들을 소개한다. (2003~2004 다음 웹툰) (2004~2008 다음 웹툰) <26년>(2006 다음 웹툰) (2007 다음 웹툰) (2008 다음 웹툰) (2011 다음 웹툰) (2013 다음 웹툰) (2015 다음 웹툰) (2017 다음 웹툰) 강풀(Kang Full) 웹툰계의 살아 있는 화석 언론인 손석희(孫石熙)는 2015년, 자신이 진행하는 TV 뉴스 프로그램의 인터뷰에 게스트로 나온 강풀을 “웹툰계의 삼엽충이라고 불린다”며 시청자들에게 소개했다. 이는 웹툰 1세대 작가인 강풀의 상징성을 잘 나타내는 표현이다. 2003년, 그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Daum)에 를 연재하던 시기만 하더라도 웹툰이라는 개념이 아직 뚜렷하게 규정되지 못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그의 작품을 제대로 된 만화가 아니라고 폄하하는 시각이 존재했다. 사실 기존 출판 만화 시장의 잣대로 보면 그의 그림 실력은 미숙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이듬해 연재한 도 성공하면서 세간의 편견이 바뀌기 시작했다. 연인들의 순정적인 연애 감정을 사랑스럽고 귀엽게 그려 내거나 아파트 주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원혼에 대한 이야기를 미스터리 장르 문법으로 풀어낸 그의 이 초기작들은 잘 짜인 스토리텔링만으로도 충분히 인기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강풀의 선례 이후 그림 실력은 다소 부족하더라도 흥미로운 아이디어만 있으면 얼마든지 웹툰 작가에 도전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으며, 이를 통해 다양한 장르의 질 높은 작품들이 축적될 수 있었다. 한편 를 비롯해 강풀의 작품 상당수가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웹툰이 ‘원 소스 멀티 유즈(OSMU)’의 핵심 콘텐츠로 부상하게 되었다. 영화나 드라마 등 타 미디어 시장의 종사자들이 원천 스토리로서 웹툰을 주목하고 2차 판권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웹툰 시장이 전체적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순전히 강풀 혼자의 힘으로 해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웹툰계의 삼엽충’으로서 그가 새로운 매체의 1세대로 좋은 본보기를 남겼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의 주인공 남녀 캐릭터. 웹툰 작가 강풀의 본격 데뷔 작품이다. ⓒ 강풀 / 다음 웹툰 제공 의 주인공 남녀 캐릭터. 사회에서 소외된 노인들의 삶과 사랑을 부각시켜 잔잔한 감동을 준 작품이다. <26년>의 예고편에 소개된 등장인물들. 1980년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웹툰으로 강풀이 가장 힘들고 조심스럽게 그렸다고 말하는 작품이다. (2006 파란닷컴) (2010~2011 네이버 웹툰) (2011~2012 네이버 웹툰) (2012~2013 네이버 웹툰) (2018~2019 네이버 웹툰) 하일권(Ha Il-kwon [Ilkwon Ha] 河壹權) 웹툰이기에 가능한 미적 성취 스크린과 세로 스크롤이라는 웹 환경의 특성 안에서 다각적인 미적 실험을 시도한 여러 작가들의 노력은 웹툰이 기존 만화에서 독립된 새로운 범주의 매체로 위치를 굳히는 데 한몫했다. 그중 1.5세대에 속하는 하일권은 웹툰의 표현력을 크게 확장한 작가다. 데뷔작 (2006)에서 종이보다는 PC 스크린에 어울리는 색감으로 주목받았던 그는 (2010~2011)에서는 무채색과 컬러의 대비를 통한 분위기의 변화, 칸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연출을 선보였다. 그러다가 한층 원숙해진 연출이 돋보인 (2011~2012) 이후 자신을 비롯한 웹툰 작가들의 작화 기법이 비슷해졌다고 판단한 그는 화려한 연출 대신 한 컷 한 컷 밀도를 높이는 데 집중하는 한편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같은 구성을 더하는 전략을 취했다. 스토리의 우울함을 극대화한 (2012~2013)이 바로 그것이다. 하일권의 연출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단지 PC나 스마트폰의 물리적 속성에 맞춰 표현을 확장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 에서 볼 수 있듯 그의 연출은 이야기의 재미와 정서적 반응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진동을 비롯해 스마트폰에 내재된 기능들을 효과적으로 살린 명랑 모험 만화 (공동 작업, 2015), 공황장애를 겪는 주인공의 절망적인 심리 상태를 몽환적인 연출로 그려 낸 (2018~2019) 등 작품 거의 대부분에서 이야기와 연출력의 완성도 높은 결합을 확인할 수 있다. 하일권은 소외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의 고민을 감성적으로 풀어내는 경향을 보인다. 역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는 한 소녀 가장이 마술사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환상적으로 그려 냈다. ⓒ 하일권 / 네이버 웹툰 제공 (스토리 아루아니, 작화 김칸비, 2007~2008 다음 웹툰) (스토리 아루아니, 작화 김칸비 2008~2009 네이버 웹툰) (스토리 김칸비, 작화 황영찬, 2014~2016, 네이버 웹툰) (스토리 김칸비, 작화 황영찬, 2017~2020, 네이버 웹툰) (스토리 김칸비, 작화 서재일(Seo JaiIl 徐載壹), 2018~2019 투믹스(Toomics)) (스토리 김칸비, 작화 홍필(Red Brush), 네이버 웹툰 2021~) 김칸비(Carnby Kim [Kim Kan-bi] 金坎比) 스릴러 장르의 마스터 김칸비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누가 뭐라 해도 넷플릭스를 통해 영상화된 (2017~2020)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 그는 단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의 원작자일 뿐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국 웹툰의 역사에서 그는 스릴러 장르에 깊이 천착하며 해당 장르의 발전을 이끈 작가로 기록된다. 그가 스토리 작가 아루아니(Aruani)와 함께 ‘팀 겟네임(Team Getname)’이란 이름으로 발표한 데뷔작 (2007~2008)과 두 번째 작품 (2008~2009)는 모두 인간의 악마성을 치밀하게 다룬다. 은 열 살 남짓한 나이에 살인을 서슴지 않는 ‘교수인형’ 멤버들과 그들에게 살해당할 뻔했던 인물이 성장한 후 벌이는 잔인한 복수극이다. 성인 등급을 받은 에선 살인을 통해 우월함을 느끼는 연쇄 살인마와 그를 제압한 바 있는 악독한 킬러, 그리고 그 둘이 만든 게임에 휘말린 선량한 주인공의 고난이 그려진다. 에서 그림을 담당한 황영찬(黃英璨) 작가와의 첫 협업 작품 (2014~2016)의 주인공 역시 연쇄 살인마인 아버지의 강요와 협박으로 공범 역할을 한다. 인간의 잔혹함이 펼쳐지는 그의 작품들에서 주인공들은 흔히 심각한 윤리적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 스릴러 작가로서 그는 서사적 트릭보다는 등장인물들을 극단적 상황에 몰아넣은 뒤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양상을 섬뜩하고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데 일가견이 있다. 스릴러보다는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apocalypse) 장르에 가까운 이 이전 작품들의 연장선에 있는 건 그 때문이다. 괴물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괴물이 되면 편하게 살 수 있지만, 그럼에도 괴물이 되지 않으려 애쓰는 인간의 이야기는 그가 지속적이고도 가장 능숙하게 다루는 테마다. 은 독특한 괴물 캐릭터와 강렬한 서스펜스, 섬뜩한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가는 일반적인 아포칼립스 장르와 차별화시키기 위해 주인공의 내적 성장에 포커스를 두었다고 말한다. ⓒ Carnby Kim, Youngchan Hwang / 네이버 웹툰 제공 <3그램>(2012, 미메시스 출판사) (2015, 올레 마켓) (2017~2018,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2019~2020,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수신지(Soo Shin Ji) 주류 플랫폼 바깥에서 시작된 물결 동시대 한국 웹툰에서 (2017~2018)와 (2019~2020)의 수신지 작가가 이끌고 있는 변화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지난 18년 동안 다음과 네이버라는 양대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중심으로 발달한 웹툰 시장에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통한 연재로 폭발적 인기와 인지도를 얻었다는 점이다. 잠재적 독자가 상주해 있는 플랫폼의 견인 효과 없이도 는 오직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이용자들의 입소문과 추천만으로 100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모았다. 플랫폼에서 고료를 받으며 연재하는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작품이 출판된 이후에야 수익이 발생했지만, 거대 플랫폼에 종속된 연재 시스템에서 벗어나 히트작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무척 이례적인 사건이다. 또 다른 중요한 흐름은 국내에서 몇 년 전부터 인터넷을 중심으로 본격화된 페미니즘 이슈를 자신의 작품에 효과적으로 녹여 냈다는 점이다. 에서는 여성이 결혼과 동시에 대개 남편 집안의 며느리로 귀속되는 가부장제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다뤘으며, 에서는 낙태 경험 유무를 쉽게 검사할 수 있는 기술을 통해 낙태를 경험한 여성을 법적으로 처벌하는 가상의 상황을 그려 냈다. 이 작품은 낙태죄가 어떻게 여성의 신체적 자율권을 침해하는지에 대해 강력하게 풍자한다. 웹툰 시장이 양대 포털을 중심으로 양적으로 팽창하자, 어느 순간부터 작가들은 해당 포털의 눈에 들어 자신의 작품이 정식으로 연재되는 것만을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한 성공 사례가 많아질수록 역설적으로 새로운 시도가 줄어드는 문제가 생겨났다. 이러한 때에 주류 플랫폼 밖에서 성공이 보장되기 어려워 보였던 페미니즘 텍스트로 모험을 시도한 수신지의 성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후 인스타그램을 통해 바로 독자와 만나는 작가들이 늘어갔으며,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지닌 페미니즘 웹툰이 다수 등장함에 따라 이제는 역으로 포털에서 정식 연재되는 일도 생겨났다. 거대하고 단단한 구조 바깥에서 수신지가 일으킨 작은 파문은 생각보다 강력하게 퍼져나가는 중이다. 의 한 장면. 웹툰 플랫폼 대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연재되었던 이 작품은 매회 수많은 댓글이 올라오며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 수신지 (2014~, 네이버 웹툰) (스토리 박태준, 작화 김정현(Kim Junghyun), 2019~, 네이버 웹툰) (스토리 박태준, 작화 전선욱(田善旭), 2019~2020, 네이버 웹툰) 박태준(Pak Taejun [Taejun Pak] 朴泰俊) 쉬지 않고 마시게 되는 사이다의 짜릿함 2009년, 박태준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미남•미녀들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유명세를 얻었다. 이후 방송 활동을 하다가 의류 쇼핑몰의 CEO 역할을 맡게 되었고, 데뷔작 (2014~)를 통해 웹툰 작가로 전향했다. 이 작품은 네이버에서 아직도 연재 중인데, 첫 에피소드가 공개되던 2014년부터 현재까지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 웹툰계에서 박태준은 생태계 교란 생물 같은 존재로 인식되는데, 이는 그의 전력 때문만은 아니다. 박태준만큼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만화계 바깥에서 진입한 작가가 놀랄 만한 수준의 인기를 누리는 경우는 이전에도 종종 있었다. 그가 웹툰 생태계를 교란했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독자들의 말초적 욕망을 자극해 성공하는 법칙을 거의 모범 답안처럼 제시했기 때문이다. 웹툰 독자들은 흔히 ‘사이다(soda)’라 불리는 서사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탄산음료의 톡 쏘는 맛과 향, 시원한 목 넘김처럼 통쾌함을 주는 극 전개를 가리킨다. 이러한 장치는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개연성 있는 해결보다는 갑작스러운 상황의 변화를 통해 독자들이 대리 만족을 느끼게 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를 들어 에선 작고 못생겼던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완벽한 미남의 몸을 얻어 선망의 대상이 된다. (2019~)에선 힘없고 가난한 주인공이 싸움 기술을 가르쳐 주는 유튜브 계정의 도움을 받아 점차 강해지고, 자신의 싸움을 중계해 인기 유튜버가 된다. 이러한 서사 구조는 매우 단순하지만, 독자들에게는 직관적인 쾌감을 보장한다. 그의 또 다른 작품 (2019~2020)도 네이버에 동시에 연재되며 최고 수준의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그의 전략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보여 준다. 문제는 쉽고 빠르게 쾌감을 주려다 보니 종종 사회적 약자에 대한 대중들의 혐오 정서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매번 여성이나 이민자 혐오에 대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가 해외 시장에서 폭넓은 관심을 끄는 작가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 꼭 해결해야 할 숙제다. 의 한 장면. 못생긴 얼굴로 괴롭힘을 당하던 주인공이 완벽한 외모를 얻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네이버 웹툰 ‘도전 만화’에 업로드되자마자 빠르게 상위권에 진출, ‘베스트 도전 만화’로 승격되었고,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2014년 9월부터 정식으로 연재되기 시작했다. ⓒ 박태준 / 네이버 웹툰 제공 2020년 12월부터 연재를 시작한 는 옴니버스 형식의 스릴러물로 박태준 만화회사가 기획하고 제작한 작품이다. 김주인(Kim Juin 金主人) 작가가 스토리와 작화를 맡았다. ⓒ 김주인, 박태준 만화회사(Taejun Webtoon Company) / 네이버 웹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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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2021 SPRING 337

진화 중인 역동적 미디어 디지털 만화 웹툰은 태동부터 성장까지 채 20년도 되지 않는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었던 동력은 미디어, 플랫폼, 향유자, 디바이스 등 웹툰 생태계를 이루는 다기한 요소들이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늘 열려 있기 때문이다. ‘웹툰’이란 용어는 국내 최초로 PC 통신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 천리안이 2000년도에 만화를 게재하기 시작하며 ‘천리안 웹툰’으로 명명한 데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천리안 웹툰은 기존의 출판 만화를 단지 인터넷상에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해 현재의 웹툰 개념과 큰 차이가 있다. 비슷한 시기에 비연속적 서사 구조를 지닌 옴니버스 형식의 만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권윤주의 (1998), 정철연(Jung Chul-yeon)의 (2001~2007), 심승현(Shim Seung-hyun)의 (2002)처럼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그 예이다. 현재의 웹툰 스타일과 거리가 있지만, 세로 스크롤 방식으로 감상한다는 점에서 웹툰의 시발점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현재와 같은 웹툰의 시작은 다음(Daum)에 연재되었던 강풀(Kang Full)의 (2003~2004)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강풀은 앞서 언급한 작품들이 보여 주었던 세로 스크롤 방식을 수용하는 한편 다양한 형식 실험을 시도했다. 무엇보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 장편 서사를 결합시켰다는 점에서 그를 통해 웹툰 시대의 서막이 열렸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대표적 웹툰 플랫폼들인 다음 웹툰, 네이버 웹툰, 카카오페이지, 레진코믹스의 애플리케이션 화면이다(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2004년에 연재를 시작한 강도하(Kang Do-ha, aka Doha Kang)의 는 섬세한 심리 묘사와 정교한 그림으로 청춘의 고뇌와 사랑을 그려 내며 서사 웹툰의 새 장을 열었다. 그의 로맨스 웹툰은 대부분 신변잡기적 이야기를 다루었던 당시의 인터넷 만화들과 크게 구분되었다. ⓒ 강도하 / 다음 웹툰 제공 고유의 형식 웹툰의 출발을 가속화시킨 주인공은 주요 포털 사이트이다. 2003년 다음을 시작으로 이듬해 네이버, 파란, 엠파스로 이어진 포털의 웹툰 서비스는 이후 야후가 뒤따르면서 급물살을 탔다. 웹툰을 무료로 제공함으로써 사이트 방문자 수와 검색량을 늘리고 이를 기반으로 콘텐츠 노출과 광고 수익을 올리겠다는 전략이었다. 포털에 의해 대중과 접촉할 수 있는 게재 공간이 확보되면서 만화 연재를 원하는 작가들이 모여들어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웹툰은 한층 발전할 수 있었다. 먼저 강도하(Kang Do-ha [Doha Kang])의 (2004~2005)는 엠파스에서 연재를 시작했으나 이 회사가 웹툰 사업을 종료하면서 다음으로 자리를 옮겼다. 청춘의 고뇌와 사랑을 노래한 수준 높은 성인물로 섬세한 심리 묘사와 정교한 작화로 주목받았다. 강도하는 이 작품에서 스크롤 기반의 수직 화면 구성을 보다 본격화함으로써 시간의 흐름을 세련되게 연출하였고, 메타포를 통한 심리 묘사, 색감과 구도의 고도화, 반전 서사의 극적 활용 등을 통해 차별화된 웹툰 문법을 선보였다고 평가받는다. 이후 와 함께 청춘 삼부작으로 불리는 (2006), (2007)에서 보다 심화된 웹툰 문법을 탐구했다. 강풀이 장대한 이야기 구조를 담아내면서 서사 웹툰의 토대를 마련했다면, 강도하는 여기에 더해 웹 환경에 적합한 연출 방식을 구조화했다. 다음이 좋은 작품을 선별하기 위해 편집자의 역할을 강조했던 반면에 네이버는 사용자 통계를 중심으로 작품을 관리하며 이를 기반으로 작품 고료도 책정했다. 포털 간 이러한 경쟁은 웹툰의 질적, 양적 성장에 지렛대가 되었다. 경쟁 천리안에서 처음 사용했지만 대중화되지 못했던 웹툰이라는 용어는 네이버가 2005년 ‘네이버 웹툰’을 론칭하며 비로소 정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강풀과 강도하를 통해 자리를 굳히기 시작한 다음에 비해 웹툰 플랫폼으로서 네이버의 위상은 미약했다. 네이버는 다음 웹툰을 벤치마킹하여 자신들의 지향점에 맞게 보완하거나 정반대 전략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다음이 서사 웹툰에 주력하자 네이버는 일상 웹툰에 주목했고, 다음이 15세 이상 여성을 타깃으로 한 드라마에 중심을 두자 네이버는 15세 이하 남성을 타깃으로 삼았으며, 다음이 좋은 작품을 선별하기 위해 편집자의 역할을 강조했던 반면에 네이버는 사용자 통계를 중심으로 작품을 관리하며 이를 기반으로 작품 고료도 책정했다. 포털 간 이러한 경쟁은 웹툰의 질적, 양적 성장에 지렛대가 되었다. 네이버 웹툰의 이러한 특성을 잘 반영한 대표작이 바로 조석(Cho Seok 趙奭)의 (2006~2020)이다. 이 작품은 옴니버스 형식의 코미디물인데, 연재 시작 후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고공비행을 계속했다. 또한 2020년까지 무려 14년 동안 연재된 국내 최장수 웹툰이라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조석은 이 작품으로 네이버 웹툰의 초창기 시절 흥행을 이끌었으며, 지금은 네이버를 대표하는 간판급 작가가 되었다. 한편 강풀과 강도하로 이어지던 다음 웹툰의 특성은 잔혹 스릴러를 표방한 윤태호(Yoon Tae-ho 尹胎鎬)의 (2007~2009)에서 서사성이 더욱 강화된다. 인지도가 낮은 한 웹툰 사이트에서 연재를 시작한 이 작품은 정교한 스릴러 문법, 강렬한 캐릭터, 치밀한 심리 묘사, 강력한 메타포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여 초반부터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며 관심을 모았고, ‘2007년 대한민국 만화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해당 사이트가 운영을 종료한 후에는 다음으로 옮겨 80화를 끝으로 완결되었다. 윤태호가 보여 주는 강력한 서사적 흡입력은 (2012~2013)이 드라마로, 와 (2010~2012)이 영화로 제작돼 큰 성공을 거두는 요인이 되었다. 조석(Cho Seok 趙奭)의 1000화 중 한 장면. 작가 자신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을 등장시켜 코믹한 이야기를 전개했던 이 작품은 2006년 9월 제1화가 네이버 웹툰에 업로드된 이후 2020년 7월 1,237화를 마지막으로 완결됨으로써 국내 최장수 웹툰으로 기록되었다. ⓒ 조석 / 네이버 웹툰 제공 최규석(Choi Gyu-seok 崔圭碩)의 은 실제 외국계 대형마트를 배경으로 벌어진 노동 현실을 정면으로 다뤘으며, 2013년 12월 1부 첫 화를 시작으로 2017년 8월 5부 30화로 종결되었다. 웹툰의 소재를 한 차원 격상시킨 작품으로 평가된다. ⓒ 최규석/ 네이버 웹툰 제공 유료 서비스 작품의 질적 향상이 이뤄지던 시기, 웹툰 시장의 변화도 함께 일어났다. 2012년은 웹툰의 부분 유료화가 시도되었던 해이다. 다음은 작가와 협의해 연재가 완결된 후 해당 작품을 유료화하여 수익의 90%를 작가에게 돌려주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러한 시도는 강풀의 연재작들을 모두 유료화하면서 본격화되었으며, 예상과 달리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부분 유료화 시도는 기업의 사업성보다는 웹툰의 창작과 소비 문화 창달이라는 문화적 접근을 보여 준 시도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웹툰 생태계를 건전하게 조성하기 위해서는 작가에게 정당한 수익이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시도는 2013년, 웹툰의 유료화 플랫폼을 지향하는 레진코믹스가 등장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사용자 편의를 기반으로 프리미엄급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면 유료화가 가능하다”는 모토를 내세우며 전격적으로 유료화를 시행한 레진코믹스는 이후 성인물 중심으로 매출을 창출하며 화제를 모았다. 무적핑크(Superpink 无敌PINK)가 스토리를, 이리(YiLee)가 작화를 맡은 은 중국의 고전 소설 『삼국지연의』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스마트폰에서 세로 스크롤 대신 좌우로 한 컷씩 넘겨 가며 보는 형식을 도입했고, 1인 방송이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인터페이스를 활용한 형식 실험이 눈길을 끌었다. 2018년 5월부터 현재까지 네이버 웹툰에 연재되고 있다. ⓒ 와이랩(YLAB), Superpink, YiLee 윤태호(Yoon Tae-ho 尹胎鎬)의 는 그의 이름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작품이다. 섬세한 장면 연출과 몰입감 있는 서사 구조는 독자들의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 냈다. ⓒ 윤태호, 슈퍼코믹스 스튜디오(SUPERCOMIX STUDIO Corp.) 소재와 표현 2010년대 중반부터는 소재의 다각화가 이뤄졌다. 외국계 대형 마트를 배경으로 부당 해고 등 노동 현장의 문제를 다루면서 작가 특유의 블랙 유머를 가미한 최규석(Choi Gyu-seok 崔圭碩)의 (2013~2017)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사회 참여적 성격의 소재에 이어 최근 들어서는 젠더 이슈를 다룬 작품들이 크게 늘고 있다. 기맹기(Gi Maeng-gi 淇萌琪)의 (2016~2017)을 위시한 여성주의적 색채의 작품들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성 억압의 문제를 가부장제와 성폭력, 직장 생활 등 다양한 방면에서 다채로운 시각으로 접근한다. 이는 사회적 담론이 웹툰이라는 접근성이 용이한 매체를 통해 확장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웹의 특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과감한 형식 실험이 지속적으로 시도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시청각적 효과를 도입하거나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인스턴트 메신저의 대화창을 주된 표현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독자가 웹툰의 등장인물이 되어 주인공과 소통하는 인터랙티브 웹툰까지 등장했다. 인공지능, 증강현실,머신러닝 등 첨단 기술을 접목한 이런 시도들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웹툰이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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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2021 SPRING 406

보편적 감성에 다가서다 PC와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웹툰이 특유의 스타일과 뛰어난 작품성을 앞세우며 국경을 넘어 세계 여러 나라의 독자층에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기에는 스토리텔링을 통한 보편적 공감대 형성과 함께 현지화 전략이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못생긴 외모가 콤플렉스인 여고생이 완벽한 화장을 통해 자신감을 되찾고 원하는 사랑도 이루어 낸다. 이는 현재 네이버 웹툰 플랫폼에 연재되고 있는 야옹이(Yaongyi) 작가의 데뷔작 (2018~)의 간략한 줄거리이다. 이 작품은 네이버 ‘웹툰(WEBTOON)’의 태국어 사이트를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대만, 일본 등 아시아 지역을 비롯해 북미, 스페인, 프랑스에서도 동시에 연재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해외 누적 조회수 40억 회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웹툰은 PC나 모바일의 스크린 환경에 맞게 각 컷들이 세로로 길게 나열되며 스토리를 전개해 나간다. 이러한 세로 스크롤 방식은 웹툰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매우 중요한 특성이다. 또한 일주일에 한 번씩 업로드되는 짧은 연재 주기와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감상할 수 있는 편리한 접근성은 문화 콘텐츠를 짧은 시간에 쉽게 즐기려고 하는 최근의 풍조에도 부합한다. 그러나 한국 웹툰이 다른 문화와 역사적 배경 속에서 살아온 세계 여러 지역의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이유가 단지 이러한 기능적 측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2019년 6월 이탈리아 카타니아에서 열린 유럽의 대표적 만화 축제 ‘에트나 코믹스(Etna Comics)’에서 의 현지 팬들이 웹툰 관련 상품과 단행본을 구매하고 있다. 쿠기(Koogi) 작가가 이 행사에 공식 초청을 받아 사인회를 열었다. ⓒ 레진엔터테인먼트(LEZHIN Entertainment, Inc.) 제2회 레진코믹스 세계 만화 공모전 대상 수상작인 은 비극적인 과거를 가진 연쇄 살인마와 이 사실을 모르고 그를 쫓던 스토커가 한 집에 머물게 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스릴러물이다. 2016년 11월부터 2019년 3월까지 레진코믹스에 연재되었다. ⓒ Koogi /레진엔터테인먼트 제공 #장르&스타일 앞서 언급한 을 비롯해 한국 웹툰은 한 장르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장르들을 선보임으로써 취향이 세분화된 독자들을 만족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성인 등급으로 동성애 코드와 선정적이고 잔혹한 스토리를 지닌 스릴러 웹툰 (2016~2019)은 북미 지역에서 큰 인기를 거둔 뒤 유럽에도 진출했다. 레진코믹스에 이 작품을 연재했던 쿠기(Koogi) 작가는 2017년, 미국 LA에서 열린 애니메 엑스포(Anime Expo)를 비롯해 유럽 최대 만화 축제로 꼽히는 이탈리아 루카 코믹스 앤 게임즈(Lucca Comics and Games)에 초청받아 팬 사인회를 가졌으며, 2019년에는 이탈리아 에트나 코믹스(Etna Comics)에도 초대되어 현지 팬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이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독특한 스타일과 긴장감이 어우러진 빼어난 작품이라는 것이 공통된 평가이다. 그런가 하면 추공(Chugong) 원작의 판타지 소설을 웹툰으로 각색한 현군(h-goon), 장성락(DUBU, REDICE STUDIO) 작가의 (2018~)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괴수들과 맞서 싸우는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다루는데, 캐릭터가 과제를 해결해 갈수록 레벨이 올라가는 롤 플레잉 게임처럼 게임 유저들에게 매우 익숙한 포맷의 전개 방식을 접목해 독자들을 매료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현재 영미권의 웹툰 연재 플랫폼 웹노벨(Webnovel)과 태피툰(Tappytoon)이 서비스하고 있으며 일본, 중국, 베트남, 프랑스에서도 연재되고 있다. 각국에서 모두 최상위권의 조회수를 유지하고 있고, 일본 및 브라질과 독일에서는 만화책으로 출간되었다. 은 2016년 카카오페이지에 발표된 추공(Chugong)의 인기 소설이 원작이다. 현군(h-goon)이 각색하고 레드아이스 스튜디오(REDICE STUDIO)의 두부(DUBU)가 작화를 담당한 웹툰이 2018년 3월부터 현재까지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되고 있다. 이 웹툰은 일본, 브라질, 독일에서 만화책으로도 출간되었으며 그중 브라질과 독일에서는 아마존 만화 부문 랭킹 1위를 기록했다. ⓒ DUBU(REDICE STUDIO), Chugong, h-goon, 디앤씨웹툰비즈(D&C WEBTOON Biz) #작품성 웹툰은 연재 주기가 일주일로 매우 짧은 데 비해 대체로 스토리와 작화의 완성도가 높다. 이는 작가들뿐 아니라 플랫폼들이 함께 작품의 완결성을 높이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작가 혼자서 대략 60~90컷 정도의 한 회 에피소드를 기간 내에 완성하기는 무척 벅찬 일이다. 그래서 채색을 돕는 보조자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스토리와 작화를 분업하기도 한다. 웹툰 플랫폼에서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작가와 여러 번 회의를 거치고, 이런 과정을 통과한 작품만이 연재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대개 한 편을 기획하는 시간은 짧게는 6개월이고, 1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 근래에는 제작의 부담을 줄이는 한편 완성도는 더욱 높이기 위해 전문 제작 스튜디오를 활용하는 추세다. 이곳에서는 기획, 스토리 구성, 콘티, 데생, 배경 이미지, 채색 등으로 분업하여 웹툰을 만든다. 대학을 비롯해 문화 콘텐츠를 진흥하는 기관에서 실행하는 다양한 교육도 웹툰의 완성도를 담보하는 데 한몫한다. 디지털 툴과 스토리 창작, 드로잉 같은 창작 기술뿐 아니라 비평 교육을 통해 웹툰의 질적 수준이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겠다. 현재 해외 젊은 층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들은 대부분 동세대가 겪고 있는 공통된 경험을 다루고 있다.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며 간절한 소망을 하나씩 이루어 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은 대리 만족을 느끼게 된다. #현지화 글로벌 시장 개척을 위한 국내 기업들의 본격적 시도는 2013년부터 시작됐다. 웹툰 플랫폼들이 자사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계정을 이용하여 해외 시장에 우수한 작품들을 선보였고, 해외 플랫폼에 공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어 문제가 큰 장애물이었다. 이에 따라 현지 번역가들을 발굴하여 작품의 문맥을 이해시키려 노력하는 한편 현지 작가들도 등용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일례로 네이버 웹툰은 미국에서 아마추어 만화가 등용 시스템 ‘웹툰 캔버스 어워즈(WEBTOON CANVAS Awards)’를 도입했다. 이는 네이버가 2006년 도입한 ‘도전 만화’ 시스템을 북미에도 적용한 것으로, 웹툰 작가를 희망하는 창작자들이 누구나 작품을 올릴 수 있게 한 뒤 독자들에게 인정받은 작품을 선별해 정식으로 연재 기회를 주는 제도이다. 이 시스템을 통해 연재된 대표적 작품으로는 레이첼 스미스(Rachel Smythe)의 를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2019년, 만화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아이스너 어워드(Eisner Award) 후보에 올랐고, 한국어로 번역되어 2020년 8월부터 네이버 국내 플랫폼에 연재되고 있다. 야옹이(Yaongyi) 작가의 데뷔작 은 못생긴 외모 때문에 괴롭힘을 당했던 주인공이 화장을 통해 최고의 미인으로 변신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을 그리고 있다. 2018년 4월부터 현재까지 네이버 웹툰에 연재되고 있으며, 해외 여러 나라에도 서비스되면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 Yaongyi / 네이버 웹툰(NAVER WEBTOON) 제공 레이첼 스미스(Rachel Smythe)의 는 그리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작품으로 네이버 웹툰이 아마추어 만화가 등용을 위해 미국에서 운영 중인 WEBTOON CANVAS Awards를 통해 발굴되었다. 2018년 3월 첫 번째 에피소드가 네이버 웹툰의 해외 서비스 ‘웹툰(WEBTOON)’에 업로드된 이후 지금까지 연재되고 있다. ⓒ Rachel Smythe / 네이버 웹툰 제공 #보편성 그동안 해외 독자들의 호응을 받기 위해서는 각국의 문화와 트렌드에 적합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하지만 윤태호(Yoon Tae-ho 尹胎鎬)의 (2012~2013)은 그런 기존의 관념을 뒤집었다. 바둑이 인생의 전부였지만 프로 입단에 실패한 고졸 출신의 주인공이 계약직으로 들어간 대기업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2017년 제20회 일본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만화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는 점이다. 선정 이유는 “한국의 학력 사회와 경제 성장의 왜곡된 길에서 방황하는 주인공에게 공감이 간다. 장기 불황을 겪은 일본의 청년 세대와 유사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국경을 넘어 청년 세대의 공통된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현재 해외 젊은 층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들은 대부분 동세대가 겪고 있는 공통된 경험을 다루고 있다.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며 간절한 소망을 하나씩 이루어 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은 대리 만족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웹툰이 지닌 가장 큰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처럼 단순히 젊은 세대들의 관심사를 반영하는 것뿐만 아니라 처럼 꿈을 실현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고난을 다룸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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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2020 WINTER 282

현대적 변용과 가능성 창작 주체와 향유 대상이 모두 대중이었던 민화는 당대 사람들의 욕망과 염원이 담긴 ‘대중의 미술’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민화는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관심사를 반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21세기의 민화가 이 시대의 이야기와 소망을 담아내며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민화의 향유층은 제한적이었다. 1970~1980년대에는 일본 화상을 비롯한 외국인 바이어나 국내 주요 호텔 등 특정 집단에서 , , 같은 전통 민화를 구매했다. 반면에 현재는 주부들이 취미로 민화를 배우는가 하면 패션•뷰티 브랜드가 민화 작가들과 협업하여 제품을 출시하는 등 폭넓게 향유되고 있다. 민화의 대중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인데, 이런 현상의 시작점에는 과거 소규모 공방을 운영하며 민화를 생산하던 공방 출신 작가들이 있다. 1990년대 들어 이들 중 상당수가 대학 부설 평생교육원이나 백화점 문화센터 등으로 자리를 옮겨 민화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특히 초본을 활용한 모사 교육 방식은 그림을 그려 보지 않았던 사람들도 쉽게 입문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민화 화단이 형성되던 초기에는 모사 작업으로 그려 낸 전통 민화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민화 창작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작가들의 역량 또한 크게 성장함에 따라 민화를 현대적으로 변용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무엇보다 기존의 전통 민화가 지닌 형식만으로는 현대적인 감성과 가치관을 담아내기 어려웠기에 기존 양식을 해체하여 새로운 스타일로 재구성하는 작가들이 늘고 있다. 현재의 이야기 전통 민화에도 능숙하지만 창작에도 훌륭한 기량을 발휘하고 있는 금광복(Keum Goang-bok 琴光福)은 벽사의 의미를 지닌 호랑이를 통해 한국 문화를 수호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한다. 그는 “민화가 선조들의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생겨났듯 현대의 작품에는 현재의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 민화를 꾸준히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길상적 메시지를 넘어 역사적 의식을 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가 하면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안성민(Ahn Seong-min; aka Seongmin Ahn)은 뉴욕의 대표적 주거 양식인 브라운스톤의 대문과 창문을 그림에 담아 초현실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일명 ‘국수 산수’로 불리는 그녀의 산수화 작품은 정신적 감흥을 일으키는 자연에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인 국수를 대입해 표현하고 있다. 제주에 사는 김생아(Kim Saeng-a 金生亞) 작가 역시 작품 속에 자신이 사는 지역의 풍경을 반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의 그림 속에는 제주의 설화들이 녹아 있으며, 더 나아가 제주 해변에서 비치코밍(beachcombing)으로 모은 유리 조각들을 도자기 가마에 구워 오브제로 활용하고 있다. “아름다운 제주가 환경 오염으로 몸살을 앓는 요즘, 바닷가에서 유리 조각을 줍는 작은 실천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자신의 작품에 담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시도들 민화 도상을 활용해 벽지처럼 특정 패턴을 반복하거나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등의 실험적 시도는 보는 사람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해골 모양을 형상화한 이지은(Lee Jee-eun 李智恩)의 은 게슈탈트 쉬프트(gestalt shift) 기법을 활용했는데, 소재에 대한 작가의 깊은 통찰력과 뛰어난 감각을 보여준다. 그녀는 “해골은 보통 죽음과 연관돼 부정적으로 떠올리지만, 아름다운 삶을 산다면 해골조차 아름답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렸다”며 자신의 작품을 설명했다. 화폭의 일부분을 추출하여 크게 확대하는 방식도 현대 민화의 특징 중 하나로 꼽힌다. 공방 출신의 작가 윤인수(Yoon In-soo 尹仁壽)는 에서 꽃병이 있는 부분만을 클로즈업하듯 단독 조명한다. 수많은 기물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던 꽃병이 화면 안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순간 기존의 책가도에선 보이지 않던 꽃병 본연의 색감과 조형미가 빛을 발하며 색다른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공방에서 치열한 습작 시기를 거친 그는 늘 제자들에게 “옛것을 올바로 익힐 때 성공적인 창작이 가능하다”고 가르친다. 한편 요즘 민화 작가들 중엔 스스로 민화 속 주인공이 되는 이들도 있다. 민화 속 캐릭터가 일종의 페르소나가 되는 셈이다. 그런가 하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처럼 잘 알려진 캐릭터는 보는 이의 동심을 일깨워 작품을 한층 더 쉽고 편안히 받아들이게 한다. 곽수연(Kwak Su-yeon 郭洙淵)은 사람의 모습을 빗댄 반려동물 시리즈로 유명한데, 책가도나 십장생도에 개와 고양이가 위트 있게 등장해 웃음을 준다. 기존의 전통 민화가 지닌 형식만으로는 현대적인 감성과 가치관을 담아내기 어려웠기에 기존 양식을 해체하여 새로운 스타일로 재구성하는 작가들이 늘고 있다. 전통을 넘어 최근의 민화 화단에서는 많은 작가들이 ‘한지에 전통 안료’라는 공식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재료를 활용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재료 선택의 폭이 넓어진 데다가 취사선택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세계화 시대에 동서양 문화권의 재료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입을 모은다.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 크레파스, 색연필을 사용하는가 하면 직물이나 각종 문양의 벽지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콜라주하여 작품에 현대적인 감성을 불어넣은 작품을 곧잘 볼 수 있다. 아예 평면 작업에서 탈피해 설치,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들도 있다. 이돈아(Lee Don-ah 李暾雅) 작가는 민화의 전통 도상을 해체하여 육면체, 사각형, 액자 등 기하학적인 도형으로 시각화한 회화 작품을 그려오다가 2015년부터 영상, 렌티큘러(lenticular), 미디어파사드(media facade) 등 미디어 기술을 회화에 접목하고 있다. 서양화나 동양화 전공자를 포함해 현대 미술 작가들도 민화적 요소를 즐겨 활용하는 것만 봐도 민화 대중화의 파도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글로컬리즘 민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화단을 넘어 뷰티, 패션, 리빙 산업으로 번지는 추세다. 애초 민화는 집 안이나 생활용품을 장식하는 등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돼 장식성과 실용성이 뛰어난 데다 한국 고유의 미감이 녹아 있어 차별화된 브랜딩 작업에 효과적이다. 민화에 대한 관심을 가장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곳은 뷰티 브랜드 설화수이다. 이 브랜드는 유명 작가들과 컬래버레이션한 화장품 패키지를 오랫동안 선보여 왔으며, 2019년에는 전통 문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기획전을 개최한 바 있다. 이 전시는 오늘의 작가들이 나 에 등장하는 전통 문양을 인테리어, 가구, 패션 등 다양한 분야의 제품에 접목시켜 눈길을 끌었다. 오트쿠튀르(haute couture) 브랜드 해일(HEILL)은 2020년 파리에서 개최된 봄•여름 시즌 패션쇼에서 민화의 전통 부채 그림을 모티프로 작업한 컬렉션을 발표했다. 패션쇼를 앞두고 양해일 디자이너는 “한국에 민화라는 아름다운 자원이 있다는 사실이 감동스럽다”고 밝힌 바 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는 그가 디자인한 옷을 입고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브랜드들이 기민하게 민화를 활용하는 데서 알 수 있듯 민화는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전 세계에 통용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민화가 지니고 있는 길상과 염원의 메시지는 국적과 인종의 경계 없이 누구에게나 통용된다. 바로 이 점이 근래에 민화가 부상하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아닐까 싶다. 끊임없는 도전과 실험을 거쳐 민화가 언젠가 새로운 한류를 일으키는 ‘K-art’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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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2020 WINTER 209

다양한 소재가 상징하는 삶의 이야기 주로 조선 시대 후기에 널리 그려진 민화는 민중에 의해 창작되고 향유되었다.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못한 일반 서민들이 그렸기에 직업 화가에 비해 표현법이 미숙하지만, 오히려 민중의 집단적 가치관과 상상력, 세속적 소망이 자유분방하게 펼쳐져 흥미로운 세계를 이룬다. 또한 각 소재마다 의미하는 주제가 다르다는 점도 민화의 큰 특징이다. 산수화 동아시아에는 유가, 불가, 노장사상 등을 근간으로 자연을 인간과 하나로 느끼며 살아온 오랜 전통이 있다. 산수화는 이 문화권에서 공유하고 있는 자연에 대한 깊은 친화감과 일체감이 만들어 낸 회화 장르이다. 그렇기에 가장 널리 그려지고 중요하게 여겨졌다. 민화의 산수화는 정통 회화를 모방하면서 비롯됐다. 주로 정선(鄭敾 1676~1759)의 진경산수화법을 모방한 그림들이 다수를 이룬다. 진경산수화는 민화가 주로 그려진 조선 시대 후기와 시대적 배경을 같이하는데, 이런 이유 외에도 진경산수화법이 사물을 대담한 필법으로 단순화시켜 표현했기 때문에 정통 회화의 섬세한 묘사력을 그대로 따라 그릴 수 없었던 아마추어 화가들이 비교적 모방하기가 수월했던 까닭도 있다. 화조도 정통 회화의 화조도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존재하는 그대로 충실히 표현한다. 반면에 민화의 화조도는 여기에 더해 남녀의 화합을 기원하는 의미를 보탰고, 이를 통해 화려한 장식성과 주술성을 동시에 지니게 되었다. 주로 다뤘던 소재는 모란, 석류, 연꽃, 매화, 국화, 수선화, 목련, 난초 등의 꽃과 꿩, 봉황, 학, 기러기, 오리, 닭, 해오라기, 원앙, 제비, 꾀꼬리, 참새 등의 새이다. 가장 널리 그려진 모란은 부귀와 행복을 상징한다. 석류는 잘 익은 열매 안에 무수히 들어박힌 씨앗들처럼 자식을 많이 낳으라는 기원을 담았으며, 꿩이나 원앙•오리 등은 항상 암수를 함께 그려 부부간 사랑과 화합을 바랐다. 십장생도 건강과 장수를 바라는 인간의 보편적 소망을 표현한 십장생도에는 거북•학•소나무•불로초•사슴•산•바위•물•구름•해•복숭아•대나무 등이 그려졌다. 이는 정령 숭배에 바탕을 둔 자연 존중 사상인 샤머니즘이 지배했던 고대의 원시 종교로부터 비롯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사회에서 샤머니즘은 국가 종교로서의 위상을 지니고 지배 계층에서부터 백성들에게까지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 이렇듯 오랜 역사를 지닌 샤머니즘적 사고는 사람들의 무의식 깊은 곳에 각인되어 훗날 불교가 들어온 뒤에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것이 십장생도 탄생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여러 장르 중에서 특히 색채가 강렬하고 화려해 한국 고유의 색채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신선도 신선 사상은 한반도 최초의 국가였던 고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오늘날 한국인들의 국조인 단군도 신선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한국인은 신선이 인간과 전혀 다른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속세를 떠나 자신과 세계를 응시하는 깊은 수양을 통해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으면 삶과 죽음의 세계를 초월한 신선이 된다고 믿었다. 자연과 하나가 되어 불로장생하며, 고통스러운 세상사에 휩쓸리지 않고 지혜롭고 욕심없이 살아가고자 했던 믿음이 그림으로 나타난 것이 신선도이다. 문자도 문자도는 유교적 윤리 덕목들을 글자로 쓰고 획의 안이나 밖에 그것에 합당한 옛 고사를 그림으로 그린 독특한 양식이다. 주로 쓰인 글자는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 여덟 글자로 각 글자마다 그 의미를 상징하는 동물, 꽃, 물건 등이 그려진다. 예를 들어 제(悌) 자 그림에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 돕고 사는 형제를 상징하는 할미새, 화합을 상징하는 상체꽃(산앵두)이 등장한다. 문자도는 추상적 표현과 사실적 표현이 조화를 이룬 독특한 구성으로 주목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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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2020 WINTER 111

나의 민화 사랑 민화의 수집과 연구, 전시에 평생을 바치고 있는 가회민화박물관 윤열수 관장. 그는 1973년 에밀레박물관 학예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만난 민화의 세계로 점점 빠져들었다. 그가 수많은 호랑이와 용과 까치, 모란과 연꽃들과 더불어 울고 웃으며 살아온 자신의 지난날들을 돌아본다. 내가 태어나 자란 전라북도 남원은 백제와 신라의 요충지였다. 그런 까닭에 삼국시대 유물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밭을 갈다 보면 토기 조각은 물론 거의 원형에 가까운 토기도 나왔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 밭에 굴러다니던 토기 조각을 주어서 집으로 가지고 들어오곤 했다. 그런 습관이 들어서인지 언제나 무엇인가 모으는 것을 좋아했다. 본격적인 수집벽은 초등학교 때 시작한 우표 수집에서 출발했다. 여러 해 동안 열심히 모은 덕에 꽤 많은 우표를 모았는데, 불행하게도 어느 날 우표 수집책을 도둑맞았다. 실망이 컸던 나는 누가 훔쳐가지 않을 수집품을 생각하다가 부적을 떠올렸다. 집집마다 붙어 있는 부적이야말로 제격이라고 생각해 열정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좋은 기회가 찾아온 것은 군대에서였다. 소대장인 나의 취미가 부적 수집이라는 것을 알게 된 사병들이 휴가 갔다 돌아오면서 이런저런 부적을 가져다주었고, 덕분에 여러 지역의 것을 다양하게 모을 수 있었다. 내가 민화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73년 4월 전역과 동시에 조자용 선생이 설립한 에밀레박물관의 학예사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였다. 에밀레박물관 관장 조자용 선생은 미국에서 공부한 건축가임에도 한국 전통 문화와 예술에 조예가 깊었다. 특히 민화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수집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직함은 학예사였으나 민화에 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었던 나는 선생과 함께 거의 매일 민화 한 점을 앞에 놓고 자세히 뜯어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수백 점을 보고 나니, 조금씩 그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빠져들게 되었다. 1975년 11월, 조자용 선생은 박물관 소장 민화 32점을 가지고 미국 순회전을 시작하였다. 하와이를 시작으로 7년 동안 이어진 순회전은 한국 민화가 처음 해외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1981년 오클랜드 시립미술관 전시 때부터 나는 순회전의 실무를 담당하였다. 이때 미국 현지인들이 보여준 뜨거운 반응을 보면서 우리 민화의 새로운 비전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1983년 에밀레박물관이 서울 등촌동에서 충북 보은의 속리산으로 옮겨가면서 나도 박물관을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한번 빠져든 민화에 대한 사랑은 멈출 줄 몰랐다. 이후 다른 박물관에 근무하는 동안에도 체계적으로 공부를 계속하는 한편 많이 보는 것이 최고의 공부라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모르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러는 사이 수집품이 하나씩 늘어갔다. 가회민화박물관 30여 년간 박물관 학예사로 근무하며 경험과 지식이 쌓이면서 언젠가는 직접 박물관을 운영해 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가슴속 깊이 품고 있었던 그 꿈은 우연히 뜻하지 않게 이루어졌다. 서울시 도시개발공사에서 북촌에 박물관을 운영할 사람을 공개 모집한다는 공고문을 마감 하루 전에 보게 된 것이다. 나와 아내는 하루 만에 구비 서류를 갖추느라 진땀을 뺐다. 그리고 마침내 나의 뜨거운 열정과 오랜 경험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붙잡았다. 민화와 한옥, 그것은 완벽에 가까운 조합 그 자체였다. 민화는 한국인의 생활 정서에 가장 어울리는 그림이다. 전통의 체취가 비교적 잘 보존돼 있는 서울 북촌한옥마을에서 민화 박물관을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은 내게는 더없는 행운이었다. 2002년, 드디어 작은 한옥에 민화 전문 박물관을 열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박물관 이름에서부터 전시 방법 등 한옥에 어울리는 박물관을 어떻게 운영할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선 칸칸이 나눠져 있는 한옥 내부를 하나로 연결하여 전시 공간을 마련하고, 바닥에 난방 시설을 하여 관람객이 신발을 벗고 들어올 수 있도록 하였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동안 월급쟁이로 적잖은 돈을 민화 수집에 써왔기에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든든한 후원자인 아내의 적극적 지원과 격려가 없었다면 가회민화박물관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아내는 한국사 전공자로 무엇보다 북촌에 세운 민화 박물관이 갖는 특별한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첫 전시 주제는 ‘벽사(辟邪)’로 정했다. 내가 오랫동안 수집해왔던 부적과 민화 중에서 벽사도만 추렸다. 부적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그중 당사주(唐四柱)는 글을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민화의 필치와 매우 흡사한 그림으로 개인의 운명의 흐름을 그려놓은 것이다. 사람들의 아픈 곳을 보듬어 주는 역할을 했던 당사주와 서민들의 다양한 소망을 대변해 주었던 민화, 비록 이 두 가지의 형태와 쓰임새는 달랐지만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그림들이라는 점에서 당사주 또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전에도 벽사와 관련된 민화 전시는 간혹 있었지만, 벽사용 민화와 부적을 주제로 한 특별전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전시를 위해 그동안 모아왔던 부적을 패널과 벽에 빽빽이 붙여 놓으니 공간이 모자랐다. 그래서 실제로 가정에서 하듯 부적을 대들보와 서까래에까지 붙여 놓았다. 그러고 나니 한옥 바닥에 누워야 그림을 구경할 수 있었다. 신발을 신고 들어가 서서 관람하는 일반적인 전시가 아니라 신발을 벗고 바닥에 누워 전시 공간을 온몸으로 느끼는 한옥 체험형 전시가 된 것이다. 이때 가회민화박물관의 향후 전시 방향까지 자연스레 잡혔다. 특히 벽사용 민화 중 가장 민화답고 한국 문화의 원초적 뿌리의 상징이기도 한 호랑이를 주제로 한 그림을 통해 우리 민족이 호랑이를 얼마나 영험하고 친근하게 여겼는지를 알리고자 했다. 민화는 한국인의 생활 정서에 가장 어울리는 그림이다. 전통의 체취가 비교적 잘 보존돼 있는 서울 북촌한옥마을에서 민화 박물관을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은 내게는 더없는 행운이었다. 해외 전시 첫 전시에는 우리 민속학자들은 물론 한국의 민간신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외국인들도 다수 방문해 주었다. 그후 매년 기획 전시를 통해 수집한 민화를 대중들에게 알려오고 있다. 자체 소장품만으로 기획한 전시들이라서 규모가 제한적이기는 해도, 특정 주제로 분류된 민화를 선보일 수 있어서 보람이 있다. 전시는 나의 수집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후 (2003), (2004), (2005), (2006), (2007) 등 20여 회가 넘는 전시를 진행해 왔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 전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전시를 기획할 때마다 각 화제에 대해 연구가 깊어지고 그 성과는 도록으로 남았다. 좁고 가난한 박물관에서 출발한 소박했던 전시는 바다 건너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2006년 3월, 몽골 울란바토르 자나바자르 박물관에서 한국 민화의 익살과 재치를 담은 개최를 시작으로 일본 니시노미야 오오타니 기념미술관에서 (2010),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주최 (2010), 오사카 사야마이케 박물관 (2012) 전시에 특히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런가 하면 2013년 1월부터 2015년 7월까지 총 8회에 걸쳐 호주 순회 전시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 후 2018년에는 모스크바 국립동양미술관에서 러시아 최초로 민화 단독 전시를 개최하였으며, 뒤이어 벨라루스 민스크에 위치한 국립 벨라루스 미술관으로 전시가 이어졌다. 호랑이 특별전 어느덧 민화를 만난 지 47년이 되었다. 요즘 나의 목표는 호랑이를 그린 민화 100점을 한데 모아 ‘호랑이 특별전’을 여는 것이다. 전시는 자연스레 논리적, 체계적 연구를 수반할 것이며 도록으로 남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시 한번 숨을 고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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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2020 WINTER 57

역신을 쫓고 복을 부른다 이름 없는 화가들이 보는 이의 행복을 기원하며 그렸던 민화는 고된 삶 속에서도 건강하고 긍정적이었던 민중의 심성이 반영된 그림이었다. 본래의 주술적 의미는 쇠퇴했을지 모르나, 민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준다. 먼 옛날에도 감염병은 큰 재해였다. 바이러스가 전염병의 원인이라는 과학적 상식이 없었던 시대에는 귀신이 병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정월 초하루가 되면 집집마다 대문에 설화 속 용왕의 아들인 처용(處容) 그림을 붙여서 역신을 쫒아내려는 풍속이 생겼다. 이 풍속은 역사상 최초로 한반도에 단일 국가를 이루었던 통일신라시대(676-935)에서도 가장 태평성대를 누렸다는 헌강왕(재위 875∼886)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헌강왕이 동해안 울산의 개운포에 놀러갔는데, 대낮인데도 갑자기 하늘에 구름과 안개가 드리워지면서 어두워졌다. 상황을 심상치 않게 여긴 왕이 일관(日官)에게 물으니, “이는 용왕의 조화니, 용왕을 달래야 한다”고 대답했다. 이에 왕이 용왕을 위해 절을 짓겠다고 약속하자, 바로 하늘의 조화가 사라졌다. 용왕은 보답으로 자신의 아들인 처용을 보냈고, 왕은 처용을 혼인시킨 후 벼슬을 내렸다. 그런데 처용 부인의 미모가 문제였다. 역신마저 그녀를 흠모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것이다. 어느 달 밝은 밤에 처용이 밤늦도록 놀다 귀가했을 때 사건이 벌어졌다. 역신과 자신의 부인이 잠자리에 든 장면을 목격한 처용은 “본디 내 것이지만 빼앗은 것을 어찌하리오”라며 용서했다. 처용의 관용에 감동한 역신은 이후 대문 앞에 그림만 붙여놓아도 얼씬도 하지 않았다. 최초의 민화 이 설화는 두 가지 점에서 우리에게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한다. 첫째,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널리 퍼졌다는 점에서 처용문배는 기록상 최초로 확인되는 민화라는 점이다. 민화의 시작을 선사 시대 바위 그림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지만, 기록상으로는 처용문배가 처음이다. 둘째, 처용이 역신을 쫓는 방식이다. 무섭거나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공포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너그러운 아량으로 귀신을 감동시켜 쫓아냈다. 신라인의 역설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조선 시대(1392~1910)에는 처용문배와 더불어 용호문배도(龍虎門排圖)의 풍속이 유행했다. 정월 초하루에 대문 한쪽에는 용을, 다른 한쪽에는 호랑이를 그려 붙이는 이 세시풍속은 벽사 기능만 하던 처용문배에 길상의 기능을 추가한 것이다. 인간에게 해로운 귀신은 호랑이가 쫒아내고, 인간에게 이로운 귀신은 용이 들여보낸다. 즉 호랑이 그림은 벽사 기능을 하고, 용 그림은 길상 기능을 한다. 이 둘은 같은 목적을 위한 다른 표현이다. 둘 다 가정의 평안과 행복을 유지하기 위한 주술적 수단이다. 상징적 이미지 상업의 발달과 함께 그림의 수요도 사회 여러 계층으로 확산되었던 19세기에 민화는 다양하게 발전했다. 모티프가 대폭 늘어나고 그 표현도 다채로워졌다. 무엇보다도 이미지를 통해 행복을 기원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일본 동지사대학의 기시 후미가츠(岸文和) 교수가 한국의 민화를 ‘행복화’로 부르자고 제안한 것도 그런 특징에 주목한 것이다. 하지만 조선 시대 민화만 행복을 염원하지는 않았다. 중국을 비롯한 일본, 베트남 등 한자 문화권인 동아시아 여러 국가들의 그림들 모두 행복을 추구했다. 복을 부르고, 출세를 기원하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미지 속에 담겨 있다. 이를 테면 모란• 연꽃•용•봉황•박쥐 등은 행복을 상징하고, 수박•석류•포도•연밥 등은 다남자(多男子)를 의미한다. 맨드라미•공작 꼬리•책•잉어 등에는 출세의 염원이 투영되어 있으며, 대나무•학•해•달•거북•사슴•불로초 등은 장수를 나타낸다. 이런 특색은 행복은 물론이거니와 사랑, 공포, 죽음 등 모든 정서를 포괄하는 서양화와 차별된다. 모란꽃이 부귀한 사람을 상징하게 된 것은 북송 시대 성리학자 주돈이(周敦頤)가 쓴 「애연설(愛蓮說)」에서 비롯된다. 그는 이 글에서 모란을 부귀한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한편 국화는 은자(隱者), 연꽃은 군자(君子)에 비유했다. 그런데 조선 시대에는 모란의 이런 상징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조선의 선비들이 숭앙했던 공자가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베더라도 낙은 또한 그 가운데 있으니, 의롭지 않은 부귀함은 나에게 있어서 뜬구름과 같으니라”(『논어』 ‘술이’ 편 With coarse rice to eat, with water to drink, and my bended arm for a pillow; I have still joy in the midst of these things. Riches and honors acquired by unrighteousness are to me as a floating cloud.)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선비들은 세속적인 부귀영화를 운운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행복을 염원하는 한국 민화는 밝은 색채와 해학이 넘치는 명랑한 정서로 표현됐다. 그림에 담긴 뜻뿐만 아니라 밝고 가벼운 이미지 자체가 보는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유교적 덕목 19세기에는 상황이 뒤바뀌었다. 모란도가 가장 인기를 끄는 꽃그림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집 안에 모란도 병풍을 세워 가정을 행복의 공간으로 꾸몄고, 잔치 때에도 모란도 병풍을 둘러 그 행사를 빛냈다. 이는 임진왜란부터 병자호란까지 네 차례 전쟁을 겪으면서 선비들의 인식이 현실적으로 바뀐 탓이라고 보인다. 근엄한 유교의 덕목을 중시하고 철학적인 논쟁에 집착하던 이들이 현실적인 욕망에 눈뜨게 되었다. 뒤늦게 ‘행복의 잔치'에 참여한 조선 사회는 다른 동아시아 나라들보다 더욱 강렬하게 행복을 염원하게 됐다. 하지만 민화가 유교 이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유교 윤리의 테두리 속에서 행복을 염원하는 양상을 보였다. 민화를 통해서 추구했던 길상적 욕망조차 유교의 형식에 기대어 풀어가는 이중성을 띠었다. 대표적인 예가 문자도다. 동아시아 다른 국가들에서는 행복, 출세, 장수를 의미하는 문자를 내세운 길상 문자도가 유행했지만, 조선에서만 유독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라는 유교 이념을 계속 중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문자 안에 담은 유교적 이상은 점차 약화되었고, 대신 꽃과 새의 도상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외형은 관습적 이념을 지향하는 듯했으나, 내면에는 행복을 염원하는 이미지들이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기묘한 현상이 벌어진 셈이다. 이에 따라 유교 문자도는 윤리가 욕망을 억압하는 기제가 아니라 행복의 욕망을 푸는 토대 역할을 하는 매우 독특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명랑한 정서 행복을 염원하는 한국 민화는 밝은 색채와 해학이 넘치는 명랑한 정서로 표현됐다. 그림에 담긴 뜻뿐만 아니라 밝고 가벼운 이미지 자체가 보는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19세기 후반 조선 사회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로 접어들었다. 러시아,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구 열강들이 한반도를 넘보면서 조선은 점차 망국의 길을 걸었고, 급기야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 시기의 민화에서도 어두운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명랑하고 쾌활하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자 했던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암울한 역사 속의 명랑한 그림’이었다. 놀랍게도 요즘 조선 시대 민화가 복고풍을 타고 다시 유행하고 있다. 주부들의 취미생활로 시작된 민화 그리기는 이제 어엿한 현대 미술의 한 장르로 발돋움하고 있다. 민화 작가들이 급증하고 현대 민화가 다양하게 발전하면서 또 다른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런 붐을 일으킨 계기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민화가 우리에게 행복을 준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물론 주술적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밝고 명랑한 이미지는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건강한 에너지를 전해준다. 늘 우리에게 긍정의 힘을 제공하는 것 – 이것이 민화가 지닌 가장 아름다운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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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2020 AUTUMN 77

한국형 배달산업, 그 빛과 그림자 COVID-19의 영향으로 비대면 방식(contactless methods)이 생활 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배달 산업이 주목을 끌고 있다. 단순한 음식 주문을 위한 모바일 앱의 기능을 넘어 다양한 품목으로 서비스 범위를 넓히고 배달 대행까지 제공하는 플랫폼들이 가파른 성장을 보이는 한편, 독점 기업의 등장과 플랫폼 노동자의 처우 개선이 숙제로 남아 있다. 2018년 국내 온라인쇼핑 거래액이 처음으로 100조 원을 돌파하고 114조 원을 기록했다. 그해 음식 배달 거래액은 총액의 4.6%에 불과했다. 그러나 통계청의 최근 온라인쇼핑 동향 조사에 의하면 올해 상반기 온라인 음식 서비스 거래액은 매월 1조 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4월 한 달만 보더라도 전년 대비 83.7%가 증가했고 매출 총액 1위를 차지한 음·식료품(12.7%)과 2위 가전·전자·통신기기(11.5%)에 이어 3위(10.5%)를 기록했다. 물론 이 같은 성장 추세에는 COVID-19의 영향이 크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외식 소비가 급감한 대신 배달이 그만큼 늘었기 때문이다. 모바일 데이터 리서치 업체 오픈서베이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COVID-19 확산으로 외출이 꺼려져서 음식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 40~50대 소비자가 약 70%에 근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 배달을 달가워하지 않던 이들 연령층의 소비자 유입은 큰 의미를 지닌다. 업계에서는 모바일 배달 앱의 편의성을 경험한 소비자들이 COVID-19가 종식된 이후에도 음식 주문에 머물지 않고 다른 상품들의 온라인 쇼핑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한다. COVID-19 확산에 따라 비대면 소비가 급증하는 가운데 서울 시내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배송 지역별로 주문된 물품의 분류 작업이 긴박하게 진행되고 있다. 택배 인력의 과로와 노동 환경이 새로운 사회 문제로 부각되었다. ⓒ 연합뉴스 서비스 품목의 확장 모바일 앱에 기반한 국내의 배달 플랫폼들은 현재의 위기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음식 배달의 성장을 이끌어 왔다. 2007년 애플사의 ‘아이폰’이 등장한 이후 배달 플랫폼들은 모바일에서 기회를 잡으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전단지와 홍보 책자를 보고 전화로 주문했던 기존 방식이 모바일 앱을 통한 주문 구조로 빠르게 바뀐 것이다. 배달 플랫폼들은 음식점 주인들에게 우선적으로 가게를 노출해 주는 광고를 판매하거나 주문 1건당 중개 수수료를 받는 방식으로 수익 모델을 만들었다. 2019년 3월 한국외식업중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음식점 배달 주문의 62.2%가 앱을 통해 들어왔고 전화 주문은 37.5%에 불과했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도 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오픈서베이가 올 상반기 전국 20~59세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 약 60%가 배달 전문 웹사이트와 스마트폰 앱을 통해서 음식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달 플랫폼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음식점과 소비자 양쪽에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면서 경쟁하고 있다. 특히 주문과 동시에 음식 값과 배달료 결제까지 한번에 끝내는 간편 결제 시스템이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주문한 상품을 배달원으로부터 수령할 때 현금이나 카드로 결제하던 종전의 COD(cash on delivery 또는 collect on delivery) 방식이 COVID-19 이후 간편 결제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는 추세이다. 더 나아가 배달원을 아예 접촉하지 않도록 주문 시 ‘문 앞 배달’을 요청하는 옵션도 일반화되고 있다. 또 하나의 두드러진 경향은 서비스 카테고리의 확장이다. 주로 조리 음식 배달을 중개하던 배달 업체들이 최근에는 과자나 라면 같은 가공식품부터 생수, 화장지, 세제 등의 생활필수품, 그리고 과일·채소·정육처럼 냉장·냉동 보관이 필요한 신선 식품 및 가정 간편식까지 전방위적으로 품목을 넓혀가고 있다. 예컨대 국내 1위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2019년 론칭한 B마트는 대형마트에서 구매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제품을 갖추고 있다. 2위 요기요와 3위 배달통을 운영하는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 역시 지역 편의점 및 대형마트와 제휴하여 배달 품목을 대폭 확장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음식점을 대상으로 식자재, 포장 용기 등 부자재 공급까지 사업을 확장하는 배달 플랫폼들도 늘고 있으며, 매장 POS(point of sale) 시스템을 직접 개발하여 음식점에 공급하는 사업자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일반인 라이더들을 활용해 배달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릉프렌즈의 배달용 자전거들이 지하철역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배달 대행 업체들은 등록된 전문 라이더들만으로는 폭주하는 주문을 소화해 내기 어렵게 되자 일반인 라이더들도 모집하고 있다. ⓒ 엄지용 독점과 경쟁 그동안 국내 음식 배달 플랫폼 시장은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첫 번째 진영은 2010년 6월 배달의민족을 출시한 국내 기업 우아한형제들이다. 다른 하나는 요기요의 창업에 이어 배달통을 인수 운영하고 있는 독일 법인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다. 요기요는 법인 설립 이듬해인 2012년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2014년에는 2010년 4월 국내 최초로 등장한 배달 앱 배달통을 인수해 시장 점유율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2020년을 기점으로 이 같은 양강 체제에 큰 변화가 나타날 전망이다. 2019년 12월 딜리버리히어로가 우아한형제들 마저 인수할 계획을 발표하며 국내 배달업계에 엄청난 지각 변동을 예고한 것이다. 두 기업의 인수 합병이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의 결합 심사를 통과한다면 업계 1, 2, 3위를 모두 차지하고 시장 점유율 99%를 확보하는 공룡 배달 플랫폼이 탄생하게 된다. 이 같은 독점 플랫폼의 탄생을 두고 첨예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가맹점들은 과도한 수수료 및 광고료 부과 등 담합을 우려하고 있으며, 소비자들도 배달료 인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우아한형제들 측이 “인수 합병 이후에도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와 우아한형제들 간 여전히 독립 경영과 경쟁이 계속될 것”이라고 황급히 해명했으나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동시에 독과점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지방자치단체들이 나서서 공공 배달앱을 출시했거나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국내 1위 전자상거래 플랫폼 쿠팡의 쿠팡이츠와 위메프의 위메프오가 음식 배달 경쟁에 합류함으로써 시장 판도의 변화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음식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 요기요, 배달통의 애플리케이션 초기 화면(왼쪽부터).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가 안드로이드 OS를 기준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2020년 6월 기준, 배달의민족이 사용자 수 970만 1,158명으로 1위를 차지했으며 요기요는 492만 6,269명으로 2위를, 배달통은 27만 2,139명으로 4위를 차지했다. 배달통은 2010년 출시 이후 줄곧 3위를 유지해 왔으나 올 상반기 39만 1,244명이 이용한 쿠팡이츠에 밀려났다. 그러나 한편에선 늘어나는 플랫폼 노동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법적으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근로자를 양산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법적 기준으로 이들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속한다. 그렇기에 업무 중 발생하는 사고나 업체와의 갈등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어렵다. 배달 대행 업체 배달 플랫폼의 성장과 함께 국내 배달 산업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키워드가 ‘배달 대행’이다. 1세대 배달 플랫폼들은 음식점과 소비자 사이에서 중개 역할만 할 뿐 물류망을 직접 운영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실제 운송은 음식점들이 각기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주인이 직접 음식을 나르든 아르바이트 직원을 고용하든 말이다. 그런데 배달 주문은 통상 점심시간과 저녁 및 심야 시간대를 제외하고는 주문량이 거의 없다. 그래서 배달원을 고용한 음식점들은 보통 한가한 시간을 활용하여 전단지 배포 등의 홍보 업무를 맡겨 왔다. 이런 상황에 주목해 등장한 것이 배달 대행업이다. 음식점은 대행 업체에 월 10~15만 원 상당의 관리비와 주문 건당 3,000원가량의 배달비를 지불하고 배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처럼 배달 인력을 직접 고용할 경우 발생하는 지출과 손실을 배달의 외주화를 통해서 줄일 수 있다. 2013년경 배달 대행 업체들이 한참 창업할 시기만 하더라도 직접 고용과 업체를 통한 아웃소싱을 혼용하는 음식점들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외주를 통해 배달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월 주문 건수를 기준으로 생각대로(1000만 건), 바로고(980만 건), 메쉬코리아(400만 건) 등 3개 회사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순이익을 남기는 업체는 아직까지 없지만, 모두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우아한형제들과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도 각각 배민라이더스와 요기요플러스를 설립해서 배달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는 바로고에 200억 원을 투자하기도 했는데, 물류 역량을 확충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배민라이더스와 요기요플러스의 운영은 물류 서비스를 포함하기 때문에 중개 수수료가 종전 배달 플랫폼의 6~12%보다 높은 15~30%이다. 이커머스 업체 쿠팡의 쿠팡이츠, 서울 강남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배달 플랫폼 띵동(Ddingdong), 요기요가 인수한 배달 플랫폼 푸드플라이(Foodfly)가 이 모델을 기반으로 성장한 업체들이다. 이제 물류가 포함된 2세대 배달 플랫폼도 일반화되고 있다. 부릉프렌즈 라이더가 서울 강남에 있는 한 편의점에서 배달 주문이 들어온 상품을 수령하여 나서고 있다. 배달 수요가 급증하면서 최근에는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제품들도 주요 배달 품목에 포함되는 추세다. 이 편의점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운영하던 배달 서비스를 올해 4월부터 24시간 배달 체제로 변경했다. ⓒ 뉴스뱅크 플랫폼 노동자 2세대 배달 플랫폼의 등장과 함께 국내에서도 ‘플랫폼 노동’으로 인한 문제들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 시스템은 전업 라이더들뿐만 아니라 일반 기사들까지 배달 업무에 참여시키고 있다. 바로고의 바로고플렉스, 메쉬코리아의 부릉프렌즈, 우아한형제들의 배민커넥트 같은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쿠팡의 쿠팡이츠는 처음부터 일반인 라이더를 확보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미 배달 대행 업체에 등록된 라이더들만으로는 음식 배달 시간이 늦어지는 등 폭주하는 주문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주요 배달 대행 플랫폼들은 주문이 밀집되는 대도시 지역에 한하여 배달 인력 공급이 부족한 시간대에 라이더들을 크라우드소싱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업체들은 일반인 배달 기사들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지급하는 배달료는 전업 배달 기사가 받는 3,000원보다 다소 높은 3,500~4,000원 선에 형성된다. 반응은 확실했다. 우아한형제들에 의하면 배민커넥트에 등록된 라이더의 숫자는 2020년 2월 기준 1만 4,730명에 달했다. 배민라이더스의 배달 인력이 약 2,300명인 것을 감안하면 그 7배에 달하는 인력을 단기간에 확충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선 늘어나는 플랫폼 노동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법적으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근로자를 양산하기 때문이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개개인이 ‘사업자’로 분류된다. 한국의 법적 기준으로 이들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속한다. 그렇기에 업무 중 발생하는 사고나 업체와의 갈등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어렵다. 노동법이 보장하는 4대 보험과 유급 휴가 혜택 또한 이들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더구나 최근 COVID-19 확산으로 배달 수요가 급증하면서 이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 다시 한번 부각되었고, 동시에 모빌리티 플랫폼 드라이버들의 기본 노동권 문제도 함께 사회적 문제로 떠올라 이들의 권리를 위한 제도 개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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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2020 AUTUMN 97

만화가 된 현장 이야기 누군가 인터넷으로 주문한 물건은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거쳐 배달된다. 택배 상품들을 잔뜩 실은 화물차에서 물건을 내리는 하차(下車)도 그 과정 중 일부이다. 현장의 경험을 담아 지난해 만화 『까대기』를 펴낸 필자도 6년 동안 그 일에 몸담았다. 2019년 5월 보리출판사에서 출간된 만화 『까대기』는 저자 이종철이 자신의 택배 아르바이트 경험을 담은 책이다. 2019년 독일 라이프치히도서박람회에서 한국 사회의 현실과 문화를 보여 주는 독특한 소재와 주제로 주목받았다. 첫 경험 나는 지방에서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어릴 적 꿈인 만화가가 되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부모님이 얼마간 생활비를 지원해 줬지만, 서울에서 살아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만화가로 데뷔하기 이전에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필요했다. 하루에 대여섯 시간만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 습작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자리를 찾아보던 중 오전에 할 수 있는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 광고가 눈에 띄었다. 힘들지 않을까? 잠시 망설였지만, 일터가 숙소 근처인 데다가 최저시급보다 2~3천 원을 더 준다는 말에 끌려 전화를 했다. 담당자는 당장 내일 출근할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나의 ‘택배 아르바이트 인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고객이 주문한 물건은 여러 과정을 거쳐 배달된다. 우선 주문을 확인한 업체가 물건을 포장해 놓으면, 그 업체와 배송 계약을 맺은 회사의 택배 기사가 물건을 집하장으로 가져간다. 그곳에서 화물차에 실린 물건은 택배 회사의 중앙 물류센터로 옮겨진다. 이곳에서는 밤새 각 집하장에서 온 택배 상품들이 배송 지역별로 분류되고, 상차(上車) 아르바이트 직원들이 물건들을 모두 실으면 새벽녘쯤 화물차가 각 지점으로 향한다. 각 지역 지점에서 하차 아르바이트 직원들이 화물차에 실려 있던 물건들을 부려 놓으면 택배 기사들이 이를 챙긴다. 내가 처음 아르바이트를 한 곳은 택배 회사의 지점이었다. 첫날, 지점장은 내게 ‘까대기’를 해 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생소하기만 했던 까대기란 말은 택배 상품을 화물차에 싣거나 내리는 일을 가리키는 현장 용어였다. 나는 경험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지점장은 나와 함께 일할 다른 까대기 아르바이트 직원을 소개시켜 줬다. 그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50대 중반의 남성이었다. 말투는 무뚝뚝했지만, 이 일이 처음인 내게 상세히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그는 내게 성씨만 물었다.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어서 사람이 자주 바뀌는지라 굳이 이름은 물어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나를 “이 군”이라 불렀고, 나는 그를 “우 아저씨”라 불렀다. ‘깡통’과 허리 보호대 우리는 지점에 도착한 화물차에 실린 택배 상자를 자동 레일 위에 내리는 일을 했다. 자동 레일에 물품을 올리면, 택배 기사들이 옆에 지켜서 있다가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동네의 물건을 챙겨 갔다. 11톤 화물차 한 대에는 평균 700~800개의 물품이, 많게는 1000개 이상이 실려 있었다. 두 명이 한 팀을 이루어 하루 평균 화물차 4~5대에 실린 물품들을 하차했다. 명절이 다가오면 지점으로 오는 화물차들이 부쩍 늘어났다. 화물차 한 대에 실린 물건들을 전부 내리는 데는 보통 40~50분의 시간이 걸렸다. 한 대를 다 비우고 나면 다리가 후들거렸다. ‘깡통’이라 불리는 탑차(塔車) 안은 바람이 잘 통하지 않았는데, 일을 시작하자마자 먼지 때문에 목과 코가 막혀 왔고, 온몸에 땀이 났다. 왜 최저시급보다 2~3천 원을 더 주는지 알 것 같았다. 오전 7시부터 시작한 일은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끝이 났고, 택배 기사들은 그제야 배송을 나갔다. 일을 하다가 보니 자연스럽게 택배 기사들과도 가까워졌다. 그들은 아침 7시부터 늦은 저녁 시간까지 일을 했다. 성수기에는 배송이 밀려 밤 12시를 훌쩍 넘기기도 했다. 그들은 한 건당 1000원이 안 되는 수수료를 벌어 가며 하루하루를 지냈다. 배송 출발 시간을 앞당기고 싶어 하는 그들과 중간중간 쉬어 가며 일하고 싶은 하차 아르바이트 직원들의 입장 차이가 때로는 다툼을 일으키기도 했다. 택배 회사의 지점들은 대부분 작업장이 야외에 있어서 날씨에 취약했는데, 우리는 추위와 더위를 온몸으로 버티며 일했다. 가을이 되면 추석 즈음을 기점으로 택배 대란이 시작됐다. 그해 추수한 쌀과 농산물, 절임 배추, 김장 김치가 산지에서 무더기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우리는 허리 보호대를 한 채로 그 시기를 버텼다. 우 아저씨는 나와 함께 일하던 지점을 그만두고 서울 근교의 농수산물 시장에서 야간에 채소 나르는 일을 했다. 나도 그를 따라 그 시장에서 함께 일했다. 그와 일하는 동안 나는 한 출판사에서 어린이 만화 연재 제안을 받았는데, 이 소식을 전하자 그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이제 다시는 이곳으로 오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하지만 만화 연재만으로 생계를 꾸리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택배 회사에서 다시 까대기 일을 시작했지만, 그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그가 “이종철이라는 젊은 친구가 있었는데, 나랑 같이 일할 때 죽어라 만화를 그리더니 지금은 어엿한 만화가가 됐어.”라고 나를 기억하기를 바랐다. 갖가지 사연 일은 예상보다 많이 힘들었지만 소득도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축구 K리그 3부에서 골키퍼를 했던 운동선수,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수험생, 어린 나이에 결혼해 반도체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생활비가 부족해 나처럼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던 젊은 가장, 30년 동안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정년퇴직하고 택배 회사 지점으로 출근한 아저씨, 40대 중반의 나이에 아픈 홀어머니를 모시며 지내던 까대기 반장 등 그들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었다. 아르바이트 기간이 길어지고 사람들과 가까워지니, 그들의 애틋한 사연을 만화로 그리고 싶어졌다. 그래서 현장에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만화를 통해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그들을 응원하고 위로하고 싶었다. 그 마음을 담아 2019년 만화 『까대기』를 출간했다. 코로나로 온 세상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요즈음 배송 산업이 주목받고 있다. 비대면 형태로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언제 어느 때나 받을 수 있지만, 배송 물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바람에 택배 기사들이 과로로 쓰러졌다는 기사를 종종 접하게 된다. 택배 박스에는 주의를 당부하는 갖가지 문구가 적혀 있다. 던지지 마세요, 뒤집지 마세요, 깨질 수도 있어요 등등. 어느 날 나는 사람에게도 이 문구들이 적용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인사한다. “몸도 마음도 늘 파손 주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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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2020 AUTUMN 101

배달 경제의 변천사 스마트폰 배달 앱으로 거의 모든 물품을 주문할 수 있는 시대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은 아니다. 이미 조선(1392~1910) 시대에도 존재했던 한국의 배달 문화는 20세기 전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근대적 양상을 갖추었고,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1882년 주청 독일영사관에서 근무하던 묄렌도르프(Paul George von Möllendorff)는 조선 최초의 서양인 고문이 되어 한양(현재의 서울)에 왔다. 당시만 해도 조선에는 서양인이 거의 없었던 터라 그는 식사부터 걱정했다. 저녁이 되자 관리 하나가 하인들과 함께 그의 숙소를 방문했다. 하인들은 나무로 만든 이동용 도구인 교자(轎子)를 들고 왔는데, 교자 위에 덮인 보자기를 벗기자 난생처음 보는 온갖 음식이 그릇에 담겨 있었다. 묄렌도르프의 저녁 식사였다. 이미 중국에서 유사한 경험을 했던 그는 음식들을 식탁에 옮겨서 차려 먹었다. . 傳 이형록(李亨祿 1808~?). 19세기. 지본담채. 세로 38.8 × 가로 28.2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 시대 상단 일행이 말과 소에 물건을 가득 실은 채 시장에 가는 행렬이 묘사되어 있다. 화원 이형록이 그린 것으로 전하는 화첩에 담겨 있는 그림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공물과 선물 조선 시대에 배달은 국가 운영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경제 활동이었다. 왕실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 대부분을 지방 관청들이 백성으로부터 거둬들여 세금처럼 바쳤기 때문이다. 일례로 종묘에서는 매월 음력 1일에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에 바치는 제사가 열렸는데, 지방의 행정 책임자는 각종 곡물, 생선, 과일, 소금 같은 식재료를 비롯해 종이나 그릇 등 생활용품을 왕실에 보냈다. 서울까지 수송을 맡은 지방 관리는 여러 명의 하인들이 수레에 물품을 싣고 옮기는 일을 감독했다. 만약 특산물 수급을 맡은 각 곳의 관리들이 제때 배달을 못 하면 관직을 박탈당할 만큼 이는 중요한 업무였다. 한편 지방의 부유한 양반들은 서울의 권력자나 지인들에게 지역의 특산품을 선물로 보냈다. 한 예로 노비 수백 명을 거느렸던 부안 지방의 부호 김수종(金守宗 1671~1736)은 말린 해삼, 전복, 홍합, 문어, 김 등 건어물과 말린 꿩고기, 돼지고기, 감, 그리고 종이, 부채, 모자, 빗 등을 서울에 사는 친구들과 고위층 관리들에게 보냈다. 부안에서 뱃길로 서해안을 따라 서울 마포나루에 도착한 물건들은 그의 하인들이 수레와 지게에 나누어 싣고 집집마다 방문하여 직접 전달했다. 그는 물건을 보낼 때 물품의 품목과 수량을 적은 문서 두 장을 작성해 하나는 자신이 보관하고 다른 하나는 받는 이에게 보냈다. 남편이 집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관직을 수행하고 있을 때도 부부 사이에 음식 재료가 오고 갔다. 안동 지방에 살았던 이씨 부인은 타향에서 일하고 있던 남편 김진화(金鎭華 1793~1850)에게 문어, 방어, 광어, 소금 같은 식재료와 고추장, 된장 같은 장류를 보냈다. 이에 대한 답으로 남편은 고등어, 명태, 은어, 청어, 소고기 등을 집으로 보냈다. 이때도 배달은 하인들이 맡았다. 성리학을 숭상했던 조선의 선비들은 화폐로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를 낮추어 보고, 물물 교환을 군자의 예라고 생각했다. 경제사를 연구하는 학자 중에는 그러한 성리학적 사고 방식이 조선 시대에 ‘배달 경제’ 체제가 갖춰질 수 있었던 이념적 배경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 안석주(安碩柱). 1934. 1934년 4월 5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삽화가 안석주의 만평이다. 한쪽 어깨 위로 커다란 음식 쟁반을 받쳐 들고 가는 배달원의 모습에 한 귀부인이 “무겁겠다”며 놀라워하자, 배달원이 “당신의 머리쪽과 손가락에 낀 것들이 더 무겁겠다”고 응수한다. ⓒ 조선일보 계층 의식 20세기 초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불행을 겪었지만, 도시들이 차츰 근대적으로 변모하기 시작했고 곳곳에 대중음식점들도 생겨났다. 시대가 바뀌며 조선 시대의 계층 간 위계질서는 표면적으로 붕괴되었지만,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이 규칙이 작동하고 있었다. 이것은 상업적인 음식 배달이 시작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920년대 서울의 음식점들에서 팔던 대표적인 메뉴는 설렁탕이었고, 주인은 대부분 조선 시대 최하층 계급이었던 백정이었다. 가축을 도살하는 일을 했던 백정이 운영하는 식당에 양반들이 가서 하층 계급민들과 함께 식사하는 일은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이 시기에 설렁탕 배달부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지금과는 달리 당시에는 그릇을 찾으러 갔을 때 돈을 받았는데, 이 때문에 웃지 못할 일화도 종종 빚어졌다. 종로의 한 설렁탕집 종업원은 같은 집에 음식을 계속 배달했다. 그런데 그릇을 찾으러 갈 때면 주문한 사람이 외출하고 집에 없어 음식값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렇게 서너 차례 빈손으로 오게 되자, 화가 난 그는 친구들과 함께 그 집의 하녀를 협박했고, 결국 경찰서에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 시기 배달의 주된 대상은 설렁탕이나 냉면, 떡국처럼 서울을 비롯한 도시에 많이 생겨난 대중음식점들의 대표 메뉴였다. 이때는 전화로 음식을 주문했다. 물론 전화는 관청이나 일부 회사, 또는 부유층의 가정에서만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주문을 받은 음식점 배달부는 자전거 손잡이를 왼손으로 조정하면서 오른손에 배달 음식을 들고 주문한 집을 찾아갔다. 멀리서 보면 마치 서커스단의 곡예사처럼 아슬아슬한 모습이어서 구경거리가 되곤 했다. 1900년경 활동했던 우편 배달부의 모습. 국내의 근대식 우체 업무는 1884년 한국 최초의 우체국인 우정총국이 설치되면서 시작되었는데, 초기에는 수레와 말을 이용하여 우편물을 운송했다. 당시 세워진 건물이 현재 서울 조계사 옆에 남아 있어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일제강점기, 인천의 유명한 냉면집 사정옥 앞에서 배달부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곳의 냉면 맛은 전국적으로 소문이 나 서울 명동에서 장거리 전화로 주문할 정도였다고 한다. 냉면은 설렁탕과 함께 1930년대의 대표적인 배달 음식이었다. ⓒ 부평역사박물관 . 임응식(Limb Eung-sik 林應植). 1946.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1946년 부산 서면의 한 거리에서 무명 치마저고리 차림을 한 젊은 여성들이 꽃이 가득 담긴 함지박을 이고 걸어가고 있다. 머리 모양이 미혼임을 나타내고 있다.ⓒ 임상철 1950년대, 속초 함흥냉면옥의 창업주가 자전거를 타고 배달에 나선 모습이다. 냉면 대접들을 겹쳐 놓은 널찍한 목판을 어깨에 이고 한 손으로 자전거 핸들을 조정하는 모습이 당시에도 진풍경이었다. ⓒ 속초시립박물관 손수레와 자전거 배달원의 모습이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도시에 상설시장이 나타나면서부터다. 가게를 비울 수 없는 시장 상인들이 음식점에 배달을 시켰고, 그러면 음식이 담긴 그릇을 차곡차곡 쌓은 쟁반을 머리에 인 아주머니가 조심조심 걸어서 가져다주었다. ‘요릿집’이라고 불렸던 고급 음식점에서도 20여 가지의 요리를 배달해 주었다. 이렇게 요리의 가짓수가 많으면 교자에 음식을 실어 날라야 했다. 부잣집에서 손님을 불러 잔치를 할 때는 요릿집의 요리사와 웨이터, 웨이트리스가 출장을 가기도 했다. 고급 중국 음식점에서도 주문을 받으면 음식을 배달해 주었다. 그러나 당시의 음식 배달은 무료로 해 주는 고객 서비스였다. 전문적인 규모의 배달업은 우편물, 신문, 술 등의 품목에서 나타났다. 특히 술은 주조공장에서 음식점이나 술집의 주문을 받으면 자전거로 직접 공급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치른 후 1960년대는 정부의 압축 성장 정책으로 도시화와 산업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진 시기였다. 그 결과, 서울의 도매 시장과 소매 시장도 매우 빠르게 성장했다. 도매점에서는 소매점의 주문이 들어오면 손수레 배달부를 불러 물건을 나르게 했다. 이들 손수레 배달부 중에는 도매점의 물품을 사서 그 가격 그대로 소매점에 파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유통 이익을 챙기는 대신 물건을 담았던 상자를 도매점에 되팔아 적은 이윤을 남겼다. 당시 도시의 주택에서 난방이나 취사용으로 쓰는 연료의 대부분은 연탄이었다. 대다수 가정에서도 월동 준비로 연탄을 창고에 미리 쟁여 두는 일이 흔했다. 하지만 일반 가정에서 아무리 많은 양의 연탄을 주문해도 공장에서 직접 배달을 해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초기에는 사람들이 손수레를 빌려 연탄을 직접 실어 날라야 했다. 그러나 그 수요가 점차 많아지자 1970년대부터는 소정의 배달비를 받고 전문적으로 각 가정에 연탄을 공급해 주는 연탄 가게들이 생겼다. 연탄 배달은 가정이 아닌 곳에서도 유용했다. 한겨울에도 난방 시설을 갖출 수 없는 노점 상인들을 위해 등장한 것이 연탄 화덕 배달업이었다.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에는 배달부들이 새벽 5시부터 이동식 화덕에 불을 지핀 연탄을 넣고는 상인들의 주문을 기다렸다. 이들은 연탄 값에 약간의 수고비를 보태 배달료를 받았는데, 하루 평균 200개 정도를 배달하면 그런대로 일당은 되었다고 한다. 배달 음식이 중국 음식 위주에서 벗어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에 미국식 패스트푸드 점포가 유입되면서였다. 그러자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이전까지 생소했던 음식인 피자를 오토바이라는 새로운 운송 수단으로 청년들이 배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 임응식. 1960. 서울 명동에서 소년들이 배달할 신문을 받아 들고 달리고 있다. 과거에는 살림이 넉넉하지 않은 가정의 청소년들이 학비나 용돈을 벌기 위해서 신문을 배달하는 일이 흔했다. ⓒ 임상철 . 한정식(Han Jung-sik 韓靜湜). 1993. 한 손에 철가방을 든 중국집 배달원이 자전거를 타고 서울 주택가 골목을 지나고 있다. 중국 음식 배달은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 한정식 1970년대 초반, 서울의 한 산동네에서 연탄 배달원이 지게로 연탄을 나르고 있다. ‘구공탄’ 또는 ‘십구공탄’이라 불렀던 연탄은 한국전쟁 이후 1990년대까지 난방 및 취사를 위한 연료로 널리 쓰였다. ⓒ 뉴스뱅크 오토바이, 그리고 스마트폰 앱 한동안 음식 배달의 대명사격이었던 중국 음식점 배달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부터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전거가 배달 음식의 거의 유일한 운송 수단이었다. 1970년대 말 한국 정부의 화교 정책에 따라 대학 입학에 불이익을 당하게 되자 많은 화교들이 대만으로 이주했고, 그 때문에 이들이 운영하던 중국 음식점에서 배달부 일을 했던 한국인들이 중국 음식점을 차리는 일이 늘어났다. 때마침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대단지 아파트들이 건설되고 거주 밀집 지역이 늘어나면서 중국 음식에 대한 배달 수요도 급증하게 되었다. 1980년대 이후는 배달료를 지급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소비자들이 늘어났고, 이것이 국내 배달 산업을 발달시키는 요인의 하나가 되었다. 1982년 한 경제신문이 향후 유망한 업종으로 배달업을 손꼽았을 정도였다. 배달 음식이 중국 음식 위주에서 벗어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에 미국식 패스트푸드 점포가 유입되면서였다. 그러자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이전까지 생소했던 음식인 피자를 오토바이라는 새로운 운송 수단으로 청년들이 배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토바이가 속도와 효용성 면에서 매우 뛰어난 운송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이때부터 중국 음식점이나 재래 시장의 배달부들도 자전거나 도보 대신 오토바이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택배를 근간으로 하는 배달 산업은 일본의 택배 시스템이 도입되어 유망 업종으로 떠오른 1990년대의 일이다. 택배 서비스를 처음 접한 한국인들은 처음엔 잘 적응하지 못했고, 별도의 배달료를 수용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이러한 거부감은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얼마간 돈을 지불하면 문 앞에까지 주문한 물품을 가져다주는 편리함은 사람들을 쉽게 매혹시켰다. 편의성을 앞세운 택배업은 급속하게 성장했고, 2010년 스마트폰 앱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기성 세대와 달리 1980년대 이후 출생한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IT 신기술에 너무나 잘 적응했고 어느새 배달 문화는 한국 사회의 아이콘이 되었다. 21세기 한국의 배달 산업을 창출한 주인공은 바로 스마트폰 세대이다. 1990년대 말 서울 고려대 근처 한 중국 음식점의 배달원. 조태훈(趙太薰)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던 그는 요란하게 치장한 오토바이에 ‘번개’같이 빠른 배달 속도를 자랑하며 동네의 유명 인사가 되었고, 이후 방송 출연과 기업 강의를 하게 되면서 전국적인 스타가 되었다. ⓒ 뉴스뱅크 서울 남대문 시장 안 밥집 아주머니가 음식이 담긴 쟁반을 머리 위에 켜켜이 인 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가게를 떠날 수 없는 상인들의 요긴한 점심식사다. ⓒ 서울시 제공, 사진 문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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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2020 AUTUMN 68

어느 배달 라이더의 하루 붐비는 네거리 신호등 앞. 마침내 파란불이 켜지면 자동차들이 속력을 내기 전 수십 대의 오토바이들이 미친 듯 질주를 시작한다. 대도시에서 흔히 마주치는 장면이다. 배달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전국적으로 약 30만 명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고객이 누리는 편리함의 이면에 이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남아 있다. 나는 소설가로 등단하기 전, 서울의 오피스타운에서 한식을 배달했다. 유흥가 중식당이나 주택가 피자 가게에서도 일해 봤다. 심지어 런던에 잠시 머물 때도 일식을 배달했으니 이래 봬도 ‘유학파’ 배달원이다. 그러나 배달의 본고장 한국에서 해외 경험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영국에서는 배달원이 엄연한 직업이지만, 한국에선 임시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내가 배달 일을 하던 과거 그 어느 날에 대한 이야기다. 배달 라이더들이 붐비는 서울 도심 한복판 차량들 사이를 달리고 있다. 제한된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주문량을 소화해 내야 하는 라이더들은 도심 지리를 꿰뚫고 있어야 함은 물론 머릿속에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 뉴스뱅크 딜레마 “옆집 장발 친구 어제 사고 나서 입원했단다. 들었어?” 출근해서 본격적으로 일을 준비하고 있을 때 사장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웃 가게 장발 친구는 훌륭한 기량을 가진 ‘배달 선수’였다. 길에서 마주치면 마치 잘나가는 레이서처럼 보일 정도였다. 최근에 연애 실패로 상심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사고로 입원까지 했다니…. 역시 배달업은 외과 의사나 애널리스트, 항공기 기장만큼이나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일이다. 잠시 한눈파는 순간 길바닥에 누워야 한다. 배달 일을 하며 폭염의 여름에도 몸과 마음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는데, 길가에 생뚱맞게 세워진 모터바이크들을 볼 때다. 그건 그냥 주차해 놓은 것이 아니다. 자세히 보면 스포크 휠이 휘어졌거나 옆면이 처참하게 갈려 있다. 사고가 나서 라이더를 구급차가 실어간 후 도로 통행을 재개하기 위해 바이크를 옆으로 치워 놓은 장면인 것이다. 배달원의 사고는 너무 쉽게 목격된다. 길에서 늘 마주치던 사람이 안 보이면 다치거나 죽은 거다. “그러니까 너도 좀 요령껏 빨리 가야지, 미친 듯이 쏘고 다닐래?” 가게 사장님이 내 라이딩 스타일을 걱정했다. “괜찮아요. 전 잃을 게 아무것도 없어요.” “시끄러워 인마. 내가 널 못 잃어. 안전하게 좀 다니라고.” 그의 말이 잠시 따뜻하게 느껴졌지만, 냉철한 표현이기도 했다. 오토바이 배달은 면허증이 있고 겁만 없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주문을 얼마나 소화하느냐에 따라 꽤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고, 일반 회사처럼 경직된 조직 문화나 꼰대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배달원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위험을 무릅써야 하기 때문이다. 도로 위엔 바보들이 너무 많고, 운전면허를 너무 쉽게 발급하는 한국에선 어떤 초보 운전자가 나를 들이받을지 모를 위험에 항상 대비해야 한다. 라이더들은 빠른 배달과 더 나은 수입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가속 그립을 끝까지 당겨야 한다. 오토바이는 고라니나 고양이가 로드킬을 당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사고가 난다. 가엾게도 많은 라이더들은 오토바이를 탄 자신이 차보다 빠르다고 믿는다. 덩치가 작아 날렵하게 느껴질 뿐 바이크는 차보다 결코 빠르지 않다. 출력도 높지 않다. 그러나 안전하고 느긋한 배달은 곧 영업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속도를 줄일 수는 없다. 이 위험한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일확천금뿐이다. 나는 거의 모든 배달원들의 옷 주머니에 로또 복권이 들어 있다는 데 돈을 걸 수 있다. 서울 강남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배달 플랫폼 띵동(Ddingdong)의 직원이 한 분식집의 음식을 스쿠터에 싣고 있다. 배달 전담 인력을 고용할 여력이 없는 소규모 점포들은 전문 업체에 배달을 의뢰하여 경비를 줄이고 있다. ⓒ 뉴스뱅크 노하우 오전 11시. 주문 전화가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한다. 점심 무렵 2시간 동안 라이더 한 명이 집중적으로 배달해야 하는 양은 30건 정도다. 한 군데 다녀오는 시간이 5분이라고 치면 1시간에 12건, 2시간이면 24건밖에 해내지 못한다. 5분 이상 걸리는 곳들도 많다. 그래서 여러 건의 배달 음식을 함께 들고 나가야 한다. 그렇다 보니 배달원의 능력은 공간 감각이 좌우한다. 머릿속으로 주문 들어온 곳들의 주소를 연결해 최단 시간에 최대한 많이 배달할 수 있는 동선을 그려야 한다. 머리란 그저 헬멧을 씌우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오토바이에 실을 수 있는 물건의 양은 정해져 있고, 오가는 시간도 한정적이다. 군더더기 없이 배달 경로를 예쁘게 그리는 자가 진정한 프로다. 배달 구역의 교통 상황을 파악하는 눈치도 빨라야 한다. 가게 앞 사거리 신호등이 지금 무슨 색으로 바뀌는지 꿰고 있어야 한다. 배달 장소에 도착하기 전 계단과 엘리베이터 중 무엇이 더 빠를지 순간적인 판단력도 필요하다. 유능한 배달원은 육감을 단련해서 다음 골목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예측해야 하고, 반대편에서 오는 차가 갑자기 유턴하려고 맘먹는 것을 눈치채야 한다. ‘배달 선수’의 보람은 남이 못 하는 것을 멋지게 해낼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다. 목적지로 출발한다. 하필 내 앞에서 신호를 위반하는 차가 없기를, 골목에서 사슴처럼 튀어나오는 자전거가 없기를, 내가 길 가는 애먼 사람을 치지 않기를, 코너에서 바나나 껍질을 밟지 않기를, 도로의 움푹 파인 곳에 걸려 앞구르기 쇼를 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어쨌든 살아남아서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일단 출발하면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다. 늦게 도착해서 욕먹는 일은 피하자! 머리란 그저 헬멧을 씌우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오토바이에 실을 수 있는 물건의 양은 정해져 있고, 오가는 시간도 한정적이다. 군더더기 없이 배달 경로를 예쁘게 그리는 자가 진정한 프로다. 치킨 프랜차이즈 업소 배달원이 밤 늦은 시간 모터바이크에 주문 받은 음식을 싣고 건대 앞 먹자골목을 급히 지나가고 있다. ⓒ Shutterstock; Photo by Kelli Hayden 자괴감 오늘 첫 배달지는 갈 때마다 기분 나쁜 사무실이다. 늘 반말이고, 자신들이 예상했던 시간보다 조금만 늦어도 욕부터 한다. 배달 같은 험한 일을 하는 사람은 사회적 지위가 낮으니 그렇게 대해도 된다는 저열한 계급 인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릇을 수거하러 가면 화가 치민다. “그릇에 쓰레기 좀 버리지 마요.” 아무도 대꾸하지 않는다. 투명 인간 취급이다. 그 사무실에선 음식 값을 제때 받지도 못했다. 월식으로 먹는 장부에 사인받을 때면 무슨 중대한 결제처럼 뜸을 오지게 들이고, 4인분을 시켜 놓고 슬쩍 3인분 값만 사인하기도 한다. 월말에 수금하러 가면 호통까지 친다. “어허, 나중에 준다니까. 우리가 그 같잖은 돈 떼먹겠어? 어?” 하지만 그 사무실 사람들은 결국 어느 날 밀린 식대를 갚지 않고 도망갔다. 나와 사장이 분노하며 그 같잖은 놈들을 잡으러 다녔지만 소용없었다. 요즘엔 온라인으로 선결제가 이루어져 그런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의 진화는 반갑다. 다음은 공장이다. 그곳은 바빠서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다. 대체 밥 먹을 시간이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음식을 놓고 나오다 살펴본 직원들의 눈이 하나같이 붉게 충혈돼 있다. 물론 매연과 먼지를 헤치고 달려온 내 눈도 붉다. 누가 더 불쌍한지 비교해 볼 틈도 없이 다음 목적지인 모텔로 가는데, 비가 촤아아 쏟아진다. 날이 궂어 가게에 주문 전화가 더 많이 울리는 환청이 들린다. 비옷을 꺼내 입고 목에 수건을 감아도 파고드는 빗줄기를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다. 달릴 때 몸에 부닥치는 빗물들은 따갑고, 동시에 서럽다. 젖어서 초췌한 몰골로 물을 머금어 무거워진 발을 끌며 모텔 건물에 들어간다. 문이 열리자 수건으로만 몸을 가린 손님이 음식을 받는다. 그는 옷 입기가 귀찮아 배달 음식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래, 옷 입을 시간에 더 편히 쉬고, 더 많이 사랑하기를 빌어 준다. 더불어 그만 바쁘고, 삶의 질을 좀 높이며 살기를 바라고, 내 삶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다음 음식을 실으러 가게로 복귀한다. 타협 가게에는 배달을 기다리는 음식이 조금씩 식어가고 있었다. 더 식기 전에 잽싸게 싣고 다시 나간다. 사람들은 맛 때문에 배달 음식을 시키지는 않는다. 멋진 레스토랑에서 요리사가 열심히 조리한 직후, 예쁘게 담아낸 따끈한 음식을 친절한 웨이터에게 받아먹는 것보다 배달통 속에서 플라스틱 그릇과 랩에 싸인 채 흔들리며 달려온 음식이 더 맛있을 리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주문을 하는 것은 식당에 가서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는 수고 대신 편리함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물론 입맛이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맛의 차이를 하찮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배달 음식은 미세 플라스틱을 발생시키는 일회용품을 양산하고, 지구의 환경 수준을 나날이 떨어뜨린다. 수많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언제 어디서든 뭐든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문화가 자랑거리일까? 배달 산업이 발달한 나라는 그렇지 않은 나라에 비해 삶의 질이 높은 걸까? 코로나 상황에서 한국의 배달 문화가 제공한 안도감은 외출이 제한된 상태에서 굶어 죽지 않는다는 것 말고 뭐가 또 장점인 걸까? 시간에 쫓기고 사회적 하대에 지쳐 신경이 곤두선 배달원을 만날 확률도 높은데 말이다. 자신이 있는 곳으로 음식이 날라져 온다는 단 하나의 장점이 수많은 문제를 상쇄할 수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그저 귀찮지 않으려고 지구 환경을 하찮게 만드는 일을 하는 게 옳을까? 배달 오토바이는 교통 체증을 피해 골목골목 좁은 데로 들어갈 수 있고, 아무 데나 주차해도 된다. 한국에서 오토바이는 지정 주차 구역 없이 아무 곳에나 세울 수 있다. 심지어 인도나 횡단보도에도 막 세운다. 신호를 위반하고, 역주행하고, 별의별 위반을 서슴없이 한다. 자동차 사이드미러에는 오토바이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시끄러운 배기음으로 존재감을 알리고, 예측 불가능한 주행으로 다른 운전자들을 깜짝깜짝 놀라게도 만든다. 교통 질서를 잘 지키면서 주문 들어온 음식들을 제때 가져다주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배달원은 그런 생각을 할 틈조차 없다. 누군가가 목을 빼고 허기를 참아가며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집중해서 달려간다. 오늘의 마지막 배달지는 사내 파티를 하는 곳이다. 대량 주문이라 오토바이가 휘청거릴 만큼 잔뜩 음식을 싣고 출발한다. 표정이 밝은 사람들이 나를 격하게 반겨 준다. 그들은 축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 아래에서 여유롭게 건배를 나누고 있다. 다들 무언가를 함께 이룬 듯 기분이 좋아 보인다. 그런 곳에 음식을 가져다주는 일은 어느 정도 보람을 느끼게 만든다. 배달을 마치고 나올 때 누군가가 정중하게 “너무 많이 주문해서 무거웠죠? 비도 많이 오는데 정말 고맙습니다.”라며 팁을 쥐어 준다. 하루의 피로가 그 팁과 따뜻한 말 몇 마디 덕분에 스르르 풀린다. 비로소 하루가 끝났다. 긴 하루였다. 무거운 헬멧과 라이딩 자세 때문에 목과 어깨는 육포처럼 뻣뻣하고, 비에 젖은 손발은 불어 터졌고, 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린 팔다리는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린다. 이제 마지막 배달만 남았다. 내 몸을 안락한 침대 위로 퇴근시키는 배달. 나는 휘파람을 불며 오토바이 시동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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