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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WINTER

생활

이사람의 일상 달인의 담백한 행복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들에게 싸고 맛난 길거리 군것질은 그 자체가 일상의 작은 위로다. 올해로 43년째 넉넉지 못한 이웃들이 즐겨 찾는 전통 시장에서 가족들과 함께 땀흘리며 서민 간식 꽈배기를 튀겨 팔고 있는 임춘식(林春植) 씨의 매일매일은 자신이 만드는 소박한 과자만큼이나 담백하다.

서울 도심의 한켠을 지키고 서 있는 독립문은 우리 역사상 최초로 모금 캠페인을 통해 1897년에 건립되었다.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키려는 국민의 뜻을 담아 세운 소박한 모습의 이 근대 유적은 조선(1392~1910)이 자주 국가임을 표방했다. 초기 서양식 근대 건축물의 하나이기도 한 이 문을 바라보고 있는 영천(靈泉)시장은 애초에 규모가 꽤 컸으나, 주변 지역의 재개발과 고가도로 건설 등으로 많이 축소되었다. 북적이던 오래된 재래시장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정겨운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알고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이 시장에는 소문난 맛집이 여러 곳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집은 ‘달인꽈배기’다. 시장 어귀 골목을 향해 시원하게 트인 가게에서 반갑게 인사를 하고 주문을 받고 다음 손님을 부르는 씩씩한 목소리가 골목을 가득 채우고, 순서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는 사람들, 받아든 꽈배기를 한입 베어문 사람들의 미소가 구경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환하게 번진다.

꽈배기는 반죽한 밀가루를 가늘고 길게 늘여 두 가닥으로 꺾은 다음, 새끼줄을 꼬듯이 꼬아 식용유에 튀겨낸 과자이다. 기록에 의하면 중국 한족의 오랜 전통 과자 ‘마화(麻花, mahua)’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텐진 지역의 특산물인 마화는 다소 딱딱한 질감인데, 연변 조선족들이 술이나 효모로 발효시켜 부드럽게 만들어 이를 ‘타래떡’이라 불렀다. 한국의 꽈배기는 여기에 설탕을 뿌려 단맛을 강조했다. 배배 꼬인 달콤한 꽈배기를 손가락으로 풀어 먹기도 하고, 통째로 베어 먹는 재미가 있다.

열세 살부터 시작한 노동
달인꽈배기의 직원은 다섯 명이다. 사장인 임춘식 씨와 그의 아내, 아들과 며느리, 그의 막냇동생까지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일한다. 간판에는 ‘42년 전통’이라 쓰여 있는데, 그 간판을 단 것이 작년이니 올해로 43년째이다.

남쪽 지방 도시에서 4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6학년인 열세 살에 아버지를 잃었다. 생계를 도맡아야 했던 어머니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려고, 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와 영천시장 안 튀김 가게에 있던 고향 선배 밑에서 일을 시작했다.

“원래 여기가 떡 골목이었어요. 대부분 떡집 아니면 튀김집이었죠. 어느 날 누가 꽈배기를 가지고 와서, 이거 한번 해 보면 어떻겠냐 하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듣고 고향 선배와 같이 만들기 시작했어요. 당시엔 꽈배기집도 없었고, 사람들이 잘 먹지도 않을 때였어요. 먹어 본 사람들이 담백하다, 맛있다, 소화도 잘된다, 그러더라고요.”

가게를 차려 독립한 것은 36년 전이다. 주 거래처는 건설 현장에 임시로 차려 놓은 식당과 학교 안에 있는 매점이었다. 밤새도록 만들어 박스로 포장해 놓으면 새벽에 가져가는 도매 장사였다. 20kg짜리 밀가루를 하루에 20포대씩 소화해야 하는 중노동이었고, 밤낮이 뒤바뀌어 몸도 상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임시 식당과 학교 매점이 사라지면서 가게는 아침에 문을 열어 일반 손님들에게 판매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미리 만들어 둔 것을 파는 게 아니라 즉석에서 튀겨 팔게 되니, 손님들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단골이 생기고,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저는 매일 꽈배기 서너 개씩 먹어요. 일단 맛있으니까 먹고, 뭐가 잘됐는지 잘못됐는지 살피기 위해 먹어요. 소금의 양, 설탕의 양, 물의 양, 반죽하는 시간, 다 중요하죠.”

사람들이 그의 꽈배기를 먹기 위해 먼 곳에서 찾아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 그의 현란한 기술 때문일 것이다. 한 번 반죽할 때 들어가는 밀가루는 40kg, 여기에 설탕과 마가린과 따뜻한 물을 붓고, 생 이스트를 넣어 두 손으로 치대며 반죽한다. 발효한 반죽을 넓게 펴서 적당한 크기로 툭툭 자른 다음, 가느다란 줄 모양으로 만든다. 그것을 반으로 접어 공중으로 획 던지면 보기 좋게 꼬아져 툭 떨어진다. 굵기와 크기가 일정할 뿐만 아니라 속도가 엄청나다. 홀린 듯 그의 작업 모습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그에게 ‘달인’이라는 칭호를 붙여 주었다.

오후 세 시, 하루 일과를 마친 그는 작업복에 묻은 밀가루를 툭툭 털고 힘찬 걸음으로 가게를 나선다. 세상은 아직 한낮, 소박한 행복이 그의 앞에 활짝 펼쳐져 있다.

변함없는 맛
널리 소문이 퍼지고, 여러 매체에서 취재를 오고, 가게 앞에는 항상 사람들이 북적이는데 꽈배기 가격은 이상할 정도로 싸다. 웬만한 가게에서는 3개에 2천 원 정도는 받고 있는데, 4개에 천 원이다. 그것도 10여 년 전부터 같은 값이라니. 그 사이에 재료비도 올랐을 텐데, 이래서야 남는 게 있을까 싶다.

“가족끼리 하니까 인건비가 안 들어요. 달걀, 우유를 넣지 않고 옛날 방식으로 만들어서 옛날 가격으로 팔아요. 올리고 싶은 마음이야 있지만, 요즘 경제도 안 좋고 제가 먹고살 만하니까 그냥 파는 거예요. 싸니까 손님들이 참 좋아해요.”

힘에 부칠 때도 있을 텐데, 손반죽을 고집하는 이유도 궁금하다.

“기계를 써본 적이 있는데, 너무 맛이 없는 거야. 내가 맛없으면 손님도 그렇다는 거죠. 손님이 맛없다고 하면 우리도 기분이 안 좋고. 그래서 기계를 없애버렸어요. 힘이야 들지. 그런데 힘 안 들이고 돈 버는 일이 어디 있어요? 그래도 꽈배기는 고급스러운 일이에요. 준비하는 시간도 별로 안 걸리고, 반죽해서 튀기면 되고, 튀긴 다음에 기름 버리면 끝이죠. 재고도 없으니까요.”

TV 방송을 탄 후에는 체인점을 내 보자는 제의도 받았다. 하지만 반죽을 직접 해야 하고, 바로 튀겨서 팔아야 하기 때문에 많은 매장을 관리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반죽을 해서 오래 놔두면 색깔도 안 나고 맛도 없어지기 때문에 세 시간 안에 튀겨서 팔아야 한다. 직접 와서 배워가면 모를까, 몸이 하나이니 체인점은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고집이 변함없는 맛을 만들었다.

“먹고 돌아서면 또 먹고 싶어진대요. 한 자리에서 열 개 먹는 사람도 있어요.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프라이팬에 구워 먹거나 가스레인지에 돌려서 말랑해지면 설탕 뿌려 먹는대요. 할머니들은 밥통에 쪄서 드시고, 젊은 사람들은 에어프라이어에 돌려 먹고. 할머니 한 분이 잔뜩 사가시기에 ‘어떻게 드시려고 그래요’ 하니까, ‘걱정하지 말아, 내가 알아서 먹을 테니 팔기나 해’ 그러더라고요.”

그의 하루는 새벽 다섯 시 반에 시작된다. 여섯 시면 가게문을 열고 반죽을 시작한다. 여섯 시 반쯤 첫 손님들이 온다.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가는 청소하는 아주머니들, 학교나 병원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와요. 식사 대신 먹기도 하고, 포장해 가서 동료들과 나눠 먹기도 하고. 아침에 달달한 거 먹으면 기분이 좋잖아요.”

아침 장사가 끝나면 열 시쯤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그러고 나면 점심시간을 맞은 직장인들이 몰려온다. 미리 만들어 두면 맛이 없으니 그때그때 튀겨서 판다. 오후 두세 시면 꽈배기는 동이 난다. 하루 세 번 반죽하고, 다 팔고 나면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 가게 정리를 하고 문을 닫고 나면, 열심히 일한 가족들은 각자의 생활을 누린다.

소박한 행복
“나는 어릴 때부터 가정 형편이 안 좋아서 일찍 일을 시작했잖아요. 아무것도 없이 밑바닥 생활부터 했어요. 오직 기술 배운 거, 성실한 거, 인심 안 잃은 거 가지고 여기까지 왔어요. 아들 하나 있는데, 대학 졸업하고 몇 년 직장을 다녔어요. 그러다 이 일을 하겠다고 해서, 처음에는 반대했어요. 세상 좋아지고 공부도 할 만큼 했으니 좀 편하게 살았으면 했어요. 아들만 힘들면 괜찮은데, 며느리까지 힘드니까. 이 일은 사람이 있으면 있는 대로 필요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힘 안 들겠어요. 우리 시대 살면서 고생 안 한 사람 어디 있어요. 지금 행복하고 만족하면 되는 거지. 나는 옛날에 힘들었던 얘기 별로예요. 지금 열심히 하는 거, 행복하게 일하는 거, 그게 중요하지.”

그가 삶에서 바라는 것 또한 대단하지 않다.

“내 가족,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거. 그거밖에 없어요. 이날까지 살면서 주식 한 번 안 해 보고 복권 한 번 안 샀어요. 만 원 벌면 만 원 쓰고. 일 한참 많이 하고 돈 많이 벌어 봤을 때 친구들을 많이 잃어 봤어요. 다 돈 때문이에요. 어디 가면 나보다 돈 많은 사람들 있어도 내가 카드 꺼내서 밥값 내버려요. 나는 꽈배기 열심히 만들어서 팔면 되니까. 남들은 내가 부자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굳이 돈 없다고 설명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 내겐 아들도 있고, 손자도 있고, 그럼 부자 아닌가요? 행복하니까 부자라고 생각해요.”

그의 삶은 그가 만드는 꽈배기처럼 소박하고 담백하다. 오후 세 시, 하루 일과를 마친 그는 작업복에 묻은 밀가루를 툭툭 털고 힘찬 걸음으로 가게를 나선다. 세상은 아직 한낮, 소박한 행복이 그의 앞에 활짝 펼쳐져 있다.

황경신(Hwang Kyung-shin 黃景信) 작가
하지권 사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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