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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AUTUMN

생활

식재료 이야기 단풍이 짙어지면 단맛도 깊어진다

게는 온 세계 사람들에게 익숙한 식재료이다. 그중 봄가을에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꽃게는 특별한 조리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특유의 풍미를 만끽할 수 있다. 게살이 달고 맛있는 이유는 게의 생존 방식과 깊은 연관이 있다.

가을은 꽃게의 계절이다. 살이 꽉 차오른 꽃게는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 암수를 구별하자면 가을은 수게의 계절이다. 교미를 앞둔 수게가 허물을 벗고 몸을 다지기 때문이다.
꽃게는 가열하여 익히면 껍질이 꽃처럼 붉게 변하는데 그런 이유로 ‘꽃게’라불리는 것은 아니다. 꽃게의 ‘꽃’은 등딱지에 꼬챙이처럼 생긴 뿔이 두 개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조선 중기의 실학자 이수광(1563~1628 李晬光)이 편찬한 문화백과사전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꽃게의 이름 풀이에 더해 “뒷발이 납작하니 얇은데 노 모양으로 생겨 그것으로 물을 밀어 헤엄친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200년 뒤 정약전(1758 ~ 1816 丁若銓)이 저술한 당대 최고의 바다생물 백과사전 『자산어보』(玆山魚譜)에도 “대체로 게는 잘 기어 다니지만 헤엄은 능숙하지 않은데, 이 게만은 유독 부채 모양의 다리로 헤엄을 잘 친다”라고 적혀 있다. 영어로 꽃게를 ‘swimming crab’이라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바다를 유영하는 꽃게의 모습이 신기했던 것은 매한가지였나 보다.

단맛의 비밀
꽃게가 헤엄치는 모습이야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뒤이어 정약전이 묘사한 꽃게 맛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할 만하다. 그는 그 맛이‘감미롭다’고 했다. 신선한 가을 꽃게는 달디달다. 하지만 설탕의 단맛과는 전혀 다르다. 짭짤한 바닷물 속에서 빚어 낸 섬세하고 복잡한 단맛이다. 꽃게만 그런 것은 아니다. 대나무 마디를 닮은 다리를 가졌다 하여 이름을 얻은 동해의 대게가 그렇고, 러시아산 킹크랩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게살이 단 이유는 설탕의 70% 정도로 단맛을 내는 아미노산인 글리신이 많이 들어 있어서다. 물론 바닷물도 깊은 관련이 있다. 게가 짜디짠 바닷물에서 생존하려면 소금의 농도와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물질이 필요하다. 바닷물보다 농도가 낮으면 삼투압으로 인해 체내 수분이 바닷물로 빠져나가 버릴 위험이 있다. 그렇다고 소금을 사용하여 농도를 맞출 수는 없다. 미네랄(electrolytes)이 지나치게 많으면 체내 효소의 활성에 지장이 있어 생명 활동을 이어 나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바닷물고기는 TMAO(trimethylamine oxide)라는 물질을 농도의 균형을 맞추는 용도로 사용한다. TMAO는 본래 무색 무취이지만, 유통이나 보관 중에 분해되면 생선 비린내의 원인이 된다. 게살에도 이 성분이 들어 있어 잘못 보관하면 생선 비린내 비슷한 냄새가 날 수 있다. 하지만 게와 같은 갑각류는 TMAO 대신 단맛 아미노산 글리신을 주로 사용하여 바닷물과 농도를 맞춘다. 해산물 뷔페에서 먹는 게살에서는 단맛이 훨씬 적게 느껴지는데, 물에 삶고 가공하는 과정에서 글리신 성분이 씻겨 나가기 때문이다. 단맛의 비밀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게살에는 글리신 외에도 알라닌이라는 단맛 아미노산이 들어 있고, 글루탐산과 핵산 같은 감칠맛 성분도 풍부하다. 여기에 다양한 휘발성 물질이 더해져 게살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진한 풍미를 이끌어 낸다.
바닷물이 짤수록 바다의 염도에 맞추기 위해 게살 속의 글리신, 알라닌 같은 유리 아미노산의 농도가 더욱 짙어지고 맛은 더 좋아진다. 또한 고랭지 무나 배추가 얼지 않기 위해 당 함량을 늘리듯 바다가 차가워지는 가을과 겨울 사이 게살 속 단맛 아미노산 함량도 늘어난다. 덕분에 가을 게 요리에는 복잡한 과정이 불필요하다. 그냥 쪄 내기만 해도 풍미가 차오른다. 마이야르 반응 덕분이다. 당과 아미노산을 함께 넣고 가열하면 둘이 반응하여 갈색으로 변하면서 원래의 식재료와는 다른 복합적 풍미를 만들어 내는 마이야르 반응은 원래 섭씨 120℃ 이상의 고온에서 잘 일어난다. 물에 삶은 수육에서 불에 구운 스테이크와 같은 특유의 향기를 맡을 수 없는 이치다. 하지만 게살은 예외로 단맛 아미노산과 당이 워낙 풍부하여 120℃ 이하에서 찌거나 삶아도 견과류와 유사한 고소한 향이 난다. 껍질째 익히면 향기 물질을 더 많이 잡아 가둘 수 있어 풍미가 더 깊어진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반찬 간장 게장은 마늘, 생강, 붉은 통고추 등 여러 양념을 넣고 끓여서 식힌 간장에 꽃게를 담가 숙성시켜 만든다. 주로 3~4월에 잡은 암꽃게를 사용한다.

자가소화를 이용한 조리법
게는 보관 과정에서 상하기 쉽다. 운반 도중에 죽기라도 하면 금방 살이 흐물흐물 녹아내려 먹을 수 없다. 게와 같은 갑각류에는 ‘간췌장’이라고 불리는 소화 기관이 있는데, 죽고 나면 여기 들어 있는 자가소화 효소가 퍼져 나와 살을 분해하기 때문이다. 집에 가져왔을 때까지 살아 있던 게도 죽고 나서 바로 조리하지 않으면 속살이 곤죽이 될 수 있다. 게를 낮은 온도에서 익히거나 덜 익혔을 때도 자가소화 효소의 활성이 증가해서 게살이 죄다 녹아 버린다. 꽃게를 잡자마자 급속 냉동하면 이런 현상을 막아서 연중 내내 살이 꽉 찬 꽃게를 즐길 수 있다.
자가소화를 거꾸로 이용한 음식이 한국인이 오랫동안 즐겨 온 간장 게장이다. 마늘, 양파, 생강 등을 넣고 끓인 간장을 식힌 다음 잘 손질한 꽃게가 잠기도록 부어 두었다가 익으면 먹는다. 꽃게의 자가소화 효소와 꽃게에 붙어 있던 미생물에 의해 게살과 내장이 분해되고, 이 과정에서 맛을 내는 유리 아미노산 함량이 높아진다. 간장 속 감칠맛 성분과 녹아내린 게살 속 감칠맛 물질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진미다. 가열하여 익힌 게살과는 또 다른 특유의 풍미가 ‘밥도둑’이란 별명을 만들어 낸 셈이다. 조선 시대에는 육즙이 풍부한 게장을 만들기 위해 “소고기나 닭고기를 게에게 먹인 다음 게장을 담갔다”는 기록도 등장한다. 푸아그라 방식과 유사한 조리법이라고 하겠다.
우리가 게의 알이라고 생각하고 먹는 것은 사실은 진짜 알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 수정되지 않은 난소다. 이런 게는 먹어도 된다. 하지만 몸 바깥으로 짙은 갈색의 알이 덩어리져 나와 있는 게는 잡아서도, 먹어서도 안 된다.
암꽃게와 수꽃게가 교미하는 시기는 초가을이지만, 이때 바로 수정이 일어나진 않는다. 수게의 정자는 암게의 저정낭에 보관되었다가 이듬해 봄에 난자와 만나 수정된다. 수정란은 날치알과 흡사한 모양으로 투명한 실에 줄줄이 매달려 있다. 바깥으로 삐져나온 알의 색깔은 처음에는 주홍빛이었다가 점점 더 짙은 갈색으로 변한다. 수정란을 밴 게는 꽃게든 대게든 킹크랩이든 먹어도 별맛이 없다. 번식을 위해 에너지를 쏟고 난 암게의 살이 꽉 찼을 리도 만무하지만, 알을 밴 암게는 환경 보전 차원에서도 잡지 말아야 한다. 보통 암게 한 마리가 75~300만 개의 알을 낳지만, 살아남는 것은 그중 단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니 금어기를 철저히 지킬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매년 연안의 꽃게 개체 수를 추정하기 위한 연구 조사를 벌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바다가 차가워지는 가을과 겨울 사이 게살 속 단맛 아미노산 함량도 늘어난다. 덕분에 가을 게 요리에는 복잡한 과정이 불필요하다. 그냥 쪄 내기만 해도 풍미가 차오른다.

수산물 시장에서 상인들이 갓 잡아 온 대게를 정리하고 있다. 껍질이 얇고 살이 통통하며 맛이 담백한 대게는 동해안 일대에서 많이 잡히는데, 어획 기간인 겨울부터 다음 해 봄까지 이 지역 식당들은 신선한 대게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가을 단풍을 닮은 이유
꽃게는 가을 단풍을 닮았다. 단풍은 날이 차가워지면서 나뭇잎의 엽록소가 파괴되어 그 초록빛에 가렸던 노란색, 주황색, 붉은색의 색소 물질이 드러나는 현상이다. 살아 있을 때는 ‘블루 크랩’이란 이름에 걸맞게 푸른빛을 띠는 꽃게 껍질도 가열하면 그 색소 성분이 단백질에서 풀려 나와 선명한 붉은빛을 나타낸다. 그래서 꽃게와 단풍은 닮았다.
한국의 들과 산에서는 초가을부터 단풍이 시작된다. 하지만 이때는 초목의 일부가 물드는 정도에 불과하다. 조금 더 기다려야 단풍이 절정에 이르러 산과 들이 붉은 단풍으로 뒤덮인다. 꽃게도 그렇다. 매년 8월 말이면 금어기가 풀리고 꽃게잡이가 시작되지만, 이때는 속이 텅 빈 물렁게가 많다. 게나 바다가재 같은 갑각류는 껍질보다 웃자랄 수 없다. 그래서 성장을 위해 주기적으로 허물벗기를 해 줘야 한다.
새집을 짓고 이사하는 데 드는 생물학적 비용은 크다. 이 과정에서 다량의 근육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나면 절반은 살, 절반은 물이 찬 물렁게가 된다. 물로 찬 공간을 다시 살로 꽉꽉 채우고 껍질을 딱딱하게 만들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린다.

이를 거꾸로 이용해서 잡은 꽃게가 허물벗기를 기다렸다가 먹는 소프트크랩도 있지만, 바다에서는 알을 밴 암게처럼 물렁게도 포획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가을이 깊어져야 단풍의 멋도, 꽃게의 맛도 깊어진다. 멋과 맛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놔줄 땐 놔줄 줄 알고, 기다릴 땐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정재훈(Jeong Jae-hoon 鄭載勳) 약사, 푸드 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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