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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AUTUMN

생활

두 한국 이야기 ‘통일 경험’에서 희망을 보다

남북한의 정치 외교적 현안과 무관하게 인도적 지원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995년부터 대북 지원 사업을 벌여오고 있는 국제 구호 단체 굿네이버스의 이일하(Yi Il-ha 李一夏) 이사장을 만나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본다.

2004년 굿네이버스 이일하 이사장이 평양에서 약 55km 거리에 위치한 남포시의 남포 육아원을 방문하고 있다. 국제 구호 개발 지원 단체인 굿네이버스는 1995년 이후 북한에 아동 보호 지원, 농축산 개발, 보건 의료 지원 분야의 인도적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이일하 굿네이버스 이사장은 지난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렬을 안타깝게 지켜봐야 했다. 국제 구호 개발 지원 단체인 굿네이버스의 창립자이자 ‘한국 NGO계의 대부’로 불리는 그는 오랫동안 정체 상태였던 대북 지원 사업을 본격적으로 재개할 채비를 마쳤던 터였다. 그는 북미 관계가 풀리면 북한에 대규모 젖소 목장과 우유 가공 공장을 세운다는 목표를 세워 두고 있었다. 돼지·소·닭을 키우고, 소시지 공장을 비롯한 축산 가공 공장도 만들 예정이었다. 또 북한에서 생산한 삼계탕을 남한에 유통시킬 계획도 갖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북한의 낙후된 보건 의료 시스템과 의료 시설을 개선하기 위해 제약 연구소, 제약 공장, 병원 등을 설립해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상도 세워 두었다. 주사제와 캡슐제를 만드는 공장을 두 군데 짓고, 한약도 생산할 수 있기를 고대했다. 하지만 북미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자 그의 이 같은 청사진의 실현도 또 한 번 멈추어 섰다.

젖소 지원 사업
그동안 굿네이버스가 펼쳐온 대북 민간 지원 사업은 아동 보호 지원, 농축산 개발, 보건 의료 지원 분야로 나눌 수 있다. 만성적 식량 부족과 열악한 의료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이념을 뛰어넘은 인도적 지원 사업을 벌여 왔다. 그 시작은 1995년이었다. 굿네이버스는 북한에 식량과 생활필수품 등을 지원하며 인도적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1997년에는 밀가루, 치과병원 설립 기자재, 작업복, 면장갑 등을 지원했다. 같은 해 이일하 이사장은 유엔에 속한 비영리기구(NPO)의 수장으로서 처음 북한을 방문했다. 그는 이후에도 120여 차례 북한을 방문했고, 굿네이버스 관계자들의 방북까지 합하면 그 횟수가 140여 회에 이른다.

그러던 중 굿네이버스의 대북 지원 패러다임이 바뀌는 일이 일어났다. 1998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트럭에 1,001마리의 소를 싣고 판문점을 넘어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하는 이른바 ‘소떼 방북’을 단행했다. 이를 계기로 굿네이버스도 같은 해 9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북한에 젖소 200마리를 싣고 가 목장을 조성했다. 당시 북측은 정 회장 때와는 달리 비공개를 요청했고, 굿네이버스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소 200마리를 북한에 보내는데 비밀이 지켜질 리 없었다. 100마리씩 인천에 가서 한 달 동안이나 검역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젖소를 실은 트럭 10여 대가 검역소를 거쳐 인천항으로 향하는 모습이 TV 카메라에 잡혀 보도되는 바람에 북측 담당자가 언짢은 반응을 드러냈다. 우여곡절 끝에 총 510마리의 소가 북한으로 보내져 목장이 네 군데 생기게 되었다.

남한 수의사들이 평양 인근의 강동군 구빈리 협동농장에서 젖소들의 건강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굿네이버스는 북한에 젖소를 전달한 후 수의사를 비롯한 전문가들을 파견해 지속적 관리와 교류를 시도하고 있다.

사실 젖소를 북한에 지원하는 굿네이버스의 계획은 그보다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5년 이 이사장은 중국 단둥(丹東)에 갔다가 북한 해주에 한우 200마리를 보냈다는 호주 교민을 만나 “한우보다 젖소를 보내는 것이 낫겠다”는 얘기를 들었고, 낙농업을 키워야 북한 주민들에게 미래가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이듬해 이 이사장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정부 낙농연구소 수석연구원을 만나 모든 절차적 도움을 얻었다. 그러나 미국 연방 정부의 불허로 계획은 무산됐다. 그는 이 사연을 굿네이버스 회지에 실었는데, 당시 서울우유에 근무하던 회원이 그 글을 보고는 새끼를 밴 젖소 200마리를 마리당 150만 원이라는 싼 값에 구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굿네이버스가 젖소 지원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선 까닭은 복합적 효과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젖소를 키우기 위해서는 수의사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따라서 북한에 젖소를 전달한 후에도 남북이 지속적으로 교류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북한의 젖소 사육 농민들과 남한의 수의사, 낙농업 관계자, 굿네이버스 직원들이 다각적인 소통을 이어갔다.

주민 소득 증대
이후 북측에서는 우유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우유 가공 설비 지원을 희망했다. 치즈 가공 공장을 지어준 굿네이버스의 조건은 단 한 가지였다. 이익금 절반을 마을 사람들이 나눠 갖되, 나머지 절반은 궁핍한 아이들을 먹이는 데 쓰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사업의 성과는 주민들은 물론 굿네이버스 측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평양시 변두리의 시골 마을이던 강동군 구빈리의 지역 소득은 5년 만에 10배로 급증했다. 주민 숫자도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이 자랑스러운 발전상을 마을 어귀 간판에 큼지막한 글씨로 써 붙여놓을 정도였다.

낙농 사업의 성과가 커지자 이번에는 북한 농업성에서 양계 사업 지원을 부탁해 왔다. 이는 각종 장비뿐 아니라 종자 개량을 위한 값비싼 달걀을 외국에서 사와야 하는 일이었다. 굿네이버스는 프랑스에서 1개에 적게는 5천 원, 많게는 5~20만 원까지 하는 최우량 품종의 종자 달걀을 수입했고, 북측에서는 반경 4㎞ 이내에 외부인의 접근이 금지된 종계장(種鷄場)을 제공했다.

지원 사업의 효과가 날로 높아지자 북한은 이번엔 사료 공장을 지어달라고 요청했다. 굿네이버스는 원산 근교에 있는 아연 공장에 기계를 증설해, 이곳에서 생산한 아연을 팔아 원료를 공급하는 방안을 생각해 냈다. 이 사업 역시 남한 정부의 무상기금 150만 달러와 은행 융자 유상 기금 700만 달러를 투입해 2년여 만에 은행 융자금 전액을 갚을 만큼 성공적이었다. 이 같은 북한에서의 사회적 기업 운영 경험은 굿네이버스가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지역 개발 사업을 벌이는 데 커다란 자산이 됐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인도적 차원의 대북 식량 지원은 진작 했어야 한다는 것이 이 이사장의 견해다.

“때늦은 감이 있죠. 하지만 북한은 지금 후원금 몇 십만 달러가 간절한 상황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전문 구호 분야를 개발해야 합니다. 농축산업, 의료, 교육 등 특화 분야에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야 하지요. 북측의 관심도 식량이나 비료 지원보다 지속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개발 협력 쪽에 쏠려 있습니다.”

구빈리 협동농장은 이 이사장에게 잊지 못할 ‘통일 경험’을 선물했다고 한다. 이 이사장을 포함한 사업 점검 방북단은 열흘 정도 머물면서 주민들과 더없이 가까워졌다. 그곳 개천에서 물고기를 함께 잡아 매운탕을 끓이고 한솥밥을 지어 먹으며 정을 나눴다.

“북한을 우수한 인력과 풍부한 자원을 갖춘 가능성 있는 시장으로 보고 투자하면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이런 통일 경험을 하는 북한 주민이 늘어나면 진짜 통일도 저절로 앞당겨지겠지요.”

“북한은 지금 후원금 몇 십만 달러가 간절한 상황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전문 구호 분야를 개발해야 합니다.
농축산업, 의료, 교육 등 특화 분야에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야 하지요.”

평양의 정성제약공장에서 주사제를 생산하고 있는 모습이다. 굿네이버스는 북한의 보건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지원을 하고 있다.

아동 보호 지원
굿네이버스는 그동안 농축산 분야를 포함해 북한의 25개 사업장에서 아이들을 포함한 북한 주민 22만여 명을 도왔다. 신의주를 비롯한 지역의 육아원 아동들에게 영양식을 지원하는 아동 보호 지원 사업은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 실질적 도움이 되고 있다. 2018년에는 북한 아동들이 굶주림에 고통받지 않도록 ‘굿네이버스 미국’을 통해 114톤의 분유를 지원했고, 20여 종의 의약품을 전달해 보건 의료 환경개선에도 힘썼다. 이와 함께 아동 교육을 위해 교과서 제작용 종이 150톤과 교육용 컴퓨터를 지원했고, 인라인 스케이트와 축구공 같은 특기 교육 자재도 틈틈이 제공해 오고 있다.

‘굶주림 없는 세상,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 이사장이 1991년 창립한 굿네이버스는 이제 세계적인 NPO로 성장했다. 현재 한국 내 52개 지부, 36개 나라 210개 사업장에서 전문 사회복지 사업과 국제 구호 개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구촌에서 활동하고 있는 직원만 3천 명이 넘고, 한국에서만 50만여 명에 이르는 회원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1996년엔 한국 최초로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로부터 NGO 최상위 지위인 ‘포괄적 협의 지위’를 얻기도 했다.

“창립자로서 가장 중요한 임무는 남북 화해 분위기를 만드는 일입니다. 북한 주민 지원 사업을 축소하거나 끊어버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남북이 화해하고 평화로우면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난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덧 고희를 넘긴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힘이 넘쳐난다.

김학순 (Kim Hak-soon, 金學淳) 언론인,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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