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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SUMMER

생활

라이프스타일 당신이 잠든 사이에

‘새벽 배송’과 ‘총알 배송’– 최근 들어 한국의 대도시 주민들에게 익숙해진 생활 방식이다. 말 그대로 주문한 날 당일에 물건이 대문 앞에 도착하고, 한밤중에 주문한 식사가 아침 식탁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엄청난 편의성의 이면에는 배송 기사들의 고된 노동과 과도한 포장재로 인한 문제들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곤 했다. 대개는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 온 가족이 함께 나들이하듯 쇼핑을 한 후 때로는 함께 외식을 즐겼고, 그렇게 사온 식료품으로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데 2~3년 전 우연히 새벽 배송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 후부터 대형마트에 가는 횟수가 차츰 줄더니, 1년 전부터는 아예 발길을 끊게 되었다.

새벽 배송은 2015년 국내의 한 스타트업 업체가 시작해 열풍을 일으켰으며, 유통업체들 사이에서 경쟁적으로 서비스가 확산되고 있다. 새벽 배송을 한 번도 이용해 보지 않은 사람은 있을지언정 한 번으로 그치는 사람은 없다. 그 편리함에 한번 맛을 들이면 시간을 들여 장을 보러 가는 행위가 매우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는지 계속 늘기만 하던 대형마트의 점포수가 하나둘 줄기 시작했고, 급기야 최근에는 폐점되는 점포가 속출하게 되었다.

한 스타트업 업체의 물류 창고.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고르고 포장하는 작업이 24시간 계속되는 곳이다. ⓒ 마켓컬리

식품에서 세탁까지
아침 식사를 위한 식재료는 전날 저녁 집 냉장고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저녁을 먹고 나서 가족들과 내일 아침은 뭘 먹을지 이야기하고, 필요한 식재료를 새벽 배송 서비스로 주문하면 되기 때문이다.

대개 밤 10시 전후에(일부 업체는 자정까지) 주문을 마치면, 곧바로 새벽 2시부터 아침 7시 사이에 주문한 물품의 배송이 완료된다. 유통기한이 긴 가공식품이나 공산품만 배송되는 것은 아니다. 과일과 채소, 고기 같은 신선한 식료품부터 꺼내어 바로 먹을 수 있는 조리된 음식까지 가능하다. 빠른 배송은 식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내의 한 패션 기업은 고객이 온라인 쇼핑몰에서 오전 10시 이전에 주문하면 당일 오후에 옷을 배송해 준다. 화장품 브랜드 중에서도 총알 배송을 하는 곳들이 늘고 있다. 이쯤 되면 배송의 속도는 더 이상 상품의 속성과 무관하다.

나도 새벽 배송으로 식료품만 사는 것이 아니다. 세탁 서비스도 이용한다. 양복이나 셔츠 등 드라이클리닝을 맡길 세탁물을 종이 가방에 담아서 문 앞에 두면 새벽에 세탁물을 수거해 간다. 이 옷들은 말끔하게 세탁되어 이틀 후 새벽 문 앞에 다시 걸려 있다. 세탁소에 직접 가서 맡길 필요 없이 스마트폰 앱으로 주문하면 깔끔하게 처리된다. 옷뿐만 아니라 신발과 가방, 이불까지 세탁이 가능하고 수선도 해준다.

배송 서비스는 시간도 절약해 준다. 내 기준으로 보면 일주일에 한 번 마트까지 오고 가는 시간과 장 보는 시간을 합치면 아주 적게 잡아도 1시간 이상 소요된다. 장보기에 연간 최소한 50~60시간을 썼던 셈이다. 마트가 멀거나 쇼핑을 더 오래 하는 사람들은 100시간이 넘을 수도 있다.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누군가 나를 위해 일을 해준 덕분에 나는 시간을 그만큼 아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물류 시스템과 배송 인력들이 한밤중에도 가동된다. 그들은 밤에 일하고 낮에 쉰다. 다른 사람들의 편리를 위해 그들은 밤낮이 바뀐 삶을 산다.

밤 늦은 시간에 주문한 물건을 몇 시간 안에 배달해 주는 새벽 배송 서비스 이용자가 늘어남에 따라 택배 기사들의 노동 환경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 쿠팡

최근에는 편리함뿐 아니라 비대면 방식이 배송 서비스의 큰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중요해진 코로나19 상황에서 마트에 가서 사람들과 마주칠 일도 없고, 배송 인력과 얼굴을 대할 필요도 없으니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다.

배송 노동자들
이렇게 빠른 배송이 어떻게 가능하게 된 것일까? 이것은 분명히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와 관련이 있다. 급속한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뭐든 빠르게 행동하고 빠르게 답을 원하는 문화가 한국인의 특성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의 관공서만큼 빠르게 일 처리를 해주는 곳도 드물다. 이런 특질은 재난이나 위기 상황에서 더더욱 효과를 나타내 코로나19 대응에서도 빛을 발했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굳이 빠를 필요 없는 것까지 빨라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배송 서비스 종사자들의 노동 강도가 높다. 새벽 배송과 총알 배송을 확산시킨 일등 공신 중 하나가 배송 노동자들인데, 그들이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감수하고 있기에 소비자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편리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최근 들어 이러한 과잉 속도에 문제를 제기하며, 이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확산되고 있다.

COVID-19 이후 고객이 주문한 제품을 문 앞에 걸어두고 가는 비대면 배송 서비스가 더욱 늘고 있다. ⓒ SSG.COM

과도한 포장재 쓰레기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최근 유통 업체들은 포장재를 최소화하고 친환경 및 재활용 가능한 소재를 개발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마켓컬리

넘쳐나는 포장재
새벽 배송의 핵심은 역시 신선한 식품을 빠르게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포장재가 매우 중요하다. 신선도 유지를 위해 아이스팩이 쓰이고, 식품의 손상을 막기 위해 스티로폼 박스에 완충재가 함께 포장된다. 처음 새벽 배송 서비스가 도입되었을 때는 놀라운 편리성에 가려져 과도한 포장재가 일으키는 문제가 간과되었다. 그러나 차츰 쓰레기 분리수거 등 일상생활에서 번거로움이 발생하자 이 문제가 민감하게 떠올랐다. 나처럼 새벽 배송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은 집 안에 스티로폼 박스와 완충재 등 여러 가지 포장재 쓰레기가 쌓이기 마련인데, 버려도 버려도 끝이 없다.

유통업체들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에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선 시장을 성장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될 수 있는 대로 재활용 가능한 소재를 쓰고, 포장도 최소화시킨다. 가령 아이스팩은 종이팩 안에 물을 얼려서 쓰는 방식으로 바꿨고, 포장 테이프도 비닐 대신 종이로 바꿨다. 일부 업체에서는 포장재를 수거해 가서 소비자의 불편을 줄여 주고 있다.

이런 변화는 식품 위주의 새벽 배송에서 시작되어 모든 쇼핑 분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일례로 국내 굴지의 화장품 회사는 포장 박스를 제품 크기별로 세분화하여 만들었다. 크기가 작은 상품을 큰 박스에 넣은 뒤 완충재를 잔뜩 채워서 발송했던 기존 방식이 쓰레기를 양산했기 때문이다. 이 기업은 완충재도 비닐로 된 에어캡 대신 재활용 가능한 종이 재질로 바꿨다. 기업은 비용이 더 들겠지만, 덕분에 쓰레기가 줄고 있다.

비대면 서비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여러 나라에서 생활용품 사재기 소동이 일었으나 한국은 예외였다. 이건 시민 의식만의 문제가 아니라 안정적인 물류와 배송 시스템이 있고 없고의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원하면 무슨 상품이든 대문 앞까지 바로바로 가져다주는데, 굳이 대형마트에서 몇 주일치 식량을 잔뜩 사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최근에는 편리함뿐 아니라 비대면 방식이 배송 서비스의 큰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중요해진 코로나19 상황에서 마트에 가서 사람들과 마주칠 일도 없고, 배송 인력과 얼굴을 대할 필요도 없으니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다. 세계적 질병의 확산이 방아쇠가 되지 않았더라도 배송 서비스는 이미 급성장하는 시장이었고, 이제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비대면 방식의 배송 서비스가 가능한 이유는 물건이 분실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카페에서 랩탑컴퓨터나 소지품을 그대로 두고 화장실에 다녀와도 물건이 분실되는 일이 거의 없다. 상점들도 마음 놓고 상품을 문 밖에 진열해 놓는다. 만약 이런 신뢰의 사회적 분위기가 아니라면 새벽 배송이 새로운 생활 양식으로 자리 잡기 어려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집 앞에 배달된 물건을 누가 집어 갈까 염려되어 잠을 설친다면 어떤 사람이 이런 서비스를 이용하겠는가?

김용섭(Kim Yong-sub 金龍燮) 트렌드 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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