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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SPRING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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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땅을 밟은 최초의 한국 여성에 관한 소설

<리진> (영문 제목 Court Dancer)

신경숙, 번역 안톤 허, 336쪽, 25.95달러, 336 pages, 뉴욕, 페가수스 북스, 2018

<리진>은 <엄마를 부탁해>로 영어권 독자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신경숙 작가의 영어 번역 작품 중 가장 최근작이다. 소설은 19세기 말 프랑스 초대 공사로 한국에 온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의 마음을 빼앗은 궁중 무희 리진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그녀는 1891년 콜랭과 함께 프랑스로 가게 되고 그 나라를 방문한 최초의 한국인 여성이 된다. 책 커버 소개에 따르면 소설은 “놀랄 만한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지만 정말 놀라운 건 신경숙 작가가 세기 전환기에 쓰인 불어 책에서 단 한 번 짧게 언급된 조선의 궁중무희에 관한 기록을 갖고 이토록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다.

19세기 말은 한국사에서도 격동의 시기였다. 막 개항한 조선은 동아시아에서 주도권을 쟁취하기 위해 경쟁하는 서구 열강들 틈바구니에 놓여 있었다. 왕과 함께, 특히 왕비는 조선의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이들 세력들이 서로 다투도록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는 결실을 보지 못하고 결국 일본이 1910년에 조선을 병합하여 35년간 식민 통치를 하게 되었다. 신경숙의 소설은 조선의 절망적인 삶을 생생하게 그리면서 동시에 파리의 벨 에포크 시대의 낙관주의를 해부한다. 하지만 역사는 단순히 리진 이야기의 배경 그림에 머물지 않는다. 리진은 그 역사 속에서 맡은 역할에 의해 만들어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떤 면에서 작가는 리진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조선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신경숙 작가는 고전적이지만 시간을 초월하는 느낌을 주기 위해 다양한 문학 기법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소설을 관통하면서 작가적 시점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혜안을 곳곳에 뿌려 놓는 식이다. 물의 특성을 다루는 경구들은 특히 울림이 크다. 리진을 키워낸 여인이 우물에서 물을 기를 때, 작가는 이렇게 적는다.

“물은 생긴 대로 퍼담을 수도 있고 따를 수도 있다. 어디에나 고일 수도 있고 어디로든 흘러갈 수도 있다. 어떻게도 그 본성을 변화시켜놓을 수 없으니 그것이 물의 힘이다.”

나중에 프랑스 공사 빅토르가 궁궐의 물가를 지날 때는 이렇게 적는다.

“물은 막지 않으면 흐르고 막으면 저항 없이 고인다.”

이런 말들이 그냥 봐서는 평범하게 들릴 테지만 리진이 프랑스라는 새로운 세상에 어떻게 적응하게 될지를 예시하는 복선이다. 무엇이든 빨리 배우는 리진은 곧 불어도 유창하게 말하게 되고, 프랑스 최신 패션을 위해 조선의 궁중 의복을 주저 없이 벗어던진다. 물처럼 그녀는 자신의 환경에 맞춰 모습을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리진은 여전히 특별한 볼거리이다. 그녀를 받아들인 사람들조차도 리진을 신기한 이국적 물건처럼 다룬다. 빅토르가 수집해서 프랑스로 가져온 도자기의 하나처럼.

한편 그 당시 파리의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홍종우는 리진이 조선의 문화를 내팽개친 걸 조롱하고 비웃는다. 리진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조선의 궁궐에서 살 때는 결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일이다. 외국에서 얼마간 살아본 독자라면 충분히 그녀의 상황에 공감할 것이다. 낯선 문화 속으로의 이주는 말할 수 없는 자유로움을 느끼게 하지만 동시에 길을 잃고 붕 떠 있는 느낌을 갖게도 만들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된 내용은 리진의 이야기와 병합으로 인해 조선이 국제 사회에서 잊히기 전의 이야기를 직조하는 여러 가닥 중 하나일 뿐이다. 직조의 결과물인 태피스트리는 다양한 무늬로 가득하다. 그 속에 머물며 시간을 보낸다면 독자는 충분히 보상을 얻게 될 것이다.

해석을 넘어 감각적 체험을 위한 시

<우리는 매일매일> (영문 제목, We, Day by Day)

진은영, 번역 다니엘 파커, 지영실, 108쪽, 16달러, 뉴욕, 화이트 파인 프레스, 2018.

진은영 시인의 시집 <우리는 매일매일>에 대해 전형적인 리뷰를 시도하는 건 헛된 일이고 어쩌면 불합리조차 할 것이다. 마치 석양을 바라보며 느낀 감정을 묘사하려 할 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이 시집에 대해 차분하게 이성적인 단어를 정돈된 형태로 나열해 무언가를 말하기는 쉽지 않다.

번역가의 해설은 독자에게 어떤 내용을 기대해도 좋을지 약간의 암시를 준다. 진은영의 시는 “완전한 이해를 추구하는 독자를 늘 곤혹스럽게 한다.” 사실 그녀의 시가 추구하는 것은 독자가 쉽게 해석하고 이해하기보다는 “새로운 감각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어떤 독자는 그 때문에 좌절감을 맛볼 수 있다. 만약 잭슨 폴락의 그림 앞에 서서(인터넷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 그림 앞이다) 도대체 화가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의아해 한다면 이 시집은 당신에게 맞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림 속의 부조화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해설을 보면 진은영 시인은 세 권의 시집 외에 세 권의 철학서를 출간했다고 하는데 나는 이 둘 사이의 경계선이 그다지 명확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사실 <우리는 매일매일>은 시이면서 철학서이다. 시인이 여기서 시도하는 건 뒤샹이 자전거 바퀴를 의자 위에 꽂았을 때, 또는 폴락이 바닥에 페인트를 흘리고 쏟아 부었을 때의 정신 세계에 닿아 있다. 시인의 시는 해석되지 않는다. 읽히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시는 결국 체험될 뿐이다.

한국 현대 문학을 세계에 소개하는 웹사이트

KoreanLit (www.koreanlit.com)

매사추세츠 민간한국문화원 운영

시 번역이 번역가가 마주치는 가장 어려운 작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시를 제대로 번역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도 한다. 시는 그것이 쓰인 언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에 다른 언어로 표현하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런 생각들도 메사추세츠 민간한국문화원이 운영하는 웹사이트 KoreanLit가 번역을 통해 한국 현대문학을 영어권 독자에게 소개하려는 노력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이 사이트에 현재 올라와 있는 유일한 비평 에세이에서 필자 고유진은 시는 번역에서 길을 잃기도 하지만 새 길을 찾기도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한국 시에서 영어로 대체할 수 없는 요소들이 분명히 있지만 번역을 통해 작품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확장된 시 번역에 대한 견해는 시는 번역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성인과 어린이를 위한 약 100편의 시 외에도 이 사이트에서 시는 그림이나 대중음악 같은 다른 예술 형태와도 교차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순수 시 번역에 비교하면 이런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얼마 되지 않지만 미래에 더 많은 시도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한국 예술에서 시가 차지하는 역할에 대한 이해가 더욱 넓어질 것이다. 시와 시 번역 기술에 대한 더 많은 비평도 쓰이길 바란다. 위에서 언급한 고유진 교수의 에세이는 흥미롭고 성찰적이다. KoreanLit는 앞으로 한국 시와 문학 번역을 위해 지속적으로 어떤 작업이 이어질지 지켜볼 만 한 가치가 있는 웹사이트이다.

찰스 라 슈어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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