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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SUMMER

문화 예술

포커스 남북 공동의 인류무형유산 씨름

오랜 역사를 가진 민속 경기이자 국가무형문화재인 씨름이 2018년 사상 처음 남북한 공동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이를 계기로 향후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새로운 물꼬가 트일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지린성 지안현에 있는 5세기 전반 고구려 시대 고분 각저총 벽화의 한 부분으로 씨름꾼들의 동작이 오늘날과 같다. 씨름에 관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박홍순 제공

씨름은 두 사람이 상대방의 허리와 다리에 감은 천인 샅바를 잡고 힘을 겨루는 운동이다. 손과 발, 허리 등 몸 전체의 근육과 기술을 고루 사용하여 상대 선수의 무릎 이상의 신체 부위를 모래판에 먼저 닿게 하는 편이 이긴다. 강한 근력과 순발력, 지구력이 요구되며 다양한 손 기술과 발 기술, 허리 기술에 강인한 정신력까지 필요하다.

한국인에게 씨름은 단순한 전통 스포츠 종목 그 이상이다. 예로부터 주요 절기에 온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고 구경해 온 대표적 민속 놀이였기 때문이다. 즉, 주요 명절에 사람들의 흥을 돋우던 놀이였다. 그러므로 마을에 씨름판이 열린다는 것은 본격적인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축제의 시작
씨름은 여러 측면에서 개인의 기량과 취향을 넘어서는 사회적, 집단적 의미를 지녔다. 그래서 20세기 전반에 걸쳐 온 민족이 나라를 잃고 고통에 신음하던 시절에도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당시 전국적 규모의 씨름 대회가 무려 1개월에 걸쳐 열린 적이 많았다. 식민 통치 말기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되기 전까지 씨름은 민족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일조했다.

해방 이후 남한과 북한으로 민족이 갈라진 뒤에도 양쪽에서 모두 주요 전통 유산으로 명맥이 활발히 이어졌다. 남한에서는 정부 수립 이전부터 전국체육대회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고, 지금도 해마다 전국 및 지역 단위의 각종 씨름 대회가 열리고 있다. 예전보다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각급 학교 씨름부는 물론이고, 지역과 기업을 대표하는 씨름 팀에서 많은 선수들이 활동 중이다. 그런가 하면 북한에서도 매년 추석에 전국적인 씨름 대회가 열리고, 음력 5월 5일 단오절에는 마을 단위의 씨름 경기가, 6월 1일 국제아동절에는 소년 씨름 경기가 여전히 국가의 주요 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씨름에 대한 가장 오래된 사료는 고구려(37 BC~AD 668) 고분인 각저총 벽화에서 볼 수 있다. 중국 지린성 지안현 옛 고구려 영토에 있는 이 고분 속 벽화의 씨름 선수들은 상대방의 샅바를 잡고 어깨를 맞댄 채 허리를 약간 구부리고 있어, 그 자세가 현재의 경기 방식과 차이가 없다. 고대 경기 방식이 원형에 가깝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씨름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5세기 초반 벽화에 상당한 비중으로 묘사돼 있는 것으로 볼 때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즐겨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이 벽화는 고대 한국 사회에서 씨름이 단순한 놀이나 운동 경기 이상의 의미를 가졌음을 알려준다. 그림 왼쪽에 등장하는 나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사회에서 널리 숭배의 대상이었던 ‘성스러운 나무’다. 이 나무는 생명의 원천이자 땅과 하늘을 잇는 통로이며, 나무 위에 앉은 새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상징이다. 그런 나무 옆에서 씨름판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씨름이 스포츠를 넘어 사회적 의식이었음을 말해 준다. 게다가 나무 밑동에 기대고 있는 곰과 호랑이는 한반도 최초의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주요 상징 동물들이다. 즉 씨름이 민족의 정체성과도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씨름이 각저총뿐만 아니라 여러 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왕족이나 귀족 등 상류층에게 인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특정 계층만이 향유하던 문화는 아니었다. 벽화에 묘사된 씨름꾼들의 모습에서 특별히 귀족의 복장이나 머리 모양을 볼 수 없다는 점으로 미루어 일반 평민들에게도 널리 사랑받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대표적인 고대 역사서 『삼국사기』(1145)에 의하면 한반도의 패권을 놓고 고구려와 겨뤘던 신라의 왕족 김춘추와 귀족 김유신이 씨름을 하다가 옷고름이 떨어졌다는 기록이 나온다. 『고려사』(1451)는 14세기 초중반에 이르러서는 왕을 위시하여 신하들이나 무사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씨름을 즐겼다고 적고 있다. 이 시기 한반도가 몽골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족 고유의 전통 놀음을 통해 내부의 정체성과 단결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씨름>, ≪단원 풍속도첩≫, 김홍도, 18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26.9 × 22.2 ㎝. 조선 후기 도화서 화원이었던 김홍도가 그린 풍속화 중 대표적 작품으로 양반과 서민,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씨름 경기를 즐기고 있는 장면이다. 원형의 짜임새 있는 구도에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이 잘 살아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공동체의 연대
18세기 조선 시대의 화가 김홍도의 풍속화 <씨름>도 신분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사회 구성원들을 하나로 연결해 주던 씨름의 사회적 기능을 잘 보여 준다. 씨름을 묘사한 옛 그림 가운데 한국인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이 그림은 승부의 결정적 순간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림 속 뒤편의 선수는 다리를 잡아채는 손 기술을 이용해 상대 선수를 쓰러뜨리려 하고 있다. 한편 앞쪽의 선수는 상대의 몸을 들어 올리며 허리 힘을 이용해 모래판에 메다꽂을 기세다. 주변에 빙 둘러앉아 있는 구경꾼들도 매우 흥미롭다. 신분 제도가 엄격했던 시대에 양반과 평민, 어른과 아이가 섞여 앉아 함께 경기를 즐기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2018년 11월 26일 모리셔스 포트 루이스에서 열린 제13차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 회의에서 24개 위원국의 만장일치로 씨름의 남북한 공동 등재가 결정되었다. 정식 명칭은 ‘씨름, 한국의 전통 레슬링’(Traditional Korean Wrestling, Ssirum/Ssireum)이다. 이로써 남한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20건, 북한은 3건을 보유하게 됐다.

등재 과정에서도 앞서 말한 씨름의 사회적 의미와 남북한 양쪽 지역에서 모두 1600여 년에 걸쳐 원형이 변하지 않고 활성화되어 내려오고 있는 점 등이 인정되었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남북 씨름이 연행과 전승 양상,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의미에서 공통점이 있다”(Different regions have developed variants of ssireum based on their specific backgrounds, but they all share the common social function of ssireum – enhancing community solidarity and collaboration)고 평가했다. 공동 등재 배경으로 “평화와 화해를 위한 차원”(The joint inion marks a highly symbolic step on the road to inter-Korean reconciliation)이라고 언급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씨름이 남북한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완화시키고 평화와 화해를 위한 길을 여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남북한 주민들이 참여하는 정기적인 대회 개최에 대한 합의에 도달한다면 그야말로 평화와 화해를 향한 더 큰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2015년 9월 평양 능라도 씨름 경기장에서 열린 ‘제12회 대황소상 전국민족씨름경기’에서 우승한 조명진 선수가 황소에 올라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징적 발걸음
남한과 북한은 서로 상이한 사회 체제를 가지고 70년에 걸쳐 정치적, 군사적 대립을 이어 왔기 때문에 사회 제도나 운영 방식에서 상당히 이질적인 요소가 깊게 자리 잡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씨름의 등재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하나의 민족이라는 막연한 유대감을 넘어, 각 구성원들이 동질감을 갖고 화해의 과정에 구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실질적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에도 탁구나 청소년 축구, 아이스하키 등의 종목에서 남북한이 단일팀을 구성하여 국제대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특정 대회를 염두에 둔 일시적 행사였고, 또한 승부 이외의 정서적 공유의 부족이라는 한계가 분명했던 일회성 이벤트의 성격이 강했다.

이미 남북한 당국과 체육 단체 사이에 향후 공동으로 개최할 수 있는 씨름 대회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만약 남북한 주민들이 참여하는 정기적인 대회 개최에 대한 합의에 도달한다면 그야말로 평화와 화해를 향한 더 큰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조속한 시일 내에 남북한 각 지역에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예선 경기가 열리고, 광역 지역 우승자끼리 전국 대회에서 최종 승부를 가리는 큰 행사가 열렸으면 한다. 나아가 씨름을 세계인이 즐기는 놀이이자 운동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의 공동 노력도 이뤄지길 기대한다.

 

2018년 11월 26일, 안동실내체육관에서 개최된 ‘천하장사 씨름 대축제’에서 두 선수가 치열한 경기를 펼치고 있다. 이 날 모리셔스의 수도 포트루이스에서 열린 제13차 무형유산위원회에서는 씨름의 남북한 공동 등재가 결정되었다. © 연합뉴스

박홍순(Park Hong-soon 朴弘淳)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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