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나, 밀레나, 황홀한」은 배수아의 단편 소설이다. 작가 배수아는 최근 몇 년 동안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의 노력 덕에 영미권에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 최근작은 스트레인저스 프레스의 ‘여유 시리즈’에서 소책자로 출간되었다. 한국어 ‘여유’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데, 영어로 번역하기에 쉽지 않지만 ‘leisure(여가)’나 ‘ease(안락함)’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어떤 것을 가리킬 수 있다. 시리즈 이름이 적절해 보이는 이유는 작품을 짧은 여유 시간을 이용해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생각에 잠기는 독자는 읽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거나 다시 읽어 보기를 원할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는 주인공 험윤이 늘 해온 대로 아침을 만드는 과정으로 시작된다. 곧바로 하나의 특징이 눈에 띄게 되는데 그는 습관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다. 한 인간의 개성이 그렇듯 여기에도 양면이 있다. 한편으로 그것은 익숙함과 일상의 틀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그래서 새롭고 낯선 경험을 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성격적 특징이다. 극단적인 경우에 그런 사람은 아주 지루한 인물일 수 있다. 다른 한편, 그런 사람은 확고부동하고 의지력이 강하며 자기훈련이 잘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두 가지 면이 서로를 완전히 배제하는 경우는 드물고 험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독자는 그에 대해 좀 더 알게 된다. 그가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사실 같은 것. 그런데 그는 집의 여러 장소에 다양한 책을 늘어놓고 이 책에서 저 책으로 각기 다른 시간에 가볍게 건너뛰면서 책에 몰입하는, 조금 독특한 독자이다. 이런 모습은 틀에 얽매인 사람보다 다양한 경험에 개방적인 사람의 특징이다. 그런데 여전히 여기에도 어떤 질서가 있다. 특정 공간에서 특정한 형태의 책을 선호해서 읽는 식으로. 예를 들어 에스프레소 커피를 즐겨 마시는 카페를 방문할 때는 희곡 작품을 읽는 식이다.
이처럼 다방면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질서가 잡힌 삶 속에 작가는 무작위적인 요소를 가끔 집어넣는다. 예를 들어, 주인공은 아침 조깅 중에 기수 없는 은색 말을 우연히 보게 되고, 미지근한 물을 받은 욕조에서 휴식을 취하며 읽으려 손을 뻗었을 때 신비롭게도 자신이 모르는, 기억에도 없는 책, 이 단편의 제목이 나오게 된 책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발견하는 일 같은 것이다. 이야기가 깊이를 더해가는 건 험윤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갖게 되는 때이다. 이야기의 4분의 1 지점까지 우리는 험윤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데 세상의 눈을 통해 그를 바라보기 시작하면서부터 완전히 다른 사람을 보는 것처럼 느낀다.
이야기의 후반부에서 그는 멋진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있다. 우연처럼 보이는 만남 후 그는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어떤 문을 통과할 것인가? 약간의 ‘여유’를 갖고 짬을 내서 읽을거리를 찾고 있다면 이 단편이야말로 그 시간을 채워주기에 아주 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