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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WINTER

문화 예술

전통 유산을 지키는 사람들 막걸리의 변화를 이끌다

서울 강남 중심가에 위치한 백곰막걸리는 여러모로 이제까지의 전통 주점과 많이 다르다. 수백 종류의 한국 전통주와 양조 시설까지 갖춘 이 주점의 이승훈(Lee Seung-hoon 李承勳) 대표는 막걸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자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승훈 대표는 지방 소도시에 위치한 한 전통주 전문 주점이 최근 문을 닫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며 말문을 열었다.

“주인이 손님들한테 여러 번 멱살 잡히다가 결국 가게 문을 닫았다고 해요. 한 통에 2~3천 원이면 마실 수 있는 막걸리를 만 원에 팔았으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되는 거죠. 막걸리는 서민의 술이라 저렴하다는 인식과 정면으로 부딪친 겁니다.”

지금은 맥주와 소주에 밀려 주류 시장 점유율이 5~6%에 그치지만, 1980년대 중후반까지 막걸리는 가장 대중적인 술이었다. 퇴근길 아버지의 손에 들려 있던 검은 비닐봉지 속 두부 한 모, 막걸리 한 통이 소박한 술상이 되어 하루의 고달픔을 풀어주던 시간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선술집에서 누런 양은주전자에 담긴 뽀얀 막걸리가 누군가의 근심과 함께 끝없이 차고 비던 시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게 착한 가격과 훈훈한 정서로 대표되는 술이었던 막걸리에 변화가 일고 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지역마다 대표적인 지역 막걸리가 시장을 차지하고 있어 소비자들에겐 선택권이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저희 백곰막걸리에서 취급하는 막걸리가 60여 종이고, 가격도 예전보다 훨씬 높아져서 2만 5천 원에서 1만 오천 원 정도입니다. 이런 술들이 최근까지 하루 판매량을 제한해야 할 정도로 잘 팔렸어요.”

강남 압구정동 한복판에 위치한 백곰막걸리 주점은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지난 7월 한여름에도 매출 하락은커녕 신기록을 세웠다. 그의 가게가 무려 300여 종의 술을 갖춘 전국 최대 규모의 전통주 전문 주점이어서뿐만은 아니다. 소비자들의 입맛이 대기업 생산 일반 맥주에서 수제 맥주로 옮겨갔듯, 막걸리 소비에도 다품종 고급화 바람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다품종 고급화
탄산감이 가미된 ‘샴페인 막걸리’, 전통 쌀 막걸리에 과일과 요거트를 조합한 후 솜사탕을 얹은 ‘솜사탕 막걸리’, 양질의 원재료를 강조하는 ‘프리미엄 막걸리’ 등 소비되는 막걸리의 종류가 훨씬 다양해졌다. 또한 서울 메가 상권에서나 볼 수 있었던 고급 전통주 전문 주점이 군, 읍 등 지방으로 번지고 있는 것 역시 의미있는 변화이다. 이 대표는 그 변화의 바람 한가운데서 바람의 힘을 모으고 있는 주인공이다.

그는 “막걸리는 한국 식문화의 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막걸리는 찹쌀, 멥쌀, 보리, 밀가루 등을 찐 후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킨 우리 고유의 곡물주로 보통 멥쌀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숙성된 후에 위로 뜬 맑은 술이 청주고, 술밑을 체에 밭아 버무려 걸러낸 탁한 술이 막걸리다. 중요한 것은 쌀이 주식인 우리에게 집집마다 쌀로 빚어내는 술은 생활을 담아내는 하나의 문화였다는 점이다. 우리 민족에게 막걸리는 술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일본의 사케는 에도시대부터 양조장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어요. 우리에게도 전문 양조장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김치나 장을 담가 먹듯이 집집마다 무언가 조금씩 다른 가양주를 빚어 마셨던 특징이 있죠.”

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빚는 이의 솜씨와 가문의 비기에 따라 가정마다 고유의 향과 맛을 가진 술이 태어났다. 쌀과 누룩만으로 빚었지만 신기하게도 꽃이나 과일향 같은 깊은 향취가 나는 술도 적잖았다. 그런 술들이 제례나 혼례 같은 집안 대소사에 쓰였으며 대를 이어 전승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문화는 지속될 수 없었다. 20세기 들어 식민 통치를 거치며 허가받은 술도가만 주세를 내고 술을 빚어 팔 수 있게 되었다. 해방 이후엔 쌀이 많이 부족했던 까닭에 양곡보호령이 선포되어 전통 곡주 생산이 전면적으로 금지되었다.

“1960년대 초반부터 30년 가까이 쌀뿐 아니라 국내에서 생산된 곡물로 술을 빚는 게 금지돼 있었어요. 수입 밀가루나 옥수수 전분 같은 걸로 술을 빚게 된 거죠. 한 세대 동안 우리 재료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가양주 문화와 솜씨가 소멸될 수밖에요.”

이후 쌀 생산량이 늘고 식생활의 변화에 따라 소비량은 줄면서 쌀이 남아돌자 그제야 쌀막걸리 제조가 허용되었다. 그러나 이미 옛맛을 찾기는 어려워졌다. 1995년부터 일반 가정에서도 막걸리를 만들 수 있게 됐지만, 가양주 전통은 희미해졌고 몇몇 제조업체가 대량 생산한 막걸리만 유통될 뿐이었다. 수입산 쌀 70~80%에 아스파탐 등의 인공 감미료를 넣고, 누룩 대신 인공 배양 효모를 사용한 저가의 막걸리만 양산되었고 소비자들도 그 맛에 익숙해져 갔다.

그는 저가 막걸리 대여섯 병에 만취하고 끝날 우리들의 저녁을 다르게 바꿔 보고 싶단다. 예를 들어 가벼운 맛 뒤로 꽃향이 일고 화이트 와인의 깔끔함까지 더해지는 약주 한 병의 은근한 풍성함을 천천히 음미하거나, 또는…

전통주의 확산
2000년대 말 즈음에 막걸리 시장에 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독과점 브랜드 일색이던 시장에서 지역 막걸리 브랜드들이 점유율을 높이기 시작했고, 일본인 관광객들을 중심으로 ‘막걸리 열풍’도 불었다. 잊혔던 막걸리의 맛과 가치를 재발견하는 분위기가 성숙되자, 크고 작은 가양주 교육 기관에서 막걸리를 직접 빚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퇴직자나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직접 술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중요한 점은 그 사람들이 자신이 집에서 마실 술을 빚고 즐기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가양주를 문화적으로 퍼뜨리게 되었다는 점이죠. 전통적인 양조 방법을 따르면서 사케나 와인과도 경쟁할 가능성이 생긴, 품질이 충분하다고는 볼 수 없어도 유의미한 술이 많이 생겼어요. 또 그 사람들 중 일부가 양조장이나 전통주 주점, 음식점 등을 개업하기도 했고요.”

달아오르던 열기가 폭발한 것이 2016년경이었고, 이 대표도 그해 백곰막걸리를 열었다. 2010년부터 양조장 400여 곳을 찾아다니며 오로지 전통주와 함께했던 시간의 결실이었다. 그는 ‘자신들이 얼마나 좋은 술을 만들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또 ‘그 술을 어떻게 팔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양조장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전국에서 구한 좋은 막걸리를 차에 싣고 다니며 여기저기 모임에 가져가서 소개하고, 다른 사람들의 가게를 빌려서 팝업 행사도 하면서 꿈을 꾸었죠. 양질의 막걸리를 상시 판매할 수 있는 매장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거죠.”

그는 자신의 가게를 기지 삼아 전통주의 확산과 발전에 기여할 방법을 찾고자 했다. 일단 다양한 술을 갖춰 고객들의 선택지를 넓혔다. 직접 빚은 술의 품평을 부탁하며 찾아온 이들과 수없이 마주 앉았고, 시판 예정인 브랜드와 뜻이 맞는 경우 자신의 인적 물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출시와 판매의 길을 터주기도 했다.

“제 가게에서 팔 수 있는 술의 양에는 한도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스스로 홍보를 위한 안테나숍 역할을 맡은 거죠.”

그는 자신의 가게를 전통주 인력 양성 장소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곳의 직원들은 국가 대표 전통주 소믈리에 경기 대회에서 메달을 싹쓸이할 정도로 전문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많은 종류의 전통주와 다양한 손님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훈련되는 환경이 키운 실력이기도 하지만,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이 대표의 파격적인 지원 역시 한몫했다. 그는 자원하는 직원들에게 국내 대학과 학점은행제 강의 수강뿐 아니라 일본공인사케소믈리에 자격증 과정 등 해외 전문 코스 교육도 아낌없이 지원한다. 양조, 연구, 소믈리에, 창업 등 모든 단계의 전통주 관련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배출하고자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의 요구
이쯤에서 그가 꿈꾸는 ‘막걸리 맛’은 어떤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손에 닿는 막걸리의 맛을 모조리 감별하고 분석해 봤을 그였지만, 답은 의외로 담백했다.

“심오하거나 민감한 맛에 대한 얘기보다는 오히려 주점과 소비자의 접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제 시각보다는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다가설지를 먼저 생각해요. 대중성을 갖춘, 팔릴 수 있는 술인지를 봐야죠. 전문가의 패러독스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그는 고문헌에 나타난 전통주를 재현하는 작업에도 자신만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

“순전히 전통 방식으로 만들게 되면 지금의 기준에선 들쩍지근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요. 물론 그런 전통의 맛을 그대로 유지하는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우리 시대 시장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찾아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CJ프레시웨이에서 수산물, 축산물 MD로 전국 산지를 누비던 전직의 경험을 살려 술과 음식의 페어링에도 특별한 관심을 쏟는다. 예를 들어 ‘통영 욕지도산 고구마로 만든 소주와 통영 앞바다 명물 딱돔으로 만든 안주’처럼 가장 훌륭한 조합은 지역성을 맞춘 페어링이란 접근처럼 말이다. 최근에는 전통주 도매 유통으로 관심을 넓히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주점에서 이 술을 주력해서 팔면 저 술이 덜 팔리죠. 그런데 도매는 달라요. 내가 홍보하고 다니면서 어떤 술을 이 주점에도 제안해 보고, 한식당이나 양식 레스토랑에도 넣어 보고…. 노력하기에 따라서 살아남아야 할 양조장을 살릴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전국의 양조장들이 최소한 문을 닫지 않게 도울 수만 있어도 보람될 것 같아요.”

그는 저가 막걸리 대여섯 병에 만취하고 끝날 우리들의 저녁을 다르게 바꿔 보고 싶단다. 예를 들어 가벼운 맛 뒤로 꽃향이 일고 화이트 와인의 깔끔함까지 더해지는 약주 한 병의 은근한 풍성함을 천천히 음미하거나, 또는 조선 시대 주막에서 팔았던 막걸리와 가장 흡사할 듯한 간결하고 원시적인 단맛에 젖어 보는 저녁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강신재(Kang Shin-jae 姜信哉) 자유기고가
안홍범 사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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