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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AUTUMN

생활

사진 에세이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곶감

군것질 중에서도 나는 유난히 곶감을 좋아한다. 농촌에서 자란 나의 어린 시절이 그 속에서 추억의 단맛을 되살려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요즘도 저녁에 간혹 속이 출출해질 때면 문득 생각나는 것이 곶감이다.

감나무는 본래 극동 지역인 중국, 한국, 일본에서만 자란다고 한다. 어린 시절, 내 고향집에는 감나무가 많았다. 6월이면 환하게 피었다가 나무 아래 자욱이 떨어지는 그 연한 베이지색 꽃잎들을 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며 놀았다. 반드러운 감나무 잎으로는 가을 햇곡식으로 만드는 맛난 떡을 쌌다. 감나무가 주는 최고의 선물은 그 탐스러운 열매다. 무르익은 홍시도 달고 부드러워 맛난 과일이지만, 역시 껍질을 깎아 말려 저장하는 곶감을 따르지는 못한다.

볕이 좋은 가을날, 온 집안 어른들이 들마루에 둘러 앉아 수북이 따다 쌓아 놓은 떫은 생감의 껍질을 얇고 예쁘게 깎는 일은 축제다. 그렇게 깎은 감은 마당의 시렁에 넓게 편 발 위에 줄 맞추어 널어 말린다. 윗부분이 물기가 마르고 색이 거무스레해지면 뒤집어서 또 말린다. 어느 정도 마르면 그 말랑말랑한 육질의 촉감이 절로 입에 침이 고이게 한다. 정성스레 말린 곶감은 항아리 속에 보관했다가, 호두를 안에 싸서 곶감쌈을 만들거나 수정과를 만들기도 하지만, 대개는 곶감 그대로 제사상에 올리고, 긴긴 겨울밤을 넘기는 야식으로 즐긴다. 단것이 귀했던 그 옛날, 발 위에 널린 것들 중 한두 개를 슬쩍하고 싶은 유혹과 그 빈자리의 두려움 사이에서 애태우던 내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고향 마을 가을볕 속에 서성인다.

오늘날에는 기술이 발달하여 자동 기계로 감을 깎는다. 그러고는 플라스틱 집게 같은 건조 도구에 꼭지를 끼워 덕장에서 대량으로 건조시킨다. 이렇게 햇빛과 바람에 노출되어 60일 이상 말리면 고운 갈색 과육이 하얀 분에 감싸인 달콤하고 쫀득한 상품이 된다. 그 곶감 속에는 우리 모두가 어릴 적에 들었던 재미난 옛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옛날 옛적, 어느 깊은 밤, 호랑이가 산에서 내려와 어떤 집 뒤뜰을 서성이다가 방 안에서 어머니가 우는 아이 달래는 소리를 듣는다. “호랑이가 왔다. 울지 마라.” 그래도 아이가 계속 울자 어머니가 “아가, 여기 곶감 봐라, 울지 마라.” 하자 아이가 울음을 뚝 그친다. 호랑이는 곶감이 자기보다 더 무서운 존재라 여기고 겁이 나서 도망갔다. 호랑이가 사라진 오늘에도 곶감은 남아 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김화영(Kim Hwa-young 金華榮) 문학평론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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