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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SUMMER

기획특집

사찰음식: 미망과 욕심을 버리는 길 기획특집 5 차가 수행인 한 스님 이야기

예부터 절집에서 내려오는 말에‘다반사(茶飯事)’가 있다. 차 마시고 밥 먹는 일이란 뜻인데, 민간에서는 이 말이 '흔히 있는 일' 또는 '늘 있는 일'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처럼 사찰에서 차는 음식과 마찬가지로 일상적 수행의 중요한 부분이다.

전라남도 순천 조계산 기슭의 선암사 차밭에서 스님들이 찻잎을 따고 있다. 선암사는 차 재배의 전통을 잘 지켜 내려오고 있는 몇 안 되는 한국의 전통 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여럿이 함께 모여 사는 사찰에서는 공동 생활이 불편하지 않도록 나름대로 규칙을 정해 실행한다. 특히 선을 통한 깨달음을 중시하는 한국의 전통 사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의식의 중심에는 차가 있다. 차 한 잔을 올리는 것으로 아침 예불을 시작하고 차 한 잔으로 조사(祖師)들의 기일을 기념하니, 이것만 봐도 차는 사찰 문화의 중심에 놓여 있다.

사찰에서는 차를 끓여서 공양하는 소임을 '다두(茶頭)' 또는 '다각(茶角)'이란 별도의 명칭으로 부른다. 또한 차를 마시는 곳을 '다당(茶堂)', 차 마실 시각을 알리는 북을 '다고(茶鼓)'라고 한다. 사찰의 차 문화는 단지 스님들이 차를 즐긴다는 사실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신적 영역인 선(禪)과 물질인 차가 만나서 만드는 또 하나의 정신적 세계를 ‘선다일미(禪茶一味)라 한다. 이 세계는 인류가 만들어 놓은 식문화의 별천지이다. 일상적으로 즐기는 차 한 잔 속에 삶의 넓이와 깊이를 담는 것이 바로 ‘다도’이다.

조선 후기에 한국의 다도를 정립한 초의선사의 제다법과 정신을 계승해 차를 만들고 있는 여연 스님은 현대 차문화를 이끌어 오고 있는 1세대 중 한 사람이다.

한국 차문화의 성지
새 한 마리가 하늘을 날다가도 쉴 때는 나뭇가지 하나면 족하다. 한반도의 최남단 전라남도 해남 바다를 내려다 보는 두륜산 속 대흥사에는 그런 뜻이 담긴 이름의 암자 일지암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50여 년 전 그곳에는 오늘날 한국 차문화의 중흥조로 칭송받는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6)가 있었다.

1830년 봄, 찻물이 끓고 있는 화로 옆에 앉아 있던 초의선사에게 사미(沙彌) 수홍(修洪)이 다도가 무엇인가를 물었다. 초의선사는 『다신전』(茶神傳)의 구절을 인용해 "차를 만들 때 정성을 다하고, 보관할 때 건조하게 하고, 우려낼 때 청결해야 한다. 다도는 이런 정성과 건조함 그리고 청결함을 추구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완성된다"고 답하였다. 『다신전』은 그가 청나라 모환문(毛煥文)이 엮은 『만보전서(萬寶全書)』에 실린 「다경채요(茶經採要)」에서 초록한 책으로 찻잎의 채취[採茶]에서부터 차의 위생관리[茶衛]에 이르는 분야를 아우르는 한국 차문화의 고전이다.

1837년 여름, 초의선사에게 또 한 번 다도에 대해 묻는 사람이 있었다. 조선의 22대 왕 정조의 사위인 홍현주(1793~1865)였다. 초의선사는 그 질문에 답하며 「동다송」(東茶頌)을 지었다. 그는 이 글에서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차는 중국의 차 맛과 약효를 모두 겸비하였음을 칭송하며, “다도는 차와 찻물이 어울리게 하여 중정(中正)에 이르는 길”이라고 하였다.

초의선사가 1824년에 지어 40여 년간 기거하며 그 길을 닦고 알렸던 일지암은 아쉽게도 그의 사후 실화로 소실되고 말았다. 1980년, 그 터를 기억하는 사람조차 드물던 일지암이 많은 노력 끝에 복원되었다. 복원된 일지암을 18년 동안 지키며, 수행 삼아 차의 재배와 육종 그리고 제다(製茶)에 전념한 스님이 있다. 여연(如然) 스님이다.

출가한 해인사에서 차를 처음 접한 스님은 화가 허백련,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인 최범술 같은 차문화의 거봉들과 함께 현대 차문화를 이끈 1세대이다. 특히 최범술 선생은 여연 스님이 만드는 차에 지혜를 뜻하는 '반야차(般若茶)'라는 이름을 내려 주었다.

일반적으로 차서(茶書)에서는 차 만들기 좋은 때를 곡우 무렵이라고 하였지만, 초의선사는 입하 전후가 적합하다고 하였다. 중국의 주요 차 산지보다 위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추어 차 만드는 시기를 정한 것이다. 두륜산 중턱에 반야다원(般若茶園)이라는 이름의 차밭을 일구고 있는 여연 스님도 초의선사의 뜻을 따라 곡우가 지나서 첫물 차를 만든다.

녹차는 골라낸 찻잎을 차솥에서 덖고, 손으로 비빈 후 건조하는 과정을 2~3차례 반복하여 만든다. 전라남도 해남 대흥사가 있는 두륜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여연스님의 반야다원에서 스님과 그 제자들이 차를 만들고 있다.

“차가 마음이면 차 그릇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봄아지랑이 아른대는 찻잔을 가만히 기울이면 하늘 개인 대숲처럼 내 마음에 푸르름이 일렁인다.”

반야차 공동체
1996년 겨울, 해남의 사회 운동가들이 여연 스님에게 차를 배우기 위해 결성한 모임이 남천다회(南荈茶會)다. 회원들은 스님을 모시고 차와 불교 수행을 함께하는 차문화 생명 공동체를 만들었고, 1997년부터 다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그곳의 이름이 반야다원(般若茶園)이다. 그 뒤 2004년, 반야다원에서 처음 생산된 첫물 차로 다신제를 지냈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과 뭇 생명이 인연의 고리 속에 이어지고 있음을 차 한 잔을 통해 확인하고 감사하는 행사를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잎차인 녹차의 제조 공정은 덖기(殺靑), 비비기(揉捻) 그리고 건조의 순서로 이뤄진다. 초의선사는 잎차와 떡차를 포함하여 다섯 종류의 차를 만들었다. 여연 스님 또한 찻잎의 상태에 따라 여러 종류의 차를 만든다. 스님은 차 덖기의 기본은 차솥의 온도가 아니라 차를 따는 날씨와 따온 찻잎의 수분 함량에 있으므로 제다법을 달리해야 함을 강조한다. 스님이 주로 만드는 차는 가마솥과 장작불로 만드는 잎차와 떡차이다. 국내외 차가 생산되는 여러 곳을 탐방하면서 스스로 익힌 제다법을 정리한 것이 오늘날 여연 스님의 차다. 찻잎의 상태에 따라 각각에 걸맞는 방법으로 불의 강약과 덖는 시간을 조절하며 차를 만드는 여연 스님의 솜씨는 일반인들의 감각을 뛰어넘는다.

그는 덖기가 끝난 찻잎을 재빨리 식힌 뒤 가볍게 비빈다. 차를 재빨리 식히면 차빛이 푸르러지고, 찻잎을 가볍게 비비면 차가 천천히 우러나기 때문에 오랫동안 차를 마실 수 있다. 또한 찻잎을 가볍게 비비면 찻잎의 외형도 온전하게 살아 있어, 마시면서 찻잎이 본래의 모양으로 피어나는 모습도 감상할 수 있다. 반면에 차를 강하게 비비면 한꺼번에 차의 성분이 진하게 우러나기 때문에 여러 번 마시지 못하게 된다. 스님은 차를 강하게 비벼 만드는 것을 한국 차가 가진 병폐라고 우려한다. 또한 “차를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리는 구증구포(九蒸九曝)는 19세기에 떡차를 만드는 데 적용한 방법이니, 잎차의 제조 방법으로 쓰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이는 사찰의 전통 제다법이 아님을 강조한다. 스님은 차를 말릴 때는 자연스러움을 따라야 하며, 숫자나 형식에 얽매이는 순간 제다법 본연의 원리를 잃게 될 뿐 아니라, 전통 제다 방법일지라도 어디까지나 차를 보다 건강하고 맛있게 하는 것이 우선임을 역설한다. 차의 본성을 살리는 것이 가장 올바른 제다법이라는 얘기다.

스님은 제다의 현장과 차인들이 함께하는 다회에서 독설가로도 유명하다. 철저한 반성 없이는 우리 차문화가 제대로 설 수 없기에 스님은 마치 죽비를 내리치듯 대중들을 경책한다. 차의 현실을 직시하고 아무 거리낌 없이 비판하는 스님의 모습은 자신이 만드는 차의 부드럽고 깊은 맛과는 달리 삼베처럼 거칠어만 보인다.

여연 스님은 햇차를 시음할 때 작은 찻잔에 차를 넣고 더운 물을 부은 뒤 잠시 기다렸다가 한 모금 마신다. 이른바 ‘눈물 차’이다. 마른 찻잎이 더운 물을 만나 풀어지면서 피어나는 향기와 찻잎의 빛이 찻잔 속에 초록 풍경을 펼친다. 그렇게 우려낸 차의 향기는 아기의 속살에서 피어나는 배냇향이며, 색은 맑은 녹황색이고, 맛은 부드럽고 상쾌하다. 뒤따라 오는 단맛에 절로 두 눈을 지그시 감게 되고, 입 안과 몸으로 들어온 봄 햇살을 느낀다. 이때의 경지를 다도인들은 “8만 4천 모공(毛孔)이 모두 시원해진다”고 표현하고, “양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난 것 같다”고 감탄한다.

초의선사의 차 전통을 이어 오고 있는 대흥사 일지암에서 한 스님이 차를 따르고 있다. 청정한 물을 끓여 알맞은 온도로 맞춘 다음 차를 우려내고 찻잔에 따르는 일도 차를 만드는 과정 못지않게 정성과 집중을 요한다.

내소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차를 마시고 있다.

차가 맺어 준 인연
단지 사람들과 차를 함께 마실 요량으로 내가 인사동에 터를 장만한 것이 1977년의 일이다. 40년 넘는 세월, 해마다 봄차 소식에 목말라 차밭으로 달려가곤 했다. 먹물 옷을 입은 스님들이 차솥 앞에서 혼신을 다해 차를 덖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고 경건했다.

어느 해, 늦게 핀 겹벚꽃이 흩날리던 보성의 대한다원 연못가에서 차를 덖는 한 스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그가 바로 여연 스님이었다. 샛별이 떠 있는 미명의 새벽, 이슬에 씻긴 찻잎을 따 솥에서 덖고 있던 스님을 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나도 스님처럼 살고 싶다. 찻잎을 딸 때, 차를 솥에 넣기 전에, 차를 익힐 때, 차를 말리는 방 안에 들어섰을 때 온몸을 휘감던 차 향기는 내게 해마다 차를 만드는 푸른 꿈을 꾸게 하였다. 그래서 요즘도 늦은 겹벚꽃이 필 때면 나는 어느새 차밭으로 향하고 있다.

내가 여연 스님을 다시 만난 것은 1986년 대만의 현대식 찻집으로 유명한 육우다예중심(陸羽茶藝中心)에서였다. 대만의 다도인들과 차를 마시며 토론을 하고 있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 보니 스님이 서 있었다. 그는 스리랑카에서 한국으로 귀국하는 길에 비용이 넉넉지 않아 여러 번 갈아타는 저가 항공편을 택하게 되었고, 그때 잠시 얻은 시간에 짬을 내어 대만차를 살펴보러 오셨다고 했다. 차에 대한 그의 열정은 대단하여 잠시 머무르는 곳도 차와 관련되어 있다. 내가 스님을 모시고 차가 있는 하동∙보성∙강진∙장흥∙김해∙제주를 오고 갈 때도, 바다 건너 일본과 중국의 차문화 유적지를 탐방할 때도 스님의 걸망에는 항시 차와 찻잔이 들어 있었다.

만약에 차가 없었다면 나는 그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또한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차가 있어 잠시라도 나를 살펴보고, 차가 있어 잠시라도 숨을 고를 수 있다. 그것이 차가 우리에게 주는 반야의 세계가 아닐까? 늘 즐겁게 밥 먹고 차 마시며 깨어 있는 삶은 여연 스님의 반야차가 우리에게 던져 주는 화두이다.

스님이 고희가 되었을 때 주변의 권유로 쓰던 차 도구를 모아서 전시를 하게 되었다. 2017년 가을에 열린 이 전시회 제목은 <여연 스님의 차살림>이었다. 당시 스님이 전시회 도록에 썼던 권두언에 차에 대한 그 분의 정신이 잘 드러나 있다.

“차가 마음이면 차 그릇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물을 끓이며 달빛 가득한 빈 산의 솔바람 소리를 듣고, 차를 따르면 내 마음은 작은 시내를 따라 거닐다가 바위에 앉아 있다. 봄아지랑이 아른대는 찻잔을 가만히 기울이면 하늘 개인 대숲처럼 내 마음에 푸르름이 일렁인다. ”

나는 그렇게 댓잎 하나에 내려 앉은 마음 하나를 보았다.

박희준(Park Hee-june 朴希埈) 한국차문화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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