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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WINTER

생활

식재료 이야기 명태, 버릴 것 하나 없는 생선

겨울이 제철인 명태는 등 푸른 생선보다 단백질이 풍부하고 지방량은 적은 특성을 지녀 건강 식품으로 손꼽히는 생선이다.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전통식 관혼상제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상징성 높은 식재료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명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조선 말기의 문신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이 1871년에 탈고한 인문학 수필 총서 『임하필기(林下筆記)』에 명태라는 이름의 유래가 나온다.

함경도 명천(明川)에 사는 어부 중에 태씨(太氏) 성을 가진 자가 있었는데, 어느 날 낚시로 물고기 한 마리를 낚아 도백(道伯, 현재의 도지사)에게 바쳤다.

“도백이 이를 매우 맛있게 여겨 물고기의 이름을 물었으나 아무도 알지 못하고 단지 태 어부(太漁父)가 잡은 것이다.”라고만 대답하였다. 이에 도백이 “명천의 태씨가 잡았으니, 명태라고 이름을 붙이면 좋겠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실제 어원이라기보다 누군가 상상으로 만들어 낸 이야기인 듯하다. 하지만 이어지는 필자의 말에서 당시 명태가 얼마나 일상적인 먹거리였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민정중(閔鼎重)이 말하기를, 300년 뒤에는 이 고기가 지금보다 귀해질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제 그 말이 들어맞은 셈이다. 내가 원산(元山)을 지나다가 이 물고기가 쌓여 있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오강(五江, 지금의 한강 일대)에 쌓인 땔나무처럼 많아서 그 수효를 헤아릴 수 없었다.”

17세기 사람인 민정중이 명태에 대한 예언을 했을 당시에는 이 물고기가 식용으로서 그다지 대접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승정원 일기』 효종 3년(1652)의 기록에 명태가 등장하는데, 이때 강원도에서 진상하는 대구 어란에 명태 어란이 섞여 있어 문제로 삼았다는 것을 보면 그렇다. 하지만 300년이 지나 조선 말기에 이르면 명태는 이미 온 나라에 두루 퍼져 일상의 식재료로 대접을 받는 생선이 되었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였기에 이미 모든 계층의 백성들이 제사상에 올리는 대표적 생선이 되었다.

명태는 한국에서만 중요한 생선은 아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잡히는 물고기이며 식용 물고기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자원이다. 세계적으로 명태는 아직까지 지속 가능한 어업 자원이다.

건조 방식
현대식 냉장 기술이 보편화되기 전까지 한반도에서 명태는 한겨울이 아니면 주로 말린 건제품 형태로 유통되었다. 건조의 정도에 따라 코다리, 짝태, 북어, 황태, 백태, 먹태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 단지 이름만 다른 것이 아니라 건조 상태에 따라 맛과 식감도 서로 다르다. 명태의 내장과 아가미를 떼고 여러 마리를 한 코에 꿰어 반건조한 것이 코다리, 소금에 절여 말려서 쫄깃한 식감에 짭짤한 맛을 내는 것이 짝태다. 북어는 과거에는 명태의 또 다른 이름이었지만, 지금은 바닷가에서 해풍과 햇빛으로 단기간에 말린 것을 지칭한다.

이와 달리 황태는 내륙 산간이나 고원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수개월 동안 서서히 건조한 다음 1년 동안 숙성시켜 만든다. 명태 속 수분이 밤에는 얼고 낮에는 녹으며 증발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어육 속에 수많은 빈 공간이 생기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스펀지 같은 모양새다. 실제 수분 함량은 북어가 황태보다 더 높지만, 황태가 덜 질기고 잘 씹히는 것은 이런 다공질의 구조 때문이다. 또한 습도가 낮고 바람이 많이 부는 고지대의 기후 특성으로 인해 생선살 속의 수분이 이동하기 쉬워 건조가 더 잘 이뤄지면서도 딱딱하지 않아, 부드럽게 결에 따라 잘 찢어진다.

건조를 마치고 숙성하는 과정에서 명태 속 지방과 아미노산이 갈변되어 황금색을 띠는 황태로 변한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갈변되지 않고 하얀색을 띠면 백태, 말리는 과정에서 날씨가 너무 따뜻하여 갈변이 심해진 것은 먹태라고 부른다. 동해안에 인접한 대관령 덕장에서 말린 황태가 특히 널리 알려졌고 눈 덮인 덕장의 풍경이 사진 작가들을 불러 모으는 색다른 풍경을 만들기도 한다.


다양한 용도
명태는 다양한 이름만큼이나 먹는 방법도 매우 여러 가지다. 황태나 북어는 아무 양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불에 살짝 구워 술안주로도 먹고, 잘게 찢은 채를 물에 부드럽게 불린 후 고추장이나 간장 양념에 버무려 반찬으로도 즐겨 먹는다. 황태를 큼직하게 토막 내어 양파, 대파, 고추, 콩나물, 두부를 갖은 양념과 함께 넣고 물을 자작하게 넣고 끓이면 얼큰하고 감칠맛이 뛰어난 찜 요리가 된다. 비슷한 방식으로 요리한 코다리찜이나 북어찜은 황태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대중적 인기가 높다. 그런가 하면 물에 불린 황태에 고추장 양념을 발라 구워낸 황태구이도 술을 부르는 맛이다.

황태와 북어는 술안주로도 인기가 높지만 술 마신 다음 날 먹는 대표적인 해장 음식이기도 하다. 냄비에 황태와 네모나게 썬 무를 넣고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한 방울 두른 뒤 한차례 볶아내 물을 붓고 끓이면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온다. 여기에 두부를 넣고 달걀을 풀어 밥과 곁들인다. 땀을 흘리며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숙취로 불편했던 속이 개운해진다.

흔히 명태는 버릴 것이 없는 생선이라고들 말한다. 북어 껍질만 모아 볶아서 무쳐 먹기도 하고 튀겨 먹기도 하며 아가미, 창난, 알은 젓갈로 만들어 먹는다. 명란젓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식 명란 ‘멘타이코(明太子)’가 되기도 했다. ‘명태의 알’을 뜻하는 이름 그대로의 음식이다. 일본에서는 스파게티, 주먹밥, 바게트와 같은 다양한 요리에 명란을 넣어 먹기도 한다.

한국의 명란 생산 중심지는 부산이다. 명란을 연구, 개발하는 회사도 여러 곳 있다. 요즘에는 과거에 비해 덜 짠맛의 저염 명란을 먹는 경우가 많지만 과거 방식으로 염도를 높인 명란이나 명란을 바른 김, 튜브에 넣은 명란을 짜서 먹는 형태, 누룽지에 명란을 더한 명란 라이스칩과 같은 새로운 방식의 음식이 등장하면서 명란을 즐기는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맛있는 명태 요리로 손꼽는 것은 바로 생태탕이다. 싱싱한 하얀 속살이 입 안에서 층층이 부서지는 재미에 한입 씹어 삼키고 또다시 한입 씹어 삼키다 보면 어느새 식사가 끝난다. 바닷물 속에 사는 물고기는 중력에 거슬러 몸을 지탱해야 하는 육지의 동물과 달리 힘을 쓸 일이 적다. 생선이 육류에 비해 덜 질기고 지방이 적은 이유다.



동해의 특산품
특히 명태나 대구처럼 바다 밑바닥 쪽에 사는 물고기는 단백질은 풍부하면서도 등 푸른 생선에 비해 지방량이 더 적다. 물고기의 근섬유는 짧으며 얇은 조각 단위로 분리되는 근절(myotome)로 배열된다. 2019년 싱가포르 국립대학 연구에 따르면 생선 근육에 V자 모양의 패턴이 나타나는 데는 환경의 영향이 필요하다고 한다. 쉽게 말해 바닷물 속에서 헤엄치면서 받게 되는 물리적 마찰과 스트레스의 영향으로 물고기 근육에 특유의 V자 모양 패턴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명태살 속 갈매기 무늬는 바다에서 살았다는 증거인 셈이다.

명태는 한국에서만 중요한 생선은 아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잡히는 물고기이며 식용 물고기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자원이다. 대구가 멸종 위기에 처하면서 어획 제한이 되고 나서 명태가 대구를 대체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명태는 수리미(surimi)라고 불리는 가공 연육을 만드는 데도 많이 사용된다. 세계적으로 명태는 아직까지 지속 가능한 어업 자원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국 근해에서는 명태를 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국내에서 유통되는 동태, 생태, 황태, 명란까지 이제는 거의 수입산이다. 지구 온난화로 수온이 변화하고 한때 명태 새끼인 노가리까지 남획하여 한반도 연안의 명태 씨가 마른 것이다.

17세기 문신 민정중이 예언하고 나서 400년이 지난 한반도의 명태는 귀하다기보다 매우 희귀해져 버렸다. 다행히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상황이 나아지기 시작했고, 2018년에는 2만 1000여 마리의 명태가 잡혔다.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와 어획 제한 같은 조치가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바닷가에 명태가 땔나무처럼 쌓여 있는 모습은 못 보더라도 동해에서 잡은 생태가 우리 밥상에 오를 날만은 다시 오길 희망한다.

정재훈(Jeong Jae-hoon 鄭載勳) 약사, 푸드 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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