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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AUTUMN

생활

책+

암살자를 둘러싼 소름 돋는 스릴러물, 그 이상의 소설

『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소라 김-러셀(Sora Kim-Russell) 번역, 304쪽, 25.95달러, 뉴욕 더블데이 출판사, 2019년

김언수의 『설계자들』은 암살자와 살인 청부업자의 음지 세계로 독자를 몰아넣는다. 그곳에서는 문명이라는 허울 아래 고위 권력자들이 자신의 적을 정밀 타격하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세계는 다채롭고 매력적인 인물들로 가득하다. 스스로 ‘개의 도서관’이라 부르는 도서관에서 암살단을 운영하는 ‘너구리 영감’, 반려동물을 화장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기적으로 사람 시체를 태우는 화장장 주인 ‘털보’, 시대 변화의 흐름을 간파하고 살인 청부업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암살자 ‘한자’, 장막에 가려진 무시무시한 칼잡이 ‘이발사’, 평범한 삶을 사는 게 목표인 추적자 ‘정안’, 세상을 뒤집어 버릴 중요한 계획을 짜고 있는, 전혀 그럴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설계자 ‘미토’가 그들이다.

이들 모두의 중심에 우리의 주인공 암살자 래생(이 특이한 이름은 ‘사후 세계’를 의미한다)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도서관에서 자란 그는 너구리 영감의 신임을 받는 오른팔의 위치에 오른다. 라이플총의 조준경을 통해 대상을 바라보는 저격수의 모습으로 처음 등장하는데, 그가 저격 대상인 인물을 대하는 모습에서 독자는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래생은 실력 있는 암살 전문가이지만 인간적인 깊이가 있다. 암살, 적어도 그 일이 귀결되는 방식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추동력이며 결국 래생과 너구리 영감이 한자와 정면 충돌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래생이 알지 못하는 사이 한 무리의 여성들이 그의 일을 방해하고 결국 그의 세계를 서서히 멈추게 하려 한다. 늘 다른 이들로부터 명령을 받는 암살자로 더 큰 게임의 볼모이기도 한 래생은 이제 자신의 길을 선택해야 하고, 어떻게 마지막 게임을 끝낼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광범위한 형태로 확장되고 있는 설계자, 암살자, 추적자, 훈련관의 지하 세계라는 설정이 얼핏 공상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김언수의 이야기는 신빙성이 있다.

설득력 있게 보여 주는 남한의 현대사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채로운 인물과 그들의 세계가 입체적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소설은 믿기지 않는 공상이 아니라 바로 코앞에 존재하지만 그 실체를 전혀 알지 못했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소설은 ‘설계자들’을 제목으로 하지만 이들은 소설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는데 - 독자는 인질들의 행보를 따라가지만 그들을 움직이는 손은 보지 못한다 - 결국 가장 뛰어난 설계자는 작가 자신이다. 그는 독자를 인물들의 이야기 속으로 깊숙이 끌어들이면서 소설 막바지까지 긴장과 미스터리를 조성하는 플롯을 정교하게 직조한다. 미토의 설명대로, 세상의 문제는 사람들이 악해서가 아니라 “모두가 그럴듯한 사연과 변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설계자들』이 암살자에 관한 내용 그 이상임을 깨닫는다. 소설은 현대 사회에서 인간적인 삶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얘기한다. 각각의 인물은 자신이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아내야 한다.

한국 고전 소설의 새로운 해석

『구운몽』

김만중 지음, 하인즈 인수 펜클(Heinz Insu Fenkl) 번역, 288쪽, 17달러, 런던 펭귄북스 출판사, 2019년

김만중의 『구운몽』은 고유한 의미와 정취 덕분에 긴 시간을 통과해 살아 남은 전통의 일부인 한국 고전문학의 주요 작품이다.

번역자 하인즈 인수 펜클이 언급한 대로 소설은 이전에 영어로 몇 번 번역이 되었다. 가장 잘 알려진 번역본은 제임스 스칼스 게일(James Scarth Gale)의 1922년 본과 리차드 러트(Richard Rutt)의 1974년 본이다. 하지만 러트의 번역 이후 거의 반세기가 지났고 새 번역본 출간은 이전의 번역본을 구할 수 없었던 독자에게는 꽤나 반가운 일이다.

현대의 독자에게 17세기 한국 소설이 9세기 중국 당나라를 배경으로 해서 한자로 쓰였다는 사실이 이상해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일이 예외적이지 않았다. 『구운몽』은 이전에 있어온 것의 모방을 넘어선다. 소설은 참조 문헌으로, 정치적 풍자로, 불교에 대한 명상 등 다양한 측면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문학의 뿌리, 그리고 현재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꼭 읽어 봐야 할 소설이다.

새 번역본은 이전 번역본의 몇몇 문제점을 다루면서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언어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적인 어조와 분위기는 잘 살려내고 있다. 또한 충분한 해설을 통해 독자가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작품의 여러 의미 층위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현대 독자에게 고전 작품을 전달하는 것 이상으로 새 번역본은 그 자체로 뛰어난 번역 전통에 합류하게 되었다.

맥주 한 잔, 해변의 여름은 간다

「Where We Were Together」

세이수미, MP3 앨범 8.99달러, 런던 댐나블리(Damnably) 레이블, 2018년

‘세이수미’는 네 명의 젊은 뮤지션들 — 최수미(Choi Su-mi 崔守媄, 보컬, 리듬기타), 김병규(Kim Byung-kyu 金秉奎, 리드기타), 하재영(Ha Jae-young 河載榮, 베이스), 김창원(Kim Chang-won 金昌源, 드럼) — 이 부산의 한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의기투합해 2012년 결성한 밴드다. 해변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연습하고 동네 바에서 공연했다. 시큼한 향의 빈 맥주 캔과 병이 늘어날수록 이들의 음악은 적지 않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발자취를 남겼다.

이들의 음악은 비치 보이스(Beach Boys)처럼 ‘서프 록(surf rock)’이라는 장르로 범주화되곤 하는데, 그만큼 해변과 어울린다. 광안리 해변에서 연습하던 지역 밴드가 세계적인 반열에 오르는 데는 엘튼 존도 한몫했다. 자신의 팟캐스트에서 세이수미의 ‘Old Town’을 소개하면서 “끝내주는 곡”이라고 이들을 치켜세웠다.

이 밴드의 두 번째 앨범 「Where We Were Together」를 플레이어에 걸면 첫 곡 ‘Let It Begin’ 에서 파스텔톤 해변의 낭만이 신나지도 우울하지도 않게 담담하게 우리 앞에 선다.

‘But I Like You’ 는 최수미의 몽환적인 보컬이 기타 톤과 발랄하면서도 그을린 듯 몽롱하게 어우러진다. 앨범의 백미인 ‘Old Town’은 유명세를 얻은 곡답다. 적당한 질주감에 반복해서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다. 끝 곡인 ‘Coming to the End’에서 느껴지는 아픔과 여운은 신나게 질주하던 곡들의 빈틈을 채우며 앨범을 더욱 묵직하게 만든다.

여름과 바다의 낭만은 영원하지 않다. 사람들이 떠난 가을의 초입에 해변은 쓸쓸해진다. 따뜻한 온기에서 서늘한 쓸쓸함까지 전달해 주는 세이수미의 노래들에서 때로는 여름의, 가끔은 가을의 해변을 느낀다.

찰스 라 슈어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 대원문화재단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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