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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WINTER

생활

한국의 벗들 삼중의 성공을 위한 균형 잡기와 공유

이 미국인은 많은 한국인보다 두 가지 한국의 전통 분야, 즉 문학과 술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 보통 외국의 문화를 반드시 사랑하지 않고도 그에 대해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존 프랭클의 경우는 달라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 전통 문화를 보전하고 개발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면서 한국의 ‘미국화’를 한탄하지 않을 것이다.

존 프랭클 교수가 자신이 직접 빚은 술이 담긴 항아리들을 살피고 있다. 2010년부터 한국 전통 방식으로 술을 빚기 시작한 그는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외면하는 가양주의 번거로움과 고유의 맛을 즐긴다.

고대로부터 한국인은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학문과 무술 둘 다에 능해야 한다고 믿었다. 어떤 이들은 이 두 가지 필수 항목에 만족하지 못하고 한 가지를 더한다. 미각이 그것이다. 존 프랭클은 이 세 가지 자격 조건을 다 충족시키는 것 같다.
프랭클은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국제대학에서 10년간 한국 문학을 가르쳐 온 교수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인터넷에서 그를 검색하면 그의 이름이 한국의 많은 브라질리언 주짓수(BJJ) 도장과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이 무술 세계에서 잘 알려져 있다.
미각은 알코올과 관련되어 있다. 한국 사람들은 술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니 악명이 높다. 하지만 프랭클은 한국의 전통주에 대해 자신만큼 애정과 지식을 갖고 있는 한국 친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단 브랜드로 술을 생산해 팔자는 제안을 받을 정도다.
그는 공부만 하는 따분한 사람, 싸움꾼, 그리고 술주정뱅이가 되지 않고 어떻게 이 완전히 서로 다른 영역에 몰입할 수 있을까? 균형과 절제가 키워드처럼 보인다.
프랭클은 “무엇이든 잘하지만 뛰어난 재주가 없다(Jack of all trades but master of none)”는 미국 속담을 잘 알고 있다. 이 말을 그에게 적용한다면 그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저는 한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기보다 세 종목에서 동메달을 따고 싶어요”라고 그는 말한다. 좀 더 정확하게는 3종목 2세트라고 해야겠다. 프랭클은 학자, 무술자, 양조자뿐 아니라 교수, 남편, 아빠로서도 잘하고 싶다. “하나의 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해요”라고 그는 말한다.

세 개의 공을 저글링하기
브라질리언 주짓수를 예로 들어보자. 1999년에 프랭클은 일본의 유도에서 파생된 이 무술을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그의 검은 띠 첫 제자들이 이후에 주짓수 도장을 오픈했고, 그들의 제자가 또 다시 검은 띠를 받은 후 주짓수 도장을 열었다. 도장들은 프랭클과의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도장 이름에 사용하지만 프랭클은 그들의 도장 운영에 개입하거나 수수료를 받는 것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는 자신만의 주짓수 도장 체인을 만드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 단지 직장에서 가까운 두 개의 주짓수 도장에서 연습을 할 뿐이고, 어떤 다른 직위를 갖는 일에 관심이 없다.
프랭클은 브라질리언 주짓수가 자신이 배워본 적 있는 가라데나 무에타이나 태권도보다 우수하고 건강을 위해서는 최고의 무술이라고 생각한다. “가라데, 무에타이, 태권도처럼 서서 주로 펀치나 킥을 사용하는 무술은 방어자뿐 아니라 공격자에게도 상처를 남깁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와 반대로 누워서 하는 주짓수에서는 상대방에게 신호를 보내 언제든지 항복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부상을 당하지 않아요.”
주짓수가 안전하지 않았다면 그는 자신의 고등학생 딸에게 배우도록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학자이자 운동 선수로 서로 대조되는 사회 활동을 하는 게 어느 하나도, 혹은 둘 다 완벽하게 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프랭클의 생각은 다르다. “저에게는 모든 게 균형인 것 같아요. 정신과 육체의 균형이죠. 저는 이 두 가지가 서로 상반되기보다 서로를 보강한다고 봐요.”
이런 균형적인 활동이 그에게 주짓수를 사업화할 시간을 허용하지 않고 그 역시 그럴 마음이 없다.

한국의 술과 증류주
프랭클의 모토인 균형과 절제는 자신이 만드는 술에도 적용되는 게 분명하다. 2010년에 그는 집에서 술을 증류하기 시작했다. 좀 더 맛있는 술을 만들기 위해 프랭클은 여러 비슷한 기관 중에서 한국가양주연구소의 초급반부터 고급반까지 등록했다.
“당신이 직접 만든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마트에서 파는 술을 마시기가 힘들어져요. 이해할 수 없는 건 훌륭한 술과 증류주 전통을 갖고 있는 한국인들이 값싼 증류주인 소주에 만족하고 있는 거예요. 소주는 정말 밍밍하고 하나같이 똑같은 맛이에요”라고 그는 말한다.
프랭클은 집에서 증류한 소주 맛의 90퍼센트를 재료가 결정하고 나머지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잘 발효된 누룩과 질 좋은 쌀이 있으면 술의 맛은 거의 보장할 수 있어요”라고 그는 말한다.
“찐 밥과 누룩과 물을 항아리에 넣고 상온에서 열흘 정도 발효시켜요. 그러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술을 얻을 수 있어요. 송화가루나 쑥 같은 계절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재료를 더해도 좋아요. 케이크에 당의(糖衣)를 입히는 것처럼요.”
잘 발효된 술은 더 맑은 청주를 만들기 위해 걸러지게 되는데 거르지 않고 우윳빛 나는 술은 막걸리로 알려진 탁주가 된다. 그리고 청주를 다시 가열하면 소주가 된다. 알코올 도수는 가열 온도에 의해 결정되는데, 80도(한국식으로는 40도)나 그 이상까지 갈 수 있다. “잘 걸러진 청주를 증류하면 약 4분의 1 분량의 소주를 얻을 수 있어요”라고 그는 말한다.
“전통적인 증류주인 소주는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기만 하면 고급 술이 될 수 있어요.”
필자는 프랭클이 증류한 80도 소주 두 종류를 시음해 보았다. 중국의 고량주를 포함해 다른 도수가 높은 증류주처럼 첫 맛은 썼지만 뒷맛은 재료인 찹쌀 때문인지 깔끔했다. 독한 술을 마실 때 목을 넘어가는 불편한 뒷맛도 없었다.

1999년 한국에 최초로 브라질리언 주짓수를 소개한 프랭클 교수가 자신의 이름을 딴 도장에서 시범을 보이고 있다. 그는 학자와 무도인의 길을 동시에 가는 이유에 대해 정신과 육체의 균형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비싼 위스키를 마실 때도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느낌이 좋지 않아요.”
프랭클은 말을 이었다.
“한국의 전통 소주는 도수가 높은 데도 불구하고 목넘김이 편합니다. 좋은 재료를 사용해 만든 소주는 아무리 많이 마셔도 숙취가 없어요.”
프랭클은 세 가지 조건만 충족되면 밤새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좋은 술과 좋은 사람, 그리고 좋은 분위기가 그것이다. 이 51세 교수는 술에 취해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걸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국인들은 주정뱅이와 그들의 실수를 술 때문이라고 하면서 잘 받아 주는 것 같아요.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술을 탓하면 안 되죠. 문제는 술을 마신 사람이에요.”
한국의 음주 문화와 관련해서 프랭클은 중요한 변화를 감지했다. “요즘 한국 사람들은 술을 이전보다 덜 마시고 음주에 시간을 덜 쓰고 분위기도 차분해졌어요. 술을 마시고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변화가 실망스럽긴 하죠”라고 그는 농담조로 말했다.
프랭클은 한국 사람들이 처음에는 한국 전통 술을 증류하는 외국인이라고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봤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그가 만든 술과 제조법을 공유해달라고 부탁한다. 위스키의 본산인 스코틀랜드인을 비롯한 그의 몇몇 외국인 친구들도 한국의 소주와 제조 방법에 푹 빠졌다.
“한국 술에서 가장 큰 이점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라고 프랭클은 말한다. 한국의 술이 고량주나 사케보다 더 나을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인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만든 것에 대한 자부심과 축적된 전통을 모아서 스토리텔링으로 옷을 입히는 거예요.”
그는 한국인들이 스카치 위스키 한 병에 수백만 원을 지불하고 프랑스 와인을 위해 백만 원을 낼 의향이 있지만, 소주나 막걸리에는 몇 천 원 이상 지불하는 걸 꺼린다고 꼬집는다. 한국의 술이나 증류주가 싸야 할 필요가 없고 한국인들도 비싼 고량주를 만들어 파는 중국인들한테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가양조 학원에서 배운 어떤 사람들은 작은 규모로 양조장과 증류장을 운영하면서 한국의 소주와 막걸리를 다양화시키고 있어요. 이 차별화 과정이 이제 시작되었지만 대중화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라고 그는 말한다.
“마트나 편의점에서 볼 수 있는 소주나 막걸리 같은 싸고 약하고 맛없는 술과 증류주는 빈티지 소주, 청주, 그리고 (탁주에 밥알을 동동 띄우는) 동동주에게 자리를 내주고 사라져야 합니다.”
프랭클은 가끔 자신의 이름으로 증류주를 론칭하자는 제안을 받기도 한다. “이런 제안에는 양가적인 마음을 갖고 있어요”라고 그는 말한다.
“사업으로 술을 만들기 시작하면 취미로는 더 이상 즐길 수 없을 겁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커다란 매장 선반에 저의 제품을 올려놓는 꿈을 꾸기도 하지요.”
하지만 굳이 말하면 프랭클은 파는 것보다 만드는 것의 즐거움이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학자이자 운동 선수로 서로 대조되는 사회 활동을 하는 게 어느 하나도, 혹은 둘 다 완벽하게 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프랭클의 생각은 다르다.

1989년 연세대학교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첫 방문했던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 출신의 프랭클 교수가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국제대학에서 한국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획일성보다 다양성
존 마크 프랭클은 로스엔젤레스에서 태어났지만 캘리포니아의 산타크루즈에서 주로 성장했다. “고등학교 시절 제가 살았던 도시에는 한국인 거주자도 학생도 없었어요. 한국에서 선교사로 일한 미국인도 없었구요”라고 그는 말한다.
“그런데 대학에서 어쩌다 한국어를 제2 외국어로 선택했고 열심히 공부했어요. 졸업하려면 통과해야 하는 과목이었거든요.”
그는 1989년 처음 연세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왔고 계속해서 한국어를 공부했다. 이때 그는 한국의 현대문학과 당대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프랭클은 채만식, 염상섭, 현진건 같은 1920년대와 30년대에 활동한 작가를 선호했다. 이들은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문학을 표방했는데 프랭클의 선호도는 문학 장르보다 개별적인 작가와 작품을 기준으로 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이상인데 특히 그의 산문을 좋아한다. 이상의 시나 소설은 그에게 너무 난해하다.
거의 15년을 한국에서 살고 있는 그는 물론 한국을 사랑한다고 한다. “하지만 당신도 알겠지만 완벽하게 100퍼센트 사랑이란 있을 수 없지요. 좋은 감정으로 95퍼센트 한국을 사랑하더라도 나머지 5퍼센트의 부정적인 면이 더 두드러지지요”라고 그는 말한다.
95퍼센트 좋은 감정에 대해서 그는 한국인들이 자신감 있고 개방적이라고 하면서 한국은 외국인 해외 체류자에게 친절하고 편리한 나라라고 말한다. 처음에 그는 한국인이 친해지기 어렵고 외국인에게 불친절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경향은 이제 많이 개선되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부정적인 5퍼센트는 획일성, 또는 다른 말로, 억압된 개인주의다. “신촌이나 압구정을 방문할 때마다 뉴욕이나 도쿄와 별로 차이를 느낄 수 없어요. 한국인과 한국의 도시는 자기만의 매력, 고유성을 잃어가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그래요. 세상은 빠르게 글로벌화되어 가고 있지요. 그렇지만 한국이 너무 미국처럼 될까 봐 걱정됩니다.”
한국인의 민족적 특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민족적 특성’을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 한국의 학교 선생들은 ‘단일 민족’이나 ‘순수 혈통’ 같은 신화를 아이들에게 주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대신에 한국인들은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찾고 국내 거주자든 국외에 사는 외국인이든 이들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제가 한국에 대해 가장 좋아하는 점은 다양한 방언과 풍경과 음식이 있다는 거예요. 자동차로 세 시간 정도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작은 나라에서 말이죠”라고 그는 덧붙였다.

최성진 한국바이오메디칼 리뷰 편집장
안홍범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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