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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SUMMER

생활

연예토픽 영화가 재난을 다루는 방식

한국인들은 왜 재난에 남다른 문제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가? 그들은 어떻게 COVID-19로 벌어진 글로벌 팬데믹 속에서 상대적으로 발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 최근의 재난 영화들을 통해 대답을 찾아본다.

봉준호(Bong Joon-ho 奉俊昊) 감독의 2006년작 <괴물(The Host)>은 개봉 전 괴수물로 알려졌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재난 영화의 코드들을 담고 있었다. 영화는 한강변에 출몰해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는 괴물보다는 그로 인해 야기되는 상황에대처하는 정부의 태도에 더 집중하며 이야기를 전개시켰다. 미온적인 정부의 대처 때문에 결국 힘없는 소시민이 괴물과 대결할수밖에 없는 설정은 봉준호감독 특유의 블랙코미디 방식이다.

이 영화가 누적 관객수 1,300만 명을 넘기며 당시로서 역대 흥행 1위를 기록하게 된 것은 그해 여름 집중호우로 발생한 수재의 영향도적지 않았다. 수천억 원의 재산 피해와 수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던 재난을 겪으며 사람들은 ‘진짜 괴물은 재난 자체가 아니라재난에 대처하는 자세’라는 이 영화의 메시지에 더욱 공감할수 있었다.

봉준호(奉俊昊) 감독의 2006년 작 <괴물>의 한 장면. 이 영화 이후 한국형 재난 영화의 성공 방정식이 만들어졌다. ⓒ영화사 청어람(Chungeorahm Film)

한강 둔치에 괴수가 나타나자 이곳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강두(康斗)가 딸 현서(玄舒)의 손을잡고 황급히 도망치는 장면. <괴물>은 무능한 정부와 허술한 재난 대응 국가 시스템을 비판하는 블랙코미디 영화이다.

성공 방정식
<괴물> 이후 국내 재난 영화에는 새로운성공 방정식이 만들어졌다. 2009년 개봉한 윤제균(Yoon Je-kyoon 尹濟均) 감독의 <해운대(Haeundae)>는 부산의 바닷가 해운대를 덮친 쓰나미를 소재로 다뤄 1,1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이 영화는 해외의 재난 영화들과 달리 시각적 스펙터클보다는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감정과 갈등을더 부각시켰다. 바로 이 점이 한국형 재난 영화의 특징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이후에 만들어진 재난 영화들도 대부분 이 공식을 좇아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지나치게 감정에 호소하는 신파적요소가 강한 영화들이 만들어지면서 재난 영화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다시 관객의 눈을 사로잡은 영화가 연상호(延尚昊 Yeon Sang-ho) 감독의<부산행(Train to Busan)>(2016)이었다. 부산행KTX에 갑자기 출몰한 좀비떼들과 시민들의 사투를 그린 이 영화는겉으로는 좀비 장르를 표방했지만, 한층 진화된 재난 영화의양상을 보여 줬다. 한국 사회의 압축 성장을 빠른 속도로 달리는 KTX에 비유하고,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좀비들을 통해 개인보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한성장 일변도의 한국 사회를 풍자했다.

디지털 민주화
2014년 수학 여행을 떠난 고교생들을 포함해 수백 명의 승객이 희생된세월호 참사는 재난에 대한 한국인들의 분노를 최대치로 끌어올린 사건이었다. 불가항력적 사고가아니라 컨트롤 타워의 부재로인한 인재임이 드러나면서 당시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촛불시위로 이어졌고, 마침내대통령 탄핵의 중대한 불씨 중 하나가 되었다. 탄핵 소추안이 발의됐던 2016년에는 <부산행>을 비롯해 터널 붕괴 사고를 소재로한 <터널(Tunnel)>과 원전 사고를다룬 <판도라(Pandora)> 등 다른 해보다재난 영화가 더 많이 개봉되었다.

대통령탄핵 같은 중대한 민주적 절차의 경험이 한국에서 가능했던 것은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된 ‘디지털민주화’의 영향 때문이라 할 수 있다. 1980년대의민주화 운동이 서울역이나 광화문광장 같은 물리적 공간에서 벌어졌던 데 반해 2000년대에 접어들어 그 무대가인터넷 공간으로 옮겨지며 사회적이슈가 더 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될 수 있었다. 한층 빨라진 통신 속도와 넓어진가상공간, 모바일 보급률은 정치적 주화뿐만 아니라재난까지도 보다 적극적인 비판과 대안의 제시를 가능하게 했다. 연이은 재난 영화들이 비판적으로 담아냈던 메시지, 즉 ‘무능하고 불투명한 컨트롤 타워’의 문제는 소셜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여론을 통해 현실적개선과 변화로 이끄는 데 기여했다.

좀비로 변하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 연상호(延尚昊) 감독의 2016년 작 <부산행>은 표면적으로 좀비 장르를 표방하고 있으나, 과속 성장에 매몰된 한국 사회를 풍자한 재난 영화의 우수작으로 손꼽힌다. ⓒ Next Entertainment World

유독 가스가 도시 전체에 퍼진 위급 상황을 유머 코드를 섞어 그린 이상근(李相槿) 감독의 2019년 개봉작 <엑시트>는 재난을 다루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 줬다. ⓒ CJ ENM

백두산 화산 폭발을 막기 위해 남북한이 협력해 한반도의 위기를 함께 극복한다는 가상의 내용을 다룬 2019년 개봉작 <백두산>. 이해준(李海准), 김병서(金丙书) 공동 감독 작품으로 장르적 재미를 내세우며 흥행에 성공했다. ⓒ CJ ENM

장르적 재미
한국에서 재난 영화는 계속 흥미로운 장르이고, 재난을 다루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예를 들어 2019년엔 유독가스가 뒤덮인도시에서의 탈출을 그린 <엑시트(EXIT)>가 누적 관객수 940만 명을 기록했고, 백두산 화산 폭발이란 가상적 상황을 통해 남북한의 공조를 다룬 <백두산(Ashfall)>은 총 825만 명이 관람했는데, 이 두 영화는 모두 사회 비판적요소 대신 장르적 재미를 전면에내세웠으며 유머 코드를 장착했다.

이 같은 흐름을 통해 재난을 바라보고 대응하는 한국인들의 의식 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 또한 유능한 컨트롤 타워와 투명한 정보 공개의 요구와 같은 주제 의식은 그간 한국인들이 겪었던 무수한 재난 상황들의 아픈 경험들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COVID-19로 재평가된 <감기>

COVID-19 팬데믹으로 인해 다시 주목받고 있는 김성수(金性洙) 감독의2013년 작 <감기>. 영화 포스터 속 마스크를 쓴 시민들의 모습이 이제 일상적인 현실이 되었다. ⓒ CJ ENM

전 세계로확산된 COVID-19는 마치 이를 예고한 듯한 재난 영화들에 대한 새삼스러운 관심을불러일으키고 있다. 그중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영화가 김성수(金性洙) 감독의 2013년 작 <감기(The Flu)>다. 이 영화는 호흡기로 감염되는 치사율 100%의 바이러스가 서울 근교 도시에서 발생해전국으로 퍼져나가며 야기되는 혼란의양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감염자의 재채기로 난사되듯 날아가는 비말 장면은 COVID-19를 현실의 공포로 마주한사람들에게 섬뜩한 장면으로 다가온다. 생존자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감염 확산을 우려해 감염자들을 살처분하는 영화적 연출이 매우 끔찍하다.

이 영화 역시 바이러스의 공포보다는 정부의 통제와 감시에 대한 비판에 무게를 두고 재난 상황에서 국가의 진정한 역할이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정덕현(Jung Duk-hyun 鄭德賢)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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