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펜이 들어오기 전 동양의 모든 기록과 그림은 붓으로만 쓰고 그려졌다. 붓을 만드는 일은 그래서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작업이었다. 요즘의 쉽고 편한 제작 방식을 외면하고, 고된 옛 방식을 좇고 있는 장인은 자신의 붓을 두고 ‘목숨을 건 붓’이라고 말한다.
유필무 필장이 흰 염소 털로 엮은 붓 끝이 섬세하게 살아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그는 속과 겉을 모두 상질의 천연모로 맨 무심필을 자신의 붓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서예 초심자가 제 붓을 사러 오잖아요? 제가 망설이다가 붓을 판단 말예요. 그러면 늘 후회해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이 심각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죠. 주변의 동료는 물론 선생님까지도 다들 ‘이 붓은 잘못 맨 붓’이라 한다고요. 붓 사러 온 사람들 태반을 그냥 돌려보내는 주된 이유가 그거예요.”
유필무(柳弼茂) 필장(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29호 필장 기능보유자)은 자신이 만든 붓과 시중 필방에 유통되는 붓 사이에 명확히 선을 그었다.
“시중의 붓 99%가 나일론 털을 동물의 천연모와 함께 섞은 붓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어요. 인조모에다 뻣뻣한 털로 심(心)을 넣어서 만든 붓이죠. 그래서 누구나 금세 다룰 수 있는 그런 붓에 익숙한 사람들 입장에선 제 붓이 생경할 수밖에요.”
심이 없는 붓
인조모를 쓰지 않았다 하더라도, 붓털 속에 뻣뻣한 털을 심은 붓은 허리가 단단하다. 붓이 쉽게 서니 다루기 편하지만, 운필이 단조롭다. 그렇다고 강하고 뻣뻣한 동물의 털 자체가 좋지 않은 재료라는 뜻은 아니다. 붓 중에는 족제비 꼬리털이나 말 꼬리털 등 굳센 털로 만드는 붓이 있는가 하면, 염소 털이나 닭 털처럼 부드러운 털을 이용한 붓도 있고, 강한 털을 속에 넣고 부드러운 털로 그 겉을 감싸는 붓도 있으니 말이다.
경우에 따라 몇 가지, 많게는 열댓 가지 털이 섞인 붓도 제작된다. 사용자의 취향과 용도에 맞춘 선택이 필요할 뿐이다. 다만 유 필장이 제기하는 문제는 이런 것이다. 그는 한국의 붓 문화가 대중적인 붓의 기준에 익숙해지는 현실, 더불어 전통 붓의 원형을 지키고 전승하려는 의지가 점점 희미해지는 현실에 개탄한다. 그는 ‘무심필(無心筆)’이 자신의 붓 작업에서 중심이며, 전통 붓의 핵심도 바로 그것이라 했다. 심이 없는 붓, 즉 속의 털과 겉의 털을 상질의 천연모로 똑같이 몰아 맨 붓을 말한다.
“좋은 붓은 4가지 덕목을 가지고 있어요. 붓털의 허리 부분이 굳세고 탄탄해야 하고, 붓 맨 모양이 들쭉날쭉하지 않고 둥그스름해야 하고, 아울러 붓끝이 가지런해야 하고, 뿌리 부분에서 끝으로 갈수록 점진적으로 가늘어지면서 그 끝이 뾰족해야 좋은 붓이죠.”
. 유 필장이 10년 동안 구상한 끝에 만들어 낸 목탁 붓은 말 그대로 목탁에 붓을 접목한 작품이다. 그는 더 정성스러운 붓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붓대 제작에도 도전하고 있다.
“예부터 문필가들이 붓을 찬할 때 가장 높은 자리에 두고 이야기했던 붓이 무심필이에요. 무심필은 아무리 필력 좋은 사람도 따로 길들이거나 사귀어 놓지 않으면 붓 세우는 것조차 쉽지 않아요. 심이 없어서 마음먹은 대로 운필하기 어렵죠. 다른 각도에서 얘기하면, 붓끝이 예민하면서도 낭창대고 부드러워서 의도하지 않은 표현까지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이죠. 그야말로 천변만화하는 효과가 발생해요.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강하다는 얘기가 이렇게 통하는 겁니다.”
그가 붓을 만든 지난 40여 년은 곧 붓털을 통찰하는 시간이었다. 그는 모든 동물의 털을 붓털로 쓸 수 있다고 했다. 붓이 유일한 서사 도구였던 시절엔 구할 수 있는 모든 털로 붓을 만들었다. 족제비 털, 토끼털, 돼지털, 노루 털, 닭 털 등은 물론 사람의 배냇머리까지 재료가 됐다. 하지만 같은 사람의 것이라도 배냇머리를 잘라낸 이후의 머리카락은 붓이 되지 못했다. 붓은 ‘호(毫)’라고 불리는 털의 끝이 섬세하게 살아 있어야 하는데, 가위질에 단면이 생긴 머리카락 끝으로는 뭉뚝한 붓밖에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흔히 사용되는 붓털 재료는 흰 염소 털이다. 염소 몸에는 극세필부터 대필까지 엮을 수 있는 털의 재료가 풍부하다. 예를 들어 염소의 등 털, 발꿈치 털, 수염만 각각 모아서 붓을 매기도 한다. 그는 염소 뒷다리 안쪽의 사타구니 쪽 털을 주로 사용한다고 했다. 그가 가죽에 털이 그대로 붙은 원모를 보여 주며 말했다.
“털이 끝 쪽으로 갈수록 맑아지고 투명해지죠? 가늘고 섬세해지거든요. 이런 색을 띠는 것은 내부 조직이 조밀하다는 얘기에요. 가죽에 가까운 뿌리 쪽으로 내려가면 어때요? 흰색이 점점 진해지죠? 조직의 밀도가 떨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뿌리 가까운 털까지 써야 더 큰 붓이 되고 값을 더 받으니, 제일 먼저 부서지는 제일 약한 이 부분까지도 다들 재료로 살려 쓰는 거죠. 저는 뿌리 쪽 이만큼을 뭉텅 잘라내고 써요. 그걸 큰 붓에서 붓대와 붓털을 연결시키는 부분인 각통에 3cm씩 밀어 넣기도 해요. 오직 더 오래 쓰는 붓을 만들기 위해서죠. 다른 필장들이 이 얘기 들으면 아마 미친 짓한다고 할지도 몰라요. 누가 알아주겠냐 싶지만 포기할 수가 없어요. 가치 있는 일이라 믿으니까요.”
전통 기법에 대한 천착
털을 다루는 작업은 어려운 일이었다. 원모에서 털 뽑는 작업 동작만 해도 5년 이상 숙련해야 자세가 제대로 나온다고 했다. 그는 털을 준비하는 동안 손끝에서 사라지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털 묶기 전 털의 유분을 제거하는 과정에서도 그랬다. 유분이 남아 있으면 털이 먹을 머금지 못하고 쏟아 낸다. 먹 흐름을 제어하는 중요한 과정을 위해 그는 옛 방법을 좇았다. 털 위를 왕겨 태운 재로 덮고 한지로 감싼 뒤 다듬잇돌로 1년간 눌러 기름을 뺀다. 유분이 많은 너구리 털, 말꼬리 털, 소 귓속 털은 사람들 왕래가 잦은 대문간에 묻는다. 그만큼 많이 밟히도록 하는 것이다.
“적어도 4세대 이전부터 구전으로만 내려오던 방법을 20년 전부터 물고 늘어졌어요. 그런데 저를 제외한 대다수 필장들은 유분 제거를 위해 열처리를 하고 있어요. 두꺼운 철판을 불에 달궈서 털 위를 누르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유분은 10분 안에 뺄 수 있지만, 털이 큰 손상을 입거든요. 사용하다 보면 털이 바스라지고 계속 빠져나오게 되죠. 그런데 지금 그 누구도 이 방법을 문제 삼지 않아요.”
그는 사라져가는 한국의 붓 전통에 끊임없이 천착했다. 동물털 대신 식물성 소재 붓을 재현하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오래 전 식물성 붓은 값비싼 동물털 붓의 대용품이었다. 칡붓의 경우 양모의 부드러움을 일부 가지면서도 비백(飛白)의 거친 멋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1990년대 초반, 그는 칡붓을 성공적으로 재현하면서 갖가지 식물성 붓을 만들기 시작했다. 억새붓, 띠풀붓, 종려나무붓 등 수십 가지가 넘는다. 동물털 붓은 ‘버리고 추리는 것’이 핵심이라면, 식물성 붓은 ‘두드리는 것’이 핵심이다. 두드림은 시간과 정성을 전제하는 일이다.
“섬유질을 최소 단위로 쪼개야 해요. 끊임없이 두드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더라구요. 최소 5000번에서 5만 번씩. 쪼개기 전에 재료가 가지고 있던 녹말, 진액 다 뱉어 내게 하고 섬유질만 남기는 거죠. 세게 두드리면 섬유질이 끊어지니 달래듯 살살 두드려야 해요. 칡 같은 건 손질 과정만 3개월 걸려요.”
의지할 만한 문헌이나 자료 한 장 없었지만 그는 구전을 좇아 기법을 궁리했다. 300년 전, 500년 전 그때를 살았다면 어찌했을지 스스로 묻고 답하며 더듬듯 찾아간 방법이었다.
“옛사람들은 아주 지혜로운 사람들이어서 누구나 다 엔지니어였고, 또 과학자였어요. 지금과 같은 과학 장비 하나 없었는데도 그들은 다 알고 있었거든요. 그분들 발자취를 되짚는 자체가 이 세상에서 제가 맡은 역할이 아닐까 싶어요.”
충북 증평군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후원자가 2010년부터 무상으로 임대해 주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그는 전통 붓 연구에 본격적으로 매진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결과의 일환으로 증평민속체험박물관은 올해 12월 말까지 그의 40여 년 붓 인생을 더듬어볼 수 있는 기획 전시회를 열고 있다.
좋은 붓을 위한 자기 검열
열 살에 아버지를 잃고 생계를 위해 열세 살에 고향 충주에서 상경한 그는 식당과 공장을 전전했다. 가발 공장에서 각성제를 먹어 가며 밤샘 노동에 시달리던 그는 1976년 친척의 권유로 붓공방에 취직했다. 지금에서야 ‘털 귀신이 붙은 인생’이라며 과거사를 웃으며 넘기지만, 가발을 만지다 붓을 처음 받았을 땐 어린 마음에도 ‘이젠 귀한 일을 하며 살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눈 뜨면 일하고, 먹고 앉으면 일하고, 졸릴 때까지 해야 먹고 사는” 붓 공방에서 하루 평균 15시간씩 일을 했다. 몇 번의 위기를 거쳐 12년간 붓을 배운 그는 독립해서 자신의 붓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럭저럭 먹고 살려나 싶을 1990년대 초반, 한중수교가 이뤄진 이후 저가의 조악한 중국산 붓이 전국의 필방을 잠식했다. 필장들이 업을 접고 흩어졌고, 국내 붓시장의 붓들은 중국산 저가 붓 품질에 맞춰 하향 평준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3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오늘까지 그 상황은 현재진행형이다. 그 어두운 터널을 지나오면서 그가 붙든 것은 ‘기본’이다. 기본에 맞춰 자신과 자신의 붓을 끊임없이 검열한다.
“좋은 붓은 4가지 덕목을 가지고 있어요. 붓털의 허리 부분이 굳세고 탄탄해야 하고, 붓 맨 모양이 들쭉날쭉하지 않고 둥그스름해야 하고, 아울러 붓끝이 가지런해야 하고, 뿌리 부분에서 끝으로 갈수록 점진적으로 가늘어지면서 그 끝이 뾰족해야 좋은 붓이죠. 필장들이 입을 모아 하는 얘기가, 아무리 큰 붓이라도 작은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옛사람들은 큰 글씨의 본문을 쓴 붓으로 작은 글씨의 낙관까지 하는 것을 ‘격’이라고 했어요. 선비들은 한 작품에서 붓을 바꾸는 것조차 군자의 도리가 아니라는 정서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 이야기에 비춰 봤을 때, 큰 글씨는 되는데 작은 글씨에 어려움이 있으면 붓을 바꿔야 할 때라는 뜻이죠.”
유 필장은 기본을 모르는 붓에 냉정했다. 0.1mm만 닳아도 끝이 안 모이는 저열한 붓, 그래서 두 달 만에 수명이 끝나는 붓은 붓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는 당장은 쉽게 제어되는 덕에 초심자로부터 좋은 붓이라는 평까지 듣게 되는 붓을 경계했다. 그러나 그는 “붓은 탓하되, 사람을 탓할 순 없다”고 했다.
“컴퓨터 학원 3개월만 다녀도 컴퓨터로 못하는 것이 없는 게 요즘 사람들이잖아요. 짧은 시간에 서예가 소리도 듣고 싶고 공모전에서 성과도 내고 싶은데, 붓 세우기까지 10년 걸린다는 제 붓을 어찌 좋아하겠어요. 모든 붓이 그렇게 다루기 어렵다면 서예를 취미 삼는 사람도 금세 사라지겠죠. 요즘 사람들의 그런 욕구나 심리를 이해 못 하는 바 아니에요.”
좋은 붓은 크게 4가지 장점을 갖춰야 하는데, 유 필장은 특히 큰 글씨와 작은 글씨를 두루 표현할 수 있어야 최상의 붓이라고 말한다.
그는 조직의 밀도가 떨어지는 뿌리 쪽 털을 잘라내고 내부 조직이 조밀하고 단단한 털만을 재료로 사용한다. 더 오래 쓰는 붓을 만들기 위해서다.
귀한 작업에서 나오는 귀한 붓
그래서 그는 ‘영업’을 관둔 지 20년째라고 했다. 집도 절도 한 칸 없이 후원자가 무상 임대한 공간에서 머물듯 흐르듯 살고 있지만, 스스로 선택한 삶이라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붓쟁이는 붓만 매어야 한다고, 팔 걱정이 마음에 들어오면 바로 작업이 망가진다고도 했다. 자신이 선 자리에 생각이 자꾸 고일 때마다 그는 붓 속으로 더 파고들었다. 더 정성스러운 것을 생각하다 붓대 제작까지 직접 맡았다.
대나무를 손수 가공해서 붓대 위에 글귀를 수십 자 새기기도 하고, 붓대 전체를 나전칠기로 장식하기도 하며, 복숭아씨나 연실 따위를 이어 붙이며 본 적 없는 붓대를 시험하기도 한다. 최근엔 내구성을 위해 붓대에 옻칠까지 직접 입히고, 붓과 어울리는 붓걸이까지 함께 만든다. 40여 년 세월을 촘촘히 되짚으며 특별한 붓 한 자루만 꼽아달라고 했다. 그는 붓들 앞에선 할 수 없는 얘기라 했다.
“붓 하나하나마다 이야기가 있어요. 한나절 얘기할 수 있는 붓이 있는가 하면, 몇 날 며칠 이야깃거리를 가진 붓도 있어요. 제가 호구 걱정이 없다면 한 점도 팔고 싶지 않을 정도예요. 쓸데없는 욕심일 테지만,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만 팔겠다고 이미 십수 년 전에 공언했거든요. 제 자신을 다그치는 표현도 내포돼 있어요. 특별하지 않으면 유필무 붓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거죠. 그래서 감히 ‘목숨을 건 붓’이라는 얘기도 하는 거예요. 귀하게 작업하면 귀하게 된다, 그리고 알아봐 줄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버텨 왔어요.”
이를 테면 목탁에 붓을 접목한 목탁 붓은 10년 구상의 결과물이다. 머릿속에서 꺼내서 작업이 되기까지의 세월, 그리고 그 안에서 시시때때로 움직이던 생각의 흐름을 그는 기억한다. 목탁 붓을 연구하던 시간은 ‘몸의 일부분처럼 느껴지는 붓’에 집중하던 시간이었다. 끝이 거친 볏짚 붓에도 그의 생각이 고여 있다. 어찌 보면 솔과 유사한 미완성의 도구 같지만, 활발발한 표현을 능히 해낼 수 있는 붓을 생각했다.
“어떤 순간 어떤 작업에서건 이것대로의 몫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요.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는 사용자의 마음이겠죠. 제가 규정하는 것이 웃기기도 하고 불필요하다는 겁니다.”
강직함을 넘어 때론 결기까지 내보이는 유필무 필장이다. 그런 그에게 붓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준비한 듯이 즉답했다. 처음 30년은 자신이 붓에 기대 살았노라고. 그런데 그 이후부터는 붓이 내게 기대고 있다 느껴질 때가 많다고 했다. 어렵고 외로운 길을 걸어온 그의 얼굴에서 문득문득 내비치던 충만의 이유가 그렇게 또렷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