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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WINTER

생활

사진 에세이 추억 속으로 사라져가는 군고구마 장수

해마다 이맘때면 지하철 출구 근처에 나타나던 군고구마 장수가 보이지 않는다. 찬바람이 옷깃에 스며드는데 어찌된 일일까? 사람 좋아 보이던 그 40대 군고구마 장수의 얼굴이 자꾸만 시린 하늘을 배경으로 기러기처럼 떠오른다. 밑천마저 건지지 못하고 벌이를 접었을까? 아니면 그동안 모은 돈으로 더 나은 가게를 얻어 어엿한 주인이 되었을까?
겨울로 접어들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길거리에 등장하는 군고구마 장수와 그의 드럼통 화덕은 우리들 모두의 마음을 쓸쓸하게 혹은 따뜻하게 쓰다듬는 풍경의 일부가 되어 왔다. 그 풍경 속에는 늦은 밤 귀가하는 아버지가 식을세라 코트 밑에 품고 오신 따뜻한 군고구마를 기다리며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 내던 어린 시절도 담겨 있다.
이 나라에 군고구마 장수가 겨울바람 속에 처음 나타난 것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경이다. 식량이 부족하던 그 시절 정부가 구황작물 겸 술의 원료인 주정 제조를 위하여 고구마 생산을 장려하자 남아도는 생산량을 활용하기 위한 방안으로 길거리에서 군고구마를 파는 노점상이 등장했다. 그래서 군고구마는 전후의 배고프던 시절, 겨울의 찬바람 속에서 머리를 감싸던 군용 털모자, 드럼통 기구, 그리고 어릴 적 늦은 밤 즐기던 군것질의 단맛과 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중남미가 원산지인 고구마는 아메리카 정복 이후 16세기에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람들에 의하여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에 도입되었다. 조선에는 영조(재위 1724∼1776) 때에 일본 통신사로 간 조엄이 대마도에서 그 종자를 처음으로 들여와 지금까지 널리 재배되어 온 식물이다.
다이어트 및 건강 식품으로 인기인 고구마는 현재 그 재배 면적이 줄어들지는 않았지만, 도시 인근 재배 인구는 감소하고 수입은 금지되어 공급이 부족한 편이다. 여기에 가정에서도 고구마를 구울 수 있는 직화 냄비가 유통되고, 일부 편의점에서도 군고구마를 팔기 시작하면서 고구마 가격이 상승하고, 떡볶이나 와플 같은 길거리 음식이 다양해지면서 군고구마 장수가 점차 설 자리를 잃기 시작했다. 사실 군고구마 6개에 만 원이라면 이미 싼 군것질거리가 아니다. 그렇지만 그 낯익은 군고구마 장수가 지금은 부디 어딘가에서 더 밝고 따뜻한 상점의 주인이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김화영(Kim Hwa-young 金華榮) 문학평론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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